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한미 FTA 관련 뉴스가 나왔다. 국회에서 기자들 출입도 통제하고 날치기로 통과시켰다는 말에 딸아이의 한마디~ 

딸:  쥐답네, 쥐다워.  

엄마 : 뭐? 쥐는 왜? 

딸 : 쥐들은 사람이 안 볼 때 몰래 다 갉아 먹잖아.  

엄마 : 네가 정곡을 찌르는구나. 너 진짜 기자 해라! 하하하하하... 

 잠시 후 

엄마 : 엄마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인 줄 알았구나??? 

 

아이들이랑 이런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아침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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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1-11-23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촌철살인^^

소나무집 2011-11-24 08:43   좋아요 0 | URL
뜬금없이 쥐가 튀어나와서 웬 쥐? 했어요.ㅋㅋㅋ

마녀고양이 2011-11-23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코알라가요, 자꾸 쥐박이 쥐박이 그래요.
엄마랑 아빠가 한 대화를 훔쳐들은거죠. 학교에서 그 단어를 써먹을까봐, 열심히 타일렀다는... ㅡㅡ;;;;

소나무집 2011-11-24 08:48   좋아요 0 | URL
세상이 아이들마저 의식화시키고 있어요.
울 아들은 선생님이 통지표에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은 아이라고 써 주셨더라구요.ㅎㅎㅎ
학교에 가서 뭔 소리를 하고 다니는지...

전호인 2011-11-25 08:58   좋아요 0 | URL
타이르지 마세요.
아이의 소리도 국민의 소리입니다.
간접적인 전달이죠.
중딩인 나의 알라들이 그럽디다.
학교에서 2MB관련 영상자료라도 나오면 모두가 쌤께 "그만 꺼주세요 피곤해요"라고 말입니다.
 

올 가을은 유난히 예뻤다. 붉게 물든 낙엽 몇 개를 주워 책 사이 끼워 본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가을을 느낄 여유도 없이 이 도시 저 도시 흘러다니던 내 정신에 여유가 생긴 걸까? 우수수 쏟아지는 단풍이 아까워 혼났다. 요즘 여린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드러내며 가을이 다~ 간다. 

남편이 오지 않는다. 완도에서 원주로 올 때 2년만 떨어져 살면 내려올 거라던 남편 회사는 2년이 다 된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와야 오는 거다. 혁신 도시 공공 기관 이전은 예산과 관련된 일이기에 가카의 신념이 바뀌길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그 와중에 평창 동계올림픽이 확정되었다. 다들 경사났다고 난리였지만 우리 부부는 안 되길 두손 모아 빌었다. 하지만 유치에 성공했고 우려했던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하룻밤 자고 일어날 때마다 집값이 올라가고 있었다. 서너 달 사이 수도권도 아닌 곳에서 전세가 3천~4천만원 정도 올랐다. 갑자기 몰려든 타지의 투기꾼들은 매매가도 듬뿍 올려놓았다. 집 가진 사람들은 웃었겟지만 전세 사는 나는 한숨만 나왔다. 집값이 요동치는 사이 새로 바뀐 집주인은 자기들이 들어온다며 이사 가라고 했다. 아~~~ 또 이사!!!!

어차피 이사할 거면 남편 있는 곳으로 가서 함께 살아야 하나? 어째야 하나? 여름 내내 결론 없는 고민만 하다 언젠가는 회사가 내려올 거라는 남편의 말에 힘입어 눌러앉기로 했다. 그리고 가을 내내 집을 보러 다녔다. 이사하는 게 지겨워 집을 사고 싶은데 집값이 갑자기 너무 올라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전세를 구하려고 두어 달 발품을 팔았지만 마음 고생만 했다.  

한 달 전부터 딸내미 학교 가까운 아파트를 찜하고 한 부동산만 열심히 드나들었더니 요즘 시세보다 좀 싸게 급매로 나온 아파트가 있다며 권해주었다. 급한 마음에 요모조모 따질 여유도 없이 그냥 사기로 했다. 대출 듬뿍 받아서.ㅜㅜ   남편이 없는 관계로 주중에 나 혼자 다니면서 일처리 다 했다. 그래서 집주인도 나고 대출 주인도 나다. 주말에 집에 온 남편이 웃으며 한마디 날렸다. "대출은 집주인이 갚는 거지?" 어쨌거나 이번에 이사하면 당분간 이사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휴~~ 삼주 후 이사 간다. 

어제 서울에 다녀왔다. 대학 때부터 제일 친한 친구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다. 25일 떠난다기에 가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려고 만났다. 아침부터 만나 수다 떨다가 같이 점심을 먹고 또 수다를 떨다가 지하철역에서 헤어지는데 눈물이 나와서는 끌어안고 한참 울었다. 친구 남편이 하던 사업이 잘 안 돼서 빈손으로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는 거라 서로 마음이 무거웠다. "25년지기 친구야, 가서 잘 살아라~ 자리 잡으면 꼭 보러갈게." 

친구도 가고 가을도 간다. 내 생일이기도 했던 어제는 하루 종일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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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1-22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으셨지만, 집을 사신거군요?
아우, 축하드려요! 집 사신 이후, 집값 팍팍 올라서 대박나시고 이사 잘 하시고 항상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친구가 떠나신다니, 그리고 지인 소식에 마음 아프시겠네요.. 제 친구도 수술해서 마음이 덜컹했는데.
네, 가을이 다 가네요.
그리고, 생일 축하드려요!

2011-11-22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11-11-23 09:12   좋아요 0 | URL
오래된 아파트라 더 오를 것 같진 않구요, 아이들 키우는 동안 이사나 안 하고 살 마음으로 사게 되었어요. 젤 친한 친구가 떠나니까 마음이 허전해서 한마디 했어요. 가서 잘 살길 바랄 뿐인데...

2011-11-23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11-11-22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이 나뭇잎만 떨구는줄 알았더니 사람 감정까지 떨쳐주네요. 이왕 떨치기로 작정한거 집값이랑 전기세 이런거나 왕창 떨쳐주지..;;
3주후 이사하실 즈음엔 조금 더 춥겠어요. 아주 고생을 안할수는 없을테고 조금만 고생하시라고 빌어드릴게요.
친구와의 이별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네요. 친구분 뉴질랜드에서 모든게 다 잘 풀려서 소나무집님의 뉴질랜드 여행기를 읽는 날이 멀지 않은 시간에 올겁니다 :)

하루 지났지만 생일 축하드립니다!

소나무집 2011-11-23 09:17   좋아요 0 | URL
앗, 제가 님 감정까지 떨쳐놓은 건 아니지요?
그러게요, 떨칠 건 안 떨치고 엉뚱한 것만 떨쳐요.
아무 기약 없이 떠나는 거라 걱정이 많이 돼요. 친구 남편은 5개월 전에 나가서 일을 하고 있다가 가족들 불러들이는 건데 좋은 여건은 아닌 것 같더라구요. 생일 축하 고마워요.^^

전호인 2011-11-22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자체가 전형적인 가을과 부합되는 것 같아 저의 마음도 쓸쓸해 집니다.
갑작스런 집값의 상승, 이사, 아파트구입, 친구의 이민 등등 대출이 있다곤 하지만 아파트를 장만했다는 것을 위로삼아 쓸쓸한 가을 마음만이라도 풍족하길 바랍니다. 이사잘 하시구요^^

소나무집 2011-11-23 09:19   좋아요 0 | URL
네, 님의 기운을 받아 다시 씩씩해지겠습니당!!!

순오기 2011-11-23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쓸했던 어제~~~~ 늦었지만 생일축하해요.
그래도 집 샀으니 됐지, 이걸 위로라고 남겨요.^^

소나무집 2011-11-23 09:20   좋아요 0 | URL
네, 축하 고마워요. ^^

2011-11-23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엘리자베스 2011-12-02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같은 라인으로 이사오시나 은근 기대했는데 너무 멀리 가시네요.
같은 아파트 살면서도 서로 바빠 자주 만나지 못했던게 많이 아쉬워요.
이사 하시면 정리되는대로 한번 불러주세요^^ 그전에 얼굴 한번 더 보구요.
 

추석이 지나고 친정아버지께서 생신 기념으로 제주도에 가자고 하셨다. 비용은 모두 책임지겠으니 삼남매를 거느리고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말씀이셨다. 올해 남편은 아버님 병환과 경조사 때문에 제주에 여덟 번이나 다녀왔다. 가족 모두 다녀온 것도 세 번이고.  

그러니 내 머릿속엔 친정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또 제주도야!" 이런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친정 식구들과 떠나는 첫 여행이라는 기쁨보다는 귀차니즘으로 가득했으니 난 불효녀가 틀림없다.

남편이 제주를 잘 안다는 이유로 여행에 관한 일을 우리집에서 떠맡았다. 그리고 그게 내 일이 되고 말았다. 네 집 식구 15명의 스케줄에 맞춰 여행 날짜를 정하고 비행기 시간표를 잡아 예약하고 숙소를 챙기고... 가는 사람은 별거 아닌 일도 진행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불만이 나올까 봐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제주에서 여행은 관광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승용차를 몇 개씩 렌트하고 운전하느라 신경 쓰느니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비용도 비슷했고. 여행사를 하는 남편의 사촌 부부가 항공권부터 숙소까지 예약하고 버스 운전까지 도맡아 해주었는데 여행지 선택, 입장료 할인, 식당 안내 등 여러 모로 신경을 써줘서 만족스러웠고 친정 식구들에게 우리 부부 얼굴이 좀 섰다. 덕분에 여행이 아닌 관광의 진수를 맛보고 왔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을이 여행 성수기라는 걸 실감했고, 제주를 즐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도 새삼 알게 되었다. 제주를 해마다 한두 번씩은 꼭 다녔지만 나의 제주는 여행이 아닌 시댁 방문. 이번엔 시댁에 들르지 않았으니 여행을 위한 첫 제주 방문인 셈. 

집집마다 자기네 편한 시간에 가다 보니 비행기 시간이 다 달랐다. 아이들 수업 끝나고 원주에서 출발한 우리가 꼴찌로 도착해서 모두 모인 시간이 금요일 저녁 8시 30분. 공항으로 시어머니와 아주버님 부부가 마중을 나와서 대식구의 저녁을 사주셨다. 죄송하고 고맙고 그랬다.

농사를 짓는 친정아버지에게 15명의 여행 경비는 적은 돈이 아니다. 항공료만 320만원이 넘으니... 올해 마늘값이 비싸서 돈 좀 벌었다며 좋아하셨는데 그 돈을 이번 여행에 다 썼다. 친정아버지는 자식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말씀하셨다. "칠십이 넘어가고 올해 사돈 두 양반(동생네 시아버지. 우리 시아버지)을 보내고 나니 이제 내 인생도 많이 남지 않았구나" 싶었다고.  

그래서 살면서 중요한 게 뭘까 생각해보니 자식들과 함께 하면서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많지 않은 자식들인데 다들 멀리 떨어져 사니 같이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아서 이번 여행을 계획했는데 한 사람도 안 빠지고 와줬다며 무진장 고마워 하셨다. 자식들이 할 소리를 대신...

부모님은 농사일로 피곤에 지쳐 있었는데도 자식들을 바라보는 얼굴에 행복이 가득했다.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허리야~ 하면서. 친정아버지는 더 젊었을 때 이런 여행을 못한 게 후회되신다고 했다. 꼭 여행이 아니어도 함께 있어만 드려도 행복해하시는데 다들 그걸 못하고 산다.

아버지, 엄마,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저희도 잘 살게요.    

 

- 서귀포 앞 새섬까지 새로 놓인 다리 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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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28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정아버님께서 주선하신 여행이었네요.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셨겠어요. 그래도, 뭉클하네요.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소나무집 2011-10-29 14:00   좋아요 0 | URL
자식들은 모두 사느라 바빠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연세가 들고 주변에서 자꾸 돌아가시니까 허전하신가 보더라구요.^^

BRINY 2011-10-28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아버님이시네요.
제 부모님은 아직도 자립을 못한 동생들때문에... 장녀인 제가 생각만 많습니다.

소나무집 2011-10-29 14:02   좋아요 0 | URL
시골에서 농사 짓고 사시지만 제가 봐도 좀 멋지긴 하세요.^^
올해 일흔둘인데 늘 활기가 넘쳐서 친정에 가면 활기가 넘쳐요.
저희는 부모에게 돈 가져가는 자식은 없으니까 이런 여유를 부리실 수 있었던 거 같아요.

pjy 2011-10-28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같이 가자고 말 꺼내시고 다같이 한명도 빠지지않고 모여주고~ 정말 멋집니다*^^*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다하니 가족들과 같이 더 많이 댕겨야겠습니다! 탈없이 잘먹고 잘자고 재미나게 지내다오셔서 준비한 보람되시겠어요~ 애쓰셨네요~

소나무집 2011-10-29 14:05   좋아요 0 | URL
오빠가 해외 출장이 걸려 있고, 고1 조카가 주말에 학원에 가야 돼서 날짜 잡기가 힘들더라구요.
시댁이 있는 곳인지라 사실 귀차니즘으로 시작했는데 부모님 즐거워하는 모습 보니까 저도 좋더라구요.^^

잘잘라 2011-10-29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 짱!!!! ^^ 눈물나다가 웃다가 마음이 짠- 합니다.

소나무집 2011-10-29 14:07   좋아요 0 | URL
친정아버지께서 올해 유난히 허전해 하시더니 이런 여행을 기획하셨어요.
저는 늘 청년 같은 친정아버지를 진짜 좋아하는 딸이에요.^^

희망찬샘 2011-10-29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아름다운 그림이에요. 저도 코끝이 찌잉~

소나무집 2011-11-01 09:19   좋아요 0 | URL
부모님이 자꾸 늙어가는 게 속상해요. 평생 고생만 하시고...

순오기 2011-11-01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게 맘만 갖고는 또 안되는 일이지요.
찌잉~~~~~~합니다!!

소나무집 2011-11-02 09:2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댁 형제들도 자주 모이시잖아요. 저도 그때 모습 보면서 부러웠어요. ^^
 

선우에게

우리 딸에게 아빠는 늘 편안한 친구처럼 다가가고 싶지만 요즘 들어 부쩍 짜증만 늘고, 집에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처럼 비쳐지는 것만 같다.

선우는 어떻게 생각하니?

아빠가 2년 넘게 주말에만 서울과 집을 오가며 지내는 모습이 아빠한테도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너에게도 좋은 아빠 노릇을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야.

그리고, 아빠가 한 가지 고백하고 싶은 게 있단다.  

그건 바로 '수학에 대한 공포심'을 너한테 남겨준 사람이 바로 이 못난 아빠라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진학하던 순간까지도 아빠는 늘 너에게 수학을 지도하고 가르친다면서 소리 지르고, 화만 내고 있었구나. 그래서 너의 수학에 대한 호기심과 자존심을 결정적으로 꺾어놓았다는 생각 때문에 아빠는 너무 가슴이 아프다.

정.말. 미.안.하.다.

아빠는 우리 선우가 몸이 부쩍 자라고, 정신도 많이 성장하면서 중학교 생활을 나름대로 잘 헤쳐나가는 모습에 늘 마음 뿌듯하다.

그러면서도 너를 힘들게 만드는 그 망할놈의 수학이란 괴물만 생각하면, 아니 수학을 괴물로 만든 원인이 아빠에게 있다는 생각만 하면!

아빠는 도대체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답답한 마음뿐이란다.

한때는 우리 선우가 수학하는 재미와 즐거움에 싱글싱글거리던 때도 있었는데...

요즘 들어 점점 수학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생각에 그 지랄같은 수학 공포만 더 키워가고 있는 것 같아 너무 걱정스럽다.

아빠의 바람은 한 가지란다. 우리 선우가 기자로서의 꿈을 잃지 않고 (혹은 다른 꿈을 꾸며 자라나도 괜찮다.) 학교 생활 잘 하고, 친구들과 좋든 싫든 갖가지 추억도 만들면서 네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길 기원하고 또 바라는 바이다.(모든 인생이 다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겠지. 또 그럴 필요도 없고 말이다. 불행하다고 늘 불행한 것도 아니거든.)

게다가 건강하게 튼튼하게 씩씩하게 잘 자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지금 네 입장에선 조금만 부족하거나 어려운 점이 있어도 세상이 다 불만족스럽고, 마구 욕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일어날 수 있을거야.

아빠도 너처럼 중, 고등학교 시절엔 그랬으니까.

할머니께 막 소리쳐서 할머니를 슬프게 만든 적도 있고, 그게 또 속상해서 아빠 혼자 속으로 후회하면서 울기도 하고 그랬단다.

물론 학교 수업을 몰래 빼먹고 시험공부도 하지 않아서 점수를 엉망으로 받곤 선생님께 혼나기도 했다.

어른이 된 후에 선우와 같은 학생 시절을 되돌아보니 참, 별것도 아닌 것에 두려워하기도 하고, 내 온 정신을 다 쏟아붓고는 절망하고, 왜 그렇게도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나 싶지만... 어느 노랫말처럼 그땐 그랬지. 어쩔 수 없다.

아마 아빠가 다시 학창시절로 선우와 같이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도 똑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구나. (하긴 네 입장에서 보면 '아빠가 요즘 지우랑 노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똑같아요'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어린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 시절도 이겨내고, 대학생이 되어서 세상과 싸워도 보고, 사회 생활에서 굴욕과 절망감도 견뎌내면서 온전히 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그러니 선우야, 어렵겠지만 네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딱지들일랑 한 번쯤 발로 툭 걷어차 버리고, 어쭈구리 하면서 비웃어보렴. 알고 보면 정말 별게 아닐 수 있거든.

쫄지마! 씨바, 그냥 막 욕하고 그 까이꺼 그냥 막 해보는 거야. 그럼 속이 후련해지지. 용기란 그런거야. 우리 선우, 힘내라! 화이팅!!


2011. 10. 18.

아빠가 울 딸 선우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을 담아 보낸다.


(젊은 세종대왕이 아버지 태종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냈지? 그래, 아버지 태종에겐 다른 대안이 없었거든, 그리고 세종이 태종보다 훨씬 오래 살 거잖아. 두려움이란 괴물딱지들도 그런 거야! 알고 보면 마방진에 갇힌 숫자들에 불과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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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11-10-2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이 다른 과목은 최상급인데 수학 성적은 점점 하락하는 딸을 보면서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서울에서 등기로.
편지를 읽고 있는데 눈물이 난다. 이 남자가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은 감이 와서...

엘리자베스 2011-10-21 10:35   좋아요 0 | URL
이미 좋은 아빠예요^^
이 편지가 선우한테 큰 힘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소나무집 2011-10-24 09:12   좋아요 0 | URL
애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전 늘 강요(?)하죠.
"애들아, 너희들은 얼마나 좋은 엄마 아빠랑 같이 사는지 알고 있지?"
그런데 별로 인정하는 눈치가 아니예요.^^

하늘바람 2011-10-21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렇게 멋진 아빠를 가진 선우는 아빠 나이가 되어도 할머니가 되어도 그리움이 가득하고 그 힘을로 평생을 씩씩하게 살거 같아요

소나무집 2011-10-24 09:05   좋아요 0 | URL
평소엔 좋은데 수학 공부할 때만 되면 웬수가 되더라구요. 그래도 힘든 딸의 마음을 알아주니 다행이다 싶어요.^^

울보 2011-10-21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멋진 아빠시네요,,요즘 제마음이 딱 저마음인데 아빠마음,그런데 아직 어린딸이 이해하기에는 아직 버거운것 같아요, 선우는 정말 좋은 아빠를 두어서 행복하겠어요,,

소나무집 2011-10-24 09:07   좋아요 0 | URL
우린 공부 때문에 거의 닥달 같은 거 하지 않는 편인데 수학은 좀 고민이 돼요. 우리딸도 혼내는 게 싫기만 하지 아빠의 마음 다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순오기 2011-10-2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편지 읽으며 눈가에 물이 고여요.
이런 아빠를 둔 선우는 그까이거 수학 괴물쯤 물리칠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우리집에도 수학 괴물이 살아요~~~~ ㅋㅋ
지나고보면 별거 아니었는데 그땐 우리 모두 그랬지요,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도 역시 그럴 거라는 말에도 공감해요. 추천 꾸욱~~~~~

소나무집 2011-10-24 09:10   좋아요 0 | URL
기특하게 이렇게 편지 쓸 생각을 다 했나 모르겠어요.
딸내미 수학 공포는 다 자기 때문이라는 걸 발견하고 반성 많이 했나 보더라구요.
나는 그걸 진즉에 파악했는데 이제야 파악했어요.^^
민경이랑 선우 수학 괴물은 썩~ 물렀거라~~~

iCANdoit 2011-10-24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 좋은 아빠가 그냥 될 수는 없는 것 같아. 우리 아들, 딸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 될 거라고 믿어. 그건 그냥 믿어. ^^

소나무집 2011-10-25 15:32   좋아요 0 | URL
^^

무스탕 2011-10-27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아빠시고 멋진 엄마세요!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무얼 잘못하며 지내는지 알면서도 그걸 인정하고 표현하는 부모는많지 않거든요.
저희집부터도 그러하니 선우아빠님의 고백과 격려는 어떤면에서는 저의 부러움이기도 합니다^^

소나무집 2011-10-28 13:16   좋아요 0 | URL
칭찬하주시니 고마워요.
맞아요. 잘못하고도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저도 남편한테 칭찬 많이 해줬어요.^^
 

웃은 일--- > 울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래 다독상 이런 거 빼고 상다운 상을 처음 받았다. 그것도 글쓰기상을!!! 일기 한 줄도 쓰기 싫어서 밤마다 실랑이를 하고... 5학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틀린 맞춤법의 진수를 보이는 아들이다. 난 아들의 글쓰기에 대해서는 2학년 이후 손을 놓았기 때문에 어떤 글쓰기 인생을 살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억지로 쓰는 일기 외에 그 어떤 글도 쓰는 걸 보지 못했으니... 

정말 믿을 수가 없어서 선생님이 적어 보낸 심사평까지 온가족이 모여 앉아 읽고 또 읽어보았다. "솔직하고 논리적으로 잘 정리된 ** 의 글이 우수상으로..."   

논제가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주인공에 견주어 자신의 꿈과 노력에 대해 서술하세요. 이런 내용이었다길래 뭘 썼냐고 물으니 하나도 생각 안 난단다. 음, 역시 울 아들답다. 지가 뭔 소리를 했는지도 모르는데 상을 받아 오다니...  

어찌나 귀하게 받은 상인지 주말 내내 내가 들떠 있었다. 욕심 없는 엄마의 소원이 "아들아, 상 하나만 받고 초등 학교를 졸업하여라"였는데 엄마 소원을 이루어주었으니 네가 정녕 효자로구나~   하면서... 

화딱지 난 일---> 고집 쎈 아들 덕분에 오늘 아침 한 건 했다. 늘 별거 아닌 일로 화를 돋우는 아들이니 오늘도 진짜 별 일 아니었다. 간신히 깨웠건만 침대 아래 쪼그리고 앉아 10분 이상 졸고 있다. 옷 갈아 입으라는 서너 번의 잔소리 끝에 간신히 잠옷을 갈아입기는 했는데 벗은 옷을 휙 던진다. 잠옷을 침대에 올려놓으라는데 무시한다. 한번 두번 세번 말을 해도 미동도 없다.  

회초리 나온다고 협박했더니 때리면 신고할 거란다.(슬프게도 우리집 이러고 산다.ㅠㅠ) 눈 감고 앉아서 들을 건 다 듣고 있다. 제가 불리할 때만 대꾸한다. 회초리를 가져온다. "잠옷 침대에 올려놓아라." 그래도 꼼짝 않고 앉아 있다.  

아들과 엄마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이놈의 고집을 꺾어놓고 말겠다고 결심한다. 회초리로 때릴 듯이 협박한다. 진짜 때릴 마음은 없었지만 꼼짝도 않는 아들은 회초리 든 손이 올라가게 만든다. 석 대를 맞고서야 잠옷을 침대에 올려놓고 느릿느릿 거실로 나온다.   

잠옷을 침대에 올려놓는 일이 이렇게 힘이 들어서야... 오늘은 엄마가 고집탱이 아들을 이겼다. 하지만 엄마 말보다 회초리를 더 무서워했으니 좀 서글프긴 하다. 책가방은 챙겼니? 준비물은 없니? 어쩌구저쩌구.... 아들의 입은 꽁꽁 얼어 붙었다.  

하지만 신문을 보며 내곡동 사저에 대해 엄마랑 누나가 하는 말을 듣고 끼어든다. 좀전의 싸움은 까맣게 잊은 태연한 목소리다. "내곡동 사저가 뭔데요?" "대통령이 이사 갈 집." "대통령 그만둔대요?"...... 에고, 아들아, 지금 너한텐 시간표 챙겨서 밥 먹고 학교 가는 게 더 중요하단다.  

오늘 이러느라 8시 45분에 학교 갔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아들도 신기하지만 이런 아들이 밉지 않은 내 마음도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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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10-18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넘 대견하네요

소나무집 2011-10-19 09:01   좋아요 0 | URL
상 하나 못 받고 초등학교 졸업하는 줄 알았어요. 가진 재주가 워낙 없는지라...

전호인 2011-10-1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 3 울 아들이 옆지기랑 토닥거리는 대화를 그대로 옮겨 놓았네요.
옆에서 그런 대화를 들으면 불같은 성격에 어찌하고 싶지만 이성을 잃은 아빠가 될까봐 늘 모른체 한답니다.ㅠㅠ
아이들 키우는 집은 어디나 마찬가지겠죠?ㅋㅋ
울 딸은 머리만지고 옷맵시 갖추느라 엄마의 애간장을 녹입디다. 에휴^^

소나무집 2011-10-19 09:04   좋아요 0 | URL
거의 매일 일어나는 일이에요. 참다참다 엄마 매운 맛을 좀 알아라!! 하는 의미의 경고였죠.
근데 이 아들은 엄마 무서운 걸 모르고 금방 헤헤거리던 걸요.ㅋㅋ
울 딸도 요즘 거울 들여다보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요.

엘리자베스 2011-10-18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추카 추카^^
저도 은근히 기대했었는데 울딸에게는 기쁜 소식이 없네요 ㅠㅠ

애들이 신경 안쓰는거 같아도 시간 다 재면서 늦장 부린다고 하더라구요.
엄마 속 타는 줄은 모르고 말이예요. 어쩌면 이것도 알거예요, 그쵸?


소나무집 2011-10-19 09:07   좋아요 0 | URL
그런 거 한다는 말도 안 하고 학교 간 울 아들이에요. 책은 평소에 읽어둔 거고. 그래서 처음엔 거짓말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근데 선생님이 보낸 편지를 턱 하니 보여주더라구요.ㅋ
지각했냐니까 할 뻔했죠? 그러데요.
우리집에선 이런 비스꾸리한 일이 매일 일어나요.^^

2011-10-18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9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10-19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독서의 내공이 드러나기 시작하는군요.
아들~~~~~~~~ 키우는 엄마들은 소나무집님의 그 마음을 다 알아요!!!
잠옷 침대에 안 올려두는 게 뭐 큰일(?^^)이라고 '기'를 꺾지 말고 그냥 내비두세요.
엄마만 열받지 결국 도루아미 타불이니까요. ㅋㅋ

소나무집 2011-10-19 09:11   좋아요 0 | URL
그러게 그게 뭔 큰일이라고 어른이랑 애랑 싸우고 있어요.ㅠㅠ
도루아미타불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한번씩 승질을 내게 되네요. 엄마 무서운 것도 좀 알아라 하는 의미인데 이 성격 좋은 아들은 금방 엄마가 좋아 헤헤~ 요런다니까요. 성격이 좋은 건지 살아남는 방법을 아는 건지...ㅋㅋㅋ

책가방 2011-10-19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그랬으면서... 아침에 아이들 깨우는 거 정말 힘들어요.
작은 아이는 나름 똑 부러지는 구석이 있는지라 알람 울리면 발딱 일어나서 젤 먼저 씻는 스탈~~
근데 화장대 앞에서 하염없이 찍어바르고 드라이어로 말고 매직기로 펴고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 속 터진다니까요.ㅋ
큰아이는... 아빠네 집안 내력을 그대로 이어 받아서 자도자도 졸린 스탈~~
빠듯하게 일어나서 부랴부랴 씻고 화장대 점령한 동생 때문에 교복먼저 입고, 아침도 먼저 먹었는데도 동생은 아직도 화장대 앞.. 이쯤에서 둘이 또 티격태격 한답니다.
제발 언니인 니가 먼저 일어나서 먼저 준비하고 먼저 등교했으면 좋겠다고 몇번을 말해도 소용없네요.
가끔은 아무말도 안하고 밥 차려놓고 도로 방에 들어가서 애들 등교할 때까지 안나오기도 한답니다.
눈에 안보이면 화도 안나니까요.
약속시간보다 늦는 건 죽어도 못 참는 작은딸, 차라리 지각해서 청소를 할 지언정 잠을 포기하지 못하는 큰딸..
이 둘을 어쩌면 좋아요..??

소나무집 2011-10-21 09:58   좋아요 0 | URL
님 집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군요.
우린 맨날 반복되는 일인데 하루쯤은 엄마도 성깔 있다는 걸 보고 주고 싶었어요. 순오기님 말씀대로 다음 날 도루아미타불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