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디자이너 칩 키드Chip kidd를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이름을 기억하는 북 디자이너이기도 하니.. 책 표지에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이라면 이름을 많이 들어보았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부연을 하자면, 일단 그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유명 책표지 디자이너로, 쥬라기 공원, 에서부터 내 이름은 빨강,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의 표지를 디자인을 한 사람이다. 물론 우리나라 책이 아니라 미국에서 유명한 사람이라서 아쉽게도 그의 작품들은 국내에서는 보기 힘들다. 그런 그가 책 표지를 디자인하는데 있어서 정말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의 강연을 들어보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처음 디자인 회사에 입사했을때, 디자이너가 자신들 앞에 칠판을 하나 가져다두고는 사과를 하나 그렸단다. 그리고는 사과 밑에다가 Apple이라고 이름을 달아두고는 이렇게 말을 하였다는 거지. 둘 중 하나를 가리고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는 있어도, 절대 둘 다 그대로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지는 말라고. 이 말이 무슨 말이냐고 하면, 사람들에게 어떤 디자인을 보여줄 때 사과그림만 제공하든지, 아니면 Apple이라는 이름만 제공하든지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절대 지나친 친절, 그러니깐 사과그림도 보여주고 그 밑에 Apple까지 달아두는, 을 베풀지는 말라는 말이다. 이는 독자들을 우롱하는 처사라면서 말이지. 이 말을 듣고 보니깐 정말 일리가 있었다. 우리는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에 한계가 있다. 우리가 흥미를 느끼는, 그리고 즐겨 하게 되는 게임은 어떻게든지 우리의 머리를 쓰게 만들고, 그로 인하여 흥미를 유발시킨다. 왜 디아블로 3가 인기가 있는가? 우리의 머리를 쓰게 만드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설령 제작자들이 의도한, 다양한 진행 방식을 즐겨보라는 그런 방침에서 어긋나더라도, 높은 난이도를 어떻게 헤쳐나가는가, 라는 것에 머리를 쓰는 것도 충분히 흥미를 유발하는데 부족함이 없을터이니 말이다. 바로 이런 부분이 칩 키드가 중점을 두는 부분이다.

 

이 칩 키드의 작품 중에 내가 정말 놀란 작품이 (그렇다, 책 표지도 충분히 작품이 될 수 있다.) 바로 앞서 언급한 내 이름은 빨강, 의 책 표지와 제목에서 언급한 1Q84의 책표지이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내 이름은 빨강, 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둘 다 상당히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구성되어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내 이름은 빨강의 표지 디자인은 바로 옆에서 보다시피 저렇게 생겼는데, 물론 앞면만 보면 이게 뭔.. 하는 생각이 들테지만, 이 책의 진가는 칩 키드가 직접 말했다시피 책장에 꽂아두었을때 드러난다. 책장에 꽂아두면 사랑을 나누는 두 젊은이가 나타나고, 이제 그 책장에서 뽑아들기 시작하면 서서히 얼굴을 찌푸리는 술탄, 바로 옆에 보이는 붉은 옷을 입은, 이 등장하며, 좀 더 빼면 그 술탄을 노리는 활을 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렇다. 오른쪽 위에 말을 타며 활을 쏘는 젊은이, 바로 그 사람이다. 사랑을 나누는 젊은이들과 그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술탄. 그리고 그 술탄을 노리는 활을 겨냥하는 남자. 이들은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궁금하지 않은가? 노벨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의 대표작들 중 하나라서 아마 읽은 사람이 많을텐데, 그 줄거리를 떠올리면서 옆의 책표지를 다시금 보라. 아마 느끼는 바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는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사실 나는 칩 키드의 강연에서 저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저 표지에 그렇게 대단한 창의성이 숨어있었는지 몰랐지만, 만약 내가 저 책을 구매했었다면, 그리고 책장에 꽂아두었다면 우연찮게 언젠가 그의 의도를 발견했을 것이다.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분명 그 의도를 눈치챌 것이다. 자연스럽게 책장에서 끄집어 낼 때, 그 언젠가. 그런데 여기 하나의 보석이 더 있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으로 유명한 1Q84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필생의 역작으로 여기는 작품인데,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을 읽은 사람으로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든 작품들 중 수작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여하튼 당장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언젠가 언급하겠지만, 일단 여기 표지를 보라. 개인적으로는 사람 얼굴이 표지로 나오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왠지 등장인물들 중 누군가가 이 표지의 인물로 고정되어버리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처음 이 표지를 그의 강연에서 이야기를 들었을때에도 그다지 끌리는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그러니깐 칩 키드의 설명을 듣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왼쪽의 1Q84 글씨가 보이는가? 저 1Q84의 이야기는 두 세계를 넘나드는, 그러니깐 1984년과 1Q84년을 넘나드는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이다. 아오마메는 모든 것이 시작된 어느 날, 계단을 통해서 지하로 내려간 뒤 새로운 세상에 도착하고 만다. 왼쪽 책의 표지는 이중으로 되어있는데, 저 겉지를 벗기면 내부에 새로운 표지가 등장한다.검은색으로 1Q84가 아로새겨져있는. 다른 부분들, 그러니깐 여인의 얼굴은 그대로이지만 배경 색감과 글씨 색깔은 확 바뀌게 되고, 단조롭다면 단조롭다고도 할 수 있는 그 디자인을 통해 책의 서두를 칩 키드는 이끌어낸다. 저 여인을 주인공 아오마메라고 한다면, 바로 그 흰색과 검은색의 교차야말로 주인공이 겪는 이중의 세계를 잘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칩 키드가 디자인한 책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그만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이런 책들을 통해서 그는 강렬하게 북디자이너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표현한다. 바로 저런 일을 하는 것이다. 저런 디자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일단 초본을 읽고 수많은 정보를 집적하여 정돈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물론.. 한 눈에 이 디자인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를 깨닫기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간다면 저런 디자인이야말로 진정으로 책에 어울리는 디자인이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인거지. 화려한 색감으로 눈만 잠깐 희롱하는 그런 음식이 아니라. 이는 분명 아마 앞으로 책 표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아마도 우리 나라에서 출판된 책들의 디자인 중에서도 저런 철학을 담고 있는 디자인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여러분 책의 표지를 한 번 다시 살펴보는게 어떨까. 어쩌면 그 책 표지가 여러분에게 어떤 말을 걸 수도 있지 않겠는가.

 

 

 

p.s. 칩 키드의 TED강연을 듣고 제법 감명받아서..

p.s.2 정말 바빠야 할 시기인데.. 바쁠 수록 다른 것들이 하고 싶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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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6-20 21:02   좋아요 0 | URL
아니....이런 강연도 들어요? 전 이 디자인보다 가연님이 이런 강의를 듣는다는게 더 흥미로운데요! 전전 페이퍼에서는 생물 공부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사실은 디자인 공부 하는거에요?

슬픈말을 덧붙이자면, 나는.....내 이름은 빨강......이 엄청 재미 없었어요. orz

가연 2012-06-20 21:39   좋아요 0 | URL
으하하.. 몇 개의 페이퍼로 저의 일상을 파악하셨다고 생각하셨다면 오산입니다. 저는 그야말로 양파같은 남자, 까도 까도 무언가 나오는 신비스러운 존재........... 음.. 테드 강연은 인터넷으로 대부분 공개되어있으니깐ㅎㅎ 아주 많이 찾아서 보는 편이에요. 직접 저런데 참여할 수도 있기는 한데.. 뭐랄까 너무 강연료가 비싸기도 하고 참여하는데 까다롭기도 하니깐..ㅋㅋ

ㅎㅎ 저도 내 이름은 빨강, 을 재미있었다, 라고 기억하고 있지는 않네요ㅎㅎ ㅎ 읽은지도 너무 오래된 책이기도 하구.. 하지만 저 디자인은 정말 재기넘치다, 라고 생각했답니다.

프레이야 2012-06-21 08:43   좋아요 0 | URL
북 디자이너 칩 키드는 몰랐어요.ㅎㅎ 가연님 페이퍼로 알게 되어 기뻐요.
저도 늘 북디자인을 눈여겨 보거든요. 책을 만나면 표지부터 한참 들여다보구요.
책 좋아하는 분들은 거의 그럴 것 같기도 해요.
'내 이름은 빨강'은 비슷하긴 해도 원래의 표지가 훨씬 신비한 느낌이네요.

가연 2012-06-22 12:31   좋아요 0 | URL
ㅎㅎ 도움이 된 것 같아 기쁘네요. 저도 표지를 종종 보는 편인데.. 어떤 경우에는 표지가 일종의 스포일러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쵸, 훨씬 신비한 분위기입니다.

2012-06-29 21:56   좋아요 0 | URL
이 글 진짜 재밌게 읽었어요. 내이름은 빨강, 1Q84 표지 이야기!!
(사실 며칠 전에 읽었는데 지금 표냅니다...ㅎㅎ)
칩 키드같이 창조적인 사람 진짜 멋져요.

가연 2012-06-30 04:47   좋아요 0 | URL
ㅋㅋ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정말 창조적인 사람들은 멋있어보입니다. 여러 분야들에서 다양한 창조성들을 보이는 사람들 모두 말이죠, 하하.
 

 

 

 

비평이론의 모든 것.

정가 3만 1천원.

이 책은 정말 최근에 구입한 책들 중에 가장 뛰어난 책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황금가지.

정가 1만 6천원.

이 책은 예전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을 터.. 분명 호불호가 갈릴 책이다. 가격은 상대적으로 덜 비싸지만, 가독성은 그리 좋지 않다. 책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재미없는 것도 아니다. 물론 처음에는 좀 어렵고 재미가 없을 수 있다. 처음에 발췌해서 읽을 때는 재미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읽으면서 흥미로운 부분을 많이 찾을 수 있었었는데.. 문체를 보면 수많은 흥미로운 사실의 나열로 이루어져있어서 절대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단 한 문장도 정보를 담고 있지 않은 문장이 없으니 읽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런 식이다. 첫 문장에서는 이집트 왕국의 군주에 대해서 설명한 다음에 그 다음 문장에 동양의 군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현대의 많은 매체가 신화, 전승, 상징에 얼마나 빚을 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기하학과 상상력.

정가 3만 5천원.

이 책은 선뜻 구입하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 책을 구매하기 전에 수많은 인터넷 검색을 행했지만 이 책에 대해서 언급한 곳은 한 곳도 없었고, 속으로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학이다. 수학이야! 수학이야!!!!! 수학중에서도 공간도형이야!!!!!! 끄아아아아앙.. 하지만 호기심에 진 나는 잠깐 훑어보고 구입하고 말았고, 개인적으로는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 이 책은 일종의 강의록이다. 다비드 힐베르트가 강의한 내용을 묶은 책인데, 힐베르트는 당시 수학계에서 형식주의의 수장으로 직관주의의 수장인 브라우어와 대립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든 반석 위에 수학을 올리려고 했으나..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증명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만 그의 업적을 부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저 수학이라서 어려워 보이는 것일 뿐, 시간을 가지고 차분히 읽어간다면 정의부터 시작해서 쌓아올라가는 형식이라서 별로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그러나 뒤의 역자의 말처럼 종이와 연필을 들지 않고 이 책을 정말 '상상력'에 의존해서 읽어갈 생각이라면 말리고 싶다. 최소한 연필이라도 들고 책 여백에다가 끄적거리길 바란다. 이 책은 교양 서적이 아니라 진짜 수학책이다. 대학의 기하학 교재들보다 편집이 멋드러지게 되어 있기에 좀 더 세련되어 보일 뿐이다. 절대 구입하라고 권할 수 없다.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정가 3만 8천원.

이 책도 당시에 구입할 때 정말 흐뭇해하며 구입한 책이다. 정말 뛰어난 책이다. 책을 읽다가 낯선 저자가 나오면 이 책을 먼저 뒤져본다. 그러면 거의 왠만한 저자들은 여기에 이름이 실려 있다. 이 책은 일종의 사상가 백과사전에 가까운 책이다. 그 사상가들에게는 편향성이 있지 않다. 얼핏 보면 개인의 취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상가가 있는가 하면, 이 사람을 사상가, 라는 이름으로 분류해도 될까, 싶은 사람들, 예를 들어서 에르빈 슈뢰딩거나 리처드 파인만 등도 담겨 있으니 그 분포를 어느 정도는 짐작 가능할 것이다.

저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 책을 더욱더 불멸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일이다.. 

 

 

 

 

다윈 평전.

정가 5만원.

결과적으로 확 질러버리고 말았던 책인데, 그때의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5만원이라는 가격은 솔직히 부담되기도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아마 지를 것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으로 이 책을 제대로 독파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말 흥미롭고,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정말 두껍기에 누워서 책을 볼 수 없는게 단점일 정도다. 지금도 종종 아무 부분이나 펼쳐서 읽어보고는 하는데, 정말 어느 부분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몇 달 전에 일종의 다윈 바람이 불어서, 다윈에 관한 서간집과 2권 짜리 평전이 출간된 적이 있었을텐데.. 서간집도 흥미롭고 2권 짜리 평전도 흥미로웠던 것을 보면 어쩌면 다윈이라는 사람의 삶 자체가 정말 흥미로워서 그를 다룬 책들이 모두 흥미로운 것일지도 모른다.

 

 

 

 

좌우파 사전.

정가 3만 5천원.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솔직히 말하면 좌파, 에 좀 더 무게가 실려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좌파라고 불리는 진보는 상대적으로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보이고, 우파라고 불리는 보수는 책 문맥에서는 그리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서장에 진보든 보수든 한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 노력하는 존재들이다, 라고 말하는 부분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옳은 말이다. 그 외 사소한 문제는 아무래도 저자가 많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가 아닐까. 좌파와 우파에 대해서 개념적으로 어느 부분이 속하는 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구매해서 한 번쯤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각 개인에 따라서 자신의 모든 성향이 어느 한 파에 완전히 속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깨달음으로 좀 더 다른 파에 대한 포용을 기를 수 있지 않겠나.

 

 

 

 

서양 철학사.

정가 3만 8천원.

러셀의 베스트 셀러, 서양철학사이다. 그냥 집에 모셔두어도 뽀대가 나는 책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더욱 더 뽀대가 난다. 예전에 이 책을 소개한 적이 있더랬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사실 그리 진도가 나가지는 않았다. 아직도 나는 플라톤과 아웅다웅하고 있으며.. 필요할 때 발췌해서 각 사상가들을 읽어내려가는 쪽으로 참고를 하고 있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이라면 아무래도 현대의 사상가들은 별로 소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인데.. 지금의 현재와 러셀의 현재는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 사상가들에 대하여 이런 비슷한 책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러려면 먼저 이 책의 저자와 같이 유려한 문체에 탁월한 식견을 갖춘 인물이 먼저 등장해야될테고, 그런 인물이 아, 비슷한 책을 써야지 하고 마음을 품어야 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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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6-09 20:34   좋아요 0 | URL
정말요, 가연님이 읽으셨다는 책과 소개해주시는 책들을 보면 보는것만으로도 머리가 핑핑 도는데 가연님께서는 어떻게 이걸 다 읽으시고 생각하고 이해하는지 놀랍기만 하네요. 와우 특히 다윈 평전은 5만원인데다가 1천 페이지가 훌쩍 넘네요. 박수 한 번 남기고 갑니다 ㅋㅋ

가연 2012-06-09 22:26   좋아요 0 | URL
다 읽기는요ㅎㅎ 아직 읽고 있는 책들이지요, 거의가. 그러고보니 언급하신 다윈 평전은 다 읽었지만, 풋. 읽을때 이보다 더 비싼 책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는...ㅋㅋ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2-06-11 12:12   좋아요 0 | URL
이 페이퍼를 읽고있자니 가연님의 전공은 무엇이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어떤걸 그동안 공부하셨길래 이런 책들(?)을 읽으실 수 있는걸까, 하고 말이지요.

그리고 다윈평전에 '정말'이란 부사는 의도적으로 많이 넣으신거에요? 정말이란 단언가 정말 많이 나온다는거 가연님도 알고 계셨어요?

가연 2012-06-11 14:14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의도적이라기보다는 그냥 강조하느라 많이 집어넣은거지요. 의도가 있다고 말하기는 부끄럽고 의식적으로 많이 넣기는 했는데ㅋㅋ예리하시네요, 풋.
물리는 아니겠지요, 하하.. 별 것 아니구 그냥 생물 쪽 공부하고 있어요.

일개미 2012-07-22 22:11   좋아요 0 | URL
파트장님 안녕하세요. 간만에 들렀다 올려놓으신 것중에 군침나는게 많아서 침을 질질...흘리고 있습니다. 조만간 지를듯...저의 이성은 가연님에게 감사하다고 하지만 지갑은 원망하는 중입니다ㅋ

가연 2012-07-23 17:0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비싼 책들이라서.. 한 2년에서 3년 지나면 반값들로 좀 풀리지 않으려나요? 그러고보니 벌써 지났네요, 어쨌든 도움이 되..ㄴ...것 같아서 뿌듯하네요.
 

 

 

 

리뷰를 쓸까, 하다가 아무래도 그나마 편하게 쓸 수 있는.. 페이퍼에다가 끄적거린다.

여러 책들을 동시에 표지까지 담을 수 없으니..

무엇보다도 원래 할 일이 생기면 더욱 더 딴 짓[..]을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하루하루가 참.. 여러모로 버겁다.

그래도 이번 주에는 현충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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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을 집중적으로 읽게 된 것이 중국 드라마들을 접하고 난 뒤였다. 신필이라고 불리는 김용의 의천도룡기,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천룡팔부를 먼저 TV에서 드라마로 접하고 감명받아서 그의 무협소설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었다. 여담이지만 신조협려와 천룡팔부의 유역비는 정말 여신처럼 예뻤다. 그녀의 외모는 시간이 흘러도 전혀 변하지가 않아서 꽤 오래전에 개봉한 포비든 킹덤이라는 그야말로 볼거리가 '이연걸 VS 성룡 그리고 유역비' 뿐인 영화에서도 유역비의 미모는 빛을 발했다. 어쨌든, 신조협려의 소용녀역할과 천룡팔부의 왕어언 역할을 유역비가 그때 맡았는데, 그때 정말 꼭 책을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거야. 그래서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그러니깐 앞서 말한 천룡팔부,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몽땅 읽었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무협지 섭렵 생활은 김용의 다른 작품들.. 소오강호, 녹정기, 협객행 등의 작품들을 읽게 만들었고, 무협소설을 읽은 사람이면 으레 그렇듯, 누가 이 김용월드의(!) 최강자인가, 를 따지기 시작했다. 또 샛길로 새자면, 김용월드에서의 최강자는 일단 독고구패와 무명승(각각 사조영웅전과 천룡팔부에서 나온다)이고, 그 뒤를 소봉(천룡팔부), 양과(신조협려)이 뒤를 잇는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소봉을 더 우위에 두지만, 양과가 더 무공이 고강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쨌든, 다시금 원 글로 돌아가서, 그렇게 따지던 중에 (몇 번의 키배[..] 후에) 갑자기 다른 무협소설들도 읽고 싶어진거야. 그때 마침 마주친 것이 무협작가 좌백의(우리나라 사람이다) 혈기린 외전이었다. 그 전에 좌백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좌백의 블로그에 종종 들러서 그가 쓰는 부부만담(어떻게 마님으로부터 살아남는가, 에 대한 이야기이다) 을 보면서 키득거린 적이 많았거든. 하지만 무협작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상스레 손이 안갔었다. 그러던 중 읽었던 혈기린 외전은 나에게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혈기린 외전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시골 농부였던 왕필이 어떻게 그를 괴롭힌자들에게 복수를 하고 의를 행하는가, 이윽고 혈기린이 되는가, 에 관한 이야기이다. 혈기린은 참고로 말하면 저 책에서 네 명의 무공이 가장 높은 사람들 중 하나이다. 어쨌든, 혈기린 외전을 읽고 좌백의 다른 책들을 탐색하던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공교롭게도 좌백의 책이 아니라 진산, 그러니깐 좌백의 마님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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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말했다시피, 그의 블로그를 통해서 연재되었던 부부만담을 통해서 진산이 좌백의 아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전에는 그녀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무협작가 두명이서 결혼해서 사는 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거든. 또 샛길로 잠깐 새자면, 좌백이 진산을 처음 만났던 것은 어느 시상식장이랬다. 당연히 무협소설을 썼으니 남자라고 생각했던 좌백은 시상식장에 올라온 진산을 보고 깜짝놀랐다. 아니, 여자라니! 당시 좌백은 인지도가 높던 상황이었고, (데뷔 때부터 좌백은 이미 거목이었던 용대운의 격려를 많이 받았었다고 들었다.) 그 공모전이 좌백 자신이 심사위원으로 있던 공모전이었거든. 심사하면서 당연히 남자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시상식장에 올라온 사람은 여자였으니 당황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 후에 좌백은 진산에게 첫 눈에 반해서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다던가. 이쯤 잡이야기는 그만하고, 진산의 책을 처음 읽게 된 것은 그녀의 단편집이었다. 그 단편집에는 매란국죽에 관한, 고기만두, 웃는 매화 등의 단편이 실려있었고 (정확히 제목은 잘 기억이 안난다.) 그 연작을 읽으면서 나는 예전에 혈기린 외전을 읽으면서 놀란 것 만큼이나 놀라고 말았다. 섬세한 배경묘사에서부터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그야말로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서정적인 감정묘사까지. 그 때 이후로 나는 진산의 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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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름만 팬은 오래 못가는 법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점차 바빠지고 삶이 팍팍해진 나는 무협소설을 그만 읽게 되었고, 블로그 활동도 거의 안하게 되고, 이런 저런 일들이 겹쳐서 좌백의 블로그에도 더이상 들르지 않게 되었다. 이 부부 작가들이 신작을 내고는 있는지, 전혀 알아보지도 못했고, 신경도 못쓰고 있었다. 최근까지도. 이윽고 지금에 이르러 이 책을 보게 되었고.. 처음에는 무심히 지나갔다가, 저자 이름이 정말 낯익은 거야. 진산, 민해연이라고. 아니.. 진산? 진산이면 진산인데 민해연은 또 누구지? 나중에 알고보니 진산은 무협소설만 쓴 것이 아니더라구. 민해연이라는 이름으로 로맨스 소설도 썼던데.. 뭐, 사실 로맨스 소설을 안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보통 로맨스 소설은 대부분 (인터넷 로맨스 소설 커뮤니티를 둘러봐도) 주로 여성향에 가까운 편이다.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도 크게 보면 로맨스 소설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어쨌든, 큰 틀은 비슷하다고 볼 수가 있다. 평범한 여자주인공(하지만 그녀는 알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지)과 신분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주인공..들(보통 제1 남주는 재벌집 외동아들 또는 후계자, 제 2 남주는 제1남주의 가장 친한 친구 또는 경쟁자, 가끔 제 3 남주가 등장하는데,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보통 자주 등장한다.), 게다가 제1남주는 언제나 쿨시크한 매력을 가지고 있고, 제 2남주는 그에 반해 뭔가 다정다감할때가 있다. 보이 meet 걸은 어디서나 흔하다. 걸이 뺨을 쫘악, 때리면 보이는.. 그게 먹힌다! 말도 안돼! 내 뺨을 때린 것은 네가 처음이야, 라는 그야말로 소설같은, 소설이니까 당연하겠지만, 그런 대사를 풍기면서(그야말로 풍기면서..다.) 결국 수많은 난관(제2, 3 남주의 방해, 집안에서의 반대, 가끔은 여자주인공의 친한 친구 또는 여동생이 적으로 돌아서서 제 1남주는 내꺼다! 이러는 경우도 있다.)을 헤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등의 엔딩으로 마무리 짓는다. (19금을 노리는 로맨스 소설은 야한 씬을 많이 넣는데, 보통 상류층 파티 후에 알 수 없는 체취에 끌려서[..] 야한 씬이 하나 들어가고, 제2 남주가 제 1남주는 널 도구로 밖에 생각하지 않아! 라고 외치고 또 야한 씬 하나 넣고.. 결혼 한 후에 행복에 겨워서 야한 씬을 또 넣고.. 다양하게 넣는다) 대개가 이렇다보니 나 개인적으로는 읽다가 질려서.. 더 못읽겠더라구. 사람의 취향은 다양하니깐,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래서 사실 이 책을 받고는 좀 걱정했다. 진산과 민해연의 이름을 동시에 병기했다는 이야기는, 무협 소설에서의 팬들과 로맨스 소설에서의 팬들을 모두 끌어들이겠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은 진산이고, 무협소설 작가인데, 이 책에서는 분명 민해연의 성향도 나타날 것이란 말이지. 그만큼 야심만만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고, 동시에 나로서는 지금껏 읽어왔던 (많지는 않지만) 로맨스 소설들이 떠올라서 약간 꺼려질 수 밖에 없었던거지. 결국 내 걱정은 반 정도 맞았다. 가스라기는 제목 그대로 가스라기, 가 주인공이다. 가스라기는 풀 부스러기 등을 의미하는 말이라는데.. 여하튼 극중에서는 그야말로 부스러기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그야말로 배척당하는 존재이다. 이 가스라기의 삶이 극적으로 변하게 된 것은 하늘에서 가장 고결한 존재, 천군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우연히 상처를 입고 쓰러진 천군의 상처를 가스라기는 돌보게 되고, 이윽고 자신을 남겨두고 떠난 천군을 찾아서 하늘로 향하게 된다. 가장 비천한 자와 가장 고결한 자의 결합. 많은 로맨스 소설에서 보이는 구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스라기는 그야말로 묘한 매력을(앞서도 말했다) 가지고 제 1남주 천군과 제 2남주 지한을 모두 유혹하는데 성공한다.(앞서와 달리 이번에는 제 1남주가 온화한 성격이고, 제 2남주가 난폭한 성격이지만) 중간 중간 선총을 빙자한 19금 장면을 넣고(남자가 선총을 바라면 어떻게 될까??) 결국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든 마무리지어진다. 무협적인 요소라면.. 작가가 직접 밝혔다시피, 봉신연의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티가 보인다. 선인으로서 열게 되는 살계, 음계는 저기서도 나왔던 이야기이거든. 선인도 어쩔 수 없는 존재라 결국 내부의 폭력심과 음심이 쌓이고 쌓이게 되는데, 이를 푸는 것이 인간의 전쟁에 슬쩍 끼어들어서 푸는 것이다. 혹은 자기들끼리 때를 맞추어 치고받고 싸우거나. 그리고 작중에 나오는 보패 정도..가 무협 요소들이겠지. 하지만 분명 이렇게 생각하면 에휴, 평범한 로맨스 소설이구나, 하며 실망을 했어야 했는데, 또 그렇지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렇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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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도올, 그러니깐 그 김용옥말이다, 은 그의 저서에서 (아마도 노자와 21세기, 로 기억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천지불인, 이라는 말을 했다. 도올이 중국이던가? 어쨌든 외국에 강연을 갔는데, 그 중국사람들이 도올을 붙잡고 하소연을 하는 거야. 당시 중국에 (혹은 그 외국에) 상당한 수준의 지진이 일어났었다. 자연재해때문에 비탄에 빠진 중국인들이 도올에게 왓더헬, 하고 하소연할때, 도올이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눈을 뜨면서 천지불인, 천지불인이로다, 라고 중얼거렸단다. 저 말은 하늘과 땅은 인자하지 않다, 라는 말이다, 단순하게 해석하면. 좀 더 끄적거려보면, 하늘과 땅은 인격체가 아니라는 말도 할 수 있을 것이고, 하늘과 땅은 인간에게서 거리를 두고 있다, 라고 말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하늘과 땅이 만약에 우리나라, 코리아를 편애한다고 가정해보자. 전 세상이 아마겟돈의 화염에서 신음할때 우리나라만 멀쩡하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국민으로서의 나는 다행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는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은 인간과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로서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가 친하다고 해서 범죄를 눈감아준다면, 어느 누가 우리를 공경하겠는가? 마찬가지로 하늘과 땅이 인자하여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푼다면 그 누가 하늘과 땅을 공경하겠는가? 천지불인이기때문에 중국에 일어난 재해가 '그들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벌칙' 이 아닌, '누구나 두려워하고 공경할 수 밖에 없는' 하늘과 땅의 힘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스라기로 돌아가보자. 앞서 가스라기가 평범한 로맨스 소설인 것 처럼 끄적여놓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가스라기의 제 1남주인공 천군은 그 자신이 일종의 자연으로, 자신의 감정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그런 그가 과연 편애하는 존재가 생긴다면? 그는 이제 공정성을 잃을 것이고,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결국 편애하는 존재인 가스라기, 여주인공이 생겼고, 결국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이를 진산은 '천도무친', 즉 하늘의 길은 친함이 없다, 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이 책은 이제 평범한 로맨스 소설을 넘어서 사랑을 위해서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의 주제로 넘어가게 된다.

 

아니, 어느 정도까지 사랑해야만 옳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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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 가스라기 이전에 저런 주제를 다룬 책이 출판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비운의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책인데, 고리골, 이 바로 그것이다. 도술의 명맥이 거의 끊겨져가는 명말 청초 전환기에, 원제강이라는 남장여자가 주인공인데, 상당한 무, 그러니깐 신과 인간의 교차점으로서의 무의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끝끝내 그 길을 거부하다가 결국 운명을 받아들이는 그런 내용의 이야기이다. (좀 더 큰 주제로 말하자면.. 다신교의 붕괴가 되겠지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제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그와는 179도 정도 방향을 틀어서 제강을 끊임없이 지배하려고 드는 동악대제라는 존재의 이야기이다. 동악대제는 실제로 한 때 태산의 주인으로 숭앙받았던 신이고 (이 책은 도교에 대한 고증이 상당히 철저하다. 나오는 대부분의 신들과 신화는 거의 전승과 흡사하다.) 결국 현실에서는 나중에는 관제묘에 그 숭앙을 조금씩 잠식당하게 된다. 책에서도 그 내용이 완전히 그른 것이 아니라서 동악대제는 조금씩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고, 이윽고 서방 기독교의 전래로 완전히 자신들의 세계, 도교 신화의 세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악대제가 무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제강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려는 것은, 단순히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기 위함은 아니었다. 물론 신과 인간의 교차점역할을 하는 제강으로 그 힘을 나타내어 다시금 인간들로부터의 공경을 공고히 할 수 있었지만, 그가 제강을 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다른 이유때문이었다. 그것은 제강과 같은 재능을 가진 무의 일족(소설에서는 고리골이라고 부른다)의 기원때문이고, 그 기원은 동악대제의 천도무친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동악대제는 일찍이 한 인간여자를 사랑했었고, 그로 인하여 자신의 아버지인 천제에게 경고를 받는다. 하늘을 다스리는 자는 결코 어느 한 사람에게 정을 더 주어서도, 덜 주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결국 그가 사랑했던 그녀는 이윽고 천제에 의하여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이윽고 동악대제는 '필부만도 못한' 자신을 비하하게 된다. 모든 것을 다룰 수 있는 신이라니, 그야말로 허상이다. 사랑하는 사람 하나를 지키지 못하는 존재가 과연 모든 것을 다룬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그녀의 원념을 그러모아 한 종족을 창조하는데, 그 종족이 바로 고리골이며.. 고리골의 마지막 일족인 제강을 통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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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이나 동악대제쯤되면 자신의 등에 짊어져야만 하는 것이 너무 많기에 쉽사리 짐을 내려놓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확실히, 저런 존재의 밑에서 그들의 결정이나 감정에 영향을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자신들의 상사가 좀 공정하고 냉정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들의 결정에 자신들의 위치가 결정될테니. 그 결정이 세상을 좌우할 만한 결정이라면 더욱 더 무서울 것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면서 결국에는 벽을 쌓게 된다. 사랑하면 할수록 어느 순간 상대방에게 여기까지만, 라고 마음의 제한범위를 두게 된다. 더 사랑하게 된다면 나도, 상대방도 결국에는 서로에게 구속될 것임을 서로 본능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여기까지만, 하고 사랑하는 것도 절대 그르다고 할 수 없다. 어쩌면 이 정도의 사랑이 가장 옿은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빠지는 순간 우리는 끝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이윽고 하얀 재만 남기게 될 뿐이다. 자기 파멸적인 사랑의 귀결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자기 파멸적인 사랑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등에 묶인 것들을 내려놓고 사랑을 택한다고 해서 과연 어리석다, 하며 비판할 수 있을 것인가. 상대방이, 사랑이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면..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그만큼 가치가게 있다고 여겨져서 그 사랑을 택했다면 그 선택은 결국은 존중받아댜 되지 않을까. 그것은 나의, 그리고 당신의 특권이기에. 하늘의 도는 친함이 없어야 한다고 하던가. 그런 것이 알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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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겠지, 과연 그 사랑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자기 파멸적이다, 라는 말은 냉혹한 부분이 있어서, 사랑이 식은 후에는 내가 왜 그랬지, 라는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것이다. 사랑을 내분비 매커니즘으로 밝히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데, 그 유효기간이 호르몬이 다하는 3년 정도라던가. 그럼 부부는 어떻게 지내는가, 하니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편안함을 느끼게 만든다고 한다. 호르몬에 지배되는 뇌의 화학작용은 사랑인가? 어쩌면 저 천도무친이든 뭐든 다 망상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것은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감정을 꾹 누르고 가장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길을 쫓는 것이 좋겠다. 결혼은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이랑 하고, 친교도 뭔가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을 가려서 사귄다.. 라면 참 좋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에 남는 이 감정은.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금 사랑에 빠지게 되겠지.

천도무친따위, 알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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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6-05 10:5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저는 가스라기를 읽으면서 천군이 다스리는 커다란 원을 그렸어요. 그 원안에는 물론 가스라기가 들어있죠. 아주 작게. 그런데 천군이 가스라기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품게되자 그 원은 꿈틀 거리고 형태가 변형되요. 원은 나름대로 원의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전체가 흔들릴 수 밖에 없었죠. 머릿속에서 이걸 그려보면서 와, 참 이런걸 어떻게 상상하고 써냈지, 했는데 이쪽 방면에서는 원래부터 있어오던 이야기로군요.

천군이 세상을 다스리는 커다란 원을 가지고 있었다면 개인은 개인만의 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도 저만의 원을 가지고 있다는거죠. 그래서 저도 어느 한 사람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되면 그 원이 흔들리고 꿈틀거려요. 그 원의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서요. 그래서 한 사람을 특별히 사랑하게 되면 설레이고 기쁘고 행복하고 그러다가 아프고 고통스럽고 눈물흘리게 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원이란건, 그러니까 제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려고 하는데, 한 사람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그 원의 성질을 변형시키려고 하고, 그래서 원과 나는 싸워야 하는....


아..그만 쓸래요. 쓰다가 힘들어요. -_-

가연 2012-06-06 18:18   좋아요 0 | URL
ㅎㅎ 음.. 마치 드럼의 표면적같네요. 막 두드리면 드럼 면이 꿈틀거리고 변하는.. 드럼도 동그란 원이고.. 원이 흔들리는게 꼭 가장자리쪽만 해당할 필요는 없으니깐ㅎㅎ 두드리는, 그런 외부의 힘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품는 감정(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빚지는..)일테고..ㅎㅎ

옛날에는 로맨스소설을 약간 읽었는데.. (장르 소설읽다가.. 무협읽다가.. 그 옆에 꽂힌 로맨스소설읽다가..) ㅎㅎ 그런데 아무래도 남자가 읽기에는 정신적으로 공격당하는 부분이 많아서.. 하하하ㅠ 뒤에 언급한 고리골은 굳이 따지자면 판타지 소설이니..ㅎㅎ

마녀고양이 2012-06-10 16:1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가연님, 첨 뵙겠습니다.
한사람님 서재를 타고 왔는데, <신조협려>로 인해서 댓글 남깁니다.
저는 김용에 미쳐서, 석달을 회사다니며 밤새워가면서, 영웅문 시리즈, 녹정기, 천룡팔부를 죽어라 읽은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반가왔습니다.

한때 저도 로맨스 소설을 엄청 읽은데다, 아직도 대여점에서 두박스 얻을 것을 포함하여, 백여권을 소장하고 있는지라.... 저것들을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장르 소설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 하고 있네요. ^^

즐거운 한주되시기 바랍니다.

가연 2012-06-10 19:07   좋아요 0 | URL
처음 뵙겠습니다. 신조협려는 정말 재미있지요. 개인적으로는 신필의 작품 중에 천룡팔부를 최고작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무협을 좋아하는 분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저는 로맨스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답니다, 푸하하. 제가 읽기에는 위에서도 밝혔다시피 정신적으로 공격당하는 기분이라서.. 하지만 그럼에도 장르소설은 정말 묘~한 매력이 있지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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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가 종영되서 솔직히 너무 슬프네요.

무한도전도 방영안하고.. 나가수는 애매하고..

여자친구는 없고.. 무슨 재미로 살지??

 

 

 

퀀텀맨.

미묘한 책이지만 일단 추천 목록에 놓아둡니다. 미묘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파인만에 관련된 책은 많으며 파인만의 일화를 알고 싶다면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 와 같은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이 책은 파인만의 일화보다는 파인만의 연구 업적에 무게를 두고 있는 책이니 말입니다. 둘째로 파인만의 연구 업적에 이 책이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는데, 파인만이 직접 쓴 QED를 읽는 것이 차라리 파인만이 무엇을 지향했는지를 아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 QED도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책도 아무래도 대중들이 그냥 심심풀이로 읽기에는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셋째로 리처드 파인만의 아이큐는 이론물리학자치고는 낮은 125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상당히 우리들에게 친숙감을 줍니다. 왠지 아이큐가 140이나 180쯤 되면 역시 이론물리학자들은 우리랑 다른 인종이야, 라고 그냥 관심을 놓아버리게 되는데, 파인만이 125라고 하면 괜스레 우리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파인만의 아이큐가 125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그의 어렸을때의 수많은 천재성을 드러내는 일화로 시작합니다. 미국 수학경시대회에서 파인만이 압도적인 점수 차로 1위를 했다던가, 혼자서 독학으로 무한급수와 대수론, 미적분을 완성했다던가 (그것도 고교 때) 같은 일들로 말입니다. 사실 이게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그의 저서 '파인만의 물리학' 과 같은 대학 교재를 보면 이 사람 진짜 천재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드니 말입니다. 하지만 저런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우리들이 그에게 접근하기가 쉽지는 않지요. 그러나 여기 추천목록에 놓아두는 이유는, 저런 일화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가 파인만을 좋아하기 때문이겠지요.

 

 

레드북.

이 책도 상당히 미묘하지만 여기에 놓아둡니다. 이 책이 미묘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말로 번역되었다지만 여전히 내용이 쉽지 않습니다. 얼핏 읽으면 허세에 가득찬 사람이 쓴 글 같기도 하고, 또 다르게 읽으면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담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실로 미묘한 책이지요. 그리고 분석심리학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받아들일 도상들이 나옵니다만, 기존의 프로이트에서부터 그 명맥이 시작된 정신분석학에 익숙한 사람들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는 부분도 분명 있으리라고 봅니다. 융의 체계는 프로이트에 비해서 훨씬 신화적이고 신비한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삽화들이 대부분 흑백입니다. 도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강렬한 이미지이고, 그 강렬함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색깔인데, 그 색깔이 흑백이라면 아무래도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줄어들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융의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보물창고로 작용합니다. 수많은 이미지들과 언어들의 향연은 끊이지 않는 우물과 같고, 좀 어렵지만 그의 무의식적인 흐름을 끝까지 따라간다면, 그 보상으로 우리는 완성된 존재이자 지식인이며 또한 현자이자 마법사이고 모든 비의의 주재자 '필레몬'에 다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칼 융이 그의 귀착점을 저 '필레몬'에 두고 있는 것 처럼 말이지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개인적으로 이번 신간 중에 가장 추천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접한 것은 제법 오래되었지만 이제야 이렇게 소개하네요. 끝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었을 때 마치 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분량도 많지 않고 읽기가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책이 품고 있는 내용은 결코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종횡무진하게 읽기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책이 왜 혁명일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답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결국 결론적으로, 책은 혁명이고, 인류가 절멸하지 않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혁명을 하며 살아간다, 라는 이야기를 이끌어내게 됩니다. 이 책의 부제는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이지요. 이는 일종의 성경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성경의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우리를 창조할때 6일이 걸렸다고 하던가요? 이 책의 저자는 이 이야기를 이루기 위해서 닷새가 걸렸다지요. 그리고 성격의 마지막은 요한계시록이던가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은 하늘 나라의 영원한 승리로 마무리되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책과 혁명이 어떻게 미래의 희망으로 남게 되는 것인가, 곧, 어떻게 승리하게 되는가, 로 마무리됩니다.

 

 

 

현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일전에 미학에 관련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진중권의 미학오딧세이, 와 같은 책들도 읽어보았고, 그의 전달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무언가 아쉽다, 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아쉬움을 채워줄 만한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품고 있는 내용은 쉽지 않습니다. 단절, 로 부터 시작되는 목차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끝이 납니다. 생각해보면 당황스럽기도 하지요. 현대 예술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낯선 용어가 쓰여야 된다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최근 읽은 책에는 이런 말이 있더군요. 간단한 내용을 괜히 현학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일종의 낭비이고 자신의 지적 능력이 그리 대단치 않을 때 쓰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도 그런 부류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현학적이고 어려운 말이 아니면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개념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대 예술이라는 거.. 그거 그냥 보고 느끼면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겠지만 이런 책을 알게 되면 훨씬 더 느끼는 감정의 폭이 다양화되어질 거라고 믿게 됩니다.

 

 

 

우파니샤드.

마지막으로 이 책, 우파니샤드를 추천합니다. 사실 우파니샤드는 덧붙일 말이 없는 뛰어난 고전이긴 합니다만, 마하바라타나 라마야나와 같은 인도의 2대 시가에 비하면 아무래도 덜 알려져있는 편이긴 합니다. 일반적으로 인도 사상의 정수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위에서 언급한 시가를 이야기합니다만,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마하바라타의 바가바드 기타, 부분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으나, 우파니샤드도 결코 그에 뒤지지 않습니다. 책 소개에서 언급한 것 처럼 이 책의 정수는 아트만, 이라는 개념과 브라흐만이지요. 천지 창조에 대한 인도 신화의 이야기는 다양하지만, 그 중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태초의 신 브라흐만이 외로움으로 인하여 각종 동물로 변하며, 예를 들어 소로 변하면, 궁극의 허무와 끝없는 외로움으로 인하여 그 상대편으로, 예를 들어 암소로, 변하는 그런 과정을 반복하여 천지를 창조하였다는 그런 이야기도 있지요. 브라흐만은 이와 같이 우주적인 원리를 뜻합니다. 아트만의 개념은 초기 불교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아나트만, 즉 무아를 교리로 내세우는데, 이는 아트만, 자아를 부정하는 개념이지요. 이 우파니샤드를 통하여 인도 철학이 영향을 미친 여러 부분에 대한 더 깊은 이해에 다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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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6-02 23:20   좋아요 0 | URL
가연님, 신간추천 반가워요.
우파니샤드가 확 땡기네요. 표지도 근사해요.^^

가연 2012-06-03 13:01   좋아요 0 | URL
아하하.. 저도 종종 프레이야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서점에서 봤는데 표지의 문양이 멋지더군요. 이번에 우파니샤드가 뽑혀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네요ㅎㅎ

다락방 2012-06-03 01:08   좋아요 0 | URL
테스의 결말이 솔직히 너무 슬프네요.
몽실이도 슬프고 실재의 사막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는 좀처럼 더 진도가 나가질 않고.
남자친구는 없고.. 무슨 재미로 살죠??

아, 가연님은 신간추천 페이퍼도 진짜 끝내주게 잘쓰네요. 제가 즐찾했다는게 완전 뿌듯해서 이 밤 잠이 올것 같질 않아요. 기쁘다, 흑흑.

가연 2012-06-03 13:09   좋아요 0 | URL
테스의 작가, 토마스 하디의 작품이 되게 그런 분위기가 있어서..ㅎㅎ 운명적인 비극이랄까, 도저히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과거... 저도 테스를 예전에 읽고 정말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답니다. 목가적인 풍경에 비하여 내용은 너무나 잔인하지 않나요? 몽실 언니, 도 슬픈 책 아닌가요, 원래 슬픈 책은 함께 읽는 거 아닌데, 아하하.. 그렇다고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가 기쁜 책은 아니구.. 슬라보예 지젝의 팬이라면 당연히 읽겠지만 저는 팬이 아니라서..ㅎㅎ 대충 훑어만 봤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스크뤠취를 내는 것은 애인이 없다는 것[..] 너무나 슬프네요. 그러게요, 정말 무슨 재미로..ㅠㅠㅠㅠㅠ 살아야 하는 걸까요, 어헝헝.. 소개팅을 또 해야 되는 걸까요ㅠㅠㅠㅠㅠ 이제 소개팅도 귀찮.. 랄까, 여기다가 이렇게 끄적거리는 제가 참..ㅠㅠㅠㅠㅠㅠ 좋은 모습은 아니구먼요.

아하하.. 제가 쫌 끝내주게 글을 씁니.. 사실 저 위에 퀀텀맨, 소개를 딱 쓰고는 오오, 내가 좀 잘 쓴 것 같다[..] 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 죄, 죄송. 뿌듯하시다니 다행이네요. 하지만 다락방님의 불면의 밤을 지속시킨 것이 아닌가 하여 한편으로는 죄송하구먼요, 하하하. 그러나 좀 더 못 주무시게 더 많은 멋진 글을 써야겠네요. 사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이 보여서.

風流男兒 2012-06-03 09:49   좋아요 0 | URL
확끌리는 신간 추천 너무 잘 읽었습니다.
분명 읽다가 이해 못하고 머리 싸쥘 걸 알면서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이러다 지르겠지요)
저도 즐찾해두고 올라오는 글들 잘 읽고 있었는데,
이렇게 첫 인사를 드리게 되네요. 잘 부탁드려요 꾸뻑.

가연 2012-06-03 13:11   좋아요 0 | URL
아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원래 머리 싸쥐면서 읽으면서 다시금 책을 집어들면서 어떻게든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 이런 서적들의 멋진 점이 아니겠습니까. 아직 어설픈 점이 많은 글인데 잘봐주셔서 감사하네요.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꽃도둑 2012-06-07 23:09   좋아요 0 | URL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중독은 무서운 거예요...잘라도 한다고 그러던데..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어요....ㅋㅋ
근데 가연님 뒷감당을 어케 하실라고, 저런 엄청난 제목의 책을 추천하셨는지용..>>

가연 2012-06-08 01:07   좋아요 0 | URL
ㅎㅎ 기도야 어느 종교든 다 하니깐.. 그리고 자른다고 기도를 그만 둘 거라면 굳이 기도를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풋. 기도는 정말 절실할때 하는.. 그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손이 없으면 팔목이라도..ㅎㅎㅎ 그런데 책 내용은 사실 종교와 어느 정도로 연관이 있을지..ㅎㅎ 제가 펼쳐 읽었던 부분은 그다지 종교와 관련이 없던데, 풋. 루터의 이야기를 넣은 것 외엔.
 

 

 

 

  예전의 나를 쳐다보면, 지금은 운영하고 있는 이 서재만 해도 대부분의 글이 인문이나 과학 분야의 책을 리뷰하고 있지만, 실제로 내가 리뷰를 쓰기 시작하게 된 것은 소설 쪽이 먼저였다. 글쎄, 지금의 글들만 읽어본다면 분명 상상하기 쉽지 않으리라. 어쨌든 소설 쪽의 글을 쓰다가 어느 순간 인문 분야나 과학 분야의 이야기도 끄적거리게 되었다. 뭐, 사실 나는 다양한 쪽을 알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인문이나 과학 계통의 책들을 더 찾아보게 된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서 예전에 쓰던 컴퓨터를 뒤져보다가 예전에 쓴 글들을 발견하고 한참 상념에 젖어있었다. 팬픽에서부터, 소설에 이르기까지 말이지. 나름대로 쓰려고 노력은 엿보였지만, 끝끝내 완결을 지은 글은 거의 없었고, 소위 말하는 오리지날 설정이라고 불러야 할까, 나 스스로 배경을 만들어 글을 써서 완결지은 글은 그 중에서도 특히나 없었다. 그런데 말야, 정말 웃긴 것은.. 지금 와서 읽어보니깐, 의외로 내가 쓴 글이 재미있었다는 점이었다. 완결까지 별로 없다는 것이 이렇게 슬플 줄이야, 풋. 물론 식상한 점도 많고,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상투적인 표현도 많지만 그래도 그때의 나는 이렇게 무언가 소설이랍시고 적을 줄은 알았구나, 싶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글이든 너무 거창하게 배경을 잡고, 설정을 짜면 힘들다. 왠만한 의지력이 없는 이상 그렇게 설정을 짜다가는 결국에는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한다. 나도 그랬다. 그랬기에 도저히 완결까지 써내려갈 수가 없었다.

 

 

내가 가장 처음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팬픽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소설, 그것도 판타지 소설인 룬의 아이들, 윈터러에 한참 빠져있었을때가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전이었다. 그러고보면 그때가 일종의 판타지 붐이 불때였고, 소위 말하는 양판소, 양산형 판타지 소설들이 범람하고 있던 때였는데, 그 선두에 서서 양산형 판타지 소설들을 뒤따르게 하는 대장 역할을 하는 소설 들 중 하나가 바로 저 윈터러였다. 알음알음 인터넷을 통해서 룬의 아이들의 팬카페에 가입하기도 하고, 룬의 아이들이 발행되었던 곳, 그러니깐 제우미디어 홈페이지에서의 행사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글들도 읽기도 하였다. 지금은 제우미디어의 홈페이지가 리뉴얼되었지만, 리뉴얼되기 전에는 정말 황량하고 파란색 바탕에 무슨 텍스트 게시판처럼 되어있었지만, 그래도 소설게시판과 자유게시판을 통해서 정말 활발한 활동이 일어났었다. 뭐, 대부분의 커뮤니티가 그렇듯 결국에는 이런 저런 다툼도 있었고.. 여하튼 나는 거의 유령회원이었는데, 정말 가끔씩 소설만 몇 자 올리기도 했다. 물론 그냥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고 대충 저런 식으로 적으면.. 하는 식으로 올린 것이라 작품성이라고 따질 것도 없지만 대부분 그런 글을 썼었던 사람들처럼 나도 내 글을 어딘가 올린다, 라는 그런 것이 좋았던 것 같다.

 

처음에 썼던 것은 윈터러의 두 주인공인 보리스와 이솔렛의 후일담 비슷한 이야기였는데, 본의아니게 스포일러가 되어버릴지 모르겠지만, 윈터러에서 결국 서로는 이어지지 못하게 된다. 작품성을 위해서는 사실 좀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택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읽고 나면 너무 가슴이 아픈걸. 그래서 내 상상속에서는 어떻게든 상대를 이어주려고 한다. 그래, 몇 번이고 이야기했듯이 나는 해피앤딩을 좋아한다. 물론 작가야 독자들의 상상속에서 '둘은 다시 행복한 여행을 떠났습니다' 라고 결말을 맞이하게 두는 것이 좋겠지만, 독자들의 상상은 상상에 지나지 않는 걸. 공식적으로 두 명이 행복해지지 못하는걸. 그게 너무 안타까워서 글을 쓴 것이었다. 원작에서 이솔렛은 섬에 남는데, 그곳에서 보리스를 만나러 탈출하는, 풋, 그런 글을 시작으로 몇 편의 글을 썼었다. 도저히 길게 쓸 힘이 당시에는 없어서, 그러니깐 길게 쓸 수는 있기는 한데 그렇게 쓰다보면 엉망이 되어버리니 정제되게 길게 쓰기는 힘들어서 단편에 좀 발을 들여놓았는데, 그 중에서 특히 심혈을 기울였던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대충 내용은 윈터러 세계에 괴물이 하나 소환되는데, 그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 보리스와 이솔렛이 힘을 합쳐 싸우다가.. 결국 이솔렛이 희생되는, 그런 이야기였다. 윈터러의 저자인 전민희 작가가 자신의 책의 후기에서 이렇게 말했던가, 어느 작품에 대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그 작품의 주인공 X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고, 꿈에서조차 그 주인공에 대한 생각만 하게 된다고. 작가들이 종종 자신의 힘으로 소설을 쓴 게 아니다, 등장인물이 자신의 몸을 빌려서 쓴 거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모리스 르블랑, 괴도 뤼팽의 저자인 르블랑이 특히 대표적으로 그런 말들을 했었지. 그런데 말야, 그런 작가들에 비할 바는 분명 못되지만.. 나도 저 심혈을 기울였던 이야기를 쓸 때 약간이나마 그런 일을 겪었다. 심지어 내가 창조한 주인공들도 아닌데 말이지. 자나깨나 두 주인공에 대한 생각이었고, 학교에 가도, 집에 와도 계속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까, 그것만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멈춰졌고, 보리스 그리고 이솔렛이 내 앞에서 검과 마법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는데 화면 앞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끝내 나는 위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대충은 마무리를 짓긴 했지만, 내가 지은 엔딩이 진짜 엔딩은 아니다. 그냥 급하게 완결시키려다보니 대강 지은 마무리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에 이르러 다시 읽어보니깐 분명 그런 느낌이 확 들더라. 그렇다고 지금와서 다시 글을 써내려갈 수는 없다. 지금은 더이상 나에게 이야기를 걸어주지 않는걸.

 

 어쨌든 당시에는 저 글을 어설프게 마무리 짓고는 이번에는 장편에 도전을 했었다. 물론 어디에 연재한 것은 아니고 혼자서 만족하려고 글을 쓴 것이었는데.. 앞서 심혈을 기울여 쓴 단편까지 포괄하는 거대한 세계의, 푸하하, 이야기를 쓰려고 하다보니깐 별 수 없이 당시는 공개되지 않았던 설정들까지 내가 설정을 해야만 했고, 세계관도 적당히 조절할 수 밖에 없었다. 룬의 아이들에는 학원이 나오는데, 그 이름이 네냐플이다. 룬의 아이들 세계의 주인공들이 다니는, 혹은 다니게 되는 학원인데, 룬의 아이들 연작 시리즈에서 첫 편인 윈터러, 편에서는 아직 네냐플에 대한 설정이 거의 공개되어있지 않았다. 후속작인 데모닉에서는 바로 옆에 보이는 8권, 마지막권에서 많이 공개되었지만, 윈터러편에서는 그때가 벌써 10여년 전이니 아무런 설정이 나오지 않았을 수 밖에. 어쨌든 그렇게 자료가 마땅찮아서 스스로 창작을 시도했다. 최대한 원저자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않게.. 벗어나버리면 내가 쓰는 팬픽의 주인공들이 주인공들이 아니게 되어버리니깐.. 거기서 상상이 끝이 나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내 상상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글을 써내려간 것인걸. 하지만 상상이 끼어들 부분이 너무 많았고, 최대한 무거운 분위기로 글을 쓰다보니 결국에는 채 스무 장도 못쓰고 설정만 잔뜩 세워두고 놓아버렸다. 

 

그 당시에 나는 수많은 판타지 커뮤니티들을 돌아다녔다. 최근까지 운영되고 있는 판타지 연재 커뮤니티 중에는 내가 커뮤니티가 생성될 초창기때부터 지켜보았던 곳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판타지 커뮤니티에서 수많이 연재되는 판타지들을 지켜보았는데, 끝까지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완결짓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저 글을 내팽겨두고는 도저히 더 글을 못쓸 것 같았거든. 게다가 사람이, 은근히 그런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면 댓글이 많이 달리기를 기대하는 심리가 생기기에 아무런 댓글도 달리지 않으면 그야말로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판타지면서, 혹은 나이도 어린 애들이, 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그런 부분이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저렇게 글을 미완으로 남기고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정말 뜬금없이 '천사소녀 네티'가 떠올랐다. 정말 어릴 때 맘졸이며 봤던 애니메이션이었는데, 갑자기 보고 싶어서 애니메이션도 다시금 시청하고 원작 만화까지도 보았다. 원제는 괴도 세인트 테일, 이고, 더빙판이 원판보다 뛰어나게 들리는, 속된 말로 초월더빙이라고 불리는 작품 중 하나인데, 갑자기 너무 보고 싶었다. 다 읽고 나니깐 이번에는 샐리와 셜록스의 사랑이 어떻게든 잘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버린거야. 물론 결말은 둘이 결혼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그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괜스레 끄적거려보고 싶었던 거지. 하지만 이번에는 별로 오래 흥미가 지속되지 않았다. 두 편의 단편을 끄적거렸는데, 한 편은 완결짓고 한 편은 천사소녀 네티의 재림, 이라는 주제로.. 원작에서는 네티가 천사소녀를 그만두거든, 그렇게 적어내려갔는데, 결국 끝까지 못썼다. 게다가 완결이랍시고 적은 단편도 사실 플롯 자체는 원작 만화의 뒤에 보너스 편으로 나오는 만화에서 많이 영향을 받아서 적은 것이라 그다지 독창적이지도 않았다. 거의 글쓰기 연습이었던 셈이지. 결국 이 글들은 어디에도 올리지 않고, 물론 지금까지 썼던 글 중에 올렸던 글들은 거의 없지만, 그냥 컴퓨터 하드에다가 간직하였다.

 

갑자기 일반 문학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나도 뜻밖이었다. 그동안 어설픈 과학지식과 마법, 의례, 주술, 검으로 점철된 글을 쓰다가 어느 순간 임형주의 노래를 들었는데, 정말 바보같았지만, 나도

내가 왜 바보같은지 알 수 없었지만 너무나 글이 쓰고 싶어졌었다. 처음 쓴 글은 사실 완전히 주술적 색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 쓴 글의 내용은 경주에 답사를 간 고고학자가 휴일을 맞아 경주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어느 남자를 만나서 경주를 안내받는데, 경주의 고탑을 안내받으며, 엄밀히 말하면 분황사의 모전석탑을 안내받으며, 전생을 그러니깐 신라의 여자로 살았던, 풋, 그런 것들을 조금 기억해낸다, 라는 이야기였고, 저 남자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전생의 남편이었다, 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전생의 남편이 현생의 남편이 되라는 법은 없는 법. 그냥 열린 결말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버린 것이다. 임형주의 풍운애가와 하월가를 들으면서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생에서는 함께였지만 이번 생에서는 각자 따로 살아가게 되어버리는.. 그런 결말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신라를 배경으로 택한 것은 다정, 이라는 소설 탓이 컸고, 저런 분위기의 글을 쓰게 된 것은 임형주의 노래 뿐만이 아니라, 윤대녕의 천지간을 읽은 탓이 컸었다. 윤대녕의 천지간, 은 너무 유명한 책이니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 다정, 이라는 소설은 엄밀하게 자료도 수집을 한 소설이기도 하고, 글도 당시 읽을때에는 나에게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한 소설이었다.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특히나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드라마도 그렇지만 고증이 쉽지 않은데. 그런데 또 고증을 너무 철저하게 하다 보면 감성적인 면이 어긋나기 쉬운데 그런 부분을 잘 잡은 소설이라고 느꼈다. 여하튼 그렇게 신라에 관한 단편 소설을 하나 쓰고 읽어보니, 뭐랄까, 약간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었다. 계속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따라서 쓰는 꼴이 아닌가. 게다가, 게다가.. 현실에서는 마법따위는 쓸 수 없다. 전생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으며, 주술같은 것은 할 수 없는 법이다, 알잖는가. 물론 실제로 주술이나 마법을 하는 방법들이야 인터넷에서도 검색만 하면 오컬트 관련 물품에 마법에 관련된 책들, 알레이스터의 법의 서 혹은 솔로몬의 작은 열쇠, 큰 열쇠 등의 주술책을 한 무더기 구할 수 있지만, 실제로 있는 책들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제는 그런 부분을 제외한.. 그나마 현실적인 이야기를 써보자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끄적거리기 시작한 것이,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다. 그 마을에서는 매년 축제가 있었고, 그 축제는 살아있는 새를 날려보내는 일종의 방생제와 같은 축제였는데, 그 방생제에 얽힌 뒷이야기들이랄까, 어두운 면을 어린 소녀의 눈으로 그려낸 이야기였다. 이렇게 쓰니깐 굉장히 멋진 글인 것 같지만 절대 아니다, 풋, 집에 내려가서 읽으면서 실소를 머금었는걸. 다만 내가 생각해도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너무나 상투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리겠지만.. 어쨌든 이 글은 겨우 완결을 지었고, 한동안 나는 더이상 소설을 쓰지 않게 되었다.

 

나의 소설 쓰기는 신춘문예 도전으로 끝이 났다. 아니, 도전이라고 말하는 것도 너무 웃긴다, 그저 신춘문예에 작품을 내는 것을 목표한 것으로 끝이 났다, 가 더 옳은 말이 되겠다. 나는 끝끝내 소설을 완성시키지 못했고.. 신춘문예에 응모하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신문에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게재가 되는 거야. 하나씩 읽어가면서 이 부분은 괜찮고, 여기는 독창적이다, 이렇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보고 있었다가 갑자기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그런 욕망이 속에서부터 치솟아 올랐다. 이때쯤의 나는 판타지 소설만 읽은 것이 아니었으니깐.. 많은 소설을 읽었고, 동인 문학상 작품집도 찾아서 읽었던 때였으니깐.. 나도 할 수 있어,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고, 이번에도 그 마음의 소리를 따라서 글을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소재를 찾는 것은 사실 간단했다. 당시는 거의 막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있던 시기였기에 인터넷을 주제로 삼고, 인터넷에서의 인간관계를 주제로 삼겠다고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인터넷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 때이기도 했고 말이지. 왠지 그때는, 이렇게 글을 써내려가면 잘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신춘문예에 뽑힌 자신의 모습이 막 그려지는 것 있지, 푸하하, 지금 보면 웃음이 지어지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래, 그때는 그랬다.

 

글은 인터넷에서만 활발히 활동하는 어느 블로거를 주인공으로 삼고, 현실과 인터넷의 극에 달한 괴리감을 보여준 뒤, 그 절정으로 그 블로거와 현실에서 접점을 맺고 있는 사람, 나는 담임 교사를 택했다, 을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그런 내용으로 쓰여졌었다. 하지만 끝내 나는 글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도저히 결말을 어떻게 하여야 할 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 블로거는 나 자신이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현실에서 접점을 맺고 있는 사람을 인터넷에서 만난 적도 없으며, 인터넷에서 만나자, 라고 해서 현실에서 만났던 사람이 알고 보니 실제로 접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던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언제 어디서든 힘든 법이다. 한 번 나를 주인공으로 동일시하다보니 글이 진행되지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며 어쩔 수 없이 글을 접어둘 수 밖에 없었다. 현실에서 접점을 맺고 있던 사람이 온라인에서는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온라인에서 그렇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었던 사람이 현실에서는 나에게 무심하고 아무렇게나 대했던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위선인가? 어디까지가 진실된 인간관계인 것인가?

 

그래서 저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지금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인간관계란 어떤 것인가, 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실용서를 위시하여 소설책들까지.. 파편화되어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어떤 사람은 현실에서는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온라인 친구만 수백명을 거느리기도 하고, 현실에서 찾지 못하는 것을 온라인에서 찾기도 한다. 혹은 인간 관계를 일종의 계약적이고 이해타산적으로 맺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정이 그리워 넷 커뮤니티에 가입하기도 한다. 아무도 이해못하는 또다른 나를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나는 끝내 저 물음에 대해서 답을 내리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보관하고야 말았다. 어쩌면 저 물음에 내가 답할 수 있었다면,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언가 내 삶에 있어서 어느 한 방향으로 내가 확정지어서 살아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감정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래서 감정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지금의 삶보다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내 현실을 설계하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망설이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지금도 나는 저런 물음에 대해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지금이 그때와 다른 것은 더이상 저런 것들에, 어떤 관계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 무관심한 것이다. 여기서 좀 뜬금없지만 철학자로서의 샤르트르의 이야기를 써야겠다. 샤르트르는 인간이 타자와 맺는 관계를 세 가지로 나뉘었는데, 피학적, 가학적, 그리고 무관심한 그런 관계가 바로 그것이라고 하는 것 있지. 저 문구를 읽으면서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거렸는지도 모른다. 과연 저런 고찰을 할 수 있는 철학자라면 월급을 꼬박꼬박 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이지. 그런데 그렇게 우스개소리를 하는 동시에 나는 저 문구에 샤르트르가 덧붙여 예언해놓은 부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 세 가지 관계는 어쩔 수 없이 실패할 것이라고.

 

어떤 사람은 글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글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기도 한다. 위의 마지막 글, 신춘문예에 공모하려고 했던 글이 어쩌면 내 자신을 비추는 글이었나보다. 그 이후에는 나는 더이상 소설을 쓰고 싶지 않았고, 주인공들이 밤마다 귓속에서 재잘거리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그대로 나는 나 자신에게 침잠해버리고 말았고, 그 내부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데미안, 을 보면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대략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남들처럼 삼각함수와 같은 어려운 부분도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딱 하나 남들처럼 못하는 것이 있는데, 내가 무엇이 되어야겠다, 라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의 원을 끄집어 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이야. 남들이 의사가 되고 싶어하거나 정치가가 되고 싶다고들 자신의 비원을 속에서 끄집어내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게 정작 나 자신의 문제가 되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있지. 그 문구를 몇 번이고 반복해가며 읽으면서 나는 동시에 싱클레어처럼 데미안이 내 곁에 있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도 동시에 깨달아야만 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진실로 운명과 감정은, 동일한 개념에 붙여진 두 개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살아가게 되는 법이다.

 

만약에 무한한 시간을 내가 살아간다면 이런 생각들은 모두 무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죽기 때문에 그만큼이나 짧은 인생을 감정에 가득차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을때가 되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때,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강렬한 감정에 이끌려 새겨진 기억을 돌이키며 웃음짓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삶은 그런 강렬한 기억들보다는 수수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서 구성되며, 그런 수수한 이야기들과 더불어 살아갈때 더욱더 자신과 타인들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든 강렬한 기억을 남기고 싶어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그런 요동의 반복이다. 슈렉 4를 기억하는가? 환상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 슈렉과 피오나의 모습을 가감없이 현실적으로 그려낸 이야기말이다. 현실은 언제나 그렇게 지속되며, 우리는 그런 현실을 계속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삶이기에 끝나지 않는 이야기란 없다. 아니, 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부분을 기억하고 또 남기며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도 언젠가 끝이 날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인상적인 부분만 하이라이트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금 감정에 휩싸여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해피 앤딩으로 끝, 하며 편해질 수 있는 것은 소설로만 족하다. 우리의 삶에는 그런식의 앤딩은 찾아오지 않으며 그렇기에 항상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토록 끝이 난 이야기들을 붙잡고 글을 써내려갔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끝끝내 내 이야기의 완결을 짓지 못했던 것 같다. 모양이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형태의, 문자적인 형태의 해피, 라는 개념을 어떻게든 내 손이 닿는 곳에 끌어내려 내가 느낄 수 있게.. 내가 강렬하게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글을 써내려간 것 같다.

 

지금은 글을 쓰지 않지만, 그래도 한 때는 내가 글을 썼었다. 오랜만에 내가 썼었던 글들을 읽으면서 감정에 젖는 것도 좋은 일인 것 같다. 이로서 나도 내 수수한 삶에 한 가닥 기억을 다시금 새긴 것이 아닐까. 그래서 언젠가 내 이야기가 마무리지어졌을때, 눈을 감으며 기억을 되새길 때 고개를 끄덕거리는 거지, 그래, 나도 소설가 흉내를 내보았다고, 나름 이야기들을 붙잡고 고민을 했었다고, 비록 완결을 짓지 못해서 아쉽지만 이제는 괜찮다고.

 

 

 

p. s. jk김동욱의 미련한 사랑를 들으며..

p. s. 2. 이 글 자체도 그다지 안쓰고 싶던 글이긴 한데.. 그래도 책이 있으니..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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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0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12 0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사르 2012-05-10 18:00   좋아요 0 | URL
<룬의아이들> 표지 보고 급반가워서 댓글 남깁니다. 안녕하세요. 가연님. 룬의아이들, 윈터러의 왕팬의 한 명으로서 너무 반가워요. ^^ 저는 어정쩡하게 한 사오년 전에 이 책을 알게 되어 (안타깝게도!!) 일찍부터 열광해온 사람들 속에 끼일 수가 없었어요. 그저 조카녀석과 둘이서만 보리스 멋있다는 둥, 보리스 나오는 게임에서 보리스 입은 옷이 어떻다는 둥 이야기하는 정도였어요. 근데 가연님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팬픽에서부터 소설까지..와. 멋져요.

한때는 글을 썼었다..라는 부분에서 살짝 감동이. ^^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인데요. 오에 겐자부로 라는 일본사람인데요. 이 사람도 역시 다른 사람들 소설 읽다가 혹은 번역 훑어보다가 멋진 한 문장을 발견하고선 이를 실마리로 자신만의 소설을 쓰는 경우가 많았더라구요. 끄덕끄덕, 하면서 읽었는데 오늘 가연님 포스팅 보고 또 끄덕끄덕.

가연 2012-05-12 01:5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매우 급반갑습니다ㅎㅎ 윈터러의 광팬이시군요. 저도 광팬이라서.. 언제 룬의 아이들에 대하여 심도있는 대화를.. ㅋㅋ 보리솔렛파인지 보리스핀파인지 등등[......] 사오년ㅎㅎ 도 충분히 긴시간입니다, 그 시간이 흘러서 십년도 되고.. 그렇지요, 하하. 보리스 나오는 게임이라면 분명 테일즈위버군요. 그래픽이 좀ㅎㅎㅎㅎ 초창기 테일즈위버는 보리스만 대부분 선택해서 마치 바퀴벌레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었지만..ㅋㅋ

지금 저 부분을 읽어보니깐 괜스레 저도 찡해지네요. 그래요, 분명 한때 글을 썼었지요..

이진 2012-05-10 18:32   좋아요 0 | URL
아, 가연님 글 읽으면서 내내 킥킥댔어요.
저도 가연님하고 상황이 너무 비슷한걸요.
제 최대 목표를 일단 제 나이대에서는 청소년문학상에 작품을 내는 것이고, 더 커서는 신춘문예에 글을 내는 것인데 지금부터라도 글을 써가야할텐데 안 쓰고있어요. 안쓰기보다는 저도 도저히 결말을 쓰는 걸 못 봤답니다. 가연님하고는 다르게 하도 게으른지라, 엔딩까지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어요.

<룬의 아이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군요... 중학교 1학년 때 친했던 친구가 판타지, 특히 룬아를 정말 좋아했는데요.

가연 2012-05-12 01:46   좋아요 0 | URL
ㅋㅋ 그런가요, 제 경험, 이라면 경험으로는 많이 읽다보면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질 때 분명 있을테니 그때부터 글을 쓰셔도 될 듯 하네요.

ㅎㅎ 저야말로 매우 게으름의 대명사인데..ㅎㅎㅎㅎㅎ 엔딩을 저도 많이 생각 못했었답니다. 그나저나 룬의 아이들은 좋은 책이랍니다, 하하.

희선 2013-07-27 23:07   좋아요 0 | URL
글 속에 나오는 사람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셨다니 부럽군요 저도 한번 그런 일 겪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별로 안 해서... 그리고 그런 글을 써본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것만 생각해야 그런 일도 일어날 텐데 말입니다 저는 시작을 하면 끝까지 가기는 합니다 그렇게 길게 쓰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아주 긴 것은 아직 한번도 못 써봤습니다 한번 써보고 싶기는 한데...

신춘문예에 응모하려고 쓰다 만 소설, 다시 한번 보고 끝을 맺으면 어떨까요 읽어보고 싶네요^^ 다른 것도...

지금 소설은 쓰지 않는다 해도 글은 쓰고 있잖아요 그래서 '한때 글을 썼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중에 소설을 쓰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얼마전에 이런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글을 써서 그것을 모아서 언젠가 책 한권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그냥 저만의 책이죠 어쩌면 잠깐 하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재미로 글(이야기)을 쓰고 싶기는 해요 책 읽고 쓰는 것보다 그게 더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군요 많이 안 써봤는데 이런 말을 했군요 쓸 수 있어야 할 텐데... 사실 꼭 만들어야지 하는 마음은 없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가서...


희선

가연 2013-07-31 18:04   좋아요 0 | URL
끝이 안나더군요, 몇 번 시도를 하였었지만... 결국 미완인채로 어딘가 던져두었습니다. 글의 사람이 움직여다니는 경험은 저도 그때 이후로 별로 겪지 않았었네요, 그러고보니. 희선님의 글을 모아서 책을 내면.. 저는 사인본 한 권 정도는 받을 수 있지요? 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