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종의 실용주의자라서 종이책 자체를 소유하는데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책의 정보와 내용만 온전하다면 굳이 종이로 만들어진 책, 이라는 형상을 유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책의 내용이다. 그렇기에 내가 책을 고르게 될 때에는 아무래도 표지보다는 내용을 우선으로 보게 된다. 물론 아무런 정보도 없는 책을 고르게 될 때에는 표지를 보게 되고, 뛰어난 표지디자인에는 감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기준은 내 안에서는 순위에서 밀려나있다. 그러다보면 늘 내 손에 잡혀있는 책들은 두꺼운 책들 뿐이다. 이 말이 두꺼운 책이 내용면에서 얇은 책에 비하여 우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심정적으로는 그렇게 주장하고 싶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책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아무리 얇은 책이라도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변명을 한다면, 일반적으로는 두꺼운 책을 쓰기 위해서는 얇은 책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정보의 탐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임에는 분명 틀림이 없을 것이다. 무언가 조사한 것이 없고 아는 것이 없다면 500페이지를 넘어가는 책을 쓰기란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때 일반적으로 얇은 책에 비하여 두꺼운 책은 정보를 많이 담고 있으며, 이는 내가 말한 내 기준, 내용을 더 우선시해서 보게 되는, 에 부합한다. 또한 두꺼운 책은 얇은 책에 비하여 항상 위험성을 내포한다. 논리적 연결이 어긋날 위험, 같은 말을 반복할 위험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렇게 두꺼운 책을 쓰면서도 논리적 연결이 온전하고 같은 말의 반복이 그리 많지 않다면 대단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짧은 글 안에서도 번뜩이는 재치가 있을 수 있으나 그 빛이 과연 뛰어난 통찰에서 온 것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바꿔말하자면 우리로서는 그것이 깊은 사유의 산물인지, 우연의 산물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긴 글은 문학적 수식을 배제하고 살펴본다면 정말로 뛰어나게 쓰지 않는 한 자신의 결점이 그대로 폭로된다. 그 중에서도 10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아래에 읽거나 읽은 책들 중 1000페이지에 달하는 책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엄밀하게 1000페이지를 기준으로 삼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만족할 만큼 소개하기 힘들기에 단행본 기준으로 주석을 포함해서 900페이지를 기준으로 삼으려고 한다. 그리고 이전에 몇 번이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 책은 제외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생각의 역사1, 1239쪽.

수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읽다보면 저자의 지식의 폭에 진정으로 놀라게 되는 도서이다. 생각해보면 머리로 떠올려보는 역사는 지금껏 어느 나라, 어느 곳의 역사였었다. 그 역사또한 초기의 혼합된 형태에서 갈수록 세분화되어가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한 지역에서 그들 나름의 역사를 발전시켰을때, 다른 지역 또한 자신들의 문화를 발전시켜왔었다. 어느 한 곳만 아는 것은 불완전하다. 이 책은 그런 불완전성을 최대한으로 완전성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의 결과물이고, 그동안 세분화되어 발전되어온 각종 과학과 기술을 과거의 흔적에 유감없이 쓰여지도록 하는 장을 열어준다. 1권의 경우 그 범위가 '불에서 프로이트까지' 로 설정되어있는데, 그렇다고해서 단순한 인명이나 물질적 지식의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저 범위는 말 그대로 전체적인 시야에서의 한 부분이며, 그 부분안에 있는 모든 사상과 역사를 다루고 있다.

 

 

 

생각의 역사2, 1328쪽.

왜 위의 책과 같은 책인데 이렇게 다르게 소개하고 있는가? 그것은 이 책은 위의 책과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묻는다. 왜 기존의 예술이 '과학에 대항해야 된다' 고 주장하면서 발달해왔는가? 그리고는 답을 내리는데 그것은 과학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 20세기 지성사, 에서는 과학의 비중이 서술에서 종종 드러나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역사나 인문의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간의 순서에 따라서 세계 각지의 모든 부분에서 발전되어온 지식들의 변천사를 잘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전문적인 과학적 지식을 이야기하기에는 힘이 조금 모자라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수상대성 이론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 핵심은 정확히 이야기하고 있으나, 대부분 이해를 위해서 비유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짜임새는 이 책은 1권 이상의 수작의 반열에 올려준다.

 

 

 

지식의 역사, 924쪽.

사실 이 책은 위의 책들과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위의 책들에 비하자면 많이 모자란 편이다. 위의 두 책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이 책을 구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으나, 만약에 위의 두 책이 부담스럽다면 이 책을 구입해서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위의 두 책에 비하여 훨씬 접하기가 쉽고 읽기가 쉬운 편이다. 크게 두 가지의 단점이 눈에 보이는데, 누구나 훑어보면 알 수 있듯이 서양 중심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뒤의 미래에 대하여 저자가 나름대로 예측한 부분은 맞지 않는 이야기가 종종 보인다. 저자 스스로가 밝힌 것 처럼 예측이 '판타지에 기반' 한 것이라고 할 지라도 개정판을 내면서 조금씩 추가하고 수정해났다면 훨씬 좋은 책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런 단점을 제외한다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판형이 조금 작은 편이다.) 지식의 나열과는 달리 저자의 생각과 통찰을 의문형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스탈린, 976쪽.

 히틀러에 비견될만한 독재자를 찾는다면 스탈린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감추지않고 아무렇게나 확대재생산시켜왔던,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든 높이 올려서 남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히틀러와는 달리 스탈린은 자신의 기록을 철저히 숨겼다. 자신의 어린시절부터의 기록은 스스로의 신격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조금의 실마리만 남아있으면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 든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하지만 이미 불태워진 기록을 두고 이야기는 할 수 없는 법이라 어쩔 수 없이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많이 누락이 되어있다. 그리고 책의 중반, 레닌 밑에서 권력을 잡기까지의 그의 행적은 지루하기까지하다. 또한 스탈린 중심으로 서술된 책이다보니 아무래도 2차세계대전의 기록은 간략화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스탈린, 이상으로 그에 대해 잘 설명해주는 책은 없을 것이다.

 

 

 

촘스키, 사상의 향연, 936쪽.

 꽤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우리 시대에 가장 뛰어난 지식인 1위에 촘스키가 뽑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목록에는 움베르트 에코, 크리스토퍼 히친스, 리처드 도킨스 등 쟁쟁한 지식인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는데,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이나 쟁쟁한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 촘스키가 가장 두드러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그의 사상과 연구를 문답법과 그 자신이 직접 지은 글을 제시함으로써 그의 육성을 직접 느끼는 듯한 효과를 가져오며 이를 통하여 그에 대한 이해를 좀 더 폭넓게 한다. 좀 더 책을 읽는데 실용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은 글자 크기와 (미묘하게 큰 것 같지만) 여백이 커서 눈에 쉽게 들어오는 편이다. 시원시원스럽다고 해야 할까. 한편으로 말하자면 제책 방식에 따라서 페이지 수가 달라질 수 있다,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1, 2. 합쳐서 1774쪽.

책 소개에 보면, 1권이 960쪽이고, 2권이 1774쪽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책은 1, 2권 모두 합쳐서 페이지를 매기고 있기에 1권이 960쪽이면 2권은 814쪽이다. 단권으로 내기에 부담스러운 크기라서 적당히 반으로 자른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페이지 수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은 정말 위대한 책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 이 책은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며 유대인들을 파괴한 사람들에 대한 책이다. 이는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을 얼핏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책보다 훨씬 깊은 연구와 자료조사, 그리고 성찰을 배경으로 가지고 쓰여진 책이다. 여기서 저자는 각종 도표와 지도를 들어가면서 어떻게 파괴기계, 라는 것이 그 행동을 수행할 수 있었는지를 밝혀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저자의 무서울 정도로 불타오르는 집념일 것이다. 저자는 파괴 과정을 알고 싶다고 말했지만 유대인으로서의 저자의 출생까지 고려해본다면 어쩌면 진실로 그가 묻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리라. 왜? 왜 유대인들이 파괴되어야만 했는가? 잘 벼려진 그의 열정은 딱딱해보이는 문체 속에서도 숨겨지지 않고 순수한 빛을 발한다.

 

 

 

앞서 촘스키의 책을 소개하면서 이야기했듯이 사실 페이지 수는 제책 방식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여기에 소개한 책들 외에 1000페이지가 넘는 책들은 찾아보면 있을 것이다.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같은 책들은 2000페이지가 넘는 책들이다. 하지만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1000페이지라는 숫자는 상징적이다. 저런 1000페이지 책들을 곰곰히 살피면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로 평전과 역사의 개괄 부분에서 1000페이지에 육박하는 책들이 자주 보인다. 순수 사상과 연구만으로는 1000페이지를 넘기란 쉽지 않다. 바로 이런 점에서 1000페이지가 그 상징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보여진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이 말이 평전이나 역사에서 1000페이지가 넘는 책들이 사상을 다룬 책들에 비하면 모자란다, 라는 의미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울 수는 있겠지만. 사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두꺼운 책을 읽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400페이지 남짓의 얇은 책을 읽을 때에는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마음이 조급해진다. 조금만 더 읽으면 끝, 이라는 감정과 조금만 더 남아있었으면 하는 생각 사이에서 말이다. 하지만 1000페이지 가량의 책을 읽을 때에는 읽어도 읽어도 끝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다 읽게 되는 것이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라면 더욱 더 좋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이야기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두꺼운 책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책을 덮는 것은 한 세계의 끝이다. 나는 이왕이면 내 눈으로는 세계의 끝을 최대한 늦게 보고 싶다. 그리고 이는 내가 쓰는 글들이 왜 길이가 그럭저럭 긴 편인가, 에 대한 답도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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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9-12 22:24   좋아요 0 | URL
저는 페이지수에 크게 부담갖진 않는 편이지만 올리신 책들은 부담되네요. 내용상으로 어려울것 같아서요. 전 저 책들중 하나만 읽어도 뭔가 대단한걸 이룬 기분이 들 것 같아요.

가연 2012-09-13 01:18   좋아요 0 | URL
이 중에 한 권만 택하라면 마지막의 홀로코스트, 에 관한 저서가 가장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한 권이 아니네요, 아하하, 가장 쉬운 책은 지식의 역사, 가 아닐까, 싶네요.

비로그인 2012-09-23 15:14   좋아요 0 | URL
이 페이퍼를 읽고보니 책장 한구석에 있는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로 눈길이 ^^;;
책을 덮는 것은 한 세계의 끝. 어쩐지 복잡미묘한 서글픔이에요..

가연 2012-09-24 08:08   좋아요 0 | URL
그렇죠, 끝없는 이야기..ㅎㅎ 그런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미하일 엔데, 의 책은 예전에 읽어보기는 했는데ㅎㅎ 읽는 순간에는 행복했는데 읽고나니까 또 허망하더군요, 풋.

플라네타리움 2012-12-07 16:00   좋아요 0 | URL
책을 검색하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네요.. 정말 대단한 분 같아요 ... 저는 책을 좋아해서 매월 몇십만원씩 구입만 하고 그 중에 읽을 수 있는 양은 한정되 있으니 자꾸만 쌓여만 가는데도 자꾸 사게 되는 이상한 병에 걸려 있거든요. 가연님 글을 읽게 되어 영광이고 앞으로 또 쌓여가는데 일조할듯 하지만 이곳을 발견하게 되어 정말 기쁘네요. 외람되지만 읽으신 책 중에 5권 내외로 뽑아서 분야에 상관없이 아끼는 사람에게 혹은 미래의 자녀에게 꼭 읽으라고 권해주고픈 책을 꼽아달라고 부탁드려도 될런지요 ^^

가연 2012-12-29 01:45   좋아요 0 | URL
아하하.. 감사합니다. 음.. 권해드릴만한 책을 뽑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기억에 남는 책은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한 번 써볼까, 합니다. 답이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불꽃나무 2013-11-08 10:33   좋아요 0 | URL
쓰신 페이퍼가 큰 도움이 됩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가연 2013-11-11 19:40   좋아요 0 | URL
ㅠㅠㅠ 답이 많이 늦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니까 다행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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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한 달을 시작할 때는 바쁘고 한 달이 끝나갈 때는 별로 안바빠서

이번에도 그런 식이라.. 별 수 없이 빨리 골라놓게 되네요.

 

 

 

중세의 가을.

사람이든 사물이든 흥망성쇠를 겪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사람의 일생을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데, 이는 사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헤로도토스가 그의 저서인 역사에서 어느 나라의 흥망성쇠에 대하여 이런 말을 했었던가요, 한 나라가 태어나서 번성한 후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압제를 저지른 뒤 이윽고 무너진다, 고. 이는 자연의 계절에 비유할 수 도 있겠습니다. 봄, 모든 생명이 눈을 뜨려고 하는 계절, 여름, 생명의 기운이 충만해서 파랗게 자라나는 계절, 가을, 이윽고 정점에 달한 황금빛의 계절. 하지만 언제나 달도 차면 기울듯, 다가올 쇠망을 예견하는 계절. 겨울, 이윽고 하얀 눈 속에 파묻히는 계절. 요한 하위징아는 중세 시대를 부분으로 나누고, 이윽고 쇠망이 시작되는 단계를 가을이라고 규정하고, 왼쪽과 같은 책을 펴내었습니다. 중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리고 매혹적인 이야기들을 원하는 사람들은 저 책, 중세의 가을, 을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아, 물론 에두아르트 푹스, 의 풍속의 역사, 에 덧붙여 읽으면 더 좋겠지요.

 

 

 

역사의 증인, 재일 조선인.

 제가 서경식을 처음 접한 것은 그의 책, 언어의 감옥에서, 를 읽으면서부터였습니다. 그 전에는 서경식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만, 그 후에는 의식적으로 서경식의 글을 찾으며 읽게 되었습니다. 저 언어의 감옥에서, 는 제가 제일 처음 신간평가단을 시작했을때 선정되어 받은 책이었지요. 처음 그 책을 받았을 때를 기억합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건 무슨 책인가, 하고 읽어나가던 저는 어느 순간 그가 쓴 글에 깊게 동감하게 되었었습니다. 다 읽고 리뷰를 쓰며 스스로를 돌아보니 하나는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책을 읽기 전의 저와 그 책을 읽은 후의 저는 완전히 의식이 달라졌다는 것을. 그런 그의 글이기에 여기에 추천합니다. 그동안 그는 크게는 적극적인 일본 내 우경화 세력들과 작게는 재일 조선인 문제를 축소시켜서 현안을 흐리는 세력들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그리고 여기, 그에 따르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정리해두었습니다. 큰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부의 도시 베네치아.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운 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로서는 베네치아에 여행해본 적은 없고, 그저 물의 도시라는 위명만 들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여행을 하게 된다면 꼭 들러보고 싶은 도시들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물의 도시는 언제부터 물의 도시였을까요? 베네치아는 원래 공화국이었고, 투표를 통해서 지도자를 선출하였습니다. 주변의 강국으로는 비잔틴 제국, 신성로마제국이 있었지요. 그런 강국들의 사이에 끼여있었다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강국에 통합될 가능성도 배제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흡수되지 않았고, 도리어 독점으로 큰 부를 모으게 됩니다. 이는 베네치아의 교묘한 외교가 빛을 발한 것으로, 처음에는 비잔틴 제국의 이름을 빌려 신성로마제국의 개입을 막고, 그 후에 십자군 전쟁과 더불어 비잔틴 제국을 공격하기까지 하지요. 그 힘은 아마 이 책을 읽으면서 작접 확인해볼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

늘 신간 추천 페이퍼에 과학 책을 적어도 하나는 꼭 포함시키는 저로서는 이번에는 조금 난감했었습니다. 확 끌리는 책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이 책도 사실 그리 끌리는 책은 아니지만 (제목을 그냥 원제 그대로 했었다면 좀 더 나았을지도.. 원제는 beyond UFOs입니다.) 그럼에도 여기 일단 놓아둡니다. 사실 이 책의 구성은 단순합니다. 다른 책들이 그렇듯 역사적 연원을 살펴본 뒤, 눈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고, 태양계, 우주 전체로 그 인식의 범위를 넓혀갑니다. 그런 인식 뒤에 과연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가, 라는 주제로 넘어가게 되지요. 아마 이 책의 제목인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 라는 제목이 나오게 된 계기는 그런 주제와 연결되어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일견 식상해보이는 책의 내용임에도 이렇게 놓아두는 이유는 이 책의 출판사가 제공한 소개처럼, 이 책이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겠지요.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그런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말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

사실 이 책은 매우 특이한 책이라.. 소개글을 쓰기가 정말 난감하고.. 잠깐 훑어본 것에 지나지 않아서 (아무래도 미술평론이나 미학쪽에는 별로 조예가 깊지 못한 상태라..) 다만 감으로밖에 추천할 수 없네요. 감이라니.. 사실 이렇게 추천하는 것에 좀 저항감이 들지만, 하지만 아마 선정되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은 책으로 보여지네요.. 원제 Ways of seeing을 번역한 책이 이전에 몇 권 나왔었지만, 번역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말이 많은데.. 이번에 나온 이 책은 번역과 글 흐름이 원작과 거의 비슷하다고 하니 읽어볼만한 책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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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09-01 09:22   좋아요 0 | URL
중세의 가을하고 역사의 증인, 찜이요 ^^ ㅎㅎㅎ 저도 어서 맹글어야하는데 ㅎㅎㅎ 신간도서를 볼 시간이 없어서 ^^;; 가연님의 추천도서, 요 두가지가 눈에 확 띕니다 ^^
제가 추천하는 도서는 하나도 안되서요 ^^;; 슬퍼요 ㅋㅋ

가연 2012-09-07 15:32   좋아요 0 | URL
ㅎㅎ이번에는 되면 좋겠네요.. 그런데 워낙 경합이 치열해서..ㅎㅎ
 

 

 

 

역시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하는 법이다..

아즈마 히로키에 대해서 끄적거리는 것은 뒤로 미루고 태풍도 오는데 이런 글이나 끄적거려야겠다. 들어가기 전에 몇 마디 범위와 정의에 대해서 밝혀두자면, 이 글에서 다루는 라이트 노벨은 일본의 서브컬쳐의 라이트 노벨만 한정한다. 국내의 시드노벨 등이 있고.. 어떤 책들이 나오고 있는지는 알지만 찾아서 읽은 책들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를 안할 것이다. 그리고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솔직히 말해서 라이트 노벨에 대한 정의는 사실 엄밀하지 못하다. 앞에 애니메이션 풍의 그림이 있으면 라이트 노벨인가?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글을 쓰면 라이트 노벨인가? 여하튼 뿅가죽는[..아마 서브컬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여자(남자라도 상관없지만)캐릭터가 나오면 (다시말해서 모에할 부분이 있다면 ; 물론 모에라는 말에 보충설명이 필요할 것이지만.. 참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니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다.) 라이트노벨인가? 아니면 위의 정의가 모두 해당되는 것인가? 세계관이 환상과 관련되어 애니메이션화, 또는 기타 미디어들로 발전이 쉽게 가능하다면 라이트 노벨인가? 처음부터 글로 쓰인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서 발전해서 글로 쓰인 것이라면 라이트 노벨인가? 나 또한 여러 라이트 노벨을 읽었지만 정확하게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 라이트노벨인지, 그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위의 정의 중 글의 내용을 한정하자면 하나를 택해야 할텐데.. 아무래도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정의가 가장 만만할 듯 싶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덧붙이자면 나보다 라이트 노벨을 많이 읽고 이런 책들을 연구[..솔직히 많이 읽기는 했지만 나또한 편견이 좀 남아있어서 이런 류의 책을 연구까지 해야되는건가, 하는 의문을 스스로 느끼기도 한다.] 한 사람들은 물론 많을지도 모른다. 당장 검색해봐도 별 별 이론을 다 가져다와서 라이트 노벨을 분석한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그 이론에는 지젝이나 라캉이 자주 오르내린다.. 이런 황당한.. 싶겠지만 지젝이 영화평론하는 것을 만화평론하는 것으로 바꾸면 뭐.. 안될 말은 아닐 것 같기도 하고, 나로서는 지젝의 이론을 잘 모르는터라 그냥 고개만 갸웃거리며 읽을 뿐이다.) 물론 내가 그런 본격적인 분석을 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맘에 안차는 내용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요런 서재활동은 안하는 모양이니.. 조금 끄적거려도 상관없겠지? 아마 최근 라이트 노벨들 보다는 좀 옛날.. 라이트 노벨위주로 적게 될 것이다.

 

하나만 더, 계속 사족을 달게 되는데.. 앞서 나 스스로도 편견이 좀 있다고 고백하기는 했지만, 막상 나에게 라이트 노벨과 일반적인 문학장르의 우위성을 물어온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라이트 노벨을 읽은 이상으로 고전..이라고 불리는 세계문학과 국내문학을 그럭저럭 읽은 편이다. 물론 고전을 주로 읽기 때문에 최근에 나온 소설들은 오히려 잘 안보는 편이지만 말이다. 라이트 노벨은 저급한가? 글쎄, 저급한 책들도 분명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현대문학들이나 라이트 노벨이나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점에서는 동일하고..(상실의 시대, 에 이 말이 나왔었지.) 그렇기에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점은 있다. 확실히 라이트 노벨이 통통 튀는 맛은 있지만.. 그야말로 현실하고는 거리가 먼 환상에 빠져 사는 듯한 느낌을 주기는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딱 하나만 더.. 물론 라이트노벨에 대해서 역사니 어쩌니 해서 체계적으로 쓰려고 한다면, 그 옛날의 슬레이어즈,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마법소녀 리나, 라고 한다면 좀 더 친숙할 것이다.) 그 슬레이어즈도 원래는 소설이었으니.. 여러분, 마법소녀 리나 다 아시죠? 그 이전의 라이트노벨..이라고 불릴만한 소설은 잘 기억이 안난다.. 있긴 있겠지? 크흠, 그러나 이 글에서 그 정도 엄밀하게 하고 싶지는 않고 (무엇보다도 내가 별로 그렇게 쓰고 싶지가 않다.) 그러니 순서는 내가 생각나는대로 할 것이다.. 랄까, 이런 거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젠장,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내 손발이 다 오글거린다. 여하튼 각설하고, 왼쪽의 책은 늑대와 향신료, 라는 책이다. 왼쪽 표지의 여자 캐릭터가 보이는가? 왼쪽의 여자는 동물이다. 꼬리와 위의 귀를 본다면 동물이 서툴게 변신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러면 과연 무슨 동물일까? ..제목이 늑대와 향신료니 늑대일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여우가 아니라는 점이 좀 의외일 것이다. 여기서 라이트 노벨의 특성이 있다면 바로 의외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한 부분이지만 간과하기 쉬운 부분을 잡아 오, 이런 상상력도 있을 수 있는 건가? 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두번째 특성을 잡아내자면 매력적인 캐릭터 구성이다. 적어도 외모면에서는 왼쪽의 여자캐릭터정도면 상당히 뛰어나니깐, 풋. 물론 실제 이야기를 읽으면 더 매력적일 것이다. 이 책은 향신료, 라는 이름이 광고하는대로 일종의 경제판타지이다. 배경은 중세시절이고,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아다니면서 장사하는 행상인 남자가 주인공이고, 저 그림의 여자 캐릭터가 여자주인공이다. 자신이 신으로 받들어지던 도시에서 떠나고 싶었던 여자주인공은 남자주인공의 힘을 빌어 겨우 도시를 떠나고, 원래 자신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벌써 시간은 몇 백년이나 지난 뒤였고, 그녀의 고향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남자주인공은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남자주인공은 뼛속까지 상인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고향을 찾는 도중에 틈틈히 장사판에 뛰어들게 되고, 오래 살아온 만큼 현명한 여자주인공은 그에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조언을 한다. 때로는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꾸짖기도 하면서. 그리고 그들의 여행이 종막으로 다다르면서 그들 사이에는 묘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하지만 언제나 사랑은 힘든 법. 바로 생각해봐도 알 수 있듯이, 수명의 차이가 있다. 과연 그를 그녀는 그대로 좋은 추억으로만 남도록 하기 위해서 떠나보낼 것인가,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잡을 것인가?

 

이 책은 상당한 수작이다. 경제부분이라는 기존의 라이트노벨에서는 아예 다루지 않았던 부분을 상당한 연구를 통해서 (이 책을 쓴 저자는 황금가지, 를 많이 참조한 듯 하다..) 제법 생생하게 살려내었다. 물론 그, 그녀가 이 책에서 쓰는 장사 트릭들이 바로 바로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끝까지 읽히는 것은 연애부분과 장사부분을 절묘하게 결합시켰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가장 강렬한 캐릭터, 수백년을 살아왔기에 연륜이 쌓여 주체적이고 상황을 언제든 조절할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외로움을 타는 나약한 면모가 있는 위의 여자주인공을 통해서 그 정점을 찍는다. 바로 이 강렬한 존재감을 가진 이 캐릭터는 특별한 마법이나 창과 칼의 싸움을 통하지 않더라도(물론 아예 환상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중세, 가 배경인데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게 하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그리고 여주인공이 늑대로 변신하는 장면이 나온다.) 책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와 더불어 청년층의 공감을 쉽게 이끌어낸다.

 

 

 

앞서 늑대와 향신료, 가 중세를 배경으로 했다면 이 풀메탈 패닉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편의상 미래라고 하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가상역사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 책에는 위스퍼드, 라는 존재들이 나오는데, 이 위스퍼드들은 말 그대로 속삭임을 들은 자들이다. 속삭임이라니? 무슨 속삭임을 뜻하는가, 궁금할 것이다. 이 속삭임은 미래로부터의 지식에 대한 속삭임이다. 위스퍼드, 는 태어날 때부터 미래의 누군가로부터 현실 세계에는 있을 수 없는 지식들을 전해받는다. 그 결과로 이 세계에서는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물체들, 물리학 법칙을 무시하는 무기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고보면 가장 빨리 발전하는 분야가 무기 분야이다. 최신식 무기를 만들면 다른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이 위스퍼드, 들을 한 명이라도 더 붙잡기 위한 조직이 있다. 이름하여 아말감이다. 이 아말감에 대항하여, 상투적인 이야기이지만, 세계 평화를 지키려고 하는 조직이 있으니 바로 미스릴이다. 이 책은 저 미스릴의 중사 (용병조직이지만 군대계급이 있다.) 인 남주인공에서부터 그 이야기가 시작한다. 바로 위의 책의 표지의 오른쪽의 남자이다. 여자주인공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왼쪽의 머리가 치렁치렁한 여자캐릭터겠지. 그런데 저 표지만 보고 짐작하기에는 무리일 내용이 있으니.. 사실 남녀 주인공은 삼각관계에 빠져있다. 물론 중반쯤 결판나지만.. 미스릴의 대령이 위스퍼드인데, 공교롭게도 여자다. 위스퍼드들은 보통 천재라 일찍 그 능력을 발휘하기에 대령의 나이도 위의 청춘남녀와 동일하다. 각자의 여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매력을 들이대며 남자주인공에게 나름의 방식으로 어필한다. (뭐, 저기 저 파란 머리의 여자주인공은 사실.. 딱히 어필하는게 아닐 수도..)

 

여기서 라이트 노벨의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일상과 비일상의 만남이다. 이 특징은 특히나 일본 서브컬쳐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는 것으로, 대략 이런 경과를 밟는다. 일상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비일상의 침범을 통해서 그 일상이 부서지게 되고, 억지로 비일상에 끌려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일상을 잊지 않기에 어떻게든 다시금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 책도 비슷한 경과를 밟는다. 훨씬 극적으로. 위의 여자주인공은 평범한 아이였지만 (물론 예쁘긴 하다) 위스퍼드, 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아말감에게 노려지게 되고, 그녀를 지키러 남자주인공이 파견된 것이다. 남자주인공은 원래 전쟁터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상의 평온함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게 되는데.. 비일상은 그들을 절대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녀와 함께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전쟁터로 돌아가게 된다.

 

 

 

위의 소설이 비일상과 일상을 구분지어 둘 사이의 대립을 이야기했다면, 이 토라도라는 그야말로 학원청춘물, 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학원물이란 간단히 말해서 학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왼쪽의 여자아이가 주인공인데 (역시 예쁘다. 안예쁘면 이야기가 안된다. 주로 라이트 노벨을 많이 보는 독자가 남성이 많다는 것을 감안할 때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저 여자아이의 손을 보라. 손에 꼬마호랑이를 올려놓고 있지 않은가? 바로 저 꼬마호랑이가 여자주인공의 별명이다. 그 별명은 여자주인공의 흉폭함[..]과 그에 대비되는 귀여움, 그리고 이름때문이다. 이름에 호랑이가 들어가서.. 여하튼, 여자주인공이 있다면 남자주인공도 있어야 할 것이다. 남자주인공은 눈매가 아주 사나워 양아치로 많이 의심받지만 실제로는 저 여주인공보다 훨씬 건실하고 착한 학생이다. 사실 남자주인공도 그렇고 여자주인공도 그렇고 서로 다르게 좋아하는 이성이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용기가 없어서 그 이성들에게 다가가지를 못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서로 동맹을 맺었다. 서로 서로 상대방의 연애가 잘 되도록 노력해주는 그런 동맹말이다. 하지만 일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잘 흘러가지는 않았다. 잘 되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둘 다 자신의 마음을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몇 번의 오해와 몇 번의 이해 끝에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게 된다.

 

저 여주인공의 성격을 말해보라면, 츤데레, 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음.. 츤데레, 라는 말은 새침부끄, 라는 말로 바꿔서 쓸 수 있다고 하는데.. 새침부끄, 라는 말은 이상하게 어색하다. 쓰는 나도 어색하다. 그러니깐 이런 식이다. '따, 딱히 네가 좋아서 이런 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붉히면 츤데레 완성, 이랄까. 그런데 이런 성격은 강렬한 캐릭터를 완성하는테 큰 도움을 준다. 그냥 평범한 학교 연애 이야기라면 사실 기복이 좀 없을 것이다. 이런 츤데레 캐릭이 있기에 이런 저런 소소한 사건이 생기고 이윽고 독자가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다. 이런 바보같은 녀석들! 뻔히 서로 좋아하는 거 알면서! 라고.

 

 

 

 

사실 이 책은 부기팝 시리즈, 라는 큰 시리즈의 일부분이다. 보다시피 부기팝 XX라고 붙어있지 않은가. 일종의 피카레스크식 구성을 취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 라이트 노벨의 특징이다. 똑같은 주인공이지만 상황은 달라진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부기팝, 은 전면에 잘 등장하지 않는다. 세계의 적, 이라고 부를만한 존재가 있을 때 등장하는데, 이 세계의 적, 이라는 녀석은 세계를 물리적인 의미로 파괴한다거나 하는 녀석은 아니고 세계의 변화를 막는 그런 존재이다. 인간의 발전을 막아버린다거나, 혹은 너무 인간의 발전을 촉진한다거나 등 그런 존재들이 모두 가능성 있다. 이들을 막기 위해서 부기팝이 등장한다. 하지만 매번 이런 세계의 적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합성인간, 과 선천적 능력자, 에 대한 이야기들이 차지를 하고 있다. 능력자들은 특이한 능력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공간의 틈새를 벌린다든지, 약점이 보인다든지 말이다. 실질적인 주인공이 왼쪽의 저 기묘한 옷을 입은 부기팝이 아니고 왠 여고생인데, 여고생치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고 가죽옷을 입고 다니며 무술도 잘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특이한 능력을 가진 존재들을 상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보면 부기팝도 싸우고 여주인공도 싸우는 그런 소설같지만.. 그리고 다양한 능력자들이 나오니 그냥 능력을 겨루어 싸우는 소설이 아닌가, 생각이 들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능력자들에 다양한 감정을 녹여내어서 독자들에게 생각할 점을 준다.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부분이 있다면, 아마 잘 알 수 없음, 이라는 부분일 것이다. 시리즈 전체에 나오는 부기팝, 은 도대체 어떤 녀석인지 소설 전체를 통틀어도 제대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능력자들은? 그들이 모인 조직은 무엇을 목표로? 다 잘 알 수 없다. 말하자면 떡밥을 열심히 던져놓고 있다는 것인데.. 이런 떡밥은 평범한 능력물이나 배틀물이 아니게 만들긴 하나 이런 점들이 해결이 안된다면 강한 반발을 사게 될 것이리라.

 

 

 

앞서 게임을 원작으로 한 소설도 있다고 말한 적 있다. 바로 이 슈타인즈 게이트, 라는 소설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원래 게임으로 발매된 이 책은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등에 업고 소설까지 나왔다. 각종 드라마 시디도 발매되었고 말이지.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왼쪽 표지에서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남자주인공이고.. 여자 주인공은 두 명 있다. 그 중 한 명이 왼쪽의 사람이기는 한데.. 딱 보면 알듯, 여자주인공은 매우 똑부러지고 심지가 굳은 사람이다. 게다가 앞서 말한 츠, 츤데레이기도 하고. 남자주인공은 이야기 시작부분에 저 여자주인공이 칼에 찔린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런데 우연히 남자주인공이 과거로 문자를(일본에서는 메일이라고 하는 것 같다.) 보내는 기계를 만든 상태였고,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문자로 썼다가 졸지에 과거로 날려보내고 만다. 그렇다면 과거로 문자가 날아갔다면 그로 인하여 시간선에 변동이 생기지 않겠는가?  바로 여기서 이 책의 전반적인 주제가 풀려나간다. 우리는 얼마만큼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가, 과거를 바꿈으로써 미래를 바꿀 수 있는가, 등의 주제말이다.

 

여기서 특이하게 볼만한 부분은 캐릭터성이다. 남자주인공, 그러니까 위의 흰 가운 입은 남자, 의 모습을 보면 딱 봐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흰 가운이라니.. 말해두겠는데 무슨 연구소 직원은 아니다. (물론 자신이 멋대로 연구소를 만들긴 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냥 대학생.. 이지만 평범하지는 않다. 그렇다, 중2병[..]에 걸린 대학생이다. 자신을 늘 광기의 과학자로 지칭하면서 무슨 일만 생기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슈타인즈 게이트, 를 읊는다. 엘, 프사이, 콩그루, 라는 정체불명의 주문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중2병 대학생은 시간을 다루며 수많은 고생을 하고, 두 여자주인공이 상처입고 죽는 모습을 몇 번이고 보아야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성장해나간다. 그런데 이런 중2병의 캐릭터는 수많은 인터넷 유저들 사이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워낙 인터넷이 넓으니..) 유저들은 이 캐릭터를 보면서 처음에는 싫어했다가 (일종의 동족혐오.. 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캐릭터에 빠져들면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음.. 사실 인터넷 유저 중에 중2병이 정확히 얼마나 될 지 잘 몰라서 이런 이야기가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주인공이 흔치 않다는 것은 확실할 것이다. 변태라던가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은 제법 많지만 말이다

 

 

쓰는 내내 스스로도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이전의 판타지 시리즈 다음에 이어지는 글이라고 해두자..

좀 더 쓸까, 하다가 나 스스로 좀 지치는 감이 있어서.. 이렇게만 끄적거려본다. 물론 핫하기로서는.. 어마금(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내여귀(내 여자친구가 이렇게 귀여울리가 없어) 혹은 나친적(나는 친구가 적다) 정도도 언급해주면 나쁘지 않겠지만.. 아무래도 최근 작품은 별로 포함시키고 싶지 않았고.. 아, 물론 슈타인즈 게이트, 는 최근작품이다, 슬슬 내가 힘들다.. 하지만 여러분, 설령 지하철에서 옆의 왠 학생이 안경에 여드름이 덕지덕지 나고, 뚱뚱하기까지 하고 거기에 이런 재기발랄한 표지를 가진 책들을 읽고 있더라도 이런 오타쿠, 기분나빠 하고 자리를 피하지 마시고.. 의외로 똑똑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을.. 랄까, 그렇다, 결론은 겉보기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뭐, 근데 사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음.. 예를 들어서 구조주의를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구조주의 사조를 좋아한다고 하자. (사실 내가 좋아한다.) 그렇다면 레비 스트로스, 자크 라캉, 롤랑 바르트, 미셸 푸코, 루이 알튀세르를 따라가면서 공부를 할 것이고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는 주변사람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들을 할 것이다. 아니면 하루키를 생각해본다거나.. 마찬가지 의미에서 저 구조주의를 라이트노벨로 바꾸고, 그 뒤에 다 다른 책들을 넣어본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이게 중요하다.) 이런 책들을 읽는다고 뭐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이렇게 끄적거리는 것은 내가 이상하게도 쓰고나니깐 심리적 저항을 느껴서 그렇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다면 이런 글을 덧붙일 필요가 없었겠지.. 젠장 이 저항은.. 뭐지??.. 뭔가 더럽혀진 기분이다..

 

크흠, 장난은 이쯤하고.. 사실 저항이 좀 있는데 나중에 설명하고, 풋,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다. 중고등학생때 판타지 소설을 안읽어본 사람은.. 아니, 적어도 이야기 한 번 안들어본 학생은 드물 것 같다. (물론 현재 20대에서 30대 초중반에 한정한 이야기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대학 도서관에서 책 대출 목록 1위를 묵향, 이 오랫동안 차지 하고 있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중고등학생때 읽은 학생들이 그 기억을 쫓아 계속 대출하고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생 들어와서 새삼스럽게 판타지에 빠지는 학생은 적지 않을까? 아무래도 판타지에 대한 평균적인 인식을 생각하자면 말이다. 그렇다면 왜 판타지 소설을 읽는가? 흥미롭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반영과는 거리가 멀다. 애초에 현실이 반영된다면 그건 판타지 소설이 아닐 것이다. 중고등학생의 현실은 사실 그리 좋은 현실만은 아니다. 그렇기에 아예 현실에서 유리된 상상력의 세계를 꿈꾸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판타지 소설 내에는 공부하라고 호통치는 선생도 없고, (그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아무리 '찌질'해보여도 엄청난 재능이 잠재되어있으며, 마법공부따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하게 되는 그런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진다. 처음부터 '졸라짱센' 주인공이라면 더욱더 상관없다. 물론 모든 소설이 저런 식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판타지 소설이 중고등학생이, 심지어 성인까지도 공감하고 마치 등장인물인 것 처럼 사고하게 만드는 요소를 하나는 꼭꼭 의도하지 않았든, 의도하였든 주입해놓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특히나 그런 요소에의 공감은 각 등장인물의 개성이 다양하고 특이하면 특이할 수록 잘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현대 소설에서도 통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다만 판타지 소설은 그런 작업에서 현대 소설에 비해서 훨씬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쉽다. 그렇기에 판타지 소설이 한창 인기일 때 수많은 사이트에서 수많은 소설들이 중고등학생의 손에 의하여 쓰여졌다가 사라졌다가 했던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삶을 적어도 환상 소설 속에서는 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중고등학생들이 바보도 아니고, 언제까지 '졸라짱센' 판타지 소설의 뒤를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에야 묵향, 의 주인공 묵향이[..] 손에서 강기를 펼치며 다 때려잡으면 열광하겠지만 몇 십권이 지나도 똑같이 때려잡는 일만 한다면 애정이 떨어질 것이다. 비뢰도? 이제 좀 완결났으면 좋겠다, 고 생각이 들 것이다. 천겁혈신은 명탐정 코난의 검은 조직의 보스인가? 물론 판타지 소설 중에서도 다양한 개성을 가진 등장인물을 잘 만들어 놓은 소설들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의 두 소설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동등한 지위를 누린다, 에서는 아무래도 점수를 많이 주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다양한 개성을 가진 등장인물을 만들어놓게 되면 이야기들은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공감은 될지라도 각 개성을 가진 등장인물들에게 모두 동등하게 지면을 할애하다보니 스토리라인이 점차 길어지게 되는 것이다. 스토리라인이 길어지게 된다면 아무래도 상상력으로 그 세계를 그려내기가 어려워진다. 이럴때 각 등장인물의 개성이 다양하고, 게다가 일러스트까지 실려서 더욱 상상하기 쉽게 만들고, 스토리라인을 좀 약화시킨(모든 라이트 노벨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라이트 노벨이 등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제 공은 라이트 노벨로 넘어간다. 이런 라이트 노벨은 속된말로 캐릭터 빨로 승부를 보게 되고, 그렇기에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하는데 사력을 다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다양한 캐릭터에 스토리라인이 약화되었다면 우리는 어떤 류의 소설을 가장 쉽게 쓸 수 있을까? 그렇다. 연애물이다. 한 명의 주인공에 다양한 속성을 가진 여주인공 여럿. 이 정도면 충분히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위에서 언급한 경우에는 토라도라, 가 가장 무난한 예일 것이다. (아니면 여러 속성을 한 여주인공에 다 몰아주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위의 늑대의 향신료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고, 결국 더욱더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할 것이다. (위의 슈타인즈 게이트, 는 특이한 캐릭터들의 향연이다.) 그리고 그것은 라이트 노벨의 힘이 될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런 발전이 계속 되는 한 (물론 라이트 노벨 작가들이 의도해서 이런 발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계속 공은 라이트노벨로 넘어간 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중고등학생들은 점처 더 많이 라이트 노벨을 읽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서브컬쳐, 라고 불리던 것이 조금은 양지로 올라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여기서 한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라이트 노벨이 판매수가 높기는 하지만, 막상 그 근원지[..] 일본에서도 괜히 서브컬쳐(아래에 있는 문화)가 아니다. 그리고 서브컬쳐에는 본질적으로 일본의 문화, 라는 인식이 깊게 남아있기 때문에.. 양지에 올라올 수는 있을 지 몰라도 국내에서 본격화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괜히 남에게 피해를, 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인 것은 아니다.. 캐릭터들의 옷을 입고 그 캐릭터인 것 처럼 흉내를 내는 코스튬 플레이[..]의 경우 그 플레이어들의 의식은.. 일부는 가관인 경우도 있다. 광복절날 일본색이 짙은 캐릭터의 옷을 입고 흉내를 낸다던지.. 더 쓰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판타지 소설에서 라이트 노벨의 이행을 당연한 것 처럼 써놓기는 했는데.. 그렇다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이런 라이트 노벨이 침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반지의 제왕 다음에는 판형을 줄이고 일러스트 예쁘게 해서 간달프를 미소년으로 나오게 한다거나[..] 특이한 개성을 가진 마이야가 나온다거나 뭐 이런 책들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텐데, 별로 그런 소식은 안들린다. (음.. 해리포터 시리즈나 타라 덩컨 시리즈를 그런 식으로 보아도 될까? 하지만 청소년용으로 보기에는.. 음, 청소년용이구나)그렇기에 나로서는 서브컬쳐가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점차 국내에서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에 저런 이행에 대한 생각을 끼워맞춘것이다, 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굳이 북미와 우리의 의식이 다르니까, 등등의 이유는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우리는 상상력의 동물이다. 특히 몰개성한 고교시절을 보내면서, 머리는 바리깡으로 깎이더라도 머릿속은 상상력으로 채우고 싶어하는 욕구를 절대 지우지 못할 것이다. 상상력은 능동적인 것이고, 능동적인 생각을 통해서 우리에게 쾌감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식은 만화보다는 글을 통해서 그려낼 수 있는 글을 더 선호할 것이다. 그렇기에 판타지 소설이 한 풀 꺾인 이때, 서브컬쳐는 특히나 유행을 타고 조금씩 청소년들을 잠식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옳을까? 라이트 노벨이 저급한 매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잘 모르겠다. 그러나 특히나 환상에 휩쓸리기 쉬운 중고등학생들이 이런 책들을 읽으며 현실에 유리되는 것이 옳을까? 앞서 썩 좋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소설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지만, 썩 좋은 현실이 아니라고 해서 그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런 비판도 없이 낄낄거리며 읽는 것이 옳을까? 쉬자고 읽는 책인데 무슨 비판.. 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기에 더 그들의 무의식에 침투하기 쉬운 것이 아닐까? 나 또한 판타지 소설도 읽고 라이트 노벨도 많이 읽었지만, 그리고 재미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고,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가 있지, 라고 놀라기도 하지만.. 아마 이것이 심리적 저항일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19금 먹인다거나 판매금지한다거나 이런 수단 말고 국내 문학의 저변을 넓힌다거나 뭐 이런 것들 있지 않겠는가. 뛰어난 작가들의 웹연재도 많이 활성화되면 좋겠고. 그런게 힘들다면 라이트 노벨을 어떻게 잘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런 연구라도 필요하려나? '라이트' 노벨이라고 고개를 돌려버린다면 참 쉽겠지만 말이다.

 

 

 

다음에는 간단한 책 페이퍼 몇 권 쓰고 로마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 물론 언제 쓸 지 모른다. (사실 로마의 때밀이에 대한[..] 괜찮은 만화를 알고 있다. 소개할지 안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앞서 쓴 촘스키 언어학에 대한 글이 쫌 정성을 기울여 쓴 글이라.. 그런데 내가 봐도 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큼큼.. 그런 건 이해해주시라, 어쨌든 그래서 좀 쉬는 글로 대강대강 짧게 쓰려고 했는데, 풋, 이번에는 대강대강 긴 글이 되어버렸다. 여기까지 다 읽어준 분이 있..긴 하겠죠? 어쨌든 긴글 읽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그냥 막나가는 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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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8-29 11:41   좋아요 0 | URL
라이트노벨이라, 역시 가연님 멋지십니다. 라노베는 제가 오가는 인터넷 카페서도 화제가 은근히 되고있긴 한데 저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오오카미씨 어쩌고 하는 라노베를 전에 사긴 했는데 읽진 않았어요. 꽤 긴 글 집에가서 차근 읽어보겠습니다. 후후

가연 2012-08-29 13:07   좋아요 0 | URL
푸핫, 멋지다기보다는 막나가는거겠죠..?ㅎㅎ 음.. 알라딘 서재에서 호로, 그러니깐 늑대와 향신료 여주인공의 얼굴이 메인에 떠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정말 묘한 기분이 드네요. 뭐랄까, 손발이 오그라든달까..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하는 기분이랄까..

푸하하, 하지만.. 뭐, 이런 책들도 있다, 라는 것을 알아둔다면 그리 나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글이 그런 소개, 가 된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겠죠, 풋. 음.. 오오카미 시리즈군요, 라고 아는 티를 냈다가는 이대로 저는 오타쿠가 되는 거겠죠? 하하, 농담이구.. 은근히 화제가 될 거라고는 예상했는데 소이진님이 그리 즐겨보시지는 않는다니깐 쪼끔 의외네요, 풋. 소이진님은 저처럼 디트로이트에서 메탈을 즐기시는 분 아니십니까, 하하.

이진 2012-08-29 21:28   좋아요 0 | URL
최근에는 이런 장르의 책 싫어합니다. 자꾸 일본어 번역체 같다는 이야기가 들려와서요. 지금부터라도 멀리해야죠. 이런 책에 대부분 일본어 번역체가 많이 쓰이지 않습니까. 뭐뭐 할까나~? 이런거요. 크크크... 오오카미를 아시는군요. 애니 보고 배 잡고 쓰러졌습니다. 웃겨서요. 그래서 샀는데 안 읽고 있네요. 디엠씨! 그래도 애니는 계속 보지 말입니다. 푸하하핫.

늑대와 향신료의 주인공이, 그것도 민망한 자세로 알라딘 메인에 떠 있는 것을 보고 살짝 기겁했습니다. 확실히 다락방님 말처럼 좀 더 막나가도 되겠는걸요. ㅋㅋ

가연 2012-08-31 19:13   좋아요 0 | URL
답이 늦었네요..ㅋㅋ일본어 번역체는 치명적이죠.. 그러고보면 소설을 쓰시려고 하시는 소이진님은 꼭 피하셔야겠네요, 풋.

다락방 2012-08-29 13:54   좋아요 0 | URL
좀 더 막나가도 되는데...( ")

뭐 더 다른 막나가는거 없어요? 더 쎈걸로.

가연 2012-08-29 15:03   좋아요 0 | URL
ㅋㅋ 막나가는 것도 그냥 막나가기만 하면 주화입마..[..]에 빠지니 좀 더 내공을 쌓아야겠죠, 풋. 다음을 위해서 한동안 내공이나 쌓을 생각이에요, 풋.

희선 2013-09-03 00:5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지금은 청소년 소설이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언제부터 그렇게 나온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출판사에서 거의 청소년 소설을 내고 있죠 청소년이 그런 소설을 읽을지 어떨지... 읽겠죠 저도 가끔 보는군요 책이 보이면...^^

라이트 노벨은 별로 못 읽어봤지만... '채운국 이야기' 읽다가 왜 이렇게 안 끝나 하다가 거의 끝날 때쯤에서 그만 읽었습니다(마지막에 어떻게 됐을지, 혹시 읽어봤나요 예전에 아는 것처럼 보였는데... 가장 알고 싶은 것은 홍수려는 어떻게 했을까죠 그러고 보니 여기에 얼굴이 같은 사람이... 비슷하다고 해야겠네요) '소년음양사'도 조금 읽다 말고... 겨우 두 가지군요 이 두 가지 다 배경이 옛날이군요 채운국 이야기는 일본보다는 중국에 가까운, 작가가 만든 나라지만... 여기에도 개성 있는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군요(음양사라는 책에 세이메이와 히로마사가 나온다는 말을 얼핏 봤는데, 소년음양사에 나오는 세이메이 손자 이름이 마사히로예요 이름을 거꾸로 하면 같아서 신기했습니다)

위에 얼굴이 같은 사람이 나온다는 말을 했는데, 소년음양사에도 그런 사람이 나와요 친척이라서 그렇기는 한데... 이런 것을 한두번 본 것이 아니기도 하군요 그것은 대체 왜일까요 이런 걸 물어보다니...

슬레이어즈 아주 좋아했어요 책으로 본 것은 아니고 애니메이션을 봤죠 예전에 책을 사기도 했는데, 사두고 읽지는 않았군요 다 산 것은 아니고 몇 권... 오노 후유미의 <십이국기>는 라이트 노벨인가요 아닌가요 거의 판타지에 가까울지도... 갑자기 왜 이게 생각났는지 모르겠군요

늑대와 향신료에 나온 둘은 어떻게 됐나요 다른 것보다 그런 것을 더 알고 싶어하다니... 그럴 때는 서로를 위해 헤어질 때도 있지만, 이것저것 따지지 않을 때도 있지요 보는 사람은 그런 게 더 좋아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컴퓨터(사람 모습을 한)를 좋아하는 사람, 귀신을 좋아하는 사람, 자신이 그린 만화속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요괴를 좋아하는 사람... 우주인도 있군요 이게 꼭 사람과는 다른 무엇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요 다르지만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묻는 것일지도 모르죠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이 말도 필요없는데...^^


희선

가연 2013-09-10 17:37   좋아요 0 | URL
저도 슬레이어즈 아주 좋아했어요. 정말 멋진 작품입니다. 십이국기랑 채운국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슬레이어즈는 정말 특별한 작품이지요. 우리나라의 팬픽 역사에서도, 푸하하.

늑향의 둘은 결국 결혼했어요. 희선님이라면 그걸 궁금하시려나, 하였답니다.
 

 

 

 

  촘스키는 그의 언어학적인 업적의 대부분을 늦어도 1970년대까지는 완성하였다. 그 이후의 촘스키는 사회운동가로서의 면모가 더 강하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노엄 촘스키의 모습도 그의 사회운동가적인, 그리고 일종의 시대의 양심, 으로서의 면모가 강할 것이다. 미국을 비판해왔다. 권위주의적인 나라에 반대해왔다. 설령 자신의 목숨이 위협당하더라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리고 수많은 학자들과 대담을 펼치며 자신의 견해를 발전시켜왔다. 물론 그의 사생활적인 면모에서는 그 자신의 견해와는 다르게 행동하였다는 말도 있으며(세금을 피하려고 하였다거나) 캄보디아의 민간인 학살을 왜곡시켰다는 비판도 받기도 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의 연구는 펜타곤에서 지원받았었다. 뭐, 지원받았다고 해서 지원해주는 쪽을 비판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설령 그를 위선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언어학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는 것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촘스키의 전기조차 읽지 않았다.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무래도 촘스키의 일생보다는 그의 업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 나는 그의 일종의 시대의 양심으로서의 공과 과를 캐내는 것 보다는 그의 언어학적 업적에 초점을 맞추어 풀어쓰고자 한다. 물론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것이고, 최대한 용어들과 의미를 풀어쓰는 과정에서 뜻이 본래의 뜻과 달라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정리해두는 것에 그 의미를 두려고 한다.

 

 

유명한 언어학자를 떠올려보라고 한다면, 촘스키 뿐만 아니라 소쉬르를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구조주의적인 분석법을 (영역은 다르지만 레비 스트로스와 함께) 거의 최초로 정립시킨 소쉬르는 왼쪽의 일반언어학 강의를 펴냈다. (엄밀히 말한다면 그가 죽은 뒤 출간된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기호학적인 접근을 주창한다. 말 그대로, 기호들에 대한 학문인 기호학에서는 그 내용보다는 아무래도 형식이 더 중요하다. 그의 유명한 말은 다음과 같다 : 언어는 실체가 아닌 형식이다. 그 이전의 언어학에서는 보통 그 언어가 어떤 내용을 가지는가, 에 더 초점을 두었다면 그는 일종의 구조주의적인 형식을 도입하였고, 그의 이런 관심은 결국 그 언어가 만들어내는 법칙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는 우리들에게 많이 익숙한 개념들, 랑그, 빠롤, 기표, 기의, 공시성, 통시성 등과 같은 개념을 제시하며  이는 이후에 라캉이나 데리다 등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실 이 글에서 살펴볼 것은 촘스키의 언어학적인 체계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모든 개념을 여기서 밝힐 수는 없고, 랑그와 빠롤에 대해서만 간략히 설명하겠다. 랑그는 언어다.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체계이며, 언어 전체이다. 그에 비하여 빠롤은 바로 지금 여기, 에 속하는 것이다. 언어의 특수한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추상적 언어체계에서 몇 몇을 주워모아 언어를 발화하는 방식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소쉬르는 랑그를 더 중시하기는 하는데, 이는 빠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어떤 문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한 언어체계 안에서만 그 의미를 가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위의 일반언어학 강의, 에서 '무엇보다도 랑그의 영역에서 보아야 하며 랑그가 다른 모든 발현의 규범' 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소쉬르가 구조주의적인 기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좀 더 보편적인 랑그를 중시하는 것이 당연하다. 앞서 말한대로, 법칙에 대한 그의 관심은 랑그가 더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게 되고, 이는 그의 언어학을 랑그를 대상으로 하는 언어학으로 규정되게 만든다. 여기서 하나 더 밝혀 두어야 할 그의 개념은 공시성인데, 기존의 언어 연구는 언어의 통시적인, 그러니깐 역사적인 측면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소쉬르는 언어가 시간과는 관계 없이 '하나의 체계'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공시적인 측면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렇기에 언어학자들은 그 완전한 체계를 바라보는 일종의 관찰자 지위를 누려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랑그와 빠롤과 연관지어보면 흥미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소쉬르가 종종 이야기했던 예시, 체스게임에 관한 비유를 그대로 따라가보면 체스게임은 그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다. 이 체계는 랑그이며 공시적인 체계이다. 그러나 게임의 양상은 언제나 다르다. 개별적이고 예측하기 어렵다. 이는 언어에서 빠롤에 비유되며, 이 빠롤은 통시적 운동, 시간에 따른 운동을 하며 변화된다. 뒤집어 말하자면, 아무리 각 게임이 특이한 모습을 가지더라도 그 게임들은 모두 체스게임이라는 이야기이다. 오른쪽의 책은 일반언어학 노트, 인데 일반언어학 강의, 와 함께 읽는다면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사실 왼쪽의 언어학의 사상사, 보다 전반적인 언어학사를 조명하기 위해서는 김방한 교수의 책들인 언어학논고, 나 언어학의 이해, 를 참고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단점이라면 너무 오래전에 나온 책들이라 아마 도서관에서나 읽을 수 있으리라. 여하튼 위의 소쉬르에서 시작된 구조주의 언어학은 발전되어 나가면서 몇 개의 학파를 만들게 된다. 제네바 학파, 프라하 학파, 코펜하겐 학파, 런던 학파가 바로 그것인데, 각각에는 뛰어난 학자들이 또 등장하여 소쉬르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발전시켜나간다. 이 학파들 중 눈여겨 볼 학파가 프라하 학파인데, 이 학파에 속한 학자들 중 한명이 바로 로만 야콥슨이다. 유럽의 구조주의 언어학이 이렇게 발전해나갈 무렵, 미국에서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었다. 물론 각각의 언어들의 '구조적인 특성' 을 강조하는 경향으로는 유럽과 미국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그 연구방향이 좀 더 실재적이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토착어의 기술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의 언어가 멸종하기 전에 어떻게든 알아두려고 노력하던 초기 미국의 구조학자들은 벽에 부딪히게 된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토착어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적어도 천여 개는 넘을 것이다. 이를 어떤 방식으로 기술을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기술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문제에 부딪힌 그들은 그동안 연구해온 언어들의 범주로 그것을 기록해서는 안되리라고 막연히 여겼었다. 이런 언어들의 연구방법에는 어느 특정한 시기에 이들 언어의 형태와 모습을 그대로 '기술' 하는 방법이 쓰였다. 여기서 앞서 소쉬르에서 조금 이야기한 공시성이 빛을 발한다. (초기 미국의 구조언어학자들이 연구를 진행시켰을때 주목한 것은 인디언의 언어에서는 딱히 시제형이 보이지가 않는데도 시간의 개념이 언어에 특별한 형태로 표시가 된다는 점이라는 말도 있기는 하다. 인디언들의 언어를 추출해보면 시제가 없는데도 시간의 개념이 보인다는 점에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시적인 방법이 아닌, 공시적인, 그리고 사회 전체에 주어진 랑그의 분석이 필요했고 이는 기술문법을 촉발시켰다고도 한다.)

 

이제 미국의 구조주의 언어학은 블룸필드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사실 사피어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사피어-워프 이론은 논술에 단골 출제되는 주제이다. 훔볼트의 영향을 받아서 언어구조가 우리의 사고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언어 상대성 가설이라고 하며, 이를 설명할 때 무지개 색깔을 나타내는 단어에 따라서 구별가능한 색깔이 차이가 난다, 등의 예시가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는 블룸필드에 대해서만 간단히 이야기하겠다. 블룸필드는 언어 이론에 행동주의 심리학을 끌여들였다. 행동주의는 자극-반응에 따라 모든 현상을 기술하는 방법이다. 연이어 이야기하자면 직접 경험한 것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에만 우리의 의식 현상을 한정시킨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한다면, 이 행동은 어떤 자극에 따른 반응으로 나타난 것이리라.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특정한 감정상태나 생각을 가져서 행동을 한 것이다, 라고. 그런데 이런 특정한 감정상태나 생각은 왜 생긴 걸까? 행동주의에서는 그 사람의 환경과 같은 외부 자극에 의해서 그에 대한 반응으로 특정 감정상태가 생겼으리라고 본다. 결과적으로 자극-반응, 자극-반응이 연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그 사람의 생각 등을 연구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그 사람의 행동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단순히 자극-반응이 연이어 발생한다면 이는 도대체 동물과 무엇이 다른가? 동물도 때리면 깨갱하고 운다. 인간이 뭐가 다르겠는가.

 

이때 언어가 이런 행동주의 심리학에 삽입된다. 일단 언어를 인간 행동의 특수한 형태라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대화에서 자극에 반응이 바로 뒤따르지 않고 그 사이에 언어가 삽입되는 상황을 볼 수 있다. 자극에 대한 언어적 대치 반응과 반응에 대한 언어적 대치 자극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내 숙제를 대신해달라, 라고 말하는 상황을 보자. 숙제가 많다. 이런 실제 자극을 보고 우리는 언어적 대치 반응을 보인다. (이봐, 내 숙제 좀 대신 해줘) 이 말은 청자에게는 언어적 대치 자극으로 작용하며 (아니 이 녀석이 나에게 숙제를 시키네)  이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언어적 대치 자극을 주며, 적당한 실제 반응 (대가를 요구한다던가, 화를 낸다거나) 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사실 명료하다. 행동주의 심리학에서도 우리가 잘 확인할 수 있는 행동을 연구하는 것 처럼, 블룸필드는 언어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일어나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 생각은 언어 연구 방법론의 과학화와 객관화를 초래한다. 의미에 아예 신경을 안 쓴 것은 아니었다. 무슨 말인가, 라고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도 사실 중요하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의미에 신경을 쓰게 되면 기껏 세워둔 과학적 방법론이 객관적이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여기서 구조주의의 한계점들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저런 자극-반응에 의하여 우리가 언어 생활을 하게 된다면, 어린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언어를 익히는 것일까? 우리가 하나씩 하나씩 어린 아이들에게 언어 자극을 주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어린아이들은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던 문장 구조를 커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한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 잠깐 여담을 하자면 사람은 어떻게 언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 일견 당연해보이는 이 말은 사실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규정하기가 힘든 질문이다. 이 질문 안에는 우리가 어떤 언어, 예를 들어서 한국어나 영어를 익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것과, 그 언어를 어떻게 우리가 습득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언어로 우리가 어디까지 생각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린아이때에는 거칠 것이 없이 언어를 습득해왔었던 것 같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마치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이 말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외국에 나가서 살다 오면 그나라의 언어를 익히기에 상당히 수월하다는 것은 주변에서 흔히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기를 쓰고 미국 등지에 어학 연수를 어렸을 때 보내려고 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외국 사람들이 한국어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만약에 어려서부터 한국에서 살게 된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본제로 들어간다. 이런 어린아이는, 더 나아가서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언어를 익힐 수 있는 것일까? 이는 뒤에 설명할 플라톤의 문제, 라고도 한다.

 

이런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조주의를 내세운 학자들이 위처럼 객관적인 수단에 너무 집중한다면 만약에 자료를 수집하였는데, 그 자료가 별로 적당해보이지 않아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자료 청취에 응했다고 하자. 학자들은 술에 취해서 꼬인 발음과 문장을 '객관적으로' 가져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각 언어에 대한 공시적인 연구는 각 언어로서는 충분할지 모르지만, 전체 언어의 보편성에 대한 연구는 도리어 부족하게 된다. 각 개별적인 완결된 체계로서의 언어가 여러 개 존재하는데, 이들 사이에서 인간 언어의 보편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앞서 소쉬르에서부터 내려온 전통, 언어학자는 언어 밖에서 그 체계를 바라보는 관찰자여야 한다, 이 심화됨으로서 한편으로는 언어 내부에 담긴 의미에 소홀히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촘스키가 등장한다. 언어학계에는 촘스키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촘스키를 따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촘스키를 어색해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의 연구방법, 그러니깐 마치 생물학자와 같은 그의 과학적인 언어 탐구법에 반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에서든 촘스키가 언어학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기존의 구조주의 언어학 이론에서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언어, 그 언어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귀납적으로 자료를 모으는 것이 지상 목표였다. 하지만 이들은 앞서 말한 것 처럼 한계점을 보이게 되고, 여기서 촘스키는 하나의 전환을 가져오게 된다. 촘스키는 하나의 가설을 먼저 세우고 연구를 진행하는데, 이는 기존의 플라톤 문제에 기인한 것이었다. 플라톤 문제는 앞서 조금 설명했지만, 보통 러셀이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외부 세상과의 접촉이 개인적이고, 또 제한적인데도, 어떻게 자신들이 알고 있는 만큼의 것들을 알게 되는 것일까, 라고 말이다. 이는 일종의 자극의 빈곤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는 적어도 모국어에 관한 것에서는 주어진 자극 그 이상의 것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특히 아이들은 그들이 경험하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런 자극의 빈곤에 관해서는 기존에서는 두 가지 설을 내세울 수 있었는데 각각 경험(연장자의 말을 모방)때문에, 혹은 유전(환경과 유전의 영향)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했었지만, 둘 다 제대로 된 해결책은 아니었다.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두 가설을 종합하여야만 하였고 여기서 촘스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언어는 바로 생득적이라고 말이다.

 

우리 몸에는 마치 소화기관 등과 마찬가지로 언어기관이 존재한다. 그리고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대과학의 발전으로 PET-CT등의 기구를 통하여 여러 실험을 통하여 LAD(언어습득장치)가 좌뇌의 PT(Planum Temporale)에 위치하리라고 특정짓고 있다. 촘스키의 언어생득가설을 지지하는 것이다. 동물들은 인간과 달리 PT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말을 할 수 없다. 이 PT가 소리신경으로 연결되면 구어로, 손신경으로 연결되면 수화로 언어가 발화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인간은 언어능력을 고유한 특성으로 생득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언어능력이라는 것은 기존의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이야기했듯 한 지역에서 한 시점에서의 언어의 양상과 다르고 특히나 그 구조주의 언어학의 기저, 행동주의에 반대되는 것이다.  좀 더 보편적인 생물의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말은 우리에게 노출된 언어들을 모두 습득할 수 있다는 말로 바뀔 수 있다. 노출된 언어를 모두 모국어로 습득할 수 있다면, 이는 보편적인 것이다. 이를 두고 보편문법이라고 말하며, 여기서 우리는 촘스키의 보편문법UG을 잠깐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의문점이 생긴다. 보편문법이라는 말은 마치 하나의 언어를 익히면 다른 언어들도 충분히 다 똑같은 문법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우리는 저 말을 그런 법칙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다르다. 언어내에 형식적, 실질적인 보편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이는 촘스키의 그 유명한 변형생성문법, 의 기초가 된다.) 이런 보편문법은 좀 더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보편성을 가리킨다. 이는 매개변수들로 조직된 결합구조가 바로 언어라는 이야기이다. 이 결합구조는 어린아이들의 머릿 속에 있다가, 환경이라는 매개변수값을 통하여 각자의 독특성으로 향하며 어떤 문장이 잘못된 문장인지 파악하게(우리는 특별한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모국어에 잘못된 문장을 안쓸수 있다.) 된다.

 

앞서 소쉬르가 언어에서의 과학적 연구의 대상을 랑그로 두었다면 촘스키의 경우에는 내재언어로 둔다. 이렇게 언어 연구의 대상을 내재언어로 두게 된 까닭은, 기존의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의 과학적 연구 방법의 대상은 무한한 수가 있을 수 있다는 문제점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든 길고 긴 무한한 문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촘스키는 연구 대상을 내재언어에 국한시킨다. 내재언어는 말 그대로 내재해 있는 언어이다. 개별 인간의 신경 조직에 담겨져 있는 지식이다. 화자의 입에서 나오는 문장을 귀납적으로 수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런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되었는가, 그 지식에 눈을 돌린 것이다. 그리고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은 그런 지식에 대한 연구이다. 소쉬르의 랑그와 촘스키의 내재언어는 비슷한 면모도 많지만 촘스키의 내재언어는 규칙적인 체계이며 (랑그는 기호와 규칙을 포함한다.) 사회적인 랑그와 달리 개인적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제 변형생성문법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사실 전공자가 아니라면 이런 변형생성문법에 대해서 깊게 알지 못해도 크게 상관은 없으리라고 여겨진다. 왼쪽의 책은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을 다룬 책인데, 원서이다. 한 번 번역이 되어 출판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는 검색이 안되어 원서를 표시해두었다.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훑어보어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지만 아무래도 번역본을 도서관에서 볼 수 있다면 번역본을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나도 번역본을 읽었다.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의외로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에 관련된 입문서 등은 그의 유명세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의 이론이 너무 옛날에 기틀이 잡혀서 그런 것일까? 여하튼 책은 구절구성기술법이나 유한상태문법을 비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아무래도 이런 것들 보다는 변형생성문법에 대해서 바로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이 옳을 듯 하다. (이 글에서는 표준이론에 준해서 간단히 다루며, 최근의 최소주의이론은 제외한다.)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한 가지 개념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어야만 하겠다. 바로 표시층위라는 것이다. 우리가 언어를 살펴보면 언어는 그 의미를 우리의 정신과 발음에 연결시킨다. 혹은 연결시키는 부분을 찾아야 옳을 것이다. 저런 부분들은 수학적인 부분이 아니다. 우리가 무언가 자료를 넣는다고 해서 의미있는 자료가 바로 산출되는 기계처럼 해석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문법 구조는 내부에 복잡성을 가지게 되고, 그것을 나타낸 것이 표시 층위이다.

 

이런 표시 층위는 초기 이론에는 네 가지 층위를 가진다. 음성형태, 논리형태, 기저 구조와 표면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현재 발달된 최소주의 이론에서는 음성형태와 논리형태만으로 구성되어있지만, 이 글에서 살펴볼 범위를 넘는다. 음성형태와 논리형태는 접합면 층위라고 불리며, 이들은 비언어적인 발음이나 정신에 연결되어있다. 기저 구조와 표면 구조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지만 절대 심오하다거나 표면에 있다거나 하는 구조는 아니다. 이런 층위를 나눔으로써 언어의 복잡성을 줄여서 언어 구조를 분석 가능한 것으로 만드려는 것이 촘스키 언어학의 핵심이다. 이제 변형생성문법으로 넘어가면, 표준이론에서는 구절의 구조 규칙에 어휘를 넣어 기저 구조가 생성되며, 이는 의미규칙의 영향을 받아 의미가 있게 된다. 이제 기저 구조는 변형규칙의 영향을 받아 표층 구조를 생성한다. 바로 이것이 변형생성문법의 핵심이다. 물론 이런 설명으로는 잘 와닿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많이 예를 드는 것이 영어의 능동태, 수동태 문장이다. 사실 실제적인 분석은 이런 예시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사실 수학의 집합론에서 쓰이는 방법을 가져왔다. 우리가 어느 집합을 정수의 집합, 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집합의 원소의 수는 무한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무한할지라도 모두 공통적인 개념, 정수, 은 공유할 것이다. 언어에서도 이를 적용한 것이다.) 개념을 위해서는 나을 것이다.

 

I read a book.  - 1.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하자. 이를 수동태로 나타내면

 

A book was read by me. - 2.

 

가 될 것이다. 두 문장의 의미 변화는 없다. 이는 1번 문장이 변형되더라도, 변형규칙(여기서는 수동화 규칙이 될 것이다)의 영향을 받아서 모습이 바뀌더라도 문장의 의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의미는 표준 이론에서는 기저 부분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나 더 살펴보면 이런 예를 들 수 있겠다.

 

Singing girl. - 1'.

 

Writing book. - 2'.

 

위의 1' 과 2'는 모양이 똑같다. 둘다 명사 앞에 -ing가 오며 현재진행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미를 살펴보면 차이가 있다. 소녀가 노래를 부른다. (Girl is singing) 하지만 책은 쓰여진다. (Someone is writing book) 이렇게 표층구조가 비슷하게 보이더라도 실제로 그 의미가 담긴 기저구조는 전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런 변형생성문법은 앞서 말한 언어습득장치와 함께, 기존의 구조주의 언어학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을 해결해나간다. 이 글에서는 표준이론만 다루었지만 촘스키의 이론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표준이론;기저구조만이 의미에 영향을 미친다, 에서 확대표준이론;기저구조와 표층구조 모두가 의미해석에 관여한다, 로 발전하고 이윽고 지배결속이론Government and BInding theory에서 기저구조는 일종의 변형규칙을 통해서 표면 구조로 변화하고, 이 표면구조는 음성학적인 규칙Phonological rule을 통하여 음성형태가 되며, 변형규칙을 통하여 논리형태로 변화한다, 까지 이르렀다. 보면 알겠지만 갈수록 기저구조가 의미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든다. 이는 그만큼 그의 이론이 많은 도전을 받았다는 점을 시사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는, 이 변형생성문법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언어학 연구에 끼치고 있는지 짐작케 한다. 그런데 사실 촘스키의 진정으로 위대한 발견은, 이런 이론들도 중요하겠지만, 앞서도 이야기했다시피 언어능력이 인간의 고유한 특질이라는 것을 제대로 밝혀낸 것이다. 막연하게 우리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으니 동물과 다르다,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확실한 언어 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로서 우리 인간은 동물과 분명 다르다. 우리는 언제나 언어를 사용하고, 심지어 이 글도 언어를 사용해서 쓰여졌다. 언어가 인간과 동물을 구분짓는 능력이라면, 언어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우리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쯤은 이런 능력이 어떻게 우리의 손에 있게 된 것인지, 이런 언어 능력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여담인데 아래 글은 특수 상대성이론 관련 글이고 그 아래에는 히틀러 이야기를 끄적여놓았다. 내가 생각해도 글의 주제가 참.. 다양한 것 같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음 글에는 속칭 라노베, 그러니깐 서브컬처의 라이트 노벨 리뷰라도 적고 아즈마 히로키에 대한 사두용미..의 글을 끄적거려서 화룡점정을 찍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뭐, 사실 아즈마 히로키 책은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정도만 읽어보았기에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나의 서브 컬처 섭렵이 아즈마 히로키에 비해 부족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풋. 근데 이런 것에 자부심을 가져도 되려나.. 물론 나는 오덕이 아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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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8-29 13:17   좋아요 0 | URL
가연님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글 덕분에 학교다닐때 번역해보았던 언어학노트를 다시 꺼내보았네요 그땐 제대로 번역하는데 급급해 언어학 전반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나봐요 노트도 다시 훑어보고 이 글도 읽다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며 재미있었어요 ^^

가연 2012-08-29 13:12   좋아요 0 | URL
오.. 뭐랄까,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 라는 말이 떠오르는데요, 풋. 제가 독학으로 끄적거리다보니.. 사실 고백하자면 이상할 것 같은 부분은 몽땅 빼버리긴 했지만, 아하하.. 혹시 글 내용 중에 좀 이상하거나 보충할 부분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셔도 되는데, 풋. 여하튼 이렇게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다행이네요, 풋.. 다시 봐도 딱딱한 글이라..

일개미 2012-09-04 02:19   좋아요 0 | URL
덕분에 언어학강의 질렀습니다...이러다 촘스키도 지를 기세...읽을 책이 산더미인데...아 여기 자주 오면 안되겠어요...ㅋㅋㅋ

가연 2012-09-07 15:32   좋아요 0 | URL
ㅎㅎ저도 산더미인지라.. ㅎㅎ
 

 

 

 

  먼저 여담을 몇 자 늘어놓자면, 이전의 프레이져의 황금가지, 는 2개월 넘게 걸려서 겨우 다 읽었는데, 현재 읽는 이언 커쇼의 히틀러 평전은 2일만에 거의 다 읽어가고 있다. 황금가지가 1000페이지 남짓이고, 이언 커쇼의 평전은 다 합쳐서 2000페이지를 훨씬 넘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이긴 하다. 물론 2개월 전에는 황금가지만 읽었던 것도 아니며, 그것만 붙잡고 읽을 여건도 되지 않았으나 히틀러 평전의 경우에는 하루에 거의 열 시간을 꼬박 붙잡고 읽어내려갔으니 단순비교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를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아무리 흥미로운 일을 하더라도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집중은 쉽지 않을 것이기에, 하루에 열 시간을 붙잡고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사실은 그 책이 얼마나 흡입력이 있는지를 말해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이 황금가지, 가 흥미롭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히틀러 평전이 나에게는 좀 더 흥미로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글쎄, 황금가지, 를 축약본이 아닌 완전본으로 읽는다면 또 어떨까? 그러나 당장은 히틀러평전을 더 우위에 놓고 싶다. 그렇기에 이렇게 짧은, 사실 제대로 된 3제국에 관한 책은 몇 권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글로 제 3제국에 대하여 간단히 남길 마음이 든 것이기도 하다.

 

제 3제국(1933~1945), 그러니깐 제 2차 세계 대전(1939~1945) 당시의 독일은 히틀러라는 인물에서부터 시작한다. 히틀러는 정말 복잡한 인물이다. 물론 그를 한 단어로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악마, 광인, 순수한 악, 자살욕구자. 위의 어떠한 단어라도 그에게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순수한 악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을 파괴하고 그와 동시에 세상 모든 것을 파멸로 몰아넣고 싶어하는 악마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가 복잡해보이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규정하는 것은 그 어떤 생산적인 지식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히틀러의 경우에 이르면 이렇게 규정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그의 유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이 세상에 파시즘, 그 중에서도 특히 나치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라는 것을 널리 알린 것 정도가 될 것이다. 당신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느쪽이든 마음에 든 곳에 가서 서도 좋다. 하지만 파시즘만은 당신의 이념으로 택하지 말라.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문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 파시즘을 택하지 않겠다. 그런데 파시즘이 뭔가? 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사실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파시즘을 명확하게 정의하기란 쉽지 않고, 그렇기에 우리는 두루뭉술하고 제 2차세계대전 당시의 베니토 무솔리니, 아돌프 히틀러 그리고 일본의 제국주의 정도를 파시즘으로 묶어서 살펴보고 있다. 물론 스페인 내전에서 결국 권력을 잡은 프랑코의 경우에도 파시즘으로 그 행동원리를 설명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파시즘에서 가장 크게 족적을 남긴 나라는 이탈리아, 독일, 일본이 될 것이다. 위의 세 나라를 중심으로 공통점을 묶는다면 '국가의 절대권력' 정도가 보일 것이다. 개인은 그들의 뜻은 버리고 오직 국가와 그 국가를 지배하는 카리스마적인 지배자의 손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 왼쪽의 책은 파시즘 연구서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볼 수 있는 책인데, 이 책에서는 전시 이탈리아와 독일을 잘 분석하여 파시즘의 정의를 내려놓고 있다. 파시즘은 물론 전체주의이다. 하지만 전체주의가 꼭 파시즘적인 양상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파시즘이 되려면 과거의 영광으로의 회귀, 즉 민족주의자들의 존재가 필수 불가결하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를 지배하면서 로마 제국이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일본의 경우에는 과거에는 허울뿐인 존재였던 천황의 신성 획득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복잡한 사정이 있다.) 그렇다면 독일의 경우에는 어떨까?  

 

앞서 히틀러를 언급하면서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독일을 제 3제국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제 3제국이 있다면 제 1과 제 2의 제국도 있을 것이다. 히틀러는 자신이 집권하던 때의 독일을 제 1제국과 제 2제국을 계승한다고 여겼기에 이렇게 명칭을 붙인 것이다. 제 1제국은 신성로마제국(800~1806)을 뜻하며, 제 2제국은 독일 제국(1871~1918)을 일컫는다. 간단하게 살펴보면, 제 1제국이었던 신성로마제국은 샤를마뉴 대제에서부터 그 연원을 시작한다. 샤를마뉴 대제는 난쟁이 피핀, 피핀 3세의 맏아들이었는데, 피핀 3세는 롬바르드 족의 침공에서 로마를 보호한 대가로 교황에게서 자신의 아들들, 샤를마뉴와 카를로만과 함께 축복을 받는다. (세례 또는 기름붓기, 라는 말이 많다.) 이를 지켜보면서 샤를마뉴 대제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교회권력을 인정하고 자신을 왕으로 인정한 교회를 위해서 그리스도교를 퍼뜨리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그는 교회로부터 서로마제국의 직전을 계승받았다고 인정을 받은 뒤 그 황제로 등극한다. 바로 이것이 신성로마제국의 시작이다. 샤를마뉴 대제는 그의 전설과 12기사에 대한 일화로도 유명한데, 위의 책이 바로 그 12기사와 황제에 얽힌 전설을 다룬 책이다. 아마도 12기사의 수좌인 롤랑(혹은 오를란도)의 노래, 가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위의 롤랑전, 이 그 롤랑의 노래를 다룬 책이다. 그런데 사실 샤를마뉴 대제를 그 연원으로 둔다고 하여도 실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말은 1200년대는 넘어야 쓰이기 시작했다. 실제로는 샤를마뉴 대제 치세하의 왕국은 프랑크 왕국이라고 불렸으며 샤를마뉴 대제의 죽음 뒤에 왕국이 분열되었다. 각각 동프랑크, 서프랑크로 분열되었으며 독일과 프랑스의 전신이 된다. 그 뒤에 동프랑크 왕국의 오토 1세가 본격적으로 신성로마제국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 제국은 카노사의 굴육과 아비뇽의 유수를 겪으며 교황권과 부딪히기도 했고 결국 사코 디 로마Sacco di Roma 를 통하여 그 힘이 정점에 도달하여 결국 샤를마뉴 대제 이후 몇 백년이나 지나서 제국의 이름으로 새로 쓰여졌다.

 

제 2제국은 1871년에서 1918년의 독일을 일컫는데, 그 씨앗은 이미 프로이센의 군주였던 프리드리히 대왕에서부터 뿌려져 있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1740~1786까지 프로이센을 지배했었는데, 신성로마제국을 찢는데 일조를 했었다.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신성로마제국은 무너지고, 모두가 알다시피 그의 앞을 가로막는 나라는 모두 패배하였으나, 아무리 많은 승리를 거두더라도 단 한 번 패배하면 그것으로 승부가 결정나는 경우가 있으니, 나폴레옹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나폴레옹이 휩쓸고 나닐때,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이 무너진 뒤의 독일은 말그대로 지명을 가리키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폴레옹이 쓰러진 뒤에는 독일 연방국들 중에서 기존에 프리드리히 대왕에서부터 착실하게 기반을 다져온 프로이센이 맹주로 대두되게 된다. 독일이 본격적으로 하나의 독일 제국을 이루게 된 것에는 프랑스 혁명의 여파가 컸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하여 독일에서는 3월 혁명이 일어나고, 프랑스는 공화정이 되었지만 독일은 당시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혁명을 진압하였다. 이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빌헬름 1세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되고, 여기서 독일 제국의 대들보,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의 패권 경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하게 만들었고, 이후 프랑스마저 꺾고 독일 연방을 하나로 묶어 독일 제국, 제 2제국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빌헬름 1세는 초대 독일 제국 황제가 된다. 그리고 그 팽창된 힘은 유럽 전역의 열기와 맞물려, 빌헬름 2세에 이르러 제 1차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으로 뿜어져 나오게 된다.

 

이상을 살펴보면, 제 3 제국이라는 명칭을 붙인 이유는 히틀러가 제 1제국과 제 2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공은 성공대로, 그리고 실패는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실제로 히틀러의 평전을 읽어보면 히틀러는 강박적으로 이야기한다. 제 2제국 당시에 우리 독일이 얼마나 치욕적인 조약을 맺었던가,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라고 말이다. (제 1차 세계 대전은 독일의 항복으로 끝이 나고,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가 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제 3제국은 그 근본부터 파시즘의 요소를 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 3제국이 다른 제국들과 다른 것은, 제 3제국은 히틀러 자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점이다. 히틀러 이외의 다른 의견을 내는 경우는 없었다. 히틀러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움직였다.

 

이제 이야기는 아돌프 히틀러로 넘어간다. 히틀러 평전에서 이언 커쇼는 히틀러에 대한 혐오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히틀러가 저지른 죄는 그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언 커쇼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저 악인이다, 나쁜 행동이다, 라고만 규정한다면 거기에서 더 이상 무엇을 이끌어 낼 수 없노라고. 그렇기에 그는 어린 시절로부터 히틀러를 추적하여 그의 성장과정과 그가 어떻게 권력을 잡게 되는지를 1권에서 그려낸다. 히틀러는 제 1차 세계 대전에도 참여하여 무공훈장을 받는데, 전쟁을 거치며 그는 그 자신의 행동을 평생 규정할 두 가지 기준을 만들게 된다. 반유대주의와 볼셰비즘에 대한 무한한 증오가 바로 그것이다. 도대체 왜 히틀러가 볼셰비즘과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뛰어난 유대인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학교에 다녔기에 그에 대한 반감으로 유대인들을 증오하게 되었다 등은 흥미롭지만 거의 음모론 수준이고, 사실은 크게 자료가 없는 실정이다. 왼쪽의 책은 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고 있는 책인데, 사실 책 자체는 흥미롭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학창시절의 히틀러는 어느 것에도 흥미가 없고 공상만 하던 문제 학생이었고, 그다지 성적도 좋지 못했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일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히틀러는 선생들에게 배울 것이 없기 때문에 저항한 것이다, 라고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두 사람의 관계를 다룬 저 책은 한 번쯤은 눈여겨볼만하다. 그 외에 히틀러가 가지고 있던 볼셰비즘에 대한 증오는 이후 사상적으로 접하게 된 생존공간의 문제, 와 결부되어 소련을 공격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히틀러는 항상 외부에 적이 존재한다고 상정하였다. 마치 사춘기의 학생들이 다른 사람은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을 안쓰는데도 그들이 자신을 다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여 괜히 돌출 행동을 벌이거나 혹은 특이한 일을 벌이는 것 처럼 말이다. 시선으로만 남았다면 다른 사춘기의 청소년들처럼 털고 일어났을테지만, 그 '시선' 은 이윽고 적의 시선, 으로 변하였고, 그 때문에 진실로 자기 말고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게 되버린 것이다. 그로 인하여 히틀러는 점차 자기파멸적인 행보를 거듭한다. 말하자면 '자살 후보자' 인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알 수 없는 울분에 휩싸여 거리를 방황하던 그는 정치판에 뛰어들게 되고, 거기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다. 연설능력. 자세히 들어보면 별다른 내용이 없이 그저 감정에 호소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감정은 다른 사람을 울렸고, 이윽고 수많은 군중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맥주홀을 전전하면서 연설하던 그는 중앙의 나치당 정계에 제대로 진출하게 되고, 참신함을 내세워 점차 영향력을 늘리게 된다. 그런데 사실 히틀러는 고집강한 사춘기 아동에 지나지 않았고, 자신의 손을 더럽히기를 정말 싫어하여 아무리 중요한 결정이라도 최대한 미루다가 더이상 피할 수 없을때 확정지었다. 그의 고집은 정말 끔찍하여, 아무리 당론이 분열되고 양보를 해달라고 부탁이 오더라도 자신의 독보적인 위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눈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미 개인의 권력 집중 경향이 드러났을 것이다. 자신만 무조건 옳으니 다른 사람은 모두 나의 말을 따라야만 한다는 바로 그런 경향말이다. 그러나 그의 고집은 대체로 그를, 적어도 그 자신한테는, 옳은 방향으로 이끌었고, 아무리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려도 결국 그는 항상 이득을 보았다.

 

아무리 중앙이라고 할지라도 당시 정계 상황에서는 소수당에다가 주변부에 지나지 않았던 나치당이 권력을 잡게 된 것은 히틀러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그가 미칠듯한 운이 항상 따라주었기에 계속 성공할수 있었다, 라고 분석만 내리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기분이 든다. 빠진 것이 있다. 바로 당시의 독일 상황이었다.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물가 문제, 정치 문제 등 수많은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 사회 상황은 히틀러 자신에게는 유리하게 돌아갔고, 그렇기에 앞서 말한 것 처럼 그의 선동이 먹힌 것이었다. 히틀러의 연설수법을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 참전 용사라는 것을 이끌어 내어 민중의 공감을 얻고, 외부의 적을 상정하여, 유대인들과 볼셰비즘을 열심히 공격한 뒤에, 그들에게 죄가 있고 우리에게는 죄가 없다, 라고 말하며 인플레이션과 정치적 혼돈에 힘들어하던 민중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했었다. 이는 다시금 히틀러의 성공을 가져오게 되고, 성공은 다시금 성공을 낳게 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결국 히틀러가 집권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물론 자세하게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정계를 붙잡기 위해서 더 많은 계교를 부렸지만, 그 기초에는 저런 것이 깔려있다.

 

하지만  Hubris라는 단어가 있다. 히틀러 평전의 1권의 부제이기도 한 Hubris는 토인비가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신격화함으로써 오류에 빠지게 되는 현상을 지칭'할 때 사용한 단어인데, 원래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벨레로폰을 아는가? 천마 페가수스의 주인이던 영웅말이다. 그러나 그는 페가수스를 타고 신에게 도달하려고 하다가 결국 몰락하고 만다. 태양신 아폴로의 아들, 파에톤은 어떤가? 아폴로의 태양전차를 몰다가 제어를 하지 못하고 결국 제우스의 벼락에 징벌당한다. 신은 항상 오만에 빠진 자를 '벌한다' 이 징벌은 다른 신들조차 어쩌지 못하는 복수의 여신Nemesis의 힘이고, 그녀의 손길은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관계없어 보이는 이야기이지만, 지질학에서 고대의 5번의 멸종 원인을 조사하다가 한 가지 가설로 내세운 것이 있는데, 바로 네메시스Nemesis라는 이름이 붙은 가설이다. 혜성들의 기원으로 알려진 오르트 구름은 성운과 먼지에 가려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으며, 현대 과학으로도 아직 엄밀하게 어떤 구조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안에 행성이 하나나 두개 더 있어도 모를 일이라는 말이다. 지질학자들은 고대의 5번의 대멸종이 동일한 주기로 일어난다는 점에 착안하여 오르트 구름에 태양의 쌍둥이 언니로 짐작되는 어느 별이 있으리라고 가설을 세웠다. 그 별은 갈색왜성이나 적색거성의 형태로 태양과 쌍성을 이루며, 그 별의 공전으로 인하여 오르트 구름에 교란이 생겨 지구에 혜성과 운석을 쏟아붓게 되어 멸망이 일어난다. 그 별의 이름은 징벌자 혹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이다. 이 가설이 옳은 가설일지는 모른다. 최근에는 아마도 오르트 구름 내부에 10번째 행성, 그러니깐 퇴출된 명왕성 말고 다른 행성이 있을 것 같다, 라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옳다고 가정하다면, 번성Hubris 뒤에는 멸망Nemesis이 따른다. 비록 지질학에서는 번성과 멸망은 큰 인과관계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저 히틀러에게는 조금은 인과관계가 있었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징벌을 맞은 사람들처럼.

 

결국 히틀러는 팽창 야욕을 보이기 시작한다. 주위의 땅들을 야바위로 야금야금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그의 목표가 된 것은 오스트리아였고, 체코도 곧 손아귀에 넣게 된다. 그가 구사한 전술은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이었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바로 그 전술말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내심 전쟁을 원했다. 이미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야욕에 빠진 그의 마음 속에서는 오직 정복 전쟁만이 자신의 갈망을 채워줄 유일한 방법이었다. 정복 전쟁을 통해서 소련을 집어삼키고, 생존공간을 확보한다. 볼셰비즘은 세상에 뿌리를 뽑고, 유대인들은 황무지라도 개간하며 살라고 내팽겨친다. 볼셰비즘에 젖은 유대인들은 그야말로 악마니 주저없이 만나면 목을 벤다. 주위 유럽 국가들은 어느 정도 땅을 떼주면 평화를 해치지 않겠지, 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 모두. 영국의 수상이었던 체임벌린은 뮌헨 조약을 맺어, 체코 땅을 떼주면 더이상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조약까지도 맺었지만 그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이었고, 이윽고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하고 만다. 사실 히틀러의 입장에서도 침공은 당연한 선택이기도 했다. 비록 이전의 바이마르 공화국에 비해서는 상황이 발전했지만 대부분 군수물품의 생산에 물자가 투여된터라 사회적 위기를 맞을 확률이 어느 때보다도 높았고, 히틀러가 지배하던 제 3제국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내각이라던가 조직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에 각 부처가 핏대를 올리며 평행선인 대립각을 세울 뿐이었다. 히틀러는 그저 방관만 하다가 목소리가 커서 이긴 사람의 말을 듣고 대충 서명해주기에 바빴다. 그런 그에게 폴란드는 먹음직스러운 땅이었던 것이었다. 파죽지세로 폴란드를 점령한 히틀러는 기세를 이어 프랑스마저 침공하여 무너뜨린다.

 

그러나 자신의 무오류를 믿고 점차 과대망상에 빠지게 된Hubris 히틀러는 징벌을 맞게 된다. 하지만 어쩌면 그 징벌은 너무 늦게 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게 징벌이 작용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네메시스 가설은 번성과 멸망 사이에 별다른 인과관계가 없다. 지구에서 아무리 번성을 하든 말든 정해진 주기가 되면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져내릴 것이다. 히틀러가 멸망할 시기가 점차 다가왔다. 무너진 폴란드는 유산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유산이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크게 활약한 조종사들이며, 그 외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독일의 암호 체계를 연구한 결과를 영국에 넘기기도 했다. 독일군의 U보트는 연합군을 궁지에 몰아넣었고, 어쩌면 독일군이 좀더 강력해질 시간이 있었다면 영국을 봉쇄시켜 무너뜨렸지도 모르겠다고 여기게 만든 무기이다. 물론 미국이 참전하게 된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그 U보트를 다룬 작품들이 있다. 왼쪽의 특전 U보트, 는 상당히 뛰어난 수작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이야기할 것은 오른쪽의 영화와 관련된 것인데, U-571의 내용은 독일군의 암호를 획득하려고 그들의 U보트를 잡아서 신형 에니그마(당시 독일의 암호기기)를 분석하려고 좌충우돌한다고 요약할수 있겠다. 이는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이야기인데, 영국은 엘런 튜링(전산학에서 업적을 남긴)과 폴란드에서 획득한 독일군의 암호를 연구한 팀의 합작으로 독일의 암호를 해석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군의 U보트에게 공격을 심하게 당하면서도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의 암호기기를 영국이 해독할 수 있었다는 것은 독일로서는 막대한 손해를 입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영국은 독일이 어떤 작전으로 나올지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도 독일의 패인으로 작용한다.

 

잠깐 영국으로 눈을 돌리면, 영국은 체임벌린이 물러나고 윈스턴 처칠, 히틀러의 숙명의 라이벌이 수상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사실 처칠은 갓 자리에 오르자마자 위기에 빠졌다. 연합군, 그러니깐 영국군과 프랑스 연합군이 독일군에게 쫓겨 됭케르크라는 항구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그 됭케르크에서 연합군이 포위당하여 전멸했다면 처칠은 아마 전쟁반대파들에 의하여 실각당하고 독일과 조약을 맺었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히틀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군대를 멈추게 한다. 그렇게 귀중한 24시간이 주어졌다. 그동안 영국군은 모을 수 있는 모든 함선을 모아 겨우 도망쳤고, 하루가 흐르고 다시 추격에 나선 히틀러군은 영국군의 주력이 도망치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후 프랑스가 무너지고 이탈리아가 참전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독일은 영국과의 전쟁을 개시한다. 원래 히틀러는 끝까지 영국을 회유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다시피 반 나치의 거점이 된 영국이, 그리고 호전적인 처칠이 수상 자리에 앉아있는 이상 그의 회유는 먹히지 않았고 결국 공중전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처칠도 히틀러 못지 않게 고집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영국 상공에서 폭격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집무실에서 태연하게 집무를 보면서 전쟁을 지휘했다. 갑작스러운 폭격에 좀 당황했던 영국군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중전에서 독일군을 압도하고, 승리를 거둔다. 왼쪽의 2차세계대전사, 는 내가 끝까지 읽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에 대하여 심도있는 분석을 원한다면 저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여겨진다. 

 

히틀러는 여기서 이제 결정적인 패인을 저지른다. 영국군과의 전쟁도 마무리짓지 못하고 고착상태에 빠진 채 소련과의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사실 스탈린은 독일이 침략해오기 전에 이미 그들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기는 했었다. 영국이 독일의 암호를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도 고집이 센 것은 마찬가지라서 처칠이 은밀히 정보를 알려주기는 했지만 그 정보를 무시하고 '독일이 쳐들어올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 스탈린의 숙청으로 인하여 수많은 인재가 희생이 되었으니, 독일군이 갑자기 쳐들어왔을때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독일군은 수세에 몰리게 된다. 결국 침공 하러 들어가게 되면 시가전을 벌일 수 밖에 없는데, 이는 독일군의 기동력을 심각하게 깎아먹어서 도리어 발이 묶이게 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위가 닥쳐 수많은 기계를 마비시켰다. 이는 기계화된 독일군 전력에 악영향을 미쳤고 결국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그리고  전황은 스탈린그라드에서 극적으로 변했다.

 

동쪽으로 너무 깊이 들어간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대반격을 맞이한다. 그동안 산발적인 반격과 추위에 의하여 많은 사상자, 부상병이 있었고, 사기도 저하될때로 저하된 상태였다. 왼쪽의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에 그런 장면이 잘 나와있다. 왼쪽의 작품이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소련에게 밀리며 패색이 짙던 독일군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전쟁은, 그것도 권력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전쟁은 정말 무의미하다, 라는 것이 두드러지게 그려진다. 3주간의 짧은 사랑, 겨우 결혼에 이르지만 다시 전장에 나가게 되는 주인공. 그는 이윽고 무의미한 전쟁에서 무의미한 죽음을 맞이한다. 당시 스탈린그라드에서 전투를 벌이던 독일군과 소련군의 모습을 이보다 더 잘 그려낼 수는 없을 것이다. 탱크도 무력화된 스탈린그라드에서 명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만슈타인의 작전도 실패로 돌아간 뒤 결과적으로 갇히게 된 독일군은 결국 지원도 무위로 돌아간 채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쓰러지면서 히틀러를 원망한 사람도 있었고 히틀러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 사람도 있었으며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고, 종말에서 끝까지 벗어나려고 발버둥친 사람도 있었다. 히틀러는 희생된 장병들을 영웅적 희생으로 포장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당시 독일 6사단을 이끌던 장성인 파울루스의 투항으로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물론 히틀러는 파울루스가 스탈린그라드에서 항복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노발대발하였다. 그는 파울루스가 자결하기를 바랐지만 파울루스는 끝끝내 자결하지 않았다.

 

 

스탈린그라드에서만 극적으로 전황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일본군을 쫓아내었고 이집트에서는 몽고메리 장군이 사막의 여우로 불렸던 롬멜을 격퇴시켰다. 모든 징조가 독일의 패색을 나타내었다. 점차 몰리는 심정이 된 히틀러는 마침내 조직적인 최종 해법을 지시한다. 이미 폴란드에서 수많은 학살을 거리낌없이 저질렀던 독일군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이전에 비하여 더욱더 감정이 많이 무뎌져가기 시작했다. 제 3제국 초기만 해도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아예 조직적으로 절멸시킬 생각은 없었다, 고 여겨진다. 대량학살을 방조한다면 모를까, 나서서 유대인들을 가스실에 몰아넣으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물론 초기에도 유대인들은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하였으며, 처음에는 강제로 게토에서만 거주하게 하다가, 어느 순간 아예 나라 밖으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원래 히틀러의 계획은 마다가스카르 섬에 유대인들을 몰아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계획은 흐지부지되었고, 다른 곳에 관심을 돌렸다. 히틀러가 방조하는 사이 독일 정부는 꾸준히 유대인들을 박해했다. 그들의 재산은 모조리 나라에게 압수를 당하고, 제 3제국 정부는 악명높은 유대인법들을 많이 만들었다. 유대인남자와 관계를 맺은 독일여자는 행실이 나쁜 여자로 매도당했다. 이미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동화되어 독일인으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조차 예외가 될 수 없었고, 단 한 방울이라도 유대인의 피가 섞인 사람은 모조리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서 축출당하고 쫓겨났다. 예전 글에서 소개한 위의 게오르규의 25시를 보면 유대인으로 오인받은 주인공이 나오는데, 이 책은 생생하게 유대인들의 고통과 당시 독일의 모습, 그리고 전쟁의 무의미성을 보여주고 있다.

 

폴란드를 점령하자마자 히틀러의 충복들은 그동안 히틀러가 주장한 내용에 따라 유대인들을 총살하기도 하고 학살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초기에는 가스실로 끌고가서 조직적으로, 그리고 계획적으로 한 종족을 절멸시키려는 시도는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히틀러는 내심 볼셰비즘을 멸망시키는 것이 어려워진다면, 그야말로 이 세상 모든 악인 유대인들만이라도 안고 가야겠다고 여겼던 것인지, 소련과의 전쟁이 한창 장기화될 전망이 보이자 마침내 최종 해법을 내린다. 히틀러는 일찍이 예언했었다.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그 자신의 예언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조직적인 학살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인류 최악의 사건, 홀로코스트가 일어난다. 후에 강제수용소로 악명을 떨치게 되는 아우슈비츠는 원래 폴란드인들을 모아두는 곳이었다. 거기서 소련군 포로를 상대로 살인실험을 하고 결과를 얻은 후 제 3제국은 1941년 12월 헤움노 강제수용소에서 절멸 사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국면은 한층 더 잔인하게 변하여 1942년 1월 반제회의에서 본격적으로 유대인들을 처리하기로 마음먹는다. 앞서 유대인들을 마다가스카르로 이주시킨다는 계획이 기억나는가? 그러나 그 계획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실현에 옮기기 힘들었다. 그래서 먼저 유대인들을 한 곳에 모으고, 동부로 옮긴 후 노동력으로 쓰려고 했으나 어느 순간 그런 경제논리마저 전쟁의 광기에 휩싸여 완전히 없애야한다, 는 생각이 회의에서 떠돌았다. 사실 노동력으로 유대인들을 부려먹고, 자연적으로 강제노동에 시달려 죽게 만들고, 굶어죽게 만드는 방법은 소련을 어느 정도 장악했을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반제 회의 공문서 자체에서는 명확하게 절멸을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회의장에서는 절멸, 제거와 같은 말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그런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일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프리모 레비, 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서 겨우 몇 자 남겼다. 왼쪽의 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여기서 제 3제국과 히틀러의 분열이 일어난다. 제 3제국은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히틀러의 뜻대로 굴러가는 국가이다. 아래의 각료들은 히틀러의 의중을 짐작하여 히틀러가 원하는대로 움직였으며, 히틀러가 한번 소리치면 그저 꼬리말고 그의 말에 따르기에 바빴다. 그런데 이번 유대인 절멸 사업에서는 히틀러 본인은 앞서 말한 반제회의에도 참석하지 않고 그저 연설에서는 독설을 쏟아내었지만 그 외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 처럼 보였다. 히틀러에게 충성을 바쳤고 그의 치하 제 3제국에서 선전을 맡았던 괴벨스의 기록에서도 히틀러의 역할은 애매모호하였다. 그가 히틀러를 신격화하기 위해서 일부러 히틀러의 과오(로 꼬투리가 잡힐수도 있을 것 같은) 부분은 말을 다듬어 썼을런지도 모르는 일이고, 늘 히틀러의 정치는 '어떤 명령을 내리기보다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는 했었지만 그렇게 유대인에 대해서 증오심을 토하던 히틀러치고는 반응이 미적지근하다는 것을 지적하지는 않을 수 없다. 이는 히틀러와 함께 동석한 자리에서 유대인 살해를 언급해서는 안된다는 불문율로 뒷받침된다. 여기서 제 3제국은 히틀러와 약간씩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 이전까지는 히틀러는 곧 제국이었으나, 이제 그 제국은 히틀러가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어떤 '악' 을 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히틀러의 책임이 줄어든다는 것은 아니다. 이언 커쇼가 히틀러 평전에서 밝혔다시피 대단위 규모의 사업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히틀러의 재가가 있어야만 했고, 그런 대량 절멸 사업이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히틀러가 추후에 보고 받았을리는 없다. 아무리 모른 척 하려고 할지라도 그가 최종으로 결정을 내리는 자였다. 이 분열은 기묘한 결과를 낳았는데 반제회의의 참석자들은 동시에 특이한 생각을 품게 되었다. '우리는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기계 부품과 같은 존재다' 와 같은 생각말이다. 이런 생각들을 서로 품고 있을때에는 아마도 히틀러든 다른 각료든 서로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덜지 않았을까? 적어도 그들이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의 부분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말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한나 아렌트가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에서 악의 평범성, 이라는 개념으로 밝힌 바 있다. 물론 그녀의 저서에 비판은 있을 수 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지독한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 등과 같이 말이다.

 

수많은 암살 시도를 겪은 히틀러는 운이 좋았다, 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다. 그 중 유명한 암살 시도가 두 번 있는데, 첫 번째 암살 시도는 히틀러가 정권을 갓 손에 쥐고 전쟁을 막 일으킬 때 평범한 사람이 그를 제거하려고 폭탄을 설치한 것이었고, 두 번째 암살 시도는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전쟁에서 중상을 입은 슈타우펜베르크가 히틀러를 제거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히틀러를 폭사시키기로 한 것이었다. 만약에 그때 히틀러가 제거되었다면, 그리고 실제로 히틀러는 거의 죽을 뻔 했었다, 역사가 조금은 바뀌었을까? 사실 그 부분은 좀 부정적이다. 암살 시도는 너무 어설펐고, 히틀러 주위의 친위대원들의 광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였었다. 무엇보다도 너무 늦게 암살 시도가 일어났다. 물론 좋은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결국 두 번째 암살에 연루된 사람들은 모두 참혹하게 단두대에서 목이 베이고, 푸주간의 고기처럼 갈고리에 매달렸다.

 

하지만 저렇게 참혹하게 보복할 수 있다는 점은 그만큼 히틀러가 정신적으로 몰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참전으로 인하여 상당한 지원을 받게 된 연합군측은 사방에서 압박을 가했다. 동부 전선, 독일과 소련의 전쟁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지원으로 인하여 트럭을 공급받게 된 소련은 많은 보병 여단을 트럭으로 이동시켰으며 결국 돌파하게 된다. 이미 독일은 동부와 서부 전선 모두를 유지하기에는 힘이 부친 상황이었다. 사막의 여우라 불리던 명장 롬멜은 히틀러 살인 미수 사건에 휘말려 자살을 택할 수 밖에 없었고, 동부 전선의 독일군 원수였던 만슈타인은 히틀러의 명령에 불복종하였다는 이유로 퇴역하고 말았다. 히틀러는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 그리고 그들 뒤에서 버티고 있는 미국의 루스벨트를 상대로 더이상 버틸 힘이 없었고,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1945년 4월, 소련군은 베를린을 점령했고, 산발적인 독일군의 저항에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대응한다. 벙커 안의 히틀러는 자살한다. 그의 곁에는 에바 브라운이 있었고 그 뒤를 괴벨스와 그의 가족들이 따라갔다. 그리고 제 3제국은 조금 더 그 이름만 유지하다가 완전히 멸망하였다.

 

이제 이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글을 마무리 지을 때가 왔다. 사실 이 글에 나온 내용들은 누구든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까지 소개한 책들과 소개하지 않은 책들에 더하여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정보의 세계에서 헤엄치면서 건져올릴 수 있는 내용들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글이 가진 약점은 괴벨스나 괴링과 같은 인물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변명을 하자면 그들의 이야기까지 넣는다면 훨씬 길어질 것이라고 여겨졌었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히틀러라는 인물에 비한다면 제 3제국에 미친 영향의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일단 제외하였다. 이후에 괴벨스의 평전을 읽은 뒤에 나중에 다른 글을 쓸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들과 히틀러의 관계 및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제 3제국의 행방을 더 깊이 알고 싶다면 각종 도서관에서 논문 검색을 한다거나 하는 방법도 분명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내용들보다도 더 무게를 실을 수 있는 부분은 아마 이 부분일 것이다. 파시즘은 정말 위험한 것이다, 라고. 거기에 더하여 전쟁도 정말 끔찍한 결말을 낳는구나, 와 같은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막힐 정도로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이 말 뒤에는 저 많은 내용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에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이렇게 내용과 생각은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독서에 어떤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런 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부연하자면 어차피 내용은 인터넷에서 구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내용에 대해서 찾아야할지 모른다면 아무리 인터넷이 뛰어난 도구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독서는 그 '어떤' 에 해당하는 키워드들을 제공하고, 동시에 우리가 알고 있던 키워드들을 재정의한다. 좀 멋진 말로 하자면, 중심되는 개념들의 외연과 내포를 적절히 조절한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키워드의 재정의는 무엇에 쓰이는가? 그것은 바로 당신과 나의 대화에 쓰인다. 대화를 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지나친 상대주의와 자기중심주의의 늪에 빠질 위험에 처하기에, 그런 늪에 빠지기보다는 차라리 대화를 하는게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 합리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개념이 바르게 사용되어져야 하며, 바로 이 때 다양한 독서를 통해 각인된 키워드들의 재정의가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우리는 쉽지는 않지만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려 노력할 것이고 저런 독재자의 재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p. s. 다음에 쓸 글로 주제를 두 가지 잡아두고 있는데.. 어떤 것이 나을려나 모르겠다. 하나는 고대로 거슬러가서 로마의 오현제에 관련된 글로 생각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주제를 180도 틀어서 과학쪽으로 멸망에 대해서, 그러니깐 공룡은 왜 멸망했는가, 에서 파생되어서.. 위의 네메시스 가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써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워낙 로마에 대한 글은 많기도 하고.. 거기다가 괜한 글을 더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과학계통의 글을 쓰는게 좋으려나?  뭐, 어느 쪽이든 다음 달은 되어야 겨우 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꼭 다음에 저런 주제로 글을 쓸 지는 모르겠다,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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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8-09 13:29   좋아요 0 | URL
명저에 걸맞는 멋진 서평입니다.특히 팩스턴, 게오르규, 레마르크, 아렌트 책까지 함께 소개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제2제국 당시 치욕적인 조약이라고 쓰셨는데 베르사이유 조약을 말씀하시는 듯합니다.그런데 베르사이유 조약은 제2제국 기간이 아니라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연합국과 맺은 조약입니다.알사스 로렌 등 영토를 잃고 무장해제까지 되었지요.당시 바이마르 공화국 수뇌부엔 유대인이 많아 유대인이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흑색선전이 확산되었습니다.이런 분위기를 히틀러가 이용하기도 하고요.제2제국은 1918년 말,1차대전이 끝나고 황제가 네덜란드로 망명하면서 끝납니다.

가연 2012-08-09 22:40   좋아요 0 | URL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부분이 옳은 듯 하네요ㅎㅎ 베르사이유 조약이 치욕적인 조약이었고.. 1918년에 황제가 망명했고 그 뒤에 맺었으니 바이마르 공화국이 맺은 조약으로 보는게 타당하겠지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다만..ㅎㅎ 글 문맥을 수정하기는 좀 그런게, 히틀러의 입장에서는 제 2제국이 조약을 맺었다고 선전하는게 그 제국을 계승했다고 여기는 나라로서는 이득이 되는 셈이라 여기지 않을까요? 그렇기때문에 아마 평전에서도 제 2제국을 겨냥하여 저렇게 선전을 했다고 여겨서 쓰여진 것이 아닐까, 그렇게 여기고 있는데..ㅎㅎ 부족한 점들 일깨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댈러웨이 2012-08-09 21:53   좋아요 0 | URL
가연님, 안녕하세요?

오전에 이 페이퍼를 읽다가 현기증이 일어서 스톱했었습니다. 뒷 얘기 마저 읽을려고 들어왔는데,,, 프린트를 해야겠네요.
안그래도 독일사 18세기 19세기 훑으며서 정보가 하도 난삽해서 고생을 했었고, 파시즘, 히틀러 관련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차였는데 막막했었거든요.

정말 감사해서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서 몇 자 남겨요. 누군가 하시겠다. ^^

p.s. 다음에 올리실 글에 대한 예고편까지 나온 상황인데, 음...저는 개인적으로다가 로마를... 음... 그러니까 이거는 어디까지나 그냥 바람이라는... 아, 지금 벌써 가연님께서 올릴 다음편 읽을 생각에 막 설레기까지 하네요.

가연 2012-08-09 22:4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댈러웨이님..ㅎㅎ

아하하.. 프린트까지 하실 글은 아니라 여겨져서 괜히 부끄럽네요.. 저로서는 책읽다가 충동적으로 쓴 글이라.. 아무래도 제가 저 위의 책들을 이 글을 쓰면서 다 다시 참조하지는 않아서.. 예전에 읽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쓴 부분도 있어서 엄밀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만 유념해주시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서 약간은 뿌듯하네요.

아하하.. 아래 p.s.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의견 수렴용이긴 해요, 풋. 하지만 저의 다른 글들이 그렇듯.. 댓글은.. 푸하하.. 그래서 추신을 끄적거리면서도 댓글 안달릴 것 같아서 그냥 그래서 멋대로 쓰려고 생각중이었답니다.. 그래도 로마 한 표 나왔네요, 풋.

transient-guest 2012-08-15 05:56   좋아요 0 | URL
자세한 리뷰네요. 잘 읽고 갑니다. 2차대전과 히틀러, 그리고 제3제국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책이 '제3제국의 흥망'인데, 요즘은 절판이 된걸로 알고 있어요. 윌리암 샤이러라는 미국기자가 쓴 책인데, 완성도와 몰입도 면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classic입니다. 추천하고 싶네요.

가연 2012-08-16 22:10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음.. ㅎㅎ 그 책을 들어보기는 했는데 읽어보지는 못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