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여담을 몇 자 늘어놓자면, 이전의 프레이져의 황금가지, 는 2개월 넘게 걸려서 겨우 다 읽었는데, 현재 읽는 이언 커쇼의 히틀러 평전은 2일만에 거의 다 읽어가고 있다. 황금가지가 1000페이지 남짓이고, 이언 커쇼의 평전은 다 합쳐서 2000페이지를 훨씬 넘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이긴 하다. 물론 2개월 전에는 황금가지만 읽었던 것도 아니며, 그것만 붙잡고 읽을 여건도 되지 않았으나 히틀러 평전의 경우에는 하루에 거의 열 시간을 꼬박 붙잡고 읽어내려갔으니 단순비교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를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아무리 흥미로운 일을 하더라도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집중은 쉽지 않을 것이기에, 하루에 열 시간을 붙잡고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사실은 그 책이 얼마나 흡입력이 있는지를 말해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이 황금가지, 가 흥미롭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히틀러 평전이 나에게는 좀 더 흥미로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글쎄, 황금가지, 를 축약본이 아닌 완전본으로 읽는다면 또 어떨까? 그러나 당장은 히틀러평전을 더 우위에 놓고 싶다. 그렇기에 이렇게 짧은, 사실 제대로 된 3제국에 관한 책은 몇 권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글로 제 3제국에 대하여 간단히 남길 마음이 든 것이기도 하다.
제 3제국(1933~1945), 그러니깐 제 2차 세계 대전(1939~1945) 당시의 독일은 히틀러라는 인물에서부터 시작한다. 히틀러는 정말 복잡한 인물이다. 물론 그를 한 단어로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악마, 광인, 순수한 악, 자살욕구자. 위의 어떠한 단어라도 그에게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순수한 악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을 파괴하고 그와 동시에 세상 모든 것을 파멸로 몰아넣고 싶어하는 악마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가 복잡해보이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규정하는 것은 그 어떤 생산적인 지식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히틀러의 경우에 이르면 이렇게 규정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그의 유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이 세상에 파시즘, 그 중에서도 특히 나치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라는 것을 널리 알린 것 정도가 될 것이다. 당신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느쪽이든 마음에 든 곳에 가서 서도 좋다. 하지만 파시즘만은 당신의 이념으로 택하지 말라.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문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 파시즘을 택하지 않겠다. 그런데 파시즘이 뭔가? 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사실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파시즘을 명확하게 정의하기란 쉽지 않고, 그렇기에 우리는 두루뭉술하고 제 2차세계대전 당시의 베니토 무솔리니, 아돌프 히틀러 그리고 일본의 제국주의 정도를 파시즘으로 묶어서 살펴보고 있다. 물론 스페인 내전에서 결국 권력을 잡은 프랑코의 경우에도 파시즘으로 그 행동원리를 설명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파시즘에서 가장 크게 족적을 남긴 나라는 이탈리아, 독일, 일본이 될 것이다. 위의 세 나라를 중심으로 공통점을 묶는다면 '국가의 절대권력' 정도가 보일 것이다. 개인은 그들의 뜻은 버리고 오직 국가와 그 국가를 지배하는 카리스마적인 지배자의 손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 왼쪽의 책은 파시즘 연구서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볼 수 있는 책인데, 이 책에서는 전시 이탈리아와 독일을 잘 분석하여 파시즘의 정의를 내려놓고 있다. 파시즘은 물론 전체주의이다. 하지만 전체주의가 꼭 파시즘적인 양상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파시즘이 되려면 과거의 영광으로의 회귀, 즉 민족주의자들의 존재가 필수 불가결하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를 지배하면서 로마 제국이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일본의 경우에는 과거에는 허울뿐인 존재였던 천황의 신성 획득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복잡한 사정이 있다.) 그렇다면 독일의 경우에는 어떨까?
앞서 히틀러를 언급하면서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독일을 제 3제국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제 3제국이 있다면 제 1과 제 2의 제국도 있을 것이다. 히틀러는 자신이 집권하던 때의 독일을 제 1제국과 제 2제국을 계승한다고 여겼기에 이렇게 명칭을 붙인 것이다. 제 1제국은 신성로마제국(800~1806)을 뜻하며, 제 2제국은 독일 제국(1871~1918)을 일컫는다. 간단하게 살펴보면, 제 1제국이었던 신성로마제국은 샤를마뉴 대제에서부터 그 연원을 시작한다. 샤를마뉴 대제는 난쟁이 피핀, 피핀 3세의 맏아들이었는데, 피핀 3세는 롬바르드 족의 침공에서 로마를 보호한 대가로 교황에게서 자신의 아들들, 샤를마뉴와 카를로만과 함께 축복을 받는다. (세례 또는 기름붓기, 라는 말이 많다.) 이를 지켜보면서 샤를마뉴 대제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교회권력을 인정하고 자신을 왕으로 인정한 교회를 위해서 그리스도교를 퍼뜨리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그는 교회로부터 서로마제국의 직전을 계승받았다고 인정을 받은 뒤 그 황제로 등극한다. 바로 이것이 신성로마제국의 시작이다. 샤를마뉴 대제는 그의 전설과 12기사에 대한 일화로도 유명한데, 위의 책이 바로 그 12기사와 황제에 얽힌 전설을 다룬 책이다. 아마도 12기사의 수좌인 롤랑(혹은 오를란도)의 노래, 가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위의 롤랑전, 이 그 롤랑의 노래를 다룬 책이다. 그런데 사실 샤를마뉴 대제를 그 연원으로 둔다고 하여도 실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말은 1200년대는 넘어야 쓰이기 시작했다. 실제로는 샤를마뉴 대제 치세하의 왕국은 프랑크 왕국이라고 불렸으며 샤를마뉴 대제의 죽음 뒤에 왕국이 분열되었다. 각각 동프랑크, 서프랑크로 분열되었으며 독일과 프랑스의 전신이 된다. 그 뒤에 동프랑크 왕국의 오토 1세가 본격적으로 신성로마제국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 제국은 카노사의 굴육과 아비뇽의 유수를 겪으며 교황권과 부딪히기도 했고 결국 사코 디 로마Sacco di Roma 를 통하여 그 힘이 정점에 도달하여 결국 샤를마뉴 대제 이후 몇 백년이나 지나서 제국의 이름으로 새로 쓰여졌다.
제 2제국은 1871년에서 1918년의 독일을 일컫는데, 그 씨앗은 이미 프로이센의 군주였던 프리드리히 대왕에서부터 뿌려져 있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1740~1786까지 프로이센을 지배했었는데, 신성로마제국을 찢는데 일조를 했었다.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신성로마제국은 무너지고, 모두가 알다시피 그의 앞을 가로막는 나라는 모두 패배하였으나, 아무리 많은 승리를 거두더라도 단 한 번 패배하면 그것으로 승부가 결정나는 경우가 있으니, 나폴레옹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나폴레옹이 휩쓸고 나닐때,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이 무너진 뒤의 독일은 말그대로 지명을 가리키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폴레옹이 쓰러진 뒤에는 독일 연방국들 중에서 기존에 프리드리히 대왕에서부터 착실하게 기반을 다져온 프로이센이 맹주로 대두되게 된다. 독일이 본격적으로 하나의 독일 제국을 이루게 된 것에는 프랑스 혁명의 여파가 컸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하여 독일에서는 3월 혁명이 일어나고, 프랑스는 공화정이 되었지만 독일은 당시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혁명을 진압하였다. 이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빌헬름 1세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되고, 여기서 독일 제국의 대들보,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의 패권 경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하게 만들었고, 이후 프랑스마저 꺾고 독일 연방을 하나로 묶어 독일 제국, 제 2제국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빌헬름 1세는 초대 독일 제국 황제가 된다. 그리고 그 팽창된 힘은 유럽 전역의 열기와 맞물려, 빌헬름 2세에 이르러 제 1차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으로 뿜어져 나오게 된다.
이상을 살펴보면, 제 3 제국이라는 명칭을 붙인 이유는 히틀러가 제 1제국과 제 2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공은 성공대로, 그리고 실패는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실제로 히틀러의 평전을 읽어보면 히틀러는 강박적으로 이야기한다. 제 2제국 당시에 우리 독일이 얼마나 치욕적인 조약을 맺었던가,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라고 말이다. (제 1차 세계 대전은 독일의 항복으로 끝이 나고,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가 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제 3제국은 그 근본부터 파시즘의 요소를 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 3제국이 다른 제국들과 다른 것은, 제 3제국은 히틀러 자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점이다. 히틀러 이외의 다른 의견을 내는 경우는 없었다. 히틀러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움직였다.
이제 이야기는 아돌프 히틀러로 넘어간다. 히틀러 평전에서 이언 커쇼는 히틀러에 대한 혐오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히틀러가 저지른 죄는 그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언 커쇼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저 악인이다, 나쁜 행동이다, 라고만 규정한다면 거기에서 더 이상 무엇을 이끌어 낼 수 없노라고. 그렇기에 그는 어린 시절로부터 히틀러를 추적하여 그의 성장과정과 그가 어떻게 권력을 잡게 되는지를 1권에서 그려낸다. 히틀러는 제 1차 세계 대전에도 참여하여 무공훈장을 받는데, 전쟁을 거치며 그는 그 자신의 행동을 평생 규정할 두 가지 기준을 만들게 된다. 반유대주의와 볼셰비즘에 대한 무한한 증오가 바로 그것이다. 도대체 왜 히틀러가 볼셰비즘과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뛰어난 유대인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학교에 다녔기에 그에 대한 반감으로 유대인들을 증오하게 되었다 등은 흥미롭지만 거의 음모론 수준이고, 사실은 크게 자료가 없는 실정이다. 왼쪽의 책은 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고 있는 책인데, 사실 책 자체는 흥미롭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학창시절의 히틀러는 어느 것에도 흥미가 없고 공상만 하던 문제 학생이었고, 그다지 성적도 좋지 못했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일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히틀러는 선생들에게 배울 것이 없기 때문에 저항한 것이다, 라고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두 사람의 관계를 다룬 저 책은 한 번쯤은 눈여겨볼만하다. 그 외에 히틀러가 가지고 있던 볼셰비즘에 대한 증오는 이후 사상적으로 접하게 된 생존공간의 문제, 와 결부되어 소련을 공격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히틀러는 항상 외부에 적이 존재한다고 상정하였다. 마치 사춘기의 학생들이 다른 사람은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을 안쓰는데도 그들이 자신을 다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여 괜히 돌출 행동을 벌이거나 혹은 특이한 일을 벌이는 것 처럼 말이다. 시선으로만 남았다면 다른 사춘기의 청소년들처럼 털고 일어났을테지만, 그 '시선' 은 이윽고 적의 시선, 으로 변하였고, 그 때문에 진실로 자기 말고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게 되버린 것이다. 그로 인하여 히틀러는 점차 자기파멸적인 행보를 거듭한다. 말하자면 '자살 후보자' 인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알 수 없는 울분에 휩싸여 거리를 방황하던 그는 정치판에 뛰어들게 되고, 거기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다. 연설능력. 자세히 들어보면 별다른 내용이 없이 그저 감정에 호소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감정은 다른 사람을 울렸고, 이윽고 수많은 군중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맥주홀을 전전하면서 연설하던 그는 중앙의 나치당 정계에 제대로 진출하게 되고, 참신함을 내세워 점차 영향력을 늘리게 된다. 그런데 사실 히틀러는 고집강한 사춘기 아동에 지나지 않았고, 자신의 손을 더럽히기를 정말 싫어하여 아무리 중요한 결정이라도 최대한 미루다가 더이상 피할 수 없을때 확정지었다. 그의 고집은 정말 끔찍하여, 아무리 당론이 분열되고 양보를 해달라고 부탁이 오더라도 자신의 독보적인 위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눈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미 개인의 권력 집중 경향이 드러났을 것이다. 자신만 무조건 옳으니 다른 사람은 모두 나의 말을 따라야만 한다는 바로 그런 경향말이다. 그러나 그의 고집은 대체로 그를, 적어도 그 자신한테는, 옳은 방향으로 이끌었고, 아무리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려도 결국 그는 항상 이득을 보았다.
아무리 중앙이라고 할지라도 당시 정계 상황에서는 소수당에다가 주변부에 지나지 않았던 나치당이 권력을 잡게 된 것은 히틀러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그가 미칠듯한 운이 항상 따라주었기에 계속 성공할수 있었다, 라고 분석만 내리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기분이 든다. 빠진 것이 있다. 바로 당시의 독일 상황이었다.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물가 문제, 정치 문제 등 수많은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 사회 상황은 히틀러 자신에게는 유리하게 돌아갔고, 그렇기에 앞서 말한 것 처럼 그의 선동이 먹힌 것이었다. 히틀러의 연설수법을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 참전 용사라는 것을 이끌어 내어 민중의 공감을 얻고, 외부의 적을 상정하여, 유대인들과 볼셰비즘을 열심히 공격한 뒤에, 그들에게 죄가 있고 우리에게는 죄가 없다, 라고 말하며 인플레이션과 정치적 혼돈에 힘들어하던 민중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했었다. 이는 다시금 히틀러의 성공을 가져오게 되고, 성공은 다시금 성공을 낳게 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결국 히틀러가 집권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물론 자세하게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정계를 붙잡기 위해서 더 많은 계교를 부렸지만, 그 기초에는 저런 것이 깔려있다.
하지만 Hubris라는 단어가 있다. 히틀러 평전의 1권의 부제이기도 한 Hubris는 토인비가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신격화함으로써 오류에 빠지게 되는 현상을 지칭'할 때 사용한 단어인데, 원래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벨레로폰을 아는가? 천마 페가수스의 주인이던 영웅말이다. 그러나 그는 페가수스를 타고 신에게 도달하려고 하다가 결국 몰락하고 만다. 태양신 아폴로의 아들, 파에톤은 어떤가? 아폴로의 태양전차를 몰다가 제어를 하지 못하고 결국 제우스의 벼락에 징벌당한다. 신은 항상 오만에 빠진 자를 '벌한다' 이 징벌은 다른 신들조차 어쩌지 못하는 복수의 여신Nemesis의 힘이고, 그녀의 손길은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관계없어 보이는 이야기이지만, 지질학에서 고대의 5번의 멸종 원인을 조사하다가 한 가지 가설로 내세운 것이 있는데, 바로 네메시스Nemesis라는 이름이 붙은 가설이다. 혜성들의 기원으로 알려진 오르트 구름은 성운과 먼지에 가려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으며, 현대 과학으로도 아직 엄밀하게 어떤 구조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안에 행성이 하나나 두개 더 있어도 모를 일이라는 말이다. 지질학자들은 고대의 5번의 대멸종이 동일한 주기로 일어난다는 점에 착안하여 오르트 구름에 태양의 쌍둥이 언니로 짐작되는 어느 별이 있으리라고 가설을 세웠다. 그 별은 갈색왜성이나 적색거성의 형태로 태양과 쌍성을 이루며, 그 별의 공전으로 인하여 오르트 구름에 교란이 생겨 지구에 혜성과 운석을 쏟아붓게 되어 멸망이 일어난다. 그 별의 이름은 징벌자 혹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이다. 이 가설이 옳은 가설일지는 모른다. 최근에는 아마도 오르트 구름 내부에 10번째 행성, 그러니깐 퇴출된 명왕성 말고 다른 행성이 있을 것 같다, 라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옳다고 가정하다면, 번성Hubris 뒤에는 멸망Nemesis이 따른다. 비록 지질학에서는 번성과 멸망은 큰 인과관계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저 히틀러에게는 조금은 인과관계가 있었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징벌을 맞은 사람들처럼.
결국 히틀러는 팽창 야욕을 보이기 시작한다. 주위의 땅들을 야바위로 야금야금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그의 목표가 된 것은 오스트리아였고, 체코도 곧 손아귀에 넣게 된다. 그가 구사한 전술은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이었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바로 그 전술말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내심 전쟁을 원했다. 이미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야욕에 빠진 그의 마음 속에서는 오직 정복 전쟁만이 자신의 갈망을 채워줄 유일한 방법이었다. 정복 전쟁을 통해서 소련을 집어삼키고, 생존공간을 확보한다. 볼셰비즘은 세상에 뿌리를 뽑고, 유대인들은 황무지라도 개간하며 살라고 내팽겨친다. 볼셰비즘에 젖은 유대인들은 그야말로 악마니 주저없이 만나면 목을 벤다. 주위 유럽 국가들은 어느 정도 땅을 떼주면 평화를 해치지 않겠지, 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 모두. 영국의 수상이었던 체임벌린은 뮌헨 조약을 맺어, 체코 땅을 떼주면 더이상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조약까지도 맺었지만 그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이었고, 이윽고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하고 만다. 사실 히틀러의 입장에서도 침공은 당연한 선택이기도 했다. 비록 이전의 바이마르 공화국에 비해서는 상황이 발전했지만 대부분 군수물품의 생산에 물자가 투여된터라 사회적 위기를 맞을 확률이 어느 때보다도 높았고, 히틀러가 지배하던 제 3제국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내각이라던가 조직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에 각 부처가 핏대를 올리며 평행선인 대립각을 세울 뿐이었다. 히틀러는 그저 방관만 하다가 목소리가 커서 이긴 사람의 말을 듣고 대충 서명해주기에 바빴다. 그런 그에게 폴란드는 먹음직스러운 땅이었던 것이었다. 파죽지세로 폴란드를 점령한 히틀러는 기세를 이어 프랑스마저 침공하여 무너뜨린다.
그러나 자신의 무오류를 믿고 점차 과대망상에 빠지게 된Hubris 히틀러는 징벌을 맞게 된다. 하지만 어쩌면 그 징벌은 너무 늦게 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게 징벌이 작용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네메시스 가설은 번성과 멸망 사이에 별다른 인과관계가 없다. 지구에서 아무리 번성을 하든 말든 정해진 주기가 되면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져내릴 것이다. 히틀러가 멸망할 시기가 점차 다가왔다. 무너진 폴란드는 유산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유산이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크게 활약한 조종사들이며, 그 외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독일의 암호 체계를 연구한 결과를 영국에 넘기기도 했다. 독일군의 U보트는 연합군을 궁지에 몰아넣었고, 어쩌면 독일군이 좀더 강력해질 시간이 있었다면 영국을 봉쇄시켜 무너뜨렸지도 모르겠다고 여기게 만든 무기이다. 물론 미국이 참전하게 된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그 U보트를 다룬 작품들이 있다. 왼쪽의 특전 U보트, 는 상당히 뛰어난 수작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이야기할 것은 오른쪽의 영화와 관련된 것인데, U-571의 내용은 독일군의 암호를 획득하려고 그들의 U보트를 잡아서 신형 에니그마(당시 독일의 암호기기)를 분석하려고 좌충우돌한다고 요약할수 있겠다. 이는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이야기인데, 영국은 엘런 튜링(전산학에서 업적을 남긴)과 폴란드에서 획득한 독일군의 암호를 연구한 팀의 합작으로 독일의 암호를 해석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군의 U보트에게 공격을 심하게 당하면서도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의 암호기기를 영국이 해독할 수 있었다는 것은 독일로서는 막대한 손해를 입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영국은 독일이 어떤 작전으로 나올지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도 독일의 패인으로 작용한다.
잠깐 영국으로 눈을 돌리면, 영국은 체임벌린이 물러나고 윈스턴 처칠, 히틀러의 숙명의 라이벌이 수상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사실 처칠은 갓 자리에 오르자마자 위기에 빠졌다. 연합군, 그러니깐 영국군과 프랑스 연합군이 독일군에게 쫓겨 됭케르크라는 항구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그 됭케르크에서 연합군이 포위당하여 전멸했다면 처칠은 아마 전쟁반대파들에 의하여 실각당하고 독일과 조약을 맺었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히틀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군대를 멈추게 한다. 그렇게 귀중한 24시간이 주어졌다. 그동안 영국군은 모을 수 있는 모든 함선을 모아 겨우 도망쳤고, 하루가 흐르고 다시 추격에 나선 히틀러군은 영국군의 주력이 도망치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후 프랑스가 무너지고 이탈리아가 참전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독일은 영국과의 전쟁을 개시한다. 원래 히틀러는 끝까지 영국을 회유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다시피 반 나치의 거점이 된 영국이, 그리고 호전적인 처칠이 수상 자리에 앉아있는 이상 그의 회유는 먹히지 않았고 결국 공중전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처칠도 히틀러 못지 않게 고집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영국 상공에서 폭격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집무실에서 태연하게 집무를 보면서 전쟁을 지휘했다. 갑작스러운 폭격에 좀 당황했던 영국군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중전에서 독일군을 압도하고, 승리를 거둔다. 왼쪽의 2차세계대전사, 는 내가 끝까지 읽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에 대하여 심도있는 분석을 원한다면 저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여겨진다.
히틀러는 여기서 이제 결정적인 패인을 저지른다. 영국군과의 전쟁도 마무리짓지 못하고 고착상태에 빠진 채 소련과의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사실 스탈린은 독일이 침략해오기 전에 이미 그들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기는 했었다. 영국이 독일의 암호를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도 고집이 센 것은 마찬가지라서 처칠이 은밀히 정보를 알려주기는 했지만 그 정보를 무시하고 '독일이 쳐들어올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 스탈린의 숙청으로 인하여 수많은 인재가 희생이 되었으니, 독일군이 갑자기 쳐들어왔을때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독일군은 수세에 몰리게 된다. 결국 침공 하러 들어가게 되면 시가전을 벌일 수 밖에 없는데, 이는 독일군의 기동력을 심각하게 깎아먹어서 도리어 발이 묶이게 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위가 닥쳐 수많은 기계를 마비시켰다. 이는 기계화된 독일군 전력에 악영향을 미쳤고 결국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그리고 전황은 스탈린그라드에서 극적으로 변했다.
동쪽으로 너무 깊이 들어간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대반격을 맞이한다. 그동안 산발적인 반격과 추위에 의하여 많은 사상자, 부상병이 있었고, 사기도 저하될때로 저하된 상태였다. 왼쪽의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에 그런 장면이 잘 나와있다. 왼쪽의 작품이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소련에게 밀리며 패색이 짙던 독일군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전쟁은, 그것도 권력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전쟁은 정말 무의미하다, 라는 것이 두드러지게 그려진다. 3주간의 짧은 사랑, 겨우 결혼에 이르지만 다시 전장에 나가게 되는 주인공. 그는 이윽고 무의미한 전쟁에서 무의미한 죽음을 맞이한다. 당시 스탈린그라드에서 전투를 벌이던 독일군과 소련군의 모습을 이보다 더 잘 그려낼 수는 없을 것이다. 탱크도 무력화된 스탈린그라드에서 명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만슈타인의 작전도 실패로 돌아간 뒤 결과적으로 갇히게 된 독일군은 결국 지원도 무위로 돌아간 채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쓰러지면서 히틀러를 원망한 사람도 있었고 히틀러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 사람도 있었으며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고, 종말에서 끝까지 벗어나려고 발버둥친 사람도 있었다. 히틀러는 희생된 장병들을 영웅적 희생으로 포장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당시 독일 6사단을 이끌던 장성인 파울루스의 투항으로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물론 히틀러는 파울루스가 스탈린그라드에서 항복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노발대발하였다. 그는 파울루스가 자결하기를 바랐지만 파울루스는 끝끝내 자결하지 않았다.
스탈린그라드에서만 극적으로 전황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일본군을 쫓아내었고 이집트에서는 몽고메리 장군이 사막의 여우로 불렸던 롬멜을 격퇴시켰다. 모든 징조가 독일의 패색을 나타내었다. 점차 몰리는 심정이 된 히틀러는 마침내 조직적인 최종 해법을 지시한다. 이미 폴란드에서 수많은 학살을 거리낌없이 저질렀던 독일군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이전에 비하여 더욱더 감정이 많이 무뎌져가기 시작했다. 제 3제국 초기만 해도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아예 조직적으로 절멸시킬 생각은 없었다, 고 여겨진다. 대량학살을 방조한다면 모를까, 나서서 유대인들을 가스실에 몰아넣으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물론 초기에도 유대인들은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하였으며, 처음에는 강제로 게토에서만 거주하게 하다가, 어느 순간 아예 나라 밖으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원래 히틀러의 계획은 마다가스카르 섬에 유대인들을 몰아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계획은 흐지부지되었고, 다른 곳에 관심을 돌렸다. 히틀러가 방조하는 사이 독일 정부는 꾸준히 유대인들을 박해했다. 그들의 재산은 모조리 나라에게 압수를 당하고, 제 3제국 정부는 악명높은 유대인법들을 많이 만들었다. 유대인남자와 관계를 맺은 독일여자는 행실이 나쁜 여자로 매도당했다. 이미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동화되어 독일인으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조차 예외가 될 수 없었고, 단 한 방울이라도 유대인의 피가 섞인 사람은 모조리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서 축출당하고 쫓겨났다. 예전 글에서 소개한 위의 게오르규의 25시를 보면 유대인으로 오인받은 주인공이 나오는데, 이 책은 생생하게 유대인들의 고통과 당시 독일의 모습, 그리고 전쟁의 무의미성을 보여주고 있다.
폴란드를 점령하자마자 히틀러의 충복들은 그동안 히틀러가 주장한 내용에 따라 유대인들을 총살하기도 하고 학살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초기에는 가스실로 끌고가서 조직적으로, 그리고 계획적으로 한 종족을 절멸시키려는 시도는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히틀러는 내심 볼셰비즘을 멸망시키는 것이 어려워진다면, 그야말로 이 세상 모든 악인 유대인들만이라도 안고 가야겠다고 여겼던 것인지, 소련과의 전쟁이 한창 장기화될 전망이 보이자 마침내 최종 해법을 내린다. 히틀러는 일찍이 예언했었다.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그 자신의 예언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조직적인 학살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인류 최악의 사건, 홀로코스트가 일어난다. 후에 강제수용소로 악명을 떨치게 되는 아우슈비츠는 원래 폴란드인들을 모아두는 곳이었다. 거기서 소련군 포로를 상대로 살인실험을 하고 결과를 얻은 후 제 3제국은 1941년 12월 헤움노 강제수용소에서 절멸 사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국면은 한층 더 잔인하게 변하여 1942년 1월 반제회의에서 본격적으로 유대인들을 처리하기로 마음먹는다. 앞서 유대인들을 마다가스카르로 이주시킨다는 계획이 기억나는가? 그러나 그 계획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실현에 옮기기 힘들었다. 그래서 먼저 유대인들을 한 곳에 모으고, 동부로 옮긴 후 노동력으로 쓰려고 했으나 어느 순간 그런 경제논리마저 전쟁의 광기에 휩싸여 완전히 없애야한다, 는 생각이 회의에서 떠돌았다. 사실 노동력으로 유대인들을 부려먹고, 자연적으로 강제노동에 시달려 죽게 만들고, 굶어죽게 만드는 방법은 소련을 어느 정도 장악했을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반제 회의 공문서 자체에서는 명확하게 절멸을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회의장에서는 절멸, 제거와 같은 말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그런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일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프리모 레비, 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서 겨우 몇 자 남겼다. 왼쪽의 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여기서 제 3제국과 히틀러의 분열이 일어난다. 제 3제국은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히틀러의 뜻대로 굴러가는 국가이다. 아래의 각료들은 히틀러의 의중을 짐작하여 히틀러가 원하는대로 움직였으며, 히틀러가 한번 소리치면 그저 꼬리말고 그의 말에 따르기에 바빴다. 그런데 이번 유대인 절멸 사업에서는 히틀러 본인은 앞서 말한 반제회의에도 참석하지 않고 그저 연설에서는 독설을 쏟아내었지만 그 외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 처럼 보였다. 히틀러에게 충성을 바쳤고 그의 치하 제 3제국에서 선전을 맡았던 괴벨스의 기록에서도 히틀러의 역할은 애매모호하였다. 그가 히틀러를 신격화하기 위해서 일부러 히틀러의 과오(로 꼬투리가 잡힐수도 있을 것 같은) 부분은 말을 다듬어 썼을런지도 모르는 일이고, 늘 히틀러의 정치는 '어떤 명령을 내리기보다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는 했었지만 그렇게 유대인에 대해서 증오심을 토하던 히틀러치고는 반응이 미적지근하다는 것을 지적하지는 않을 수 없다. 이는 히틀러와 함께 동석한 자리에서 유대인 살해를 언급해서는 안된다는 불문율로 뒷받침된다. 여기서 제 3제국은 히틀러와 약간씩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 이전까지는 히틀러는 곧 제국이었으나, 이제 그 제국은 히틀러가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어떤 '악' 을 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히틀러의 책임이 줄어든다는 것은 아니다. 이언 커쇼가 히틀러 평전에서 밝혔다시피 대단위 규모의 사업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히틀러의 재가가 있어야만 했고, 그런 대량 절멸 사업이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히틀러가 추후에 보고 받았을리는 없다. 아무리 모른 척 하려고 할지라도 그가 최종으로 결정을 내리는 자였다. 이 분열은 기묘한 결과를 낳았는데 반제회의의 참석자들은 동시에 특이한 생각을 품게 되었다. '우리는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기계 부품과 같은 존재다' 와 같은 생각말이다. 이런 생각들을 서로 품고 있을때에는 아마도 히틀러든 다른 각료든 서로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덜지 않았을까? 적어도 그들이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의 부분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말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한나 아렌트가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에서 악의 평범성, 이라는 개념으로 밝힌 바 있다. 물론 그녀의 저서에 비판은 있을 수 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지독한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 등과 같이 말이다.
수많은 암살 시도를 겪은 히틀러는 운이 좋았다, 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다. 그 중 유명한 암살 시도가 두 번 있는데, 첫 번째 암살 시도는 히틀러가 정권을 갓 손에 쥐고 전쟁을 막 일으킬 때 평범한 사람이 그를 제거하려고 폭탄을 설치한 것이었고, 두 번째 암살 시도는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전쟁에서 중상을 입은 슈타우펜베르크가 히틀러를 제거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히틀러를 폭사시키기로 한 것이었다. 만약에 그때 히틀러가 제거되었다면, 그리고 실제로 히틀러는 거의 죽을 뻔 했었다, 역사가 조금은 바뀌었을까? 사실 그 부분은 좀 부정적이다. 암살 시도는 너무 어설펐고, 히틀러 주위의 친위대원들의 광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였었다. 무엇보다도 너무 늦게 암살 시도가 일어났다. 물론 좋은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결국 두 번째 암살에 연루된 사람들은 모두 참혹하게 단두대에서 목이 베이고, 푸주간의 고기처럼 갈고리에 매달렸다.
하지만 저렇게 참혹하게 보복할 수 있다는 점은 그만큼 히틀러가 정신적으로 몰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참전으로 인하여 상당한 지원을 받게 된 연합군측은 사방에서 압박을 가했다. 동부 전선, 독일과 소련의 전쟁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지원으로 인하여 트럭을 공급받게 된 소련은 많은 보병 여단을 트럭으로 이동시켰으며 결국 돌파하게 된다. 이미 독일은 동부와 서부 전선 모두를 유지하기에는 힘이 부친 상황이었다. 사막의 여우라 불리던 명장 롬멜은 히틀러 살인 미수 사건에 휘말려 자살을 택할 수 밖에 없었고, 동부 전선의 독일군 원수였던 만슈타인은 히틀러의 명령에 불복종하였다는 이유로 퇴역하고 말았다. 히틀러는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 그리고 그들 뒤에서 버티고 있는 미국의 루스벨트를 상대로 더이상 버틸 힘이 없었고,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1945년 4월, 소련군은 베를린을 점령했고, 산발적인 독일군의 저항에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대응한다. 벙커 안의 히틀러는 자살한다. 그의 곁에는 에바 브라운이 있었고 그 뒤를 괴벨스와 그의 가족들이 따라갔다. 그리고 제 3제국은 조금 더 그 이름만 유지하다가 완전히 멸망하였다.
이제 이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글을 마무리 지을 때가 왔다. 사실 이 글에 나온 내용들은 누구든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까지 소개한 책들과 소개하지 않은 책들에 더하여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정보의 세계에서 헤엄치면서 건져올릴 수 있는 내용들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글이 가진 약점은 괴벨스나 괴링과 같은 인물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변명을 하자면 그들의 이야기까지 넣는다면 훨씬 길어질 것이라고 여겨졌었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히틀러라는 인물에 비한다면 제 3제국에 미친 영향의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일단 제외하였다. 이후에 괴벨스의 평전을 읽은 뒤에 나중에 다른 글을 쓸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들과 히틀러의 관계 및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제 3제국의 행방을 더 깊이 알고 싶다면 각종 도서관에서 논문 검색을 한다거나 하는 방법도 분명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내용들보다도 더 무게를 실을 수 있는 부분은 아마 이 부분일 것이다. 파시즘은 정말 위험한 것이다, 라고. 거기에 더하여 전쟁도 정말 끔찍한 결말을 낳는구나, 와 같은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막힐 정도로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이 말 뒤에는 저 많은 내용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에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이렇게 내용과 생각은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독서에 어떤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런 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부연하자면 어차피 내용은 인터넷에서 구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내용에 대해서 찾아야할지 모른다면 아무리 인터넷이 뛰어난 도구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독서는 그 '어떤' 에 해당하는 키워드들을 제공하고, 동시에 우리가 알고 있던 키워드들을 재정의한다. 좀 멋진 말로 하자면, 중심되는 개념들의 외연과 내포를 적절히 조절한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키워드의 재정의는 무엇에 쓰이는가? 그것은 바로 당신과 나의 대화에 쓰인다. 대화를 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지나친 상대주의와 자기중심주의의 늪에 빠질 위험에 처하기에, 그런 늪에 빠지기보다는 차라리 대화를 하는게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 합리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개념이 바르게 사용되어져야 하며, 바로 이 때 다양한 독서를 통해 각인된 키워드들의 재정의가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우리는 쉽지는 않지만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려 노력할 것이고 저런 독재자의 재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p. s. 다음에 쓸 글로 주제를 두 가지 잡아두고 있는데.. 어떤 것이 나을려나 모르겠다. 하나는 고대로 거슬러가서 로마의 오현제에 관련된 글로 생각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주제를 180도 틀어서 과학쪽으로 멸망에 대해서, 그러니깐 공룡은 왜 멸망했는가, 에서 파생되어서.. 위의 네메시스 가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써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워낙 로마에 대한 글은 많기도 하고.. 거기다가 괜한 글을 더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과학계통의 글을 쓰는게 좋으려나? 뭐, 어느 쪽이든 다음 달은 되어야 겨우 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꼭 다음에 저런 주제로 글을 쓸 지는 모르겠다, 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