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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 어느새 인간관계가 고장난 사람들에 관하여
맥스 디킨스 지음, 이경태 옮김 / 창비 / 2025년 1월
평점 :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는 영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맥스 디킨스가 결혼을 하기 위해 신랑 들러리를 찾다가, 본인에게 신랑 들러리를 할만한 친밀한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남성 간의 우정에 대해 탐구하는 에세이다.
저자는 본인이 경험한 남성들의 우정과 문화가 왜 이러한 양상을 띄는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꽤나 다양한 전문가와 관련자들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우정과 관련한 서비스(?)들도 체험해 보면서 궁금증을 풀어나간다. 저자의 자기반성 능력과 메타인지 통찰력이 상당하여 읽으며 무릎을 자꾸 탁 치게 되었다.
이론서는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은 상당히 뼈가 있다. 책은 결국 남자아이들이 유아기-아동기를 거쳐 청소년기까지 지속적인 양육과 교육을 받으며 억압-소외-무감각의 3단계로 감정을 무디게 하는 연습을 하면서 애착에서 멀어지는 방식으로 사회화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특성은 사회에서 소위말하는 '성공했다'라고 평가되는 지위에 오르기에 적절하다. 다시 말하면, 남자아이들은 자신과 타인을 정서적, 심리적으로 분리하면서 성취를 지향하기에 더 유리한 방식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그 결과로 여자아이들에 비해 깊은 유대관계를 맺지 못하고, 피상적이며 유머로 점철된, 보다 얕은 인간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의 우정은 대화(예: 카페나 맛집에서의 만남)를 중심으로 흘러간다면 남성의 우정은 행위(예: 축구와 같은 여가 활동)를 중심으로 이뤄지게 된다.
이러한 책의 내용은 내가 그동안 '젠더'와 관련하여 가졌던 많은 의문을 해소하게 했다. 이를테면 얼마 전 읽기 시작한 <불안 세대>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나 어릴적부터 스마트폰과 SNS에 노출된 아이들은 그 전의 세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의 불안 증세를 겪는다. 특히 여자 아이들이 불안 증세를 보일 확률이 훨씬 더 높은데, 그 이유로 다양한 복합적인 젠더 요소와 맥락이 자리하겠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양육과 교육 방식이 성별 격차를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라 유추해볼 수 있다.
동시에 공감되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특히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그리고 이전과 달리 여가의 많은 부분을 타인이 아닌 혼자서 스마트폰이나 TV를 보며 보내게 된 현대인들에게 "관계"란 무엇일까, "우정"이란 어떤 것일까 고찰하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
책은 이렇듯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주요 문제의 핵심을 통과하고 있으며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영국식 블랙 유머를 통해 분위기를 중화시킨다. 덕분에 읽는 데 부담이 없었던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 생각한다. 웃겨서 낄낄대며 읽었다.
아울러 책을 읽을 때 늘 표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선 이 책의 표지가 썩 마음에 든다. 통통 튀는 색감과 함께 멀리서도 제목이 잘 보이는 폰트가 꽤나 볼드하면서도, '어느새 인간관계가 고장난 사람들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한켠에 넣어 볼드함을 살짝 중화했다. 원문은 "Billy No-Mates"로, "친구가 없는 빌리"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더 잘 읽힐 수 있도록 바꾼 제목인 듯 하며 표지와 적절히 어우러져서 마음에 든다. 표지 또한 원서 표지보다 우리나라 번역판 표지가 미감이 백배는 더 좋다.
남성들이 실용서를 많이 읽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지하철에서 더 열심히 읽었다. 실용서의 얼굴로 위장한 이 책이 우리 사회의 더 많은 이들에게 가닿길 바란다.
*도서 제공: 창비
토요일 아침에 내가 조깅을 한답시고 나가서 병든 여우처럼 발을 끌며 걸을 때면, 자전거 동호회 부류의 남자들이 떼를 지어 내 옆을 쓱 지나쳐 간다. 이들은 공력 최적화 헬멧과 랩어라운드 곡면 선글라스를 장착하고, 1파운드 숍에서 산 듯한 파워레인저 원색 쫄바지 차림으로 자전거에 구부정하게 상체를 오그리고 앉아 줄지어 이동한다. 이들은 ‘한계 출력‘ ‘파워 출력‘ ‘페달링 회전수‘ 등에 대해 너무나도 심각한 표정으로 의견을 나눈다. 그들의 즉흥적인 떼 안무에서는 친밀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단절되어 있으며, 얼굴만 한 선글라스 뒤에 본인을 감춘다. 이들에겐 독립성과 상호의존성이 공존한다. 함께 모여 있는 가운데 어딘가 분리되어 있다. - P195
나오미는 깊은 근심과 가장 어둡고 광적인 생각들을 발가락 사이에 끼고 다닌다: 그리고 밤에 침대에 누워 몸이 수평 상태가 되면 발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모든 것들이 중력의 압박에서 벗어난다. 그것들이 나오미의 머리로 흘러들어가고, 다시 입을 통해 분사된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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