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 - 때론 삶이 서툴고 버거운 당신을 위한 110가지 마음 연습
서천석 지음 / 김영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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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을 고를 때 깊은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떤 장르의 책을 읽을 것인가'에서부터 '지금 내가 그 책을 읽어낼 수 있을까?', '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가?' 등 한 번 의문에 빠지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쏟아집니다.  그러다 종국에는 '왜 읽는가?'의 대답하기 곤란한 근원적 질문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책 한 권 고르려다가 숫제 철학자가 되어야 할 판입니다.

 

그렇다고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소설이나 시집과 같은 문학작품은 하나하나 따지기보다는 오히려 너무도 쉽게 구매를 결정하곤 합니다.  그렇게 샀던 책 중에는 쓰디 쓴 후회로 끝나는 경우도 있고, 의외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이 환호성을 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인문학 서적이나 문학작품은 비교적 나은 축에 속합니다.  문제는 실용서나 자기계발서에 있습니다.  생각도 않고 덥석 집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이 책 <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은 대부분의 인터넷 서점에서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더군요.  '옳다구나.'생각했습니다.  제목도 마음에 들고 단청무늬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겉표지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책의 내용은 제 생각과 많이 달랐습니다.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책의 내용이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게 아닙니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MBC 라디오 <서천석의 마음연구소>에서 청취자와 나눴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오히려 실용서나 자기계발서의 범주에 속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왕 손을 댄 것이니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다른 분은 어떤지 몰라도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주의할 게 있습니다.  책의 내용이 좋다고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읽다가는 어느새 책의 마지막 쪽을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다 읽었다.', '뿌듯하다.', '좋았다!'하는 느낌은 수도 없이 들겠지만 정작 책의 내용은 변변히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우리가 실용서를 읽는 까닭은 실생활에서 써먹자는 데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럴 때면 마치 제가 법정에서 판결문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내용도 모른 채 다 읽었다는 행위로서의 결과만 남았으니까요(이게 뭡니까. 우라질!).  물론 제 경험입니다.  하여, 요즘에는 제가 필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며 읽습니다.  때로는 욕심만 과하여 밑줄을 긋는 부분이 자꾸 늘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밑줄 그은 부분만 재차 읽으면서 지워야 할 부분은 냉정하게 지워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필요치 않지만 앞으로 필요할지도 모르니 미래를 대비하여 기억하는 게 좋겠다구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밑줄을 그을 필요도 없습니다.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우면 되니까요.  뇌의 용량이 문제이겠지만 말이죠.

 

이 책의 저자인 서천석 님은 정신과 전문의답게 삶의 난관에 부딪힌 사람들의 여러 고민에 대하여 때로는 명쾌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대안을 제시합니다.  작심삼일로 끝나는 저질 의지에 대하여,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하여,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하여, 면접장에서 긴장을 없애는 방법에 대하여 등 우리의 일상에서 빈번하게 마주치는 갖가지 문제들에 대해 세심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꼼꼼히 읽는다고 읽었는데도 생각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이제는 제가 밑줄을 그었던 부분을 옮겨 적을 차례입니다.  이 책을 읽었던 다른 분들의 생각과는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과 공감하기 위해 430쪽에 이르는 책을 통째로 옮겨 적기에는 독수리 타법의 제 능력으로는 무리가 따를 듯합니다.

 

"물론 이런 질문도 가능합니다.  꼭 용서를 해야만 치유가 가능하냐고.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형참사를 당한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빨리 용서한 사람일수록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알고 보면 희생자가 하는 용서란 진짜 용서이긴 어렵습니다.  그저 과거를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자기의 존엄성을 세우려는 몸부림입니다.  이처럼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이지 내게 피해를 입힌 상대를 위해서 하는 행위는 절대 아닙니다."    (p.64)

 

"혹시 상대가 뭘 바라고 있다면 그냥 그것을 선물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또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다면 굳이 상대의 정성을 시험하지 마시고 몇 가지 정확히 말해주세요.  그래야 선물 주고받기의 시간이 불안과 실망이 아닌 행복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p.155)

 

"상대의 감정을 충분히 들어주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상대에게 내 감정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내 감정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먼저이다 보니 상대의 감정을 들어줄 여유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상대의 감정을 들어줄 때 내 감정 역시 상대에게 전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p.298)

 

"어느 길을 선택하든 그 길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결과를 결정합니다.  따라서 선택을 할 때는 어느 쪽이 내가 더 나 자신을 몰입시킬 수 있는가에 기준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선택한 방향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좋은 선택을 한 겁니다."    (p.331)

 

"똑같아 보이는 습관도 그 속에 숨어 있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실험을 해보는 것입니다.  막연히 의지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를 자책감에 빠뜨릴 뿐입니다.  그보다는 습관의 출생 비밀을 알아내는 탐구정신이 나쁜 습관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줄 것입니다."    (p.334)

 

어떻습니까?  내가 왜 이 책을 실용서에 편입시키려는지 감이 잡히시나요?  제가 밑줄을 그었던 부분은 이보다 한참이나 더 많았습니다.  제가 구식이라 그런지 이렇게 타이핑을 치는 것보다는 손으로 직접 적을 때 기억도 더 잘 되고 좋더군요.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다 옮기기에는 제가 힘에 부치는군요.  기억하세요.  실용서는 법정의 판결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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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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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여백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어딘가 빈 구석이 있는, 세상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바람과 같은 사람이 좋다.  계절로 치자면 겨울과 같은 사람이다.  하여, 언젠가부터 나는 겨울을 좋아하게 되었다.  낙엽이 지는 것이 아니라 여백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쓰셨던 박경리 작가처럼 삶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믿었다.  세월이 더해질수록 여백이 드러나는 삶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삶의 여백은 겨울의 눈밭이요, 지고지순한 '자유'의 등가어이다.  조르바가 그랬듯 인간은 곧 자유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유를,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나는 요즘 내 삶과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지식의 짐들이 하나씩 지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아는 게 힘'이라는 젊은 시절의 구호는 나이가 들며 차츰 흐릿해진다.  즐거운 일이다. 

 

이윤기 님의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었다.  어제, 오늘 중국발 미세먼지로 한반도가 몸살을 앓는 마당에 한가하게 책 나부랭이를 붙잡고 앉아있는 것도 물색없는 짓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책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을.  게다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윤기 작가의 빼어난 글솜씨에 어찌 빠져들지 않을 것인가.  우리나라 번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이윤기 작가.  내가 작가의 글을 처음 읽었던 것은 모르긴 몰라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글이 어찌나 자연스럽고 매끄럽던지 번역서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작가로 인해 행복했었다.

 

"'글 읽기'에 관한 한 나는 황희 정승만큼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관한 한 행복하지 못하다.  길고 짧은 소설을 차례로 써내고 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못하다.  나는 큰 빚을 진 사람이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많은 작가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다.  부모의 사랑을 아래로 갚듯이 이 빚은 독자에게 갚아야 한다."    (p.36)

 

이 책이 나오기 전 나는 작가가 쓴 산문집은 모두 읽었었다.  <이윤기가 건너는 강>과 <무지개와 프리즘>, <시간의 강>과 <어른의 학교> 등.  나는 그들 산문집 중에 지금은 품절이 된 <무지개와 프리즘>을 유난히 좋아했다.  못 쓰는 글이지만 리뷰도 썼었다 (http://blog.aladin.co.kr/760404134/5191455).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그 책에서도 작가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작가 자신에 대해 말했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여 일본어와 영어를 배웠다는 작가에게 번역일은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 책에서 모국어로서의 한글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곳곳에 드러내고 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하여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을 느꼈었다.  나의 착각이겠거니 생각하며 읽었는데 웬걸 작가가 그동안 썼던 여러 책들에서 발췌한 것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게 아닌가.  책에 대한 실망에 앞서 좋아하는 책도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읽지 않는, 되는 대로 설렁설렁 읽고는 쉽게 치워버리는 나의 잘못된 독서습관이 부끄러웠다.  한 권의 책을 번역하기 위해 닳도록 사전을 뒤졌을 작가의 치밀함이 눈에 선하다.

 

"외국어 번역 공부, 나는 참 어렵게 했다.  많이 고통스러워하고, 많이 절망했을 뿐, 한 번도 만족을 경험하지 못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곳을 많이, 그리고 오래 걸었다.  판화가 이철수는 길을 잃고 오래 걸으면 그게 곧 길이 되는 수도 있다고 위로하고, 시인 강연호는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고 격려하지만 그 위로와 격려는 들을 때마다 슬프다."    (p.116)

 

번역가 김석희 님도 그의 책 <번역가의 서재>에서 말하길 '지금도 일감을 앞에 두면 막막한 기분에 휩싸인다'고 했다.  글을 쓰는 일, 책을 번역하는 일은 결국 인간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변화시켜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바꾸는 일일 터이다.  천지개벽의 주체인 것이다.  한 편의 글을 너무도 쉽게, 낙서하듯 쓰는 나의 태도는 과연 정당한가.

 

어제, 그제 중국발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았던 한반도는 이제 얼마쯤 제 모습을 되찾고 있다.  육신을 구제하기 위한 삶의 찌꺼기도 이 땅에 사는 모든 생명체에게 저토록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깊이 사유하지 않은 영혼의 찌꺼기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병들게 할 것인가.  짧은 글이라도  허투루 쓸 게 아니다.  정성을 다하여 책을 읽고, 깊이 사유하여 쓴 글이었음에도 작가는 자신의 글을 부끄러워하는데 나는 도통 부끄러움이 없는 인물이다.  반성하며 이 글을 쓴다.  오랜만에 보는 맑은 하늘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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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2013-12-06 21:18   좋아요 0 | URL
저도 이윤기님의 글이 좋아서 그의 작품을 골라 읽었던 때가 있습니다.
꼼쥐님의 리뷰를 읽으니, 저도 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꼼쥐 2013-12-07 20:12   좋아요 0 | URL
이윤기님의 글은 정말 좋죠? 왜 그렇게 빨리 가셨을까요? 오래도록 그분의 작품을 읽을 수 잇다면 좋았을 텐데....발췌본이기는 하지만 잘 가려 뽑았던 듯합니다.

김토끼 2013-12-22 20:43   좋아요 0 | URL
꼼쥐님 리뷰에서 정성이 느껴져요. 작고하신 이윤기 선생님에 대한 사랑도 느껴집니다^^

꼼쥐 2013-12-24 14:1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정말 좋은 작가는 너무도 쉽게 떠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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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감하는 이맘때쯤이면 몸도 마음도 지치게 마련이다.  부대끼는 사람에게 지치고, 일에 지치고, 멀어져가는 희망에 지친다.  그래서인지 11월에 출간된 에세이는 힐링을 주제로 한 에세이들이 눈에 띈다.  마음을 추스르고 내년을 기약하라는 것인지...

 

 

 

몇 해 전에 읽었던 달라이 라마의 <용서>를 잊을 수가 없다.  구도자의 삶과 사상을 다룬 책은 차고도 넘치지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책은 흔치 않다.  속세의 삶을 사는 독자가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구도자의 삶에 어찌 공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달라이 라마의 <용서>는 나의 편견을 깨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그때 나는 진실로 공감할 수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자주 꺼내 읽는다. 청전스님의 이 책이 그때의 감동으로 되살아날지...

 

 

 

 

 

 

심리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김형경의 <사람풍경>을 한번쯤 읽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마음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정신분석을 받았다는 작가의 적극성이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심리학 입문서와도 같았던 <사람풍경>의 여운은 지금도 남아있다. <남자를 위하여>가 기대되는 이유다.

 

 

 

 

 

 

 

 

작가 '정철'을 카피라이터라고 해야 할 지, 아니면 작가라고 해야 할 지 잘 구분이 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아무튼 나는 정철의 팬이다. 그림과 함께 제시되는 촌철살인의 경구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의 글은 읽는다기보다 머릿속에 쾅쾅 대못을 치는 일이다. 하나의 문장을 생각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을 허비했을 작가의 마음을 알기에 어느 문장이든 허투로 읽을 수가 없다.

 

 

 

 

 

 

시인이 시집을 출간하지 않고 산문집만 펴낼 때마다 마음이 짠해진다.  곽재구 시인은 수필가가 아닌 분명히 시인이다. 우리 주변에서 점차 사라지는 시집들. 시인은 이제 시인도 수필가도 아닌 그 중간쯤 어드메에 서 계신 듯하다.  나는 <곽재구의 포구기행>, <곽재구의 예술기행>. <우리가 사랑한 1초들> 등의 에세이집을 좋아하지만 시인이 시인으로 서지 못하는 현실은 늘 안타깝다.  <길귀신의 노래>도 산문집임을 알기에 짠한 마음으로 이 책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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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기적
함승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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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의 모든 부모는 제 자식이 잘되기를 누구보다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일 게다.  물론 나도 그렇다.  남들보다 공부를 잘하고, 더 건강했으면 좋겠고, 장성하여 번듯한 직장에 다녔으면 좋겠고, 돈도 많이 벌었으면 좋겠고...  부모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의 부모님들은 그 모든 조건들을 '평범'이라는 범주 속에 집어넣곤 한다.  이따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을 향하여 자녀들에게 원하는 게 무엇이냐  물을라치면 "다른 욕심 없어.  그저 몸 건강하고 남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면 됐지 뭐."하신다.    어찌 보면 부모들의 기준이 높아도 한참이나 높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모님들은 'ordinary'를 'excellent'로 잘못 알고 있는 듯하다.

 

언제부턴가 나도 제 분수도 모른 채 욕심만 많은 부모가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에게 내 욕심의 기대치를 심어주고 있지나 않은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이 책 <아빠의 기적>을 권하고 싶다.  싱글 대디로서 아들 둘을 키워낸 거창국제학교 함승훈 이사장의 이야기이다.

 

총 5부로 구성된 책의 내용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다.  아내를 만나서 아이를 낳기까지의 과정과 첫사랑이었던 아내가 위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서른다섯 살의 유학생 신분으로 다섯 살, 세 살의 두 아들과 함께 겪었던 이야기가 처음에 소개되고, 중간 부분에서는 저자 본인만의 교육 철학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설명한다.  뒷부분에서는 두 아들 모두 올해 EU통용 의사면허를 취득할 정도로 훌륭하게 키워낸 자신의 경험과 회고가 담겨 있다.

 

이 책을 읽은 소감을 말하기 전에 나는 먼저 내 경험을 말해야겠다.  어느새 나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지만 내가 지나왔던 학창시절의 경험이 이 책을 읽을 많은 아빠(또는 엄마)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나는 초등학교 학력의 아버지와 한글만 간신히 읽을 줄 아셨던 어머니 밑에서 여섯 남매 중 다섯째로 성장했다.  늘 술에 취해 사셨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했을 뿐만 아니라 걸핏하면 폭력을 행사했다.  그런 까닭에 당신의 자식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것과 동시에 학교는 이제 그만 다니고 돈을 벌어와라, 하셨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도, 중학교를 입학할 때도 장학금을 받았던 나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대학에도 진학했다.  누나들과 어머니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한민국의 최고 대학이라는 S대학에 입학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끝내 H대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 중에는 아무도 나의 등록금을 책임질 사람이 없었기에 당시에는 유일하게 4년제 장학생을 선발했던 H대학에 진학하는 길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힘겨웠던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부모의 역할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부모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첫째는 아이가 부모의 희생을 어떤 식으로든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둘째는 아이의 진로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조언할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하여야 한다는 것과 세째는 아이가 성장하여 성인이 되었을 때, 부모는 자신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결론에 이른 데에는 나의 삶에서 아쉬웠던 점이 부각된 것일 수도 있고, 열악했던 환경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던 까닭도 있다.  아이가 부모의 희생을 체감할 수 없다면 삶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인식하여 나태하기 쉽고, 부모가 바르게 조언할 수 없다면 아이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방황하기 쉬우며, 부모가 자신의 희생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아이는 부모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 중 단 한 가지 조건이라도 충족된다면 아이는 우리가 바라는 '평범'의 범주에 속할 가능성이 있지만(물론 충족되는 조건이 많아질수록 그 가능성은 높아진다), 만일 하나의 조건도 충족되지 않는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라면 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이 조건을 완벽하게 소화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었다.  아빠 혼자 동분서주하면서 아이들을 돌봄으로써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아빠의 희생을 체감할 수 있었고, 삶의 갈림길에서 매 순간 아빠의 조언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무리없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다만 어른이 돼서 직장에 들어가면, 월급에서 10퍼센트씩 아빠한테 줄 것을 요구하는 점은 나의 생각과 다른 점이었다.

 

"언젠가 험한 세상에서 비바람을 맞고 쓰러져 눈물 흘리게 될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리고 아이가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그려보라.  앞의 장면은 얼마나 가슴 아프고 뒤의 장면은 얼마나 장하고 대견할까.  이때 아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부모의 손이 아니라 아이 자신의 힘이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의 먼 미래를 위해서 아이에게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러한 일은 바로 지식과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189)

 

부모로서 아이들을 돌봄에 있어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아이는 분명 부모가 어떻게 교육시켰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삶을 살게 마련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교육은 지엽적이고 세부적인 기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생각으로, 어떤 가치관과 인생관을 아이에게 심어주느냐 하는 문제는 어쩌면 아이의 인생 전반을 지배할지도 모른다.  부모는 아이에게 실로 위대한 역할을 감당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치명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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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소리란 소리는 몽땅 빨아들이는 청소기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생각할 때가 있다.

온갖 난무하는 말과 소음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오직 침묵의 세상을 하루쯤 맞고 싶은 것이다.  혼탁한 소리들을 우주 밖으로 멀리 쏟아낸 침묵의 지구.  아, 생각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뛴다.  지구의 살아있는 표정과 살결을 소리에 현혹되지 않은 순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

 

소리가 없어진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칠 것이며,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그 따뜻한 느낌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동할 것인가.  자연의 일부로 되돌아가는 순수 인간의 모습은 그 얼마나 아름다울지...  얼굴에 드러나는 갖가지 추상들, 이를테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 가득한 놀란 표정과 반가움 가득한 잔잔한 미소와 공포에 떠는 듯한 움츠러든 모습과 내게 실망스러워하는 공허들,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펼쳐지는 그 아름다움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느낄 수 있을까?

 

하늘을 배경삼은 나무들과 풍요로운 햇살과 부유하는 먼지들까지, 움직이는 모든 것들의 아름다움을, 오직 고요 속에서만 들려오는 우주의 소리를 침묵하는 지구 위에서 생생하게 느껴보고 싶다.  단 하루만이라도 끙끙 앓는 지구의 신음에서 해방되고 싶다.  말이 너무 많은 요즘, 세상의 말과 소음을 소리도 없이 빨아들이는 청소기 하나쯤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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