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비테의 공부의 즐거움 - 아이와 함께 읽어야 더 효과적인 자녀교육 바이블
칼 비테 지음, 남은숙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 대학생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교육의 실상은 우리나라의 교육 이념인 홍익인간의 정신을 구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국가에서 그렇게 부르짖는 전인교육과도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가끔 나는 그들에게 고등학교까지의 학교 생활이 행복했느냐? 물어 볼 때가 있습니다.  우문(愚問)이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마치 '불행한 수재(秀才)나 불행한 둔재(鈍才)' 중 어느 하나에 속하는 듯 보입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이를 키우는 아비의 마음에서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닙니다.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공교육의 무용론이라도 주장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을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도와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죠.  학교에서 밤 10시, 11시까지 붙잡아 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지옥도 그보다 더한 지옥이 없지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구요?  그런 논리로 우리나라 교육은 지금까지 버텨온 것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 하에서 공부의 즐거움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는 학생이 과연 있는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칼 비테의 공부의 즐거움>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을 말해보려 합니다.  조기교육과 영재교육에 관심이 있는 학부모라면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책일 것입니다.  부연하자면 이 책은 미숙아로 목에 탯줄을 감고 태어난 칼 비테 주니어가 자신의 아버지인 칼 비테 목사의 철저한 교육에 의해 천재로 자라나게 된 그의 경험과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기록한 책입니다.        

 

"아버지는 모두가 저능아라고 말한 나를 교육시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때 아버지의 심적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조기교육이 오히려 아이의 지능발달을 해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버지는 자신만의 방법과 신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냈고 마침내 사람들의 찬사와 인정을 받았다."    (p.59)

 

1800년에 태어난 Jr. 칼 비테는 8세 때 이미 호머, 키케로 등 어른에게도 어려운 고전, 철학책을 독파했으며, 9세 무렵, 6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등 그의 천재성을 인정받아 라이프치히 대학의 입학허가증을 받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는 13세 땐 기젠 대학으로부터 철학박사의 학위를 수여받았고, 5년 후 그는 이탈리아로 유학, 피렌체에 머물며 법학을 연구하는 한편 <단테의 오해>라는 유명한 책을 저술했으며 83세로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여러 대학에서 법학 강의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칼 비테 목사는 유아기의 언어 교육과 식단에 특히나 많은 신경을 썼던 듯합니다.  예컨대 우리가 흔히 쓰는 맘마, 멍멍이 등 유아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고 사투리도 금했으며, 세 살 이전에는 고기도 먹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곡물과 야채, 과일을 위주로 식단을 짰으며 운동을 중요시 여겨 생후 15일부터 운동을 시켰다고 하니 그 정성이 놀랍기만 합니다.

 

"현재 많은 부모들이 어린 자녀를 가르칠 때, 종종 완전한 표준어가 아닌 말이나 지극히 유아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고 아이가 자신의 말을 따라하면 즐거워한다.  하지만 이는 아이를 자신의 장난감으로 삼는 부모들의 크나큰 실수이다."    (p.66~p.67)

 

칼 비테 목사의 교육 방침 대부분이 익히 알고 있었거나 수긍이 가는 것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들도 있었습니다.  이를 테면 규칙적인 습관이나 놀이를 통한 학습, 배움의 즐거움과 성실함, 자신감과 겸손, 용기와 신념, 사랑의 중요성과 올바른 인간관계 등 인성과 학습을 함께 배양하려 했던 점은 본받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에게 시를 읊어주거나 노래를 불러주는 등 일찍부터 체계적으로 정성을 다했던 점도 좋았습니다.  반면에 아기의 손과 발을 냉수로 씻겼다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했고, 어린 나이에 대학에 보냈던 것도 과연 옳은 일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게다가 도시 생활을 하는 현대인이 아이들과 함께 식물을 관찰하며 이름뿐 아니라 그 효능까지 가르쳐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참고로 칼 비테 목사의 8대 공부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법칙 1 공부가 잘 되는 환경을 만들어라. 

법칙 2 공부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법칙 3 배움을 즐겁게 유도하라.
법칙 4 학습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라.
법칙 5 잘 노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
법칙 6 반복암기법에 효과가 있다.
법칙 7 공부에도 리듬이 필요하다.
법칙 8 공부하는 내용과 과목을 적절히 바꿔주는 교차학습법.

 

이 책은 칼 비테 주니어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일화들을 회상하면서 그 당시에 자신이 느꼈던 기분이나 생각은 어땠는지, 아버지와의 갈등은 어떻게 해소했는지에 대하여 에피소드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기가 아버지가 되어 아들을 키우는 지금의 입장에서 어떤 느낌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책의 중간중간에는 자신을 키우며 육아일기를 꼼꼼히 기록하였던 칼 비테 목사의 일기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느꼈던 제 생각은 따로 있습니다.  큰 틀에서 아이의 인생을 계획하는 것이 자녀 교육의 으뜸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인생 전체로 볼 때 아이의 행복이 다른 무엇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로 눈 앞의 결과에 집착하여 아이의 행복을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가르치는 동기와 목적은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부모가 그 순수한 동기를 잊지 않는다면 아이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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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4-03-19 12:17   좋아요 0 | URL
인생에서 "행복하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의문입니다. 행복한 돼지라느 말도있듯이..

꼼쥐 2014-03-20 13:43   좋아요 0 | URL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만족하게 생각하느냐, 또는 순간순간 얼마나 즐거움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느냐에 따라 행복하다고 느끼는 정도는 달라지겠지요. 물론 이것은 행복을 정의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의 삶보다는 미래의 삶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가질 수 있다면 현재가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Ralph 2014-03-22 14:54   좋아요 0 | URL
달콤한 사탕에 취하여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고.. 구린내 나는 치즈를 만끽하면 느끼는 행복감도 있을 것 입니다. 그렇다면 고통과 행복이 크게 다르지않을 수도 있지않을 까요..

꼼쥐 2014-03-26 14:13   좋아요 0 | URL
그렇겠지요. 자신의 상황에서 만족할 수만 있다면 고통도 행복처럼 느낄 수 있겠지요. 문제는 어떻게 느끼느냐일 테고, 교육이 그것에 집중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상황보다는 많이 좋아지겠죠.
 

며칠 전 한 외국인을 만나 함께 차를 마시며 꽤 긴 시간 동안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캐나다에서 한국에 온 지 5년이 되었다는 그녀는 우리나라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비록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이런저런 애기가 오가다가 딱히 할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아 구태의연한 질문을 하게 되었는데 그녀의 답변이 놀라웠습니다.  외국인을 만났을 때 우리가 흔히 하는 질문으로서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그런 취지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녀의 답변을 요약하면 이런 것이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불안이 만연(spread of anxiety)한 사회라는 것과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불안을 판매하고 조장하는 듯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불안을 판매함으로써 자신들의 이득을 취한다는 것이죠.  가장 크게는 전쟁의 가능성에 대한 불안, 노후의 삶에 대한 불안, 경쟁에서 자신이 뒤처지는 것에 대한 불안, 외모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 건강과 질병에 대한 지나친 걱정,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 등 그녀가 나에게 말했던 것은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지적이었습니다.

 

한국에 머문 기간이 그리 긴 것도 아닌데 그녀는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알 수 있었을까요?  그녀는 자신이 한국인의 불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아주 우연한 일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필요한 책을 사려고 동네의 한 서점에 들렀는데 베스트 셀러 코너에 꽂혀 있는 책들이 어떤 종류의 책인지 궁금하여 서점 주인에게 물어보았답니다.  그 책들의 대부분이 '행복'을 주제로 쓰여진 것이라는 서점주인의 대답에 그녀는 무척이나 놀랐다고 했습니다.  행복을 주제로 쓴 책들은 대부분 다분히 철학적이어서 읽기도 어렵거니와 캐나다 사람들에게는 별 관심도 없는 주제였기 때문이랍니다.

 

'왜 한국인들은 행복에 대해 그토록 관심이 많을까?'하는 궁금증이 한국 사회 전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증폭되었을 뿐이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녀의 결론은 어떤 목적으로든 '불안'을 파는 국가는 '나쁜 국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불안을 판매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이죠.  게다가 '불안'을 수요하는(또는 구매하는) 국민은 구매를 거부할 권리마저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론을 통한 일방적 강요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지적에 반론을 펼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내게 들려주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현실, 추한 자화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한 명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근거도 없는 '불안'을 수요하는, 교육만 많이 받은 일개 무지렁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즘 TV 뉴스에서는 각 방송사 공히 곧 있을 지방자치선거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불안'을 판매함으로써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려고 하지는 않는지 의심하고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 자신에 대해 외국인보다 더 아는 게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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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4-03-16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적절하고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그런대 왜 우리나라가 유난히 그럴까요? 실제로 불안 요소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전쟁의 워험은 우리는 잘 못느끼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무었보다도 워낙 짧은 기간동안 사회가 급변하다보니,, 모두가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합니다. 불안 마켓팅이 현대사회, 자본주의 의 특징이기도 하구요. 무었보다도 다른사람..예르 들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인느데는.. 불안감을 조장하는게 가장 효과적이죠.. 실제로 우리사회가 불안한 사회라는 생각도 듭니다.

마립간 2014-03-17 10:18   좋아요 0 | URL
건강 검진이 대중화된 것도 암공포증(cancer-phobia)를 부축인 면이 있죠. 그렇게 불안이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이 의료인에 좋은 것만도 아닌데요.

꼼쥐 2014-03-18 21:52   좋아요 0 | URL
저랑 대화를 나누었던 분은 그렇게 말하더군요.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불안을 미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그에 대한 정부의 규제도 존재한다고 말이죠. 한국에서는 이를 외면할 뿐만 아니라 조장하는 측면이 강하고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에 대한 불안도 일부러 키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이죠.

qualia 2014-03-17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사회가 실제로 불안한 사회인 것은 사실이죠.

그것도 아주 지극히 불안해서 어디 한 군데 잘못 건드리면 즉각 터져버릴 듯한...

그런데 문제는 이 불안한 사회의 불안을 제거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더욱 더 증폭시켜 정치적/경제적/권력적 지배체제를 더욱 더 확고히 하려는 집단/세력이 있다는 것이죠.

분석/비판은커녕 한국의 식자층이 놀고 먹구 있으니까, 울나라 사람도 아닌 외국 일반인이 저렇게 나서서 비판하는 것입니다.

책 100권을 읽으면 뭐하죠? 울나라 지식인들...


꼼쥐 2014-03-18 21:5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워낙 만성적인 불안 사회에 살다 보니 어제 지하철역 폭발물 해프닝도 예사로 보이지 않더라구요. 이건 뭐 숫제 양치기 소년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21세기에 이런 국가가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렇습니다.

마립간 2014-03-18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처음 댓글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위에 댓글을 다신 두 분은 우리 나라가 불안 사회라고 판단하십니다. 그런 사회에 속한 일원으로서 좀 더 합리적 행동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꼼쥐 2014-03-18 21:5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마립간 님.
제 생각에는 어떤 불안에 대해 무작정 불안해 할 것이 아니라 확실한 근거를 찾아보는 게 순서겠지요. 언론이나 정부에서는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막연한 불안을 부추기는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게다가 그런 위험요소나 불안요소가 있다면 정부가 먼저 해결하고 국민들은 안심시키는 게 정부의 역할 아닐까요?

무지개분수 2014-03-23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 생각에는 외국인에게 비친 한국의 불안감은 비정상적으로 보여지겠지만, 한국은 정말 불안속에서 성장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도 불안한 요소들이 너무 많이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단순비교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특히 캐나다 처럼 땅 넓고 자원많고, 복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나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여건에 있기 때문이죠. 남북한 문제, 고령화문제등의 내부적인 부분과 대외적으로 미국, 중국, 일본 등과의 외교적인 문제도 캐나다와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내부적으로 지나친 경쟁의식이 불러 일으키는 불안도 더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남이 하면 나도 해야 하는 것... 서양은 그런면에서 한국보다 덜 심하기 때문에 각자의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자라나는 세대들의 교육에 있어서 스스로의 자신의 삶의 스타일을 찾고 만들어 나가는 것부터 연습해야 할 것 같아요.

Ralph 2014-03-23 18:19   좋아요 0 | URL
오히려 불안하지 않다면 비정상적일 겁니다. 현재도 휴전중이고, 작은땅에 인구는 많고.. 갑작스런 사회 변화.. 불안한게 정상인데.. 오히려 불안하지 않은 것 처럼 사는 것인지도.. 굳이 우리 사회가 불안을 부추인다기보다는 .. 당연히있는 불안을 영리한 사람들이 나름대로 적절히 이용하고있다고 해야 할지.. 아뭍튼 정신 바짝차려야 살아갈 수있는 사회인것만은 사실인듯합니다.

꼼쥐 2014-03-26 14:20   좋아요 0 | URL
국가 간에 불안의 정도를 절대적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라마다 사정이 있고, 환경이 다르니까요. 그리고 때로는 적당한 긴장감이 삶에 활력이 되기도 하고 말이죠. 다만 우리나라에 만연한 불안을 더욱 부채질하고 조장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죠. 국가의 책임은 불안을 조장하기보다는 불안을 해결하여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불안 요소가 있으면 그 해결책을 내놓고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없던 불안감도 일부러 만들어내고 있으니...

Ralph 2014-03-29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가 개인보다 더 도덕적?이기를 바라는 맘이야있지만.. 현실은 그럴리도, 그럴수도 없는 상황인듯합니다.

꼼쥐 2014-04-01 16:04   좋아요 0 | URL
제도가 잘 갖추어진 나라라면 그 시스템 속에 있는 공직자는 어떤 도덕심이나 윤리의식을 따지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도덕적인 공직자가 되겠지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시스템의 부재로 인해 편법과 불법이 판을 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생각의 재구성 - 하버드대 심리학자가 과학적 연구 결과로 풀어낸 셜록 홈스식 문제해결 사고법
마리아 코니코바 지음, 박인균 옮김 / 청림출판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감지하는 모든 것들이 100% 객관적 사실이라고 우리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하버드대 심리학자 마리아 코니코바라면 분명 '노(No)'라고 대답할 것이다.  적어도 그녀는 우리가 보는 실상은 객관적 사실의 극히 일부분만을 감지하였거나 우리의 과거 기억에 의해 편집 또는 왜곡된 허구라고 말할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결국 과거에 있었던 자신의 경험과 기억 속에서 평생을 사는 꼴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식과 사고 체계를 바꿀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코난 도일의 저서에 등장하는 명탕점 셜록 홈스를 주목한다.  셜록 홈스의 사고 과정을 현대 신경과학과 심리학을 바탕으로 분석하여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 다들 한 번씩은 읽어보았을 '명탐정 셜록 홈스'는 내게도 가히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아르센 뤼팽과 셜록 홈스 중 누가 더 뛰어난가? 하는 시답잖은 주제로 친구들 간에 치열한 설전을 벌이기도 했었다.  그 시절의 우리에게 셜록 홈스는 마치 유명 연예인 못지않은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책 <생각의 재구성>을 읽으며 그때의 추억과 함께 저자의 탁월한 분석에 감탄해 마지 않았다.  나의 우둔함을 탓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정신에 관한 한 놀라울 만큼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지, 자신의 사고과정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그리고 시간을 들여 이해하고 숙고하는 법을 배우기만 한다면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의식하지 못한 채 마냥 즐거운 듯 돛을 올리고 나아간다.  왓슨처럼 우리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똑같은 계단을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오르내리지만 계단에 대한 아주 사소한 사실 하나도 기억해내지 못한다."    (p.9)

 

왓슨식 사고에서 홈스식 사고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문제점은 과연 무엇이며 우리의 문제점을 시정하면 홈스식 사고로의 전환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저자의 대답은 '예스(Yes)'이다.  저자는 우리의 의식이 몸의 근육과 같다고 말한다.  많이 사용하고, 훈련하고, 집중하고, 자극함으로써 주의력과 자기통제력이 강화된다고 조언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락방과 같은 일정한 저장 공간에 우리가 어떤 기억을 저장하고 어떤 방식으로 저장할 것이냐의 문제를 관찰에 앞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배회하는 정신을 통제하고, 동기와 목적을 가진 의식적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얻게 되는 관찰과 경험의 정보는 향후의 추론과정에 필요한 필수정보를 제공하는 현실적 기반이 되지만 우리가 무심히 저장했던 잡다한 기억은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기 때문이다.

 

"관찰하는 정신, 주의하는 정신은 참여하는 정신이다.  이런 정신은 정처없이 배회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 됐든 지금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몰두한다.  왓슨 시스템이 이 일 저 일 다 참견하고 이것저것 다 확인하며 미치도록 뛰어다니게 하지 않고 홈스 시스템이 한 발짝 올라서도록 한다."    (p.151)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좋은 정보와 뛰어난 기억력으로 무장했다 할지라도 'A이므로 B이다'라는 식의 선형적 사고는 그동안 애써서 모은 정보를 한낱 쓰레기로 만들 수 있다.  추론의 과정에 앞서 자신이 얻은 정보와 기억들을 서로 조합하고 재조합하여 어떤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비록 불확실성의 위험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컴퓨터에 내장된 정보나 인간의 지식도 그 자체로서는 쓸모가 없는 셈이다.

 

"상상력이 없다면 잠재된 사고의 가능성을 모두 끌어낼 수 없다.  잘해봐야 사실 정보와 세부 사항들을 줄줄 읊는 데 그칠 뿐이다.  그 사실들을 활용해 판단력과 결정력을 향상시킬 수는 없다.  우리의 머릿속엔 여러 상자와 폴더와 재료가 깔끔하게 정리된 다락방이 있다.  그런데 어떤 자료부터 조사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자료를 하나하나 넘겨보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적절한 방법을 찾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만약 적절한 재료가 반듯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고 두 종류 혹은 세 종류의 다른 자료들을 사용해 조합해야 한다면?  행운을 비는 수밖에 없다."    (p.169)

 

면밀한 관찰을 통해 단서를 수집하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여러 가능성을 도출했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추론이다.  어떤 결정을 내리고 답을 찾는 과정이다.  홈스에게 추론은 결론에 이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 범죄를 해결하는 것이든, 개인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든 과정은 동일하다.  다만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익숙한 것을 진실로 믿으려는 우리의 습관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각자의 인식의 틀에 맞춰 추론을 한다면 그 모든 정보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없다.  사건 해결에 있어 중요한 것과 부수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객관적으로 가려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혼식이 많아지는 계절이 왔다.  사랑하는 남녀가 한 집에서 같이 살기로 결정한다는 것, 인생에 있어 그보다 더 중대한 결정이 있을 수 있을까.  아내는 나에게 불만이 있을 때마다 "내 눈을 내가 찔렀지."하는 말을 자책하듯 내뱉는다.  그럴지도 모른다.  왓슨식으로 사고하는 한 우리는 평생 자신의 눈을 찌르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자신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중대한 결정이라면 홈스식 사고를 따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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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렸습니다.

가문 들녘을 적시는 단비였습니다.  우산을 쓰고 나서니 '싸르르 싸르르' 키 위에서 콩을 까부르는 소리가 납니다.  문득 떠오른 시는 그 옛날 교과서에서 배웠던 이수복의 <봄비> 한 구절이었습니다.

 

봄  비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빗길을 천천히 걷노라니 세상은 온통 풍요롭습니다.  또한 고요합니다.

가로등의 여린 불빛으로도 얼어붙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다 녹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집 근처에 이르러서야 '도서관에서 시집이라도 한 권 빌려 올 걸'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는 것처럼 이 짧은 계절이 다 지나고 난 후 가버린 계절을 아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칼 비테의 공부의 즐거움>을 마저 읽어야 할까 봅니다.

어쩌면 빗소리에 취하여 읽어야 할 책마저 까맣게 잊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다 싶습니다.  물웅덩이에 파문처럼 일던 물동그라미를 밤새 생각한들 또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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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쫓는 모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 199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빅 브라더(big brother)'의 출현은 필연적인 듯 보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과거 7,80년대의 군부 독재 시절에 우리나라 국민의 인권은 그야말로 개의 밥그릇에 버려진 생선 가시보다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지하철역을 빠져 나올라치면 전경의 검문검색이 수시로 있었고, 어쩌다 조금 따분하고 지루해 하는 전경과 마주친 여대생이라면 어김없이 그들의 놀잇감이 되곤 했습니다.  검문을 한다는 핑계로 핸드백을 열어보는가 하면 그 안에서 혹시 담뱃갑이라도 발견되면 옳다구나 하고는 행인들에게 이것 좀 보라는 식으로 길바닥에 쏟아놓고 히히덕거리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담배를 피우는 여자를 거리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었기에 그들의 눈에 비친 여대생은 소위 '날라리'로 오인받기 십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시절이 변하여 인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법과 정치 제도도 크게 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들이 지닌 권력과 부를 지키려는 욕심은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약해졌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 국정원의 타겟이 된 유모 씨의 경우도 그런 것이겠지요.  어찌 보면 현실은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더 실제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권력과 부에 대한 욕심을 그린 소설은 많이 있지만 저는 오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양을 쫓는 모험>을 통하여 살펴보려 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나'에게 어느 날 친구 '쥐'(별명)의 편지가 배달됩니다.  발신지도 밝히지 않은 의문의 편지였죠.  광고업을 하는 '나'는 P보험사의 PR광고에 우연히 그 친구의 편지에 동봉된 양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는 그 사진이 발단이 되어 우익계의 거물로부터 압력을 받습니다.  사진에는 별의 문양이 찍힌 특별한 양이 포착되었던 것입니다.  그 양은 인간을 숙주로 삼아 자신이 의도하는 세계를 만들려는 그야말로 특별한 양이었죠.

 

사실 우익의 거물은 노쇠하여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었습니다.  후계자를 찾고 있던 중 그 사진이 눈에 띈 것입니다.  그 양은 죽어가는 우익계의 거물 머리 속에 기생하며 살다가 가치를 다한 그의 몸뚱아리로부터 빠져나왔기 때문에 양이 선택한 새로운 인물이 우익계의 거물을 대신할 후계자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우익계 거물의 비서실장은 '나'에게 한 달의 여유를 줄 테니 그 양을 찾으라고 합니다.  '나'는 친구 '쥐'의 행방을 찾아 삿포로로 향합니다.  '내'가 묵었던 돌핀 호텔에서 한때 양의 숙주였던 양 박사를 우연히 만나 사진 속의 장소를 알아냅니다.  그곳은 '쥐'의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쥐'의 별장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쥐'를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텅 빈 별장에서 무작정 기다리던 '나'는 양으로 변장한 한 사내를 만납니다.  그 사내는 죽은 '쥐'의 분신이었습니다.  언제나 나약하기만 했던 '쥐'는 자신의 몸 속에 양을 받아들임으로써 일본 전체를 지배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몸에 들어온 양이 잠시 방심한 틈을 타서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하였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없는 무기력한 삶을 단호히 거부한 것입니다.  죽은 '쥐'는 자신이 양에게 지배당했던 상태를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걸 말로 설명할 수는 없어.  그건 마치 모든 것을 집어삼킨 도가니 같지.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사악한 거야.  거기에 몸을 묻으면 모든 것이 사라져.  의식도 가치관도 감정도 고통도 모든 게 사라지는 거야.  우주의 한 지점에 모든 생명의 근원이 출현했을 때의 다이너미즘에 가깝지."    (p.422) 

 

어쩌면 나에게도 어렵고 힘든 상황,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무기력한 상태가 되면 영혼이라도 팔아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힐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나약하고 무기력한 인간에게는 또한 그런 유혹을 과감히 뿌리칠 수 있는 용기도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이 책 속의 '쥐'처럼 말입니다.  책에서 주인공인 '나'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평범한 소시민일 뿐입니다.  '나'의 행보는 누군가의 각본에 의해 짜여진 그런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는 우연의 대지를 정처 없이 방황할 수도 있다.  마치 어떤 식물의 날개 달린 종자가 변덕스런 봄바람에 날려오듯이.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연성 같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은 명확하게 일어나 버린 일이며,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아직 명확하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배후의 '모든 것'과 눈앞의 '제로' 사이에 끼인 순간적인 존재고, 거기에는 우연도 없고 가능성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두 가지 견해 사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것은(대개의 대립되는 견해가 그렇듯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똑같은 요리 같은 것이다."    (p.101)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은 머리 속에 다들 욕심 많은 양을 한 마리씩 품고 있는 숙주와 같은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여지는 사람이 사악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머리를 장악한 양이 나쁜 것이겠지요.  그런 까닭에 한 사람의 인권을 깔아뭉개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할 테구요.  인간의 감정과 가치관이 남아있다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양의 탈을 쓴 인간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빅 브라더', 아니 우리나라에서는 '빅 시스터'인 탐욕스러운 양이 사라질 날은 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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