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와 다르게 예정된 행사는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일 없이 꼬박꼬박 열리는 듯합니다. 다만 확연히 악화된 경제상황을 반영하듯 행사의 씀씀이나 규모는 대폭 줄어든 게 사실입니다. 심지어 졸업식과 입학식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길거리에서 북적이던 꽃 판매상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도 하나의 이색적인 풍경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장미꽃 한 송이에 만 원을 호가하는 상황이니 사용한 꽃다발이 인터넷 사이트에 중고판매로 올라온다는 게 일견 이해가 됩니다. 등유가격 상승으로 난방비가 치솟으면서 생화 가격도 덩달아 올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화훼 농사를 접은 농가가 늘어나면서 장미 공급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지만 어디 꽃의 가격뿐이겠습니까. 주변을 둘러봐도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물품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렇듯 우리들 호주머니 사정은 갈수록 찬바람이 불고 좀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계절은 이미 겨울을 지나 봄으로 가고 있는 듯합니다. 바야흐로 생명의 계절입니다. 공원 한 귀퉁이에서 보았던 벌개미취의 마른 꽃대궁에도 물기를 머금은 생명의 기운이 풀풀 날리는 듯하고 까칠한 목련의 나무 기둥에 귀를 갖다 대면 아스라한 물소리가 신화 속 음성처럼 들려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하나 아쉬운 것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유행가의 노랫말처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데 말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우리나라의 출생률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가장 시급한 문제가 낮은 인구증가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대입 수험생이 70만 명대였던 것이 지금은 30만 명대 후반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이제는 재수, 삼수를 할수록 명문대에 합격할 확률이 월등히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지방대의 소멸은 현실로 다가왔다는 게 중론입니다. 명절에 만난 어린 조카들에게 농담처럼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너희들이 대학에 갈 즈음에는 모두 의대생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들 의사가 되고 싶어 하니 말이야." 나는 사실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정말 그렇게 될 날이 코앞에 닥칠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어느 학자와 짧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나 저나 동의했던 바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로부터 적극적으로 이민을 수용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국가가 소멸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말하자면 유럽의 선진국들과 비슷한 경로를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지요. 일할 사람이 없어 이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이로 인해 인종간 갈등이 발생하고, 이것이 곧 사회적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우리는 지금 그와 같은 방향으로 치닫는 과도기의 어느 지점에 와 있는 듯합니다.


2023년 1월 한 달의 무역 적자액이 127억 달러라고 하더니 2월 들어 적자폭이 더욱 확대되는 모양새입니다. 열흘 만에 5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굴욕적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만 몰두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 결과 얻게 될 이득은 우리나라 대통령의 G7 회의 초청 정도가 될까요? 그렇게 된들 말 한마디 못하고 올 게 뻔하지만 말입니다. 세계 민주주의 성숙도에서 우리나라는 16위에서 24위로 추락했고, 무역적자는 갈수록 그 폭이 확대되고 있고, 우리는 지금 과연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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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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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는 누군가의 어깨가 축 처져 있거나 초점을 잃고 멍한 눈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볼라치면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주거나 내 손의 온기를 조금이나마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것은 이를테면 타인의 아픔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기운 없는 모습을 보면 나조차 의욕을 잃게 되는 까닭입니다. 매 시간 내가 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 까닭에 타인을 보면서 으라차차 기운을 내고자 하는, 어찌 보면 가장 이기적인 마음의 발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때로는 멀리 떨어져 쉽게 만날 수 없는 지인의 기운 없는 목소리를 전화로 들을 때가 있기도 합니다. 그럴 때 나는 상대방에게 시(詩)를 권하곤 합니다. 한 편의 시를 소리 내어 낭독하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지요. 시는 한 편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에너지이며 삶의 리듬이자 진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의 리듬이 가슴으로 전해질 때까지 되뇌어 낭송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삶의 에너지를 흠뻑 들이마시고 나면 우리는 다시 또 기운을 내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됩니다. 시의 효용이란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 평론가 신형철이 쓴 <인생의 역사> 역시 시의 힘을 이야기로 풀어낸 책이라 하겠습니다. 저자가 사랑한 시를 모아 함께 나눌 이야기를 덧붙임으로써 완성되는 하나의 시화(詩話)는 평론가로서의 신형철이 아니라 시를 사랑하고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재정립하는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게다가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번역한 아홉 편의 시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시를 번역한다는 것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를 살아내는 하나의 방편이기에 이 한 권의 책에는 오롯한 시적 체험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하겠습니다.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시는 행行과 연聯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行 아래로 쌓여가는聯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p.7 '책머리에' 중에서)


'책머리에'와 '프롤로그'를 지나면 5부로 이루어진 본문과 부록 그리고 '에필로그'와 '본문에서 인용한 글과 책'이 이어집니다. 1부 '고통의 각', 2부 '사랑의 면', 3부 '죽음의 점', 4부 '역사의 선', 5부 '인생의 원', 부록 '반복의 묘'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각 부의 소제목을 찬찬히 살펴보면 마치 우리 인생의 면면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각자의 삶에서 뾰족뾰족한 고통의 '각(角)'과 사랑의 '면면'을 겪은 후 찾아오는 죽음과 그 개별적인 죽음의 '점'들이 모여 역사의 '선(線)'을 이루며, 인생은 둥근 '원'처럼 순환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반복되는 '묘'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서시란 서문을 대신하는 시이므로 시집 맨 앞에 있어야 할 텐데 어째서 한강의 「서시」는 시집의 끝에 있는가. 죽음에 대한 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이라는 사건은 인생의 끝에서야 쓰게 되는 서시 같은 것이므로. 그때야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다시 처음인 듯 살아가고 싶어지니까. 그러나 그건 너무 늦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미리 써야 하고 매일 써야 한다. 나는 죽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그 시를."  (p.157)


시를 평론하는 사람은 무릇 시인이 살아낸 삶의 격랑 속으로 들어가 시에 깃든 삶의 에너지를 가늠하고 내재된 삶의 리듬을 타고 시인과 함께 동행하는 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평론가는 시에 깃든 시인의 리듬을 독자들에게 찬찬히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시인의 리듬을 어느 평론가를 매개로 비로소 감응하게 되고, 나의 안테나를 세워 시인의 주파수에 동조할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은 순전히 평론가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작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시는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며, 시인이 보내는 삶의 리듬에 저항하지 않고 일체가 되는 동조화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타자의 실종과 사랑의 위기라니, 관념의 유희라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시인의 우울한 투정이야 어느 때나 있는 것이라고 냉소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뉴노멀'이라고 말하면 이전의 모든 것이 '노멀'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라고 말하면 이전에는 사랑이 자명하게 있었던 것처럼 돼버린다. 올해 들어 부모님의 가게는 월세를 못 내게 되었고 자신도 아르바이트에서 잘렸을지 모르지만, 취업이 불투명하고 연애 따위 안중에도 없었던 것은 그전부터다. 그들이 지금 쓰고 있는 것은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썼던 마스크라는 것. 모두가 마스크를 쓰자 '간단한 자살'들이 묻혀버렸을 뿐."  (p.260)


신형철이 쓴 <인생의 역사>는 저자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지만, 동시대의 우리가 다 함께 겪어야만 하는 일반적 경험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들 대부분은 시로부터 멀어지고, 시로부터 소외되고, 데면데면 어색한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시에서 얻는 에너지는 아무런 쓸모도 없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시인은 괜스레 헛심만 쓰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를 읽는다는 게 괜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자신의 삶으로부터 멀어졌다는 부끄러운 자기 고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는 곧 삶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한 편의 시를 가만가만 읊어보노라면 어쩌면 나도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기운을 내서 다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저 먼 발치로부터 스멀스멀 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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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는 제법 봄기운이 느껴질 만큼 기온이 크게 오른다. 우리가 시간과 맞교환했던 지난겨울의 경험들은 좋든 싫든 이제 기억 속에 박제된 채 망각의 그날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어느새 입춘도 지나고 바야흐로 계절은 봄을 향해 달려갈 일만 남았다. 그리고 시간은 속도를 붙여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에겐 계절의 순환이란 어차피 무의미한 변화이며 추석 명절이나 되어서야 겨우 시간의 속도를 가늠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정월 대보름이었던 어제는 달을 보면서 아들과 통화했었다. 내일 아침 일찍 제주도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기 때문이다. '제2회 장애.非장애 대학생 창업경진대회' 참가차 팀원들과 함께 제주도로 갈 예정이라며 행사가 끝나는 금요일에 귀가하지 않고 제주도에서 며칠 더 머물렀다가 오겠다는 보고를 하는 것이었다. 제주도에 자주 갈 수 있는 것도 아닌 까닭에 경진대회를 핑계로 떠난 길이니 한라산에도 올라보고 제주도 풍광을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게 아들의 바람이었다. 아들은 이미 금요일 항공권을 월요일로 미루고 주말에 묵을 곳도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고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아들과 같은 시기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방학 내내 막노동을 하거나 과외를 하는 등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바쁜 나날을 보냈을 뿐 언감생심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었는데...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을 3개월 전보다 0.3% 포인트 내린 1.7%로 수정했다고 한다. 중국의 리오프닝에 따른 경기 회복 기대감 등으로 세계 경제 성장률 및 주요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모두 올려 잡았는데 유독 우리나라 전망치만 하향 조정한 것이다. 그나마 이것은 후하게 평가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경제학자들 중에는 우리나라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2023년 1월 소비자 물가가 5.2% 상승하였고, 농산물이나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 또한 5.0% 상승함으로써 2009년 2월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고 한다. 경제 전망은 이렇듯 곳곳에서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는데 정부는 두 손을 놓고 마냥 지켜보고 있는 추세다. 어쩌면 그들로서도 역부족일지도 모른다. 그게 어디 경제뿐이랴. 외교, 안보, 복지, 안전 등 어느 곳 하나 속 시원히 풀려나가는 곳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가하게 권력놀음에 빠져 있다. 누가 누가 윤과 가까운지 도토리 키재기 놀음을 하고 있는 모양새는 국민들이 보기에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꼴이다.


대통령도 어쩌면 자신의 무능에 가슴을 치면서 천공의 신통력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지 모른다. 기적이라도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기온이 올라 봄이 멀지 않은 듯한데 경제 상황을 보면 봄기운을 느끼지 못할 듯하다. 동방규(東方?)의 한시에 나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떠올리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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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3-02-06 1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책없음이 대책ㅡㅡ;;
올해는 내리막이 얼마나 스펙타클할지.


꼼쥐 2023-02-08 18:49   좋아요 1 | URL
적어도 나라가 회생불능의 상태까지는 가지 말아야 할 텐데 말이죠. 걱정입니다.

꼬마요정 2023-02-06 2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양적완화에 뒤이어 인플레이션 잡는다고 미국이 금리를 미친듯이 인상하니 남아나겠습니까ㅠㅠ 이럴 때 좋은 정책 잡아줄 인물이 있으면 좋겠어요. 윤핵관 이런 단어 말고 진짜 경제인, 정치인, 전문 관료... 그런 인재가 있긴 할까요ㅠㅠ

꼼쥐 2023-02-08 18:51   좋아요 1 | URL
어떤 못난 사람은 모든 부서에 검사들만 기용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러니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지요. 제정신이 아닌 듯합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가...
 
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
S. A. 코스비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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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내용의 소설을 그닥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따금 생각날 때가 있다. 그것은 마치 해산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바닷가 관광지의 어느 횟집을 지나칠 때의 느낌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배는 고픈데 딱히 눈에 띄는 식당은 보이지 않는 난감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한 끼 때우고 나면 허기는 면해지겠지,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자신의 취향이나 선호를 내려놓게 되는 상황. 물론 책을 읽는 것과 같은 2차원적 욕구를 생존을 위한 1차원적 욕구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시간은 남고 머리는 어지러울 때, 말하자면 현실의 문제로 머리가 복잡하거나 어려운 책을 이해하느라 머리를 무겁게 하고 싶지 않을 때, 사적 보복을 다루는 범죄 소설을 읽곤 한다. 사적 보복을 다룬 소설이 대개 그렇듯 구성은 단순하지만 보복은 매우 잔인하며, 개인의 원한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사회 시스템의 허점은 크게 부각하기 마련이다. 그럴수록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책의 내용에 크게 공감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소설의 주인공이 대신해 주는 것에 대해 열광하고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주인공의 모든 행위가 불법이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아이크는 버디 리 눈의 살기 어린 광택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건 그의 정맥에 흐르는 분노였다. 자신의 일부까지도 사멸해버리는 독이었다. 스스로를 나약하게 만드는 부분들. 그것은 아이크의 정맥에도 흐르고 있었다. 강력하지만 치명적인, 단단하지만 무모한 그 무엇. 그건 도리어 스스로에게 날을 들이밀어 자신의 목을 베어버릴 분노였다."  (p.197)


S. A. 코스비의 소설 <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 역시 사적 보복을 다룬 범죄 소설임은 분명하다. 이전의 범죄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소설의 전면에 동성애와 인종 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정의? 엿이나 먹으라 그래.'라고 생각하는 대부분 국가의 사법 체계에 있어서 개인의 원한이나 불만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숫제 존재하지 않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부 권력 계층의 사람들을 지켜주기 위한 도구일 뿐 수없이 많은 소시민의 원성을 하나하나 들어줄 만큼 한가하거나 그렇게 자비롭지는 않은 까닭에 범죄 소설은 끝없이 생성되고 또 읽히게 된다. 불합리하게 피해를 입은 어느 소시민이 자신의 피해 구제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사법 체계에 분노하여 직접 보복에 나서게 된다는 뻔한 구조의 소설을 언제까지고 읽고 소비하는 것이다. 싫증을 내거나 조금도 질리지 않은 것처럼.


흑백 동성 부부였던 아이지아와 데릭이 어느 날 와인 바에서 나오는 도중에 잔인하게 살해된다. 그러나 수사는 지지부진한 채 진전이 없고, 이를 답답하게 여긴 데릭의 아버지 버디 리는 장례식에서 만났던 아이지아의 아버지 아이크를 떠올린다. 조경 회사를 운영하는 아이크를 찾아간 버디 리는 아들 부부의 사건을 같이 조사하자는 제안을 하지만 거절당한다. 며칠 뒤 아들 부부의 묘비까지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아이크 역시 분노하고 버디 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버디 리와 아이크 두 사람은 모두 전과가 있다. 게다가 아이크는 수감 시절 교도소 내 갱단 두목을 한 전력도 있다. 버디 리의 아내는 그가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는 바람에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로 혼자 사는 처지가 되었고, 아이크는 석방 후 굳게 결심을 하고 아내 마야와 아이들을 돌보며 사업에 매진해 왔다. 두 사람은 아들을 죽인 범인을 찾아내 반드시 원한을 갚겠다는 뜻으로 의기투합해 아들들이 살았던 집부터 수색을 시작하는데...


"여전히 무지하지만, 그래도 배워나가고 있죠. 나도 그렇고요. 우리 둘 다 배우는 중이에요 우리 모두 후회스러운 말들을 했고, 되돌리고 싶은 헛짓거리들을 했어요. 당신 인생의 어느 순간들에는 형편없는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점점 좋아지고 있고. 이제는 그런 농담에 웃지 않으니 제대로 된 길을 걷고 있는 겁니다."  (p.309)


자신의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끝내 인정하지 않은 채 차마 해서는 안 될 모진 말과 행동으로 아들들을 마음 아프게 했던 두 사람은 결혼조차 제대로 축복해 주지 않았던 자신들의 잘못을 후회하며 반성하는 한편, 전과가 있는 흑인으로서 아이크가 다시 범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혹독하게 참아왔는지 같은 전과자이지만 백인인 버디 리는 뼈저리게 느낀다. 단서를 찾아가던 그들은 트랜스젠더 파티걸의 연관성을 알게 되고 그녀에 얽힌 범죄 집단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는 걸 직감한다.


"맞아요. 흑인이란 사실은 숨길 수 없죠.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를 사람들에게 숨겨야 한다는 그 사실이 바로 핵심이에요. 킹 목사도 말했잖아요. 어딘가에 있는 불평등은 어디에나 있는 평등에 위험이 된다고요."  (p.221)


아들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나선 두 아버지의 앞길은 그야말로 매 순간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험난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사건은 이제 파티걸 탄제린의 배후로 이어진다. 미모의 트랜스젠더 탄제린은 사실 현직 판사이자 주지사 후보로 나선 제럴드 켈케퍼와 교제를 하는 사이였고, 제럴드는 버디 리의 전처인 크리스틴의 현재 남편이기도 했다. 주지사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탄제린과의 불륜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제럴드는 자신의 권력을 동원하여 자신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 했던 아이지아와 데릭을 청부 살해했고, 탄제린마저 없애려 했다. 그러나 버디 리와 아이크의 개입으로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검사가 수사권으로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라고 했던 어느 검사는 이제 더 막강한 권력을 쥐고 정적 제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말하자면 깡패보다도 못한 짓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권력의 속성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인간이라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은 알아야 하고, 그와 같은 양아치 짓거리를 '공정과 상식'이라는 말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양아치보다도 못한 어느 전직 검사에 의한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야만의 시대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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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많이 풀렸다. 부쩍 게을러진 걸음걸이와 긴장이 풀린 허리춤 사이로 삐져나오는 살집이 그 증거라면 증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른한 오후 햇살에 주춤주춤 졸음이 쏟아지는 걸 보면 계절은 조금씩 봄을 향해 기울고 있음이다. 가벼운 바람에도 둥실 떠오르는 갈잎을 보며 산책을 나온 반려견이 영문도 모른 채 컹컹 짖고,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의 표정이 햇살처럼 밝았다. 땅에 부딪히며 힘차게 공명하는 농구공의 진동과 아이들의 웃음이 뒤섞인다. 더께더께 번지는 버짐처럼 마른 햇살이 공원 가득 부서지고 있다.


심리학자 스티븐 힌쇼가 쓴 <낙인이라는 광기(Another Kind of Madness)>를 읽고 있다. 중증 정신질환을 앓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당사자인 동시에 아버지의 정신질환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심리 전문가로서 저자는 우리 사회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은 듯했다. 정신질환과 낙인의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한 가족의 구성원 중 한 사람으로서 그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과 먹먹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 사회가 정신질환 환자를 둔 가족을 어떻게 돕고 돌보아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회적 수용도를 알아보는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나지만, 현대사회에서 가장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세 가지 속성이 바로 노숙, 마약중독, 그리고 정신질환이다. 대중은 이런 속성을 가진 개인과 직접 접촉하길 꺼리며 이들에 대해 강력한 사회적 거리감을 드러낸다. 게다가 이런 설문지에 응답할 때 대체로 사람들은 편협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절제하는 경우가 많다. 즉 응답자 내면의 실제 수용도는 훨씬 낮을 수 있다는 말이다."  (p.61)


"훗날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아무도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뿐만 아니라 어쩌면 자기는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낙인찍힌 집단의 구성원은 필연적으로 그 집단을 향한 사회의 메시지에 노출되게 마련이며 어느새 그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다시 말해 사회적 낙인이 자기 낙인으로 변하여 악순환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처럼 내재화한 낙인, 자신이 근본적으로 잘못되고 무가치한 인간이라는 관점은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 비주류 집단의 일원이라는 것도 충분히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런 개인이 자신의 약점과 도덕적 결함을 탓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정신질환자의 경우 낙인의 내재화가 심각해지면 치료를 받아도 소용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거나 이미 치료를 시작했더라도 조기에 중단해버리기 십상이다."  (p.167)


오후 시간에 접어들자 바람은 점차 차가워지고 속도를 더하며 거칠어졌다. 우리가 삶의 이면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것처럼 정신질환은 일정 부분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을 멀리하고 당사자와 가족 전체를 낙인찍는다는 건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인간은 그 누구도 완벽하다 자신할 수 없는데 말이다. 볼에 닿는 바람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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