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9년이 지났다. 며칠째 이어지는 미세먼지 탓인지 오늘도 하늘은 그저 뿌옇기만 하고 사람들의 기억을 비껴가는 아이들의 울음과 아우성. 이른 나이에 고인이 된 아이들의 원망과 분노는 여전히 삶을 유지하는 이 시대 정치인의 욕심과 무관심에 의해 서둘러 잊힌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잊혀가고 있다. 죄 많은 기성세대는 해를 더하며 또 그렇게 업을 쌓아가고, 언젠가 받게 될 자신의 업보를 무거운 줄도 모른 채 짊어지고 있다. '공정한 건 아니다만, 며칠 동안, 아니 단 하루에 있었던 일이 인생의 행로를 바꿔놓을 수도 있단다.'라고 썼던 할레드 호세이니의 어느 소설 문구처럼 단 하루, 한 순간의 선택이 너희들로부터 남은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리는 결과를 낳게 했던 어른들의 무관심과 나태가 가슴 저릿한 아픔으로 전해진다. 해마다 오늘이면...


세월호 참사와 비슷한 이태원 참사가 현 정부의 원년에 벌어졌음에도 그에 대한 사건 당사자들의 반성이나 처벌은 거의 없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구는 정권의 오만함을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소시오패스적 무관심을 말한다. 집권 1년차도 지나지 않은 정부가 지지율 30%를 하회할 정도로 민심이 극도로 이반하는 까닭은 뭐니 뭐니 해도 공감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모든 관계자들이 공감 능력이 부족하거나 전무하다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생때같은 자식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다면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그리 대하지는 못한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종군 성노예와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우리 선조의 아픔과 원한을 인류애적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면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분노를 그리 쉽게 접을 수는 없었다.


현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은 결국 그들이 수립하는 모든 정책이 인류애의 보편적 가치에 근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현상에 대한 비판은 국수주의도 아니요, 폐쇄적 민족주의도 아니다. 인류애를 부정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이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느끼지는 못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보듬으려는 노력이 없는 한 국민들의 민심이반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천주교 사제단의 시국미사나 대학 교수님들의 시국선언은 오히려 작은 저항일지도 모른다. 인류애의 보편적 가치를 저버린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치관을 모두 부정하는 일이다.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권력이 영원할 리 없다. 그리고 반성하지 않는 권력은 비참한 종말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이 곧 삶의 준칙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9주기.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는 이들의 가슴 가슴마다 노란 물결이 일지 않을까. 바람이 불고 이따금 몰려오는 비구름에 하늘은 어둡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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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4-30 14: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간 글이 뜸하셔서 바쁘신가 생각했는데 몸이 많이 상하셨군요. 글을 쓰실 정도의 체력은 간신히 돌아오신 것 같지만 행간에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는 모습이 보며 안타깝습니다.
마스크를 몇년간 쓰면서 처음에는 매년 걸리던 감기도 안걸린다며 좋아했는데 최근 마스크 해제가 되면서 병의원에 외래환자가 넘쳐납니다. 흙을 만지지 못하는 아이들이 아토피에 걸리거나 면역력이 약한 이유와 마찬가지겠지요.
부디 어서 완쾌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신랄한 글을 쓰실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요.
댓글을 허용하지 않는 글로 올리셔서 이 글이 댓글을 올립니다.

꼼쥐 2023-05-02 19:23   좋아요 1 | URL
그동안 몸이 아프고 체력도 떨어지다 보니 만사가 귀찮아지더군요.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도 꽤나 번잡한 느낌이 들었고 말이죠. 귀찮기는 해도 마스크 덕분에 감기 한 번 앓지 않고 잘 지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벗어던지고 나니 스스로를 방어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나 봅니다. 이렇게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씩 체력을 높여가면서 자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작별들 순간들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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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조개로 끓여낸 맑고 담백한 조개탕의 국물을 가만히 음미하는 것처럼 우리가 느끼는 행복이란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마치 일상처럼 한 스푼 떠먹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특별하지 않은 주말의 어느 한가한 시간에 배수아의 산문집 <작별들 순간들>을 읽는 것과 같아서 호들갑스럽거나 억지스럽지 않은, 그러면서도 결코 흔하게 느껴지지 않는 일상의 시간 속으로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평범함이 오히려 귀한 가치로 대접받는 현대인의 고양된 삶에서 '독서'란 어쩌면 구시대의 유물처럼 곰팡내 나는 습관처럼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과도하게 고양된 일상의 에너지를 몇 단계 낮출 수 있는 방법 또한 '독서'나 '산책'과 같은 구시대적 유물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보면 현대인의 삶은 뭔가 어긋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오래전 어느 날 당신으로부터 온 편지...... 그 순간 문득 작별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특정 시기에만 국한된 개별 사건이 아니라, 삶의 시간 내내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비밀의 의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일생은 그것을 위해 바쳐진 제물이었다. 우리가 평화롭게 정원의 흙 위로 몸을 기울인 동안, 당신의 몸 위로 빛과 그늘이 어지럽게 얼룩지는 그 순간에도. 작별은 바로 지금, 우리의 내부-숲안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궁극의 사건이었다. 배추흰나비의 애벌레가 몸을 구부리면서 당신의 목덜미 위를 느리게 기어간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그것을 집어올린다. 평화와 고요. 오직 빛과 호흡만이 있는 순간. 지금 당신이 불타고 있다는 증거인가? 글쓰기는 작별이 저절로 발화되는 현장이다. 그 아래 아직 당신의 발자국이 움푹 팬 채로 남아 있는 죽은 딱총나무가 내 눈앞에서 불타기 시작한다."  (p.82~p.83)


지난 15년간 독일과 서울을 오가며 글을 써오고 있는 작가는 자신이 정원이라고 부르는 베를린 인근 시골의 오두막에서 살기로 결정했다. 책에서 작가는 독일 시골 정원에서의 생활을 묘사한다. 작가의 일상일 수도 있는 산책, 여행, 책과 작가들, 글쓰기, 정원 등을 소재로 한 이 책은 한 줄 한 줄을 모두 곱씹어 음미할 만큼 아름다운 문장으로 꾸며졌지만 이야기의 분명한 주제나 결론으로 독자를 이끌지는 않는다. 다만 감각적인 묘사와 눈에 보이는 듯한 상황 설정으로 인해 작가의 일상을 곁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에 빠져드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것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단지 시야에서 잠시 보이지 않았을 뿐. 아아, 따뜻한 바닷가에서 『파도』를 읽는 여름은 두 번 다시 가능한 것인가. 만약 그런 여름이 다시 온다면, 우리는 마침내 평화가 왔다고 착각할 것이다. 단 한 번도 있지 않았던 평화, 단 한 번도 끝나지 않았던 전쟁,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던 기다림, 지금 우리가 겪는 이 암울함은 사실은 지속되는 한 권의 책과 같다고 말했다. 신은 책 읽기를 멈추지 않는다."  (p.187)


“누군가 이 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읽기에 대한 글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에필로그에서 밝히고 있는 작가는 "나에게 독서란 한 권의 책과 나란히 일어나는 동시성의 또 다른 사건"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작가가 읽는 책과 나란히 일어나는 작가의 또 다른 사건에 대한 기록, 이를테면 작가가 읽는 책에 덧붙여진 동시성의 일상을 아름답게 풀어낸 글이라고 하겠다. '나'와 '베를린 서가의 주인' 두 인물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있는 독특한 산문 형식은 어쩌면 '배수아'라는 이름에 걸맞은, 그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그만의 발상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오직 이 정원을 따라서 쓰인 글이다. 어느 날 내가 우연히 도착하게 된, 투야나무 울타리 뒤편의 보이지 않는 정원.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정원의 시간과 동시에 일어난다. 정원의 삶과 나란히 간다. 이 글 속의 그 무엇도 정원보다 앞서거나 나중에 말해지지 않았다. 그것은 파라다이스라고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말했다. 파라다이스의 어원은 고대 이란어로 '울타리로 둘러쳐진 땅'을 의미하므로."  (p.251 '에필로그' 중에서)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뱀과 물>, <에세이스트의 책상> 등 배수아 작가의 몇몇 작품들을 읽어오면서 나는 시나브로 그녀만의 작품 세계에 젖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책들에 덧붙여진 동시성의 나의 일상은 남아 있지 않다. 머릿속 기억이나 일기를 비롯한 어떤 기록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망각이란 경험의 부재와 같은 것인가. 아쉽거나 서글프다는 생각이 새로운 각오나 다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까닭에 나의 삶은 이렇듯 변하지 않고 흐른다. 나는 나의 삶을 제대로 감각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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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인생은 아름다워


'혹시'라는 말을 툭 하고 내뱉고 나면 그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일들이 무작정 술술 풀려나갈 듯하고 없던 행운도 갑자기 생겨날 듯해서 괜스레 기분이 좋아집니다. 나는 그렇게 들뜬 기분으로 4월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내가 기시감 멧돼지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돌아온 이후 전국의 멧돼지들이 들고일어났던 것입니다. 시국선언이니 뭐니 하면서 나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가 하면, 이런 뒤숭숭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나에 대한 지지율마저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세계 22개국 리더 멧돼지들에 대한 '아침 상담(morning consult)'의 조사에서 나는 19%로 압도적인 꼴찌를 했던 것입니다. 예전부터 나는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함으로써 겉보기엔 혹은 대외적으론 대범한 척, 뒤끝이 없는 척 연기하고는 있지만 소심한 나의 성격상 그렇게 될 리가 없습니다. 병아리 오줌만도 못한 낮은 지지율이 나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닙니다. 마음에 상처도 크게 남고 말입니다.


나는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대구를 찾곤 합니다. 이제는 젊은 멧돼지들이 모두 서울로 떠나고 나이 든 멧돼지들만 남아 폐허처럼 무너져가는 도시를 겨우 지탱하고는 있지만 대구의 멧돼지들은 언제나 나의 방문을 열렬히 환영해 주곤 합니다. 배알도 없이 말입니다. 이번에도 나는 대구를 찾아 '들판의 공(野球)' 개막을 알리는 행사에서 기분 좋게 공을 던졌고, 그곳의 한 전통시장에서 열렬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나는 차라리 대구 경북의 리더가 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지역의 멧돼지들은 나를 싫어하는 감정이 얼굴에서 역력히 읽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리더인데 내 앞에서는 적어도 그런 표정은 짓지 말아야 하는 게 예의가 아닌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그들도 오죽하면 그리 하겠습니까마는.


엊그제 나는 부산의 모 횟집에서 술과 음식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 마셨습니다. 그 자리에는 나의 수족이라고 할 수 있는 '동운' 멧돼지를 포함하여 나를 리더로 당선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던 여러 똘마니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것입니다. 내가 밖으로 나오자 뒷골목 세계의 관례에 따라 양쪽으로 도열하여 나를 맞았고, 나는 그 가운데로 당당히 걸어 나왔던 것입니다. 나라의 곳간이 무너지든 말든, 나의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지든 말든 나는 모처럼 기분 좋게 취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 뒷골목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던 것입니다. 게다가 나의 지지율 하락에 일조했던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짱 멧돼지도 나를 보기 위해 부산까지 달려왔던지라 기분은 최고조로 치솟았습니다. 산불이 나서 멧돼지들이 타 죽고 있는데 골프를 치고 술을 마셨던 강원도 짱 멧돼지, 나의 친일 행각을 지지하며 '나는 기꺼이 친일파가 되겠다'고 외쳤던 충청북도의 짱 멧돼지 역시 산불이 번지던 그 시기에 술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모두 나를 닮고 싶었던 탓이겠지요. 나를 지지하는 똘마니들과 술을 마셨더니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졌습니다. 나는 이번 달 말에 세계 최강 날리면 멧돼지를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날 예정입니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렙니다. 역시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봄꽃이 만발한 오늘의 풍경처럼 말입니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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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행자 - 돈·시간·운명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7단계 인생 공략집
자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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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자기계발서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좋은 책을 일삼아 골라내는 것도 힘든 노릇이다.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잡히는 대로 읽자니 그것 또한 마뜩잖은 일이고 말이다. 물론 범람하는 책의 물결과 더불어 추천도서를 선별하여 준다는 사이트나 사람들도 비례하여 늘어나고 있으니 잘만 이용하면 시간도 아끼고 돈도 아낄 수 있겠거니 생각하겠지만 바쁜 현대인들이 그들 사이트를 일일이 검색하여 자신의 취향과 적성에 맞는 사이트를 찾아내는 것도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터, 그러다 보니 좋은 자기계발서를 만나는 게 그야말로 복불복 게임에서 자신의 운을 점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유튜브 채널 <라이프해커 자청>의 운영자이자 사업가로 널리 알려진 자청의 저서 <역행자>를 읽었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행자> 역시 수많은 자기계발서 중 한 권인 원 오브 뎀(one of them)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별 기대도 없이 집어 들었던 책은 어느 순간 삐딱하던 나의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들었다. 허투루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역행자>는 이제 수많은 자기계발서 중 특별하지 않은 한 권, 말하자면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저자의 논리와 설득력으로 인해 수많은 독자들 중 한 명이었던 내가 특별한 독자로 남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인간은 돈 버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 자의식이 가로막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의 성공 사례에 나온 사람들은 이미 역행자가 되기에 충분히 준비된 상태였다. '나는 돈이 없다. 그리고 돈이 필요하다'라고 인정함으로써 이미 자의식 해체가 끝나 있었다. 그래서 자신보다 대단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서 돈을 내고 배우려고 했다. 돈을 버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믿고, 미래 가치에 투자했다. 또한 그들은 의식하지 않았지만 7단계 모델을 따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p.258)


위의 인용문에서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저자는 '자의식 해체'를 특히 강조한다. 세상과 나를 구분하는 경계,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경계는 바로 자의식(혹은 에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계를 허문다는 건 일견 두려운 일일 수도 있다. 자신의 고정적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된 자기만의 안전하고 익숙했던 세상에서 벗어나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일종의 도전이자 모험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자의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쌓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드라마틱하게 바꾸는 일이 변화의 2단계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왜 연애에 실패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많이 안 해봤기 때문이다. 별로 경험도 없으면서 마음속에는 판타지와 자기만의 룰로 가득 차 있다. 연애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관심과 자원을 주고받는 일인데, '나'라는 존재가 너무 소중한 이들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받아주는 데 서투르다. 옷자락을 적시지 않고 물놀이를 할 수 없듯이, 자아에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으면서 연애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상처 입지 않는 것만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p.72)


그러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과제로 남는다. 우리에게는 조심성 강한 유전자가 과거로부터 꾸준히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유전자는 변화가 많지 않았던 원시 시대에는 유리하게 작동했겠지만 지금처럼 빠른 변화가 요구되는 시대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자유 박탈'이라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므로 변화를 기피하는 유전자 오작동을 의식적으로 이겨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3단계이며 4단계에서는 권투 선수가 운동을 통해 신체를 최적화하는 것처럼 뇌를 최적화하여 '자동 수익'에 이르도록 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경제적 자유와 돈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진정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행복이다. 만약 내가 행복에 대한 책을 썼다면 사람들이 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돈이라는 주제를 미끼로 행복해지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진정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경제적 자유를 이룬 덕분이다. 누구도 돈 자체를 위해 살지는 않는다. 돈은 행복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중요하다."  (p.287)


저자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역행자의 지식을 따르라고 말한다. 자신의 운명이나 본성에 맞서 역행자로서의 삶을 살라는 뜻이다. 돈을 버는 근본 원리인 "상대를 편하게 해 주기" 혹은 "상대를 행복하게 해 주기"를 꾸준히 실천함으로써 패배를 통해 성장을 지속하라고 권유한다. 실패를 해야만 '레벨업' 버튼을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둑에도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원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경제적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성공의 비법이 존재한다. 그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원리와 비법만 안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승리의 경험과 자신감이 나를 더 높은 단계로 밀어 올리며 그와 같은 과정은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이 책을 더욱 집중해서 읽었던 까닭은 저자가 강조하는 바가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과 융합하기 위해서는 자의식 해체가 필수이며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가 성공의 밑거름이라는 생각. 우리는 어쩌면 자의식 과잉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까닭에 나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한 발 양보하거나 융화하지도 못하고, 세상을 온통 적대시하며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산을 오르고, 틈틈이 책을 읽고, 메모를 하거나 글을 썼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운 것은 자의식을 해체하는 일이다. 아무리 제 멋에 산다지만 자의식을 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세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오늘도 나는 자의식의 프레임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겨우 3월이 가고 있는데 들에는 벌써 이른 봄꽃이 피었다 지고 산천엔 온통 신록이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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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끌리는 사람들, 호감의 법칙 50 - 그 사람은 왜 또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걸까?
신용준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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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어 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말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정작 말을 하고 있는 당사자는 이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이 말을 처음 시작하는 시기와 맞물려 자신은 이미 남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꼰대' 대열에 동참했다는 것이며, 인정하기 싫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기피 대상 1순위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며,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여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인격체로 재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너 자신을 알라.'로 통칭되는 무지에 대한 자각이 무감해졌음을 의미하며, 지금까지의 경험 이외의 다른 어떤 가르침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도 이런 뜻이리라. 다른 이의 충고나 조언은 무시한 채 오직 자신의 고집 대로 행동한다는 것.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말하는, 마치 어렸을 때 경험했던 답답하기만 한 학교 담임선생 같은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고 표현한다.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면 꼰대 취급받는다."  (p.274)


비즈니스 강의 분야에서 수강생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명강사이자 기업교육 전문회사 에듀콤 교육연구소 대표이사인 신용준 강사의 저서 〈괜히 끌리는 사람들, 호감의 법칙 50〉에는 상대에게 호감을 얻는 방법부터 관계를 발전시키는 법, 좋은 인상을 남기는 대화법 등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말하자면 불편한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와 사례를 들어 집필한 심리학 자기계발서인 셈이다. 사실 인간관계에도 어느 정도의 연습이 필요하지만 학업을 마친 후 취업과 동시에 맞닥뜨리게 되는 다양한 인간관계에 의해 지치고 불편한 감정이 지속되다 보면 나의 단점을 개선하여 호감도를 높여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만 증가하게 된다. 즉 자신의 단점보다는 타인의 단점만 부각된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인식으로 인해 틀어진 인간관계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상대방에 의해 촉발되었을 뿐 나와는 무관하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는 세상에 불평한다. 성공한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고 말이다. 여기에도 호감의 법칙이 존재한다. 호감이 가기 때문에 같이 일하고 싶어지고, 일을 맡겨도 마음이 편하다. 실력이 월등히 차이 나면 물론 기회는 실력 좋은 사람에게 간다. 하지만 실력은 일반적으로 긴 시간 동안 반복하여 익히면 누구나 일정한 수준에 올라갈 수 있다. 실력이 엇비슷한 상황이면 역시나 호감 가는 사람에게 일을 주고 싶다는 뜻이다. 결국은 실력이 비슷해지면 호감 가는 사람이 더 잘나간다."  (p.17)


삶은 90퍼센트 이상이 인간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무인도에서 홀로 살지 않는 한 인간관계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좋은 삶이란 좋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인간관계로 상황이 유리해질 수도 불리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결국 삶에 있어서 호감이라는 전략무기를 갖출 수만 있다면 다양한 상황 속에서 좀 더 좋은 혜택을 얻을 수도 있고 좀 더 깊은 만족감을 경험할 수도 있음을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생(一生)을 살고 있다. 딱 한 번뿐인 인생이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말하지만 한평생 살며 무언가 이루어 놓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 인생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다. 꼭 대단하고 시대를 흔드는 것이 아니어도 된다. 적어도 남들 앞에 열정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에게 호감이 가는 법이다."  (p.224)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그동안에 쌓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 인생에 필요한 지식을 모두 습득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내가 겪어 봐서 아는데..."와 같은 말투는 자신의 경험에 준거해서 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인 양 일반화하는, 소위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오류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배움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에게 남는 것은 오직 아집과 불평뿐이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무수히 많고, 내가 아는 것이라곤 티끌처럼 아주 작고 미미하다는 생각이 선행되어야만 저자의 충고 또한 유효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자신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방법부터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얻는 방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 방법, 자신의 인간관계를 개선하는 방법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매력을 발휘하는 방법까지 책에서 제시하는 여러 호감도 증진 방법에 대해 한 수 배워보겠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독자의 바른 자세일지도 모른다. 인간관계에도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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