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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수요일 토요일
페트라 펠리니 지음, 전은경 옮김 / 북파머스 / 2025년 8월
평점 :
은행잎에 단풍이 들기 훨씬 전부터 은행잎을 통과하는 가을 햇살이 먼저 노랗게 물이 들고 있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가 아기를 껴안기도 전에 입꼬리에 걸린 미소와 눈웃음이 절로 피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계절의 엽서와도 같은 그런 전조를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이나 포옹보다도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이나 온기를, 실수가 잦은 아이의 성장을 믿어주는 엄마의 단단한 눈길을 더 사랑하는 까닭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동네방네 소문내지 않더라도 만남이 이어질 때마다 내 가슴에 닿는 그 푸근함을 더 좋아한다. 유난을 떨거나 서로에게 확인을 받지 않아도 당신과 나 사이의 관계가 쇠사슬보다 더 단단하다고 믿는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나는 더 좋다. 헤어짐에 앞서 내 뒤주머니에 나도 모르게 슬쩍 찔러주던, 편지봉투에 담긴 당신의 사랑을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한다.
오스트리아 작가 페트라 펠리니가 쓴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은 그런 소설이다. 15세 소녀 린다의 마음을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소설, 치매에 걸린 후베르트 할아버지의 마음을 또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소설. 그런 바람들이 아무리 페이지를 넘겨도 사그라들지 않는 소설. 그래서 조금쯤 지루하다 느낄 수도 있는 소설. 그럼에도 이쯤에서 갑자기 뚝하고 멈추는 걸 바라지 않게 되는 소설. 멈춤이 곧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너무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까닭에 책을 읽으면서도,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면서도 남은 페이지를 나도 모르게 슬쩍 바라보게 되는 소설.
"후베르트와 에바와 나, 이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가 제일 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면 과장이 될 테지. 우리는 서로를 느낀다. 서로 파고들거나, 그게 아니라도 어쨌든 서로에게 다가가는 물결 또는 아이들이 손으로 하는 놀이와 비슷하다. 제일 위에 있는 손 위에 다른 손이 놓이고, 제일 아래에 있는 손이 빠져나와 다시 제일 위에 놓이고,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감정과 분위기와 몸짓이 쌓인다. 어떤 때는 후베르트의 으르렁거림이, 또 어떤 때는 에바의 국가가, 또 어떤 때는 내 유머가 위에 놓인다." (p.119~p.120)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86세의 노인 후베르트와 죽는 것이 소원인 15세 소녀 린다가 무너져가는 일상 속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삶의 희망을 되찾아가는 내용의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마치 내가 마르셀 푸르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단행본으로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매일 조금씩 다르지만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반복해서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치매를 앓는 후베르트는 하루가 다르게 기억을 잃어가고, 그런 후베를트를 24시간 간병을 하고 있는 폴란드 출신의 에바, 간병인 에바에게 잠시의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같은 건물에 살면서 일주일에 세 번 방문하여 후베르트의 말벗이 되고 있는 린다, 후베르트의 딸 나방, 린다의 남사친이자 유일한 친구인 케빈, 린다의 엄마와 엄마의 남자 친구인 위르겐 아저씨 등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다. 370여 쪽의 긴 소설 분량에 비하면 인물 설정은 꽤나 단출한 편이다.
"나는 한숨을 내쉰다. "우리 그냥 그런 척하자." 엄마가 무슨 말이냐는 눈길로 나를 본다.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척하며 지내. 사는 게 괜찮은 척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들 잘해내지 못해. 우리도 그런 척할 수 있어. 우리 삶이 괜찮은 척." 엄마는 손가락을 치켜들고 붕대를 가만히 노려본다." (p.222)
린다는 평생을 야외 수영장 안전요원으로 일했던 후베르트를 위해 어렵게 외출을 감행하기도 하고, 일시적으로 간병인 자리를 잃었던 에바의 복귀를 위해 애쓰기도 한다. 그럼에도 린다는 16살이 되는 자신의 생일 즈음에 맞춰 도로를 달리는 차에 뛰어든다. 그러나 심각하지 않은 부상을 입고 퇴원한다.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린다는 목발을 짚은 채 후베르트를 찾는다. 후베르트는 이제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다. 그리고 후베르트의 죽음 이후에도 삶을 이어가야 하는 린다와 에바. 린다는 이제 엄마를 생각하여 죽지 않기로 결심한다.
"죽음에서 가장 좋은 점이 뭔지 아세요? 아무도 미래로 할아버지를 협박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미래로 나를 협박할 때면 엄마는 내가 미래를 잘못 설계한다거나 망친다거나 뭐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해요. 그런 상황에서 내가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몸을 뒤로 기대고는, 강아지들이나 손뼉치기 노래 가사를 생각해요. 아, 죄송해요. 말이 다른 데로 샜네요." (p.322~p.323)
"나는 후베르트처럼 한다. 모든 것을 한곳에 쓸어 담는다. 사람과 계절, 사건을 모두 한군데에 담고 뒤섞으면 다 괜찮아진다. 모두 살아 있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빠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현실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 (p.368)
도로 옆 인도에도 조금씩 낙엽이 쌓이고 있다. 무심한 발길이 그 위를 오가고, 닳고 닳은 시간처럼 부스러진 낙엽이 흩어진다. 계절을 닮은 석양이 휴일 언저리를 훑고 지나는 동안 먼 곳에서 구급차 소리가 요란하다. 페트라 펠리니의 소설<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은 사실 스토리에 끌린다기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더 매력적인 작품이다. 스토리는 어쩌면 작가의 사유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슬한 바람이 분다. 창문을 닫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