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대화와 타협을 증진하며, 소수 의견 개진의 기회를 보장하면서도 심의의 효율성을 강화하여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국회를 구현하고자' 2012년 5월 2일에 개정된 국회법 조항이 있다. 이른바 우리가 알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이 바로 그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사실 위반시 매우 엄격한 처벌이 가해지는 까닭에 현직 국회의원 및 국회의원에 출마하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국회선진화법' 저촉 여부를 심각하게 따져볼 수밖에 없다. 5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의원직 상실은 물론 5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되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 5년은 짧다면 짧은 기간일 수 있지만 정치인에게 5년은 영원과 같은 시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인을 벌벌 떨게 만드는 법이라고 해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사람들은 늘 있게 마련, 남편이 판사이거나, 현직 국민의힘 의원이거나, 내란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김건희와 가깝게 지냈던 사람이라면 전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국회에서 빠루를 들고 설치다 기소가 되어도 1심 선고가 내려지는 데는 무려 6년이란 긴 시간이 소모되기도 하고, 여론에 등 떠밀려 재판이 열린다 한들 검찰의 구형과는 상관없이 벌금 400만 원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형에 처해짐으로써 의원직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재판장의 하혜와 같은 배려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벌금 400만 원이 준비된 능력자라면 앞으로도 계속 국회에서 빠루를 들고 설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는 점이다. 그게 보기 싫다고? 그러면 당신도 판사 남편을 두거나 국민의힘 의원이 되면 된다.


2019년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기소되었었던 국민의힘 전신 자유한국당 지도부 전원이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결심공판에서 500만 원 미만의 비교적 가벼운 벌금형에 처해짐으로써 다시 동물 국회로 회귀해도 된다는 법원의 공식적인 허가를 받게 되었다. 법원을 나서는 피고인들의 표정에서 그들의 속내를 추측하자면, "너무 부당한 것 같다고? 지금 감히 하느님과 동격인 판사의 결정에 불복한다는 얘기? 고귀하고 신성시하는 사법부의 권위에 도전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 봐라. 이참에 본때를 톡톡히 보여줄 테니. 그리고 재판장과 가까운 사람은 너희와 같은 대중 나부랭이와 계급이 달라.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외치는 놈들은 다 빨갱이고, 좌파야. 어딜 감히..."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법원은, 말하자면 사법부는 법률로 정한 국회의 운영도 자신들의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되돌릴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쥐고 있다. 2025년 11월 20일의 판결을 통해 그것을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게 보여주었다. 사법부는 하느님과 동격이니 어느 누구건 대들지 말지어다. 대한민국 국회는 다시 동물 국회로의 회귀를 명한다. "땅, 땅,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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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농담 말들의 흐름 7
편혜영 외 지음 / 시간의흐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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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이제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매년 이맘때면 사람들은 유난히 이 음식에 집착하곤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술이다. 술을 음식이라고 말해도 되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럼에도 나는 술꾼들의 기분을 전혀 모른다. 그렇다고 내 주변에 술꾼들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가깝게 지내는 술꾼들이 내게 이따금 자신들이 거나하게 취했을 때의 기분을 자세히 들려주기는 해도 직접 경험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이렇다 저렇다 도무지 평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이 태어난 까닭에 술은 입에도 대지 못한다.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면 얼굴은 물론 온몸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기운이 쭉 빠지는 통에 그 즉시 잠을 자지 않으면 활동을 하기 어렵다. 남들은 즐겁자고 마시는 술이지만 나에게 술은 그야말로 사약에 버금가는 고통유발물질에 불과할 뿐 기호식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술을 가까이해보려 억지로 노력한 적은 있었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좋아했던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술자리를 일부러 피하거나 술꾼들과 거리를 두려 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나는 술을 못 마시는 것에 대해 일종의 죄의식(?)이나 미안함을 더 크게 가졌던 듯하다.  그런 마음이 나를 더 자주 술자리로 이끌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 바람에 나는 술값이며, 대리기사 호출 등 술꾼들의 뒷수습을 전담하는 뒷감당 전담 매니저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자리매김하면서부터 웬만한 술자리에는 으레 나를 부르는 것이 일종의 선결 과제로 정착되고 말았다. 이처럼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 술자리 경험은 누구 못지않게 풍부했던 까닭에 술에 관련된 전문 서적이나 술과 얽힌 경험담을 쓴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주 기꺼운 마음으로. 편혜영 외 다섯 명의 작가가 쓴 <술과 농담>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말들의 흐름' 시리즈 네 번째 책이었던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을 우연히 읽었던 게 이 시리즈 중 몇 권의 책에 더 손이 간 직접적인 계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 무렵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유별난 조갈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혼자 아이를 감당하느라 얼마나 지쳤는지, 날마다 자라는 아이를 돌보면서 나이 들어가는 스스로에 대해서는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당시의 나는 한번도 헤아려보지 않았다. 길가에 앉아 바쁘거나 한가로이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등을 땀으로 적시는 손자의 무게를 견디며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맥주를 마시는 동안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조금도 모른다는 게, 지금도 종종 마음을 아프게 한다."  (p.24 '편혜영')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술의 미덕에 대해 찬양한다. 스트레스 해소에 그만이라거나 묵었던 앙금을 풀고 일치된 마음으로 단합하는 데는 술만 한 게 없다는 등 술에 대한 칭찬은 끝이 없다. 그러나 술로 인한 실수나 실패의 경험 또한 술꾼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대목이다. 과거 우리 사회가 술에 대해 무한정으로 관대했던 시기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을 상대로 입사 축하주랍시고 독한 술을 들이붓는 바람에 양복을 입은 채로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풍경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못 먹는 술을 억지로 권하던 풍습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고, 술은 그야말로 좋아하는 사람의 기호식품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스무 살에 시작된 만취 습관은 일 년 정도 계속되다가 스물한 살이 되자 그야말로 볕을 받은 눈송이처럼 녹아 없어졌는데, 그건 단지 한 살 더 먹어서가 아니라 어떤 허무의 집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테이블 위의 술을 몽땅 마셔버릴 수 있을 것만 같던 호기롭던 마음과 사랑이니 정의니 하는 아름다운 단어를 들으면 언제라도 거리로 뛰쳐나갈 수 있을 것 같던 그 간질거리던 마음은 술자리가 끝나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귀갓길에선 예외 없이 허무가 찾아왔다. 이상한 걸 알면서도 이상하고 싶어 했던 스무 살은 그렇게 지나갔다. 솔직해서 풋풋했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게 미덕이기도 한, 단 한 번의 시절...... 솔직함의 시절, 가끔은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p.49 '조해진')


술에 관대했던 사회적 분위기는 술의 소비를 한껏 부추겼다. 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마저 '주취경감'이라는 이유로 형을 가볍게 하거나 용서하자는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가 한동안 지속되는 바람에 취객은 언제나 보호되고 용서되었다. 사회 공동체가 얼싸안고 힘을 합쳐 취객을 보호하자는 공동선언이라도 한 듯 우리 사회는 취객을 보호하는 데 언제나 앞장서곤 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동체 의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한 분위기에 어느 누구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동체 의식이 소멸되고 개인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요즘 취객의 실수는 용서받지 못할 범죄로 취급되고 있다. 가슴 답답한 누군가가 술에 취해 하던 넋두리는 이제 아무도 받아줄 이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게 조각조각 부서진 사회가 더 많은 술꾼을 양산하고 있지만, 그 모든 술꾼들에게 '입은 닫고 실수는 금물'이라는 표어를 강제하는 바람에 술에게도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우울한 현대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취해서 길에 누운 자들이 보일 때마다 경찰에 신고했다. 어찌된 일인지 모두 남자들이었다. 여름밤, 겨울밤. 경찰들은 대개 친절하게 말했고 더욱 친절하게도 경과를 문자로 알려주기까지 했다. 언젠가 내가 길 위에 눕게 된다면, 누가 나를 경찰에 신고하게 될까? 나는 그에게 스타벅스 커피쿠폰이라도 미리 보내주고 싶다. 혹은 발베니 21년산 한 병을. 나는 단 한 번 단 한 잔 그 술을 마신 적이 있고 그대로 죽고 싶었다."  (p.127 '한유주')


못 믿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술을 못 마신다는 건 팔이 하나 없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과 동일하게 취급되었다.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멀지 않았던 과거의 일이다. 나 역시 음주량을 늘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시절이 있었다. 공동체 의식이 과하게 넘쳐나던 시기였고, 한 사람이 술을 마시면 구성원 모두가 예외 없이 마셔야만 하던 시절이었다. '먹고 죽자'는 말이 농담처럼 읊어지던 시절이었고, 서툰 개인주의가 구성원 모두에게 눈총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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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또 한 주를 시작해야 합니다. 어제는 새벽부터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손전등을 비출 때마다 짙은 농도의 어둠 속으로 서너 장의 낙엽이 사선을 그리며 낙하하곤 했습니다. 간밤에 소리도 없이 살짝 흩뿌렸던 비가 메마른 낙엽 위에 이슬처럼 맺혀 있고, 나의 발길이 닿을 때마다 비명을 지르듯 서걱댔습니다. 습관처럼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낼 테고 차분히 헤아리거나 의식하지도 못하는 채 한 주를 또 그렇게 흘려보낼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거짓말처럼 바람이 잦아들었습니다. 올가을 들어 처음 영하로 떨어진 아침, 날이 추울수록 공기는 맑다는 걸 아는 나로서는 갑작스러 추위가 영 마뜩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나는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습니다. 공기는 맑고 고요는 깊었습니다. 고요가 한정 없이 깊어서 산을 오를수록 낙엽 밟는 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어둠을 밀어내는 손전등 불빛이 힘겨워만 보이고, 인근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는 벌써 일꾼들의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립니다. 어제에 비해 등산객의 숫자는 많이 줄어든 느낌입니다.

문형배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쓴 <호의에 대하여>를 읽고 있습니다. 전업 작가가 쓴 글처럼 매끄럽거나 맛깔난 문체는 아닙니다. 그러나 투박한 문장에서 그의 진심이 묻어납니다. 책의 제목은 <호의에 대하여>이지만 나는 '진심에 대하여' 생각하며 책을 읽어나갑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30대에 형사 단독 판사를 할 때 어느 지원장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30대가 되면 단독 판사로 판결할 수 있다." "부처님도 득도한 때가 30대였고, 예수님도 돌아가실 때가 서른세 살이었다." 그분의 말씀을 지금에 와서 풀어보자면 '세월의 부피가 아니라 세월의 무게가 중요하다. 그러니 나이의 적고 많음에 얽매이지 말고 세월의 무게를 체화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경험하라'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p.106 '나이 먹는 일의 기쁨과 슬픔' 중에서)

해가 뜨면서 어느 정도 한기는 가셨지만 한낮에도 기온은 크게 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앞선 날들이 평균 이상으로 더 따뜻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나는 점심을 먹고 공원을 한 바퀴 도는 것도 거른 채 서둘러 사무실로 복귀했습니다. 창밖에는 늦가을 햇살이 넘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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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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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가늠하는 저울추는 항상 동일한 무게로 당신의 삶을 저울질하지 않는다. 때로는 과도하게 무거운 저울추로 당신의 삶을 찍어 누르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가벼운 저울추로 당신의 삶을 들뜨게도 한다. 그것이 불공평하지 않느냐고 항변해도 어쩔 수가 없다. 당신의 삶을 되돌리거나 새로운 환경에 떡하니 내놓을 방법은 그 누구에게도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구성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일러 '운명'이라거나 기타 명명할 수 있는 다른 어떤 불경한 이름으로 부른다 해도 힘겨웠던 개개인의 지난 삶에 대한 분풀이나 보상은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우리는 대체불가의 크고 작은 불행에 대해 서로에게 동병상련의 위로를 건넬 수 있을 뿐이다.


"치료의 80퍼센트는, 그 이상은 아닐지 몰라도 바로 너야. 환자라고. 이제 의사들한테 그렇게 초점을 맞추는 건 그만둬. 의사들한테는 네게 줄 게 아무것도 없어. 너한테 필요한 건 완벽한 의사가 아니야. 그들도 사람이야. 우리 나머지랑 똑같이 결점을 지닌 인간. 너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해. 나는 록산의 솔직함에 놀라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너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네 이야기를 하게 될 거라고. 의사들뿐 아니라 네 가족들도. 록산이 다리를 꼬고, 왼손으로 소파를 짚은 채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자기 시간을 나에게 내어주고 있었다."  (p.365~p.366)


수잰 스캔런의 에세이 <의미들>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그녀가 겪었던 이런저런 삶의 불행에 대해 조용한 위로의 말을 건넬 수밖에 없다. 1992년, 스무 살의 대학생이었던 작가는 극심한 식이 제한과 자해 끝에 뉴욕주립정신의학연구소에 입원하여 그곳에서 3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다. 장기 입원이 정신의학의 표준 치료로 여겨지던 시절이었고, 의사들은 환자의 증세를 과거의 외상과 연결하려 애쓰던 시기였다.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암으로 어머니를 잃었던 작가는 가족들의 침묵 속에서 애도의 과정도 없이 성장했고, 뉴욕으로의 이주와 식사를 중단하겠다는 결정, 그리고 첫 자살 시도로 이어지는 정신적 고통의 기원이 당시 의사들의 주장처럼 단순히 어머니의 죽음 하나에서 발원했을까. 작가의 기록은 정신질환을 겪었던 암울했던 시기의 회고록이자 광기와 의학에 대한 문학적 전통을 탐구한 작가 나름의 고찰이다.


"글을 쓰는 데 필요한 것은 고요함과 하나에 집중하는 정신의 조합이다. 하나의 문제와 함께 방 안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는 것."  (p.115)

"그 시절, 예술은 하나의 빛이었다. 나에게 통곡과 그리움을 위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경계선 위에서 혹은 경계선 바로 너머에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p.256)


총 3부로 이뤄진 이 책에서 작가는 작가 개인의 사적 기록과 자신이 탐구한 여러 문학인으로부터 옮겨 온 적절한 인용,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과 불합리한 사회 인식에 대한 비판 등을 적절하게 섞어가면서 문학비평의 한계를 회고록으로 확장하고 있다. 정신질환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했던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하여 여성 작가의 계보를 이었던 샬럿 퍼킨스 길먼, 실비아 플라스, 에이드리언 리치, 줄리아 크리스테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재닛 프레임, 시네이드 오코너 등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내재했던 자아를 발견하고, 정신질환의 길고 긴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독서가 나를 구원했다. 어리석게 들릴 수 있는 말이고, 이런 말을 하는 게 민망하기도 하다. 과대망상이라거나 낭만적이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고, 더 심한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이 진실일 수 있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고, 나에게는 진실이었다. 만약 그날 밤 내가 그 서점에 가지 않았다면, 그래서 에이드리언 리치의 낭독을 듣지 않았고,분노한 여자들』을 읽지 않았다면, 오드리 로드를 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p.431)


가가 자신이 겪었던 정신질환에서 극적으로 벗어날 수 있게 했던 구원자는 수년간 복용한 약이나 비싼 상담이 아니라 문학이었다. 작가에게 삶을 뒤흔드는 욕망의 언어를 제공했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이나 의료의 틀이나 형식에 맞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던 오드리 로드의 '암 일기'를 읽음으로써 작가는 자신이 누구인지, 앞으로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를 기록하고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획득했던 것이다. 우리들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여분을 이쯤에서 포기하고자 한다는 건 어쩌면 자신의 내면에 존재했던 자신의 문장, 혹은 자신의 목소리를 잃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모든 걸 포기하려는 그 순간에 우연히 읽었던 한 권의 책, 어느 광고판에서 우연히 읽었던 하나의 문장, 또는 늦은 밤 어느 포장마차에서 들었던 누군가의 한마디가 나를 살리고, 잃어버렸던 자신의 문장을 다시 쓰게 했는지도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낙엽이 이따금 눈송이처럼 흩날리곤 한다. 등산로에도 켜켜이 쌓인 낙엽으로 인해 지면의 고저를 가늠하기 어렵다. 비탈길을 오르는 등산객이 가랑잎을 밟고 미끄러지기도 한다. 우리들 각자의 인생길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낙엽만 무성한 허방을 밟을 때도 있고, 때로는 길 위에 넘어져 피를 철철 흘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신의 목소리, 인생을 비추는 등불과도 같은 그 하나의 문장을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문장을 되찾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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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사만 다니다 인생 종쳤다 - 떠났을 뿐인데 수입 30배를 달성한 비결
나가쿠라 겐타 지음, 김진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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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의 등산로는 달이 밝았다. 나는 이따금 손에 든 손전등을 끈 채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달빛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새벽 냉기를 닮은 달빛이 시리게 쏟아졌다. 발에 밟히는 낙엽 소리가 수런거리는 달빛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달빛이 던지는 뜻 모를 대화가 좋아서, 바스락거리는 마른 낙엽의 속삭임이 좋아서 나는 번번이 가던 걸음을 멈춘 채 어둠의 그늘 속에서 꽤나 긴 시간을 보냈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도 까맣게 지워버린 채.


직장인의 삶은 언제나 시간에 대한 강박과 스트레스로 발이 묶인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자신의 삶이 오롯이 자신의 것이라고 인식하기 어렵다.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또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 그 대가로 받는 월급을 미끼로 그날이 그날 같은 변하지 않는 일상을 끝도 없이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이러한 생각에 한두 번이라도 젖어 들어 본 적이 있는 직장인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가쿠라 겐타가 쓴 <나는 회사만 다니다 인생 종 쳤다>이다. 제목이 다소 도발적이기는 하지만 책의 내용은 상당히 논리적이다. 논리적일 뿐만 아니라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도 속이 뻥 뚫리는 듯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대학 졸업 후, 여러 직장을 거쳐 28세에 출판사로 이직하여 편집자로서 베스트셀러를 연이어 냈음은 물론 지금까지 기획 및 편집한 책의 누계가 1,100만 부가 넘는다는 저자는 독립 후에는 8년에 걸쳐 호놀룰루, 샌프란시스코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회사원이 노동과 능력에 맞는 수입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는 노동자가 낸 수익의 일부를 노동자에게 급여로 주기 때문이다. 이론상, 노동자가 낸 수익과 동일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급여를 주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급여 이상의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회사원이라는 직업이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 이론으로 보자면 회사원으로 살며 이득을 보는 건 급여 이하의 일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런 마인드로 산다면 인생은 절대 달라지지 않는다."  (p.111)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장을 구분하는 각각의 소제목을 보면 대략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겠지만, 책에서 저자는 '이동'의 중요성을 끝없이 강조한다. 여기에서 '이동'이라 함은 익숙한 환경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직장에서 저 직장으로의 이직 또는 알뜰히 돈을 모아서 형편에 맞는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하는 게 아니라 갑작스러운 퇴사 혹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으로의 이사를 말한다. 말하자면 자신이 최악의 환경에 놓이게 함으로써 전에는 미처 몰랐던 자신에게 내재한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전과는 다른 새로운 분야에서의 수익 창출을 도모하라는 것이다. 제1장 '왜 이동하는 사람은 잘되는가?', 제2장 '이동 중에는 왜 인풋과 아웃풋이 활발해지는가?', 제3장 '왜 이동하면 행동력이 오르는가?', 제4장 '왜 이동하는 사람은 일거리도, 돈벌이도 늘어나는가?', 제5장 '왜 이동하면 좋은 인간관계가 늘어나는가?', 제6장 '이동 체질을 만드는 30가지 액션 플랜'의 소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저자는 '이동'의 중요성에 대해 끝없이 강조한다.


"회사원은 무의식적으로 편안해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볼 수 없게 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그래서 내가 '회사를 그만둬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독립하고 나서 나는 회사원 시절과 달라졌고, 출장만 다니는 인생을 보내게 됐다."  (p.38)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사정과 형편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부양해야 할 노부모가 있어서, 나는 줄줄이 딸린 어린 자녀들을 돌봐야 해서 등 지금 자신이 몸 담고 있는 회사로부터 떠날 수 없는 이유는 수백 수천 가지도 넘게 댈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개인의 의지와 선택의 문제일 뿐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 최종적인 결단은 그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의 문제이다.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면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느냐 아니냐는 어쩌면 내게 그만한 용기와 배짱이 있느냐는 물음으로부터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고민'과 '망설임'도 그렇지만 '반성'도 시간 낭비, 그야말로 인생 낭비다. 이것도 블랙잭을 통해 배운 교훈으로, 반성할 틈은 없다는 뜻이다. 반성하는 사이에 다음 게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인생은 더 잔혹해서, 본 게임만 계속 이어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리허설이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본 게임만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반성하는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보다 반성은 상황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 하는 것으로, 일이 잘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명확할 것이고 명확하지 않은 경우는 운이 나빴을 뿐이다."  (p.187)


나는 요즘 이따금 시간이 나면 보게 되는 예능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김연경 선수가 신인 감독으로 나오는 프로그램으로 그곳에서 김연경 감독은 선수들에게 진심을 다해 가르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녀는 이런 말도 했다. "타협하지 마. 익스큐즈가 아니고 솔루션으로 바꿔. 그래야 큰 선수 돼." 맞는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삶에 무수히 많은 핑계를 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용기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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