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꼼쥐님의 서재 (꼼쥐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18 Sep 2026 14:31:48 +0900</lastBuildDate><image><title>꼼쥐</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A_018.gif</url><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꼼쥐</description></image><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편안함의 뒷면엔 - [계절 쓰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23607</link><pubDate>Fri, 18 Sep 2026 12: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236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907&TPaperId=175236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35/coveroff/k0921309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907&TPaperId=175236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계절 쓰기</a><br/>김연수 외 지음 / 물결점 / 2026년 07월<br/></td></tr></table><br/>우리말에서 '철들다'는 말은 절기, 제철을 알고 산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계절의 순환을 알고 그에 맞춰 삶을 꾸려간다는 뜻이다. 계절의 순환을 안다는 게 무에 그리 어려울까 싶지만은 '철들자 망령'이라는 우리 속담에서 보듯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계절의 순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걸 조상들은 은연중에 넌지시 암시하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자연의 순리를 어느 정도 깨우친 듯싶은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이미 생을 마감할 시기가 되었다는 뜻이다. 농사를 짓던 조상들도 이럴진대 계절의 변화를 사무실이나 거실 유리창을 통하여 감지하는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은 오죽할까 싶다.<br>그럼에도 계절의 변화를 남들보다 민감하게 느끼는 이들이 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음악을 하는 이들이 그러하다. 계절이 교차하는 그 순간의 특별한 느낌이나 감정을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하지 못하면 매번 우리는 그날이 그날 같은, 변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것 같은 둔감하고 탁한 느낌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익숙함이란 결국 죽음과 같은 것이다.<br>"요새는 알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50년을 살았는데, 다음 해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요즘처럼 많이 한 적은 없다. 그런데 그것 또한 어쩌면 자연스러운 섭리인지 모른다. 나이 든 사람은 닥쳐오는 어두운 겨울을 애써 들여다보는 대신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는 것도, 이 가을에는, 다가오는 겨울을 생각하면서 아직 어린 것들을 거두어 건사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nbsp; (p.41)<br>소설가 김연수 외 7명이 공동 집필한 &lt;계절 쓰기&gt;는 각각의 계절에 대해 두 명씩 나누어 씀으로써 사계절을 아우르고 있지만, 글쓴이의 구성이 모두 문학가는 아니어서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다분히 '아, 이제는 인류학자도, 식물분류학자도 계절을 사는 일에 민감해졌구나.'라는 생각에 놀랄지도 모른다. 물론 이와 같은 변화가 최근에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가 과거에 알던 계절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계절의 모습도, 계절이 찾아오는 시기도, 계절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모두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멈춰 선 게 아니라 지금도 꾸준히 진행 중에 있다.<br>"정원의 가구에 녹이 슬고 있다. 겨울을 맞아 치워두는 것을 잊은 것이다. 나무들이 뼈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공기에 불 냄새가 감돈다. 온갖 영혼들이 사냥감을 찾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장미들이, 아직 장미들이 있다. 습기와 한기 속에, 생명이 사라진 듯 보이는 덤불 위에 활짝 핀 장미가, 아직 있다. 저 색깔 좀 봐."&nbsp; (p.118)<br>우리는 점점 모호해지는 계절과 계절 사이의 경계를, 두 계절 또는 세 계절이 한 계절에 중첩된 듯한 낯선 계절의 이미지를, 그리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또렷한 사계절의 변화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난여름에 겪었던 혹독한 더위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것이 끝이 아닐 것이라고, 어쩌면 올여름이 우리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여름 가운데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지도 모른다고 전망한다. 화석 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기후 변화는 히말라야 빙하마저 녹게 했고 네팔 대홍수와 같은 처참한 재난을 겪게 했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계절에 예민한 작가와 학자들로 하여금 예전과 달라진 우리의 계절에 대해 솔직한 느낌을 기술하게 한다.<br>"그렇게 우리의 여름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바람과 구름이 지나가듯이. 매일의 날씨가 달라지듯이.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낮과 밤이 번갈아 찾아옵니다. 낮은 밤을 모르고 밤은 아침을 알지 못하지만, 여름은 그렇게 지나가고 또 돌아옵니다."&nbsp; (p.24)<br>이웃나라 일본은 22일째 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내가 사는 곳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다. 연일 끈적끈적한 습도로 더 큰 더위를 느끼게 했던 여름에서 벗어나자마자 칼로 무를 자르듯 단칼에 습도를 끊어낸 느낌이다. 그렇게 이어진 건조한 날씨는 등산로의 크고 작은 물웅덩이마저 씨를 말렸고, 그 덕분인지 이맘때면 기승을 부리던 가을 모기도 올가을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샤워를 하고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금세 보송보송한 피부로 전환된다. 가을을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기상이변이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불안의 싹이 움트는 것은 이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상시적인 현상으로 진화했다. 기상이변을 두려워하면서도 우리는 그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두 눈을 감고 있다. 편안함의 뒷면엔 우리의 불안으로 가득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35/cover150/k0921309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593513</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자신의 마음속에 억울함을 품으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20234</link><pubDate>Wed, 16 Sep 2026 17: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20234</guid><description><![CDATA[이맘때의 등산로는 여뀌와 달개비의 세상입니다. 다른 풀과 나뭇잎이 시들시들&nbsp; 말라가는 시기에 여뀌와 달개비는 내 세상입네,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그들 무리 속에 키가 껑충한 미국자리공과 돼지감자도 이따금 한 자리를 차지한 듯 보이지만 여뀌와 달개비의 푸른 생명력에 묻혀 잔뜩 움츠러든 모습입니다. 가을을 노래하는 귀뚜라미 소리가 고즈넉한 숲의 고요를 깨우고 여뀌와 달개비에 맺힌 새벽 이슬이 등산객의 바짓가랑이를 적십니다. 추석 명절이 가까워지면서 가을 느낌이 한층 깊어지는 요즘입니다.<br>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 찾아왔건만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합니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30% 초반대를 보이고 이것이 바닥이라는 징후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까닭인지 오는 18일에 대통령의 기자간담회를 갖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18일을 기점으로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찍고 반등에 성공할까요?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지지율은 계속해서 하락할 것이라고 봅니다. 근본적으로 대통령의 자세나 여론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며칠 전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개혁의 이름으로 개혁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뜻에 반하여 바른말을 하는 사람은 개혁을 방해하는 세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른바 윤석열이 자신의 뜻에 반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반국가 세력'이라고 칭했던 것과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자신의 뜻에 반하는 사람들을 향해 '개혁을 방해하는 세력'이라고 하면 민주 대통령이고 '반국가 세력'이라고 하면 반민주 대통령일까요?<br>전에도 밝힌 바 있지만 나는 성인 된 이후 꾸준히 민주당을 지지해 왔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내가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과 압도적인 차이의 여대야소 정국에서 대통령과 민주당 당대표의 뻘짓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5년의 임기 내내 '명비어천가'만 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취임 후 2년도 되지 않은 임기 초반에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정말...<br>사람은 대체로 자신의 마음속에 억울함이 있으면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외부의 적을 세우게 마련입니다. 하나의 억울함이 있으면 한 사람의 적을, 두 개의 억울함이 있으면 두 사람의 적을, 세 개의 억울함이 있으면 세 사람의 적을... 이렇게 자신이 품은 억울함의 개수에 비례하여 외부의 적도 끝없이 늘려가게 마련이지요. 대통령이 지금 그런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나서서 직언을 하면 그 사람의 말에 대해 억울함을 품는 것은 물론 그 즉시 그를 적으로 돌려버립니다. 그리고 속으로는 '나는 잘하고 있는데 왜 저렇게 말할까? 나는 억울하다.'라고 앙심을 품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로는 국정 지지율을 끌어올릴 방법이 없습니다. 민주당의 당대표라는 자도 대통령과 뜻을 같이 하여 감찰을 하겠다는 둥 공천을 주지 않겠다는 둥 지지자들을 하나둘 적으로 돌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비판에 대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이 개선할 점을 살피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대통령과 그 권력에 기생하는 여권의 정치인들은 그렇게 할 의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지율은 계속해서 하락할 수밖에...<br>낮에는 제법 올랐던 기온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처럼 말입니다. 일교차가 어찌나 심한지 주변에는 감기 환자가 급격히 늘었습니다. 일상에서 우리도 자신의 내부에 억울함을 품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결국 손해를 보는 쪽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내부에 품은 억울함이 누군가로 향한 증오가 되고, 그것이 분출되면 결국 분란만 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니까 말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비판의 말이나 직언을 할라치면 자신의 행동을 살피고 개선점을 찾는 성숙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그리움은 한낮의 꿈처럼 - [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음악은 여전히 - 이윤석 산문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13265</link><pubDate>Sun, 13 Sep 2026 13: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132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636&TPaperId=175132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6/20/coveroff/k0921306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636&TPaperId=175132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음악은 여전히 - 이윤석 산문집</a><br/>이윤석 지음 / 레가토 / 2026년 08월<br/></td></tr></table><br/>산업화 시기에 학교를 다녔던 나는 당시의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는 무의미하다고 여겼다. 진로를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았다. 예컨대 누군가가 자신의 소질이나 적성에 따라 작가 혹은 연주자, 사진작가나 화가 등 이른바 예술 쪽의 진로를 선택하겠다고 하면 "얘, 그걸로 밥이나 빌어먹을 수 있겠니?" 하는 식의 퉁박을 받기 일쑤였다. 그것도 면전에서 말이다. 물론 그 모든 수모를 무릅쓰고 자신의 의사를 끝끝내 관철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처음에 가졌던 자신의 생각을 꺾고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뜻에 따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기술보다는 지식을 우선시했던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법대와 상경대의 인기가 압도적으로 높았고, 공대나 예체능 대학을 선택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과도하게 공대 진학 비율이 높은 지금의 분위기와는 저절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시대 상황이었지만 말이다.<br>이윤석 하모니시스트가 쓴 &lt;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음악은 여전히&gt;를 읽으면서 문득 나의 청소년기가 떠올랐던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국가나 기성세대가 개인의 진로를 강제적으로 지정한 것은 아니지만,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상황과 개인의 의사가 무제한적으로 수용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윽박지르거나 강압에 의해 진로가 결정되지는 않는 지금의 상황은 모든 게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언제나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기성세대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른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지만 말이다.<br>"전환점은 초등학교 시절 참가한 아시아 태평양 하모니카 대회에서 찾아왔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크로매틱 하모니카'를 만났다. 반음계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클래식 작품을 완벽히 소화하는 외국 연주자들의 모습은 어린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수소문 끝에 그 악기를 구했고 운명처럼 지그문트 그로븐의 음반을 만났다. 맑고 청아하면서도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 선생님의 하모니카 소리에 나는 단숨에 매료되었다."&nbsp; (p.14)<br>훌륭한 연주자는 많은 연습을 통한 뛰어난 연주 테크닉에서 비롯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나는 유명 연주자들의 인터뷰나 그들의 일대기를 다룬 자서전이나 평전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훌륭한 연주자는 테크닉도 테크닉이지만 결정적인 건 내면의 성숙도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이윤석 하모니시스트의 산문집을 꽤나 꼼꼼하게 읽었다. 사실 어쭙잖은 연주자나 음악가가 쓴 자서전 형식의 산문집을 읽어볼라치면 자신이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왔으며, 세계적인 지휘자나 유명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몇 번을 했다는 둥 자랑 일색으로 꾸며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아서 읽는 데 거슬리거나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비교적 솔직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감으로써 저자가 특별한 직업인이 아닌, 평범한 이웃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풀어내는 듯한 편안함이 느껴지게 했다.<br>"사실 이 글의 첫 문장을 쓰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일단 첫 줄을 적고 나니, 그다음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연주와 달리 글은 나중에라도 돌아가 고치고 다듬으며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된다. 물론 끊임없이 수정하고 싶은 욕망이 또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는 초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기꺼이 껴안고도 시작하는 용기다. 첫 소리를 내는 용기, 첫 문장을 쓰는 용기, 첫 발걸음을 내딛는 용기. 그것이 연주를, 글을,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nbsp; (p.71~p.72)<br>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피아노는 웬만한 집에선 구경하기 어려운 악기였다. 반면에 기타와 하모니카는 비교적 많은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친숙한 악기였다. 나 역시 잘 연주하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날 때면 하모니카를 간혹 불어 봤었다. 그럼에도 악기 연주에 영 소질이 없었던 나는 몇 번 만져본 것으로 그쳤을 뿐 연주자로 나서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저자는 국내에 전공조차 없던 시절에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노르웨이 음악원 하모니카 전공자로 입학하여 세계 무대의 심사위원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을 텐데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한다.&nbsp;Part&nbsp;I. '선택의 발자국',&nbsp;Part&nbsp;II. '무대 위의 순간들',&nbsp;Part&nbsp;III. '마음이 닿는 순간',&nbsp;Part&nbsp;IV. '음악이 삶을 닮아갈 때'의 총 4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온 한 예술인의 삶의 궤적과 깨달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br>"우리가 겪는 사건 자체가 절대적인 행복이나 불행인 경우는 드물다. 당시에는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라 믿었던 일이 시간이 흐른 뒤 성장의 소중한 밑거름으로 재해석되기도 하고, 지금 누리는 달콤한 행운이 훗날 나를 정체시키는 족쇄였음을 깨닫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즉 '마음의 조성'이다. 오늘 하루가 유독 고단하게 느껴진다면 마음의 조성을 살짝 바꿔보자. 당신의 오늘이 전혀 다른 음악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nbsp; (p.147~p.148)<br>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했던지 계절의 발걸음이 유난히 빨라진 느낌이다. 그 바람에 감기 환자가 부쩍 늘었다. 이 좋은 계절을 미처 느낄 새도 없이 감기와 씨름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다. 친구의 하모니카를 한 번만 불어보자며 사정사정해 겨우 건네받고는 가득 찬 침을 털어내느라 애를 쓰던 내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절에는 감기가 옮기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하모니카 하나로 온 동네 아이들이 각자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가며 서툰 솜씨로 생각나는 동요를 온종일 연주하곤 했었는데... 하모니카 하나로도 온 동네 아이들이 종일 행복했던 그 시절이 언제였는지 하모니카의 떨리는 소리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그 시절에 듣던 '섬집아기'를 누군가 옆에서 하모니카 연주로 다시 들려준다면 어떤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세 잠이 들 것만 같다. 그리움은 한낮의 꿈처럼 이어진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6/20/cover150/k0921306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36206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계절을 핑계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11580</link><pubDate>Sat, 12 Sep 2026 15: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11580</guid><description><![CDATA[경험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생각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우리들 대부분은 삶의 중심부를 향해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말하자면 삶의 테두리를 의미도 없이 빙빙 겉돌기만 하다가 주어진 삶을 마감하는 까닭에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이라면 어떤 것에도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살다 죽는 것이 매사에 노심초사하면서 사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로운 삶을 전혀 경험해 본 바 없거나 그것에 대해 극히 제한적인 경험을 갖고 있는 게 전부여서 자유로운 삶을 어떻게 구현하고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기껏해야 우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lt;그리스인 조르바&gt;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조르바의 삶이 자유로운 삶의 원형 또는 그와 유사한 어떤 것이라고 어렴풋이 추측할 뿐이다. 이런 얄팍한 지식으로는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자유로운 삶을 현실에서 구현하기는 어렵다.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그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남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모나지 않게 사는 것이 안전하다는 뜻이다. 조금 구질구질하기는 해도 말이다.<br>나희덕 시인의 산문집 &lt;마음의 장소&gt;를 읽고 있다. 시인이 쓴 산문은 한 꼭지 한 꼭지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짧고 단정하다. 전할 말만 남기고 기타의 군더더기는 모두 제거한 느낌이다. 사실 나는 시인이 쓴 산문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이처럼 간결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려하고 멋진 표현력 때문일 경우가 많다. 나희덕 시인은 나의 그런 바람을 충족시켜 주기는커녕 그 반대에 가까운데 나는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한 채 계속하여 읽고 있다. 달콤한 과자가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하여 손이 가는 것처럼 말이다.<br>"누구에게나 특별한 마음의 장소라는 게 있다. 살면서 지치고 외로울 때 오래된 친구를 찾아가듯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나에게도 그런 장소가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전남 강진에 있는 백운동 별서정원이다. 그곳과의 인연은 꽤 긴 편이다. 십여 년 전 지인의 안내로 월출산 아래 멋진 동백숲이 있는 집터를 가보게 되었다. 그 후로 낮은 돌담과 작은 오두막이 있는 그곳에 이따금 혼자 찾아가 앉아 있곤 했다. 집터를 구입할 사정은 안 되지만, 마음으로는 그곳에 수없이 집을 짓고 허물기를 반복했다."&nbsp; (p.190 '마음의 장소' 중에서)<br>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한 편의 시가 고픈 것은 순전히 계절 탓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나처럼 뻣뻣하고 감정이 무딘 사람에게도 한 편의 시를 읽게 하는 걸 보면 '가을의 마법'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나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었다. 서점 가판대에서 시집은 제법 인기 있는 코너였다. 세월이 무상하게도 요즘 사람들은 시를 잘 읽지 않는다. 유행 때문은 아니지만 나 역시 시와는 한참이나 멀어졌다. 계절을 핑계로 시집 한 권쯤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순전히 계절 탓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간절히 시가 고픈 건 사실이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가을은 글쓰기의 계절 - [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09778</link><pubDate>Fri, 11 Sep 2026 16: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0977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0592&TPaperId=175097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8/45/coveroff/k9921305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0592&TPaperId=1750977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a><br/>라비니야 지음 / 모티브 / 2026년 07월<br/></td></tr></table><br/>말과 글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는 마치 말과 글의 감옥에 갇혀 평생 말과 글로 하는 고문을 받게 된 느낌이다. sns에서 오가는 온갖 종류의 글과 유튜브 동영상에서 퍼지는 많은 말들. 그것뿐만이 아니다. 1인 출판이 활성화되는 바람에 시중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출판사의 책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이렇게 많은 말과 글에 갇혀 살아본 적이 있을까 싶다. 그러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심지어 sns를 멀리하려는 사람도 있다. 음성 통화를 하지 않고 회식이나 모임도 피하곤 한다. 말과 글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말과 글을 피하기 위해 적극적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이런 현상이 지속되는 까닭인지 최근에는 연인 사이에도 카톡 문자를 자주 하지 않거나 평상시에도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무뚝뚝한 남자가 오히려 더 각광을 받기도 한다. 다정도 병이 되는 세상인 것이다. 고려 후기 이조년이 읊었던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라는 말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 것일까.<br>"매일 스트레칭으로 굳은 근육을 풀어주듯, 마음의 결을 빗고 하루를 기록하는 시간은 중요하다. 스쳐 지나가는 상념에 이름을 붙이고, 엉켜 있던 사유를 풀어내며, 흩어진 감정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일. 글 속에서 자유롭게 감정을 풀어쓰고, 집요하게 욕망을 그러모아 들여다보다 보면 삶은 조금씩 선명해진다. 그 과정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과 마주하게 되고, 오래 외면했던 마음의 목소리를 듣게 되기도 한다."&nbsp; (p.8 '서문' 중에서)<br>나도 이따금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까닭에 나 역시 글을 통하여 세상을 어지럽히고 엄한 사람들을 글 감옥에 빠트리는 주요 범인 중 1인이라는 생각은 들긴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내가 올리는 글은 사람들이 읽어도 좋고 읽지 않아도 상관없는, 그저 나만의 취미생활을 통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 까닭에 상업적인 목적을 가진 글과는 구별되는 게 옳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뜩이나 글이 넘쳐나는 세상에 글 하나를 더 얹는다는 게 염치없고 마뜩잖은 일이라는 건 모르는 바 아니다. 라비니야 작가의 책 &lt;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gt;는 단순한 글쓰기 책은 아니다. 말과 글이 넘쳐나는 세상에 또 하나의 쓰레기와 같은 글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어지러운 세상을 더 어지럽게 만들라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나도 경험하는 바이지만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글을 쓴다는 건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일이기에 마음이 어지럽거나 안정이 되지 않을 때 명상을 하듯 매달리기에는 더없이 좋은 취미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것이 인간의 성숙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br>"경험상 나를 가장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글쓰기였다. 기록으로 옮겨 적은 감정은 마음속에서 한 번 걸러지고, 나는 자신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내 감정을 능숙하게 조절하거나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각자가 품고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과 표현 사이의 간극을 충분히 이해하는 이들일 것이다. 그 간극 때문에 우리는 서운한 것인데 화가 난 척 말하고,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굴며, 부끄럽다는 이유로 고마운 마음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이 모든 문제는 자기감정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해본 경험의 부족에서 비롯된다."&nbsp; (p.153~p.154)<br>1부 '쓰고 싶다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가', 2부 '쓰는 사람만 알게 되는 것들', 3부 '글은 결국 삶에서 나온다', 4부 '오래 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의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이 글 전체를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가 글쓰기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 이 책은 작게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대체로 '글쓰기'가 책상 앞에서 하는 고루한 작업이며, 생각만 해도 골머리가 딱딱 아픈 고리타분한 작업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한 번 갖게 된 선입견은 직접 겪고 깨닫지 않는 한 쉽게 바뀌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오히려 강화되는 현상을 보인다. 그러나 진지하게 글쓰기를 체험한 사람은 누구나 알게 된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서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큰 집중력이 요구되는가 하는 문제를. 그러므로 글을 쓴다는 건 수행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br>"살아가다 보면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때가 있다. 중심을 붙들기 어려운 날도 있고, 어떤 기억을 오래 붙잡고 싶어지는 시기도 있다.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조차 삶은 이상하게 자꾸만 새로운 감정을 건네 온다. 그 모든 상황과 감정은 결국 나만의 영감이 된다. 그런 순간을 마주했다면, 그것은 조용히 펜을 들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바로 그때, 한 번도 써보지 못했던 문장을 어색하게나마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천천히 고개를 들 것이다."&nbsp; (p.206)<br>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들 하지만 실은 글쓰기의 계절이라고 말하는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도 모르게 우수에 젖거나 기쁘거나 슬펐던 기억이 나도 모르게 떠오르곤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왔던 그 흔적들을 사람들은 유독 '가을'이라는 이 계절에 더 선명하게 떠올리기도 하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는 소망도 품게 되는 것이다. 빛바랜 사진과 함께 한 줄 메모를 남기는 일쯤이야 누군들 할 수 없으랴. 그러므로 가을은 '글쓰기의 계절'이 아닐 수 없다. 한 편의 매끄럽고 완성된 글이 아닐지라도 자신의 삶의 흔적이 묻은 글이 이 가을에 추억처럼 남는다면 그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기록되지 않은 누군가의 일상이 바람처럼 흩어지는 주말 오후, '언젠가 돋아날 날개 때문에 겨드랑이가 간질거린다'면 주저 없이 펜을 들어보자.&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8/45/cover150/k9921305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8455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생각이 많아지는 요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07551</link><pubDate>Thu, 10 Sep 2026 16: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07551</guid><description><![CDATA[갑자기 찾아온 가을에 들뜬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라도 하려는 듯&nbsp;요 며칠 맑았던 하늘은 어제오늘 우중충하게 흐려 있습니다. 길게 이어지던 늦더위는 사라진 듯하고 뚝 떨어진 아침저녁의 기온은 으스스한 한기마저 느끼게 합니다. 계절이 바뀌는 이 시기에 우리는 제법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br>연일 추락하는 대통령의 지지율을 보면서 나는 요즘 우리가 전임 정권 시절에 보았던 정치인 이재명에 대한 판단이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인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는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꽤나 힘겨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통과하여 변호사가 되었던 것을 보면 그는 남들보다 뛰어난 의지와 목표의식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성과를 낼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지닌 의지나 열정을 의심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가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온몸으로 겪고 목격하였기에 누구보다도 서민의 삶을 잘 이해하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착각하였다는 점입니다. 그가 늘 입에 달고 살았던 '억강부약(抑强扶弱)'이 현실에서 구현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을 까맣게 잊은 채 말입니다.<br>게다가 개인의 목표를 향한 강한 의지를 마치 어떤 신념이나 용기로 착각하였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그가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고 그 과정에서 마주칠 수 있는 어떠한 위험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인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정의와 용기를 몸으로 체득한 사람이라고 믿었다는 게 우리의 착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치인 이재명은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임기응변과 대처 능력으로 위기를 돌파했을 뿐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좋았을 뿐이지요. 낙선을 뻔히 예감하면서도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부산 출마를 강행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여정과는 사뭇 달랐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고집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에서 불안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비겁을 감추기 위해 실용이라는 말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br>계속되는 지지율 하락을 지켜보는 진보 진영의 많은 사람들은 지지율 반등의 모멘텀을 모색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내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이 상태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당대회 이전부터 민주당의 여러 사안에 대해 음으로 양으로 개입하여 왔고, 대부분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같은 진영의 지지자들을 향해 '문조000'이라는 멸칭과 조롱을 일삼는 여러 언론과 유튜버들을 부추기거나 용인하였고, 자신이 원하는 '구조적 다수'를 획득하기 위해 극우적 인물도 등용하였던 게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자들의 마음이 차갑게 식어갔고 '문조000'를 외치던 사람들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자들을 향한 조롱을 멈추지 않은 채 '반명' 딱지를 붙이거나 듣도 보도 못한 '신천지' 딱지를 붙이기에 이르렀습니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자들은 이제 그야말로 실질적인 '반명' 세력이 되고 말았습니다. 머리가 좋고 눈치가 빠른 이재명 대통령이 작금의 현실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문조000'를 외쳤던 자들을 징계한다거나 전통적 지지자들에게 사과한다는 말은 할 수 없을 듯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문조000'를 외쳤던 사람들이 '반명'으로 돌아서고 말 테니까 말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잔꾀에 의한 지지율 하락을 지켜보면서 다른 방안을 모색할 테지요. 개헌이나 파병을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한 방안인 듯 보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시적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일부 유튜버의 눈을 속일 수는 있겠지만 국민 전체를 속일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br>결국 이재명 대통령은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지만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을 위해서 나쁜 결과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싶습니다. 내란의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힘과 '구조적 다수'라는 헛된 꿈을 꾸고 있는 민주당의 양당 체제를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두 정당을 견제할 수 있는 제3의 정당이 출현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정치사에서 조금 더 발전된 민주 제도가 정착될 수만 있다면 지금의 혼란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으스스한 한기가 스민 듯합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무척이나 더디게 읽었던 책 - [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03013</link><pubDate>Tue, 08 Sep 2026 16: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030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9844&TPaperId=175030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4/77/coveroff/k90213984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9844&TPaperId=175030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a><br/>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6월<br/></td></tr></table><br/>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렇게 절망할 필요가 있을까? 나의 무능함, 부도덕, 탐욕, 사악함... 오늘날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 개인이 개별적으로 평가받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나의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히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이다. 개인의 능력 또한 그가 속한 공동체에 묻히고, 개인의 도덕성 역시 익명성에 묻힌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진정한 자아를 마주하지 않거나 마주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나는 비록 혼자 있을 때 사회가 용인할 수 없는 나쁜 생각을 하기도 하고, 범죄는 아니지만 종종 나쁜 짓도 하는 사람이지만 어느 날 남들 눈에 띄는 그럴듯한 댓글 한 줄을 씀으로써 나는 마치 성인 반열에 오를 만큼 선한 사람으로 대우받기도 하는 것이다. 나의 능력 역시 타인이 형성한 어떤 성과나 도움에 의해 적당히 윤색되고 부풀려지는 게 대부분이다. 나는 혼자 집 한 채를 짓거나 옷 한 벌을 완성하거나 신발 한 켤레를 만들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나의 무능함이나 부도덕함이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크기로 작동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대인은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신유진 작가의 산문집 &lt;나를 균열내기&gt;를 읽고 내게 들었던 생각이다.<br>"막을 쓰고, 나를 접어두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 나에 대한 평가, 물론 그런 것들도 두렵지만, 내가 진짜 두려운 건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얼마큼 울퉁불퉁하고 모난 사람인지 스스로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모르는 것만을 두려워한다. 접힌 모서리를 펼치면 무엇이 될까. 매끄러운 막 아래 숨은 나를 꺼내면 어떤 내가 나올까. 이 표면을 부순다면 날카롭게 갈린 언어로 이 막을 내리찍을 수 있다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도록."&nbsp; (p.6 '프롤로그' 중에서)<br>작가는 이 책에서 프랑스어로 글을 썼던 여러 작가를 차용하면서 그들의 작품 속에서 발견했던 자신의 고독, 광기, 슬픔, 쾌락, 수치심, 절망, 분노, 잔인한 기억 등을 떠올리며 작가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음에 위안을 받는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스스로를 우쭐하게 만드는 특별한 사건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보다는 오히려 강물 위의 작은 물비늘처럼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빛나던 소소하고 작은 일상들로 우리의 삶이 채워진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작고 사소해서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것들 말이다. 광활한 우주가 반짝이는 항성이나 행성들만으로 구성되는 게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암흑물질로 우주의 대부분이 채워지는 것처럼.<br>"페렉은 '산다는 것은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삶은 임시적 정착과 이동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동하는 모든 걸음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누군가의 기억이고, 그 기억이 저장된 공간은 존재의 시간이 쌓이는 장소가 된다. 시간이 삶의 다른 이름이라면, 문학은 한 인간이 세상 속에 머무는 방식, 즉 거주의 예술인 셈이다. 페렉의 책을 펼치며 '읽다'라는 동사 대신에 '살다'라는 말을 써본다. 시인의 870보처럼 페렉의 문학이라는 장소를 천천히 가로질러 본다. 서사를 쫓는 달리기를 멈추고 문장 하나하나에 발을 딛으며,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것들을 돌아본다. 그렇게 그의 문장을 살다 보면, 어느새 페렉의 문학이 하나의 견고한 장소가 되지 않을까. 그곳에 쌓은 시간은 오롯이 나의 것, 나만의 기억이 될 것이다."&nbsp; (p.166~p.167)<br>이 책에 등장하는 프랑스 작가는 비단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작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nbsp;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망명했던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시계공장에서 일하며 프랑스어를 배웠던 작가이고, 체코 프라하 출신의 밀란 쿤데라 역시 프랑스로 망명하여 작품 활동을 계속했던 작가이다. 그러나 책의 저자인 신유진 작가가 발견했던 것은 단순히 언어의 공통성만은 아니었다. 1부 '균열의 발견', 2부 '해체와 붕괴', 3부 '유예의 순간', 4부 '자아의 재구성'이라는 목차의 소제목에서 어렴풋이 짐작하겠지만 저자는 자신의 생각과 기억에 균열을 내고 완전한 파괴에 이르러 새롭게 자아를 재구성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기 위해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했던 여러 작가의 작품을 치열하게 읽고, 갈등하고, 음미하며, 비로소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고 분석한다.<br>"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러나 넘치는 고백들 속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이야기의 쓸모와 방향을 묻는 일이다. '자기 쓰기'는 거울 앞에서 시작되지만, 그 끝은 거울을 깨고, 그 자리에 창을 내는 것이어야 한다. 처음부터 열린 창이 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자. 깨고 깨지는 경험이 결국 우리 안에 창을 만들 것이다. 물론 그 창 너머에 누군가의 진짜 삶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카미유 로랑스는 '로랑스'라는 거울을 깨뜨려 우리에게 '딸'이 아닌 '여자'라는 창을 내어주었다. 나는 그의 창을 바라보며 내가 부숴야 할 거울과 마주한다. 누군가의 창이 없었다면 영원히 거울 속에 갇혀 있었을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다."&nbsp; (p.189)<br>별 기대도 없이 읽었던 책이 내게 큰 감흥을 주는 경우가 더러 있다. 탁월한 글솜씨 때문은 아니다. 작가의 열정과 책에서 쓰고자 했던 주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책을 읽는 나로 하여금 들뜨게 하는 것이다. 그런 책을 만나면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나가는 일이 그저 즐겁다. 혹시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한 글자 한 글자 손을 짚어가며 읽게 된다. 그런 더딤이 마냥 즐거운 반면 줄어드는 책의 남은 분량이 그저 안타까운 까닭에 일부러 책을 덮고 방금 전에 읽었던 부분을 찬찬히 되짚어 생각해보기도 한다. 신유진 작가의 산문집 &lt;나를 균열내기&gt;는 무척이나 더디게 읽었던 책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4/77/cover150/k9021398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44772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익숙해진다는 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97516</link><pubDate>Sun, 06 Sep 2026 11: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97516</guid><description><![CDATA[계절이 하는 질문에 답장이라도 하려는 듯 요 며칠 바람이 불었습니다. 습기를 말끔히 걷어낸 건조한 햇살이 대지를 말리는 동안 푸르름을 드러낸 하늘은 한 뼘쯤 높아진 듯했습니다. 곡식이 익어가는 계절, 농촌의 농부들에겐 타들어갈 듯 건조한 햇살이 계절에 맞춰 알곡을 여물게 하고, 과일의 단맛을 더욱 깊게 하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일 테지만,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에겐 그저 살갗을 태우는 잉여의 열기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늘에서 맞는 끈적이지 않는 바람의 감촉은 마냥 좋았습니다.<br>나는 계절이 바뀌는 시기마다 익숙했던 지난 계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익숙하다는 건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곧 잊힌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계절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날 때마다 나는 그들이 없는 세상에 조금씩 익숙해져 왔고, 새로운 세상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익숙한 지금 나는 그들과 함께 했던 많은 기억들을 잊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마련'이라는 옛사람들의 말처럼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무뎌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문득, 계절이 바뀌듯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어떤 시기가 찾아오면 옅어진 죄책감에 새로운 색을 입혀 그들과의 추억을 조금씩 되살리곤 합니다. 지워질 듯 지워지지 않는 초등학교 시절에 쓴 연필 글씨처럼 한동안 잊고 지내던 추억은 뿌연 연기 속에서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나곤 합니다.<br>나는 지금 김연수 작가 외 7인이 쓴 &lt;계절 쓰기&gt;를 읽고 있습니다. 김연수 작가와 전의령 인류학자는 여름을, 홍한별 번역가와 윤경희 문학평론가는 가을을, 김소연 시인과 김지승 작가는 겨울을, 허태임 식물분류학자와 은유 작가는 봄을 씀으로써 책은 사계절을 아우르게 되었습니다. 홍한별 번역가가 쓴 가을의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br>"지금 나의 계절도 가을이다. 낮이 점점 짧아지고 총기도 사그라진다. 심장이 덜컹거리고 감정은 둔탁하다. 가을은 시들고 이우는 계절이지만, 무성한 잎을 내주는 대신 결실을 맺는 계절이기도 하다. 찬란하지는 않지만 쓸모가 있는 계절이다. 그래야 하는데, 어느덧 시대가 바뀌었고 내가 지금껏 축적해 온 지식이 무용해져 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무얼 써야 할지를 몰랐다. 그래서 시인이 되는 대신 남이 써놓은 것을 따라서 쓰는 번역가가 되었다."&nbsp; (p.40)<br>베란다에서도 차츰 뜨거워지는 마른 햇살의 열기가 느껴집니다. 아파트 화단의 정원수에는 지금도 짝을 찾지 못한 수컷 말매미의 울음소리가 이따금 빈 하늘에 공허한 메아리로 맴돌고, 새로운 계절에 지문을 남기려는 듯 마른 잎사귀가 지면을 향해 살랑살랑 떨어집니다. 나는 이제 익숙했던 계절과 이별하고 새로운 계절에 익숙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늘한 새벽 기온에 잠이 깨어 열린 창문을 닫기도 하고, 투명해진 햇살에 지그시 눈을 감기도 합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조금씩 가을을 잊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익숙해진다는 건 잊힌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나는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아낸 후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한 계절을 살아낸 개개인의 역사가 - [네가 나를 떠나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92259</link><pubDate>Thu, 03 Sep 2026 20: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922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0041&TPaperId=174922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4/84/coveroff/k04213004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0041&TPaperId=174922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네가 나를 떠나면</a><br/>크리스털 하나 김 지음, 허선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08월<br/></td></tr></table><br/>우리는 자신이 살아야 할 시대나 환경을 제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그런 면으로 보면 인생이란 참으로 불공평하다. 내던져지듯 주어진 삶의 환경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환경에 걸맞은 뻔한 스토리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다가 생을 마감한다. 특별할 것도 없이 말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앞으로 전개될 자신의 뻔한 스토리를 거부한 채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자신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그렇고 그렇게 전개되는 뻔한 스토리를 자신의 삶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의지이자 뜻이다. 역사에 기록되는 대부분의 인물은 주로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지만, 소설과 같은 픽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뻔한 스토리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어떤 인물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조건에서 뻔하디 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그들이 헤쳐가는 삶의 결말이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을 그저 경이와 감탄의 시선으로 읽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크리스털 하나 김의 소설 &lt;네가 나를 떠나면&gt;을 읽는 독자라면 주인공 해미의 삶에서 그와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까.<br>"나는 어린 미라를 보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자기 시대 사고방식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성년이 된 이후 내내 미워했던 여자. 어머니는 내가 눈앞의 일만 보느라 분노한 이후의 상황을 보지 못할 때 나를 위해 고민했다. 나는 언제나 부러졌지만, 어머니는 세상에서 부러지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아는 여자였다. 이 상황에서 어머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nbsp; (p.369)<br>소설은 한국전쟁이 진행 중에 있었던 1951년 피난지 부산의 해미네 가족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머니와 몸이 아픈 동생 현기와 함께 부산으로 피난을 온 해미네는 운이 좋게도 어머니의 종조부가 살던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지만, 해미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경환과 싸돌아 다니는 것 말고는 특별히 운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해미의 마음은 언제나 경환에게 있었지만 전쟁통에 삶의 질을 추구하기에 앞서 생존이 우선이었던 탓에 경환과 이어지지는 못한다. 대신에 경환의 사촌 형인 지수가 남동생의 약을 구해다 주기도 하고, 번번이 음식도 들고 오면서 해미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표시를 내는 바람에 해미는 결국 지수와의 결혼을 선택한다. 그리고 지수와 경환은 한국군에 입대한다.<br>"나는 지수와의 결혼, 번갯불에 콩 볶듯 올린 예식 또는 그날 밤에 지수가 군인들이 가득 찬 트럭으로 당당하게 걸어갔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너무 빨리 일어난 일들이었다. 어떤 날은 기억마저 조잡하고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머니가 소박한 혼례용 한복을 추씨 아주머니에게 빌려 왔고, 나는 그걸 입고 우리 집 주위를 걸어 다녔다. 짧은 초록색 저고리와 풍성한 빨간 치마는 우리 일상생활에 비해 너무 강렬해 보였다. 우리 집의 헐벗은 나무 기둥과 어머니의 단호한 분위기에 대비되는 그 색깔은 우리의 진실을 드러냈다. 우리는 이제 초라해졌고, 우리의 겉모습만이 겨우 내놓을 만한 형태를 이루고 있을 뿐이었다."&nbsp; (p.153)<br>자신이 선택한 삶이기에 해미는 지수를 사랑하려 노력한다. 딸 셋을 낳은 해미였지만 지수는 거리로, 술집으로 나돌며 대놓고 바람을 피운다. 그럼에도 지수는 아들을 낳을 때까지 해미에게 계속해서 임신을 요구한다. 해미는 지수 몰래 18개월 된 갓난쟁이 막내딸을 데리고 보육원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경환에게 편지를 쓴다. 경환과 재회한 해미는 경환에게 자신을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는데...<br>"나는 그의 집요함에, 아니 속으로는 내 어리석음에 짜증이 나서 몸을 돌렸다. 경환은 절대 날 놔주지 않을 것이다. 그와 지수는 나를 자기 거라고 주장하기만을 원했다. 마치 내가 보리나 비누나 소, 아니면 애 낳는 기계라도 되듯이. 경환은 한 번도 구속돼 본 적이 없어서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nbsp; (p.455)<br>총 5부로 이어진 이 소설은 1967년의 대한민국으로 길게 이어진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기를 바랐던 이해미의 고단하고 지난한 삶은 아프게 읽힌다.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덫은 때로는 이를 거부하는 이의 올가미가 되어 그의 운명을 옥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그의 숨통이 조여 오는 것이다. 운명에 맞설 용기가 없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와 환경에 걸맞은 뻔하디 뻔한 인생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길게 이어지던 가을 장마도 이제는 그 끝에 이른 듯하다. 어둠이 내린 하늘엔 이따금 구름이 떠다니고 한 계절을 힘겹게 살아낸 개개인의 역사가 구름 저편으로 밀려나는 듯하다. 어둠의 틈새를 뚫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가을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4/84/cover150/k0421300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64846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책은 손에서 점점 멀어지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89329</link><pubDate>Wed, 02 Sep 2026 15: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89329</guid><description><![CDATA[서너 걸음 걷다가 멈추고 다시 서너 걸음 걷다가 멈춘다고 할지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물러설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그와 같은 순간은 꽤나 빈번하게 찾아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개개인의 삶이 다 같은 것은 아니어서 걷고 싶을 때 걷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평생 동안 더없이 편안한 삶을 사는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마는 무작위로 뽑히는 각자의 삶에서 로또와 다름없는 그와 같은 행운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분명 아닐 테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삶에서도 갈등이나 고민이 없는, 꽃길처럼 순탄한 길만 걸을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br>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가 길게 이어진 바람에 한여름을 방불케 하던 늦더위는 한풀 꺾인 듯합니다. 요 며칠 맑은 하늘을 볼 수 없던 까닭에 해가 짧아진 것도 미처 알지 못했던 듯합니다. 내가 아침 운동을 나서는 새벽 5시 30분만 하더라도 이제는 제법 캄캄한 어둠에 휩싸여 손전등 없이는 등산로의 장애물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불과 달포쯤 전만 하더라도 대낮처럼 환하던 길이 이제는 캄캄한 어둠 속에 있다는 게 신기한 일이지만 12월 22일의 동지까지 밤은 계속하여 조금씩 길어질 테지요. 얼마 전에 읽었던 데니스 존슨의 소설집 &lt;예수의 아들&gt;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합니다.<br>"베벌리 요양 병원에서는 매주 목요일에 최고령 환자들을 모아 구내식당 의자에 앉혀 놓고 우유가 담긴 종이컵과 쿠키가 담긴 종이 접시를 앞에 놓아주었다. 그들은 '기억해'라는 놀이를 했다. 그들의 정신이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리기 전에 삶의 소소한 것들을 붙잡게 하는 놀이였다. 모두가 각자 그날 아침에 있었던 일과 지난주에 있었던 일, 몇 분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nbsp;(p.180 '베벌리 요양 병원' 중에서)<br>생각하기 나름이겠습니다만 무척이나 쓸쓸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마지막이 절대 그와 같은 처량한 모습은 아닐 것이라고 자신을 수시로 다독이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언론에서는 치매 치료제도 개발되었고, 암 백신도 개발되어 그동안 불치병으로 여겼던 병들이 하나둘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는 듯 보도하지만 그것이 우리와 같은 서민들에게도 혜택이 미치려면 하세월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끄물끄물하던 하늘은 활짝 개지 않고 여전히 어둡습니다. 밖에 나가면 비닐 우의를 걸친 듯 탁한 습기가 온몸을 감싸고 돕니다. 낮아진 기온만큼 끈적끈적한 습도도 조금 낮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책은 손에서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하늘은 다시 어두워지고 - [그 길 위에 우리가 있었다 -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된 조선인의 기억과 흔적을 찾아 일본을 걷다 19100829-19450815]</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80457</link><pubDate>Sun, 30 Aug 2026 13: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804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130719&TPaperId=174804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3/61/coveroff/k86213071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130719&TPaperId=174804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 길 위에 우리가 있었다 -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된 조선인의 기억과 흔적을 찾아 일본을 걷다 19100829-19450815</a><br/>이재갑 지음 / 책숲 / 2026년 08월<br/></td></tr></table><br/>좋아하는 사진작가가 있다. 2005년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김영갑 작가가 그분이다. 작가 스스로 '외로움과 평화를 찍었다.'고 했던 그의 사진들을 보면 그가 20년 동안 머물렀던 제주도의 바람, 정서, 그리고 작가의 영혼이 그가 촬영한 한 장의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틀에 박힌 한 장의 스틸컷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가 느낄 수 있는 황홀한 순간을 만나기 위해 같은 장소를 수없이 방문하고 기다려야 했던 작가의 열정은 이제 그가 남긴 작품으로만 만날 수 있다. 사진은 작가의 의지와 신(또는 자연)의 의지가 결합된 순간의 미학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신의 의지를 깨닫게 되는 그 순간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른다.<br>최근에 나는 김영갑 사진작가와는 결이 다른, 이재갑 사진가의 사진 에세이 &lt;그 길 위에 우리가 있었다&gt;를 읽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작가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나는 적어도 작가의 에세이집을 한두 권쯤은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의 아픈 과거와 역사의 현장에 대해 천착했던 작가는 한국전쟁과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일제 강점기 때 끌려갔던 조선인 노동자와 원폭 피해자 등 전쟁이 남긴 역사의 흔적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사진은 어쩌면 시간 속에서 스러져가는 시간의 파편을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들춰내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그가 생각하는 사진은 유구한 시간 속을 흐르던 '시간의 운석'인 셈이다.<br>"글로 표현하기는 민망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이렇게 표현한다. 풀과 돌, 나무들이 말을 걸어왔다. 인간의 언어로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현장의 소리를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했다.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현장에 가면 여러 소리가 들린다. 사진으로 말(언어)을 한다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어렵고 힘들다. 그러나 운명처럼 들려오는 현장의 소리를 지나칠 수 없어 한참을 듣고 또 듣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신만의 언어로 다가오고 이를 시각화 작업을 하고 1차, 2차 과정을 거쳐 마무리하게 된다."&nbsp; (p.6 '저자 서문' 중에서)<br>&lt;그 길 위에 우리가 있었다&gt;에서 작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 노역에 시달렸던 조선인 노동자의 흔적을 찾아 일본 전역을 훑고 있다. 제1장에서 다루고 잇는 후쿠오카를 비롯하여 2장 나가사키, 3장 오사카, 4장 히로시마, 5장 오키나와로 이어지는 이 책은 많은 한국인들이 찾는 관광 대국 일본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우리 선조의 희생과 피로 얼룩진 가슴 먹먹한 역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그저 삼일절이나 광복절 등 특정 국경일에 한하여 우리의 아픈 역사와 조상들의 희생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지나칠 뿐 그때의 기록을 생생하게 대면하려는 노력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 선조의 희생을 한낱 조롱거리로 삼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하고, 친일파 선조를 둔 어느 연예인이 방송에 나와 자랑스럽게 밝히는 해프닝도 발생한다.<br>"멀리서 보면 섬 전체의 모습이 군함 같다고 해서 일명 쿤칸지마(軍艦島)로 불렸고,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 동원되어 지옥과도 같은 노동에 시달렸다고 해서 광부들 사이에서는 지옥 섬이라고 불렸다. 원폭 피해자의 삶과 그 뒷이야기를 담은 한수산의 소설 &lt;까마귀&gt;의 실제 배경이기도 하다."&nbsp; (p.123~p.124)<br>작가가 찍은 사진과 직접 쓴 글을 따라가다 보면 사진 작업이 단순히 좋은 사진기와 작가의 테크닉에 의한 하나의 기계적인 결과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사진이야말로 작가의 열정과 작가의 깊은 공명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구현되는, 일종의 영혼의 구현이나 영혼의 발현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한 장의 사진 속에 영혼을 담지 않으면 이것을 감상하는 관객은 어떤 감동도 받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책을 읽었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사진과 글에서 느꼈던 먹먹한 감정 탓에 때로는 책을 덮고 잠시 먼산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br>"목숨을 담보로 진행된 무리한 공사 탓에 숙소를 탈출하는 일도 많았다. 낯선 지형 때문에 깊은 산속을 돌아다니다가 도랑이나 폭포 등으로 떨어져 실족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도망가다 붙잡히면 다리에 나무를 매달아놓고 나뭇잎을 태워 연기를 마시게 하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고문했다고 한다. 기사에는 전혀 믿기 어려운 내용도 있었다. '히로시마 강제 연행을 생각하는 모임'의 대표는 히로시마현 북동부 쪽에 있는 고보댐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을 소개했다. 1942년 시작된 댐 공사에는 경상도 출신의 조선인 노동자 2,000여 명이 강제 동원되어 일하고 있었다. 댐 구조물 공사를 하던 중 조선인 노동자들이 구조물 밑바닥 시멘트 더미 위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밑으로 떨어진 그들은 위를 향해 살려달라고 있는 힘을 모아 소리쳤다. 동료인 조선인 노동자들이 밧줄을 내려보내 구하려는 순간 일본인 감독이 작업을 중단하지 말라고 고함을 내질렀다. 이어 감독은 직접 시멘트를 삽으로 떠서 아래로 부었다. 조선인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시멘트를 팔로 막으려 했지만 잠시 후 조용해졌다. 생매장당한 것이다. 당시 사망한 조선인 수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 뒤 고보 댐은 '인골(人骨) 댐'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nbsp; (p.258~p.259)<br>아침에 비를 뿌리던 하늘은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며 대기의 습도를 높이고 있다. 아파트 화단에 핀 맨드라미도 더위 탓인지 시들시들 생기를 잃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자신이 속한 사진 동아리의 정기 전시회에서 자신이 걸었던 사진 다섯 점 중 두 점이 팔렸다며 좋아하던 게 문득 떠오른다. 공대를 다니고 있는 아들이 졸업 후 어떤 방향으로 진로를 정할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은 손에서 놓지 않을 듯하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빅터 프랭클이 주창했던 로고테라피의 주장처럼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으며, 그 의미를 통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아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해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된다. 밝아졌던 하늘은 다시 또 어두워지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3/61/cover150/k86213071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236157</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주말 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78771</link><pubDate>Sat, 29 Aug 2026 14: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78771</guid><description><![CDATA[기억의 구름이 고난의 능선을 따라 흐르다가 의식의 대지를 향해 한차례 거센 빗줄기를 흩뿌리곤 합니다. 메말랐던 의식의 대지는 그 비로 인해 한동안 습습한 과거 기억에 젖어들게 됩니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 과거 기억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이 작금의 초조한 현실과 뒤섞일 때 우리는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됩니다. 가빴던 호흡이 느려지고 그득했던 욕심도 조금쯤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사는 게 뭐 별 건가?' 하는 생각에 이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오직 앞만 보고 달린다면 우리의 수명은 어쩌면 지금의 절반쯤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밖에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원리도 우리의 기억 체계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겪는 고난의 능선이 높으면 높을수록 기억의 구름이 짙고 풍성하게 쌓일 테고, 언젠가 그 구름을 통해 소나기처럼 세찬 기억이 의식의 대지를 향해 쏟아질 테니까 말입니다. 김소연 시인의 여행 에세이 &lt;그 좋았던 시간에&gt;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등장합니다.<br>"겨울은 여름을 떠올리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여름을 떠올리며 그때 미처 하지 못했던 한 가지를 아쉬워할 수 있는 계절이다. 여름을 열렬히 그리워하는 밤. 성에가 낀 얼룩덜룩한 유리창을 보면서, 다음번 여름엔 소낙비가 내릴 때에 유리창 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창 바깥에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을 선명하게 내다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귤차를 마시다 안경알에 낀 성에가 사라지길 기다리는 잠깐 동안에, 여름의 냄새가 다녀간다. 겨울의 반대편에 여름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는다."&nbsp; (p.179 '겨울에 꺼내는 여름' 중에서)<br>주말 동안 이어지는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올해의 늦더위도 조금씩 수그러들 것 같습니다. 길고 길었던 여름의 터널을 비로소 벗어나는 느낌입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홍수로 인한 네팔 재난의 현장을 뉴스로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우리가 이번 여름에 겪었던 더위와 가뭄이 가난한 나라의 참혹한 재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재난의 주범은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선진국의 국민들인데 피해는 고스란히 가난한 나라의 몫으로 전가되고 있는 이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넘어 죄책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이 흘러 피해를 입은 네팔 주민과 사고를 당한 많은 외국 관광객의 유가족들의 기억도 차츰 희미해지고 언젠가 잊히겠지만 그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듯합니다.<br>아침에 잠깐 내리던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었습니다. 높아진 습도 탓인지 끈적끈적한 더위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립니다. 어느새 에어컨의 리모컨을 손에 쥔 나는 께느른한 오수의 유혹에 흔들립니다. 잠에서 깨고 나면 다시 비가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나는 여름의 한가운데서 허우적대며 누군가의 구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지나고 나니 여름이었습니다. 이 한마디 말을 남기기 위해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지금 이 시간에도 새로운 기억들이 쌓이고 - [고독은 연결된다 - 이타적 에고이스트의 책 읽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75459</link><pubDate>Thu, 27 Aug 2026 17: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754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834218&TPaperId=174754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146/25/coveroff/k28283421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834218&TPaperId=174754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독은 연결된다 - 이타적 에고이스트의 책 읽기</a><br/>김성민 지음 / 구름의시간 / 2023년 08월<br/></td></tr></table><br/>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성향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어떤 동인으로 그 책에 흥미를 느꼈는가 하는 문제가 때로는 한 사람을 평가하는 데 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중년의 한 남성이 서점에 들러 한 권의 동화를 선택했다면 '그 나이에 왜?'라는 질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성인이 된 남성들 중에도 여전히 동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비록 그것이 그 사람의 오래된 취향이라고 할지라도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그 나이에 동화를 고른 동인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곧 그 사람을 평가하는 하나의 관점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br>자신을 일컬어 '이타적 에고이스트'라고 하는 김성민 작가의 리뷰 에세이 &lt;고독은 연결된다&gt;를 읽게 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다. 며칠 전 자주 들르는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괜찮은 책인 듯 보여 대출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물론 나는 다 읽지도 못할 거면서 대책도 없이 책만 빌려 오는 상습적 '책 산책자'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빌려온 책을 무작정 쌓아놓고 묵히다가 들춰보지도 않은 채 책을 반납하는 비양심적인 사람은 아닌 것이다. 이번 책처럼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후루룩 다 읽어버리는 경우도 더러 있으니 말이다.<br>"도서관을 단순히 책 빌리는 곳이라고만 말한다면 허전하고 부족하다. 도서관은 책 자체를 체험하는 곳. 책을 구경하고 읽으며 도서관에서 마련한 수업을 듣고 책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채로운 방법이 있는 곳이다. 베스트셀러나 신간 위주로 배열된 대형 서점에서는 책들이 저마다 존재감을 뽐내지만, 도서관에서는 책들이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백 년 전에 쓰인 책들이 지금 현재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 무덤에 있는 저자들이 곁에 살아 있는 것 같은 상상을 한다. 그래서 도서관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무한한 세계라고 말한 보르헤스가 떠오른다."&nbsp; (p.62)<br>&lt;고독은 연결된다&gt;에는 작가가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이나 사유 또는 연결된 에피소드나 깨달음 등으로 인하여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작가가 언급한 책을 읽고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부류의 책 대부분이 그렇지만 말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도서관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나도 모르게 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와 같은 상습적 '책 산책자'에겐 이 책이 무척이나 위험한 책이라고 하겠다. 빼곡하게 적은 도서 목록을 들고 하시라도 도서관 나들이를 마다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br>"여기에 모인 스물아홉 편의 글은 함께 읽기와 다시 읽기의 결과물이다. 대개 읽고 나서 쓰지만 때로는 쓰기 위해 읽는다. 쓰기 위해 다시 읽는 과정은 나의 이해를 허물고 재구성하는 시간이었다. 삶을 다시 살 수 없지만 책은 얼마든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말처럼 다시 읽기는 독자로서 갖는 즐거움이다."&nbsp; (p.8 '들어서며' 중에서)<br>오늘 아침 새벽 운동에 나섰던 나는 깜짝 놀랐었다. 산의 입구에서부터 매일 들었던 매미 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귀뚜라미 소리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렇게 갑자기 모두 사라졌다고?' 나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웬걸, 산의 능선에 올라서자 매미 소리가 어제와 다름없이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날씨가 다시 더워지는 바람에 매미들도 조금 더 시원하고 조용한 곳으로 피서를 왔나?' 생각하면서 피식 웃음이 터졌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습한 등산로를 매미 소리 덕분에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소리에 민감한 우리 인간들처럼 어쩌면 여리디 여린 귀뚜라미들도 시끄러운 매미 소리에 한껏 항의를 할지도 모르겠다.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로 다투는 우리들처럼 말이다.<br>"층간 소음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인 이유는 개인 간에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개인 간 해결하려다가 감정이 격해져 폭력을 행사하여 정말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 뉴스를 흔하게 접하곤 한다. 여기서 누스바움이&nbsp; 주목하는 것은 감정이다. 감정이 사회 정치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동시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도 감정에 있다고 본다."&nbsp; (p.184)<br>무더위가 정말이지 오래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주택가 가까운 곳에서 시끄럽게 울던 매미도 차츰 먼 곳으로 떠나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8월의 마지막주를 우리는 힘겹게 보내고 있지만 그것이 비단 인간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듯 서둘러 온 귀뚜라미도 더위 속에서 힘겹게 제 짝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새로운 기억들이 각자의 삶 속에 새록새록 쌓이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146/25/cover150/k28283421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146250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열역학 제2법칙을 생각하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71190</link><pubDate>Tue, 25 Aug 2026 17: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71190</guid><description><![CDATA[처서도 지났지만 더위는 여전합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귀뚜라미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매미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온 산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을 뿐입니다. 계절의 변화는 이렇듯 더디게 다가오는 듯하지만 이것이 임계점이야, 하는 경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고, 아침 바람에 소슬한 한기를 느끼게 될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걸 알기에 작금의 더위를 아주 세세히 느껴보곤 합니다. 잊지 않으려는 듯 말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지요. 계절도, 우리의 젊음도, 사랑하고 미워하는 시간들도.<br>단단하던 몸도 나이가 들면서 차츰 흐물흐물 풀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 또한 신체의 변화와 함께 변할 수밖에 없다는 걸 나 역시 나이를 먹어가면서 확실히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반문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노인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주변에는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이 덩달아 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노인의 기억력 감퇴나 인지 기능 저하가 아닙니다. 한평생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개인의 가치관이나 신념, 정의나 도덕성, 심지어 종교적 신념까지도 나이가 듦에 따라 너무나 쉽게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평생을 민주화 운동과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일관했던 김지하 시인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제목의 기고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신념마저 부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것처럼 개개인이 수립한 정의나 가치관은 미약하기 짝이 없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변하거나 자신의 정신을 올곧게 지탱하던 체력이 소진되면 너무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에 보였던 진보진영의 백 모 교수가 그렇고,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올랐던 황 모 작가가 그렇습니다. 하물며 장삼이사와 다름없는 노 모 변호사나 신 모 변호사, 이 모 기자나 이 모 작가 등이야 달리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요.<br>어제는 유시민 작가가 출연한 유튜브 방송을 보았습니다. 나이에 비해 비교적 튼튼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 덕분인지 유시민 작가는 아직 자신의 가치관을 잘 유지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의 기억력이나 논리는 빈틈이 없었고, 분석 능력 또한 탁월했습니다. 정치평론가를 자처하는 우리나라의 잔잔바리 유튜버들은 유시민 작가의 논리를 부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오직 인신공격과 조롱을 내뱉음으로써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구린내가 진동할 뿐입니다. 나는 지금 미국작가 월리 램이 쓴 &lt;강물이 멈춘 날(The River Is Waiting)&gt;을 읽고 있습니다.<br>"오른쪽 뒷바퀴에 무언가 살짝 걸리는 느낌이 전해지자, 내가 쌓아 둔 장작더미에서 나무 한 토막이 굴러떨어졌나보다 생각한다. 장애물이라면 그거일 거라고, 그런데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지? 나는 차를 몇 미터 앞으로 뺐다가 다시 후진하면서 장애물을 넘어갈 만큼 가볍게 가속 페달을 밟는다. 그때 백미러로 팔을 휘저으며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도대체 왜 저래? 저 여자가 왜 저렇게 비명을 지르는 거야? 그러다 나는 알아차린다."&nbsp; (p.26)<br>우리가 알아차리는 비극은 일이 엉망으로 변한 결과일 뿐이지 진행 중에 있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맞는 대부분의 비극은 처음으로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현상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오만한 권력자로 변한 대통령의 모습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열역학 제2법칙처럼 가역적인 변화가 아닌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연계에서 발생하는 과정은 모두 가역과정이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말입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우리의 인생은 다르지 않아서 - [예수의 아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67425</link><pubDate>Sun, 23 Aug 2026 19: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674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0032&TPaperId=174674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42/65/coveroff/k76203003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0032&TPaperId=174674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예수의 아들</a><br/>데니스 존슨 지음, 박아람 옮김 / 기이프레스 / 2025년 09월<br/></td></tr></table><br/>드러나지 않는 삶의 음영을 수시로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이따금 마음의 눈에 편광 필터를 장착한 채 자신의 내면을 샅샅이 훑어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자신의 외관이 아닌 내면을 시간을 들여 꼼꼼히 살핀다는 건 낯설고 번거로운 일일뿐더러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마음에 난 상처는 그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처의 크기도, 발병의 원인이나 시기도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지는 게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일에 순진할 정도로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으로 하여 우리는 자신의 내면이 타인의 그것처럼 데면데면하고 푸접없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내면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긴요한 일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에 있던 근육이 나이와 함께 소실되는 것을 염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게는 없던 마음의 근육이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다.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이 하나둘 작별을 고하기도 하고, 종국에는 나만 홀로 남겨진 듯한 세상이 머지않은 시기에 도래한다는 건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이다.<br>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음의 근육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영화, 음악, 명상, 독서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심지어 어떤 이에게는 달리기가 그 역할을 대신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책을 싫어하지 않는 나로서는 여러 작가의 글을 통해 나의 내면을 살피는 데 익숙할 뿐이다. 그와 같은 역할을 했던 작품은 읽고 지나친 후에도 가끔 생각이 난다.&nbsp;얼마 전에 읽었던 데니스 존슨의 소설 &lt;기차의 꿈&gt;도 그런 책 중 한 권이다. 모름지기 좋은 책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떠오르거나 연상되는 어떤 사물이나 상황으로 인해 소설 속의 한 장면을 자신의 의식 속으로 소환하게 되는 책. 그렇게 소환된 소설 속 한 장면으로 인해 나의 내면이 자연스레 내 의식의 벽면에 파노라마처럼 상영되는 일.<br>"사고 차량에 늘어져 있던 남자는 내가 지나갈 때 아직 살아 있었다. 이 무렵 나는 그가 심하게 다쳤다는 사실에 조금 익숙해져서 걸음을 멈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는 요란하고 무례하게 코를 골았다.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피가 부글부글 나왔다. 그런 숨조차 많이 남지는 않은 듯했다. 나는 알았지만 그는 몰랐고, 그렇기에 나는 그를 내려다보면서 이 지상에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측은한지 절감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결국 죽는다는 것,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자기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내게 말할 수 없고 나는 현실이 어떤지 그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것, 그 점이 내게는 지독히 측은하게 느껴졌다."&nbsp; (p.30 '히치하이킹 도중에 일어난 자동차 사고' 중에서)<br>데니스 존슨의 단편집 &lt;예수의 아들&gt;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거나 평범한 이의 삶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예외적인 삶을 다루고 있다. 20대 내내 마약과 술에 중독된 채 살았던 작가의 경험을 반영한 듯 책 속의 인물들은 모두 삶이 부러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부서지고 흩어져서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삶'으로의 복귀가 불가능해 보이는 삶일지라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반짝이는 순간이 기적처럼 찾아온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노력한 것 같다. 그러나 반짝이는 그 순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삶, 이를테면 허물어지고 한없이 흐트러진 삶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제공하는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의 모습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너무나 삐뚜름하게 보인다. 구멍이 숭숭 난 스웨터처럼 온전한 모습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이다.<br>"바인에서는 그런 순간이 많았다. 오늘이 어제인 줄, 어제가 내일인 줄 착각하는 순간. 왜냐면 우리는 모두 우리가 비참하다고 여기며 술을 마셨으니까. 우리는 그런 무력감, 우리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는 수갑을 찬 채로 죽을 터였다. 결국 우리의 삶은 강제로 종지부를 찍을 터였고 심지어 우리 잘못도 아닌 일로 그렇게 될 터였다. 우리는 그렇게 상상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늘 터무니없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곤 했다."&nbsp; (p.63 '보석(保釋)' 중에서)<br>데니스 존슨의 단편집 &lt;예수의 아들&gt;은 편집 또한 기괴하다. 소설의 목차는 책의 가장 뒤편에 배치되어 있고, 책에 실린 단편소설의 제목 역시 소설이 끝나는 마지막 페이지에 등장한다. 말하자면 독자는 단편소설의 제목도 모른 채 본문부터 읽기 시작하여 소설을 다 읽은 후에야 비로소 제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편집 방식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독자라면 제목이나 목차를 먼저 확인하고 읽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책에 실린 단편소설의 제목을 보면, ''히치하이킹 도중에 일어난 사고', '두 남자', '보석', '던던', '일', '응급실', ';더럽혀진 결혼', '다른 한 남자', '해피아워', '시애틀 종합 병원에서 본 굳건한 손', '베벌리 요양 병원' 등 11편이다. 소설은 지극히 짧은 소설에서부터 적당히 긴 소설에 이르기까지 꽤나 다양하다. 소설은 사실과 환각이 뒤엉키고 시제 역시 불분명한 까닭에 처음에는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가 서술하지 않아 잘려나간 듯한 부분 역시 독자의 상상력으로 자연스레 메워지게 된다.<br>"내가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10시간, 12시간, 그 정도였다. 나는 정규직 일자리를 찾고 있었고 헤로인 중독 치료 모임에도 나갔으며, 지역 알코올 중독 수용 센터에도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했고, 사막의 봄을 산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베벌리 요양 병원의 원형 복도는 마치 이승의 삶들 사이에 머무는 곳처럼 느껴졌다. 한 생을 살고 난 뒤 돌아와서 다른 영혼들과 뒤섞인 채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곳."&nbsp; (p.181&nbsp;'베벌리 요양 병원' 중에서)<br>우리는 이따금 자신의 삶은 되돌아보지 않은 채 타인의 삶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마치 '남의 눈에는 티, 내 눈에는 들보'라는 격언처럼 제 눈에 있는 들보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데니스 존슨의 단편집 &lt;예수의 아들&gt;을 읽다 보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에 대해 '왜 그렇게 살아?'라고 비난할 사람이 혹여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존경해 마지않는 교황이나 달라이라마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삶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사람을 주위에서 볼라치면 어느 영화의 시니컬한 대사처럼 "너나 잘하세요."라고 충고하는 게 맞을 듯하다. 데니스 존슨이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신의 인생도 이들과 다를 게 없다고.]]></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42/65/cover150/k76203003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0426567</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모처럼 한가한 주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65400</link><pubDate>Sat, 22 Aug 2026 13: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65400</guid><description><![CDATA[어제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바쁜 날들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바쁜 날들을 보낼 때마다 나는 스위스 출신의 작가 페터 빅셀이 쓴 &lt;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gt;가 떠오르곤 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페터 빅셀의 말에 동의하고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현실과 타협하고, 그와 같이 행동하고 있는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자신의 삶을 꾸려갑니다. 어쩌면 우리는 못마땅하거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 속의 자신을 죽기 직전까지 다독이고 미화하면서 이상만 추구하는 또 다른 나에게 끝없이 변명하고 설득하는 데 자신의 온 삶을 바쳐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br>"나는 일기 쓰기가 두렵다. 살면서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이삼 일 뒤에는 늘 포기했다. 일기장은 내 날들을 망쳤다. 낮에 경험한 일을 저녁에 쓰는 것이 아니라, 일기장을 위해 살기 시작했으니까. 일기장을 위해 움직이고, 일기장을 위해 관찰했다. 일기장을 위해 술집을 고르고, 일기장을 위해 이야기할 사람을 찾았다. 의미 있는 일만 해야 한다면 인생은 삭막해진다. 일기장에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었음'이라고 적은 그 오늘도 상황에 따라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었을 수도 있을 테니."&nbsp; (p.84~p.85)<br>그닥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지만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끝났습니다. 누구나 예상했던 대로 김민석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되었고, 민주당의 당원이나 그렇지 않은 일반 국민들조차 시큰둥한 반응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지지하고 밀었던 후보, 모든 언론과 진보 진영의 유튜버들이 그토록 공을 들이고 앞장서서 선거운동을 펼쳤던 후보, 그럼으로써 경쟁 상대였던 다른 유력 후보를 비인격적으로 조롱하고 공격할 수밖에 없었던 선거 운동,&nbsp;선거 이후에&nbsp;당선되지 않은 유력 후보를 지지했던 당원이나 수많은 시민들의 가슴에 남은 앙금을 해소하는 데는 일말의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그들의 태도 등은 선거 전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막상 그 모든 게 현실로 재현되었을 때 사람들의 낙담은 단순한 낙담이 아니라 민주당과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바뀐 듯합니다. 그럼에도 선거에 동원되었던 여러 유튜버와 신임 당 대표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자신들의 공과와 전리품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는 듯 보이고 말입니다.<br>민주당의 당원으로 가입한 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수십 년 동안 민주당을 지지하고 민주당의 후보에게 나의 한 표를 아끼지 않았던 나였지만 이번 선거만큼 저열한 방식의 당 대표 선거를 지금껏 본 적이 없었던 듯합니다.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끝없이 대통령을 팔았던 신임 당 대표와 그의 지지자들의 행태를 보면 이 모든 일들을 대통령이 용인하고 지지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짓거리였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들도 어쩌면 자신들의 권모술수가 사람들의 눈과 귀는 속일 수 있어도 대중의 마음까지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조만간에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br>나는 얼마 전에 썼던 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민주당에 대한 지지는 완전히 철회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제 주변에도 민주당을 탈당하여 당원 자격마저 없앤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취임한 지 1년 남짓한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과 '레임덕'이라는 단어를 자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주당은 물론 진보진영 전체로 보더라도 그것은 분명 불행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쳐가는 모든 역사는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를 찾는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겠지만 말입니다. 내일은 더위도 물러간다는 처서, 우리 곁에는 여전한 더위가 숨을 쉬기 어렵게 몸을 감싸고 권모술수에만 능한 정치인들이 여름의 짜증을 더하고 있습니다. 모처럼 한가한 주말입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노을이 번지듯 - [패치워크 - 2025 문화체육관광부 중소출판사 성장부문 제작지원사업 선정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54286</link><pubDate>Sun, 16 Aug 2026 19: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542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033805&TPaperId=174542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76/42/coveroff/k3220338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033805&TPaperId=174542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패치워크 - 2025 문화체육관광부 중소출판사 성장부문 제작지원사업 선정작</a><br/>방희진 지음 / 나루서가 / 2025년 12월<br/></td></tr></table><br/>더위의 주변부에 있었을 때 우리는 여름이 하냥 만만하게 보였다. 그러나 더위의 중심부를 통과했을 때의 우리에게 여름은 무섭고 두려운 어떤 것으로 변해 있었다. 삶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삼시 세끼를 부모에게 의존하던 시기에 삶은 그저 한 번의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처럼 가볍고 시시한 것쯤으로 보였지만, 삶의 고비를 여러 번 겪고 난 중년의 어느 시기쯤에서 바라보면 삶은 마치 보따리를 풀면 풀수록 해결할 수 없는 참담한 문제들이 끝없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하나의 괴물 보따리쯤으로 여겨진다. 방희진의 소설집 &lt;패치워크&gt;를 읽는 동안 나는 아스라이 멀어져 간 듯 느껴지는 가까웠던 여름의 폭염과 그에 얽힌 몇몇 기억들을 떠올렸다. 마치 재질이 다른 조각천을 조각조각 이어 붙이듯 말이다.<br>"이름 아래 소개된 약력을 검지로 톡톡 치며 진영은 그렇게 말했다. 선망이나 비웃음이 담긴 말투는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여자의 부지런함만은 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혜린은 갤러리 관장 외에도 미술평론가, 수도권 대학의 겸임교수로 불리고 있었다. 나는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오혜린의 글을 읽었다. 장 드뷔페의 아르 브뤼 미술을 미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한 것이었다. 새로운 주제는 아니었다. 진영의 말대로 평론이라 하기에는 애매했다. 인용한 문장이 많아선지 현학적이고 난삽해서 요점을 잡기가 어려웠다."&nbsp; (p.110 '패치워크' 중에서)<br>방희진의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패치워크'를 포함하여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패치워크'에는 세 여인이 등장한다. 오정순이었다가 개명을 통하여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오혜린과 주인공인 나(이정선)와 진영이 그들이다. 아버지 쪽 친척 여동생인 진영은 짧았던 결혼생활을 접고 그림에만 매달려 대외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편이었다. 반면에 백화점 디스플레이어로 일만 하던 나는 번아웃이 왔고, 그런 나에게 다시 붓을 쥐어준 이가 진영이었다. 전시회 때문에 오혜린을 만났던 진영이 나의 전화번호를 오혜린에게 건네주었고, 오혜린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30년 전의 흐릿한 기억을 되살린다. 나는 무명이었던 김옥환 화백이 그의 화실에서 수강생을 모아 서양화를 가르쳤을 때 오혜린과 함께 그림을 배웠던 수강생 중 한 명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세 사람은 내가 선물로 받았던 팔찌를 통하여 각기 다른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하나의 팔찌에 세 개의 다른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 소유하게 된 배경이나 동기도 서로 다르지만. 마치 소재와 색상이 다른 각각의 원단처럼.<br>"뒤늦게 첫 소설집을 내며 기쁨보다는 괴로움이 더 컸다. 의미를 따지는 평소의 습관대로 이 책에 대해서도 뜻있는 뭔가를 자꾸 찾으려 들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얻지 못했다. 다만 먼 길을 가는 사람이 첫발을 떼면서 호들갑부터 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러니 용감하게 첫걸음을 내딛자, 이 책의 의미를 입증하는 알리바이로 그만큼만 주장하자 마음을 다졌다. 나중에는 나중의 알리바이를 주장할 테지만."&nbsp; (p.254 '작가의 말' 중에서)<br>소설은 대개 피할 수 없는 관계와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롯되는 삶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되는 여러 감정과 회한 또는 결심이 주를 이룬다. 어느 소설이든 다 그런 범주에 속할 테지만 말이다. 이 소설집에는 무엇인가를 잃었거나 삶의 목표에 근접하지 못한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작가는 이들의 내면 풍경을 그리기 위해 주변의 인물들을 동원하여 좀 더 심층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 흐르는 쓸쓸하고 덧없는 감정까지 말끔하게 지우지는 못한다. 그것은 인간이 지고 가야 할 원죄라도 되는 것인 양.<br>"수진이 저녁에 돌아와 하려던 말은 끝내 듣지 못했다. 그날 저녁의 약속만 아니었다면 수진은 무사했을까. 나는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오래도록 내 안의 피멍에 주먹질을 했다. 아이를 치고 달아난 운전자에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저주란 저주는 죄다 퍼부었다. 경찰에선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고 남편과 내가 내건 현수막은 그해 가로수가 모조리 잎을 떨어내고 겨울바람이 부는 동안에도 이면도로 가에서 저 혼자 펄럭였다."&nbsp; (p.179 '이불' 중에서)<br>지면을 적시는 비는 꽤나 오랜만에 보는 듯하다. 아침에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높아진 습도 탓에 불쾌지수가 높아진 저녁, 군데군데 먹장구름이 떠 있는 하늘 위로 노을이 번지고 있다. 방희진 작가의 소설집 &lt;패치워크&gt;를 읽고 왠지 모르게 울적해진 오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고 내 삶의 보따리를 풀어 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고만고만한 문제들이 울적해진 마음에 불을 붙일 듯하다. 노을이 번지듯.]]></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76/42/cover150/k3220338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8764263</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amp;lt;유럽 도시 기행 3&amp;gt;을 읽다가 문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50789</link><pubDate>Fri, 14 Aug 2026 16: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50789</guid><description><![CDATA[뭔가 모르게 갈팡질팡 마음만 부산스럽고 안정이 되지 않을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런 날은 책을 읽어도 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고, 읽고 지나쳤던 부분도 이해가 되지 않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시 읽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크게 신경 쓰이는 근심이나 걱정거리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렇다 하는 문제도 딱히 찾을 수 없는데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마저 빨갛게 상기되어 마치 누군가로부터 심하게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시간적 여유도 있고, 책을 읽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은데 도무지 집중을 할 수 없는 기분 탓에 독서에 빠져들 수 없는 현실. 집중력 결여의 상태가 불규칙적으로 자주 반복되는 까닭에 책을 읽을 수도 없는 현대인의 서글픈 현실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듯합니다.<br>오늘은 말복이자 광복절 연휴를 코앞에 둔 설레는 금요일. 습도가 높아진 탓인지 바깥공기는 텁텁하고 무겁습니다. 이렇게 습도가 높아진다는 건 뽀송한 하루를 보장받기 어렵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 가을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던 어제와 그제의 날씨와도 사뭇 비교가 되는 날씨 속에서 나는 가슴이 두방방이질 치는 불안을 잠재우지 못한 채 온종일 서성였습니다. 오죽하면 알랭 드 보통의 &lt;불안&gt;이나 페르난두 페소아의 &lt;불안의 서&gt;를 찾아 읽어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을까요.<br>유시민 작가의 &lt;유럽 도시 기행 3&gt;을 읽고 있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근거 있는 비평에도 불구하고 어떤 논리적 근거도 없이 작가를 조롱하고 비판하는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소위 정치 비평이랍시고 떠벌리는 일부 '촉법 비평가'들의 야만적인 권력욕과 돈을 향한 저질적인 행태에 질려서 수십 년 민주당만 지지했던 나는 다시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겠노라 결심하게 되었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당대표 선거에도 관심이 전혀 없지만 오늘 대통령의 지지율이 44%로 취임 후 최저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나와 같은 골수 민주당 지지자들의 마음이 식었기 때문일 것입니다.<br>"마드리드가 어떤 도시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스페인의 수도이지만 제일 잘사는 도시도 아니고 가장 아름다운 도시 또한 아니다. 하지만 이 도시가 무엇을 바라면서 어디로 나아가려 하는지는 분명했다. 총칼 앞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정치인의 이름을 국제공항에 걸었다. 폭력이 난무한 시대에 인간의 이성을 깨웠던 예술가를 잊지 않았다. 실패했지만 옳은 길을 가려 했던 지도자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P.97~P.99)<br>우리가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고 지금도 그리워하는 까닭은 그가 성공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는 어쩌면 철저하게 실패한 대통령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것을 향해 끝끝내 나아가려 했던 모습을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실패 역시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배반한 변절자도 아니요, 국민을 기만한 노쇠한 정치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항상 신념을 굽히지 않는 젊은 정치인이자 겉과 속이 같았던 투명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취임 후 1년이 조금 지난 대통령에게서 닳고 닳은 노쇠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계절 체험자들과 나란히 - [아무튼, 피트니스 -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48533</link><pubDate>Thu, 13 Aug 2026 14: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485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531831&TPaperId=174485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870/0/coveroff/k48253183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531831&TPaperId=174485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무튼, 피트니스 -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a><br/>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09월<br/></td></tr></table><br/>에어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잠이 들었던 밤, 새벽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아, 그동안 얼마나 써보고 싶었던 단어인가. 바람 앞에 붙는 '선선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모든 걸 다 얻은 기분이었다. 운동복을 입고 아침 운동을 나설 때의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웠다. 며칠 전부터 내가 운동을 나서는 새벽 5시 30분에는 환한 아침의 기운 대신에 어둠의 잔해가 희미하게 남기 시작했다. 그것이 첩첩 어둠은 아닐지라도 어둠의 빛깔이 조금씩 진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등산로에 낯선 얼굴들이 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늘 있는 현상이다. 물론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시기에는 오히려 익숙했던 얼굴도 하나둘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이동하는 시기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낯선 얼굴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계절 체험자'라고 부른다. 봄이나 계절 한 철을 또는 바뀐 계절의 며칠을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 습관성 운동은 애초부터 그들의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들은 그렇게 오랜만에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처럼 바뀐 계절을 열심히 체험하는 것이다.<br>"처음 헬스장 등록할 때 OT라는 걸 받으라 했다. 인바디 체크하고 이런저런 기구들 쓰는 법을 가르쳐준다 했다. 나는 완강하게 거부했었다. 병원 의료진 앞에서도 싫은데 남 앞에서 저울에 내 몸을 올리고 이리저리 출렁대는 몸을 기계마다 돌아다니며 전시하는 게 영 마뜩잖았다. 게다가, 그렇다, 나는 '독학' 스타일이다.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을 들으며 한 적이 없다. 수업 시간 내내 이런저런 공상에 빠져 지내다가 시험 전날 독학하는 게 내 공부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나는 남의 말 듣는 걸 아주 싫어한다. 그런 내가 올 것이 왔다고 느꼈다는 건 내 스타일, 독학 스타일을 버려야 할 바로 그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는 거다."&nbsp; (p.11)<br>어느 날 새벽 극심한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던 작가는 운동을 하라는 처방을 받아 들었다. 운동이라곤 25년 넘게 해온 인권운동밖에 모르던 작가가 피트니스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그것이었지만, 기간이 늘어날수록 체감하게 된 몸의 변화와 이로 인한 전반적인 삶의 변화는 피트니스를 주제로 한 책을 쓰는 데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그러므로 이 책 &lt;아무튼, 피트니스&gt;는 작가가 2년 가까이 체감한 피트니스에 대한 활동 기록지인 동시에 그로 인한 깨달음이다. 물론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에게 부침이 없었던 건 아니다. 체중이 조금 가벼워지자 등산에 나섰다가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깁스를 하고 한 달을 쉬기도 했고, 매 끼니마다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트레이너의 요구에 난감해하기도 했다. 광우병 파동을 겪으면서 고기를 끊었고, 고혈압 판정을 받은 후 저염식 식사를 하게 되었다는, 그럼으로써 작가 자신의 인생에서 두 번의 큰 전환을 겪었다는 작가는 식습관을 바꾸는 인생의 대전환을 요구받았던 것이다.<br>"삶이 지루하다 해서 늘 익사이팅한 경험을 만들고 매일 여행을 떠날 순 없지 않은가. 살아가려면 늘 고만고만한 일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피트니스의 지루함은 삶의 그런 모습과 닮아 있다. 피트니스의 문제라면 잘하게 될수록 복근 운동 세트 수가 늘어나는 것처럼 오히려 할 게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아차, 삶도 그런가. 삶에서 뭔가를 잘할수록 더 많은 책임이 따르게 되는 것 아닌가.)"&nbsp; (p.81)<br>운동의 효과를 스스로 체감하기 시작하면서 작가는 운동 전도사로 탈바꿈했다. 그렇게 운동을 싫어하고 마구잡이식 식사에 젖어 있던 작가의 예전 모습을 비교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변화였다. 데드리프트와 체스트리프트, 복근 운동과 스쿼트 등 트레이너의 지시와 운동기구의 사용 요령에 대한 학습이 반복되면서 작가 역시 헬스장의 문화에 익숙해지는 듯했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고 성장을 이어가는 동물 개체일 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개개인이 겪는 힘듦과 부침이 따르겠지만 말이다.<br>"나는 제대로 내 몸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모로 다짐을 해보곤 한다. '운동을 해서 몸이 좀 좋아졌다고 '내가 해봐서 아는데'의 또 다른 버전을 만들지 말자. 똑같은 산수로 서로 다른 생을 비교할 수 없다. 생애 주기에 따라서가 아니라 나에게 특화된 나의 몸과 활동이 있다. 늙지 않기를 바라는 대신 나이 듦과 더불어 살아가자. 운동을 하면서 '성공적인' 나이듦 같은 건 생각하지도 말자.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삶을 의미한다. 또 하나의 정신승리를 거부하자.'"&nbsp; (p.152)<br>나는 오늘도 산뜻한 운동복 차림의 몇몇 '계절 체험자'들과 나란히 산길을 걸었다. 그들 중에서 올 겨울을 넘겨 2027년과 2028년을 함께 걷게 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나는 적어도 그들이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체험하는 '계절 변화 얼리 어답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극한의 더위가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맘때쯤이면 '아, 산에는 지금쯤 상수리나무의 잔가지가 떨어져 등산로를 덮고, 알도 차지 않은 풋밤송이가 매미의 울음소리에 놀라 후둑후둑 떨어지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870/0/cover150/k4825318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8700084</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그렇게 또 한 계절을 살아내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44782</link><pubDate>Tue, 11 Aug 2026 16: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44782</guid><description><![CDATA[등등하던 폭염의 기세는 한풀 꺾인 듯합니다. 그렇다고 한낮 더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이따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만 말입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겠습니다만 이제는 여름휴가도 대부분 끝이 나고 평일에는 출근과 퇴근이 반복되는 나른한 루틴이 이어지겠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특별할 것 없는 심드렁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대 후 복학을 해야 하는 아들의 이사를 돕기 위해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근처를 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아들은 그곳에 있는 작은 오피스텔을 숙소로 정했고, 그곳에서 어쩌면 남은 대학기간 2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이 계획하는 대로 차후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그곳에서 더 긴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2년을 계약한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오피스텔 임대 계약을 마쳤다는 이야기는 아들로부터 전해 들었지만 그곳에 직접 가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br>8월 3일에 임대 계약을 마친 아들은 그 사이에 에어컨 청소를 의뢰하고, 침대와 책상을 구입하고, 가볍게 청소를 하는 등 입주 준비를 서둘렀던 듯합니다. 승용차에 아들의 짐을 바리바리 싣고 오피스텔에 도착하니 현관 앞에는 아들이 이케아에서 주문한 책꽂이며, 조립식 스탠드 조명이며, 베개며, 커튼 등 집에서 가져간 짐만큼의 이삿짐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점심을 간단하게 때울 요량으로 배달음식을 주문한 후 책꽂이를 조립하고, 커튼을 달고, 스탠드 조명을 조립하여 침대 곁에 두고, 짐 정리 후 나온 박스와 비닐을 모아 쓰레기장에 분리수거까지 마치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의 유럽 여행 후일담을 듣느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아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찍었던 사진 몇 장을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사진 동아리의 정기 사진전에 걸었고, 그중 두 점이 팔렸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입대하기 전에 있었던 신촌의 숙소에 비하면 상암동은 심심하기 짝이 없는 곳일지도 모릅니다. 주변에는 산과 공원 등 초록초록한 자연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가까운 식당을 가려고 해도 1km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동해야 할 듯합니다. 그곳에서 아들은 무척이나 건전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 비비언 고닉이 쓴 &lt;연애 시대의 종말&gt;을 읽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도 연애에 관심이 없거나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의 비중이 늘고 있는 듯한데 비비언 고닉 역시 20세기의 문학작품에서 보는 사랑의 문제가 꽤나 심각하게 보였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br>"메러디스와 다이애나의 관계는 플로베르와 에마 보바리의 관계에 비교할 수 있다. 여자 주인공이 바로 작가 자신이다. 다이애나를 찬란한 존재로 만들고 다이애나가 독립을 갈망하는 지적인 여성의 삶을 충만하게 살도록 함으로써, 다시 말해 상황을 첨예하게 만듦으로써, 메러디스는 굴욕당한 무지한 자아가 겉으로 드러나는 순간에 잘 다가갈 수 있다. 그게 작가의 진짜 관심사이며 작가 자신의 상처이기 때문이다."&nbsp; (p.25)<br>아침에 하늘 저편에서 보이던 먹구름은 이제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은 온통 가을을 닮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또 한 계절을 무사히 살아낸 듯합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나뭇잎도 기운을 잃고 -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 지친 영혼을 위한 동심 처방]</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35849</link><pubDate>Thu, 06 Aug 2026 16: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358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0304&TPaperId=174358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0/14/coveroff/k73213030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0304&TPaperId=174358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 지친 영혼을 위한 동심 처방</a><br/>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6년 07월<br/></td></tr></table><br/>성인이 된 후에도 동화를 읽을 때가 더러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생각날 때가 있는 것이다. 동화를 읽을 때마다 나는 작가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곤 한다. 소설을 읽을 때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이다. 은유나 비유가 많지도 않은, 그렇다고 구성 자체가 복잡하거나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지도 않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언어로 쓰인 단출한 인물과 사건 구성임에도 동화는 어떻게 독자의 마음을 그토록 쉽게 사로잡는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종종 생각하곤 한다. 내가 생각하는 동화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고 문장의 표현이 직접적인 까닭에 독자의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말하자면 소설은 투명한 유리 반대편에 반투명의 얇은 종이를 덧댐으로써 독자들에겐 그저 흐릿한 윤곽만 제공함으로써 독자 개개인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지만, 동화는 그런 장치 없이 투명한 유리 저편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까닭에 동화 속 주인공이 울고 있으면 나도 따라 훌쩍거리며 울게 되는 것이다.<br>"은하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삶과 슬픔을 안고 있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잊기도 합니다. 은하철도에 올라타 인사를 나누는 것도 이별하는 것도 모두 갑작스럽습니다. 조반나는 갑작스러운 이별에 슬퍼하면서도 그들의 행복을 바라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은하철도에서 만난 모든 사람의 행복을 빌어줍니다. 이처럼&nbsp;『은하철도의 밤』은 수많은 만남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행복과 슬픔,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 우리는 이처럼 상반된 것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간다면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것들이지요."&nbsp; (p.211)<br>이서희 작가가 쓴 &lt;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gt;는 PART 1 '함께할 때야 빛나는 것',&nbsp;PART 2 '진심의 아름다움',&nbsp;PART 3 '상상을 뻗어 자유로운 세계로',&nbsp;PART 4 '내 심장으로 마주하는 모험',&nbsp;PART 5 '우리의 성장을 닮은 이야기' 등 총 5부로 나뉘어 22편의 동화가 발췌되어 실려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비롯하여 정글북, 소공녀, 피터팬, 찰리와 초콜릿 공장, 닐스의 신기한 모험, 브레맨 음악대, 보물섬, 피노키오, 은하철도의 밤, 어느 별에서 온 이상한 소식 등제목만 들어도 '아하!' 하고 무릎을 칠 만한 유명 동화들이 작가의 안내와 해설에 따라 줄줄이 소환되는 것이다.<br>"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쉽게 기뻐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온전히 믿는 일에 조심스러워지며, 아무 조건 없이 아름다운 것에 대해 말하던 감각마저 잊고 살아갑니다. 세상이 아직 좋은 곳일 수 있다고 믿던 작은 확신도 어느새 마음 깊은 곳에 접어두기도 합니다. 그럴 때 동화는 오래된 친구처럼 우리 곁에 놓입니다."&nbsp; (p.4~p.5 'prologue' 중에서)<br>비록 이 책에는 작가가 가려 뽑은 동화 속 일부 문장들이 실려 있지만, 책을 읽다 보면 어쩌면 그 문장들로 인해 다시 읽어보고 싶은 동화가 한두 권쯤 나타날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어느 가을의 언저리에서 홀로 남은 빈집을 지키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채 읽었던 '정글북'이나, 할머니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고 조명도 없는 사랑방에 숨어들어 읽었던 '피노키오' 등 우리는 동화 한 편을 다시 읽음으로써 소중한 추억들을 새록새록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각박한 사회생활로 잔뜩 날이 섰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스르르 무뎌지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짜증을 부렸던 누군가에게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br>"004 얘야,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난단다. 거짓말에는 두 종류가 있기 때문이야. 세상에는 다리가 짧은 거짓말도 있고, 코가 긴 거짓말도 있거든. 네가 한 것은 코가 긴 거짓말이란다."&nbsp; (p.190)<br>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땀이 흐르는 살인적인 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의 표정 역시 굳어가다 못해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처럼 수없이 잔금이 가는 듯하다. 날 선 표정에 질린 탓인지 사무실에선 농담이 사라졌다. 무거운 침묵이 흐를 뿐이다. 침묵은 가히 빛도 없고 소리도 없는 우주 공간을 닮아 있다. 그 무거운 침묵 사이를 각자가 겨누는 마음의 검이 마치 어느 영화의 광선검처럼 서로를 향해 겨누고 있는 듯하다. 언제든 찌를 준비를 하고. 내가 읽은 동화 한 편이 광선검을 막아줄 캡틴의 방패가 되어줄 것인가. 강한 햇살에 기운을 잃은 나뭇잎이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0/14/cover150/k73213030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901488</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비관적인 전망을 하자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32221</link><pubDate>Tue, 04 Aug 2026 17: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32221</guid><description><![CDATA['덥다, 덥다' 하면 더 더울까 봐 덥다는 말을 가급적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덥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요즘입니다. 게다가 비가 자주 내릴 때는 그렇게 지긋지긋하더니 이렇게 살인적인 더위가 이어지자 차라리 비가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잠깐 내리는 소나기조차 보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이맘때의 나는 새벽 운동을 나서는 경우에도 주로 긴소매의 운동복을 입는 편이었습니다. 극성스러운 모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최근에는 앵앵거리는 모기마저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한동안 비는 오지 않고 강한 여름 햇살만 내리쬐는 까닭에 등산로에서도 모기 유충이 살 만한 물웅덩이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른 먼지만 풀풀 날릴 뿐입니다.<br>그러나 지구 환경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말하기를 올해 여름이 앞으로 경험하게 될 또 다른 여름에 비해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확률이 거의 100%라고 합니다. 특별한 사건이 없다면 말입니다. 그러니까 올해 여름보다 내년 여름이 더 더울 것이며, 내년 여름보다 내후년 여름이 더 더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입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말입니다. 이런 전망이 수긍은 되면서도 들을 때마다 우울한 기분에 빠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br>알래스카의 숭고한 풍경을 사진에 담았던 호시노 미치오의 에세이 &lt;긴 여행의 도중&gt;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br>"문득, 지금은 세상을 떠난 작곡가 다케미쓰 도루의 말이 생각났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말이었다. "이 세상은 이미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역시 긍정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고 만다. 체념과 희망이 공존하고, 밝음과 슬픔이 한데 섞인 채, 나는 내일을 생각한다." 제인이 갑자기 손을 내밀어 나와 미카엘의 손을 잡았다. 나는 말로 할 수 없는 약속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아프리카 여행은 끝이 났다."&nbsp; (p.52)<br>여전히 비소식은 없고, 쨍한 하늘만 지겹도록 계속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lt;애프터 다크&gt;에는 '내 인생의 좌우명. 천천히 걸어라. 물을 많이 마셔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인생의 좌우명까지는 아닐지라도 이런 날씨에는 물을 자주 마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듯합니다. 어쩌면 올 여름이 우리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슬픔의 분할 - [[큰글자도서] 우리의 여름에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28264</link><pubDate>Sun, 02 Aug 2026 14: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282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60X&TPaperId=174282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648/14/coveroff/893643960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60X&TPaperId=174282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큰글자도서] 우리의 여름에게</a><br/>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09월<br/></td></tr></table><br/>삶의 중심에 컴퍼스를 대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원 하나를 그려 보자. 그리고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같은 크기로 등분을 하여 각각의 나이대에 동일한 양의 슬픔을 나누어 주자. 일명 슬픔의 분할. 그렇게 등분된 슬픔을 안고 태어난 사람은 행복할까? 어느 나이대에 너무 과도한 슬픔이 몰린 까닭에 한동안 견디기 힘든 시기를 보내거나 과도한 슬픔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는 것보다 각각의 나이대에 일정한 슬픔이 배분된다면 삶은 지금보다 수월하거나 행복의 총량이 조금쯤 늘어나지 않을까? 같은 크기로 나뉜 피자의 조각처럼 같은 양의 슬픔을 각각의 나이대에 분할하면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이따금 설렁설렁 여유를 부릴 수도 있지 않을까?<br>최지은의 에세이 &lt;우리의 여름에게&gt;를 다 읽고 나는 한동안 그런 의문에 젖어 있었다. 어쩌면 작가의 슬픔이 내게 전이되어 어느 순간 눅눅한 슬픔이 감정의 밑바닥에 착 달라붙어 곰팡이처럼 피어났을지도 모른다. 한여름의 슬픔이 뿜어내는 퀴퀴한 냄새를 풍기면서 나는 한동안 '슬픔의 분할'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비록 내던져진 삶을 살아가고는 있지만 특정 시기에 슬픔이 집중된다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싶었던 것이다. 삶을 주관하는 하느님에게 항변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 그런 심정이 여름의 불청객 불쾌지수에 더해져 짜증만 늘었었다.<br>"한 사람의 부재는 세계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뒤흔든다. 한 사람이 스스로 사라진 구멍은 그가 존재했던 세계를 무너뜨린다. 한 사람의 자살은 남은 사람의 세계를 틀림없이 파괴하고 영영 복구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만다. 녹지 않는 눈송이가 허공에 멈춰 있는 '겨울' 속에 한참을 가둬두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내가 또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할까봐. 이파리 하나라도 상하게 만들까봐. 나는 얌전히 조심한다. 사라지지 않는 누군가의 숨결이 내 안에서 흐르는 것을 느낀다. 가끔 그가 내게 말한다. 창을 열자. 그래, 바람을 들이자."&nbsp; (p.105)<br>엄마와 이혼한 아버지가 어렸던 작가를 할머니에게 맡겨 할머니 손에서 자라난 것도, 할머니의 죽음 이후 건강이 안 좋아진 아버지를 잠깐 돌보았다는 작가, 그리고 아버지의 자살. 그리고 작가는 '가장 어두웠던 그 시기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대학생 시절 가난하여 반지하 월세방에 살았다는 작가는 신인시인상 수상 상금 500만 원도, 첫 시집을 내고 인세로 받은 180만 원도 모두 기부하였다고 한다.<br>"상금도 첫 인세도 내게는 소비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시를 써서 받은 돈이 내 것 같지 않았고, 시를 쓰게 된 삶을 원망하고 미워했던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나의 시와 아버지의 죽음 사이의 틈을 좁힐 수 없었으니까. 당장 내가 쓸 수 없다면 급하게 필요한 사람과 나누어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실은 다 나중에야 생각해본 이유들이고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선물을 주고 싶었던 명확한 이유를 여전히 나는 모른다."&nbsp; (p.134~p.135)<br>아버지의 자살 이후 공황장애를 겪게 되었다는 작가는 다니던 회사에서 휴직하고, 작가의 남편이 검은 개 탄이와 흰 개 설이를 입양했다고 한다. 1부 '여름에 만난 아이', 2부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렴', 3부 '나를 기다리는 이야기'로 구성된 &lt;우리의 여름에게&gt;는 읽는 사람에 따라 지루하다거나, 불쌍하거나 기구하다거나, 가엾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누군가가 들려주는 건강한 슬픔은 때로 우리에게 삶을 지탱하는 튼튼한 다리가 되기도 한다. '모모 씨는 이보다 더한 슬픔도 이겨냈다는데' 하면서 위안을 삼기도 하는 것이다.<br>"글로 하는 고백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 나의 이야기, 나의 시간, 나의 경험이 '상처'라는 이름으로 정의되었을 때 고백은 쓸쓸한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 쓸쓸함 때문에 꼭 필요한 고백이 침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 두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수많은 오해를 품고 살면서 왜 모든 독자와 오해 없이 연결되기를 기대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욕심쟁이일까."&nbsp; (p.170)<br>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도로변의 작은 카페에 들렀다. 냉방이 잘 된 보송보송한 공간이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겐 조금 서늘하다 싶은, 기분 좋은 한기가 들어서자마자 훅 하고 끼쳤다. 그리고 구수한 커피 향과 달착지근한 빵 냄새가 뒤섞여 나른한 '풀림'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카페 한 귀퉁이에 앉아 &lt;불필요한 여자&gt;를 조금 읽었다. 더위 탓인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나는 손님이 끊긴 조용한 카페에서 이글거리는 바깥 풍경을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최지은 작가의 &lt;우리의 여름에게&gt;가 내게 남겼던 눅눅한 슬픔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648/14/cover150/893643960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6481412</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도서 반납을 미루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26747</link><pubDate>Sat, 01 Aug 2026 13: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26747</guid><description><![CDATA[장마가 끝나고 나면 대기의 층이 한 뼘쯤 두터워지는 느낌입니다. 텁텁하고 두터워진 대기층으로 인해 한낮의 매미 울음소리가 한 옥타브쯤 높아지게 마련이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그 간절한 소음을 뒤로한 채 점차 뜨거워지는 여름 햇살의 열기는 두꺼운 대기층을 뚫고 지상의 모든 생물을 향해 "견뎌라. 이 고통을 견디는 자만이 곧 다가올 가을의 신선한 햇살을 누릴 자격이 주어지리니."라고 외치는 듯합니다.<br>어느새 8월입니다. 경남의 어느 지역은 한낮 기온이 41도를 넘었다지요. 극한의 더위 속에서 우리는 이따금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도 하고, 이웃의 죄를 싸잡아 비난하기도 하지만 결국에 내게 돌아오는 것은 허무와 결핍으로 얼룩진 앙상한 팔뚝과 빈손뿐입니다.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를 피해 작은 양산의 그늘 속으로 숨어보지만 아스팔트가 내뿜는 열기는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글이글 불타는 한낮의 도로는 모자이크를 닮은 아지랑이로 인해 모든 피사체가 흔들리고 있는 듯합니다. 여름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태양의 열기 속에서 자신의 크고 작은 죄가 흔적도 없이 불타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낮 기온이 아무리 뜨거워도 우리에게는 일말의 '죄 사함'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늦가을의 낙엽을 밟으며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br>이서희 작가의 &lt;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gt;를 읽고 있습니다. 아스라이 멀어졌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눈앞에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잠시 행복할 수 있겠습니다.<br>"누구나 힘든 시절을 보내고, 아픔을 간직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시기를 보내는 태도에 있습니다. 안나와 마니를 통해 우리가 치유받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소녀들은 힘든 일과 슬픔을 피하지 않고 마주합니다. 솔직한 태도로 내면의 아픔에 마주 서는 것입니다."&nbsp; (p.68 조앤 G. 로빈슨의 '거기 마니가 있었다')<br>도서관에 반납해야 할 책이 한 권 있는데 도서관에 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베란다 창밖을 보니 아파트 화단에 무궁화가 피었습니다. 어렸을 적 보았던 무궁화는 시골집 담장 밑에 피어서 진드기 떼의 습격을 고스란히 받곤 했던 까닭에 언제나 지저분한 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무궁화에 진드기가 달라붙은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 꽃이라는 상징성이나 주목도는 예전에 비해 많이 퇴색된 게 사실입니다. 베란다 창을 열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두텁고 답답한 대기층이 한꺼번에 밀려듭니다. 아무래도 책을 반납하는 일은 내일로 미뤄야만 하겠습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지금 건강하다는 착각 - [하얀 거짓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24233</link><pubDate>Fri, 31 Jul 2026 17: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242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130704&TPaperId=174242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26/24/coveroff/k83213070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130704&TPaperId=174242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하얀 거짓말</a><br/>김인철 지음 / 보민출판사 / 2026년 07월<br/></td></tr></table><br/>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나 소재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전에 읽었던 다른 소설이 떠오르기도 한다. 김인철의 소설 &lt;하얀 거짓말&gt;을 읽을 때도 그랬다. 탐사 기자 이기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사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과거 2019년에 있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의 진실을 파헤칠 탐사보도팀이 결성되면서 시작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변형 바이러스라 할 수 있는 신종 조류독감이 유행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삶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인간의 판단력은 무뎌지고 성행하는 가짜 뉴스에 대응할 능력은 극도로 약화되어 가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늠자 역할로서의 '탐사보도'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빛을 발하게 되었다. 세계 각국의 엘리트 젊은 기자들로 구성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에 속한 기자들로 구성된 탐사보도팀의 일원인 기준과 아구스틴은 팬데믹의 발원지인 우한을 중심으로 추적에 들어간다.<br>"그는 이제 바이러스 팬데믹 분야에서 가장 전문성을 인정받는 기자가 되었다. 그래서 미래에 닥쳐올 새로운 팬데믹의 대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2019년 코로나19 사태의 숨겨진 진실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깊은 사명감을 품게 된 것이다."&nbsp; (p.42)<br>정유정의 소설 &lt;28&gt;의 공간적 배경은 화양시이다.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한 인수공통감염병이 발병하자 화양시는 봉쇄된다. 외부와 차단된 도시에서 펼쳐지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그린 소설 &lt;28&gt;에도 소방대원의 이름 역시 기준이었다. 소설 &lt;28&gt;은 팬데믹 이전(2013년)에 출간된 소설이었지만, 사실 바이러스는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전문가가 예상한 '지구 종말 시나리오 9가지'에도 포함된 것을 보면 그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지구 종말 시나리오 9가지는 첫 번째 '물리학 실험의 실패', 두 번째 '화산폭발', 세 번째 '빙하기 또는 태양 폭발로 인한 기온 상승', 네 번째 '외계인의 침략', 다섯 번째 '컴퓨터의 지배', 여섯 번째 '소행성 충돌', 일곱 번째 '치명적인 벌레의 공격'(바이러스와 연관), 여덟 번째 '별의 대규모 폭발', 아홉 번째 '나노 기술의 악몽'이다. 이런 까닭에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지구 전체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이와 같은 현실적 가능성으로 인해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은 앞으로도 꾸준히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br>"사실 이 광기 어린 도박의 가장 끔찍한 뇌관은 따로 있었다. 벡터로 강제 개조된 인공 바이러스가 숙주의 몸에서 잃어버린 복제 능력을 되찾거나, 대자연의 야생 바이러스와 결합하여 전대미문의 괴질을 퍼뜨릴 새로운 변종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임상에 동원된 피험자의 체내에서조차 통제할 수 없는 끔찍한 돌연변이가 창궐할지 모를 일이었다. 만약 그리 된다면 인류의 재앙에 가까운 부작용이 들이닥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제창과 자오융의 흐려진 동공에 그런 과학적 경고가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들의 영혼은 오직 빛의 속도로 임상을 주파하여 천문학적인 부를 틀어쥐겠다는 검은 광기로만 펄떡이고 있었다."&nbsp; (p.312)<br>탐사 기자 이기준과 그의 동료 아구스틴이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밝고 희망에 찬 내용이 아니었다. 부를 향한 거대 제약회사의 편법과 은폐, 권력의 동조와 과학의 오만 등이 섞여 세상은 다시 M-바이러스라는 공포 속으로 걷잡을 새 없이 빨려 들어가고 만다. M-바이러스는 인간의 육체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죄의식이나 거짓말까지 겨냥한다. 종국에는 선의의 거짓말까지 심판하는 상황.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기준마저 M-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마는데...<br>"그들은 서둘러 기준의 아파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목적지에 당도한 민희가 초인종을 거듭 눌렀으나, 문 너머에서는 어떠한 생의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행히 아구스틴이 기준의 현관 비밀번호를 숙지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간신히 닫힌 문을 열고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어두컴컴한 거실로 들어선 그들의 시야에, 소파 곁에 처참히 허물어져 있는 기준의 형상이 들어왔다."&nbsp; (p.545)<br>여름 햇볕이 뜨겁다 못해 따가울 정도로 그 열기가 무섭기만 하다. 이런 열기라면 웬만한 바이러스도 살아남지 못할 듯한데 현실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직장 동료 중 한 명이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장염으로 며칠째 출근을 못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더 무섭고 치명적일 때가 많다. 김인철의 소설 &lt;하얀 거짓말&gt;도 어쩌면 인간의 지적 오만에 대한 강력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처럼 인류의 생존은 그렇게 조심조심 지켜져 왔을 테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개개인의 건강 역시 다르지 않은 듯하다. 지금 건강하다는 생각은 어쩌면 가장 치명적인 약점일지도 모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26/24/cover150/k83213070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262406</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날씨와 주가 하락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21781</link><pubDate>Thu, 30 Jul 2026 16: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21781</guid><description><![CDATA[새벽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다가 그만 허방을 짚고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급하게 서둘렀던 탓입니다. 경사가 진 산 중턱 비탈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곳에는 마침 관리가 잘 된 가족묘 두 기가 서 있는데 묘를 관리하는 듯한 노인분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산에 올라 묘 주변의 잡초를 뽑고, 파인 곳을 돋우고, 봉분 위로 뻗은 나뭇가지를 자르는 등 등이 굽은 노인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워 보이는 일들을 거뜬히 해내면서 소일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묘 앞의 작은 공터에 호박을 심어 애지중지 가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습니다. 플라스틱 물병에 물을 담아 양손에 들고 산을 올라 호박 구덩이 물을 주는 모습도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br>오늘도 노인은 새벽부터 산에 올라 묘를 관리하다가 '어이쿠!' 하고 넘어질 듯하다가 멀쩡히 일어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빙긋이 웃고 있었습니다. 넘어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듯 말입니다. 노인의 미소 너머로 매미가 '맴맴' 기를 쓰고 울고 있었고,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으면서 자리를 피했습니다. 나는 이따금 묘 주변에 쪼그려 앉은 채 열심히 잡초를 뽑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노인은 지금 잡초 뽑기를 핑계로 죽음과 가까워지는 연습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몰래 하곤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그렇게 죽음과 친해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게 되었을 때, 당황하거나 불필요한 거부와 원망의 말을 쏟아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무던히 죽음과 가까워지는 연습을 하고 또 해야 할런지도 모릅니다. 산을 오가며 마주치는 저 노인처럼 말입니다. 라비 알라메딘의 소설 &lt;불필요한 여자&gt;를 읽고 있습니다. 요르단 암만에서 태어난 작가는 여섯 편의 장편 소설과 단편 소설집 한 권을 썼고, 화가로도 활동하면서&nbsp; 세계 여러 도시에서 개인전을 열었다고 합니다.<br>"나는 이미 오래전에 글에 대한 맹목적인 갈망에 나를 맡겼다. 문학은 내 모래 놀이터이다. 나는 그 안에서 놀고, 요새와 성을 쌓고, 황홀한 시간을 보낸다. 날 힘들게 하는 것은 놀이터 바깥의 세상이다. 나는 눈앞의 세상에&nbsp; 온순하게, 그러나 관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적응해왔다. 모래의 비유를 변형해 보자면 문학은 내 모래 놀이터, 현실 세상은 나의 모래시계이다. 모래는 한 톨 한 톨 빠져나간다.&nbsp; &nbsp;문학은 내게 삶을 주고, 삶은 나를 죽인다."&nbsp; (p.16)<br>무척이나 덥고 습한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짜증이 많아지는 요즘, 주식 시세마저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사람들의 표정은 울상입니다. 현 정부가 잘못한 일은 주식의 위험성도 인지하지 못하는 국민 대다수에게 주식 투자를 알게 모르게 권유하고 부추겼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하여 주가가 이렇게 하락하였을 때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알지 못한 채 마냥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투자는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언론이나 주변 사람들의 말만 듣고 '묻지마 투자'에 뛰어드는 게 보편적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결과는 냉혹하다는 것을 지금과 같은 주가 하락기를 통하여 뼈저리게 겪게 될 것입니다. 주식 투자는 사실 원금을 모두 잃을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투자 방식임을 이번 기회에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휴대폰으로 온종일 주식 시세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한 권의 문학작품을 읽는 게 우리의 삶을 위해서 필요한 일임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계절이 건네는 농담처럼 -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삶의 여백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17213</link><pubDate>Tue, 28 Jul 2026 16: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172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831377&TPaperId=174172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842/55/coveroff/k6228313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831377&TPaperId=174172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삶의 여백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a><br/>김신지 지음 / 잠비 / 2023년 01월<br/></td></tr></table><br/>히가시노 게이고의 별세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다. 내가 그와의 어떤 추억이나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추리소설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를 모르지는 않았다. 물론 &lt;나미야 잡화점의 기적&gt;을 비롯하여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그의 작품 몇몇은 나 역시 읽어본 바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소설에 열광하여 갑자기 그의 열혈팬이 되었던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다만 그는 웬만한 작가들이 따라잡을 수조차 없는 속도로 소설을 써왔던 까닭에 서점에서 신간을 소개하는 코너에는 언제나 그가 쓴 새로운 소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그의 소설이라면 무조건 사고 보는 열혈 독자들이 늘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 세월을 몇십 년 지켜보는 동안 나에게도 그의 이름이 친숙하거나 자연스러운 어떤 것이 되고 말았다. 그랬던 작가였기에 그의 별세 소식은 조금 느닷없었고, 소식을 듣자마자 맥이 탁 풀리면서 '아, 한 세대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것이다.<br>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던 그가(그는 전기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소설가라는 직함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는 것은 꽤나 신선하고 멋진 일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비전공자이면서 이름을 크게 떨쳤던 시인이나 소설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lt;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gt;를 쓴 김신지 작가 역시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하여 작가가 된 케이스는 아니다. 잡지 에디터로 일을 시작해서 작가로 데뷔한 경우이지만 생활에서 길어 올린 김신지 작가의 글은 적당히 신선한 반면 깊은 울림을 준다.<br>"누군가 이미 그렇게 살았다는 사실이 희망이 될 때가 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내가 끝끝내 어떤 낙관을 향해 몸을 돌린다면 '믿게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 걸 이제는 안다. 세상이 어때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보고 싶은 그 세상을 먼저 살아내면 된다는 것도. 솟아나는 말들을 나는 그대로 둔다. 희망이 생기도록 내버려 둔다. 가르친 적 없는데 배우게 하는 것, 그게 내가 아는 할머니들의 교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nbsp; (p.57~p.58)<br>우리는 종종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삶의 끄트머리에 서서 '너의 삶은 이러이러할 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말하자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이나 보고 있는 영화의 스포일러처럼 우리의 삶이 힘들 때마다 우리 앞에 짠 하고 나타나 각자에게 펼쳐질 삶의 전개를 약간의 허풍을 섞어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도 덜도 말고 우리들 각자의 마지막이 가족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으며 평안함 속에서 마무리될 것이라는 메시지만 있어도 우리는 지금 넘고 있는 삶의 고비들이 전보다 한결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가족들을 더욱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간은 그렇게 쉬지 않고 흘러갈 테니까 말이다.<br>"그저 창밖을 더 바라보고 싶었던 그날 아침처럼, 내가 바라는 건 다 사소한 것들이었다. 시간이 생기면 쉽게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없을 땐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지는 일.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런 여유를 마음에서 길어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문제는 '생산성'이라고(도무지 정이 붙지 않는 말이다), 예전 같으면 남과 비교하며 나를 나무랄 이유부터 찾았을 텐데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힘들다는데 왜 그 감정을 저울에 올려놓아야 하나. 일에 마음이 계속 깎여나가는데도 이 정도로 힘들다고 말해도 되나 망설이며 살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 자주 겪는 일처럼. "아프면 말씀하세요."라는데 얼마나 아파야 손을 들어 그렇다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눈물이 흐를 때까지 참는 버릇. 내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견뎌보는 마음. 참으면 복이 안 오는데. 병이 오는데."&nbsp; (p.163~p.164)<br>1부 '쉬운 미움 대신 어려운 사랑을'에서 작가는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고향 사람들, 그리고 지금 작가의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해 쓰고 있다. 2부 '삶이 결국 우리가 쓴 시간이라면'에서는 회사를 그만두고 '슴슴한 평양냉면 맛의 하루'를 살아가는, 전보다 헐거워진 자신의 삶에 대해 쓰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를 울고 웃게 하는 건 어쩌면 작가에게 많은 시간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이웃의 마음까지 살펴볼 수 있는 여유, 계절이 오가는 풍경들을 오롯이 가슴에 품고 와 그 풍경들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하나의 문장 속에서 요렇게 저렇게 꾸며 볼 수 있는 여유, 이웃과의 대화 속에서 상대방의 말 속에 깃든 사랑과 미움의 감정들을 쏙쏙 골라낼 수 있는 여유는 모두 작가가 누리는 헐거워진 시간 덕분일지도 모른다.<br>"이젠 얼굴도 희미해진 사람이 내 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해준 적 있다. 모든 흉터는 사실 훈장인 걸 아느냐고. 이 일을 겪어냈다는, 그 후로 여기까지 살아냈다는 흔적이니까. 어린 내게 '흉터'가 방향을 일러줬다는 건, 그러고 보면 삶이 건네는 짓궂은 농담 중 하나 같기도 하다."&nbsp; (p.291)<br>나는 오늘도 텁텁한 무더위를 견뎌낸 하루의 시간에 길게 밑줄을 긋는다. 먼 훗날 내가 떠올리게 될 오늘은 지금 내가 기억하는 오늘과 사뭇 달라진 모습일 테지만, 힘들게 밑줄을 그었던 그 가상한 노력만큼은 온전한 모습으로 남지 않을까. 7월도 막바지를 향해 가는 시간, 창밖의 모든 소음이 말매미 울음소리에 묻힌다. 계절이 건네는 농담처럼 등을 타고 흐르는 무더위.]]></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842/55/cover150/k6228313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8425518</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평론가 김현을 그리워하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11083</link><pubDate>Sat, 25 Jul 2026 15: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11083</guid><description><![CDATA[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는 나이는 대략 서너 살 무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는 뜻일 테지요. 다른 동물들도 그렇지만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그 공동체는 원활히 유지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공동체의 언어로 말하기와 쓰기를 배우고, 같은 언어로 쓰인 책을 읽고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nbsp;기초적인 덕목을&nbsp;갖추는 것일 테지요. 우리는 이와 같은 과정을 가족 공동체 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통하여 어린 나이부터 충분히 학습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언어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애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얼빠진 어른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br>그런 얼빠진 어른을 부모로 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인지 성인들 중에서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아진 듯합니다. 책을 읽지 않고 동영상 쇼츠에 몰입하는 것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한 원인이 되겠지요. 직장에서도 뒷귀가 어두운 사람들과 일을 같이 한다는 건 꽤나 어렵고 답답한 일입니다. 하물며 방송에 출연하는 방송인이나 말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치권의 인사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면 그는 아마도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인간으로 취급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br>최근 들어 소위 정치비평가를 자처하는 방송인이나 정치인들 중 뒷귀가 어두운 사람을 너무 자주 목격하는 까닭에 짜증이 솟구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예컨대 얼마 전 유시민 작가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한 간결한 언어로 작금의 상황을 설명하였지만, 소위 정치평론가라고 하는 작자들 대부분은 유시민 작가가 했던 말의 의미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거나 엉뚱한 의미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인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유치원만 제대로 나왔어도 이해하지 못할 말은 없는 듯 보였는데 성인도 훌쩍 지나 장년이나 노년에 접어드는 그들이 그렇게 쉬운 말조차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건 충격적인 현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라면 반드시 ~~한다'라는 조건문에서 앞의 조건이 완성되어야 뒤의 문장이 성립하는 게 당연한데 이마저도 무시한 채 뒤의 문장만 따로 떼어 인용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것과 같은 행태는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그들은 과연 1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는 사람들인지, 만약 읽는다면 그 책도 저런 식으로 엉뚱한 해석을 동반하여 읽는 건 아닌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br>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대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문학평론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던 김현(본명 김광남) 작가입니다. 1985년 12월 30일부터 1989년 12월 12일까지 만 4년의 381일치의 일기이자 유고로 남겨진 그의 저서 &lt;행복한 책읽기&gt;에서 작가는 "정치적 언어의 특징은 그 뻔뻔함에 있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정치적 언어는 그 미숙함과 어리석음에 있는 듯합니다.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듯한 작자들이, 타인의 말도 해석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작자들이 정치 평론도 하고 심지어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정치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쑥쑥 늙어간다는 것 -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09531</link><pubDate>Fri, 24 Jul 2026 17: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095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6161&TPaperId=174095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295/14/coveroff/89374261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6161&TPaperId=174095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a><br/>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23년 08월<br/></td></tr></table><br/>불과 며칠 동안의 장맛비에 세상 쓸모없는 것 같은 미국자리공이 가슴께까지 자랐다. 키가 작은 여뀌와 달개비가 그저 자신의 푸르름만 더하는 동안 '때는 이때다' 싶은 미국자리공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쑥쑥 자라난 것이다. 장마도 막바지에 이른 지금, 나는 모처럼 보는 푸른 하늘을 등에 업고 산에 올랐다. 산 중턱에 있는 참나리꽃 군락지에는 꽃이 만개했고, 풀숲에 웃자란 미국자리공이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듯했다. 장맛비에 쑥쑥 자라나는 저 미국자리공처럼 나도 그렇게 쑥쑥 늙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었다. 나는 장맛비에 쑥쑥 늙어가기 위해 이응준의 에세이 &lt;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gt;를 읽었다. 이응준의 수필은 타인의 공감에 무관심한, 지극히 사적인 사유들로 채워져 있는 까닭에 때로는 나 역시 이해하기 어려워 이해를 포기한 채 수시로 건너뛰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쑥쑥 늙어가기 위해서는 이만한 책이 없다고 수시로 믿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헛된 믿음일지라도 말이다.<br>"나는 누구인가? 아직도 누군가는 내 어린 시절의 시를 읽어 주고 있고 나는 여전히 오리무중의 모독 속에서 새로운 시를 쓰고 있는 중이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을 목숨처럼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일제히 묘한 슬픔을 안겨 준다. 다만 나는 속삭이고 싶다. 사실상 인생은 시나 소설이 아니라고. 인생은 순간순간 한 편의 수필(隨筆)이다. 우리 모두는 시인이나 소설가나 수필가도 아닌 '수필인간(隨筆人間)'이다. 인생과 인간은 시처럼 비장하고 아름답지도, 소설처럼 풍성하고 구조적이지도 않다."&nbsp; (P.84)<br>1부 '명왕성에서 이별'에서 작가는 16년 동안 작가와 함께하며 곁을 지켜주었던 강아지 '토토'를 떠나보낸 소회와 다른 강아지 '토토'를 자신의 반려견으로 맞게 된 이야기를 쓰고 있다. 2부 '폭염서정(暴炎抒情)'에서는 표제작이기도 한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를 비롯하여 '죽음에 관한 소견', '수필인간(隨筆人間)' 등의 소제목으로 우리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룸과 동시에 인간의 피할 수 없는 고독에 대해 쓰고 있다. 3부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에서 작가는 사라져 가는 것들과 상실에 대해 쓰고 있다.<br>"죽음이란 위대한 무기(武器)이자 부적(符籍)이다. 죽음을 각오하면 우리는 삶에서 못 해낼 일이 없다. 그 어떤 적도 멸망시킬 수 있으며 그 어떤 재앙도 씹어 삼켜 소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을 다 한 뒤에 당당히 죽을 수가 있다. 우리는 이런 기가 막힌 무기이자 부적을 공평하게 하나씩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죽음은 제대로 살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삶에서 도망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nbsp; (P.175)<br>이어지는 4부 '무장시론(武裝詩論)에서는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몰래 글을 쓰기 시작하여 스무 살에 시인으로 스물다섯 살에 소설가로 등단했던 작가가 자신의 문학관에 대하여 스스로가 읽었던 책과 자신이 쓴 글들을 중심으로 담담하게 펼쳐 보인다. 5부 '나와 바오밥나무와 하나님과'에서 작가는 식물을 좋아하는 자신에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를 키워보라는 출판사 대표의 권유에서 비롯된 다양한 사유와 과학 및 종교 등과 연관된 희망과 절망이라는 문학적 주제를 쓰고 있다. 마지막 6부 '성찰하는 괴물'에서 작가는 누구나 화두와 같은 질문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사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을까를 탐구하는 여정이다.<br>"이 책의 절반 정도는 죽음이 내게 가까이 와 있던 시절에 쓴 것들이다. 만약 이 책에 뛰어난 점이 있다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사랑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은 인생과 죽음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이며, 신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사랑에 대해 질문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nbsp; (P..12 '서문' 중에서)<br>장마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자 사뭇 싱겁게만 보이던 여름이 된맛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말매미의 울음소리가 전보다 높아진 것도, 땅에 스며들었던&nbsp;습기가 햇볕을 받아 일시에 날아오르는 것도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이제 시작되는 여름의 무더위를 견디고 나면 이번 장맛비에 허리께까지 자란 미국자리공처럼 나 역시 쑥쑥 늙어갈 수 있을까. 늙어간다는 말에 '쑥쑥이라는 부사를 붙여 쓰지는 않지만 나는 종종 그렇게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죽음을 향해 쑥쑥 늙어가고 싶은 것이다. 아주 장하게 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295/14/cover150/89374261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295145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장마철에 우리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03869</link><pubDate>Tue, 21 Jul 2026 15: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03869</guid><description><![CDATA[오늘 아침 숲은 나름의 방식으로 고요했습니다. 과한 습기 때문인지 바람 한 점 없는 길을 걷고 있노라니 내가 마치 거대한 한증막에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그 많던 새들도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피서를 떠났는지 새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곧 덮칠 더위를 경고하려는 듯 참매미가 이따금 '맴맴' 우닐 뿐이었습니다. 멀리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다른 새들이 더위를 피해 멀리 여행을 떠날지라도 계절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뻐꾸기는 차마 이곳을 떠날 수 없었던가 봅니다. 저편 하늘에는 까맣게 먹장구름이 밀려오는데 등산로 주변으로 눈부신 햇살이 반짝였습니다. 땀냄새를 맡은 모기가 앵앵거리며 달려들었습니다. 운동을 마친 나는 서둘러 산을 내려왔습니다. 숲의 고요가 아파트 현관까지 따라왔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새벽 숲의 고요를 떨쳐내고 출근 준비를 서둘러야 합니다.<br>최지은 작가의 에세이 &lt;우리의 여름에게&gt;를 읽고 있습니다.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책의 내용은 결코 간단치 않습니다. 제목처럼 우리는 이 여름에 이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해묵은 기억들을 하나둘 끄집어내어 버릴 것은 버리고, 갈무리할 것은 갈무리하고, 덧칠하거나 아름답게 꾸밀 것은 한 번 더 다듬어서 이제껏 버텨온 내 삶을 위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br>"이토록 지독한 여름은 다 무엇일까요. 줄곧 그 여름을 나 혼자 묻어두고, 꺼내보고, 또 한 겹 덮어두는 동안, 이 무서운 이야기는 저에게 그냥 사랑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물방울이 되어버린 할머니나 오이지라면 목구멍이 아리도록 가슴이 막혀오는 나나 그냥 우리는, 다 사랑이었어요. 할머니와 나의 사랑이 이렇게 뜨겁고 애달프다고. 그 지독한 사랑을 받은 아이가 나라는 사실, 더없이 귀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나라는 분명한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랑 이야기에 온통 상처만 남아 잇지는 않다는 거예요. 요즘에도 저는 꿈을 꿉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밥을 해주는 꿈. 재료를 하나하나 고르고 장바구니에 가득 담은 찬거리를 무겁게 들고 와, 채소를 다듬고 물을 끓이고 도마를 씻고 또 칼을 닦아 정성껏 밥을 해 먹이는 꿈. 단 한 번이라도 할머니에게 밥을 해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nbsp; ('자랑 같지만' 중에서)<br>장마철의 눅눅하고 퀴퀴한 하루하루가 불쾌지수를 높이는 요즘입니다. 최지은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흐르기도 하지만, 그렇게 흘린 눈물 한 방울로 어쩌면 보송보송한 하루를 선물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br>]]></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