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꼼쥐님의 서재 (꼼쥐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un, 26 Apr 2026 19:38:52 +0900</lastBuildDate><image><title>꼼쥐</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A_018.gif</url><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꼼쥐</description></image><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4월의 어느 날 - [이스트를 넣은 빵 - &amp;lt;장정일의 독서일기 1-7&amp;gt;에서 가려 뽑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37963</link><pubDate>Sat, 25 Apr 2026 15: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379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434658&TPaperId=172379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357/66/coveroff/k56243465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434658&TPaperId=172379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스트를 넣은 빵 - &lt;장정일의 독서일기 1-7&gt;에서 가려 뽑다</a><br/>장정일 지음, 김영훈 엮음 / 마티 / 2016년 05월<br/></td></tr></table><br/>타인의 블로그를 읽는 일과 타인의 서평집을 읽는 일은 비슷한 동기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일종의 증상이 심하지 않은 관음증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독서에 취미가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이 어느 독서 블로거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일과 책으로 출간된 타인의 서평집을 읽는 일은 그 형태만 다를 뿐 목적은 서로 동일하다. '다른 사람들은 과연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 어떤 책에 감동하고, 또 어떤 책에 혐오를 느꼈는가?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 중 그가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과연 어떤 게 있을까?' 이와 같은 목적의 범위를 책이 아닌 다른 일상으로 넘겨 보면 우리가 겪는 관음증의 징후는 훨씬 심각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은 어떤 집에서 거주하고, 어떤 물건을 소비하고, 어떤 음식을 탐닉하고... 관음증의 끝판왕은 어쩌면 여행 관련 분야가 아닐까 싶다. 예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나는 갈 수 없었거나(제반 비용이나 기타의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서), 그닥 가고 싶지는 않지만 타인의 경험은 몹시 궁금했던 어느 블로거의 사진과 여행기를 읽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건 우리 안에 내재된 관음증의 발현이 아니고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런 까닭에 비슷비슷한 내용의 수많은 여행 에세이가 제목만 달리 하여 지금도 여전히 출간되고, 그와 같은 책을 읽는 독자가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 걸 보면서 나는 여행만큼 우리 안에 내재된 관음증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분야는 다시없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행위를 통하여 유익한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아무튼.<br>"이 책은 절판된&nbsp;『장정일의 독서일기 1-7』을 재가공해 만들었다. 지난 몇 달 이 책들을 천천히 여러 번 읽으며 새겨둘 문장에 줄을 쳤고 모아 문서로 정리했다. 애매한 표현이지만 이 작업은 온전히&nbsp;『독서일기』를 읽은 나 개인의 판단만으로 이루어졌다. 중립적인 원칙과는 거리가 있다. 소설을 팠던 작가는 역사에 빠져들다가도, 현실사회나 인문.철학에서 서성이기도 한다. 그 세월 속에서 작가와 세상 사이 생긴 불화의 대목도 있다."&nbsp; (p.7 '『이스트를 넣은 빵』을 엮으며' 중에서)<br>1994년 범우사에서 처음 출간된&nbsp;『장정일의 독서일기』는 애초에 1년에 한 권씩 나올 예정이었지만, 출판사를 바꾸어가며 같은 제목으로 2007년 7권까지 출간되었다. 시인으로 등단하여 희곡작가로, 소설가로 변신했던 장정일은 '독서일기'를 통해 그의 독서가다운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다. 작가란 모름지기 책과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자신이 선호하는 일정 분야의 책을 고집하게 마련인데, 장정일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은 물론 짧게나마 자신의 평을 남김으로써 다른 이의 독서 생활에 보탬이 되도록 한다.&nbsp;『장정일의 독서일기』를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수긍하겠지만 장정일은 훌륭한 작가이기 이전에 훌륭한 독자였던 셈이다.<br>"마루야마 겐지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도 좋지만 나는 그의 이력이 좋다. 그래서 뻔히 알고 있는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을 읽기 전에 번번이 그의 약력을 다시 읽는다. 그래서 몇 달 전에 읽었던 아쿠타가와 문학상 수상작품전집을 통해서는 그의 취미가 모던 재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귀중하게 여겨지는 그 사실은 한국에 번역된 다른 책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다. 뜻밖에도 이번에 읽은&nbsp;『밤의 기별』에서는 재즈가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건 소설적 정황에서고,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기질적으로 재즈와 잘 어울릴 사람이고 함부로 취미를 바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nbsp; (p.180)<br>전에도 몇 번 말했었지만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의 부정적 효과는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이 한계치 이상으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추리고 추려도 일정 기간 내에 읽을 수 있는 책의 권수를 훌쩍 넘기고 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지도 못한 채 반납하는 소위 '책을 산책시키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서평집을 읽은 후에 찾아오는 깊은 후유증이다. 이러한 후유증은 단 한 번도 예외가 없었던 중증의 질병이다. 나에게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장정일의 독서 감상 외에 1996년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던 소설&nbsp;『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희곡과 소설 등의 작품 구상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br>"나는 아주 오랫동안&nbsp;"내 소설은 쓰레기"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지금도 생각은 그렇게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한 10여 년쯤 하고 보니, 내 소설만 아니라 사람까지 쓰레기가 되는 거였다. 소설은 그 사람의 인격이고 평가 기준이 되는 건가, 아니면 자기 문학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총알받이로 삼는 건가?"&nbsp; (p.355)<br>내가 유튜브에 올라오는 동영상을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나는 아직도 먹방 동영상을 보는 사람들의 심리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타인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무엇이며, 그것에서 어떤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것이다. 단순히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즐겨 먹는지 궁금한 것이라면 그가 많이 먹건 적게 먹건 상관이 없는 문제이니 굳이 많이 먹는 사람을 찾아볼 일도 아니지 않은가. 아무튼 이것만 보더라도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장정일의 글을 읽어 보면 그도 역시 다른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흥미로운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br>어느새 4월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한낮 기온이 초여름처럼 더워졌고, 연녹색의 새순이 차츰 색을 더하여 녹색으로 바뀌고 있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어렵게 맞은 이 한낮의 여유를 가만가만 느껴보고 있다. 아파트 공터에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누군가의 한숨처럼 가늘게 흐르는 바람이 불고 있다. 아이들의 모습이 궁금해서 베란다 창문을 열고 내려다본다. 눌러두었던 관음증이 다시 도지려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357/66/cover150/k5624346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3576648</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어느 날 마음의 회로가 멈출 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36391</link><pubDate>Fri, 24 Apr 2026 17: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36391</guid><description><![CDATA[낮이 정말 많이 길어진 듯합니다. 나는 하루를 대개 새벽 5시 30분쯤에 시작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시각의 하늘엔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집을 나설 때면 언제나 주머니에 손전등을 챙기곤 했습니다. 손전등은 산을 오르기 위한 필수품이었기 때문입니다. 1시간쯤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올 즈음이면 그제야 도시 저쪽으로 오렌지색 햇살이 번져 잠에 취한 사람들을 깨우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나는 손전등도 없이 집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하늘은 이미 갓 돋은 햇살이 자르르 윤기를 더하고, 어슴푸레하던 건물의 윤곽이 반듯반듯 제 형태를 찾기 시작합니다. 푸르스름한 어둠의 흔적만이 그늘진 숲을 간간이 떠돌 뿐입니다.<br>사실 그닥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내가 세상을 겨우 한두 해 산 어린애도 아니고, 낮이 짧아지고 다시 길어지는 계절의 순환을 적어도 수십 번 반복하여 경험한 터이지만, 나는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손전등도 없이 등산로를 오를 수 있는 날이 도래하면 그것이 마치 내 인생에 있어 첫 경험인 양 놀라곤 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어제 있었던 일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낮은 기억력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br>나는 요즘 아베 아키코의 장편소설 &lt;카프네&gt;를 읽고 있습니다. 삶을 살다 보면 어떤 계기로 우리는 이따금 손도 까딱할 수 없는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집안은 온통 난장판으로 변하게 되고, 우리의 일상은 무너집니다. 때가 되면 낮이 길어지는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일상을 살기 위해 지난 어둠을 몰아내야만 합니다. 어둠이 쌓이면 예전에 경험했던 가벼운 일상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 법이죠. 설거지, 청소, 빨래 등 반복적으로 해야 할 집안일을 한번 미루기 시작하면 금세 쌓이고 쌓여 자신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 주변의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주지 않으면 가벼웠던 일상은 쉽게 무너지고 맙니다. 단단하고 규칙적인 것으로만 보였던 우리의 일상은 그렇게 허술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br>"냉장고 문을 닫은 세쓰나는 린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래는 암울할지도 모르지만, 달걀과 우유와 설탕은 어지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아. 너는 너랑 엄마가 먹을 푸딩을 네 힘으로 언제든 만들 수 있어." 세상 전부가 싫다는 듯 짜증이 가득했던 소녀가 지금은 조용히 세쓰나를 바라보았다. 맑은 눈동자가 천천히 물기를 머금고 흔들리는 것을 가오루코는 바라보았다."&nbsp; (p.133~p.134)<br>한 번의 게으름이 다음에 할 일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다음이 두려워 오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그때그때마다 빠릿빠릿하게 처리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번쯤 미루기도 하고, 느긋하게 게으름을 피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는 곧 제자리로 돌아오곤 합니다. 그렇게 일상은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다시 아침이 찾아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내재된 마음의 회로가 일순 모든 것을 포기한 양 멈추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필요로 하는 순간입니다. 마음의 회로가 멈춘다고 해서 생존에 필요한 일상의 회로조차 멈추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설 &lt;카프네&gt;는 독자들에게 그것을 말하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은퇴 이후를 생각하며 - [스스로의 회고록 - 당신의 삶 쓰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34074</link><pubDate>Thu, 23 Apr 2026 13: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340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532063&TPaperId=172340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479/59/coveroff/k22253206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532063&TPaperId=172340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스스로의 회고록 - 당신의 삶 쓰기</a><br/>윌리엄 진서 지음, 신지현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17년 11월<br/></td></tr></table><br/>어떤 일이든 이론에 강한 사람이 있고, 실전에 강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나처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미리 이것저것 알아도 보고, 별 소용도 없는 것조차 찾고 또 찾는 바람에 정작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빠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대뜸 일부터 시작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둘 중 어떤 것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다만 개인의 취향이나 성격의 문제일 뿐이다. 이것저것 많이 준비한다고 해서 안 좋게 끝날 일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리도 없고, 어차피 잘 될 일인데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시작한다고 해서 결과가 나빠질 리도 없는 것이다. 인생이란 누구나 초보자이고, 다른 사람과 동일한 조건에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일이든 일절 공부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리 알게 된 약간의 지식이 나처럼 소심한 이로 하여금 처음 하는 어떤 일을 두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공부란 두려움을 없애는 방편이며, 두려움이란 그 분야를 전혀 모른다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br>"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 것과 실제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순간 걱정부터 밀려올지도 모른다. 뒤죽박죽 얽히고설킨 과거에서 어떻게 일관적인 내러티브를 끌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내러티브를 시작해야 할까? 어디서 멈춰야 할까? 내 글을 읽고 기분이 상하는 사람은 없을까?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글로 남기고 싶은 기억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의심스러운 생각이 솔솔 피어오른다. 내가 제대로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이야기를 쓴다 한들 사람들이 관심이나 가져 줄까? 내 이야기가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 아닐까? 자, 이제 이런 의심은 떨쳐버려도 좋다. 작가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존재다. 여러분도 글을 통해 무언가를 추구할 자격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집필하는 목적은 여러분에게 글을 쓸 자격과 그에 필요한 도구를 쥐어 주기 위해서다."&nbsp; (p.19)<br>저널리스트이자 편집자였고, 대학에서 오랫동안 논픽션 글쓰기를 가르쳐 왔던 윌리엄 진서의 자전적 글쓰기 지침서 &lt;스스로의 회고록&gt;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글쓰기 작법서와는 결이 크게 다르다. 글쓰기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lt;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gt;나 스티븐 킹의 &lt;유혹하는 글쓰기&gt;가 글쓰기의 기초와 방법론을 제시하는 책이라면 &lt;스스로의 회고록&gt;은 우리들 각자가 살아온 기록을 글로 옮겨보라는 권유이자 그런 욕구를 지닌 이들에 대한 답신이다. 그러나 회고록이라 함은 단순히 자신의 삶의 기억에 대한 기록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록이 서사로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도 나의 글을 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br>"우리는 흥미로운 삶을 경험하면 흥미로운 회고록이 그냥 만들어질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네 삶에는 질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술술 글을 썼을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무려 8년 동안 일곱 번이나 원고를 고쳐 썼다. 그는 독자들이 대화를 엿듣는 것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글쓰기 기법 - 평론가 마가렛 풀러는 이를 '모자이크 방식'이라 규정했다 - 을 사용했다. 그는 나무꾼으로서 숲 속에 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작가로서 숲 속에 가 불멸의 고전을 창작했다."&nbsp; (p.214)<br>내 주변에도 은퇴자가 많다. 그들 대부분의 고민은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을까? 하는 문제이다. 물론 이따금 경제적 고민이 끼어들기도 한다. 모르는 사람들은 편하게 "여행이나 하면서 살아."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행도 하루이틀이지 자신에게 남겨진 긴긴 세월 동안 주야장천 여행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체력이 받쳐주질 않는다. 젊은 시절에는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있는 체력이 있었지만 돈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은퇴자의 경우에는 이와 반대로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물론 10년이고, 20년이고 여행만 다닌다면 경제적 문제가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손에 잡아본 적도 없는 붓을 들고 그림 그리기에 매진할 수도 없다. 은퇴 이후의 사업이나 부업에 대해서는 은퇴 이전부터 많이 듣고 배워 보았으나 정작 자신을 돌보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 것이다.<br>"나는 학생들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옳은' 길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 모두가 서로 다른 존재이며, 그들은 각자 출발점이 다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변화는 삶의 활력소이며, 꼭 정해진 길만 밟으라는 법도 없고, 세상에 한계는 없다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나는 매주 수요일 오후 학생들과 차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학문 외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 - 예일대 학생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 - 을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편하게 들어본다."&nbsp; (p.176)<br>사실 이 책은 책의 저자인 윌리엄 진서 자신의 회고록에 가깝다. 그럼에도 작가는 자신의 회고록을 본보기로 삼아 책을 읽는 당신도 자신의 회고록을 써보라고 권한다. 그가 말했듯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이 갖고 있던 기억은 사라지지만, 글을 남기면 그 기억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각자의 진실이 있다.'라고 쓴 그의 문장 역시 곱씹어 생각해 볼 만하다. 은퇴 이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취미를 갖는다는 건 어쩌면 가장 저렴하면서도 가장 유익한 여가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여가 생활이 마냥 답답하고 단조롭다고 느낄 사람이 대다수일 터, 훈련이 되지 않은 이에게는 어려운 선택일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구상의 모든 삶에서 귀하지 않은 게 없는 까닭에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본인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죄를 짓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것을 읽고 배울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읽어볼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쓴 책을 읽는 다른 누군가의 문제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479/59/cover150/k22253206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4795928</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우리의 말과 글에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30038</link><pubDate>Tue, 21 Apr 2026 14: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30038</guid><description><![CDATA[우리가 하는 말과 글에도 어떤 생명력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나의 생각이 다소 불편한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이것이 미신처럼 여겨질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노래를 하는 가수들도 자신의 인터뷰에서 이따금 '가수는 노래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말을 종교와 상관없이 언급하곤 합니다. 물론 연기를 하는 배우도 '배우는 배역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말에 대한 사실을 확신하거나 증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살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니 그럴듯하다는 뜻으로 가벼이 하는 말일 테지요.<br>이와 같은 생각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미신처럼 퍼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를 맹신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말입니다. 변변한 의료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과거에는 이런 생각이 지금보다 훨씬 더 설득력을 얻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까닭에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이름의 경우에는 더욱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을 테지요.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 면역력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자신의 이름 대신에 험한 이름으로 불려지곤 했습니다. 예컨대 개똥이, 말똥이 등의 이름 같지도 않은 이름이 아이들에게 붙여지곤 했었습니다. 이런 풍습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닌 듯 베트남계 미국 작가인 오션 브엉의 소설 &lt;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gt;에도 등장합니다.<br>"저한테는 예나 지금이나 별명이 많았죠. '리틀독'은 란 할머니가 부르시는 별명이었어요. 누가 당신 자신과 딸에게 꽃 이름을 지어주신 분으로 하여금, 그 손자는 '개'로 부르게 했을까요? 자신의 것을 경계하는 여인, 바로 할머니였죠. 아시겠지만 란 할머니가 자란 마을에서는 아이가 종종 무리에서 가장 작거나 허약하면, 저처럼요, 가장 경멸할 만한 것들을 따서 이름을 지었어요. 악마, 유령아이, 돼지코, 원숭이, 들소머리, 후레자식...... 리틀독은 그만하면 부드러운 축에 들었죠. 그렇게 한 것은, 건강하고 예쁜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악령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뭔가 흉측하고 섬뜩한 존재의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들으면, 그 아이를 살려준 채 그 집을 지나칠 거라는 이유에서였어요.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너무 가치가 없어 건드리지 않고 살려둘지 모를 어떤 것을 딴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죠."&nbsp; (p.35)<br>나이가 들고 세상의 이치에 대하여 하나둘 깨우쳐 간다는 것은 경계하고 저어하는 일들이 그에 비례하여 늘어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역시 해가 갈수록 남에게 하는 말 한마디조차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말이 씨가 될 수도 있고, 나의 말이 상대방에게 해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그런 것까지 모두 신경 쓰면 세상을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며 우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말만 하고 살기에도 우리의 수명은 짧기만 할 뿐입니다.<br>황사의 영향인지 아침부터 뿌옇던 하늘은 오후가 되어서도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뚝 떨어졌던 아침 기온은 낮이 되자 제법 오른 듯합니다. 변덕이 심한 봄 날씨. 유럽을 여행하고 있는 아들은 런던과 파리를 거쳐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했다고 알려왔습니다. 아들이 유럽을 향해 떠난 지 벌써 보름이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건강하게 여행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다른 누군가의 염려와 기도 덕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말과 글에도 보이지 않는 생명력이 존재하고, 그것이 서로에게 반복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믿게 됩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누군가의 데뷔작을 읽는다는 건 - [남극]</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24429</link><pubDate>Sat, 18 Apr 2026 15: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244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034089&TPaperId=172244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79/65/coveroff/k7520340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034089&TPaperId=172244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남극</a><br/>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br/></td></tr></table><br/>독서를 즐기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맘에 드는 작가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예정에도 없던 '전작(全作) 읽기'라는 걸 하게 되는데, 여기까지는 뭐 그렇다 치더라도 하나 조심해야 할 게 있다. 작품을 읽는 순서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그 작가가 더 좋아질 수도 있고,&nbsp;단박에 싫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작가를 만났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못 믿겠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다른 작품은 어떻게 순서를 정하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겠지만 데뷔작을 어떤 순서로 정하느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나의 경험으로는 그러하다. 누구에게나 데뷔작은 자신의 전체 작품 중에서 남에게 자주 내보이기 싫은 '아픈 손가락'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아직 틀이 잡히지 않은 미숙한 문체와 과한 의욕으로 인한 비약적인 구성 등 돌이켜보면 당장이라도 그때로 되돌아가 바로잡고 싶은 결함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문제는 비단 작가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은 아니고, 책을 읽는 독자들도 어떤 것이 문제라고 정확히 지적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는 내내 '뭔가 어색한데'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마련이다. 물론 데뷔작부터 크게 인기를 끌기 시작하여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라면 그런 문제점을 느끼기 어렵지만, 데뷔는 한참 전에 했었는데 그동안 인기작을 한 권도 내지 못하다가 어떤 한 작품으로 인하여 갑작스럽게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하게 된 작가라면 데뷔작에 대한 독자의 낮은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듯 보인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글을 쓰는 일도 기술임을 감안할 때 연륜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br>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클레어 키건의 작품을 한 번쯤 읽어본 독자라면 작가가 쓴 다른 작품이 뭐가 있는지 알아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거쳐왔다. 몇 권 되지도 않지만, 각각의 책들이 두껍지 않은 분량으로 엮인 까닭에 책을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나 망설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택이&nbsp;너무나 쉬웠던 게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었다. 정제된 문장과 다층적인 의미의 언어 선택, 그리고 절정과 결말의 순한 이어짐, 책을 덮은 후에도 길게 이어지는 여운 등으로 인해 나는 '이게 뭐지?' 하는 알 수 없는 감정과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 주제의식,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 교훈 등 책을 읽은 후의 묘한 흔들림으로 인해 간단한 리뷰를 쓰는 일조차 힘에 겨웠다. 나는 여전히 내가 읽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리뷰를 미루고 있다. 기약도 없이 말이다.<br>"호흡이 차분해졌다. 옆방에서 커튼이 파닥거리는 소리가 났다. 남자가 창문을 열어놓고 갔다. 풀려나려고 애를 쓰느라 솜털 이불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녀는 알몸이었다. 이불에 발이 닿지 않았다. 냉기가 들어와서 집 안에 퍼지며 방을 채웠다. 그녀가 몸을 떨었다. 차가운 공기는 밑으로 내려오지, 그녀가 생각했다. 결국 떨림이 멈추었다. 온몸이 무감각해졌다. 그녀는 혈관 속의 피가 느려지고 심장이 쭈그러드는 것을 상상했다. 고양이가 침대에 펄쩍 뛰어오르더니 매트리스 위를 돌아다녔다. 누그러진 분노가 공포로 변했다. 그 역시 지나갔다."&nbsp; (p.37 '남극' 중에서)<br>그렇다. 표제작인 '남극'을 비롯하여 열다섯 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이 책은 클레어 키건의 데뷔작이다. 그러나 많은 독자와 평론가들이 데뷔작에 내리는 박한 평가를 클레어 키건은 가뿐히 피해 가는 듯하다. 오히려 과분하다 싶은 칭찬과 돋보이는 추천사 등으로 인해 작가의 이름이 묻히는 느낌이다. 사실 빼어난 실력의 작가 곁에는 신랄한 평을 아끼지 않는 독한 평론가가 있어야 더 좋은 작품을 끊이지 않고 출간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클레어 키건의 애독자인 나로서도 그녀의 데뷔작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소 비약적인 구성과 특이한 소재의 선택 등은 '역시 데뷔작은 데뷔작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데뷔하는 작가는 사실 다소 평이하다 싶은 소재와 구성, 그리고 웅숭깊은 문장 등을 가지고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고, 그와 같은 불안이 작가로 하여금 자극적인 소재나 특이한 구성으로 안내한다.<br>"하지만 나는 정신 병원을 계속 찾아간다. 복도에서 나는 소독약 냄새, 간호사들의 고무창 신발, 일요일 신문을 두고 다투는 소리가 좋다. 어머니는 광기가 핏줄에 흐르는 것이라고 항상 말했고 나는 양가에서 그것을 물려받았다. 내가 그곳에 가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곳에 익숙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약간,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곳을 아주 조금 받아들이는 것이다. 백신처럼 말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직시해야 한다. 그러면 무엇이든 대비할 수 있다."&nbsp; (p.124~p.125 '폭풍' 중에서)<br>표제작인 '남극'은 남편과 가정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과감한 일탈을 시도하는 이야기로 술집에서 만난 남자의 집으로 가 욕망을 해소한 후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녀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사건이 전개되고 만다. 폭풍을 먼저 감지할 만큼 예민했던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사망 이후 그 예민함이 광기로 변하여 가족 전체를 뒤흔들게 되고, 자신 역시 어머니를 닮았다는 사실을 인지한 딸은 불안을 관리하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다는 내용의 '폭풍'과 오래 살던 집을 철거하고 개발을 진행하려는 시에 맞서던 할머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집을 처리한다는 내용의 '불타는 야자수' 등 클레어 키건의 문학적 특징과 섬세함이 드러나는 단편들이 줄곧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br>"소년은 바깥으로 나가서 별을 올려다보았다. 어머니는 별이 우리를 내려다보는 천사라고 말했다. 엄마는 하느님을 믿었다. 사람들은 엄마가 천국에 갔다고 했다. 소년은 집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 집은 꽉 차 있으면서 동시에 텅 비어 있었다. 엄마가 꽃병에 꽂아둔 스노드롭이 있고, 아버지를 위해 다려서 나무 옷걸이에 걸어둔 셔츠도 있고, 안락의자 밑에 엄마의 털 슬리퍼도 있었다."&nbsp; (p.317 '불타는 야자수' 중에서)<br>지금은 대한민국의 인기 작가 중 한 명이 된 정유정 작가의 데뷔작인 &lt;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gt;를 작가의 다른 작품 몇몇을 읽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겨우 읽었던 게 문득 떠오른다. 나는 지금도 ' 그 책은 차라리 읽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작가가 글을 쓰다 보면 때로는 독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평균 이하의 작품을 쓸 때도 있고, 인생작이라고 할 만큼 기대 이상의 멋진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작가가 맘에 든다고 해서 예정에도 없던 '전작 읽기'를 시도한다는 건 꽤나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가 항상 나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내놓을 거라는 기대는 얼마나 황당하고 어리석은가. 설령 나의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이 나왔다 할지라도 조용히 다음 작품을 기다려주는 게 독자로서의 성숙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제 나이가 들어 그가 쓴 글이 예전처럼 에너지가 넘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세월의 무상함을 함께 느끼며 슬퍼하는 것도 현명한 독자로서의 바른 태도가 아닐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79/65/cover150/k7520340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0796507</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빠르게 걷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20683</link><pubDate>Thu, 16 Apr 2026 15: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20683</guid><description><![CDATA[앞선 속도가 누군가에게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꽤나 어린 시절에 배웠던 듯합니다. 아침에 눈만 뜨면 밭에 일을 하러 가거나 학교나 직장으로 뿔뿔이 흩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생존이 절실했었고, 삶의 목표 역시 생존에 근접한 것들로 채워지던 시기였습니다. 전기도, 전화도 없던 그 시절에 죽음은 일상처럼 가까웠고, 사람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어느 한 곳에 소속이 되고자 필사적이었습니다. 반드시 번듯한 직장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동네의 작은 식당일 수도 있고, 동네 인근의 공장일 수도 있고, 두어 평 남짓의 작은 밭뙈기일 수도 있었습니다. 학교나 직업훈련소일 수도 있었습니다.<br>그러나 어느 곳에도 소속될 수 없었던 어린애나 노인은 예외였습니다. 그들은 죽음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말입니다. 그 시절의 죽음은 대개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집은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가장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집 안 곳곳을 낮게 떠다녔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나는 엄마가 외출할 때마다 집 안에 혼자 남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기를 쓰고 엄마의 뒤꽁무니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가던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습니다. 곧 있으면 형과 누나가 학교에서 돌아온다는 말만 남긴 채 말입니다. 더디기만 했던 나의 걸음 속도로 당시에는 젊었던 엄마의 걸음을 따라잡는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엄마의 걸음을 늦추거나 멈출 수 있는 방법은 거리가 멀어진 엄마의 귀에 들릴 수 있도록 악을 쓰고 울거나 크게 넘어지는 방법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앞선 속도가 누군가에겐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대략 그 시절에 배웠던 듯합니다.<br>한낮 기온이 초여름 날씨처럼 더위를 느끼게 하는 요즘, 계절이 걷는 속도는 인간의 인식 속도를 한참이나 앞서가는 듯합니다., 냉정한 자연의 속도가 무감각한 인간의 속도를 앞서기 시작한 건 어쩌면 꽤나 오래전에 비롯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클레어 키건의 단편집 &lt;남극&gt;에 나오는 문장을 옮겨봅니다.<br>"우리는 새벽까지 그곳에 있었고, 건초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올라왔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손이 어떻게 15년 동안 어머니를 멍들게 했는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말해주었다. 내가 똑같이 잔인한 눈을 가졌기 때문에 나도 아버지만큼 싫다고 했다."&nbsp; (p.121 '폭풍' 중에서)<br>당시의 아버지는 언제나 어머니를 한참이나 앞질러 걸었고,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같은 속도로 걷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세월이 한참이나 지난 지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의 걸음 속도에 보조를 맞추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품과 같았던 자연은 이제 우리 인간의 속도를 한참이나 앞질러가고 있습니다.&nbsp;앞선 속도가 누군가에겐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nbsp;아주 오래전에 깨달았던 듯합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블라인드를 치며 -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 인생이 가벼워지는 15가지 불교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8435</link><pubDate>Wed, 15 Apr 2026 15: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84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5332&TPaperId=172184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37/5/coveroff/k7321353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5332&TPaperId=172184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 인생이 가벼워지는 15가지 불교 수업</a><br/>토니 페르난도 지음, 강정선 옮김 / 윌마 / 2026년 02월<br/></td></tr></table><br/>불교의 기본 교리라고 하면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로 집약될 수 있다. 고집멸도(苦集滅道)로 대표되는 사성제에서 고제(苦諦), 즉 삶이 곧 괴로움(生卽苦)으로 이해되는 까닭에 태어나고(生苦), 늙고(老苦), 병들고(病苦), 죽고(死苦), 이별하고(愛別離苦), 함께하고(怨憎會苦), 획득하지 못하고(求不得苦), 오음에 집착하는(五陰盛苦) 고통은 삶 전체로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른바 팔고(八苦)라고 일컫는 이 고통은 원인이 있으며(集諦), 대중은 이 원인을 알지 못한다. 이른바 무명(無明)이라고 하는 '알지 못함'의 상태를 벗어나는(滅諦) 것을 열반이라고 하며 이것이 곧 멸성제(滅盛諦)이다. 괴로움의 원인이 '알지 못함'인 반면 이것에서 벗어나면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괴로움을 멸하기 위한 길(道諦)로 제시되는 8가지의 바른 수행방법, 즉 팔정도(八正道)가 그것이다. 올바른 견해(正見), 올바른 생각(正思惟), 올바른 말(正語), 올바른 행동(正業), 올바른 생활방식(正命), 올바른 노력(正精進), 올바른 마음가짐(正念), 올바른 집중(正定)을 통하여 인간의 고통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br>인간의 삶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존재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함으로써 이를 따르는 대중 누구나 열반에 들 수 있게 하겠다는 불교의 원대한 꿈은 일견 타당하고 논리적인 것으로 보인다.&nbsp; 그러나 이를 엄격히 지키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수행방식은 우리네 삶을 원숙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의 지침서인 동시에 누구나 알아야 할 생활 철학인 셈이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나는 불교가 부처님에게 각자의 소원이나 빌고 의식에 필요한 제문으로서 경전을 읊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타의 종교와 같은 것으로 보지 않아 왔다. 그리하여 나는 비록 나의 종교이자 신앙으로 천주교 세례를 받은 몸이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던 스님과의 유대를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불교 서적을 뒤적일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일에 대하여 마음의 부담이나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br>"이 책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꼭 불교 신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불교 신자도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이 기독교나 이슬람교, 힌두교, 유대교 신자이든 무신론자이든 상관없다. 이 책에 담긴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은 당신의 믿음을 전혀 위협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여기에 제시된 가르침을 실천하다 보면 이전보다 더 친절하고 침착해진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nbsp; (p.15 '머리말' 중에서)<br>&lt;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gt;의 저자인 토니 페르난도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분인 듯하다. 정신과 의사이자 수면의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면서 네 차례나 임시 출가하여 승려로 수행한 경력이 있다고 하니 불교에 대한 지식으로만 따진다면 나와는 비교가 되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앞에서 말했던 팔정도는 다시&nbsp;세 가지 범주인 계(戒), 정(定), 혜(慧)로 나뉜다. 윤리적 행위를 나타내는 계(戒)에는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이 속하고 정신집중을 나타내는 정(定)에는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 그리고 지혜를 나타내는&nbsp;혜(慧)에는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가 포함된다. 저자 역시 이를 염두에 두고 목차를 정한 듯하다. 1부 '正見----바른 견해', 2부 '戒----계', 3부 '布施----보시', 4부 '定----정', 5부 '慧----혜', 6부 '慈悲----자비'의 총 6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부처님 말씀과 더불어 이에 알맞은 저자의 상담 사례를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br>"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취하지 말아야 한다. 맑은 정신에서 신중한 생각과 말, 행동이 나온다. 이는 타인에게 안전이라는 선물을 줄 수 있다."&nbsp; (p.132)<br>우리나라의 문화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외국인의 수가 부쩍 늘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뿐만 아니라 불교라면 체머리를 흔들던 젊은이들에게도 그 이미지가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시쳇말로 우리나라의 사찰이 힙한 장소로 거듭난 것이다. 이와 같은 성과의 이면에는 물론 불교계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나날이 복잡해지는 현대인의 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만큼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도 더는 없겠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나간 게 아닌가 싶다.<br>"크든 작든, 충격적이든 사소하든, 우리는 모두 고통과 시련을 겪는다. 병을 겪고, 외로움을 느끼고, 오해받기도 하며, 걱정과 불확실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누군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상관없다. 육체와 정신을 갖고 있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고통을 겪게 되어 있다. 그 고통과 시련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nbsp; (p.310~p.311)<br>해가 길어지면서 한낮 기온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한낮 기온은 벌써 초여름을 방불케 한다. 봄인가 싶던 계절은 저만치 앞선 여름을 기웃거리는 듯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짐짓 걱정이 되는지 '올여름은 얼마나 더우려고 벌써부터 이래?' 하면서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더위도 더위지만 더위로 인한 불쾌지수가 걱정이 되는 것이다.<br>오늘은 점심 식사를 친한 친구와 함께했었다. 오전에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 장례식장에 다녀왔다는 친구는 표정이 어두웠다. 그의 친구는 한밤중에 심장마비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순서를 기다리는 도중에 사망했다고 했다. 전에도 사고로 죽은 친구는 있었지만 병으로 죽은 친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도 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겉보기에 우리의 삶이 단단하게 유지되는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허약한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만큼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리 없다고 굳게 믿고 사는 우리는 또 얼마나 허황된 생각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가. 기우는 햇살이 사무실로 짓쳐 들고 있다. 블라인드를 쳐야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37/5/cover150/k7321353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37055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어떤 믿음도 영원하지는 않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2019</link><pubDate>Sun, 12 Apr 2026 16: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2019</guid><description><![CDATA[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주변에는 직업적인 정치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나 이웃, 혹은 가족이나 친척 중에도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는 듯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등학교 동창 중 한 명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도와 당선시킨 후 그의 특별보좌관인가 뭔가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그 친구마저 연락이 뜸한 상태가 되는 바람에 주변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은 숫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정치인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는 전무한 상태에서 언론과 카더라 통신에 의존하여 형성된 정치인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과 이미지는 온갖 부정적인 정보로 도배가 된 조악한 것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나에게 고착화된 그들의 이미지는 사기꾼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부류이거나, 적어도 선량한 일반 시민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뿔만 달리지 않았을 뿐 도깨비와 진배없는 형상이었습니다. "선거 때 무슨 얘기를 못하나. 표가 나온다면 뭐든 얘기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던 MB의 본심이 담긴 명언(?)을 듣고서 나는 '정치인=사기꾼'이라는 등식을 더욱 굳건히 믿게 되었습니다.<br>그나마 그들 부류와 조금쯤 다른 정치인이 있었다면 아마도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특정 정치인을 완벽히 신뢰하거나 신뢰를 넘어 존경의 차원으로 발전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분은 정치를 할 분이 아닌데...' 하는 식의 안타까움을 느꼈을 뿐입니다. 정치인들 대부분이 유권자들 앞에서는 아주 환한 미소를 보이다가도 뒤돌아서는 순간 인상을 쓰기도 하고, 선거 때면 가장 낮은 자세로 악수를 청하다가도 당선이 되자마자 가장 뻣뻣한 자세로 고개를 쳐드는 그런 인간들이라는 믿음을 내 머릿속에서 지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이번 중동전쟁을 보면서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태도가 그닥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한 국가의 최고책임자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을 텐데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는 그들의 사적인 이익에만 몰두할 뿐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그들 국가의 국민이 한편으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br>전쟁이란 모름지기 명분이나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미국과 이스라엘은 그런 정당성은 뒷전으로 한 채 '내가 하고 싶다는데 니들이 어쩔 건데?' 하는 식의 제국주의 논리에 의거한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미국과 이스라엘 국민 전체를 테러 대상자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여행과 통신이 자유로운 현대에 있어 그들 국가의 국민은 언제든 테러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는 국민의 안전을 방기한,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한 범법자라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국가의 국민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의식 수준이 아주 낮거나 민주주의를 포기한다는 선언이겠지요.<br>그런 의미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깡패 짓거리에 대해 비판이나 논평의 글 또는 대담이나 인터뷰를 하는 것을 단 한 차례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국격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을 비겁한 자의 품에 숨게 만드는 비열한 짓이었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규탄함에 있어서도 정작 이를 발언해야 할 대통령이 침묵함으로써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겁을 먹고 뒤로 숨는다는 인상을 전 세계에 알려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민은 정의의 편에 서지 않는 비겁한 족속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br>그런데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엑스에 이스라엘 방위군인 팔레스타인 아동을 고문한 뒤 옥상에서 떨어뜨렸다고 주장하는 게시글과 영상을 공유하면서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썼던 것입니다. 해당 영상이 2024년 9월 촬영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국제인도법은 준수돼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 역시 타협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에 반발하는 이스라엘 외무부의 논평과 찌질하기 짝이 없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논평이 있었지만 그것은 세계인의 상식과 논리에도 맞지 않는, 그리고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는 부적절한 발언이었습니다.<br>내가 이재명 대통령의 대응을 높이 평가하는 까닭은 우리가 세계인의 관점에서 언제나 정의와 평화의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 전체의 안위가 지켜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미국 국민은 이번 사태로 인해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제한될 수도 있으며 언제든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이번 전쟁을 촉발시킨 정치 지도자가 져야 할 것입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먼저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비단 금세기에 들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고려의 문신 서희와 거란의 장수 소손녕의 담판에서도 전쟁의 명분이 주된 논지였습니다. 소손녕이 싸움도 하지 않고 군대를 물린 것도 명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는 세계사에서도 자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번 전쟁은 어떤 명분도 없이 당사국인 이란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피해와 고통만 안겨주었을 뿐입니다. 엑스에 올린 이재명 대통령의 의견 표명으로 인해 '정치인=사기꾼'이라는 오래된 믿음에 약간의 균열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이재명과 같은 정치인이라면 적당한 신뢰를 표명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다음에 만날 때까지 안녕 - [데미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0238</link><pubDate>Sat, 11 Apr 2026 15: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02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137401&TPaperId=172102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6/4/coveroff/k8021374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137401&TPaperId=172102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데미안</a><br/>헤르만 헤세 지음, 김희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나이가 들수록 가까운 과거보다 먼 과거에 더 집착하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렇다. 이 사실에 대해 '왜 그럴까?' 하고 이따금 생각할 때가 있다. 어차피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반감이랄까 아니면 세월의 역류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젊은 시절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먼 과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회상이 좀 씁쓸하게 여겨지곤 한다. 어쩌면 나는 내가 살아왔던 지난시절을 되돌아보며 나를 성장시켰던 단계단계마다의 성과와 실수를 되짚어보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서 나의 실수를 바로잡을 수는 결코 없겠지만 말이다.<br>단 한 번뿐이라는 일회성의 인생에 대한 인식은 젊은 시절에는 잘 와닿지 않는다.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무한대인 듯 여겨지기 때문이고, 죽음이란 그 형태마저 알 수 없는 아주 희미한 흔적쯤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츰 나이가 들수록 죽음은 더욱 선명해지고 남은 시간에 대한 어렴풋한 인식 또한 구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먼 과거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었던 건 아마도 그쯤이지 싶다. 이 시기가 되면 독서 취향도 크게 변하는 듯하다. 우리가 이른바 성장소설이라고 부르는 어린 주인공이 커가는 과정을 다룬 소설에 관심이 가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동화나 그림책에 큰 관심이 가기도 한다. 성장소설로 분류되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lt;데미안&gt;에 크게 관심을 가진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br>"지금까지 이야기한 체험담 가운데 이 순간이 가장 선명하게 뇌리에 남았다. 그것은 신성한 하늘처럼 우러러 온 아버지의 이미지에 처음으로 생긴 균열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받친 기둥에 쩍 하니 금이 간 순간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독립적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 이런 기둥을 무너뜨려야만 한다. 이 체험으로 우리 운명의 중요한 윤곽이 그려진다는 점을 읽어 낼 줄 아는 사람은 아쉽게도 많지 않다. 그런 상처와 균열은 대개 봉합되고 잊히지만,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가슴 속에서 계속 피를 흘리며 아픔을 호소한다."&nbsp; (p.31)<br>싱클레어의 삶을 단계별로 뒤쫓고 있는 이 소설은 이미 그 시절을 거쳐온 까닭에 자신의 삶과 견주어 볼 수 있는 독자에게 꽤나 흥미롭게 읽힌다. 청소년기에 우리는 얼마나 하찮은 계기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으며, 얼마나 큰 계기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삶을 고집스럽게 지켜왔던가.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얼마나 유약하며, 인생은 또 얼마나 단단한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프란츠 크로머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싱클레어. 그 괴롭힘은 성인이 된 후에도 큰 상처로 남지만 괴롭힘의 발단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아이들이 노골적으로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리려는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기숙 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외톨이 신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기숙사 선배인 알폰스 베크나 같은 외톨이 신세인 크나우어와도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길가에서 우연히 본 소녀의 그림을 그려 베아트리체라고 명명하며 숭배하는 싱클레어. 싱클레어를 유일하게 일깨우는 존재인 데미안은 그가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알 속에서 안주하지 말고, 깨고 나오려 분투하라고.<br>"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분투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은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nbsp; (p.147)<br>학창시절의 우리는 관념의 세계에서 산다. 관념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실존의 세계는 마냥 하찮고 낮게 보인다. 온갖 부조리와 악과 부정이 판치는 세상. 그러나 학업을 마친 우리가 실존의 세계로 접어들었을 때, 과거 자신이 높은 곳에서 바라보던 실존의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하는 자신의 삶은 '우리가 갈급하는 삶의 요구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깊이 깨닫게 된다.<br>"인간은 자기 자신과 합일을 이루지 못할 때에만 두려움을 품지. 자기 자신이 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두려워해. 자신 안의 알 수 없는 무엇인가 도사리고 있다고 두려워 떠는 사람들의 공동체! 그들은 느끼지. 그동안 굳게 믿어 온 삶의 법칙이 더는 맞지 않음을. 종교도, 풍습도, 윤리도 우리가 갈급하는 삶의 요구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건 낡은 석판에 새겨진 케케묵은 계명이라는 사실을. 그런 건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의 진정한 욕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nbsp; (p.221~p.222)<br>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운이 좋게도 자신의 곁에서 필요할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는 데미안과 같은 친구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죽을 때까지 함께한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고민을 스스로 해결하고, 자신의 세상에서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오려 분투할 뿐이다. 그리고 삶의 후반부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볼 때, 어쩌면 그런 하찮은 계기로 인해 자신의 삶이 그토록 크게 변할 수 있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그런 과정 과정이 아름답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음을 깨닫게 된다.<br>유럽 여행 중인 아들은 경유지인 뮌헨 공항에서 연결 편을 놓치는 바람에 다른 비행기로 리부킹을 하느라 예정보다 늦게 런던 숙소에 도착했다고 알려왔다.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우리도 어쩌면 경유하는 어느 공항에서 잠시 길을 잃고 헤매게 될지도 모르지만, 결국 자신이 목적했던 어느 숙소에서 피곤한 몸을 쉬게 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희망은 비행기를 날게 하는 항공유처럼 우리들 각자가 원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줄 것이다. 그리고 다음 기착지를 향해 새로운 희망을 품어야 한다. 그러나 다음 기착지에서 누구와 조우할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다음에 만날 때까지 안녕을 고해야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6/4/cover150/k8021374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86044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내일 아침에는 어쩌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06574</link><pubDate>Thu, 09 Apr 2026 16: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06574</guid><description><![CDATA[오전에 시작된 비는 오후가 되어서도 여전히 그쳤다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무실 앞 화단에 핀 목련도 이제 제 역할을 마쳤다는 듯 흐물흐물 생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꽃이 진 벚나무 가지에선 연녹색 새순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이지만 가까스로 봄이 피어날 때마다 나는 여전히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됩니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 맞는 봄인 것처럼 말입니다. 주택가보다 기온이 낮은 산에는 지금도 여전히 꽃의 난장입니다. 산벚꽃, 진달래, 조팝꽃, 복숭아꽃...<br>군을 제대한 아들은 오늘 아침 드디어 유럽을 향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이동하였던 아들은 무사히 비행기를 탔다는 메시지를 카톡 문자로 남겼습니다.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는 답글을 남기면서도 나는 내심 걱정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행이란 언제나 계획하지 않았던, 자질구레한 사건 사고들의 연속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런 일들로 인해 혹여라도 아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지나 않을지 별별 걱정으로 속을 끓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만 모든 게 우리가 의도한 대로 진행된다면 우리는 굳이 자신이 유지하고 있던 삶의 태도나 습관을 변경할 이유가 없겠습니다. 여행도 이와 같아서 미리 계획한 대로 착착 진행된다면 여행은 그야말로 장소만 달라진 일상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조금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계획에서 벗어난 일상을 마주함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여행을 경험하고, 그것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br>"삶이 끝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덧없어진다. 죽음이라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 소유와 명성, 권력, 외모, 학위 등 집착하던 모든 것은 의미를 잃는다. 나는 이 사실을 죽어가는 환자와 인터뷰하며 배웠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환자는 모두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선물인지 이야기했다. 그들은 의사나 간호사가 함께한다고 느낄 때 따뜻함을 느꼈다."&nbsp; (p.150 &lt;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gt; 중에서)<br>무사 앗사리드가 쓴 &lt;사막별 여행자&gt;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합니다. '여행은 자기 자신에게로 떠나는 것이며, 또한 그 여행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행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삶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 순간에는 소유해야 할 것도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외할머니는 아들에게 선물은 절대 사 오지 말라시며, 사 와봐야 쓰지도 않는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그래도 어찌 그리 야박하게 할 수 있느냐며 가급적 쓸 수 있는 선물을 사 오겠노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유럽 여행을 통하여 아들은 어쩌면 한 뼘 성장한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br>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자맥질하듯 비가 오락가락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어쩌면 먹이를 찾아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의 경쾌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숲에 사는 모든 생명들에게도 오늘의 비가 단비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그저 우리의 삶은 - [그저 하루치의 낙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04301</link><pubDate>Wed, 08 Apr 2026 15: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043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482637817&TPaperId=172043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8/68/coveroff/e4826378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482637817&TPaperId=172043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저 하루치의 낙담</a><br/>박선영 지음 / 반비 / 2026년 01월<br/></td></tr></table><br/>자신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권의 에세이를 쓴다고 가정해 보자. 자신의 경험이나 살아온 이야기만으로 책을 꾸린다면 자칫 자서전으로 흐를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흥미를 이끄는 데에도 실패할 개연성이 높다. 자서전을 써도 될 만큼 유명세를 타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경험에 더불어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한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섞을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말이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의 글을 모아 한 권의 에세이를 엮을 때, 그 성패는 무엇보다도 구성의 밸런스에 있지 싶다. 예컨대 유년시절의 경험담과 직장 생활, 읽었던 책과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을 나누어 4개의 장으로 구성할 경우 유년 시절의 고생담을 너무 장황하게 쓰면 책을 읽는 독자는 글 전체의 느낌이 어둡다고 느낄 확률이 높다. 반면에 자신이 읽었던 책이나 감명 깊게 본 영화를 위주로 글을 쓰면 흔하디흔한 독서 리뷰나 영화 감상문쯤으로 오해할 소지가 높다. 지루함을 느끼는 독자가 몸을 배배 꼬기 전에 주제를 바꿔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제별 분량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작가에게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편집자도 없는 1인 출판사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말이다.<br>"나처럼 뒤늦은 나이에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던 좋아하는 선배가 했던 얘기다. 잠시 귀국했을 때, 네 명의 건장한 공사장 노동자들이 커다란 철판의 네 귀퉁이를 하나씩 잡고 옮기는 장면을 버스 안에서 보는데 왈칵 울음이 쏟아지더라는 것이다. 대번에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당신들은 함께 일하고 있군요. 나는 혼자인데. 서로 합을 맞추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당신들의 일치된 발걸음이 나는 사무치게 부럽습니다. 서로의 안위를 서로에게 맡긴 채, 외롭지 않게, 당신들은 함께 나아가고 있네요."&nbsp; (p.87)<br>박선영의 에세이 &lt;그저 하루치의 낙담&gt;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곁에 지루함을 놓아 두거나 권태를 벗어나게 할 다른 놀잇감을 찾아 자리를 뜨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작가가 책에서 쓴 이야기는 제법 무겁고 논쟁이 될 만한 것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독자들이 이렇듯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까닭은 글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총 4개의 장에서 다루고 있는 글의 분량이나 주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부 '기자라서 좋았고, 기자여서 슬펐다'에서 작가는 기자로서 살았던 17년의 세월을 돌이켜본다. 2부 '내 슬픔의 레퍼런스'에서는 슬픔에 이끌렸던 자신의 감정을 응시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가난과 무력감 등 슬픔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결들을 바라본다. 3부 '타인에 대한 예의'에서 작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각자가 어떤 사회적 책임과 윤리감각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4부 '숭고를 향하는 인간들'에서는 그럼에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 앞서 간 사람들의 사례를 보며 되새긴다. 비슷비슷한 주제인 듯 보이지만 작가는 각각의 주제에 선명한 새깔을 입히는 것은 물론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br>"무엇이 사라지지 않고 축적되는 것일까. 잃게 될까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것, 누구도 내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덕성과 지성이다. 우는 이도 웃게 하는 유머와 함께 울어주는 눈물이다. 타인의 환난을 외면하지 않는 착한 마음과 부당함에 함께 맞서는 용기다. 자신의 오류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수정하는 성찰과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겸손, 지성을 흠모하고 진리를 수행하는 지혜다. 한마디로 좋은 사람의 덕성이다."&nbsp; (p.290)<br>독서와 글쓰기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 중 다수가 자신이 쓴 책 한 권을 갖는 게 소망이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그저 마음속의 꿈으로만 간직한 채 생을 마감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나만의 책을 쓰는 것에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다. 나는 그저 남들에 비해 기억력이 나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나의 단점을 메꾸기 위해 이따금 글을 쓰기도 하고, 남는 시간에 더러 책을 읽기도 할 뿐이다. 나이가 더 들어 글을 쓰는 일조차 힘에 겨운 날이 온다면 나는 이제껏 썼던 글을 모두 없애고 조용히 책이나 읽으며 남은 생을 보낼 생각이다. 남에게 큰 죄도 짓지 않고 지금처럼 조용히 삶을 이어가는 게 꿈이라면 꿈인 것이다.<br>"양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한기가 있다. 그 한기를 감지할 때마다 그렇게 슬퍼질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 너의 견적서를 읽었다. 네겐 나의 값이 이렇게 싸구나. 순식간에 장맛비가 차오르는 한여름의 반지하방처럼 마음은 슬픔으로 출렁거린다. 값싼 내가 슬퍼서가 아니라, 값싼 네가 슬퍼서."&nbsp; (p.215)<br>새벽에 산을 오를 때만 하더라도 쌀쌀하던 날씨는 낮이 되자 금세 풀려 따뜻하다. 지난 비에 듬성듬성 꽃이 떨어진 벚나무는 마치 오랫동안 원형탈모를 앓아 왔던 사람처럼 우듬지가 휑하다. 사는 게 그저 하얗게 쌓이 꽃길만 밟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는 때로 허방을 딛고 비틀거리기도 하고, 숨을 헐떡이며 가파른 고개를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매 순간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처지에 처한다 할지라도 나와 내 주변의 이웃을 돌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나의 삶이 중요한 것처럼 이웃의 삶 역시 같은 크기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이란과 미국의 휴전 소식이 들려왔다. 늦었지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자신의 삶을 하루라도 더 연장하기 위해 이란 국민들은 그동안 얼마나 큰 두려움과 맞서야 했을까. 그리고 이웃의 죽음을 보며 얼마나 안타까워 했을까. 이 모든 게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걸 전쟁 당사자인 미국과 이스라엘의 통치권자는 과연 알기나 할까. 자신들이 얼마나 잔인한 인간이었는가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8/68/cover150/e4826378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86810</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봄비 내리는 주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6453</link><pubDate>Sat, 04 Apr 2026 17: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6453</guid><description><![CDATA[주말에 내리는 비가 고마울 때가 더러 있습니다. 오락가락하는 비를 핑계로 평소에는 누리지 못하던 천상의 게으름을 한껏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깥에는 온종일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아침에 겨우 고양이 세수로 하루를 시작한 나는 늦은 점심을 먹은 후에도 한 손에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고 소파에 누워 나른한 오후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냅니다. 소리도 없이 내리는 봄비가 베란다 통창에 눈물처럼 긴 여울을 만들고, 나긋나긋 풀어진 몸 위로 께느른한 졸음이 쏟아집니다.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기도 하고, TV 스크린은 관객도 없는 영상이 흘러갑니다. 남들은 벚꽃이 지기 전에 꽃구경을 간다고 난리라는데, 나만 홀로 이렇게 비싼 휴식을 즐겨도 되는지 스멀스멀 때늦은 걱정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아파트 화단에 만개한 자목련 한 송이가 위태롭던 순간을 이기지 못한 채 툭 하고 낙하합니다. 시간은 온통 '봄'을 향해 모이고, 오늘처럼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엔 낮과 밤의 경계가 무척이나 모호해집니다.<br>"선은 언제나 희미한 가능성으로만 존재한다, 고 한다면 그건 너무 염세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염세의 극단으로 우리가 내몰릴 때, 저 멀리 흐릿하게 존재하는, 실오라기 같은 가능성으로라도 선을 떠올린다는 것은 인간을 살게 하려는 유전자의 간계다. 희망은 나를 살고 싶게 만든다. 나의 죽음을, 희망은 방해한다.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일 것"이라고 로맹 가리는 말했다.(그 역시 자살했다.) "지성은 나를 염세주의자로 만들지만, 의지로 인해 나는 낙관주의자"라고 안토니오 그람시도 말했다.(그는 자살하지 않았다. 46세로 병사했다.) 희망을 끝내 희망하는 인간의 질병은 염세라는 유혹과 본능적으로 싸운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결국 자살하고 만다는 것은, 신의 섭리란 한낱 인간의 창작물에 지나지 않으며 신을 창조해낸 그 인간이란 종에게서는 저 먼 곳의 희미한 가능성으로라도 선을 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적 자각의 결과인 것이다."&nbsp; (P.323 &lt;그저 하루치의 낙담&gt; 중에서)<br>이렇게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말하자면 날씨에 의해 이성과 본능이 플라스마 상태로 혼재된 이런 날에는, 아무리 가벼운 책일지라도 이성적 추론을 요하는 대목에서는 즉각적 이해가 되지 않아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는 수모를 겪곤 합니다. 급기야 문해력 수준이 나이가 들수록 낮아지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책을 놓고 바깥 풍경에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논리와 근거도 없는 비약은 나와 같은 인간 종에게 '회피'라는 책략을 권고하기도 합니다. 업무로부터의 회피, 독서로부터의 회피, 부모로서의 의무로부터의 회피... 생각해 보면 '회피'만큼 유용한 수단도 더 이상 찾기 어려울 듯합니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슬슬 배가 고파집니다. 낮과 밤이 혼재된 어스름 속에서 하루가 지워지나 봅니다. 가벼운 바람에도 벚꽃잎이 눈처럼 쏟아집니다. 그저 평범한 어느 토요일 만큼의 낙담이 벚꽃에 실려 흩날립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벚꽃 밝은 밤 - [거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4952</link><pubDate>Fri, 03 Apr 2026 20: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49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5186&TPaperId=171949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3/18/coveroff/k2821351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5186&TPaperId=171949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거품</a><br/>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6년 01월<br/></td></tr></table><br/>결말보다는 과정이 궁금해지는 소설이 더러 있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결말을 미리 보고 싶지 않은 까닭일 수도 있다. 그런 소설일수록 소설의 서사는 매우 느리게 전개된다. 반복되는 일상처럼 어떤 특별한 사건 사고도 없이 지루하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독자로서는 다소 불만일 수도 있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독자가 예측하는 뻔한 순서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야기의 흐름에 인위적인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은 듯한 전개와 구성. 작가는 실제 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적은 듯 소설 어디에도 일부러 꾸민 듯한, 작위적인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런 소설을 좋아한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lt;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gt;를 읽고 단박에 작가의 팬이 되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이유가 컸다.<br>"학교 교육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공부만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실이라든가 도덕이라든가, 학교는 인간 형성을 목적하는 곳이라는 듯이 운영되는 것도, 다루기 편한 인간을 하나라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싶기 때문일 터다. 교과서에 쓰여 있는 일 따위, 하룻밤이면 뒤집힌다. 게다가 대학 입시를 위해서 입시학원에 다니고,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한다니, 도대체 무슨 저주가 걸린 것일까 불쌍해진다."&nbsp; (p.50)<br>대학 입시와 서열로 얼룩진 남자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가오루는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며 학교 밖 청소년이 되고 만다. 결국 그의 아버지 고이치는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사리하마 지역에서 재즈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가오루의 작은할아버지 가네사다에게 가오루를 맡긴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비교적 자유롭게 살고 있는 가네사다 씨는 2차 세계대전의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종전 후 귀환한 귀환병이다. 그러나 간신히 살아 돌아온 그였지만 가족은 물론 가까운 이웃들조차 그를 '빨갱이' 또는 '공산주의자'라며 색안경을 끼고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바람에 그는 가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리하마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가 운영하는 재즈 카페 '오부브'에는 함께 일하는 직원 오카다가 있다. 가오루가 머무는 여름 동안 오카다 씨와 같은 아파트에서 지내게 된 가오루.<br>"복원하고 거절당했을 때부터 가네사다는 친척이라는 것에 대해 거듭거듭 생각했다. 오 년 지나고, 십 년 지나고, 이십 년 남짓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린 결론이 그것이었다. 친척이란 커다란 바다에 나타난 잔물결에 지나지 않는다. 조류나 바람에 뒤틀리는, 수동적으로 태어난 우연의 주름 같은, 부모의 부모, 또 그 부모의 부모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계도는 종으로뿐 아니라 횡으로도 확대되어 간다. 그 확대는 세로 방향이든 가로 방향이든 바로 안개 속에 뒤섞여서 더듬어갈 수 없게 될 것이다. 더듬어가지 못하는 그 앞으로 가서 모든 선을 이어가면 언젠가는 너나 나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는 얘기가 되지 않을까? 눈앞의 친척들과 결별해도 바다를 떠돌며 살아간다는 의미에서는 같다, 가네사다는 그렇게 생각했다."&nbsp; (p.100)<br>작가는 주인공이 겪는 불안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어떤 방법이나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불안이 일상이 된 주인공의 상태를 곧이곧대로 보여줄 뿐이다. 학교 생활에서부터,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던 가오루의 집에서부터, 그렇게 이어지던 불안은 가네사다의 재즈 카페 '오부브'로까지 이어졌다. 처음 접하는 어설픈 공간이었지만 가오루는 잔잔한 재즈 선율 속에서 외국어에 능한 작은할아버지와 요리 솜씨가 좋은 직원 '오카다' 등 비록 그를 보살피는 어른들이지만 누구 한 사람 강요하거나 구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는 언제나 가오루를 믿고 지지하는 주변 어른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br>"조심해야 하는 것은 자기가 혼자라고 느낄 때야. 자기가 어딘가 막다른 곳에 몰렸다든가, 소외되었다든가, 집단을 원망하는 마음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 무리해서라도 집단에 남든지, 집단에서 나가는 편이 좋아. 그리고 정면으로 불평을 말하면 돼. 욕지거리를 해도 돼. 누군가는 그 욕지거리를 듣고 있어. 집단에서 나오고 나서 집단을 원망하기 시작하면 상처입는 것은 자신이야."&nbsp; (p.202~p.203)<br>집단에 속한 개인은 언제나 집단의 단단한 벽과 마주할 때 또는 집단 구성원과의 갈등이 심화될 때 어찌할 줄 모른 채 우왕좌왕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비단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부족한 데서 온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어쩌면 집단 속에서 오랫동안 지내온 개인이 자신의 존재를 서서히 잃어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정하고 싶지만 자신이 집단 속에서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도 띄지 않을 만큼 작아졌거나 숫제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면 집단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 자신의 존재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lt;거품&gt;의 주인공인 가오루처럼 말이다. '나'라는 존재도 이 시대를 구성하는 개체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집단의 구성원이 아닌 순수 개인으로서 깨달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오늘은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 국가 폭력 앞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그날의 제주 시민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만개한 벚꽃은 저리 밝은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3/18/cover150/k2821351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03181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찬란한 슬픔의 봄이 어울리는 하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2596</link><pubDate>Thu, 02 Apr 2026 16: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2596</guid><description><![CDATA[산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계절의 변화가 어찌나 빠르던지 변해가는 산의 모습을 여유롭게 감상하기는커녕 어, 하는 사이에 벌써 꽃이 피고, 새순이 돋고, 새벽어둠을 뚫고 지저귀는 새의 울음소리가 하나둘 늘어가는 것을 채 헤아리지도 못한 채 봄의 한가운데에 들어선 듯합니다. 봄의 정취를 미처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등산로에서 새초롬히 핀 진달래를 보았습니다. 겨울을 벗어난 날은 며칠 되지도 않은 듯한데 양지쪽에 앉았을 때의 느낌은 겨울로부터 한참이나 멀어진 듯 여겨져 다가올 여름이 새삼 두려워지는 것입니다.<br>내가 매일 아침 오르는 산의 입구 공터에는 최근 누군가 어설프게 만든 닭장 하나가 세워졌습니다. 그곳에 풀어놓은 수탉 한 마리가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곤 합니다. 도시 한가운데서 듣는 수탉의 울음소리는 꽤나 생경하게 들립니다. 나를 여기에 이렇게 가둬두는 건 부당하다고 말하려는 듯 수탉의 울음소리는 무척이나 거칠고 우렁찹니다. 나는 오늘도 자유를 갈구하는 듯한 수탉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산에 올랐었습니다. 인간의 식량조달을 위해 닭을 키운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자유마저 빼앗을 권리가 있는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로 근무했던 박선영의 에세이 &lt;그저 하루치의 낙담&gt;에는 18세기 낭만주의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시 '늙은 선원의 노래'가 등장합니다. '...... 너무 놀라고쓸쓸해진 채/그는 집으로 돌아갔다./이튿날 아침 일어났을 때/그는 더 슬프고 더 현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작가는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br>"더 슬프고 더 현명한 사람A sadder and a wiser man, 깨달음이란 기쁨과 함께 오지 않고 슬픔과 함께 온다는 것. 사람을 더 현명해지도록 만드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것. 더 현명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더 슬픈 사람이며, 그것이 내가 그토록 강렬하게 슬픔의 수집가가 되려던 이유였던 것이다. 나는 삶을 잘 살고 싶다. 삶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싶다. 삶의 폭력을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고 싶다. 그러려면 슬퍼야 한다. 슬픔에 귀 기울여야 한다. 슬픔만이 나를 그 길로 안내할 수 있다."&nbsp; (p.106)<br>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슬픔은 가장 낮은 등급의 감정인 까닭에 슬픈 노래를 듣거나 슬픈 이야기를 듣거나 슬픈 내용의 소설이나 영화를 감상할 때 우리는 한없이 안온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기쁨보다는 슬픔으로 구성되는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들었던 수탉의 울음소리가 온종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도 나 역시 오늘 하루를 슬픔 속에서 온전히 머물고 싶었던 까닭입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이라고 노래했던 김영랑 시인이 떠오릅니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 어울리는 하루.<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애틋함의 긴 여운만 남기고 -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0226</link><pubDate>Wed, 01 Apr 2026 12: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02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034981&TPaperId=171902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31/12/coveroff/k08203498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034981&TPaperId=171902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a><br/>콘치타 데그레고리오 지음,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그림, 정림(정한샘).하나 옮김 / 오후의소묘 / 2026년 01월<br/></td></tr></table><br/>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끝없이 획득하고, 유형.무형의 자산을 무한정으로 늘려간다고 생각한다. 고가의 명품 가방이나 시계, 멋진 승용차, 넓은 주택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망하는 어떤 대상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때로는 성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거나 숫제 헤어지게 된다. 내가 태어났던 고향집, 사랑하던 애완견, 젊은 시절 한때 사랑했던 연인, 통통한 볼살이 귀여웠던 아이 등 시간의 경과로부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무수히 많다.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은 비단 존재하는 어떤 사물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나는 얼마 전 블로그에 '흘러가는 것엔 언제나 애틋함이 묻어난다'라고 썼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상실과 공허, 속절없는 안타까움에 대한 나의 솔직한 느낌을 쓴 글이었는지도 모른다.<br>"고독은 침묵과 닮았어. 한마디도 하지 않거나, 혼잣말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정말 어렵게 느껴지지. 이상하고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하루하루가 풀로 붙인 듯 서로 이어져 모두 똑같아 보이거든. 그러다 조금씩 쉬워져. 혼자 있을 때는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할 수 없어.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지. 혼자라면, 다른 사람들이 절대 불가능할 거라 말하는 일조차 할 수 있어. 어차피 아무도 혼내거나 뭐라고 할 수 없거든. 단지 들키지 않고 보이지 않게, 조용히, 천천히만 하면 돼. 누군가 다가와서 "뭐 하고 있었어?"라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면 그만이야. 아무것도."&nbsp; (p.40 '고독')<br>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언론인이자 작가이기도 한 콘치타 데 그레고리오가 글을 쓰고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가 그림을 그린 &lt;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gt;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련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떤 대상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그 대상을 잃은 것에 대한 상실의 의미와 향수를 음미한다. 그것은 어쩌면 상실을 상실로 기억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인 동시에 상실에 대한 해묵은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닐까 싶다.<br>"사라진 사람들과 사물들은 머릿속을 가득, 거의 꽉 채운 채로 떠나질 않아요.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다는 너무나 이상한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은 일종의 노동 같아요. 이 노동은 밤낮으로 이어져요. 다른 사람들은 그 피곤함을 볼 수 없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어요. 괜히 말하면 이런 소리만 듣게 되니까요. 곧 지나갈 거야, 시간이 약이야, 생각하지 마, 나가자.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죠. 누텔라 바른 빵 먹을래?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 나가자, 나가야 해."&nbsp; (p.10 '프롤로그' 중에서)<br>100여 쪽밖에 되지 않는, 얇디얇은 이 책을 나는 몇 날 며칠을 끼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작가가 호명했던 그 이름들을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흥얼거리게 되었다. 마르코, 카르멘, 알리체, 니달, 루카, 아리아......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기억에서 떠나보낼 수 없는 여러 이름들을 마치 자신의 짐보따리인 양 꽁꽁 숨겨둔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새롭게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이름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우리는 잊어야 할 낡은 이름들을 하늘에 훨훨 날려 보내야 하지 않을까.<br>"당신의 목소리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아요. 아마도 당신은 그곳에서 더 잘 지내고 있겠죠. 꼭 거기로 가야만 한다고, 당신은 그날 밤 나에게 말했으니까요. 우리가 다른 삶에서, 우리가 개구리와 나비인 곳에서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거라며 슬퍼하지 말라고 했지요. 그 말을 하던 당신은 눈길을 떨구었어요."&nbsp; (p.104 '에필로그' 중에서)<br>오늘은 4월 1일 만우절.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귀여운 거짓말로 친구들을 속여먹곤 했었는데 지금은 가짜 뉴스가 온 세계를 잠식하다 보니 만우절에 하던 거짓말조차 범죄가 되고 말았다. 사라지는 것들이 비단 어떤 공간이나 존재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어서 과거에 유행하던 풍습이나 의식도 시대가 변하자 금세 사라져 버린 듯하다. 그리고 그것에 익숙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리움처럼 추억만 남았다. 애틋함의 긴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31/12/cover150/k08203498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0311298</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아들의 전역</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84112</link><pubDate>Mon, 30 Mar 2026 17: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84112</guid><description><![CDATA[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개나리를 비롯한 여러 봄꽃이 피어나는 것은 물론 버드나무 가지에도 연녹색 물이 들고 있는 걸 보게 됩니다. 한낮 기온이 20도를 넘나들다 보니 과거에는 차례대로 피던 봄꽃이 최근에는 한꺼번에 우르르 피었다 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컨대 과거에는 산수유가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고 나면 제 순서에 맞춰 차례로 개나리, 목련, 매화, 벚꽃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입니다. 지구온난화 탓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갑자기 여러 꽃들이 한꺼번에 피고 지다 보니 왠지 정신이 없고 계절을 즐길 만한 여유도 차츰 사라지는 게 아닌지 조금 두려워지기도 합니다.<br>어제는 아들의 군대 생활에서 쓰던 짐을 옮기느라 아침 일찍 운전을 하여 군부대에 갔었습니다. 아들을 둔 부모의 난제, 이를테면 대학 입시, 병역, 취업, 결혼 등 시기에 따라 마주쳐야 할 어려운 문제들 중 하나인 '병역'을 무사히 해결한 듯합니다. 내일이면 전역을 하는 아들은 공군으로 입대하여 21개월의 결코 짧지 않은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친 듯합니다. 전역에 앞서 외출을 나온 아들의 양손 가득 들린 짐을 받아 차에 싣는 감회가 뭐라 설명할 수 없이 묘하기만 했습니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인데'라거나 '요즘 군대를 어디 군대라고 말할 수 있나?' 하면서 군 생활의 노고를 폄훼하거나 깎아내리려는 사람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사실 혈기왕성한 그 시기의 젊은이들에게 있어 18개월이나 21개월은 결코 짧다고 말할 수 없는 황금과도 같은 시간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아들의 전역을 손꼽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도 그러할 테고 말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lt;데미안(소담출판사)&gt;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합니다.<br>"어느 초봄의 밤, 나는 우리가 점령한 농가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맥 빠진 바람이 변덕스레 방향을 바꾸며 불어왔다. 플랑드르의 높은 하늘에는 구름이 군대처럼 몰려다닌다. 그 구름 뒤 어딘가에 달이 빛나겠지. 하루 종일 나는 불안에 시달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걱정이 나를 괴롭혔다. 어두운 초소에서 경비를 서며 나는 간절하게 지금까지 살면서 품었던 형상들을, 에바 부인을, 데미안을 생각했다. 미루나무에 기대어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구름의 전쟁터를 올려다보았다. 한밤중 하늘에서 움찔대는 별의 빛이 점점 커다란 그림, 솟아오르는 그림의 연속을 연출했다. 나는 맥박이 이상할 정도로 희박해졌음에서, 그동안 비바람에 시달리며 무뎌진 피부에서, 내면에서 반짝이는 빛에서 어떤 인도자가 나를 굽어보고 있음을 느꼈다."&nbsp; (p.266)<br>내일 전역을 하는 아들은 4월 9일부터 5월 14일까지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오겠다고 합니다. 모든 게 불안하고 의문투성이인 요즘이지만 나는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 개개인의 특별한 경험들이 더욱 소중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나 가상현실에서의 경험이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직접 부딪혀서 체득한 경험이야말로 인공지능시대를 현명하게 대처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어느새 3월도 - [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78993</link><pubDate>Sat, 28 Mar 2026 12: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789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6412&TPaperId=171789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5/37/coveroff/k87213641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6412&TPaperId=171789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a><br/>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최정애 옮김 / 비트윈 / 2026년 03월<br/></td></tr></table><br/>미술관 관람이 웬만한 영화 관람보다 더 흥미로울 때가 종종 있다. 내가 그림이나 조각 등 미술 작품에 조예가 깊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전시실에 놓인 작품을 쭈욱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멎게 만드는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말이다. 작가의 모든 작품에 빠져들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한두 점의 작품 앞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작가가 내게 건네는 수많은 말과 생각들을 내가 미처 주워 담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치게 된다. 그럴 때 나는 시공간을 잊은 채 한없이 자유로워진다. 주변 관람객의 소곤거림도, 자리를 뜨는 여러 관람객의 발소리도, 이따금 들리는 안내 방송도 전혀 들리지 않고, 시간은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만다. 어릴 적 술래에게 '얼음'이라고 외쳤던 그 순간처럼.<br>얼만 전에도 나는 대전에서 열린 앤디 워홀 전시회를 다녀왔다. 10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회의 기획도 재미있었지만, 인쇄물로만 보았던 앤디 워홀의 작품을 실물로 직접 보게 되는 감흥은 왠지 모르게 신나고 반가웠었다. 앤디 워홀 전시회를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왔다면 그 직후 읽기 시작한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가 쓴 &lt;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gt;는 나의 가슴을 가볍게 짓눌렀다. 나는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 이따금 책을 손에서 놓고 베란다로 나가 깊은숨을 내쉬곤 해야만 했다. 그것은 어쩌면 안젤름 키퍼에 대한 나의 지식이 지나치게 빈곤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br>"나에게 '안젤름 키퍼'는 늘 그런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은 우리 시대의 어떤 예술가의 이름보다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는데, 그것은 그의 작품들이 극히 기념비적이며, 시간으로 가득 차 있고, 역사로 무겁게 짓눌려 있으며, 사적인 것, 하찮은 것, 개인적인 것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nbsp; (p.13)<br>어떤 예술이든 작가와 관객 혹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놓인 작품은 생소한 두 사람을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어떤 작가는 때로 작품 속에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또 어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사적인 어떤 것을 일절 담지 않는다. 작가 스스로의 개인적인 성향 탓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독자나 관객에 대한 배려나 예의 차원이라고 해야 할까. 2023년 국내에서 열린 안젤름 키퍼의 국내 첫 전시회에 나는 가지 못했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의 전시회 소식도 듣지 못했다. 당시에 나의 관심이 다른 데 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lt;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gt;를 읽는 동안 나는 온라인에 떠도는 안젤름 키퍼의 작품과 그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도 찾아봤다. 그러나 익히 알다시피 우리가 약간의 수고를 감수하면서 굳이 전시회를 찾는 까닭은 실물을 직접 보는 것과 영상이나 화면을 통하여 보는 것은 실로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br>"그의 나무와 숲에 대한 집착은 1960년대 말부터 줄곧 지속되어 왔다. 그는 숲과 함께 육십 년을 보냈다. 나는 그가 그린 숲이 신화의 숲이라고 생각했다. 그림 형제의 동화 속에서 헨젤과 그레텔과 빨간 모자가 돌아다니던 숲, 게르만족이 로마인들과 싸워서 이겼던 숲, 나치가&nbsp;'독일적인 것'을 연출하는 데 이용했던 숲, 그리고 절멸 수용소들이 위치했던 숲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키퍼 자신의 숲이라는, 그가 할아버지와 삼촌, 숙모, 사촌들과 어울려 살았던 곳의 숲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nbsp; (p.73)<br>20세기 후반 신표현주의 미술운동의 주요 인물로 자리매김한 그이지만 안젤름 키퍼는 사실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던 법학도였다. 1966년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한 그가 1970년 뒤셀도르프에서 요제프 보이스의 제자가 되면서 늦은 나이에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그가 이룬 성취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은 우선 거대한 작품의 크기에 압도된다. 고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그이지만 키퍼는 짚, 납, 도료, 재, 점토 등을 이용하여 캔버스 위에 텍스처를 강조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한다.<br>"존재하는 것의 내면에 다가가 비밀을 밝히려는 예술 속에서 그 심연은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를 압도한다. 아마도 다른 어떤 이의 그림에서보다 고흐의 그림에서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고흐에게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림을 그릴 줄 몰랐기에 붓질 하나하나마다 사투를 벌여야 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회화라는 예술을 바닥부터 다시 발명해야 했다. 그래서 그림과의 투쟁 자체가 가시화되는데, 키퍼는 그 투쟁을 예술의 핵심이자 모든 것의 기원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것은 곧 보는 자와 존재하는 것 사이의 투쟁이었다. 존재하는 것은 포착될 수 없고, 그 비밀에는 결코 닿을 수 없기에, 모든 예술은 본질적으로 실패작이다. 예술은 오직 원래의 통찰력이나 비전의 일부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예술가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항상 그 비전을 거스르기에 비전은 결코 있는 그대로의 온전한 형태로 재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라는 행위에는 언제나 파괴가 동반된다."&nbsp; (p.170)<br>우리가 궁극적으로 예술작품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삶의 권태에서 벗어날 다른 대체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 경기와 같은 육체적인 방식을 통하여 일시적으로 권태를 벗어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육체가 20대의 젊음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결국 예술작품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존재하는, 그러면서도 끝없이 유동하는 이 삶의 본질에 결코 닿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존재를 부정하지 않은 채 끝없이 탐구할 뿐이다. 삶이 지속되는 한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nbsp;패전국 독일의 폐허에서 태어난&nbsp;안젤름 키퍼는 나치 시대를 다룬 작품을 종종 선보이곤 한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이 나고 자랐던 독일의 숲과 강이 그에게 심어준 그의 정체성일지도 모른다. 책의 저자인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안젤름 키퍼와의 유대를 통하여 안젤름 키퍼 자신과 그의 작품에 대한 면면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키퍼의 그림에 빠져드는 것처럼 작가의 표현과 통찰력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만다. 어느새 3월도 다 가고 말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5/37/cover150/k8721364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645374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또 하루가 지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75317</link><pubDate>Thu, 26 Mar 2026 17: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75317</guid><description><![CDATA[새벽 기온은 여전히 차고 건조하다. 나는 요 며칠 바쁘고 힘들었다. 삶의 언저리에서 맴맴 맴을 돌다가 아무런 맛도 감각하지 못한 채 맹탕의 날들을 흘려보내는 듯한 느낌. 그렇게 맴을 도는 사이 거리에는 목련의 봉오리가 벙글고, 매화도 해끗해끗 봉오리를 틀고 있다. 감각하지 못하는 여러 날들을 보내고 나면 건조한 삶에 거뭇거뭇 튼 흔적이 남는 것 같다. 손등이 터서 까슬해지는 것처럼.<br>며칠이면 끝날 것 같던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루에 한 번씩 말을 바꾸면서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은 돈벌이에 여념이 없는 듯하고, 국가의 최고 권력을 철저히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데 사용했던 윤석열과 김건희의 방식을 먼 나라 미국의 대통령이 보고 배웠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구치소에 있는 윤석열은 트럼프로부터 교육비를 받아도 좋을 듯하다. 식탐이 많은 사람이니 사식이라도 넉넉하게 넣어 달라고 부탁을 할 수도 있겠지.<br>마쓰이에 마사시의 &lt;거품&gt;을 읽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나는 그의 소설 &lt;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gt;를 읽고 진한 감동을 받았었다. 그 후에도 나는 작가의 소설 두어 권을 더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lt;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gt;와 같은 깊은 인상은 받지 못했다.<br>"나한테는 고정해줄 압정pin이 없다., 라고 가오루는 생각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자기를 움직이지 않게 고정해줄 것이 없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매일 학교를 다님으로써 임시로 압정이 주어졌었다. 체육 특별활동부에 들어가고 운동을 하며 날이 새고 날이 지고 녹초가 되면, 좀 더 나를 꽉 고정하는 압정이 되었다. 학교를 그만둬버리면 어떻게 될까? 압정이 빠진다. 나는 지금 어디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하늘하늘한 얇은 종이나 같다. 학교에서 박리되어 바람에 날리고, 강에 떨어졌다가 그대로 바다로 흘러가서 가라앉는다. 바닷물에 녹아서 가루가 된다."&nbsp; (p.61)<br>한낮 기온은 빠르게 오르고 있다. 반소매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도 더러 목격된다. 일부러 과시하려는 태도일지도 모르지만, 한낮 기온은 그들의 허세를 받아줄 만큼 넉넉히 올라 있다. 어스름이 내리는 걸 보니 또 하루가 지는가 보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축제는 계속되어야 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65623</link><pubDate>Sun, 22 Mar 2026 12: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65623</guid><description><![CDATA[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옵니다. 난데없는 꽃소식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는 것도 잠시 계절은 금세 여름으로 넘어가곤 합니다. 아파트 화단에 핀 산수유꽃을 보면서 나는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습니다. 어제는 광화문 광장에서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공연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의 BTS 팬들이 모여 유례없는 성황을 이루었지만, 많은 사상자가 난 대전의 화재 참사와 3주째 이어지고 있는 중동 지역의 전쟁 참화 속에서 노래하며 웃고 즐겨도 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br>나는 이번 전쟁을 보면서 몇몇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면 현대인의 기본적인 속성이 극단적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표 지상주의에 물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수천 명의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고 그들과 연관된 몇 배, 몇십 배의 사람들이 상실감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삶의 터전을 잃을 텐데, 그런 것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전쟁을 계속하는 트럼프와 네타냐후,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을 우리는 과연 무엇이라 칭해야 할까요. 그들도 과연 정상적인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폴리마켓의 예측 도박 사이트에서는 이란 전쟁을 둘러싼 여러 사안을 놓고 각각 수천만 달러짜리의 내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이들을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br>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여름, 그해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었던 박완서 작가는 자신의 일기에 부모로서 견딜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숨김없이 씀으로써 상실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 독자들에게 알린 바 있습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고통, 그 어떤 말로도 치유할 수 없는 참척의 아픔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 처절한 기록이 담긴 &lt;한 말씀만 하소서&gt;를 읽는 독자라면 화재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을,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먼 타국 유가족의 애끓는 심정을 조금쯤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차츰 정상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겠지요.<br>"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줬지만 88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걸 어찌 견디랴. 아아, 만일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미친년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해본다."&nbsp; (p.18)<br>"그 애를 잃고 나서 아직 고기를 입에 넣은 적이 없다. 소화가 안 된다는 핑계였지만, 그 애가 죽던 날 밤, 집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유난히 맛있게 등심구이를 아귀아귀 먹은 생각을 하면 진저리가 쳐져서 생전 고기를 먹을 것 같지가 않다. 집에서처럼 따로 눌은밥을 좀 끓여달래서 먹었지만 누린내를 견디기가 힘들었다."&nbsp; (p.87)<br>'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되는 김훈 작가의 소설 &lt;칼의 노래&gt;가 문득 떠오릅니다. 중동 전쟁이 끝나는 어느 시점에 이란의 어느 작가 역시 그렇게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잔인함과 속절없는 슬픔과 고통을 뒤로한 채 이란고원의 폐허 속에서도 이름없는 꽃이 피어나겠지요. 전쟁의 포화가 멎은 어느 날 말입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빼곡한 도서목록을 들고 - [나의 프랑스식 서재 - 김남주 번역 에세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62388</link><pubDate>Fri, 20 Mar 2026 17: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623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0574&TPaperId=171623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60/37/coveroff/89546205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0574&TPaperId=171623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의 프랑스식 서재 - 김남주 번역 에세이</a><br/>김남주 지음 / 이봄 / 2013년 06월<br/></td></tr></table><br/>번역가의 에세이가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지 못하는 까닭은 지식의 편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원작자의 작품을 번역하는 번역가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번역했던 어떤 작품에 대해서는 원작자 다음으로 많은 지식을 소유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는 바, 그 책에 대해서 한 번쯤 읽어보았거나 전혀 읽어보지도 못한 채 다른 경로를 통해 그 책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일반 독자를 고려할 때, 번역가와 일반 독자 사이의 지식 편차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번역가는 자신의 본업인 번역 이외의 다른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책에 대한 일반 독자의 지적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또는 고려하지 못한 채) 자신이 하고픈 말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나온 에세이는 대개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너무너무 어렵다. 물론 소수이겠지만 번역가와 지적 수준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일반 독자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학술서가 아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에세이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건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br>"장 그르니에에 의하면 카뮈의 작품은 "그 작품에 대한 모든 주석을 쓸데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어떤 것이다. 그런 만큼 역자는 이 글에서 또다시 그런 '쓸데없음'을 범하지 않으련다. "그런 작품은 하나의 호소와도 같아서 우리는 그것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결정을 강요하고 당혹시키며 자기변명을 하게까지 만든다. 그런 작품은 우리에게 어떠한 회피도 용납하지 않음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nbsp; (P.76)<br>그럼에도 내가 자주는 아닐지라도 기회가 될 때마다 번역가의 에세이를 읽는 까닭은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한편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책이 뭐가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함이다. 때로는 한동안 책과 멀어졌던 까닭에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거나 시큰둥한 마음이 들 때, 혹여라도 나의 관심을 끌 만한 좋은 책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번역가의 에세이를 읽게 된다. 일종의 추천 도서 목록을 구하고자 함이다. 김남주의 에세이 &lt;나의 프랑스식 서재&gt;를 읽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김남주 번역가의 저서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br>"어린왕자는 과연 무사히 자기 별로 돌아갔을까? 가죽 끈이 없는 부리망 때문에 화자의 걱정대로, 우주 어딘가에서 양 한 마리가 장미꽃 한 송이를 먹어치우진 않았을까? 그리하여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 어린왕자의 방울 같은 웃음소리 대신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슬픔이 가라앉고 나면 어린왕자는 다시 이동하는 철새 떼를 타고 장미꽃 없는 자기 별을 떠나 자기가 길들인 여우도 있고, 화자도 있는 이 지구별로 돌아오지 않을까? 아아, 이 책의 내용을 적은 엽서를 교환하던 그 시절, 금빛 대신 푸른 머플러를 어린왕자처럼 꼭 그렇게 한 번만 목뒤로 넘겨 둘렀던 그 친구를 이 지구에서 바오밥나무가 있는 곳, 마다가스카르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nbsp; (P.169~P.170)<br>자신을 일러 '느린 번역가'라 칭하는 김남주 번역가는 &lt;오후 네시&gt;를 통해 아멜리 노통브를 &lt;나를 보내지 마&gt;를 통해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를 처음 국내에 소개한 번역가이자 내가 좋아하는 작가 장 그르니에, 알베르 카뮈, 로맹 가리, 생텍쥐페리 등 프랑스의 현대고전 작품 역시 번역해 왔다. 지금도 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 추억 하나는 내가 군에 복무하던 당시, 모 여대 불어불문학과에 다녔던 아내가 졸업논문을 쓰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것을 보고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여러 권을 부대로 가져와서 읽은 후 논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초고를 타자기로 쳐서 아내에게 주었었다. 아내는 내가 쓴 그 어설픈 논문 초고를 바탕으로 어찌어찌 살을 붙여 논문을 완성하였고,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김남주의 에세이를 읽는 내내 그때의 추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br>"20대 후반부터 30대, 40대를 살아오는 동안 번역은 내 밥벌이였다. 그러나 나는 줄곧 이 일을 내 삶의 징검다리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강 저편으로 가기 위해 딛고 가는. 오랫동안 내 시선은 내가 딛고 있는 그 징검다리가 아니라 내가 당도해야 할 강 저편 기슭에 고정되어 있었다고 고백한다. 문화와 정신을 전달한다는 감동과 자부는 대개는 무능과 게으름과 악조건 속에서 사그라들고, 표현과 내용의 좌충우돌 속에서 많은 밤들을 새웠다. 저울의 한쪽에 착실히 말들을 올려 놓으며 한 권의 번역을 마치고 나면 머릿속 말들이 모두 빠져나간 듯 일상적인 대화조차 더듬고 버벅대고 순서를 바꾸기 일쑤였다."&nbsp; (P.9 '첫 책을 내면서' 중에서)<br>사실 이 책은 번역가가 쓴 리뷰에 가깝지만 작가의 삶이 책 속에 녹아있다는 점에서 에세이가 아닐 수 없다.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전문 번역가가 지닌 지식과 일반 독자인 내가 소유한 지식 사이의 가늠할 수 없는 차이 때문에 이따금 어려운 문장에 갇혀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하여 읽기도 했지만, 번역가의 수고에 비하면 그와 같은 수고를 수고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 아닌가. 오늘은 금요일, 나는 책에서 빼곡히 옮겨 적은 도서 목록을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내일이면 나는 그 목록을 들고 가까운 도서관에 들러 가능한 범위에서 많은 책을 대출하여 기쁜 마음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기한 내에 다 읽지도 못하면서 잔뜩 욕심을 부릴지도 모를 일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60/37/cover150/89546205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603742</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소리도 없이 내리는 비가 - [박찬원의 두근두근 - 동물수상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57740</link><pubDate>Wed, 18 Mar 2026 14: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577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6519&TPaperId=171577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7/46/coveroff/k3821365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6519&TPaperId=171577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박찬원의 두근두근 - 동물수상록</a><br/>박찬원 지음 / 라의눈 / 2026년 03월<br/></td></tr></table><br/>모든 예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닌 무엇을 제외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예컨대 음악은 이 세상의 많은 소리 중 어떤 소리를 제외할 것인가로 귀결되며, 사진이나 미술은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시시콜콜한 풍경 가운데 어떤 것들을 지울 것인가로 귀결되며, 문학은 주인공과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을 제외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마찬가지로 글쓰기에서 퇴고 작업이 어려운 까닭은 문장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하는 게 실생활에서 익숙한 습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디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지만,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 중 불필요한 것을 버리거나 너무 많이 소유한 것을 덜어내는 데에는 전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음이다.<br>우리에게 '동물사진작가'로 잘 알려진 박찬원의 사진 에세이 &lt;박찬원의 두근두근&gt;에 실린 작가의 흑백사진을 보면서 그도 역시 렌즈 속에 놓인 피사체의 어떤 부분을 지울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무척이나 많은 고민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찍은 동물들은 말, 젖소, 돼지처럼 가축화되어 인간과 가까운 동물들도 있지만, 하루살이나 나비처럼 다소 하찮게 여길 수도 있는 곤충에 이르기까지 꽤나 다양하다.<br>"이 책은 동물에 대한 수상록이고, 한 주제에 100일 촬영 원칙을 정했다. 한 동물마다 약 3년 걸렸다. 실제 사진 찍는 시간은 얼마 안 된다. 동물을 관찰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동물에 대한 생각이었는데 나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온다. 동물에서 인간을 본다. 아니 나를 본다."&nbsp; (p.4 '프롤로그' 중에서)<br>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쯤 도올 김용옥 선생의 딸인 김미루 씨가 돼지우리에서 100시간 넘게 돼지들과 함께 지내며 '돼지우리 누드 퍼포먼스'를 펼친 적 있다. 뉴욕에서 사진작가 겸 행위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미루 씨의 당시 사진은 국내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되었고, 가려지지 않은 젊은 여인의 신체와 오물이 묻은 돼지들의 모습과의 어우러짐은 보는 이들에게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물론 자연에서 돼지는 절대 더러운 동물이 아니고, 인간이 인위적으로 사육하면서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비판하고자 했다는 김미루 작가의 설명이 있었지만, 김미루 작가의 사진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던 일반인들의 관점에서 작가의 설명은 크게 납득이 되지는 못했다.<br>"돼지는 불쌍하고 슬픈 동물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밖에 나가 놀지 못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도 없다. 친구를 사귀거나 연애도 못 한다. 돼지의 일생은 먹고 자고 자라서 도축장으로 가는 것이다. 짧게 살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으니 돼지는 죄를 지을 겨를이 없다. 깨끗하고 신성하다."&nbsp; (p.10)<br>박찬원 작가는 이 책에서 01. '동물과 인간, 02 '생명의 의미', 03 '동물의 언어', 04 '동물나라 풍경'의 주제로 그가 관찰했던 피사체에 대한 깊은 사유와 그 사유를 통해 건져낸 사진들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인식의 틀을 세울 것을 권고한다. 예술 전문 잡지 QUESTION의 사진문학 코너에 2022년 7월부터 2023년 6월까지 '동물 사진가 박찬원의 두근두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과 사진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lt;박찬원의 두근두근&gt;은 작가의 정제된 글과 렌즈에 포착된 압축된 사진만으로도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동물에 대한 관찰과 교감을 통하여 작가의 사유는 생명에 대한 경외로 확장되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철학적 사유에까지 이르게 된다.<br>"새벽에 나가 보니 젖소가 죽어 있다. 목을 뒤로 꼰 채 코를 땅에 박고 눈은 반쯤 뜨고 있다. 밤사이 안락사시켰다. 물통이 넘어져 있다. 물을 마시려다 힘이 없어 고개를 들지 못하고 물통을 쓰러트렸나 보다. 뒤에는 오줌을 싼 듯 물 자국이 흥건하다. 고개 숙여 명복을 빈다."&nbsp; (p.175)<br>동물의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관찰은 작가 본인의 엄마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진다.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늘 미안해하던 엄마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br>어제의 메말랐던 기억을 지우려는 듯 지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소리도 없이 내리는 비가 세상의 빛을 지우고, 소리를 지우고, 어렴풋하던 형체마저 지우고 있다. 흐릿하게 변한 세상 너머로 잊었던 봄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7/46/cover150/k3821365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6474646</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흘러가는 것엔 언제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51698</link><pubDate>Sun, 15 Mar 2026 15: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51698</guid><description><![CDATA[흘러가는 것엔 언제나 애틋함이 묻어납니다. 흘러가는 세월, 흘러가는 강물, 흘러가는 구름, 흘러가는 이야기, 그리고... 흘러가는 모든 것에 대한 애틋함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성에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 청소년기의 나나 청년기의 나와 한 몸이지만 엄연히 다른 존재, 그러나 세월을 거슬러 지금의 내가 청년기의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강물 위에 떠가던 지난가을의 단풍잎을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와 같은 애틋함을 잊어버리거나 순간순간 지우기 위해 우리는 파편화된 시간을 살아가곤 합니다. 에크하르트 톨레와 같은 선지자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흘러간 거리가 멀면 멀수록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속절없이 떠밀려가는 그 과정이 서글프고 애틋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br>오늘은 3.15 의거 기념일입니다. 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학생의 평화적 시위가 있었고,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려는 경찰에 맞서 격렬한 투석전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소위 '마산 데모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에 경찰의 무차별 발포와 체포.구금으로 희생자가 속출하자 이에 맞서 저항했던 시위대 중 8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던 바,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17세의 마산상고 신입생 김주열 열사는 행방불명되었다가 27일이 지난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nbsp;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nbsp;발견되었던 것입니다. 4.19 의거의 도화선이 되었던 이 사건과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인해 결국 이승만 독재정권이 붕괴되었습니다만, 희생자들에 대한 감사와 추모의 마음은 해가 갈수록 약해지는 듯합니다.<br>캐나다 작가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이 쓴 &lt;고요의 바다에서&gt;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합니다."그것이 현실 아닐까? 우리 대부분은 상당히 비(非)클라이맥스적인 방식으로 죽지 않을까? 우리가 떠났다는 사실이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눈에 띄지 않고, 우리의 죽음은 주변 사람들의 서사에서 하나의 플롯 포인트가 될 뿐인 것 아닐까?"&nbsp; (p.143)<br>흘러가는 것엔 언제나 속절없는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묻어납니다. 출발점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애틋함의 강도는 더욱 높아져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최고점에 도달하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말에 현혹되어 조각조각 파편화된 시간을 바쁘게 살아가면서 그 애틋함을 못 본 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그 애틋함을 일부러 회피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흘러가는 것엔 언제나 애틋함이 존재합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어느덧 봄 - [고요하고 단단하게, 법정의 말 - 내려놓음의 마음 공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49775</link><pubDate>Sat, 14 Mar 2026 13: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497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5050&TPaperId=171497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63/94/coveroff/k74213505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5050&TPaperId=171497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요하고 단단하게, 법정의 말 - 내려놓음의 마음 공부</a><br/>권민수 엮음 / 리텍콘텐츠 / 2026년 02월<br/></td></tr></table><br/>법정스님이 입적하신 지 벌써 16년이 흘렀다. 2010년 3월 11일의 느낌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내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나는 스님의 말씀이 담긴 여러 저서를 읽으며 청소년기를 보냈었고, 언론을 통해 접하는 스님의 소식을 가까운 이의 근황인 양 귀를 쫑긋 세운 채 듣곤 했었던 나로서는 텔레비전을 통해 접했던 그날의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다. 충격이 컸던 탓인지 나는 한동안 가슴이 텅 빈 듯한 허전함으로 인해 매사에 의욕이 떨어졌었다. 그때 우연히 읽었던 책이 &lt;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gt;이었다. 덕분에 나는 스님이 추천한 책 50권 대부분을 읽을 수 있었다. 허전함을 달래기 위한 목적이 더 컸었지만 책의 권수가 더해질수록 스님의 뜻이 새록새록 전해지는 듯했다. 스님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알지 못했을 다비드 르 브르통의 &lt;걷기 예찬&gt;이나 쓰지 신이치의 &lt;슬로 라이프&gt;, 아베 피에르의 &lt;단순한 기쁨&gt;, 존 프란시스의 &lt;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gt; 등 뻐근한 감동과 교훈으로 남았던 여러 책들이 스님의 말씀처럼 가슴을 채웠다. 물론 나의 지식이 부족하여 이해가 어려웠던 책들도 더러 있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가 쓴 &lt;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gt;나 에크하르트 톨레의 &lt;NOW-행성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gt;와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스님의 추천 도서 대부분이 나의 인생책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나는 스님의 추천 도서를 기회가 될 때마다 꺼내 읽곤 한다.<br>역사 콘텐츠 전문 작가 권민수가 엮은 &lt;고요하고 단단하게, 법정의 말&gt;을 읽었던 것도 어쩌면 그 연장선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PART 1 '나는 어떻게 가벼워질 수 있을까? - 비움과 자유',&nbsp;PART 2&nbsp;'불안은 왜 자꾸 올라올까? -두려움과 신뢰',&nbsp;PART 3 '일은 삶을 어떻게 바꿀까? - 일.돈.시간',&nbsp;PART 4 '관계는 왜 어려울까? - 가족.사랑.갈등',&nbsp;PART 5 '슬픔은 어떻게 치유될까? - 상실.병.죽음',&nbsp;PART 6 '자연은 왜 스승일까? - 숲.바람.침묵',&nbsp;PART 7 '어떻게 계속 걸을까? - 단련과 실천' 등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스님의 말씀을 단순히 옮겨 적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를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녹여내고 실천할 것인가를 묻게 하는 잠언집의 성격을 띠고 있다.<br>"법정의 말은 읽을 때는 아름답지만 삶으로 옮기지 않으면 금세 잊히기 쉽습니다. 우리는 멋진 문장을 읽는 데 익숙하지만, 그 문장대로 살아내는 데는 서툽니다. 그래서 이 책은 법정 스님의 단순 저서 문장에만 기대지 않고, 대표 저서들뿐 아니라 강연집과 법문 기록, 정기 법회에서 실제로 건넨 말씀, 여러 자리에서 회자되어 온 핵심 문장들까지 폭넓게 엮어, '법정의 말'을 하나의 총체적인 흐름으로 만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nbsp; (p.8 '프롤로그' 중에서)<br>내가 스님의 추천 도서를 읽으면서 느꼈던 스님의 중심 생각은 생명 존중과 공생이었다. 스님은 우리들 각자가 그 생각을 중심에 두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가꾸어 갈 수 있을까를 궁리하셨던 듯하다. 수도자로서 생명을 귀히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지만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도록 궁리하고 연구하는 학자와 사상가와 사회운동가마저 떠받들고 우리와 같은 장삼이사에게 그들의 사상을 이해시키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스님의 특별한 면모를 살필 수 있었다. 권민수 작가 역시 스님의 말씀을 우리들 삶에서 녹여내려 했다는 점에서 스님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듯하다.<br>081 오늘을 선택하는 연습"나누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내일은 기약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곳에 있지 않을 수도 있고, 내 마음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합니다."&nbsp; (P.108)<br>세상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까닭은 가진 자의 욕심이 끝도 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인과 작금의 정치 세력은 그들의 욕심을 펼칠 자유를 무한대로 허용하는 게 미덕인 양 포장하고 있다. 스님을 비롯한 옛 지성인들이 주장하던 '공생'은 이제 잊힌 단어가 되고 말았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함께 잘살자는 생각이 우리 인간끼리라도 함께 잘살자는 생각으로 쪼그라들더니 이제는 숫제 그마저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는 현실 속에서 개인의 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파편화된 개인이 서로 손을 내밀면 또 다른 어느 누가 내게 손을 내밀지 않을까? 인간 내면의 순수 감정을 건드리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을까? 인간은 본디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자라왔으니까 말이다.<br>241 관심이라는 이름의 간섭"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그 자신의 방식으로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편의나 이익을 위해 남을 간섭하고 통제하고 지배해서는 안 된다."&nbsp; (P.274)<br>생명이 되살아나는 이 계절에 지구 한편에서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 날마다 자행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함께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까닭에 그들 역시 제 수명을 다하면 지구상에서 사라지겠지만, 그들이 치러야 할 죄업은 사후에도 계속하여 청구되지 않을까?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아야 하는 이유는 역사의 단죄가 더욱 가혹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쪽으로부터 봄을 알리는 꽃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어느덧 봄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63/94/cover150/k74213505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639455</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전쟁은 미친 짓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48256</link><pubDate>Fri, 13 Mar 2026 16: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48256</guid><description><![CDATA[아침 산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마치 단골식당의 주인아주머니와의 관계만큼이나 뭐라 한마디로 규정지을 수 없는 애매한 측면이 있다 하겠습니다. 오랫동안 자주 만나던 사이이니만큼 가깝고 익숙하지만 서로 사는 곳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알려고도 하지 않는) 까닭에 언제든 관계를 좁힐 수 있는 여지만 남겨둔 채로 기존의 관계를 무한정 연장하는 그런 사이라고나 할까요. 매일 새벽 남들이 다 잠에 취해 있는 시각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에 올라 늘 마주치는 장소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때로는 짧은 덕담을 건네기도 하고, 일 년에 한두 번쯤 넋두리 삼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면서 불편하지 않은 관계를 수 년째 이어오고는 있지만 서로의 이름도, 연락처도, 사는 곳도 모른 채 지내왔던 것입니다.<br>내가 요즘도 매일 아침 오르는 아파트 뒤편의 야산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많은 사람들과 악수조차 없이 헤어졌습니다.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2년쯤 전에 욕쟁이 할머니가 등산로에서 사라지더니 네댓 달 전쯤에는 언제나 말을 곱게 하시던 소녀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중순께부터는 멋쟁이 할아버지마저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겨우내 추위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거르지 않고 산에 오를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주던 분이셨는데... 1940년생이라고 하셨던 멋쟁이 할아버지는 얼마 전에 올린 나의 블로그 포스팅에서도 언급이 있었지만 지난해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정정하셨는데 언제부턴가 한 손에 지팡이를 짚으신 채 나타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에 열심이셨는데, 이제는 숫제 나타나지 않으시는 걸 보면서 나는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 순간까지 이상한 상상에 빠지곤 합니다. '그렇지 않을 거야.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된 것일 테지.' 나는 애써 그런 생각을 하며 나쁜 생각을 떨쳐내곤 합니다.<br>나는 요즘 내가 좋아하는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lt;이야기를 들려줘요(Tell Me Everything)&gt;를 읽고 있습니다.<br>"내 요점은,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아주 복잡하다는 거예요. 밥, 우리는 모두 아주 복잡하고, 우리가 누군가와 한 순간이라도 - 어쩌면 평생 - 같이 한다는 건 우리가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연결되어 있어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결되어 있지 않죠. 왜냐하면 누구도 다른 사람의 마음속 깊은 틈으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까요. 심지어 그 사람 자신도 자기 마음의 깊은 틈으로는 들어가지 못해요. 하지만 우리는 - 우리 모두는 - 그럴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가요. 그리고 난 그걸 존중해요, 밥. 정말로 존중해요. 하지만 우리 누구도 단단한 땅에 서 있지 않아요. 우리는 그저 우리가 그렇다고 스스로 말할 뿐이에요. 그리고 그래야 하고요. 나는 그걸 알 것 같고, 앞서 말했듯 존중해요. 나는 단지......" 그러고는 말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는데,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nbsp; (p.306~p.307)<br>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 깊은 틈으로는 들어갈 수 없지만, 그럴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가 하면 우리는 단단한 땅에 서 있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스스로 말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미세먼지로 탁하던 대기는 다시 깨끗해졌습니다. 열흘을 넘겨 계속되고 있는 중동 지역의 전쟁은 지금도 포화가 그치지 않고 이어지는가 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것은 물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고 있는데 그들을 조롱하고 아무일 아니라는 듯 지껄이는 미친 작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자들을 일러 '악마' 또는 '사탄'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누군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순간 그 절망의 화살이 복수의 칼날이 되어 나에게 향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말입니다. 우리에게는 달콤한 휴식이 주어질 테지만 전쟁의 포화 속에 있는 그들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밤잠을 설칠 테지요.]]></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그런 세상이 펼쳐질지도 - [터스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42324</link><pubDate>Tue, 10 Mar 2026 19: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423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6920&TPaperId=171423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4/96/coveroff/k3621369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6920&TPaperId=171423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터스크</a><br/>레이 네일러 지음, 김항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02월<br/></td></tr></table><br/>트로피 헌팅(Trophy Hunting)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또는 방어적 목적으로 동물을 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재미와 사냥을 통한 전시물 획득과 다른 이들로부터의 인정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찾는 사람이 매년 9,000여 명에 달한다고 하니 인간보다 잔인한 동물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코끼리 상아를 얻기 위한 코끼리 밀렵 역시 줄어들지 않고 있다. 심지어 밀렵 단속을 피하고 총알을 아끼기 위해 코끼리의 척추를 끊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살아 있는 상태에서 얼굴을 전기톱으로 잘라낸다고 하니 인간의 욕심과 인간성 상실이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지 참담하기만 하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레이 네일러(Ray Nayler)의 소설 &lt;터스크&gt;는 우리가 과연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회복하고 주변의 다른 생명체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br>"타이가를 기어다니는 밀렵꾼이나 영구동토층에 호스로 구명을 뚫는 매머드 엄니 사냥꾼이 모두 부자가 될 수는 없었다. 둘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너무 일찍 죽음을 맞이했다. 다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땅에 묻혔다."&nbsp; (p.29)<br>코끼리 행동을 연구하면서 야생 아프리카코끼리들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다미라 키스무툴리나 박사는 결국 밀렵꾼들에 의해 살해된다. 그와 동시에 코끼리도 멸종되었다. 그렇게 한 세기가 흘렀다. 'SF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의 지난해 수상작인 &lt;터스크&gt;는 죽었던 다미라를 불러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인간이 아닌 암컷 털매머드의 몸에 이식된 채로 복원된 것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코끼리와 유전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매머드를 연구하는 알마스 아슬라노프 박사는 시베리아 동토층이 녹으면서 드러난 털매머드 사체에서 얻은 유전체 정보를 배합하여 8,000년 전 멸종한 털매머드 복원에 성공한다. 그렇게 복원된 매머드 떼를 시베리아 툰드라 지대에 방사하는 게 그의 목표였지만 야생에 방사되는 족족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의 목표는 허사가 되고 만다. 복원된 매머드는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아슬라노프 박사는 야생 코끼리를 연구하며 그들과 함께 생활했던 다미라를 되살리기로 마음먹었다.<br>"우리는 당신이 암컷 우두머리가 되어주길 제안합니다. 당신의 의식체를 암컷 매머드에게 옮기길 원해요. 당신이 그들을 이끌게 될 거예요. 매머드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겁니다. 당신의 지도를 받고 그들은 번창할 거예요."&nbsp; (p.72)<br>극비리에 주요 인사들의 기억을 스캔해 저장해 두는 마인드 뱅크 프로젝트에 의해 살해당하기 전에 백업된 다미라의 의식체는 암컷 털매머드의 몸에 이식되었고, 다미라는 시베리아 보호구역 내 매머드 무리를 이끌게 된다. 그러나 다미라가 인간으로 살았던 한 세기 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호시탐탐 매머드를 노리는 밀렵꾼들의 활동뿐만 아니라 보호구역 내에서 아슬라노프와의 공모 아래 합법적인 매머드 사냥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다. 보호구역 자립에 필요한 돈이 필요하다는 명분하에 이른바 '트로피 사냥'이 성행하는 것이다. 억만장자 앤서니는 비밀경매를 통해 매머드를 사냥할 수 있는 '특권'을 매입한다. 사냥에는 보호구역 관리 책임자인 콘스탄틴이 동행한다.<br>"자기 안의 어떤 것도 무너졌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앤서니 안에 잇는 어떤 것도 무너졌다. 어쩌면 우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가슴속에 있던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지만, 그 모든 게 원래 그렇다는 듯, 그게 정상이라는 듯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머리가 잘린 벌레들이 계속해서 숨기 위해 그림자를 향해 기어가는 것처럼. 우리를 망쳐놓은 그 어떤 것에 따라잡혀 결국 우리가 스스로 멈출 때까지."&nbsp; (p.178)<br>요즘 우리는 인간 살육의 현장을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것은 물론 온라인 게임처럼 광고를 하는 인간 동물(Human Animal)들을 최고 권력자로 떠받들고 있다. 그들은 수많은 민간인들에 대한 일방적인 학살을 자신들이 믿는 신의 뜻인 양 '성전(聖戰)'이라며 떠벌리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라는 다음 세대는 어떨까. 어쩌면 다음 세대의 사람들은 재미 삼아 아프리카의 맹수를 사냥하는 대신 인간을 사냥감으로 풀어놓고 그들을 사냥하면서 즐길지도 모르겠다. 자신들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자국민보다 못산다는 이유로 인간 사냥감이 되어 사냥꾼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금찍하다. 그런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4/96/cover150/k3621369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04969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가장 위험한 인물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7350</link><pubDate>Sun, 08 Mar 2026 12: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7350</guid><description><![CDATA[살다 보면 별별 유형의 사람을 다 만나게 되지만 유독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사에 거침이 없고, 자신이 마치 모든 분야에 정통한 듯 행동하는, 좋게 말하면 경력직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주저함이 없고, 자신이 하는 말이 진리인 듯 떠벌린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발생하고, 그 결과로 인해 혹시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는 그들 머릿속에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도 면밀하게 팩트체크를 해보면 오류 투성이인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물론 자신이 했던 말들에 대한 변명이나 사과는 있을 수 없습니다. 나처럼 매사에 노심초사하고 튼튼한 돌다리도 거듭하여 두드려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게는 그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br>그러나 그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별 영향력이 없는, 낮은 지위에 있을 때에는 우리 사회에 그닥 해가 되지 않겠지만, 만약 그들이 사회에 크나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고위직에 위치한다면 우리가 감당해야 할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어느 기업의 대표나 임원을 넘어 한 국가의 최고 권력자라면 어떻겠습니까? 상상하기도 싫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금 그와 같은 현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트럼프라는 한 인간이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대통령인 동시에 세계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도 아무런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응대합니다. 게다가 자신의 섣부른 결정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에 대해서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와 같은 유형의 대통령을 경험한 바 있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br>마치 경력직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사람들의 무례함은 도를 넘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그들에게 어떤 권력이 쥐어지는 한 반성이나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억제하는 언론이나 제도에 대한 적개심만 증가할 뿐입니다. 윤석열이 그러했고, 트럼프나 네타냐후 역시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까닭에 그런 유형의 사람들에게 있어 민주주의 제도는 자신의 자유를 제약하는 커다란 걸림돌이자 타파해야 할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민주주의 제도를 실행하는 어떤 사회에 그들과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이야말로 반사회적 인물인 동시에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는 반드시 격리해야 할 대상인 셈이지요. 그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어떠한 피해에 대해서도 사회 구성원에게 절대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br>나는 지금 권민수 작가가 엮은 &lt;고요하고 단단하게, 법정의 말&gt;을 읽고 있습니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신 게 엊그제 같은 데 벌써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br>"나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 것이 '바르게' 보는 것이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멈춘다면 '바르고 완전하게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nbsp; (p.69)<br>거침이 없고 머뭇거리지 않는 사람이 때로는 멋있게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는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그와 같은 인물의 대표적인 표상을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말입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투명한 3월의 햇살이 - [기차의 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5847</link><pubDate>Sat, 07 Mar 2026 15: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58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3169&TPaperId=171358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10/61/coveroff/k402033169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3169&TPaperId=171358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기차의 꿈</a><br/>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br/></td></tr></table><br/>역사학자가 시간의 평원 위에 골조를 세우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역사를 소재로 글을 쓰는 소설가는 그곳에 숲을 가꾸고, 물길을 틔워 생명을 가꾸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소설가는 자신의 성향에 따라 정물화를 그릴 수도 있고, 크로키를 그려낼 수도 있으며, 넓게 여백을 담아낸 수묵담채화를 그릴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는 지난 과거의 모습을 역사학자가 아닌, 역사를 소재로 쓰는 소설가에 의해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소설이 영화로 재탄생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데니스 존슨의; 소설 &lt;기차의 꿈&gt;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140쪽의 짧은 소설이 어떻게 20세기 초반의 미국을 이토록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책을 덮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는다.<br>"그레이니어가 맡은 일은 초커였다. 기차 도착점 쪽이 아니라 숲 쪽에서, 숲에서 벌목꾼들이 둘씩 짝을 지어 톱으로 가문비나무를 쓰러뜨리면, 가지 담당이 도끼로 잔가지를 깨끗하게 쳐내고, 톱장이가 통나무를 18피트 길이로 잘랐다. 그다음에는 초커가 통나무를 밧줄로 감아 말이 운반할 수 있게 준비했다. 그레이니어는 이 일이 좋았다. 불끈불끈 힘을 쓰고 나면 탈진해서 도취한 것 같은 상태가 되고, 그렇게 하루 일을 끝낸 뒤에는 푹 쉬었다."&nbsp; (p.19)<br>소설의 주인공인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일대기를 절제된 언어와 통일된 구성으로 마치 전기문처럼 쓰고 있는 작가는 독자의 평가쯤이야 안중에도 없다는 듯 어떤 미사여구나 반전도 없이 그레이니어라는 인물이 살았던 당시를 아주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대가의 작품은 이런 것이야,라고 말하려는 듯 소설은 너무도 평범하고 막힘이 없이 진행된다. 그렇다고 주인공의 사회적 위치나 명성이 특별하지도 않다. 오히려 대중 속에 섞이면 절대 눈에 띄지도 않을 듯한, 지극히 평범한 인물일 뿐이다.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자면 오히려 하찮을 수 있는 존재이다. 거대한 시간의 평원 속에서 가장 낮은 위치의 한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춤으로써 우리는 지난 한 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br>"크레스턴에서 들은 소식은 끔찍했다. 모이 계곡 화재에서 아무도 그쪽으로 도망쳐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레이니어는 사촌의 집에 여러 주 동안 머물렀다. 그 상황에서 당연한 슬픔과 혼란 때문에 병이 들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아내와 어린 딸을 잃었음을 납득했지만, 가끔 폭풍이 자신을 엄습하는 것 같았다. 저항할 수 없는 군대처럼 그의 머릿속으로 폭풍이 밀려왔다."&nbsp; (P.51)<br>19세기말에 태어난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출생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 어린 시절 혼자 기차를 타고 고모가 있는 아이다호로 왔다는 기억만 갖고 있다. 10대 때 학교를 그만둔 이후 평생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렸던 그는 교회에서 만난 글래디스와 결혼하여 산속 계곡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간다. 그렇게 딸 케이트가 태어났다. 벌목 현장에서 일하며 철도 부설 공사에도 참여했던 그는 어려서부터 그에게 각인된 고독의 그림자를 씻어내며 행복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1917년 여름, 거대한 산불이 계곡 전체를 집어삼켰고, 그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땐 이미 모든 게 잿더미로 변한 후였다. 어렸을 때부터 외톨이였고 평생을 깊은 고독 속에서 살았던 그는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그곳에서 혼자 머문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을 묵묵히 이어간다.<br>"그레이니어는 여든 살이 넘어서 1960년대까지 살았다. 살아 있는 동안 태평양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서부까지 여행한 적도 있지만, 바다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동쪽으로 가장 멀리 간 곳은 몬태나주 경계선 안쪽으로 40마일 거리인 리비였다. 그가 사랑한 사람은 한 명, 아내 글래디스였으며, 재산은 땅 1에이커, 말 두 마리, 수레 한 대였다. 그는 술에 취한 적이 없고, 총기를 구매한 적도 없고, 전화기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기차를 많이 탔지만 자동차도 많이 탔고, 비행기도 한 번 타본 적이 있었다. 말년의 10년 동안 그는 읍내에 나올 때마다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으며, 자손을 남기지도 않았다."&nbsp; (p.128~p.129)<br>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작은 시련이나 불행조차 오직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불운인 양 생각하여 누군가를 탓하고 불평불만에 휩싸이곤 한다. 살면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상실의 고통 역시 '왜 나에게 이런...' 하는 마음으로 신을 원망하기에 이른다. 그 모든 것들이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삶의 과정임을 잘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하루하루의 반복되는 일상과 그 속에서 보게 되는 작은 변화들. 그리고 시간의 풍화 속에서 자연스레 늙어가는 자신과 죽음을 향한 여정. 그레이니어의 평범한 삶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그 모든 변화에 부질없이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고 남은 삶을 꿋꿋이 이어간다는 것이다. 20세기 초반의 미국 사회를 그린 이 한 편의 소설을 통해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상상하는 한편 반복적인 일상을 불평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투명한 3월의 햇살이 흐르고 있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10/61/cover150/k402033169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106135</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경칩도 지났는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4143</link><pubDate>Fri, 06 Mar 2026 16: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4143</guid><description><![CDATA[여느 날처럼 새벽에 집을 나서는데 바깥은 온통 젖어 있었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간밤에 내린 비의 양이 간단치 않았는지 낮은 곳에는 제법 물웅덩이가 고였습니다. 하늘은 우중충하니 잔뜩 흐린 채였고 이따금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어지간한 추위는 아닐지라도 으스스한 한기가 품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경칩도 지났는데... 산의 초입에 있는 계단을 다 오르자 가볍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에는 새벽잠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나온 노력이 아까워서 차마 그리 할 수 없었습니다. 후둑후둑 떨어지는 빗소리의 리듬에 맞춰 걸음은 평소보다 절반은 늦춰진 듯했고, 인적이 끊긴 등산로에는 적막이 감돌았습니다.<br>나는 며칠 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이란의 초등학생들을 애도하며 걸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미친 짓입니다. 그 많은 민간인들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처참하게 생명을 잃는다는 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정부는 이제 더 이상 히틀러의 만행을 비난할 권리가 그들에게는 없는 듯 보입니다. 그들 역시 히틀러의 만행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학살과 온갖 잔인한 전쟁 범죄를 저질러 왔고, 지금도 역시 그와 같은 만행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면 이처럼 참혹한 살상을 허락한 이스라엘과 미국의 권력자들에게 가장 먼저 지옥행 열차를 타도록 할 것입니다.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면 말입니다.<br>희끄무레한 어둠에 싸인 등산로는 빗물에 질척거리고 미끄러웠습니다. 등산로 주변의 낙엽 위에는 비에 섞여 내린 진눈깨비가 녹지 않은 채 하얀 잔설로 덮여 있었습니다. 검게 드러나는 등산로와 잔설이 쌓인 숲의 대비는 마치 한 폭의 수묵담채화인 양 그려졌습니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입고 나갔던 운동복 상의도 비에 젖었습니다. 손전등 불빛이 한 뼘의 어둠을 쫓아낼 때마다 땅 위에 번지는 타원형의 불빛 속으로 작은 빗방울들이 다투어 모여드는 듯했습니다.<br>어제 했던 친구의 말이 떠오릅니다. "완벽하게 인간을 닮은 로봇이 출현하기 전에 우리 인간이 완벽하게 로봇을 닮는 게 순서적으로 더 먼저이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치인들을 보면 그들은 마치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어떤 연민이나 안타까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감각한 인간들처럼 보입니다. '나는 심장이 없어. 나는 심장이 없어. 그래서 아픈 걸 느낄 리 없어.'라고 노래했던 어느 가수의 노랫말이 생각납니다. 오늘은 금요일이고 내게는 이틀간의 휴가가 주어졌습니다. 회사원이라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말입니다. 가슴 아픈 소식은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지금 나의 몸 컨디션이 너무나 안 좋기 때문입니다. 경칩도 지났는데 날씨는 제법 쌀쌀합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하루를 건너는 일 - [세상의 빛 - 시인 리디 다타스가 모으고 되살린 크리스티앙 보뱅의 말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1751</link><pubDate>Thu, 05 Mar 2026 14: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17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5466&TPaperId=171317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5/70/coveroff/k98213546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5466&TPaperId=171317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상의 빛 - 시인 리디 다타스가 모으고 되살린 크리스티앙 보뱅의 말들</a><br/>크리스티앙 보뱅.리디 다타스 지음, 신승엽 옮김 / THE CIRCLE PRESS / 2026년 01월<br/></td></tr></table><br/>세상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소스와 향신료가 존재한다. 향수 역시 다르지 않다.&nbsp;우리의 코와 입은 얕고 간사하기 이를 데 없어서 재료 본연의 맛과 냄새에 친숙해지기보다는 우리의 입과 코가 선호하는 쪽으로 발전시켜 왔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눈과 귀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선호를 발전시켜 왔던 까닭에 그림과 음악 등, 현대인들의 정서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는 예술 작품이 등장했을 테니까 말이다. 문학작품에 대한 선호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이왕이면 잔소리보다 칭찬의 말이 듣기 좋은 것처럼 시간을 내어 글을 읽는 마당에 자신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좋은 문장이 가득한 책을 선호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듯 보인다. 물론 우리의 입맛이 서로 다른 것처럼 책도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선호하는 장르가 각자 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을수록 자신의 취향은 더욱 확고해지고 문장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도 분명해진다.<br>"나는 자연을 간헐적으로만 보러 간다. 그 아름다움이 너무 커서 벅차기 때문이다. 금화와 보석으로 가득 찬 상자 앞에 오래 머무르는 것과도 같다. 그러다 보면 눈이 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두세 개의 보석만을 챙겨 돌아온다. 들판에서는 작은 작은 나무숲이 받는 것과 동일한 태양의 편지를 받을 수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이미 넘칠 정도로 충분하다."&nbsp; (p.31)<br>언제부턴가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차츰 늘고 있다. 욕심 같아서는 나만 알고 싶은 그런 작가인데 어디 그게 가당키나 할까. 프랑스 시인 리디 다타스가 보뱅의 말과 사유를 오랜 시간 경청하고 수집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lt;세상의 빛&gt;에는 작가가 문학·사랑·언어·삶·세계에 대해 직접 말한 문장들이 질문의 흔적 없이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보뱅은 1951년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태어나 2022년 11월 24일, 71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 그곳에서 글쓰기를 하며 문단이나 출판계 등 사교계와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어쩌면 이 책은 자신의 고집스러운 삶에 대한 회고이자 자신의 문학적 태도와 세계관에 대한 해설서일지도 모른다.<br>"오늘날 우리에게는 방향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가능해져 버린 시대에 어떻게 방향을 알 수 있을까? 북쪽은 북쪽이고 남쪽은 남쪽임을 다시 일깨워야 한다. 많은 이들에게 부족한 건 자신의 본능, 다시 말해 즉각적으로 아는 걸 붙잡는 아주 단순한 감각이다. 이는 마음에 기대어 보아야 할 것을 더 잘 가늠하는 일이다. 시골 언덕에 있는 전망 안내판에 기대어 지평선을 손님처럼 여기며 말을 걸듯이, 마음이라는 지지대 위에 기대어 보는 것이다."&nbsp; (p.88)<br>보뱅의 글은 하나의 문장이 아닌, 맑고 시원한 하나의 목소리로 변하여 마음속 깊은 곳까지 전달된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 이를테면 관습이나 종교나 지식이나 삶에서 늘 보게 되는 어떤 것들에 대해 그의 설명이나 해석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는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우리가 알거나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잊은 채 새로운 세상 속으로 지금 막 도착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드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눈이 아닌 작가의 눈을 통해 또는 작가가 뿜어 내는 한 줄기 빛을 통해 빚어진 새로운 세상의 풍광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새로운 세상 속에서 머물다 보면 출처를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낮게 울려 퍼지는 기쁨의 송가를 한동안 여운처럼 들을 수 있다.<br>"대부분의 시들은 성냥개비와 같다. 긁어 켜는 순간 아름다운 불꽃을 피우며 잠시 우리를 밝히지만, 이내 손에는 그을린 나무토막만 남는다. 나는 한 번도 빛을 본 적은 없으나, 그 빛을 온전히 알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빛은 그런 식으로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것도. 가장&nbsp; 고귀한 빛을 주는 이는 시인들이 아니라, 시보다 더 아름다운 빛을 엿본 이들이다."&nbsp; (p.161)<br>한 달 전쯤 몸살을 심하게 앓았던 탓인지 나는 예전 컨디션을 좀체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물론 책을 읽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있다. 날씨 변화가 심한 환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루 운동량을 과도하게 늘려 몸에 무리를 주었던 게 이 모든 결과의 원인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과유불급'의 의미를 몸을 통하여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가.<br>매일 조금씩 한낮 기온을 끌어올리더니 이제는 제법 봄기운이 감돈다. 금세라도 산수유꽃이 벙글 듯한 날씨인데 나는 이 아름다운 계절을 뒤로한 채 컨디션 회복에 골몰하고 있다. 휴가를 내고 잠시 쉬자니 꾀병인 듯 보이고, 꾸역꾸역 버티자니 힘이 들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일만 지나면 주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주말 동안 푹 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 상태로 회복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 하루도 조심조심 건너고 있다. 하루를 건너가는 게 이리도 힘든 일인가, 나는 새롭게 깨닫는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5/70/cover150/k9821354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57082</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사랑은 멀고도 가깝다 - [너무 늦은 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24235</link><pubDate>Sun, 01 Mar 2026 15: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242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030793&TPaperId=171242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09/50/coveroff/k9620307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030793&TPaperId=171242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너무 늦은 시간</a><br/>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07월<br/></td></tr></table><br/>허투루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 중 하나는 누군가의 단점을 나의 노력만으로 쉽게 고칠 수 있다는 착각에 자주 빠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비단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만 존재하는 커다란 실수 중 하나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십 년 결혼 생활을 이어 온 부부 사이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착각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나의 사랑으로 혹은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신을 향한 자신의 기도를 통하여 상대방의 단점을 쉽게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상대방의 단점을 능히 가리고도 남을 만한 다른 장점이 상대방에게 존재하거나 그와 헤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자신의 이성을 마비시켰거나 그를 소유하고자 하는 자신의 욕구가 지나치게 강한 데서 비롯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사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정리되기 전에 그와 같은 판단에 도달할 만큼 자기 객관화의 면모가 뚜렷한 사람은 흔치 않을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에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지사지의 태도는 숫제 경험조차 해 본 적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인간은 가장 이기적인 동물일지도 모른다.<br>"전시회를 본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아클로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가서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침대에 누웠다. 따뜻한 바람과 이웃집의 금속 풍경 소리가 들어와 방을 가로질렀다. 사빈은 한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테스코까지 걸어가서 장을 봐 온 다음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타임 줄기를 넣고 구운 닭고기와 마늘, 주키니 호박이었다. 이 여자는 요리를 할 줄 알았다. 카헐은 지금도 그것만큼은 인정했다. 하지만 설거짓감이 너무 많이 나와서 마음 한구석으로는 늘 화가 났는데, 그가 전부 헹궈서 식기세척기에 넣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그녀가 밤새 불려야 한다고 말했던 오븐용 그릇만은 예외로, 그가 월요일에 퇴근하고 돌아올 때까지 싱크대에 그대로 있었다."&nbsp; (p.21 너무 늦은 시간' 중에서)<br>클레어 키건의 소설집 &lt;너무 늦은 시간&gt;에는 표제작인 '너무 늦은 시간'과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그리고 '남극' 등 단 세 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얇은 책이다. 그렇다고 소설의 내용 또한 가볍고 쉽게 이해되는 건 아니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너무 늦은 시간'에서 주인공인 카헐은 어느 회의장에서 만난 사빈과 사귀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인색한 데다가 남성 우월주의적 환경에서 성장한 카헐은 자신의 집으로 짐을 옮긴 사빈과의 결혼 준비 과정에서 여러 번 충돌한다. 사빈은 카헐의 직장 동료인 신시아를 통해 카헐의 행동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확인한다. 사빈은 카헐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지만 카헐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그것들이 다만 아일랜드 남자들의 관습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대학 시절 부모님과의 식사 자리에서 남동생이 어머니가 자신의 접시를 들고 식탁에 앉으려 할 때, 의자를 홱 빼버리는 바람에 어머니가 바닥에 넘어졌던 것은 물론 접시가 깨지고 접시에 담겼던 음식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남자들 세 사람이 크게 웃었던 기억을 떠올린다.<br>"카헐은 마음 한구석으로 아버지가 다른 남자였다면, 그때 그 모습을 보고 웃지 않았다면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래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별 의미 없는 일이었다고, 못된 장난이었을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거나 하기 싫어져서 옆으로 누웠지만 적어도 한 시간은 지난 후에야 잠이 왔고, 그는 어느새 잠의 위안과 새로운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nbsp; (p.44~p.45 '너무 늦은 시간' 중에서)<br>한편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뵐 하우스'라는 작가 레지던스에서 집필 작업을 하려던 여성 주인공이 다짜고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된다. 독문학 교수라고 소개한 남자는 집을 둘러보겠다며 무례하게 부탁한다. 글을 써야 할 귀중한 시간에 주인공은 마지못해 응한 남자의 방문이 영 못마땅하지만 준비한 케이크를 대접한다. 남자는 이를 게걸스럽게 먹고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오히려 주인공을 타박하기에 이른다.<br>"얼마나 끔찍한 남자인지! 정말 끔찍하고 불행한 남자야. 그녀가 문을 잠그며 생각했다. 정신이 나갔나? 게다가 얼마나 수고를 들였는지 생각하면...... 그녀는 케이크를 보면서 창밖으로, 그의 뒤에다가 던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케이크를 냉장고 깊숙이 넣고 와인을 한 잔 따랐다."&nbsp; (p.77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중에서)<br>'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로 시작하는 '남극'은 결국 이를 실행에 옮기는 여자의 경험을 다룬다. 그러나 작가는 독자들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결말을 준비하여 놀라게 한다. 이 세 편의 단편소설은 대략 10년씩의 시차를 두고 쓰였다지만 작가 특유의 문체는 비슷하고, 주제 역시 일관되게 흐른다. 2022년에 발표된 '너무 늦은 시간'과 2007년에 발표된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그리고 1999년에 출간된 '남극'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작가의 생각과 문학적 표현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시도로 보이지만, 특이하게도 클레어 키건은 시간의 추이에 다른 변화를 보여주기보다 하나의 주제를 각각 다른 소재로 선보이는 3인 3색의 색다른 매력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br>우리나라에서도 데이트 폭력과 남녀 간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클레어 키건은 이 책에서 결혼 전의 두 남녀의 갈등과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인 남자를 제삼자적 관점에서 보게 되는 여자와 경험해보지 못한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압축적인 이야기로 담고 있다.<br>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모텔 살인 사건도 그렇지만 남녀 간의 관계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면 상대방의 단점이 아주 작게 보이거나 쉽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잘못된 믿음이었음을 곧바로 알게 된다. 그럼에도 문제가 지속되는 까닭은 인간의 적응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위중한 폭력 앞에서도 시간이 흐르고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인간은 그 상황에 적응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클레어 키건은 각각의 상황을 여성의 입장에서 쓰고 있지만 비단 이것이 어느 한 편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남녀 간의 교제를 법으로 금할 수도 없고... 사랑에 이르는 길은 너무도 가깝고 사랑에서 벗어나는 길은 너무나 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09/50/cover150/k9620307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709509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