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꼼쥐님의 서재 (꼼쥐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06 Jun 2026 18:34:43 +0900</lastBuildDate><image><title>꼼쥐</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A_018.gif</url><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꼼쥐</description></image><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희망은 체념과 동격</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18981</link><pubDate>Fri, 05 Jun 2026 20: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18981</guid><description><![CDATA[누군가의 무료한 손길이 슬쩍 닿기만 해도 휘청 중심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은 주말의 오후. 일주일 동안의 누적된 피로가 어깨를 짓누릅니다. 지방선거가 있었던 수요일 하루를 쉬었는데도 체감하는 피로는 여느 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바삭바삭하던 햇살이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의 수증기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름 한낮의 시간은 길고 미끈한 자신의 몸매를 한껏 뽐내려는 듯 유영하듯&nbsp; 아주 천천히 지나갑니다. 나처럼 성마른 인간은 그 흩어짐의 틈새도 진득하게 기다리거나&nbsp; 바라볼 수 없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졸린 눈을 끔벅거릴 뿐입니다.<br>2026년의 시간이 은근슬쩍 6월로 접어들었을 때 사람들은 다들 아직 오지도 않은 여름휴가를 기다리면서 미래의 시간에만 집중하느라 자신도 모르게 훌쩍 지나버린,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시간에 미처 관심을 두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숨을 헐떡이며 미래를 좇아 헤매다가 2026년의 끝이 보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숨을 쉬며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6월입니다. 나는 내게 할당된 임무를 완수하느라 내가 가진 체력을 지나치게 소진했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5개월 1주의 분량보다 더 무거운 피로를 체감하며 주말에 있을지도 모르는 달콤한 휴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집 &lt;결혼.여름&gt;(녹색광선)을 읽고 있습니다.<br>"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 자체를 회피하기 위해 삶을 사랑하는 체한다. 즐기려고 노력하고,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은 고매한 정신의 관점이다. 쾌락주의자가 되려면 흔치 않은 자질이 있어야만 한다. 인간의 삶은 고매한 정신의 도움 없이 후퇴와 전진을 반복하면서, 고독과 동시에 존재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된다. 일을 해서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하면서 대개는 아무 불평 없는 저 벨쿠르 사람들을 보노라면, 슬그머니 부끄러운 기분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 내가 착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삶들엔 사랑이 많지 않다. 아니, 이제 더는 사랑이 많지 않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삶들은 적어도 아무것도 회피하지 않았다.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있는데 가령 죄란 단어가 그렇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람들이 삶을 거스르는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왜냐하면 삶을 거스르는 죄라는 건, 아마도 삶에 몹시 절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삶을 바라고 현생의 준엄한 위대함을 회피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 사람들은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그들은 여름의 신들이다. 스무 살의 그들은 삶에 대한 열정으로 여름의 신이었고, 모든 희망을 잃은 지금도 여전히 여름의 신이다. 나는 그들 중 두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다. 그 두 사람은 공포로 가득 찼지만 말이 없었다. 차라리 그편이 낫다. 인류의 죄악이 우글거리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그리스인들은 모든 악을 쏟아낸 후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악인 희망을 꺼내 들었다. 나는 이보다 더 감동적인 상징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희망은 통념과 달리, 체념과 동격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 체념하지 않는 것이다."&nbsp; (P.54~P.55)<br>'희망은 체념과 동격'이라는 알베르 카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예전에 나는 블로그 포스팅 한 귀퉁이에 '희망은 생명이 유한한 인간의 조급함'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이 무한하다면 인간이 바라는 바는 아예 없거나 현저히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른한 시간의 경과를 무한대로 흘려보낸들 영생을 누리는 인간에게는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는 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생명이 유한한, 체념과 조급함만 가슴에 품고 있는 서글픈 존재입니다. 6월의 첫 주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산에는 요즘 - [이방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16757</link><pubDate>Thu, 04 Jun 2026 16: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167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138062&TPaperId=173167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5/68/coveroff/k0721380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138062&TPaperId=173167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방인</a><br/>알베르 카뮈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05월<br/></td></tr></table><br/>다소 철학적인 문제이지만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합리적인가? 경제학을 전공했던 나로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학의 이론 전반에서 내세우고 있는 이 전제를 실생활에서는 전혀 납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예컨대 같은 물건일지라도 나와 가까운 사람이 판매한다는 이유로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서 물건을 구매하기도 하고, 더 비싼 가격을 제시한 인테리어 업자에게 공사를 맡기기도 한다. 단지 친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처럼 인간은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부조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모든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명확한 사실이 존재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의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이다. 아직 도래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닥칠 이 명징한 사실을 대부분의 인간은 구체적을 인식하거나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 사실을 헤어진 연인의 얼굴처럼 이따금 떠올릴 뿐이다. 그러나 자신에게도 어떤 특별한 일이 닥치면 미래에 맞이할 그 사실이 확실한 현실로 각인될 수도 있다. &lt;이방인&gt;에 나오는 뫼르소처럼.<br>"옷을 갈아입었을 때 내가 검은 넥타이를 맨 것을 보고 마리가 깜짝 놀란 표정을 하고는 상중이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상중인지 그녀가 알고 싶어 해서 나는 "어제부터"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약간 멈칫했지만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사장에게 그 말을 했다는 것이 생각나서 그만두었다."&nbsp; (p.35~p.36)<br>1부와 2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주인공인 뫼르소의 일상을 좇고 있지만, 독자는 그의 일상을 통해 언뜻언뜻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워하거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뫼르소의 행동에 분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 사람이 구축한 삶의 기억은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쌓이는 기억들은 선악(善惡)이나 정오(正誤)와 같은 명확한 기준을 통해 선별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고, 기억 역시 일상에서 부딪히는 삶의 부조리처럼 아무런 기준도 없이 무작위로 쌓이는 것이다. 양로원에 있던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던 뫼르소는 크게 슬퍼하는 기색도 없이 무덤덤하게 장례를 치른 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같은 직장에 다녔던 여성 마리와 해수욕을 하고, 영화를 보고, 관계를 맺기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뫼르소와 그의 이웃들도 구질구질한 일상을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다. 어떤 것 하나도 분명한 목적이나 이유도 없이 습관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br>"나는 손잡이의 볼록하고 매끈한 부분을 만졌다. 그때, 둔탁하고 귀를 먹먹하게 하는 소음과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제거했다. 내가 낮의 균형을, 행복해하던 해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는 움직임이 없는 시체 위에 네 발을 더 쏘았고, 총알들은 그럴 것 같지 않았는데 깊이 박혔다. 그것은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째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았다."&nbsp; (p.97)<br>2부에서는 아랍인 살해 혐의로 체포된 뫼르소와 그의 행적과 태도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검사와 배심원은 살인이 있기 전 며칠 동안 보였던 뫼르소의 행적으로 볼 때 그는 사회적 통념과 동떨어진 사회 부적응자로 판단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뫼르소는 그가 주장했듯 햇볕이 눈부시고 머리가 아파서 행한 우연한 살인이 아닌, 계획적 살인을 저질렀다는 게 그들의 결론이었다. 뫼르소에게는 결국 사형이 선고된다. 뫼르소는 자신의 죽음이 확정된 이후에서야 모든 자신의 삶이 선명해진 듯하다.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대전제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머리를 외로 꼰 채 모르는 척 살아갈 수도 있고, 죽음 이후의 허구적인 구원을 진실인 양 믿을 수도 있고, 뫼르소처럼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선택은 각자에게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br>"하지만 나에 대한 확신이,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보다는 확신이 훨씬 강했고, 내 삶과 다가올 그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렇다, 나에게는 오직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진리가 나를 사로잡는 만큼 그 진리를 믿고 있었다. 내가 옳았고, 여전히 옳고, 늘 옳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nbsp; (p.188)<br>산에는 요즘 밤꽃 냄새가 진동한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결혼식에서 시어머니가 대추와 밤을 며느리의 치마폭에 던져줌으로써 다산을 기원했던 것처럼 우리는 어쩌면 밤꽃 냄새에서 생명과 에너지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이따금 누군가의 결혼식에 다녀올 때마다 나는 모든 게 모호하고 부조리한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불러들인다는 게 과연 축복일까? 하는 의문이 문득 들기도 한다. 가뜩이나 출산율이 저조한데 다산을 기원하고 새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는 게 마땅하겠지만 나로서는 그런 의문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요즘처럼 밤꽃 냄새가 진동하는 시기에 나는 생명력이 넘쳐나기보다 부조리한 삶을 이어가는 게 무척이나 부담스러워진다. 뫼르소의 확신이 내게는 없는 까닭이다. 모든 게 모호할 뿐이고, 하루하루 새롭게 생성한 삶의 기억들이 아무런 선별 기준도 없이 그저 쌓여갈 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5/68/cover150/k0721380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656827</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잠 때문이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07554</link><pubDate>Sun, 31 May 2026 12: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07554</guid><description><![CDATA[모든 것은 잠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간밤에 나는 어떤 이유인지 자다 깨다를 반복했고, 다른 날보다 일찍 눈이 떠지는 바람에 꿈지럭거리며 늦잠을 잘 수 있는 기회마저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실컷 얻어맞은 듯 온몸이 쑤시고 아파왔습니다. 자고 일어났다고는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듯 몽롱하고 어지러웠습니다. 물에 젖은 솜처럼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 인근의 도서관에 나왔습니다. 공기가 맑은 탓인지 건조하고 쨍한 햇살이 피부를 뚫고 몸속 깊은 곳까지 침투할 듯 강하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오가는 행인도 없는 인도에는 선거 유세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듣는 이도 없이 멀리까지 퍼져나가고, 더위를 모르는 까치 몇 마리가 먹이를 찾아 총총 옮겨 다니고 있었습니다. 비둘기 모이 주기를 금지한 탓인지 그 많던 비둘기 떼가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던 건 꽤나 생경한 풍경이었습니다.<br>도서관에 들어서자 에어컨에서 나오는 서늘한 바람으로 인해 마치 딴 세상에 도착한 듯 느껴졌습니다. 책을 읽으려는 목적보다 더위를 피하는 게 더 큰 이유였는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사람들은 다들 휴대폰 화면을 보고 있거나 집에서 가져온 태블릿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이따금 무인반납기에서 책을 반납하는 사람들 몇몇만이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린 꼬마의 손을 붙잡고 나온 젊은 부부는 한껏 목소리를 낮춰 이것저것 설명하기에 바쁜 모습이었고, 나는 종합자료실에 빼곡하게 꽂힌 수많은 책들을 훑어보면서 읽은 책보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너무 높다는 생각에 잠시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 욘 포세가 쓴 소설 &lt;샤이닝&gt;을 빌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br>"완벽한 침묵. 너무나 조용해서 손에 만져질 것 같은 침묵 속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춘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침묵에 귀를 기울인다. 마치 침묵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하지만 침묵이 말을 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아니, 어떤 면에서 보자면 침묵도 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침묵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것은 누구의 목소리인가. 그것은 단지 목소리일 뿐이다. 그 목소리를 다른 말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목소리는 그냥 거기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거기 있는 것은 분명하다."&nbsp; (p.49)<br>멀리 보이는 인도에는 반려견을 산책시키기 위해 완전무장을 하고 나선 몇몇 사람들이 지친 듯한 걸음으로 느리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말귀가 통하는 제 자식이라면 어쩌면 오늘처럼 햇살이 강한 한낮에 밖으로 나가자고 아무리 떼를 써본들 결코 들어주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어린애가 납득할 수도 없는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산책을 요구하지도 않았던 반려견을 위해서는 휴일의 달콤한 여유도 반납한 채 자발적으로 산책을 나서는 걸 보면 현대인들은 어쩌면 사람보다 동물에게 더 깊은 애정을 쏟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애정이 식은 탓인지, 아니면 이제껏 없던 동물에 대한 애정이 갑자기 높아진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씁쓸한 입맛은 지울 수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초여름 햇살이 시간이 갈수록 더 높은 열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선거 유세 차량의 노래도 끊이지 않고 들려옵니다. 더위 탓인지 나는 여전히 식욕이 없고 나른하기만 합니다. 모든 것은 어쩌면 잠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곧 6월, 버찌가 익는 계절 - [돌 위에 피는 꽃]</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05949</link><pubDate>Sat, 30 May 2026 16: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059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1803519&TPaperId=173059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5/1/coveroff/89418035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1803519&TPaperId=173059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돌 위에 피는 꽃</a><br/>이순실 지음 / 밀알 / 2026년 04월<br/></td></tr></table><br/>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남자에게 있어 병역은 피할 수 없는 의무이자 비교적 긴 시간에 걸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골치 아픈 문제이기도 하다. 현역으로 군에 입대하여 제대하는 것만으로 모든 병역이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제대와 동시에 동원 예비군(1년차~4년차)에 편성되었다가 다시 일반 예비군(5년차~8년차)으로, 그리고 민방위대원(8년차 이후~40세)을 끝으로 비로소 병역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복무 연한은 과거에 비해 대폭 줄어들기도 했고 처우와 보상 역시 크게 향상되어 그럭저럭 할 만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그런 이들 중 나이 마흔을 넘겨 민방위대원으로서의 역할도 제외되는 순간, "나는 이제 대한민국 남자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며 자조 섞인 농담을 하기도 한다.<br>학창 시절부터 교련 과목을 배워왔던 나로서는 군에서 제대한 후 예비군 훈련을 받는 게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과는 다르게 대학의 교련 과목은 운동장에서 하는 실기보다는 이론과 정신교육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고, 제대 후 대학교의 학생 예비군에 편성된 후에도 군에 다녀오지 않은 후배 대학생에 비해 교육 시간이 조금 더 길다고 느꼈을 뿐 교육 내용에 있어서는 달라진 게 없는 듯 여겼다. 물론 당시에 초빙된 강사들의 강의라는 게 특별히 재미있거나 귀에 쏙 들어오는 내용이 아니었기에 따분한 강의 시간을 견딘다는 게 그야말로 고문에 가까운 수준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보란 듯이 대놓고 책상에 엎드려서 잘 수는 없었다. 기껏해야 교묘한 자세로 턱을 괴고 꾸벅꾸벅 졸거나, 고개를 외로 꼬고 대담하게 잠이 들어 코를 심하게 골다가 지적을 받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지만 말이다. 예비군 훈련이나 교련 시간에 다녀갔던 수많은 강사들의 강의 중에 비교적 많은 학생들이 눈을 똘망똘망 뜬 채로 강의에 집중했던 경우는 손에 꼽는 수준이었다.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건 당시 동독 유학생으로 있다가 탈북한 탈북 대학생의 강의였다.<br>당시만 하더라도 길거리에서 북한 이탈 주민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낮거나 불가능에 가까웠던 까닭에 그들은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를 구경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기한 대상이었다.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어눌한 북한 사투리와 학생들의 장난기 어린 질문에 대한 우리와 다른 방식의 반응과 답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사회의 실상에 대한 궁금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들의 강의는 늘 인기가 높았다. 오죽하면 그들을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대중의 웃음거리로 만들었을까. 물론 그들도 역시 방송 출연료와 강의료를 받은 돈으로 음식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어 크게 성공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br>그러나 3만 명이 넘는 북한 이탈 주민이 살고 있는 요즘, 북한 출신이라는 건 그들의 경쟁력이 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더구나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약해지는 시대에 방송 출연으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 나와 같은 사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북한 이탈 주민 이순실이 쓴 &lt;돌 위에 피는 꽃&gt;을 읽으면서 예비군 훈련장에서 만났던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던 건 어쩌면&nbsp;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녀의 삶이 내가 예비군 훈련장의 강사로 접했던 동독 유학생의 삶과 겹쳐져 긴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다.<br>"참으로 춥고 추웠던 날, 양강도 혜산 역전에서 진통을 맞았다. 배를 끌어안고 출산할 자리를 찾았지만, 아기 낳을 변변한 자리가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짐승들도 새끼를 낳기 전에 둥지를 튼다고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 아기 낳을&nbsp; 자리 하나 없다는 처지가 그렇게 서글플 수 없었다. 진통의 아픔으로 몸부림쳐도 그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다. 역전 승무원들은 행여나 역전 안에서 아이를 낳을까 봐 당장 나가라고 내쫓기 바빴다. 역전 보일러 아궁이 옆에 쓰러져 있자니 이미 양수가 터져&nbsp; 다리 밑으로 물이 흥건했다. 지나가는 길손에게도 도와달라고 요청해 보았지만, 꽃제비 따위에게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nbsp; (p.163)<br>공병부대 장교였던 아버지와 군단장 요리사로 근무했던 어머니 덕분에 저자의 어린 시절은 비교적 유복했던 듯하다. 그러나 저자가 군대 의무 복무 기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부터 비극적인 삶이 시작되었다. 연락도 받은 적 없지만 저자가 군에 있었을 때 두 분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고, 형제자매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소위 '고난의 행군'이라 일컫는 극심한 경제난이 겹치면서 저자는 한순간에 꽃제비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생존을 위한 북한 탈출이 시도되었고, 번번이 잡혀 되돌아가서 고초를 겪었음에도 끝내 탈출에 성공하여 대한민국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br>"철조망을 넘자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듯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이 탈출의 길이 살길이 될지, 죽을 길이 될지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었겠는가. 그저 목숨 걸고 저지르는 도박과도 같았다. 이 길을 걸으려고 얼마나 수많은 탈북자들이 매 순간 목숨을 내걸고&nbsp;모질게 버텨 왔을까. 살았다는 안도감 저편으로 북한에 남겨져 있을 가족들 생각에 이내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nbsp; (p.254))<br>무사히 우리나라에 정착한 저자는 여러 방송이나 유튜브에 출연도 하고, 김치와 냉면, 만두 등을 판매하는 식품사업도 운영하면서 나름의 성공을 거둔 듯하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나로서는 그녀의 얼굴이 그저 낯선 아줌마 중 한 사람일 뿐이지만 그녀는 어쩌면 3만 명이 넘는 북한 이탈 주민에게는 성공의 표상이자 고난 극복의 이정표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지난 몇 년 남과 북의 적대적 관계가 가속화됨으로써 매년 증가하던 북한 이탈 주민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자유를 갈망하는 북한 주민의 염원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br>곧 6월이다. 인도의 보도블록 위에는 까맣게 익어 떨어진 버찌 열매가 오가는 행인의 발길에 밟혀 얼룩얼룩 검은 반점을 남기고 있다. 우리가 살다 간 흔적도 그와 같을 것이다. 어느 노인의 얼굴에 핀 검버섯처럼 우리는 각자가 걸어온 삶의 흔적을 그저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서서히 잊힐 테다. 선명하던 버찌 열매의 흔적이 행인들의 발길에 서서히 지워지는 것처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5/1/cover150/89418035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650170</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 5월이 가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04146</link><pubDate>Fri, 29 May 2026 16: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04146</guid><description><![CDATA[요 며칠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만큼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정신없던 시간이 지난 후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가 찾아오면 '사는 게 뭔지...'하는 허탈감이 밀려오곤 합니다. 우리가 지나 온 시간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적어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일을 끝낸 후 만족하거나 아쉬움이 남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마저도 찾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몰아친다는 건 꽤나 슬픈 일입니다. 혹자는 그런 말들도 합니다. 그래도 바쁜 게 낫다고 말입니다. 물론 은퇴를 하고 딱히 해야 할 일이 없는 사람들에겐 하루가 무척이나 길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길게 느껴지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하며 보낼지 선택할 수 있다는 건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다는 의미인 까닭에 하루가 마냥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건 자신의 무계획성과 게으름을 한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br>오늘부터 내일까지 지방선거 사전투표가 있는 날입니다. 지방자치의 역사도 길고 민주주의 모범이라고 여겨지는 미국 지방자치의 현실을 생각할 때 나는 사실 지방자치의 무용론을 주장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미국은 현재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무투표 당선지가 늘고, 투표율 또한 낮아서 선거 비용이나 후보자의 열정에 상관없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당선되기도 하고, 이로 인하여 지방자치는 갈수록 퇴보하고 있는 듯합니다. 결과적으로 엉망이 된 지방자치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불만은 나날이 높아지게 될 테고 말입니다. 그러한 불만은 다시 지방선거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타나면서 악순환은 끝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가 갖는 특색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과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br>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가까운 사전투표소에 들렀습니다. 투표를 하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기다리거나 지체하는 시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투표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궂은 날씨 탓에 며칠 선선하던 대기는 다시 쨍한 열기로 대체되었습니다. 이따금 바람이 불어와 오가는 행인들의 몸에 쌓인 열기를 조금씩 덜어내고 있었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lt;이방인&gt;(2026,소담출판사)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br>"나는 땀과 태양을 제거했다. 내가 낮의 균형을, 내가 행복해하던 해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는 움직임이 없는 시체 위에 네 발을 더 쏘았고, 총알들은 그럴 것 같지 않았는데 깊이 박혔다..&nbsp; 그것은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았다."&nbsp; (p.97))<br>한 주가 다 흘러가면서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도 아쉽게 그 끝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머지않은 시기에 장마가 지고 우리는 또다시 긴 우울에 빠져들지도 모르겠습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 [초한지 인생 공부 - 오만과 냉정 사이, 천하를 가른 심리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92786</link><pubDate>Sat, 23 May 2026 11: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927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7459&TPaperId=172927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22/18/coveroff/k76213745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7459&TPaperId=172927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초한지 인생 공부 - 오만과 냉정 사이, 천하를 가른 심리전</a><br/>김태현 지음, 사마천 원작 / PASCAL / 2026년 05월<br/></td></tr></table><br/>실패를 거듭하는 사람이든 성공을 거듭하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삶은 어렵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경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삶이 조금씩 쉬워질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삶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긴 마찬가지이거나 전에 비해 훨씬 더 어렵기만 한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그 비슷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새벽 시간에 내가 즐겨 찾는 '산스장'에서 매일 마주치는 할아버지 한 분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사실 몇 년 전부터 거의 매일, 거의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 왔던 까닭에 그분의 얼굴은 잘 알고 있지만 그분의 이름도, 사는 곳도, 살아온 이력도 전혀 알지 못한다. 게다가 그저 가볍게 인사만 하고 헤어질 뿐이니 그분과 나는 완벽하게 남남일 뿐 결코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게 확실하다.<br>오늘 아침에도 나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산스장'에서 하는 기초적인 운동을 마친 후 조금 더 걷기 위해 돌아서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이따금 만나곤 하는 할머니 한 분과 우연히 동행을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그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할머니는 이 지역 토박이인 듯 그동안 내가 등산로에서 만났던 분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할머니는 자신이 40대 때 이 동네로 이사를 왔으며 지금 나이가 80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그 할아버지가 절에 다니셔서 나는 처사님이라고 부르는데 처사님이 우리 나이로 올해 87세일 거예요. 그 집 할머니가 6년 전에 쓰러지셔서 거동을 잘 못하세요."라고 하셔서 "맞아요. 할아버지가 저한테도 1940년생이라고 하셨어요."라고 맞장구를 쳤다.<br>"할아버지가 불편한 할머니를 씻기고, 옷 입히고, 밥 차려 주고, 간식이며 시간 맞춰 과일도 깎아 주고 온갖 수발을 6년째 하고 있어요. 자식들이 다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할머니가 쓰러지고 1년쯤 지났을 때, 할아버지 힘들다며 요양원에 보내자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죽어도 못 보낸다고, 할머니 죽으면 자신도 죽겠다며 올해로 6년째 할머니를 돌보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그 할머니는 복도 많다고 했어요. 몸도 불편한 노인을 그 연세에 한다는 게 보통일 아니에요. 그 할아버지 상 줘야 돼요. 요양원에 보내면 누가 그렇게 정성스럽게 해 주겠어요." 할머니는 등산로를 걷는 내내 할아버지 칭찬을 이어갔다. 산을 내려오면서도 나는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br>"그 밤, 항우는 더 이상 천하의 패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한 남자였습니다. 명예와 사랑이 충돌한 그 순간, 그의 세상은 이미 무너졌고, 오직 한 사람의 이름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희. 그 이름은 그의 마지막 노래처럼, 패왕의 가슴속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새벽녘, 항우는 남은 800여 명의 정예기병을 추려 포위선 한 모서리를 찢는 돌파전을 감행했습니다. 단기에는 몇 겹을 뚫었으나, 외곽에 또 다른 포위선이 있어 기세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습니다. 추격과 재포위가 반복되며 탈출 병력은 급감했습니다."&nbsp; (p.221)<br>'삶을 바꾸는 실천적 지식'을 전하는 데 매진하고 있는 인문학자 김태현의 저서 &lt;초한지 인생 공부&gt;를 다 읽었던 건 며칠 전의 일이었다. 꽤 오래전에 사마천의 &lt;사기열전&gt;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던 나로서는 &lt;초한지&gt;의 모든 부분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던 게 사실, 저자인 김태현의 해설이 곁들여진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총 70편에 이르는 사마천의 &lt;사기열전&gt;이 얼마나 대단한 책이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lt;초한지 인생 공부&gt;의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감도 잡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산스장'에서 매일 만나는 할아버지 한 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고, 어떻게든 &lt;초한지 인생 공부&gt;의 리뷰를 마무리지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br>"초한지 30년의 역사는 기록 속에 멈췄지만, '당신'이라는 주인공이 써 내려갈 '인생 초한지'는 매일 아침 장기판의 돌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듯 다시 시작됩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외통수에 절망할 수도, 때로는 단 하나의 묘수로 전세를 역전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결국 가장 강한 돌을 가진 자가 아니라, 판이 끝날 때까지 자신을 다스리며 묵묵히 이어간 자의 이름을 마지막에 기록합니다."&nbsp; (p.357)<br>나는 사실 나이가 들어 마땅히 갈 곳이 없어진, 그리하여 하루라는 긴 시간을 보내기 위해&nbsp; 탑골공원에 모이곤 했던 할아버지들의 바둑, 장기판을 보면서 젊은 시절을 보낸 추억이 있다. 매일매일 그들을 보아왔던 건 아니지만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하는 날이면 시선을 남이 두는 장기나 바둑판에 고정한 채 우두커니 서 있던 그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그들이 두는 장기판에서는 한(漢)이 이기기도 하고, 때로는 초(楚)가 이기기도 하지만 불변하는 역사의 기록에서 초나라의 패왕 항우는 언제나 패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강인한 무예와 용맹한 기질을 가진 항우가 어찌 보면 유약하고 건달 기질마저 있는 유방에게 진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지만 우리의 삶도, 이해할 수 없는 역사도 때로는 기적처럼 이를 어기고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br>"초한 전쟁의 거대한 서사를 칼날과 함성으로만 기억한다면, 우리는 그 역사의 절반만을 보는 것입니다. 유방과 항우의 싸움이 눈에 보이는 칼과 병력의 전쟁이었다면, 소하와 역이기가 벌인 싸움은 보이지 않는 머리와 혀의 전쟁이었습니다."&nbsp; (p.187)<br>'인간사의 빛과 그림자를 꿰뚫는 통찰의 기록'으로 평가되는 &lt;사기열전&gt;을 읽다 보면 초나라의 항우도, 한나라의 유방도 결국에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과 고뇌 속에서 살다 갔음을 알게 된다. 고전을 읽는다고 해서 자신의 운명이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고전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아침에 만나는 할아버지 역시 만 86세라는 연세가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돌보며 그 속에서 하루하루 달라지는 삶의 의미를 깨우쳐가는 게 아닐까 싶다. &lt;초한지 인생 공부&gt;를 읽고 있노라면 부귀와 공명이 하룻밤의 꿈에 불과하다는 걸 깊이 깨닫게 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22/18/cover150/k76213745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221857</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바퀴벌레로의 변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89412</link><pubDate>Thu, 21 May 2026 15: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89412</guid><description><![CDATA[어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덕분인지 한동안 지속되던 낮더위는 제법 누그러진 듯 기분 좋은 선선함이 우리를 들뜨게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연녹색 새순이 돋던 가로수들도 이제는 완연한 초록의 자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비에 젖은 바깥 풍경을 감상하면서 나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달달한 믹스커피의 맛에 길들여진 나의 촌스러운 입맛은 한여름에도 언제나 따뜻한 커피를 찾을 뿐, 아이스커피의 이가 시리도록 차고 목을 넘기기도 힘들 만큼 쓰디쓴 맛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젊은 친구들이 외출에서 돌아올 때마다 건네는 부담스러운 양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차마 거절하지 못한 채 억지웃음과 함께 벌컥벌컥 들이켜곤 합니다. 그런 날이면 언제나 여러 차례 화장실 신세를 져야 하지만 말입니다.<br>우리는 언제부턴가 주변에서 커피가 없는 일상을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도로변을 따라 걷고 있노라면 한 집 건너 카페가 들어선 풍경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저렇게 많은 카페들이 다들 어떻게 먹고살 수 있는지 참으로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 근처에도 많은 카페와 가게들이 서로 경쟁하며 영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물론 젊은 사람들의 단골 카페인 스타벅스도 있습니다. 드라이브 스루 방식과 매장 내 판매 형식으로 운영되는 이 카페를 젊은 사람들은 무척이나 선호하는 듯 보였습니다. 나도 물론 그곳에서의 약속 때문에 몇 번 다녀온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며칠 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탱크 데이 이벤트 이후 사무실의 젊은 친구들에게도 그곳의 출입을 금지시켰고, 나 역시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내가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유지와 번영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었습니다.<br>사실 공동체를 위협하는 여러 요소들 가운데 인적요소만큼 관리와 통제가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발전에 가장 중대한 기여를 하는 것 역시 인적요소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구성원이 서로 반목하고 뿔뿔이 흩어진다면 그 동동체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공동체든 각각의 구성원이 100퍼센트 같은 생각을 하고, 100퍼센트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경우는 있을 수 없습니다. 90퍼센트의 구성원이 동의하는 일일지라도 이를 반대하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마치 정신병자와 같은 그들의 생각을 강제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합니다.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애도는 못 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조롱하고 이를 희화화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건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의 의견과는 상충될 뿐만 아니라 인류애적 차원에서도 용납되지 않는, 반인륜적인 행위라고 하겠습니다.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바퀴벌레와 같은 이런 정신병자의 의견에 동조하는 자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를 정신병자로 인증하는 것임에도 그들은 과감히 자신의 실체를 내보이곤 합니다.<br>나는 오늘 몇 장 남지도 않은 스타벅스 상품권을 환불받기 위해 마지막으로 매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전과 다르게 매장 안은 비교적 썰렁한 분위기였지만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의 의견에 반하는 정신 나간 인간들 몇몇이 매장 한켠에서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낄낄대고 있었습니다. 어제부터 내리는 비는 지금도 여전히 그치지 않고, 이따금 굵어지거나 가늘어진 빗줄기만이 심심하고 나른한 오후를 비껴가고 있었습니다. 그 시각에도 우리 공동체를 위협하는 바퀴벌레 몇 마리가 숨 죽인 채 배회하고 있습니다. 또는 있었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85898</link><pubDate>Tue, 19 May 2026 17: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85898</guid><description><![CDATA[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직접 몸으로 겪어보지 않으면 체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nbsp;가족이나 이웃의 사랑이 그렇고, 추위나 더위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연경관이나 치안, 행정 서비스 등도 외국에 나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말로만 들어서는 실감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김수환 추기경의 조언을 곱씹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추기경 님은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 년 걸렸다."라고 하셨지만, 수도자로 살았던 추기경 님도 이럴진대 나처럼 평범한 이는 오죽할까, 생각하면 아득해지곤 합니다.<br>유럽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아들도 자신이 당한 소매치기의 경험을 어렵게 털어놓았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유럽의 치안을 걱정하는 많은 이들이 '소매치기 조심해라'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었고, 나 역시 아들에게 그와 같은 말을 하면서 각별히 조심하라는 당부를 떠나기 전날까지 반복하였습니다. 사진이 취미인 아들은 비교적 고가의 카메라까지 들고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나로서는 더욱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의 전언에 따라 사건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았습니다.<br>그날 아들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오후에 미술관 관람을 하고자 했던 아들은 숙소를 나와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할 요량으로 햄버거 하나를 테이크 아웃하여 가까운 공원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겉옷으로 바람막이 하나를 걸치고 그 위에 크로스백과 카메라를 X자로 겹쳐 메고 있었던 아들은 햄버거를 먹기 위해 공원의 의자에 앉았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 아들의 등을 만지더니 등에 뭐가 묻었다고 하더랍니다. 영어는 그럭저럭 잘하는 편이지만 스페인어는 할 줄 모르는 까닭에 그런가보다 생각하며 다시 햄버거를 먹으려는데 자전거를 탄 다른 사람이 물병을 들고 나타나서 등에 뭐가 묻었으니 자신이 물로 닦아주겠다며 옷을 벗어보라고 권했답니다.<br>대낮이었고, 크게 경계심을 느끼지 않았던 아들은 그의 권유대로 옷을 벗기 위해 크로스백과 카메라를 벗었는데, 카메라는 조금 위험한 듯싶어 다시 어깨에 메고 크로스백은 옆 의자에 놓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바람막이에 묻은 것을 물로 씻고 있는데 자전거를 탄 그 사람이 아들에게 물병을 넘겨주고는 떠나더랍니다. 그 순간 옆에 벗어 놓은 크로스백으로 눈길을 돌리자 크로스백은 이미 사라지고 없더랍니다. 자전거를 쫓아 따라가 보았지만 맨몸으로 자전거를 따라잡을 수는 없고, 공원에 다시 돌아와 보니 바람막이마저 사라져 버렸더랍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허리에 차고 다녔던 휴대폰 커버 안쪽에 카드를 넣어두었던 까닭에 카드와 휴대폰은 잃어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날 예약했던 미술관은 가지도 못했고, 현지 경찰서에 도난 신고를 하고 폴리스 리포트((Police Report)를 받은 후 영사관에 들러 긴급여권을 발급받았다고 합니다. 분실한 크로스백 안에는 운전면허증과 여권, 선크림과 세안 도구, 텀블러, 보조배터리 등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은 여권과 운전면허증을 재발급 신청하였으며, 여행자보험사에 제반 비용을 보상 청구하였습니다.<br>사실 아들의 경험은 여행지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가벼운 해프닝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도 몸으로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방심하게 됩니다. 다행인 것은 아들이 그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신체적 위해도 받지 않고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시차적응으로 힘들어하던 아들은 이제 정상으로 돌아온 듯합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잊었던 슬픔과 장미의 나날 -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81920</link><pubDate>Sun, 17 May 2026 15: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819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7800&TPaperId=172819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97/coveroff/k99213780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7800&TPaperId=172819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a><br/>유시민.김세라 지음 / 은빛 / 2026년 03월<br/></td></tr></table><br/>아파트 울타리에는 넝쿨장미가 한창이다. 초록의 잎새 위에 핀 붉은 꽃송이. 초록과 붉음의 완벽한 대비는 때론 애절하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해서 더욱 애절한 게 5월이다. 붉은 꽃잎은 마치 5월의 희생과 피의 헌신을 닮은 듯 서글프다.&nbsp;46년 전&nbsp;5월 18일은 광주의 무고한 시민들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피를 흘렸던 날이고, 5월 23일은 검찰과 언론이 합작하여 퇴임한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날이다. 그날에 맞춰 장미는 피어나고, 아파트 울타리를 타고 올라 붉음을 토하고 있다. 애절함을 기념한다는 게 어찌 말이 될까마는 우리는 터져 나오는 울분을 붉은 꽃잎에 기록하며 뜨거운 5월을 보내고 있다.<br>"'사람 강순희'를 만난 것이 운명인지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사에 관심이 많고 정의감이 높은 분이었다. 그가 대통령이었던 때 인혁당재건위 사건 희생자들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나는 노무현의 정치적 동지였으며 국회의원과 장관으로 일하면서 그를 도왔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둘이 만났던 때 그는 내게, 정치보다는 글 쓰는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정치를 떠나 글 쓰는 일로 돌아왔고, 그런 나를 강순희가 찾아냈다. 운명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맺어준 인연임에는 분명하다. 나는 그 인연을 받아들였다."&nbsp; (p.23~p.24 '프롤로그' 중에서)<br>자신의 인생 전체에서 억울한 일 한두 가지 겪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그 억울함에도 정도가 있는 게 아닌가. 내 가족이, 나의 친척이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 국가 권력의 희생자가 되어 이유도 없이 삶을 마감하였다면, 살아남은 자는 그 억울함이 오히려 한이 되어 사는 게 무척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마른하늘에 날벼락으로 남편을 잃었던 강순희 여사와 유시민 작가의 대담 형식으로 기록된 이 책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이끌어져 간다. 자신의 억울한 역사를 털어놓는 당사자(강순희)도 이를 듣고 있는 작가(유시민)도 마치 서로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오랜 지기가 만나 수다를 떠는 양 즐거운 분위기인 것이다.<br>"박정희 때는 하루도 조용했던 적이 없었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잘 살았어. 남편하고 바람 쐬러도 다녔고. 1972년이었나? 우리 열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는데, 그이랑 부천에 사놓은 포도밭을 둘러봤어요. 그런데 오는 길에 택시 기사 아저씨가 신호 위반으로 걸린 거야. 군인이 면허증 내놓으라고 하는데, 내가 나가서 막 봐달라고 했어요. 내가 생각해도 웃긴 일이었지.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었잖아요? 우리가 결혼 16주년이라 내가 그 얘기를 너무 재미있게 하는 바람에 기사 아저씨가 듣느라 그랬다고. 한번 봐달라고. 그랬더니 정말 결혼기념일이냐면서 그냥 가라고 했어."&nbsp; (p.117)<br>아흔세 살의 강순희 여사는 평안도 박천에서 태어나, 만주 하얼빈에서 자랐고, 평양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사업 수완이 좋은 아버지 덕에 북에서 있을 때만 하더라도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듯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하여 부산에 정착하였고, 한국은행에 입사하여 재직하던 중 혁신 운동에 뜻을 둔 우홍선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슬하에 3녀 1남을 두었다. 1974년 남편 우홍선이 1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이듬해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자 다음 날 새벽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후 네 자녀를 돌보며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증언하고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br>"아무 여한이 없어요. 오늘 밤에 죽는다 해도 괜찮아. 남편 일로 좀 힘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까. 신랑도 잘 만났고, 사랑도 잘 했고, 남편 일로 싸울 때도 잘 싸웠어요. 자기한테 주어진 것을 극복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잖아요. 나한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내 힘껏 노력하고 살았어요. 최선을 다했어요. 남편 죽었을 때는 막 같이 죽고 싶었지. 그런 생각이 든 순간이 여러 번 있었어. 그렇지만 아이들 위해 살아야겠다 싶어서 고비를 넘겼어요.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nbsp; (p.262)<br>넝쿨장미 흐드러진 5월이 오면 알 수 없는 부채의식에 시달릴 때가 더러 있다. 장미의 가시가 가슴을 콕콕 찌르는 듯도 하고, 특별한 노력도 없이 이런 행복을 무상으로 즐겨도 되는가, 곰곰 생각하기도 한다. 암적색으로 만개한 장미 한 송이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기도 한다. 각자의 운명은 불가항력이라 하겠지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남은 삶을 송두리째 던지는 사람도 있다는 걸 생각할 때 내 삶은 무척이나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각자의 부끄러움을 알리기 위해 5월의 장미는 저리도 붉고 선명하게 피어나는지도 모른다. 올해도 넝쿨장미는 무심히 피고, 초록과 붉음의 대비가 시리도록 눈에 도드라져 나는 불현듯 잊고 있었던 슬픔이 되살아났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97/cover150/k99213780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0976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속는 셈 치고 한 번 -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78390</link><pubDate>Fri, 15 May 2026 16: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783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8433&TPaperId=172783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90/46/coveroff/897012843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8433&TPaperId=172783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a><br/>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9년 11월<br/></td></tr></table><br/> 언제나 그렇지만 내가 '산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시간이면 멋쟁이 할아버지가 어김없이 나타나곤 한다. 오늘 아침에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윗몸일으키기를 하기 위해 누웠는데 할아버지 역시 내 옆자리에 눕는 게 보였다. 천천히 자세를 잡으면서 다 누울 때까지&nbsp;'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하는&nbsp;가벼운 신음을 연달아 내고 있었다. 길게 누워 두 손을 머리 위로 뻗으면서 내게 묻기를, '나는 아직 누울 때 당신처럼 아프지는 않겠지'라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 안에는 나도 너처럼 젊었을 때는 어디에 눕더라도 아프지 않았고, 윗몸일으키기쯤이야 수십 번쯤 거뜬히 해치웠었다는 뉘앙스의 아쉬움과 그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나는 아프지 않다는 대답을 건성으로 하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누운 채 어깨며 허리며 몸 이곳저곳을 두들기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보이지 않던 모기가 ';산스장' 곳곳을 빠르게 돌고 있었다. 아침 기온이 낮고 건조하던 며칠 전과는 다르게 비가 온 후 기온이 빠르게 오르는 바람에 때를 만난 모기들도 덩달아 신이 난 모양이다. 1940년생인 할아버지의 마른 체구에서 빨아먹을 피가 얼마나 있다고 극성스러운 모기떼가 앵앵거리며 달려들고 있었다.<br>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에 문득 싫증이 나고, 미약하던 의욕마저 뚝 떨어져 사는 게 그저 덤덤하게만 느껴지는 시기가 찾아오면 나는 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는다. 하루키 역시 독자들에게 없는 기운이라도 짜 내서 으쌰으쌰 열심히 살아보라고 권하는 건 아니지만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말을 아무런 감흥도 없이 되뇌고, 겉도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낱낱의 문장을 손가락을 짚어가며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래도 기운을 내서 한 번 살아봐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br>"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도쿄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고, 그는 홋카이도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나는 도쿄에서 태어난 동급생과 결혼했고, 그는 오타루에서 태어난 동급생과 결혼했다. 인생이란 그런 거다. 식물의 씨앗이 변덕스러운 바람에 날려 운반되듯이, 우리도 역시 우연이라는 대지를 목표도 없이 방황한다."&nbsp; (p.56 '그녀의 거리와 그녀의 면양' 중에서)<br>하루키의 초기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 &lt;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gt;는 내가 이따금 생각이 날 때마다 펼쳐보는 책이다. 물론 '4월'이라는 특정한 달이 제목에 포함된 까닭에 그해 4월에 읽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매년 4월마다 이 책이 떠오른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단편이라고 하기에도 짧은 18편의 소설이 실린 이 책은 하루키의 열혈 독자들에게는 꽤나 인기가 있는 편이어서 하루키의 팬을 자처하는 나로서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눈에 띌 때마다 읽게 된다.<br>"4월의 어느 맑은 아침, 히라주쿠의 뒷길에서 나는 100퍼센트의 여자와 스쳐 지나간다. 그다지 예쁜 여자는 아니다. 멋진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다. 머리카락 뒤쪽에는 나쁜 잠버릇이 달라붙어 있고, 나이도 모르긴 몰라도 이미 서른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50미터 앞에서부터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인 것이다.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내 가슴은 불규칙하게 떨리고, 입안은 사막처럼 바싹바싹 타들어간다."&nbsp; (P.21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중에서)<br>하루키 소설의 장점은 그의 소설이 분명 현실을 다루고 있는 듯하지만 현실에서 미세하게, 이를테면 현실의 공간에서 반 발자국쯤 떨어진 듯한 인상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현실에 지친 독자는 소설을 읽는 동안 현실로부터 살짝 떨어져서(또는 현실을 잠시 잊은 채로) 독서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현실로부터 발을 뺀 채 시간을 보내다 보면 다시 현실로 복귀해야겠다는 마음이 슬몃 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처방은 그의 에세이에서도 다르지 않다.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지도 않고,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내 생각은 이러이러한데 당신이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당신의 선택의 문제일 뿐 나는 관여하지 않겠어' 하는 식의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다.<br>"5월의 태양 아래를, 양손에 운동화를 들고 낡은 방파제 위를 걸어가면서 나는 예언한다. 너희는 무너져버릴 것이다, 라고. 몇 년 뒤인가, 몇십 년 뒤인가, 몇백 년 뒤인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너희들은 언젠가 확실히 무너져버린다.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메우고, 우물을 메우고, 죽은 사람의 혼 위에 너희들이 세워 올린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콘크리트와 잡초와 화장터의 굴뚝, 그것뿐이지 않은가."&nbsp; (P.120 '5월의 해안선' 중에서)<br>'삶의 권태기'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시시때때로 일상이 지겨워지고 나른한 권태에 짓눌리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우울증과 같은 만성적인 질병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외투에 붙은 먼지처럼 가볍게 툭툭 털어버릴 수 있는, 일시적인 감기처럼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나이가 들고 이곳저곳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상의 나른한 지겨움은 조금씩 정도를 높여간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할 때 하루키의 책은 그와 같은 증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처방책이 될 수도 있다. 책을 싫어하는 사람도 일단 한 번 그의 작품에 빠져들어 볼 필요가 있다. 속는 셈 치고 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90/46/cover150/897012843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904650</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길 위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76253</link><pubDate>Thu, 14 May 2026 15: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76253</guid><description><![CDATA[한낮 기온이 많이 올라 마치 초여름의 날씨처럼 더워졌습니다. 어느 해였을까요. 역대 최장 기간 장마라는 기상청 예보에도 불구하고 강수량은 오히려 다른 해에 비해 줄고,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흐렸던 날이 많아 비교적 선선한 여름을 보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시기의 사람들은 다들 장마 기간이 맞느냐며 기상청의 예보를 못 미더워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기상청의 예보는 단지 예보일 뿐 중계가 아닌 까닭에 정확히 맞출 가능성은 있지만 반대로 언제든 틀릴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걸 사람들은 애써 외면하는 듯합니다. 올해 장마는 6월 19일 제주서부터 남부지방은 6월 23일, 중부지방은 6월 25일경 시작되어 제주는 7월 20일, 남부 7월 24일, 중부는 7월 26일경 끝이 날 것이라는 예보가 있습니다만 예보는 예보일 뿐 어떻게 달라질지 누구도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br>4월 초순에 유럽 여행을 떠났던 아들이 오늘 귀국했습니다. 아들은 4월 9일 출국하여 뮌헨을 경유하는 런던행 비행기를 타고 첫 여행지인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런던 여행을 마친 아들은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로 이동하여 두 번째 여행지인 파리에서 지내다가 기차를 타고 스트라스부르로 이동하였고, 그곳의 여행을 마친 후 비행기를 타고 니스로 이동하였고, 니스 여행을 마친 후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 바셀로나로 향했습니다. 바르셀로나 여행을 마친 후 다시 사리아로 이동하여 사리아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115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포르투의 포르투로 이동하여 여행을 하고, 마지막 여행지인 리스본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리스본 여행을 마친 후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고 오늘 인천공항에 도착한 것입니다. 이 모든 계획과 항공권 구매 및 숙박 예약 등을 군에서 제대하지 않았던 작년 말에 미리 해 놓았던 까닭에 중동 전쟁이 발발한 후에도 이전 가격으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빡빡한 여행 일정을 본 할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지만 말입니다.<br>벤 몽고메리가 쓴 &lt;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gt;을 읽고 있습니다. 67세의 나이에 3,500킬로미터의 애팔치아 트레일을 146일 만에 완주하였으며, 77세에는 AT를 세 번이나 완주한 최초의 인물인 게이트우드 할머니의 장대한 여정을 기록한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많은 산악인들이 있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 동네 뒷산을 오르는 것도 힘겨워하는데 말입니다. 애팔치아 트레일을 다룬 책을 읽었던 건 이번이 두 번째인가 봅니다. 예전에 나는 빌 브라이슨이 쓴 &lt;나를 부르는 숲&gt;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른 코스이기는 하지만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걸었던 셰릴 스트레이드의 &lt;와일드&gt; 역시 감명 깊게 읽었던 책입니다.<br>"그녀는 방문을 닫고 가방을 내려놓은 후 거울 앞에 섰다. 자기 앞에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은 누군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날파리가 눈 근처를 물어뜯어 부어올랐다. 입고 있던 스웨터는 온통 찢어진 곳으로 가득했다. 머리는 엉망이었고 발은 부르텄다. 엠마는 자기가 마치 하수구에서 기어 나온 주정뱅이 같다고 생각했다. 떠돌이. 예순여섯 살이나 먹고 실패한 인생."&nbsp; (P.35)<br>잭 케루악의 소설 &lt;길 위에서&gt;가 떠오릅니다.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에 여자, 미래, 그 모든 것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난 알고 있었다.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에서 내게 진주가 건네질 것이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안개 낀 길을 걸어... - [화가 서용선의 일상을 따라나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74176</link><pubDate>Wed, 13 May 2026 15: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741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02138862&TPaperId=172741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51/34/coveroff/k1021388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02138862&TPaperId=172741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화가 서용선의 일상을 따라나서다</a><br/>고진예 지음 / 희종 / 2026년 04월<br/></td></tr></table><br/>일부러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nbsp;화가와 관련된 책을 자주(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읽게 된다. 얼마 전에는 독일 화가 안젤름 키퍼를 다룬 책 &lt;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gt;를 읽었고, 그때의 느낌이 워낙 특별해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인상 깊게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읽은 &lt;화가 서용선의 일상을 따라나서다&gt; 역시 특별했다. 그러나 책을 읽기 전에 나는 화가 서용선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었다. 고진예 작가가 쓴 이 책은 화가 서용선의 일상에 더하여 화가와 작가의 대화 내용을 함께 수록함으로써 화가의 생각과 사상이 녹아들게 하고 있다.<br>"그는 역사화는 서울대학교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교수진에서는 민중화나 역사화를 그린 분이 없었고, 앵포르멜 이후의 세대와 그의 이전 교수진들을 포함해서 그런 류의 그림을 그린 분이 없었다. 그가 그린 조선시대의 그림은 역사에 관심을 두게 된 시점에 접근 방법을 시도해 본 그림이라고 한다. 비록 그가 민주화 투쟁에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역사의식은 투쟁이 아닌 지적 사고의 발현으로 그림에 표출된 것은 아닐까. 또한, 그에게 역사화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신문 연재로 읽던 역사 소설에 연이 닿아 있다고 한다. 역사 소설은 화가인 그가 문학적 텍스트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계기로서 친근하게 다가온다."&nbsp; (P.183~P.184)<br>2007년부터 약 1년 동안 매주 경기도 양평에 있는 화가의 문호리 작업실을 찾아 화가와 대화를 나누고, 변해가는 바깥 풍경을 기록하고, 화가가 던진 사유의 조각들을 조용히 맞춰 왔다. 책을 읽는 독자는 먼저 그의 그림에 눈길이 간다. 단순하고 직선적인 골격에 강렬한 원색의 굵은 터치는 마치 8,9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의 걸개그림과 닮은 듯하다. 2000년대 이후 동학농민운동과 단 관련 역사 서사를 주제로 그가 그렸던 그림들은 여러 점의 자화상과 더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강렬한 인상을 받게 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역사적 운명에 대한 반항일지도 모른다. 역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현실은 또 다른 역사가 되어 후손에게 전달될 것이다.<br>"문학이나 예술은 영원성이 있어.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도 예술을 통해 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해. 물론 행동도 좋으나 문학을 하는 사람이면 문학으로서 깊이를 가져야 한다는 거야. 만약 시간이 많이 지나 역사적 상황을 경험하지 않은 앞으로의 세대가 그들의 글을 읽었을 때, 글에서 깊이보다 작가의 울분과 신경질만 느껴진다면 훌륭한 글이 아니라는 거지."&nbsp; (P.28)<br>서용선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가 그림만 잘 그리면 되지 공부가 뭔 필요야.' 하는 생각은 애저녁에 사라지게 된다. 그림의 깊이는 결국 화가의 사유와 깨달음의 정도에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게다가&nbsp;서용선의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 대부분이 서로 비슷한 느낌과 감동을 공유하는 걸 보면 화가 본인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사유의 깊이가 그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화가의 진정성이나 현실을 바라보고 재해석하는 화가의 가치관이 그림과 함께 투명하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고흐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의 그림 속에서 삶의 진실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저자인 고진예 작가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서용선 화가의 작품을 아끼는 까닭은 일반 민중의 현실과 삶의 진실이 그림을 통하여 가감 없이 전달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가 본인도 천형처럼 느껴지는 삶의 고단함이 역사의 은유 속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자신의 그림에 담으려고 애쓴 듯하다.<br>"문자는 이미 음성적 속성을 갖지. 우리가 문자를 눈으로 읽을 때 본다는 것은 빛의 파동에 의해 시각적인 형태로 감지되잖아. 그래서 문자를 읽는다는 것은 파동을 인지한다는 거야. 그것은 이미 소리 형태를 보인다는 거지. 미술에는 이미지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미지는 이미 현실이고 실체가 있는 거지. 왜냐하면 우리가 그림을 그릴 때 이미지는 재현적이지만, 이미 현실에 놓인 공간 안에 존재하기에 실체가 있는 현실적 이미지라는 거야. 우리는 실체가 없는 그린다고 하지만 그림이라는 것은 늘 공간 안에 놓이고 공간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 거지."&nbsp; (P.155)<br>오늘 아침,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등산로에는 안개가 자욱했었다. 그 시각에도 어디론가 일을 하러 나가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의 얼굴에는 삶의 고단함이 허연 버짐처럼 더께더께 피어나고 있었다. 그림에는 영 소질이 없는 나로서는 그 한컷의 장면을 그림으로 남길 수는 없었지만, 화가 서용선의 핏발 선 눈빛의 자화상이 처진 어깨를 한 그들의 무거운 발걸음을 내내 노려보고 있는 듯했다. 삶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었다. 끊이지 않고 힘겹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51/34/cover150/k1021388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513455</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동기부여 또는 실천력에 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72190</link><pubDate>Tue, 12 May 2026 15: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72190</guid><description><![CDATA[동기부여란 때론 어떤 간절함에서 오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사람이 지닌 준법정신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준법정신이란 이를테면 법을 잘 지킨다는 절대적 통념도 있겠으나 사회적 관습이나 자신이 세운 어떤 규칙 또는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갖는 기대나 바람 등을 무시하지 않고 잘 지키려고 애쓰는 마음 역시 넓은 의미에서의 준법정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한 사람이 미루지 않고 실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간절함에서 오는 개인의 의지라기보다 한 사람에게 어려서부터 주입된 준법정신과 그에 따른 실천 연습이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nbsp;소위 '밥상머리 교육'으로 불리는 유아기적 훈련은 개인의 준법정신을 함양하고 이를 실천으로 연결시키는 훈련을 강화함으로써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생각과 실천 사이의 간극을 꽤나 좁혀주는 듯합니다. 이것은 비단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를 감지하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는 것 역시 그와 같은 훈련 덕분이라 하겠습니다.<br>물론 이와 같은 교육이 장점만 있고 단점은 없는, 이른바 완벽한 교육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던 자크 라캉의 말처럼 우리는 자신의 판단 기준이 서기도 전에 타인에 의해 형성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무척이나 많이 습득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우리는 그 기준에 의해 자신의 욕망을 결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다 나쁘다고는 말하기 어렵겠지요. 공동체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우리가 이 사회에서 용인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기준, 사회 생활에서 유리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별 등을 미리 습득함으로써 사회에 진출했을 때 크게 당황하지 않고 적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더 유리한 선택을 취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br>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떨어지면서 자신의 자녀를 자유분방하게 키우겠다는 부모들이 늘고 있는 듯합니다. 시쳇말로 '금쪽이'로 키우겠다는 뜻이지요. 제 주변에서도 그런 부모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 자녀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면 자녀가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또는 인생의 고비마다 자신의 내부에서 어떤 간절함이 발현되기를 기다리며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인데, 과연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간절함에 기대어 의지를 불태웠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대개 자신에게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간절함보다는 보이지 않는 어떤 의무감과 같은 준법정신을 바탕으로 수많은 고비들을 넘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도 물론 있겠지만 말입니다.<br>부모의 자녀 교육에 있어 오롯이 자녀의 선택에 맡겨두고자 하는 부분은 그 영역이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겠으나 어느 부모에게나 있을 테지요. 천주교를 믿는 우리 부부도 아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세례를 받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자신의 종교만큼은 본인이 알아보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아들은 종교가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필요하다고 믿게 되면 스스로 하나의 종교를 선택하겠지요. 이와 같은 결정은 우리나라의 종교 중 일부가 정치세력화한 데서 기인했는지도 모릅니다. 자아가 형성되기 이전의 아이들을 상대로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주입하고 그와 같은 행동을 강요함으로써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자신들의 수족처럼 부리겠다는 발상은 마치 그루밍 범죄를 연상케 합니다. 심지어 어느 목사는 공공연히 종교는 그루밍일 수밖에 없다고 떠벌리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종교를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br>얼마 전 나는 뉴욕에 사는 여동생의 가족들과 전화 통화를 했었습니다. 안부를 묻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만 대학원에 다니는 큰조카와의 통화는 지금도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조카는 비록 힘이 약한 여성의 입장이지만 이스라엘의 잔인성을 목격하면서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의 시위에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참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위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은 최근 들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며 대학생은 물론 고등학생이나 그보다 어린 학생들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정의는 어쩌면 학교나 종교단체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거친 아스팔트 위에서,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의 연대 속에서 정의와 사랑이 싹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당신이 일어나야 할 시간에 일어나고, 잠들어야 할 시간에 잠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준법정신의 부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실천력은 의지나 간절함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준법정신의 발현에 가깝다고 믿는다면 당신의 어릴 적 밥상머리 교육이 어떠했는지 한 번쯤 되돌아볼 듯합니다. 어쩌면 말입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불가능한 것들은 모두 그립다 - [서른에 시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67734</link><pubDate>Sun, 10 May 2026 11: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6773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135152&TPaperId=172677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78/88/coveroff/k22213515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135152&TPaperId=1726773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서른에 시린</a><br/>김보겸 지음 / 사람과가치 / 2026년 03월<br/></td></tr></table><br/>'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는 말은 감정의 폭의 크지 않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볼 때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은 자신의 감정 표현에 솔직한 사람일 수도 있다. 예컨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를 두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와는 반대로 아름다운 노을에 하염없이 빠져들거나 일출의 장관에 감동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예술가가 느끼는 감정의 진폭을 다른 정상인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일반적으로 정상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기준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인은 예외로 한다는 규정 또한 갖고 있지 않다.<br>김보겸 작가의 에세이 &lt;서른에 시린&gt;을 읽는 내내 나는 그와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것은 MBTI 성격유형검사에서 T나 F로 분류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T로 분류되는 모든 사람은 어떤 예술가도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정서란 다소간의 성향적 특성은 있을지언정 칼로 무 자르듯 그렇게 명확하게 나눌 수는 없다. 누구나 같은 인간이라는 공통의 범주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br>"생각해 보면 말로 표현되면 현실을 정의하는 것 같아 숨을 쉴 수 없던 것을 나는 시로 썼고, 시를 쓰며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시를 쓴 까닭은, 내 마음을 움직였던 여운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크다. 시가 주는 언어로 삶을 바라보는 노력은 사람들이 쉼을 갖고 싶을 때 하나의 답이 될 거라고 전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다."&nbsp; (p.52)<br>제목에 나이를 뜻하는 어떤 단어가 포함된 책이나 노래를 만날 때가 더러 있다. 그럴 때 나는 그 제목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나의 기억 회로가 제목이 의미하는 정확한 나이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 까닭에 텅 빈 머릿속이 한동안 멍한 상태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김보겸 작가의 &lt;서른에 시린&gt;도 다르지 않았다.&nbsp;나이에 'ㄴ' 받침이 들어가는 첫 순서이기도 한 '서른'이라는 나이가 아득히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른, 마흔, 쉰, 예순... 우리는 그렇게 나이가 들고 시나브로 성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br>"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 잔잔한 파동을 좋아한 것 같다. 사람들로 가득 찬 술집보다는 테이블이 몇 안 되는, 사장님의 손때가 묻은 식당이 편하고 정이 간다.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인 찌개와 아침에 새로 한 듯한 김치, 사장님만의 특수 간이 되어 있는 삼겹살을 지글지글 구우면 술을 마시기 전인데도, 그 정경이 참 맛있게 느껴진다. 식당을 오고 간 지 십여 년은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주방을 드나들며 반찬을 가져가는 단골손님의 넉넉한 웃음마저 정겹다."&nbsp; (p.133~p.134)<br>사람의 마음도 나이가 듦에 따라 수분을 잃고 푸석푸석 건조해지게 마련, 다들 동안의 육체를 부러워하는 것처럼 촉촉한 감성을 유지하는 동심의 마음을 부러워했으면 좋겠다. 천천히 늙는다는 건 그 사람의 정서에 여전히 생명의 물기를 머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한 까닭이다. 젊은 사람들이 매우 논리적이거나 바른말만 하는 어른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정서 역시 타인의 감정에 녹아들지 못한 채 점점 메말라가는 것이다.<br>"때마침 노을이 졌고, 노을 끝에 닿은 아내의 표정이 맑아 마음에 담았다. 생각해 보니 맑은 사람을 꿈처럼 담는 일에도 여러 감정이 요동쳤고, 그럼에도 그 감정의 끝에는 아내가 있었다. 시간에 무뎌지면 마땅히 느껴야 할 계절조차도 사전에 박힌 이름처럼 건조하게 지나갈 때가 있는데, 아내를 만나 마르지 않은 계절들을 보냈다. 한 사람을 내 안에 담는 일이, 한 세상을 담는 일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안 후로 한 걸음씩 하루를 놓는 일에 늘 다정하려 애쓴다. 시린 마음의 끝에서도 변하지 않고 아내의 손을 잡는다. 그대 잇기에 한순간 꿈처럼 빛날 수 있었다."&nbsp; (p.45~p.46)<br>지난 3월에 군을 제대한 나의 아들은 4월 9일에 출국하여 유럽 전역을 돌고 있다. 서른의 끝자락에 선 작가가 이렇게 흔들렸던 것처럼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 아들 역시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복학 준비를 하고 멀지 않은 미래에 '서른'이라는 나이를 경험하겠지만, 그것 역시 남들과 다르지 않은 통과의례라고 말해주고 싶다. '서른을 아끼고 싶은 마음에 서른이 시리다'고 썼다는 작가는 어쩌면 10년이 훌쩍 지난 어느 시점에 '마흔에 시린'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그리워진다. 우리는 그렇게 불가능한 어떤 것에 끝없이 매달린다. 우리의 삶이 다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78/88/cover150/k22213515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78881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시간의 갈피를 접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64926</link><pubDate>Fri, 08 May 2026 17: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64926</guid><description><![CDATA[바람이 제법 불고 있습니다. 사무실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데 가로수의 잔가지며 삭정이들이 인도에 널브러져 어지러웠습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겠다는 일기예보를 엊저녁 뉴스 시간에 얼핏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이런 날,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부는 도시의 골바람은 마치 한여름에 부는 태풍처럼 그 세기가 대단합니다. 강한 바람이 부는 탓인지 쏟아지는 햇살은 더없이 맑고 강렬하여 오가는 행인들의 얼굴을 금세라도 벌겋게 태워 놓을 듯했습니다. 선명하게 푸른 하늘과 하얗게 반짝이는 뭉게구름이 온종일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하루, 오늘은 54번째 맞는 어버이날이었습니다.<br>낮에 점심을 먹으면서 우연히 듣게 된 친한 친구의 사고 소식에 깜짝 놀랐습니다. 올해 초 두 분 부모님을 모두 떠나보냈던 친구는 부모님이 살던 시골집을 정리하여 정년 퇴임 후 그곳에 가서 노후를 보낼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친구는 짬이 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집 주변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어린이날도 친구는 혼자 그곳에 가서 낡은 가구를 정리하던 중 의자의 쇠붙이 부분을 떼어내기 위해 그라인더를 사용하다가 그만 그라인더를 놓쳐서 다리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워낙 출혈이 심했던 탓에 119 구급차를 불렀지만 봉합 수술을 받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었나 봅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동맥이 다치지 않음으로써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피를 많이 흘린 때문인지 친구는 지금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사고는 정말 한순간에 벌어지는 일인가 봅니다. 유시민 작가가 기록한 강순희 여사의 인터뷰집 &lt;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gt;를 읽고 있습니다.<br>"중학교 다닐 때였는데 공책에 '인생이란?' 하고 써놓은 적이 있어요. 담임 선생님이 그거 보고 놀렸어. '야, 순희, 벌써 인생을 생각하냐?' 인생이 뭘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자기한테 주어진, 자기 앞에 펼쳐진 운명을 열심히 살아가는 거, 그게 인생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서 극복하며 사는 거, 그게 인생이다.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장애물이 닥쳐도, 원망 같은 거 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그런 게 쌓여 인생이 된다. 애들한테 늘 그렇게 얘기했어요. 나도 그렇게 살았고."&nbsp; (p.259)<br>중간에 하루의 휴일이 있었던 까닭인지 다른 주에 비해 한 주가 빠르게 흘러간 듯합니다. 나는 나는 내가 보냈던 시간의 갈피를 접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어집니다. 내가 살았던 과거의 한 순간을 가감없이 뚝 잘라내어 인생 별거 없음을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보냈던 시간의 갈피로 그의 등을 토닥이고 싶은 것입니다. 삶이 힘들다고 느끼는 다른 누군가에게 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동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동지이기 때문입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AGI 시대에 나로 산다는 건 -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살게 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63163</link><pubDate>Thu, 07 May 2026 1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631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137633&TPaperId=172631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21/0/coveroff/k35213763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137633&TPaperId=172631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살게 하는가</a><br/>김종구 지음 / 위커리어북스 / 2026년 04월<br/></td></tr></table><br/>자신이 알고 있는 '나'와 타인이 파악하는 '나'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다. 예컨대 '나'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이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괴리는 개인의 경험이 축적됨에 따라, 관계가 넓어짐에 따라 그 폭이 점차 축소될 수는 있지만 나의 관점과 타인의 시선이 완벽하게 일치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정의는 그 기준이나 조건에 따라 매우 가변적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는 이마저도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AI의 발전이 가져온 이러한 혼란으로 인해 우리는 존재에 대한 믿음마저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다.<br>"만약 '나'를 내 행동 패턴, 선호, 반응의 총합으로 정의한다면, AI는 분명 나보다 나를 더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나'를 지금 이 순간 경험하는 것, 무언가를 의미있다고 느끼는 감각, 무엇을 위해 살겠다고 선택하는 의지로 정의한다면 AI는 나를 예측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알 수는 없다."&nbsp; (p.26)<br>파사컨설팅그룹 대표이사이자 20년간 산업 현장의 변화 한가운데에서 영업, 마케팅, 조직 리더십의 본질을 탐구해 온 김종구 작가는 자신의 저서 &lt;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살게 하는가&gt;를 통하여 AG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부상하는 기술에 매몰되거나 그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은 채 나를 지키고. '나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하여 우리는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며, 어떤 과정을 거쳐야만 굳건한 '나'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 쓰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AI의 출현 이전부터 제시되었어야 할 문제이지만, 언제부턴가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예상을 늘 앞서가는 까닭에 AI가 보편화된 이 시점에 문제를 직시하고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나섰던 것인지도 모른다. 한참 뒤늦은 감은 있지만 말이다.<br>"효율성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세계에서, 효율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사는 것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빠르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천천히 하는 것, 최적화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깊이 돌보는 것, 생산적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허용하는 것. 이것들이 비효율이 아니라 인간적인 삶의 조건이 된다."&nbsp; (p.302)<br>인간은 기본적으로 욕심이 많고, 게으르며, 끝없이 편한 것을 추종한다. 우리가 구축한 자본주의 체계는 이러한 인간의 기본 정서를 끝없이 이용한다. 자본주의 윤리는 근본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구를 이용하여 부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넘지 말아야 할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에 부응하여 가상현실(VR)이나 검색 기술은 이미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지 오래되었고, 언제든 명령만 내리면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물론 실제와 같은 영상도 뚝딱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그에 비례하여 인간의 가치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br>"AGI가 완전히 실현된 세계에서, 모든 것이 편리해졌는데도 여전히 직접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AI가 더 잘해줄 수 있는데도 굳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았다면, 지금 당장 그것을 더 많이 살아가는 것이다. 잃지 않기 위해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삶의 중심이 되도록.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중심이 단단한 사람은 휩쓸리지 않는다."&nbsp; (p.102)<br>경쟁이란 오직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인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가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연전연패하는 모습을 보고 크나큰 충격을 받았던 시점부터 우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경쟁보다 더 위험한 경쟁이 존재한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능력이란 게 참으로 보잘것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토록 추락한 인간 가치를 고양하고 AGI 시대에도 변함없이 '인간다움'의 자부심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38개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하는 궁극적인 질문에 닿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갈수록 패턴화되는 대중 속의 '나'가 아니라 나만의 특성을 지닌 '1/80억'의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는지도 모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21/0/cover150/k35213763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210087</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과거라는 덫 - [카프네 - 2025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61179</link><pubDate>Wed, 06 May 2026 19: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611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7884&TPaperId=172611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4/45/coveroff/k40213788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7884&TPaperId=172611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카프네 - 2025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a><br/>아베 아키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03월<br/></td></tr></table><br/>가정의달 5월을 맞는 사람들의 심리는 복잡하다. 차라리 어지럽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물론 스승의날까지 모두 5월에 몰려 있는 것은 물론 기념일로 정해지기는 했지만 성대한 행사 없이 지나가는 바람에 국민 대다수가 모르는 성년의날이나 부부의날까지 포함하면 5월은 그야말로 가정의달이 아니라 기념일의 달이 되고 만다. 이렇게 많은 기념일이 있으니 5월은 매일매일이 기쁨으로 가득해야 하겠지만 사람들의 속내는 복잡하기만 하다. 얄팍한 지갑에 비해 지출해야 할 돈은 꽤나 버겁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기에는 왠지 낯 뜨거운 시선이 부담이 될 듯하다. 물론 지나고 나면 모든 게 추억이 될 수 있겠으나 현실은 그리 녹녹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도 5월을 맞는 마음만큼은 언제나 따뜻하다. 아베 아키코의 소설 &lt;카프네&gt;처럼.<br>"저기, 카프네라는 회사 이름의 의미를 아시나요?" "포르투갈어로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어 빗겨주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죠. 일본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뉘앙스라고 하던데요."&nbsp; (p.268)<br>소설은 사십 대의 중년 여성 가오루코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남들처럼 자식을 낳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소망했지만, 거듭된 불임치료에도 불구하고 끝내 실패하였던 그녀는 결국 남편인 기미타카로부터 이혼 제안을 받게 되고 끝내 이혼하고 만다. 이혼 후의 일상은 쉽게 무너져 내렸다. 매일 저녁 술에 의지하여 잠이 들었고, 집안은 온갖 쓰레기로 점령당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그토록 다정했던 12살 차이의 남동생 하루히코마저 갑자기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하루히코가 죽기 전에 유언장을 남김으로써 상속이 복잡해졌다는 점이었다. 한때 결혼까지 거론되었던 하루히코의 여자친구 세쓰나에게 상속 재산의 일정액과 아가베 베네수엘라 화분을 남겼던 것. 가오루코는 동생의 유언을 수행하기 위해 세쓰나를 만났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는 한사코 상속을 거부한다. 가오루코와 세쓰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된다.<br>"5월이 됐다. 설명서에 적힌 대로 비료를 주고 흙이 마르면 물을 듬뿍 주면서 돌본 아가베 베네수엘라가 여러 겹 포개진 통통한 잎 사이로 빛깔이 옅고 소박한 새잎을 피웠다. 돌봐도 아무 변화가 없었던 식물이 갑자기 보여준 생명의 힘을, 가오루코는 쪼그리고 앉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nbsp; (p.259)<br>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에게 청소와 요리 등 가사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업체 '카프네'에서 요리를 담당하고 있는 세쓰나는 갑작스러운 이혼과 남동생을 잃고 일상이 흐트러진 가오루코의 집에 우연히 들렀다가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뚝딱 해놓고 떠난다. 겉으로는 마냥 무뚝뚝하지만 마음은 더없이 따뜻한 세쓰나에게 감동한 가오루코는 '카프네'에서 주말마다 하고 있는 가사 대행 봉사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책임감이 강했던 가오루코는 다른 건 몰라도 청소와 정리정돈만큼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가오루코와 세쓰나는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일상이 무너진 여러 가정을 방문하여 그들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북돋워 준다.<br>"집은 청소해도 금방 지저분해지고 음식도 먹으면 사라지죠. 그래도 괜찮아요. 고작 이삼일 정도라도 평소보다 집이 지내기 편해지고, 애써 뭘 만들지 않아도 이미 맛있는 밥이 준비되어 있으니까. 그런 환경만 있다면 사람은 아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어요. 살아가기 위해 행동할 기력을 가질 수 있어요. 이게 카프네를 시작한 이유예요."&nbsp; (p.103)<br>수수께끼로 남았던 하루히코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세쓰나의 기억과 하루히코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방문했던 몇몇 가정의 가족들을 통하여 그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하루히코 역시 가오루코처럼 '카프네'에서 봉사활동을 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쓰나와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새롭게 알게 된 세쓰나의 성장 배경과 삶의 고단함으로 인해 가오루코가 단단히 마음먹게 된 결심은 독자들로 하여금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블루데님 작업복에 투박한 블랙 컴뱃 부츠를 신고 머리는 만두처럼 묶은 채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타나는 세쓰나는 '전투기 정비사가 일을 마치고 기지에서 훌쩍 나온 듯한 분위기'이지만 그 마음은 누구보다도 따뜻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독자들 역시 세쓰나의 매력에 풍덩 빠져들게 된다. 사람은 겉모습만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다.<br>"자기 힘으로 과거의 자신을 구하며 어떻게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도키코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질식할 것 같은 사람들을 구하려는 것처럼, 기미타카가 상처받은 아이들을 구하는 것을 자기 사명으로 삼는 것처럼."&nbsp; (p.331)<br>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과거에 저당을 잡힌 채, 때로는 과거라는 쥐덫에 갇혀 옴짝달싹 못한 채 현재를 살아가는 경우가 더러 있다.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의 내가 갖고 있는 생명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꼴이 되는 것이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고 물었던 한강 작가의 질문처럼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나의 과거가 나의 현재를 돕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어쩌면 자신의 의지가 빚은 하나의 선택일지도 모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4/45/cover150/k40213788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044595</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재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57190</link><pubDate>Mon, 04 May 2026 17: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57190</guid><description><![CDATA[비가 내린 다음날의 아침은 일상에 딱히 다른 이벤트를 첨가하지 않아도 극한의 즐거움을 맛보게 됩니다. 특히 봄이라는 계절에 느끼는 기분은 뭔가 특별합니다. 전날에 비해 맑아진 공기와 더욱 가깝게 들리는 새소리, 마른 솔잎이 젖어들면서 내뿜는 달큰한 향기와 젖은 낙엽으로부터 풍기는 구수한 내음까지 더하여 새벽 산행에 나선 사람들은 그야말로 도파민 과잉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아침이 그랬습니다. 길옆으로 노랗게 핀 애기똥풀 꽃과 이제 막 향기를 내뿜기 시작한 아카시아 꽃을 눈에 담느라 걸음은 마냥 느려졌습니다.<br>최근에 나는 회사일과 집안일이 겹쳐 꽤나 분주한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 바람에 나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마저 읽지도 못한 채 반납하고야 말았습니다. 바쁜 일이 풀리면 읽어야지, 했던 생각은 한낱 거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나로 인하여 책을 대여하고자 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읽지도 못할 거면서 대여 기간을 꽉꽉 채워 반납한다는 게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매우 이기적인 행위였음을 도서관 직원에게 책을 반납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빌린 책들 중에는 두어 권의 예약 도서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br>산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반가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2월 중순 이후로 만나지 못했던 멋쟁이 할아버지였습니다. 이사를 가셨는지, 혹시 아픈 건 아닌지, 그럴 리야 없겠지만 큰일을 당하신 건 아닌지 별의별 생각들이 스쳐갔었는데 할아버지의 건강하신 모습을 다시 보게 되어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습니다. 오랜만이라며 인사를 건네자 할아버지 역시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그동안 뵐 수 없어서 멀리 이사를 가셨나보다 생각했다고 말씀드리자, 사실은 할아버지께서 이용하는 등산로의 초입에서 스스로 목을 매 자신의 목숨을 끊은 사람이 있었다며 그것 때문에 캄캄한 산길을 오르는 게 무척 겁이 났었노라고 하셨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집 근처에서 산책으로 일관하다가 지금은 새벽 5시 30분에도 날이 훤하게 밝은 까닭에 다시 산에 올라 운동을 할 생각이 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br>"눈을 감고 비가 와 인적이 드물었던 공원에서 홀로 걸었던 시간을 다시 걷는다. 그날 내가 걸었던 건 외로움이었을지, 웃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하지 못한 고독이었을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우수수 떨어지는 물줄기 사이에서 무엇을 놓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발목을 타고 흐르는, 첨벙거리는 물의 감촉을 통해 때 묻은 시간을 씻고 싶었을 수도 있다. 우산을 쓰고 걷다가, 우산을 던지고 온몸이 비에 흠뻑 젖어도 아무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곳에서 잠깐의 자유를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nbsp; (김보겸 작가의 &lt;서른에 시린&gt; 중에서)<br>온종일 바람이 불었습니다. 기신기신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 게 방금 전인 것 같은데 또 하루가 흘러가버렸습니다. 젊었던 시절엔 몰랐는데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는 채 정신없이 바빴던 날들이 지금은 무척이나 아깝게 느껴집니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할 수 있다면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을 기쁘게 되돌아볼 수 있는, 그럼에도 그 낱낱의 시간들이 선명하게 기억되는 그런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페터 빅셀의 산문집 &lt;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gt;의 제목처럼 나 역시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멋쟁이 할아버지와의 재회는 오늘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수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4월의 어느 날 - [이스트를 넣은 빵 - &amp;lt;장정일의 독서일기 1-7&amp;gt;에서 가려 뽑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37963</link><pubDate>Sat, 25 Apr 2026 15: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379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434658&TPaperId=172379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357/66/coveroff/k56243465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434658&TPaperId=172379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스트를 넣은 빵 - &lt;장정일의 독서일기 1-7&gt;에서 가려 뽑다</a><br/>장정일 지음, 김영훈 엮음 / 마티 / 2016년 05월<br/></td></tr></table><br/>타인의 블로그를 읽는 일과 타인의 서평집을 읽는 일은 비슷한 동기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일종의 증상이 심하지 않은 관음증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독서에 취미가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이 어느 독서 블로거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일과 책으로 출간된 타인의 서평집을 읽는 일은 그 형태만 다를 뿐 목적은 서로 동일하다. '다른 사람들은 과연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 어떤 책에 감동하고, 또 어떤 책에 혐오를 느꼈는가?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 중 그가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과연 어떤 게 있을까?' 이와 같은 목적의 범위를 책이 아닌 다른 일상으로 넘겨 보면 우리가 겪는 관음증의 징후는 훨씬 심각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은 어떤 집에서 거주하고, 어떤 물건을 소비하고, 어떤 음식을 탐닉하고... 관음증의 끝판왕은 어쩌면 여행 관련 분야가 아닐까 싶다. 예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나는 갈 수 없었거나(제반 비용이나 기타의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서), 그닥 가고 싶지는 않지만 타인의 경험은 몹시 궁금했던 어느 블로거의 사진과 여행기를 읽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건 우리 안에 내재된 관음증의 발현이 아니고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런 까닭에 비슷비슷한 내용의 수많은 여행 에세이가 제목만 달리 하여 지금도 여전히 출간되고, 그와 같은 책을 읽는 독자가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 걸 보면서 나는 여행만큼 우리 안에 내재된 관음증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분야는 다시없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행위를 통하여 유익한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아무튼.<br>"이 책은 절판된&nbsp;『장정일의 독서일기 1-7』을 재가공해 만들었다. 지난 몇 달 이 책들을 천천히 여러 번 읽으며 새겨둘 문장에 줄을 쳤고 모아 문서로 정리했다. 애매한 표현이지만 이 작업은 온전히&nbsp;『독서일기』를 읽은 나 개인의 판단만으로 이루어졌다. 중립적인 원칙과는 거리가 있다. 소설을 팠던 작가는 역사에 빠져들다가도, 현실사회나 인문.철학에서 서성이기도 한다. 그 세월 속에서 작가와 세상 사이 생긴 불화의 대목도 있다."&nbsp; (p.7 '『이스트를 넣은 빵』을 엮으며' 중에서)<br>1994년 범우사에서 처음 출간된&nbsp;『장정일의 독서일기』는 애초에 1년에 한 권씩 나올 예정이었지만, 출판사를 바꾸어가며 같은 제목으로 2007년 7권까지 출간되었다. 시인으로 등단하여 희곡작가로, 소설가로 변신했던 장정일은 '독서일기'를 통해 그의 독서가다운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다. 작가란 모름지기 책과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자신이 선호하는 일정 분야의 책을 고집하게 마련인데, 장정일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은 물론 짧게나마 자신의 평을 남김으로써 다른 이의 독서 생활에 보탬이 되도록 한다.&nbsp;『장정일의 독서일기』를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수긍하겠지만 장정일은 훌륭한 작가이기 이전에 훌륭한 독자였던 셈이다.<br>"마루야마 겐지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도 좋지만 나는 그의 이력이 좋다. 그래서 뻔히 알고 있는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을 읽기 전에 번번이 그의 약력을 다시 읽는다. 그래서 몇 달 전에 읽었던 아쿠타가와 문학상 수상작품전집을 통해서는 그의 취미가 모던 재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귀중하게 여겨지는 그 사실은 한국에 번역된 다른 책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다. 뜻밖에도 이번에 읽은&nbsp;『밤의 기별』에서는 재즈가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건 소설적 정황에서고,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기질적으로 재즈와 잘 어울릴 사람이고 함부로 취미를 바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nbsp; (p.180)<br>전에도 몇 번 말했었지만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의 부정적 효과는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이 한계치 이상으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추리고 추려도 일정 기간 내에 읽을 수 있는 책의 권수를 훌쩍 넘기고 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지도 못한 채 반납하는 소위 '책을 산책시키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서평집을 읽은 후에 찾아오는 깊은 후유증이다. 이러한 후유증은 단 한 번도 예외가 없었던 중증의 질병이다. 나에게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장정일의 독서 감상 외에 1996년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던 소설&nbsp;『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희곡과 소설 등의 작품 구상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br>"나는 아주 오랫동안&nbsp;"내 소설은 쓰레기"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지금도 생각은 그렇게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한 10여 년쯤 하고 보니, 내 소설만 아니라 사람까지 쓰레기가 되는 거였다. 소설은 그 사람의 인격이고 평가 기준이 되는 건가, 아니면 자기 문학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총알받이로 삼는 건가?"&nbsp; (p.355)<br>내가 유튜브에 올라오는 동영상을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나는 아직도 먹방 동영상을 보는 사람들의 심리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타인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무엇이며, 그것에서 어떤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것이다. 단순히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즐겨 먹는지 궁금한 것이라면 그가 많이 먹건 적게 먹건 상관이 없는 문제이니 굳이 많이 먹는 사람을 찾아볼 일도 아니지 않은가. 아무튼 이것만 보더라도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장정일의 글을 읽어 보면 그도 역시 다른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흥미로운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br>어느새 4월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한낮 기온이 초여름처럼 더워졌고, 연녹색의 새순이 차츰 색을 더하여 녹색으로 바뀌고 있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어렵게 맞은 이 한낮의 여유를 가만가만 느껴보고 있다. 아파트 공터에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누군가의 한숨처럼 가늘게 흐르는 바람이 불고 있다. 아이들의 모습이 궁금해서 베란다 창문을 열고 내려다본다. 눌러두었던 관음증이 다시 도지려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357/66/cover150/k5624346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3576648</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어느 날 마음의 회로가 멈출 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36391</link><pubDate>Fri, 24 Apr 2026 17: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36391</guid><description><![CDATA[낮이 정말 많이 길어진 듯합니다. 나는 하루를 대개 새벽 5시 30분쯤에 시작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시각의 하늘엔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집을 나설 때면 언제나 주머니에 손전등을 챙기곤 했습니다. 손전등은 산을 오르기 위한 필수품이었기 때문입니다. 1시간쯤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올 즈음이면 그제야 도시 저쪽으로 오렌지색 햇살이 번져 잠에 취한 사람들을 깨우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나는 손전등도 없이 집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하늘은 이미 갓 돋은 햇살이 자르르 윤기를 더하고, 어슴푸레하던 건물의 윤곽이 반듯반듯 제 형태를 찾기 시작합니다. 푸르스름한 어둠의 흔적만이 그늘진 숲을 간간이 떠돌 뿐입니다.<br>사실 그닥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내가 세상을 겨우 한두 해 산 어린애도 아니고, 낮이 짧아지고 다시 길어지는 계절의 순환을 적어도 수십 번 반복하여 경험한 터이지만, 나는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손전등도 없이 등산로를 오를 수 있는 날이 도래하면 그것이 마치 내 인생에 있어 첫 경험인 양 놀라곤 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어제 있었던 일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낮은 기억력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br>나는 요즘 아베 아키코의 장편소설 &lt;카프네&gt;를 읽고 있습니다. 삶을 살다 보면 어떤 계기로 우리는 이따금 손도 까딱할 수 없는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집안은 온통 난장판으로 변하게 되고, 우리의 일상은 무너집니다. 때가 되면 낮이 길어지는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일상을 살기 위해 지난 어둠을 몰아내야만 합니다. 어둠이 쌓이면 예전에 경험했던 가벼운 일상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 법이죠. 설거지, 청소, 빨래 등 반복적으로 해야 할 집안일을 한번 미루기 시작하면 금세 쌓이고 쌓여 자신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 주변의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주지 않으면 가벼웠던 일상은 쉽게 무너지고 맙니다. 단단하고 규칙적인 것으로만 보였던 우리의 일상은 그렇게 허술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br>"냉장고 문을 닫은 세쓰나는 린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래는 암울할지도 모르지만, 달걀과 우유와 설탕은 어지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아. 너는 너랑 엄마가 먹을 푸딩을 네 힘으로 언제든 만들 수 있어." 세상 전부가 싫다는 듯 짜증이 가득했던 소녀가 지금은 조용히 세쓰나를 바라보았다. 맑은 눈동자가 천천히 물기를 머금고 흔들리는 것을 가오루코는 바라보았다."&nbsp; (p.133~p.134)<br>한 번의 게으름이 다음에 할 일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다음이 두려워 오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그때그때마다 빠릿빠릿하게 처리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번쯤 미루기도 하고, 느긋하게 게으름을 피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는 곧 제자리로 돌아오곤 합니다. 그렇게 일상은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다시 아침이 찾아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내재된 마음의 회로가 일순 모든 것을 포기한 양 멈추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필요로 하는 순간입니다. 마음의 회로가 멈춘다고 해서 생존에 필요한 일상의 회로조차 멈추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설 &lt;카프네&gt;는 독자들에게 그것을 말하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은퇴 이후를 생각하며 - [스스로의 회고록 - 당신의 삶 쓰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34074</link><pubDate>Thu, 23 Apr 2026 13: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340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532063&TPaperId=172340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479/59/coveroff/k22253206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532063&TPaperId=172340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스스로의 회고록 - 당신의 삶 쓰기</a><br/>윌리엄 진서 지음, 신지현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17년 11월<br/></td></tr></table><br/>어떤 일이든 이론에 강한 사람이 있고, 실전에 강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나처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미리 이것저것 알아도 보고, 별 소용도 없는 것조차 찾고 또 찾는 바람에 정작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빠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대뜸 일부터 시작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둘 중 어떤 것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다만 개인의 취향이나 성격의 문제일 뿐이다. 이것저것 많이 준비한다고 해서 안 좋게 끝날 일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리도 없고, 어차피 잘 될 일인데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시작한다고 해서 결과가 나빠질 리도 없는 것이다. 인생이란 누구나 초보자이고, 다른 사람과 동일한 조건에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일이든 일절 공부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리 알게 된 약간의 지식이 나처럼 소심한 이로 하여금 처음 하는 어떤 일을 두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공부란 두려움을 없애는 방편이며, 두려움이란 그 분야를 전혀 모른다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br>"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 것과 실제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순간 걱정부터 밀려올지도 모른다. 뒤죽박죽 얽히고설킨 과거에서 어떻게 일관적인 내러티브를 끌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내러티브를 시작해야 할까? 어디서 멈춰야 할까? 내 글을 읽고 기분이 상하는 사람은 없을까?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글로 남기고 싶은 기억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의심스러운 생각이 솔솔 피어오른다. 내가 제대로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이야기를 쓴다 한들 사람들이 관심이나 가져 줄까? 내 이야기가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 아닐까? 자, 이제 이런 의심은 떨쳐버려도 좋다. 작가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존재다. 여러분도 글을 통해 무언가를 추구할 자격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집필하는 목적은 여러분에게 글을 쓸 자격과 그에 필요한 도구를 쥐어 주기 위해서다."&nbsp; (p.19)<br>저널리스트이자 편집자였고, 대학에서 오랫동안 논픽션 글쓰기를 가르쳐 왔던 윌리엄 진서의 자전적 글쓰기 지침서 &lt;스스로의 회고록&gt;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글쓰기 작법서와는 결이 크게 다르다. 글쓰기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lt;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gt;나 스티븐 킹의 &lt;유혹하는 글쓰기&gt;가 글쓰기의 기초와 방법론을 제시하는 책이라면 &lt;스스로의 회고록&gt;은 우리들 각자가 살아온 기록을 글로 옮겨보라는 권유이자 그런 욕구를 지닌 이들에 대한 답신이다. 그러나 회고록이라 함은 단순히 자신의 삶의 기억에 대한 기록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록이 서사로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도 나의 글을 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br>"우리는 흥미로운 삶을 경험하면 흥미로운 회고록이 그냥 만들어질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네 삶에는 질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술술 글을 썼을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무려 8년 동안 일곱 번이나 원고를 고쳐 썼다. 그는 독자들이 대화를 엿듣는 것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글쓰기 기법 - 평론가 마가렛 풀러는 이를 '모자이크 방식'이라 규정했다 - 을 사용했다. 그는 나무꾼으로서 숲 속에 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작가로서 숲 속에 가 불멸의 고전을 창작했다."&nbsp; (p.214)<br>내 주변에도 은퇴자가 많다. 그들 대부분의 고민은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을까? 하는 문제이다. 물론 이따금 경제적 고민이 끼어들기도 한다. 모르는 사람들은 편하게 "여행이나 하면서 살아."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행도 하루이틀이지 자신에게 남겨진 긴긴 세월 동안 주야장천 여행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체력이 받쳐주질 않는다. 젊은 시절에는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있는 체력이 있었지만 돈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은퇴자의 경우에는 이와 반대로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물론 10년이고, 20년이고 여행만 다닌다면 경제적 문제가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손에 잡아본 적도 없는 붓을 들고 그림 그리기에 매진할 수도 없다. 은퇴 이후의 사업이나 부업에 대해서는 은퇴 이전부터 많이 듣고 배워 보았으나 정작 자신을 돌보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 것이다.<br>"나는 학생들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옳은' 길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 모두가 서로 다른 존재이며, 그들은 각자 출발점이 다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변화는 삶의 활력소이며, 꼭 정해진 길만 밟으라는 법도 없고, 세상에 한계는 없다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나는 매주 수요일 오후 학생들과 차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학문 외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 - 예일대 학생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 - 을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편하게 들어본다."&nbsp; (p.176)<br>사실 이 책은 책의 저자인 윌리엄 진서 자신의 회고록에 가깝다. 그럼에도 작가는 자신의 회고록을 본보기로 삼아 책을 읽는 당신도 자신의 회고록을 써보라고 권한다. 그가 말했듯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이 갖고 있던 기억은 사라지지만, 글을 남기면 그 기억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각자의 진실이 있다.'라고 쓴 그의 문장 역시 곱씹어 생각해 볼 만하다. 은퇴 이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취미를 갖는다는 건 어쩌면 가장 저렴하면서도 가장 유익한 여가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여가 생활이 마냥 답답하고 단조롭다고 느낄 사람이 대다수일 터, 훈련이 되지 않은 이에게는 어려운 선택일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구상의 모든 삶에서 귀하지 않은 게 없는 까닭에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본인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죄를 짓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것을 읽고 배울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읽어볼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쓴 책을 읽는 다른 누군가의 문제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479/59/cover150/k22253206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4795928</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우리의 말과 글에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30038</link><pubDate>Tue, 21 Apr 2026 14: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30038</guid><description><![CDATA[우리가 하는 말과 글에도 어떤 생명력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나의 생각이 다소 불편한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이것이 미신처럼 여겨질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노래를 하는 가수들도 자신의 인터뷰에서 이따금 '가수는 노래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말을 종교와 상관없이 언급하곤 합니다. 물론 연기를 하는 배우도 '배우는 배역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말에 대한 사실을 확신하거나 증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살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니 그럴듯하다는 뜻으로 가벼이 하는 말일 테지요.<br>이와 같은 생각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미신처럼 퍼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를 맹신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말입니다. 변변한 의료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과거에는 이런 생각이 지금보다 훨씬 더 설득력을 얻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까닭에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이름의 경우에는 더욱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을 테지요.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 면역력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자신의 이름 대신에 험한 이름으로 불려지곤 했습니다. 예컨대 개똥이, 말똥이 등의 이름 같지도 않은 이름이 아이들에게 붙여지곤 했었습니다. 이런 풍습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닌 듯 베트남계 미국 작가인 오션 브엉의 소설 &lt;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gt;에도 등장합니다.<br>"저한테는 예나 지금이나 별명이 많았죠. '리틀독'은 란 할머니가 부르시는 별명이었어요. 누가 당신 자신과 딸에게 꽃 이름을 지어주신 분으로 하여금, 그 손자는 '개'로 부르게 했을까요? 자신의 것을 경계하는 여인, 바로 할머니였죠. 아시겠지만 란 할머니가 자란 마을에서는 아이가 종종 무리에서 가장 작거나 허약하면, 저처럼요, 가장 경멸할 만한 것들을 따서 이름을 지었어요. 악마, 유령아이, 돼지코, 원숭이, 들소머리, 후레자식...... 리틀독은 그만하면 부드러운 축에 들었죠. 그렇게 한 것은, 건강하고 예쁜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악령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뭔가 흉측하고 섬뜩한 존재의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들으면, 그 아이를 살려준 채 그 집을 지나칠 거라는 이유에서였어요.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너무 가치가 없어 건드리지 않고 살려둘지 모를 어떤 것을 딴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죠."&nbsp; (p.35)<br>나이가 들고 세상의 이치에 대하여 하나둘 깨우쳐 간다는 것은 경계하고 저어하는 일들이 그에 비례하여 늘어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역시 해가 갈수록 남에게 하는 말 한마디조차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말이 씨가 될 수도 있고, 나의 말이 상대방에게 해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그런 것까지 모두 신경 쓰면 세상을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며 우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말만 하고 살기에도 우리의 수명은 짧기만 할 뿐입니다.<br>황사의 영향인지 아침부터 뿌옇던 하늘은 오후가 되어서도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뚝 떨어졌던 아침 기온은 낮이 되자 제법 오른 듯합니다. 변덕이 심한 봄 날씨. 유럽을 여행하고 있는 아들은 런던과 파리를 거쳐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했다고 알려왔습니다. 아들이 유럽을 향해 떠난 지 벌써 보름이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건강하게 여행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다른 누군가의 염려와 기도 덕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말과 글에도 보이지 않는 생명력이 존재하고, 그것이 서로에게 반복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믿게 됩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누군가의 데뷔작을 읽는다는 건 - [남극]</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24429</link><pubDate>Sat, 18 Apr 2026 15: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244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034089&TPaperId=172244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79/65/coveroff/k7520340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034089&TPaperId=172244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남극</a><br/>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br/></td></tr></table><br/>독서를 즐기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맘에 드는 작가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예정에도 없던 '전작(全作) 읽기'라는 걸 하게 되는데, 여기까지는 뭐 그렇다 치더라도 하나 조심해야 할 게 있다. 작품을 읽는 순서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그 작가가 더 좋아질 수도 있고,&nbsp;단박에 싫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작가를 만났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못 믿겠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다른 작품은 어떻게 순서를 정하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겠지만 데뷔작을 어떤 순서로 정하느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나의 경험으로는 그러하다. 누구에게나 데뷔작은 자신의 전체 작품 중에서 남에게 자주 내보이기 싫은 '아픈 손가락'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아직 틀이 잡히지 않은 미숙한 문체와 과한 의욕으로 인한 비약적인 구성 등 돌이켜보면 당장이라도 그때로 되돌아가 바로잡고 싶은 결함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문제는 비단 작가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은 아니고, 책을 읽는 독자들도 어떤 것이 문제라고 정확히 지적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는 내내 '뭔가 어색한데'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마련이다. 물론 데뷔작부터 크게 인기를 끌기 시작하여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라면 그런 문제점을 느끼기 어렵지만, 데뷔는 한참 전에 했었는데 그동안 인기작을 한 권도 내지 못하다가 어떤 한 작품으로 인하여 갑작스럽게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하게 된 작가라면 데뷔작에 대한 독자의 낮은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듯 보인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글을 쓰는 일도 기술임을 감안할 때 연륜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br>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클레어 키건의 작품을 한 번쯤 읽어본 독자라면 작가가 쓴 다른 작품이 뭐가 있는지 알아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거쳐왔다. 몇 권 되지도 않지만, 각각의 책들이 두껍지 않은 분량으로 엮인 까닭에 책을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나 망설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택이&nbsp;너무나 쉬웠던 게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었다. 정제된 문장과 다층적인 의미의 언어 선택, 그리고 절정과 결말의 순한 이어짐, 책을 덮은 후에도 길게 이어지는 여운 등으로 인해 나는 '이게 뭐지?' 하는 알 수 없는 감정과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 주제의식,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 교훈 등 책을 읽은 후의 묘한 흔들림으로 인해 간단한 리뷰를 쓰는 일조차 힘에 겨웠다. 나는 여전히 내가 읽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리뷰를 미루고 있다. 기약도 없이 말이다.<br>"호흡이 차분해졌다. 옆방에서 커튼이 파닥거리는 소리가 났다. 남자가 창문을 열어놓고 갔다. 풀려나려고 애를 쓰느라 솜털 이불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녀는 알몸이었다. 이불에 발이 닿지 않았다. 냉기가 들어와서 집 안에 퍼지며 방을 채웠다. 그녀가 몸을 떨었다. 차가운 공기는 밑으로 내려오지, 그녀가 생각했다. 결국 떨림이 멈추었다. 온몸이 무감각해졌다. 그녀는 혈관 속의 피가 느려지고 심장이 쭈그러드는 것을 상상했다. 고양이가 침대에 펄쩍 뛰어오르더니 매트리스 위를 돌아다녔다. 누그러진 분노가 공포로 변했다. 그 역시 지나갔다."&nbsp; (p.37 '남극' 중에서)<br>그렇다. 표제작인 '남극'을 비롯하여 열다섯 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이 책은 클레어 키건의 데뷔작이다. 그러나 많은 독자와 평론가들이 데뷔작에 내리는 박한 평가를 클레어 키건은 가뿐히 피해 가는 듯하다. 오히려 과분하다 싶은 칭찬과 돋보이는 추천사 등으로 인해 작가의 이름이 묻히는 느낌이다. 사실 빼어난 실력의 작가 곁에는 신랄한 평을 아끼지 않는 독한 평론가가 있어야 더 좋은 작품을 끊이지 않고 출간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클레어 키건의 애독자인 나로서도 그녀의 데뷔작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소 비약적인 구성과 특이한 소재의 선택 등은 '역시 데뷔작은 데뷔작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데뷔하는 작가는 사실 다소 평이하다 싶은 소재와 구성, 그리고 웅숭깊은 문장 등을 가지고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고, 그와 같은 불안이 작가로 하여금 자극적인 소재나 특이한 구성으로 안내한다.<br>"하지만 나는 정신 병원을 계속 찾아간다. 복도에서 나는 소독약 냄새, 간호사들의 고무창 신발, 일요일 신문을 두고 다투는 소리가 좋다. 어머니는 광기가 핏줄에 흐르는 것이라고 항상 말했고 나는 양가에서 그것을 물려받았다. 내가 그곳에 가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곳에 익숙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약간,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곳을 아주 조금 받아들이는 것이다. 백신처럼 말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직시해야 한다. 그러면 무엇이든 대비할 수 있다."&nbsp; (p.124~p.125 '폭풍' 중에서)<br>표제작인 '남극'은 남편과 가정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과감한 일탈을 시도하는 이야기로 술집에서 만난 남자의 집으로 가 욕망을 해소한 후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녀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사건이 전개되고 만다. 폭풍을 먼저 감지할 만큼 예민했던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사망 이후 그 예민함이 광기로 변하여 가족 전체를 뒤흔들게 되고, 자신 역시 어머니를 닮았다는 사실을 인지한 딸은 불안을 관리하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다는 내용의 '폭풍'과 오래 살던 집을 철거하고 개발을 진행하려는 시에 맞서던 할머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집을 처리한다는 내용의 '불타는 야자수' 등 클레어 키건의 문학적 특징과 섬세함이 드러나는 단편들이 줄곧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br>"소년은 바깥으로 나가서 별을 올려다보았다. 어머니는 별이 우리를 내려다보는 천사라고 말했다. 엄마는 하느님을 믿었다. 사람들은 엄마가 천국에 갔다고 했다. 소년은 집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 집은 꽉 차 있으면서 동시에 텅 비어 있었다. 엄마가 꽃병에 꽂아둔 스노드롭이 있고, 아버지를 위해 다려서 나무 옷걸이에 걸어둔 셔츠도 있고, 안락의자 밑에 엄마의 털 슬리퍼도 있었다."&nbsp; (p.317 '불타는 야자수' 중에서)<br>지금은 대한민국의 인기 작가 중 한 명이 된 정유정 작가의 데뷔작인 &lt;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gt;를 작가의 다른 작품 몇몇을 읽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겨우 읽었던 게 문득 떠오른다. 나는 지금도 ' 그 책은 차라리 읽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작가가 글을 쓰다 보면 때로는 독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평균 이하의 작품을 쓸 때도 있고, 인생작이라고 할 만큼 기대 이상의 멋진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작가가 맘에 든다고 해서 예정에도 없던 '전작 읽기'를 시도한다는 건 꽤나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가 항상 나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내놓을 거라는 기대는 얼마나 황당하고 어리석은가. 설령 나의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이 나왔다 할지라도 조용히 다음 작품을 기다려주는 게 독자로서의 성숙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제 나이가 들어 그가 쓴 글이 예전처럼 에너지가 넘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세월의 무상함을 함께 느끼며 슬퍼하는 것도 현명한 독자로서의 바른 태도가 아닐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79/65/cover150/k7520340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0796507</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빠르게 걷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20683</link><pubDate>Thu, 16 Apr 2026 15: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20683</guid><description><![CDATA[앞선 속도가 누군가에게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꽤나 어린 시절에 배웠던 듯합니다. 아침에 눈만 뜨면 밭에 일을 하러 가거나 학교나 직장으로 뿔뿔이 흩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생존이 절실했었고, 삶의 목표 역시 생존에 근접한 것들로 채워지던 시기였습니다. 전기도, 전화도 없던 그 시절에 죽음은 일상처럼 가까웠고, 사람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어느 한 곳에 소속이 되고자 필사적이었습니다. 반드시 번듯한 직장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동네의 작은 식당일 수도 있고, 동네 인근의 공장일 수도 있고, 두어 평 남짓의 작은 밭뙈기일 수도 있었습니다. 학교나 직업훈련소일 수도 있었습니다.<br>그러나 어느 곳에도 소속될 수 없었던 어린애나 노인은 예외였습니다. 그들은 죽음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말입니다. 그 시절의 죽음은 대개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집은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가장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집 안 곳곳을 낮게 떠다녔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나는 엄마가 외출할 때마다 집 안에 혼자 남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기를 쓰고 엄마의 뒤꽁무니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가던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습니다. 곧 있으면 형과 누나가 학교에서 돌아온다는 말만 남긴 채 말입니다. 더디기만 했던 나의 걸음 속도로 당시에는 젊었던 엄마의 걸음을 따라잡는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엄마의 걸음을 늦추거나 멈출 수 있는 방법은 거리가 멀어진 엄마의 귀에 들릴 수 있도록 악을 쓰고 울거나 크게 넘어지는 방법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앞선 속도가 누군가에겐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대략 그 시절에 배웠던 듯합니다.<br>한낮 기온이 초여름 날씨처럼 더위를 느끼게 하는 요즘, 계절이 걷는 속도는 인간의 인식 속도를 한참이나 앞서가는 듯합니다., 냉정한 자연의 속도가 무감각한 인간의 속도를 앞서기 시작한 건 어쩌면 꽤나 오래전에 비롯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클레어 키건의 단편집 &lt;남극&gt;에 나오는 문장을 옮겨봅니다.<br>"우리는 새벽까지 그곳에 있었고, 건초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올라왔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손이 어떻게 15년 동안 어머니를 멍들게 했는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말해주었다. 내가 똑같이 잔인한 눈을 가졌기 때문에 나도 아버지만큼 싫다고 했다."&nbsp; (p.121 '폭풍' 중에서)<br>당시의 아버지는 언제나 어머니를 한참이나 앞질러 걸었고,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같은 속도로 걷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세월이 한참이나 지난 지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의 걸음 속도에 보조를 맞추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품과 같았던 자연은 이제 우리 인간의 속도를 한참이나 앞질러가고 있습니다.&nbsp;앞선 속도가 누군가에겐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nbsp;아주 오래전에 깨달았던 듯합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블라인드를 치며 -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 인생이 가벼워지는 15가지 불교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8435</link><pubDate>Wed, 15 Apr 2026 15: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84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5332&TPaperId=172184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37/5/coveroff/k7321353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5332&TPaperId=172184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 인생이 가벼워지는 15가지 불교 수업</a><br/>토니 페르난도 지음, 강정선 옮김 / 윌마 / 2026년 02월<br/></td></tr></table><br/>불교의 기본 교리라고 하면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로 집약될 수 있다. 고집멸도(苦集滅道)로 대표되는 사성제에서 고제(苦諦), 즉 삶이 곧 괴로움(生卽苦)으로 이해되는 까닭에 태어나고(生苦), 늙고(老苦), 병들고(病苦), 죽고(死苦), 이별하고(愛別離苦), 함께하고(怨憎會苦), 획득하지 못하고(求不得苦), 오음에 집착하는(五陰盛苦) 고통은 삶 전체로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른바 팔고(八苦)라고 일컫는 이 고통은 원인이 있으며(集諦), 대중은 이 원인을 알지 못한다. 이른바 무명(無明)이라고 하는 '알지 못함'의 상태를 벗어나는(滅諦) 것을 열반이라고 하며 이것이 곧 멸성제(滅盛諦)이다. 괴로움의 원인이 '알지 못함'인 반면 이것에서 벗어나면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괴로움을 멸하기 위한 길(道諦)로 제시되는 8가지의 바른 수행방법, 즉 팔정도(八正道)가 그것이다. 올바른 견해(正見), 올바른 생각(正思惟), 올바른 말(正語), 올바른 행동(正業), 올바른 생활방식(正命), 올바른 노력(正精進), 올바른 마음가짐(正念), 올바른 집중(正定)을 통하여 인간의 고통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br>인간의 삶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존재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함으로써 이를 따르는 대중 누구나 열반에 들 수 있게 하겠다는 불교의 원대한 꿈은 일견 타당하고 논리적인 것으로 보인다.&nbsp; 그러나 이를 엄격히 지키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수행방식은 우리네 삶을 원숙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의 지침서인 동시에 누구나 알아야 할 생활 철학인 셈이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나는 불교가 부처님에게 각자의 소원이나 빌고 의식에 필요한 제문으로서 경전을 읊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타의 종교와 같은 것으로 보지 않아 왔다. 그리하여 나는 비록 나의 종교이자 신앙으로 천주교 세례를 받은 몸이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던 스님과의 유대를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불교 서적을 뒤적일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일에 대하여 마음의 부담이나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br>"이 책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꼭 불교 신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불교 신자도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이 기독교나 이슬람교, 힌두교, 유대교 신자이든 무신론자이든 상관없다. 이 책에 담긴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은 당신의 믿음을 전혀 위협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여기에 제시된 가르침을 실천하다 보면 이전보다 더 친절하고 침착해진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nbsp; (p.15 '머리말' 중에서)<br>&lt;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gt;의 저자인 토니 페르난도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분인 듯하다. 정신과 의사이자 수면의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면서 네 차례나 임시 출가하여 승려로 수행한 경력이 있다고 하니 불교에 대한 지식으로만 따진다면 나와는 비교가 되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앞에서 말했던 팔정도는 다시&nbsp;세 가지 범주인 계(戒), 정(定), 혜(慧)로 나뉜다. 윤리적 행위를 나타내는 계(戒)에는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이 속하고 정신집중을 나타내는 정(定)에는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 그리고 지혜를 나타내는&nbsp;혜(慧)에는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가 포함된다. 저자 역시 이를 염두에 두고 목차를 정한 듯하다. 1부 '正見----바른 견해', 2부 '戒----계', 3부 '布施----보시', 4부 '定----정', 5부 '慧----혜', 6부 '慈悲----자비'의 총 6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부처님 말씀과 더불어 이에 알맞은 저자의 상담 사례를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br>"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취하지 말아야 한다. 맑은 정신에서 신중한 생각과 말, 행동이 나온다. 이는 타인에게 안전이라는 선물을 줄 수 있다."&nbsp; (p.132)<br>우리나라의 문화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외국인의 수가 부쩍 늘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뿐만 아니라 불교라면 체머리를 흔들던 젊은이들에게도 그 이미지가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시쳇말로 우리나라의 사찰이 힙한 장소로 거듭난 것이다. 이와 같은 성과의 이면에는 물론 불교계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나날이 복잡해지는 현대인의 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만큼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도 더는 없겠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나간 게 아닌가 싶다.<br>"크든 작든, 충격적이든 사소하든, 우리는 모두 고통과 시련을 겪는다. 병을 겪고, 외로움을 느끼고, 오해받기도 하며, 걱정과 불확실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누군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상관없다. 육체와 정신을 갖고 있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고통을 겪게 되어 있다. 그 고통과 시련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nbsp; (p.310~p.311)<br>해가 길어지면서 한낮 기온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한낮 기온은 벌써 초여름을 방불케 한다. 봄인가 싶던 계절은 저만치 앞선 여름을 기웃거리는 듯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짐짓 걱정이 되는지 '올여름은 얼마나 더우려고 벌써부터 이래?' 하면서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더위도 더위지만 더위로 인한 불쾌지수가 걱정이 되는 것이다.<br>오늘은 점심 식사를 친한 친구와 함께했었다. 오전에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 장례식장에 다녀왔다는 친구는 표정이 어두웠다. 그의 친구는 한밤중에 심장마비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순서를 기다리는 도중에 사망했다고 했다. 전에도 사고로 죽은 친구는 있었지만 병으로 죽은 친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도 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겉보기에 우리의 삶이 단단하게 유지되는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허약한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만큼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리 없다고 굳게 믿고 사는 우리는 또 얼마나 허황된 생각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가. 기우는 햇살이 사무실로 짓쳐 들고 있다. 블라인드를 쳐야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37/5/cover150/k7321353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37055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어떤 믿음도 영원하지는 않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2019</link><pubDate>Sun, 12 Apr 2026 16: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2019</guid><description><![CDATA[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주변에는 직업적인 정치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나 이웃, 혹은 가족이나 친척 중에도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는 듯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등학교 동창 중 한 명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도와 당선시킨 후 그의 특별보좌관인가 뭔가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그 친구마저 연락이 뜸한 상태가 되는 바람에 주변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은 숫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정치인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는 전무한 상태에서 언론과 카더라 통신에 의존하여 형성된 정치인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과 이미지는 온갖 부정적인 정보로 도배가 된 조악한 것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나에게 고착화된 그들의 이미지는 사기꾼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부류이거나, 적어도 선량한 일반 시민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뿔만 달리지 않았을 뿐 도깨비와 진배없는 형상이었습니다. "선거 때 무슨 얘기를 못하나. 표가 나온다면 뭐든 얘기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던 MB의 본심이 담긴 명언(?)을 듣고서 나는 '정치인=사기꾼'이라는 등식을 더욱 굳건히 믿게 되었습니다.<br>그나마 그들 부류와 조금쯤 다른 정치인이 있었다면 아마도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특정 정치인을 완벽히 신뢰하거나 신뢰를 넘어 존경의 차원으로 발전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분은 정치를 할 분이 아닌데...' 하는 식의 안타까움을 느꼈을 뿐입니다. 정치인들 대부분이 유권자들 앞에서는 아주 환한 미소를 보이다가도 뒤돌아서는 순간 인상을 쓰기도 하고, 선거 때면 가장 낮은 자세로 악수를 청하다가도 당선이 되자마자 가장 뻣뻣한 자세로 고개를 쳐드는 그런 인간들이라는 믿음을 내 머릿속에서 지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이번 중동전쟁을 보면서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태도가 그닥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한 국가의 최고책임자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을 텐데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는 그들의 사적인 이익에만 몰두할 뿐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그들 국가의 국민이 한편으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br>전쟁이란 모름지기 명분이나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미국과 이스라엘은 그런 정당성은 뒷전으로 한 채 '내가 하고 싶다는데 니들이 어쩔 건데?' 하는 식의 제국주의 논리에 의거한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미국과 이스라엘 국민 전체를 테러 대상자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여행과 통신이 자유로운 현대에 있어 그들 국가의 국민은 언제든 테러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는 국민의 안전을 방기한,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한 범법자라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국가의 국민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의식 수준이 아주 낮거나 민주주의를 포기한다는 선언이겠지요.<br>그런 의미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깡패 짓거리에 대해 비판이나 논평의 글 또는 대담이나 인터뷰를 하는 것을 단 한 차례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국격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을 비겁한 자의 품에 숨게 만드는 비열한 짓이었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규탄함에 있어서도 정작 이를 발언해야 할 대통령이 침묵함으로써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겁을 먹고 뒤로 숨는다는 인상을 전 세계에 알려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민은 정의의 편에 서지 않는 비겁한 족속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br>그런데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엑스에 이스라엘 방위군인 팔레스타인 아동을 고문한 뒤 옥상에서 떨어뜨렸다고 주장하는 게시글과 영상을 공유하면서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썼던 것입니다. 해당 영상이 2024년 9월 촬영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국제인도법은 준수돼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 역시 타협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에 반발하는 이스라엘 외무부의 논평과 찌질하기 짝이 없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논평이 있었지만 그것은 세계인의 상식과 논리에도 맞지 않는, 그리고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는 부적절한 발언이었습니다.<br>내가 이재명 대통령의 대응을 높이 평가하는 까닭은 우리가 세계인의 관점에서 언제나 정의와 평화의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 전체의 안위가 지켜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미국 국민은 이번 사태로 인해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제한될 수도 있으며 언제든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이번 전쟁을 촉발시킨 정치 지도자가 져야 할 것입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먼저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비단 금세기에 들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고려의 문신 서희와 거란의 장수 소손녕의 담판에서도 전쟁의 명분이 주된 논지였습니다. 소손녕이 싸움도 하지 않고 군대를 물린 것도 명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는 세계사에서도 자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번 전쟁은 어떤 명분도 없이 당사국인 이란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피해와 고통만 안겨주었을 뿐입니다. 엑스에 올린 이재명 대통령의 의견 표명으로 인해 '정치인=사기꾼'이라는 오래된 믿음에 약간의 균열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이재명과 같은 정치인이라면 적당한 신뢰를 표명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다음에 만날 때까지 안녕 - [데미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0238</link><pubDate>Sat, 11 Apr 2026 15: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02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137401&TPaperId=172102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6/4/coveroff/k8021374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137401&TPaperId=172102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데미안</a><br/>헤르만 헤세 지음, 김희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나이가 들수록 가까운 과거보다 먼 과거에 더 집착하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렇다. 이 사실에 대해 '왜 그럴까?' 하고 이따금 생각할 때가 있다. 어차피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반감이랄까 아니면 세월의 역류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젊은 시절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먼 과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회상이 좀 씁쓸하게 여겨지곤 한다. 어쩌면 나는 내가 살아왔던 지난시절을 되돌아보며 나를 성장시켰던 단계단계마다의 성과와 실수를 되짚어보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서 나의 실수를 바로잡을 수는 결코 없겠지만 말이다.<br>단 한 번뿐이라는 일회성의 인생에 대한 인식은 젊은 시절에는 잘 와닿지 않는다.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무한대인 듯 여겨지기 때문이고, 죽음이란 그 형태마저 알 수 없는 아주 희미한 흔적쯤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츰 나이가 들수록 죽음은 더욱 선명해지고 남은 시간에 대한 어렴풋한 인식 또한 구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먼 과거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었던 건 아마도 그쯤이지 싶다. 이 시기가 되면 독서 취향도 크게 변하는 듯하다. 우리가 이른바 성장소설이라고 부르는 어린 주인공이 커가는 과정을 다룬 소설에 관심이 가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동화나 그림책에 큰 관심이 가기도 한다. 성장소설로 분류되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lt;데미안&gt;에 크게 관심을 가진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br>"지금까지 이야기한 체험담 가운데 이 순간이 가장 선명하게 뇌리에 남았다. 그것은 신성한 하늘처럼 우러러 온 아버지의 이미지에 처음으로 생긴 균열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받친 기둥에 쩍 하니 금이 간 순간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독립적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 이런 기둥을 무너뜨려야만 한다. 이 체험으로 우리 운명의 중요한 윤곽이 그려진다는 점을 읽어 낼 줄 아는 사람은 아쉽게도 많지 않다. 그런 상처와 균열은 대개 봉합되고 잊히지만,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가슴 속에서 계속 피를 흘리며 아픔을 호소한다."&nbsp; (p.31)<br>싱클레어의 삶을 단계별로 뒤쫓고 있는 이 소설은 이미 그 시절을 거쳐온 까닭에 자신의 삶과 견주어 볼 수 있는 독자에게 꽤나 흥미롭게 읽힌다. 청소년기에 우리는 얼마나 하찮은 계기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으며, 얼마나 큰 계기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삶을 고집스럽게 지켜왔던가.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얼마나 유약하며, 인생은 또 얼마나 단단한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프란츠 크로머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싱클레어. 그 괴롭힘은 성인이 된 후에도 큰 상처로 남지만 괴롭힘의 발단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아이들이 노골적으로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리려는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기숙 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외톨이 신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기숙사 선배인 알폰스 베크나 같은 외톨이 신세인 크나우어와도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길가에서 우연히 본 소녀의 그림을 그려 베아트리체라고 명명하며 숭배하는 싱클레어. 싱클레어를 유일하게 일깨우는 존재인 데미안은 그가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알 속에서 안주하지 말고, 깨고 나오려 분투하라고.<br>"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분투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은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nbsp; (p.147)<br>학창시절의 우리는 관념의 세계에서 산다. 관념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실존의 세계는 마냥 하찮고 낮게 보인다. 온갖 부조리와 악과 부정이 판치는 세상. 그러나 학업을 마친 우리가 실존의 세계로 접어들었을 때, 과거 자신이 높은 곳에서 바라보던 실존의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하는 자신의 삶은 '우리가 갈급하는 삶의 요구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깊이 깨닫게 된다.<br>"인간은 자기 자신과 합일을 이루지 못할 때에만 두려움을 품지. 자기 자신이 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두려워해. 자신 안의 알 수 없는 무엇인가 도사리고 있다고 두려워 떠는 사람들의 공동체! 그들은 느끼지. 그동안 굳게 믿어 온 삶의 법칙이 더는 맞지 않음을. 종교도, 풍습도, 윤리도 우리가 갈급하는 삶의 요구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건 낡은 석판에 새겨진 케케묵은 계명이라는 사실을. 그런 건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의 진정한 욕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nbsp; (p.221~p.222)<br>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운이 좋게도 자신의 곁에서 필요할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는 데미안과 같은 친구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죽을 때까지 함께한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고민을 스스로 해결하고, 자신의 세상에서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오려 분투할 뿐이다. 그리고 삶의 후반부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볼 때, 어쩌면 그런 하찮은 계기로 인해 자신의 삶이 그토록 크게 변할 수 있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그런 과정 과정이 아름답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음을 깨닫게 된다.<br>유럽 여행 중인 아들은 경유지인 뮌헨 공항에서 연결 편을 놓치는 바람에 다른 비행기로 리부킹을 하느라 예정보다 늦게 런던 숙소에 도착했다고 알려왔다.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우리도 어쩌면 경유하는 어느 공항에서 잠시 길을 잃고 헤매게 될지도 모르지만, 결국 자신이 목적했던 어느 숙소에서 피곤한 몸을 쉬게 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희망은 비행기를 날게 하는 항공유처럼 우리들 각자가 원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줄 것이다. 그리고 다음 기착지를 향해 새로운 희망을 품어야 한다. 그러나 다음 기착지에서 누구와 조우할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다음에 만날 때까지 안녕을 고해야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6/4/cover150/k8021374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86044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내일 아침에는 어쩌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06574</link><pubDate>Thu, 09 Apr 2026 16: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06574</guid><description><![CDATA[오전에 시작된 비는 오후가 되어서도 여전히 그쳤다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무실 앞 화단에 핀 목련도 이제 제 역할을 마쳤다는 듯 흐물흐물 생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꽃이 진 벚나무 가지에선 연녹색 새순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이지만 가까스로 봄이 피어날 때마다 나는 여전히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됩니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 맞는 봄인 것처럼 말입니다. 주택가보다 기온이 낮은 산에는 지금도 여전히 꽃의 난장입니다. 산벚꽃, 진달래, 조팝꽃, 복숭아꽃...<br>군을 제대한 아들은 오늘 아침 드디어 유럽을 향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이동하였던 아들은 무사히 비행기를 탔다는 메시지를 카톡 문자로 남겼습니다.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는 답글을 남기면서도 나는 내심 걱정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행이란 언제나 계획하지 않았던, 자질구레한 사건 사고들의 연속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런 일들로 인해 혹여라도 아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지나 않을지 별별 걱정으로 속을 끓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만 모든 게 우리가 의도한 대로 진행된다면 우리는 굳이 자신이 유지하고 있던 삶의 태도나 습관을 변경할 이유가 없겠습니다. 여행도 이와 같아서 미리 계획한 대로 착착 진행된다면 여행은 그야말로 장소만 달라진 일상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조금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계획에서 벗어난 일상을 마주함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여행을 경험하고, 그것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br>"삶이 끝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덧없어진다. 죽음이라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 소유와 명성, 권력, 외모, 학위 등 집착하던 모든 것은 의미를 잃는다. 나는 이 사실을 죽어가는 환자와 인터뷰하며 배웠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환자는 모두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선물인지 이야기했다. 그들은 의사나 간호사가 함께한다고 느낄 때 따뜻함을 느꼈다."&nbsp; (p.150 &lt;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gt; 중에서)<br>무사 앗사리드가 쓴 &lt;사막별 여행자&gt;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합니다. '여행은 자기 자신에게로 떠나는 것이며, 또한 그 여행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행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삶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 순간에는 소유해야 할 것도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외할머니는 아들에게 선물은 절대 사 오지 말라시며, 사 와봐야 쓰지도 않는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그래도 어찌 그리 야박하게 할 수 있느냐며 가급적 쓸 수 있는 선물을 사 오겠노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유럽 여행을 통하여 아들은 어쩌면 한 뼘 성장한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br>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자맥질하듯 비가 오락가락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어쩌면 먹이를 찾아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의 경쾌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숲에 사는 모든 생명들에게도 오늘의 비가 단비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그저 우리의 삶은 - [그저 하루치의 낙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04301</link><pubDate>Wed, 08 Apr 2026 15: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043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482637817&TPaperId=172043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8/68/coveroff/e4826378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482637817&TPaperId=172043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저 하루치의 낙담</a><br/>박선영 지음 / 반비 / 2026년 01월<br/></td></tr></table><br/>자신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권의 에세이를 쓴다고 가정해 보자. 자신의 경험이나 살아온 이야기만으로 책을 꾸린다면 자칫 자서전으로 흐를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흥미를 이끄는 데에도 실패할 개연성이 높다. 자서전을 써도 될 만큼 유명세를 타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경험에 더불어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한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섞을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말이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의 글을 모아 한 권의 에세이를 엮을 때, 그 성패는 무엇보다도 구성의 밸런스에 있지 싶다. 예컨대 유년시절의 경험담과 직장 생활, 읽었던 책과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을 나누어 4개의 장으로 구성할 경우 유년 시절의 고생담을 너무 장황하게 쓰면 책을 읽는 독자는 글 전체의 느낌이 어둡다고 느낄 확률이 높다. 반면에 자신이 읽었던 책이나 감명 깊게 본 영화를 위주로 글을 쓰면 흔하디흔한 독서 리뷰나 영화 감상문쯤으로 오해할 소지가 높다. 지루함을 느끼는 독자가 몸을 배배 꼬기 전에 주제를 바꿔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제별 분량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작가에게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편집자도 없는 1인 출판사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말이다.<br>"나처럼 뒤늦은 나이에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던 좋아하는 선배가 했던 얘기다. 잠시 귀국했을 때, 네 명의 건장한 공사장 노동자들이 커다란 철판의 네 귀퉁이를 하나씩 잡고 옮기는 장면을 버스 안에서 보는데 왈칵 울음이 쏟아지더라는 것이다. 대번에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당신들은 함께 일하고 있군요. 나는 혼자인데. 서로 합을 맞추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당신들의 일치된 발걸음이 나는 사무치게 부럽습니다. 서로의 안위를 서로에게 맡긴 채, 외롭지 않게, 당신들은 함께 나아가고 있네요."&nbsp; (p.87)<br>박선영의 에세이 &lt;그저 하루치의 낙담&gt;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곁에 지루함을 놓아 두거나 권태를 벗어나게 할 다른 놀잇감을 찾아 자리를 뜨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작가가 책에서 쓴 이야기는 제법 무겁고 논쟁이 될 만한 것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독자들이 이렇듯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까닭은 글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총 4개의 장에서 다루고 있는 글의 분량이나 주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부 '기자라서 좋았고, 기자여서 슬펐다'에서 작가는 기자로서 살았던 17년의 세월을 돌이켜본다. 2부 '내 슬픔의 레퍼런스'에서는 슬픔에 이끌렸던 자신의 감정을 응시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가난과 무력감 등 슬픔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결들을 바라본다. 3부 '타인에 대한 예의'에서 작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각자가 어떤 사회적 책임과 윤리감각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4부 '숭고를 향하는 인간들'에서는 그럼에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 앞서 간 사람들의 사례를 보며 되새긴다. 비슷비슷한 주제인 듯 보이지만 작가는 각각의 주제에 선명한 새깔을 입히는 것은 물론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br>"무엇이 사라지지 않고 축적되는 것일까. 잃게 될까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것, 누구도 내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덕성과 지성이다. 우는 이도 웃게 하는 유머와 함께 울어주는 눈물이다. 타인의 환난을 외면하지 않는 착한 마음과 부당함에 함께 맞서는 용기다. 자신의 오류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수정하는 성찰과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겸손, 지성을 흠모하고 진리를 수행하는 지혜다. 한마디로 좋은 사람의 덕성이다."&nbsp; (p.290)<br>독서와 글쓰기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 중 다수가 자신이 쓴 책 한 권을 갖는 게 소망이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그저 마음속의 꿈으로만 간직한 채 생을 마감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나만의 책을 쓰는 것에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다. 나는 그저 남들에 비해 기억력이 나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나의 단점을 메꾸기 위해 이따금 글을 쓰기도 하고, 남는 시간에 더러 책을 읽기도 할 뿐이다. 나이가 더 들어 글을 쓰는 일조차 힘에 겨운 날이 온다면 나는 이제껏 썼던 글을 모두 없애고 조용히 책이나 읽으며 남은 생을 보낼 생각이다. 남에게 큰 죄도 짓지 않고 지금처럼 조용히 삶을 이어가는 게 꿈이라면 꿈인 것이다.<br>"양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한기가 있다. 그 한기를 감지할 때마다 그렇게 슬퍼질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 너의 견적서를 읽었다. 네겐 나의 값이 이렇게 싸구나. 순식간에 장맛비가 차오르는 한여름의 반지하방처럼 마음은 슬픔으로 출렁거린다. 값싼 내가 슬퍼서가 아니라, 값싼 네가 슬퍼서."&nbsp; (p.215)<br>새벽에 산을 오를 때만 하더라도 쌀쌀하던 날씨는 낮이 되자 금세 풀려 따뜻하다. 지난 비에 듬성듬성 꽃이 떨어진 벚나무는 마치 오랫동안 원형탈모를 앓아 왔던 사람처럼 우듬지가 휑하다. 사는 게 그저 하얗게 쌓이 꽃길만 밟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는 때로 허방을 딛고 비틀거리기도 하고, 숨을 헐떡이며 가파른 고개를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매 순간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처지에 처한다 할지라도 나와 내 주변의 이웃을 돌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나의 삶이 중요한 것처럼 이웃의 삶 역시 같은 크기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이란과 미국의 휴전 소식이 들려왔다. 늦었지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자신의 삶을 하루라도 더 연장하기 위해 이란 국민들은 그동안 얼마나 큰 두려움과 맞서야 했을까. 그리고 이웃의 죽음을 보며 얼마나 안타까워 했을까. 이 모든 게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걸 전쟁 당사자인 미국과 이스라엘의 통치권자는 과연 알기나 할까. 자신들이 얼마나 잔인한 인간이었는가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8/68/cover150/e4826378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86810</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봄비 내리는 주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6453</link><pubDate>Sat, 04 Apr 2026 17: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6453</guid><description><![CDATA[주말에 내리는 비가 고마울 때가 더러 있습니다. 오락가락하는 비를 핑계로 평소에는 누리지 못하던 천상의 게으름을 한껏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깥에는 온종일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아침에 겨우 고양이 세수로 하루를 시작한 나는 늦은 점심을 먹은 후에도 한 손에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고 소파에 누워 나른한 오후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냅니다. 소리도 없이 내리는 봄비가 베란다 통창에 눈물처럼 긴 여울을 만들고, 나긋나긋 풀어진 몸 위로 께느른한 졸음이 쏟아집니다.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기도 하고, TV 스크린은 관객도 없는 영상이 흘러갑니다. 남들은 벚꽃이 지기 전에 꽃구경을 간다고 난리라는데, 나만 홀로 이렇게 비싼 휴식을 즐겨도 되는지 스멀스멀 때늦은 걱정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아파트 화단에 만개한 자목련 한 송이가 위태롭던 순간을 이기지 못한 채 툭 하고 낙하합니다. 시간은 온통 '봄'을 향해 모이고, 오늘처럼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엔 낮과 밤의 경계가 무척이나 모호해집니다.<br>"선은 언제나 희미한 가능성으로만 존재한다, 고 한다면 그건 너무 염세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염세의 극단으로 우리가 내몰릴 때, 저 멀리 흐릿하게 존재하는, 실오라기 같은 가능성으로라도 선을 떠올린다는 것은 인간을 살게 하려는 유전자의 간계다. 희망은 나를 살고 싶게 만든다. 나의 죽음을, 희망은 방해한다.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일 것"이라고 로맹 가리는 말했다.(그 역시 자살했다.) "지성은 나를 염세주의자로 만들지만, 의지로 인해 나는 낙관주의자"라고 안토니오 그람시도 말했다.(그는 자살하지 않았다. 46세로 병사했다.) 희망을 끝내 희망하는 인간의 질병은 염세라는 유혹과 본능적으로 싸운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결국 자살하고 만다는 것은, 신의 섭리란 한낱 인간의 창작물에 지나지 않으며 신을 창조해낸 그 인간이란 종에게서는 저 먼 곳의 희미한 가능성으로라도 선을 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적 자각의 결과인 것이다."&nbsp; (P.323 &lt;그저 하루치의 낙담&gt; 중에서)<br>이렇게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말하자면 날씨에 의해 이성과 본능이 플라스마 상태로 혼재된 이런 날에는, 아무리 가벼운 책일지라도 이성적 추론을 요하는 대목에서는 즉각적 이해가 되지 않아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는 수모를 겪곤 합니다. 급기야 문해력 수준이 나이가 들수록 낮아지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책을 놓고 바깥 풍경에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논리와 근거도 없는 비약은 나와 같은 인간 종에게 '회피'라는 책략을 권고하기도 합니다. 업무로부터의 회피, 독서로부터의 회피, 부모로서의 의무로부터의 회피... 생각해 보면 '회피'만큼 유용한 수단도 더 이상 찾기 어려울 듯합니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슬슬 배가 고파집니다. 낮과 밤이 혼재된 어스름 속에서 하루가 지워지나 봅니다. 가벼운 바람에도 벚꽃잎이 눈처럼 쏟아집니다. 그저 평범한 어느 토요일 만큼의 낙담이 벚꽃에 실려 흩날립니다.<br>]]></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