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꼼쥐님의 서재 (꼼쥐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4 Nov 2026 17:19:24 +0900</lastBuildDate><image><title>꼼쥐</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A_018.gif</url><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꼼쥐</description></image><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오늘 밤에는 - [사람을 읽는 힘, 사기열전 - 2천 년 전 고전에서 배우는 70가지 인생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607329</link><pubDate>Sun, 01 Nov 2026 16: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6073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131586&TPaperId=176073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15/40/coveroff/k0321315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131586&TPaperId=176073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람을 읽는 힘, 사기열전 - 2천 년 전 고전에서 배우는 70가지 인생 수업</a><br/>김태현 지음, 사마천 원작 / 리텍콘텐츠 / 2026년 10월<br/></td></tr></table><br/>사마천의 &lt;사기&gt;에 실린 '열전'은 한번쯤 꼭 읽어보라는 권유를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역사'라는 말만 들어도 골머리가 딱딱 아프고 읽기도 전에 한숨부터 나오는 나로서는 사람들의 권유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차일피일 미루는 일만 반복해 왔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쯤의 한가한 어느 주말 오후에 자주 가는 도서관의 서가를 눈으로만 훑고 지나치던 중 눈에 띄었던 게 &lt;사기 열전 1,2(민음사 간)&gt;이었다.&nbsp; '딱히 읽을 책도 없는데 이 참에 &lt;사기 열전&gt;이나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그때 처음으로 '열전'을 완독함으로써 사마천이 밝히는 3000여 년 전의 역사와 그 시대의 인물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사실 사마천의 &lt;사기&gt;는 본기.세가.열전.서(書).표(表)의 5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나는 그중 '열전'만 겨우 읽은 셈이었다. 그러나 역사서에 기록된 제왕과 제후의 그늘에 가려져 그들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여러 개인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 '열전'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데 더없이 좋은 지침서였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열전'의 일독을 권했던 여러 지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br>"사마천의&nbsp;『사기 열전』은 결국 '인간이라는 종(種)이 거대한 역사의 물살 속에서 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기록한 가장 리얼한 인간학 보고서입니다. 역사적 가치 측면에서&nbsp;『사기』는 동양 역사 서술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고, 인문학적으로는 인간 실존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답을 제시합니다."&nbsp; (p.5 '프롤로그' 중에서)<br>이번에 나는 인문학자 김태현이 펴낸 &lt;사람을 읽는 힘, 사기 열전&gt;을 읽음으로써 '열전'을 재독한 셈이 되었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의 공백은 내 기억마저 희미하게 했던지 어떤 부분에서는 기억이 뚜렷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로웠다. 물론 저자는 &lt;사기&gt;에 실린 '열전'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저자 나름의 관점으로 주제를 정하여 인물을 재분류하고, 핵심 내용을 간결하게 정리한 점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PART 1 '야망과 처세: 판을 읽고 기회를 잡는 방법',&nbsp;PART 2 '권력의 민낯: 부귀영화와 뒤틀린 욕망의 끝',&nbsp;PART 3 '리더십과 용인: 사람을 얻고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nbsp;PART 4 '신념과 의리: 시대를 거스르는 불멸의 가치',&nbsp;PART 5 '전략과 통찰: 난세를 돌파하는 사유의 힘',&nbsp;PART 6 '경계인의 초산: 외면받은 영웅과 시대의 이면',&nbsp;PART 7 '인생과 허무: 인간 존재의 본질과 마주하기'의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은 현대인의 구미에 맞게 체계적으로 짜맞춘 듯한 인상을 받는다. 상인 출신으로 진나라의 재상에 올랐던 여불위의 일대기를 다룬 '여불위 열전'은 '열전' 전체를 읽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일지 모른다.<br>"&lt;여불위 열전&gt;은 상인의 이야기를 통해 투자와 권력, 그리고 인생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현대인에게 매우 날카로운 교훈을 줍니다. 여불위는 미래 가치를 지닌 자초를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으로 천하라는 거대한 이익을 손에 넣었으나, 자신이 만든 시스템인 진나라와 진시황에 의해 파멸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성공은 도리어 자신을 삼키는 독이 되며, 성공 그 자체보다 그것을 감당할 그릇과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절제의 미학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일깨워줍니다."&nbsp; (p.25~p.26)<br>사람들과 부딪히면서 특별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던 나는 '열전'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을 읽으면서 마치 거울 속의 나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여러 번 받곤 했다. 내 안에 잠재해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인간 본성의 여러 형태가 '열전'의 여러 인물들을 통해 보이는 까닭이다. 권력과 부를 탐하는 인간의 욕심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어서 그 욕망을 현실의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터,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알고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비극은 과도한 욕망과 절제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것이 화근인 줄 알면서도 덥석 움켜잡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br>"굴원과 가생의 이야기는 고결한 이상과 뛰어난 식견을 지닌 지식인이 간신의 질시와 군주의 오판, 그리고 권력의 냉혹한 질서 속에서 어떤 비극을 맞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시대의 현실에 맞추어 스스로를 보존해야 하는가라는 지식인의 오래된 처세의 딜레마를 깊이 품고 있습니다."&nbsp; (p.397)<br>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요즘, 오늘은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린다. 오래전에 술과 담배를 모두 끊었던 나로서는 가을비 내리는 쓸쓸한 느낌을 달래기 위해 한 잔의 차와 마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가슴 한켠에는 헛헛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마음을 달래줄 한 줄의 글귀와 깊은 깨달음의 경구가 고픈 탓일지도 모른다. 오늘 밤에는 &lt;채근담&gt;이나 읽어야겠다. 얼마나 읽을지는 알 수 없지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15/40/cover150/k0321315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154016</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옛날 사람 - [교실은 매일 드라마였다 - 수천 편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604241</link><pubDate>Sat, 31 Oct 2026 13: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6042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131207&TPaperId=176042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30/50/coveroff/k2621312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131207&TPaperId=176042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교실은 매일 드라마였다 - 수천 편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a><br/>강양희 지음 / 보민출판사 / 2026년 10월<br/></td></tr></table><br/>직장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정년은 온다. 멀고 가깝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정년은 마치 고된 일과를 마친 어느 노동자의 굽은 어깨처럼 다가온다. 수십 년 동안의 직장생활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하루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정년을 맞는 사람에게 남겨진 것은 한 보따리의 추억과 삐걱거리는 몸과 하루라는 긴 시간을 채워가야 하는 막막함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년을 피할 수 없고,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흔히들 말하길 이제는 더이상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니 그동안 미뤄두었던 여행도 마음껏 하고 좋아하는 취미도 원 없이 하면서 즐거운 노후를 보내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사실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일인데 그게 말처럼 쉽기만 한 일일까. 게다가 마음은 여전히 이십 대라고 할지라도 전과 같지 않은 몸을 체감할 때의 쓸쓸함이란...<br>&lt;교실은 매일 드라마였다&gt;를 쓴 강양희 작가 역시 26년간의 교사 생활을 마친 은퇴자이다. 그런 까닭에 교사로서 작가가 겪었던 여러 경험들을 위주로 책을 엮었다. 물론 교사가 겪는 경험이 다 일반적인 것은 아니어서 교사가 가르치는 과목이나 교사의 성향에 따라 제각각의 풍경으로 나타나곤 한다. 이 글을 쓴 강양희 작가는 책의 첫머리에 학생들에 대한 사과로 시작하고 있고, 독자로서 나는 그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br>"그럼에도 학생들은 나를 너그럽게 품어주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학생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나를 교사로 길러 주었다. 한창 예민하고 여린 십 대 시절, 나의 경솔한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받았을 수많은 제자들에게 이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 미안함과 부끄러움 때문에 한때는 책을 세상에 내놓는 일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전, 차인표 씨의 인터뷰 내용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말을 떠올리며 다시 용기를 냈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제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다."&nbsp; (p.11~p.12 '프롤로그' 중에서)<br>사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학교 풍경은 천양지차로 달라져 있겠지만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청소년기 학생들의 진한 우정이 아닐까 싶다. 물론 교권이 바닥으로 떨어진 학교 현장의 피폐해진 모습이 연일 뉴스로 보도되고 있지만 말이다. 책에서도 이와 같은 실상이 언뜻언뜻 비치고 교사로서 겪었던 노고와 고단함이 곳곳에서 묻어나지만 선생님이라는 직책이 지닌 무게와 자부심이 그보다는 훨씬 더 크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그 시기의 학생들이 보여주는 순수함과 생기 넘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br>"교권이 무너진 교실에서는 학생 또한 온전한 배움을 누릴 수 없다. 교사의 안전과 인권이 보장될 때, 비로소 학생의 권리도 함께 지켜질 수 있으며, 서로를 존중하는 참교육이 이루어진다. 교육은 어느 한쪽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제도가 아니라, 학생과 교사 모두의 인권이 보장될 때 비로소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nbsp; (p.123)<br>나의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학생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과 자신이 싫어하는 학생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과 방치 등은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어디 한 군데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부모님께 억울함을 호소한다 할지라도 "네가 뭔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때렸겠지. 선생님이 괜히 그러셨을까." 하는 식으로 매도당하기 일쑤였다. 그나마 공부를 잘하거나 어머니의 학교 출입이 잦은 학생은 늘 선생님의 관심과 보호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도 저도 아닌 학생은 선생님의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체벌을 빙자한 선생님의 폭력이 사라진 것은 반길 일이지만 반대로 선생님의 교권이 끝없이 추락한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제 하나뿐인 아들이 성인이 되어 대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학부모로서의 부담은 벗어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출근하면서 보게 되는 학생들의 등교 장면을 멀리서 보고 있노라면 학교라는 또 다른 세상이 자못 궁금해지기도 한다.<br>"생각해 보면 은퇴 후의 삶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 여행을 다니고, 취미생활을 즐기고,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화려한 노후는 잠시 뒤로 밀려났다. 대신 나는 손주들의 단추를 기다려 주고, 느린 아침을 견디고, 엉뚱한 말에 웃음을 터트리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러나 이 삶은 조금도 초라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월급으로만 계산할 수 없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nbsp; (p.235)<br>멀리 프랑스에서는 학생들로부터 촉발된 시위가 한창이다. 열악한 학교 환경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된 시위라고는 하지만 그게 어디 그렇게 단순한 이유뿐일까. 자신들에게 닥칠 암울한 미래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작금의 현실이 그들을 시위의 현장으로 불러냈을 터, 우리나라도 역시 고질적인 청년 실업의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않는다면 프랑스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br>아침에 쌀쌀하던 날씨는 금세 기온이 올라 화창하다. 가을을 닮아가는 가로수잎들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 가수 이용이 불렀던 '잊혀진 계절'이 생각나는 걸 보니 나는 옛날 사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30/50/cover150/k2621312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4305085</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우리는 그것을 - [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76932</link><pubDate>Sat, 17 Oct 2026 13: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7693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832063&TPaperId=175769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41/1/coveroff/k68283206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832063&TPaperId=1757693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a><br/>제시카 아우 지음, 이예원 옮김, 김화진 독서후기 / 엘리 / 2023년 03월<br/></td></tr></table><br/>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보다 더 길고 막막한 질문을 알지 못한다. 더구나 멀리 떨어진 가족처럼 한없이 가까운 사이의 누군가로부터 이 질문을 받았을 때는 길고 막막함에 더해 애틋함마저 추가된다. 나의 지난 삶 중에서 질문의 당사자와 얽히지 않았던 어느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추려 그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것들만 나열한다고 해도 그것은 실로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막막함으로 인해 우리는 그저 "그럭저럭 살았지 뭐." 하는 말로 얼버무리고 만다. 누군가의 삶이란 그렇게 시간 속으로 묻히고 얼버무려진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br>"연초에 나는 함께 일본 관광을 가지 않겠느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이제 같은 도시에 살지도 않고 성인이 된 뒤로 같이 여행을 다녀온 적도 거의 없지만 왠지 그래야 하지 않을지, 그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아직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에서 들던 무렵이었다. 엄마는 처음엔 썩 내켜하지 않다가 내가 계속 밀어붙이자 결국 동의했는데, 딱히 그래 그러자고 말한 건 아니지만 항의를 조금 덜하는 식으로 또는 내가 물었을 때 수화기 저편에서 머뭇거리는 식으로 의사를 표했고, 그걸로 나는 엄마가 따라오겠다는 뜻을 드디어 넌지시 밝혔음을 알 수 있었다."&nbsp; (p.11)<br>제시카 아우의 소설 &lt;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gt;를 읽는 독자라면 아마도 소설의 문체와 담담한 이어짐으로 인해 몇 쪽 일기도 전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꽤나 놀라운 경험이라고 하겠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엄마와 딸이 익숙하지도 않은 타국의 땅에서 만나 함께 여행을 이어가는 이 소설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얼핏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딸의 관심사와 엄마의 관심사가 교차하고, 엄마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존재했던 각각의 삶과 그 간극이 여행 내내 약간의 어긋남으로 불거질 때 독자는 이미 울음이 터질 순간을 예감하게 된다. 작가는 비록 엄마와 딸의 어긋나는 순간을 세세히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엄마는 차를 마시지도 않고 딸의 이야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는다. 각자의 길을 걸었던 시간의 공백은 더는 넘을 수 없는 분명한 선을 그어 놓은 듯 그 한계를 절감하게 되고, 이를 인식하는 엄마와 딸 더 나아가서 책을 읽는 독자 모두는 쓸쓸함을 느끼게 된다.<br>"삶에 있어 최선은 욕망받는 것이라고, 내가 욕망하지 않더라도, 나를 욕망하는 사람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나만은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게 최선이라는 가르침을 어떤 경로로든 받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nbsp; (p.104)<br>도쿄에서 만나 여행을 시작하는 두 사람은 도쿄의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하고, 이어서 오사카와 교토로 이동한다. 두 사람은 운하를 따라 걷기도 하고, 국수를 먹거나 녹차를 마시기도 하고, 중고서점에서 예술서를 들춰보기도 한다. 딸은 동아시계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상처와 자신으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던 여러 타인에 대해, 그리스 고전과 인상파 그림 앞에서 경험했던 경이와 충만한 행복에 대해 말하며 한 사람의 존재로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들려준다. 함께 일본을 여행하는 몇 주의 시간 동안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가 다른 시선으로 걷고 있음을 확인한다.<br>"요즘 사람들은 모든 걸 알려 들고 실제로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마치 모퉁이만 돌면 각성이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라고 엄마는 말했다. 하지만 도통함이란 사실 없으며 이해가 고통을 줄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이 생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삶을 거쳐가는 것으로, 무無의 상태에 도달하거나 다른 곳에서 고통을 받는 것, 이 두 가지 지점 중 하나에 이를 때까지 연기가 나뭇가지 사이로 흐르듯 번민 속에 삶을 관통하는 것뿐이라고. 엄마는 선함과 베풂, 부의 보물 상자를 채우듯 축적해가는 친절 등 다른 교의에 대해서도 말했다. 이때는 나를 보고 이야기했고, 나는 엄마가 내가 공감하고 엄마를 따르길 바란다는 걸 알았지만 창피하게도 내가 그럴 수 없고 그보다 더 낯뜨겁게는 그런 시늉조차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nbsp; (p.93~p.94)<br>모든 것을 엄마와 함께 하며 엄마를 온전히 이해하려 했던 딸은 어느 순간 '모든 걸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고, 그저 보고 보듬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겠다(p.138)'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여행 전에 엄마는 뭘 봐도 기쁠 거라고 종종 대답했는데, 겨울에 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 물었던 게 엄마가 한 유일한 질문이었다고 화자는 말한다. 부모님의 그늘 아래 있었을 때의 친밀함을 어른이 된 후에도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사실 허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자식이 독립을 하고 다른 공간에서 독립적인 삶을 살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친밀감은 서서히 희석되고, 추억이라는 별도의 공간으로 유배된다. 그리고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도 실감한다. 다만 여전히 남아 있는 친밀감의 온기가 멀어지려는 관계를 굳게 붙잡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그리움이라고 부르기로 하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41/1/cover150/k68283206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2410183</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오지랖도 병인 양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73569</link><pubDate>Thu, 15 Oct 2026 16: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73569</guid><description><![CDATA[새벽 5시 30분의 등산로는 그야말로 어둠입니다. 캄캄하여 지척을 분간하기도 힘들 정도. 손전등은 어느새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산을 오르는데 기척도 없이 앉아 있던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기겁을 하고 놀랐습니다. 놀란 것은 고양이도 마찬가지인 듯했습니다. 등산로 한켠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잠을 청하던 고양이는 갑작스러운 손전등 불빛에 놀라 풀숲 어딘가로 냅다 달아났고 나는 예상치 못했던 동물의 등장에 화들짝 놀랐던 것입니다. 고양이의 몸동작이 어찌나 빠르던지 마음을 턱 놓은 채 걷고 있던 나는 고양이의 형체만 겨우 눈에 담을 수 있었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동안 그 자리에 붙박인 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br>엊그제 내린 비로 등산로는 적당히 젖어 있었고, 잎과 함께 떨어진 도토리로 어지러웠습니다. 나는 주섬주섬 도토리를 주워서 풀숲으로 던졌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등산로에 떨어진 얼마 되지도 않는 도토리마저 다람쥐나 청설모의 차지가 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어서 숲에 사는 작은 동물들의 먹이마저 그 대상이 된다는 건 꽤나 서글픈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등산로에 버려진 쓰레기와 도토리를 줍느라 걸음은 마냥 더디게 나아갔습니다. 가뜩이나 바쁜 아침에 나의 오지랖은 쓰레기를 줍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도토리와 밤을 주워 숲으로 던지는 데까지 미치는 바람에 까딱 잘못하면 아침도 거른 채 출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가 아니라 '오지랖도 병인 양하여' 나는 이 가을에 아침도 거르게 생겼습니다.<br>영국 작가 로라 패쉬비가 쓴 산문집 &lt;평범한 날들을 근사하게 기록하는 법&gt;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합니다.<br>"당신의 목소리는 지문만큼이나 고유하고 절대 지울 수 없어 당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보여 줍니다. 당신을 아는 사람이면 목소리만으로도 즉시 당신임을 알아차리는 것처럼 당신만의 목소리도 글이나 이미지 등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구별해 낼 수 있어요. 개인적 스타일뿐 아니라 성격과 인품까지 드러내는 당신만의 고유한 색깔이 갈수록 뚜렷해지기 때문이죠. 이렇게 고유하고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고 귀 기울이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nbsp; (p.149)<br>아니나 다를까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데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한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손전등을 비춰가며 등산로에서 도토리를 줍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바라보는 시선도 많고, 감시원의 단속에 걸릴 수도 있는 까닭에 어둠이 가시지도 않은 이른 새벽에 도토리를 줍는 것입니다. 나는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서둘러 산을 내려왔습니다. 사람들의 욕심에 파랗게 질린 탓인지 아침 기온은 하루가 다르게 낮아지고 있습니다. 도토리가 떨어지는 날도 며칠 남지 않았을 듯합니다. 나는 그때까지 등산로의 도토리를 지키기 위해 더 열심히 산을 올라야 하겠습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아쉬움은 때때로 슬픔처럼 번진다 - [페루에서 온 신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69738</link><pubDate>Tue, 13 Oct 2026 15: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697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82130704&TPaperId=175697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26/16/coveroff/k78213070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82130704&TPaperId=175697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페루에서 온 신사</a><br/>안드레 애치먼 지음, 홍한별 옮김 / 비채 / 2026년 07월<br/></td></tr></table><br/>삶이 유한하다는 건 우리에게 언제나 후회와 아쉬움을 남긴다. 그런 까닭에 사는 동안 우리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부인(또는 남편)을 배우자로 선택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이따금 농담 삼아 받게 된다. 물론 그와 같은 질문 속에는 지금과 같은 삶이 몇 번이고 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가정이 내포되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가정은 종종 소설의 주요 테마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의 한껏 부풀려진 기대를 작가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마치 사실인 양 펼쳐 보인다. 전생의 부부였거나 연인이었던 사람들이 현생에서 다시 전생의 인연을 이어가는 것은 물론 전생에 미처 하지 못했던 일들을 현생에서 원 없이 펼쳐 보임으로써 독자들은 현실에서의 제약이 무한대로 봉인해제된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도파민 뿜뿜이라고 해야 할까, 암튼 독자는 삶의 유한성에서 오는 슬픔과 아쉬움을 말끔히 날려버릴 수 있는 것이다.<br>"우리는 대부분 바른 정렬이 일어나는 때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삶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요. 기약 없는 대기실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죽은 이들을 생각해보세요. 평생의 기다림을 지하 세계로까지 가지고 가서 다시 지상으로 나올 때까지, 다시 살면서 또 기다리게 될 때까지 계속 기다리는 이들을요. 그러니, 한 시간을 들여 후회할 일을 하는 편이, 하늘이 다시 우리 삶과 맞닿을 때까지 평생을 기다리는 쪽보다 낫지요."&nbsp; (p.58~p.59)<br>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lt;페루에서 온 신사&gt; 역시 전생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남부 이탈리아의 휴양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젊음과 나이듦, 휴양지의 떠들썩한 분위기와 원주민만 아는 비밀 정원의 고요 등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킴으로써 삶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여러 욕망의 엇갈림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통상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현생에서의 어설픈 꿈이나 간절함은 몇 세대 후의 다음 생에서나 어쩌다 이루어질 수 있는 허튼 꿈이라고 작가는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br>"그렇지만 삶은 가장 완벽한 날을 망쳐버리기도 한다. 삶이 그렇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그렇게 한다. 이제 정말로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버렸음을 라울은 알았다."&nbsp; (p.135~p.136)<br>친구들과 함께 크루즈 여행을 떠난 젊은이들이 보트 고장으로 인해 해안가의 한 고급 호텔에서 머물게 된다. 이탈리아 남부의 유명 휴양지인 아말피 해안. 젊은이들은 보트가 수리되는 동안 함께 몰려다니며 수영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수다를 떨거나 한다. 그러던 중 그들의 눈에 뜨인 한 남자가 있었다. 호텔 식당에 언제나 같은 시각에 홀로 나타나는 수수께끼의 신사 '라울'. 어느 날 우연히 말을 섞게 되었는데 젊은 사람들은 '라울'의 신비한 능력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고질병처럼 여겼던 어깨 통증이 그의 손길 한 번에 말끔히 사라지는가 하면 아무도 모르는 개인의 비밀을 알아맞히기도 하고, 일정 때문에 함께 여행을 오지 못한 친구에게 투자의 팁을 알려줌으로써 큰돈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렇게 스스럼없는 사이가 된 라울과 젊은이들. 어느 날 라울은 그들 무리 중 한 사람인 마고와 점심을 함께 하고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의 장소를 알려주겠다며 그녀와 산책을 한다. 라울의 안내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마고는 묘한 기시감에 빠져들게 되고, 마침내 라울과 있었던 전생의 인연을 떠올리게 되는데...<br>"나는 여기까지 걸어와서, 저기 나무 그늘에서 책을 읽다가 다시 걸어서 돌아가길 좋아해요. 걷다가 모래가 샌들에 들어가면 어린 시절 샌들에 모래가 들어가는 게 싫어서 맨발로 걸어 다니던 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여기에 오면 내가 세상을 사랑하고, 살아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심지어 나 자신도 조금은 좋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nbsp; (p.85)<br>라울이 젊은이들에게 펼쳐 보이는 마법과 같은 이야기로 인해 판타지 소설쯤으로 읽히기 시작했던 초반 분위기는 라울과 마고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금세 분위기는 바뀌어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가 소설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전생은 물론 다음 생도 알고 있는 라울이 마고에게 하는 당부는 독자들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한다. '우리는 삶을 바로잡으려고 돌아옵니다. 모든 삶은 불완전하기 때문이죠.(p.39)'라고 말했던 라울. 과연 우리는 이번 생의 불완전함을 바로잡기 위해 다음 생에도 돌아올 수 있을까?<br>모처럼 내리던 가을비는 오후가 되자 금세 그쳤다. 구름 사이로 가을 햇살이 자맥질하듯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여름 늦더위가 끝난 후에 비다운 비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듯했다. 그마저도 물론 대지를 흠뻑 적실만큼 충분한 양은 아니었지만, 등산로를 걸을 때마다 흙먼지가 풀썩풀썩 일던 모습은 당분간 볼 수 없을 듯하다. 그게 어딘가. 삶에서 순간순간 이어지는 우리의 아쉬움은 다음 생에서도 습관처럼 전해지는 것 같다. 아쉬움은 때때로 슬픔처럼 번진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26/16/cover150/k78213070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261622</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가상의 세계를 떠돌던 가을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65964</link><pubDate>Sun, 11 Oct 2026 17: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65964</guid><description><![CDATA[가을은 더위에 지친 많은 이들의 상상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가상의 세계를 떠돌던 가을은 아주 잠깐 현실에 착지하였다가 느긋하게 숨을 돌릴 만한 여유도 없이 스러져, 초겨울의 추위를 달가워하지 않는 많은 이들의 여운이나 회상 속에서 다시 유령처럼 떠다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1년의 하반기를 장악하다가 크리스마스나 송년 회식과 함께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가을은 우리의 기억에서 길게 머무르는 계절입니다. 왔나 싶으면 어느새 사라지는 봄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입니다. 겨울 추위가 길고 매섭게 닥쳐올라치면 가을의 잔상은 유성의 꼬리처럼 더욱 길게 이어지곤 합니다.<br>무르익는 계절과는 다르게 최근 들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진보 진영 인사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차가운 현실이 결코 달갑지는 않겠지만 계절의 순환도, 민심의 변화도 때가 되면 바뀌게 마련인 듯합니다. 회자정리라고나 할까요. 달도 차면 기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이유는 각자가 다를 테고, 서로 비슷하다고 할지라도 그 속을 뜯어보면 천차만별일 텐데 정치평론가를 자처하는 호사가들은 제 나름의 분석을 내놓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민주당과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렇게 바닥을 치고 있는 마당에 대통령은 국정 지지율을 끌어올릴 방안을 궁리하는 게 아니라 어찌하여 연일 같은 진영을 향해 고강도의 공격을 멈추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게 중론입니다. 물론 진보 진영의 여러 인사들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내놓았던 건 사실이지만 이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무극파(무책임한 극단주의자)라는 둥 '능력도 안 되면서 큰 자리를 요구'한다는 둥 '혈세로 호사 누리면서도 서민 복지예산을 삭감하는 정치인'이라는 둥 연일 강한 어조로 비난한다는 건 대통령 자신이 속 좁은 좀생이 정치인이라는 걸 자인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러니 대통령은 정당한 비판마저 참지 못하는 밴댕이 소갈딱지의 정치인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고 지지율은 끝없이 추락할 수밖에요.<br>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대통령도 모르는 바가 아닐 텐데 왜 그런 미련한 짓을 계속하는가에 대한 10인 10색의 분석이 나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일반적인 정치 평론가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물론 이것도 역시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일 테지만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에는 평생을 비주류로 살아온 대통령의 열등의식에서 기인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말하자면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주류, 대체로 그들은 보수지향적이면서 대대로 권력과 부를 누려왔던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갈망으로 대통령 자신도 그들 집단에 속하고 싶은 욕구가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그러자면 대통령은 자신의 비주류적 문화와 자신에게 내재한 열등의식을 말끔히 씻어내고 그 결과에 대해 주류 집단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소위 기득권 집단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진보 진영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은 물론 자신의 사상 역시 그들과 다르다는 걸 입증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신분세탁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동안 자신에게 덧씌워졌던 비주류적 신분을 걷어내고 주류 소망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진보 진영 인사들의 찌질함에 대해 한껏 비난할 필요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말하자면 작금의 여러 말이나 행동들이 대통령 자신이 진보 진영의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기득권 집단에게 증명하고 있는 단계인 듯 보인다는 것입니다. 퇴임 후 당신들과 같은 집단에 속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겠지요.<br>대통령의 이와 같은 태도를 우리는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주류에 속하고자 하는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말입니다. 다만 주류 집단의 이너 서클에 속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자신의 성장 배경에서 습득한 그들만의 문화에 녹아들 필요가 있습니다. 결혼을 통해 그 집단에 편입되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국 그들과의 문화적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집단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걸 감안한다면 대통령 역시 지금보다 더 치열하고 비열한 짓을 서슴지 말아야 할 듯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 이면에 있는 원초적인 욕망을 그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br>가상의 세계를 떠돌던 가을이 현실에 착지한 이 짧은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요즘입니다. 백조 무리에 속하고자 하는 미운오리새끼의 철없는 행위에 마음 상하지 말고 이 아름다운 계절을 맘껏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알차게 사용하는 일일 테지요.]]></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가볍게 찍은 스탬프처럼 - [에티의 여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63986</link><pubDate>Sat, 10 Oct 2026 11: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639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130733&TPaperId=175639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81/58/coveroff/k96213073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130733&TPaperId=175639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에티의 여름</a><br/>루시 스티즈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08월<br/></td></tr></table><br/>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의 주장에 의하면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All Life is Problem Solving)'라고 귀결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생각할 때 도무지 삶을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속성이나 행동을 그 누구도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의 불행은 그곳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평생 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그저 피상적으로만 알고 지낼 뿐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자기 자신도&nbsp;예외가 될 수는 없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는 게 모든 불행의 씨앗이다.<br>"삶은 한 치씩 꾸역꾸역 나아갔고, 그녀는 살아 있었다. 부당하게도, 미치고 팔짝 뛰게도 그녀는 살아 있었다. 어떤 날에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어떤 날에는 차라리 자신이 죽었더라면 좋았을걸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은 살금살금 흘러갔고, 매 순간 주위로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nbsp; (p.388)<br>영국 작가 루시 스티즈의 소설 &lt;에티의 여름&gt;을 읽었던 건 지난 추석 명절의 연휴 기간 동안이었다. 그닥 길지 않은 연휴였지만 오고 가는 내내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꺼내 읽곤 했다. 학계에 몸담고 있던 평범한 연구원이었던 작가가 소설이 쓰고 싶어 1년 동안만 집필에 몰두하고자 직장을 그만둔 후 12개월 만에 나온 초고가 억대의 선인세와 두 권의 출간 계약이라는 이례적인 조건으로 계약이 성사된 것도 놀랍지만 연구원에서 소설가로 전업한 지 단 1년 만에 한 편의 원고로 영국 문단의 가장 주목받는 신인이 된 것 역시 경이적인 성과라고 하겠다. 나는 소설을 읽는 동안 작가의 유려한 문체와 섬세한 묘사 그리고 잘 짜인 구성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책을 손에서 놓아야 하는 순간에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소설의 잔상을 말끔히 털어내지 못하곤 했다.<br>"왜 시간은 거꾸로 흐를 수 없을까? 왜 이미 일어난 일을 전부 되돌릴 수 없을까? 지난 3년의 실타래를 다시 감아 새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내놓으리라. 형과 어머니를 집에 가둬두고 온갖 방법으로 둘을 해치려고 모의하는 세상에 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인생은 교묘한 함정을 너무 많이 감추고 있다."&nbsp; (p.112)<br>소설은 신생 잡지사의 기자인 조지프가 유명한 은둔 화가 타르튀프로부터 달랑 "오라(Venez)"는 한 단어만 적힌 편지 한 장을 들고 그가 사는 프로방스 지역의 외딴 농가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20년, 전설적인 화가 타르튀프는 세상과 단절한 채 그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를 돌보며 챙겨주는 유일한 사람은 조카인 에티뿐이었다. 에티는 조지프를 새 그림의 모델이라 둘러대며 집 안으로 들인다. 그렇게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오전에는 '오렌지를 든 청년'의 실제 모델이 되어 타르튀프의 화실에서 꼼짝없이 갇혀 지내지만, 오후에는 기사를 쓰거나 책을 읽으며 소일할 수 있는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이었다. 일곱 살에 엄마를 잃고 삼촌인 타르튀프의 삶을 보조하면서 외롭게 성장했던 에티와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전쟁을 겪지 않았던 조지프. 두 사람의 상처는 다른 듯 닮아 있다. 타르튀프로부터 도망쳐 사랑하는 사람과 미국행을 선택했던 에티의 엄마는 끝내 죽음이 되어 돌아왔고,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어린 에티는 스스로의 힘으로 글을 익히고, 요리를 배우고, 삼촌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왔다. 삼촌은 에티의 완벽한 보조 덕분에 오직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었고, 그의 그림은 비싼 가격에 팔렸다. 반면 매사에 유능했던 형 루퍼트가 자진하여 전쟁에 나갔던 반면 조지프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대에 들어가 그림을 배운다. 전쟁이 끝나고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안은 채 귀가한 형과 독감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엄마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조지프는 미대를 그만두고 작가가 된다. 비겁한 겁쟁이라는 질타는 그의 마음에 온전한 짐으로 남는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자랐던 에티는 성장하면서 조금씩 엄마의 외로움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에티는 결국 전쟁이 한참이던 시기에 삼촌을 속이고 간호사로 참전한다. 그곳에서 부상당한 병사를 치료하던 중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와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다시 삼촌 곁으로 되돌아온다.<br>"짓이겨진 몸뚱이를 보고도 몸서리를 치거나 숨을 헉 들이쉬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자부심의 징표였다. 그녀는 자신의 의연한 태도가 그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절대 손이 떨리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얼굴을 찡그리거나 움찔하거나 눈앞의 광경에서 눈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인간의 삶이었다. 삶과 죽음이 떼려야 뗄 수 없이 뒤엉킨 현장이었다."&nbsp; (p.364)<br>"아미르와 함께 언덕에 서 있던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엄마가 느꼈던 충동을 이해했다. 도망치고 싶은 욕망.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욕망. 엄마가 미국에 묻혔더라면 좋았을 텐데. 죽어서까지 다시 생 오귀스트로 끌려왔다는 사실이 어딘가 서글펐다. 엄마는 끝내 생 오귀스트를 벗어나지 못했다."&nbsp; (p.380)<br>타르튀프의 눈을 피해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이해하며 사랑을 키워가던 조지프와 에티. '오렌지를 든 청년'이 완성된 후에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던 조지프는 비로소 타르튀프의 비밀과 에티의 감추어진 재능을 발견한다. 그것은 어쩌면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한 타르튀프의 비겁한 폭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림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보유했음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삼촌을 보조하면서 허드렛일만 강요받았던 에티였지만 그녀는 끝내 자신의 힘으로 삼촌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삼촌의 눈을 피해 아슬아슬한 사랑을 일궈가는 두 사람. 에티가 타르튀프의 그림을 불태우는 장면을 목격했지만 그 그림이 도매상에게 버젓이 인계되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조지프. 두 사람의 사랑과 불타버린 그림에 대한 비밀은 어떤 방식으로 밝혀질까?<br>가을이 깊어지면서 독서에 대한 열정도, 소소한 일상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욕심도 시나브로 옅어지는 느낌이다. 뜨거운 열기 탓에 바깥에서의 일상이 도통 궁금하지 않았던 지난여름과는 달리 숲의 변화도, 사람들의 다채로운 표정도, 저무는 햇살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어느 것 하나 궁금하지 않은 게 없다. 어제는 시골에 가서 떨어진 알밤을 한 되쯤 주워 왔다. 밤을 삶는 일도, 껍질을 벗겨 속살을 발라내는 일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지만 밤을 줍기 위해 피곤한 줄 모르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던 게 무엇보다 즐거웠다. 이렇게 밖으로만 나돌다 보면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길 일이 도무지 없겠다 싶었다. 읽었던 모든 책에 대해 리뷰를 남길 자신은 없지만 가슴에 남는 어떤 책은 책을 읽었다는 작은 표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잘했어요'라는 칭찬 문구의 스탬프를 찍는 것처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81/58/cover150/k96213073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81584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조금 쌀쌀하고 이따금 더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57475</link><pubDate>Tue, 06 Oct 2026 16: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57475</guid><description><![CDATA[최근 며칠 새&nbsp;아침 기온이 크게 떨어졌다. 사람들은 이런 급격한 변화가 그닥 반갑지 않은 듯 짬이 날 때마다 불평처럼 계절 이야기를 했다. 근처 공원에는 여름의 한 귀퉁이에서 불거져 나온 듯한 가을 한낮의 햇볕을 쬐기 위해 등이 굽은 할머니들이 모여들었고, 그런 할머니들 주변으로 먹이를 탐하는 비둘기 떼가 포릉포릉 날아들었다. 세월을 한참이나 거슬러 오른, 물기가 쏙 빠진 건조한 이야기들이 넋두리처럼 허공에 오갔고, 저마다 자신의 추억을 말하느라 누구도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다만 잎이 떨어지는 벚나무 위에 앉아 있던 박새 한 마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듯 이따금 고개를 까딱거리며 공감을 표하곤 했다. 세월의 무상함은 기온이 떨어지는 속도에 비례하여 쓸쓸하거나 허전한 느낌을 더해가는 듯했다.<br>짧은 연휴를 마치고 출근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더께로 쌓인 피로가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아무리 많은 조언을 들어도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만족해하며 얼굴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날은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나 역시 그들을 향해 억지웃음을 흘릴 수는 없었다. 제시카 아우의 소설 &lt;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gt;를 읽고 있다. 소설을 관통하는 잔잔한 분위기 탓에 독자인 나 역시 깊이 가라앉는 경험을 한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br>"나는 엄마를 생각했고 언젠가 그러니까 아직 오지 않은 어느 날,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 집에 단 한 가지 임무를 위해, 엄마가 한평생 쌓아온 소유물을 정리해 모두 치우고 꾸리러 언니와 함께 가게 될 것을 생각했다. 그 집에서 발견할 온갖 것들을 생각했다. 패물과 사진 앨범과 편지와 같은 사적인 물건도 있겠고, 꼼꼼하고 잘 정돈된 삶의 표지도 있겠지. 계산서와 영수증, 전화번호, 주소록, 세탁기와 드라이어 사용 설명서 같은. 욕실에 있을 반쯤 쓴 향수와 크림이 든 유리병과 용기. 엄마가 매일 치르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길 그리도 꺼리던 의식의 흔적. 언니는 어김없이 질서정연한 자세로 임하며 간직할 것, 기증할 것, 쓰레기로 처리할 것, 세 가지 더미로 모든 걸 정리하자고 말할 것이다. 난 동의하겠지만 끝내 아무것도 간직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다만 그 이유가 감상이 지나쳐서일지 부족해서일지는 알 수 없었다."&nbsp; (p.126~p.127)<br>요즘처럼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한 날씨에 산을 오르는 일은, 비가 적당히 내리는 날 등산을 하는 것에 비해 더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경사로에서의 마른 모래와 자갈에 쉽게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싹 마른 낙엽 더미도 사람들을 쉽게 넘어뜨리곤 한다. 선선하고 건조한 날씨가 등산에 최적인 듯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복병이 언제나 숨어 있게 마련이다. 사실 중대한 부상은 최적의 조건에서 사람들이 마음을 놓을 때 발생하곤 한다.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요즘, 긴장의 끈을 완전히 내려놓는 순간 오늘 아침 강원도 산지에 내려졌던 한파주의보처럼.<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추억의 색인표 - [갸, 직업이 뭐이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46180</link><pubDate>Wed, 30 Sep 2026 17: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461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130442&TPaperId=1754618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91/70/coveroff/k5221304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130442&TPaperId=175461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갸, 직업이 뭐이가?</a><br/>표재순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08월<br/></td></tr></table><br/>우리가 기억하는 삶의 에피소드에는 언제나 자신이 즐겨 듣던 노래나 자주 보았던 드라마, 벽에 걸려 있던 그림 한 점, 우연히 보았던 영화나 연극 등과 결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몇몇 기억에는 그런 것들과 더불어 그 순간에 먹었던 특별했던 음식이 더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추억의 대부분은 그 시절에 유행하던 예술의 한 토막을 실마리로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컴퓨터 기억장치에 폴더의 이름을 지정하는 것과 같아서 수많은 기억 속에서 하나의 색인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올림픽 개회식의 굴렁쇠 소년'이나 당시의 올림픽 공식 주제가였던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를 떠올리면 올림픽 기념우표를 손에 넣었던 친구의 뻐기는 듯한 얼굴 표정이 나도 모르게 재생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서 예술은 추억을 떠올리는 중요한 실마리 역할을 하면서 우리 삶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던 표재순 연출가와 같은 이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삶을 구성하는 많은 추억의 색인표에는 그가 만든 작품명이 줄줄이 끌려 나올 테니까 말이다.<br>"경기장에 모인 10만 관중이 일제히 탄성을 쏟아냈다. 전 세계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22억 명도 숨을 죽였다. 한쪽 모서리에서 나타난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며 경기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렀다. 그것은 하나의 점이었다. 빨간색 챙이 달린 흰 모자를 쓰고 하얀색 반소매 상의와 반바지에 흰 양말과 신발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소년이 오른손으로 굴렁쇠를 굴리며 움직였다. 능숙한 솜씨였다. 3분의 2지점쯤 갔을까? 소년이 멈춰 섰다. 굴렁쇠를 오른쪽 어깨 위로 올린 채 관중석을 향해 왼손을 흔들었다. 박수갈채가 잠실벌을 가득 채웠다. 소년은 다시 굴렁쇠를 굴리며 성화가 타오르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하나의 선이었다. 이 장면은 서울올림픽 개회식의 백미로 꼽힌다. 화려함도 웅장함도 기발함도 없어 보이는 굴렁쇠 굴리는 한 소년의 평범한 이 모습이 왜 그토록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걸까? 당시 나는 개회식 제작단장으로 총연출을 맡고 있었다. 모두가 감격스러워하는 열기의 현장 속에서 내 가슴은 새가슴처럼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nbsp; (p.31~p.32)<br>1937년 생, 구순에 가까운 원로 연출가 표재순의 자전 에세이 &lt;갸, 직업이 뭐이가&gt;의 서두는 이렇게 이 시대의 선명한 기억 속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으로 시작된다. 음악극, 뮤지컬, 오페라, 마당놀이 등 장르를 불문하고 자신의 열정을 불태웠던 무대 연출가였고, 서울올림픽, 한일 월드컵 등 국가적 행사를 진두지휘했던 거장이었으며, 평균 시청률 50%를 상회했던 '모래시계'를 탄생시킨 명제작자였고, 세종문화회관 초대 이사장 등을 역임한 문화행정가이기도 했던 표재순 연출가는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에게 추억의 몇몇 장면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가 메가폰을 잡았던 현장들을 생생하게 회고하고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그는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기억을 관통하는 추억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독자는 글에서 느끼는 감동이 아니라 자신이 불러낸 추억의 몇몇 장면을 통해 가슴 먹먹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br>"출범 5년 차였던 신생 방송사 SBS는 '모래시계'의 대박에 힘입어 KBS, MBC를 따라잡으며 전국 방송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신영균 회장과 나 그리고 송지나 작가와 김종학 PD는 이 드라마를 정치 드라마나 시국에 편승한 그런 드라마로 만들려 했던 게 아니었다. 젊은 남녀 세 사람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드라마였다. 한 명은 깡패고, 한 명은 검사고, 이 두 친구가 좋아했던 여인이 등장하다 보니 시대 상황이 배경으로 나온 것인데, 의도치 않게 시국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비극과 혼돈이 공존하던 질풍노도 시기, 똑같은 시대적 상황이엇으나 한 번은 조직을 떠나야 했던 쓰라린 기억으로 한 번은 조직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환희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로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nbsp; (p.266)<br>'제1막 무대는 항상 예측불허다', 제2막 좋은 만남이 좋은 연출을 낳는다', 제3막 드라마는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제4막 배우는 가도 무대는 남는다', 제5막 왕십리에서 DMZ까지, 모든 것이 무대였다'의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45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이지만, 평생 기발한 아이디어와 참신한 구성을 기획하면서 살아온 까닭인지 책의 구성 역시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서 쉽게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의 힘이 작동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명절 전후에 짬이 날 때마다 간간이 읽었음에도 너무도 빨리 읽은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나는 작가의 책을 읽었던 게 아니라 작가와 함께 내 추억의 몇몇을 들춰보았는지도 모른다.<br>"돌아보면 내 인생에는 낭비가 참 많았던 것 같다. 'Wasted Life', 낭비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이면 연극, 뮤지컬이면 뮤지컬, 드라마면 드라마, 행사 이벤트면 행사 이벤트, 이렇게 외골수처럼 쭉 한길을 가야 하는데, 나는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다 하면서 갈지자로 걸어왔다.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다 놓친 것이 많은 바보 같은 삶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갸, 직업이 뭐이가?" 장민호 선생이 나를 두고 이렇게 물은 건 그런 까닭에서였을 것이다."&nbsp; (p.449 '에필로그' 중에서)<br>누구에게나 100% 만족한 삶이란 있을 수 없다. 지나고 보면 아쉬움과 후회가 남게 마련이다. 그러나 후회만 말하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고, 성공만 말하기에는 인생은 한없이 덧없다. 그러므로 나는 구순의 연출가가 들려주는 그의 성공과 실패에 집중하기보다 그가 참여했던 여러 드라마나 행사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어리거나 젊었던 당시의 내가 겪었던 추억들을 회상했다. 말하자면 나는 책을 읽었던 게 아니라 나에게 얽힌 추억을 읽었던 셈이다.<br>일본 나고야 아시안게임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전달되는 중계영상을 보면서 매 순간 일희일비하는 듯 보이지만, 미래의 관점에서 지금을 본다면 그 영상 하나하나가 우리 기억의 색인표가 되어 보고픈 추억을 소환할 때 실마리로 작동할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저녁, 금메달을 목에 건 대한민국 국가대표 중 한 선수의 환한 표정이 우리들 각자가 겪었던 서로 다른 추억을 먼 훗날 마치 어제 일인 양 또다시 불러낼지도 모른다. 하나의 이벤트는, 시대를 이끌었던 하나의 예술은 우리들 각자의 추억을 소환하는 하나의 색인이 되는 것이다. 표재순 연출가의 자전적 에세이가 그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91/70/cover150/k5221304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917077</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하늘은 높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43350</link><pubDate>Tue, 29 Sep 2026 14: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43350</guid><description><![CDATA[짧았던 명절 연휴가 끝났지만 연휴의 후유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듯합니다. 나이가 든 탓일 테지요. 전보다 운전을 많이 한 것도, 더 많은 일정을 소화한 것도 아닌데 피로를 느끼는 강도와 시간은 더 크고 오래 지속되는 걸 보면서 나이가 들어가는 현실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런 현실이 슬프거나 절망스럽게 느껴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에 저으기 안심이 되는 기분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지독한 비관론자인 듯 오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어진 하루하루를 마냥 즐겁게 살아가는 낙천주의자에 가깝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만의 주관적인 판단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br>우리는 흔히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누구나의 삶에도 딱 들어맞는 정확한 경구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닥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 나 역시 삶의 방향을 잘못 잡는 바람에 안 해도 될 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생이 인생을 풍요롭게 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시간을 헛되이 소모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곤 합니다. 나의 경험만으로 판단한다면 삶은 확실히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br>최근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대통령의 정책이나 공약도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책을 아무리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고 해도 결국 정책의 수혜를 입는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마나한 정책에 불과할 테니까 말입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속도를 강조하곤 합니다. 이를 보다 못한 여러 명의 여권 관계자들이 대통령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조언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대통령은 자신의 쇠심줄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는 듯 보입니다. 그 바람에 지지율은 끝 간 데 없이 추락하고, 이를 고깝게 생각하는 정부와 여당은 조언을 하는 사람들을 되레 공격하거나 법적 조치 운운 하면서 겁박을 하고 있습니다. 마이동풍도 이 정도면 가히 역대급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속도를 강조하면서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본인은 자신의 노력을 몰라주는 국민이 야속하고 얄밉게 느껴지겠지만 말입니다. 그렇다고 국민과 싸우겠다는 태도는 보기에도 좋지 않고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중시키는 듯합니다. &lt;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gt;에 나오는 일부 문장을 옮겨보겠습니다.<br>"남에게 잘난 척하고 고상한 척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품위 있는 지식을 지닌 뛰어난 존재라고 누군가를 붙들고 자랑을 늘어놓고 싶어 안달을 부린다.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마치 그것이 종교의식이라도 되는 냥 그럴듯한 얼굴을 들고 우쭐대며 돌아다닌다. 그들은 자신 외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해 박수를 쳐주는 관객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제 무덤을 파는 것이다."&nbsp; (p.207)<br>대통령은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글에서 "일상 속에서 댓글로, 메시지로, 전화로, SNS 글로 언론이 외면하고 유튜버가 조작하는 숨겨진 진실과 팩트를 알리고, 남의 글이나 기사 댓글에 좋아요 한 번 누르는 것도 그 순간 우리가 원했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고 중요한 실천"이라고 썼다고 합니다. 다들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조언하는데 정작 본인만 아니다, 그러니 나의 우군이 되어 달라고 고집하는 모습은 참으로 딱해 보이기만 합니다.<br>바깥 활동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조금 걸었을 뿐인데 나른한 졸음이 몰려옵니다. 추석 연휴의 피곤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조금씩 쌓여가는 기분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주말에도 3일 동안의 짧은 휴가가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하늘은 높고 지지율은 수척해지는 계절, 아슴아슴 졸음이 쏟아집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잘 듣고 있다 -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33335</link><pubDate>Wed, 23 Sep 2026 18: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333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137988&TPaperId=175333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5/48/coveroff/k53213798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137988&TPaperId=175333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a><br/>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03월<br/></td></tr></table><br/>알맹이는 없고 형식만 존재하는 삶이 기약도 없이 이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삶은 뱀의 허물이나 매미의 껍질처럼 가볍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영혼도 없이 출근을 하고, 뭘 했는지 기억도 하지 못하면서 누군가가 요구하는 일을 어떤 감정도 담지 않은 채 꾸역꾸역 하다 보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하는 심정으로 퇴근을 한다. 그런 날들이 쭉 이어진다.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질 필요조차 없다. 어차피 시간은 물 흐르듯 흐르고 나의 가벼운 삶은 종이배처럼 떠다닐 테니까. 그리고 시간의 여울만 만나지 않는다면 내 삶의 종이배도 이따금 기우뚱거릴 수는 있어도 시간 속으로 영원히 가라앉지는 않을 테니까.<br>"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에 물든 집안에서 태어난 우리 엄마 김경형의 '미친년 인생'은 엄마 탓이 아니다. 엄마 탓은 아니지만 엄마가 미친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잔혹한 굴레 속에서 나 또한 미친년으로 자라났다. 그나마 나는 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수 있는 미친년이라 다행이다. 하지만 나뿐 아니라 엄마의 미친년 역사도 무척 소중하기에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다."&nbsp; (p.51)<br>가수이자 작가, 영상 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이랑의 에세이 &lt;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gt;를 읽는 독자라면 이 책의 저자가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 이랑과 동일인이라는 사실에 다소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방송에 노출되던 그녀가 가수로서 우쭐대거나 거들먹거린 적은 없지만 사람들에게 꽤나 특별하게 들렸던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를 작사, 작곡한 것은 물론 직접 노래까지 불렀던 천재 아티스트의 이면에 그처럼 아픈 성장 스토리가 있었다는 건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폭력적인 아빠와 우울증을 앓던 엄마. 엄마의 곪은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자라다가 결국 자퇴를 하고 집을 뛰쳐나가야만 했던 이랑의 성장기는 아프다 못해 가슴 답답하다.<br>"언니는 가족이 싫다고 10대 때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내가, 부럽고 미웠을까.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느라 정신없던 언니에게 나는 수차례 '그만두라'고 말을 했다. 언니는 그때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허약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나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nbsp; (p.110)<br>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3남매. 특수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언니와 가수이자 작가인 이랑 본인과 장애를 안고 태어난 남동생 이완. 작가는 자신을 포함한 3남매를 혈연이 아닌 '피해생존자 동지'로서 사랑한다고 말한다. 명문대와 명문여대 국어국문학과를 다녔던 아빠와 엄마 덕분(?)에 집안에는 작은 도서관처럼 많은 책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고,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아빠와 심한 우울증으로 집안일에서 손을 놓다시피 했던 엄마로 인해 집은 언제나 좁고 지저분했다. 그러나 깔끔한 성격의 작가가 달아날 곳은 없었다. 엄마 옆에 앉아 책을 읽고 노래를 불렀다.<br>"나는 자신의 약함을 아는 인간을 좋아한다. 약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하는 인간이 좋다. 살아나가는 두려움을 아는 인간이 좋다. 살아갈 방법을 무언가에 의탁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려는 인간이 좋다. 자신의 방법을 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이 좋다. 더 탁월한 방법으로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 좋다. 말과 글이 좋다. 말과 글을 좋아하는 인간이 좋다. 겪지 않은 이야기로 끝없이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이 좋다. 나는 인간으로, 현재 존재하는 인간들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이다음을 살아갈 인간들을 상상하면서."&nbsp; (p.205~p.206)<br>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길지 않은 연휴 탓인지 사람들은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 차분한 휴일을 보내겠다고 다짐하는 분위기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 친인척들. 가깝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사랑만 주기에도 이번 연휴는 그 기간이 너무나 짧은 듯하다. 추석 명절을 보내고 다시 일터로 복귀한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와 사랑의 열기가 가득했으면 좋겠다. 이랑의 노래 '잘 듣고 있어요'를 들으며 오늘 내가 읽었던 &lt;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gt;를 떠올린다.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5/48/cover150/k53213798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05487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그들도 부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27098</link><pubDate>Sun, 20 Sep 2026 14: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27098</guid><description><![CDATA[우리가 자신의 삶을 매 순간 또렷이 감각하고 인지하면서 살아야 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세월의 흐름에 수동적으로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때로는 지겹고 힘든 날들을 보내기도 합니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nbsp;그날이 그날 같은, 지루하고&nbsp;반복적인 날들로 채워지고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자신의 죽음을 유예할 수 없는 까닭에 자신이 감각하는 삶을 유예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는 죽음의 순간을 자신의 뜻에 따라 앞당길 수는 있어도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그 순간을 뒤로 한정 없이 미루기는커녕 단 일 초도 유예할 수 없기에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우리는 그 삶에서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을 유예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마저 유예할 수 있다면 순간순간 느끼고 감각하는 것들도 때로는 무미건조하게 지나치거나 쉽게 잊은 채 지나친다 한들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죽음을 조금도 유예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고 너무도 당연한 진리이지만 말입니다.<br>지난 금요일에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하락에서 비롯된 기자회견이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나만의 주관적인 판단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민주당의 신임 당대표를 비롯한 당내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이해타산과 이를 이용하여 경제적 이득과 명성을 취하고자 했던 일부 유튜버와 정치 지망생들의 결합에서 시작된 멸칭과 조롱의 정치 비평은 의식 있는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아 왔고, 그 기간 또한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같은 진영 내의 갈등과 마찰을 적극적으로 봉합하여야 했던 청와대는 오히려 이를 방치하고, 용인하고, 때로는 부추기는 듯 보였습니다. 멸칭과 조롱을 일삼는 인사를 오히려 중용하고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반명'이니 '신천지'니 하면서 차별하였던 것입니다.<br>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기는 기회'라고 역설해 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위기에도 정도가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단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시야는 극도로 좁아지고 관심사는 오직 자신에게로 쏠립니다. 인간의 생존본능상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특이하게도 극단적인 자만과 극단적인 위기 상황은 쌍둥이처럼 닮아 있습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70%에 육박하였을 때 대통령을 비롯한 이른바 친명 세력은 극단적인 자만에 취해 있었고, 자신들이 미워하는 일부 지지자들이 빠져나간다고 하더라도 걱정할 게 없다고 생각했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지지율이 끝없이 추락하여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 처하자 이제는 오직 자신들의 생존만 중요할 뿐 주변의 다른 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더욱더 분노를 쏟아내야 할 테고, 자신들의 행동이 초래할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살필 여유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고치로 높았을 때도, 지지율이 끝 간 데 없이 추락할 때에도 멸칭과 조롱을 일삼으며 하던 짓을 계속하게 될 뿐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사태의 초기에 막았어야 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높은 지지율에 취해 기고만장하던 시기인지라 '설마' 하던 기류가 팽배했었습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입니다.<br>우리가 삶을 지속하면서 시시각각 삶을 감각하고 인식한다는 건 자신의 삶을 유예하지 않고 현재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즐거워하면서 순간순간의 자기감정을 감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동체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자신의 삶이 전체 인생에서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른바 친명을 자처하는 일부 유튜버와 정치가들은 그런 것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오직 자신의 생존을 위해 파닥거리며 누군가를 향해 분노하는 듯 보입니다. 그들도 부디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기를...]]></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편안함의 뒷면엔 - [계절 쓰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23607</link><pubDate>Fri, 18 Sep 2026 12: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236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907&TPaperId=175236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35/coveroff/k0921309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907&TPaperId=175236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계절 쓰기</a><br/>김연수 외 지음 / 물결점 / 2026년 07월<br/></td></tr></table><br/>우리말에서 '철들다'는 말은 절기, 제철을 알고 산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계절의 순환을 알고 그에 맞춰 삶을 꾸려간다는 뜻이다. 계절의 순환을 안다는 게 무에 그리 어려울까 싶지만은 '철들자 망령'이라는 우리 속담에서 보듯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계절의 순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걸 조상들은 은연중에 넌지시 암시하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자연의 순리를 어느 정도 깨우친 듯싶은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이미 생을 마감할 시기가 되었다는 뜻이다. 농사를 짓던 조상들도 이럴진대 계절의 변화를 사무실이나 거실 유리창을 통하여 감지하는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은 오죽할까 싶다.<br>그럼에도 계절의 변화를 남들보다 민감하게 느끼는 이들이 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음악을 하는 이들이 그러하다. 계절이 교차하는 그 순간의 특별한 느낌이나 감정을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하지 못하면 매번 우리는 그날이 그날 같은, 변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것 같은 둔감하고 탁한 느낌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익숙함이란 결국 죽음과 같은 것이다.<br>"요새는 알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50년을 살았는데, 다음 해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요즘처럼 많이 한 적은 없다. 그런데 그것 또한 어쩌면 자연스러운 섭리인지 모른다. 나이 든 사람은 닥쳐오는 어두운 겨울을 애써 들여다보는 대신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는 것도, 이 가을에는, 다가오는 겨울을 생각하면서 아직 어린 것들을 거두어 건사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nbsp; (p.41)<br>소설가 김연수 외 7명이 공동 집필한 &lt;계절 쓰기&gt;는 각각의 계절에 대해 두 명씩 나누어 씀으로써 사계절을 아우르고 있지만, 글쓴이의 구성이 모두 문학가는 아니어서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다분히 '아, 이제는 인류학자도, 식물분류학자도 계절을 사는 일에 민감해졌구나.'라는 생각에 놀랄지도 모른다. 물론 이와 같은 변화가 최근에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가 과거에 알던 계절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계절의 모습도, 계절이 찾아오는 시기도, 계절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모두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멈춰 선 게 아니라 지금도 꾸준히 진행 중에 있다.<br>"정원의 가구에 녹이 슬고 있다. 겨울을 맞아 치워두는 것을 잊은 것이다. 나무들이 뼈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공기에 불 냄새가 감돈다. 온갖 영혼들이 사냥감을 찾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장미들이, 아직 장미들이 있다. 습기와 한기 속에, 생명이 사라진 듯 보이는 덤불 위에 활짝 핀 장미가, 아직 있다. 저 색깔 좀 봐."&nbsp; (p.118)<br>우리는 점점 모호해지는 계절과 계절 사이의 경계를, 두 계절 또는 세 계절이 한 계절에 중첩된 듯한 낯선 계절의 이미지를, 그리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또렷한 사계절의 변화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난여름에 겪었던 혹독한 더위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것이 끝이 아닐 것이라고, 어쩌면 올여름이 우리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여름 가운데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지도 모른다고 전망한다. 화석 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기후 변화는 히말라야 빙하마저 녹게 했고 네팔 대홍수와 같은 처참한 재난을 겪게 했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계절에 예민한 작가와 학자들로 하여금 예전과 달라진 우리의 계절에 대해 솔직한 느낌을 기술하게 한다.<br>"그렇게 우리의 여름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바람과 구름이 지나가듯이. 매일의 날씨가 달라지듯이.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낮과 밤이 번갈아 찾아옵니다. 낮은 밤을 모르고 밤은 아침을 알지 못하지만, 여름은 그렇게 지나가고 또 돌아옵니다."&nbsp; (p.24)<br>이웃나라 일본은 22일째 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내가 사는 곳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다. 연일 끈적끈적한 습도로 더 큰 더위를 느끼게 했던 여름에서 벗어나자마자 칼로 무를 자르듯 단칼에 습도를 끊어낸 느낌이다. 그렇게 이어진 건조한 날씨는 등산로의 크고 작은 물웅덩이마저 씨를 말렸고, 그 덕분인지 이맘때면 기승을 부리던 가을 모기도 올가을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샤워를 하고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금세 보송보송한 피부로 전환된다. 가을을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기상이변이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불안의 싹이 움트는 것은 이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상시적인 현상으로 진화했다. 기상이변을 두려워하면서도 우리는 그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두 눈을 감고 있다. 편안함의 뒷면엔 우리의 불안으로 가득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35/cover150/k0921309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593513</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자신의 마음속에 억울함을 품으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20234</link><pubDate>Wed, 16 Sep 2026 17: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20234</guid><description><![CDATA[이맘때의 등산로는 여뀌와 달개비의 세상입니다. 다른 풀과 나뭇잎이 시들시들&nbsp; 말라가는 시기에 여뀌와 달개비는 내 세상입네,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그들 무리 속에 키가 껑충한 미국자리공과 돼지감자도 이따금 한 자리를 차지한 듯 보이지만 여뀌와 달개비의 푸른 생명력에 묻혀 잔뜩 움츠러든 모습입니다. 가을을 노래하는 귀뚜라미 소리가 고즈넉한 숲의 고요를 깨우고 여뀌와 달개비에 맺힌 새벽 이슬이 등산객의 바짓가랑이를 적십니다. 추석 명절이 가까워지면서 가을 느낌이 한층 깊어지는 요즘입니다.<br>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 찾아왔건만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합니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30% 초반대를 보이고 이것이 바닥이라는 징후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까닭인지 오는 18일에 대통령의 기자간담회를 갖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18일을 기점으로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찍고 반등에 성공할까요?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지지율은 계속해서 하락할 것이라고 봅니다. 근본적으로 대통령의 자세나 여론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며칠 전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개혁의 이름으로 개혁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뜻에 반하여 바른말을 하는 사람은 개혁을 방해하는 세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른바 윤석열이 자신의 뜻에 반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반국가 세력'이라고 칭했던 것과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자신의 뜻에 반하는 사람들을 향해 '개혁을 방해하는 세력'이라고 하면 민주 대통령이고 '반국가 세력'이라고 하면 반민주 대통령일까요?<br>전에도 밝힌 바 있지만 나는 성인 된 이후 꾸준히 민주당을 지지해 왔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내가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과 압도적인 차이의 여대야소 정국에서 대통령과 민주당 당대표의 뻘짓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5년의 임기 내내 '명비어천가'만 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취임 후 2년도 되지 않은 임기 초반에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정말...<br>사람은 대체로 자신의 마음속에 억울함이 있으면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외부의 적을 세우게 마련입니다. 하나의 억울함이 있으면 한 사람의 적을, 두 개의 억울함이 있으면 두 사람의 적을, 세 개의 억울함이 있으면 세 사람의 적을... 이렇게 자신이 품은 억울함의 개수에 비례하여 외부의 적도 끝없이 늘려가게 마련이지요. 대통령이 지금 그런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나서서 직언을 하면 그 사람의 말에 대해 억울함을 품는 것은 물론 그 즉시 그를 적으로 돌려버립니다. 그리고 속으로는 '나는 잘하고 있는데 왜 저렇게 말할까? 나는 억울하다.'라고 앙심을 품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로는 국정 지지율을 끌어올릴 방법이 없습니다. 민주당의 당대표라는 자도 대통령과 뜻을 같이 하여 감찰을 하겠다는 둥 공천을 주지 않겠다는 둥 지지자들을 하나둘 적으로 돌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비판에 대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이 개선할 점을 살피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대통령과 그 권력에 기생하는 여권의 정치인들은 그렇게 할 의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지율은 계속해서 하락할 수밖에...<br>낮에는 제법 올랐던 기온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처럼 말입니다. 일교차가 어찌나 심한지 주변에는 감기 환자가 급격히 늘었습니다. 일상에서 우리도 자신의 내부에 억울함을 품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결국 손해를 보는 쪽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내부에 품은 억울함이 누군가로 향한 증오가 되고, 그것이 분출되면 결국 분란만 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니까 말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비판의 말이나 직언을 할라치면 자신의 행동을 살피고 개선점을 찾는 성숙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그리움은 한낮의 꿈처럼 - [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음악은 여전히 - 이윤석 산문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13265</link><pubDate>Sun, 13 Sep 2026 13: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132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636&TPaperId=175132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6/20/coveroff/k0921306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636&TPaperId=175132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음악은 여전히 - 이윤석 산문집</a><br/>이윤석 지음 / 레가토 / 2026년 08월<br/></td></tr></table><br/>산업화 시기에 학교를 다녔던 나는 당시의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는 무의미하다고 여겼다. 진로를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았다. 예컨대 누군가가 자신의 소질이나 적성에 따라 작가 혹은 연주자, 사진작가나 화가 등 이른바 예술 쪽의 진로를 선택하겠다고 하면 "얘, 그걸로 밥이나 빌어먹을 수 있겠니?" 하는 식의 퉁박을 받기 일쑤였다. 그것도 면전에서 말이다. 물론 그 모든 수모를 무릅쓰고 자신의 의사를 끝끝내 관철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처음에 가졌던 자신의 생각을 꺾고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뜻에 따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기술보다는 지식을 우선시했던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법대와 상경대의 인기가 압도적으로 높았고, 공대나 예체능 대학을 선택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과도하게 공대 진학 비율이 높은 지금의 분위기와는 저절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시대 상황이었지만 말이다.<br>이윤석 하모니시스트가 쓴 &lt;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음악은 여전히&gt;를 읽으면서 문득 나의 청소년기가 떠올랐던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국가나 기성세대가 개인의 진로를 강제적으로 지정한 것은 아니지만,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상황과 개인의 의사가 무제한적으로 수용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윽박지르거나 강압에 의해 진로가 결정되지는 않는 지금의 상황은 모든 게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언제나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기성세대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른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지만 말이다.<br>"전환점은 초등학교 시절 참가한 아시아 태평양 하모니카 대회에서 찾아왔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크로매틱 하모니카'를 만났다. 반음계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클래식 작품을 완벽히 소화하는 외국 연주자들의 모습은 어린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수소문 끝에 그 악기를 구했고 운명처럼 지그문트 그로븐의 음반을 만났다. 맑고 청아하면서도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 선생님의 하모니카 소리에 나는 단숨에 매료되었다."&nbsp; (p.14)<br>훌륭한 연주자는 많은 연습을 통한 뛰어난 연주 테크닉에서 비롯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나는 유명 연주자들의 인터뷰나 그들의 일대기를 다룬 자서전이나 평전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훌륭한 연주자는 테크닉도 테크닉이지만 결정적인 건 내면의 성숙도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이윤석 하모니시스트의 산문집을 꽤나 꼼꼼하게 읽었다. 사실 어쭙잖은 연주자나 음악가가 쓴 자서전 형식의 산문집을 읽어볼라치면 자신이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왔으며, 세계적인 지휘자나 유명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몇 번을 했다는 둥 자랑 일색으로 꾸며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아서 읽는 데 거슬리거나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비교적 솔직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감으로써 저자가 특별한 직업인이 아닌, 평범한 이웃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풀어내는 듯한 편안함이 느껴지게 했다.<br>"사실 이 글의 첫 문장을 쓰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일단 첫 줄을 적고 나니, 그다음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연주와 달리 글은 나중에라도 돌아가 고치고 다듬으며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된다. 물론 끊임없이 수정하고 싶은 욕망이 또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는 초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기꺼이 껴안고도 시작하는 용기다. 첫 소리를 내는 용기, 첫 문장을 쓰는 용기, 첫 발걸음을 내딛는 용기. 그것이 연주를, 글을,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nbsp; (p.71~p.72)<br>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피아노는 웬만한 집에선 구경하기 어려운 악기였다. 반면에 기타와 하모니카는 비교적 많은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친숙한 악기였다. 나 역시 잘 연주하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날 때면 하모니카를 간혹 불어 봤었다. 그럼에도 악기 연주에 영 소질이 없었던 나는 몇 번 만져본 것으로 그쳤을 뿐 연주자로 나서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저자는 국내에 전공조차 없던 시절에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노르웨이 음악원 하모니카 전공자로 입학하여 세계 무대의 심사위원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을 텐데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한다.&nbsp;Part&nbsp;I. '선택의 발자국',&nbsp;Part&nbsp;II. '무대 위의 순간들',&nbsp;Part&nbsp;III. '마음이 닿는 순간',&nbsp;Part&nbsp;IV. '음악이 삶을 닮아갈 때'의 총 4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온 한 예술인의 삶의 궤적과 깨달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br>"우리가 겪는 사건 자체가 절대적인 행복이나 불행인 경우는 드물다. 당시에는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라 믿었던 일이 시간이 흐른 뒤 성장의 소중한 밑거름으로 재해석되기도 하고, 지금 누리는 달콤한 행운이 훗날 나를 정체시키는 족쇄였음을 깨닫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즉 '마음의 조성'이다. 오늘 하루가 유독 고단하게 느껴진다면 마음의 조성을 살짝 바꿔보자. 당신의 오늘이 전혀 다른 음악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nbsp; (p.147~p.148)<br>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했던지 계절의 발걸음이 유난히 빨라진 느낌이다. 그 바람에 감기 환자가 부쩍 늘었다. 이 좋은 계절을 미처 느낄 새도 없이 감기와 씨름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다. 친구의 하모니카를 한 번만 불어보자며 사정사정해 겨우 건네받고는 가득 찬 침을 털어내느라 애를 쓰던 내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절에는 감기가 옮기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하모니카 하나로 온 동네 아이들이 각자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가며 서툰 솜씨로 생각나는 동요를 온종일 연주하곤 했었는데... 하모니카 하나로도 온 동네 아이들이 종일 행복했던 그 시절이 언제였는지 하모니카의 떨리는 소리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그 시절에 듣던 '섬집아기'를 누군가 옆에서 하모니카 연주로 다시 들려준다면 어떤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세 잠이 들 것만 같다. 그리움은 한낮의 꿈처럼 이어진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6/20/cover150/k0921306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36206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계절을 핑계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11580</link><pubDate>Sat, 12 Sep 2026 15: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11580</guid><description><![CDATA[경험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생각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우리들 대부분은 삶의 중심부를 향해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말하자면 삶의 테두리를 의미도 없이 빙빙 겉돌기만 하다가 주어진 삶을 마감하는 까닭에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이라면 어떤 것에도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살다 죽는 것이 매사에 노심초사하면서 사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로운 삶을 전혀 경험해 본 바 없거나 그것에 대해 극히 제한적인 경험을 갖고 있는 게 전부여서 자유로운 삶을 어떻게 구현하고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기껏해야 우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lt;그리스인 조르바&gt;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조르바의 삶이 자유로운 삶의 원형 또는 그와 유사한 어떤 것이라고 어렴풋이 추측할 뿐이다. 이런 얄팍한 지식으로는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자유로운 삶을 현실에서 구현하기는 어렵다.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그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남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모나지 않게 사는 것이 안전하다는 뜻이다. 조금 구질구질하기는 해도 말이다.<br>나희덕 시인의 산문집 &lt;마음의 장소&gt;를 읽고 있다. 시인이 쓴 산문은 한 꼭지 한 꼭지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짧고 단정하다. 전할 말만 남기고 기타의 군더더기는 모두 제거한 느낌이다. 사실 나는 시인이 쓴 산문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이처럼 간결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려하고 멋진 표현력 때문일 경우가 많다. 나희덕 시인은 나의 그런 바람을 충족시켜 주기는커녕 그 반대에 가까운데 나는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한 채 계속하여 읽고 있다. 달콤한 과자가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하여 손이 가는 것처럼 말이다.<br>"누구에게나 특별한 마음의 장소라는 게 있다. 살면서 지치고 외로울 때 오래된 친구를 찾아가듯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나에게도 그런 장소가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전남 강진에 있는 백운동 별서정원이다. 그곳과의 인연은 꽤 긴 편이다. 십여 년 전 지인의 안내로 월출산 아래 멋진 동백숲이 있는 집터를 가보게 되었다. 그 후로 낮은 돌담과 작은 오두막이 있는 그곳에 이따금 혼자 찾아가 앉아 있곤 했다. 집터를 구입할 사정은 안 되지만, 마음으로는 그곳에 수없이 집을 짓고 허물기를 반복했다."&nbsp; (p.190 '마음의 장소' 중에서)<br>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한 편의 시가 고픈 것은 순전히 계절 탓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나처럼 뻣뻣하고 감정이 무딘 사람에게도 한 편의 시를 읽게 하는 걸 보면 '가을의 마법'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나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었다. 서점 가판대에서 시집은 제법 인기 있는 코너였다. 세월이 무상하게도 요즘 사람들은 시를 잘 읽지 않는다. 유행 때문은 아니지만 나 역시 시와는 한참이나 멀어졌다. 계절을 핑계로 시집 한 권쯤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순전히 계절 탓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간절히 시가 고픈 건 사실이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가을은 글쓰기의 계절 - [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09778</link><pubDate>Fri, 11 Sep 2026 16: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0977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0592&TPaperId=175097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8/45/coveroff/k9921305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0592&TPaperId=1750977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a><br/>라비니야 지음 / 모티브 / 2026년 07월<br/></td></tr></table><br/>말과 글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는 마치 말과 글의 감옥에 갇혀 평생 말과 글로 하는 고문을 받게 된 느낌이다. sns에서 오가는 온갖 종류의 글과 유튜브 동영상에서 퍼지는 많은 말들. 그것뿐만이 아니다. 1인 출판이 활성화되는 바람에 시중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출판사의 책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이렇게 많은 말과 글에 갇혀 살아본 적이 있을까 싶다. 그러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심지어 sns를 멀리하려는 사람도 있다. 음성 통화를 하지 않고 회식이나 모임도 피하곤 한다. 말과 글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말과 글을 피하기 위해 적극적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이런 현상이 지속되는 까닭인지 최근에는 연인 사이에도 카톡 문자를 자주 하지 않거나 평상시에도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무뚝뚝한 남자가 오히려 더 각광을 받기도 한다. 다정도 병이 되는 세상인 것이다. 고려 후기 이조년이 읊었던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라는 말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 것일까.<br>"매일 스트레칭으로 굳은 근육을 풀어주듯, 마음의 결을 빗고 하루를 기록하는 시간은 중요하다. 스쳐 지나가는 상념에 이름을 붙이고, 엉켜 있던 사유를 풀어내며, 흩어진 감정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일. 글 속에서 자유롭게 감정을 풀어쓰고, 집요하게 욕망을 그러모아 들여다보다 보면 삶은 조금씩 선명해진다. 그 과정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과 마주하게 되고, 오래 외면했던 마음의 목소리를 듣게 되기도 한다."&nbsp; (p.8 '서문' 중에서)<br>나도 이따금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까닭에 나 역시 글을 통하여 세상을 어지럽히고 엄한 사람들을 글 감옥에 빠트리는 주요 범인 중 1인이라는 생각은 들긴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내가 올리는 글은 사람들이 읽어도 좋고 읽지 않아도 상관없는, 그저 나만의 취미생활을 통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 까닭에 상업적인 목적을 가진 글과는 구별되는 게 옳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뜩이나 글이 넘쳐나는 세상에 글 하나를 더 얹는다는 게 염치없고 마뜩잖은 일이라는 건 모르는 바 아니다. 라비니야 작가의 책 &lt;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gt;는 단순한 글쓰기 책은 아니다. 말과 글이 넘쳐나는 세상에 또 하나의 쓰레기와 같은 글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어지러운 세상을 더 어지럽게 만들라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나도 경험하는 바이지만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글을 쓴다는 건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일이기에 마음이 어지럽거나 안정이 되지 않을 때 명상을 하듯 매달리기에는 더없이 좋은 취미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것이 인간의 성숙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br>"경험상 나를 가장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글쓰기였다. 기록으로 옮겨 적은 감정은 마음속에서 한 번 걸러지고, 나는 자신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내 감정을 능숙하게 조절하거나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각자가 품고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과 표현 사이의 간극을 충분히 이해하는 이들일 것이다. 그 간극 때문에 우리는 서운한 것인데 화가 난 척 말하고,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굴며, 부끄럽다는 이유로 고마운 마음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이 모든 문제는 자기감정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해본 경험의 부족에서 비롯된다."&nbsp; (p.153~p.154)<br>1부 '쓰고 싶다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가', 2부 '쓰는 사람만 알게 되는 것들', 3부 '글은 결국 삶에서 나온다', 4부 '오래 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의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이 글 전체를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가 글쓰기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 이 책은 작게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대체로 '글쓰기'가 책상 앞에서 하는 고루한 작업이며, 생각만 해도 골머리가 딱딱 아픈 고리타분한 작업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한 번 갖게 된 선입견은 직접 겪고 깨닫지 않는 한 쉽게 바뀌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오히려 강화되는 현상을 보인다. 그러나 진지하게 글쓰기를 체험한 사람은 누구나 알게 된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서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큰 집중력이 요구되는가 하는 문제를. 그러므로 글을 쓴다는 건 수행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br>"살아가다 보면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때가 있다. 중심을 붙들기 어려운 날도 있고, 어떤 기억을 오래 붙잡고 싶어지는 시기도 있다.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조차 삶은 이상하게 자꾸만 새로운 감정을 건네 온다. 그 모든 상황과 감정은 결국 나만의 영감이 된다. 그런 순간을 마주했다면, 그것은 조용히 펜을 들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바로 그때, 한 번도 써보지 못했던 문장을 어색하게나마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천천히 고개를 들 것이다."&nbsp; (p.206)<br>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들 하지만 실은 글쓰기의 계절이라고 말하는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도 모르게 우수에 젖거나 기쁘거나 슬펐던 기억이 나도 모르게 떠오르곤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왔던 그 흔적들을 사람들은 유독 '가을'이라는 이 계절에 더 선명하게 떠올리기도 하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는 소망도 품게 되는 것이다. 빛바랜 사진과 함께 한 줄 메모를 남기는 일쯤이야 누군들 할 수 없으랴. 그러므로 가을은 '글쓰기의 계절'이 아닐 수 없다. 한 편의 매끄럽고 완성된 글이 아닐지라도 자신의 삶의 흔적이 묻은 글이 이 가을에 추억처럼 남는다면 그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기록되지 않은 누군가의 일상이 바람처럼 흩어지는 주말 오후, '언젠가 돋아날 날개 때문에 겨드랑이가 간질거린다'면 주저 없이 펜을 들어보자.&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8/45/cover150/k9921305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8455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생각이 많아지는 요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07551</link><pubDate>Thu, 10 Sep 2026 16: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07551</guid><description><![CDATA[갑자기 찾아온 가을에 들뜬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라도 하려는 듯&nbsp;요 며칠 맑았던 하늘은 어제오늘 우중충하게 흐려 있습니다. 길게 이어지던 늦더위는 사라진 듯하고 뚝 떨어진 아침저녁의 기온은 으스스한 한기마저 느끼게 합니다. 계절이 바뀌는 이 시기에 우리는 제법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br>연일 추락하는 대통령의 지지율을 보면서 나는 요즘 우리가 전임 정권 시절에 보았던 정치인 이재명에 대한 판단이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인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는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꽤나 힘겨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통과하여 변호사가 되었던 것을 보면 그는 남들보다 뛰어난 의지와 목표의식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성과를 낼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지닌 의지나 열정을 의심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가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온몸으로 겪고 목격하였기에 누구보다도 서민의 삶을 잘 이해하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착각하였다는 점입니다. 그가 늘 입에 달고 살았던 '억강부약(抑强扶弱)'이 현실에서 구현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을 까맣게 잊은 채 말입니다.<br>게다가 개인의 목표를 향한 강한 의지를 마치 어떤 신념이나 용기로 착각하였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그가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고 그 과정에서 마주칠 수 있는 어떠한 위험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인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정의와 용기를 몸으로 체득한 사람이라고 믿었다는 게 우리의 착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치인 이재명은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임기응변과 대처 능력으로 위기를 돌파했을 뿐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좋았을 뿐이지요. 낙선을 뻔히 예감하면서도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부산 출마를 강행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여정과는 사뭇 달랐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고집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에서 불안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비겁을 감추기 위해 실용이라는 말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br>계속되는 지지율 하락을 지켜보는 진보 진영의 많은 사람들은 지지율 반등의 모멘텀을 모색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내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이 상태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당대회 이전부터 민주당의 여러 사안에 대해 음으로 양으로 개입하여 왔고, 대부분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같은 진영의 지지자들을 향해 '문조000'이라는 멸칭과 조롱을 일삼는 여러 언론과 유튜버들을 부추기거나 용인하였고, 자신이 원하는 '구조적 다수'를 획득하기 위해 극우적 인물도 등용하였던 게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자들의 마음이 차갑게 식어갔고 '문조000'를 외치던 사람들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자들을 향한 조롱을 멈추지 않은 채 '반명' 딱지를 붙이거나 듣도 보도 못한 '신천지' 딱지를 붙이기에 이르렀습니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자들은 이제 그야말로 실질적인 '반명' 세력이 되고 말았습니다. 머리가 좋고 눈치가 빠른 이재명 대통령이 작금의 현실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문조000'를 외쳤던 자들을 징계한다거나 전통적 지지자들에게 사과한다는 말은 할 수 없을 듯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문조000'를 외쳤던 사람들이 '반명'으로 돌아서고 말 테니까 말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잔꾀에 의한 지지율 하락을 지켜보면서 다른 방안을 모색할 테지요. 개헌이나 파병을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한 방안인 듯 보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시적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일부 유튜버의 눈을 속일 수는 있겠지만 국민 전체를 속일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br>결국 이재명 대통령은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지만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을 위해서 나쁜 결과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싶습니다. 내란의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힘과 '구조적 다수'라는 헛된 꿈을 꾸고 있는 민주당의 양당 체제를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두 정당을 견제할 수 있는 제3의 정당이 출현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정치사에서 조금 더 발전된 민주 제도가 정착될 수만 있다면 지금의 혼란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으스스한 한기가 스민 듯합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무척이나 더디게 읽었던 책 - [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03013</link><pubDate>Tue, 08 Sep 2026 16: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5030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9844&TPaperId=175030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4/77/coveroff/k90213984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9844&TPaperId=175030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a><br/>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6월<br/></td></tr></table><br/>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렇게 절망할 필요가 있을까? 나의 무능함, 부도덕, 탐욕, 사악함... 오늘날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 개인이 개별적으로 평가받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나의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히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이다. 개인의 능력 또한 그가 속한 공동체에 묻히고, 개인의 도덕성 역시 익명성에 묻힌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진정한 자아를 마주하지 않거나 마주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나는 비록 혼자 있을 때 사회가 용인할 수 없는 나쁜 생각을 하기도 하고, 범죄는 아니지만 종종 나쁜 짓도 하는 사람이지만 어느 날 남들 눈에 띄는 그럴듯한 댓글 한 줄을 씀으로써 나는 마치 성인 반열에 오를 만큼 선한 사람으로 대우받기도 하는 것이다. 나의 능력 역시 타인이 형성한 어떤 성과나 도움에 의해 적당히 윤색되고 부풀려지는 게 대부분이다. 나는 혼자 집 한 채를 짓거나 옷 한 벌을 완성하거나 신발 한 켤레를 만들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나의 무능함이나 부도덕함이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크기로 작동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대인은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신유진 작가의 산문집 &lt;나를 균열내기&gt;를 읽고 내게 들었던 생각이다.<br>"막을 쓰고, 나를 접어두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 나에 대한 평가, 물론 그런 것들도 두렵지만, 내가 진짜 두려운 건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얼마큼 울퉁불퉁하고 모난 사람인지 스스로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모르는 것만을 두려워한다. 접힌 모서리를 펼치면 무엇이 될까. 매끄러운 막 아래 숨은 나를 꺼내면 어떤 내가 나올까. 이 표면을 부순다면 날카롭게 갈린 언어로 이 막을 내리찍을 수 있다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도록."&nbsp; (p.6 '프롤로그' 중에서)<br>작가는 이 책에서 프랑스어로 글을 썼던 여러 작가를 차용하면서 그들의 작품 속에서 발견했던 자신의 고독, 광기, 슬픔, 쾌락, 수치심, 절망, 분노, 잔인한 기억 등을 떠올리며 작가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음에 위안을 받는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스스로를 우쭐하게 만드는 특별한 사건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보다는 오히려 강물 위의 작은 물비늘처럼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빛나던 소소하고 작은 일상들로 우리의 삶이 채워진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작고 사소해서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것들 말이다. 광활한 우주가 반짝이는 항성이나 행성들만으로 구성되는 게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암흑물질로 우주의 대부분이 채워지는 것처럼.<br>"페렉은 '산다는 것은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삶은 임시적 정착과 이동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동하는 모든 걸음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누군가의 기억이고, 그 기억이 저장된 공간은 존재의 시간이 쌓이는 장소가 된다. 시간이 삶의 다른 이름이라면, 문학은 한 인간이 세상 속에 머무는 방식, 즉 거주의 예술인 셈이다. 페렉의 책을 펼치며 '읽다'라는 동사 대신에 '살다'라는 말을 써본다. 시인의 870보처럼 페렉의 문학이라는 장소를 천천히 가로질러 본다. 서사를 쫓는 달리기를 멈추고 문장 하나하나에 발을 딛으며,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것들을 돌아본다. 그렇게 그의 문장을 살다 보면, 어느새 페렉의 문학이 하나의 견고한 장소가 되지 않을까. 그곳에 쌓은 시간은 오롯이 나의 것, 나만의 기억이 될 것이다."&nbsp; (p.166~p.167)<br>이 책에 등장하는 프랑스 작가는 비단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작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nbsp;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망명했던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시계공장에서 일하며 프랑스어를 배웠던 작가이고, 체코 프라하 출신의 밀란 쿤데라 역시 프랑스로 망명하여 작품 활동을 계속했던 작가이다. 그러나 책의 저자인 신유진 작가가 발견했던 것은 단순히 언어의 공통성만은 아니었다. 1부 '균열의 발견', 2부 '해체와 붕괴', 3부 '유예의 순간', 4부 '자아의 재구성'이라는 목차의 소제목에서 어렴풋이 짐작하겠지만 저자는 자신의 생각과 기억에 균열을 내고 완전한 파괴에 이르러 새롭게 자아를 재구성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기 위해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했던 여러 작가의 작품을 치열하게 읽고, 갈등하고, 음미하며, 비로소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고 분석한다.<br>"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러나 넘치는 고백들 속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이야기의 쓸모와 방향을 묻는 일이다. '자기 쓰기'는 거울 앞에서 시작되지만, 그 끝은 거울을 깨고, 그 자리에 창을 내는 것이어야 한다. 처음부터 열린 창이 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자. 깨고 깨지는 경험이 결국 우리 안에 창을 만들 것이다. 물론 그 창 너머에 누군가의 진짜 삶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카미유 로랑스는 '로랑스'라는 거울을 깨뜨려 우리에게 '딸'이 아닌 '여자'라는 창을 내어주었다. 나는 그의 창을 바라보며 내가 부숴야 할 거울과 마주한다. 누군가의 창이 없었다면 영원히 거울 속에 갇혀 있었을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다."&nbsp; (p.189)<br>별 기대도 없이 읽었던 책이 내게 큰 감흥을 주는 경우가 더러 있다. 탁월한 글솜씨 때문은 아니다. 작가의 열정과 책에서 쓰고자 했던 주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책을 읽는 나로 하여금 들뜨게 하는 것이다. 그런 책을 만나면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나가는 일이 그저 즐겁다. 혹시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한 글자 한 글자 손을 짚어가며 읽게 된다. 그런 더딤이 마냥 즐거운 반면 줄어드는 책의 남은 분량이 그저 안타까운 까닭에 일부러 책을 덮고 방금 전에 읽었던 부분을 찬찬히 되짚어 생각해보기도 한다. 신유진 작가의 산문집 &lt;나를 균열내기&gt;는 무척이나 더디게 읽었던 책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4/77/cover150/k9021398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44772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익숙해진다는 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97516</link><pubDate>Sun, 06 Sep 2026 11: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97516</guid><description><![CDATA[계절이 하는 질문에 답장이라도 하려는 듯 요 며칠 바람이 불었습니다. 습기를 말끔히 걷어낸 건조한 햇살이 대지를 말리는 동안 푸르름을 드러낸 하늘은 한 뼘쯤 높아진 듯했습니다. 곡식이 익어가는 계절, 농촌의 농부들에겐 타들어갈 듯 건조한 햇살이 계절에 맞춰 알곡을 여물게 하고, 과일의 단맛을 더욱 깊게 하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일 테지만,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에겐 그저 살갗을 태우는 잉여의 열기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늘에서 맞는 끈적이지 않는 바람의 감촉은 마냥 좋았습니다.<br>나는 계절이 바뀌는 시기마다 익숙했던 지난 계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익숙하다는 건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곧 잊힌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계절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날 때마다 나는 그들이 없는 세상에 조금씩 익숙해져 왔고, 새로운 세상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익숙한 지금 나는 그들과 함께 했던 많은 기억들을 잊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마련'이라는 옛사람들의 말처럼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무뎌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문득, 계절이 바뀌듯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어떤 시기가 찾아오면 옅어진 죄책감에 새로운 색을 입혀 그들과의 추억을 조금씩 되살리곤 합니다. 지워질 듯 지워지지 않는 초등학교 시절에 쓴 연필 글씨처럼 한동안 잊고 지내던 추억은 뿌연 연기 속에서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나곤 합니다.<br>나는 지금 김연수 작가 외 7인이 쓴 &lt;계절 쓰기&gt;를 읽고 있습니다. 김연수 작가와 전의령 인류학자는 여름을, 홍한별 번역가와 윤경희 문학평론가는 가을을, 김소연 시인과 김지승 작가는 겨울을, 허태임 식물분류학자와 은유 작가는 봄을 씀으로써 책은 사계절을 아우르게 되었습니다. 홍한별 번역가가 쓴 가을의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br>"지금 나의 계절도 가을이다. 낮이 점점 짧아지고 총기도 사그라진다. 심장이 덜컹거리고 감정은 둔탁하다. 가을은 시들고 이우는 계절이지만, 무성한 잎을 내주는 대신 결실을 맺는 계절이기도 하다. 찬란하지는 않지만 쓸모가 있는 계절이다. 그래야 하는데, 어느덧 시대가 바뀌었고 내가 지금껏 축적해 온 지식이 무용해져 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무얼 써야 할지를 몰랐다. 그래서 시인이 되는 대신 남이 써놓은 것을 따라서 쓰는 번역가가 되었다."&nbsp; (p.40)<br>베란다에서도 차츰 뜨거워지는 마른 햇살의 열기가 느껴집니다. 아파트 화단의 정원수에는 지금도 짝을 찾지 못한 수컷 말매미의 울음소리가 이따금 빈 하늘에 공허한 메아리로 맴돌고, 새로운 계절에 지문을 남기려는 듯 마른 잎사귀가 지면을 향해 살랑살랑 떨어집니다. 나는 이제 익숙했던 계절과 이별하고 새로운 계절에 익숙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늘한 새벽 기온에 잠이 깨어 열린 창문을 닫기도 하고, 투명해진 햇살에 지그시 눈을 감기도 합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조금씩 가을을 잊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익숙해진다는 건 잊힌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나는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아낸 후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한 계절을 살아낸 개개인의 역사가 - [네가 나를 떠나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92259</link><pubDate>Thu, 03 Sep 2026 20: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922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0041&TPaperId=174922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4/84/coveroff/k04213004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0041&TPaperId=174922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네가 나를 떠나면</a><br/>크리스털 하나 김 지음, 허선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08월<br/></td></tr></table><br/>우리는 자신이 살아야 할 시대나 환경을 제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그런 면으로 보면 인생이란 참으로 불공평하다. 내던져지듯 주어진 삶의 환경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환경에 걸맞은 뻔한 스토리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다가 생을 마감한다. 특별할 것도 없이 말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앞으로 전개될 자신의 뻔한 스토리를 거부한 채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자신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그렇고 그렇게 전개되는 뻔한 스토리를 자신의 삶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의지이자 뜻이다. 역사에 기록되는 대부분의 인물은 주로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지만, 소설과 같은 픽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뻔한 스토리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어떤 인물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조건에서 뻔하디 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그들이 헤쳐가는 삶의 결말이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을 그저 경이와 감탄의 시선으로 읽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크리스털 하나 김의 소설 &lt;네가 나를 떠나면&gt;을 읽는 독자라면 주인공 해미의 삶에서 그와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까.<br>"나는 어린 미라를 보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자기 시대 사고방식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성년이 된 이후 내내 미워했던 여자. 어머니는 내가 눈앞의 일만 보느라 분노한 이후의 상황을 보지 못할 때 나를 위해 고민했다. 나는 언제나 부러졌지만, 어머니는 세상에서 부러지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아는 여자였다. 이 상황에서 어머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nbsp; (p.369)<br>소설은 한국전쟁이 진행 중에 있었던 1951년 피난지 부산의 해미네 가족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머니와 몸이 아픈 동생 현기와 함께 부산으로 피난을 온 해미네는 운이 좋게도 어머니의 종조부가 살던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지만, 해미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경환과 싸돌아 다니는 것 말고는 특별히 운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해미의 마음은 언제나 경환에게 있었지만 전쟁통에 삶의 질을 추구하기에 앞서 생존이 우선이었던 탓에 경환과 이어지지는 못한다. 대신에 경환의 사촌 형인 지수가 남동생의 약을 구해다 주기도 하고, 번번이 음식도 들고 오면서 해미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표시를 내는 바람에 해미는 결국 지수와의 결혼을 선택한다. 그리고 지수와 경환은 한국군에 입대한다.<br>"나는 지수와의 결혼, 번갯불에 콩 볶듯 올린 예식 또는 그날 밤에 지수가 군인들이 가득 찬 트럭으로 당당하게 걸어갔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너무 빨리 일어난 일들이었다. 어떤 날은 기억마저 조잡하고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머니가 소박한 혼례용 한복을 추씨 아주머니에게 빌려 왔고, 나는 그걸 입고 우리 집 주위를 걸어 다녔다. 짧은 초록색 저고리와 풍성한 빨간 치마는 우리 일상생활에 비해 너무 강렬해 보였다. 우리 집의 헐벗은 나무 기둥과 어머니의 단호한 분위기에 대비되는 그 색깔은 우리의 진실을 드러냈다. 우리는 이제 초라해졌고, 우리의 겉모습만이 겨우 내놓을 만한 형태를 이루고 있을 뿐이었다."&nbsp; (p.153)<br>자신이 선택한 삶이기에 해미는 지수를 사랑하려 노력한다. 딸 셋을 낳은 해미였지만 지수는 거리로, 술집으로 나돌며 대놓고 바람을 피운다. 그럼에도 지수는 아들을 낳을 때까지 해미에게 계속해서 임신을 요구한다. 해미는 지수 몰래 18개월 된 갓난쟁이 막내딸을 데리고 보육원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경환에게 편지를 쓴다. 경환과 재회한 해미는 경환에게 자신을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는데...<br>"나는 그의 집요함에, 아니 속으로는 내 어리석음에 짜증이 나서 몸을 돌렸다. 경환은 절대 날 놔주지 않을 것이다. 그와 지수는 나를 자기 거라고 주장하기만을 원했다. 마치 내가 보리나 비누나 소, 아니면 애 낳는 기계라도 되듯이. 경환은 한 번도 구속돼 본 적이 없어서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nbsp; (p.455)<br>총 5부로 이어진 이 소설은 1967년의 대한민국으로 길게 이어진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기를 바랐던 이해미의 고단하고 지난한 삶은 아프게 읽힌다.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덫은 때로는 이를 거부하는 이의 올가미가 되어 그의 운명을 옥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그의 숨통이 조여 오는 것이다. 운명에 맞설 용기가 없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와 환경에 걸맞은 뻔하디 뻔한 인생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길게 이어지던 가을 장마도 이제는 그 끝에 이른 듯하다. 어둠이 내린 하늘엔 이따금 구름이 떠다니고 한 계절을 힘겹게 살아낸 개개인의 역사가 구름 저편으로 밀려나는 듯하다. 어둠의 틈새를 뚫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가을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4/84/cover150/k0421300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64846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책은 손에서 점점 멀어지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89329</link><pubDate>Wed, 02 Sep 2026 15: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89329</guid><description><![CDATA[서너 걸음 걷다가 멈추고 다시 서너 걸음 걷다가 멈춘다고 할지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물러설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그와 같은 순간은 꽤나 빈번하게 찾아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개개인의 삶이 다 같은 것은 아니어서 걷고 싶을 때 걷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평생 동안 더없이 편안한 삶을 사는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마는 무작위로 뽑히는 각자의 삶에서 로또와 다름없는 그와 같은 행운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분명 아닐 테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삶에서도 갈등이나 고민이 없는, 꽃길처럼 순탄한 길만 걸을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br>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가 길게 이어진 바람에 한여름을 방불케 하던 늦더위는 한풀 꺾인 듯합니다. 요 며칠 맑은 하늘을 볼 수 없던 까닭에 해가 짧아진 것도 미처 알지 못했던 듯합니다. 내가 아침 운동을 나서는 새벽 5시 30분만 하더라도 이제는 제법 캄캄한 어둠에 휩싸여 손전등 없이는 등산로의 장애물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불과 달포쯤 전만 하더라도 대낮처럼 환하던 길이 이제는 캄캄한 어둠 속에 있다는 게 신기한 일이지만 12월 22일의 동지까지 밤은 계속하여 조금씩 길어질 테지요. 얼마 전에 읽었던 데니스 존슨의 소설집 &lt;예수의 아들&gt;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합니다.<br>"베벌리 요양 병원에서는 매주 목요일에 최고령 환자들을 모아 구내식당 의자에 앉혀 놓고 우유가 담긴 종이컵과 쿠키가 담긴 종이 접시를 앞에 놓아주었다. 그들은 '기억해'라는 놀이를 했다. 그들의 정신이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리기 전에 삶의 소소한 것들을 붙잡게 하는 놀이였다. 모두가 각자 그날 아침에 있었던 일과 지난주에 있었던 일, 몇 분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nbsp;(p.180 '베벌리 요양 병원' 중에서)<br>생각하기 나름이겠습니다만 무척이나 쓸쓸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마지막이 절대 그와 같은 처량한 모습은 아닐 것이라고 자신을 수시로 다독이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언론에서는 치매 치료제도 개발되었고, 암 백신도 개발되어 그동안 불치병으로 여겼던 병들이 하나둘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는 듯 보도하지만 그것이 우리와 같은 서민들에게도 혜택이 미치려면 하세월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끄물끄물하던 하늘은 활짝 개지 않고 여전히 어둡습니다. 밖에 나가면 비닐 우의를 걸친 듯 탁한 습기가 온몸을 감싸고 돕니다. 낮아진 기온만큼 끈적끈적한 습도도 조금 낮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책은 손에서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하늘은 다시 어두워지고 - [그 길 위에 우리가 있었다 -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된 조선인의 기억과 흔적을 찾아 일본을 걷다 19100829-19450815]</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80457</link><pubDate>Sun, 30 Aug 2026 13: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804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130719&TPaperId=174804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3/61/coveroff/k86213071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130719&TPaperId=174804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 길 위에 우리가 있었다 -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된 조선인의 기억과 흔적을 찾아 일본을 걷다 19100829-19450815</a><br/>이재갑 지음 / 책숲 / 2026년 08월<br/></td></tr></table><br/>좋아하는 사진작가가 있다. 2005년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김영갑 작가가 그분이다. 작가 스스로 '외로움과 평화를 찍었다.'고 했던 그의 사진들을 보면 그가 20년 동안 머물렀던 제주도의 바람, 정서, 그리고 작가의 영혼이 그가 촬영한 한 장의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틀에 박힌 한 장의 스틸컷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가 느낄 수 있는 황홀한 순간을 만나기 위해 같은 장소를 수없이 방문하고 기다려야 했던 작가의 열정은 이제 그가 남긴 작품으로만 만날 수 있다. 사진은 작가의 의지와 신(또는 자연)의 의지가 결합된 순간의 미학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신의 의지를 깨닫게 되는 그 순간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른다.<br>최근에 나는 김영갑 사진작가와는 결이 다른, 이재갑 사진가의 사진 에세이 &lt;그 길 위에 우리가 있었다&gt;를 읽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작가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나는 적어도 작가의 에세이집을 한두 권쯤은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의 아픈 과거와 역사의 현장에 대해 천착했던 작가는 한국전쟁과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일제 강점기 때 끌려갔던 조선인 노동자와 원폭 피해자 등 전쟁이 남긴 역사의 흔적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사진은 어쩌면 시간 속에서 스러져가는 시간의 파편을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들춰내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그가 생각하는 사진은 유구한 시간 속을 흐르던 '시간의 운석'인 셈이다.<br>"글로 표현하기는 민망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이렇게 표현한다. 풀과 돌, 나무들이 말을 걸어왔다. 인간의 언어로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현장의 소리를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했다.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현장에 가면 여러 소리가 들린다. 사진으로 말(언어)을 한다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어렵고 힘들다. 그러나 운명처럼 들려오는 현장의 소리를 지나칠 수 없어 한참을 듣고 또 듣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신만의 언어로 다가오고 이를 시각화 작업을 하고 1차, 2차 과정을 거쳐 마무리하게 된다."&nbsp; (p.6 '저자 서문' 중에서)<br>&lt;그 길 위에 우리가 있었다&gt;에서 작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 노역에 시달렸던 조선인 노동자의 흔적을 찾아 일본 전역을 훑고 있다. 제1장에서 다루고 잇는 후쿠오카를 비롯하여 2장 나가사키, 3장 오사카, 4장 히로시마, 5장 오키나와로 이어지는 이 책은 많은 한국인들이 찾는 관광 대국 일본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우리 선조의 희생과 피로 얼룩진 가슴 먹먹한 역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그저 삼일절이나 광복절 등 특정 국경일에 한하여 우리의 아픈 역사와 조상들의 희생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지나칠 뿐 그때의 기록을 생생하게 대면하려는 노력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 선조의 희생을 한낱 조롱거리로 삼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하고, 친일파 선조를 둔 어느 연예인이 방송에 나와 자랑스럽게 밝히는 해프닝도 발생한다.<br>"멀리서 보면 섬 전체의 모습이 군함 같다고 해서 일명 쿤칸지마(軍艦島)로 불렸고,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 동원되어 지옥과도 같은 노동에 시달렸다고 해서 광부들 사이에서는 지옥 섬이라고 불렸다. 원폭 피해자의 삶과 그 뒷이야기를 담은 한수산의 소설 &lt;까마귀&gt;의 실제 배경이기도 하다."&nbsp; (p.123~p.124)<br>작가가 찍은 사진과 직접 쓴 글을 따라가다 보면 사진 작업이 단순히 좋은 사진기와 작가의 테크닉에 의한 하나의 기계적인 결과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사진이야말로 작가의 열정과 작가의 깊은 공명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구현되는, 일종의 영혼의 구현이나 영혼의 발현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한 장의 사진 속에 영혼을 담지 않으면 이것을 감상하는 관객은 어떤 감동도 받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책을 읽었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사진과 글에서 느꼈던 먹먹한 감정 탓에 때로는 책을 덮고 잠시 먼산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br>"목숨을 담보로 진행된 무리한 공사 탓에 숙소를 탈출하는 일도 많았다. 낯선 지형 때문에 깊은 산속을 돌아다니다가 도랑이나 폭포 등으로 떨어져 실족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도망가다 붙잡히면 다리에 나무를 매달아놓고 나뭇잎을 태워 연기를 마시게 하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고문했다고 한다. 기사에는 전혀 믿기 어려운 내용도 있었다. '히로시마 강제 연행을 생각하는 모임'의 대표는 히로시마현 북동부 쪽에 있는 고보댐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을 소개했다. 1942년 시작된 댐 공사에는 경상도 출신의 조선인 노동자 2,000여 명이 강제 동원되어 일하고 있었다. 댐 구조물 공사를 하던 중 조선인 노동자들이 구조물 밑바닥 시멘트 더미 위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밑으로 떨어진 그들은 위를 향해 살려달라고 있는 힘을 모아 소리쳤다. 동료인 조선인 노동자들이 밧줄을 내려보내 구하려는 순간 일본인 감독이 작업을 중단하지 말라고 고함을 내질렀다. 이어 감독은 직접 시멘트를 삽으로 떠서 아래로 부었다. 조선인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시멘트를 팔로 막으려 했지만 잠시 후 조용해졌다. 생매장당한 것이다. 당시 사망한 조선인 수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 뒤 고보 댐은 '인골(人骨) 댐'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nbsp; (p.258~p.259)<br>아침에 비를 뿌리던 하늘은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며 대기의 습도를 높이고 있다. 아파트 화단에 핀 맨드라미도 더위 탓인지 시들시들 생기를 잃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자신이 속한 사진 동아리의 정기 전시회에서 자신이 걸었던 사진 다섯 점 중 두 점이 팔렸다며 좋아하던 게 문득 떠오른다. 공대를 다니고 있는 아들이 졸업 후 어떤 방향으로 진로를 정할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은 손에서 놓지 않을 듯하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빅터 프랭클이 주창했던 로고테라피의 주장처럼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으며, 그 의미를 통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아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해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된다. 밝아졌던 하늘은 다시 또 어두워지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3/61/cover150/k86213071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236157</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주말 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78771</link><pubDate>Sat, 29 Aug 2026 14: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78771</guid><description><![CDATA[기억의 구름이 고난의 능선을 따라 흐르다가 의식의 대지를 향해 한차례 거센 빗줄기를 흩뿌리곤 합니다. 메말랐던 의식의 대지는 그 비로 인해 한동안 습습한 과거 기억에 젖어들게 됩니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 과거 기억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이 작금의 초조한 현실과 뒤섞일 때 우리는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됩니다. 가빴던 호흡이 느려지고 그득했던 욕심도 조금쯤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사는 게 뭐 별 건가?' 하는 생각에 이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오직 앞만 보고 달린다면 우리의 수명은 어쩌면 지금의 절반쯤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밖에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원리도 우리의 기억 체계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겪는 고난의 능선이 높으면 높을수록 기억의 구름이 짙고 풍성하게 쌓일 테고, 언젠가 그 구름을 통해 소나기처럼 세찬 기억이 의식의 대지를 향해 쏟아질 테니까 말입니다. 김소연 시인의 여행 에세이 &lt;그 좋았던 시간에&gt;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등장합니다.<br>"겨울은 여름을 떠올리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여름을 떠올리며 그때 미처 하지 못했던 한 가지를 아쉬워할 수 있는 계절이다. 여름을 열렬히 그리워하는 밤. 성에가 낀 얼룩덜룩한 유리창을 보면서, 다음번 여름엔 소낙비가 내릴 때에 유리창 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창 바깥에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을 선명하게 내다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귤차를 마시다 안경알에 낀 성에가 사라지길 기다리는 잠깐 동안에, 여름의 냄새가 다녀간다. 겨울의 반대편에 여름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는다."&nbsp; (p.179 '겨울에 꺼내는 여름' 중에서)<br>주말 동안 이어지는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올해의 늦더위도 조금씩 수그러들 것 같습니다. 길고 길었던 여름의 터널을 비로소 벗어나는 느낌입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홍수로 인한 네팔 재난의 현장을 뉴스로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우리가 이번 여름에 겪었던 더위와 가뭄이 가난한 나라의 참혹한 재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재난의 주범은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선진국의 국민들인데 피해는 고스란히 가난한 나라의 몫으로 전가되고 있는 이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넘어 죄책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이 흘러 피해를 입은 네팔 주민과 사고를 당한 많은 외국 관광객의 유가족들의 기억도 차츰 희미해지고 언젠가 잊히겠지만 그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듯합니다.<br>아침에 잠깐 내리던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었습니다. 높아진 습도 탓인지 끈적끈적한 더위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립니다. 어느새 에어컨의 리모컨을 손에 쥔 나는 께느른한 오수의 유혹에 흔들립니다. 잠에서 깨고 나면 다시 비가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나는 여름의 한가운데서 허우적대며 누군가의 구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지나고 나니 여름이었습니다. 이 한마디 말을 남기기 위해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지금 이 시간에도 새로운 기억들이 쌓이고 - [고독은 연결된다 - 이타적 에고이스트의 책 읽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75459</link><pubDate>Thu, 27 Aug 2026 17: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754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834218&TPaperId=174754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146/25/coveroff/k28283421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834218&TPaperId=174754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독은 연결된다 - 이타적 에고이스트의 책 읽기</a><br/>김성민 지음 / 구름의시간 / 2023년 08월<br/></td></tr></table><br/>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성향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어떤 동인으로 그 책에 흥미를 느꼈는가 하는 문제가 때로는 한 사람을 평가하는 데 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중년의 한 남성이 서점에 들러 한 권의 동화를 선택했다면 '그 나이에 왜?'라는 질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성인이 된 남성들 중에도 여전히 동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비록 그것이 그 사람의 오래된 취향이라고 할지라도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그 나이에 동화를 고른 동인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곧 그 사람을 평가하는 하나의 관점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br>자신을 일컬어 '이타적 에고이스트'라고 하는 김성민 작가의 리뷰 에세이 &lt;고독은 연결된다&gt;를 읽게 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다. 며칠 전 자주 들르는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괜찮은 책인 듯 보여 대출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물론 나는 다 읽지도 못할 거면서 대책도 없이 책만 빌려 오는 상습적 '책 산책자'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빌려온 책을 무작정 쌓아놓고 묵히다가 들춰보지도 않은 채 책을 반납하는 비양심적인 사람은 아닌 것이다. 이번 책처럼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후루룩 다 읽어버리는 경우도 더러 있으니 말이다.<br>"도서관을 단순히 책 빌리는 곳이라고만 말한다면 허전하고 부족하다. 도서관은 책 자체를 체험하는 곳. 책을 구경하고 읽으며 도서관에서 마련한 수업을 듣고 책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채로운 방법이 있는 곳이다. 베스트셀러나 신간 위주로 배열된 대형 서점에서는 책들이 저마다 존재감을 뽐내지만, 도서관에서는 책들이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백 년 전에 쓰인 책들이 지금 현재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 무덤에 있는 저자들이 곁에 살아 있는 것 같은 상상을 한다. 그래서 도서관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무한한 세계라고 말한 보르헤스가 떠오른다."&nbsp; (p.62)<br>&lt;고독은 연결된다&gt;에는 작가가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이나 사유 또는 연결된 에피소드나 깨달음 등으로 인하여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작가가 언급한 책을 읽고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부류의 책 대부분이 그렇지만 말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도서관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나도 모르게 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와 같은 상습적 '책 산책자'에겐 이 책이 무척이나 위험한 책이라고 하겠다. 빼곡하게 적은 도서 목록을 들고 하시라도 도서관 나들이를 마다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br>"여기에 모인 스물아홉 편의 글은 함께 읽기와 다시 읽기의 결과물이다. 대개 읽고 나서 쓰지만 때로는 쓰기 위해 읽는다. 쓰기 위해 다시 읽는 과정은 나의 이해를 허물고 재구성하는 시간이었다. 삶을 다시 살 수 없지만 책은 얼마든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말처럼 다시 읽기는 독자로서 갖는 즐거움이다."&nbsp; (p.8 '들어서며' 중에서)<br>오늘 아침 새벽 운동에 나섰던 나는 깜짝 놀랐었다. 산의 입구에서부터 매일 들었던 매미 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귀뚜라미 소리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렇게 갑자기 모두 사라졌다고?' 나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웬걸, 산의 능선에 올라서자 매미 소리가 어제와 다름없이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날씨가 다시 더워지는 바람에 매미들도 조금 더 시원하고 조용한 곳으로 피서를 왔나?' 생각하면서 피식 웃음이 터졌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습한 등산로를 매미 소리 덕분에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소리에 민감한 우리 인간들처럼 어쩌면 여리디 여린 귀뚜라미들도 시끄러운 매미 소리에 한껏 항의를 할지도 모르겠다.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로 다투는 우리들처럼 말이다.<br>"층간 소음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인 이유는 개인 간에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개인 간 해결하려다가 감정이 격해져 폭력을 행사하여 정말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 뉴스를 흔하게 접하곤 한다. 여기서 누스바움이&nbsp; 주목하는 것은 감정이다. 감정이 사회 정치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동시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도 감정에 있다고 본다."&nbsp; (p.184)<br>무더위가 정말이지 오래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주택가 가까운 곳에서 시끄럽게 울던 매미도 차츰 먼 곳으로 떠나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8월의 마지막주를 우리는 힘겹게 보내고 있지만 그것이 비단 인간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듯 서둘러 온 귀뚜라미도 더위 속에서 힘겹게 제 짝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새로운 기억들이 각자의 삶 속에 새록새록 쌓이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146/25/cover150/k28283421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146250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열역학 제2법칙을 생각하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71190</link><pubDate>Tue, 25 Aug 2026 17: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71190</guid><description><![CDATA[처서도 지났지만 더위는 여전합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귀뚜라미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매미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온 산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을 뿐입니다. 계절의 변화는 이렇듯 더디게 다가오는 듯하지만 이것이 임계점이야, 하는 경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고, 아침 바람에 소슬한 한기를 느끼게 될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걸 알기에 작금의 더위를 아주 세세히 느껴보곤 합니다. 잊지 않으려는 듯 말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지요. 계절도, 우리의 젊음도, 사랑하고 미워하는 시간들도.<br>단단하던 몸도 나이가 들면서 차츰 흐물흐물 풀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 또한 신체의 변화와 함께 변할 수밖에 없다는 걸 나 역시 나이를 먹어가면서 확실히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반문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노인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주변에는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이 덩달아 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노인의 기억력 감퇴나 인지 기능 저하가 아닙니다. 한평생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개인의 가치관이나 신념, 정의나 도덕성, 심지어 종교적 신념까지도 나이가 듦에 따라 너무나 쉽게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평생을 민주화 운동과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일관했던 김지하 시인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제목의 기고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신념마저 부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것처럼 개개인이 수립한 정의나 가치관은 미약하기 짝이 없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변하거나 자신의 정신을 올곧게 지탱하던 체력이 소진되면 너무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에 보였던 진보진영의 백 모 교수가 그렇고,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올랐던 황 모 작가가 그렇습니다. 하물며 장삼이사와 다름없는 노 모 변호사나 신 모 변호사, 이 모 기자나 이 모 작가 등이야 달리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요.<br>어제는 유시민 작가가 출연한 유튜브 방송을 보았습니다. 나이에 비해 비교적 튼튼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 덕분인지 유시민 작가는 아직 자신의 가치관을 잘 유지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의 기억력이나 논리는 빈틈이 없었고, 분석 능력 또한 탁월했습니다. 정치평론가를 자처하는 우리나라의 잔잔바리 유튜버들은 유시민 작가의 논리를 부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오직 인신공격과 조롱을 내뱉음으로써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구린내가 진동할 뿐입니다. 나는 지금 미국작가 월리 램이 쓴 &lt;강물이 멈춘 날(The River Is Waiting)&gt;을 읽고 있습니다.<br>"오른쪽 뒷바퀴에 무언가 살짝 걸리는 느낌이 전해지자, 내가 쌓아 둔 장작더미에서 나무 한 토막이 굴러떨어졌나보다 생각한다. 장애물이라면 그거일 거라고, 그런데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지? 나는 차를 몇 미터 앞으로 뺐다가 다시 후진하면서 장애물을 넘어갈 만큼 가볍게 가속 페달을 밟는다. 그때 백미러로 팔을 휘저으며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도대체 왜 저래? 저 여자가 왜 저렇게 비명을 지르는 거야? 그러다 나는 알아차린다."&nbsp; (p.26)<br>우리가 알아차리는 비극은 일이 엉망으로 변한 결과일 뿐이지 진행 중에 있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맞는 대부분의 비극은 처음으로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현상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오만한 권력자로 변한 대통령의 모습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열역학 제2법칙처럼 가역적인 변화가 아닌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연계에서 발생하는 과정은 모두 가역과정이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말입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우리의 인생은 다르지 않아서 - [예수의 아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67425</link><pubDate>Sun, 23 Aug 2026 19: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674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0032&TPaperId=174674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42/65/coveroff/k76203003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0032&TPaperId=174674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예수의 아들</a><br/>데니스 존슨 지음, 박아람 옮김 / 기이프레스 / 2025년 09월<br/></td></tr></table><br/>드러나지 않는 삶의 음영을 수시로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이따금 마음의 눈에 편광 필터를 장착한 채 자신의 내면을 샅샅이 훑어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자신의 외관이 아닌 내면을 시간을 들여 꼼꼼히 살핀다는 건 낯설고 번거로운 일일뿐더러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마음에 난 상처는 그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처의 크기도, 발병의 원인이나 시기도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지는 게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일에 순진할 정도로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으로 하여 우리는 자신의 내면이 타인의 그것처럼 데면데면하고 푸접없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내면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긴요한 일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에 있던 근육이 나이와 함께 소실되는 것을 염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게는 없던 마음의 근육이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다.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이 하나둘 작별을 고하기도 하고, 종국에는 나만 홀로 남겨진 듯한 세상이 머지않은 시기에 도래한다는 건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이다.<br>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음의 근육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영화, 음악, 명상, 독서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심지어 어떤 이에게는 달리기가 그 역할을 대신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책을 싫어하지 않는 나로서는 여러 작가의 글을 통해 나의 내면을 살피는 데 익숙할 뿐이다. 그와 같은 역할을 했던 작품은 읽고 지나친 후에도 가끔 생각이 난다.&nbsp;얼마 전에 읽었던 데니스 존슨의 소설 &lt;기차의 꿈&gt;도 그런 책 중 한 권이다. 모름지기 좋은 책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떠오르거나 연상되는 어떤 사물이나 상황으로 인해 소설 속의 한 장면을 자신의 의식 속으로 소환하게 되는 책. 그렇게 소환된 소설 속 한 장면으로 인해 나의 내면이 자연스레 내 의식의 벽면에 파노라마처럼 상영되는 일.<br>"사고 차량에 늘어져 있던 남자는 내가 지나갈 때 아직 살아 있었다. 이 무렵 나는 그가 심하게 다쳤다는 사실에 조금 익숙해져서 걸음을 멈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는 요란하고 무례하게 코를 골았다.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피가 부글부글 나왔다. 그런 숨조차 많이 남지는 않은 듯했다. 나는 알았지만 그는 몰랐고, 그렇기에 나는 그를 내려다보면서 이 지상에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측은한지 절감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결국 죽는다는 것,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자기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내게 말할 수 없고 나는 현실이 어떤지 그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것, 그 점이 내게는 지독히 측은하게 느껴졌다."&nbsp; (p.30 '히치하이킹 도중에 일어난 자동차 사고' 중에서)<br>데니스 존슨의 단편집 &lt;예수의 아들&gt;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거나 평범한 이의 삶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예외적인 삶을 다루고 있다. 20대 내내 마약과 술에 중독된 채 살았던 작가의 경험을 반영한 듯 책 속의 인물들은 모두 삶이 부러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부서지고 흩어져서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삶'으로의 복귀가 불가능해 보이는 삶일지라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반짝이는 순간이 기적처럼 찾아온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노력한 것 같다. 그러나 반짝이는 그 순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삶, 이를테면 허물어지고 한없이 흐트러진 삶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제공하는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의 모습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너무나 삐뚜름하게 보인다. 구멍이 숭숭 난 스웨터처럼 온전한 모습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이다.<br>"바인에서는 그런 순간이 많았다. 오늘이 어제인 줄, 어제가 내일인 줄 착각하는 순간. 왜냐면 우리는 모두 우리가 비참하다고 여기며 술을 마셨으니까. 우리는 그런 무력감, 우리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는 수갑을 찬 채로 죽을 터였다. 결국 우리의 삶은 강제로 종지부를 찍을 터였고 심지어 우리 잘못도 아닌 일로 그렇게 될 터였다. 우리는 그렇게 상상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늘 터무니없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곤 했다."&nbsp; (p.63 '보석(保釋)' 중에서)<br>데니스 존슨의 단편집 &lt;예수의 아들&gt;은 편집 또한 기괴하다. 소설의 목차는 책의 가장 뒤편에 배치되어 있고, 책에 실린 단편소설의 제목 역시 소설이 끝나는 마지막 페이지에 등장한다. 말하자면 독자는 단편소설의 제목도 모른 채 본문부터 읽기 시작하여 소설을 다 읽은 후에야 비로소 제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편집 방식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독자라면 제목이나 목차를 먼저 확인하고 읽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책에 실린 단편소설의 제목을 보면, ''히치하이킹 도중에 일어난 사고', '두 남자', '보석', '던던', '일', '응급실', ';더럽혀진 결혼', '다른 한 남자', '해피아워', '시애틀 종합 병원에서 본 굳건한 손', '베벌리 요양 병원' 등 11편이다. 소설은 지극히 짧은 소설에서부터 적당히 긴 소설에 이르기까지 꽤나 다양하다. 소설은 사실과 환각이 뒤엉키고 시제 역시 불분명한 까닭에 처음에는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가 서술하지 않아 잘려나간 듯한 부분 역시 독자의 상상력으로 자연스레 메워지게 된다.<br>"내가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10시간, 12시간, 그 정도였다. 나는 정규직 일자리를 찾고 있었고 헤로인 중독 치료 모임에도 나갔으며, 지역 알코올 중독 수용 센터에도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했고, 사막의 봄을 산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베벌리 요양 병원의 원형 복도는 마치 이승의 삶들 사이에 머무는 곳처럼 느껴졌다. 한 생을 살고 난 뒤 돌아와서 다른 영혼들과 뒤섞인 채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곳."&nbsp; (p.181&nbsp;'베벌리 요양 병원' 중에서)<br>우리는 이따금 자신의 삶은 되돌아보지 않은 채 타인의 삶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마치 '남의 눈에는 티, 내 눈에는 들보'라는 격언처럼 제 눈에 있는 들보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데니스 존슨의 단편집 &lt;예수의 아들&gt;을 읽다 보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에 대해 '왜 그렇게 살아?'라고 비난할 사람이 혹여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존경해 마지않는 교황이나 달라이라마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삶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사람을 주위에서 볼라치면 어느 영화의 시니컬한 대사처럼 "너나 잘하세요."라고 충고하는 게 맞을 듯하다. 데니스 존슨이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신의 인생도 이들과 다를 게 없다고.]]></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42/65/cover150/k76203003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0426567</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모처럼 한가한 주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65400</link><pubDate>Sat, 22 Aug 2026 13: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65400</guid><description><![CDATA[어제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바쁜 날들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바쁜 날들을 보낼 때마다 나는 스위스 출신의 작가 페터 빅셀이 쓴 &lt;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gt;가 떠오르곤 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페터 빅셀의 말에 동의하고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현실과 타협하고, 그와 같이 행동하고 있는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자신의 삶을 꾸려갑니다. 어쩌면 우리는 못마땅하거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 속의 자신을 죽기 직전까지 다독이고 미화하면서 이상만 추구하는 또 다른 나에게 끝없이 변명하고 설득하는 데 자신의 온 삶을 바쳐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br>"나는 일기 쓰기가 두렵다. 살면서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이삼 일 뒤에는 늘 포기했다. 일기장은 내 날들을 망쳤다. 낮에 경험한 일을 저녁에 쓰는 것이 아니라, 일기장을 위해 살기 시작했으니까. 일기장을 위해 움직이고, 일기장을 위해 관찰했다. 일기장을 위해 술집을 고르고, 일기장을 위해 이야기할 사람을 찾았다. 의미 있는 일만 해야 한다면 인생은 삭막해진다. 일기장에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었음'이라고 적은 그 오늘도 상황에 따라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었을 수도 있을 테니."&nbsp; (p.84~p.85)<br>그닥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지만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끝났습니다. 누구나 예상했던 대로 김민석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되었고, 민주당의 당원이나 그렇지 않은 일반 국민들조차 시큰둥한 반응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지지하고 밀었던 후보, 모든 언론과 진보 진영의 유튜버들이 그토록 공을 들이고 앞장서서 선거운동을 펼쳤던 후보, 그럼으로써 경쟁 상대였던 다른 유력 후보를 비인격적으로 조롱하고 공격할 수밖에 없었던 선거 운동,&nbsp;선거 이후에&nbsp;당선되지 않은 유력 후보를 지지했던 당원이나 수많은 시민들의 가슴에 남은 앙금을 해소하는 데는 일말의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그들의 태도 등은 선거 전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막상 그 모든 게 현실로 재현되었을 때 사람들의 낙담은 단순한 낙담이 아니라 민주당과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바뀐 듯합니다. 그럼에도 선거에 동원되었던 여러 유튜버와 신임 당 대표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자신들의 공과와 전리품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는 듯 보이고 말입니다.<br>민주당의 당원으로 가입한 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수십 년 동안 민주당을 지지하고 민주당의 후보에게 나의 한 표를 아끼지 않았던 나였지만 이번 선거만큼 저열한 방식의 당 대표 선거를 지금껏 본 적이 없었던 듯합니다.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끝없이 대통령을 팔았던 신임 당 대표와 그의 지지자들의 행태를 보면 이 모든 일들을 대통령이 용인하고 지지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짓거리였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들도 어쩌면 자신들의 권모술수가 사람들의 눈과 귀는 속일 수 있어도 대중의 마음까지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조만간에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br>나는 얼마 전에 썼던 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민주당에 대한 지지는 완전히 철회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제 주변에도 민주당을 탈당하여 당원 자격마저 없앤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취임한 지 1년 남짓한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과 '레임덕'이라는 단어를 자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주당은 물론 진보진영 전체로 보더라도 그것은 분명 불행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쳐가는 모든 역사는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를 찾는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겠지만 말입니다. 내일은 더위도 물러간다는 처서, 우리 곁에는 여전한 더위가 숨을 쉬기 어렵게 몸을 감싸고 권모술수에만 능한 정치인들이 여름의 짜증을 더하고 있습니다. 모처럼 한가한 주말입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노을이 번지듯 - [패치워크 - 2025 문화체육관광부 중소출판사 성장부문 제작지원사업 선정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54286</link><pubDate>Sun, 16 Aug 2026 19: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542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033805&TPaperId=174542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76/42/coveroff/k3220338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033805&TPaperId=174542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패치워크 - 2025 문화체육관광부 중소출판사 성장부문 제작지원사업 선정작</a><br/>방희진 지음 / 나루서가 / 2025년 12월<br/></td></tr></table><br/>더위의 주변부에 있었을 때 우리는 여름이 하냥 만만하게 보였다. 그러나 더위의 중심부를 통과했을 때의 우리에게 여름은 무섭고 두려운 어떤 것으로 변해 있었다. 삶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삼시 세끼를 부모에게 의존하던 시기에 삶은 그저 한 번의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처럼 가볍고 시시한 것쯤으로 보였지만, 삶의 고비를 여러 번 겪고 난 중년의 어느 시기쯤에서 바라보면 삶은 마치 보따리를 풀면 풀수록 해결할 수 없는 참담한 문제들이 끝없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하나의 괴물 보따리쯤으로 여겨진다. 방희진의 소설집 &lt;패치워크&gt;를 읽는 동안 나는 아스라이 멀어져 간 듯 느껴지는 가까웠던 여름의 폭염과 그에 얽힌 몇몇 기억들을 떠올렸다. 마치 재질이 다른 조각천을 조각조각 이어 붙이듯 말이다.<br>"이름 아래 소개된 약력을 검지로 톡톡 치며 진영은 그렇게 말했다. 선망이나 비웃음이 담긴 말투는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여자의 부지런함만은 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혜린은 갤러리 관장 외에도 미술평론가, 수도권 대학의 겸임교수로 불리고 있었다. 나는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오혜린의 글을 읽었다. 장 드뷔페의 아르 브뤼 미술을 미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한 것이었다. 새로운 주제는 아니었다. 진영의 말대로 평론이라 하기에는 애매했다. 인용한 문장이 많아선지 현학적이고 난삽해서 요점을 잡기가 어려웠다."&nbsp; (p.110 '패치워크' 중에서)<br>방희진의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패치워크'를 포함하여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패치워크'에는 세 여인이 등장한다. 오정순이었다가 개명을 통하여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오혜린과 주인공인 나(이정선)와 진영이 그들이다. 아버지 쪽 친척 여동생인 진영은 짧았던 결혼생활을 접고 그림에만 매달려 대외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편이었다. 반면에 백화점 디스플레이어로 일만 하던 나는 번아웃이 왔고, 그런 나에게 다시 붓을 쥐어준 이가 진영이었다. 전시회 때문에 오혜린을 만났던 진영이 나의 전화번호를 오혜린에게 건네주었고, 오혜린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30년 전의 흐릿한 기억을 되살린다. 나는 무명이었던 김옥환 화백이 그의 화실에서 수강생을 모아 서양화를 가르쳤을 때 오혜린과 함께 그림을 배웠던 수강생 중 한 명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세 사람은 내가 선물로 받았던 팔찌를 통하여 각기 다른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하나의 팔찌에 세 개의 다른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 소유하게 된 배경이나 동기도 서로 다르지만. 마치 소재와 색상이 다른 각각의 원단처럼.<br>"뒤늦게 첫 소설집을 내며 기쁨보다는 괴로움이 더 컸다. 의미를 따지는 평소의 습관대로 이 책에 대해서도 뜻있는 뭔가를 자꾸 찾으려 들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얻지 못했다. 다만 먼 길을 가는 사람이 첫발을 떼면서 호들갑부터 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러니 용감하게 첫걸음을 내딛자, 이 책의 의미를 입증하는 알리바이로 그만큼만 주장하자 마음을 다졌다. 나중에는 나중의 알리바이를 주장할 테지만."&nbsp; (p.254 '작가의 말' 중에서)<br>소설은 대개 피할 수 없는 관계와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롯되는 삶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되는 여러 감정과 회한 또는 결심이 주를 이룬다. 어느 소설이든 다 그런 범주에 속할 테지만 말이다. 이 소설집에는 무엇인가를 잃었거나 삶의 목표에 근접하지 못한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작가는 이들의 내면 풍경을 그리기 위해 주변의 인물들을 동원하여 좀 더 심층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 흐르는 쓸쓸하고 덧없는 감정까지 말끔하게 지우지는 못한다. 그것은 인간이 지고 가야 할 원죄라도 되는 것인 양.<br>"수진이 저녁에 돌아와 하려던 말은 끝내 듣지 못했다. 그날 저녁의 약속만 아니었다면 수진은 무사했을까. 나는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오래도록 내 안의 피멍에 주먹질을 했다. 아이를 치고 달아난 운전자에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저주란 저주는 죄다 퍼부었다. 경찰에선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고 남편과 내가 내건 현수막은 그해 가로수가 모조리 잎을 떨어내고 겨울바람이 부는 동안에도 이면도로 가에서 저 혼자 펄럭였다."&nbsp; (p.179 '이불' 중에서)<br>지면을 적시는 비는 꽤나 오랜만에 보는 듯하다. 아침에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높아진 습도 탓에 불쾌지수가 높아진 저녁, 군데군데 먹장구름이 떠 있는 하늘 위로 노을이 번지고 있다. 방희진 작가의 소설집 &lt;패치워크&gt;를 읽고 왠지 모르게 울적해진 오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고 내 삶의 보따리를 풀어 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고만고만한 문제들이 울적해진 마음에 불을 붙일 듯하다. 노을이 번지듯.]]></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76/42/cover150/k3220338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8764263</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amp;lt;유럽 도시 기행 3&amp;gt;을 읽다가 문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50789</link><pubDate>Fri, 14 Aug 2026 16: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50789</guid><description><![CDATA[뭔가 모르게 갈팡질팡 마음만 부산스럽고 안정이 되지 않을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런 날은 책을 읽어도 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고, 읽고 지나쳤던 부분도 이해가 되지 않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시 읽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크게 신경 쓰이는 근심이나 걱정거리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렇다 하는 문제도 딱히 찾을 수 없는데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마저 빨갛게 상기되어 마치 누군가로부터 심하게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시간적 여유도 있고, 책을 읽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은데 도무지 집중을 할 수 없는 기분 탓에 독서에 빠져들 수 없는 현실. 집중력 결여의 상태가 불규칙적으로 자주 반복되는 까닭에 책을 읽을 수도 없는 현대인의 서글픈 현실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듯합니다.<br>오늘은 말복이자 광복절 연휴를 코앞에 둔 설레는 금요일. 습도가 높아진 탓인지 바깥공기는 텁텁하고 무겁습니다. 이렇게 습도가 높아진다는 건 뽀송한 하루를 보장받기 어렵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 가을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던 어제와 그제의 날씨와도 사뭇 비교가 되는 날씨 속에서 나는 가슴이 두방방이질 치는 불안을 잠재우지 못한 채 온종일 서성였습니다. 오죽하면 알랭 드 보통의 &lt;불안&gt;이나 페르난두 페소아의 &lt;불안의 서&gt;를 찾아 읽어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을까요.<br>유시민 작가의 &lt;유럽 도시 기행 3&gt;을 읽고 있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근거 있는 비평에도 불구하고 어떤 논리적 근거도 없이 작가를 조롱하고 비판하는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소위 정치 비평이랍시고 떠벌리는 일부 '촉법 비평가'들의 야만적인 권력욕과 돈을 향한 저질적인 행태에 질려서 수십 년 민주당만 지지했던 나는 다시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겠노라 결심하게 되었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당대표 선거에도 관심이 전혀 없지만 오늘 대통령의 지지율이 44%로 취임 후 최저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나와 같은 골수 민주당 지지자들의 마음이 식었기 때문일 것입니다.<br>"마드리드가 어떤 도시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스페인의 수도이지만 제일 잘사는 도시도 아니고 가장 아름다운 도시 또한 아니다. 하지만 이 도시가 무엇을 바라면서 어디로 나아가려 하는지는 분명했다. 총칼 앞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정치인의 이름을 국제공항에 걸었다. 폭력이 난무한 시대에 인간의 이성을 깨웠던 예술가를 잊지 않았다. 실패했지만 옳은 길을 가려 했던 지도자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P.97~P.99)<br>우리가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고 지금도 그리워하는 까닭은 그가 성공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는 어쩌면 철저하게 실패한 대통령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것을 향해 끝끝내 나아가려 했던 모습을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실패 역시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배반한 변절자도 아니요, 국민을 기만한 노쇠한 정치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항상 신념을 굽히지 않는 젊은 정치인이자 겉과 속이 같았던 투명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취임 후 1년이 조금 지난 대통령에게서 닳고 닳은 노쇠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br>]]></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