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꼼쥐님의 서재 (꼼쥐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Mon, 06 Apr 2026 03:42:51 +0900</lastBuildDate><image><title>꼼쥐</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A_018.gif</url><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꼼쥐</description></image><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봄비 내리는 주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6453</link><pubDate>Sat, 04 Apr 2026 17: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6453</guid><description><![CDATA[주말에 내리는 비가 고마울 때가 더러 있습니다. 오락가락하는 비를 핑계로 평소에는 누리지 못하던 천상의 게으름을 한껏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깥에는 온종일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아침에 겨우 고양이 세수로 하루를 시작한 나는 늦은 점심을 먹은 후에도 한 손에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고 소파에 누워 나른한 오후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냅니다. 소리도 없이 내리는 봄비가 베란다 통창에 눈물처럼 긴 여울을 만들고, 나긋나긋 풀어진 몸 위로 께느른한 졸음이 쏟아집니다.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기도 하고, TV 스크린은 관객도 없는 영상이 흘러갑니다. 남들은 벚꽃이 지기 전에 꽃구경을 간다고 난리라는데, 나만 홀로 이렇게 비싼 휴식을 즐겨도 되는지 스멀스멀 때늦은 걱정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아파트 화단에 만개한 자목련 한 송이가 위태롭던 순간을 이기지 못한 채 툭 하고 낙하합니다. 시간은 온통 '봄'을 향해 모이고, 오늘처럼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엔 낮과 밤의 경계가 무척이나 모호해집니다.<br>"선은 언제나 희미한 가능성으로만 존재한다, 고 한다면 그건 너무 염세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염세의 극단으로 우리가 내몰릴 때, 저 멀리 흐릿하게 존재하는, 실오라기 같은 가능성으로라도 선을 떠올린다는 것은 인간을 살게 하려는 유전자의 간계다. 희망은 나를 살고 싶게 만든다. 나의 죽음을, 희망은 방해한다.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일 것"이라고 로맹 가리는 말했다.(그 역시 자살했다.) "지성은 나를 염세주의자로 만들지만, 의지로 인해 나는 낙관주의자"라고 안토니오 그람시도 말했다.(그는 자살하지 않았다. 46세로 병사했다.) 희망을 끝내 희망하는 인간의 질병은 염세라는 유혹과 본능적으로 싸운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결국 자살하고 만다는 것은, 신의 섭리란 한낱 인간의 창작물에 지나지 않으며 신을 창조해낸 그 인간이란 종에게서는 저 먼 곳의 희미한 가능성으로라도 선을 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적 자각의 결과인 것이다."&nbsp; (P.323 &lt;그저 하루치의 낙담&gt; 중에서)<br>이렇게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말하자면 날씨에 의해 이성과 본능이 플라스마 상태로 혼재된 이런 날에는, 아무리 가벼운 책일지라도 이성적 추론을 요하는 대목에서는 즉각적 이해가 되지 않아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는 수모를 겪곤 합니다. 급기야 문해력 수준이 나이가 들수록 낮아지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책을 놓고 바깥 풍경에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논리와 근거도 없는 비약은 나와 같은 인간 종에게 '회피'라는 책략을 권고하기도 합니다. 업무로부터의 회피, 독서로부터의 회피, 부모로서의 의무로부터의 회피... 생각해 보면 '회피'만큼 유용한 수단도 더 이상 찾기 어려울 듯합니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슬슬 배가 고파집니다. 낮과 밤이 혼재된 어스름 속에서 하루가 지워지나 봅니다. 가벼운 바람에도 벚꽃잎이 눈처럼 쏟아집니다. 그저 평범한 어느 토요일 만큼의 낙담이 벚꽃에 실려 흩날립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벚꽃 밝은 밤 - [거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4952</link><pubDate>Fri, 03 Apr 2026 20: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49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5186&TPaperId=171949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3/18/coveroff/k2821351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5186&TPaperId=171949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거품</a><br/>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6년 01월<br/></td></tr></table><br/>결말보다는 과정이 궁금해지는 소설이 더러 있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결말을 미리 보고 싶지 않은 까닭일 수도 있다. 그런 소설일수록 소설의 서사는 매우 느리게 전개된다. 반복되는 일상처럼 어떤 특별한 사건 사고도 없이 지루하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독자로서는 다소 불만일 수도 있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독자가 예측하는 뻔한 순서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야기의 흐름에 인위적인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은 듯한 전개와 구성. 작가는 실제 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적은 듯 소설 어디에도 일부러 꾸민 듯한, 작위적인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런 소설을 좋아한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lt;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gt;를 읽고 단박에 작가의 팬이 되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이유가 컸다.<br>"학교 교육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공부만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실이라든가 도덕이라든가, 학교는 인간 형성을 목적하는 곳이라는 듯이 운영되는 것도, 다루기 편한 인간을 하나라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싶기 때문일 터다. 교과서에 쓰여 있는 일 따위, 하룻밤이면 뒤집힌다. 게다가 대학 입시를 위해서 입시학원에 다니고,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한다니, 도대체 무슨 저주가 걸린 것일까 불쌍해진다."&nbsp; (p.50)<br>대학 입시와 서열로 얼룩진 남자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가오루는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며 학교 밖 청소년이 되고 만다. 결국 그의 아버지 고이치는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사리하마 지역에서 재즈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가오루의 작은할아버지 가네사다에게 가오루를 맡긴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비교적 자유롭게 살고 있는 가네사다 씨는 2차 세계대전의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종전 후 귀환한 귀환병이다. 그러나 간신히 살아 돌아온 그였지만 가족은 물론 가까운 이웃들조차 그를 '빨갱이' 또는 '공산주의자'라며 색안경을 끼고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바람에 그는 가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리하마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가 운영하는 재즈 카페 '오부브'에는 함께 일하는 직원 오카다가 있다. 가오루가 머무는 여름 동안 오카다 씨와 같은 아파트에서 지내게 된 가오루.<br>"복원하고 거절당했을 때부터 가네사다는 친척이라는 것에 대해 거듭거듭 생각했다. 오 년 지나고, 십 년 지나고, 이십 년 남짓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린 결론이 그것이었다. 친척이란 커다란 바다에 나타난 잔물결에 지나지 않는다. 조류나 바람에 뒤틀리는, 수동적으로 태어난 우연의 주름 같은, 부모의 부모, 또 그 부모의 부모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계도는 종으로뿐 아니라 횡으로도 확대되어 간다. 그 확대는 세로 방향이든 가로 방향이든 바로 안개 속에 뒤섞여서 더듬어갈 수 없게 될 것이다. 더듬어가지 못하는 그 앞으로 가서 모든 선을 이어가면 언젠가는 너나 나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는 얘기가 되지 않을까? 눈앞의 친척들과 결별해도 바다를 떠돌며 살아간다는 의미에서는 같다, 가네사다는 그렇게 생각했다."&nbsp; (p.100)<br>작가는 주인공이 겪는 불안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어떤 방법이나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불안이 일상이 된 주인공의 상태를 곧이곧대로 보여줄 뿐이다. 학교 생활에서부터,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던 가오루의 집에서부터, 그렇게 이어지던 불안은 가네사다의 재즈 카페 '오부브'로까지 이어졌다. 처음 접하는 어설픈 공간이었지만 가오루는 잔잔한 재즈 선율 속에서 외국어에 능한 작은할아버지와 요리 솜씨가 좋은 직원 '오카다' 등 비록 그를 보살피는 어른들이지만 누구 한 사람 강요하거나 구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는 언제나 가오루를 믿고 지지하는 주변 어른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br>"조심해야 하는 것은 자기가 혼자라고 느낄 때야. 자기가 어딘가 막다른 곳에 몰렸다든가, 소외되었다든가, 집단을 원망하는 마음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 무리해서라도 집단에 남든지, 집단에서 나가는 편이 좋아. 그리고 정면으로 불평을 말하면 돼. 욕지거리를 해도 돼. 누군가는 그 욕지거리를 듣고 있어. 집단에서 나오고 나서 집단을 원망하기 시작하면 상처입는 것은 자신이야."&nbsp; (p.202~p.203)<br>집단에 속한 개인은 언제나 집단의 단단한 벽과 마주할 때 또는 집단 구성원과의 갈등이 심화될 때 어찌할 줄 모른 채 우왕좌왕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비단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부족한 데서 온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어쩌면 집단 속에서 오랫동안 지내온 개인이 자신의 존재를 서서히 잃어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정하고 싶지만 자신이 집단 속에서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도 띄지 않을 만큼 작아졌거나 숫제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면 집단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 자신의 존재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lt;거품&gt;의 주인공인 가오루처럼 말이다. '나'라는 존재도 이 시대를 구성하는 개체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집단의 구성원이 아닌 순수 개인으로서 깨달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오늘은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 국가 폭력 앞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그날의 제주 시민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만개한 벚꽃은 저리 밝은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3/18/cover150/k2821351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03181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찬란한 슬픔의 봄이 어울리는 하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2596</link><pubDate>Thu, 02 Apr 2026 16: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2596</guid><description><![CDATA[산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계절의 변화가 어찌나 빠르던지 변해가는 산의 모습을 여유롭게 감상하기는커녕 어, 하는 사이에 벌써 꽃이 피고, 새순이 돋고, 새벽어둠을 뚫고 지저귀는 새의 울음소리가 하나둘 늘어가는 것을 채 헤아리지도 못한 채 봄의 한가운데에 들어선 듯합니다. 봄의 정취를 미처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등산로에서 새초롬히 핀 진달래를 보았습니다. 겨울을 벗어난 날은 며칠 되지도 않은 듯한데 양지쪽에 앉았을 때의 느낌은 겨울로부터 한참이나 멀어진 듯 여겨져 다가올 여름이 새삼 두려워지는 것입니다.<br>내가 매일 아침 오르는 산의 입구 공터에는 최근 누군가 어설프게 만든 닭장 하나가 세워졌습니다. 그곳에 풀어놓은 수탉 한 마리가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곤 합니다. 도시 한가운데서 듣는 수탉의 울음소리는 꽤나 생경하게 들립니다. 나를 여기에 이렇게 가둬두는 건 부당하다고 말하려는 듯 수탉의 울음소리는 무척이나 거칠고 우렁찹니다. 나는 오늘도 자유를 갈구하는 듯한 수탉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산에 올랐었습니다. 인간의 식량조달을 위해 닭을 키운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자유마저 빼앗을 권리가 있는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로 근무했던 박선영의 에세이 &lt;그저 하루치의 낙담&gt;에는 18세기 낭만주의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시 '늙은 선원의 노래'가 등장합니다. '...... 너무 놀라고쓸쓸해진 채/그는 집으로 돌아갔다./이튿날 아침 일어났을 때/그는 더 슬프고 더 현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작가는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br>"더 슬프고 더 현명한 사람A sadder and a wiser man, 깨달음이란 기쁨과 함께 오지 않고 슬픔과 함께 온다는 것. 사람을 더 현명해지도록 만드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것. 더 현명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더 슬픈 사람이며, 그것이 내가 그토록 강렬하게 슬픔의 수집가가 되려던 이유였던 것이다. 나는 삶을 잘 살고 싶다. 삶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싶다. 삶의 폭력을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고 싶다. 그러려면 슬퍼야 한다. 슬픔에 귀 기울여야 한다. 슬픔만이 나를 그 길로 안내할 수 있다."&nbsp; (p.106)<br>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슬픔은 가장 낮은 등급의 감정인 까닭에 슬픈 노래를 듣거나 슬픈 이야기를 듣거나 슬픈 내용의 소설이나 영화를 감상할 때 우리는 한없이 안온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기쁨보다는 슬픔으로 구성되는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들었던 수탉의 울음소리가 온종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도 나 역시 오늘 하루를 슬픔 속에서 온전히 머물고 싶었던 까닭입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이라고 노래했던 김영랑 시인이 떠오릅니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 어울리는 하루.<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애틋함의 긴 여운만 남기고 -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0226</link><pubDate>Wed, 01 Apr 2026 12: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02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034981&TPaperId=171902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31/12/coveroff/k08203498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034981&TPaperId=171902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a><br/>콘치타 데그레고리오 지음,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그림, 정림(정한샘).하나 옮김 / 오후의소묘 / 2026년 01월<br/></td></tr></table><br/>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끝없이 획득하고, 유형.무형의 자산을 무한정으로 늘려간다고 생각한다. 고가의 명품 가방이나 시계, 멋진 승용차, 넓은 주택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망하는 어떤 대상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때로는 성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거나 숫제 헤어지게 된다. 내가 태어났던 고향집, 사랑하던 애완견, 젊은 시절 한때 사랑했던 연인, 통통한 볼살이 귀여웠던 아이 등 시간의 경과로부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무수히 많다.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은 비단 존재하는 어떤 사물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나는 얼마 전 블로그에 '흘러가는 것엔 언제나 애틋함이 묻어난다'라고 썼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상실과 공허, 속절없는 안타까움에 대한 나의 솔직한 느낌을 쓴 글이었는지도 모른다.<br>"고독은 침묵과 닮았어. 한마디도 하지 않거나, 혼잣말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정말 어렵게 느껴지지. 이상하고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하루하루가 풀로 붙인 듯 서로 이어져 모두 똑같아 보이거든. 그러다 조금씩 쉬워져. 혼자 있을 때는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할 수 없어.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지. 혼자라면, 다른 사람들이 절대 불가능할 거라 말하는 일조차 할 수 있어. 어차피 아무도 혼내거나 뭐라고 할 수 없거든. 단지 들키지 않고 보이지 않게, 조용히, 천천히만 하면 돼. 누군가 다가와서 "뭐 하고 있었어?"라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면 그만이야. 아무것도."&nbsp; (p.40 '고독')<br>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언론인이자 작가이기도 한 콘치타 데 그레고리오가 글을 쓰고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가 그림을 그린 &lt;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gt;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련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떤 대상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그 대상을 잃은 것에 대한 상실의 의미와 향수를 음미한다. 그것은 어쩌면 상실을 상실로 기억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인 동시에 상실에 대한 해묵은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닐까 싶다.<br>"사라진 사람들과 사물들은 머릿속을 가득, 거의 꽉 채운 채로 떠나질 않아요.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다는 너무나 이상한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은 일종의 노동 같아요. 이 노동은 밤낮으로 이어져요. 다른 사람들은 그 피곤함을 볼 수 없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어요. 괜히 말하면 이런 소리만 듣게 되니까요. 곧 지나갈 거야, 시간이 약이야, 생각하지 마, 나가자.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죠. 누텔라 바른 빵 먹을래?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 나가자, 나가야 해."&nbsp; (p.10 '프롤로그' 중에서)<br>100여 쪽밖에 되지 않는, 얇디얇은 이 책을 나는 몇 날 며칠을 끼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작가가 호명했던 그 이름들을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흥얼거리게 되었다. 마르코, 카르멘, 알리체, 니달, 루카, 아리아......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기억에서 떠나보낼 수 없는 여러 이름들을 마치 자신의 짐보따리인 양 꽁꽁 숨겨둔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새롭게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이름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우리는 잊어야 할 낡은 이름들을 하늘에 훨훨 날려 보내야 하지 않을까.<br>"당신의 목소리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아요. 아마도 당신은 그곳에서 더 잘 지내고 있겠죠. 꼭 거기로 가야만 한다고, 당신은 그날 밤 나에게 말했으니까요. 우리가 다른 삶에서, 우리가 개구리와 나비인 곳에서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거라며 슬퍼하지 말라고 했지요. 그 말을 하던 당신은 눈길을 떨구었어요."&nbsp; (p.104 '에필로그' 중에서)<br>오늘은 4월 1일 만우절.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귀여운 거짓말로 친구들을 속여먹곤 했었는데 지금은 가짜 뉴스가 온 세계를 잠식하다 보니 만우절에 하던 거짓말조차 범죄가 되고 말았다. 사라지는 것들이 비단 어떤 공간이나 존재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어서 과거에 유행하던 풍습이나 의식도 시대가 변하자 금세 사라져 버린 듯하다. 그리고 그것에 익숙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리움처럼 추억만 남았다. 애틋함의 긴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31/12/cover150/k08203498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0311298</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아들의 전역</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84112</link><pubDate>Mon, 30 Mar 2026 17: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84112</guid><description><![CDATA[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개나리를 비롯한 여러 봄꽃이 피어나는 것은 물론 버드나무 가지에도 연녹색 물이 들고 있는 걸 보게 됩니다. 한낮 기온이 20도를 넘나들다 보니 과거에는 차례대로 피던 봄꽃이 최근에는 한꺼번에 우르르 피었다 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컨대 과거에는 산수유가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고 나면 제 순서에 맞춰 차례로 개나리, 목련, 매화, 벚꽃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입니다. 지구온난화 탓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갑자기 여러 꽃들이 한꺼번에 피고 지다 보니 왠지 정신이 없고 계절을 즐길 만한 여유도 차츰 사라지는 게 아닌지 조금 두려워지기도 합니다.<br>어제는 아들의 군대 생활에서 쓰던 짐을 옮기느라 아침 일찍 운전을 하여 군부대에 갔었습니다. 아들을 둔 부모의 난제, 이를테면 대학 입시, 병역, 취업, 결혼 등 시기에 따라 마주쳐야 할 어려운 문제들 중 하나인 '병역'을 무사히 해결한 듯합니다. 내일이면 전역을 하는 아들은 공군으로 입대하여 21개월의 결코 짧지 않은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친 듯합니다. 전역에 앞서 외출을 나온 아들의 양손 가득 들린 짐을 받아 차에 싣는 감회가 뭐라 설명할 수 없이 묘하기만 했습니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인데'라거나 '요즘 군대를 어디 군대라고 말할 수 있나?' 하면서 군 생활의 노고를 폄훼하거나 깎아내리려는 사람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사실 혈기왕성한 그 시기의 젊은이들에게 있어 18개월이나 21개월은 결코 짧다고 말할 수 없는 황금과도 같은 시간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아들의 전역을 손꼽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도 그러할 테고 말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lt;데미안(소담출판사)&gt;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합니다.<br>"어느 초봄의 밤, 나는 우리가 점령한 농가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맥 빠진 바람이 변덕스레 방향을 바꾸며 불어왔다. 플랑드르의 높은 하늘에는 구름이 군대처럼 몰려다닌다. 그 구름 뒤 어딘가에 달이 빛나겠지. 하루 종일 나는 불안에 시달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걱정이 나를 괴롭혔다. 어두운 초소에서 경비를 서며 나는 간절하게 지금까지 살면서 품었던 형상들을, 에바 부인을, 데미안을 생각했다. 미루나무에 기대어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구름의 전쟁터를 올려다보았다. 한밤중 하늘에서 움찔대는 별의 빛이 점점 커다란 그림, 솟아오르는 그림의 연속을 연출했다. 나는 맥박이 이상할 정도로 희박해졌음에서, 그동안 비바람에 시달리며 무뎌진 피부에서, 내면에서 반짝이는 빛에서 어떤 인도자가 나를 굽어보고 있음을 느꼈다."&nbsp; (p.266)<br>내일 전역을 하는 아들은 4월 9일부터 5월 14일까지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오겠다고 합니다. 모든 게 불안하고 의문투성이인 요즘이지만 나는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 개개인의 특별한 경험들이 더욱 소중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나 가상현실에서의 경험이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직접 부딪혀서 체득한 경험이야말로 인공지능시대를 현명하게 대처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어느새 3월도 - [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78993</link><pubDate>Sat, 28 Mar 2026 12: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789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6412&TPaperId=171789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5/37/coveroff/k87213641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6412&TPaperId=171789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a><br/>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최정애 옮김 / 비트윈 / 2026년 03월<br/></td></tr></table><br/>미술관 관람이 웬만한 영화 관람보다 더 흥미로울 때가 종종 있다. 내가 그림이나 조각 등 미술 작품에 조예가 깊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전시실에 놓인 작품을 쭈욱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멎게 만드는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말이다. 작가의 모든 작품에 빠져들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한두 점의 작품 앞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작가가 내게 건네는 수많은 말과 생각들을 내가 미처 주워 담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치게 된다. 그럴 때 나는 시공간을 잊은 채 한없이 자유로워진다. 주변 관람객의 소곤거림도, 자리를 뜨는 여러 관람객의 발소리도, 이따금 들리는 안내 방송도 전혀 들리지 않고, 시간은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만다. 어릴 적 술래에게 '얼음'이라고 외쳤던 그 순간처럼.<br>얼만 전에도 나는 대전에서 열린 앤디 워홀 전시회를 다녀왔다. 10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회의 기획도 재미있었지만, 인쇄물로만 보았던 앤디 워홀의 작품을 실물로 직접 보게 되는 감흥은 왠지 모르게 신나고 반가웠었다. 앤디 워홀 전시회를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왔다면 그 직후 읽기 시작한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가 쓴 &lt;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gt;는 나의 가슴을 가볍게 짓눌렀다. 나는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 이따금 책을 손에서 놓고 베란다로 나가 깊은숨을 내쉬곤 해야만 했다. 그것은 어쩌면 안젤름 키퍼에 대한 나의 지식이 지나치게 빈곤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br>"나에게 '안젤름 키퍼'는 늘 그런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은 우리 시대의 어떤 예술가의 이름보다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는데, 그것은 그의 작품들이 극히 기념비적이며, 시간으로 가득 차 있고, 역사로 무겁게 짓눌려 있으며, 사적인 것, 하찮은 것, 개인적인 것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nbsp; (p.13)<br>어떤 예술이든 작가와 관객 혹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놓인 작품은 생소한 두 사람을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어떤 작가는 때로 작품 속에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또 어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사적인 어떤 것을 일절 담지 않는다. 작가 스스로의 개인적인 성향 탓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독자나 관객에 대한 배려나 예의 차원이라고 해야 할까. 2023년 국내에서 열린 안젤름 키퍼의 국내 첫 전시회에 나는 가지 못했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의 전시회 소식도 듣지 못했다. 당시에 나의 관심이 다른 데 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lt;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gt;를 읽는 동안 나는 온라인에 떠도는 안젤름 키퍼의 작품과 그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도 찾아봤다. 그러나 익히 알다시피 우리가 약간의 수고를 감수하면서 굳이 전시회를 찾는 까닭은 실물을 직접 보는 것과 영상이나 화면을 통하여 보는 것은 실로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br>"그의 나무와 숲에 대한 집착은 1960년대 말부터 줄곧 지속되어 왔다. 그는 숲과 함께 육십 년을 보냈다. 나는 그가 그린 숲이 신화의 숲이라고 생각했다. 그림 형제의 동화 속에서 헨젤과 그레텔과 빨간 모자가 돌아다니던 숲, 게르만족이 로마인들과 싸워서 이겼던 숲, 나치가&nbsp;'독일적인 것'을 연출하는 데 이용했던 숲, 그리고 절멸 수용소들이 위치했던 숲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키퍼 자신의 숲이라는, 그가 할아버지와 삼촌, 숙모, 사촌들과 어울려 살았던 곳의 숲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nbsp; (p.73)<br>20세기 후반 신표현주의 미술운동의 주요 인물로 자리매김한 그이지만 안젤름 키퍼는 사실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던 법학도였다. 1966년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한 그가 1970년 뒤셀도르프에서 요제프 보이스의 제자가 되면서 늦은 나이에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그가 이룬 성취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은 우선 거대한 작품의 크기에 압도된다. 고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그이지만 키퍼는 짚, 납, 도료, 재, 점토 등을 이용하여 캔버스 위에 텍스처를 강조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한다.<br>"존재하는 것의 내면에 다가가 비밀을 밝히려는 예술 속에서 그 심연은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를 압도한다. 아마도 다른 어떤 이의 그림에서보다 고흐의 그림에서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고흐에게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림을 그릴 줄 몰랐기에 붓질 하나하나마다 사투를 벌여야 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회화라는 예술을 바닥부터 다시 발명해야 했다. 그래서 그림과의 투쟁 자체가 가시화되는데, 키퍼는 그 투쟁을 예술의 핵심이자 모든 것의 기원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것은 곧 보는 자와 존재하는 것 사이의 투쟁이었다. 존재하는 것은 포착될 수 없고, 그 비밀에는 결코 닿을 수 없기에, 모든 예술은 본질적으로 실패작이다. 예술은 오직 원래의 통찰력이나 비전의 일부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예술가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항상 그 비전을 거스르기에 비전은 결코 있는 그대로의 온전한 형태로 재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라는 행위에는 언제나 파괴가 동반된다."&nbsp; (p.170)<br>우리가 궁극적으로 예술작품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삶의 권태에서 벗어날 다른 대체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 경기와 같은 육체적인 방식을 통하여 일시적으로 권태를 벗어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육체가 20대의 젊음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결국 예술작품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존재하는, 그러면서도 끝없이 유동하는 이 삶의 본질에 결코 닿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존재를 부정하지 않은 채 끝없이 탐구할 뿐이다. 삶이 지속되는 한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nbsp;패전국 독일의 폐허에서 태어난&nbsp;안젤름 키퍼는 나치 시대를 다룬 작품을 종종 선보이곤 한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이 나고 자랐던 독일의 숲과 강이 그에게 심어준 그의 정체성일지도 모른다. 책의 저자인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안젤름 키퍼와의 유대를 통하여 안젤름 키퍼 자신과 그의 작품에 대한 면면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키퍼의 그림에 빠져드는 것처럼 작가의 표현과 통찰력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만다. 어느새 3월도 다 가고 말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5/37/cover150/k8721364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645374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또 하루가 지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75317</link><pubDate>Thu, 26 Mar 2026 17: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75317</guid><description><![CDATA[새벽 기온은 여전히 차고 건조하다. 나는 요 며칠 바쁘고 힘들었다. 삶의 언저리에서 맴맴 맴을 돌다가 아무런 맛도 감각하지 못한 채 맹탕의 날들을 흘려보내는 듯한 느낌. 그렇게 맴을 도는 사이 거리에는 목련의 봉오리가 벙글고, 매화도 해끗해끗 봉오리를 틀고 있다. 감각하지 못하는 여러 날들을 보내고 나면 건조한 삶에 거뭇거뭇 튼 흔적이 남는 것 같다. 손등이 터서 까슬해지는 것처럼.<br>며칠이면 끝날 것 같던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루에 한 번씩 말을 바꾸면서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은 돈벌이에 여념이 없는 듯하고, 국가의 최고 권력을 철저히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데 사용했던 윤석열과 김건희의 방식을 먼 나라 미국의 대통령이 보고 배웠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구치소에 있는 윤석열은 트럼프로부터 교육비를 받아도 좋을 듯하다. 식탐이 많은 사람이니 사식이라도 넉넉하게 넣어 달라고 부탁을 할 수도 있겠지.<br>마쓰이에 마사시의 &lt;거품&gt;을 읽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나는 그의 소설 &lt;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gt;를 읽고 진한 감동을 받았었다. 그 후에도 나는 작가의 소설 두어 권을 더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lt;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gt;와 같은 깊은 인상은 받지 못했다.<br>"나한테는 고정해줄 압정pin이 없다., 라고 가오루는 생각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자기를 움직이지 않게 고정해줄 것이 없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매일 학교를 다님으로써 임시로 압정이 주어졌었다. 체육 특별활동부에 들어가고 운동을 하며 날이 새고 날이 지고 녹초가 되면, 좀 더 나를 꽉 고정하는 압정이 되었다. 학교를 그만둬버리면 어떻게 될까? 압정이 빠진다. 나는 지금 어디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하늘하늘한 얇은 종이나 같다. 학교에서 박리되어 바람에 날리고, 강에 떨어졌다가 그대로 바다로 흘러가서 가라앉는다. 바닷물에 녹아서 가루가 된다."&nbsp; (p.61)<br>한낮 기온은 빠르게 오르고 있다. 반소매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도 더러 목격된다. 일부러 과시하려는 태도일지도 모르지만, 한낮 기온은 그들의 허세를 받아줄 만큼 넉넉히 올라 있다. 어스름이 내리는 걸 보니 또 하루가 지는가 보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축제는 계속되어야 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65623</link><pubDate>Sun, 22 Mar 2026 12: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65623</guid><description><![CDATA[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옵니다. 난데없는 꽃소식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는 것도 잠시 계절은 금세 여름으로 넘어가곤 합니다. 아파트 화단에 핀 산수유꽃을 보면서 나는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습니다. 어제는 광화문 광장에서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공연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의 BTS 팬들이 모여 유례없는 성황을 이루었지만, 많은 사상자가 난 대전의 화재 참사와 3주째 이어지고 있는 중동 지역의 전쟁 참화 속에서 노래하며 웃고 즐겨도 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br>나는 이번 전쟁을 보면서 몇몇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면 현대인의 기본적인 속성이 극단적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표 지상주의에 물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수천 명의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고 그들과 연관된 몇 배, 몇십 배의 사람들이 상실감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삶의 터전을 잃을 텐데, 그런 것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전쟁을 계속하는 트럼프와 네타냐후,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을 우리는 과연 무엇이라 칭해야 할까요. 그들도 과연 정상적인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폴리마켓의 예측 도박 사이트에서는 이란 전쟁을 둘러싼 여러 사안을 놓고 각각 수천만 달러짜리의 내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이들을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br>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여름, 그해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었던 박완서 작가는 자신의 일기에 부모로서 견딜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숨김없이 씀으로써 상실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 독자들에게 알린 바 있습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고통, 그 어떤 말로도 치유할 수 없는 참척의 아픔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 처절한 기록이 담긴 &lt;한 말씀만 하소서&gt;를 읽는 독자라면 화재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을,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먼 타국 유가족의 애끓는 심정을 조금쯤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차츰 정상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겠지요.<br>"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줬지만 88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걸 어찌 견디랴. 아아, 만일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미친년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해본다."&nbsp; (p.18)<br>"그 애를 잃고 나서 아직 고기를 입에 넣은 적이 없다. 소화가 안 된다는 핑계였지만, 그 애가 죽던 날 밤, 집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유난히 맛있게 등심구이를 아귀아귀 먹은 생각을 하면 진저리가 쳐져서 생전 고기를 먹을 것 같지가 않다. 집에서처럼 따로 눌은밥을 좀 끓여달래서 먹었지만 누린내를 견디기가 힘들었다."&nbsp; (p.87)<br>'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되는 김훈 작가의 소설 &lt;칼의 노래&gt;가 문득 떠오릅니다. 중동 전쟁이 끝나는 어느 시점에 이란의 어느 작가 역시 그렇게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잔인함과 속절없는 슬픔과 고통을 뒤로한 채 이란고원의 폐허 속에서도 이름없는 꽃이 피어나겠지요. 전쟁의 포화가 멎은 어느 날 말입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빼곡한 도서목록을 들고 - [나의 프랑스식 서재 - 김남주 번역 에세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62388</link><pubDate>Fri, 20 Mar 2026 17: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623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0574&TPaperId=171623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60/37/coveroff/89546205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0574&TPaperId=171623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의 프랑스식 서재 - 김남주 번역 에세이</a><br/>김남주 지음 / 이봄 / 2013년 06월<br/></td></tr></table><br/>번역가의 에세이가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지 못하는 까닭은 지식의 편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원작자의 작품을 번역하는 번역가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번역했던 어떤 작품에 대해서는 원작자 다음으로 많은 지식을 소유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는 바, 그 책에 대해서 한 번쯤 읽어보았거나 전혀 읽어보지도 못한 채 다른 경로를 통해 그 책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일반 독자를 고려할 때, 번역가와 일반 독자 사이의 지식 편차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번역가는 자신의 본업인 번역 이외의 다른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책에 대한 일반 독자의 지적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또는 고려하지 못한 채) 자신이 하고픈 말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나온 에세이는 대개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너무너무 어렵다. 물론 소수이겠지만 번역가와 지적 수준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일반 독자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학술서가 아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에세이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건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br>"장 그르니에에 의하면 카뮈의 작품은 "그 작품에 대한 모든 주석을 쓸데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어떤 것이다. 그런 만큼 역자는 이 글에서 또다시 그런 '쓸데없음'을 범하지 않으련다. "그런 작품은 하나의 호소와도 같아서 우리는 그것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결정을 강요하고 당혹시키며 자기변명을 하게까지 만든다. 그런 작품은 우리에게 어떠한 회피도 용납하지 않음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nbsp; (P.76)<br>그럼에도 내가 자주는 아닐지라도 기회가 될 때마다 번역가의 에세이를 읽는 까닭은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한편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책이 뭐가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함이다. 때로는 한동안 책과 멀어졌던 까닭에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거나 시큰둥한 마음이 들 때, 혹여라도 나의 관심을 끌 만한 좋은 책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번역가의 에세이를 읽게 된다. 일종의 추천 도서 목록을 구하고자 함이다. 김남주의 에세이 &lt;나의 프랑스식 서재&gt;를 읽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김남주 번역가의 저서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br>"어린왕자는 과연 무사히 자기 별로 돌아갔을까? 가죽 끈이 없는 부리망 때문에 화자의 걱정대로, 우주 어딘가에서 양 한 마리가 장미꽃 한 송이를 먹어치우진 않았을까? 그리하여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 어린왕자의 방울 같은 웃음소리 대신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슬픔이 가라앉고 나면 어린왕자는 다시 이동하는 철새 떼를 타고 장미꽃 없는 자기 별을 떠나 자기가 길들인 여우도 있고, 화자도 있는 이 지구별로 돌아오지 않을까? 아아, 이 책의 내용을 적은 엽서를 교환하던 그 시절, 금빛 대신 푸른 머플러를 어린왕자처럼 꼭 그렇게 한 번만 목뒤로 넘겨 둘렀던 그 친구를 이 지구에서 바오밥나무가 있는 곳, 마다가스카르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nbsp; (P.169~P.170)<br>자신을 일러 '느린 번역가'라 칭하는 김남주 번역가는 &lt;오후 네시&gt;를 통해 아멜리 노통브를 &lt;나를 보내지 마&gt;를 통해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를 처음 국내에 소개한 번역가이자 내가 좋아하는 작가 장 그르니에, 알베르 카뮈, 로맹 가리, 생텍쥐페리 등 프랑스의 현대고전 작품 역시 번역해 왔다. 지금도 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 추억 하나는 내가 군에 복무하던 당시, 모 여대 불어불문학과에 다녔던 아내가 졸업논문을 쓰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것을 보고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여러 권을 부대로 가져와서 읽은 후 논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초고를 타자기로 쳐서 아내에게 주었었다. 아내는 내가 쓴 그 어설픈 논문 초고를 바탕으로 어찌어찌 살을 붙여 논문을 완성하였고,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김남주의 에세이를 읽는 내내 그때의 추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br>"20대 후반부터 30대, 40대를 살아오는 동안 번역은 내 밥벌이였다. 그러나 나는 줄곧 이 일을 내 삶의 징검다리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강 저편으로 가기 위해 딛고 가는. 오랫동안 내 시선은 내가 딛고 있는 그 징검다리가 아니라 내가 당도해야 할 강 저편 기슭에 고정되어 있었다고 고백한다. 문화와 정신을 전달한다는 감동과 자부는 대개는 무능과 게으름과 악조건 속에서 사그라들고, 표현과 내용의 좌충우돌 속에서 많은 밤들을 새웠다. 저울의 한쪽에 착실히 말들을 올려 놓으며 한 권의 번역을 마치고 나면 머릿속 말들이 모두 빠져나간 듯 일상적인 대화조차 더듬고 버벅대고 순서를 바꾸기 일쑤였다."&nbsp; (P.9 '첫 책을 내면서' 중에서)<br>사실 이 책은 번역가가 쓴 리뷰에 가깝지만 작가의 삶이 책 속에 녹아있다는 점에서 에세이가 아닐 수 없다.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전문 번역가가 지닌 지식과 일반 독자인 내가 소유한 지식 사이의 가늠할 수 없는 차이 때문에 이따금 어려운 문장에 갇혀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하여 읽기도 했지만, 번역가의 수고에 비하면 그와 같은 수고를 수고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 아닌가. 오늘은 금요일, 나는 책에서 빼곡히 옮겨 적은 도서 목록을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내일이면 나는 그 목록을 들고 가까운 도서관에 들러 가능한 범위에서 많은 책을 대출하여 기쁜 마음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기한 내에 다 읽지도 못하면서 잔뜩 욕심을 부릴지도 모를 일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60/37/cover150/89546205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603742</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소리도 없이 내리는 비가 - [박찬원의 두근두근 - 동물수상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57740</link><pubDate>Wed, 18 Mar 2026 14: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577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6519&TPaperId=171577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7/46/coveroff/k3821365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6519&TPaperId=171577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박찬원의 두근두근 - 동물수상록</a><br/>박찬원 지음 / 라의눈 / 2026년 03월<br/></td></tr></table><br/>모든 예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닌 무엇을 제외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예컨대 음악은 이 세상의 많은 소리 중 어떤 소리를 제외할 것인가로 귀결되며, 사진이나 미술은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시시콜콜한 풍경 가운데 어떤 것들을 지울 것인가로 귀결되며, 문학은 주인공과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을 제외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마찬가지로 글쓰기에서 퇴고 작업이 어려운 까닭은 문장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하는 게 실생활에서 익숙한 습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디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지만,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 중 불필요한 것을 버리거나 너무 많이 소유한 것을 덜어내는 데에는 전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음이다.<br>우리에게 '동물사진작가'로 잘 알려진 박찬원의 사진 에세이 &lt;박찬원의 두근두근&gt;에 실린 작가의 흑백사진을 보면서 그도 역시 렌즈 속에 놓인 피사체의 어떤 부분을 지울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무척이나 많은 고민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찍은 동물들은 말, 젖소, 돼지처럼 가축화되어 인간과 가까운 동물들도 있지만, 하루살이나 나비처럼 다소 하찮게 여길 수도 있는 곤충에 이르기까지 꽤나 다양하다.<br>"이 책은 동물에 대한 수상록이고, 한 주제에 100일 촬영 원칙을 정했다. 한 동물마다 약 3년 걸렸다. 실제 사진 찍는 시간은 얼마 안 된다. 동물을 관찰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동물에 대한 생각이었는데 나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온다. 동물에서 인간을 본다. 아니 나를 본다."&nbsp; (p.4 '프롤로그' 중에서)<br>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쯤 도올 김용옥 선생의 딸인 김미루 씨가 돼지우리에서 100시간 넘게 돼지들과 함께 지내며 '돼지우리 누드 퍼포먼스'를 펼친 적 있다. 뉴욕에서 사진작가 겸 행위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미루 씨의 당시 사진은 국내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되었고, 가려지지 않은 젊은 여인의 신체와 오물이 묻은 돼지들의 모습과의 어우러짐은 보는 이들에게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물론 자연에서 돼지는 절대 더러운 동물이 아니고, 인간이 인위적으로 사육하면서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비판하고자 했다는 김미루 작가의 설명이 있었지만, 김미루 작가의 사진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던 일반인들의 관점에서 작가의 설명은 크게 납득이 되지는 못했다.<br>"돼지는 불쌍하고 슬픈 동물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밖에 나가 놀지 못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도 없다. 친구를 사귀거나 연애도 못 한다. 돼지의 일생은 먹고 자고 자라서 도축장으로 가는 것이다. 짧게 살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으니 돼지는 죄를 지을 겨를이 없다. 깨끗하고 신성하다."&nbsp; (p.10)<br>박찬원 작가는 이 책에서 01. '동물과 인간, 02 '생명의 의미', 03 '동물의 언어', 04 '동물나라 풍경'의 주제로 그가 관찰했던 피사체에 대한 깊은 사유와 그 사유를 통해 건져낸 사진들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인식의 틀을 세울 것을 권고한다. 예술 전문 잡지 QUESTION의 사진문학 코너에 2022년 7월부터 2023년 6월까지 '동물 사진가 박찬원의 두근두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과 사진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lt;박찬원의 두근두근&gt;은 작가의 정제된 글과 렌즈에 포착된 압축된 사진만으로도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동물에 대한 관찰과 교감을 통하여 작가의 사유는 생명에 대한 경외로 확장되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철학적 사유에까지 이르게 된다.<br>"새벽에 나가 보니 젖소가 죽어 있다. 목을 뒤로 꼰 채 코를 땅에 박고 눈은 반쯤 뜨고 있다. 밤사이 안락사시켰다. 물통이 넘어져 있다. 물을 마시려다 힘이 없어 고개를 들지 못하고 물통을 쓰러트렸나 보다. 뒤에는 오줌을 싼 듯 물 자국이 흥건하다. 고개 숙여 명복을 빈다."&nbsp; (p.175)<br>동물의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관찰은 작가 본인의 엄마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진다.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늘 미안해하던 엄마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br>어제의 메말랐던 기억을 지우려는 듯 지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소리도 없이 내리는 비가 세상의 빛을 지우고, 소리를 지우고, 어렴풋하던 형체마저 지우고 있다. 흐릿하게 변한 세상 너머로 잊었던 봄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7/46/cover150/k3821365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6474646</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흘러가는 것엔 언제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51698</link><pubDate>Sun, 15 Mar 2026 15: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51698</guid><description><![CDATA[흘러가는 것엔 언제나 애틋함이 묻어납니다. 흘러가는 세월, 흘러가는 강물, 흘러가는 구름, 흘러가는 이야기, 그리고... 흘러가는 모든 것에 대한 애틋함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성에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 청소년기의 나나 청년기의 나와 한 몸이지만 엄연히 다른 존재, 그러나 세월을 거슬러 지금의 내가 청년기의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강물 위에 떠가던 지난가을의 단풍잎을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와 같은 애틋함을 잊어버리거나 순간순간 지우기 위해 우리는 파편화된 시간을 살아가곤 합니다. 에크하르트 톨레와 같은 선지자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흘러간 거리가 멀면 멀수록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속절없이 떠밀려가는 그 과정이 서글프고 애틋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br>오늘은 3.15 의거 기념일입니다. 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학생의 평화적 시위가 있었고,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려는 경찰에 맞서 격렬한 투석전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소위 '마산 데모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에 경찰의 무차별 발포와 체포.구금으로 희생자가 속출하자 이에 맞서 저항했던 시위대 중 8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던 바,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17세의 마산상고 신입생 김주열 열사는 행방불명되었다가 27일이 지난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nbsp;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nbsp;발견되었던 것입니다. 4.19 의거의 도화선이 되었던 이 사건과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인해 결국 이승만 독재정권이 붕괴되었습니다만, 희생자들에 대한 감사와 추모의 마음은 해가 갈수록 약해지는 듯합니다.<br>캐나다 작가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이 쓴 &lt;고요의 바다에서&gt;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합니다."그것이 현실 아닐까? 우리 대부분은 상당히 비(非)클라이맥스적인 방식으로 죽지 않을까? 우리가 떠났다는 사실이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눈에 띄지 않고, 우리의 죽음은 주변 사람들의 서사에서 하나의 플롯 포인트가 될 뿐인 것 아닐까?"&nbsp; (p.143)<br>흘러가는 것엔 언제나 속절없는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묻어납니다. 출발점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애틋함의 강도는 더욱 높아져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최고점에 도달하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말에 현혹되어 조각조각 파편화된 시간을 바쁘게 살아가면서 그 애틋함을 못 본 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그 애틋함을 일부러 회피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흘러가는 것엔 언제나 애틋함이 존재합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어느덧 봄 - [고요하고 단단하게, 법정의 말 - 내려놓음의 마음 공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49775</link><pubDate>Sat, 14 Mar 2026 13: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497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5050&TPaperId=171497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63/94/coveroff/k74213505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5050&TPaperId=171497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요하고 단단하게, 법정의 말 - 내려놓음의 마음 공부</a><br/>권민수 엮음 / 리텍콘텐츠 / 2026년 02월<br/></td></tr></table><br/>법정스님이 입적하신 지 벌써 16년이 흘렀다. 2010년 3월 11일의 느낌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내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나는 스님의 말씀이 담긴 여러 저서를 읽으며 청소년기를 보냈었고, 언론을 통해 접하는 스님의 소식을 가까운 이의 근황인 양 귀를 쫑긋 세운 채 듣곤 했었던 나로서는 텔레비전을 통해 접했던 그날의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다. 충격이 컸던 탓인지 나는 한동안 가슴이 텅 빈 듯한 허전함으로 인해 매사에 의욕이 떨어졌었다. 그때 우연히 읽었던 책이 &lt;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gt;이었다. 덕분에 나는 스님이 추천한 책 50권 대부분을 읽을 수 있었다. 허전함을 달래기 위한 목적이 더 컸었지만 책의 권수가 더해질수록 스님의 뜻이 새록새록 전해지는 듯했다. 스님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알지 못했을 다비드 르 브르통의 &lt;걷기 예찬&gt;이나 쓰지 신이치의 &lt;슬로 라이프&gt;, 아베 피에르의 &lt;단순한 기쁨&gt;, 존 프란시스의 &lt;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gt; 등 뻐근한 감동과 교훈으로 남았던 여러 책들이 스님의 말씀처럼 가슴을 채웠다. 물론 나의 지식이 부족하여 이해가 어려웠던 책들도 더러 있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가 쓴 &lt;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gt;나 에크하르트 톨레의 &lt;NOW-행성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gt;와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스님의 추천 도서 대부분이 나의 인생책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나는 스님의 추천 도서를 기회가 될 때마다 꺼내 읽곤 한다.<br>역사 콘텐츠 전문 작가 권민수가 엮은 &lt;고요하고 단단하게, 법정의 말&gt;을 읽었던 것도 어쩌면 그 연장선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PART 1 '나는 어떻게 가벼워질 수 있을까? - 비움과 자유',&nbsp;PART 2&nbsp;'불안은 왜 자꾸 올라올까? -두려움과 신뢰',&nbsp;PART 3 '일은 삶을 어떻게 바꿀까? - 일.돈.시간',&nbsp;PART 4 '관계는 왜 어려울까? - 가족.사랑.갈등',&nbsp;PART 5 '슬픔은 어떻게 치유될까? - 상실.병.죽음',&nbsp;PART 6 '자연은 왜 스승일까? - 숲.바람.침묵',&nbsp;PART 7 '어떻게 계속 걸을까? - 단련과 실천' 등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스님의 말씀을 단순히 옮겨 적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를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녹여내고 실천할 것인가를 묻게 하는 잠언집의 성격을 띠고 있다.<br>"법정의 말은 읽을 때는 아름답지만 삶으로 옮기지 않으면 금세 잊히기 쉽습니다. 우리는 멋진 문장을 읽는 데 익숙하지만, 그 문장대로 살아내는 데는 서툽니다. 그래서 이 책은 법정 스님의 단순 저서 문장에만 기대지 않고, 대표 저서들뿐 아니라 강연집과 법문 기록, 정기 법회에서 실제로 건넨 말씀, 여러 자리에서 회자되어 온 핵심 문장들까지 폭넓게 엮어, '법정의 말'을 하나의 총체적인 흐름으로 만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nbsp; (p.8 '프롤로그' 중에서)<br>내가 스님의 추천 도서를 읽으면서 느꼈던 스님의 중심 생각은 생명 존중과 공생이었다. 스님은 우리들 각자가 그 생각을 중심에 두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가꾸어 갈 수 있을까를 궁리하셨던 듯하다. 수도자로서 생명을 귀히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지만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도록 궁리하고 연구하는 학자와 사상가와 사회운동가마저 떠받들고 우리와 같은 장삼이사에게 그들의 사상을 이해시키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스님의 특별한 면모를 살필 수 있었다. 권민수 작가 역시 스님의 말씀을 우리들 삶에서 녹여내려 했다는 점에서 스님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듯하다.<br>081 오늘을 선택하는 연습"나누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내일은 기약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곳에 있지 않을 수도 있고, 내 마음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합니다."&nbsp; (P.108)<br>세상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까닭은 가진 자의 욕심이 끝도 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인과 작금의 정치 세력은 그들의 욕심을 펼칠 자유를 무한대로 허용하는 게 미덕인 양 포장하고 있다. 스님을 비롯한 옛 지성인들이 주장하던 '공생'은 이제 잊힌 단어가 되고 말았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함께 잘살자는 생각이 우리 인간끼리라도 함께 잘살자는 생각으로 쪼그라들더니 이제는 숫제 그마저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는 현실 속에서 개인의 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파편화된 개인이 서로 손을 내밀면 또 다른 어느 누가 내게 손을 내밀지 않을까? 인간 내면의 순수 감정을 건드리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을까? 인간은 본디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자라왔으니까 말이다.<br>241 관심이라는 이름의 간섭"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그 자신의 방식으로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편의나 이익을 위해 남을 간섭하고 통제하고 지배해서는 안 된다."&nbsp; (P.274)<br>생명이 되살아나는 이 계절에 지구 한편에서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 날마다 자행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함께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까닭에 그들 역시 제 수명을 다하면 지구상에서 사라지겠지만, 그들이 치러야 할 죄업은 사후에도 계속하여 청구되지 않을까?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아야 하는 이유는 역사의 단죄가 더욱 가혹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쪽으로부터 봄을 알리는 꽃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어느덧 봄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63/94/cover150/k74213505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639455</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전쟁은 미친 짓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48256</link><pubDate>Fri, 13 Mar 2026 16: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48256</guid><description><![CDATA[아침 산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마치 단골식당의 주인아주머니와의 관계만큼이나 뭐라 한마디로 규정지을 수 없는 애매한 측면이 있다 하겠습니다. 오랫동안 자주 만나던 사이이니만큼 가깝고 익숙하지만 서로 사는 곳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알려고도 하지 않는) 까닭에 언제든 관계를 좁힐 수 있는 여지만 남겨둔 채로 기존의 관계를 무한정 연장하는 그런 사이라고나 할까요. 매일 새벽 남들이 다 잠에 취해 있는 시각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에 올라 늘 마주치는 장소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때로는 짧은 덕담을 건네기도 하고, 일 년에 한두 번쯤 넋두리 삼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면서 불편하지 않은 관계를 수 년째 이어오고는 있지만 서로의 이름도, 연락처도, 사는 곳도 모른 채 지내왔던 것입니다.<br>내가 요즘도 매일 아침 오르는 아파트 뒤편의 야산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많은 사람들과 악수조차 없이 헤어졌습니다.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2년쯤 전에 욕쟁이 할머니가 등산로에서 사라지더니 네댓 달 전쯤에는 언제나 말을 곱게 하시던 소녀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중순께부터는 멋쟁이 할아버지마저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겨우내 추위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거르지 않고 산에 오를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주던 분이셨는데... 1940년생이라고 하셨던 멋쟁이 할아버지는 얼마 전에 올린 나의 블로그 포스팅에서도 언급이 있었지만 지난해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정정하셨는데 언제부턴가 한 손에 지팡이를 짚으신 채 나타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에 열심이셨는데, 이제는 숫제 나타나지 않으시는 걸 보면서 나는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 순간까지 이상한 상상에 빠지곤 합니다. '그렇지 않을 거야.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된 것일 테지.' 나는 애써 그런 생각을 하며 나쁜 생각을 떨쳐내곤 합니다.<br>나는 요즘 내가 좋아하는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lt;이야기를 들려줘요(Tell Me Everything)&gt;를 읽고 있습니다.<br>"내 요점은,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아주 복잡하다는 거예요. 밥, 우리는 모두 아주 복잡하고, 우리가 누군가와 한 순간이라도 - 어쩌면 평생 - 같이 한다는 건 우리가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연결되어 있어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결되어 있지 않죠. 왜냐하면 누구도 다른 사람의 마음속 깊은 틈으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까요. 심지어 그 사람 자신도 자기 마음의 깊은 틈으로는 들어가지 못해요. 하지만 우리는 - 우리 모두는 - 그럴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가요. 그리고 난 그걸 존중해요, 밥. 정말로 존중해요. 하지만 우리 누구도 단단한 땅에 서 있지 않아요. 우리는 그저 우리가 그렇다고 스스로 말할 뿐이에요. 그리고 그래야 하고요. 나는 그걸 알 것 같고, 앞서 말했듯 존중해요. 나는 단지......" 그러고는 말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는데,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nbsp; (p.306~p.307)<br>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 깊은 틈으로는 들어갈 수 없지만, 그럴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가 하면 우리는 단단한 땅에 서 있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스스로 말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미세먼지로 탁하던 대기는 다시 깨끗해졌습니다. 열흘을 넘겨 계속되고 있는 중동 지역의 전쟁은 지금도 포화가 그치지 않고 이어지는가 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것은 물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고 있는데 그들을 조롱하고 아무일 아니라는 듯 지껄이는 미친 작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자들을 일러 '악마' 또는 '사탄'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누군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순간 그 절망의 화살이 복수의 칼날이 되어 나에게 향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말입니다. 우리에게는 달콤한 휴식이 주어질 테지만 전쟁의 포화 속에 있는 그들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밤잠을 설칠 테지요.]]></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그런 세상이 펼쳐질지도 - [터스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42324</link><pubDate>Tue, 10 Mar 2026 19: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423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6920&TPaperId=171423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4/96/coveroff/k3621369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6920&TPaperId=171423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터스크</a><br/>레이 네일러 지음, 김항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02월<br/></td></tr></table><br/>트로피 헌팅(Trophy Hunting)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또는 방어적 목적으로 동물을 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재미와 사냥을 통한 전시물 획득과 다른 이들로부터의 인정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찾는 사람이 매년 9,000여 명에 달한다고 하니 인간보다 잔인한 동물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코끼리 상아를 얻기 위한 코끼리 밀렵 역시 줄어들지 않고 있다. 심지어 밀렵 단속을 피하고 총알을 아끼기 위해 코끼리의 척추를 끊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살아 있는 상태에서 얼굴을 전기톱으로 잘라낸다고 하니 인간의 욕심과 인간성 상실이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지 참담하기만 하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레이 네일러(Ray Nayler)의 소설 &lt;터스크&gt;는 우리가 과연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회복하고 주변의 다른 생명체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br>"타이가를 기어다니는 밀렵꾼이나 영구동토층에 호스로 구명을 뚫는 매머드 엄니 사냥꾼이 모두 부자가 될 수는 없었다. 둘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너무 일찍 죽음을 맞이했다. 다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땅에 묻혔다."&nbsp; (p.29)<br>코끼리 행동을 연구하면서 야생 아프리카코끼리들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다미라 키스무툴리나 박사는 결국 밀렵꾼들에 의해 살해된다. 그와 동시에 코끼리도 멸종되었다. 그렇게 한 세기가 흘렀다. 'SF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의 지난해 수상작인 &lt;터스크&gt;는 죽었던 다미라를 불러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인간이 아닌 암컷 털매머드의 몸에 이식된 채로 복원된 것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코끼리와 유전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매머드를 연구하는 알마스 아슬라노프 박사는 시베리아 동토층이 녹으면서 드러난 털매머드 사체에서 얻은 유전체 정보를 배합하여 8,000년 전 멸종한 털매머드 복원에 성공한다. 그렇게 복원된 매머드 떼를 시베리아 툰드라 지대에 방사하는 게 그의 목표였지만 야생에 방사되는 족족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의 목표는 허사가 되고 만다. 복원된 매머드는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아슬라노프 박사는 야생 코끼리를 연구하며 그들과 함께 생활했던 다미라를 되살리기로 마음먹었다.<br>"우리는 당신이 암컷 우두머리가 되어주길 제안합니다. 당신의 의식체를 암컷 매머드에게 옮기길 원해요. 당신이 그들을 이끌게 될 거예요. 매머드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겁니다. 당신의 지도를 받고 그들은 번창할 거예요."&nbsp; (p.72)<br>극비리에 주요 인사들의 기억을 스캔해 저장해 두는 마인드 뱅크 프로젝트에 의해 살해당하기 전에 백업된 다미라의 의식체는 암컷 털매머드의 몸에 이식되었고, 다미라는 시베리아 보호구역 내 매머드 무리를 이끌게 된다. 그러나 다미라가 인간으로 살았던 한 세기 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호시탐탐 매머드를 노리는 밀렵꾼들의 활동뿐만 아니라 보호구역 내에서 아슬라노프와의 공모 아래 합법적인 매머드 사냥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다. 보호구역 자립에 필요한 돈이 필요하다는 명분하에 이른바 '트로피 사냥'이 성행하는 것이다. 억만장자 앤서니는 비밀경매를 통해 매머드를 사냥할 수 있는 '특권'을 매입한다. 사냥에는 보호구역 관리 책임자인 콘스탄틴이 동행한다.<br>"자기 안의 어떤 것도 무너졌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앤서니 안에 잇는 어떤 것도 무너졌다. 어쩌면 우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가슴속에 있던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지만, 그 모든 게 원래 그렇다는 듯, 그게 정상이라는 듯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머리가 잘린 벌레들이 계속해서 숨기 위해 그림자를 향해 기어가는 것처럼. 우리를 망쳐놓은 그 어떤 것에 따라잡혀 결국 우리가 스스로 멈출 때까지."&nbsp; (p.178)<br>요즘 우리는 인간 살육의 현장을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것은 물론 온라인 게임처럼 광고를 하는 인간 동물(Human Animal)들을 최고 권력자로 떠받들고 있다. 그들은 수많은 민간인들에 대한 일방적인 학살을 자신들이 믿는 신의 뜻인 양 '성전(聖戰)'이라며 떠벌리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라는 다음 세대는 어떨까. 어쩌면 다음 세대의 사람들은 재미 삼아 아프리카의 맹수를 사냥하는 대신 인간을 사냥감으로 풀어놓고 그들을 사냥하면서 즐길지도 모르겠다. 자신들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자국민보다 못산다는 이유로 인간 사냥감이 되어 사냥꾼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금찍하다. 그런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4/96/cover150/k3621369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04969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가장 위험한 인물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7350</link><pubDate>Sun, 08 Mar 2026 12: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7350</guid><description><![CDATA[살다 보면 별별 유형의 사람을 다 만나게 되지만 유독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사에 거침이 없고, 자신이 마치 모든 분야에 정통한 듯 행동하는, 좋게 말하면 경력직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주저함이 없고, 자신이 하는 말이 진리인 듯 떠벌린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발생하고, 그 결과로 인해 혹시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는 그들 머릿속에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도 면밀하게 팩트체크를 해보면 오류 투성이인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물론 자신이 했던 말들에 대한 변명이나 사과는 있을 수 없습니다. 나처럼 매사에 노심초사하고 튼튼한 돌다리도 거듭하여 두드려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게는 그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br>그러나 그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별 영향력이 없는, 낮은 지위에 있을 때에는 우리 사회에 그닥 해가 되지 않겠지만, 만약 그들이 사회에 크나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고위직에 위치한다면 우리가 감당해야 할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어느 기업의 대표나 임원을 넘어 한 국가의 최고 권력자라면 어떻겠습니까? 상상하기도 싫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금 그와 같은 현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트럼프라는 한 인간이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대통령인 동시에 세계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도 아무런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응대합니다. 게다가 자신의 섣부른 결정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에 대해서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와 같은 유형의 대통령을 경험한 바 있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br>마치 경력직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사람들의 무례함은 도를 넘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그들에게 어떤 권력이 쥐어지는 한 반성이나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억제하는 언론이나 제도에 대한 적개심만 증가할 뿐입니다. 윤석열이 그러했고, 트럼프나 네타냐후 역시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까닭에 그런 유형의 사람들에게 있어 민주주의 제도는 자신의 자유를 제약하는 커다란 걸림돌이자 타파해야 할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민주주의 제도를 실행하는 어떤 사회에 그들과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이야말로 반사회적 인물인 동시에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는 반드시 격리해야 할 대상인 셈이지요. 그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어떠한 피해에 대해서도 사회 구성원에게 절대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br>나는 지금 권민수 작가가 엮은 &lt;고요하고 단단하게, 법정의 말&gt;을 읽고 있습니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신 게 엊그제 같은 데 벌써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br>"나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 것이 '바르게' 보는 것이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멈춘다면 '바르고 완전하게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nbsp; (p.69)<br>거침이 없고 머뭇거리지 않는 사람이 때로는 멋있게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는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그와 같은 인물의 대표적인 표상을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말입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투명한 3월의 햇살이 - [기차의 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5847</link><pubDate>Sat, 07 Mar 2026 15: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58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3169&TPaperId=171358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10/61/coveroff/k402033169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3169&TPaperId=171358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기차의 꿈</a><br/>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br/></td></tr></table><br/>역사학자가 시간의 평원 위에 골조를 세우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역사를 소재로 글을 쓰는 소설가는 그곳에 숲을 가꾸고, 물길을 틔워 생명을 가꾸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소설가는 자신의 성향에 따라 정물화를 그릴 수도 있고, 크로키를 그려낼 수도 있으며, 넓게 여백을 담아낸 수묵담채화를 그릴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는 지난 과거의 모습을 역사학자가 아닌, 역사를 소재로 쓰는 소설가에 의해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소설이 영화로 재탄생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데니스 존슨의; 소설 &lt;기차의 꿈&gt;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140쪽의 짧은 소설이 어떻게 20세기 초반의 미국을 이토록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책을 덮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는다.<br>"그레이니어가 맡은 일은 초커였다. 기차 도착점 쪽이 아니라 숲 쪽에서, 숲에서 벌목꾼들이 둘씩 짝을 지어 톱으로 가문비나무를 쓰러뜨리면, 가지 담당이 도끼로 잔가지를 깨끗하게 쳐내고, 톱장이가 통나무를 18피트 길이로 잘랐다. 그다음에는 초커가 통나무를 밧줄로 감아 말이 운반할 수 있게 준비했다. 그레이니어는 이 일이 좋았다. 불끈불끈 힘을 쓰고 나면 탈진해서 도취한 것 같은 상태가 되고, 그렇게 하루 일을 끝낸 뒤에는 푹 쉬었다."&nbsp; (p.19)<br>소설의 주인공인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일대기를 절제된 언어와 통일된 구성으로 마치 전기문처럼 쓰고 있는 작가는 독자의 평가쯤이야 안중에도 없다는 듯 어떤 미사여구나 반전도 없이 그레이니어라는 인물이 살았던 당시를 아주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대가의 작품은 이런 것이야,라고 말하려는 듯 소설은 너무도 평범하고 막힘이 없이 진행된다. 그렇다고 주인공의 사회적 위치나 명성이 특별하지도 않다. 오히려 대중 속에 섞이면 절대 눈에 띄지도 않을 듯한, 지극히 평범한 인물일 뿐이다.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자면 오히려 하찮을 수 있는 존재이다. 거대한 시간의 평원 속에서 가장 낮은 위치의 한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춤으로써 우리는 지난 한 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br>"크레스턴에서 들은 소식은 끔찍했다. 모이 계곡 화재에서 아무도 그쪽으로 도망쳐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레이니어는 사촌의 집에 여러 주 동안 머물렀다. 그 상황에서 당연한 슬픔과 혼란 때문에 병이 들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아내와 어린 딸을 잃었음을 납득했지만, 가끔 폭풍이 자신을 엄습하는 것 같았다. 저항할 수 없는 군대처럼 그의 머릿속으로 폭풍이 밀려왔다."&nbsp; (P.51)<br>19세기말에 태어난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출생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 어린 시절 혼자 기차를 타고 고모가 있는 아이다호로 왔다는 기억만 갖고 있다. 10대 때 학교를 그만둔 이후 평생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렸던 그는 교회에서 만난 글래디스와 결혼하여 산속 계곡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간다. 그렇게 딸 케이트가 태어났다. 벌목 현장에서 일하며 철도 부설 공사에도 참여했던 그는 어려서부터 그에게 각인된 고독의 그림자를 씻어내며 행복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1917년 여름, 거대한 산불이 계곡 전체를 집어삼켰고, 그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땐 이미 모든 게 잿더미로 변한 후였다. 어렸을 때부터 외톨이였고 평생을 깊은 고독 속에서 살았던 그는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그곳에서 혼자 머문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을 묵묵히 이어간다.<br>"그레이니어는 여든 살이 넘어서 1960년대까지 살았다. 살아 있는 동안 태평양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서부까지 여행한 적도 있지만, 바다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동쪽으로 가장 멀리 간 곳은 몬태나주 경계선 안쪽으로 40마일 거리인 리비였다. 그가 사랑한 사람은 한 명, 아내 글래디스였으며, 재산은 땅 1에이커, 말 두 마리, 수레 한 대였다. 그는 술에 취한 적이 없고, 총기를 구매한 적도 없고, 전화기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기차를 많이 탔지만 자동차도 많이 탔고, 비행기도 한 번 타본 적이 있었다. 말년의 10년 동안 그는 읍내에 나올 때마다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으며, 자손을 남기지도 않았다."&nbsp; (p.128~p.129)<br>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작은 시련이나 불행조차 오직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불운인 양 생각하여 누군가를 탓하고 불평불만에 휩싸이곤 한다. 살면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상실의 고통 역시 '왜 나에게 이런...' 하는 마음으로 신을 원망하기에 이른다. 그 모든 것들이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삶의 과정임을 잘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하루하루의 반복되는 일상과 그 속에서 보게 되는 작은 변화들. 그리고 시간의 풍화 속에서 자연스레 늙어가는 자신과 죽음을 향한 여정. 그레이니어의 평범한 삶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그 모든 변화에 부질없이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고 남은 삶을 꿋꿋이 이어간다는 것이다. 20세기 초반의 미국 사회를 그린 이 한 편의 소설을 통해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상상하는 한편 반복적인 일상을 불평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투명한 3월의 햇살이 흐르고 있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10/61/cover150/k402033169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106135</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경칩도 지났는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4143</link><pubDate>Fri, 06 Mar 2026 16: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4143</guid><description><![CDATA[여느 날처럼 새벽에 집을 나서는데 바깥은 온통 젖어 있었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간밤에 내린 비의 양이 간단치 않았는지 낮은 곳에는 제법 물웅덩이가 고였습니다. 하늘은 우중충하니 잔뜩 흐린 채였고 이따금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어지간한 추위는 아닐지라도 으스스한 한기가 품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경칩도 지났는데... 산의 초입에 있는 계단을 다 오르자 가볍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에는 새벽잠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나온 노력이 아까워서 차마 그리 할 수 없었습니다. 후둑후둑 떨어지는 빗소리의 리듬에 맞춰 걸음은 평소보다 절반은 늦춰진 듯했고, 인적이 끊긴 등산로에는 적막이 감돌았습니다.<br>나는 며칠 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이란의 초등학생들을 애도하며 걸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미친 짓입니다. 그 많은 민간인들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처참하게 생명을 잃는다는 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정부는 이제 더 이상 히틀러의 만행을 비난할 권리가 그들에게는 없는 듯 보입니다. 그들 역시 히틀러의 만행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학살과 온갖 잔인한 전쟁 범죄를 저질러 왔고, 지금도 역시 그와 같은 만행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면 이처럼 참혹한 살상을 허락한 이스라엘과 미국의 권력자들에게 가장 먼저 지옥행 열차를 타도록 할 것입니다.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면 말입니다.<br>희끄무레한 어둠에 싸인 등산로는 빗물에 질척거리고 미끄러웠습니다. 등산로 주변의 낙엽 위에는 비에 섞여 내린 진눈깨비가 녹지 않은 채 하얀 잔설로 덮여 있었습니다. 검게 드러나는 등산로와 잔설이 쌓인 숲의 대비는 마치 한 폭의 수묵담채화인 양 그려졌습니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입고 나갔던 운동복 상의도 비에 젖었습니다. 손전등 불빛이 한 뼘의 어둠을 쫓아낼 때마다 땅 위에 번지는 타원형의 불빛 속으로 작은 빗방울들이 다투어 모여드는 듯했습니다.<br>어제 했던 친구의 말이 떠오릅니다. "완벽하게 인간을 닮은 로봇이 출현하기 전에 우리 인간이 완벽하게 로봇을 닮는 게 순서적으로 더 먼저이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치인들을 보면 그들은 마치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어떤 연민이나 안타까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감각한 인간들처럼 보입니다. '나는 심장이 없어. 나는 심장이 없어. 그래서 아픈 걸 느낄 리 없어.'라고 노래했던 어느 가수의 노랫말이 생각납니다. 오늘은 금요일이고 내게는 이틀간의 휴가가 주어졌습니다. 회사원이라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말입니다. 가슴 아픈 소식은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지금 나의 몸 컨디션이 너무나 안 좋기 때문입니다. 경칩도 지났는데 날씨는 제법 쌀쌀합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하루를 건너는 일 - [세상의 빛 - 시인 리디 다타스가 모으고 되살린 크리스티앙 보뱅의 말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1751</link><pubDate>Thu, 05 Mar 2026 14: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17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5466&TPaperId=171317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5/70/coveroff/k98213546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5466&TPaperId=171317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상의 빛 - 시인 리디 다타스가 모으고 되살린 크리스티앙 보뱅의 말들</a><br/>크리스티앙 보뱅.리디 다타스 지음, 신승엽 옮김 / THE CIRCLE PRESS / 2026년 01월<br/></td></tr></table><br/>세상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소스와 향신료가 존재한다. 향수 역시 다르지 않다.&nbsp;우리의 코와 입은 얕고 간사하기 이를 데 없어서 재료 본연의 맛과 냄새에 친숙해지기보다는 우리의 입과 코가 선호하는 쪽으로 발전시켜 왔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눈과 귀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선호를 발전시켜 왔던 까닭에 그림과 음악 등, 현대인들의 정서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는 예술 작품이 등장했을 테니까 말이다. 문학작품에 대한 선호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이왕이면 잔소리보다 칭찬의 말이 듣기 좋은 것처럼 시간을 내어 글을 읽는 마당에 자신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좋은 문장이 가득한 책을 선호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듯 보인다. 물론 우리의 입맛이 서로 다른 것처럼 책도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선호하는 장르가 각자 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을수록 자신의 취향은 더욱 확고해지고 문장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도 분명해진다.<br>"나는 자연을 간헐적으로만 보러 간다. 그 아름다움이 너무 커서 벅차기 때문이다. 금화와 보석으로 가득 찬 상자 앞에 오래 머무르는 것과도 같다. 그러다 보면 눈이 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두세 개의 보석만을 챙겨 돌아온다. 들판에서는 작은 작은 나무숲이 받는 것과 동일한 태양의 편지를 받을 수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이미 넘칠 정도로 충분하다."&nbsp; (p.31)<br>언제부턴가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차츰 늘고 있다. 욕심 같아서는 나만 알고 싶은 그런 작가인데 어디 그게 가당키나 할까. 프랑스 시인 리디 다타스가 보뱅의 말과 사유를 오랜 시간 경청하고 수집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lt;세상의 빛&gt;에는 작가가 문학·사랑·언어·삶·세계에 대해 직접 말한 문장들이 질문의 흔적 없이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보뱅은 1951년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태어나 2022년 11월 24일, 71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 그곳에서 글쓰기를 하며 문단이나 출판계 등 사교계와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어쩌면 이 책은 자신의 고집스러운 삶에 대한 회고이자 자신의 문학적 태도와 세계관에 대한 해설서일지도 모른다.<br>"오늘날 우리에게는 방향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가능해져 버린 시대에 어떻게 방향을 알 수 있을까? 북쪽은 북쪽이고 남쪽은 남쪽임을 다시 일깨워야 한다. 많은 이들에게 부족한 건 자신의 본능, 다시 말해 즉각적으로 아는 걸 붙잡는 아주 단순한 감각이다. 이는 마음에 기대어 보아야 할 것을 더 잘 가늠하는 일이다. 시골 언덕에 있는 전망 안내판에 기대어 지평선을 손님처럼 여기며 말을 걸듯이, 마음이라는 지지대 위에 기대어 보는 것이다."&nbsp; (p.88)<br>보뱅의 글은 하나의 문장이 아닌, 맑고 시원한 하나의 목소리로 변하여 마음속 깊은 곳까지 전달된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 이를테면 관습이나 종교나 지식이나 삶에서 늘 보게 되는 어떤 것들에 대해 그의 설명이나 해석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는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우리가 알거나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잊은 채 새로운 세상 속으로 지금 막 도착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드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눈이 아닌 작가의 눈을 통해 또는 작가가 뿜어 내는 한 줄기 빛을 통해 빚어진 새로운 세상의 풍광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새로운 세상 속에서 머물다 보면 출처를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낮게 울려 퍼지는 기쁨의 송가를 한동안 여운처럼 들을 수 있다.<br>"대부분의 시들은 성냥개비와 같다. 긁어 켜는 순간 아름다운 불꽃을 피우며 잠시 우리를 밝히지만, 이내 손에는 그을린 나무토막만 남는다. 나는 한 번도 빛을 본 적은 없으나, 그 빛을 온전히 알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빛은 그런 식으로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것도. 가장&nbsp; 고귀한 빛을 주는 이는 시인들이 아니라, 시보다 더 아름다운 빛을 엿본 이들이다."&nbsp; (p.161)<br>한 달 전쯤 몸살을 심하게 앓았던 탓인지 나는 예전 컨디션을 좀체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물론 책을 읽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있다. 날씨 변화가 심한 환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루 운동량을 과도하게 늘려 몸에 무리를 주었던 게 이 모든 결과의 원인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과유불급'의 의미를 몸을 통하여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가.<br>매일 조금씩 한낮 기온을 끌어올리더니 이제는 제법 봄기운이 감돈다. 금세라도 산수유꽃이 벙글 듯한 날씨인데 나는 이 아름다운 계절을 뒤로한 채 컨디션 회복에 골몰하고 있다. 휴가를 내고 잠시 쉬자니 꾀병인 듯 보이고, 꾸역꾸역 버티자니 힘이 들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일만 지나면 주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주말 동안 푹 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 상태로 회복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 하루도 조심조심 건너고 있다. 하루를 건너가는 게 이리도 힘든 일인가, 나는 새롭게 깨닫는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5/70/cover150/k9821354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57082</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사랑은 멀고도 가깝다 - [너무 늦은 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24235</link><pubDate>Sun, 01 Mar 2026 15: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242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030793&TPaperId=171242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09/50/coveroff/k9620307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030793&TPaperId=171242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너무 늦은 시간</a><br/>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07월<br/></td></tr></table><br/>허투루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 중 하나는 누군가의 단점을 나의 노력만으로 쉽게 고칠 수 있다는 착각에 자주 빠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비단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만 존재하는 커다란 실수 중 하나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십 년 결혼 생활을 이어 온 부부 사이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착각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나의 사랑으로 혹은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신을 향한 자신의 기도를 통하여 상대방의 단점을 쉽게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상대방의 단점을 능히 가리고도 남을 만한 다른 장점이 상대방에게 존재하거나 그와 헤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자신의 이성을 마비시켰거나 그를 소유하고자 하는 자신의 욕구가 지나치게 강한 데서 비롯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사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정리되기 전에 그와 같은 판단에 도달할 만큼 자기 객관화의 면모가 뚜렷한 사람은 흔치 않을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에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지사지의 태도는 숫제 경험조차 해 본 적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인간은 가장 이기적인 동물일지도 모른다.<br>"전시회를 본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아클로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가서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침대에 누웠다. 따뜻한 바람과 이웃집의 금속 풍경 소리가 들어와 방을 가로질렀다. 사빈은 한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테스코까지 걸어가서 장을 봐 온 다음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타임 줄기를 넣고 구운 닭고기와 마늘, 주키니 호박이었다. 이 여자는 요리를 할 줄 알았다. 카헐은 지금도 그것만큼은 인정했다. 하지만 설거짓감이 너무 많이 나와서 마음 한구석으로는 늘 화가 났는데, 그가 전부 헹궈서 식기세척기에 넣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그녀가 밤새 불려야 한다고 말했던 오븐용 그릇만은 예외로, 그가 월요일에 퇴근하고 돌아올 때까지 싱크대에 그대로 있었다."&nbsp; (p.21 너무 늦은 시간' 중에서)<br>클레어 키건의 소설집 &lt;너무 늦은 시간&gt;에는 표제작인 '너무 늦은 시간'과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그리고 '남극' 등 단 세 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얇은 책이다. 그렇다고 소설의 내용 또한 가볍고 쉽게 이해되는 건 아니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너무 늦은 시간'에서 주인공인 카헐은 어느 회의장에서 만난 사빈과 사귀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인색한 데다가 남성 우월주의적 환경에서 성장한 카헐은 자신의 집으로 짐을 옮긴 사빈과의 결혼 준비 과정에서 여러 번 충돌한다. 사빈은 카헐의 직장 동료인 신시아를 통해 카헐의 행동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확인한다. 사빈은 카헐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지만 카헐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그것들이 다만 아일랜드 남자들의 관습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대학 시절 부모님과의 식사 자리에서 남동생이 어머니가 자신의 접시를 들고 식탁에 앉으려 할 때, 의자를 홱 빼버리는 바람에 어머니가 바닥에 넘어졌던 것은 물론 접시가 깨지고 접시에 담겼던 음식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남자들 세 사람이 크게 웃었던 기억을 떠올린다.<br>"카헐은 마음 한구석으로 아버지가 다른 남자였다면, 그때 그 모습을 보고 웃지 않았다면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래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별 의미 없는 일이었다고, 못된 장난이었을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거나 하기 싫어져서 옆으로 누웠지만 적어도 한 시간은 지난 후에야 잠이 왔고, 그는 어느새 잠의 위안과 새로운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nbsp; (p.44~p.45 '너무 늦은 시간' 중에서)<br>한편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뵐 하우스'라는 작가 레지던스에서 집필 작업을 하려던 여성 주인공이 다짜고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된다. 독문학 교수라고 소개한 남자는 집을 둘러보겠다며 무례하게 부탁한다. 글을 써야 할 귀중한 시간에 주인공은 마지못해 응한 남자의 방문이 영 못마땅하지만 준비한 케이크를 대접한다. 남자는 이를 게걸스럽게 먹고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오히려 주인공을 타박하기에 이른다.<br>"얼마나 끔찍한 남자인지! 정말 끔찍하고 불행한 남자야. 그녀가 문을 잠그며 생각했다. 정신이 나갔나? 게다가 얼마나 수고를 들였는지 생각하면...... 그녀는 케이크를 보면서 창밖으로, 그의 뒤에다가 던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케이크를 냉장고 깊숙이 넣고 와인을 한 잔 따랐다."&nbsp; (p.77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중에서)<br>'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로 시작하는 '남극'은 결국 이를 실행에 옮기는 여자의 경험을 다룬다. 그러나 작가는 독자들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결말을 준비하여 놀라게 한다. 이 세 편의 단편소설은 대략 10년씩의 시차를 두고 쓰였다지만 작가 특유의 문체는 비슷하고, 주제 역시 일관되게 흐른다. 2022년에 발표된 '너무 늦은 시간'과 2007년에 발표된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그리고 1999년에 출간된 '남극'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작가의 생각과 문학적 표현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시도로 보이지만, 특이하게도 클레어 키건은 시간의 추이에 다른 변화를 보여주기보다 하나의 주제를 각각 다른 소재로 선보이는 3인 3색의 색다른 매력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br>우리나라에서도 데이트 폭력과 남녀 간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클레어 키건은 이 책에서 결혼 전의 두 남녀의 갈등과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인 남자를 제삼자적 관점에서 보게 되는 여자와 경험해보지 못한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압축적인 이야기로 담고 있다.<br>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모텔 살인 사건도 그렇지만 남녀 간의 관계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면 상대방의 단점이 아주 작게 보이거나 쉽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잘못된 믿음이었음을 곧바로 알게 된다. 그럼에도 문제가 지속되는 까닭은 인간의 적응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위중한 폭력 앞에서도 시간이 흐르고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인간은 그 상황에 적응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클레어 키건은 각각의 상황을 여성의 입장에서 쓰고 있지만 비단 이것이 어느 한 편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남녀 간의 교제를 법으로 금할 수도 없고... 사랑에 이르는 길은 너무도 가깝고 사랑에서 벗어나는 길은 너무나 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09/50/cover150/k9620307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7095094</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우리는 시시각각 길을 잃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15335</link><pubDate>Thu, 26 Feb 2026 14: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15335</guid><description><![CDATA[누구나 그렇겠습니다만 자신의 노력에 비해 과도한 칭찬을 받을 때가 더러 있습니다. 오늘 새벽 산행길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날씨가 풀리면서 산을 찾는 등산객이 늘어난 탓에 등산로에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이 겨울에 비해 배는 증가한 듯합니다. 어차피 빈 손으로 내려올 바에는 쓰레기라도 주워서 내려오는 게 환경에도 좋고, 기분도 좋고 여러 모로 나쁠 게 없으니 나는 꽤나 오래전부터 등산로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자고 생각했었고, 아침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올 때면 양손 가득 쓰레기를 들려 있는 게 습관처럼 굳어졌습니다.<br>오늘도 여느 날처럼 작은 골판지 박스며, 페트병이며, 사탕 껍질이며, 사용한 화장지 등을 두 손에 나눠 들고 내려오는데 오늘 처음 본 아저씨 한 분이 나를 향해 과도한 칭찬을 쏟아내는 것이었습니다. 훌륭하시다는 둥 너무나 좋은 일을 하신다는 둥 온갖 칭찬을 늘어놓는 바람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하여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줍는 사람 따로 있고, 버리는 사람 따로 있느냐며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에 대한 성토를 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스로 그분을 진정시키고 산을 내려오는데 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그러나 기분은 전혀 나쁘지 않았습니다. 온종일 즐거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요?<br>"우리는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움을 통해서만 삶에서 벗어난다. 그때 우리는 시간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어떤 지속을 느끼지만, 곧바로 한층 더 불투명해진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그토록 아름다운 자연조차 실은 무심하다. 들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시골길 한가운데에서도 인간은 살해될 수 있다. 그러니 피난처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건 그다지 두려운 일은 아니다. 진정 두려운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그 안에서 모두가 어느 정도 길을 잃고 있는 이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lt;세상의 빛&gt; 중에서)<br>크리스티앙 보뱅의 지적처럼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에서 어느 정도 길을 잃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엊그제 시작한 듯한 2026년도 벌써 두 달을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다가오는 3월을 어떻게 보낼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시시각각 길을 잃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흐려지는 기억력과 안개의 풍경 - [최윤 : 하나코는 없다 The Last of Hanak'o]</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13439</link><pubDate>Wed, 25 Feb 2026 16: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134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006346&TPaperId=171134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850/34/coveroff/89940063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006346&TPaperId=171134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최윤 : 하나코는 없다 The Last of Hanak'o</a><br/>최윤 지음, 브루스 풀턴.주찬 풀턴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07월<br/></td></tr></table><br/>새벽 등산로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등산로뿐만이 아니었다. 도시 전체가 안개에 점령당한 듯했다. 어제 내린 습설이 밤새 낮아진 기온에 서릿발처럼 얼어붙어 있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낮에는 기온이 꽤 오르겠는걸' 속으로 생각하면서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길을 조심스레 걸었다. 안개에 대한 서술로 시작하는 최윤 작가의 소설이 떠올랐지만 끝내 제목은 생각나지 않았다. 알듯 알듯 하면서도 결국 포기하게 되는 순간의 답답함이란... 이런 경험이 전에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닌데 때로는 입에 붙었던 책의 제목마저 어느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 얼버무리게 될 때, '나의 기억력도 이제 옛날 같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깊은 한숨과 함께.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자마자 책의 제목부터 확인했다. 그래, 맞아. &lt;하나코는 없다&gt;였지. 왜 그게 떠오르지 않았을까.<br>"폭풍이 이는 날에는 수로의 난간에 가까이 가는 것을 금하라. 그리고 안개, 특히 겨울 안개에 조심하라...... 그리고 미로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을 두려워할수록 길을 잃으리라."&nbsp; (p.8)<br>하나코는 별명이었다. 코가 예뻐서 붙여진 별명.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모임의 어느 한 사람이 하나코에게 전화를 걸면 그녀는 혼자 또는 늘 똑같은 여자 친구 한 명을 대동하고 흔쾌히 나와주었다. 그런데 '공기나 혹은 적당한 온기처럼 늘 그들 곁에 있던 하나코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렇게 자주 어울렸으면서도 그들이 하나코의 신상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는 하나코가 살고 있다는 이탈리아로의 출장에 자원한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그는 안개처럼 모호한 하나코의 실체를 되살리려 한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를 파탄시킨 '그 사건'의 실체에 대해서는 지금도 역시 떠올리기 싫다는 듯 자꾸만 머뭇거린다.<br>"그 자신을 포함해 무리들 중의 누구도 하나코에게 자신들의 결혼 날짜를 알리지 않았다. 딴 친구들은 어떤 이유에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로서는 그저 단순한 부주의였다. 물론 그는 청첩장을 준비하던 때만 해도 그녀에게 보낼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분주한 일정에 밀려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nbsp; (p.62)<br>남자들의 모임에 홍일점으로 참여했던 하나코. 그녀는 어쩌면 그들 무리 개개인이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일종의 어장 관리 차원에서, 모임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유지하려는 차원에서 어떤 장신구처럼 이용한 듯 여겨진다. 유쾌하지 않은, 어쩌면 회피하고 싶은 기억을 안고 그는 하나코와의 전화 통화에 성공한다. 서울이 아닌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br>"그는 갑자기 힘이 조금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를 보러 기차를 타고, 그녀가 말해 준 이름의 거리를 찾아 헤매고, 그녀가 일하는 사무실을 찾아 안으로 들어가고, 그녀의 책상 옆에 앉아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 그녀의 생활공간으로 초대되고, 이 나라에서 하듯이 집에서 준비한 식사를 하고 환담을 할 엄두가 나지를 않는 것이다."&nbsp; (p.74)<br>그는 하나코와의 통화에서 모임 멤버였던 J나 P도 그저 전화만 하고 방문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임의 어느 누구도 하나코와 사적으로는 연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도 역시 하나코를 만나지 않은 채 로마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출장에서 돌아온 후 그는 분주한 나날을 보냈고, 어느 날 이탈리아 상공회의소에서 외국 바이어들에게 보낸 홍보 잡지에 실린 하나코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된다. 하나코를 만나지 않고 출장에서 발길을 돌렸던 그는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이삼 년 한 후 그를 포함한 다섯 명의 모임 멤버와 하나코와 그녀의 친구가 차 두 대에 나눠 타고 낙동강 근처의 어느 식당으로 놀러 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하나코와 윽박지르듯 노래를 강요하는 그들 무리가 뒤엉켜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날 이후 그녀는 감쪽같이 사라졌었다.<br>"잠시 머무르다 떠나는 도시. 이제 기차는 불빛이 점점 드물어지는 인적 없는 어두운 풍경 속을 달리고 있었다. 아래 좌석의 승객들도 등받이를 올려 침대를 만드느라 부산하다가 언제부터인가 갑작스러운 침묵이 왔다. 복도의 소음도 점점 더 줄어들고 기차는 짙은 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여전히 세 개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nbsp; (p.82)<br>스가 아쓰코가 쓴 &lt;밀라노, 안개의 풍경&gt;도 떠오른다. 안개, 하면 습관적으로 떠오르던 김승옥의 &lt;무진기행&gt;도 언젠가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제목이 뭐였더라, 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 한 대목을 옮겨 본다.<br>"저녁 무렵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문득 안개가 자욱이 깔리곤 한다. 창에서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플라타너스의 가지 끝이 눈 깜짝할 사이 자취를 감추고, 끝내 굵은 줄기까지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가로등 밑을 생물처럼 달려가는 안개를 본 적도 있다. 그런 날에는 몇 번이고 창으로 달려가 짙은 안개 너머를 내다본다."<br>낮에는 기온이 제법 올랐었다. 산책을 하기에 더없이 좋았던 날씨. 늦은 점심을 먹었던 나는 사무실 근처의 공원을 천천히 걸었고, 봄 햇살에 눈이 녹는 풍경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모이를 찾는 비둘기떼가 이리저리 날아 올랐다 다시 내려앉곤 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850/34/cover150/89940063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503406</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초봄에 내리는 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10895</link><pubDate>Tue, 24 Feb 2026 13: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10895</guid><description><![CDATA[나이가 들면서 나는 새롭게 맞는 날들이 특별한 감정의 소모가 없는 무던한 하루하루가 되기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기쁘거나 너무 슬픈 또는 지나치게 화가 나는, 예컨대 평소에 비해 과도한 감정적 소모조차 견디기 힘든 나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점점 쇠약해지는 기력 탓에 극심한 감정의 소모에 필요한 에너지를 미처 충당하지 못하는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정을 소모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인지 과학적으로 검증한 바는 없지만 말입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나타납니다. 젊은 시절에 나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넘어가는, 이를테면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내세우지 않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나는 남들에게 까칠하게 대하지 않는 수더분한 성격의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것 역시 내게 일어난 큰 변화 중 하나라면 하나라고 하겠습니다.<br>지금 창밖에는 한겨울에도 자주 보지 못하던 눈이 하얗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내가 살았던 세세한 흔적들도 저 눈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 시절에 나는 그 기억들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욕심조차 한낱 부질없는 꿈임을 최근에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살았던 흔적 역시 초봄에 내리는 저 눈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쉽게 녹아 사라질 수만 있다면 저승으로 향하는 발길이 조금 가볍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 작가 데니스 존슨의 소설 &lt;기차의 꿈&gt;을 읽고 있습니다. 100여 쪽 남짓의 얇은 소설이지만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날 읽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인 듯합니다. 이 책에 대한 '추천의 글'을 쓴 정여울 작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br>"이 작은 소설에는 삶이라는 거대한 파노라마가, 인간의 부조리와 상실과 치유와 극복의 모든 서사가 담겨 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누군가 내 귓가에 집요하게 무언가 간절한 사연을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든 것이 다 끝난 줄로만 알았던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위대한 사랑과 희망의 목소리를.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상실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시작되고, 지속되고, 항상 우리 마음속에서 끝내 살아남을, 위대한 희망과 사랑의 이야기를."<br>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차량들이 줄을 지어 달려갑니다. 이렇게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날 우리는 잊고 있었던 어느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끝없이 불러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기쁘거나 슬프거나 행복했던 감정들을 야금야금 소모합니다. 격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기진한 듯 나른한 피곤이 몰려옵니다. 여전히 눈은 그치지 않고 눈꺼풀의 무게만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있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다시 봄이 오고 있다 - [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06877</link><pubDate>Sun, 22 Feb 2026 16: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0687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6780&TPaperId=171068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95/42/coveroff/89626267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6780&TPaperId=1710687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a><br/>아잠 아흐메드 지음, 정해영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br/></td></tr></table><br/>규칙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남은 삶도 규칙적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삶이란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깨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운전을 시작하면서 자주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나만 조심한다고 해서 사고가 안 나는 것은 아니야.'인 것처럼 자신의 삶을 열심히, 앞만 보고 성실하게 살아간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가 주어진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삶이란 나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와 이어짐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동작업이기도 하고, 그와 같은 관계를 나 역시 나 몰라라 하고 외면할 수만은 없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냉정한 사람일지라도 가족에게 발생한 끔찍한 사고를 어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로 인하여 나의 삶이 180도 달라질 수 있음을 어찌 계산할 수 있단 말인가.<br>얼마 전 뉴욕타임스의 국제 탐사보도 특파원인 아잠 아흐메드가 쓴 르포르타주 &lt;두려움이란 말 따위&gt;가 출간되었다. 무너진 공권력과 이 틈을 비집고 성장한 마약 카르텔이 멕시코 지역사회를 어떻게 붕괴시키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범죄 르포르타주 &lt;두려움이란 말 따위&gt;는 마약 카르텔 조직에 의해 납치된 딸을 찾기 위해 범인을 직접 추적해야 했던 미리암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멕시코 타마울리파스주(州) 산페르난도 지역에 살고 있던 미리암 로드리게스와 루이스 살리나스 부부에게는 큰딸 아잘리아와 아들 루이스 엑토르, 막내딸 카렌을 둔 평범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고질적인 외도와 그 반작용으로 대학생이었던 카렌이 엇나가기 시작하면서 가족들의 걱정이 시작되었다.<br>"2년 전이었던 2014년 1월, 플로리스트를 비롯한 세타스 일당이 카렌을 납치했다. 미리암은 애걸복걸하며 세타스의 모든 지시에 따랐고,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몸값까지 지불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그들은 카렌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정부 당국에서는 탄원을 무시하고, 무관심하고 형식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는 등 미리암을 외면했다."&nbsp; (p.12)<br>평범한 주부에 지나지 않았던 미리암은 현실을 직시한 후 딸을 납치한 자들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추적에 나선 지 2년 만에 추적 명단 속 6명은 교도소에 수감됐고, 4명은 세타스의 거점을 습격한 해병대에 사살됐다. 이 모든 과정에 미리암이 관여했다. '아마추어 수사관'으로 활약했던 것은 물론 딸의 유골을 수습하기 위한 DNA 검사 역시 그녀의 몫으로 남았다. 딸의 복수를 위한 집요한 추적 과정에서 가족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카렌의 유골을 수습하고 납치범을 잡아 법정에 세우면 그 위험한 범죄 조직에 맞서는 행위를 그만두겠다던 미리암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공권력의 부패와 범죄조직과의 유착으로 인해 자신과 같은 납치 피해자 가족은 수를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하였고, 그들의 고통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br>"실종 피해자 가족들은 굴하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았다고도 죽었다고도 할 수 없는 경계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못지않게 불확실함에 시달린다. 상실감이라는 유령과 살며 가족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고문당한다. 희망은 자식이나 남편, 동생, 사촌의 유해라도 찾겠다는 열정이 되기도 하고, 피해자 가족들을 소진시키기도 한다."&nbsp; (p.208)<br>4년간 관련 인물을 수백 시간에 걸쳐 인터뷰하고 2만 쪽이 넘는 사건 파일과 재판 기록을 입수해 사건을 재구성했던 저자의 노력 때문인지 범죄 현장을 취재한 논픽션이라는 느낌보다는 범죄 스릴러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멕시코 혁명 이후 탄생한 '걸프 카르텔'이라는 마약 범죄조직의 역사·지역적 배경을 다루면서 걸프 카르텔 조직이 약화되는 과정에서 성장한 신흥 범죄조직 '세타스 카르텔'을 다루고 있다. 세타스는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인 산페르난도를 중심으로 말할 수 없이 잔인한 범죄를 수시로 저질렀고, 이들을 두려워한 마을 주민들 역시 그들을 신고하거나 증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직 딸의 복수를 위해 나섰던 미리암은 실종 피해자 가족 모임을 이끌면서 범죄조직에 맞서 싸웠다. 자신의 안위를 등한시한 채 말이다.<br>"죽음과 시신 훼손이 일상이 된 곳에서는 당국의 무능함과 냉담함과 무관심도 일상이 된다. 너무 지친 피해자 가족들은 더 이상 당국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고, 그 사실이 폭력으로 엉망이 된 상황을 수습할 책임이 있는 자들을 더욱 둔감하게 만들었다. 죽음의 악순환이었다."&nbsp; (p.318)<br>한 국가의 치안은 오직 그 나라의 공권력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성숙과 국민 전체의 의식 수준이 그 나라의 치안과 질서 수준을 결정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공권력은 시민의 감시나 재촉이 없다면 너무나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처럼 범죄조직에 대한 시민의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범죄는 활개를 치고 이에 맞서야 할 공권력은 더욱 움츠려들게 마련인 것이다.<br>길었던 겨울도 끝이 보이고 있다. 친위 쿠데타라는 가장 무시무시한 악의 카르텔을 맨몸으로 막아냈던 우리 국민의 용기는 세계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군부독재 치하에서 자행되었던 내란과 이를 극복했던 경험이 우리에게 맨몸으로 저항할 용기를 심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대접받을 수 있는 까닭도 불의에 굴하지 않는 국민의 용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용기는 우리 국민 전체의 높은 시민의식에서 비롯된다. 보이는 것은 언젠가 닳아 없어질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국민 각자의 시민의식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다시 봄이 오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95/42/cover150/89626267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954207</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한나 아렌트의 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05060</link><pubDate>Sat, 21 Feb 2026 15: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05060</guid><description><![CDATA[설 명절 연휴가 끝난 엊그제 오후의 께느른한 시간에는 국민 전체의 눈과 귀가 지귀연 재판부로 쏠렸었습니다. 명절이나 여행은 기다리는 시간이 설레고 두근거릴 뿐 막상 닥치면 피곤함과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인해 어서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는 점에서 서로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명절 후에 맞는 출근 첫날은 저마다의 사정을 터놓고 말하지 않아도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피곤의 그늘과 느린 발걸음만으로도 힘듦의 강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습니다. 가뜩이나 힘든 하루를 꾸역꾸역 버티고 있던 사람들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피고인에 대한 1심 선고 생중계는 더없이 좋은 핑곗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 재판정은 낯선 공간일 뿐만 아니라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가보고 싶지 않은 기피의 공간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와 끊이지 않는 선전 선동으로 다수의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윤석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보는 것은 일반 형사재판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습니다.<br>그러나 지귀연 재판부가 내린 형량에 비해 그가 읊었던 판결문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판결문 곳곳이 논리에 맞지 않았던 것은 물론 그가 썼던 비유나 역사적 사실의 언급에 있어서도 상황에 맞지 않거나 일반인도 그 오류를 쉽게 지적할 수 있는 문장들이 여럿 등장했습니다. 국민적 관심사가 집중된 재판의 재판장으로서 그처럼 형편없는 판결문을 낭독한다는 건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워 낯을 들 수 없게 만든 장면이었습니다. 재판을 지휘하고 판결문을 쓰는 일을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닐 텐데 어쩌면 그렇게 부실한 판결문을 대중 앞에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는 어쩌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이거나 사법적 정의는 지나가는 개에게나 줘버린 못난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나 아렌트의 인터뷰집 &lt;한나 아렌트의 말&gt;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합니다.<br>"&lt;예루살렘의 아이히만&gt;을 집필한 의도 중 하나는 악惡이 위대하다는 통설을, 악마 같은 세력이 위대하다는 통설을 깨뜨리고, 사람들이 리처드 3세 같은 엄청난 악인들에게 품고 있는 존경심을 걷어내는 것이었어요."<br>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대체로 '악마 같은 세력이 위대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윤석열과 그의 추종자들에 대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여전히 '윤어게인'을 외치며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걸 보면 한나 아렌트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비상계엄이 성공하고 그들의 계획이 순서대로 착착 진행되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내란의 우두머리인 윤석열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고는 하지만 '악惡이 위대하다는 통설'은 여전히 유효한 듯 보입니다. 어쩌면 우리 사법부의 일부 재판관들도 '악마 같은 세력이 위대하다는 통설'을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br>명절 연휴 뒤에 맞는 첫 번째 주말, 계절은 이제 겨울을 벗어나 봄으로 향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악惡이 위대하다'고 믿는 내란의 잔존 세력에 의해 정치적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비상계엄을 저지했던 대한민국 국민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다면 '윤어게인을' 외치던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선善이 위대하다는 통설'을 믿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정치적 겨울의 한파가 그때 이후에는 조금 풀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영혼의 시력 높이기 - [뉘앙스 - 성동혁 산문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97627</link><pubDate>Tue, 17 Feb 2026 2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976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835605&TPaperId=170976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380/70/coveroff/k6028356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835605&TPaperId=170976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뉘앙스 - 성동혁 산문집</a><br/>성동혁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2월<br/></td></tr></table><br/>고통의 진실된 면모는 감동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다. 그러므로 대작(大作)은 언제나 큰 고통을 경험한 이의 몫이며, 고통에 대한 진정한 대가는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울림과 감동으로 주어진다. 그와 같은 원칙은 세대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고통에 친숙하거나 우리네 삶의 대부분이 고통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은 아니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서만 스스로 겸손해지는 법을 터득하고, 거듭되는 고통을 통하여 가장 넓은 폭의 이해력을 획득한다. 고통이 없다면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삶에서 일부러 고통 속으로 뛰어들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고통이 유일한 것인 양 불평할 필요도 없다.<br>소아 난치병 환자로 어린 시절 다섯 번의 대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여전히 투병 중에 있는 성동혁 시인의 산문집 &lt;뉘앙스&gt;를 읽었던 대부분의 독자가 큰 감동을 느끼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시인의 산문집을 좋아하는 나의 특별한 기호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고통 속에서 끌어올린 시인의 아름다운 문장과 인간 본연의 보편적 감성이 책을 읽는 독자 모두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영혼의 행로를 결코 방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고통이 지배하는 육체 안에서도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우리의 영혼은 언제나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br>"정적 속에서 사뿐하게 상대를 이해해야 할 때가 있다. 상대를 감싼 모든 것이 그의 언어임을 알고 풍경을 눈여겨볼 때가 있다. 세계엔 손잡이가 없다. 그래서 쥐자마자 델 수 있다. 손이 닿기 전에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사랑할수록 작은 뉘앙스에 휘청거린다. 시 또한 그러지 않을까. 무엇을 쓰려고 할 때, 그것 앞에서 바들바들 떠는 일, 그것 앞에서 눈치를 보는 일, 사소한 움직임 하나에도 나의 생활이 엉망이 되는 일. 사랑할 때 무심히 넘겨야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뉘앙스, 말하지 않아도 들어야 하는 말. 당신이 쓰고 내가 읽는 마음. 뉘앙스."&nbsp; (p.67 '뉘앙스' 중에서)<br>혹자는 성동혁 시인이&nbsp;이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로&nbsp;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간다기보다 타인의 삶을 그저 관찰하는, 관찰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모험과 도전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기에 비록 이동은 불편하지만 그에게는 남들이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관찰하고, 이를 통하여 깨닫고, 공감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개발되었으니 그도 역시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겠다. 게다가 그의 곁에는 시월이 왔음을 알려주는 다정한 이웃이 있고, 그를 등에 업고서라도 산 위에서의 멋진 풍광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친구도 있다. 그의 병상을 지키는 가족이 있고, 하트 모양 스티커를 건네는 같은 병동의 어린이가 있다. 그로부터 시작된 아름다움이 화선지의 먹물처럼 번져가는 것이다.<br>"어린이 병동을 다니며 한동안 스티커를 챙겨 다니곤 했다. 간호사 선생님의 명찰에 아이들이 붙여 준 스티커를 자주 본다. 아이들에겐 스티커가 사랑의 표현 방법이다. 감사하게도 내 노트북엔 같은 병실에 있던 아이가 붙여 준 두 개의 스티커가 있다. 은색 별과 파란 하트. 작고 반짝이는 내 부적."&nbsp; (p.102)<br>흩어져 있던 십여 년의 기록들 속엔 문득문득 회색빛 슬픔이 그려지기도 하고, 가눌 수 없는 절망이 비틀대기도 한다. 때로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이 무거운 삶을 짓누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걷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장담할 수 없는 희망이 있는 것처럼 시인에게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는 것이다. 그를 도와준 의료인들 덕분에 십 대와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의 삶도 이어올 수 있었지만 남들과 다른 불공평한 자신의 삶에 대해 어찌 분노가 없었을까.<br>"미워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마음을 이기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했다. 우울하지 않고 유쾌한 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슬픔이나 분노, 우울은 이윽고 사라지지 않고 몸이나 영혼 어디에 남았다. 그것들이 삶을 망칠 때가 있기도 했다. 방치하듯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사람들이 도왔지만 결국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건 스스로의 몫이기도 했다. 쓴다는 건 뭘까라는 질문보다 산다는 건 뭘까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했다. 그렇게 일 년 정도 시를 쓰지 않고 휴식을 가졌다. 휴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 년 후엔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고 다시 살아갔다. 누군가에겐 일 년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지만 내게 그 시간은 시를 쓰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시를 쓰지 않던 긴 시간이었다."&nbsp; (p.179 '일부' 중에서)<br>몸이 건강하다는 건 타인의 아픔을 세심히 살필 수 없는 , 영혼의 시력 저하를 야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끝없이 아름다움을 찾는 성동혁 시인과 같은 이의 글을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음속 다짐을 되새겨야 한다. '나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라고. 오늘은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 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가족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가족을 잃고 거리에서 명절을 맞는 유가족들도 있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잠깐 보았던 그들의 모습을, 그 아픔을 우리는 모르는 체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애써 숨겼던 당신의 아픔을 우리가 보았노라고 그들을 응원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영혼의 시력을 높여가야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380/70/cover150/k6028356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380701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미세먼지를 핑계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94060</link><pubDate>Sun, 15 Feb 2026 17: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94060</guid><description><![CDATA[추위가 풀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말입니다. 최근 감기 몸살을 심하게 앓았던 탓인지 대기질이 조금만 나빠져도 금세 반응이 나옵니다. 전에는 하지 않던 기침과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 등이 그런 것입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한겨울 추위가 다시 찾아오는 게 오히려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미세먼지의 공습에 이렇듯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었는지... 풀리지 않는 과제를 강제로 떠안은 듯 한숨이 절로 터져 나옵니다. 명절 연휴 이틀째인 오늘, 하늘은 여전히 뿌옇고 흐릿합니다.<br>크리스티앙 보뱅의 에세이 &lt;세상의 빛&gt;을 읽고 있습니다. 사실 내가 크리스티앙 보뱅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해야겠지요. 작가의 명성이나 지적 깊이보다 작가의 문장력에 쉽게 빠져드는 나로서는 크리스티앙 보뱅이라는 작가의 매력에 단박에 빠져들지 않을 재간이 없었습니다. 이런 훌륭한 작가의 글을 그동안 어떻게 외면하고 지낼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lt;걷기예찬&gt;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사회학자인 다비드 르 브르통의 글은 문학적 글쓰기를 주업으로 하는 웬만한 시인이나 소설가의 문장력 이상이었습니다. 나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는 이런 작가들은 도대체 어떤 경로로 나와 연결되는 것일까요.<br>"글쓰기는 보편적으로 자폐적인 성향을 지닌다. 시인은 말을 하는 자폐인이다. 텅 빈 방 안의 헐벗은 인간. 그는 자신의 빛을 붙잡고 있기에 무엇도 밝히지 못한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자신의 피부를 뒤집어 놓는데, 피부의 안쪽은 눈부신 색채들로 수 놓여 있다. 자폐는 빛줄기들이 안쪽을 향해 있는, 뒤집힌 태양이다. 겉은 매끄럽고 아무런 감각도 매력도 없지만, 그 안에는 전례 없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한 사람이 자기 안에 갇혀 있는 한, 아무것도 - 혹은 거의 아무것도 - 밖으로 발산되지 않는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을 표현하게 되면, 그 내면에서 쏟아져 나오는 광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눈부시다. 침묵하는 자폐인처럼, 시인은 글을 쓰며 자신을 묻는다. 그는 자기 안의 영광 속에서 살며, 세상으로부터는 죽은 존재다."&nbsp; (p.18~p.19)<br>얼마나 아름답고 탁월한 시선인지요. '시인은 말을 하는 자폐인'이라는 표현도, '시인은 글을 쓰며 자신을 묻는다'는 문장도, '그는 자기 안의 영광 속에서 살며, 세상으로부터는 죽은 존재다'라는 결론도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듯한 지식이지만, 이렇게 단정적으로 또는 적확한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우리는 내심 수긍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이미 많은 작가들이 있고, 여전히 더 많은 작가들이 새롭게 유입되고 있지만 독자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작가는 한정적입니다. 그런 작가들의 면면 속에는 어쩌면 깊은 사유와 끊이지 않는 발견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br>설 연휴 이틀째인 하루가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나는 딱히 한 일도 없이 미세먼지를 핑계로 제 몸의 살집만 불리고 있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왠지 숙연해지는 - [너의 좋은 날을 살아봐 - 제주 사는 미술치료사의 마음, 예술, 자연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92570</link><pubDate>Sat, 14 Feb 2026 21: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925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135366&TPaperId=170925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63/54/coveroff/k66213536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135366&TPaperId=170925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너의 좋은 날을 살아봐 - 제주 사는 미술치료사의 마음, 예술, 자연 이야기</a><br/>정은혜 지음 / 아라의정원 / 2026년 01월<br/></td></tr></table><br/>남들에 비해 비교적 고단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운명'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따라 이 일 저 일 안 해본 게 없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하는 일마다 진득하니 오래 버티지를 못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횟수가 많아질수록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의문과 혼란이 가중된다. 그들 중 어떤 이는 혼란과 동요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길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의 혼란한 삶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자위한다. 영문도 모르는 채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그리고 운명에 거스르는 길을 선택했던 많은 이들이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혼란한 삶을 살다 갔다. &lt;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gt;를 썼던 엘리자베스 길버트와 같은 삶을 살았던 이는 어쩌면 몇 안 되는 행운아 중 한 명이었을지도 모른다.<br>미술치료사이자 생태예술가로서 제주에서 살고 있는 정은혜 작가 역시 그런 행운아 중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록 그녀의 삶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자신이 좋아하고 운명에 거스르지 않는 길을 스스로 찾아냈으니 말이다. 작가의 산문집 &lt;너의 좋은 날을 살아봐&gt;는 그와 같은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방탕한 삶을 살아왔거나 길을 잃고 헤맸던 것도 아닌데 작가는 힘들고 고단했던 길을 돌고 돌아 지금에 이르렀다. 청소년기에 캐나다로 이민 가서 퀸스 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던 작가가 한국에 와서 미술관 큐레이터를 경험한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예술대학(SAIC)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공인 미술치료사가 되었던 작가. 그와 같은 이력만으로도 순탄하고 편안한 삶을 꾸려갔을 듯한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br>"나는 지금의 삶을 사느라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미술치료사가 되기 위해서 미술관 큐레이터 일을 포기했고,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서 캐나다와 미국에서의 삶을 포기했고, 서울에서 제주로 올 때는 안정적인 직장과 돈을 벌 기회를 포기했다. 나는 지금의 삶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로 값을 치렀는지를 잊은 적이 없다. 내 삶에 만족하는 이유가 어쩌면 '잠정적 손해'로 비싸게 값을 치르고 선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nbsp; (p.153)<br>선택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이라면 누구나 갈등과 혼란은 피하기 어렵다. 갈등을 최소화하고 확신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일을 통해 추구할 수 있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인지 몇 번이고 되짚어보는 것이다. 작가 역시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삶에서&nbsp;원하는 것 세 가지(친구, 자연, 카페)가 제주에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제주의 자연 속에서, 제주에서 새롭게 형성한 관계 속에서 안정을 찾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안정된 삶을 기반으로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모래사장을 기어 다니며 주운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로 설치 작품을 만들고, 시간을 내어 글을 쓴다.<br>"상처 없는 이가 없고, 스크래치 없이 어른으로 성장한 이는 없음을 깨달았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경험이 다르고, 문화와 나라가 다르고, 전혀 다른 가족 안에서 있었던 일인데도 내 아픔의 계곡과 다른 이들의 아픔의 계곡 사이에 연결된 다리가 있고, 이 다리를 통해 연민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nbsp; (p.207)<br>작가는 이 책의 원고를 처음 쓰기 시작한 시점이 '삶이 무너지고 관계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한 때'였다고 회상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 전체에서 그런 시기는 한두 번쯤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그 상황에 처한 모든 사람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닐 터, 삶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의 방식은 서로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시간을 내서 글을 쓰고, 누군가는 신발이 닳도록 숲을 거닐고, 또 누군가는 모든 관계를 끊고 침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비록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협곡을 벗어났을지라도 자신의 경험만큼은 필요로 하는 다른 누군가에게 소중히 전달하고, 자신도 역시 오래도록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br>"우리 모두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은유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괜찮게 여겨진다면 우리가 맺는 자연과의 관계가 좀 달라질까? 자연의 일부인 우리는 누구나 이 순환의 어느 단계 안에 놓여 있다. 이 순환을 잘 받아들이면, 자연을 파괴하고 영원히 살고픈 욕망을 좀 내려놓고 우리가 죽이는 다른 생명들에게 연민을 더 가질 수 있을까.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약간은 덜 무서워지지 않을까."&nbsp; (p.284)<br>설 명절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나는 밀린 숙제를 하듯 리뷰를 쓴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난 추억을 되새김하는 것처럼 우리는 명절을 핑계 삼아 삶의 순환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뜬 사람들과 다음은 내 차례라는 듯 '아이고' 소리를 달고 사는 친척들과 갓난쟁이를 앞세우고 나타난 젊은 부부며 제법 어른 티가 나는 학생들 그리고... 명절이 아니면 같은 자리에서 한꺼번에 만날 수 없는 여러 얼굴들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달라진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삶의 순환이란 바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타인을 통해 나의 변화를 감지하고 왠지 모를 슬픔에 숙연해진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63/54/cover150/k6621353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63542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꿈결처럼 아득한 - [집착]</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88018</link><pubDate>Thu, 12 Feb 2026 18: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8801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5609&TPaperId=170880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06/47/coveroff/895468560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5609&TPaperId=1708801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집착</a><br/>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03월<br/></td></tr></table><br/>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처음 읽는 독자라면 아마도 그녀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솔직함'에 대해 놀라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솔직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끝없이 교육받으며 자라왔지만 솔직함으로 인해 받게 된 여러 불합리한 피해들을 경험하면서 솔직함보다는 오히려 숨김이나 외면, 과장이나 허풍, 윤색이나 덧붙임 등에 더욱 익숙해져 온 느낌이다. 그런 까닭에 성인이 된 지금, '솔직함'은 다만 도덕이나 윤리 교과서에 등장하는 형식적 단어일 뿐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소멸된 언어쯤으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어른이 하는 말은 대개 촘촘한 여과장치를 통해 걸러진, 자신에게 조금의 피해도 가해지지 않을 듯한 말만 남게 되거나 거짓에 가까운 허풍이나 과장이 주를 이룬다. 이렇듯 어른들의 외면을 받는 '솔직함'이 아니 에르노의 작품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살아난다.<br>"나는 늘 내가 쓴 글이 출간될 때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했다. 나는 죽고, 더이상 심판할 사람이 없기라도 할 것처럼 글쓰기. 진실이란 죽음과 연관되어서만 생겨난다고 믿는 것이 어쩌면 환상에 불과할지라도."&nbsp; (p.9)<br>아니 에르노의 소설 대부분이 그렇듯이, 소설 속 주인공인 '나'와 '작가'인 아니 에르노 사이의 간극은 무척이나 좁다. 워낙에 좁은 간극 탓에 소설을 읽는 독자는 '나'와 '작가'를 동일시하거나 그렇다고 믿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작가가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와 같은 결과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작가의 체험을 일부 차용하여 소설화하는, 이른바 '자전적 소설'이나 '성장소설'과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같은 높이에서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이것이 전적으로 작가 자신의 체험이라고 밖에 달리 말하기 어려운 적나라하고, 원색적인 표현이나 묘사가 소설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도 '그것은 단지 소설 속 주인공의 경험이자 나(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결과'일 뿐 나의 직접적인 체험의 결과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슬몃 발을 뺄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br>"그런 순간이면 태초의 야만성이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만약 사회가 내 안에 잠재해 있는 충동에 재갈을 물리지 않았다면 내가 저지를 수도 있었을 행위들, 예를 들면 단순히 인터넷에서 그 여자의 이름을 찾아보는 대신 "갈보 같은 년! 더러운 년! 잡년!"이라고 울부짖으며 그녀를 마구 쏘아대는 등의 행위들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게다가 권총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나는 커다란 목소리로 종종 그런 짓을 저질렀지 않은가. 결국 내가 겪는 고통, 그것은 그 여자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nbsp; (p.31)<br>60여 쪽의 짧은 소설인 &lt;집착&gt;은 '육 년간의 관계를 끝내고 몇 달 전 W를 떠난 사람은 바로 나였다'는 말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렇게 헤어진 후 그가 자신의 아파트를 나와 다른 여자의 아파트로 들어가 살게 되면서 새롭게 생긴 규칙들, 이를테면 전화는 그의 휴대전화로만 해야 하고, 만나는 것도 저녁이나 주말은 절대 안 된다는 것과 같은 전에는 없던 새로운 규칙들이 생겨나면서 시작된 질투의 감정. '나'는 결코 사그라들 것 같지 않은 이 감정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이 어디로 이끌려가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내 머리와 가슴과 자궁은 온통 그 여자로 채워졌고, 그녀는 가는 곳마다 나를 따라오며 내 감정을 좌우했다.'고 고백하는 '나'.<br>"나 자신을 먹잇감이자 관객으로 삼았던 질투에 휘둘리며 상상이 빚어낸 형상들을 끌어내고, 어떻게 제어해볼 새도 없이 머릿속에서 그 수를 불려가던 상투적 표현의 목록을 조사해보고, 저절로 떠오르고 탐욕스럽고 고통스러우며 기어이 진실과, 그리고 행복 -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니까 - 의 획득을 노리는 그 모든 내면의 말들을 기술하는 일을 마쳤다. 나는, 6개월 동안 쉼없이 화장하고 강의하고 말하고 쾌락을 누린 여자의 비어 있던 이미지와 이름을 마침내 글로 채우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그런 여자가 다른 곳에서, 또다른 여자의 머릿속과 살갗에서 역시 살아있으리라는 짐작조차 못해보고."&nbsp; (p.69)<br>감기 몸살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체험을 일주일쯤 하고 나니 책을 읽는 것도, 컴퓨터 화면에서 문장을 이어가는 일도 마치 처음 하는 일처럼 어색하고, 울퉁불퉁 매끄럽지가 않다. 질투 역시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다른 이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 매일매일의 일상이 마치 열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그것인 양 정상체온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고열 속에서 행해지는 듯한 착각, 마침내 길고 긴 터널을 벗어나 일상으로 되돌아왔을 때 시큼털털한 후회와 함께 터널 속의 일이 마치 꿈결처럼 아득한 의문부호로 남게 되는...<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06/47/cover150/895468560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1064784</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갑자기 몸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75365</link><pubDate>Fri, 06 Feb 2026 15: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75365</guid><description><![CDATA[봄이 오는 길목에서 덜컥 몸살이 걸렸다. 요 며칠 들쑥날쑥하던 기온도 문제였겠지만 새벽에 산에서 하는 운동에 더하여 저녁에 계단 오르기를 추가한 게 원인이 아닐까 싶다. 몸을 돌보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갑자기 이렇게 운동량을 늘리다 보니 몸인들 과부하를 견딜 수 있었을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하루였다. 지나친 운동으로 면역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에서 어제는 지독한 미세먼지까지 퍼부었으니 몸살이 날 만도 했다. 점심을 거른 채 약국에 들러 몸살약을 구입했다. 저녁에는 지인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가야 하는데 걱정이다. 이렇게 한 번씩 앓고 나면 '나'에 대하여 곰곰 되짚어보게 된다. 성동혁 시인의 산문집 &lt;뉘앙스&gt;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br>"사람이 지나가면 많은 종류의 감정이 남는다. 머문 시간에 비해 많은 슬픔을 남기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기억이 안 날 만큼 휘발된 얼굴 또한 많다. 무엇이 나의 삶에 더 많은 부분이었는지 간단히 설명할 순 없다. 그저 어떤 시간과 풍경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나의 기록 방식은 양과 비례하지 않는다. 한 문장이 된 시간이 있기도 하고, 한 권의 책이 된 시간도 있다. 감정만 남긴 시간은 더더욱 많다."&nbsp; (p.223)<br>몸은 여전히 으슬으슬 춥고 어깨와 무릎에는 욱신욱신 약간의 근육통이 있다. 약을 사기 위해 약국을 향해 걷고 있는데 인도 가장자리에 텐트처럼 비닐을 치고 농산물을 팔고 있는 할머니들이 보였다. 의자에 앉아 무릎에는 담요를 덮고 있었지만 밀려오는 추위를 다 막을 수는 없었던지 무릎의 담요를 몸 위쪽으로 계속해서 잡아당기고 있었다. 행인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데 저분들은 도대체 얼마나 팔겠다고 이 추위에 거리로 나온 걸까.<br>그들 각자의 이름도 모르고, 거래조차 한 적 없으니 그들의 얼굴은 내 기억 속에서 며칠이 지나기 전에 휘발되고 말겠지만, 나는 그 잠깐의 스침만으로도 한아름의 슬픔을 안게 되었다. 사는 게 별것 아니라는 말은 살 만한 사람이 내뱉을 수 있는 구차한 낭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추위 속에서 들고 나온 농산물을 팔아야 하는 저 할머니들에게 그런 말은 어쩌면 배 부른 소리쯤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명절이 코밑인데 변덕스러운 날씨가 힘겹게 겨울을 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상처를 내고 있는 건 아닐까? 욱신욱신 어깨가 쑤셔왔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봄을 닮은 우울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71247</link><pubDate>Wed, 04 Feb 2026 16: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71247</guid><description><![CDATA[매서웠던 동장군의 기세도 한풀 꺾인 오후, 오늘은 입춘입니다. 오늘 아침 기온도 며칠 전의 기온과는 확연히 달라졌던 까닭에 무거운 코트를 벗어던지고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봄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듯했습니다. 산의 계단을 지나 능선 부근의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데 등 쪽으로 은근히 땀이 차올랐습니다. 매일 아침 산스장에서 마주치는 멋쟁이 할아버지를 만나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지난가을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시던 할머니 한 분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하고 멋쟁이 할아버지가 먼저 알은체를 하며 인사를 건네자 할머니는 "아, 네. 안녕하세요." 하고 답례를 하셨습니다. 그동안 왜 안 보이시나 걱정을 했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할머니는 그동안 너무 추워서 나오지 않고 집에서만 지냈다며 근황을 전해주셨습니다. "에이, 꽁꽁 싸매고 다니면 안 추워요." 하며 할아버지는 두꺼운 외투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툭툭 두들겨 보이셨습니다. "이제 날씨도 풀렸으니 매일 나와야지요." 하는 말을 남기고 할머니는 산을 내려가셨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수풀 속 그늘에는 지금도 녹지 않은 잔설이 희끗희끗 겨울의 잔상을 흩뿌리고 있었지만 어렵게 겨울을 난 사람들은 다시 봄을 준비하고 있는 듯합니다.<br>최근에 읽었던 한 권의 책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이 쓴 &lt;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gt;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책의 줄거리를 되짚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관찰 대상인 '어느 서민 여성'은 사실 저자인 에리봉의 어머니로서 평생 불행한 삶을 사셨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 때 버려졌던 에리봉의 어머니는 고아원에서 성장하다가 열네 살에 학업을 그만둔 후 '무슨 일이든 하는 하녀'가 되었다가 가정부로, 이어서는 공장노동자로 일을 했고 죽을 때까지 공공임대주택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1950년에 아버지와 결혼해 55년을 해로했지만 "두 분이 서로 사랑하거나 존중하는 모습을 전혀 본 적이 없다"고 에리봉은 회상합니다. 요양원에 입소한 어머니가 예전에 알았던 또래 여성과 마주쳐서는 각자의 남편을 향한 '원한과 증오'를 주제로 지치지도 않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저자는 마리즈 콩데의 자전 에세이 '민낯의 삶'의 한 대목을 떠올립니다. "왜 남자들은 여자들의 삶을 이렇게 망쳐놓을까?"<br>"어머니가 내게 창밖의 가수, 과자를 든 아이, 옷장 위의 남자, 소파 위의 개들에 관해 말했을 때, 난 거의 같은 생각을 했다. 그녀도 '다 끝났다'고. 그럼에도 나는 신체적, 정신적 노쇠의 과정이 어떤 리듬으로 일어날지 자문했다. 알츠하이머에 걸렸던 아버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으며, 일상생활의 모든 물건(안경...)을 잃어버렸다. 어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아주 명석했으며, 기억을 잃지도 않았고, 그녀를 보러 가면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우리는 정상적으로 수다를 떨 수 있었고, 그녀의 이야기는 대개 조리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환각을 느꼈다."&nbsp; (p.105)<br>우리는 대개 자신의 삶이 영원한 듯 생각하거나 끝에 대해 일절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일상에서의 행복을 반감시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고 삽니다. 그렇게 회피로 일관하던 죽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실재하는 어떤 것으로 확인되는 바람에 우리는 몹시도 당황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낮에 점심을 같이 했던 지인 한 분이 이르기를 요양원에 계시던 자신의 어머니가 병원에 실려 갔고, 위독하다는 의사의 말에 가족 전체가 모였었고, 계속해서 혈압이 떨어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죽음이 멀지 않은 듯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생명이 사그라드는 게 슬픈 까닭은 그와 함께 다가오는 봄을 맞을 수 없는 까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봄을 알린다는 오늘은 입춘. 봄을 닮은 우울이 흐린 하늘에 가득합니다.]]></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