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꼼쥐님의 서재 (꼼쥐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06 Aug 2026 23:06:31 +0900</lastBuildDate><image><title>꼼쥐</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A_018.gif</url><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꼼쥐</description></image><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나뭇잎도 기운을 잃고 -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 지친 영혼을 위한 동심 처방]</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35849</link><pubDate>Thu, 06 Aug 2026 16: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358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0304&TPaperId=174358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0/14/coveroff/k73213030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0304&TPaperId=174358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 지친 영혼을 위한 동심 처방</a><br/>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6년 07월<br/></td></tr></table><br/>성인이 된 후에도 동화를 읽을 때가 더러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생각날 때가 있는 것이다. 동화를 읽을 때마다 나는 작가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곤 한다. 소설을 읽을 때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이다. 은유나 비유가 많지도 않은, 그렇다고 구성 자체가 복잡하거나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지도 않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언어로 쓰인 단출한 인물과 사건 구성임에도 동화는 어떻게 독자의 마음을 그토록 쉽게 사로잡는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종종 생각하곤 한다. 내가 생각하는 동화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고 문장의 표현이 직접적인 까닭에 독자의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말하자면 소설은 투명한 유리 반대편에 반투명의 얇은 종이를 덧댐으로써 독자들에겐 그저 흐릿한 윤곽만 제공함으로써 독자 개개인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지만, 동화는 그런 장치 없이 투명한 유리 저편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까닭에 동화 속 주인공이 울고 있으면 나도 따라 훌쩍거리며 울게 되는 것이다.<br>"은하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삶과 슬픔을 안고 있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잊기도 합니다. 은하철도에 올라타 인사를 나누는 것도 이별하는 것도 모두 갑작스럽습니다. 조반나는 갑작스러운 이별에 슬퍼하면서도 그들의 행복을 바라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은하철도에서 만난 모든 사람의 행복을 빌어줍니다. 이처럼&nbsp;『은하철도의 밤』은 수많은 만남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행복과 슬픔,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 우리는 이처럼 상반된 것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간다면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것들이지요."&nbsp; (p.211)<br>이서희 작가가 쓴 &lt;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gt;는 PART 1 '함께할 때야 빛나는 것',&nbsp;PART 2 '진심의 아름다움',&nbsp;PART 3 '상상을 뻗어 자유로운 세계로',&nbsp;PART 4 '내 심장으로 마주하는 모험',&nbsp;PART 5 '우리의 성장을 닮은 이야기' 등 총 5부로 나뉘어 22편의 동화가 발췌되어 실려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비롯하여 정글북, 소공녀, 피터팬, 찰리와 초콜릿 공장, 닐스의 신기한 모험, 브레맨 음악대, 보물섬, 피노키오, 은하철도의 밤, 어느 별에서 온 이상한 소식 등제목만 들어도 '아하!' 하고 무릎을 칠 만한 유명 동화들이 작가의 안내와 해설에 따라 줄줄이 소환되는 것이다.<br>"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쉽게 기뻐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온전히 믿는 일에 조심스러워지며, 아무 조건 없이 아름다운 것에 대해 말하던 감각마저 잊고 살아갑니다. 세상이 아직 좋은 곳일 수 있다고 믿던 작은 확신도 어느새 마음 깊은 곳에 접어두기도 합니다. 그럴 때 동화는 오래된 친구처럼 우리 곁에 놓입니다."&nbsp; (p.4~p.5 'prologue' 중에서)<br>비록 이 책에는 작가가 가려 뽑은 동화 속 일부 문장들이 실려 있지만, 책을 읽다 보면 어쩌면 그 문장들로 인해 다시 읽어보고 싶은 동화가 한두 권쯤 나타날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어느 가을의 언저리에서 홀로 남은 빈집을 지키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채 읽었던 '정글북'이나, 할머니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고 조명도 없는 사랑방에 숨어들어 읽었던 '피노키오' 등 우리는 동화 한 편을 다시 읽음으로써 소중한 추억들을 새록새록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각박한 사회생활로 잔뜩 날이 섰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스르르 무뎌지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짜증을 부렸던 누군가에게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br>"004 얘야,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난단다. 거짓말에는 두 종류가 있기 때문이야. 세상에는 다리가 짧은 거짓말도 있고, 코가 긴 거짓말도 있거든. 네가 한 것은 코가 긴 거짓말이란다."&nbsp; (p.190)<br>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땀이 흐르는 살인적인 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의 표정 역시 굳어가다 못해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처럼 수없이 잔금이 가는 듯하다. 날 선 표정에 질린 탓인지 사무실에선 농담이 사라졌다. 무거운 침묵이 흐를 뿐이다. 침묵은 가히 빛도 없고 소리도 없는 우주 공간을 닮아 있다. 그 무거운 침묵 사이를 각자가 겨누는 마음의 검이 마치 어느 영화의 광선검처럼 서로를 향해 겨누고 있는 듯하다. 언제든 찌를 준비를 하고. 내가 읽은 동화 한 편이 광선검을 막아줄 캡틴의 방패가 되어줄 것인가. 강한 햇살에 기운을 잃은 나뭇잎이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0/14/cover150/k73213030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901488</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비관적인 전망을 하자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32221</link><pubDate>Tue, 04 Aug 2026 17: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32221</guid><description><![CDATA['덥다, 덥다' 하면 더 더울까 봐 덥다는 말을 가급적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덥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요즘입니다. 게다가 비가 자주 내릴 때는 그렇게 지긋지긋하더니 이렇게 살인적인 더위가 이어지자 차라리 비가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잠깐 내리는 소나기조차 보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이맘때의 나는 새벽 운동을 나서는 경우에도 주로 긴소매의 운동복을 입는 편이었습니다. 극성스러운 모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최근에는 앵앵거리는 모기마저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한동안 비는 오지 않고 강한 여름 햇살만 내리쬐는 까닭에 등산로에서도 모기 유충이 살 만한 물웅덩이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른 먼지만 풀풀 날릴 뿐입니다.<br>그러나 지구 환경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말하기를 올해 여름이 앞으로 경험하게 될 또 다른 여름에 비해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확률이 거의 100%라고 합니다. 특별한 사건이 없다면 말입니다. 그러니까 올해 여름보다 내년 여름이 더 더울 것이며, 내년 여름보다 내후년 여름이 더 더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입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말입니다. 이런 전망이 수긍은 되면서도 들을 때마다 우울한 기분에 빠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br>알래스카의 숭고한 풍경을 사진에 담았던 호시노 미치오의 에세이 &lt;긴 여행의 도중&gt;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br>"문득, 지금은 세상을 떠난 작곡가 다케미쓰 도루의 말이 생각났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말이었다. "이 세상은 이미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역시 긍정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고 만다. 체념과 희망이 공존하고, 밝음과 슬픔이 한데 섞인 채, 나는 내일을 생각한다." 제인이 갑자기 손을 내밀어 나와 미카엘의 손을 잡았다. 나는 말로 할 수 없는 약속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아프리카 여행은 끝이 났다."&nbsp; (p.52)<br>여전히 비소식은 없고, 쨍한 하늘만 지겹도록 계속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lt;애프터 다크&gt;에는 '내 인생의 좌우명. 천천히 걸어라. 물을 많이 마셔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인생의 좌우명까지는 아닐지라도 이런 날씨에는 물을 자주 마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듯합니다. 어쩌면 올 여름이 우리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슬픔의 분할 - [[큰글자도서] 우리의 여름에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28264</link><pubDate>Sun, 02 Aug 2026 14: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282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60X&TPaperId=174282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648/14/coveroff/893643960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60X&TPaperId=174282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큰글자도서] 우리의 여름에게</a><br/>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09월<br/></td></tr></table><br/>삶의 중심에 컴퍼스를 대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원 하나를 그려 보자. 그리고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같은 크기로 등분을 하여 각각의 나이대에 동일한 양의 슬픔을 나누어 주자. 일명 슬픔의 분할. 그렇게 등분된 슬픔을 안고 태어난 사람은 행복할까? 어느 나이대에 너무 과도한 슬픔이 몰린 까닭에 한동안 견디기 힘든 시기를 보내거나 과도한 슬픔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는 것보다 각각의 나이대에 일정한 슬픔이 배분된다면 삶은 지금보다 수월하거나 행복의 총량이 조금쯤 늘어나지 않을까? 같은 크기로 나뉜 피자의 조각처럼 같은 양의 슬픔을 각각의 나이대에 분할하면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이따금 설렁설렁 여유를 부릴 수도 있지 않을까?<br>최지은의 에세이 &lt;우리의 여름에게&gt;를 다 읽고 나는 한동안 그런 의문에 젖어 있었다. 어쩌면 작가의 슬픔이 내게 전이되어 어느 순간 눅눅한 슬픔이 감정의 밑바닥에 착 달라붙어 곰팡이처럼 피어났을지도 모른다. 한여름의 슬픔이 뿜어내는 퀴퀴한 냄새를 풍기면서 나는 한동안 '슬픔의 분할'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비록 내던져진 삶을 살아가고는 있지만 특정 시기에 슬픔이 집중된다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싶었던 것이다. 삶을 주관하는 하느님에게 항변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 그런 심정이 여름의 불청객 불쾌지수에 더해져 짜증만 늘었었다.<br>"한 사람의 부재는 세계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뒤흔든다. 한 사람이 스스로 사라진 구멍은 그가 존재했던 세계를 무너뜨린다. 한 사람의 자살은 남은 사람의 세계를 틀림없이 파괴하고 영영 복구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만다. 녹지 않는 눈송이가 허공에 멈춰 있는 '겨울' 속에 한참을 가둬두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내가 또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할까봐. 이파리 하나라도 상하게 만들까봐. 나는 얌전히 조심한다. 사라지지 않는 누군가의 숨결이 내 안에서 흐르는 것을 느낀다. 가끔 그가 내게 말한다. 창을 열자. 그래, 바람을 들이자."&nbsp; (p.105)<br>엄마와 이혼한 아버지가 어렸던 작가를 할머니에게 맡겨 할머니 손에서 자라난 것도, 할머니의 죽음 이후 건강이 안 좋아진 아버지를 잠깐 돌보았다는 작가, 그리고 아버지의 자살. 그리고 작가는 '가장 어두웠던 그 시기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대학생 시절 가난하여 반지하 월세방에 살았다는 작가는 신인시인상 수상 상금 500만 원도, 첫 시집을 내고 인세로 받은 180만 원도 모두 기부하였다고 한다.<br>"상금도 첫 인세도 내게는 소비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시를 써서 받은 돈이 내 것 같지 않았고, 시를 쓰게 된 삶을 원망하고 미워했던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나의 시와 아버지의 죽음 사이의 틈을 좁힐 수 없었으니까. 당장 내가 쓸 수 없다면 급하게 필요한 사람과 나누어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실은 다 나중에야 생각해본 이유들이고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선물을 주고 싶었던 명확한 이유를 여전히 나는 모른다."&nbsp; (p.134~p.135)<br>아버지의 자살 이후 공황장애를 겪게 되었다는 작가는 다니던 회사에서 휴직하고, 작가의 남편이 검은 개 탄이와 흰 개 설이를 입양했다고 한다. 1부 '여름에 만난 아이', 2부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렴', 3부 '나를 기다리는 이야기'로 구성된 &lt;우리의 여름에게&gt;는 읽는 사람에 따라 지루하다거나, 불쌍하거나 기구하다거나, 가엾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누군가가 들려주는 건강한 슬픔은 때로 우리에게 삶을 지탱하는 튼튼한 다리가 되기도 한다. '모모 씨는 이보다 더한 슬픔도 이겨냈다는데' 하면서 위안을 삼기도 하는 것이다.<br>"글로 하는 고백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 나의 이야기, 나의 시간, 나의 경험이 '상처'라는 이름으로 정의되었을 때 고백은 쓸쓸한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 쓸쓸함 때문에 꼭 필요한 고백이 침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 두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수많은 오해를 품고 살면서 왜 모든 독자와 오해 없이 연결되기를 기대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욕심쟁이일까."&nbsp; (p.170)<br>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도로변의 작은 카페에 들렀다. 냉방이 잘 된 보송보송한 공간이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겐 조금 서늘하다 싶은, 기분 좋은 한기가 들어서자마자 훅 하고 끼쳤다. 그리고 구수한 커피 향과 달착지근한 빵 냄새가 뒤섞여 나른한 '풀림'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카페 한 귀퉁이에 앉아 &lt;불필요한 여자&gt;를 조금 읽었다. 더위 탓인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나는 손님이 끊긴 조용한 카페에서 이글거리는 바깥 풍경을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최지은 작가의 &lt;우리의 여름에게&gt;가 내게 남겼던 눅눅한 슬픔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648/14/cover150/893643960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6481412</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도서 반납을 미루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26747</link><pubDate>Sat, 01 Aug 2026 13: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26747</guid><description><![CDATA[장마가 끝나고 나면 대기의 층이 한 뼘쯤 두터워지는 느낌입니다. 텁텁하고 두터워진 대기층으로 인해 한낮의 매미 울음소리가 한 옥타브쯤 높아지게 마련이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그 간절한 소음을 뒤로한 채 점차 뜨거워지는 여름 햇살의 열기는 두꺼운 대기층을 뚫고 지상의 모든 생물을 향해 "견뎌라. 이 고통을 견디는 자만이 곧 다가올 가을의 신선한 햇살을 누릴 자격이 주어지리니."라고 외치는 듯합니다.<br>어느새 8월입니다. 경남의 어느 지역은 한낮 기온이 41도를 넘었다지요. 극한의 더위 속에서 우리는 이따금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도 하고, 이웃의 죄를 싸잡아 비난하기도 하지만 결국에 내게 돌아오는 것은 허무와 결핍으로 얼룩진 앙상한 팔뚝과 빈손뿐입니다.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를 피해 작은 양산의 그늘 속으로 숨어보지만 아스팔트가 내뿜는 열기는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글이글 불타는 한낮의 도로는 모자이크를 닮은 아지랑이로 인해 모든 피사체가 흔들리고 있는 듯합니다. 여름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태양의 열기 속에서 자신의 크고 작은 죄가 흔적도 없이 불타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낮 기온이 아무리 뜨거워도 우리에게는 일말의 '죄 사함'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늦가을의 낙엽을 밟으며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br>이서희 작가의 &lt;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gt;를 읽고 있습니다. 아스라이 멀어졌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눈앞에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잠시 행복할 수 있겠습니다.<br>"누구나 힘든 시절을 보내고, 아픔을 간직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시기를 보내는 태도에 있습니다. 안나와 마니를 통해 우리가 치유받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소녀들은 힘든 일과 슬픔을 피하지 않고 마주합니다. 솔직한 태도로 내면의 아픔에 마주 서는 것입니다."&nbsp; (p.68 조앤 G. 로빈슨의 '거기 마니가 있었다')<br>도서관에 반납해야 할 책이 한 권 있는데 도서관에 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베란다 창밖을 보니 아파트 화단에 무궁화가 피었습니다. 어렸을 적 보았던 무궁화는 시골집 담장 밑에 피어서 진드기 떼의 습격을 고스란히 받곤 했던 까닭에 언제나 지저분한 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무궁화에 진드기가 달라붙은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 꽃이라는 상징성이나 주목도는 예전에 비해 많이 퇴색된 게 사실입니다. 베란다 창을 열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두텁고 답답한 대기층이 한꺼번에 밀려듭니다. 아무래도 책을 반납하는 일은 내일로 미뤄야만 하겠습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지금 건강하다는 착각 - [하얀 거짓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24233</link><pubDate>Fri, 31 Jul 2026 17: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242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130704&TPaperId=174242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26/24/coveroff/k83213070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130704&TPaperId=174242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하얀 거짓말</a><br/>김인철 지음 / 보민출판사 / 2026년 07월<br/></td></tr></table><br/>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나 소재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전에 읽었던 다른 소설이 떠오르기도 한다. 김인철의 소설 &lt;하얀 거짓말&gt;을 읽을 때도 그랬다. 탐사 기자 이기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사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과거 2019년에 있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의 진실을 파헤칠 탐사보도팀이 결성되면서 시작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변형 바이러스라 할 수 있는 신종 조류독감이 유행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삶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인간의 판단력은 무뎌지고 성행하는 가짜 뉴스에 대응할 능력은 극도로 약화되어 가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늠자 역할로서의 '탐사보도'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빛을 발하게 되었다. 세계 각국의 엘리트 젊은 기자들로 구성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에 속한 기자들로 구성된 탐사보도팀의 일원인 기준과 아구스틴은 팬데믹의 발원지인 우한을 중심으로 추적에 들어간다.<br>"그는 이제 바이러스 팬데믹 분야에서 가장 전문성을 인정받는 기자가 되었다. 그래서 미래에 닥쳐올 새로운 팬데믹의 대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2019년 코로나19 사태의 숨겨진 진실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깊은 사명감을 품게 된 것이다."&nbsp; (p.42)<br>정유정의 소설 &lt;28&gt;의 공간적 배경은 화양시이다.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한 인수공통감염병이 발병하자 화양시는 봉쇄된다. 외부와 차단된 도시에서 펼쳐지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그린 소설 &lt;28&gt;에도 소방대원의 이름 역시 기준이었다. 소설 &lt;28&gt;은 팬데믹 이전(2013년)에 출간된 소설이었지만, 사실 바이러스는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전문가가 예상한 '지구 종말 시나리오 9가지'에도 포함된 것을 보면 그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지구 종말 시나리오 9가지는 첫 번째 '물리학 실험의 실패', 두 번째 '화산폭발', 세 번째 '빙하기 또는 태양 폭발로 인한 기온 상승', 네 번째 '외계인의 침략', 다섯 번째 '컴퓨터의 지배', 여섯 번째 '소행성 충돌', 일곱 번째 '치명적인 벌레의 공격'(바이러스와 연관), 여덟 번째 '별의 대규모 폭발', 아홉 번째 '나노 기술의 악몽'이다. 이런 까닭에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지구 전체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이와 같은 현실적 가능성으로 인해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은 앞으로도 꾸준히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br>"사실 이 광기 어린 도박의 가장 끔찍한 뇌관은 따로 있었다. 벡터로 강제 개조된 인공 바이러스가 숙주의 몸에서 잃어버린 복제 능력을 되찾거나, 대자연의 야생 바이러스와 결합하여 전대미문의 괴질을 퍼뜨릴 새로운 변종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임상에 동원된 피험자의 체내에서조차 통제할 수 없는 끔찍한 돌연변이가 창궐할지 모를 일이었다. 만약 그리 된다면 인류의 재앙에 가까운 부작용이 들이닥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제창과 자오융의 흐려진 동공에 그런 과학적 경고가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들의 영혼은 오직 빛의 속도로 임상을 주파하여 천문학적인 부를 틀어쥐겠다는 검은 광기로만 펄떡이고 있었다."&nbsp; (p.312)<br>탐사 기자 이기준과 그의 동료 아구스틴이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밝고 희망에 찬 내용이 아니었다. 부를 향한 거대 제약회사의 편법과 은폐, 권력의 동조와 과학의 오만 등이 섞여 세상은 다시 M-바이러스라는 공포 속으로 걷잡을 새 없이 빨려 들어가고 만다. M-바이러스는 인간의 육체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죄의식이나 거짓말까지 겨냥한다. 종국에는 선의의 거짓말까지 심판하는 상황.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기준마저 M-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마는데...<br>"그들은 서둘러 기준의 아파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목적지에 당도한 민희가 초인종을 거듭 눌렀으나, 문 너머에서는 어떠한 생의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행히 아구스틴이 기준의 현관 비밀번호를 숙지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간신히 닫힌 문을 열고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어두컴컴한 거실로 들어선 그들의 시야에, 소파 곁에 처참히 허물어져 있는 기준의 형상이 들어왔다."&nbsp; (p.545)<br>여름 햇볕이 뜨겁다 못해 따가울 정도로 그 열기가 무섭기만 하다. 이런 열기라면 웬만한 바이러스도 살아남지 못할 듯한데 현실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직장 동료 중 한 명이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장염으로 며칠째 출근을 못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더 무섭고 치명적일 때가 많다. 김인철의 소설 &lt;하얀 거짓말&gt;도 어쩌면 인간의 지적 오만에 대한 강력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처럼 인류의 생존은 그렇게 조심조심 지켜져 왔을 테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개개인의 건강 역시 다르지 않은 듯하다. 지금 건강하다는 생각은 어쩌면 가장 치명적인 약점일지도 모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26/24/cover150/k83213070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262406</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날씨와 주가 하락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21781</link><pubDate>Thu, 30 Jul 2026 16: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21781</guid><description><![CDATA[새벽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다가 그만 허방을 짚고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급하게 서둘렀던 탓입니다. 경사가 진 산 중턱 비탈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곳에는 마침 관리가 잘 된 가족묘 두 기가 서 있는데 묘를 관리하는 듯한 노인분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산에 올라 묘 주변의 잡초를 뽑고, 파인 곳을 돋우고, 봉분 위로 뻗은 나뭇가지를 자르는 등 등이 굽은 노인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워 보이는 일들을 거뜬히 해내면서 소일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묘 앞의 작은 공터에 호박을 심어 애지중지 가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습니다. 플라스틱 물병에 물을 담아 양손에 들고 산을 올라 호박 구덩이 물을 주는 모습도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br>오늘도 노인은 새벽부터 산에 올라 묘를 관리하다가 '어이쿠!' 하고 넘어질 듯하다가 멀쩡히 일어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빙긋이 웃고 있었습니다. 넘어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듯 말입니다. 노인의 미소 너머로 매미가 '맴맴' 기를 쓰고 울고 있었고,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으면서 자리를 피했습니다. 나는 이따금 묘 주변에 쪼그려 앉은 채 열심히 잡초를 뽑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노인은 지금 잡초 뽑기를 핑계로 죽음과 가까워지는 연습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몰래 하곤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그렇게 죽음과 친해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게 되었을 때, 당황하거나 불필요한 거부와 원망의 말을 쏟아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무던히 죽음과 가까워지는 연습을 하고 또 해야 할런지도 모릅니다. 산을 오가며 마주치는 저 노인처럼 말입니다. 라비 알라메딘의 소설 &lt;불필요한 여자&gt;를 읽고 있습니다. 요르단 암만에서 태어난 작가는 여섯 편의 장편 소설과 단편 소설집 한 권을 썼고, 화가로도 활동하면서&nbsp; 세계 여러 도시에서 개인전을 열었다고 합니다.<br>"나는 이미 오래전에 글에 대한 맹목적인 갈망에 나를 맡겼다. 문학은 내 모래 놀이터이다. 나는 그 안에서 놀고, 요새와 성을 쌓고, 황홀한 시간을 보낸다. 날 힘들게 하는 것은 놀이터 바깥의 세상이다. 나는 눈앞의 세상에&nbsp; 온순하게, 그러나 관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적응해왔다. 모래의 비유를 변형해 보자면 문학은 내 모래 놀이터, 현실 세상은 나의 모래시계이다. 모래는 한 톨 한 톨 빠져나간다.&nbsp; &nbsp;문학은 내게 삶을 주고, 삶은 나를 죽인다."&nbsp; (p.16)<br>무척이나 덥고 습한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짜증이 많아지는 요즘, 주식 시세마저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사람들의 표정은 울상입니다. 현 정부가 잘못한 일은 주식의 위험성도 인지하지 못하는 국민 대다수에게 주식 투자를 알게 모르게 권유하고 부추겼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하여 주가가 이렇게 하락하였을 때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알지 못한 채 마냥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투자는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언론이나 주변 사람들의 말만 듣고 '묻지마 투자'에 뛰어드는 게 보편적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결과는 냉혹하다는 것을 지금과 같은 주가 하락기를 통하여 뼈저리게 겪게 될 것입니다. 주식 투자는 사실 원금을 모두 잃을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투자 방식임을 이번 기회에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휴대폰으로 온종일 주식 시세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한 권의 문학작품을 읽는 게 우리의 삶을 위해서 필요한 일임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계절이 건네는 농담처럼 -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삶의 여백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17213</link><pubDate>Tue, 28 Jul 2026 16: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172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831377&TPaperId=174172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842/55/coveroff/k6228313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831377&TPaperId=174172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삶의 여백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a><br/>김신지 지음 / 잠비 / 2023년 01월<br/></td></tr></table><br/>히가시노 게이고의 별세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다. 내가 그와의 어떤 추억이나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추리소설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를 모르지는 않았다. 물론 &lt;나미야 잡화점의 기적&gt;을 비롯하여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그의 작품 몇몇은 나 역시 읽어본 바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소설에 열광하여 갑자기 그의 열혈팬이 되었던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다만 그는 웬만한 작가들이 따라잡을 수조차 없는 속도로 소설을 써왔던 까닭에 서점에서 신간을 소개하는 코너에는 언제나 그가 쓴 새로운 소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그의 소설이라면 무조건 사고 보는 열혈 독자들이 늘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 세월을 몇십 년 지켜보는 동안 나에게도 그의 이름이 친숙하거나 자연스러운 어떤 것이 되고 말았다. 그랬던 작가였기에 그의 별세 소식은 조금 느닷없었고, 소식을 듣자마자 맥이 탁 풀리면서 '아, 한 세대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것이다.<br>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던 그가(그는 전기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소설가라는 직함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는 것은 꽤나 신선하고 멋진 일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비전공자이면서 이름을 크게 떨쳤던 시인이나 소설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lt;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gt;를 쓴 김신지 작가 역시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하여 작가가 된 케이스는 아니다. 잡지 에디터로 일을 시작해서 작가로 데뷔한 경우이지만 생활에서 길어 올린 김신지 작가의 글은 적당히 신선한 반면 깊은 울림을 준다.<br>"누군가 이미 그렇게 살았다는 사실이 희망이 될 때가 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내가 끝끝내 어떤 낙관을 향해 몸을 돌린다면 '믿게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 걸 이제는 안다. 세상이 어때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보고 싶은 그 세상을 먼저 살아내면 된다는 것도. 솟아나는 말들을 나는 그대로 둔다. 희망이 생기도록 내버려 둔다. 가르친 적 없는데 배우게 하는 것, 그게 내가 아는 할머니들의 교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nbsp; (p.57~p.58)<br>우리는 종종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삶의 끄트머리에 서서 '너의 삶은 이러이러할 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말하자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이나 보고 있는 영화의 스포일러처럼 우리의 삶이 힘들 때마다 우리 앞에 짠 하고 나타나 각자에게 펼쳐질 삶의 전개를 약간의 허풍을 섞어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도 덜도 말고 우리들 각자의 마지막이 가족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으며 평안함 속에서 마무리될 것이라는 메시지만 있어도 우리는 지금 넘고 있는 삶의 고비들이 전보다 한결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가족들을 더욱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간은 그렇게 쉬지 않고 흘러갈 테니까 말이다.<br>"그저 창밖을 더 바라보고 싶었던 그날 아침처럼, 내가 바라는 건 다 사소한 것들이었다. 시간이 생기면 쉽게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없을 땐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지는 일.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런 여유를 마음에서 길어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문제는 '생산성'이라고(도무지 정이 붙지 않는 말이다), 예전 같으면 남과 비교하며 나를 나무랄 이유부터 찾았을 텐데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힘들다는데 왜 그 감정을 저울에 올려놓아야 하나. 일에 마음이 계속 깎여나가는데도 이 정도로 힘들다고 말해도 되나 망설이며 살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 자주 겪는 일처럼. "아프면 말씀하세요."라는데 얼마나 아파야 손을 들어 그렇다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눈물이 흐를 때까지 참는 버릇. 내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견뎌보는 마음. 참으면 복이 안 오는데. 병이 오는데."&nbsp; (p.163~p.164)<br>1부 '쉬운 미움 대신 어려운 사랑을'에서 작가는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고향 사람들, 그리고 지금 작가의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해 쓰고 있다. 2부 '삶이 결국 우리가 쓴 시간이라면'에서는 회사를 그만두고 '슴슴한 평양냉면 맛의 하루'를 살아가는, 전보다 헐거워진 자신의 삶에 대해 쓰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를 울고 웃게 하는 건 어쩌면 작가에게 많은 시간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이웃의 마음까지 살펴볼 수 있는 여유, 계절이 오가는 풍경들을 오롯이 가슴에 품고 와 그 풍경들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하나의 문장 속에서 요렇게 저렇게 꾸며 볼 수 있는 여유, 이웃과의 대화 속에서 상대방의 말 속에 깃든 사랑과 미움의 감정들을 쏙쏙 골라낼 수 있는 여유는 모두 작가가 누리는 헐거워진 시간 덕분일지도 모른다.<br>"이젠 얼굴도 희미해진 사람이 내 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해준 적 있다. 모든 흉터는 사실 훈장인 걸 아느냐고. 이 일을 겪어냈다는, 그 후로 여기까지 살아냈다는 흔적이니까. 어린 내게 '흉터'가 방향을 일러줬다는 건, 그러고 보면 삶이 건네는 짓궂은 농담 중 하나 같기도 하다."&nbsp; (p.291)<br>나는 오늘도 텁텁한 무더위를 견뎌낸 하루의 시간에 길게 밑줄을 긋는다. 먼 훗날 내가 떠올리게 될 오늘은 지금 내가 기억하는 오늘과 사뭇 달라진 모습일 테지만, 힘들게 밑줄을 그었던 그 가상한 노력만큼은 온전한 모습으로 남지 않을까. 7월도 막바지를 향해 가는 시간, 창밖의 모든 소음이 말매미 울음소리에 묻힌다. 계절이 건네는 농담처럼 등을 타고 흐르는 무더위.]]></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842/55/cover150/k6228313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8425518</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평론가 김현을 그리워하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11083</link><pubDate>Sat, 25 Jul 2026 15: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11083</guid><description><![CDATA[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는 나이는 대략 서너 살 무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는 뜻일 테지요. 다른 동물들도 그렇지만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그 공동체는 원활히 유지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공동체의 언어로 말하기와 쓰기를 배우고, 같은 언어로 쓰인 책을 읽고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nbsp;기초적인 덕목을&nbsp;갖추는 것일 테지요. 우리는 이와 같은 과정을 가족 공동체 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통하여 어린 나이부터 충분히 학습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언어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애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얼빠진 어른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br>그런 얼빠진 어른을 부모로 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인지 성인들 중에서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아진 듯합니다. 책을 읽지 않고 동영상 쇼츠에 몰입하는 것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한 원인이 되겠지요. 직장에서도 뒷귀가 어두운 사람들과 일을 같이 한다는 건 꽤나 어렵고 답답한 일입니다. 하물며 방송에 출연하는 방송인이나 말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치권의 인사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면 그는 아마도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인간으로 취급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br>최근 들어 소위 정치비평가를 자처하는 방송인이나 정치인들 중 뒷귀가 어두운 사람을 너무 자주 목격하는 까닭에 짜증이 솟구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예컨대 얼마 전 유시민 작가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한 간결한 언어로 작금의 상황을 설명하였지만, 소위 정치평론가라고 하는 작자들 대부분은 유시민 작가가 했던 말의 의미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거나 엉뚱한 의미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인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유치원만 제대로 나왔어도 이해하지 못할 말은 없는 듯 보였는데 성인도 훌쩍 지나 장년이나 노년에 접어드는 그들이 그렇게 쉬운 말조차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건 충격적인 현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라면 반드시 ~~한다'라는 조건문에서 앞의 조건이 완성되어야 뒤의 문장이 성립하는 게 당연한데 이마저도 무시한 채 뒤의 문장만 따로 떼어 인용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것과 같은 행태는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그들은 과연 1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는 사람들인지, 만약 읽는다면 그 책도 저런 식으로 엉뚱한 해석을 동반하여 읽는 건 아닌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br>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대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문학평론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던 김현(본명 김광남) 작가입니다. 1985년 12월 30일부터 1989년 12월 12일까지 만 4년의 381일치의 일기이자 유고로 남겨진 그의 저서 &lt;행복한 책읽기&gt;에서 작가는 "정치적 언어의 특징은 그 뻔뻔함에 있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정치적 언어는 그 미숙함과 어리석음에 있는 듯합니다.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듯한 작자들이, 타인의 말도 해석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작자들이 정치 평론도 하고 심지어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정치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쑥쑥 늙어간다는 것 -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09531</link><pubDate>Fri, 24 Jul 2026 17: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095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6161&TPaperId=174095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295/14/coveroff/89374261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6161&TPaperId=174095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a><br/>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23년 08월<br/></td></tr></table><br/>불과 며칠 동안의 장맛비에 세상 쓸모없는 것 같은 미국자리공이 가슴께까지 자랐다. 키가 작은 여뀌와 달개비가 그저 자신의 푸르름만 더하는 동안 '때는 이때다' 싶은 미국자리공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쑥쑥 자라난 것이다. 장마도 막바지에 이른 지금, 나는 모처럼 보는 푸른 하늘을 등에 업고 산에 올랐다. 산 중턱에 있는 참나리꽃 군락지에는 꽃이 만개했고, 풀숲에 웃자란 미국자리공이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듯했다. 장맛비에 쑥쑥 자라나는 저 미국자리공처럼 나도 그렇게 쑥쑥 늙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었다. 나는 장맛비에 쑥쑥 늙어가기 위해 이응준의 에세이 &lt;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gt;를 읽었다. 이응준의 수필은 타인의 공감에 무관심한, 지극히 사적인 사유들로 채워져 있는 까닭에 때로는 나 역시 이해하기 어려워 이해를 포기한 채 수시로 건너뛰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쑥쑥 늙어가기 위해서는 이만한 책이 없다고 수시로 믿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헛된 믿음일지라도 말이다.<br>"나는 누구인가? 아직도 누군가는 내 어린 시절의 시를 읽어 주고 있고 나는 여전히 오리무중의 모독 속에서 새로운 시를 쓰고 있는 중이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을 목숨처럼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일제히 묘한 슬픔을 안겨 준다. 다만 나는 속삭이고 싶다. 사실상 인생은 시나 소설이 아니라고. 인생은 순간순간 한 편의 수필(隨筆)이다. 우리 모두는 시인이나 소설가나 수필가도 아닌 '수필인간(隨筆人間)'이다. 인생과 인간은 시처럼 비장하고 아름답지도, 소설처럼 풍성하고 구조적이지도 않다."&nbsp; (P.84)<br>1부 '명왕성에서 이별'에서 작가는 16년 동안 작가와 함께하며 곁을 지켜주었던 강아지 '토토'를 떠나보낸 소회와 다른 강아지 '토토'를 자신의 반려견으로 맞게 된 이야기를 쓰고 있다. 2부 '폭염서정(暴炎抒情)'에서는 표제작이기도 한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를 비롯하여 '죽음에 관한 소견', '수필인간(隨筆人間)' 등의 소제목으로 우리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룸과 동시에 인간의 피할 수 없는 고독에 대해 쓰고 있다. 3부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에서 작가는 사라져 가는 것들과 상실에 대해 쓰고 있다.<br>"죽음이란 위대한 무기(武器)이자 부적(符籍)이다. 죽음을 각오하면 우리는 삶에서 못 해낼 일이 없다. 그 어떤 적도 멸망시킬 수 있으며 그 어떤 재앙도 씹어 삼켜 소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을 다 한 뒤에 당당히 죽을 수가 있다. 우리는 이런 기가 막힌 무기이자 부적을 공평하게 하나씩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죽음은 제대로 살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삶에서 도망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nbsp; (P.175)<br>이어지는 4부 '무장시론(武裝詩論)에서는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몰래 글을 쓰기 시작하여 스무 살에 시인으로 스물다섯 살에 소설가로 등단했던 작가가 자신의 문학관에 대하여 스스로가 읽었던 책과 자신이 쓴 글들을 중심으로 담담하게 펼쳐 보인다. 5부 '나와 바오밥나무와 하나님과'에서 작가는 식물을 좋아하는 자신에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를 키워보라는 출판사 대표의 권유에서 비롯된 다양한 사유와 과학 및 종교 등과 연관된 희망과 절망이라는 문학적 주제를 쓰고 있다. 마지막 6부 '성찰하는 괴물'에서 작가는 누구나 화두와 같은 질문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사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을까를 탐구하는 여정이다.<br>"이 책의 절반 정도는 죽음이 내게 가까이 와 있던 시절에 쓴 것들이다. 만약 이 책에 뛰어난 점이 있다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사랑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은 인생과 죽음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이며, 신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사랑에 대해 질문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nbsp; (P..12 '서문' 중에서)<br>장마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자 사뭇 싱겁게만 보이던 여름이 된맛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말매미의 울음소리가 전보다 높아진 것도, 땅에 스며들었던&nbsp;습기가 햇볕을 받아 일시에 날아오르는 것도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이제 시작되는 여름의 무더위를 견디고 나면 이번 장맛비에 허리께까지 자란 미국자리공처럼 나 역시 쑥쑥 늙어갈 수 있을까. 늙어간다는 말에 '쑥쑥이라는 부사를 붙여 쓰지는 않지만 나는 종종 그렇게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죽음을 향해 쑥쑥 늙어가고 싶은 것이다. 아주 장하게 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295/14/cover150/89374261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295145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장마철에 우리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03869</link><pubDate>Tue, 21 Jul 2026 15: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03869</guid><description><![CDATA[오늘 아침 숲은 나름의 방식으로 고요했습니다. 과한 습기 때문인지 바람 한 점 없는 길을 걷고 있노라니 내가 마치 거대한 한증막에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그 많던 새들도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피서를 떠났는지 새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곧 덮칠 더위를 경고하려는 듯 참매미가 이따금 '맴맴' 우닐 뿐이었습니다. 멀리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다른 새들이 더위를 피해 멀리 여행을 떠날지라도 계절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뻐꾸기는 차마 이곳을 떠날 수 없었던가 봅니다. 저편 하늘에는 까맣게 먹장구름이 밀려오는데 등산로 주변으로 눈부신 햇살이 반짝였습니다. 땀냄새를 맡은 모기가 앵앵거리며 달려들었습니다. 운동을 마친 나는 서둘러 산을 내려왔습니다. 숲의 고요가 아파트 현관까지 따라왔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새벽 숲의 고요를 떨쳐내고 출근 준비를 서둘러야 합니다.<br>최지은 작가의 에세이 &lt;우리의 여름에게&gt;를 읽고 있습니다.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책의 내용은 결코 간단치 않습니다. 제목처럼 우리는 이 여름에 이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해묵은 기억들을 하나둘 끄집어내어 버릴 것은 버리고, 갈무리할 것은 갈무리하고, 덧칠하거나 아름답게 꾸밀 것은 한 번 더 다듬어서 이제껏 버텨온 내 삶을 위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br>"이토록 지독한 여름은 다 무엇일까요. 줄곧 그 여름을 나 혼자 묻어두고, 꺼내보고, 또 한 겹 덮어두는 동안, 이 무서운 이야기는 저에게 그냥 사랑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물방울이 되어버린 할머니나 오이지라면 목구멍이 아리도록 가슴이 막혀오는 나나 그냥 우리는, 다 사랑이었어요. 할머니와 나의 사랑이 이렇게 뜨겁고 애달프다고. 그 지독한 사랑을 받은 아이가 나라는 사실, 더없이 귀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나라는 분명한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랑 이야기에 온통 상처만 남아 잇지는 않다는 거예요. 요즘에도 저는 꿈을 꿉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밥을 해주는 꿈. 재료를 하나하나 고르고 장바구니에 가득 담은 찬거리를 무겁게 들고 와, 채소를 다듬고 물을 끓이고 도마를 씻고 또 칼을 닦아 정성껏 밥을 해 먹이는 꿈. 단 한 번이라도 할머니에게 밥을 해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nbsp; ('자랑 같지만' 중에서)<br>장마철의 눅눅하고 퀴퀴한 하루하루가 불쾌지수를 높이는 요즘입니다. 최지은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흐르기도 하지만, 그렇게 흘린 눈물 한 방울로 어쩌면 보송보송한 하루를 선물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소설을 읽은 보람 - [아코디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00115</link><pubDate>Sun, 19 Jul 2026 16: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40011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60&TPaperId=1740011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53/98/coveroff/893643996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60&TPaperId=1740011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코디언</a><br/>천명관 지음 / 창비 / 2026년 06월<br/></td></tr></table><br/>어떤 소설은 시대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천명관의 신작 소설 &lt;아코디언&gt;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한국전쟁 직후의 결핍된 시기를 어느 것 하나 거르거나 미화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려냄으로써 지금과는 천양지차로 달랐던 그 시대를 우리 앞으로 소환한다. 20세기 대한민국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라면 '에이, 설마...' 하면서 그것을 단지 허구로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전쟁으로 피폐해진 대한민국의 실제 모습이었고, 모든 게 부족했던 까닭에 생존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시기였고, 그럼에도 이웃이나 동료를 위해 자신의 몫을 기꺼이 내주기도 했던 헌신의 시기이기도 했다.<br>"자신은 벽을 넘는 데 끝내 실패했지만 기어이 살아남아 벽 너머의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남들처럼 깡통만 한 꿈이라도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점점 더 의식이 희미해지는 가운데 동이의 머릿속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깜상과 연이, 자신의 아들로 삼았던 돈이, 아코디언을 물려준 홍이, 죽은 양 목사와 아미, 그리고 이젠 윤곽조차 희미해진 엄마의 얼굴......"&nbsp; (p.294)<br>소설은 버스정류장에서 구걸을 하는 한 소년으로부터 시작된다. 피난민을 태우는 부두에서 잡았던 엄마의 손을 놓치는 바람에 엄마를 잃고 고아가 된 소년 동이. 홀로 부산에 도착했던 동이는 엄마를 찾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처럼 고아들을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어른(양 목사)의 꼬임에 넘어간다. 양 목사와 아미를 주축으로 하는 앵벌이 조직의 숙소는 해방촌 산자락에 위치한 무허가 판잣집이었다. 그곳에서 동이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함께 거주하며 백화점 앞에서 구걸을 계속한다. 앞을 못 보는 연이, 걷지를 못하는 거북이, 늘 울음을 그치지 않는 찬이, 미군의 포탄에 맞아 팔이 하나밖에 없는 깜상 등. 양 목사는 어느 날부터 아이들에게 일명 구름탄이라고 불리는 마약을 먹였다. 마약을 통해 아이들을 손쉽게 지배하려는 속셈이었다.<br>"언제부턴가 양 목사와 아미는 더이상 아이들을 윽박지르거나 때리지 않았다. 대신 약을 굶겼다. 그것은 밥을 굶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벌칙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도망가지 않았다. 약을 얻어먹기 위해 더 악착같이 양 목사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목에 올가미가 채워진 가마우지처럼 약기운에 취한 채 온종일 길바닥을 뒹굴어야 했다."&nbsp; p.42~p.43)<br>동이는 숙소에 버려졌던 낡은 아코디언을 발견한다. 죽은 연이 할아버지의 유품이라고 했다. 교회 성가대의 피아노 반주를 했던 동이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은 덕분인지 절대음감을 지녔던 동이는 독학으로 아코디언 연주를 시작한다. 아코디언 연주가 손에 익으면서 동이는 노래를 잘 부르는 연이와 한 팀이 되어 움직인다. 동이는 그렇게 앵벌이 조직의 주축으로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판자촌 입구 도랑 옆에서 미국인 시신 한구가 발견되고, 양 목사와 아미가 형사들에게 구속된다. 갑자기 감시자가 사라진 앵벌이 조직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한밤중에 난 화재로 인해 아이들 셋이 죽고, 거북이를 업고 나오던 동이도 화상을 입는다. 죽은 아이들을 묻어주고 아이들은 다시 동이를 중심으로 앵벌이를 하고 조금씩 돈을 모은다. 그렇게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나 싶던 어느 날 사라졌던 양 목사가 다시 나타나고...<br>"다시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굴바위로 옮겨온 지 세 달이 지났다. 죽은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도만친 아이도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돈을 빼돌렸지만, 이전처럼 대놓고 삥땅을 치진 않아 탄약통엔 차곡차곡 돈이 쌓여갔다. 집을 사는 것까진 몰라도 한동안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움막은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무언가가 당장이라도 들이닥칠 것처럼 늘 아슬아슬한 불안감이 감돌았다. 그래도 그들은 함께 밥을 해먹고 숨바꼭질을 하고 계곡에서 다 같이 목욕을 했다."&nbsp; (p.154)<br>무엇보다 생존이 우선시 되는 상황에선 언제나 각자가 지닌 본능과 본능이 악다구니를 쓰듯 충돌하게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우리 내면의 선한 본능이 우리도&nbsp; 모르게 발현된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에서의 극적인 반전을 이끄는 것도 바로 이러한 지점이 아닐까 싶다. 인간 내면에 잠재한 선한 본능. 물론 누군가는 그것조차 외면한 채 끝끝내 지독한 악인으로 남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에 저항하여 자신의 목숨마저 선뜻 내놓을 수 있는 선한 본능을 구현하기도 한다. 그로 인하여 우리의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br>작가의 다른 작품 &lt;고래&gt;가 워낙 탁월한 소설이었기에 그것을 능가할 만한 소설은 작가로부터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지금까지 일부러 그의 소설을 외면해 왔다. 그러다 우연찮게 읽게 된 소설 &lt;아코디언&gt;. 시대를 관통하는 극사실주의 소설을 씀으로써 그는 이제야 자신의 위치를 찾은 게 아닐까 싶다. 작가는 이제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디딘 듯한 모습이다. 현실에 살을 맞닿은 채로 그는 이전보다 조금 더 여유로워진 듯했다. 나는 앞으로 천명관 작가의 달라진 모습을 그가 쓸 앞으로의 소설에서 수시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 섞인 기대를 품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오늘 그의 소설 &lt;아코디언&gt;을 읽은 보람이라면 보람이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53/98/cover150/893643996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539828</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삶이 지정하는 외진 길을 따라 - [백서 帛書 - 125년 만에 도착한 편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98266</link><pubDate>Sat, 18 Jul 2026 12: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9826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891077&TPaperId=173982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6/36/coveroff/89988910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891077&TPaperId=1739826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백서 帛書 - 125년 만에 도착한 편지</a><br/>이상훈 지음 / 책마실 / 2026년 07월<br/></td></tr></table><br/>천주교 세례를 받은 지 10여 년이 흘렀다. 가족 모두가 천주교 신자라거나 모태신앙도 아닌, 천주교는 나에게 꽤나 낯선 종교였지만 어떤 특별한 계기도 없이, 그야말로 뜬금없이 천주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건 우연이거나 필연이었을 테다. 그것도 천주교를 믿는 다른 이의 권유나 전도도 없이 오직 나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이끌림이었다는 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그 인과관계의 건너뜀이 큰 의문부호로 남는다. 그리고 나는 당연한 귀결처럼 냉담자가 되었다.<br>이상훈의 역사소설 백서(帛書)를 읽는 내내 나는 소설의 주인공인 황사영의 삶과 나의 삶을 번갈아가며 생각했다. 250여 년 전에 태어난 사람과 나를 비교한다는 게 가능하지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같은 종교를 믿으면서 온갖 박해 속에서도 종교를 버리지 않았던 황사영과 자유로운 종교 활동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냉담자로 남은 나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 극단적인 대비가 아닐 수 없었다.<br>"백서를 쓰는 황사영의 심정을 가슴으로 느끼며 또 읽었다. 내가 황사영이 되고 황사영이 내가 되었다. 239년 전에 살았던 황사영이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황사영은 천주교 순교자로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사지가 찢겨 죽는 순교의 길을 택했지만, 그는 천주교에서도 대접받지 못하고 우리 역사에서도 버림받은 존재가 되었다. 그가 외국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조선에서 벌어지는 살육의 미친 춤판을 끝내 달라고 교황님에게 편지를 써서 보낸 일이 과연 역적으로 비난받을 행위일까? 당시 조선 백성의 삶과 정치 상황 그리고 천주교 박해의 실상을 안다면, 누가 황사영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nbsp; (p.6 '작가의 말' 중에서)<br>1775년 조선 후기의 정조가 집권하던 시기, 황석범의 유복자로 태어난 황사영은 16세의 나이로 진사과에 장원급제한 천재였다. 정조의 주선으로 정약용의 집안과 관계를 맺게 된 황사영은 결국 정약용의 큰형인 정약현의 딸 정명련과 혼인하여 정약용의 조카사위가 된다. 조선 최초의 천주교 영세자였던 이승훈이 정약용의 누이와 혼인함으로써 정약용의 집안 역시 천주교를 믿게 되었던 바, 정약용의 조카사위가 된 황사영 역시 천주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지 싶다. 캄캄한 토굴 속에서 숨어 살면서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던 황사영이 가로 62cm, 세로 38cm의 작고 흰 비단 위에 일만 삼천 자가 넘는 한자를 붓으로 적어 내려갈 때의 절절한 심정을 작가 또한 백서 원문을 읽으면서 가슴으로 느꼈었다고 한다. 2027년 8월 WYD World Youth Day(세계청년대회)가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세계의 가톨릭 청년들에게 우리 순교의 역사를 알리고자 소설을 완성했다며 집필 목적을 적었다.<br>"황사영은 토굴에서 백서를 마쳤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난 후 사영은 정신을 잃었다. 다음날 아침 김귀동이 불러도 기척이 없자 항아리로 막았던 입구를 헤치고 토굴로 들어왔다. 황사영은 탈진해서 쓰러져 있었다. 그만큼 마지막 남은 기력을 백서에 쏟아 부은 것이다. 사영의 몸은 불덩이 같았다. 김귀동은 의원을 부를 수도 없고 해서 급하게 열을 내리는 민간요법으로 응급조치를 하고 차가운 물로 적신 수건으로 사영의 얼굴을 닦아주었다."&nbsp; (p.157)<br>순교자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신앙을 지키고자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던 수많은 희생자 중 한 사람이었던 김범우의 7대손인 진복이 자신의 친구인 박현철 신부와 함께 순교지를 찾아나서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아야 했던 당시 조선의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아픈 역사와 그 역사의 한 귀퉁이를 가까스로 붙잡기 위해 애쓰는 진복의 모습이 교차하면서 소설은 진행된다. 황사영이 결국 능지처사의 죽음을 당하고 그의 아내인 명련이 관노가 되어 두 살 난 아들과 함께 제주도로 유배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정약용의 모습을 그린 장면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 먹먹하게 읽었다.<br>"자신은 양반 신분의 유배 생활에서도 이렇게 냉대와 멸시를 받고 있는데 그렇게 곱고 우아하던 조카 명련이 노비가 되어 외딴 섬 제주도에서 노비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약용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약용은 조카 명련에 대해 글을 남길 수가 없었다. 황사영과 명련은 천주교 괴수로 지목되었기에 약용이 그들을 안타까워하는 글을 남기면 이것이 꼬투리가 되어 노론 벽파의 공격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생각에 명련에 대한 안타까움은 글로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에 담아둘 수밖에 없었다."&nbsp; (p.194)<br>오락가락하던 장맛비는 제헌절 연휴에도 요란하게 이어졌다. 나는 이상훈작가의 역사소설 &lt;백서(帛書)&gt;를 곰곰 되새겨보며 인간에게 과연 종교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내가 지금도 여전히 천주교 신자로 남아 있었다면 결코 들지 않았을 질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자의 삶에서 아로새겨진 개인의 성향과 인성은 그의 삶이 그것에 반하여 펼쳐질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원래의 삶으로 되돌려 놓는다. 삶의 원칙이란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았던 황사영 역시 그러했을 터, 우리는 각자의 삶이 지정하는 외진 길을 따라 조용히 나아갈 뿐이다. 냉담자로 살고 있는 나도 역시 언젠가 고해성사를 하고 주말 미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 말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6/36/cover150/89988910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63696</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모자무싸‘를 생각하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93605</link><pubDate>Wed, 15 Jul 2026 19: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93605</guid><description><![CDATA[유튜브 동영상을 많이 보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때면 이런저런 채널의 영상을 띄워 놓은 채 나만의 생각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보지도 않을 양이면 귀한 전기를 써가면서 뭐 하러 동영상을 재생하느냐 따질 사람도 있겠으나 평일에는 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까닭에 아마도 백색 소음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소음도 없는 적막한 공간은 그것을 인지하는 인간에게 약간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언제나 유튜브 동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을 귀담아듣지도 않으면서 무작정 흘려보내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생각과 일치하거나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이 더러 있는 까닭에 어쩌다 그런 동영상을 만날 때면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의자를 당겨 앉게 됩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말입니다. 이응준 작가의 산문집 &lt;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gt;를 읽고 있습니다. 그의 산문집은 때로 난해하기 짝이 없어서 나의 상식이나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그저 '아무려면 어때'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 이해하자 마음을 가볍게 먹은 채 담담히 책을 읽어나가곤 합니다.<br>"슬픔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기쁨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고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다. 그래야 자신이 어떤 시를 가지고 있는 시인인지를 안다. '사람들은 모두 시인이다.' 다만 자신이 시인임을 스스로 무시하고 살아가다가 죽거나 시인이면서도 시인인 줄 모르고 살다가 죽을 뿐이며 심지어 나는 자신 안의 시인을 일부러 살해하는 사람들조차 자주 본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애써 괴물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자신의 날개를 하늘에서 사용하지 않고 발의 부스러기나 계단쯤으로 여기다가 차에 치여 길에 찌그러져 말라붙어 있는 저 비둘기들의 사체처럼."&nbsp; (p.97~p.98)<br>오늘 최욱이 진행하는 '매불쇼'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을 테지만 오랜만에 보는 유시민 작가의 모습이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유시민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몇 달 전부터 시작된 진보 유튜버들의 일베식 조롱과 멸칭이 이상하다고 생각은 해왔지만, 그것이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의 견해와 일치한다고는 판단한 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던 검찰개혁이 조금씩 물거품으로 변해가는 듯한 인상을 받기 시작하는 요즘, 김민석 전 총리를 민주당의 차기 당대표로 지지하는 듯한 대통령의 노골적인 태도와 의중을 비추어 볼 때, 대통령은 어쩌면 지리멸렬한 국민의힘과 당대 당 통합은 아닐지라도 그들 주변의 인사들을 최대한 끌어 모아 민주당으로 편입함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이를 반대하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자(일명 강경파라고 할 수도 있는)들의 이탈을 과감히 용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보완수사권의 유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보수권 인사들을 포섭하려면 검찰개혁은 시늉만 하고 눈 감고 아웅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일 테지요. 현 상황을 그렇게 이해하면 대통령과 김민석 전 총리의 행보도 이해 못 할 게 없습니다. 박정희를 '스마트한 독재자'라고 칭한 김민석 전 총리의 발언을 조금 더 확장하면 이토 히로부미도 '스마트한 독재자'라고 할 날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와 같은 역사 인식을 지닌 사람을 대통령은 민주당의 차기 당대표로 밀고 있습니다.<br>수십 년 민주당을 지지해 왔던 나 역시 앞으로 다시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바 있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주변 사람들 역시 검찰개혁은 이제 물 건너간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던 검찰이 꺼져가던 불씨를 다시 살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유시민 작가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1990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하였던 민주자유당이 떠올랐던 건 아마도 현 시국이 그와 비슷한 까닭일 테지요. 무척이나 덥고 지루한 날들이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침함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모두가 자신을 무가치하게 만든 현 정치권과 싸우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말매미 울음소리가 - [도스토옙스키 단편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85962</link><pubDate>Sat, 11 Jul 2026 15: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859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130190&TPaperId=173859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6/71/coveroff/k27213019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130190&TPaperId=173859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도스토옙스키 단편선</a><br/>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장맛비가 뜸해진 자리엔 무더위가 자리를 잡았다. 잦아진 기상이변 탓인지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이 가장 나기 쉬운 계절이 여름이었는데 이제는 정반대가 되고 말았다. 여름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이 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계절이 되고 말았다. 살인적인 더위와 게릴라성 폭우는 매년 그 강도를 더하고 있지만 딱히 이렇다 할 대책은 없는 게 현실이다. 그저 침수 피해를 입은 이재민에게 지급되는 일시적인 성금과 보여주기식 복구 활동이 그들을 위한 과분한(?) 성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느린 듯하지만 화살보다도 빠른 한 해 한 해를 살아내고 있다. 무성의한 이웃과 가혹한 하늘을 원망하면서.<br>소담출판사에서 출간한 &lt;도스토옙스키 단편선&gt;을 읽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열렬한 팬이기도 한 나는 그의 작품 대부분을 읽어보았다, 청소년기의 어느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의 작품 &lt;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gt;을 읽고 나는 꽤나 깊은 우울과 인생에 대한 회의감 속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했었다. 우리의 삶이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그 시기에 도스토옙스키의 여러 작품을 통해서 배웠다. 그리고 그가 겪었던 지독한 가난과 간질이 마치 나의 경험인 양 아팠다. 그 후에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문고판으로 나온 그의 작품들을 수시로 꺼내 읽곤 했었다.<br>&lt;도스토옙스키 단편선&gt;에 실린 작품은 '백야'를 비롯하여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 '첫사랑' 등이다. 그의 작품이 늘 그렇듯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를 통한 철학적 사색을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한편 일관적이지 않은 인간의 변덕스러운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함으로써 책을 읽는 이들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한 번쯤 되돌아보도록 한다. 자신의 모습을 곰곰 되돌아보지 않는 우리는 자신이 마치 신에 버금가는 대단한 사람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까닭에 도스토옙스키와 같이 탁월한 작가에 의해 간접적으로나마 지적을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br>"그러나 나스텐카, 내가 모욕당한 것을 언제나 기억하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너의 밝고 아늑한 행복에 검은 구름을 드리우리라 생각하는가! 심한 비난의 말을 퍼부어 너의 가슴에 슬픔을 주고, 비밀스러운 가책으로 너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며, 행복한 순간에도 우울한 생각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네가 그와 함께 계단을 향해 걸어갈 때 너의 검은 곱슬머리에 꽂은 그 부드러운 꽃 가운데 단 하나라도 짓뭉개 놓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오, 결코,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너의 하늘이 맑게 개기를, 너의 사ㅓ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그리고 감사함으로 가득한 어떤 외로운 가슴에 네가 심어 준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대해 축복받기를!"&nbsp; (p.114 '백야' 중에서)<br>'백야'에서 작가는 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소심한 한 남자를 등장시킨다. 어찌나 소심한지 연애 경험도 없고 단지 상상 속에서만 살아가는 그는 어느 날 운하 난간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젊은 여인을 보게 되고, 그녀를 괴한으로부터 구해 준 것을 계기로 가까워진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로부터 버림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여인(나스텐카)을 위로하며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된 남자는 자신의 소심함을 떨치고 그녀에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에 대한 미련을 남겨두었던 여인은 결국...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는 질투심에 사로잡힌 한 남자가 이성이 아닌 감정과 본능에 따라 움직임으로써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에 상관없이 얼마나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는 남자는 아내를 미행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의 오해와 충돌을 풍자적으로 그려낸다.<br>"그는 긴 외투를 입고 G거리로 달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현장을 덮쳐 그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대체적으로 어제보다는 좀 더 강력하게 행동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금방 집을 찾아 입구로 들어섰다. 그때 외투를 입은 말쑥한 멋쟁이 차림의 한 형태가 그의 팔을 스치듯 가까이 그를 앞질러 3층으로 급히 올라갔다. 이반 안드레예비치는 비록 극장에서 민간인 복장을 한 멋쟁이 차림의 사나이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바로 조금 전에 본 그 말쑥한 차림의 멋쟁이 사나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한 층을 앞서 올라갔다. 마침내 3층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왓다. 문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벨 소리도 없이 열렸다."&nbsp; (p.157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 중에서)<br>마지막 작품인 '첫사랑'은 열한 살 소년의 눈을 통해 바라보게 되는 어른들의 세상이다. 소년이 사랑하는 M 부인은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철저히 숨기지만, 어린 소년 앞에서는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그러나&nbsp;M 부인의 입장에서&nbsp;마냥 어리게만 보이는 소년이었지만, 소년의 입장에서&nbsp;M 부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었고, 그런 까닭에 소년의&nbsp;시선에서 M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은 결코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M 부인과 이를 지켜보는 소년. 첫사랑에 빠진 소년은 M 부인을 통해 어른들의 허영과 위선, 사랑과 고독을 감지한다.<br>"M 부인이 남편에게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마자 나는 바로 부인 옆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마치 그녀가 한 시간 전부터 같이 산보하자고 청해 놓은 것처럼, 마치 이미 한 달 내내 아침마다 그녀와 함께 산책이라도 해 온 것처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인은 왜 그렇게 당혹스러워했을까? 또 사소한 거짓말을 할 때 도대체 그녀의 머리엔 무엇이 있었을까? 왜 그녀는 혼자 산보하러 간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이제 나는 어떻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할지 몰랐다."&nbsp; (p.225 '첫사랑' 중에서)<br>사회학 연구자인 이승연은 자신의 최근 저서인 &lt;손절사회&gt;에서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체제일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삶, 인간 사회의 모든 측면을 경제적 관점에서 이해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연대와 공공의 책임을 해체하는 하나의 정치적 세계관이자 '문화'라고 규정했다. 내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까닭은 도스토옙스키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이나 태도는 우리가 평소에 관계를 맺고 지내는 여러 관계의 간극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소심하여 연애 경험이 없는 남자, 질투심에 불타는 남편, 소년이 연애 대상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성인 여성 등 도스토옙스키가 설정한 소설 속 인물들과의 관계를 맺거나 유지하는 것은 별 이득이 없다고 판단할지도 모른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말이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한마디로 우리는 그들과 손절을 하고 말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다양한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 사상에 물든 우리는 나에게 이득이 없는 관계는 곧바로 손절을 하는 바람에 나와 다른 타인을 연구하고 탐색할 기회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삶을 통하여 배워야 할 것은 관계를 통한 의미와 깨달음이지 단순한 손익 관계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br>인간관계의 손익 계산에 익숙한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에 배척과 혐오로 일관한다. 나와 다르다는 것은 경계를 넘어 배척의 이유가 된 지 오래이다. 그래서인지 현대인에게 고전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어떤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나와 다른 타인을 배척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세대를 배척하기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단지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br>장마가 지나간 아파트 화단에는 말매미 울음소리가 시작되었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낮잠을 자기도 어렵다. 나의 뜻에 반한다는 이유로,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배척하고 없애야 하는가. 저 작고 보잘것없는 미물이 악다구니를 쓰며 묻고 있는 듯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6/71/cover150/k27213019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567184</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돌이킬 수 없는 여름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75118</link><pubDate>Sun, 05 Jul 2026 16: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75118</guid><description><![CDATA['거의 다 왔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처음에 목표했던 지점에 닿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직면했을 수도 있고, 예기치 않았던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근접했던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기억들을 한두 개쯤 가슴에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한 여운과 아쉬움을 삭이면서 말입니다. 평소 뛰어난 재능을 보이던 운동선수를 통해서도 그와 같은 사례는 종종 목격되곤 합니다. 프로 데뷔를 앞둔 시점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도박이나 성범죄 또는 음주운전과 같은, 사회로부터 지탄받을 범죄에 연루되는 바람에 결국 목표로 하던 꿈이 좌절되는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하나의 꿈이나 목표를 향해 달려왔건만 그것이 물거품이 되었을 때 또는 피곤을 무릅쓰고 장거리 운전을 하여 곧 집에 도착하려던 순간, 불의의 사고나 뜻밖의 소식으로 눈앞에서 그것을 놓치거나 이루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건 어쩌면 당사자의 긴장감이 풀어졌거나 이미 목적지에 도달한 듯한 착각 속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운명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어떤 사건이 발목을 잡는 경우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우리는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 예정에도 없던 인생의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br>장마가 시작된 탓인지 후덥지근한 날씨가 사람의 기분마저 바꿔놓은 듯합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대기 중의 습기는 차츰 높아지나 봅니다. 그에 따라 스트레스 지수도 비례하여 증가하고 말이죠. 하늘이 멀끔하게 갠 시간에 서둘러 산책에 나섰습니다. 비가 내리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도의 보도블록 위에는 은행잎이 흩뿌려져 있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에 나선 어느 할머니는 당신의 반려견이 새로 생긴 물웅덩이를 피하게 하느라 동동걸음을 칩니다. 예측 가능한 범위 내의 무탈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양솽쯔 작가의 소설 &lt;1938 타이완 여행기&gt;를 읽고 있습니다. 음식에 그닥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 대부분이 생경한 것이지만, 작가의 섬세한 표현만큼은 나무랄 데가 없다, 생각했습니다.<br>"어쩔 수 없이 고개를 움직여 창밖을 보았다. 열차가 마침 광활한 논을 지나고 있었다. 먼 곳도, 가까운 곳도 모두 황금빛 바다를 이루며 벼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논 너머에는 산이 있었다. 가까운 산은 푸르고 먼 산은 쇠붙이처럼 회색빛이 도는 파란색이었다. 산맥이 겹겹이 이어지고, 부드럽고 고요한 뜬구름이 곡선 가장자리에 걸려 있었다. 나는 살며시 숨을 내쉬었다. 달아오른 뺨이 천천히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때 샤오첸이 낮은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음악 선율과도 같은 웃음소리였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웃음소리. 나도 모르게 손을 올려 가슴을 눌렀다."&nbsp; (p.265~p.266)<br>돌이킬 수 없는 여름입니다. 이 장마가 끝나고 나면 무덥고 습한 날씨가, 숨이 턱턱 막힐 듯한 더위가 한동안 이어지겠지만, 우리는 그 사이 길거나 짧은 여름 휴가를 다녀오고, 휴가지에서 보낸 고생담을 자랑스레 내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여행에서 돌아와 그 여행을 되새기는 데 있다'고 썼던 정여울 작가의 말처럼 여행의 되새김을 위해 우리는 그 힘든 여행을 매년 계획하고, 그 열기 속으로 과감히 뛰어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이 다시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어느 순간에 우리의 인생처럼 갑작스러운 비가 한바탕 쏟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습도가 높아지면 맥을 못 추지 -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15만 부 리커버 에디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73359</link><pubDate>Sat, 04 Jul 2026 15: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733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036926&TPaperId=173733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685/95/coveroff/k212036926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036926&TPaperId=173733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15만 부 리커버 에디션)</a><br/>김상현 지음 / 필름(Feelm) / 2020년 01월<br/></td></tr></table><br/>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몇몇 추구하는 것들이 있다. 그중에서 나의 일상을 지배하는 게 있다면 '추상적인 것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다. 예컨대 '행복하게 살자'와 같은 추상적인 문장을 추구하거나 매달리기보다는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구체적인 행위, 이를테면 산책이나 낮잠 등 때에 따라 다양한&nbsp; 어떤 것을 선택하여 실행에 옮기려 한다는 점이다. 나의 일상이 그렇게 흘러가면서부터 나는 대학생인 아들에게도 어떤 일의 선택 기준이 의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이따금 당부하곤 한다. 이를테면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단순히 어떤 의무나 관습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런 일은 하지 말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나중에 어떤 직장에 취업을 하고 출근을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정말로 100% 의무감 때문에 하고 있다면 이직을 포함하여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주변 사람들의 반론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느냐는 것.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라도 그 일의 밑바탕에는 99%의 의무감과 1%의 재미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우리의 인생은 꽤나 긴 듯하지만 사실 지나고 보면 너무나 짧다는 걸 실감하기 때문이다.<br>"책에 담고 싶었던 세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째는 결국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 둘째는 좋은 사람이 돼서 좋은 사람을 곁에 두었으면 한다는 것. 셋째는 결국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들은 다 행복하기 위해 한다고 믿고 있고,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행복은 과연 어디서 나오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랑. 저는 행복이라는 건 결국 사람과 사랑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nbsp; (p.8 '작가의 말' 중에서)<br>김상현 작가의 에세이 &lt;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gt;는 출간된 지 적어도 5, 6년은 흘렀고,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책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미신처럼 믿고 있는 책과의 궁합이 맞지 않았던 탓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며 권하더라도 선뜻 손이 가지 않을 때가 있고, 한참이 지나 책의 인기가 시들해질 무렵 '아, 이 아무개가 이 책을 권한 적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라 예정에도 없던 독서를 시작할 때가 있다. 말하자면 이 책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br>"매일 아침마다 내가 오늘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질문한다. 답은 언제나 똑같다. 또 그런 일상들을 보낼 것이다. 가끔 내가 그리는 미래에 닿았을 때, 그려왔던 모습과 다르면 실망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살아가며 또 다른 답을 찾기도 하고 길을 찾기도 한다. 왜 살아가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삶의 주제가 온전히 나이기에 끊임없이 되묻고 깨닫고 갈망한다."&nbsp; (p.165)<br>우리는 이런 종류의 책이 마치 사회 경험이 부족한 사회 초년생이나 자신의 미래가 불안하여 밤잠을 설치게 되는 결혼 적령기의 그들에게나 어울리는 책으로 분류함으로써 자신에게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하루도 타지 않는 날이 없을 만큼 감정에 쏟는 에너지가 극심하여 체력이 남은 상태의 가뿐한 몸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는 날이 없는 까닭에 오늘의 나를 위로할 단 한 줄의 문장은 어느 날이나 필요한 게 아닌가. 마음을 가라앉혀 줄 힐링 에세이는 어쩌면 나의 마음에 건네는 한 병의 박카스가 아닐까 싶다. 인간관계로 인하여, 과도한 불안과 고민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과 슬픔으로 인하여 지친 우리 영혼을 위하여 우리는 영혼의 자양강장제를 한 병쯤 마셔야 하지 않을까.<br>"결국 인생은 고통이다. 삶 자체는 고통일 수밖에 없다. 존재 역시도 고통이다. 우리가 죽음으로 회귀하는 동안 살아내야 하는 저항값이 고통인 것이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 고통 받는 건 당연하다. 허나 고통을 회피하는 건 존재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나아가고 흘러가기 위해서 많은 것들에 부딪혀야 한다. 그것이 사람일 수도, 환경일 수도, 체제일 수도 있다."&nbsp; (p.214)<br>늦은 장마가 시작되면서 하늘은 연일 어둡거나 희미해지고 있다. 몸에 닿는 바람도 전처럼 건조하고 상쾌하지가 않다. 눅눅하고 끈적한 공기가 번번이 의욕을 꺾는 바람에 휴일이면 온통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의 원심력에 한없이 휩쓸린다. 우리를 강한 인력(引力)으로 빨아들이는 과거의 기억들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대기 중의 습습한 알갱이들마다 나를 붙잡는 기억들로 가득하다. 습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나는 맥을 못 추고 늘어진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685/95/cover150/k21203692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6859548</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곧 소서(小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70117</link><pubDate>Thu, 02 Jul 2026 17: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70117</guid><description><![CDATA[남쪽으로부터&nbsp;늦은&nbsp;장마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중부지방은 소나기 예보만 간간이 들릴 뿐 본격적인 장마 소식은 전해지지 않은 듯합니다. 한낮 기온은 여전히 높고,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습습한 기운이 스며 있습니다. 장마가 오기도 전에 대기 중의 습기가 보란 듯 먹구름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듯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가는 건 생각만 해도 시원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비가 쏟아진 뒤의 습기는 텁텁한 더위와 함께 괜한 짜증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곧 소서(小暑 7월 7일)입니다. &lt;제철 행복&gt;을 쓴 김신지 작가 역시 소서 절기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작가의 소서 풍경을 조금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br>"버스를 타고 지나치는 정류장 곳곳에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능소화가 보일 무렵이면 소서다. 산책로에는 피고 지길 반복하며 100일 동안 붉은 꽃을 보여주는 백일홍 나무도 꽃송이를 열고 있다. 오래도록 피는 능소화와 백일홍은 우리와 함께 여름을 나는 꽃. 그래서 기념사진 속에 찍힌 행인처럼 여름날의 추억 속에 종종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올해 첫 능소화를 목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긴 장마가 시작된다. 시골에 있는 부모님은 장대비가 내리는 날이면 논둑 밭둑을 정비하느라 장화를 신고 집을 나설 것이다. 제주에 사는 친구는 그치지 않는 빗소리를 들으며 종일 제습기를 돌리고 있겠지. 소서와 대서 사이, 장마가 만들어내는 풍경 아래서 저마다 다르게 비를 만난다."&nbsp; (p.162)<br>내가 매일 아침 오가는 등산로의 산어귀에는 달개비가 무성합니다. 머지않은 시기에 남빛 달개비꽃이 지천으로 피어나겠지만, 나는 이맘때만 되면 무성한 달개비 잎에 눈길이 가곤 합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달개비는 한낱 잡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남빛 달개비꽃이 아침이슬을 머금고 함초롬히 피어나는 모습을 본 이는 그 자태에 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달개비꽃에 대한 황동규 시인의 묘사를 옮겨보면 그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달개비 떼 앞에 쭈그리고 앉아/꽃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이 세상 어느 코끼리 이보다도 하얗고/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 수술/둘이 상아처럼 뻗쳐 있다.'(황동규, '풍장58' 중에서)<br>7월입니다. 엊그제인 듯 새해를 시작했던 우리는 벌써 한 해의 반을 지나쳐왔습니다. 그렇게 헉헉대며 이 여름을 보내고 나면 왠지 모르게 허한 가슴으로 한 해를 다 흘려보낸 듯 느낄 테지요. 우리는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고는 있지만, 자신의 결승점이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없는 까닭에 오늘도 해맑게 웃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나와 같은 도시내기에게 절기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만 나는 이따금 우연히 마주하는 절기가 옛 사진을 보듯 반갑습니다. 곧 소서(小暑)입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끊었던 담배 생각이 - [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 - 빛과 바람이 들려준 삶의 문장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64963</link><pubDate>Tue, 30 Jun 2026 17: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649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69469&TPaperId=173649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70/36/coveroff/892556946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69469&TPaperId=173649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 - 빛과 바람이 들려준 삶의 문장들</a><br/>김산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05월<br/></td></tr></table><br/>참 우스운 말이지만 남자들의 로망은 대개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정년퇴직 후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 꿈이다. 비록 그것이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생각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의 지인 중 한 사람만 하더라도 그렇다. 평생을 신문사에서 근무했던 지인은 퇴직 후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더니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정말로 시골에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자신은 그곳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겠노라 선언하며 고급 자재를 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그닥 좋아 보이지 않는 조립식 주택을 짓는 데 수억 원의 건축비가 들어갔던 것으로 안다. 집이 완성되고 지인들을 불러 집들이도 거하게 치렀다. 산비탈에 위치한 그의 집은 멀리 강이 내려다보이는 조용하고 풍광이 좋은 집이었다. 그러나 더없이 좋아하는 지인과는 다르게 그의 부인은 서울 생활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시골 생활은 지인 혼자 꾸려가게 되었다. 부인과 자식들은 이따금 시간이 날 때마다 한두 번씩 들를 뿐이었다. 말하자면 시골 별장을 찾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가족을 떠나 홀로 사는 삶이 외로울 법도 한데 지인은 그 생활을 무척이나 즐기는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심심하면 강이나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책도 읽고... 그러다 아주 가끔 가족이나 지인의 왁자지껄한 방문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등 나름 즐거워 보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하기를 1년 남짓, 지인은 결국 시골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복귀하고 말았다. 시골에 지었던 집은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폐가가 되고 말았다.<br>"수년간 난로에 불을 피우며 알게 되었습니다. 이 비우고 채우는 과정이 우리의 삶과 참 닮아 있다는 걸요. 비울 때는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 잘 버려야 합니다. 아직 식지 않은 재를 함부로 버리면 화재가 나고, 바람 부는 쪽으로 재를 털면 고스란히 다시 나에게 날아옵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버려야 할 게 있을 때는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고뇌는 재처럼 다시 나에게 돌아오지요."&nbsp; (p.214)<br>김산들 님의 에세이 &lt;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gt;를 읽는 사람들 중 몇몇은 작가와 같은 시골 생활을 꿈꾸게 될지도 모른다. 스페인의 고산 마을 비스타베야에 터를 잡은 작가의 삶은 더없이 평화롭고 풍요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해발 1,200미터의 고산 지대에서 보냈던 경험을 사계절로 나누어 펼쳐 놓은 그녀의 삶에서는 마치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열대 바람에 섞여 달콤한 과일 향기가 풍기는 듯도 하고, 고산 마을 사람들의 순수한 정이 현대인의 이기심에 쾅쾅 대못을 박는 듯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게 있다. 자연은 결코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인간의 허술한 면을 봐주는 법도 없다. 자연은 연약하고 서툰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법 없이, 그들의 방식 대로 담담히 흘러갈 뿐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방식에 적응하고 익숙해지지 않으면 고통이 가중될 뿐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다.<br>"비스타베야는 해발 1,200미터에 자리한 고산 마을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산 능선들이 겹겹이 이어지고, 맑은 날에는 멀리 지중해의 푸른 기운까지 시야에 스민다. 산과 바다가 서로를 향해 길게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는 듯한 풍경이다. 마을을 지나 조금 더 길을 오르면, 방금 전까지 이어지던 산과 계곡은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대신 마치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고대의 터전처럼, 고요하고 기름진 고산 평야가 불쑥 눈앞에 펼쳐진다. 바람이 오래 머물다 가는 넓은 땅, 시야가 트이는 맑은 하늘, 계절의 숨결이 천천히 스며드는 그 평야의 한 산자락에 우리는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삶의 터를 내렸다. 이 땅의 오래된 시간 속에 살며시 끼어든 것처럼."&nbsp; (p.5 '프롤로그' 중에서)<br>나는 '산들무지개'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작가와 그녀 가족의 일상을 이따금 훔쳐보곤 한다. 지금은 고산 마을을 떠나 카스테욘 근교의 한 목조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꼬맹이였던 아이들도 훌쩍 자라 제법 숙녀 티가 나지만, 고산 마을에서 깃든 순수함이 아이들과 어른들에게도 시시때때로 묻어 나오는 듯해서 별것도 아닌 그녀 가족의 일상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수십 년 도시 생활에 찌든, 한 명의 도시내기가 보내는 '순수'에로의 열망 또는 익숙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디디는 '순수'로의 착지가 아닐까 싶다.<br>"계절이 내어 주는 일을 따라가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비움'과 '채움'의 태도를 익히게 되었습니다. 싹이 트고 잎이 무성해지는 봄과 여름을 보내고 나면, 열매와 잎을 하나씩 내려놓는 추운 계절이 찾아옵니다. 계절은 그렇게 비우고 채우며 다시 이어집니다. 지구 어느 곳에서도 자연은 비우고 채우는 순환을 합니다. 모든 게 풍성할 것 같은 열대에서도 나무는 잎갈이를 하고 익은 열매를 떨어뜨립니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으니까요.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연에 맞추어 비축해야 할 때가 있고, 비축된 걸 다시 비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nbsp; (p.258)<br>또 하루가 저물고 있다. 우리는 동시에 2026년의 6월 한 달을 지우고 있다. 서로가 별것도 아닌 일로 아웅다웅할 때는 몰랐지만 시간은 정말 화살처럼 빠르게 흐른다. 시간의 흐름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왜 나는 매사에 초연하지 못할까?' 하는 의문에 빠지곤 한다. 나의 삶을 이렇게 빠르게 지워나가다 보면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애쓰던 모든 것들이 그저 헛되고 헛된 것으로 인식할 날이 곧 오고야 말 텐데 나는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렇게 하는가. 어깨가 처지는 기분이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10년 이상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70/36/cover150/892556946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703633</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월드컵 32강 진출도 좌절되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59725</link><pubDate>Sun, 28 Jun 2026 13: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59725</guid><description><![CDATA[강한 햇살에&nbsp;외출이 두려울 정도입니다. 선크림 없이 햇빛을 쪼이면 금세 화상을 입을 듯한 날씨에 사람들은 다들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듯, 휑한 거리에는 이따금 먹이를 찾는 비둘기 떼만 오가고 있습니다. 곧 7월인데 장마는 여전히 감감무소식. 덕분에 우리는 열대야 없는 쾌적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유럽은 요즘 40도를 넘나드는 찜통더위로 인해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는데 열대야도 없는 건조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 우리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진으로 도시 전체가 사라진 베네수엘라의 처참한 모습을 뉴스 영상으로 볼라치면 가슴 한 켠을 도려내는 듯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이렇듯 다른 모습으로 서로를 기억하게 됩니다.<br>인터넷 포탈에서는 우리나라의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32강 진출이 좌절되었다는 소식으로 도배가 되었습니다. 축구에 그닥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그게 뭐 그리 중요한 소식인지 살짝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홍명보 감독이나 정몽규 축구협회장에 대한 욕을 하면서도 대표팀의 32강 진출을 바라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던 듯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오히려 잘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축구 발전을 위해서는 한 번쯤 완전히 망해보는 경험이 필요했을 테니까 말입니다. 적당히 잘하고, 국민의 기대에 적당히 부응하다 보면 축구협회를 비롯한 우리나라 축구계의 개혁이나 발전은 점차 늦춰질 수밖에 없고, 국민들의 분노나 질타가 없는 상황에서는 현재의 시스템을 굳이 뒤엎을 이유도 찾기 어려울 테니까 말입니다.<br>그런 면에서 보면 작금의 민주당도 반면교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처럼 정권도 잡고, 여대야소의 국회 구도 속에서 원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되기까지 어렵게 어렵게 온 것인데, 여당의 국회의원들은 이제 자신들의 권력다툼에만 매몰되어 상대방을 헐뜯고 조롱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들도 어쩌면 축구협회의 전철을 밟으려고 지금부터 준비중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음 총선에서 철저히 망하고, 한동안 여소야대의 설움을 겪다가 정권마저 내주고 난 후에야 그들의 잘못을 알지 않을까 싶습니다.<br>멀리 아파트 정문에 들어서는 이웃집 할머니의 모습이 보입니다. 등이 굽은 채로 무거워 보이는 성경책가방을 들고 오시는 걸 보니 교회에 다녀오시나 봅니다. 나는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전체가 교회에 내는 헌금이나 절에 내는 시줏돈을 모아 종교시설이 아닌, 그 돈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면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더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나 절에 나가는 사람이 가난한 이웃을 돌보겠다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고 그들에게는 오직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만 생각하는 까닭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느님이나 부처님께서 이루어 줄 리도 없고, 목사나 스님의 배만 불리고 있을 테지요. 그 사실을 정작 돈을 내는 본인들만 모르고 있을 테지만 말입니다.<br>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모든 걸 태워버릴 듯 쏟아지던 햇살도 잦아들고 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잠깐 낮잠을 자야겠습니다. 언제부턴가 아파트 담장에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현수막이 내걸렸습니다. 인간도, 동물도 현실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은가 봅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주말, 공원에서 - [실직, 연단, 그리고 다시 시작 - 일터를 잃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58374</link><pubDate>Sat, 27 Jun 2026 16: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583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138537&TPaperId=173583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4/34/coveroff/k07213853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138537&TPaperId=173583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실직, 연단, 그리고 다시 시작 - 일터를 잃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a><br/>염재현 지음 / 은빛물결 / 2026년 05월<br/></td></tr></table><br/>누구에게나 삶은 자신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 평범한 진리가 우리들 삶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처음에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라고 믿는다는 데 있다. 게다가 이렇게 믿는 이들 중 다수는 주변의 다른 이들은 계획하지도 않았던 여러 행운들이 덤으로 마구 쏟아지는 듯한데 유독 자신은 단 하나 계획한 것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참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 이러한 믿음을 갖는 이들이 단지 비상식적인 몇몇 사람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우리 대부분이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따금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유일한 것인 양 포장하면서 짐짓 슬픔을 과장하고 누군가에게 어리광을 부리기도 한다. 물론 자신의 불행을 타인의 그것과 비교하여 자신의 슬픔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말이다.<br>"2년 이상 근무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고 알고 있었고, 해고를 하더라도 최소 한 달 전에는 통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믿고 있었다. 사실 서너 달 전까지만 해도 혹시 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어쩌나 몹시 불안했다. 하지만 계약 만료를 한 달 앞둔 9월까지 회사에서 아무런 말이 없었기에, 오래 근무하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생각지도 못한 해고 통보였다.&nbsp; 그것도 계약 만료 하루 전에."&nbsp; (p.14~p.15)<br>&lt;실직, 연단, 그리고 다시 시작&gt;을 쓴 염재현 작가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지 모르겠다. 은행에 근무하던 저자가 은행을 나와 계약직 펀드매니저로 일하다가 느닷없이 해고 통보를 받았으니 말이다. 40세의 가장이었던 그가 1년 4개월이라는 긴 실직 기간을 통과하면서 느끼고 깨달았던 것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이 책은 삶에서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깊은 위로를 건네고 있다. 사실 인생에서 1년 4개월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장을 잃은 가장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고, 일각이 여삼추였을 터이다.<br>"잠시 줄을 서서 기다린 뒤 현금을 인출하려는데, 화면에 '잔액 부족'이라는 경고 문구가 떴다. 다시 확인해 보니 통장에 남은 돈은 만 원뿐이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통장 잔액이 이렇게까지 바닥난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nbsp; (p.106)<br>나도 주변에서 갑자기 실직을 당하거나 몸이 아파서 부득이하게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사람이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삶이 이어지게 마련이지만, 실직과 같은 불행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까닭은 대개 그들의 조급함에 있다. 불행의 늪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여러 일들을 벌인다는 점이다. 장기간 취업이 되지 않는 이들이 식당이나 카페 등 자영업에 눈을 돌리는 게 그 대표적인 일이다. 경험도 없고, 자본도 넉넉하지 않은 사람이 낯선 분야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실패를 거듭함으로써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이곳저곳 헤매면서 돌아다닐 게 아니라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주변 환경을 살필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갑자기 직장을 잃었을 때 우리는 먼저 다른 아무 일도 벌이지 않으면서 상황을 살피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1년 4개월의 실직 기간을 끝내고 다시 나아갈 수 있었던 것도 '잠시 멈춤'의 시간이 있었던 까닭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br>"우리는 종종 실업급여를 둘러싼 논쟁을 접한다. 누군가는 실업급여가 도덕적 해이를 낳는다고 말한다.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이 나오니 구직을 늦춘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실업급여를 받으며 해외여행을 다닌다는 이야기까지 회자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이다. 실직을 겪어 본 사람에게 실업급여는 '여유 자금'이 아니다. 그것은 무너지지 않도록&nbsp; 버텨주는 시간이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숨을 고르게 해주는 최소한의 버팀목이다."&nbsp; (p.216)<br>낮에 점심을 먹고 아파트 인근에 있는 공원을 잠시 거닐었다. 가족이나 연인 단위의 사람들이 그늘에 놓인 벤치에 앉아 주말 오후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 중에도 갑자기 직장을 잃고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이 더러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야말로 쉽게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나는 믿는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급한 일일수록 여유를 갖고 대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서둘러 일을 처리할 게 아니라 돌다리도 두들겨가며 건너야 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벌써 시작되었어야 할 장마는 여전히 그 기미도 보이지 않고 쨍한 하늘만 이어지고 있다. 공원에 나온 사람들은 장마도 잊은 채 마냥 여유로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4/34/cover150/k07213853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543498</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뻐꾸기가 울던 아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56717</link><pubDate>Fri, 26 Jun 2026 17: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56717</guid><description><![CDATA[보릿가을도 한참이나 지났건만 아침저녁 기온은 제법 선선합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 등산로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습니다. 멀리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렸고, 먹이를 찾아 나선 청설모 한 마리가 등산로를 가로질러 빠르게 달아납니다. 걷기에도 유행이 존재하는지 얼마 전부터 나는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팔자걸음을 걷는 어느 아저씨가, 그리고 얼마 후 마른 체격의 어느 할머니가 조심스레 맨발 걷기를 시작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할머니 한 분과 손녀인 듯 보이는 어린 학생이 서로 팔짱을 꼭 낀 채로 맨발 걷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새벽의 기분 좋은 선선함이 그들 모두를 산으로 모여들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br>며칠 전 나는 안과 검진을 받았습니다. 다른 데는 별 이상이 없는데 전에 비해 시력이 조금 떨어졌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나이를 먹는 까닭이겠지요.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청력이 떨어져서 다른 이의 험담이나 나쁜 말을 귀담아듣지 않게 되었으며, 시력이 떨어져서 타인의 단점을 세세하게 살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공자가 말하는 '이순(耳順)'은 어쩌면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귀가 부드러워졌다'는, 즉 청력이 약해져서 타인의 귓속말(주로 험담이겠지만)을 잘 듣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건망증이 갈수록 늘어서 챙겨야 할 물건을 한 번에 다 가져가지 못하고 하나씩 둘씩 빼먹는 경우가 빈번해지는 바람에 갔던 걸음을 여러 번 반복하여 오가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움직이는 걸 점차 기피하는 까닭에 이를 예방하고자 건망증이라는 자구책을 선물로 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br>최근에 나는 김산들 님의 에세이 &lt;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gt;를 읽고 있습니다. 스페인에 살고 있는 작가의 일상을 나는 그녀가 만든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이따금 보아왔던 까닭에 나는 마치 이웃의 일상을 글로 만나고 있는 듯 전혀 거리감이나 이질감 없이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산들무지개'라는 그녀의 유튜브 채널은 특별한 재미나 웃음을 선사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잔잔한 일상을 꽤나 아름답게 풀어놓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작가의 집이 자연 속에 둘러싸여 있는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작가가 이사를 하여 다른 곳에 살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비스타베야의 고산 지대에서 살았던 시기의 마지막 사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br>"해발 고도가 높은 이곳은 거친 자연에 맞서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가 켜켜이 쌓인 땅입니다. 그 지혜는 세대를 거치며 말이 아닌 생활 습관이 되었고, 지금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잇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깊이 감동받은 지혜 중 하나가 바로 '물의 법칙'이라는 사회적 약속이었습니다. 처음 물의 법칙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고 바다로 이어지는 물리적 법칙을 떠올렸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물의 법칙이란 대개 그런 의미일 테니까요. 모든 물은 흐르고 결국 바다로 간다는 단순한 원리 말입니다. 비스타베야에서 말하는 물의 법칙은 전혀 다른 뜻이었습니다. 이곳의 물의 법칙은 물이 어떻게 흐르느냐가 아니라, 누가 어떤 순서로 물을 쓰느냐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땅에서 솟아오른 샘물은 가장 먼저 깨끗한 상태로 사람에게 쓰입니다. 그다음, 사람에게 쓰이고 남은 물은 도랑을 따라 흘러 구유에 모여 동물의 물이 됩니다. 그리고 동물이 마시고 난 물은 다시 수조로 모여 텃밭을 적시는 관수용 물로 사용됩니다."<br>나의 여동생 역시 타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는 까닭에 작가의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할 때마다 뉴욕에 있는 여동생을 떠올리곤 합니다. 오늘 아침 등산로에는 뻐꾸기 소리가 구슬프게 들렸고, 거목이 된 참나무 숲 사이로 까치 한 마리가 멋지게 날아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어느 할머니와 손녀가 맨발 걷기를 하며 멀리 사라지고 있었습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한 권의 소설을 읽고 나는 - [파랑의 끝에서 너를 기다린 하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54558</link><pubDate>Thu, 25 Jun 2026 13: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545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139092&TPaperId=173545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10/5/coveroff/k1221390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139092&TPaperId=173545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파랑의 끝에서 너를 기다린 하루</a><br/>봄비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05월<br/></td></tr></table><br/>현실의 삶과 죽음 이후의 세계를 엮어 판타지 소설로 쓴 작품은 그 수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 작품 대부분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과 함께 모든 게 끝이 나 버리는 이 냉엄한 현실 앞에서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소설 속에서 우리의 미련이나 아쉬움을 죽음 이후로 조금 더 연장하거나 확장해 보려는 시도를 했던 게 아닐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어서 부르는 소리가 비껴간다'고 썼던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칼로 무 자르듯 죽음과 함께 명확히 나뉘는 이승과 저승의 구분을 우리는 동화와 같은 판타지를 통해 슬쩍 넘나들면서 이룰 수 없는 꿈을 소설 속에서나마 이루어보려고 했던 게 아닐까. 산 자에게도, 죽은 자에게도 죽음으로 인한 영원한 이별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번복하고 싶은 간절한 꿈일 테니까 말이다.<br>"고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살고 싶은 시절로 돌아가서 1년간 지내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고인의 혼이 그 시절로 돌아가는 동안, 현재의 육체는 이곳 BCD 카페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인에게 기회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는 BCD 카페의 직원입니다."&nbsp; (p.21)<br>봄비눈 작가의 소설 &lt;파랑의 끝에서 너를 기다린 하루&gt; 역시 그와 같은 판타지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백여름은 철학과 교수이다. 학기의 마지막 강의를 마친 여름은 1년 사귄 예비 배우자와 만나 웨딩드레스를 함께 고르기로 한 약속을 떠올리며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한다. 눈이 내리고 있었고, 주차장을 향해 걸어가던 여름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깨어난 곳은 BCD 카페, 저승으로 가기 전에 머무는 곳이라는데 그곳에서 여름은 자신의 지난 삶을 돌려 보면서 다시 살아보고 싶은 시절을 선택하게 된다. 여름은 21살에 만났던 첫사랑 유현을 떠올렸고, 안유현과 보냈던 그 시간이 그녀의 짧았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친구와의 의리 때문에 좋아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끝나버렸던 첫사랑의 순간을 선택하는 여름.<br>"그의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견딘 지 네 달, 남자 친구와 헤어졌지만 바로 연락할 순 없었다. 차갑게 밀어냈으면서 그에게 다시 손내밀기가 두려웠다. 그는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날 맞이해 줄까. 아님, 내가 그랬듯 차가운 손짓으로 날 밀어낼까. 선뜻 연락하기가 두려워 우연히 마주치길 기다렸다. 우연히 마주치면, 용기 낼 수 있을 것 같았다."&nbsp; (p.120)<br>유현과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되돌아간 여름의 두 번째 삶이 그렇게 시작된다. 여름은 1년이라는 한시적 삶이지만 좀 더 잘해 내자고 다짐한다. 그러나 두 번째 삶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게 예상하는 대로 쉽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은 D-3, D-2, D-1, D day 그 끝을 향해 나아간다. 여름의 첫 번째 삶과는 다르게 마음에도 없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유현을 선택한 여름의 간절하고 애틋한 사랑이 이어진다. 마냥 풋풋하고 아름다워야 할 여름의 첫사랑은 1년이라는 시간의 제약 탓에 어찌할 수 없는 애틋함이 감싼다.<br>"내일의 나는,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까. 내가 머문 시간은 고작 1년뿐이지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몸에 밴 습관들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라며 바라며 핸드폰을 열었다. 9시 공연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어쩌면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nbsp; (p.352)<br>현실의 사랑이 불가능의 영역으로 확장하면 할수록 애틋함은 배가 되고, 간절함으로 인한 몰입도는 극대화된다. 그러므로 사랑을 방해하는 여러 장벽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장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사랑을 원하는 남녀 커플의 열정도 높아지고, 두 사람의 결합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열기도 뜨거워진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장벽인 '죽음'은 소설을 통해 종종 소환되곤 한다. 현실에서 죽음을 초월한 사랑이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 장벽마저 뛰어넘고 싶은 것이다. 그 판타지를 우리는 소설을 통해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현실에서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기에 우리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이야기에 열광하고, 그렇게 가슴이 요동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한 권의 소설을 읽고 그 절절한 이야기에 눈가가 촉촉해졌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애써 태연한 척 눈물을 감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10/5/cover150/k1221390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100595</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하늘은 맑고 선명합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50861</link><pubDate>Tue, 23 Jun 2026 14: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50861</guid><description><![CDATA[며칠 흐렸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끔하게 변했습니다. 강한 햇살에 눈조차 치켜뜨기 어렵습니다. 날씨와는 다르게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던 코스피 지수는 아침부터 곤두박질을 치더니 급기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주가라는 게 오를 때도 있고 내릴 때도 있는 것이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파란 숫자들의 배열이 영 마뜩잖아 보였던 건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정치인들에게 있어 지지율의 변화도 이와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 하락이 사이드카가 발동될 정도로 심각해졌습니다. 언론에서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대한 백가쟁명의 분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br>사실 이와 같은 변화는 지방선거 이전부터 감지되던, 여당 지지층 내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던 예견된 결과였습니다. 소위 '뉴-이재명' 세력에 대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비토 정서가 조금씩 심화되고 있었으나 정치권(여당과 정부)은 이에 대해 철저히 외면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들을 '반명'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진보진영을 표방하는 유튜버들은 '뉴-이재명'을 비판하는 이들을 입에 담기조차 힘든 언어로 조롱하였고, 급기야&nbsp; 두 편으로 갈린 진보진영은 서로를 향해 일베식 멸칭을 사용하는 것조차 서슴지 않게 되었습니다. 같은 진영에 대한 이와 같은 멸칭과 조롱이 시작되었을 때, 이를 저지하고 강하게 경고를 하는 정치인은 없었습니다. 그러자 자신감을 얻은 잔잔바리 유튜버들과 보수 진영에서 전향한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를 확산하고 지지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과거에도 진영 간 혹은 계파 간 세력 다툼은 늘 있어 왔지만 지금처럼 같은 진영 내에서 서로를 향해 멸칭과 조롱을 섞어 모욕을 준 적은 없었습니다. 적어도 정치인이 아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말입니다.<br>얼마 전에도 썼었지만 오랫동안 민주당을 지지해 온 나는 이제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다만 대통령의 성공은 강하게 바라는 마음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탄핵을 반대했던 인요한 전 의원을 대한적십자사 회장으로 앉히고, 김앤장 변호사였던 한찬식 씨를 민정수석으로 등용하는 걸 보면서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역시 철회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우리가 과연 이 꼴을 보려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윤석열 탄핵을 부르짖었는가 하는 회의감마저 듭니다. 나는 이제 반 민주당에 더하여 반 이재명입니다. 그렇다고 나의 삶이 별반 달라질 것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건 민주당의 지지율도, 대통령의 지지율도 이쯤에서 그 하락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내 주변에는 여전히 정부와 여당의 행태에 실망은 했지만 미련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열성 민주당 지지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또한 민주당과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늘이 무척이나 맑고 선명합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카뮈의 계절 - [결혼·여름 - 태양, 입맞춤, 압생트 향… 청년 카뮈의 찬란한 감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46901</link><pubDate>Sun, 21 Jun 2026 15: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469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834096&TPaperId=173469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086/69/coveroff/k3728340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834096&TPaperId=173469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결혼·여름 - 태양, 입맞춤, 압생트 향… 청년 카뮈의 찬란한 감성</a><br/>알베르 카뮈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08월<br/></td></tr></table><br/>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lt;결혼.여름&gt;은 어쩌면 요즘처럼 여름이 무르익는 계절에 읽기 좋은 책일지도 모른다. 알제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성장한 카뮈가 아직 무명작가이던 시기에 쓰인 이 에세이집은 청년 카뮈의 사유가 담긴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지만 당시의 카뮈는 여러 도시를 직접 여행하는 동안 육체가 감각하는 이 세계를 인식하면서 자연의 위대함과 삶에 대한 은밀한 사랑을 직접적으로 고백하는 글들을 여러 편 남김으로써 부조리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를 준다.<br>"그렇다, 나는 현존한다. 지금 이 순간 놀라운 건, 내가 더 이상 더 멀리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종신형으로 갇힌 사람처럼 - 그에겐 모든 것이 현재다. 또한 내일은 오늘과 같을 것이며 다른 모든 날도 마찬가지이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왜냐하면 인간이 자신의 현존을 인식한다는 것은 더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영혼의 상태를 드러내는 풍경이 있다면 더없이 천박할 것이다. 해서 나는 이 지역 곳곳에 걸쳐, 내 것인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에게 공통된 죽음의 맛과도 같은 이 지역의 무언가를 뒤따랐다. 이제는 그림자가 사선으로 드리운 돌기둥들 사이로 불안한 기운이 마치 상처 입은 새처럼 대기에 녹아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에 깃든 이 불모의 명징성. 불안은 산 자들의 가슴에서 싹튼다. 하지만 고요가 이 살아있는 가슴을 뒤덮으리라. 이것이 내 통찰의 전부다. 해가 점차 기울어가고 소음과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잿가루에 덮여 잦아듦에 따라 스스로에게 배제된 나는, 내 안에서 '아니야'라고 말하는 저 느릿한 힘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다."&nbsp; (p.34)<br>꽤나 힘든 삶을 살았던 카뮈는 그의 곁에 늘 '죽음'을 두고 살았던 듯하다. '명징한 의식을 끝까지 간직하여, 넘쳐나는 내 모든 질투와 공포와 함께 나의 최후를 지켜보고 싶다.'고 썼던 카뮈는 1960년 결국 자동차 사고로 그의 삶을 마감함으로써 그의 최후에 대한 바람마저 이루지 못했지만, 결국 죽을 운명인데 왜 태어났으며, 왜 살아가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다른 어떤 사람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낙천주의자로 살았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넘쳐나는 질투'를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카뮈는 어쩌면 알제의 여름처럼 그의 행복을 젊은 나이에 모두 소진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처럼 그의 삶은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불태우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진실'만 추구했는지도 모른다.<br>"나는 진보에 찬동하기 위한 이성도 그 어떤 역사 철학도 믿지 않지만, 적어도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인식하면서 부단히 발전해 왔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조건을 극복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보다 더 잘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순을 안고 있지만 모순을 거부해야 하고, 그것을 줄이기 위해 응당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간의 임무란 자유로운 영혼들의 끝없는 불안을 가라앉힐 몇 가지 처방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찢어진 것을 다시 꿰매야 하고, 너무도 명백하게 부당한 세계 속에서 정의를 꿈꿀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며, 세기의 불행에 중독된 민중들에게 행복이 의미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초인적인 과제다. 하지만 인간이 완수하는 데 오래 걸리는 것을 초인적인 과제라 일컫는 것이고, 그뿐이다."&nbsp; (p.118)<br>카뮈의 글에 매료되는 까닭은 그의 글이 때로는 선동적이고, 때로는 진지하며, 때로는 철학적이고, 아주 가끔 시적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마치 인간의 희로애락을 조율하듯 그가 쓰는 한 편의 에세이 안에서 다채로운 인간의 감정을 적절히 배합하고 있는 것이다. 배를 타고 긴 여행길에 나선 어느 여행자의 감성으로 우리는 깊은 시름을 밤바다에 던져버릴 수도 있고, 쏟아질 듯 빛나는 뭇별에 탄성을 쏟아낼 수도 있다. 대문호의 글에는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현학적인 문장들이 가득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이 카뮈의 에세이집 &lt;결혼. 여름&gt;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가볍게 무너지고 만다. 그의 글은 너무나 감각적이고, 그럼에도 그의 글은 끝에 도달할 수도 없는 깊은 철학적 사유를 제공한다.<br>"달이 솟았다. 달은 우선 해수면을 어렴풋이 비추고는 더 높이 올라가 부드러운 물 위에 글을 쓴다. 마침내 중천에 이른 달이 바다의 통로 전체를 환히 비추며, 하늘에 흐드러진 은하수가 배의 움직임과 더불어 캄캄한 대양 속의 우리를 향해 무한히 흘러내린다. 이것이 바로 내가 요란한 빛과 알코올과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간절히 불렀던 충실한 밤, 신선한 밤이다."&nbsp; (p.182)<br>카뮈의 에세이집 &lt;결혼.여름&gt;을 읽는 독자들이 책에 밑줄을 긋고, 책을 읽은 느낌을 서로 공유하기도 하고, 가까운 이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하는 등 지금 막 출간한 책인 양 각별한 애정을 쏟는 까닭은 그의 생각이나 삶을 대하는 자세가 시대를 관통하여 현대인인 우리에게 전달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라,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카뮈 자신이 나의 생각은 이렇다는 것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그가 지녔던 삶의 철학을 배우고 각자의 삶에서 실천하고 싶은 욕구가 불끈 솟는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그저 불운일 뿐이나,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행'이라고 썼던 카뮈의 말처럼 '오늘날 우리 모두는 이 불행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썼던 노희경 작가의 에세이도 떠오른다. 우리는 점점 한여름의 무더위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086/69/cover150/k3728340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0866992</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45372</link><pubDate>Sat, 20 Jun 2026 16: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45372</guid><description><![CDATA[밖에는 지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느긋하고 고즈넉한 풍경입니다. 거실 창문을 닫고 약하게 에어컨을 틀어 놓은 탓에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상 창문을 열어 바깥공기를 끌어들인다면 지금의 뽀송한 공기 속으로 습하고 텁텁한 알갱이들이 삽시간에 몰려들어 이 기분을 단박에 바꿔놓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계절과는 다르게 여름에 내리는 비는 습기와 텁텁한 느낌을 대기 중에 과도하게 주입함으로써 비 내리는 풍경으로부터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차분한 느낌은 사라지고 원인도 알 수 없는 짜증만 한껏 포집하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불쾌지수라는 건 아마도 그런 것일 테지요. 낯섦이 주는 상쾌함과 신선함은 온데간데없고 괜한 짜증만 차오르는 것 말입니다.<br>3월 말에 군을 제대한 아들은 1달 이상의 긴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꽤나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 듯합니다. 곧 있을 복학을 준비하면서도 말이죠. 얼마 전에는 에어컨 청소와 커튼 세탁을 하더니 요즘은 곧 있을 사진 전시회 준비에 열심이기도 하고, 같은 과 친구와 함께 전공 분야의 공모전도 준비하는 듯합니다. 나는 아들에게 이따금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단지 의무감 때문에 하는 일이라면 하지 말거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설령 내가 나중에 늙고 병들어 네가 보살펴야 하는 상황이 올지라도 마음이 내키지는 않지만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이라는 의무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거나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곤 합니다. 부모라고 할지라도 자식의 인생을 방해하거나 간섭할 권리는 없다는 게 나의 지론입니다. 그로 인해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을지라도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너의 인생이라고.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이 종종 나타나지만 그때마다 한 번쯤 '이게 과연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br>김보영 작가의 소설 &lt;당신을 기다리고 있어&gt;를 읽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테지만 이 소설은 애초에 지인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메일을 받은 데서 소설 집필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메일의 내용인즉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결혼을 할 예정인데, 남편과 아내 모두 팬이니 프러포즈용 소설을 써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프러포즈를 하면서 낭독할 용도로요.' 소설은 그리하여 열다섯 통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얇고 단순한 구조일 수도 있는 이 소설이 편지라는 특수한 전달 도구를 만나 꽤나 큰 시너지를 창출하는 듯합니다.<br>"나는 나이를 먹었어. 하루에 하루씩, 한 달에 한 달씩, 한 해에 한 살씩, 시간을 몸에 쌓으며 살았어. 그러니까 나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야. 10년 전보다 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어. 몇백 년 전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어. 내일은 하루만큼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야. 내년에는 또 한 해만큼 그렇게 될 거야."  (p.87)<br>서서히 비가 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각자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살아가면서도 의무감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에 매달리느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하는지도 모릅니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던 한 사람으로서 후회가 전혀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반 여건만 허락한다면 굳이 그런 의무감으로 자신의 삶을 채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슴 뛰는 일만 하면서 살기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아무튼 6월, 아무튼 새벽 - [아무튼, 새벽 - 나는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새벽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41954</link><pubDate>Thu, 18 Jun 2026 15: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419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8200&TPaperId=173419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6/77/coveroff/k4521382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8200&TPaperId=173419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무튼, 새벽 - 나는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새벽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a><br/>박수영 지음 / 제철소 / 2026년 05월<br/></td></tr></table><br/>새벽이 주는 첫 감각은 언제나 지난밤에 먹은 야식으로 인한 팅팅 불은 부기와 한껏 둔한 감각이 주는 답답함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푸석푸석한 감각에 어느 정도의 매끈한 생명력이 도는 데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밤새 멈춰 있던 기계에 윤활유를 치는 시간이랄까. 그러나 그 시간은 늘 비슷하거나 한결같은 짬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세월이 갈수록 지체되거나 늦어진다. 말하자면 내 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통제하기 위해 가만히 기다려야 하는 그 짧은 시간의 답답함을 나는 수십 년 동안 줄곧 지켜보면서 하루하루의 내 삶을 연명해 왔다. 하루를 살기 위해 몸의 균형을 잡는 그 시간, 어쩌면 내 몸의 중심추를 맞추는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도 무리 없이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br>"새벽은 익숙한 곳에서만 귀한 시간인 걸까. 집에선 새벽이 끝나가는 게 늘 아쉽기만 했는데. 물론 그건 새벽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아침을 기다릴 이유가 없어서이기도 했다. 아침이 온들 오늘도 가난하기밖에 더 하겠나, 빚밖에 더 늘겠나, 그런 생각만 했으니까. 그랬던 내가 오사카의 퀴퀴한 숙소에 누워 아침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니. 여행용 가난이 오사카까지 따라온 게 분명했다."&nbsp; (p.53)<br>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나는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아파트 인근의 산에 올라 몸을 풀고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게 그 일차적인 목적이다. 말하자면 나는 비싼 생명보험에 가입할 능력이 되지 않는 탓에 매일매일의 규칙적인 운동을 선택했을 뿐이다. 사는 동안 내 몸을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관리하려는 게 나의 바람이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가능할지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새벽은 늘 그런 바람과 목적으로 채워진다.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면 씻고, 아침을 먹고, 출근을 서두른다. 변하지 않는 나의 새벽 루틴은 마치 주인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로봇의 움직임처럼 단조롭고 칙칙할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에는 말이다. 그러나 매일매일이 조금씩 달라지는 숲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누구보다도 먼저 계절을 감지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자부심은 내게 있어 크나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박수영 작가의 에세이 &lt;아무튼 새벽&gt;을 읽으면서 나는 새벽에 깨어 있는 사람들의 기분도, 하는 일도, 목적도, 그 시간에 깨어 있는 이유도 각자가 다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이해했다.<br>"새벽인데도 기온은 떨어질 기미가 없고 습한 기운까지 가득 차서 두 걸음만 걸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였다. 그런 날이면 더 많은 쓰레기가 길 위에 버려지는 것 같다. 카페 앞에 버려진 일회용 커피 컵 안에는 대부분 얼음이 녹아 탁해진 물과 담배꽁초, 휴지 같은 것들이 섞여 있었다. 사람들은 컵들이 모여 있는 벤치를 쓰레기통으로 인식했고 환경공무관은 새벽마다 쓰레기통을 벤치로 되돌려놓기 위해 그 속에 든 오물들을 일일이 건져냈다. 바닥을 더럽히는 사람들은 바닥 닦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건 웨딩홀에서 배운 뼈아픈 진실이었다."&nbsp; (p.129)<br>영화배우가 꿈이었던 작가는 학교에 지각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새벽까지 영화를 보고, 일기를 쓰고, 새벽 어스름에 자신의 비밀을 숨기던 소녀였다. 이십대가 된 작가는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하고, 언니와 오사카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면서 학창 시절과는 다른 느낌의 새벽을 경험하게 되었지만 아빠를 보며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 그 새벽에 녹아 있었다. 이렇듯 작가에게&nbsp; 새벽은 자신의 감정이나 비밀을 마음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아기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 새벽은 '잠들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잠들 수 없는 시간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새벽을 사는 다른 생명체를 돌아보게 된다. 길고양이 급식소를 챙기고, 아픈 고양이 후디를 돌보고, 새벽 배송 기사와 환경공무관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도 한다. 새벽은 작가에게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감각된다.<br>"후디를 구조한 뒤에도 새벽이 되면 바깥으로 나갔다. 화단 안쪽이나 건물 틈새에 설치해둔 급식소를 들키지 않으려면 새벽의 도움이 절실했다.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곳의 유일한 단점은 들고 나는 모습이 오히려 눈에 잘 띈다는 것이라 인적이 없는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그런데 만일 그 앞에서 누군가 담배를 태우거나 전화 통화라도 하고 있다면 그날의 계획은 실수로 건드린 도미노처럼 몽땅 쓰러져버린다. 그러니까 새벽 순찰은 도미노 블록을 일일이 본드로 붙이는 작업인 셈이다. 후디가 가르쳐준 다소 번거롭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 새벽을 이용하는 것."&nbsp; (p.99~p.100)<br>오늘도 나는 새벽 5시 30분에 집에서 나와 쓰레기장을 정리하는 아파트 경비 아저씨와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아파트 후문의 이면도로를 건너 산에 올랐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청설모 한 마리가 등산로에서 무언가 주워 먹다가 그 모습을 내게 들킨 듯 잰걸음으로 후다닥 자리를 뜨고, 어제 잠깐 내린 소나기 탓인지 등산로에 떨어진 밤꽃이 어지러웠다. 새벽 풍경은 이렇듯 매일매일이 다르다. 작가와는 다르게 단지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해 새벽 시간을 보내고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새벽은 다른 기억으로 채워질 터, 내가 보았던 오늘의 새벽은 서둘러 일터로 향하는 어느 트럭 기사의 모습과 아파트 공사현장으로 향하는 부지런한 일꾼들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어딘가 모르게 분주하고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아무튼 6월, 아무튼 새벽이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6/77/cover150/k4521382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46771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40259</link><pubDate>Wed, 17 Jun 2026 17: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40259</guid><description><![CDATA[내가 정치에 관심이 많거나 정치판에 뛰어들고픈 야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달리 생각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판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격언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지금처럼 딱 들어맞았던 적이 있을까 싶다. 사실 우리나라의 보수 정당은 개개인의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할 뿐 신념이나 가치관은 뒷전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이익만 된다면 웬만한 일로 분열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보 정당의 경우 구성원 개개인의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이 일어나지 않고 그보다는 오히려 신념이나 가치관 혹은 도덕성의 기준에 따라 강한 결속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그들이 정치적 약자의 입장에 있을 때, 더욱 강하게 뭉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보수 정당은 그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였을 때, 나눌 수 있는 돈과 권력이 많지 않은 까닭에 특별한 정치적 이슈가 없는 상황에서도 지리멸렬하거나 사분오열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은 성향으로 볼 때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은 공히 그들이 자체적으로 분열할 공산이&nbsp;그 어느 때보다 높은&nbsp;시점에 놓여 있다고 할 것이다.<br>최근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의 내부 움직임을 보면 그런 양상이 명확해진다. 그들의 자체적인 분열을 획책하고 유도한 것이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쪽의 계략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중대한 이권이 걸린 검찰과 언론의 움직임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민주당 내에서 당권에 도전하는 신흥세력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한 졸렬한 계획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대해진 민주당의 분열을 획책하기 위한 적정한 시점과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상황을 유도했던 어둠의 세력이 의도한 바는 일정 부분 성공했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사실 행정부와 국회를 장악한 명실공히 여당으로서의 민주당은 역사적으로 지금과 같은 거대 권력을 잡았던 선례가 없다. 그런 까닭에 정당 구성원이나 지지자들 대부분은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도 치명적인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고, 그런 안일한 생각이 당내의 권력투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위기의식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장밋빛 미래만 존재하는 것이다.<br>이런 상태의 민주당을 분열로 이끄는 것은 너무도 쉬워 보인다. 그들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만 제거하면 되는 것이다. 예컨대 확실한 차기 대선주자나 명망 있는 정치비평가, 민주당을 지지하고 확실하게 그들의 의사를 전파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나 단체만 제거한다면 민주당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이 들으면 비열한 방법이라고 하겠지만 언제나 이인자인 누군가 또는 그 아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 누군가를 부추겨서 '일인자인 아무개만 제거하면 당신이 곧바로 일인자가 되는 거야'라는 악마의 속삭임으로 구슬리거나 약간의 돈과 권력으로 그들을 유혹한다면 만년 이인자인 그들을 너무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진보 진영의 차기 대선주자 1위로 부상했던 조국을 제거하였고, 진보진영의 잔잔바리 유튜버들로 하여금 빅 스피커인 김어준과 최욱을 공격하게 하여 매불쇼가 휴방을 결정하도록 종용하였고, 가장 영향력 있는 유시민 작가를 공격함으로써 노무현 재단으로부터 물러나게 하였다. 이런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동원하여 치밀하게 계획하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br>나는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채 처음에는 청년재단 이사장인 오 씨의 개인적인 일탈쯤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잔잔바리 유튜버들의 동시다발적인 공격과 그것으로 인한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의 실망과 배신감 또는 치욕 등의 감정은 봉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하고 말았다. 30년 이상 민주당을 지지하고 언제나 그들에게 표를 몰아주었던 나도 다시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다고 내가 반대 진영의 국민의힘을 지지할 리는 없지만 민주당은 이제 진절머리가 나는 게 사실이다. 그들 역시 국민의힘과 하나 다를 게 없음을 이번 사태를 통하여 확인했다. 민주당 당원은 아니었지만 내 주변에서 민주당을 지지해 오던 사람들 역시 강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대통령 지지율이나 민주당 지지율이 크게 하락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도출된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좋은 글은 작가의 체력에서 나온다 - [작가살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38281</link><pubDate>Tue, 16 Jun 2026 16: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382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532819&TPaperId=173382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536/61/coveroff/k6825328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532819&TPaperId=173382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작가살이</a><br/>애니 딜러드 지음, 이미선 옮김 / 공존 / 2018년 03월<br/></td></tr></table><br/>깊은 사유와 철학적 고뇌가 담긴 문장 또는 문학적 은유나 통찰을 담은 문장은 대중의 지지와 선택을 받기 어렵다. 소수의 선호층만 존재할 뿐 대중으로부터의 폭넓은 인기는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역설적이지만 사실이다. 그러므로 좋은 책일수록 읽는 사람이 적고, 대중으로부터의 관심은 멀어진다. 이와 같은 역설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한 까닭에 작가의 체력을 소진하는 측면이 있다. 현대인의 상식적인 기준으로 볼 때 이와 같은 책을 쓴다는 것은 작가에게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 듯 보인다. 이런 까닭에 독자가 좋은 책을 만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과 안목이 필요하다.<br>"전에 마음에 드는 어려운 책을 쓴 적이 있다. 그것은 북서 해안에 있는 한 섬에서 보낸 사흘 동안을 묘사한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한 섬에서 시작했다가 글의 대부분을 다른 섬에서 썼다. 그 책을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의 상당 부분은 시로 쓰였다. 책의 주제는 '영원과 시간의 관계' 그리고 고통받는 무고한 사람들에 관한 문제였다. 한때는 그것을 산문으로 펴낼 작정도 했었다. 그러나 산문이 너무 강렬하고 강조되는 바람에 산문으로 묘사하는 세계에 너무 많은 의미가 함축됐다. 그래서 한두 단어를 더 쓴다는 생각만으로도 피곤해졌다. 나 자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 작품에 어떻게 매일 한 문장이나 한 문단을 덧붙일 수 있을까? 글의 어조는 격하고 들떠 있었다. 그것이 놓여 있는 방 쪽을 바라볼 때마다 졸렸다."&nbsp; (p.79~p.80)<br>애니 딜러드가 쓴 &lt;작가살이&gt;는 글 쓰는 이로서의 작가가 갖게 되는 고뇌와 생활 방식 등 작가의 삶 전반에 대해 쓰고 있다. 글쓰기의 기술과 요령을 다루는 책은 많지만 글을 쓰는 주체인 작가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쓴 책은 흔치 않았던 까닭에 애니 딜러드가 작가로서 자신의 삶을 공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꽤나 흥미 있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글 쓰는 이의 환경과 생활 방식, 글로 쓰이는 대상(사물, 타인, 때로는 자신)과의 교감, 의식의 흐름과 통찰력, 작가로서의 고통과 기쁨 그리고 열정과 깨달음 등을 매우 솔직하게 들려줌으로써 작가를 꿈꾸는 예비 작가나 기성 작가들에게 다소나마 힌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br>"작가는 세상이 아니라 문학을 공부한다.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그는 세상을 놓칠 수가 없다. 햄버거를 사거나 비행기를 타면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보고한다. 그는 자신이 읽을 책을 주의해서 선택한다. 결국은 그것이 그가 쓸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배울 것을 조심해서 선택한다. 결국은 그것이 자신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nbsp; (p.112)<br>독자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작가는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작업이니 체력은 그닥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작가의 체력이 떨어지면 그가 쓰는 글은 그에 비례하여(때로는 그 이상으로) 추락하고 만다. 예컨대 젊은 시절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시로 씀으로써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김지하 시인도 말년에 이르러서 글을 쓰지 못할 처지에 처하자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기도 했고, '철도원 삼대'를 썼던 황석영 작가 역시 그의 작품이 형편없어지자 유튜브에 출연하여 엉뚱한 사설을 늘어놓기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이 노화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작가 역시 늙어감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체력이 다하는 순간까지 글 쓰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러자면 자신의 체력을 꾸준히 관리하고 유지하는 일이 작가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체력적으로나 시간관리의 측면에서나 다른 작가의 모범이 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실로 존경스럽기만 하다.<br>"글 쓰는 이는 지붕 너머를 바라보거나 구름 너머를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긴 사다리를 오른다. 그는 책을 쓰고 있다. 신발 신은 발이 한 번에 하나씩 둥근 발디딤대를 딛는다. 그는 서두르지도 쉬지도 않는다. 그의 발은 가파른 사다리의 균형을 느낀다. 허벅지의 긴 근육이 사다리의 동요를 막는다. 그는 어둠 속에서 할 일을 하며 꾸준히 오른다. 끝에 도달하면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햇빛이 그에게 쏟아진다. 밝고 광활한 광경에 그는 놀란다. 끝이 있다는 사실을 그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 아래쪽 풀밭 위에 놓인 사다리의 두발을 내려다보면서 그는 기겁한다."&nbsp; (p.39~p.40)<br>한낮 더위가 한여름의 그것처럼 무섭다. 바야흐로 체력이 중요한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작가뿐만 아니라 생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더위에 지쳐 쓰러지지 않으려면 자신의 체력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에 도래한 것이다. 체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오늘과 같은 더위에도 지쳐 자신이 할 일을 마저 하지 못한다면 장마 뒤에 찾아오는 무더위에는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작가의 글도 이와 같아서 체력이 떨어진 작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금세라도 흐물흐물 녹아내릴 듯 기운이 없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쓴 작품이 맘에 들어 꾸준히 팬을 자처하던 내가 이제는 도저히 더는 읽을 수 없을 듯하여 포기하게 된 작가도 여럿이다. 하루키도 언젠가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슬픈 현실이지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536/61/cover150/k6825328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5366115</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일상의 기록</category><title>햇살이 유난히 따가웠던 하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32581</link><pubDate>Sat, 13 Jun 2026 17: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32581</guid><description><![CDATA[햇살이 따가웠습니다. 볼일이 있어 낮에 잠시 외출을 했던 나는 녹색 신호등을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 그늘에서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폐지 리어카를 끄는 어느 노인이었습니다. 흰색 야구모자에 얇은 긴소매 티셔츠를 입고, 크고 헐렁한 운동복 바지를 걸쳐 입은 노인은 옷에 자주 오물이 묻는 탓인지 앞치마도 꼼꼼히 챙겨 입은 모습이었습니다. 옷 밖으로 드러난 손과 얼굴은 온통 까맣게 타서&nbsp;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햇빛 속에 있었는지 자연스레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뼈만 남은 앙상한 체구로 무거워 보이는 폐지 리어카를 어떻게 끌 수 있을지 지켜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걱정이 될 지경이었습니다.<br>노인은 횡단보도 근처의 작은 상점에서 모아 놓은 종이 상자를 말없이 뜯고 차곡차곡 간추려 리어카에 싣고는 준비한 노끈으로 단단히 묶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느라 녹색 신호등이 켜진 것도 몰랐습니다. 노인이 떠나면 나도 길을 건너야지 생각했습니다. 종이 상자를 모두 싣고 바로 출발하려니 생각했던 노인은 자신이 종이 상자를 뜯고 간추리느라 인도에 떨어뜨렸던 작은 쓰레기들을 하나 남김없이 줍고 있었습니다. 그의 굽은 허리에 강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워낙 뼈만 앙상히 남은 마른 체구인 까닭인지 땀은 흐르지 않는 듯했습니다. 오히려 건조하고 푸석푸석한 피부에 굵은 핏줄만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다시 녹색 신호등이 켜지자 노인은 힘겹게 폐지 리어카를 끌고 횡단보도를 따라 길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폐지 더미 뒤에 숨어서 슬쩍 리어카를 밀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햇살이 무척이나 따가웠습니다. 애니 딜러드가 쓴 &lt;작가살이&gt;를 읽고 있습니다. 나는 작가가 꿈이거나 책을 쓰겠노라 나선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작가의 삶에는 이상하게 끌립니다.<br>"글쓰기는 한 줄의 단어를 펼쳐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줄은 광부의 곡괭이이고 목각사의 끌이며 의사의 탐침이다. 글 쓰는 이가 휘두르는 대로 그 줄은 그에게 길을 파서 내준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땅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nbsp; 그것이 막다른 골목일까, 아니면 진짜 주제를 찾아낸 것일까? 그 답은 내일 나타날 수도 있고 내년 이맘때쯤 나타날 수도 있다."&nbsp; (p.11)<br>코스피 지수가 8,000을 넘고, 어느 기업에서는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6억여 원을 준다지만 우리 사회의 이면에는 여전히 죽음의 그림자가 상존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고. 그러나 갈수록 메말라가는 인정으로 인해 아직 오지도 않은 성하(盛夏)의 더위가 마치 살인마의 칼끝처럼 두렵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이름도 모르는 어느 노인의 폐지 리어카를 밀며 나의 양심마저 그 수레에 두고 돌아선 듯 느꼈습니다. 햇살이 무척이나 따가웠던 하루였습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평온한 주말 보내시기를 - [우당탕탕 독일여자 명상기 - 명상과 마음 경영이 내 삶을 바꾸기까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30986</link><pubDate>Fri, 12 Jun 2026 17: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3309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9186&TPaperId=173309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04/85/coveroff/k8221391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9186&TPaperId=173309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당탕탕 독일여자 명상기 - 명상과 마음 경영이 내 삶을 바꾸기까지</a><br/>오선우 지음 / 보민출판사 / 2026년 05월<br/></td></tr></table><br/>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는 언제나 한아름의 슬픔과 아쉬움이 남는다. 영원한 이별이건 잠깐 동안의 이별이건 이별의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외며 쓸쓸한 날들을 견딘다. 오선우 작가의 에세이 &lt;우당탕탕 독일여자 명상기&gt;는 시종일관 유쾌한 문체로 이어지지만 사실 그 많은 맑음 속에는 언뜻언뜻 흐림의 글자들이 어른거린다. 아무리 성격이 좋고 유쾌한 사람일지라도 타고난 성격이 그러할 뿐 삶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살다 갈 수는 없는 일,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저마다의 무늬처럼 제각각의 아픔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게 마련이다. 대학을 마치고 20대 중반에 독일로 떠났던 작가는 40대 후반이 되어 귀국한다. 실은 3주간의 휴가를 가족과 함께 보낼 요량으로 귀국한 것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한때 모델로도 활동했던 예쁜 동생에게 암이라는 중병이 찾아온 것이다.<br>""엄마, 내가 가도 나 때문에 울지 마셔, 난 뒤도 안 돌아보고 갈 거야. 신나게 갈 거야. 난 하늘에 뜬 달이 꼭 눈 같아. 내가 엄마를 하늘에서 보며 늘 보호해 줄게. 엄마 고마워." 그것이 동생의 마지막 인사일 줄은 엄마도 몰랐다. 그렇게 너무 어이없게 동생이 가버렸다. 암 투병 5년을 넘겨 가족들이 모두 한숨 놓은 상태였다. 어제까지 말하고 함께 웃던 동생이 없다. 갈 것을 알고 있었는지 다음날, 동생이 주문한 옷이 택배로 도착했다. 검은색의 상하의로 한 벌이다. 동생에게 그 옷을 입혀 보냈다."&nbsp; (p.22)<br>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동생이 떠나고 5개월 만에 아빠도 떠나셨다. 이젠 낯선 곳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으로 한순간에 공간 이동을 한 작가는 몸과 마음이 폐허가 된 채로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고, 이것이 힘들어 독일로 떠나려던 작가를 다시 눌러 앉힌 건 "너까지 가면 어떡하니..."라는 엄마의 한마디였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 명상이었다.<br>"이젠 일상 속 마음 경영을 통해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욕망을 타인 보듯 객관적으로 흥미롭게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화나는 내가 그 화에 휘둘리지 않고, 그 화나는 나를 지켜보는 것이다. 흥미롭게 나를 바라볼 때 여유롭게 대응해 가는 나를 만난다. 스톱! 하고 멈추면 습관적으로 내려던 짜증과 불만을 다룰 수가 있게 된다. 이건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이해하는 일이었고, 무의식 속에서 올라오는 익숙한 반응들과 패턴들은 나도 모르게 실행되는 자동 재생 목록 같은 거였다."&nbsp; (p.106)<br>나를 포함하여 내 주변의 모든 생명체는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치솟는 화를 어찌하지 못한다. 나의 뜻에 반한다는 것, 나의 의견과 다르다는 건 언제나 화를 유발한다. 나의 의도와 다르게 행동한다는 이유로 내가 화를 내는 것처럼 상대방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부딪히면서 작디작았던 화는 증폭되고 확대된다. 이 세상은 마치 저마다가 배출하는 화의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세상이 온전하게 굴러가게 하려면 누군가는 화를 멈추어야 한다. 배턴 터치를 하듯 건네받은 화를 다음 주자에게 넘겨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화를 내는 자신을 보면서 '그럴 수 있어' 하고 쿨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명상이다.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나를 올바르게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오선우 작가의 &lt;우당탕탕 독일여자 명상기&gt;는 명상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쓴 책인 동시에 자신처럼 위기에 처한 다른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마음 처방전이기도 하다.<br>"생각해 보면, 삶이란 게 유독 나만 힘든 것도 아닌데, 그때는 참 사는 게 버거웠습니다. 곰곰이 나를, 그리고 내가 살아온 방식을 보니 감정이 나를 불태웠고, 냉랭하게 했으며, 가끔은 이 삶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을 만들었음을 알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불쑥 올라오는, 또는 욱하고 올라오는 그 감정에 묶여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관계가 끝이 나 버렸고,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고, 천 년 동안 빛이 비추지 않았을 것 같은 어두운 동굴에 혼자 있는 것처럼 절망스러웠을 때, 그때 명상과 마음 경영을 만나게 되었습니다."&nbsp; (p.120~p.121)<br>명상은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동시에 소원하던 나 자신과의 관계도 나아지게 한다. 자신에게 한없이 엄격하던 사람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적당히 눙치고 넘어갈 수만 있다면 타인과의 관계 역시 좋아질 것은 분명하다. 짜증이나 화가 쌓이지 않는 까닭이다. 그렇게 변할 수 있는 첫걸음은 역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이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의 삶을 꾸려가기 위해 불완전한 나와 불완전한 당신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또다시 찾아온 주말, 누군가로 인해 당신에게 내재되었던 화가 불끈 치솟는 일 없이 평온한 날들이 되기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04/85/cover150/k8221391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04854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