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첫눈이 내렸다. 첫눈 내리는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사람들. 처음이라는 설렘과 기대는 차치하고서라도 첫눈에 대한 느낌은 우리 모두에게 각별한 것이어서 "와~" 하면서 몰려드는 사람들의 시선 너머로 아련한 그림움이 물방울처럼 맺혔다. 그렇게 우리는 첫눈 내리는 풍경에 한동안 넋을 놓았다. 그리움! 딱히 떠오르는 대상이 없을지라도 첫눈과 함께 누렸던 가슴 따뜻했던 경험과 기억들. 우리는 어쩌면 닿을 수 없는 그런 기억들에 대한 간절한 욕망에 사로잡히는지도 모른다. 첫눈과 함께 말이다.


어제는 온라인 민원 서비스인 '정부24'가 종일 먹통이었다. 현 정부의 특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현 정부의 책임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이나 부의 창출에만 관심이 있을 뿐 대다수 서민의 삶의 질 향상이나 복지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사실 그런 증거들은 차고도 넘치지만 가축 전염병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는 뉴스에 보도조차 되지 않던 전염병이 보수당이 집권하면 이상하게도 전국적으로 창궐하여 집권 말까지 이어지곤 한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아프리카 돼지 열병, 이제는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럼피스킨병에 이르기까지 각종 전염병이 농민들을 괴롭힌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전염병은 사실 예방이 중요한데 보수정권의 위정자들은 서민들의 삶에 관심이 없다 보니 병이 확산한 후이거나 언론의 질타가 이어진 후에나 움직이기 때문이다. 사후약방문인 셈이다. 그런 조치는 집권 말기까지 이어진다. 잘 돌아가던 '정부24'가 왜 갑자기 먹통이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스티븐 킹이 쓴 동화 <페어리 테일>을 읽고 있다. "쓰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 뒤 이 소설을 답으로 제시했다고 하는데, 작가는 아니지만 나 역시 스티븐 킹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이다. 게다가 해피엔딩의 아름다운 동화를 쓰고 있노라면 쓰는 일 자체가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언제 찾아오는지 절대 알 수가 없다. 나도 이때가 보디치 씨와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아차렸다. 그는 좀 더 버티다가 (살짝) 긴장을 풀고 내게 이마와 뺨을 맡겼다."  (1권 p.141)


"아빠는 나를 끌어안고 뺨에 입을 맞추고는 왔던 길로 언덕을 내려갔다. 나는 아빠가 가로등 불빛 속으로 번번이 등장했다가 다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여전히 잃어버린 세월을 떠올리며 아빠를 원망할 때가 있었다. 그건 내게도 잃어버린 세월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다시 돌아와서 기쁜 마음이 훨씬 컸다."  (1권 p.189)


눈이 그친 주말 하늘은 어둡고 을씨년스럽다. 첫눈에 대한 두근거리던 느낌은 하루 혹은 반나절로도 충분했었나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소슬한 한기를 느낄 만큼 차갑다. 계절의 순환을 무시한 채 여름에서 겨울로 펄쩍 순간이동을 한 듯한 날씨. 벚나무 잔가지에 지저분하게 남아 있던 잎사귀들은 이제 다 떨어지고 없다. 검은빛의 나목. 무채색으로 변하고 있는 지상의 변화, 말하자면 처연한 색의 함몰에 비해 쪽빛으로 반짝이는 하늘은 더없이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고 있다. 기온이 낮아질수록 청명한 빛깔을 드러내는 하늘의 높고 고고한 자태를 나는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공기는 맑지만 코끝이 쨍한 추운 날씨와 미세먼지 가득한 따뜻한 날씨 중 선택하라면 나는 언제나 전자에 한 표를 던지는 사람이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 시오니스트들의 무차별적인 공습으로 인해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하고 있다. 그들의 잔인함이 도를 넘고 있는 것이다. 규모는 다르지만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그들이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사실 모든 죽음은 개별적이지만 숫자로 발표되는 뭉뚱그려진 죽음은 단지 하나의 숫자에 불과하다. 우리가 숫자에 대고 추모나 애도를 표하지 않는 것처럼 각각의 죽음과 그에 따른 슬픔을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는 다만 하나의 숫자에 불과할 뿐 인간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태원 참사가 터졌을 때 우리나라 대부분의 언론들 역시 사망자의 숫자에만 집착했을 뿐 사망자 개개인의 개별적인 슬픔을 보도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도 아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을 어찌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말을 맞아 유럽 곳곳에서는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가 잇따랐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30만 명 이상의 시위 참가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적어도 그들은 지난 역사에서 저질렀던 자국의 실수가 현재의 가자지구 참극을 불러왔음을 인식하고 있을 터, 우리 이웃의 죽음을 나의 슬픔인 양 애도할 수 있는 민간인이 피도 눈물도 없는 각국 정부의 정치인들을 질타하고, 선거를 통해 끌어내리고, 더 이상의 비극을 내 주변에서 용인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런 비극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소맷귀를 파고드는 찬바람에 계절을 실감하고 있다. 겨울이 오면, 그리고 한 해를 보내는 연말이면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진정 따뜻한 피가 흐르는 한 사람의 인간인가 아니면 숫자에 대고 형식적인 애도를 표하는 빌어먹을 놈인가 하는 문제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단풍의 색깔이 예년에 비해 칙칙하고 곱지 않은 것은 기후 탓이리라. 인간이 제 손으로 제 발등을 찍는 일이 어디 이것뿐일까마는 겨울로 가는 길목의 11월에 30도를 넘나드는 더위는 좀 심하지 않나 싶다. 계절을 잊은 날씨에 섬뜩한 느낌이 들 만도 하련만 반복되는 이상기후에 면역이 된 사람들은 그저 무감각할 뿐이다. 계절을 잊은 날씨와 철이 들지 않은 사람들. 이상기후와 정신이상의 콜라보. 뭐가 문제인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는, 인지 기능마저 고장 난 사람들이 한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른 채 거리를 헤매고 있다. 비가 예보된 주말 날씨는 끄물끄물 그저 흐림.


정부의 2024년도 R&D 예산 삭감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와 반발이 심하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미래의 먹거리인 연구개발비를 대폭 줄인다면 대한민국의 비전은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대응 예산은 대폭 늘리면서 정작 필요한 예산은 없애거나 삭감하는 게 현 정부의 방침이고 보니 R&D 예산 삭감 소식이 그닥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 정책에 분개하는 후배들을 보고 있노라니 이 모든 것의 발단이 나를 포함한 무기력한 기성세대의 책임인 양 여겨져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나날이 늘어나는 무역 적자와 환율 방어를 위해 쓰이고 있는 외환보유고의 막대한 감소는 제2의 IMF사태를 부추기고 있다. 그럼에도 환율은 꾸준히 올라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이로 인한 재료비 부담 탓에 가게를 접는 상인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현실. 그럼에도 대통령 부부는 순방을 빙자한 해외여행에 열을 올리고 이런 답답한 현실을 사실대로 직보할 만큼 용기 있는 참모진은 단 한 명도 없으니 대한민국 경제의 개선 가능성은 전무한 듯 보인다. 이런 마당에 그들의 욕심은 끝 간 데 없이 치솟아 양평군 강상면으로 고속도로를 내자는 둥 김포를 서울시에 편입하자는 둥 부동산 신화를 이어가려 하고 있다.


"이게 나라냐?"는 자조 섞인 한탄은 전국 어느 곳을 가더라도 가볍게 튀어나온다. 국민건강보험의 복지혜택을 축소하고 장애인과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 대한 돌봄 서비스 등 약자에 대한 비용은 없애면서 부자들에 대한 감세와 일본을 위한 비용은 전혀 아깝지 않다는 듯 선심을 쓰고 있다. 이상기후와 정신이상의 콜라보. 그 천연덕스러운 조화가 이 가을을 더럽히고 있다. 철없는 혹은 철 모르는 사람들이 경제는 어찌 알겠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눈물이 날 만큼 높고 푸른 하늘입니다. 이런 날이면 찬바람에 요동치던 첫눈의 흩날림처럼 마음은 좀체 진정되지 않은 채 흔들리고, 시기도 특정할 수 없는 먼 기억의 숲을 하염없이 헤매거나 다가오지 않은 어느 시점의 미래를 향해 이리저리 내달리곤 합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고 잠시 동안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과도기를 거친 이후 진정한 이상적 사회가 나타난다고 예견했던 마르크스의 주장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 제일 먼저 낭만이 사라지고, 감정이 무뎌진, 이를테면 기계화된 인간만 남게 된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10.29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오늘, 푸르디푸른 하늘을 향해 눈물 한 방울 떨구었던 게 내가 할 수 있는 조촐한 추모였습니다. 이상하게도 대한민국에서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칩니다. 페리호 침몰과 성수대교 붕괴, 세월호 참사가 그렇고, 이태원 참사가 그렇습니다. 잠잠하던 묻지마 범죄도 횡행합니다. 가족 전체가 목숨을 끊는 일도 증가합니다. 이 모든 게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개별적인 사건일까요?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오직 권력과 부의 쟁탈에만 몰두한 탓에 발생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쪼그라든 출산율로 인구 자연감소가 진행되는 요즘, 사건 사고로 많은 생명이 사라진다는 건 참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월별 출생아 수가 2만 명을 밑도는 작금의 상황에서 합계출산율 0.7명선마저 무너질 날이 멀지 않은 듯합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내년도 R&D 예산과 청년 취업 지원 예산 등은 대규모로 깎을 듯합니다. 검찰 특활비나 순방 예산은 증액하면서 말이지요.


도시에서도 그렇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아이 울음소리를 들었던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은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서 은둔형 외톨이로 전락하고, 그들은 결국 분풀이 삼아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곤 합니다. 조금의 아량이나 관용도 없는 이 사회는 그들에 대한 처벌만 관심이 있을 뿐, 그들 또한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동료이자 이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하늘은 눈물이 날 만큼 높고 푸르릅니다. 단풍이 드는 나뭇잎 사이로 푸석푸석한 생명들의 아우성이 들립니다. 내일은 10.29 참사 1주기, 그들을 기억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정치뿐 아니라 어느 분야든 최고의 위치에 근접할수록 개인의 욕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개개인의 능력이나 그릇에 비해 그가 추구하는 욕심이 과하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정상적인 절차에 의한 정공법보다는 탈법이나 편법에의 유혹이 커지게 마련인데, 그것이 꼭 그 사람의 인간성이나 가치관을 대변한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나처럼 최고 권력자의 위치에 오를 가능성조차 없는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예컨대 자신이 속한 분야의 최고 권력자에게 뇌물을 제공한다거나 다른 분야(주로 정치권이지만)의 권력자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고 꾀하는 등 그 방법 또한 다양하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최고 권력자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지만, 권력을 놓고 내려오는 길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어떤 권력이든 권력의 속성상 어느 한 편에 속하지 않으면 자신의 입지가 위험해지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자신과 연대할 수 있는 편을 만들지 않으면 권력자의 입지는 심히 불안해지게 마련이고, 그 효력이나 권세 또한 약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돌아가는 대한민국 정세를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독선과 오만의 정치로 일관했던 현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자신들의 입지마저 흔들리자 지난 MB정권의 인사들과 연대하여 위기 국면을 타개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와 같은 현상이 비단 정치권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문학이나 음악, 영화나 공연 등 권력으로부터 일정 부분 거리를 유지하고 있을 듯한 예술계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언론에 노출되어 있는 정치권보다 편법과 탈법의 수위가 높으면 높았지 결코 낮다고는 볼 수 없다. 전원일기를 통해 명성을 쌓았던 배우 유인촌이 권력에 의탁하여 문화계의 수장을 맡는다거나 리더로서의 자질은 없지만 권력을 등에 업고 국방 분야의 장이 된 신원식 의원 등 우리 주변에는 그릇에 비해 과한 자리를 꿰찬 인사들이 차고 넘친다. 그런 까닭에 정치권의 어떤 선거가 있을 때마다 별 관련도 없어 보이는 문화계, 언론계, 체육계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다. 야설이나 쓰던 여당의 모 인사도 권력의 일선에서 떵떵거리고 있지 않던가. 게다가 대통령 부인과의 연루설이 파다하던 모 여인은 또 어떻고...


추석이 지나자 날씨가 급변했다. 더워서 헉헉 숨을 몰아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소슬한 바람에 한기마저 느끼게 된다. 완연한 가을로 접어든 것이다. 자연은 이렇게 한결같은데 인간의 얼굴은 매 순간이 다르다.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 산책이나 나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