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태어나 1957년 세상을 떠난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다. 뉴 룩으로서 전후 패션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디오르는 모드의 세계화, 기업화를 위한 발판을 구축하였으며 후진 양성에도 크게 기여하였던 것으로 알려진 그가 자신의 조국 프랑스도 아닌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이토록 유명세를 타는 까닭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유일 것이다. 어느 욕심 많은 여인이 디올 백을 무척이나 사랑한 데서 비롯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요즘 개인적인 용무나 공적인 업무로 외국의 지인과 통화를 할 때마다 디올 백과 김건희에 대한 사적인 농담, 사건이 터지게 된 저간의 사정과 나의 견해를 묻는 질문 등으로 인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디올 백과 더불어 김건희 씨의 명성이 세계적인 셀럽 수준으로 높아진 것에 대해 소식을 듣는 나조차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이다. 게다가 크리스챤 디올사는 자사의 상품을 어떤 보상도 없이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불철주야 애쓴 김건희 씨에 대해 사례를 톡톡히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제는 독일에 사는 지인 한 명과 길게 통화를 했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예정되었던 독일과 덴마크 순방을 취소한 것에 대해 그는 별다른 코멘트도 없이 대통령이 부인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 바람에 나는 갑자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우물쭈물 궁색한 대답을 하려는데 그분이 느닷없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떤 타당한 이유가 있겠느냐고 따져 묻는 바람에 나는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이것과 같지는 않지만 디올 백과 김건희 씨에 대한 질문은 다른 나라의 지인에게서도 여러 번 받은 바 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작금의 경제 상황과 국격의 추락을 초래한 윤석열 대통령을 선택한 국민들은 진심으로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국가의 존립과 미래를 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을 잘못 판단해서, 욱하는 마음에, 단순히 진보 정권의 재집권이 싫어서 윤석열 대통령을 선택하는 실수를 저질렀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참담한 결과를 보고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반성할 줄 모른다면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가까운 친구나 일가친척들 중에도 보수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들에게도 이따금 말하곤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국민을 위해 잘한 게 한 가지라도 있으면 말해달라고, 그것으로 나를 설득할 수만 있다면 나는 김건희 씨가 디올 백을 받았던 것도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덮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미미 2024-02-17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탄희 의원이 정치권의 혐오정치로,반사이익으로 또 이런일이 있을 수 있다고해서 심란했습니다. 워낙 이슈가 많아 다 덮히는 느낌도 들고요.

꼼쥐 2024-02-17 16:22   좋아요 1 | URL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현 정권의 무능조차 덮어주는 언론과 하루가 멀다 하고 상대편을 험담하는 정치인들의 비이성적 언어를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 행태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정치를 혐오하는 건 사실이죠. 그놈이 그놈이라는 양비론도 비등하고 말이죠. 그런 상황을 일부러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잉크냄새 2024-02-17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지자들은 인지부조화의 상태가 아닌가 싶어요. 자신의 실수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으니 오히려 그 실수를 정당화해버려 더 수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랄까요.

꼼쥐 2024-02-17 16:19   좋아요 1 | URL
실수가 실수였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몇몇의 사람들일 테고, 나머지는 알면서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일 테지요. 작금의 경제 상황과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외교 현실을 보면서도 혹은 잘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사람들이 정말 악인이죠.
 

금방이라도 꽃이 피고 새순이 돋을 것만 같은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침 운동을 하기 위해 새벽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의 아침 기온은 두꺼운 외투를 입지 않아도 추위를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인한 새벽의 쌀쌀한 기온을 느낄 새도 없이 등을 타고 촉촉한 땀이 배어 나온다. 약동하는 봄의 기운이 발끝에서 전해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절의 변화가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등산로에 버려지는 쓰레기도 차츰 증가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산에 오를 때마다 눈에 띄는 쓰레기를 주워서 내려오는 까닭에 쓰레기가 증가한다는 것은 나의 분노 게이지가 비례하여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등산로의 낙엽 더미 밑에 버려진 사탕껍질하며, 등산로의 중간중간에 놓인 벤치 주변에 버려진 검은 비닐봉지며, 쓰다 버린 마스크 등 쓰레기의 종류도 다양하다. 물론 일회용 커피 용기를 비롯한 생수나 음료를 담았던 플라스틱병들이 등산로 주변을 따라 여기저기 버려지기도 한다.


통계를 내본 것은 아니지만 도심지 주변의 산을 찾는 사람들 중 다수를 차지하는 건 역시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닐까 싶다. 아침에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노인분들인 것을 보면 말이다. 가까운 산에 올라 맑은 공기도 마시고, 자연경관도 감상하고, 더불어 등산로에서 만난 이웃들과 즐거운 담소도 나눌 수 있으니 산은 그들에게 더없이 큰 혜택을 제공하는 셈이다. 그러나 내가 하고픈 말은 그분들도 역시 염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으로부터 그와 같은 큰 혜택을 입었다면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은 물론 산을 아끼고 보호하려는 마음도 함께 들어야 하는 게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로 불거져 나온 나무뿌리를 다시 묻어주라거나 어린 묘목을 새로 심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큰 은혜를 입은 산을 망치는 짓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염치가 있다면 말이다. 사탕껍질이나 음식을 담아 온 비닐봉지를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버리면서 젊은 사람들로부터의 예의와 존경을 기대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염치가 없는 노인들이 이 나라에 차고 넘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예의도, 염치도 없는 노쇠한 정치인들이 그들을 가르치거나 그들 위에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이준석과 같은 어린 정치인으로부터 노인회장이 욕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노인이 그에 걸맞은 존경과 대우를 받으려면 염치가 있어야 한다. 자연으로부터 혹은 타인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입었다면 당연히 감사한 마음과 함께 그에 합당한 보답을 생각해야 한다. 정치인이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지지를 통해 권력을 획득했다면 마땅히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까 밤낮으로 고민할 일이지 최고 권력자에게 90도로 허리를 꺾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여당 야당을 가릴 것 없이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최고 권력자에게 잘 보일 생각만 하지 국민을 위해 헌신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러니 그런 모습만 보아 왔던 이 나라의 노인들 역시 그런 염치없는 사람들로 동화된 게 아닐까. 글을 쓰다 보니 다시 또 분노 게이지가 높아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설이 코앞까지 바싹 다가왔다. 비교적 짧은 연휴 동안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많을 터, 명절은 언제나 비용 대비 만족도(소위 가성비) 면에서 평균 점수를 밑돌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 무서워서, 혹은 자주 뵙지도 못하는 연로하신 부모님 생각에 공항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애써 고향 쪽으로 옮겨 놓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처럼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과 맞닥뜨리면 빠듯한 월급에서 설 선물과 세뱃돈, 오가는 경비 등을 지출할 생각에 절로 한숨부터 새어 나온다. 물론 이런 명절이 아니면 사는 게 바빠 조카들 얼굴 한 번 보기도 어렵지만 말이다.


요 며칠 봄처럼 따스했던 날씨는 명절을 코앞에 두고 돌변한 느낌이다. 옷깃을 파고드는 소소리바람에 제법 오싹한 한기가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아직 2월도 초순이니 겨울 추위를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이건만 워낙 따뜻한 겨울 날씨가 길게 이어졌던 까닭에 계절 감각이 둔해졌나 보다. 인터넷에서 설 선물 시세를 여기저기 훑어보던 나는 선물보다 현금이 오히려 싸게 먹히겠다는 얄팍한 계산과 함께 인터넷 서핑을 멈춘다. 잔뜩 흐린 하늘에 바깥은 여전히 칙칙한 무채색에 휩싸인 듯하고 문틈으로 새어드는 한기에 나는 이따금 나도 모르는 기침을 한다.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권여선 작가의 산문집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설날이든 추석이든 명절 때 나는 아무 데도 안 간다. 친정도 없고 시댁도 없기 때문이다. 명절에 차례도 안 지내고 함께 모이지도 않는 집안을 콩가루 집안이라 한다면 나는 콩가루 집안 출신의 콩가루이다. 이런 내 사정을 아는 사람들, 특히 내 또래의 여성들은 나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른다. 콩가루에 대한 로망을 가진 그들은 한술 더 떠 긴 연휴 동안 자유롭게 여행이라도 떠나지 그러느냐고 권하는데 이건 뭘 몰라도 한참 몰라서 하는 소리다. 내가 여행을 즐기지 않는 탓도 있지만, 내 생각에 긴 연휴 동안 집구석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만이 집구석을 떠나 어디로든 여행을 가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집구석에서 한껏 자유로운 나는 더 자유롭기 위해 굳이 여행을 떠날 필요를 전혀 못 느낀다. 그리고 설사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나는 평생 취업 한 번 하지 않고 자유 직종에 종사하며 살아온 자유인으로서의 윤리랄까 도의랄까, 그런 게 있어서 번듯한 직장인들이 놀러 가고 고향 가고 여행 갈 때는 가급적 안 움직이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들이 출근해서 열심히 일할 때 여유롭게 여행을 가면 될 걸, 하필 말도 못하게 붐비는 명절 연휴에 티켓과 여로를 놓고 그들과 경쟁할 필요가 있겠는가 말이다. 콩가루가 되어본 적 없는 가여운 사람들만이 그런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꾸 여행 타령을 한다."  ('오늘 뭐 먹지' 중에서)


이 대목만 보더라도 권여선 작가의 인기가 드높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윤리 의식이 투철하기 때문(?)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나는 권여선 작가에게 몇 번이고 지고 만다.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호시우행 2024-02-10 0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에 해외여행 떠나시는 분들은 이글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할지도 궁금해지네요. 왜 나만 가지고 그래?라는 유명대사를 차용할 듯ㅎㅎ

꼼쥐 2024-02-13 17:12   좋아요 0 | URL
권여선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집구석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해서 여행을 떠나는 것일 테지요. 아니면 콩가루 집안이기 때문일까요? ㅎ
 

우리는 자신의 불행을 피고인석에 앉힌 채 본인 스스로가 검사도 되고 변호인도 되면서 삶의 법정을 개최한다. 드물게 나타나는 행복을 참고인 삼아 내 불행의 원인을 따져 물을 때도 더러 있다. 그리고... 결론도 나지 않을 판결문을 우리는 매일 밤마다 반복하여 작성한다. 나의 불행은 유죄라고 거듭 주장하지만 배심원단의 표정은 냉랭하다. 나는 방청석에 앉은 수많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나를 조금 더 이해해 달라고, 나의 불행이 유죄라는 사실을 조금 더 믿어 달라고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러나 불행의 원인인 결국 나에게로 회귀하고 만다. 그렇다면 나는 결국 유죄인가?


미세먼지가 걷힌 주말 오후. '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입춘첩을 큼지막하게 써서 대문에 붙여야 할 것만 같은 포근한 날씨. 나는 아침부터 서둘러 청소를 하고, 세탁기에 넣어둔 밀린 빨래를 돌렸다. 그렇게 분주하고 정신없는 오전을 보낸 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서재에 앉았다. 언제인지도 확실치 않은 낡은 노트에서 보았던 문장. 예전부터 나는 떠오르는 생각을 날짜도 기입하지 않은 채 낙서처럼 아무렇게나 써놓는 버릇이 있다. 어떤 글은 다른 누군가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문장들로 도배가 된 것도 있고, 또 어떤 문장은 내가 읽었던 어느 책에서 보았음직한 표절문 비슷한 것도 있고, 또 어떤 문장은 지금 읽어도 꽤나 괜찮아 보이는 것들도 간혹 눈에 띈다. 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요, 그쪽 계통에서 일을 한 적도 없는 까닭에 나의 글쓰기 실력이야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거리도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매번 같은 언저리에서 맴을 도는 게 다이지만 가뭄에 콩 나듯 제법 그럴듯한 문장이 우연처럼 얻어걸릴 때가 있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지난주부터 읽기 시작했던 델리아 오언스의 장편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거의 다 읽었다. 생애 처음 쓴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소설이었다. 나는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느라 마음에도 없었던 병렬 독서를 해야만 했다. 

"평생 처음 혼자 맞는 밤이었다. 처음에는 숲속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몇 분에 한 번씩 일어나 앉아 차양문 밖을 살폈다. 한 그루 한 그루 모양을 낱낱이 아는데도 이따금 나무가 달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한참 침도 못 삼키고 뻣뻣하게 굳어 있는데 때마침 청개구리와 여치가 친숙한 노랫소리로 밤을 채워주었다. 어둠은 달콤한 향내를 간직하고 있었다. 더럽게 뜨거운 낮을 하루 더 견뎌낸 개구리와 도마뱀들의 텁텁한 숨결, 습지가 낮게 깔린 안개로 바짝 다가왔고 카야는 그 품에서 잠이 들었다."  (p.26)


금세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하늘은 잔뜩 흐려 있다. 행복도 불행도 다만 우리 삶을 이루는 하나의 구성 요소일 뿐이라는 걸 어렴풋이 이해할 나이가 되었다는 건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적게 남았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삶에서 완벽한 이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여전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떤 문장을 낙서처럼 끄적이고, 시간이 한참 지난 어느 날 예전에 알던 누군가로부터 온 편지처럼 반갑게 읽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4-02-04 1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4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4-02-13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랑스럽게도 제가 가재가 노래하는 곳, 을 가지고 있어요. 아직 읽지는 못했고요.ㅋ

꼼쥐 2024-02-14 16:47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ㅎ
한 번 읽어보세요. 아주 재미있습니다. 어쩌면 다 읽으실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할 수도 있어요.
 

26. 감옥에 갈 결심


겨울의 뒤꽁무니를 살금살금 밟아가면 꽃이 만발한 봄의 세계를 금세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포근한 주말입니다. 수컷멧돼지들의 발정기도 다 끝나가는 탓인지 다리의 힘이 풀리고 한낮에는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조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걸 잘 알지만 그게 어디 생각처럼 쉽기만 한 일이겠습니까. 나는 오히려 뒷골목 똘마니들과 마음껏 술이나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해, 작금의 상황을 잊은 채 몇 날 며칠이고 잠이나 잤으면 좋겠습니다. 리더 멧돼지인 나에 대한 지지율이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뇌물을 받은 아내 멧돼지에 대한 원성도 잦아들 줄 모르니 욱하는 성격의 나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입니다.


오늘은 전임 리더 멧돼지였던 그네 멧돼지의 생일인 까닭에 마음에도 없는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내가 뒷골목에서 똘마니들과 어울려 다니던 시절, 나는 동운 멧돼지와 함께 그네 멧돼지를 붙잡아 감옥에 처넣었던 적이 있습니다. 암컷 멧돼지로는 처음으로 리데 멧돼지의 자리에 올랐던 그네 멧돼지는 몹시 낙담한 표정이었고, 그로 인해 리더 멧돼지의 자리도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던 나였지만 그네 멧돼지를 지지하는 많은 멧돼지들이 안면에 철판을 깔고 나를 지지하게 되었던 건 모두 나를 두려워하는 마음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들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상황인식 때문이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리더 멧돼지의 자리에 오른 나로서는 애시당초 그네 멧돼지에 대한 원한이 없었음은 물론 감옥에 처넣었던 건 단지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의 결과였다는 걸 밝힐 필요가 있었습니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생일 축하 인사를 함으로써 나의 성격이 그렇게 모질거나 악랄하지는 않다는 걸 상징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모든 게 이제 다 지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법을 제정할 입법 멧돼지들을 뽑는 선거가 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새로 선출된 입법 멧돼지들로부터 리더 멧돼지의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요구를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나와 나의 아내 멧돼지는 물론 나를 지지했던 많은 멧돼지들이 감옥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이 나라의 전체 멧돼지를 위해서는 옳은 판단일지도 모릅니다. 능력도 없고, 더 이상 리더 멧돼지를 하고 싶지도 않은 나로서는 감옥에 가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는 말입니다. 내일 모레는 봄이 온다는 입춘. 봄이 오면 모든 걸 내려 놓고 감옥에 갈 결심입니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