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을 앓는 건 아니지만 휴일 다음날의 시간은 유독 천천히 흐른다고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휴일의 피로가 다음날인 월요일까지 연장되기도 하고, 달라진 생체 리듬 탓에 적응하는 데 힘든 측면도 있고. 그러나 인간의 적응력이란 때론 놀라운 것이어서 몸도 마음도 한껏 무거워졌던 시간을 어찌어찌 견디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럭저럭 견딜만 한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물가도 크게 오르고 경제상황도 악화되다 보니 정치권 인사들이 점점 코믹하게 변하는 듯하다. 먹고사는 문제가 팍팍한 까닭에 얼굴에서 오래전부터 웃음기가 사라진 국민들에게 잠시라도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 위한 그들만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물인 듯 싶기도 하고. 예컨대 이런 것이다. 기상 예보 시간에 미세먼지 농도가 1마이크로그램까지 떨어졌음을 강조하기 위해 파란색 글씨로 아라비아 숫자 1을 크게 보여주었더니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서 최고 수준의 징계인 '관계자 징계'를 의결하는가 하면, 9주년을 맞은 '복면가왕'이 비례정당인 조국혁신당의 번호와 같다며 방송을 다음주로 연기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4·10 총선에서 투표소 내 대파 반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아무리 국민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기로서니 이런 식의 무리한 설정으로 국민들을 웃기려 들다니... 우리나라 국민의 의식 수준을 어찌 보고...


외국에 사는 지인들은 현지 방송국의 뉴스에서 보도되는 우리나라 소식 때문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한다. 부끄러워서 말이다. 한때는 대한민국의 위상 덕분에 어깨를 펴고 다녔는데 불과 1,2년만에 이렇게 국격이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고 다들 혀를 쯧쯧 찼다. 국내에 사는 우리는 오히려 그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데 외국에 사는 교민들은 제2의 IMF 외환위기가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더는 웃지 않아도 좋으니 이제부터라도 정치권이 제발 국정을 진지하게 대했으면 좋겠다. 정치권의 능력이 부족하면 천공과 같은 무속인을 전면에 내세우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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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잠시 짬을 내 투표소를 찾았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첫날. 투표를 하려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회사에 묶인 사람들이 휴일도 아닌 평일에 투표를 위해 시간을 낸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일 터, 시간이 자유로운 노인들과 주부, 혹은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한산한 시간을 이용하여 투표장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만개한 벚꽃이 제 소임을 다했다는 듯 서서히 지고 있었다. 주말의 여유로움이 한껏 내려앉는 봄의 뜨락에 게으른 봄 햇살이 나릇나릇 번지고 있었다.


현실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는, 정신이 온전한 사람들은 여당인 국민의힘을 절대 지지할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간혹 있는 듯했다. 그들은 어쩌면 봄마다 헛심을 쓰는 저 도시의 벚꽃처럼 자신의 노력이 무위로 끝났음을 실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까닭은 새 생명의 싹을 틔우기 위함인데 아스팔트 포장이 된 도시의 가로수는 아주 잠깐 사람들의 눈만 즐겁게 할 뿐 본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헛심만 쓰는 꼴이 아닌가.


박여름의 에세이 <좋은 일이 오려고 그러나 보다>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한때는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연습만 하면 받아쓰기 백 점은 쉬웠고 꾸준히 좋아하던 누군가에게 받는 답장 하나에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어른이 되어 보니 아니더라. 어떤 일에서 1등을 하는 건 시간을 쏟는다고 해서 무조건 되는 일이 아니었고 때로는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날 가장 많이 울리기도 했으니까. 기다리면 될까. 기다리면 올까. 하염없이 목 내밀어 봐도 버스가 오지 않아 물어보니 막차는 떠났단다. 하지만 내 잘못 아니다. 다만 오늘 운행하는 차가 끊겼을 뿐이니까. 까만 밤 잘 보내고 나면 또다시 오겠지. 그때 졸지 않고 잘 나아갈 준비를 하면 되겠지. 사는 게 참 쉽지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좋은 날 좋은 기회는 또 올 거다."  (p.30~p.31 '첫차' 중에서)


사는 게 팍팍하고 힘들지만 우리 곁에는 여전히 타인의 슬픔을 내 것인 양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고, 비바람 몰아치는 거리에서 우산을 들고 묵묵히 함께 걸어 줄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2024년 4월 16일은 세월호 10주기! 그렇게 우리는 10년을 버텨왔다. 벚나무가 헛심을 쓰는 도시 가로수길의 분분한 낙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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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4-05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했습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인용하신 문장 넘 좋네요~

꼼쥐 2024-04-05 16:48   좋아요 2 | URL
책의 제목처럼 ‘좋은 일이 오려고 그러나‘ 봅니다. 낮 시간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할 수 있었어요. 좋은 일이 있어야 할 텐데...

렛잇고 2024-04-05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하고 왔어요!! 사전인데다 첫 날인데도 많으시더라고요. 투표 후기 글 올려주시니 반갑네요~~😃😃

꼼쥐 2024-04-05 17:34   좋아요 1 | URL
렛잇고 님도 오늘 사전투표 하셨군요. 저는 내일 약속도 있고 바쁠 듯해서 오늘 하고 왔어요. ㅎ 생각보다 많기는 했어요. 좋은 소식이 있어야 할 텐데 말이죠.
 

생각지도 못한 시각에 아침이 오고, 낮고 부드러운 봄 햇살이 창문을 두드리는 주일의 아침. 게으름이 둥둥 떠다니는 이 방의 주인은 일어날 줄 모르고 코끝을 간질이는 봄꽃 향기에 놀라 기지개를 켜며 늦은 아침을 맞는다. 몸만 빠져나온 침구를 정리하고,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보고, 미련이 남은 듯 다시 한번 하품을 한다. 시나브로 해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자욱하던 황사 먼지는 완전히 사라져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 막 벚꽃이 피는데 겨우 하루가 남은 3월.


총선이 멀지 않았다. 사전투표를 생각하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셈이다.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주변에서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경제가 이 모양인데 국민의힘을 찍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지요. 똑바른 정신으로 우째 국민의힘을 찍겠어요?' 하는 말. 망가진 게 어디 경제에 국한되는 것일까마는 문제는 우리나라의 국정 시스템 전반이 무너졌는데 그에 대한 반성도, 앞으로의 대책도 없다는 데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3년도 가기 전에 나라가 망할 거라는 우려가 온 나라, 전체 국민의 가슴에 팽배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정부와 여당을 지지한다는 건 세상 물정도 모르는 산골 무지렁이나 할 짓이 아닌가.


어제는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한 명과 점심을 같이 했다.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그는 IMF 외환위기 때만 하더라도 약국 매출은 더없이 좋았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아파도 약 사 먹을 돈도 없는지 약국 매출마저 떨어지고 있다며 하소연을 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빈 상가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견디다 견디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떠난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떤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살 만하다는 전문직 종사자들도 이렇듯 죽는소리를 하는데 맨몸뚱아리 하나로 세파와 맞서 싸워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작금의 상황이 얼마나 막막할까. 이런 사정도 모른 채 대통령이라는 자는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헛소리나 하고 있고...


철학자 서동욱의 저서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를 읽고 있다. 재미있는 책이다. 책에 있는 한 구절을 옮겨 본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가 침해받는 것을 못 참으며, 특히 자신이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할 자유(즉 철학함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침해받는 것을 가장 못 참는다. 이런 자연적인 자유를 국가가 침해하려 할 때 국가는 자유의 침해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전복될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안녕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둘 때 얻어질 수 있다. '국가의 목적은 자유이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에 담긴 핵심적인 생각 가운데 하나이다."  (p.147~p.148)


'MBC는 잘 들어'라면서 언론인에 대한 군부 독재 시절의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했던 황 모 씨가 떠오른다.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17세기의 철학자도 알던 사실을 400년이나 지난 21세기의 그는 왜 몰랐을까. 그렇게 하면 국가가 전복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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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4-04-0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가 있네요. 대파 한 단이 아니라 한 뿌리에 875원입니다.
- 범죄 심리 전문가 프로˝파˝일러 올림 -

꼼쥐 2024-04-03 16:28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군요.
잉크냄새 님 덕분에 프로파일러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알고 보니 프로‘파‘일러는 파 전문가인 듯.
 

변덕스러운 게 어디 봄 날씨뿐일까마는 창밖에는 여전히 추적추적 봄비가 내린다. 잎도 나지 않은 잿빛 가지 위에 촛불을 닮은 흰 목련 봉오리가 이제나저제나 개화의 시기만 기다리고 있다. 비는 그치지 않고 하마 핀 산수유꽃의 노란 그림자가 봄비 속에서 소리도 없이 지워진다. 그렇게 며칠 남지 않은 3월도 아쉽게 흐른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시간의 굴레 속에서 '나는 이쯤에서 작별을 고한다'며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겨울의 잔상들. 성긴 빗발의 발치에는 물웅덩이가 고이고 수면 위로 번지는 물동그라미의 파장을 따라 그리움의 물결이 너울지듯 인다.


 총선도 멀지 않았다. 현 정권 들어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의 몇몇 글을 블로그에 올렸더니 내가 야당의 당원이거나 관련자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지금껏 어느 당이건 당원으로 가입한 적이 없다. 사실 정부 정책에 불만이 있거나 자신의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비슷한 정당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건 어쩌면 매우 비겁한 처신일지도 모른다. 혹자는 말하길 정당에 가입하여 권리당원으로 활동하지 않는 사람은 현재의 정치 상황에 대해 비판할 자격도 없다고 한다. 나 역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정당에 가입하지 않았던 나의 과거 행적은 어떤 해명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정치 성향에 있어 중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은 80%의 보수와 20% 혹은 그 이하의 진보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아야 옳다.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당 역시 온건 보수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현 정권은 극우 보수 세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보수 축에도 속하지 않는 일베 수준의 인사들이 행정 권력을 잡고 있지만 말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내 주변에도 정부를 지지하는 몇몇 인물들이 있다. 그들을 분류하자면 이렇다.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음에도 더 많은 부를 획득하기 위해 정부를 지지하는 극단적 이기주의자들, 부자는 아니지만 종교적 신념에 의한 맹목적 추종자들, 박정희 시대의 세뇌와 학습에 의해 형성된 과거의 가치관을 변경하려 들지 않는 과거 회귀형 인간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스스로의 능력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지 부조화형 인간들이 그들이다. 혹여라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디에 속하는 인간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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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이면 한결같이 '드디어 한 주가 다 갔군' 하는 생각과 '벌써 한 주가 다 지나가다니' 하는 상반된 생각이 동시에 들곤 한다. 이런 상반된 생각이나 감정이 동시에 드는 경우는 우리의 경험에서 극히 예외적인 것이어서 때로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빠져들게 된다. 인간이란 워낙 간사한 동물인지라 기분에 따라서 어떤 생각이든 제 마음대로 바꾸기도 하지만 그래도 서로 상반되는 생각을 동시에 갖는다는 건 꽤나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주말 휴일이 시작되는 토요일 아침. 비가 갠 아침의 등산로는 적당히 부드러웠다. 젖은 낙엽에서 풍겨 오는 구수한 내음, 짙은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소나무의 몸 냄새 그리고 봄이 왔음을 알리는 푸성귀의 비린 냄새. 양지쪽 비탈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수줍게 피어나고 조팝나무의 여린 잎들이 초록으로 물들고 있었다. 비나 눈이 유난스럽게 잦았던 지난겨울. 싱싱하게 솟아나는 여린 생명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마저도 감사할 일이지만 일조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탓에 예년에 비해 작황이 부진하다는 어젯밤 뉴스가 불현듯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가 오름세가 한동안 또 지속되겠구나, 하는 걱정이 가슴 한켠을 저릿하게 눌러왔다.


등산로를 따라 더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길은 원래의 등산로에서 여러 갈래로 가지를 치게 마련이다. 누군가가 길도 없는 길섶으로 들어서고, 이를 목격한 다른 또 누군가가 그 뒤를 따르고... 그렇게 만들어진 샛길은 지름길을 원하는 등산객들의 숱한 발길에 다져지고 다져져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길'이라는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인간에게는 하나의 길일 뿐이지만 숲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아 살아가는 동식물들에게 있어 길이란 인간들에 의해 자신의 동료가 죽고, 앞으로도 죽어갈 처절한 패배의 현장일 뿐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끝없이 산을 깎고, 건물을 짓고, 길을 낸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분명 철거해야 할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일 뿐인데... 그 골칫덩어리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오늘도 매연을 펑펑 내뿜는 중장비를 굴리고, 자재를 지키기 위해 밤새 조명을 밝힌다.


하얀 얼룩이 진 배롱나무의 껍질이 얼마나 매끄럽고 고운지, 헤라클레스의 깊게 굴곡진 근육처럼 툭툭 불거진 참나무의 껍질이 얼마나 단단하고 강인해 보이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3월도 다 가지 않았는데 한낮에는 벌써 초여름 날씨처럼 기온이 오른다. 날씨가 정말 하루가 다르게 극과 극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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