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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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한 해가 신기루처럼 흘렀다. 시간 속으로의 '그 용감한 낙하를 누군가 안전하게 받아줄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또 우리 앞에 다가올 갑진년 한해를 향해 용감하게 몸을 던질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혹은 무모하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한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하여 읽기 시작했던 게 2023년 9월 말경이었다. 하루키의 열렬한 팬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그의 신간 소설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곤 하는 처지이니 구매 후 굳이 뜸을 들일 필요도 없었던 게 사실, 760쪽이 넘는 꽤나 긴 이야기지만 채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후루룩 읽어버렸다. 그렇다. 나는 하루키의 소설만큼은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어야 한다는 대원칙을 망각한 채 너무도 쉽게 읽어버린 것이다. 아쉬운 마음 가눌 길이 없었던 나는 맘에 들었던 몇몇 구절의 문장을 필사하며 작가의 생각을 어림해보려 애쓰곤 했다.


"내가 가까스로 알 수 있는 건 지금 나 자신의 위치가 아마도 '저쪽'과 이쪽' 세계의 경계선 근처이리라는 것 정도였다. 이 반지하 방과 마찬가지다. 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하도 아니다. 흘러드는 빛은 엷고 흐릿하다. 나는 그렇듯 어슴푸레한 세계에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인지 확실히 판단할 수 없는 미묘한 장소에.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확인하려고 한다. 내가 정말 어느 쪽에 있는지.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이라는 인간의 어느 쪽에 있는지를."  (p.495)


내가 하루키의 팬이 되고자 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구분하여 명확히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그의 소설은 대개 현실과 비현실,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드는 경계선, 칼날과 같은 좁디좁은 경계에 터를 잡은 채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리얼리즘 소설을 표방했던 <노르웨이의 숲>을 제외하고 말이다. 작가가 설정한 그의 소설 속 '하루키 영역'은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항상 '소설의 효용' 혹은 '소설의 기능'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현실에 지친 우리가 다시 또 소설 속 현실 속으로 들어가 인물들 간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무거운 현실을 되새김질한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 아닌가. 오히려 소설을 읽을 때만이라도 이건 소설이니까, 하면서 잠시 동안 현실을 잊고 쉴 수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머릿속에서 현실과 비현실이 격렬히 싸우며 뒤엉켰다. 나는 바야흐로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의 경계에 와 있다. 이곳은 의식과 비의식의 얇은 접면이고, 나는 어느 세계에 속해야 할지 지금 바로 선택해야 한다."  (p.209)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주인공인 '나'의 일대기에 가깝다. 그렇다면 리얼리즘 소설인가 하고 의심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앞에서도 언급한 바 하루키 소설의 특성상 그럴 리가 없다. 하루키의 팬이라면 그 제목만 들어도 흥분이 되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배경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도 중첩된다.  열일곱 살의 나'는 고교 에세이 대회 수상식에서 열여섯 살의 여학생을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자신이 꾼 꿈을 상세히 적어 놓는 버릇이 있는 여학생은 '나'에게도 자신의 꿈 이야기를 긴 편지를 통해 써 보내곤 했다. 그러나 그 여학생은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사라졌다. 진실로 사랑했던 여인을 잃은 '나'는 깊은 상실감에 빠져 지낸다. 어찌어찌 대학을 겨우 졸업한 '나'는 출판 유통회사에서 근무한다. 여전히 '나'는 독신이고 청소년기에 만났던 그 여학생을 그리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여학생이 자신의 꿈속에서 구축해 놓았던 도시에 떨어진다. 도시는 높고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물이라고는 단각수와 밤꾀꼬리가 유일하며,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떼어내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디시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강이 있고, 강 옆으로 모래톱이 존재하며, 도시에 하나뿐인 출입문에는 문지기가 지키고 해가 지면 뿔피리를 불어 단각수들을 도시 밖으로 내보내는, 그곳에서 내가 사랑하던 소녀는 도서관에서 근무한다. '나'는 그곳 도서관에서 '꿈 읽는 이'로 근무한다. 소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잊혀진 꿈을 읽는 '나'를 보조하기 위해 난로에 불을 지피고 차를 끓여준다. 도시에는 바늘이 없는 시계탑이 있다. 내가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지내는 동안 나와 분리된 그림자는 점차 생명력을 잃고 죽어간다. 도시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분주하던 '나'는 도시로부터 나의 그림자를 탈출시킨다.


현실의 '나'는 이제 45세의 중년 직장인이다. 여전히 독신이지만 평범한 회사 생활을 이어오던 나는 갑자기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한다. 회사를 그만둔 나는 꿈속에서 보았던 어느 산간 지방의 작은 도서관에 관장으로 취직한다. 그곳에서 '나'는 전임 관장이자 도서관의 실질적인 소유주였던 고야스 씨를 만난다. 그러나 도서관의 직원인 소에다 씨로부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야스 씨는 이미 죽은 인물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고야스 씨의 유령을 만난 셈이었다.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고 사랑하는 아내마저 잃은 고야스 씨는 베레모와 스커트로 대변되는 특이한 복장으로 생활하면서부터 생동감을 찾았고 자신이 운영하던 양조장을 마을 도서관으로 바꿔 도서관장으로 근무하다 사망하였다. '나'는 죽은 고야스 씨로부터 도서관의 운영에 관한 많은 것을 배웠다. 도서관을 자주 출입하는 이용자 중에는 옐로 서브마린 점퍼를 입은 M**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고야스 씨의 묘지 앞에서 독백처럼 말했던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소년은 '나'도 그리지 못했던 도시의 지도를 완벽에 가깝게 그려낸다. 부모는 물론 다른 누구와도 소통을 하지 않던 소년이 '나'에게 마음을 연 순간이었다. 소년은 오직 도서관에서 책만 읽었다. 어느 날 밤 소년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현실에서의 '나'는 소년의 가족들로부터 추궁을 당한다. 그리고 '나'는 높고 단단한 벽이 있는 그 도시에서 소년과 재회하게 되는데...


도시는 '마음의 역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높고 단단한 벽을 쳐 놓았다고 밝힌다. 현실의 시공간 속에서 사는 우리는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던져질 수밖에 없고, 좋든 싫든 우리는 마음의 역병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도, 공간의 변화도 없는 도시에서 '나'는 '마음의 역병'으로부터 '나'를 단단히 방어한 채 다른 이의 영혼에서 분리된 '잊혀진 꿈'을 읽으며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이동을 제어할 수만 있다면 인간은 자신의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을까?


"나는 그 슬픔을 무척 잘 기억했다. 말로 설명할 길 없는, 또한 시간과 더불어 사라지지도 않는 종류의 깊은 슬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만히 남기고 가는 슬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대체 어떻게 다뤄야 할까?"  (p.280)


한해의 마지막 날. 매년 이맘때면 나는 감기처럼 연말 우울증을 앓는다. 연말연시마다 일시적으로 우울감을 느끼는 심리 상태인 '홀리데이 블루스(Holiday Blues)'일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고, 주변의 환경도 빠르게 변하는데 나만 홀로 뒤처진 채 헐떡거리며 알 수도 없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막연히 뒤쫓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나는 높고 단단한 벽도 미처 세우지 못한 채 '마음의 역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겨울비가 오락가락하던 하늘은 해도 없이 온종일 어둡기만 하다. 그렇게 나는 연말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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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잡화점
이민혁 지음 / 뜰book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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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깊으면 그리움의 꼬리가 길다. 석양의 햇살을 받은 시간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지 않는 것처럼 그리움의 시간이 두려워서 눈앞의 사랑을 밀쳐낼 수 없는 게 인간의 운명이다. 우리는 그저 사랑에 맹목적일 수밖에 없는 사랑의 청맹과니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닥치는 인생의 모든 비극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없으면 인생 자체도 무의미하며 우리에게 닥칠 그 어떤 비극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사랑의 품은 넓고 크니까.


이민혁의 소설 <복길 잡화점> 역시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 한 집안의 2대에 걸친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970년대에 시작된 경석과 연화의 사랑과 이제 막 꽃을 피우는 그들의 아들 복길과 민정의 이야기.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알게 모르게 그들의 사랑은 닮아 있다. 그리고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닌 그들을 둘러싼 주변 이웃들의 내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사랑도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한결 따뜻하게 한다.


"세상 모든 것을 녹이려는 듯 벌벌 끓던 태양도 주황빛 숯처럼 식어버린 저녁. 막차를 몰고 온 버스 기사는 "안 탈 거요?"를 외치다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갔고 경석과 연화는 다시 뜨겁게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할 때까지 정류장과 아까시나무 사이를 수없이 걷고 또 걸었다."  (p.2)


좌판에서 장사를 하던 경석은 고등학생인 연화를 사랑한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입대를 하게 된 경석은 연화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 제대할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을 부탁한다. 월남전에 파병되었던 경석이 무사히 제대를 한 후 결혼과 함께 열게 된 복길 잡화점. 부지런하고 올곧은 성격의 경석과 마음씨 착한 연화는 작게 시작한 가게 복길 잡화점에 이어 복길 마트를 개업함으로써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어렵게 낳은 복길이 결혼을 하여 딸 소리를 얻었지만 병으로 아내를 잃고 만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소리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밝게 성장한다. 게다가 어려운 시기에 경석 부부의 도움을 받았던 민정이 잡화점을 똑소리 나게 운영하는 한편 엄마처럼 혹은 언니처럼 소리를 돌본다. 철이 없는 복길은 자신이 벌였던 사업을 말아먹고 결국 경석으로부터 복길 마트를 넘겨받게 된다. 그러나 복길 마트 주변에 대형 마트가 입성함으로써 고객을 잃은 복길 마트는 사양길로 접어든다. 그런 와중에 청천벽력과 같은 연화의 치매 소식이 전해지고 어떻게든 연화의 병을 극복하려는 경석의 눈물겨운 노력이 진행되는데...


"연화는 저녁마다 '벅시'에서 풍겨오는 이국적인 버터 향을 맡으며 계산대에 앉아 군침을 삼켰었다. 지금껏 한 번도 저기 가서 식사를 해보잔 말을 하지 않았지만 경석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저곳을 얼마나 동경했는지⋯. 하지만 과거의 기억대로 움직이는 것이지만 좀처럼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은 경석이 우뚝 멈춰선다. "내가 꼭 한 번 당신 데리고 가고 싶었단 말야." 경석은 이미 새 원피스를 사주며 과거의 기억을 왜곡해버렸음에도 또다시 '벅시'에 데려가고 싶은 마음에 떼를 쓰고 있다."  (p.157)


연화가 세상을 뜨고 결국 혼자 남게 된 경석. 그의 곁에는 아들 복길이 사랑하는 민정과 손녀 소리가 있다. 복길이 연화의 치매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직원들과 함께 벌였던 눈물겨운 헌신은 철이 없었던 아들 복길을 움직였다. 복길은 자신의 부모가 걸어왔을 고난의 세월을 경석이 연화를 위해 재현했던 과거의 경험들을 통해 보고 배웠다. 복길의 행동은 그렇게 서서히 바뀌어 갔다. 곁에서 복길과 경석을 위해 노력하는 민정의 헌신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제 그들의 온기는 영원히 사라졌고 그 온기를 채워야 할 세대가 바로 자신이 됐음을 알게 된 복길은 두려움부터 앞선다. 그들이 나에게 주었던 만큼 나도 해낼 수 있을까. 이 집의 온기는 영원히 식지 않을 거란 믿음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까. 이 집의 지붕은 온갖 비바람을 막아줄 거란 인식을 가족들에게 남겨 줄 수 있을까. 복길은 이제 이 집의 새 주인이자 경석의 자리를 물려받은 가장이 되었다."  (p.224~p.225)


사랑이 깊으면 그리움의 꼬리는 더욱 길고 어둡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마지막에 가져가야 할 것은 사랑했던 기억들뿐이기 때문이다. 날이 차다. 그러나 성탄절 연휴를 맞는 사람들의 가슴은 왠지 모르게 따뜻하다. 사랑은 그렇게 사람들의 온기 속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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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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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이미 전조가 있었다. 목요일 오후부터 시작된 비가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까지 이어지더니 주말을 맞는 사람들의 들뜬 기분에 찬물이라도 끼얹겠다는 것인 양 바람이 불고 풀풀 눈발이 치고 있었다. 스산한 날씨였다. 목요일부터 시작된 스산한 날씨에 대한 전조는 주말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아파트 인근의 중학교 운동장에는 운동을 나온 어느 할머니의 무거운 발걸음이 십여 분째 이어지고 있다. 어두운 구름 사이로 잊혔던 햇살이 문득 고개를 내밀고 거세지는 바람결을 따라 불현듯 사라지곤 했다. 자맥질을 하듯 언뜻언뜻 겨울 햇살이 되살아나는 동안 나는 운동을 하는 할머니의 지친 발걸음을 주시하고 있었고, 발끝에 매달린 삶의 무게에 나의 생각이 잠깐 머물렀다 사라지곤 했다.


"나는 요즘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보다 더 자주 할머니에 대해 생각한다. 원래 할머니는 내게 북쪽과 남쪽의 거리만큼 아주 멀리 계셨던 분이므로 나는 그 부재에 대해 실감이 없고 그러니 마치 살아 계신 듯 느껴지기도 한다. 여전히 실감과는 거리가 있는 태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점은 이제 비로소 어떤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할머니와 가까웠든 가깝지 못했든 할머니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찾아든 할머니의 부재, 그 공평한 부재 속에서 '나의 할머니'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모두 다 보고 싶다는 할머니의 말, 그 말을 곱씹는 데서 시작해, 조금씩 그러나 오래오래."  (P.21~P.22)


김금희 작가의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읽었다. 데뷔 11년 만에 펴낸 작가의 첫 번째 산문집이라는 이 책은 데뷔 직후 발표한 글부터 2020년 3월 초 문을 연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한 글들 중 42편을 뽑아 묶었다고 한다. 대학시절 이야기나 친구와의 일화, 엄마를 잃은 엄마에 대한 관찰과 할머니에 대한 회상, 특이한 택시를 탔던 기억, 출판 노동자 시절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이 작가의 올곧은 시선에서 재해석된다. 누구나 그렇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은 마치 스산한 겨울 날씨를 견디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어느 할머니의 발걸음처럼 무겁고 힘겨운 일일 터, 그와 같은 작은 발걸음들이 모여 지금의 김금희 작가를 있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아픈 기억을 버리거나 덮지 않고 꼭 쥔 채 어른이 되고 마흔이 된 날들을 ㅜ회하지 않는다. 아프다고 손에서 놓았다면 나는 결국 지금보다 스스로를 더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을 테니까. 그리고 삶의 그늘과 그 밖을 구분할 힘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대개 현명하지 않은 방법으로 상처를 앓는 사람들이지만 그래서 안전해지기도 한다고 믿는다. 삶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갖게 될 것이고, 느끼게 될 것이고, 마음먹게 될 것이며 결국 나가서 걸을 수 있을 것이다."  (P.5~P.6 '서문' 중에서)


1부 '언제나 귤이었다', 2부 '소설 수업', 3부 '밤을 기록하는 밤', 4부 '유미의 얼굴', 5부 '송년 산보' 등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김금희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애독자들에게 작가에 대한 또 다른 매력을 선물하는 귀중한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소설가의 실제 모습을 소설 속에서는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근원적으로 품고 가야 하는 고통이자 딜레마다. 죽음이 어떻게 다루어지는가는 어떻게 사는가만큼이나 중요하다. 죽음을 덮거나 피하지 않고 진정으로 애도할 수 있는 사회 그럴 수 있도록 사회의 공기를 조성하고 충분히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게 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만이 삶은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죽음이 고유해질 때 우리 모두는 숫자 속에 숨은 익명이 아니라 고유한 개인이 되어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안녕이라고 말하지 못한 이별들은 은폐되거나 덮이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고 말해져야 한다."  (P.208)


숨었던 햇살이 제 속살을 내보이며 다시 나타났다. 빈 운동장을 하염없이 걷던 할머니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바람은 여전히 거세고 밀려난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언뜻언뜻 고개를 내밀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다. 누군가의 죽음을 익명으로 처리하려 했던 자들, 자신이 얻은 권력을 마치 전리품처럼 인식하여 사적인 욕심을 극대화하려 했던 자들, 그들에 의해 저마다의 고유성을 상실한 채 익명의 죽음을 맞아야만 했던 사람들의 영혼이 우리를 영화관으로 이끌고 있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하여,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 그리고 이태원 참사에 대하여 우리는 충분히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었던가. 안녕이라고 말하지 못한 이별들이 가슴에서 응어리로 맺힌 기억들이 우리에겐 너무도 많았던 게 아닌가. 빈 운동장을 걷는 누군가의 발걸음이 한없이 가벼워질 그날이 오기를 기원하며 나는 김금희의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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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비비언 고닉 지음, 서제인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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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평소에 가깝다고 느끼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나에 대한 세세한 질문을 퍼붓거나 지난달보다 살이 조금 빠졌다거나 쪘다거나 하는 식의, 나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추측성 정보를 마치 사실인 양 단언하면서 살갑게 다가서려는 모습 등은 거북하기 이를 데 없지만 악의가 없는 상대방을 야멸차게 밀어내는 것도 차마 못할 짓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고 마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회생활에 있어서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를 산정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닥치는 갈등 중 8할 이상은 서로 간의 거리를 잘못 책정한 탓일지도 모른다.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반응의 부재는 내 삶에서 하나의 존재로 변했다. 이 존재에서는 고립의 감각이 흘러나왔고, 그 감각은 점점 더 꾸준하게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그 스며듦에서 하나의 진공 상태가 만들어졌다. 그 진공 상태 속에서 나는 외로움뿐 아니라 내가 단절되었음을, 피해야 할 인간 본연의 상태가 됐음을 느꼈다.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는 극심한 욕구에 사로잡힌 나머지, 나는 스스로 생각해왔던 것보다 한층 더 즉각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나는 내면의 균형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그 균형의 불안정함은 나를 놀라게 했다."  (p.193~p.194)


미국의 에세이스트이자 비평가인 비비언 고닉의 저서를 처음 만났던 건 지난여름, <사나운 애착>을 통해서였다. 회고록 장르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그 책 덕분에 나는 비비언 고닉이라는 에세이스트의 매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손에 잡은 고닉의 저서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는 책에 대한 소개보다도 제목에 이끌려서 읽게 되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주변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과 간섭 탓에 몇 번 마찰을 빚었던 나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나만의 공연을 펼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혼은 친밀감을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유대감은 부서져 내린다. 공동체는 우정을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참여는 끝이 난다. 지적인 삶은 대화를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 삶의 신봉자들은 괴상해진다. 사실은 정말로 혼자 있는 게 더 쉽다. 욕망을 불러일으키면서 그것을 해결해주려 하지 않는 존재와 함께 있는 것보다는."  (p.216)


비비언 고닉이 관찰하는 세계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 지구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들이지만 그녀의 눈은 마치 현미경과 같아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 그 무수히 많은 세세한 조각들을 통하여 마음에 의문으로만 남았던 여러 정황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이를테면 우리가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쳤던 여러 실마리들을 고닉은 하나하나 찾아내어 우리 앞에 펼쳐놓는 것이다. 그리고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이다. 당신은 이러이러해서 슬펐으며, 저러저러해서 외로웠으며, 그것에서 벗어나려면 이러이러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 후에 내가 외로움에서 나 자신을 비틀어 떼어냈던 게 기억난다. 외로움은 나를 겁에 질리게 했다. 몸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알기로 균형이야말로 모든 것이었다. 나는 내 주위 잔디밭을, 건물들을, 주차장을, 직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 조그맣고 빈틈없는 세계를 둘러보았다. 이 세계에서 내가 훌륭하게 작동하는 방법을(다시 말해 무례한 모욕을 피하고 어디까지 굴복할지 한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익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 똑바로 앞을 보고, 입을 다물고, 온전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었다. 삶의 크기가 얼마나 되든, 그것이 무엇으로 구성되든, 삶은 순간이라는 좁고 똑바른 길을 걸어 나가는 데 달려 있다고 나는 단호하게 생각했다."  (p.102~p.103)


책에 실린 일곱 편의 글에서 고닉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다른 어느 것보다 소중하다고 말한다. 때로는 어려운 일에 몰두하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살아갈 동력을 얻기도 하고,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낯선 이들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으며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홀로 있는 것보다 더 외롭고 고독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감기 몸살 후유증으로 인해 최악의 컨디션으로 한 주를 보냈던 나는 비비언 고닉의 몇몇 문장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20도에 육박하는 이상 고온으로 인해 계절은 다시 가을의 어느 시점으로 회귀하는 듯하다. 급변하는 날씨 탓에 사람도 자연도 몸살을 앓는다. 기후 위기가 아니라 기후 전쟁이 시작된 듯한 느낌. 전쟁과 같은 이 삶에 전하는 비비언 고닉의 위로,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는 읽는 이의 기억에 남지 않고 가슴 밑바닥에 찰랑찰랑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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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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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이라는 말은 달팽이처럼 느리고 완고한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대개 스스로 형성한 제 나름의 삶의 방식을 고수한 채 평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자신이 세운 삶의 방식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으려는 요지부동의 사람들에게 있어 '점진적'이라는 말은 가히 혁명에 가까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와 같은 까닭에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한 발짝을 내딛는다는 건 천지가 개벽할 일이며 기적에 가까운 변화라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러므로 '점진적'이라는 말은 혁명이자 기적을 향한 발걸음임을 새롭게 되새겨야 한다.


"당신이 잃은 건 생명보다 더한 것이었다. 말, 투명한 말의 맛, 참된 말에 대한 사랑, 그 모두를 잃은 것이다. 말 앞에서 당신은 먹을 것을 앞에 둔 아픈 아이 같았었다. 그런데 릴케가 당신에게 먹을 것을 다시 준다. 한 편의 시, 이어지는 또 한 편의 시, 한 편의 이미지, 또 한 편의 이미지. 헐벗은 말과 함께 온전한 진실이 돌아온다. 진실과 함께 온전한 영혼이 돌아온다."  (P.26~P.27)


크리스티앙 보뱅의 산문집 <작은 파티 드레스>를 올해 두 번째 읽었다. 150쪽도 안 되는 이렇게 얇은 책을 한 해에 두 번 반복해서 읽는다는 건 전에는 없던 일이다. 가장 최근에 이 책을 읽고 블로그에 짧은 글을 남겼던 건 6월이었다. 나의 독서 편력(그렇다. 나는 정말 이런저런 책을 다양하게 읽고 있을 뿐 하나의 주제, 혹은 어느 한 명의 작가에 심취하여 전작(全作)을 읽는 일은 거의 없다.)에 비추어 볼 때 같은 책을, 그것도 네댓 달 만에 다시 읽는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작가 스스로 밝혔던 것처럼 '삶의 저변 즉 근원에 닿는 한 문장에 영혼이 물들기 위해서'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는지도 모른다.


"혜성 같은 사랑은 영원에 단 한 번 우리의 심장을 스친다. 밤낮없이 지켜야 그걸 목격할 수 있다. 오랫동안,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사랑의 본성이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이 사실이야말로 사랑이 갖춘 위엄이자, 사랑의 놀라운 특성이다. 소음과 부산함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온갖 발작으로부터도 훌쩍 떨어져,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사랑은, 그리고 사랑의 가볍고 경쾌한 자각이자 더없이 겸허한 형상이며 각성한 얼굴인 시(詩)는, 심오한 기다림이고 달콤한 기다림이다. 부드럽고도 오묘하게 반짝이는 희망이다."  (P.35~P.36)


누구나 그렇지만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에 매료되는 첫 번째 이유는 문장의 아름다움에 있다. 그렇다고 미사여구만 나열한 허튼 문장이 아니라 현실에 숨겨진 진실을 간결하고 응축된 언어로 아름답게 표현한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꾸며진 아름다움과 진실되고 투명한 아름다움은 쉽게 눈에 띄기 때문에 나처럼 어리석은 독자도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보뱅에게서 주목할 것은 깊은 사유와 관찰을 통해 보이지 않던 관계를 우리 앞에 드러낸다는 점이다. 사랑과 기다림, 피로와 어머니, 빛과 목소리, 기도와 침묵, 독서와 고통 등 우리가 미처 그 연결점을 찾지 못했던 수많은 관계와 이어짐을. 혹은 그 가능성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반면 여자들은 굶주린 고양이 같은 고통을 받아들인다. 되살아나려면 그들을 파괴할 필요가 있는 고양이이다. 그들은 꼼짝하지 않는다. 되는 대로 내버려 둔다. 그리고 고통으로 정지된 이 시간을 메우려고 책을, 소설을 편다. 여전히 소설이다. 거기서 그들은 각각의 나날 속에 내재된 그것을 발견한다. 희망과 영락, 근심과 은총, 살아감의 영원한 상처를."  (p.89~p.90)


휴일 한낮의 소음이 빛의 소멸과 함께 빠르게 스러지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의 없고, 가난한 삶만 있으면 된다.'고 썼던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은 불어오는 저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힘으로 압도한다. '당신이 신문을 빠짐없이 낱낱이 읽을 수 있는 건 그 안에 본질적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골목을 빠져나온 바람이 회오리처럼 가볍게 맴을 돌다 스러지듯 명멸하는 나의 기억 속에서 아주 잠깐 스쳐간다. 바람이 바람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크리스티앙 보뱅의 문장들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휴일 하루가 또 그렇게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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