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중독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창해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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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앞에 나서서 일일이 간섭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옆에서 그냥 말없이 지켜보기에는 가슴이 너무 답답하여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할 일도 다 못하는 처지이긴 하지만 만약 나같은 사람이라도 간섭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 곁에는 금방이라도 이불 보따리보다 더 큰 불행 덩어리가 '쿵'하고 떨어질 것만 같고, 상황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나도 괘씸죄에 걸려 옷 보따리만 한 불행을 선물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저절로 들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 한둘쯤은 곁에 있게 마련이다. 인생이란 자고로 속이 터지는 일이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너무 꽉 잡는다. 상대가 아파하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러니 이제 두 번 다시 누구의 손도 잡지 말자. 체념하기로 정한 것은 깨끗하게 체념하자.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과는 정말로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자. 내가 나를 배신하는 짓은 하지 말자. 타인을 사랑할 바에는 차라리 나 자신을 사랑하자." (p.32)

 

나오키 상 수상 작가 야마모토 후미오의 출세작인 <연애 중독>에 나오는 주인공은 정말 속이 터지는 인물이다. 나보다 한 열 살쯤 연배라고 할지라도 서슴없이 "당신, 인생 그렇게 살지마라." 충고 한 마디를 나도 모르게 던지게 될 그런 사람이다. 오죽 답답한 인물이면 내가 그렇게 혀를 찰까 싶겠지만 다른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그런 생각이 들었던 까닭에 손에서 쉽사리 책을 내려 놓지 못하고 한나절 책에 빠져들었었지만 말이다. 이구치는 전에 사귀던 여자 때문에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조그만 출판사로 회사를 옮기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생일날 새 직장인 출판사로 다짜고짜 찾아오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인 미나즈키가 그런 이구치를 위기에서 구해주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베일에 싸인 미나즈키의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다.

 

30대 초반의 미나즈키는 후지타니와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간간이 번역일을 하면서 낮에는 도시락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어느 날 그녀가 일하는 도시락집에 어렸을 때부터 그녀가 좋아해 마지 않았던 방송인 겸 작가인 이츠지 고지로가 우연히 들른 걸 보게 되었고, 유명인답지 않은 그의 태도에 그만 홀딱 반하고 만다. 결국 사적인 만남은 육체적 관계로까지 이어지고 미나즈키는 도시락집의 일자리를 헌신짝처럼 집어던진 후 이츠지 고지로의 사무실로 출근하게 된다.

 

"우리의 공통점은 이츠지 고지로였던 것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똑똑하게 자각해야 했다. 그를 독점하지 말 것, 결코 그와의 정사를 은근히 과시하지 말 것, 대결 의식을 감추고 오히려 그를 공통의 적으로 씹으면서 비로소 우리는 친해졌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직장 분위기를 위해서는 중요한 일이었다." (p.112)

 

50대의 이츠지 고지로에게는 이혼한 후 다시 얻은 젊은 부인 외에도 십대 소녀 치카, 미나즈키와 비슷한 연령대의 요코, 이츠지 고지로와 비슷한 나이의 미요코 등 수시로 관계를 갖는 여자가 즐비했었다. 한 마디로 그는 바람둥이였던 셈이다. 그에게 여자는 그가 돌보아야만 하는 '새끼 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츠지 고지로는 여자가 요구하는 대로 월급을 주었음은 물론 마음이 내킬 때마다 선물을 사서 안겼다. 그럼으로써 그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여자들을 대했다.

 

"저렇게 제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그리고 머릿속에 있는 그대로 입밖에 다 내놓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빈혈은 그를 만나 허둥지둥 따라오는 동안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려서 결과적으로 내가 크게 도움을 받은 셈이었다." (p.123)

 

미나즈키는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이츠지 고지로의 기사 겸 비서인 동시에 연인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이츠지 고지로의 집 근처에 살았던 미나즈키는 그의 젊은 부인과도 우연히 조우하게 된다.

 

"이 여자는 자신을 제1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전에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일부다처제 국가에서 본처는 남편에게 제2부인이 생기는 것을 질투하기는커녕 뛸듯이 기뻐한단다. 본처에게 제2부인이란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이고 친구이며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고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질투심이라고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p.275)

 

미나즈키의 고민은 이츠지 고지로의 사랑을 독차지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전 남편의 소식을 몹시 궁금해 했다. 다행인지 이츠지 고지로의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하나둘 그를 떠나기 시작한다. 나이가 많은 미요코가 결혼을 하고, 나이 어린 치카가 다른 기획사 사무실로 떠났고, 요코가 이츠지 고지로의 사무실에 새로 출근하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게다가 딸과 함께 외국에서 사는 이츠지 고지로의 첫번째 부인이 재혼을 결심하면서 딸 나나를 일본으로 보내는 바람에 그의 부인마저 영국으로 떠난다. 미나즈키의 연적이 모두 제거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반전이 시작된다. 생각도 못한 반전이.

 

작가가 이혼을 하고 힘들어 하던 시기에 썼다는 이 소설은 역설적이게도 '연애 중독'에 빠진 한 여인의 속 터지는 삶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연애는 심리학적으로 중독이 맞다. 그러므로 연애 중독에 빠진 주인공은 제정신의 독자들이 보기에 속이 터진다. 딸을 가진 아빠의 입장이라면 아마도 책장을 뚫고 소설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아무 상관도 없는 미나즈키를 소설 밖으로 끄집어 내어 자신의 곁에 앉혀 놓고서 따끔한 훈계 한마디를 잊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나처럼 주인공의 삶이 속 터진다 생각했다면 작가는 정말 독자를 깜박 속여 먹을 정도로 글을 잘 썼다는 얘기다. 글쎄, 어느 쪽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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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잡담
박세현 지음 / 작가와비평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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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이가 들면 그에 따라 어느 정도 말이 많아지는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다른 사람은 해보지 못했음직한 특별한 경험들이 하나 둘 늘어나다 보면 입이 간지러워 누군가에게 그 경험을 말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어서 자신이 겪었던 그 숱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일체 함구한 채 태연히 지내는 사람들도 더러 있기는 하다. 입이 무거운 건지, 답답한 건지 아무튼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고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히 잘 지낼 수 있는 DNA를 타고 난 셈이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부류에는 속하지 않는다. 너무 수다스럽지도 않지만 묵언수행을 하는 스님처럼 답답하지도 않다. 그래도 어느 한 쪽으로 기우는가 굳이 말하라고 한다면 묵언수행 쪽으로 살짝 기운다고 할 수 있으려나. 암튼 대학민국 남성의 수다스러운 정도를 조사한 통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그런 이상한 주제에 대하여 연구 아닌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어느 사회에서건 한둘쯤은 꼭 존재하게 마련이다.) 나는 적어도 표본오차에 속하는 특이한 인간은 아닐 것으로 믿고 있다.

 

박세현 시인이 쓴 <시인의 잡담>은 꽤나 특별한 책이다. 시인은 실상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 말을 짓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시인에게 '잡담'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를테면 그것은 햇빛이 쨍쨍한 날 장화를 신고 출근하는 것만큼이나 어색하다. 한편으로는 시를 읽는 사람이 얼마나 없으면 이제 시인은 잡담이나 하며 세월을 보낼까, 측은해지기도 한다. 책을 펼치면'시는 죽었는데 시는 그걸 모르다'는 의미심장한 문장이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자신의 블로그에 ‘한 줄의 페허’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조각글들을 책으로 엮었다는 <시인의 잡담>은 '잡담'처럼 쉽게 이해되거나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 보낼 만한 성질의 시답잖은 문장은 찾아볼 수 없다. 언젠가 대학 시절에 시인이 된 내 친구는 말했었다. '어렵게 쓴 시는 독자도 어렵게 이해해야 한다'고 말이다. '너의 시는 너무 어렵다'는 나의 말에 대한 그의 반론이었다. 이 책이 딱 그렇다. 하나하나의 문장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친구의 논리를 따르자면 시인은 하나하나의 문장에 어지간히 공을 들였다는 얘기가 된다.

 

"일언지하에 말하자면,

가치라는 말처럼 무가치한 말은 없다.

저마다 자기 언어의 품에서 살아간다.

새겨 읽어야 할 부분은 밑줄 긋지 않은 그 대목이었어." (p.128)

 

위의 인용구처럼 시인의 잡담은 시와 아포리즘(경구)의 혼재, 운문과 산문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산문이라기 보다는 길어진 운문이 맞을 듯하다. 책 속에는 시인의 미발표 시도 수록되어 있다. 시가 오롯이 시집에 실리지 못하는 슬픈 현실, 산문집 속의 시는 왠지 모르게 애잔하다. 하기에 그의 잡담을 잡담 수준으로 치부하기에는 쑥스럽고 미안해진다. 그러나 시인의 숙명은 시를 떠나서 살 수 없기에 시인은 산문집을 표방한 한 권의 책에 곁다리로 시를 실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인에게 덧씌워진 삶의 굴레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시는 시시하고 너절하다. 현실적 가치를 가리는 말은 아니고, 그 속으로 들어갈수록 가파른 벼랑과 마주한다. 누구나 한번 들어간 사람은 되돌아나오지 못한다. 이 시시한 스캔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는 시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슨 헛소리냐고 하겠지만, 시는 없고, 시 비스무레한 것에 나는 늘 홀린다. 내가 열망한 것은 시엿으나, 내가 도달한 것은 시가 벗어 놓은 헛것이었다. 의붓어미를 친어미로 알고 산다. 이것이 나의 진짜 행복이자 가짜 진실이다." (p.272)

 

시는 언어인 동시에 청정한 울림이다. 눈으로 읽는 글자인 동시에 가벼운 떨림이다. 생일 선물로 시집을 주던 시기에 나는 선물로 받은 시집을 닳도록 읽었었다. 내가 읽었던 것은 시인이 쓴 한 줄 시구도, 시집을 선물한 누군가의 마음도 아니었다. 영원을 노래한 우주의 음성, 그 잊을 수 없는 가락에 대한 진한 향수였다. 시가 찬란했던 시절은 온 우주의 날씨가 맑음이었다. 시의 몰락은 우주의 그늘, 두려움의 구름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 그늘 속으로 속절없이 흘러들고 있다. 나는<시인의 잡담>을 읽으며 시가 맑았던 어느 한 시절을 망연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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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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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이다. 내가 만만하거나 편해 보여서 그러는지 아니면 그곳 지리에 유난히 밝을 것처럼 보여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있는 곳의 사방 십 미터 이내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은 죄다 내게로 몰려들곤 한다. 그리고는 약간의 쭈뼛거림이나 미안한 기색도 없이 다짜고짜 묻곤 하는 것이다. "말씀 좀 물을게요. 여기에 가려면..." 젠장, 나도 초행인 걸 어쩌란 말이냐. 이런 일이 누적될 때마다 나는 다시 한 번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는 '그래, 결심했어. 이제부터 까칠해지자.' 다짐하곤 했다.

 

내가 선천적으로 길을 잘 안내해줄 것 같은 특유의 분위기를 갖고 태어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겉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꼬장꼬장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까칠하기로 치자면 '오베' 뺨친다고 말할 수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에 나오는 '오베' 말이다. 그는 사실 냉정하다거나 까칠하다기보다는 실없이 웃지 않을 뿐인데 철없는 독자들은 그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는 속으로는 한없이 여리고 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헤살헤살 잘 웃거나 사근사근하게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그녀를 보기 전까지 그가 사랑했던 유일한 건 숫자였다. 그에게 유년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라곤 없었다. 그는 따돌림을 당하지도 않았고 따돌리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스포츠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다. 중심에 있었던 적도 없었고 겉돌았던 적도 없었다.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p.57~p.58)

 

이 책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오베'들을 위한, 세상으로부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는 모든 '오베'의 항변이자 그들을 위한 변론인 셈이다. 무뚝뚝하지만 정의감이 넘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오베는 열여섯에 고아가 된다. 아버지의 성격을 그대로 빼다 박은 오베. 그는 아버지가 사고로 죽자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기차 청소부를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나 운명의 여인 소냐를 만나면서부터 그의 삶은 달라진다.

 

"아무도 안 볼 때 당신의 내면은 춤을 추고 있어요, 오베. 그리고 저는 그 점 때문에 언제까지고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당신이 그걸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간에." 오베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결코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그는 춤을 춰본 역사가 없었다." (p.153)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오베의 삶에 어느 날 불행이 찾아온다. 교통사고로 뱃속의 아이를 잃고 소냐는 불구의 몸이 된다. ADHD를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소냐는 셰익스피어를 읽게 하며 하루하루를 헌신하다가 6개월 전에 세상을 떠났다. 소냐와 함께 40년 동안 한 집에서 살고, 같은 일과를 보내고, 한 세기의 3분의 1을 한 직장에서 일했던 오베는 이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세상 사람 모두가 그녀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람들이 했던 얘기였다. 그녀는 선을 위해 싸웠다. 결코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을 위해 싸웠다. 그리고 오베는 그녀를 위해 싸웠다." (p.280)

 

오베는 자살을 결심하고 이제 막 자살을 결행하려는 순간 이웃집에 젊은 부부가 이사를 온다. 오베는 자신의 자살을 막은 젊은 부부와 어린 두 딸에게 처음에는 까칠하게 대하지만 점점 마음을 열고 가까워진다. 그러나 그가 평생 동안 지켜온 원칙과 소신은 마을에 새로 이사온 다른 사람들과 번번이 부딪쳐 말썽을 일으킨다. 그런 그들이 못마땅한 오베는 죽은 아내 생각이 간절해진다. 소냐는 그를 완전히 이해했던 단 한 명의 이웃이자 동지였던 셈이다. 목을 매 자살하려던 그는 방법을 바꿔 차고에서 차의 시동을 켜 놓은 채 배기가스에 의한 질식사를 시도하는가 하면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총기 자살을 결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웃 사람들에 의해 그의 자살은 번번이 실패한다.

 

"그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였다. 훈장이나 학위나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종류의 남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소냐는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 남자를 꼭 잡았다." (p.206)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자부심.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은 인간이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였던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p.371)

 

오베는 결국 자신이 의도했던 자살은 실패하지만 마을의 이웃사촌들을 위한 여러 일을 참견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 오베가 자살을 결심했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주변에서 그를 이해할 만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베와 마을 사람들이 펼치는 시끌벅적한 여러 에피소드는 갈등과 분열을 거쳐 진한 감동으로 마무리된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p.436~p.437)

 

첫인상은 무뚝뚝하고 까칠해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진국인 사람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웃의 어른들은 모두 그랬던 것 같다. 내 아들, 내 손자가 아닐지라도 누구든 잘못을 하면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을 내곤 했다. 그 시절에는 '오베'가 너무나 흔했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더 이상 '오베'는 보이지 않는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백주 대낮에 담배를 피우고 있어도, 어두운 골목길에서 여학생을 희롱하여도 누구 하나 그들을 막지 않는다. '오베'가 사라진 이 시대의 골목골목엔 CCTV만 덩그러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 존재할 세상의 모든 '오베'를 위하여, 진심으로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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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
김새별 지음 / 청림출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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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애도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이 세상에 넘쳐나는 죽은 이를 잊어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차별당하거나 잊혀가는 것에 대한 분노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도 별 볼일 없는 사망자로 취급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텐도 아라타의 소설 <애도하는 사람>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죽은 자를 찾아 애도하며 전국을 떠도는 주인공 시즈토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린 소설이지요. 내게는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이따금 무심결에 떠오르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지요. 이 소설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삶과 죽음의 완벽한 분리'에 있다는 데에 이르게 됩니다. 생각의 지나친 비약인지도 모르지만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나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전국의 어느 마을을 가더라도 삶과 죽음은 항상 같은 공간에 있었습니다. 생명의 탄생도 늘 우리 곁에 있었지요. 자신이 태어나고 살던 집에서 죽음도 함께 맞았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이른 나이부터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자연의 섭리로 순수히 받아들일 수 있었고, 가족 구성원의 배웅을 받으며 생을 마감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언젠가 자신도 그렇게 떠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지요.

 

그러나 현대적인 병원이 생기면서 삶과 죽음은 철저히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진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낯설고 불편한 공간일 수밖에 없는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게 얼마나 큰 불행인지요. 그러나 김새별의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읽어보면 병원에서 맞는 죽음마저도 행복인 양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독사가 의미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고독사는 그가 얼마나 고독하게 죽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고독하게 살았는가를 말해준다. 병 때문이든 스스로 목숨을 끊든, 그 쓸쓸한 삶이 고독사를 불러오고 그 자리에는 비워진 술병, 높다랗게 쌓인 쓰레기, 텅 빈 냉장고, 먼지 앉은 바닥, 때로는 명품 의류와 번쩍거리는 보석들이 증거로 남는다. 삶의 의지를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들이 죽은 것은 아마도 더 이상 살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p.158)

 

'유품정리사'라는 생소한 직업의 저자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들을 이 책에 짤막짤막한 글들로 옮겨 놓았습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그의 글이 특별히 가슴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까닭은 실화가 주는 무게감도 있으려니와 목격되지 않는 숱한 죽음에 얽힌 기막힌 사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그 죽음 하나하나가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개별적인 것이었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수도 없는 이유가 있ㅇㅆ습니다. 삶과 죽음이 분리된 이 시대에 그것은 곧 닥칠 훗날 내 죽음의 모습일 수도 있는 까닭입니다. 스크랩된 다른 블로거의 글이 내 블로그에서 마치 내 글인 양 읽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동안 만난 외로운 죽음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 가족이나 이웃의 단절, 유품에서 나온 자녀들의 사진.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들을 그리워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도움이나 위로보다는 그저 따뜻한 안부 인사 한마디였을 뿐인지도 모른다." (p.233)

 

죽음이 흔한 세상에 함구하며 외면하는 삶을 사는 건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볼 일입니다. 나와 너를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인생에서 단 하루의 삶만 허락된 사람도 철저하게 죽음을 외면하는 세상,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의 징조나 기미만 보여도 삶과 죽음을 구분짓기 위해 미리 문을 걸어 잠그고 이쪽 편의 삶을 지키려 애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에게 죽음은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내 어렸을 적에 보았던 것처럼 죽음은 항상 삶에 깃들어 있음을 명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죽음을 영영 회피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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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 1
김재식 지음, 정마린 그림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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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의 대한민국에는 멘토가 넘쳐났다. 넘치는 건 멘토뿐만 아니라 필요로 하는 정보는 무엇이건 차고 넘쳤다. 그러나 정보가 늘어날수록 비례하여 두려움도 증가하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불과 이십 몇 년 전, 넉넉 잡아 삼십 년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정보는 접근 가능한 몇몇 사람들만의 전유물로만 존재했었다. 그러므로 그 시절의 사람들 대부분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삶에 돌진했었고, 사전 지식도 없이 오직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로 지식을 쌓아나갔다. 삶은 모험이었고, 지식은 모험으로부터 얻어지는 값진 수확물이었다. 2015년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지식이나 정보는 고작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떠도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아무도 그 흔하디 흔한 정보를 제 주머니에 넣어 보관하려 들지 않았다.

 

외식을 하러 나갈 때도, 버스 시간을 알고자 할 때도, 심지어 퇴근 후 자신의 집으로 향할 때도 정보를 찾는 일은 빼놓지 않았다. 비록 한 번 쓰이고 버려질 정보였지만 사람들은 공을 들여 검색을 하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줄여보려는 듯 찾을 수 있는 정보란 정보는 모조리 뒤져보곤 하였다. 사는 데 드는 시간보다 오히려 살아가기 위한 올바른 방법이나 편히 살기 위한 사전 지식을 얻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말하자면 사는 것보다 살기 위한 준비 작업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었다. 경쟁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럼에도 자신이 검색한 지식의 양이 항상 부족한 듯 느껴졌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이제는 양으로서의 지식 그 자체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동전 수집을 하듯 비슷비슷한 지식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는 건 대한민국 국민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중학교에 입학할 때도,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대학교에 입학할 때도, 연인과 사랑할 때도, 결혼할 때도, 아이를 낳을 때도, 부모가 되고 늙어갈 때도, 심지어 죽어갈 때에도 자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를 찾아 사람들은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썩은 고기를 향해 돌진하는 하이에나처럼 말이다. 실수를 줄여보겠다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직 검색을 위한 정보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자신이 가진 정보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획득한 새로운 정보만을 세상에 자랑스럽게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정보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정보 획득에 뒤쳐졌다는 공포가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정작 삶을 살아보기도 전에 '삶은 두렵다'는 정보부터 배워야만 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사람들 모두는 머릿속 정보는 하등 필요없는 것으로만 여겼다. 삶은 부딪쳐 깨닫는 것이지 미리 알고 이것저것 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겁날 것 없이 돌진하는 장갑차처럼 사람들은 삶을 향해 무모한 도전을 계속했다. 삶은 제 몸뚱아리 하나를 불사르겠다는 의욕 충만한 젊은이들의 전쟁터였다. 사랑이나 결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배우자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심지어 사지가 멀쩡한지 그렇지 않은지조차 알지 못한 채 두 사람은 만났고 평생을 함께 살았다. 짝이 정해진 순간부터 사람들은 '인물 뜯어먹고 살 것도 아닌데 잘 생겨서 뭐해'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김재식의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을 읽으며 내게 들었던 생각들이다. 책을 다 읽은 후 저자의 면면을 살펴 보니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대표 커뮤니티인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의 운영자로서 그는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2004년에 시작된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은 사랑의 슬픔과 기쁨과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전하는 ‘사랑 멘토’로 성장해, 현재 200만 명에게 위안을 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한 정보를 찾다 보면 정작 '사랑을 잘 해보겠다'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사랑에 대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정보 찾기에만 열중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때로는 사랑에 관한 좋은 글귀를, 또는 짧은 체험담을, 혹은 시의 형식을 띤 짧은 사유를 담은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정보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어지간히 인기를 끌 만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사랑은 직접 체험하는 것이지 생각에서 머무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할 때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대담함뿐이다. 사랑을 하면서 우리가 겪는 갖가지 실수들, 이를테면 오해와 갈등 심지어 이별까지도 하나하나 겪고 헤쳐나가겠다는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 이것저것 재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면 자신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아는 게 없다는 두려움이다. 지식에 비례하여 삶이 풍요로워지는 건 절대 아니다. 허술한 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 것처럼 무모한 사랑이 더 많은 추억을 남겨주는 법이다. 인생에 그보다 더 귀한 선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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