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 정부의 외교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정부의 한 인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이 16일 오전에 숙소인 임페리얼 호텔에 도착했을 때 로비에 있던 일본인 몇 분이 박수를 쳤고, … 17일 대통령 일행이 숙소 떠나 공항으로 갈 때 호텔의 모든 직원이 일렬로 도열해서 대통령 일행이 떠난 후까지 계속 박수를 쳤다. 일본 주민도 박수를 보냈다. 공항 직원도 박수를 보내줬다”면서 “이 정도면 일본인의 마음을 여는데 어느정도 성공했지 않나 생각을 하게 된다”고도 했다. 일본 정부의 관계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관계자가 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웃었다. 웃을 일 많지 않은 요즘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해 보라. 예컨대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원하는 모든 것을 싸 들고 방한하여 생각지도 못한 선물 보따리를 펼쳐 놓았을 때,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당연히 미국 대통령을 환영하며 박수를 칠 게 아닌가. 당연하게도 말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실은 일본 정부의 관계자가 자신들의 외교 성과로 발표할 일이지 우리나라의 관계자가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일본 정부의 관계자가 우리나라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들의 외교 성과를 한국어로 말하는 줄 알았다.


월요일이다. 대한민국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월요병을 앓고 있을 테다. 물론 개인별 경중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나 역시 중증의 월요병을 앓을 때가 더러 있다. 휴일에 너무 과격한 운동을 했다거나 밀린 업무를 보느라 쉬지를 못해서가 아니다. 해외 여러 나라의 외국인 친구들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느라 온종일 휴대폰과 씨름한 날이면 다음날 맞는 월요일은 거의 초주검 상태로 하루를 보내게 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시차가 서로 다른 여러 나라의 외국 친구들이 마음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날은 일주일 중 일요일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화가 많은 날은 일요일 새벽부터 전화를 받기 시작해서 밤 늦은 시각까지 통화를 하게 된다. 물론 한 명이 아닌 여러 나라의 여러 친구들과.


최근에 친구들로부터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코로나 시국에는 전 세계를 선도하던 대한민국이 지금은 어떻게 경제와 안보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나? 더구나 한 국가의 환경이 이렇게나 빠르게 급변할 수 있나?" 외국 언론의 경제면이나 정치면에 우리나라가 자주 등장하다 보니 친구들도 대한민국의 사정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했다. 나는 그와 같은 질문에 대해 주로 대통령의 교체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친구들은 나의 대답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는 듯했다. 대통령 한 명 바뀐다고 대한민국과 같은 경제 대국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게 사실이라고 아무리 여러 번 반복적으로 말해줘도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대통령에 대한 의존도가 그렇게 막강하다면 그게 독재국가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나는 분단국가라는 우리나라의 사정상 대통령의 권한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게다가 그런 위험성을 잘 알면서도 정치권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낮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정치에 몸을 담고 있는 처지가 아닌지라 우리나라의 정치사를 구구절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생각해도 우리나라의 정치는 확실히 기형적이다. '조선은 원래 일본 영토'라고 주장한 침략론자의 발언을 일본 대학생들 앞에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인용하고 있으니 오죽하겠나. 중증의 월요병 탓인지 몇 자 쓰지도 않았는데 어깨가 아프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머리쓰기&글쓰기 2023-03-21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은 임기가 너무 기네요...

꼼쥐 2023-03-22 14:59   좋아요 1 | URL
참으로 긴 시간이 남아 있지요. 아까운 시간인데 말이죠.
 

겨울 끝자락의 냉기가 채 여물지 않은 성긴 봄기운의 틈새로 스민 탓인지 새벽 등산로는 여전히 겨울과 같은 한기를 품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른 갈잎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별빛도 없는 하늘엔 살 오른 반달이 홀로 쓸쓸했다.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 탓인지 새벽에 산을 오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인근의 아파트에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한 집 두 집 연이어 불빛이 밝혀지고 있었다.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은 또 그렇게 분주한 하루를 준비하는 듯했다. 한강 작가의 시 '새벽에 들은 노래 3'이 생각나 옮겨 적는다.


새벽에 들은 노래 3

                        한강


나는 지금

피지 않아도 좋은 꽃봉오리거나

이미 꽃잎 진

꽃대궁

이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누군가는

목을 매달았다 하고

누군가는

제 이름을 잊었다 한다

그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새벽은

푸르고

희끗한 나무들은

속까지 얼진 않았다


고개를 들고 나는

찬 불덩이 같은 해가

하늘을 다 긋고 지나갈 때까지

두 눈이 채 씻기지 않았다


다시

견디기 힘든

달이 뜬다


다시

아문 데가

벌어진다


이렇게 한 계절

더 피 흘려도 좋다


한 편의  시를 나직나직 읊어보는 일은 '서랍에 넣어 두었던' 저녁을 몰래 꺼내 보는 것처럼 운치가 있는 일이지만 갈수록 메말라가는 정서는 시와 나 사이의 거리를 시나브로 멀어지게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차갑게 느껴지는 봄바람에 비해 햇살은 무척이나 따사로운 하루였습니다. 매화나무의 꽃망울이 부풀기 시작하고 옛 애인의 편지처럼 국토의 끝 멀리 남쪽에서 싱그러운 꽃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봄바람을 타고 그 향기마저 전해지는 듯하여 가슴은 둥실 날아갈 듯 들뜨는 요즘입니다. 봄맞이 대청소를 하던 휴일 오후에도 베란다 창 너머 아련한 상념의 세계를 향해 나도 모르게 손을 뻗고 닿을 수 없는 그리움에 한동안 넋을 놓았던...


3월을 준비하던 2월 하순은 참으로 바쁜 날들이었습니다. 개강 준비를 하는 아들을 도와 대학가 주변에 세를 얻은 방으로 이삿짐을 날랐었고, 매년 이맘때면 준비해야 하는 사무실의 여러 서류와 준비물들, 이런저런 상담과 각종 모임 등으로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른 채 정신없이 흘려보냈던 것입니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더러 "그래도 바쁜 게 좋지." 인사치레의 말들을 던지곤 합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어제는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이를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나 나중에 여러 언론을 통해 전해 듣게 되는 사람들이나 대통령의 기념사는 주요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을 듯합니다. 그런 까닭에 대통령의 기념사를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분개하고 화를 참지 못하는 듯 보였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로부터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라고 했던 대통령의 말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었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강자는 언제나 약소국을 침범해도 된다는 뜻이겠지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범하는 것도, 히틀러가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침범하여 온갖 악행을 저지른 것도 모두 용서가 되는 일이며, 약소국의 국민들은 그 모든 게 자신들의 불찰일 뿐이며 침략자인 그들을 원망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일 것입니다.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라는 대목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우리의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일본을 향한 끝없는 구애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그들은 요지부동 달라진 게 없는데 대통령 혼자 그렇게 믿고 있는 듯하여 딱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날짜마저 흐릿해져 가는 날이 있습니다. 8월 29일! 1910년 8월 29일 을사오적 중 한 명이었던 이완용과 일제의 데라우치 통감 사이에 조인되어 발표되었던 경술국치. 우리는 주권을 잃고 일제의 식민지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 대통령의 논리라면 멀지 않은 미래에 경술국치일 또한 국가 기념일로 변해야 마땅할 듯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부끄러운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와같다면 2023-03-02 17:05   좋아요 9 | 댓글달기 | URL
“조선 민족이 나라를 잃은 것은 스스로 못나고 약했기 때문이니, 일본을 탓할 일이 아니다. 지금 조선 민족의 과제는 일본과 협력하여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는 것이다.”
2023년 3.1절 대통령 기념사의 역사적 의미는, 1940년대 친일파들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복권시킨 데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겁니다.

이런 소릴 삼일절 날 듣다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꼼쥐 2023-03-05 15:03   좋아요 1 | URL
그와 같은 기념사를 듣고서도 국민의힘 구회의원들은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으니 아마도 그들은 지금도 천황 폐하의 신민이 되고 싶어 하는 족속들인가 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더구나 제대로 된 보수라면 그와 같은 말을 듣는 즉시 칼을 빼 들고 자결이라도 했겠지요.

은하수 2023-03-02 18: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어젠 정말 너무 어이없고 화났어요
내가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는게 맞나.. 저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맞나... 누가 뽑은건지 참담하기 이를데 없는 하루였어요.
역사인식이 있긴 한건지 의심스럽네요
차라리 없으면 제대로 가르쳐 줄텐데 어디서 못돼먹은걸 배워 와서는 그걸 수시로 써먹네요
˝그거 다 무식해서 그래요~~˝ 하던 드라마 대사를 날려 주고 싶네요
나와 같다면 님 말씀 백퍼 공감합니다.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안돼서 그래요!

꼼쥐 2023-03-05 15:06   좋아요 2 | URL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하면 정치로부터 멀어지고, 정치로부터 멀어지면 그놈이 그놈이라는 양비론에 손을 들어주게 되며, 수구언론의 꼬임에 여지없이 걸려들게 마련이지요. 정부가 경제를 등한시하는 이유도 다 그런 데 목적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젊은이들을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하게 함으로써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잉크냄새 2023-03-02 19: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정치를 하는 놈들이니 머리가 모자라서 저런 말을 하지는 않았겠죠. 분노의 임계선을 자꾸 건드려보는 느낌입니다.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는 그 임계선을 스스로 설정하고 확장해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더 심한 망발이, 망발을 넘어선 파렴치한 행동이 서슴없이 나오리라 봅니다.

꼼쥐 2023-03-05 15:10   좋아요 1 | URL
얼굴을 심하게 뜯어 고친 어떤 여인은 연일 대통령 코스프레를 하면서 설쳐대더군요. 주가조작 조사를 받으라는 국민들의 여론이 비등한대도 말이죠. 그까짓것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그들의 뻔뻔함은 정말 인간 이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네요.

singri 2023-03-02 2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친일파들 진짜 끝이 없네요

꼼쥐 2023-03-05 15:10   좋아요 1 | URL
이 정권이 끝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쭉 이어지겠지요.
 

지난해와 다르게 예정된 행사는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일 없이 꼬박꼬박 열리는 듯합니다. 다만 확연히 악화된 경제상황을 반영하듯 행사의 씀씀이나 규모는 대폭 줄어든 게 사실입니다. 심지어 졸업식과 입학식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길거리에서 북적이던 꽃 판매상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도 하나의 이색적인 풍경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장미꽃 한 송이에 만 원을 호가하는 상황이니 사용한 꽃다발이 인터넷 사이트에 중고판매로 올라온다는 게 일견 이해가 됩니다. 등유가격 상승으로 난방비가 치솟으면서 생화 가격도 덩달아 올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화훼 농사를 접은 농가가 늘어나면서 장미 공급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지만 어디 꽃의 가격뿐이겠습니까. 주변을 둘러봐도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물품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렇듯 우리들 호주머니 사정은 갈수록 찬바람이 불고 좀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계절은 이미 겨울을 지나 봄으로 가고 있는 듯합니다. 바야흐로 생명의 계절입니다. 공원 한 귀퉁이에서 보았던 벌개미취의 마른 꽃대궁에도 물기를 머금은 생명의 기운이 풀풀 날리는 듯하고 까칠한 목련의 나무 기둥에 귀를 갖다 대면 아스라한 물소리가 신화 속 음성처럼 들려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하나 아쉬운 것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유행가의 노랫말처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데 말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우리나라의 출생률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가장 시급한 문제가 낮은 인구증가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대입 수험생이 70만 명대였던 것이 지금은 30만 명대 후반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이제는 재수, 삼수를 할수록 명문대에 합격할 확률이 월등히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지방대의 소멸은 현실로 다가왔다는 게 중론입니다. 명절에 만난 어린 조카들에게 농담처럼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너희들이 대학에 갈 즈음에는 모두 의대생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들 의사가 되고 싶어 하니 말이야." 나는 사실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정말 그렇게 될 날이 코앞에 닥칠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어느 학자와 짧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나 저나 동의했던 바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로부터 적극적으로 이민을 수용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국가가 소멸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말하자면 유럽의 선진국들과 비슷한 경로를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지요. 일할 사람이 없어 이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이로 인해 인종간 갈등이 발생하고, 이것이 곧 사회적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우리는 지금 그와 같은 방향으로 치닫는 과도기의 어느 지점에 와 있는 듯합니다.


2023년 1월 한 달의 무역 적자액이 127억 달러라고 하더니 2월 들어 적자폭이 더욱 확대되는 모양새입니다. 열흘 만에 5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굴욕적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만 몰두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 결과 얻게 될 이득은 우리나라 대통령의 G7 회의 초청 정도가 될까요? 그렇게 된들 말 한마디 못하고 올 게 뻔하지만 말입니다. 세계 민주주의 성숙도에서 우리나라는 16위에서 24위로 추락했고, 무역적자는 갈수록 그 폭이 확대되고 있고, 우리는 지금 과연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낮에는 제법 봄기운이 느껴질 만큼 기온이 크게 오른다. 우리가 시간과 맞교환했던 지난겨울의 경험들은 좋든 싫든 이제 기억 속에 박제된 채 망각의 그날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어느새 입춘도 지나고 바야흐로 계절은 봄을 향해 달려갈 일만 남았다. 그리고 시간은 속도를 붙여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에겐 계절의 순환이란 어차피 무의미한 변화이며 추석 명절이나 되어서야 겨우 시간의 속도를 가늠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정월 대보름이었던 어제는 달을 보면서 아들과 통화했었다. 내일 아침 일찍 제주도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기 때문이다. '제2회 장애.非장애 대학생 창업경진대회' 참가차 팀원들과 함께 제주도로 갈 예정이라며 행사가 끝나는 금요일에 귀가하지 않고 제주도에서 며칠 더 머물렀다가 오겠다는 보고를 하는 것이었다. 제주도에 자주 갈 수 있는 것도 아닌 까닭에 경진대회를 핑계로 떠난 길이니 한라산에도 올라보고 제주도 풍광을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게 아들의 바람이었다. 아들은 이미 금요일 항공권을 월요일로 미루고 주말에 묵을 곳도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고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아들과 같은 시기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방학 내내 막노동을 하거나 과외를 하는 등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바쁜 나날을 보냈을 뿐 언감생심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었는데...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을 3개월 전보다 0.3% 포인트 내린 1.7%로 수정했다고 한다. 중국의 리오프닝에 따른 경기 회복 기대감 등으로 세계 경제 성장률 및 주요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모두 올려 잡았는데 유독 우리나라 전망치만 하향 조정한 것이다. 그나마 이것은 후하게 평가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경제학자들 중에는 우리나라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2023년 1월 소비자 물가가 5.2% 상승하였고, 농산물이나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 또한 5.0% 상승함으로써 2009년 2월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고 한다. 경제 전망은 이렇듯 곳곳에서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는데 정부는 두 손을 놓고 마냥 지켜보고 있는 추세다. 어쩌면 그들로서도 역부족일지도 모른다. 그게 어디 경제뿐이랴. 외교, 안보, 복지, 안전 등 어느 곳 하나 속 시원히 풀려나가는 곳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가하게 권력놀음에 빠져 있다. 누가 누가 윤과 가까운지 도토리 키재기 놀음을 하고 있는 모양새는 국민들이 보기에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꼴이다.


대통령도 어쩌면 자신의 무능에 가슴을 치면서 천공의 신통력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지 모른다. 기적이라도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기온이 올라 봄이 멀지 않은 듯한데 경제 상황을 보면 봄기운을 느끼지 못할 듯하다. 동방규(東方?)의 한시에 나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떠올리게 하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ingri 2023-02-06 1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책없음이 대책ㅡㅡ;;
올해는 내리막이 얼마나 스펙타클할지.


꼼쥐 2023-02-08 18:49   좋아요 1 | URL
적어도 나라가 회생불능의 상태까지는 가지 말아야 할 텐데 말이죠. 걱정입니다.

꼬마요정 2023-02-06 2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양적완화에 뒤이어 인플레이션 잡는다고 미국이 금리를 미친듯이 인상하니 남아나겠습니까ㅠㅠ 이럴 때 좋은 정책 잡아줄 인물이 있으면 좋겠어요. 윤핵관 이런 단어 말고 진짜 경제인, 정치인, 전문 관료... 그런 인재가 있긴 할까요ㅠㅠ

꼼쥐 2023-02-08 18:51   좋아요 1 | URL
어떤 못난 사람은 모든 부서에 검사들만 기용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러니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지요. 제정신이 아닌 듯합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