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왜 이리 조용하지/허수경


감꽃이 질 무렵 봄비는 적막처럼 내렸다


감꽃 천지

군화 발자욱이 그 위를 덮친다


집집마다 아픈 아이들

가위 눌린 잠 속으로 감꽃은

폭풍처럼 휩쓸고 다닌다


여러 살 속에 시린 날을 세우고

발진처럼 불거져 내리는 감꽃


대문 두드리는 소리

비명소리

미친 듯 떨어지는 감꽃 꼭지

그 위에 적막처럼 봄비가 내린다


날이 밝으면

왜 이리 조용하지 이상하다

아버지는 쓴 입 속으로 물을 넘긴다


먼 둔덕 애장터

오지 사금파리가 아리게 반짝이고

어른들은 화전을 부친다

오미자 물을 우려낸다


이상하다, 왜 이리 조용하지.


허수경 시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행간에 숨은 아픔 한 조각이 도려내듯 잘려 나오는 듯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어느 마을이건 아이의 시체를 묻는 애장터가 있었습니다.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그 시기에 어른들은 아이가 삼칠일·백일· 등의 고비를 무사히 넘기는지 지켜본 후에 출생신고를 하는 일이 빈번해서 호적 나이와 실제 나이에 차이가 나는 사례도 흔했습니다. 유아기에 있는 아이가 죽으면 집안의 남성이 아이의 시신을 낡은 옷이나 천으로 둘둘 싸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산에 묻었습니다. 애장터·애촉·애처구덩이·아장단지·애기장 등 지역에 따라 이름은 달랐지만, 마을마다 죽은 아이를 묻는 암묵적인 장소가 따로 존재했던 것입니다.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그 시절에 어쩌면 아이의 죽음은 별것 아닌 일이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봉분도 없고, 묘지의 흔적마저 없는 애장터를 지날 때마다 마을 아이들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두려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가로등도 없던 그 시절에.


한두 차례 봄비가 흩뿌렸고,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이어졌습니다. 먼지처럼 많은 기억을 안고 사는 우리는 오늘처럼 봄바람 드센 날에는 바람결에 슬픈 기억들을 훌훌 날려보내고 싶어집니다. 저 봄바람 속엔 그런 기억들만 모두 모인 까닭에 창밖으론 웅웅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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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제외한 평일 새벽 5시 30분이면 나는 언제나 산에 오르기 위해 집을 나선다. 오래된 나만의 규칙이다. 시나브로 해가 길어지고는 있지만 그 시각의 바깥은 여전히 어둡다. 어둠이 한창인 그때에도 나는 등산용 랜턴도 없이 산을 오른다. 이따금 등산로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랜턴도 없이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는 걱정 어린 관심을 받기도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늘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곤 한다. 사실 내가 오르는 산의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이후 캄캄한 어둠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숲에 사는 동식물들에게 내심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 마당에 나조차 그들을 놀라게 하거나 잠을 방해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는 것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 역시 헤드 랜턴이나 가벼운 랜턴을 손에 들고 산에 오르곤 했었다. 그러나 아파트 조성 공사가 시작되고, 숲의 절반이 깎여나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24시간 내내 빛의 공해에 시달리는 숲 속 생물들을 생각할 때 나는 그들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의 말이라도 한마디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내가 등산로에서 이따금 보던 너구리도, 나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펄쩍 뛰어 달아나던 고라니도, 아침이면 등산객의 발길에 아랑곳하지 않고 먹이를 찾아 나무를 오르내리던 청설모 가족들도, 몇 년에 한 번쯤 볼 수 있었던 서늘한 뱀의 자취도 이제 더는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지금도 그들이 그립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해만 떨어지면 마을은 온통 암흑천지였다. 그때의 어둠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호기심과 상상력의 세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겐 모험과 도전의 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둠이 사라지면서 호기심과 상상력은 급격히 쇠퇴했다. 우리 주변에서 시가 사라진 것도 아마 그 무렵이었을지 모른다. 시는 오롯이 상상력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둠은 신화 속의 어떤 존재를 떠올리는 모험과 도전의 세계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상상과 모험의 세계에서 만난 시어들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서 한나절 놀 수 있었다. 그러나 어둠이 사라진 요즘, 현실과 리얼리즘만 겨우 살아남았다. 모험과 상상력은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종교에 대한 믿음이 급격히 사라진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라고 나는 어렴풋이 짐작한다.


소설보다 시가 먼저 탄생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주변에 어둠이 존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존하는 어둠의 존재는 우리로 하여금 상상력과 모험심을 자극하고, 감성과 낭만을 제공한다. 그러나 어둠의 실종은 곧 편리와 생생한 현실의 세계로 이어졌지만 시의 세계를 잃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빛의 세계를 찬양하는 이들은 더 이상 시를 읽지 않는다. 암흑천지의 어둠은 이제 우리 주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우리가 시를 잃었던 어느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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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4-03-12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마지막 문단 완전 감동입니다!

꼼쥐 2024-03-15 16:38   좋아요 0 | URL
이렇게 멋진 칭찬을...
감사합니다.^^
 

볕이 잘 드는 양지쪽 산비탈에는 어린 묘목의 가녀린 가지 위로 파릇한 새순이 돋고 있었다. 산의 능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참나무 군락과 각각의 나무를 감싸고 있는 껍질은 굵은 힘줄이 툭툭 불거진 듯 강인한 생명력을 뽐내고 있었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풀섶에서 먹이를 찾던 참새떼가 포릉포릉 날았다. 부지런한 딱따구리 한 마리가 죽은 소나무 기둥에 앉아 열심히 나무를 쪼고 있었다. 더없이 푸른 하늘에 덩그러니 걸린 구름 한 조각이 갈 길을 몰라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영하로 떨어진 아침 기온 탓인지, 아니면 휴일 아침마저 부지런을 떨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반발심 때문인지 산을 오르는 등산객은 많지 않았다. 여러 동식물이 공존하는 숲속 풍경은 다채로웠다. 다양성이 공존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도 자연을 닮아가야 한다고 나는 오늘 아침 산길을 오르며 생각했다. 다채로운 숲속 풍경을 짙푸른 하늘이 감싸고 있었다.


나는 현 정부의 행태를 생각할 때마다 '서슴없다'라는 단어가 떠오르곤 한다. '서슴거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말이나 행동을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자꾸 머뭇거리며 망설이다.'이다. 그러므로 '서슴없다'는 '말이나 행동에 망설임이나 거침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마음 사전>을 썼던 김소연 시인은 자신의 다른 저서 <시옷의 세계>에서 '서슴거림의 기록'이라는 소제목에 '침묵 단상'이라는 제하를 달았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침묵이라는 것은 내가 행할 때는 가장 신중한 방패지만 타자가 행할 때는 가장 뾰족한 창일 수 있다. 나의 침묵은 방패처럼 나를 방어해주지만, 너의 침묵은 뾰족한 창처럼 나를 찌를 수 있다."  (p.70 '시옷의 세계' 중에서)

"침묵 자체가 아니라, 침묵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해 내 입장이 바뀌게 된 이야기를 쓴 것이기 때문에 서슴거림이란 말이 필요했던 거 같아요. 나는 '서슴거리다'는 말을 참 좋아해요. 망설임이나 흔들림 하고도 다른, 어떤 이상한 신중함 같은 게 느껴져요. 전 말도 되게 서슴거리면서 하고, 성격도 서슴거려요. 그런 모든 것들 때문에 종국엔 입을 다물고, 글을 쓰는 거겠지요."


어느 조직에서나 최종 결정권자는 말과 행동 모두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 말하자면 매사에 서슴거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매사에 서슴이 없다. 최종 결정권자의 결정은 돌이킬 수 없는 까닭에 서슴이 없다는 것은 곧 파국을 의미한다. 그것은 개개인이 행하는 경솔함이나 사사로움과는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치솟고 합계출산율 0.7이라는 극단의 시대로 가는 요즘, 다양성을 말살하기 위해 모든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주요 피의자를 호주로 빼돌리는 이런 서슴없는 결정은 모두 대통령실에서 재가된 것이 아닌가. 과거 호주는 범죄자들의 유배지로 선택된 나라였고 그렇게 만들어진 국가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범죄자들을 호주로 보낸다는 건 호주 국민들이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는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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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3-13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슴거리다... 침묵...!
좋아요~♡
배워갑니다.

꼼쥐 2024-03-15 16:40   좋아요 1 | URL
김소연 시인의 저작 ‘마음 사전‘을 읽어보면 서슴거리는 시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렇게 단어의 적확한 의미와 쓰임을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모나지 않은 순한 시간의 궤적 위에 추억이라 할 만한(혹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될지도 모를) 목록 몇 개를 별다른 목적도 없이 툭툭 던져보는 날 하늘은 조금 우중충했고, 따사로운 대기엔 탁한 미세먼지가 고였다. 아파트 주변의 너른 공원을 마스크도 없이 걸었고, 아침에 읽다 만 어느 소설의 스토리를 잠깐 생각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원의 낯선 풍경. 사람들과의 대화나 공감보다는 동물에게 내리는 일방적인 명령이 더 편하고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버린 도시인의 정서가 오늘의 미세먼지보다 더 탁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몇몇 동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수록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치는 비례하여 줄어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 식용 금지법'을 통과시켰던 우리 국회는 가자 주민들에 대한 이스라엘 시오니스트의 잔인한 학살을 그저 남의 일인 양 외면하고 있다. 먹을 게 없어서 구호품을 향해 달려드는 가자 주민들을 향해 총을 겨눴던 이스라엘 병사들과 그와 같은 명령을 내린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잔인성이 이스라엘 전체 국민을 대변하는 이스라엘 국민성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리도 없을 테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나치의 잔인성을 닮아가고 있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잔인한 학살에 대해 국제사회는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 적어도 인권을 존중하는 자주 국가라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 정부는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한 이후 이렇다 할 논평을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침묵은 암묵적인 동의와 다르지 않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은 바로 이런 것을 지적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2022년 11월 15일 기준의 세계 인구는 이미 80억 명을 넘었다. 1900년경에 20억 명이었던 세계 인구는 불과 100여 년만에 4배가 증가한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마구잡이로 학살해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올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0.6명대로 진입할 것이라며 국가 소멸 운운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걸 기억한다. 사실 출산율을 늘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젊은 사람들에게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보급하고 양질의 일자리만 제공하면 된다. 그와 같은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정책을 시행하는 순간 젊은 사람들에게 비싼 가격으로 자신의 주택을 팔려고 했던 중장년층이나 건설업체가 큰 피해를 입게 된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려면 정년이 가까운 장년층의 희생이 필수적이다. 현시점에서 기득권층인 그들이 자발적으로 희생을 감내할 리가 없다. 여당의 공천 결과만 보더라도 그와 같은 사실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디올백을 받았던 어느 여인은 관종 욕망을 억누른 채 잠행을 계속하고 있다. 디올백 수수 이후 세계적인 셀럽 반열에 올랐는데도 말이다.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이다. 학살의 피해자였던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을 대상으로 학살의 가해자로 돌변했고, 관종 욕망이 강했던 어느 여인은 세계적인 셀럽이 되자 모습을 감춰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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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람이, 키가 큰 나무의 우듬지를 쏴쏴 휩쓸고 갈 때마다 나무들은 버티기 힘들다는 듯 끽끽 소리를 냈다. 등산로에 쌓인 낙엽들이 앞뒤로 몸을 뒤채며 가볍게 흩날렸다. 겨우내 계곡에 몸을 숨기고 있던 추위가 바람과 함께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갑작스러운 추위 때문인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볼에 닿는 공기가 꽤 차가웠다. 등산객의 스틱 자국이 뿅, 뿅, 뿅 지워지지 않은 채 얼어붙었다. 마치 쥐라기나 백악기의 어느 동물이 남긴 발자국처럼.


오늘은 삼일절. 일제의 강압에 맞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순국선열들의 의지가 온 나라에 울려 퍼진 날이 아닌가. 그럼에도 현 정부는 일제를 찬양하는 친일 인사를 독립기념관 이사로 임명하였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들으면 우리가 마치 일제 침략으로 인해 큰 덕이라도 본 줄 알겠다.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보수정권이 집권했었지만 현 정부처럼 근본이 없는, 막무가내의 정치를 하는 꼴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여권의 한 인사는 문화방송의 일기예보에 나온 숫자 1을 두고 '일기예보를 통해 사실상 민주당 선거운동성 방송을 했다.'고 말함으로써 정치를 개그의 한 부분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이런 인사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담할 수밖에... 더구나 일본은 정부 관료와 언론을 통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주장과 공세를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는데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 연설에서 "한일 양국이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고, 역사가 남긴 어려운 과제들을 함께 풀어간다면, 한일관계의 더 밝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안일하기 짝이 없는, 일본의 야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바보 같은 연설이 아닌가.

스테판 에셀의 저서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를 읽고 있다. 2010년 당시 92세의 나이로 발표했던 32쪽 분량의 작은 책 <분노하라>를 통해 세계적으로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의 저력은 이 책에서도 십분 발휘되는 듯하다.

"분노는 우리를 자각하게 해주고, 의식을 일깨우고, 체념한 사람을 무관심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좌절로부터 걸어나와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는 일에 맞서 저항하고 싸우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게 해준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의 첫 단계, 붉은 신호등,  '길의 시작'에 불과하다. 이 도약의 순간이 또다른 움직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당하고 중대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한 우리의 능력을 결코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내가 나의 아이들, 친구들,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전하고자 하는 바이기도 하다. 우리의 모든 노력이 아직 큰 결실을 거두지 못했을지라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가 실천해온 앙가주망이 아직 성공의 화관을 쓰지 못했을지라도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중에서)

오늘은 삼일절.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부정하고 우리나라를 향해 독설을 쏟아낼지라도, 대한민국 정치인 중 일부 친일 세력들이 그들의 만행을 미화할지라도 우리는 역사의 진보를 믿고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 그리고 부정에 동조하는 여당의 정치인들과 현 상황에 분노해야 한다. 그것이 곧 우리가 정당하고 중대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한 우리의 능력을 믿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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