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책이든, 사람이든 그 인연은 따로이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어 특정 시각, 특정 공간에서 만나는 각각의 대상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간에 만나야 할 사람(또는 사물)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고 생각할 때 세상에 우연은 없구나, 하는 섣부른 운명론자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각각의 인연에는 다 나름의 의미가 있었음을 그 인연이 한참 지나고서야 깨닫게 된다.
최근 네 권의 책이 각각 다른 경로를 통하여 내 수중에 들어왔다.
책의 제목은 이랬다. 의학자 제프리 롱, 폴 페리의 『죽음 그후』, 소걀 린포체의『티베트의 지혜』, 알랭 드 보통의『불안』, 스캇 펙 박사의 소설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이 그것이다. 얼핏 제목만 보면 전혀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책들이다. 나도 읽기 전에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머리 하나를 자르면 그 자리에 새로 두 개의 머리가 생겨난다는 히드라의 신화처럼 인연은 어디론가 달려가며 끝없이 가지를 치고, 지친 기색도 없이 다음 일정을 준비하곤 한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제망매가의 싯구처럼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한가지에 나고/가는 곳 모르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어느 작가는 현실이 마치 기차처럼 어디론가 달려가며 과거와 미래를 갈라 쏟아낸다고 했다. 그러나 인연은 희미한 의미만 남긴 채 구름처럼 이내 흩어지고만다.
내가 받았던 네 권의 책은 모두 하나의 주제,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 마지막 장에 이르러 '죽음'을 다루고 있다) 우연치고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통상적인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네 권의 책이 내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따로 존재할 것만 같은, 내 삶이 지속하는 한 내 주위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을 듯한 미지의 존재에 대한 서늘한 두려움.
모든 판단에 앞서 '죽음'을 생각하고 결정을 내린다면 얼마나 현명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겠는가. 그러나 나와 같은 범부는 딱 거기까지이다. 그곳에서 단 한 발짝을 움직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내게는 그 용기가 없다.
영국의 시인 T.S.엘리엇은 "겸손은 가장 얻기 어려운 미덕이다. 자기 자신을 높이 생각하려는 욕망만큼 여간해서 가라앉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지는 않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하려 한다. 항상 겸손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