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내가 누구인지

어떤 모습이며,

어떤 성격인지,

어떻게 살아야 나다운 것인지,

하나도 아는 게 없는데...

 

매일 아침 산을 오를 때마다

들르는 곳이 있다.

적어도 수령 5,60년은 되었음직한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곳으로

나는 아무리 바쁜 날에도

이곳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솔잎이 방석처럼 푹신한 곳에

자리를 잡고 한동안 앉아 있노라면

내가 아닌,

나 또한 무성한 소나무가 되어

그 자리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오늘 아침에도

그 자리에 앉아 들었던 생각이

나는 순간 순간 내가 아닌 타인으로

살아가고 있구나,하는 것이었다.

모든 순간을 오로지

'내'가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줄이야.

나는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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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의 일이다.

외출을 할 일이 있어 차를 몰고 한적한 이면도로의 삼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데 중년 여성 두 분이 횡단보도에서 옥신각신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날씨가 더운 탓인지 차도 사람도 많지 않았다.  유난히 신호 대기 시간이 길다고 느껴질 즈음 그 중년의 여인네들 중 다소 체격이 통통한 분이 다른 한 분의 손을 강제로 잡아 끌고 신호를 무시한 채 무단횡단을 하였다.  그렇게 횡단보도를 중간쯤 건너왔을 때 억지로 끌려온 여인은 신호 대기를 하던 나를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채 끌려가는 반면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잡아 끌었던 분은 나를 보며 멋쩍은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하며 미소를 짓는 사람에게 뚱해 있을 수도 없어서 괜찮다는 표시로 살짝 미소를 지어주었다.  날씨는 찌는 듯이 덥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길을 건너는 사람, 그리고 이를 지켜보며 차 안에서 실없이 웃고 있는 나.  묘한 언밸런스의 상황이 생각할수록 우스웠다.  길을 다 건널 때까지 마주 보고 웃을 수 없어서 나는 고개를 돌리고 혼자 웃었다.

  

생후 3~4개월경에는 어떤 사람을 보거나 누구에게 안기더라도 생글생글 웃는 시기가 있다고 한다.  그 시기를 '무차별 미소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웃음은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그리 급한 일이 있는 듯 보이지도 않았지만 뙤약볕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것은 그들에게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잘못하는 줄은 알지만 약간의 일탈을 즐기며 즐거워 하던 그 여인이 하루가 지난 지금도 나를 미소짓게 한다.

 

미국의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는 이렇게 노래했다.

 

  

고 독

 

- 엘라 휠러 윌콕스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되리라
슬픈 이 세상은 환희를 빌려야 하지만
고통은 그 스스로도 충분하다
노래하라, 언덕들이 화답하리라
탄식하라, 허공으로 흩어지리라
메아리는 즐거운 소리에 울려 퍼지지만
근심스런 소리에 사라져버린다.

환희하라, 사람들이 너를 찾으리라
비통하라, 사람들이 너를 떠나리라
사람들은 너의 충만한 기쁨을 원하지만
너의 비통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뻐하라, 너의 친구들이 많아지리라
슬퍼하라, 너의 친구들을 다 잃으리라
아무도 달콤한 와인을 거절하지 않지만
인생의 쓴맛은 너 혼자 마셔야 한다.

잔치하라, 너의 집은 사람들로 넘치리라
굶주려라, 세상이 너를 그냥 지나가리라
성공과 베품은 너의 삶을 도와주지만
아무도 너의 죽음을 도울 수 없다
길고 화려한 행렬을 맞기 위해서
즐거움의 저택 안에는 공간이 있지만
좁은 고통의 통로를 지날 때에는
우리 모두 한 사람씩 지나가야 한다. 


< 천국으로 가는 시> 中에서

 

 

길에서 우연히 만났던 그 여인들은 짜증내기 쉬운 여름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는 청량제 역할을 했다.  어쩌면 그 여인들은 제2의 '무차별 미소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번의 미소만으로도 더위를 잊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오늘도 많이 웃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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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가슴에 청진기를 들이대면 헉헉대는 숨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릴 듯하다.  무더운 날이었다.  옆에 앉은 사람의 열기가 훅훅 느껴지는 듯했다.  간간이 불어 오는 바람마저 없었다면 호수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입만 뻐끔거리는 붕어처럼 길게 늘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권태에 지친 오후는 시간의 모노레일을 천천히 미끄러져 흐른다.  대책이 없었다.

 

뭔가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요즘 들어 부쩍 재미를 붙이고 있는 물리학책에도 도무지 눈길이 가지 않았다.  도서관에 들러서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빌렸다.  책을 들고 들뜬 마음으로 나오려는데 한 권만 빌리기는 뭔가 아쉬운 듯해서 다시 서가를 맴돌다가 찾아낸 책이 A.J.크로닌의 <천국의 열쇠>였다.  한번쯤 읽은 기억이 있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 통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두 권의 책을 빌려 도서관을 나섰다.

조금 더 있다가는 도서관 전체의 책을 탐낼까 두려웠다.  도서관 옆의 작은 공원에서 잠시 산책을 했다.  머리꼭지가 이글거리는 한낮의 더위 속에서도 아이들은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는 이미 산책 나온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비집고 앉을 틈이 없어 보였다.  미련이 남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여전히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컴퓨터 열기도 무시하지 못하겠어서 아예 전원을 꺼버렸다.  한바탕 소나기라도 쏟아졌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제 여름의 초입인데 앞으로 견딜 일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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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책이든, 사람이든 그 인연은 따로이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어 특정 시각, 특정 공간에서 만나는 각각의 대상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간에 만나야 할 사람(또는 사물)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고 생각할 때 세상에 우연은 없구나, 하는 섣부른 운명론자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각각의 인연에는  다 나름의 의미가 있었음을 그 인연이 한참 지나고서야 깨닫게 된다.

 

최근 네 권의 책이 각각 다른 경로를 통하여 내 수중에 들어왔다.

책의 제목은 이랬다.  의학자 제프리 롱, 폴 페리의 『죽음 그후』, 소걀 린포체의『티베트의 지혜』, 알랭 드 보통의『불안』, 스캇 펙 박사의 소설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이 그것이다.  얼핏 제목만 보면 전혀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책들이다.  나도 읽기 전에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머리 하나를 자르면 그 자리에 새로 두 개의 머리가 생겨난다는 히드라의 신화처럼 인연은 어디론가 달려가며 끝없이 가지를 치고, 지친 기색도 없이 다음 일정을 준비하곤 한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제망매가의 싯구처럼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한가지에 나고/가는 곳 모르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어느 작가는 현실이 마치 기차처럼 어디론가 달려가며 과거와 미래를 갈라 쏟아낸다고 했다.  그러나 인연은 희미한 의미만 남긴 채 구름처럼 이내 흩어지고만다.

 

내가 받았던 네 권의 책은 모두 하나의 주제,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 마지막 장에 이르러 '죽음'을 다루고 있다)  우연치고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통상적인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네 권의 책이 내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따로 존재할 것만 같은, 내 삶이 지속하는 한 내 주위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을 듯한 미지의 존재에 대한 서늘한 두려움.

 

모든 판단에 앞서 '죽음'을 생각하고 결정을 내린다면 얼마나 현명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겠는가.  그러나 나와 같은 범부는 딱 거기까지이다.  그곳에서 단 한 발짝을 움직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내게는 그 용기가 없다. 

 

영국의 시인 T.S.엘리엇은 "겸손은 가장 얻기 어려운 미덕이다.  자기 자신을 높이 생각하려는 욕망만큼 여간해서 가라앉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지는 않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하려 한다.  항상 겸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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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다비드 르 브루통의 <걷기 예찬>을 읽고 감탄을 한 적이 있었다.  빼어난 글솜씨도 그러려니와 평소 걷기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그 책은 그야말로 행복한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다섯 번째 예찬 시리즈로 출간된 이 책은 또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김영하"하면 떠오르는 책이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이다.  그가 쓴 다른 책이 많음에도 나는 왜 이 책만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작가의 감성과 글이 주는 느낌이 내가 읽던 순간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져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의 글은 현란하지 않아서 좋다.  무엇보다 작가가 자신의 감상에 매몰되지 않는 점이 그가 프로 작가로서의 저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나는 이 책의 작가를 모른다.  주제 사라마구를 제외하면 포르투갈 작가 중 생각나는 인물이 없다.  얼마 전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재미있게 읽은 탓인지 이 책의 제목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면 열 일 제쳐 두고 넋을 놓곤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시작된 또 다른 버릇이다.    미국의 전도유망한 청년이 유괴된 일곱 명의 아이를 모두 구출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이야기란다.  네팔의 오지에도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빛나고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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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2012-06-06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랄랄라 하우스를 읽고 싶으신 분들이 많으시네요.
저는 구판으로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김영하 작가의 책이어서 관심들이 많은 것같아요.
6월의 주목 신간도서를 작성해 주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꼼쥐 2012-06-12 15:40   좋아요 0 | URL
아~~~그러셨군요. 저는 아직 읽지 못해서...ㅎㅎ 이렇게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