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41 | 142 | 143 | 14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가계빚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려는 정부의 노력이 눈물겹도록 가상하다. 진심이다. 다사다난했던 2014년을 뒤돌아 볼 때 대한민국의 국민들 대부분은 웃을 일보다는 슬퍼하거나 화낼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인지 정부에서는 블록버스터급 코미디 두 편을 선보였다.

 

그 하나는 '정윤회 문건에 얽힌 비화(가제)'이다. 이미 검찰의 수사도 마무리 단계이고 저간의 의혹도 대부분 덮인 상황이지만 국민들도 대부분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었을 줄 안다. 정부와 검찰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압권이었던 것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실에서 근무했던 박모 경정이 정말, 아주 정말 할 일이 없고 무료해서 '찌라시'와 같은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근무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해야만 한다. 나도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 자리가 그렇게 무료하고 할 일이 없는 직책인 줄은 미처 알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다리가 배배 꼬일 정도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박모 경정은 위험을 무릅쓰고 보고서 형식을 빌어 소설 한 편을 완성했던 것이다. 다 함께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그의 상사와 청와대 관계자들도 박 경정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리라. 그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일부 관계자들만 즐긴다는 건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들로서 있을 수 없는 일, 언론을 통하여 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물론 소설 속의 주인공들(정윤회, 박지만 등)을 불러 검찰청에서 차도 한 잔씩 대접함이 마땅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던 듯하다. 그나저나 박 경정은 이제 대한민국 작가협회 정식 회원으로 등록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의 코미디극은 '대통령 당선 2주년 선물(가제)'이다. 알다시피 오늘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성된 지 2주년이 되는 날이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노고를 치하하고, 당선 2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409일 동안 준비했다고 한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선물을 대통령께 드린 셈이다. 그동안 박 경정이 쓴 소설과 되는 일 하나 없는 국가 운영에 속이 문드러질 대로 문드러졌을 텐데 늦게나마 여론과 언론의 압박으로부터 대통령의 숨통을 틔워준 일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찬조출연한 어버이 연합 등 보수단체의 멋진(?) 퍼포먼스도 있었다.

 

정말 웃을 일 없는 시기에 조금이라도 국민을 웃게 만들려는 국가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유난히 글이 잘 써지는 날이 있다. 미리 구상한 것도 아닌데 술술 풀려나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남에게 내놓고 자랑할 만큼 멋진 글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날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곰곰 되짚어 보게 된다. 좋은 꿈을 꾸었다거나, 뜻하지 않은 횡재가 있었다거나, 난데없는 칭찬을 들었다거나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다 할 공통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여느 날보다 기분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책을 더 열심히 읽었던 것도 아닌데 미리 준비된 원고처럼 글이 쉽게 쓰이는 걸 보면 도통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쓰인 글에는 여지없이 많은 댓글이 달린다. 물론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읽으면 초등학생 수준의 글로 비춰질 게 뻔하지만 말이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날은 정말 고심하여 리뷰를 쓰는 경우도 있다. 몇 번씩이나 글을 수정하고 반복하여 읽어본 후 괜찮다 싶어 올린 글임에도 불구하고 평가는 냉담할 때가 있다. 어떤 칭찬이나 대가를 바라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어깨가 처지고 풀이 죽는다.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도 해보지만 딱히 이렇다 할 만한 게 없다. 기껏해야 짧은 리뷰나 일상에서 벌어지는 잡담 수준의 글을 쓰면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우습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수정이나 퇴고도 없이 단숨에 써내려간 글에 댓글이 달리는 걸 보면 나름 신기할 때가 더러 있다. 모르긴 몰라도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은 보이지 않는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모임도 잦고 밀린 일도 많다 보니 요즘은 이웃 블로거의 글도 읽어볼 시간이 없다. 미안한 일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qualia 2014-12-18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공감하는 부분이 있어서 읽다가 소리내서 웃었네요~ :)

꼼쥐 2014-12-19 14:26   좋아요 0 | URL
다들 비슷하신가 봐요. ㅎㅎ

2014-12-19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9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명인이 된 지인과 우연히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연단에 선 강사와 한 명의 방청객으로, 조명을 받는 연주자와 어둠 속에 묻힌 관객으로, 또는 TV 화면에 존재하는 출연자와 존재하지 않는 시청자로서 말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공유하는 과거의 기억은 낯선 이의 방문처럼 어색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아닌 각자의 개별적인 영역에서 살아왔던 시간의 장막으로 인해 한때 우리가 알고 지냈던 과거 기억의 출현은 느닷없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이지요. 그것은 마치 뜨거운 감자가 손에 쥐어진 것처럼 우리를 한동안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대게 합니다.

 

그때의 어색함이란 부러움이나 흔히 있을 수 있는 시기나 질투의 느낌과는 다른 것입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개별적인 삶은 어떤 층위를 구분하여 규정되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단절된 시간에서 오는 생경한 느낌, 그렇다고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모호한 관계, 시간의 양적 변화를 어쩔 수 없이 확인해야 한다는 부담 등으로 인해 과거의 기억을 현재라는 시간에 어떤 방식으로 배치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 뿐입니다.

 

찰나에 그친 눈빛 교환과 그것만으로도 서로를 확인하는 데 부족하지 않았던 감지, 그리고 어찌할 바 모르는 시선의 흔들림. '어떻게 지내냐?' 는 물음과 '그저 그렇지 뭐' 하는 대답은 어색함을 경감시켜보려 했던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시간의 암전마저 더해져 서로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그동안 이어지지 않았던 시간의 간극을 애써 메워보려 하지만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색한 자리를 서둘러 벗어나려는 발길을 애써 붙잡으며 우리는 말합니다. "'언제' 밥이나 한 번 먹자." 그 '언제'는 허공에서만 맴돌 뿐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인사였음을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됩니다.

 

모임이 잦은 요즘, 거리에는 눈송이처럼 빈말만 쌓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qualia 2014-12-09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거 진짜 마지막 인사인 줄 알고 가슴 철썩했네요.

마지막 인사 아니죠? ^^

꼼쥐 2014-12-14 13:46   좋아요 0 | URL
그럴 리가요. ㅎ
가끔 블로그를 접고 싶었던 적이 있기는 했어요.
 

내가 어렸을 때 나는 종종 '책잠'에 빠져들곤 했는데 이런 나를 두고 형이나 누나들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지 의심하곤 했다. 말하자면 내가 힘든 일을 피하기 위해 짐짓 못 들은 체 한다는 거였다. 예컨대 아주 추운 날 연탄을 날라야 한다거나, 샘에서 물을 길어와야 한다거나,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야 한다거나 할 때면 나를 아무리 불러도 못 들은 체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책잠'에 빠져 있어서 듣지 못했노라고 해명하곤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정말 일단 책을 잡기만 하면 마치 가수면 상태로 진입한 것처럼 책에 빠져들곤 했었다. 나는 그것을 '책잠'이라 부르곤 했는데, 형이나 누나들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일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핑곗거리 내지는 변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큰 소리로 불렀는데 듣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그러나 나는 정말 책에서 깜박 '깨어났'을 때 현실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채 잠시 동안 어리둥절하곤 했었다.

 

내 방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던 탓에 '책잠'에 한껏 빠져둘고 싶은 날이면 형과 누나의 눈을 피해 으슥한 곳으로 숨어들곤 했었다. 곰팡내 지독한 광이나 외양간으로. 나는 그곳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책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이따금 진짜로 잠이 든 적도 없지 않았으므로 그럴 때마다 형과 누나는 나를 찾아 헤맨 적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이제 나는 '책잠'에 빠지지 않는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눈치를 보며 짬짬이 읽는 독서가 그렇게 될 리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한동안 길들여져 온전히 책에 집중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쩌면 책이라는 가상현실의 세계에서 단조롭고 안전한, 때로는 평화롭고 푸근한 느낌에 한껏 취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따금 아들과 함께 서점에 들러 책을 읽을라치면 아들을 통해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책에 흠벅 취한 아들은 혼자 킬킬대기도 하고, 인상을 쓰기도 하고, 조용히 미소짓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아들을 방해하지 않는다. '책잠'에서 스스로 깨어날 때까지 옆에서 조용히 기다릴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금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첫눈인가 봅니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저는 올해 들어 처음 보는 눈이니 제게는 첫눈인 것입니다.  부유하는 눈송이들은 지구의 중력과는 무관한 듯 그저 가볍습니다.

 

오늘 아침, 여느 날처럼 어둠에 싸인 산을 올랐을 때 저는 내심 눈 덮인 산길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바람만 거셀 뿐 눈은 내리지 않더군요.  어제 내린 비로 낙엽이 쌓인 등산로는 조금 질척거렸고 미끄러웠습니다.  밤새 불었던 바람은 마른 가지를 부러트려 등산로 여기저기에 흩어 놓았고, 어둠에 익숙지 않은 나의 발부리에 차여 둔탁한 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비인지 진눈깨비인지 잠시 흩뿌렸습니다.  오늘의 날씨에 지레 겁을 먹은 등산객들은 집에서 나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유난히 인적이 드물었던 오늘의 등산로에는 바람 소리만 가득했습니다.  어둠은 끝내 걷히지 않았고, 그 어둠 속에서 젖은 낙엽들만 밟혔습니다.

 

빗줄기로 시작된 오늘의 눈은 소나무 위에 슬몃 얹혀 12월의 첫날을 기억하게 합니다.  지금 밖에는 부유하듯 눈발이 치고 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qualia 2014-12-02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곳에도 첫눈이 많이 왔답니다.
그런데 지붕에는 첫눈치곤 많이 내려쌓였는데요.
길바닥에는 거의 쌓이지 않고 금방 다 녹더군요.
여태까지 따스한 늦가을 날씨가 물러가지 않았던 탓 같습니다.

조금 전, 밖에 나가 이웃집 승용차 지붕에 쌓인 눈을 뭉쳐
밤하늘 높이 던져올려봤네요.^^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 던진 눈뭉치를 받다가
잘못 받는 바람에 부서진 눈뭉치가
몸속으로 들어가 가슴 밑에서 차갑게 녹았습니다.
첫눈과의 상견례를 꼼쥐 님 윗글을 읽다가 이렇게 치렀답니다.^^

꼼쥐 2014-12-02 09:41   좋아요 0 | URL
아~~그러셨군요.
저는 오늘 아침 산을 올랐을 때 쌓인 눈을 밟는 느낌이 좋았어요.
떨어진 기온에 비해 많이 춥지는 않았구요. 아마도 바람이 잦아들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뭇가지 위에도 소복소복 눈이 쌓여 있더군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41 | 142 | 143 | 14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