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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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중학교 운동장의 풍경은 허허롭다. 너른 운동장 한 귀퉁이에 한 소녀가 등장한다. 회색 트레이닝복 차림에 검은 가방을 멘 소녀는 뭔가 신경 쓰인다는 듯 이따금 뒤를 힐끔거리며 학교 건물을 향해 운동장을 가로지른다. 소녀의 뒤 10여 미터쯤 뒤에서 검은색 트레이닝복에 검은 가방을 멘 남학생이 소녀의 뒤를 따르고 있다. 나는 먼 거리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소녀와 소년이 예전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지, 아니면 일요일인 오늘 아침에 우연처럼 마주친 사이였는지 나는 그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한다. 다만 뒤를 힐끔거리며 앞에서 걷는 소녀의 태도로 보아 두 사람은 이미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사이가 아니었을까 내심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서로의 존재를 그저 알고만 있었을 뿐 다정한 말을 건네거나 우연한 기회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특별한 관계로 진행되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데면데면한 관계로만 남았던 두 사람. 뒤에서 걷던 남학생도 여학생의 존재가 자못 신경이 쓰이는 듯 처음 설정한 거리를 더 넓히거나 좁히지 않는다. 나는 그 남학생에게 큰소리로 말해주고 싶었다. '어서 달려가서 여학생에게 네 마음을 고백해 봐. 먼 훗날 오늘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말이야.' 여학생이 학교 건물의 출입구를 통과한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한 남학생이 다른 출입구를 통과한다. 나는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그 건물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추억 속에서 문학에 대한 사랑은 모든 짧은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에 비해 큰 우위를 지닌다. 우리는 언제 그리고 어디서 그 '타인'을 만났는지, '그'가 그날 우리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다(오히려 그날 밤 우리가 '그'를 즉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에 매우 놀라워한다). 반대로 문학은 우리를 첫눈에 매료시킨다. 달리 말하면, 떠들썩한 굉음을 내면서 결정적이면서도 정확한 이끌림을 선사한다. 나는 내 인생의 위대한 책들을 어디서 읽었는지, 어디서 발견했는지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거기에는 내 청춘의 내적 풍경과 외적 풍경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p.195)


우리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매력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는 그녀 자신의 생각이 글로 전환되는 회로가 남들에 비해 매우 발달해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직관적이거나 감각적인 것으로 읽히는 그와 같은 생각들은 때로는 도발적인 듯 여겨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사강 자신의 솔직함을 부각하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그녀의 글은 짧지만 후회 따위는 하지 않는 사랑, 뜨거웠던 여름과 우울함을 한껏 드러낸 그림자, 오만과 굴욕, 자기 자신으로 강렬하게 살다 지는 것, 밤의 유희와 한낮의 피곤, 뻔뻔스러움과 순수함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적어도 사강 자신이 추구했던 삶의 모습에서 철저히 등을 돌렸던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 두 번의 결혼과 이혼, 약물중독,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도발적인 선언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기계적으로 태양을 향해 손바닥을 내민다. 그러나 손을 다시 쥐지는 않는다. 시간과 사랑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하듯이, 태양도 인생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나는 웃고 잊어버리는 사람들, 어느 곳이든 다른 곳, 그러나 이곳을 닮은 다른 곳, 혹은 이곳을 닮으려고 애쓰는 다른 곳, 그러나 결단코 그것에 성공하지 못할 다른 곳을 향해 다시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로 내려간다."  (p.176)


사강의 에세이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은 사강 자신이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찾아낸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을 주저리주저리 써 내려가지 않았다는 데 놀라움이 있다. 어쩌면 그와 같은 글은 그녀의 성향에도 맞지 않는 주제일 테지만 말이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이 만났던 여러 인물의 고통과 환희에 대해 쓰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어느 누구의 삶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그렇지만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하는 제삼자적 관점의 객관적인 평가일지도 모른다.


"빌리 홀리데이에 대한 내 경탄 혹은 내 기억의 힘은 이러하다. 그 공연이 보잘것없고, 끔찍하고, 웃음거리가 될 만한 결함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노래했다. 한 소절을 불렀고, 힘겹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풍랑이 심한 바다에서 상갑판의 난간에 매달리듯 피아노에 매달렸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분명 나와 똑같은 마음으로 그곳에 온 듯했다. 그녀에게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으니 말이다. 그러자 그녀가 빈정거리는 듯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듯한 시선을 그들에게 던졌다. 사실 그것은 그녀 자신을 향한 사나운 시선이었다."  (p.35)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재즈의 디바 빌리 홀리데이,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미국의 배우 겸 영화감독 오손 웰스, 러시아 출신의 유명 발레리노이자 안무가 루돌프 누레예프, 프랑스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 등 사강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좋아했던 인물들의 명과 암에 대해 주관적인 필체로 펼쳐 보이는 이 책은 사강이 썼던 다른 어떤 소설보다도 극적이고 화려하며 깊은 울림을 준다. 그렇다고 사강의 소설이 그녀가 쓴 이 한 권의 에세이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사강의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은 우리가 아무리 겪어도 결코 완전하게 파악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삶에 대해 쓰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이라는 것도 그들이 겪었던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 더 극적이었을 뿐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사강은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휴일 오전에 보았던 중학교 운동장의 풍경이 마치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잊히지 않는다. 해가 지고 있다. 종일 비었던 운동장엔 동네 꼬마들이 공을 차고 있다. 떠들썩한 소음도 늦가을 밭은 해걸음에 금세 사라질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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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으로 있어줘
고니시 마사테루 지음, 김은모 옮김 / 망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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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과는 다르게 일본소설 중 몇몇은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묘한 제목을 달고 출간된다. 예컨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나 <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등은 제목만 들어서는 도무지 소설의 장르나 내용에 대해 감을 잡기 어렵다. 소설을 다 읽은 후에야 겨우 작가나 출판사가 왜 그런 해괴한 이름을 짓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책의 제목이라는 게 물론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본연의 목적이 있기는 하지만 일본 작가에 비해 꽤나 점잖은(?) 한국 작가들은 그런 괴상망측한 제목을 그닥 선호하지 않는 듯하다. 고니시 마사테루의 소설 <명탐정으로 있어줘> 역시 책의 제목만 들었을 때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제목에 '명탐정'이란 단어가 들어 있으니 추리소설인 듯한데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어투인 '있어줘'는 도대체 무슨 소용이람.' 책을 읽기도 전에 그런 궁금증이 들었던 건 나만의 괜한 호기심이었을까? 아무튼.


방송작가에서 미스터리 작가로 변신하였다는 고니시 마사테루의 소설 <명탐정으로 있어줘>는 그의 미스터리 소설 데뷔작인 셈이다. 그러나 다카라지마샤(宝島社)에서 발행하는 잡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으니 미스터리 작가로의 변신이 그의 작가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이 대개 그렇듯 대화체 형식의 문체가 주를 이루는 까닭에 소설의 전개는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이다.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려움 없이 술술 읽히는 건 물론이고 말이다.


"할아버지는 부드러운 웃음을 띤 채 커피를 또 한 모금 마시고는 신중한 손놀림으로 침대 옆 테이블에 컵을 내려놓았다. "그래, 네 말이 맞단다. 난 분명 루이소체 치매 환자야." 역시 가에데의 직감이 들어맞았다. 할아버지의 검은 눈동자와 그 속의 홍채는 세공된 유리처럼 섬세했고, 빨려들 것 같은 심원함으로 가득했다."  (p.27)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27세의 가에데에게는 교장 선생님으로 은퇴한 71세의 할아버지 히몬야가 유일한 가족이다. 가에데의 엄마는 가에데가 태어나기도 전에 결혼식장에서 스토커에게 피습을 당해 사망했고, 아빠마저 암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가에데에게 친구이자 부모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할아버지는 이제 환상성 치매에 걸려 거동도 자유롭지 못하고 정신도 오락가락한다. 평소에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열렬한 팬인 동시에 일상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일들을 본인이 직접 추리하여 해결하는 것을 취미로 삼으셨던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가에데는 차츰 정신을 잃어가는 지금의 할아버지 모습이 못내 안타깝다. 가에데는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돌보며 일상의 미스터리를 소재로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이어간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미스터리의 비밀을 완벽한 추리를 통해 해결하곤 한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죠. 애당초 가공의 세계이기에 미스터리는 아름다운 것 아니었느냐는 사실을요. 그리고‥‥‥다시 읽는 동안 어쩌면 엄마 사건도 가공의 세계에서 벌어진 일일지도 모른다고 여길 수 있게 됐어요. 현실 도피일지도 모르죠. 굴절된 심리일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자아내면 모든 것이 스토리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스토리다. '지어낸 일'이기에 아름답다. 현실 세계도, 미스터리도, SF도‥‥‥그리고 연극도."  (p.277)


가에데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미스터리는 마치 소설 속 액자 추리소설처럼 읽힌다. '요리주점의 '밀실'', '수영장의 '인간 소실'', '33인이 있다!', '환상의 여인' 등 가에데가 들려준 소제목의 미스터리를 두 사람은 열심히 추리한다. 그러나 가에데의 엄마를 살해했던 스토커가 가에데를 납치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할아버지의 추리가 이어지는데...


"가에데는 베개 끄트머리를 꼭 잡고 병실 창밖을 보았다. 저 무수히 많은 불빛 속에서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어느 시대든 보통 사람은 생각지도 못할 추악한 계책을 사용하는 인간은 존재한다. 그보다는 할아버지가 보는 환시가 훨씬 아름다운 광경일지도 모른다."  (p.360~p.361)


우리는 종종 소설보다 더 끔찍한 일을 현실 세계에서 겪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를 다시 살게 하고, 용기를 북돋우는 건 인간 본성에 대한 신뢰와 순수한 인간 본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내는 헌신적인 사랑이다. 소설에서도 가에데의 곁에는 동료 교사인 이와타와 그의 후배 시키, 누구보다도 손녀를 사랑하는 할아버지 히몬야가 있었다. 풀벌레 소리가 들릴 듯한 저녁. 멀리서부터 어둠이 내려앉고 있다. 내일이면 또 분주한 한 주가 시작될 테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우리는 또 힘든 시간을 견뎌낼 것이다. 소설 속 가에데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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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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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보라는 무척이나 학구적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그를 직접적으로 대면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쓴 소설의 일부 장면에서 일반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전문적인 지식과 생경한 단어들의 조합이 맥락도 없이 길게 이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라면 오히려 아주 쉬운 단어를 동원하여 가장 쉬운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테지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소설가가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지적 욕구가 왕성한 정보라 작가는 칭찬을 받으면 받았어야지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를 사랑하는 애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소설의 흥미를 끊는 전문적인 서술 부분은 못내 아쉬운, 말하자면 정보라 소설의 '옥에 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생경한 단어를 통해 작가의 높은 학구열은 십분 파악할 수는 있었지만 말이다.


소설의 시작은 상당히 도발적이다. 테러 사건의 범인 '태'와 유명 제약회사 사장의 딸인 '경'이 관계를 하는 장면이다. 그들에게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끔찍한 고통의 경험'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제약회사 사장의 딸로 태어난 '경'과 달리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없는 '태'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형과 함께 사이비 종교 교단에서 성장했다. '태'가 속한 교단에서는 고통을 느끼는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고 믿었고, '태'는 특별한 부작용 없이 강력한 진통 효과를 보이는 'NSTRA-14'를 개발하는 제약사에 폭탄을 던져 사상자를 발생시킨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교단은 연이어 벌어진 살인 사건에 엮이고, 수사팀은 교단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태'를 동행한다. 그렇게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태'의 형 '한'을 만난다. 폭력을 동원하여 일부러 통증을 유발하고, 그것을 참고 견디는 게 일종의 수련 과정이며 구원의 길이라고 믿는 '한'은 수사가 진행될수록 살인범으로 의심받는다.


"인간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을 견딥니다. 고통에 초월적인 의미는 없으며 고통은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의미와 구원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p.284~p.285)


제약회사 대표의 딸로 태어나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경'은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생체실험의 도구로 쓰였으며, 친족 성폭력을 경험하였고, '태'의 폭탄테러로 부모님을 잃고 토네이도에 의해 어린 오빠마저 잃었다. '경에게는 이렇다 할 삶의  목적이란 게 없었다. 그녀를 살아가게 하는 건 동성 배우자인 '현'의 존재였다.


"죽고 싶었는데, 죽고 싶은데도 죽을 수 없었는데, 그래서 살아남았는데, 죽지 않고 살아서 앞으로 찾아올 고통을 또 견뎌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저주했는데, 존재를 태워버릴 듯한 공포와 분노와 절망 또한 몸 안의 고통과 마찬가지로 흔적도 증거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경은 칼날로 살을 가르고 불로 몸을 태웠으나 그 역시 새로운 절망과 분노만을 남길 뿐 그 순간이 지나면 고통은 사라졌다. 흉터는 고통의 기억을 되살리지 못했다. 그것은 그저 시간과 함께 바래고 쪼그라드는, 오래된 절망의 초라한 흔적일 뿐이었다. 자신의 몸 전체가 - 존재 전체가 아마 그러할 것이라고 경은 흉터를 보며 가끔 생각했다."  (p.44~p.45)


작가는 '고통'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의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한 여러 부조리를 파헤치려 한다. 가정 폭력, 아동 학대, 성폭력 등 우리 사회에서 근절되지 않는 폭력과 고통의 악순환은 어쩌면 그 밑바닥에 고통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자 하는 악의 무리가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컨대 고통을 견디는 게 구원의 길임을 설파하는 종교 집단은 우리 삶에서 상존하는 고통을 통해 그들의 권위와 부를 축적하는가 하면 제약회사는 고통을 완화하고 조절하는 약을 판매함으로써 부를 취한다. 인간에게 고통이 없었더라면 그들에게 축재의 수단은 사라지는 셈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없던 고통도 만들어 냄으로써 고통이 만연한 사회, 고통에 중독된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 시장 경제를 추종하는 한국 사회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무한 경쟁의 출혈은 전 생애 동안 계속된다.


"탐색은 실패했다. 이제 경은 그 사실을 이해했다. 사람의 삶은 모두 다르고 고통의 경험도, 고통에 대한 대응도 각각 달랐다. 자신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었다."  (p.301)


로고테라피를 창시한 빅터 프랭클은 말했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정보라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서 '경'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와 같은 삶의 의미를 발견해가고 있다. 혹자는 우리에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냥 즐길 수만도 없는 게 인생 아닌가. 고통을 수용하는 방식 또한 획일적으로 교육되고 그 결과를 요구한다면 그 또한 폭력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종교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네 삶에서 고통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신약을 발명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고통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것도 일종의 세뇌가 아닐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깨달음의 과정 역시 다양하다는 것을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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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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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면 인생은 한 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더 짧은 듯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수없이 많은 인생을 기록하고, 또다시 읽고, 기억하려 애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읽었던 한 사람의 인생만큼 나의 인생이 조금 더 길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우리를 독서의 세계로 안내하는 게 아닐까, 혹은 수없이 많은 영화의 세계로 이끄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남긴 삶의 기록들을 읽어가다 보면 나의 인생도 무한대로 늘어나지나 않을까 한껏 기대를 품게 됩니다. 철없이 말입니다.


이희영 작가의 소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역시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한 사람의 흔적을 좇는 이야기인 동시에 형이 살았던 가상의 세계에서 형에 대한 그리움을 키워가는 주인공 선우혁의 이야기를 다룬, 말하자면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나는 여름이 뒤돌아 앉은 가을 들녘을 바라보며, 어쩌면 주인공 선우혁이 맛보았을 새콤달콤한 추억의 장면 장면들을 상상하느라 단풍이 드는 소리도 미처 듣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자연도 한 가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초록으로 뒤덮여도 은행나무요, 꽃이 져도 벚나무니까. 그런데 은행나무는 가을의 상징이고 벚꽃은 봄의 표상이다. 바라보는 인간들이 그냥 그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한 사람에게 서로 다른 추억과 이미지가 덧씌워지듯이."  (p.243)


주인공인 선우혁에게는 터울이 많이 지는 형이 한 명 있습니다. 아니 있었다고 하는 게 옳을 듯합니다. 그러나 십이 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형 선우진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그의 형에 비해 주인공 선우혁의 나이는 고작 다섯 살의 꼬마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형과 꼭 닮은 모습으로 성장한 선우혁은 이제 형이 다니던 고등학교에 입학한 새내기 고등학생입니다. 형이 다니던 학교에서, 같은 나이가 된 주인공은 그 당시의 형은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에 유행했다는 메타버스 게임 '가우디'를 알게 되고, 형의 계정으로 접속을 시도합니다. 형의 아바타 JIN으로 말입니다. 게임 속 가상현실에서 형은 넓은 정원이 있는 2층짜리 하얀 벽돌집을 지었고, 형이 없는 동안 그곳을 지켰던 형의 공유 친구 '곰솔'과 조우하게 됩니다.


"엄마 아빠는 알고 있었을까? 형이 가우디에 이런 세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마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난달에서 격투기 게임을 관람하고 댄스 크루를 응원하며, 낚시하는 친구를 따라 몇 시간이고 호숫가에 앉아 있는 나를 모르는 것처럼. 어쩌면 인간의 진짜 세상은, 핸드폰과 노트북 그리고 XR 헤드셋 너머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비밀번호로 봉인된 곳. 그런 의미라면 이 정원은 형의 진짜 세계다."  (p.64)


가상세계 속 형의 정원을 둘러본 후 주인공은 형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 갑니다. 그러나 형을 기억하는 현실 세계의 사람들은 각자의 시선에 따라 '애교 많은 수다쟁이 아들', '조용하고 책임감 강한 학생', '무던한 성격' 등 제각각입니다. 소설은 형에 대한 그리움과 호기심으로 시작된, 선우혁이 발견한 형 선우진의 짧았던 삶의 조각들과 어쩌면 가상세계 속 '곰솔'이 선우진에게 보냈을 것으로 추측되는 '너'를 향한 편지가 교차되면서 전개되는 까닭에 애틋함이 더해집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너는 받지 않았어. 학교에서도 너를 볼 수 없었지. 네가 아무도 몰래 우리 집 문 앞에 두고 간 그 귤은, 얼마 못 가 파랗게 곰팡이가 피더라. 그리고 완전히 썩어 버렸어. 하지만 버리지 못했어. 정말 그럴 수 없었거든."  (p.195)


소설 속 편지는 학교에서 처음 마주했던 날부터 함께 했던 조별 활동, 둘만의 가상공간을 만들기까지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을 시간들이 길게 이어집니다. 우리는 어쩌면 자신이 살았던 현실의 삶과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재구성되는 또 다른 삶을 통해 두 번의 인생을 살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둘 중 진정한 삶은 이것이다, 그 누구도 단언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죽고 난 뒤에 재구성되는 나의 삶에 나는 더 이상 개입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현재의 삶이 소중한 것도 그런 이유일 테지요.


소설을 읽는 요 며칠, 나도 미처 모르는 새 나뭇잎의 물기가 점점 옅어지고, 하늘은 두어 뼘쯤 높아진 듯합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어떤 일이 수포로 돌아가거나 아주 미미한 성과로 귀결되었을 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까닭은 누군가의 인생을 통해 나의 인생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듯한 착각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계절을 잊은 채 책을 읽는 까닭도, 황금 같은 주말 오후를 영화를 보며 소일하는 까닭도 그런 이유가 마음 저변에 넌즈시 깔려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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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시간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박슬라 옮김 / 오픈하우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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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어둡다. 어두운 하늘을 향해 을씨년스럽게 솟은 아파트의 흰색 외벽이 자연에 순응하지 못하는 인간의 외고집을 대변하는 듯하다. 자연에 저항하는 게 삶이라면 죽음은 그 반대일 것이라는 손쉬운 가정이 주말 오후의 하늘에 화두처럼 매달린다. 매번 반복하는 상실과 그리움의 일기 면면에 나는 '실수'라고 불리는 어떤 사건들을 간식 메뉴처럼 기록한다. 나에게 활력을 주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건 어쩌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흘러가는 틀에 박힌 일상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실수'의 기록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성당의 잡무를 담당하는 사무장님과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 입맛이 없었던 나는 여러 가지 채소에 양념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빈 공깃밥에 된장찌개를 곁들여 먹는 된장찌개백반을 시켜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두어 젓가락 깨작거리다 반나마 남기겠거니 생각했는데 담백하게 끓인 된장찌개가 없던 입맛을 살아나게 했던 것이다. 다행이었다. 점심을 먹고 성당에 다시 들러 후식 삼아 믹스 커피까지 한 잔 하고서야 헤어졌다. 집으로 향하던 길, 차 안에서 신호 대기를 하고 있는데 앞차의 주변을 맴도는 노란 나비 한 마리를 보았다. 신비스러운 풍경이었다.


리 차일드의 소설 <61시간>을 마저 읽었다. 잭 리처 시리즈 중 한 권인 이 책은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서 61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시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퇴역 군인으로 딱히 할 일도 없이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니는 주인공 잭 리처는 교회의 단체관광객이 탄 버스에 몸을 싣는다. 승객 대부분이 노인이었던 그 버스는 사우스다코타의 볼턴 인근에서 사고로 발이 묶인다. 리처와 승객들은 경찰의 도움으로 마을에 묵게 되지만 마약 밀매업자들이 날뛰는 마을에는 오래전에 폐기된 석조 건물을 둘러싸고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게다가 마약 거래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재닛 숄터 여사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살고 있는 노부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잭 리처는 그 지역의 경찰들과 함께 사건에 휘말린다.


“난 댁이 왜 우리 집에 와 있는지 알아요. 왜 집 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는지도 알고. 교도소에서 사이렌이 울릴 경우에 날 보호해주려는 거겠지요. 그래서 이 집 구조를 알아두려는 거고요. 난 그런 리처 씨에게 감사해하고 있답니다. 비록 그쪽의 심리적 강박증 때문에 충분할 정도로 오래 머무르진 않을 것 같지만 말이에요. 재판은 한 달 후에나 열린답니다.”  (p.186~p.187)


마약 거래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증인인 재닛 숄터 여사를 보호하는 한편 잭 리처는 마을 인근에 있는 공군 폐기 건물의 용도와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자신이 근무했던 헌병대 수사팀으로부터 군 기록물을 검토하여 알려줄 것을 부탁하는 한편 폭주족들이 점거하고 있는 석조 건물을 위험을 무릅쓴 채 단신으로 탐사를 감행하기도 한다. 석조 건물의 지하에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쓰고 남은 항공유와 참전 병사들에게 제공했던 다량의 마약 그리고 약간의 보석류가 보관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비밀을 알게 된 마약 밀매업자 플라토는 마약을 자신의 수중에 넣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데...


“네브래스카 주, 12킬로미터 상공. 플라토의 세 번째 줄 뒤 좌석 4A에서,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전화기 한 대가 단단한 허벅지 근육에 조용하면서도 격렬하게 요동쳤다. 여섯 명의 ‘일회용’ 멕시코인 가운데 다섯 번째 사내가 전화기를 꺼내 액정을 확인했다. 그는 옆자리 4B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여섯 번째 사나이는 오늘 다섯 번째 사나이와 같은 트럭에 동행했었다. 두 남자는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열지는 않았다.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 긴장해 있었다.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단 한마디였다. 해치워.”  (p.465)


어제부터 흐렸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었다. 푸른 하늘에 대비되는 하얀 아파트 외벽은 인간 의지의 표상인 양 높고 굳건해 보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요.’라고 말했던 재닛 숄터. ‘중요한 건 어떻게 가느냐지요.’라고 응수했던 잭 리처. 인간은 자신의 욕심을 에너지 삼아 한평생을 살고, 그 에너지가 소진될 때 비로소 자신도 역시 자연의 일부였음을 깨닫게 된다. 리 차일드의 소설 <61시간>의 결말은 끝나지 않았다. 인간의 욕망이 대를 이어 계속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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