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꼼쥐님의 서재 (꼼쥐 서재) &gt; 마이리뷰</title><link>http://blog.aladin.co.kr/760404134/category/13445878</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16 Apr 2026 08:49:13 +0900</lastBuildDate><image><title>꼼쥐</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A_018.gif</url><link>http://blog.aladin.co.kr/760404134/category/13445878</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꼼쥐</description></image><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블라인드를 치며 -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 인생이 가벼워지는 15가지 불교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8435</link><pubDate>Wed, 15 Apr 2026 15: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84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5332&TPaperId=172184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37/5/coveroff/k7321353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5332&TPaperId=172184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 인생이 가벼워지는 15가지 불교 수업</a><br/>토니 페르난도 지음, 강정선 옮김 / 윌마 / 2026년 02월<br/></td></tr></table><br/>불교의 기본 교리라고 하면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로 집약될 수 있다. 고집멸도(苦集滅道)로 대표되는 사성제에서 고제(苦諦), 즉 삶이 곧 괴로움(生卽苦)으로 이해되는 까닭에 태어나고(生苦), 늙고(老苦), 병들고(病苦), 죽고(死苦), 이별하고(愛別離苦), 함께하고(怨憎會苦), 획득하지 못하고(求不得苦), 오음에 집착하는(五陰盛苦) 고통은 삶 전체로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른바 팔고(八苦)라고 일컫는 이 고통은 원인이 있으며(集諦), 대중은 이 원인을 알지 못한다. 이른바 무명(無明)이라고 하는 '알지 못함'의 상태를 벗어나는(滅諦) 것을 열반이라고 하며 이것이 곧 멸성제(滅盛諦)이다. 괴로움의 원인이 '알지 못함'인 반면 이것에서 벗어나면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괴로움을 멸하기 위한 길(道諦)로 제시되는 8가지의 바른 수행방법, 즉 팔정도(八正道)가 그것이다. 올바른 견해(正見), 올바른 생각(正思惟), 올바른 말(正語), 올바른 행동(正業), 올바른 생활방식(正命), 올바른 노력(正精進), 올바른 마음가짐(正念), 올바른 집중(正定)을 통하여 인간의 고통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br>인간의 삶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존재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함으로써 이를 따르는 대중 누구나 열반에 들 수 있게 하겠다는 불교의 원대한 꿈은 일견 타당하고 논리적인 것으로 보인다.&nbsp; 그러나 이를 엄격히 지키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수행방식은 우리네 삶을 원숙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의 지침서인 동시에 누구나 알아야 할 생활 철학인 셈이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나는 불교가 부처님에게 각자의 소원이나 빌고 의식에 필요한 제문으로서 경전을 읊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타의 종교와 같은 것으로 보지 않아 왔다. 그리하여 나는 비록 나의 종교이자 신앙으로 천주교 세례를 받은 몸이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던 스님과의 유대를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불교 서적을 뒤적일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일에 대하여 마음의 부담이나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br>"이 책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꼭 불교 신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불교 신자도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이 기독교나 이슬람교, 힌두교, 유대교 신자이든 무신론자이든 상관없다. 이 책에 담긴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은 당신의 믿음을 전혀 위협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여기에 제시된 가르침을 실천하다 보면 이전보다 더 친절하고 침착해진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nbsp; (p.15 '머리말' 중에서)<br>&lt;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gt;의 저자인 토니 페르난도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분인 듯하다. 정신과 의사이자 수면의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면서 네 차례나 임시 출가하여 승려로 수행한 경력이 있다고 하니 불교에 대한 지식으로만 따진다면 나와는 비교가 되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앞에서 말했던 팔정도는 다시&nbsp;세 가지 범주인 계(戒), 정(定), 혜(慧)로 나뉜다. 윤리적 행위를 나타내는 계(戒)에는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이 속하고 정신집중을 나타내는 정(定)에는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 그리고 지혜를 나타내는&nbsp;혜(慧)에는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가 포함된다. 저자 역시 이를 염두에 두고 목차를 정한 듯하다. 1부 '正見----바른 견해', 2부 '戒----계', 3부 '布施----보시', 4부 '定----정', 5부 '慧----혜', 6부 '慈悲----자비'의 총 6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부처님 말씀과 더불어 이에 알맞은 저자의 상담 사례를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br>"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취하지 말아야 한다. 맑은 정신에서 신중한 생각과 말, 행동이 나온다. 이는 타인에게 안전이라는 선물을 줄 수 있다."&nbsp; (p.132)<br>우리나라의 문화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외국인의 수가 부쩍 늘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뿐만 아니라 불교라면 체머리를 흔들던 젊은이들에게도 그 이미지가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시쳇말로 우리나라의 사찰이 힙한 장소로 거듭난 것이다. 이와 같은 성과의 이면에는 물론 불교계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나날이 복잡해지는 현대인의 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만큼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도 더는 없겠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나간 게 아닌가 싶다.<br>"크든 작든, 충격적이든 사소하든, 우리는 모두 고통과 시련을 겪는다. 병을 겪고, 외로움을 느끼고, 오해받기도 하며, 걱정과 불확실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누군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상관없다. 육체와 정신을 갖고 있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고통을 겪게 되어 있다. 그 고통과 시련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nbsp; (p.310~p.311)<br>해가 길어지면서 한낮 기온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한낮 기온은 벌써 초여름을 방불케 한다. 봄인가 싶던 계절은 저만치 앞선 여름을 기웃거리는 듯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짐짓 걱정이 되는지 '올여름은 얼마나 더우려고 벌써부터 이래?' 하면서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더위도 더위지만 더위로 인한 불쾌지수가 걱정이 되는 것이다.<br>오늘은 점심 식사를 친한 친구와 함께했었다. 오전에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 장례식장에 다녀왔다는 친구는 표정이 어두웠다. 그의 친구는 한밤중에 심장마비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순서를 기다리는 도중에 사망했다고 했다. 전에도 사고로 죽은 친구는 있었지만 병으로 죽은 친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도 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겉보기에 우리의 삶이 단단하게 유지되는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허약한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만큼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리 없다고 굳게 믿고 사는 우리는 또 얼마나 허황된 생각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가. 기우는 햇살이 사무실로 짓쳐 들고 있다. 블라인드를 쳐야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37/5/cover150/k7321353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37055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어떤 믿음도 영원하지는 않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2019</link><pubDate>Sun, 12 Apr 2026 16: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2019</guid><description><![CDATA[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주변에는 직업적인 정치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나 이웃, 혹은 가족이나 친척 중에도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는 듯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등학교 동창 중 한 명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도와 당선시킨 후 그의 특별보좌관인가 뭔가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그 친구마저 연락이 뜸한 상태가 되는 바람에 주변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은 숫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정치인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는 전무한 상태에서 언론과 카더라 통신에 의존하여 형성된 정치인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과 이미지는 온갖 부정적인 정보로 도배가 된 조악한 것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나에게 고착화된 그들의 이미지는 사기꾼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부류이거나, 적어도 선량한 일반 시민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뿔만 달리지 않았을 뿐 도깨비와 진배없는 형상이었습니다. "선거 때 무슨 얘기를 못하나. 표가 나온다면 뭐든 얘기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던 MB의 본심이 담긴 명언(?)을 듣고서 나는 '정치인=사기꾼'이라는 등식을 더욱 굳건히 믿게 되었습니다.<br>그나마 그들 부류와 조금쯤 다른 정치인이 있었다면 아마도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특정 정치인을 완벽히 신뢰하거나 신뢰를 넘어 존경의 차원으로 발전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분은 정치를 할 분이 아닌데...' 하는 식의 안타까움을 느꼈을 뿐입니다. 정치인들 대부분이 유권자들 앞에서는 아주 환한 미소를 보이다가도 뒤돌아서는 순간 인상을 쓰기도 하고, 선거 때면 가장 낮은 자세로 악수를 청하다가도 당선이 되자마자 가장 뻣뻣한 자세로 고개를 쳐드는 그런 인간들이라는 믿음을 내 머릿속에서 지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이번 중동전쟁을 보면서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태도가 그닥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한 국가의 최고책임자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을 텐데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는 그들의 사적인 이익에만 몰두할 뿐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그들 국가의 국민이 한편으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br>전쟁이란 모름지기 명분이나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미국과 이스라엘은 그런 정당성은 뒷전으로 한 채 '내가 하고 싶다는데 니들이 어쩔 건데?' 하는 식의 제국주의 논리에 의거한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미국과 이스라엘 국민 전체를 테러 대상자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여행과 통신이 자유로운 현대에 있어 그들 국가의 국민은 언제든 테러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는 국민의 안전을 방기한,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한 범법자라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국가의 국민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의식 수준이 아주 낮거나 민주주의를 포기한다는 선언이겠지요.<br>그런 의미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깡패 짓거리에 대해 비판이나 논평의 글 또는 대담이나 인터뷰를 하는 것을 단 한 차례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국격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을 비겁한 자의 품에 숨게 만드는 비열한 짓이었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규탄함에 있어서도 정작 이를 발언해야 할 대통령이 침묵함으로써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겁을 먹고 뒤로 숨는다는 인상을 전 세계에 알려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민은 정의의 편에 서지 않는 비겁한 족속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br>그런데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엑스에 이스라엘 방위군인 팔레스타인 아동을 고문한 뒤 옥상에서 떨어뜨렸다고 주장하는 게시글과 영상을 공유하면서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썼던 것입니다. 해당 영상이 2024년 9월 촬영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국제인도법은 준수돼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 역시 타협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에 반발하는 이스라엘 외무부의 논평과 찌질하기 짝이 없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논평이 있었지만 그것은 세계인의 상식과 논리에도 맞지 않는, 그리고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는 부적절한 발언이었습니다.<br>내가 이재명 대통령의 대응을 높이 평가하는 까닭은 우리가 세계인의 관점에서 언제나 정의와 평화의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 전체의 안위가 지켜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미국 국민은 이번 사태로 인해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제한될 수도 있으며 언제든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이번 전쟁을 촉발시킨 정치 지도자가 져야 할 것입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먼저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비단 금세기에 들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고려의 문신 서희와 거란의 장수 소손녕의 담판에서도 전쟁의 명분이 주된 논지였습니다. 소손녕이 싸움도 하지 않고 군대를 물린 것도 명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는 세계사에서도 자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번 전쟁은 어떤 명분도 없이 당사국인 이란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피해와 고통만 안겨주었을 뿐입니다. 엑스에 올린 이재명 대통령의 의견 표명으로 인해 '정치인=사기꾼'이라는 오래된 믿음에 약간의 균열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이재명과 같은 정치인이라면 적당한 신뢰를 표명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다음에 만날 때까지 안녕 - [데미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0238</link><pubDate>Sat, 11 Apr 2026 15: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102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137401&TPaperId=172102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6/4/coveroff/k8021374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137401&TPaperId=172102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데미안</a><br/>헤르만 헤세 지음, 김희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나이가 들수록 가까운 과거보다 먼 과거에 더 집착하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렇다. 이 사실에 대해 '왜 그럴까?' 하고 이따금 생각할 때가 있다. 어차피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반감이랄까 아니면 세월의 역류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젊은 시절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먼 과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회상이 좀 씁쓸하게 여겨지곤 한다. 어쩌면 나는 내가 살아왔던 지난시절을 되돌아보며 나를 성장시켰던 단계단계마다의 성과와 실수를 되짚어보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서 나의 실수를 바로잡을 수는 결코 없겠지만 말이다.<br>단 한 번뿐이라는 일회성의 인생에 대한 인식은 젊은 시절에는 잘 와닿지 않는다.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무한대인 듯 여겨지기 때문이고, 죽음이란 그 형태마저 알 수 없는 아주 희미한 흔적쯤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츰 나이가 들수록 죽음은 더욱 선명해지고 남은 시간에 대한 어렴풋한 인식 또한 구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먼 과거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었던 건 아마도 그쯤이지 싶다. 이 시기가 되면 독서 취향도 크게 변하는 듯하다. 우리가 이른바 성장소설이라고 부르는 어린 주인공이 커가는 과정을 다룬 소설에 관심이 가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동화나 그림책에 큰 관심이 가기도 한다. 성장소설로 분류되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lt;데미안&gt;에 크게 관심을 가진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br>"지금까지 이야기한 체험담 가운데 이 순간이 가장 선명하게 뇌리에 남았다. 그것은 신성한 하늘처럼 우러러 온 아버지의 이미지에 처음으로 생긴 균열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받친 기둥에 쩍 하니 금이 간 순간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독립적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 이런 기둥을 무너뜨려야만 한다. 이 체험으로 우리 운명의 중요한 윤곽이 그려진다는 점을 읽어 낼 줄 아는 사람은 아쉽게도 많지 않다. 그런 상처와 균열은 대개 봉합되고 잊히지만,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가슴 속에서 계속 피를 흘리며 아픔을 호소한다."&nbsp; (p.31)<br>싱클레어의 삶을 단계별로 뒤쫓고 있는 이 소설은 이미 그 시절을 거쳐온 까닭에 자신의 삶과 견주어 볼 수 있는 독자에게 꽤나 흥미롭게 읽힌다. 청소년기에 우리는 얼마나 하찮은 계기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으며, 얼마나 큰 계기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삶을 고집스럽게 지켜왔던가.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얼마나 유약하며, 인생은 또 얼마나 단단한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프란츠 크로머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싱클레어. 그 괴롭힘은 성인이 된 후에도 큰 상처로 남지만 괴롭힘의 발단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아이들이 노골적으로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리려는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기숙 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외톨이 신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기숙사 선배인 알폰스 베크나 같은 외톨이 신세인 크나우어와도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길가에서 우연히 본 소녀의 그림을 그려 베아트리체라고 명명하며 숭배하는 싱클레어. 싱클레어를 유일하게 일깨우는 존재인 데미안은 그가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알 속에서 안주하지 말고, 깨고 나오려 분투하라고.<br>"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분투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은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nbsp; (p.147)<br>학창시절의 우리는 관념의 세계에서 산다. 관념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실존의 세계는 마냥 하찮고 낮게 보인다. 온갖 부조리와 악과 부정이 판치는 세상. 그러나 학업을 마친 우리가 실존의 세계로 접어들었을 때, 과거 자신이 높은 곳에서 바라보던 실존의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하는 자신의 삶은 '우리가 갈급하는 삶의 요구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깊이 깨닫게 된다.<br>"인간은 자기 자신과 합일을 이루지 못할 때에만 두려움을 품지. 자기 자신이 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두려워해. 자신 안의 알 수 없는 무엇인가 도사리고 있다고 두려워 떠는 사람들의 공동체! 그들은 느끼지. 그동안 굳게 믿어 온 삶의 법칙이 더는 맞지 않음을. 종교도, 풍습도, 윤리도 우리가 갈급하는 삶의 요구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건 낡은 석판에 새겨진 케케묵은 계명이라는 사실을. 그런 건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의 진정한 욕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nbsp; (p.221~p.222)<br>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운이 좋게도 자신의 곁에서 필요할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는 데미안과 같은 친구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죽을 때까지 함께한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고민을 스스로 해결하고, 자신의 세상에서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오려 분투할 뿐이다. 그리고 삶의 후반부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볼 때, 어쩌면 그런 하찮은 계기로 인해 자신의 삶이 그토록 크게 변할 수 있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그런 과정 과정이 아름답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음을 깨닫게 된다.<br>유럽 여행 중인 아들은 경유지인 뮌헨 공항에서 연결 편을 놓치는 바람에 다른 비행기로 리부킹을 하느라 예정보다 늦게 런던 숙소에 도착했다고 알려왔다.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우리도 어쩌면 경유하는 어느 공항에서 잠시 길을 잃고 헤매게 될지도 모르지만, 결국 자신이 목적했던 어느 숙소에서 피곤한 몸을 쉬게 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희망은 비행기를 날게 하는 항공유처럼 우리들 각자가 원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줄 것이다. 그리고 다음 기착지를 향해 새로운 희망을 품어야 한다. 그러나 다음 기착지에서 누구와 조우할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다음에 만날 때까지 안녕을 고해야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6/4/cover150/k8021374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86044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내일 아침에는 어쩌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06574</link><pubDate>Thu, 09 Apr 2026 16: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06574</guid><description><![CDATA[오전에 시작된 비는 오후가 되어서도 여전히 그쳤다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무실 앞 화단에 핀 목련도 이제 제 역할을 마쳤다는 듯 흐물흐물 생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꽃이 진 벚나무 가지에선 연녹색 새순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이지만 가까스로 봄이 피어날 때마다 나는 여전히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됩니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 맞는 봄인 것처럼 말입니다. 주택가보다 기온이 낮은 산에는 지금도 여전히 꽃의 난장입니다. 산벚꽃, 진달래, 조팝꽃, 복숭아꽃...<br>군을 제대한 아들은 오늘 아침 드디어 유럽을 향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이동하였던 아들은 무사히 비행기를 탔다는 메시지를 카톡 문자로 남겼습니다.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는 답글을 남기면서도 나는 내심 걱정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행이란 언제나 계획하지 않았던, 자질구레한 사건 사고들의 연속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런 일들로 인해 혹여라도 아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지나 않을지 별별 걱정으로 속을 끓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만 모든 게 우리가 의도한 대로 진행된다면 우리는 굳이 자신이 유지하고 있던 삶의 태도나 습관을 변경할 이유가 없겠습니다. 여행도 이와 같아서 미리 계획한 대로 착착 진행된다면 여행은 그야말로 장소만 달라진 일상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조금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계획에서 벗어난 일상을 마주함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여행을 경험하고, 그것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br>"삶이 끝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덧없어진다. 죽음이라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 소유와 명성, 권력, 외모, 학위 등 집착하던 모든 것은 의미를 잃는다. 나는 이 사실을 죽어가는 환자와 인터뷰하며 배웠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환자는 모두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선물인지 이야기했다. 그들은 의사나 간호사가 함께한다고 느낄 때 따뜻함을 느꼈다."&nbsp; (p.150 &lt;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gt; 중에서)<br>무사 앗사리드가 쓴 &lt;사막별 여행자&gt;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합니다. '여행은 자기 자신에게로 떠나는 것이며, 또한 그 여행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행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삶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 순간에는 소유해야 할 것도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외할머니는 아들에게 선물은 절대 사 오지 말라시며, 사 와봐야 쓰지도 않는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그래도 어찌 그리 야박하게 할 수 있느냐며 가급적 쓸 수 있는 선물을 사 오겠노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유럽 여행을 통하여 아들은 어쩌면 한 뼘 성장한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br>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자맥질하듯 비가 오락가락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어쩌면 먹이를 찾아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의 경쾌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숲에 사는 모든 생명들에게도 오늘의 비가 단비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그저 우리의 삶은 - [그저 하루치의 낙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04301</link><pubDate>Wed, 08 Apr 2026 15: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2043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482637817&TPaperId=172043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8/68/coveroff/e4826378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482637817&TPaperId=172043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저 하루치의 낙담</a><br/>박선영 지음 / 반비 / 2026년 01월<br/></td></tr></table><br/>자신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권의 에세이를 쓴다고 가정해 보자. 자신의 경험이나 살아온 이야기만으로 책을 꾸린다면 자칫 자서전으로 흐를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흥미를 이끄는 데에도 실패할 개연성이 높다. 자서전을 써도 될 만큼 유명세를 타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경험에 더불어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한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섞을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말이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의 글을 모아 한 권의 에세이를 엮을 때, 그 성패는 무엇보다도 구성의 밸런스에 있지 싶다. 예컨대 유년시절의 경험담과 직장 생활, 읽었던 책과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을 나누어 4개의 장으로 구성할 경우 유년 시절의 고생담을 너무 장황하게 쓰면 책을 읽는 독자는 글 전체의 느낌이 어둡다고 느낄 확률이 높다. 반면에 자신이 읽었던 책이나 감명 깊게 본 영화를 위주로 글을 쓰면 흔하디흔한 독서 리뷰나 영화 감상문쯤으로 오해할 소지가 높다. 지루함을 느끼는 독자가 몸을 배배 꼬기 전에 주제를 바꿔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제별 분량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작가에게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편집자도 없는 1인 출판사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말이다.<br>"나처럼 뒤늦은 나이에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던 좋아하는 선배가 했던 얘기다. 잠시 귀국했을 때, 네 명의 건장한 공사장 노동자들이 커다란 철판의 네 귀퉁이를 하나씩 잡고 옮기는 장면을 버스 안에서 보는데 왈칵 울음이 쏟아지더라는 것이다. 대번에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당신들은 함께 일하고 있군요. 나는 혼자인데. 서로 합을 맞추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당신들의 일치된 발걸음이 나는 사무치게 부럽습니다. 서로의 안위를 서로에게 맡긴 채, 외롭지 않게, 당신들은 함께 나아가고 있네요."&nbsp; (p.87)<br>박선영의 에세이 &lt;그저 하루치의 낙담&gt;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곁에 지루함을 놓아 두거나 권태를 벗어나게 할 다른 놀잇감을 찾아 자리를 뜨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작가가 책에서 쓴 이야기는 제법 무겁고 논쟁이 될 만한 것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독자들이 이렇듯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까닭은 글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총 4개의 장에서 다루고 있는 글의 분량이나 주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부 '기자라서 좋았고, 기자여서 슬펐다'에서 작가는 기자로서 살았던 17년의 세월을 돌이켜본다. 2부 '내 슬픔의 레퍼런스'에서는 슬픔에 이끌렸던 자신의 감정을 응시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가난과 무력감 등 슬픔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결들을 바라본다. 3부 '타인에 대한 예의'에서 작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각자가 어떤 사회적 책임과 윤리감각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4부 '숭고를 향하는 인간들'에서는 그럼에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 앞서 간 사람들의 사례를 보며 되새긴다. 비슷비슷한 주제인 듯 보이지만 작가는 각각의 주제에 선명한 새깔을 입히는 것은 물론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br>"무엇이 사라지지 않고 축적되는 것일까. 잃게 될까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것, 누구도 내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덕성과 지성이다. 우는 이도 웃게 하는 유머와 함께 울어주는 눈물이다. 타인의 환난을 외면하지 않는 착한 마음과 부당함에 함께 맞서는 용기다. 자신의 오류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수정하는 성찰과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겸손, 지성을 흠모하고 진리를 수행하는 지혜다. 한마디로 좋은 사람의 덕성이다."&nbsp; (p.290)<br>독서와 글쓰기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 중 다수가 자신이 쓴 책 한 권을 갖는 게 소망이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그저 마음속의 꿈으로만 간직한 채 생을 마감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나만의 책을 쓰는 것에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다. 나는 그저 남들에 비해 기억력이 나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나의 단점을 메꾸기 위해 이따금 글을 쓰기도 하고, 남는 시간에 더러 책을 읽기도 할 뿐이다. 나이가 더 들어 글을 쓰는 일조차 힘에 겨운 날이 온다면 나는 이제껏 썼던 글을 모두 없애고 조용히 책이나 읽으며 남은 생을 보낼 생각이다. 남에게 큰 죄도 짓지 않고 지금처럼 조용히 삶을 이어가는 게 꿈이라면 꿈인 것이다.<br>"양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한기가 있다. 그 한기를 감지할 때마다 그렇게 슬퍼질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 너의 견적서를 읽었다. 네겐 나의 값이 이렇게 싸구나. 순식간에 장맛비가 차오르는 한여름의 반지하방처럼 마음은 슬픔으로 출렁거린다. 값싼 내가 슬퍼서가 아니라, 값싼 네가 슬퍼서."&nbsp; (p.215)<br>새벽에 산을 오를 때만 하더라도 쌀쌀하던 날씨는 낮이 되자 금세 풀려 따뜻하다. 지난 비에 듬성듬성 꽃이 떨어진 벚나무는 마치 오랫동안 원형탈모를 앓아 왔던 사람처럼 우듬지가 휑하다. 사는 게 그저 하얗게 쌓이 꽃길만 밟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는 때로 허방을 딛고 비틀거리기도 하고, 숨을 헐떡이며 가파른 고개를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매 순간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처지에 처한다 할지라도 나와 내 주변의 이웃을 돌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나의 삶이 중요한 것처럼 이웃의 삶 역시 같은 크기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이란과 미국의 휴전 소식이 들려왔다. 늦었지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자신의 삶을 하루라도 더 연장하기 위해 이란 국민들은 그동안 얼마나 큰 두려움과 맞서야 했을까. 그리고 이웃의 죽음을 보며 얼마나 안타까워 했을까. 이 모든 게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걸 전쟁 당사자인 미국과 이스라엘의 통치권자는 과연 알기나 할까. 자신들이 얼마나 잔인한 인간이었는가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8/68/cover150/e4826378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86810</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벚꽃 밝은 밤 - [거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4952</link><pubDate>Fri, 03 Apr 2026 20: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49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5186&TPaperId=171949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3/18/coveroff/k2821351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5186&TPaperId=171949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거품</a><br/>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6년 01월<br/></td></tr></table><br/>결말보다는 과정이 궁금해지는 소설이 더러 있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결말을 미리 보고 싶지 않은 까닭일 수도 있다. 그런 소설일수록 소설의 서사는 매우 느리게 전개된다. 반복되는 일상처럼 어떤 특별한 사건 사고도 없이 지루하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독자로서는 다소 불만일 수도 있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독자가 예측하는 뻔한 순서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야기의 흐름에 인위적인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은 듯한 전개와 구성. 작가는 실제 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적은 듯 소설 어디에도 일부러 꾸민 듯한, 작위적인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런 소설을 좋아한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lt;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gt;를 읽고 단박에 작가의 팬이 되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이유가 컸다.<br>"학교 교육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공부만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실이라든가 도덕이라든가, 학교는 인간 형성을 목적하는 곳이라는 듯이 운영되는 것도, 다루기 편한 인간을 하나라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싶기 때문일 터다. 교과서에 쓰여 있는 일 따위, 하룻밤이면 뒤집힌다. 게다가 대학 입시를 위해서 입시학원에 다니고,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한다니, 도대체 무슨 저주가 걸린 것일까 불쌍해진다."&nbsp; (p.50)<br>대학 입시와 서열로 얼룩진 남자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가오루는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며 학교 밖 청소년이 되고 만다. 결국 그의 아버지 고이치는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사리하마 지역에서 재즈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가오루의 작은할아버지 가네사다에게 가오루를 맡긴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비교적 자유롭게 살고 있는 가네사다 씨는 2차 세계대전의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종전 후 귀환한 귀환병이다. 그러나 간신히 살아 돌아온 그였지만 가족은 물론 가까운 이웃들조차 그를 '빨갱이' 또는 '공산주의자'라며 색안경을 끼고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바람에 그는 가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리하마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가 운영하는 재즈 카페 '오부브'에는 함께 일하는 직원 오카다가 있다. 가오루가 머무는 여름 동안 오카다 씨와 같은 아파트에서 지내게 된 가오루.<br>"복원하고 거절당했을 때부터 가네사다는 친척이라는 것에 대해 거듭거듭 생각했다. 오 년 지나고, 십 년 지나고, 이십 년 남짓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린 결론이 그것이었다. 친척이란 커다란 바다에 나타난 잔물결에 지나지 않는다. 조류나 바람에 뒤틀리는, 수동적으로 태어난 우연의 주름 같은, 부모의 부모, 또 그 부모의 부모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계도는 종으로뿐 아니라 횡으로도 확대되어 간다. 그 확대는 세로 방향이든 가로 방향이든 바로 안개 속에 뒤섞여서 더듬어갈 수 없게 될 것이다. 더듬어가지 못하는 그 앞으로 가서 모든 선을 이어가면 언젠가는 너나 나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는 얘기가 되지 않을까? 눈앞의 친척들과 결별해도 바다를 떠돌며 살아간다는 의미에서는 같다, 가네사다는 그렇게 생각했다."&nbsp; (p.100)<br>작가는 주인공이 겪는 불안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어떤 방법이나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불안이 일상이 된 주인공의 상태를 곧이곧대로 보여줄 뿐이다. 학교 생활에서부터,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던 가오루의 집에서부터, 그렇게 이어지던 불안은 가네사다의 재즈 카페 '오부브'로까지 이어졌다. 처음 접하는 어설픈 공간이었지만 가오루는 잔잔한 재즈 선율 속에서 외국어에 능한 작은할아버지와 요리 솜씨가 좋은 직원 '오카다' 등 비록 그를 보살피는 어른들이지만 누구 한 사람 강요하거나 구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는 언제나 가오루를 믿고 지지하는 주변 어른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br>"조심해야 하는 것은 자기가 혼자라고 느낄 때야. 자기가 어딘가 막다른 곳에 몰렸다든가, 소외되었다든가, 집단을 원망하는 마음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 무리해서라도 집단에 남든지, 집단에서 나가는 편이 좋아. 그리고 정면으로 불평을 말하면 돼. 욕지거리를 해도 돼. 누군가는 그 욕지거리를 듣고 있어. 집단에서 나오고 나서 집단을 원망하기 시작하면 상처입는 것은 자신이야."&nbsp; (p.202~p.203)<br>집단에 속한 개인은 언제나 집단의 단단한 벽과 마주할 때 또는 집단 구성원과의 갈등이 심화될 때 어찌할 줄 모른 채 우왕좌왕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비단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부족한 데서 온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어쩌면 집단 속에서 오랫동안 지내온 개인이 자신의 존재를 서서히 잃어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정하고 싶지만 자신이 집단 속에서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도 띄지 않을 만큼 작아졌거나 숫제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면 집단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 자신의 존재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lt;거품&gt;의 주인공인 가오루처럼 말이다. '나'라는 존재도 이 시대를 구성하는 개체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집단의 구성원이 아닌 순수 개인으로서 깨달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오늘은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 국가 폭력 앞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그날의 제주 시민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만개한 벚꽃은 저리 밝은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3/18/cover150/k2821351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03181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애틋함의 긴 여운만 남기고 -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0226</link><pubDate>Wed, 01 Apr 2026 12: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902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034981&TPaperId=171902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31/12/coveroff/k08203498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034981&TPaperId=171902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a><br/>콘치타 데그레고리오 지음,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그림, 정림(정한샘).하나 옮김 / 오후의소묘 / 2026년 01월<br/></td></tr></table><br/>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끝없이 획득하고, 유형.무형의 자산을 무한정으로 늘려간다고 생각한다. 고가의 명품 가방이나 시계, 멋진 승용차, 넓은 주택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망하는 어떤 대상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때로는 성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거나 숫제 헤어지게 된다. 내가 태어났던 고향집, 사랑하던 애완견, 젊은 시절 한때 사랑했던 연인, 통통한 볼살이 귀여웠던 아이 등 시간의 경과로부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무수히 많다.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은 비단 존재하는 어떤 사물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나는 얼마 전 블로그에 '흘러가는 것엔 언제나 애틋함이 묻어난다'라고 썼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상실과 공허, 속절없는 안타까움에 대한 나의 솔직한 느낌을 쓴 글이었는지도 모른다.<br>"고독은 침묵과 닮았어. 한마디도 하지 않거나, 혼잣말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정말 어렵게 느껴지지. 이상하고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하루하루가 풀로 붙인 듯 서로 이어져 모두 똑같아 보이거든. 그러다 조금씩 쉬워져. 혼자 있을 때는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할 수 없어.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지. 혼자라면, 다른 사람들이 절대 불가능할 거라 말하는 일조차 할 수 있어. 어차피 아무도 혼내거나 뭐라고 할 수 없거든. 단지 들키지 않고 보이지 않게, 조용히, 천천히만 하면 돼. 누군가 다가와서 "뭐 하고 있었어?"라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면 그만이야. 아무것도."&nbsp; (p.40 '고독')<br>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언론인이자 작가이기도 한 콘치타 데 그레고리오가 글을 쓰고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가 그림을 그린 &lt;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gt;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련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떤 대상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그 대상을 잃은 것에 대한 상실의 의미와 향수를 음미한다. 그것은 어쩌면 상실을 상실로 기억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인 동시에 상실에 대한 해묵은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닐까 싶다.<br>"사라진 사람들과 사물들은 머릿속을 가득, 거의 꽉 채운 채로 떠나질 않아요.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다는 너무나 이상한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은 일종의 노동 같아요. 이 노동은 밤낮으로 이어져요. 다른 사람들은 그 피곤함을 볼 수 없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어요. 괜히 말하면 이런 소리만 듣게 되니까요. 곧 지나갈 거야, 시간이 약이야, 생각하지 마, 나가자.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죠. 누텔라 바른 빵 먹을래?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 나가자, 나가야 해."&nbsp; (p.10 '프롤로그' 중에서)<br>100여 쪽밖에 되지 않는, 얇디얇은 이 책을 나는 몇 날 며칠을 끼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작가가 호명했던 그 이름들을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흥얼거리게 되었다. 마르코, 카르멘, 알리체, 니달, 루카, 아리아......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기억에서 떠나보낼 수 없는 여러 이름들을 마치 자신의 짐보따리인 양 꽁꽁 숨겨둔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새롭게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이름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우리는 잊어야 할 낡은 이름들을 하늘에 훨훨 날려 보내야 하지 않을까.<br>"당신의 목소리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아요. 아마도 당신은 그곳에서 더 잘 지내고 있겠죠. 꼭 거기로 가야만 한다고, 당신은 그날 밤 나에게 말했으니까요. 우리가 다른 삶에서, 우리가 개구리와 나비인 곳에서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거라며 슬퍼하지 말라고 했지요. 그 말을 하던 당신은 눈길을 떨구었어요."&nbsp; (p.104 '에필로그' 중에서)<br>오늘은 4월 1일 만우절.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귀여운 거짓말로 친구들을 속여먹곤 했었는데 지금은 가짜 뉴스가 온 세계를 잠식하다 보니 만우절에 하던 거짓말조차 범죄가 되고 말았다. 사라지는 것들이 비단 어떤 공간이나 존재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어서 과거에 유행하던 풍습이나 의식도 시대가 변하자 금세 사라져 버린 듯하다. 그리고 그것에 익숙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리움처럼 추억만 남았다. 애틋함의 긴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31/12/cover150/k08203498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0311298</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어느새 3월도 - [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78993</link><pubDate>Sat, 28 Mar 2026 12: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789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6412&TPaperId=171789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5/37/coveroff/k87213641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6412&TPaperId=171789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a><br/>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최정애 옮김 / 비트윈 / 2026년 03월<br/></td></tr></table><br/>미술관 관람이 웬만한 영화 관람보다 더 흥미로울 때가 종종 있다. 내가 그림이나 조각 등 미술 작품에 조예가 깊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전시실에 놓인 작품을 쭈욱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멎게 만드는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말이다. 작가의 모든 작품에 빠져들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한두 점의 작품 앞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작가가 내게 건네는 수많은 말과 생각들을 내가 미처 주워 담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치게 된다. 그럴 때 나는 시공간을 잊은 채 한없이 자유로워진다. 주변 관람객의 소곤거림도, 자리를 뜨는 여러 관람객의 발소리도, 이따금 들리는 안내 방송도 전혀 들리지 않고, 시간은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만다. 어릴 적 술래에게 '얼음'이라고 외쳤던 그 순간처럼.<br>얼만 전에도 나는 대전에서 열린 앤디 워홀 전시회를 다녀왔다. 10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회의 기획도 재미있었지만, 인쇄물로만 보았던 앤디 워홀의 작품을 실물로 직접 보게 되는 감흥은 왠지 모르게 신나고 반가웠었다. 앤디 워홀 전시회를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왔다면 그 직후 읽기 시작한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가 쓴 &lt;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gt;는 나의 가슴을 가볍게 짓눌렀다. 나는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 이따금 책을 손에서 놓고 베란다로 나가 깊은숨을 내쉬곤 해야만 했다. 그것은 어쩌면 안젤름 키퍼에 대한 나의 지식이 지나치게 빈곤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br>"나에게 '안젤름 키퍼'는 늘 그런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은 우리 시대의 어떤 예술가의 이름보다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는데, 그것은 그의 작품들이 극히 기념비적이며, 시간으로 가득 차 있고, 역사로 무겁게 짓눌려 있으며, 사적인 것, 하찮은 것, 개인적인 것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nbsp; (p.13)<br>어떤 예술이든 작가와 관객 혹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놓인 작품은 생소한 두 사람을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어떤 작가는 때로 작품 속에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또 어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사적인 어떤 것을 일절 담지 않는다. 작가 스스로의 개인적인 성향 탓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독자나 관객에 대한 배려나 예의 차원이라고 해야 할까. 2023년 국내에서 열린 안젤름 키퍼의 국내 첫 전시회에 나는 가지 못했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의 전시회 소식도 듣지 못했다. 당시에 나의 관심이 다른 데 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lt;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gt;를 읽는 동안 나는 온라인에 떠도는 안젤름 키퍼의 작품과 그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도 찾아봤다. 그러나 익히 알다시피 우리가 약간의 수고를 감수하면서 굳이 전시회를 찾는 까닭은 실물을 직접 보는 것과 영상이나 화면을 통하여 보는 것은 실로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br>"그의 나무와 숲에 대한 집착은 1960년대 말부터 줄곧 지속되어 왔다. 그는 숲과 함께 육십 년을 보냈다. 나는 그가 그린 숲이 신화의 숲이라고 생각했다. 그림 형제의 동화 속에서 헨젤과 그레텔과 빨간 모자가 돌아다니던 숲, 게르만족이 로마인들과 싸워서 이겼던 숲, 나치가&nbsp;'독일적인 것'을 연출하는 데 이용했던 숲, 그리고 절멸 수용소들이 위치했던 숲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키퍼 자신의 숲이라는, 그가 할아버지와 삼촌, 숙모, 사촌들과 어울려 살았던 곳의 숲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nbsp; (p.73)<br>20세기 후반 신표현주의 미술운동의 주요 인물로 자리매김한 그이지만 안젤름 키퍼는 사실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던 법학도였다. 1966년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한 그가 1970년 뒤셀도르프에서 요제프 보이스의 제자가 되면서 늦은 나이에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그가 이룬 성취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은 우선 거대한 작품의 크기에 압도된다. 고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그이지만 키퍼는 짚, 납, 도료, 재, 점토 등을 이용하여 캔버스 위에 텍스처를 강조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한다.<br>"존재하는 것의 내면에 다가가 비밀을 밝히려는 예술 속에서 그 심연은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를 압도한다. 아마도 다른 어떤 이의 그림에서보다 고흐의 그림에서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고흐에게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림을 그릴 줄 몰랐기에 붓질 하나하나마다 사투를 벌여야 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회화라는 예술을 바닥부터 다시 발명해야 했다. 그래서 그림과의 투쟁 자체가 가시화되는데, 키퍼는 그 투쟁을 예술의 핵심이자 모든 것의 기원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것은 곧 보는 자와 존재하는 것 사이의 투쟁이었다. 존재하는 것은 포착될 수 없고, 그 비밀에는 결코 닿을 수 없기에, 모든 예술은 본질적으로 실패작이다. 예술은 오직 원래의 통찰력이나 비전의 일부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예술가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항상 그 비전을 거스르기에 비전은 결코 있는 그대로의 온전한 형태로 재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라는 행위에는 언제나 파괴가 동반된다."&nbsp; (p.170)<br>우리가 궁극적으로 예술작품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삶의 권태에서 벗어날 다른 대체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 경기와 같은 육체적인 방식을 통하여 일시적으로 권태를 벗어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육체가 20대의 젊음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결국 예술작품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존재하는, 그러면서도 끝없이 유동하는 이 삶의 본질에 결코 닿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존재를 부정하지 않은 채 끝없이 탐구할 뿐이다. 삶이 지속되는 한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nbsp;패전국 독일의 폐허에서 태어난&nbsp;안젤름 키퍼는 나치 시대를 다룬 작품을 종종 선보이곤 한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이 나고 자랐던 독일의 숲과 강이 그에게 심어준 그의 정체성일지도 모른다. 책의 저자인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안젤름 키퍼와의 유대를 통하여 안젤름 키퍼 자신과 그의 작품에 대한 면면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키퍼의 그림에 빠져드는 것처럼 작가의 표현과 통찰력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만다. 어느새 3월도 다 가고 말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5/37/cover150/k8721364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645374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빼곡한 도서목록을 들고 - [나의 프랑스식 서재 - 김남주 번역 에세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62388</link><pubDate>Fri, 20 Mar 2026 17: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623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0574&TPaperId=171623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60/37/coveroff/89546205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0574&TPaperId=171623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의 프랑스식 서재 - 김남주 번역 에세이</a><br/>김남주 지음 / 이봄 / 2013년 06월<br/></td></tr></table><br/>번역가의 에세이가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지 못하는 까닭은 지식의 편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원작자의 작품을 번역하는 번역가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번역했던 어떤 작품에 대해서는 원작자 다음으로 많은 지식을 소유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는 바, 그 책에 대해서 한 번쯤 읽어보았거나 전혀 읽어보지도 못한 채 다른 경로를 통해 그 책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일반 독자를 고려할 때, 번역가와 일반 독자 사이의 지식 편차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번역가는 자신의 본업인 번역 이외의 다른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책에 대한 일반 독자의 지적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또는 고려하지 못한 채) 자신이 하고픈 말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나온 에세이는 대개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너무너무 어렵다. 물론 소수이겠지만 번역가와 지적 수준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일반 독자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학술서가 아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에세이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건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br>"장 그르니에에 의하면 카뮈의 작품은 "그 작품에 대한 모든 주석을 쓸데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어떤 것이다. 그런 만큼 역자는 이 글에서 또다시 그런 '쓸데없음'을 범하지 않으련다. "그런 작품은 하나의 호소와도 같아서 우리는 그것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결정을 강요하고 당혹시키며 자기변명을 하게까지 만든다. 그런 작품은 우리에게 어떠한 회피도 용납하지 않음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nbsp; (P.76)<br>그럼에도 내가 자주는 아닐지라도 기회가 될 때마다 번역가의 에세이를 읽는 까닭은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한편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책이 뭐가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함이다. 때로는 한동안 책과 멀어졌던 까닭에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거나 시큰둥한 마음이 들 때, 혹여라도 나의 관심을 끌 만한 좋은 책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번역가의 에세이를 읽게 된다. 일종의 추천 도서 목록을 구하고자 함이다. 김남주의 에세이 &lt;나의 프랑스식 서재&gt;를 읽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김남주 번역가의 저서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br>"어린왕자는 과연 무사히 자기 별로 돌아갔을까? 가죽 끈이 없는 부리망 때문에 화자의 걱정대로, 우주 어딘가에서 양 한 마리가 장미꽃 한 송이를 먹어치우진 않았을까? 그리하여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 어린왕자의 방울 같은 웃음소리 대신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슬픔이 가라앉고 나면 어린왕자는 다시 이동하는 철새 떼를 타고 장미꽃 없는 자기 별을 떠나 자기가 길들인 여우도 있고, 화자도 있는 이 지구별로 돌아오지 않을까? 아아, 이 책의 내용을 적은 엽서를 교환하던 그 시절, 금빛 대신 푸른 머플러를 어린왕자처럼 꼭 그렇게 한 번만 목뒤로 넘겨 둘렀던 그 친구를 이 지구에서 바오밥나무가 있는 곳, 마다가스카르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nbsp; (P.169~P.170)<br>자신을 일러 '느린 번역가'라 칭하는 김남주 번역가는 &lt;오후 네시&gt;를 통해 아멜리 노통브를 &lt;나를 보내지 마&gt;를 통해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를 처음 국내에 소개한 번역가이자 내가 좋아하는 작가 장 그르니에, 알베르 카뮈, 로맹 가리, 생텍쥐페리 등 프랑스의 현대고전 작품 역시 번역해 왔다. 지금도 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 추억 하나는 내가 군에 복무하던 당시, 모 여대 불어불문학과에 다녔던 아내가 졸업논문을 쓰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것을 보고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여러 권을 부대로 가져와서 읽은 후 논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초고를 타자기로 쳐서 아내에게 주었었다. 아내는 내가 쓴 그 어설픈 논문 초고를 바탕으로 어찌어찌 살을 붙여 논문을 완성하였고,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김남주의 에세이를 읽는 내내 그때의 추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br>"20대 후반부터 30대, 40대를 살아오는 동안 번역은 내 밥벌이였다. 그러나 나는 줄곧 이 일을 내 삶의 징검다리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강 저편으로 가기 위해 딛고 가는. 오랫동안 내 시선은 내가 딛고 있는 그 징검다리가 아니라 내가 당도해야 할 강 저편 기슭에 고정되어 있었다고 고백한다. 문화와 정신을 전달한다는 감동과 자부는 대개는 무능과 게으름과 악조건 속에서 사그라들고, 표현과 내용의 좌충우돌 속에서 많은 밤들을 새웠다. 저울의 한쪽에 착실히 말들을 올려 놓으며 한 권의 번역을 마치고 나면 머릿속 말들이 모두 빠져나간 듯 일상적인 대화조차 더듬고 버벅대고 순서를 바꾸기 일쑤였다."&nbsp; (P.9 '첫 책을 내면서' 중에서)<br>사실 이 책은 번역가가 쓴 리뷰에 가깝지만 작가의 삶이 책 속에 녹아있다는 점에서 에세이가 아닐 수 없다.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전문 번역가가 지닌 지식과 일반 독자인 내가 소유한 지식 사이의 가늠할 수 없는 차이 때문에 이따금 어려운 문장에 갇혀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하여 읽기도 했지만, 번역가의 수고에 비하면 그와 같은 수고를 수고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 아닌가. 오늘은 금요일, 나는 책에서 빼곡히 옮겨 적은 도서 목록을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내일이면 나는 그 목록을 들고 가까운 도서관에 들러 가능한 범위에서 많은 책을 대출하여 기쁜 마음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기한 내에 다 읽지도 못하면서 잔뜩 욕심을 부릴지도 모를 일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60/37/cover150/89546205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603742</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소리도 없이 내리는 비가 - [박찬원의 두근두근 - 동물수상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57740</link><pubDate>Wed, 18 Mar 2026 14: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577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6519&TPaperId=171577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7/46/coveroff/k3821365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6519&TPaperId=171577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박찬원의 두근두근 - 동물수상록</a><br/>박찬원 지음 / 라의눈 / 2026년 03월<br/></td></tr></table><br/>모든 예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닌 무엇을 제외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예컨대 음악은 이 세상의 많은 소리 중 어떤 소리를 제외할 것인가로 귀결되며, 사진이나 미술은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시시콜콜한 풍경 가운데 어떤 것들을 지울 것인가로 귀결되며, 문학은 주인공과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을 제외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마찬가지로 글쓰기에서 퇴고 작업이 어려운 까닭은 문장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하는 게 실생활에서 익숙한 습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디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지만,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 중 불필요한 것을 버리거나 너무 많이 소유한 것을 덜어내는 데에는 전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음이다.<br>우리에게 '동물사진작가'로 잘 알려진 박찬원의 사진 에세이 &lt;박찬원의 두근두근&gt;에 실린 작가의 흑백사진을 보면서 그도 역시 렌즈 속에 놓인 피사체의 어떤 부분을 지울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무척이나 많은 고민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찍은 동물들은 말, 젖소, 돼지처럼 가축화되어 인간과 가까운 동물들도 있지만, 하루살이나 나비처럼 다소 하찮게 여길 수도 있는 곤충에 이르기까지 꽤나 다양하다.<br>"이 책은 동물에 대한 수상록이고, 한 주제에 100일 촬영 원칙을 정했다. 한 동물마다 약 3년 걸렸다. 실제 사진 찍는 시간은 얼마 안 된다. 동물을 관찰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동물에 대한 생각이었는데 나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온다. 동물에서 인간을 본다. 아니 나를 본다."&nbsp; (p.4 '프롤로그' 중에서)<br>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쯤 도올 김용옥 선생의 딸인 김미루 씨가 돼지우리에서 100시간 넘게 돼지들과 함께 지내며 '돼지우리 누드 퍼포먼스'를 펼친 적 있다. 뉴욕에서 사진작가 겸 행위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미루 씨의 당시 사진은 국내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되었고, 가려지지 않은 젊은 여인의 신체와 오물이 묻은 돼지들의 모습과의 어우러짐은 보는 이들에게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물론 자연에서 돼지는 절대 더러운 동물이 아니고, 인간이 인위적으로 사육하면서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비판하고자 했다는 김미루 작가의 설명이 있었지만, 김미루 작가의 사진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던 일반인들의 관점에서 작가의 설명은 크게 납득이 되지는 못했다.<br>"돼지는 불쌍하고 슬픈 동물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밖에 나가 놀지 못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도 없다. 친구를 사귀거나 연애도 못 한다. 돼지의 일생은 먹고 자고 자라서 도축장으로 가는 것이다. 짧게 살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으니 돼지는 죄를 지을 겨를이 없다. 깨끗하고 신성하다."&nbsp; (p.10)<br>박찬원 작가는 이 책에서 01. '동물과 인간, 02 '생명의 의미', 03 '동물의 언어', 04 '동물나라 풍경'의 주제로 그가 관찰했던 피사체에 대한 깊은 사유와 그 사유를 통해 건져낸 사진들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인식의 틀을 세울 것을 권고한다. 예술 전문 잡지 QUESTION의 사진문학 코너에 2022년 7월부터 2023년 6월까지 '동물 사진가 박찬원의 두근두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과 사진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lt;박찬원의 두근두근&gt;은 작가의 정제된 글과 렌즈에 포착된 압축된 사진만으로도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동물에 대한 관찰과 교감을 통하여 작가의 사유는 생명에 대한 경외로 확장되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철학적 사유에까지 이르게 된다.<br>"새벽에 나가 보니 젖소가 죽어 있다. 목을 뒤로 꼰 채 코를 땅에 박고 눈은 반쯤 뜨고 있다. 밤사이 안락사시켰다. 물통이 넘어져 있다. 물을 마시려다 힘이 없어 고개를 들지 못하고 물통을 쓰러트렸나 보다. 뒤에는 오줌을 싼 듯 물 자국이 흥건하다. 고개 숙여 명복을 빈다."&nbsp; (p.175)<br>동물의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관찰은 작가 본인의 엄마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진다.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늘 미안해하던 엄마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br>어제의 메말랐던 기억을 지우려는 듯 지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소리도 없이 내리는 비가 세상의 빛을 지우고, 소리를 지우고, 어렴풋하던 형체마저 지우고 있다. 흐릿하게 변한 세상 너머로 잊었던 봄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7/46/cover150/k3821365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6474646</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어느덧 봄 - [고요하고 단단하게, 법정의 말 - 내려놓음의 마음 공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49775</link><pubDate>Sat, 14 Mar 2026 13: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497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5050&TPaperId=171497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63/94/coveroff/k74213505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5050&TPaperId=171497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요하고 단단하게, 법정의 말 - 내려놓음의 마음 공부</a><br/>권민수 엮음 / 리텍콘텐츠 / 2026년 02월<br/></td></tr></table><br/>법정스님이 입적하신 지 벌써 16년이 흘렀다. 2010년 3월 11일의 느낌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내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나는 스님의 말씀이 담긴 여러 저서를 읽으며 청소년기를 보냈었고, 언론을 통해 접하는 스님의 소식을 가까운 이의 근황인 양 귀를 쫑긋 세운 채 듣곤 했었던 나로서는 텔레비전을 통해 접했던 그날의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다. 충격이 컸던 탓인지 나는 한동안 가슴이 텅 빈 듯한 허전함으로 인해 매사에 의욕이 떨어졌었다. 그때 우연히 읽었던 책이 &lt;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gt;이었다. 덕분에 나는 스님이 추천한 책 50권 대부분을 읽을 수 있었다. 허전함을 달래기 위한 목적이 더 컸었지만 책의 권수가 더해질수록 스님의 뜻이 새록새록 전해지는 듯했다. 스님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알지 못했을 다비드 르 브르통의 &lt;걷기 예찬&gt;이나 쓰지 신이치의 &lt;슬로 라이프&gt;, 아베 피에르의 &lt;단순한 기쁨&gt;, 존 프란시스의 &lt;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gt; 등 뻐근한 감동과 교훈으로 남았던 여러 책들이 스님의 말씀처럼 가슴을 채웠다. 물론 나의 지식이 부족하여 이해가 어려웠던 책들도 더러 있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가 쓴 &lt;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gt;나 에크하르트 톨레의 &lt;NOW-행성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gt;와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스님의 추천 도서 대부분이 나의 인생책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나는 스님의 추천 도서를 기회가 될 때마다 꺼내 읽곤 한다.<br>역사 콘텐츠 전문 작가 권민수가 엮은 &lt;고요하고 단단하게, 법정의 말&gt;을 읽었던 것도 어쩌면 그 연장선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PART 1 '나는 어떻게 가벼워질 수 있을까? - 비움과 자유',&nbsp;PART 2&nbsp;'불안은 왜 자꾸 올라올까? -두려움과 신뢰',&nbsp;PART 3 '일은 삶을 어떻게 바꿀까? - 일.돈.시간',&nbsp;PART 4 '관계는 왜 어려울까? - 가족.사랑.갈등',&nbsp;PART 5 '슬픔은 어떻게 치유될까? - 상실.병.죽음',&nbsp;PART 6 '자연은 왜 스승일까? - 숲.바람.침묵',&nbsp;PART 7 '어떻게 계속 걸을까? - 단련과 실천' 등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스님의 말씀을 단순히 옮겨 적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를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녹여내고 실천할 것인가를 묻게 하는 잠언집의 성격을 띠고 있다.<br>"법정의 말은 읽을 때는 아름답지만 삶으로 옮기지 않으면 금세 잊히기 쉽습니다. 우리는 멋진 문장을 읽는 데 익숙하지만, 그 문장대로 살아내는 데는 서툽니다. 그래서 이 책은 법정 스님의 단순 저서 문장에만 기대지 않고, 대표 저서들뿐 아니라 강연집과 법문 기록, 정기 법회에서 실제로 건넨 말씀, 여러 자리에서 회자되어 온 핵심 문장들까지 폭넓게 엮어, '법정의 말'을 하나의 총체적인 흐름으로 만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nbsp; (p.8 '프롤로그' 중에서)<br>내가 스님의 추천 도서를 읽으면서 느꼈던 스님의 중심 생각은 생명 존중과 공생이었다. 스님은 우리들 각자가 그 생각을 중심에 두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가꾸어 갈 수 있을까를 궁리하셨던 듯하다. 수도자로서 생명을 귀히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지만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도록 궁리하고 연구하는 학자와 사상가와 사회운동가마저 떠받들고 우리와 같은 장삼이사에게 그들의 사상을 이해시키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스님의 특별한 면모를 살필 수 있었다. 권민수 작가 역시 스님의 말씀을 우리들 삶에서 녹여내려 했다는 점에서 스님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듯하다.<br>081 오늘을 선택하는 연습"나누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내일은 기약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곳에 있지 않을 수도 있고, 내 마음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합니다."&nbsp; (P.108)<br>세상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까닭은 가진 자의 욕심이 끝도 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인과 작금의 정치 세력은 그들의 욕심을 펼칠 자유를 무한대로 허용하는 게 미덕인 양 포장하고 있다. 스님을 비롯한 옛 지성인들이 주장하던 '공생'은 이제 잊힌 단어가 되고 말았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함께 잘살자는 생각이 우리 인간끼리라도 함께 잘살자는 생각으로 쪼그라들더니 이제는 숫제 그마저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는 현실 속에서 개인의 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파편화된 개인이 서로 손을 내밀면 또 다른 어느 누가 내게 손을 내밀지 않을까? 인간 내면의 순수 감정을 건드리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을까? 인간은 본디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자라왔으니까 말이다.<br>241 관심이라는 이름의 간섭"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그 자신의 방식으로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편의나 이익을 위해 남을 간섭하고 통제하고 지배해서는 안 된다."&nbsp; (P.274)<br>생명이 되살아나는 이 계절에 지구 한편에서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 날마다 자행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함께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까닭에 그들 역시 제 수명을 다하면 지구상에서 사라지겠지만, 그들이 치러야 할 죄업은 사후에도 계속하여 청구되지 않을까?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아야 하는 이유는 역사의 단죄가 더욱 가혹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쪽으로부터 봄을 알리는 꽃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어느덧 봄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63/94/cover150/k74213505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639455</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그런 세상이 펼쳐질지도 - [터스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42324</link><pubDate>Tue, 10 Mar 2026 19: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423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6920&TPaperId=171423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4/96/coveroff/k3621369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6920&TPaperId=171423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터스크</a><br/>레이 네일러 지음, 김항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02월<br/></td></tr></table><br/>트로피 헌팅(Trophy Hunting)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또는 방어적 목적으로 동물을 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재미와 사냥을 통한 전시물 획득과 다른 이들로부터의 인정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찾는 사람이 매년 9,000여 명에 달한다고 하니 인간보다 잔인한 동물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코끼리 상아를 얻기 위한 코끼리 밀렵 역시 줄어들지 않고 있다. 심지어 밀렵 단속을 피하고 총알을 아끼기 위해 코끼리의 척추를 끊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살아 있는 상태에서 얼굴을 전기톱으로 잘라낸다고 하니 인간의 욕심과 인간성 상실이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지 참담하기만 하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레이 네일러(Ray Nayler)의 소설 &lt;터스크&gt;는 우리가 과연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회복하고 주변의 다른 생명체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br>"타이가를 기어다니는 밀렵꾼이나 영구동토층에 호스로 구명을 뚫는 매머드 엄니 사냥꾼이 모두 부자가 될 수는 없었다. 둘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너무 일찍 죽음을 맞이했다. 다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땅에 묻혔다."&nbsp; (p.29)<br>코끼리 행동을 연구하면서 야생 아프리카코끼리들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다미라 키스무툴리나 박사는 결국 밀렵꾼들에 의해 살해된다. 그와 동시에 코끼리도 멸종되었다. 그렇게 한 세기가 흘렀다. 'SF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의 지난해 수상작인 &lt;터스크&gt;는 죽었던 다미라를 불러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인간이 아닌 암컷 털매머드의 몸에 이식된 채로 복원된 것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코끼리와 유전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매머드를 연구하는 알마스 아슬라노프 박사는 시베리아 동토층이 녹으면서 드러난 털매머드 사체에서 얻은 유전체 정보를 배합하여 8,000년 전 멸종한 털매머드 복원에 성공한다. 그렇게 복원된 매머드 떼를 시베리아 툰드라 지대에 방사하는 게 그의 목표였지만 야생에 방사되는 족족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의 목표는 허사가 되고 만다. 복원된 매머드는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아슬라노프 박사는 야생 코끼리를 연구하며 그들과 함께 생활했던 다미라를 되살리기로 마음먹었다.<br>"우리는 당신이 암컷 우두머리가 되어주길 제안합니다. 당신의 의식체를 암컷 매머드에게 옮기길 원해요. 당신이 그들을 이끌게 될 거예요. 매머드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겁니다. 당신의 지도를 받고 그들은 번창할 거예요."&nbsp; (p.72)<br>극비리에 주요 인사들의 기억을 스캔해 저장해 두는 마인드 뱅크 프로젝트에 의해 살해당하기 전에 백업된 다미라의 의식체는 암컷 털매머드의 몸에 이식되었고, 다미라는 시베리아 보호구역 내 매머드 무리를 이끌게 된다. 그러나 다미라가 인간으로 살았던 한 세기 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호시탐탐 매머드를 노리는 밀렵꾼들의 활동뿐만 아니라 보호구역 내에서 아슬라노프와의 공모 아래 합법적인 매머드 사냥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다. 보호구역 자립에 필요한 돈이 필요하다는 명분하에 이른바 '트로피 사냥'이 성행하는 것이다. 억만장자 앤서니는 비밀경매를 통해 매머드를 사냥할 수 있는 '특권'을 매입한다. 사냥에는 보호구역 관리 책임자인 콘스탄틴이 동행한다.<br>"자기 안의 어떤 것도 무너졌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앤서니 안에 잇는 어떤 것도 무너졌다. 어쩌면 우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가슴속에 있던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지만, 그 모든 게 원래 그렇다는 듯, 그게 정상이라는 듯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머리가 잘린 벌레들이 계속해서 숨기 위해 그림자를 향해 기어가는 것처럼. 우리를 망쳐놓은 그 어떤 것에 따라잡혀 결국 우리가 스스로 멈출 때까지."&nbsp; (p.178)<br>요즘 우리는 인간 살육의 현장을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것은 물론 온라인 게임처럼 광고를 하는 인간 동물(Human Animal)들을 최고 권력자로 떠받들고 있다. 그들은 수많은 민간인들에 대한 일방적인 학살을 자신들이 믿는 신의 뜻인 양 '성전(聖戰)'이라며 떠벌리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라는 다음 세대는 어떨까. 어쩌면 다음 세대의 사람들은 재미 삼아 아프리카의 맹수를 사냥하는 대신 인간을 사냥감으로 풀어놓고 그들을 사냥하면서 즐길지도 모르겠다. 자신들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자국민보다 못산다는 이유로 인간 사냥감이 되어 사냥꾼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금찍하다. 그런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4/96/cover150/k3621369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04969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투명한 3월의 햇살이 - [기차의 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5847</link><pubDate>Sat, 07 Mar 2026 15: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58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3169&TPaperId=171358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10/61/coveroff/k402033169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3169&TPaperId=171358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기차의 꿈</a><br/>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br/></td></tr></table><br/>역사학자가 시간의 평원 위에 골조를 세우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역사를 소재로 글을 쓰는 소설가는 그곳에 숲을 가꾸고, 물길을 틔워 생명을 가꾸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소설가는 자신의 성향에 따라 정물화를 그릴 수도 있고, 크로키를 그려낼 수도 있으며, 넓게 여백을 담아낸 수묵담채화를 그릴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는 지난 과거의 모습을 역사학자가 아닌, 역사를 소재로 쓰는 소설가에 의해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소설이 영화로 재탄생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데니스 존슨의; 소설 &lt;기차의 꿈&gt;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140쪽의 짧은 소설이 어떻게 20세기 초반의 미국을 이토록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책을 덮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는다.<br>"그레이니어가 맡은 일은 초커였다. 기차 도착점 쪽이 아니라 숲 쪽에서, 숲에서 벌목꾼들이 둘씩 짝을 지어 톱으로 가문비나무를 쓰러뜨리면, 가지 담당이 도끼로 잔가지를 깨끗하게 쳐내고, 톱장이가 통나무를 18피트 길이로 잘랐다. 그다음에는 초커가 통나무를 밧줄로 감아 말이 운반할 수 있게 준비했다. 그레이니어는 이 일이 좋았다. 불끈불끈 힘을 쓰고 나면 탈진해서 도취한 것 같은 상태가 되고, 그렇게 하루 일을 끝낸 뒤에는 푹 쉬었다."&nbsp; (p.19)<br>소설의 주인공인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일대기를 절제된 언어와 통일된 구성으로 마치 전기문처럼 쓰고 있는 작가는 독자의 평가쯤이야 안중에도 없다는 듯 어떤 미사여구나 반전도 없이 그레이니어라는 인물이 살았던 당시를 아주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대가의 작품은 이런 것이야,라고 말하려는 듯 소설은 너무도 평범하고 막힘이 없이 진행된다. 그렇다고 주인공의 사회적 위치나 명성이 특별하지도 않다. 오히려 대중 속에 섞이면 절대 눈에 띄지도 않을 듯한, 지극히 평범한 인물일 뿐이다.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자면 오히려 하찮을 수 있는 존재이다. 거대한 시간의 평원 속에서 가장 낮은 위치의 한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춤으로써 우리는 지난 한 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br>"크레스턴에서 들은 소식은 끔찍했다. 모이 계곡 화재에서 아무도 그쪽으로 도망쳐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레이니어는 사촌의 집에 여러 주 동안 머물렀다. 그 상황에서 당연한 슬픔과 혼란 때문에 병이 들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아내와 어린 딸을 잃었음을 납득했지만, 가끔 폭풍이 자신을 엄습하는 것 같았다. 저항할 수 없는 군대처럼 그의 머릿속으로 폭풍이 밀려왔다."&nbsp; (P.51)<br>19세기말에 태어난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출생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 어린 시절 혼자 기차를 타고 고모가 있는 아이다호로 왔다는 기억만 갖고 있다. 10대 때 학교를 그만둔 이후 평생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렸던 그는 교회에서 만난 글래디스와 결혼하여 산속 계곡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간다. 그렇게 딸 케이트가 태어났다. 벌목 현장에서 일하며 철도 부설 공사에도 참여했던 그는 어려서부터 그에게 각인된 고독의 그림자를 씻어내며 행복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1917년 여름, 거대한 산불이 계곡 전체를 집어삼켰고, 그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땐 이미 모든 게 잿더미로 변한 후였다. 어렸을 때부터 외톨이였고 평생을 깊은 고독 속에서 살았던 그는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그곳에서 혼자 머문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을 묵묵히 이어간다.<br>"그레이니어는 여든 살이 넘어서 1960년대까지 살았다. 살아 있는 동안 태평양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서부까지 여행한 적도 있지만, 바다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동쪽으로 가장 멀리 간 곳은 몬태나주 경계선 안쪽으로 40마일 거리인 리비였다. 그가 사랑한 사람은 한 명, 아내 글래디스였으며, 재산은 땅 1에이커, 말 두 마리, 수레 한 대였다. 그는 술에 취한 적이 없고, 총기를 구매한 적도 없고, 전화기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기차를 많이 탔지만 자동차도 많이 탔고, 비행기도 한 번 타본 적이 있었다. 말년의 10년 동안 그는 읍내에 나올 때마다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으며, 자손을 남기지도 않았다."&nbsp; (p.128~p.129)<br>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작은 시련이나 불행조차 오직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불운인 양 생각하여 누군가를 탓하고 불평불만에 휩싸이곤 한다. 살면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상실의 고통 역시 '왜 나에게 이런...' 하는 마음으로 신을 원망하기에 이른다. 그 모든 것들이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삶의 과정임을 잘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하루하루의 반복되는 일상과 그 속에서 보게 되는 작은 변화들. 그리고 시간의 풍화 속에서 자연스레 늙어가는 자신과 죽음을 향한 여정. 그레이니어의 평범한 삶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그 모든 변화에 부질없이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고 남은 삶을 꿋꿋이 이어간다는 것이다. 20세기 초반의 미국 사회를 그린 이 한 편의 소설을 통해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상상하는 한편 반복적인 일상을 불평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투명한 3월의 햇살이 흐르고 있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10/61/cover150/k402033169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106135</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하루를 건너는 일 - [세상의 빛 - 시인 리디 다타스가 모으고 되살린 크리스티앙 보뱅의 말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1751</link><pubDate>Thu, 05 Mar 2026 14: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317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5466&TPaperId=171317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5/70/coveroff/k98213546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5466&TPaperId=171317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상의 빛 - 시인 리디 다타스가 모으고 되살린 크리스티앙 보뱅의 말들</a><br/>크리스티앙 보뱅.리디 다타스 지음, 신승엽 옮김 / THE CIRCLE PRESS / 2026년 01월<br/></td></tr></table><br/>세상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소스와 향신료가 존재한다. 향수 역시 다르지 않다.&nbsp;우리의 코와 입은 얕고 간사하기 이를 데 없어서 재료 본연의 맛과 냄새에 친숙해지기보다는 우리의 입과 코가 선호하는 쪽으로 발전시켜 왔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눈과 귀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선호를 발전시켜 왔던 까닭에 그림과 음악 등, 현대인들의 정서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는 예술 작품이 등장했을 테니까 말이다. 문학작품에 대한 선호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이왕이면 잔소리보다 칭찬의 말이 듣기 좋은 것처럼 시간을 내어 글을 읽는 마당에 자신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좋은 문장이 가득한 책을 선호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듯 보인다. 물론 우리의 입맛이 서로 다른 것처럼 책도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선호하는 장르가 각자 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을수록 자신의 취향은 더욱 확고해지고 문장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도 분명해진다.<br>"나는 자연을 간헐적으로만 보러 간다. 그 아름다움이 너무 커서 벅차기 때문이다. 금화와 보석으로 가득 찬 상자 앞에 오래 머무르는 것과도 같다. 그러다 보면 눈이 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두세 개의 보석만을 챙겨 돌아온다. 들판에서는 작은 작은 나무숲이 받는 것과 동일한 태양의 편지를 받을 수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이미 넘칠 정도로 충분하다."&nbsp; (p.31)<br>언제부턴가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차츰 늘고 있다. 욕심 같아서는 나만 알고 싶은 그런 작가인데 어디 그게 가당키나 할까. 프랑스 시인 리디 다타스가 보뱅의 말과 사유를 오랜 시간 경청하고 수집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lt;세상의 빛&gt;에는 작가가 문학·사랑·언어·삶·세계에 대해 직접 말한 문장들이 질문의 흔적 없이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보뱅은 1951년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태어나 2022년 11월 24일, 71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 그곳에서 글쓰기를 하며 문단이나 출판계 등 사교계와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어쩌면 이 책은 자신의 고집스러운 삶에 대한 회고이자 자신의 문학적 태도와 세계관에 대한 해설서일지도 모른다.<br>"오늘날 우리에게는 방향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가능해져 버린 시대에 어떻게 방향을 알 수 있을까? 북쪽은 북쪽이고 남쪽은 남쪽임을 다시 일깨워야 한다. 많은 이들에게 부족한 건 자신의 본능, 다시 말해 즉각적으로 아는 걸 붙잡는 아주 단순한 감각이다. 이는 마음에 기대어 보아야 할 것을 더 잘 가늠하는 일이다. 시골 언덕에 있는 전망 안내판에 기대어 지평선을 손님처럼 여기며 말을 걸듯이, 마음이라는 지지대 위에 기대어 보는 것이다."&nbsp; (p.88)<br>보뱅의 글은 하나의 문장이 아닌, 맑고 시원한 하나의 목소리로 변하여 마음속 깊은 곳까지 전달된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 이를테면 관습이나 종교나 지식이나 삶에서 늘 보게 되는 어떤 것들에 대해 그의 설명이나 해석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는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우리가 알거나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잊은 채 새로운 세상 속으로 지금 막 도착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드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눈이 아닌 작가의 눈을 통해 또는 작가가 뿜어 내는 한 줄기 빛을 통해 빚어진 새로운 세상의 풍광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새로운 세상 속에서 머물다 보면 출처를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낮게 울려 퍼지는 기쁨의 송가를 한동안 여운처럼 들을 수 있다.<br>"대부분의 시들은 성냥개비와 같다. 긁어 켜는 순간 아름다운 불꽃을 피우며 잠시 우리를 밝히지만, 이내 손에는 그을린 나무토막만 남는다. 나는 한 번도 빛을 본 적은 없으나, 그 빛을 온전히 알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빛은 그런 식으로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것도. 가장&nbsp; 고귀한 빛을 주는 이는 시인들이 아니라, 시보다 더 아름다운 빛을 엿본 이들이다."&nbsp; (p.161)<br>한 달 전쯤 몸살을 심하게 앓았던 탓인지 나는 예전 컨디션을 좀체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물론 책을 읽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있다. 날씨 변화가 심한 환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루 운동량을 과도하게 늘려 몸에 무리를 주었던 게 이 모든 결과의 원인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과유불급'의 의미를 몸을 통하여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가.<br>매일 조금씩 한낮 기온을 끌어올리더니 이제는 제법 봄기운이 감돈다. 금세라도 산수유꽃이 벙글 듯한 날씨인데 나는 이 아름다운 계절을 뒤로한 채 컨디션 회복에 골몰하고 있다. 휴가를 내고 잠시 쉬자니 꾀병인 듯 보이고, 꾸역꾸역 버티자니 힘이 들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일만 지나면 주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주말 동안 푹 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 상태로 회복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 하루도 조심조심 건너고 있다. 하루를 건너가는 게 이리도 힘든 일인가, 나는 새롭게 깨닫는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5/70/cover150/k9821354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57082</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사랑은 멀고도 가깝다 - [너무 늦은 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24235</link><pubDate>Sun, 01 Mar 2026 15: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242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030793&TPaperId=171242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09/50/coveroff/k9620307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030793&TPaperId=171242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너무 늦은 시간</a><br/>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07월<br/></td></tr></table><br/>허투루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 중 하나는 누군가의 단점을 나의 노력만으로 쉽게 고칠 수 있다는 착각에 자주 빠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비단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만 존재하는 커다란 실수 중 하나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십 년 결혼 생활을 이어 온 부부 사이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착각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나의 사랑으로 혹은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신을 향한 자신의 기도를 통하여 상대방의 단점을 쉽게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상대방의 단점을 능히 가리고도 남을 만한 다른 장점이 상대방에게 존재하거나 그와 헤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자신의 이성을 마비시켰거나 그를 소유하고자 하는 자신의 욕구가 지나치게 강한 데서 비롯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사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정리되기 전에 그와 같은 판단에 도달할 만큼 자기 객관화의 면모가 뚜렷한 사람은 흔치 않을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에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지사지의 태도는 숫제 경험조차 해 본 적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인간은 가장 이기적인 동물일지도 모른다.<br>"전시회를 본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아클로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가서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침대에 누웠다. 따뜻한 바람과 이웃집의 금속 풍경 소리가 들어와 방을 가로질렀다. 사빈은 한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테스코까지 걸어가서 장을 봐 온 다음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타임 줄기를 넣고 구운 닭고기와 마늘, 주키니 호박이었다. 이 여자는 요리를 할 줄 알았다. 카헐은 지금도 그것만큼은 인정했다. 하지만 설거짓감이 너무 많이 나와서 마음 한구석으로는 늘 화가 났는데, 그가 전부 헹궈서 식기세척기에 넣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그녀가 밤새 불려야 한다고 말했던 오븐용 그릇만은 예외로, 그가 월요일에 퇴근하고 돌아올 때까지 싱크대에 그대로 있었다."&nbsp; (p.21 너무 늦은 시간' 중에서)<br>클레어 키건의 소설집 &lt;너무 늦은 시간&gt;에는 표제작인 '너무 늦은 시간'과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그리고 '남극' 등 단 세 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얇은 책이다. 그렇다고 소설의 내용 또한 가볍고 쉽게 이해되는 건 아니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너무 늦은 시간'에서 주인공인 카헐은 어느 회의장에서 만난 사빈과 사귀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인색한 데다가 남성 우월주의적 환경에서 성장한 카헐은 자신의 집으로 짐을 옮긴 사빈과의 결혼 준비 과정에서 여러 번 충돌한다. 사빈은 카헐의 직장 동료인 신시아를 통해 카헐의 행동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확인한다. 사빈은 카헐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지만 카헐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그것들이 다만 아일랜드 남자들의 관습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대학 시절 부모님과의 식사 자리에서 남동생이 어머니가 자신의 접시를 들고 식탁에 앉으려 할 때, 의자를 홱 빼버리는 바람에 어머니가 바닥에 넘어졌던 것은 물론 접시가 깨지고 접시에 담겼던 음식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남자들 세 사람이 크게 웃었던 기억을 떠올린다.<br>"카헐은 마음 한구석으로 아버지가 다른 남자였다면, 그때 그 모습을 보고 웃지 않았다면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래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별 의미 없는 일이었다고, 못된 장난이었을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거나 하기 싫어져서 옆으로 누웠지만 적어도 한 시간은 지난 후에야 잠이 왔고, 그는 어느새 잠의 위안과 새로운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nbsp; (p.44~p.45 '너무 늦은 시간' 중에서)<br>한편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뵐 하우스'라는 작가 레지던스에서 집필 작업을 하려던 여성 주인공이 다짜고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된다. 독문학 교수라고 소개한 남자는 집을 둘러보겠다며 무례하게 부탁한다. 글을 써야 할 귀중한 시간에 주인공은 마지못해 응한 남자의 방문이 영 못마땅하지만 준비한 케이크를 대접한다. 남자는 이를 게걸스럽게 먹고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오히려 주인공을 타박하기에 이른다.<br>"얼마나 끔찍한 남자인지! 정말 끔찍하고 불행한 남자야. 그녀가 문을 잠그며 생각했다. 정신이 나갔나? 게다가 얼마나 수고를 들였는지 생각하면...... 그녀는 케이크를 보면서 창밖으로, 그의 뒤에다가 던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케이크를 냉장고 깊숙이 넣고 와인을 한 잔 따랐다."&nbsp; (p.77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중에서)<br>'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로 시작하는 '남극'은 결국 이를 실행에 옮기는 여자의 경험을 다룬다. 그러나 작가는 독자들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결말을 준비하여 놀라게 한다. 이 세 편의 단편소설은 대략 10년씩의 시차를 두고 쓰였다지만 작가 특유의 문체는 비슷하고, 주제 역시 일관되게 흐른다. 2022년에 발표된 '너무 늦은 시간'과 2007년에 발표된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그리고 1999년에 출간된 '남극'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작가의 생각과 문학적 표현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시도로 보이지만, 특이하게도 클레어 키건은 시간의 추이에 다른 변화를 보여주기보다 하나의 주제를 각각 다른 소재로 선보이는 3인 3색의 색다른 매력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br>우리나라에서도 데이트 폭력과 남녀 간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클레어 키건은 이 책에서 결혼 전의 두 남녀의 갈등과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인 남자를 제삼자적 관점에서 보게 되는 여자와 경험해보지 못한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압축적인 이야기로 담고 있다.<br>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모텔 살인 사건도 그렇지만 남녀 간의 관계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면 상대방의 단점이 아주 작게 보이거나 쉽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잘못된 믿음이었음을 곧바로 알게 된다. 그럼에도 문제가 지속되는 까닭은 인간의 적응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위중한 폭력 앞에서도 시간이 흐르고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인간은 그 상황에 적응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클레어 키건은 각각의 상황을 여성의 입장에서 쓰고 있지만 비단 이것이 어느 한 편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남녀 간의 교제를 법으로 금할 수도 없고... 사랑에 이르는 길은 너무도 가깝고 사랑에서 벗어나는 길은 너무나 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09/50/cover150/k9620307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7095094</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흐려지는 기억력과 안개의 풍경 - [최윤 : 하나코는 없다 The Last of Hanak'o]</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13439</link><pubDate>Wed, 25 Feb 2026 16: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134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006346&TPaperId=171134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850/34/coveroff/89940063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006346&TPaperId=171134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최윤 : 하나코는 없다 The Last of Hanak'o</a><br/>최윤 지음, 브루스 풀턴.주찬 풀턴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07월<br/></td></tr></table><br/>새벽 등산로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등산로뿐만이 아니었다. 도시 전체가 안개에 점령당한 듯했다. 어제 내린 습설이 밤새 낮아진 기온에 서릿발처럼 얼어붙어 있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낮에는 기온이 꽤 오르겠는걸' 속으로 생각하면서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길을 조심스레 걸었다. 안개에 대한 서술로 시작하는 최윤 작가의 소설이 떠올랐지만 끝내 제목은 생각나지 않았다. 알듯 알듯 하면서도 결국 포기하게 되는 순간의 답답함이란... 이런 경험이 전에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닌데 때로는 입에 붙었던 책의 제목마저 어느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 얼버무리게 될 때, '나의 기억력도 이제 옛날 같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깊은 한숨과 함께.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자마자 책의 제목부터 확인했다. 그래, 맞아. &lt;하나코는 없다&gt;였지. 왜 그게 떠오르지 않았을까.<br>"폭풍이 이는 날에는 수로의 난간에 가까이 가는 것을 금하라. 그리고 안개, 특히 겨울 안개에 조심하라...... 그리고 미로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을 두려워할수록 길을 잃으리라."&nbsp; (p.8)<br>하나코는 별명이었다. 코가 예뻐서 붙여진 별명.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모임의 어느 한 사람이 하나코에게 전화를 걸면 그녀는 혼자 또는 늘 똑같은 여자 친구 한 명을 대동하고 흔쾌히 나와주었다. 그런데 '공기나 혹은 적당한 온기처럼 늘 그들 곁에 있던 하나코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렇게 자주 어울렸으면서도 그들이 하나코의 신상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는 하나코가 살고 있다는 이탈리아로의 출장에 자원한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그는 안개처럼 모호한 하나코의 실체를 되살리려 한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를 파탄시킨 '그 사건'의 실체에 대해서는 지금도 역시 떠올리기 싫다는 듯 자꾸만 머뭇거린다.<br>"그 자신을 포함해 무리들 중의 누구도 하나코에게 자신들의 결혼 날짜를 알리지 않았다. 딴 친구들은 어떤 이유에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로서는 그저 단순한 부주의였다. 물론 그는 청첩장을 준비하던 때만 해도 그녀에게 보낼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분주한 일정에 밀려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nbsp; (p.62)<br>남자들의 모임에 홍일점으로 참여했던 하나코. 그녀는 어쩌면 그들 무리 개개인이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일종의 어장 관리 차원에서, 모임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유지하려는 차원에서 어떤 장신구처럼 이용한 듯 여겨진다. 유쾌하지 않은, 어쩌면 회피하고 싶은 기억을 안고 그는 하나코와의 전화 통화에 성공한다. 서울이 아닌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br>"그는 갑자기 힘이 조금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를 보러 기차를 타고, 그녀가 말해 준 이름의 거리를 찾아 헤매고, 그녀가 일하는 사무실을 찾아 안으로 들어가고, 그녀의 책상 옆에 앉아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 그녀의 생활공간으로 초대되고, 이 나라에서 하듯이 집에서 준비한 식사를 하고 환담을 할 엄두가 나지를 않는 것이다."&nbsp; (p.74)<br>그는 하나코와의 통화에서 모임 멤버였던 J나 P도 그저 전화만 하고 방문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임의 어느 누구도 하나코와 사적으로는 연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도 역시 하나코를 만나지 않은 채 로마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출장에서 돌아온 후 그는 분주한 나날을 보냈고, 어느 날 이탈리아 상공회의소에서 외국 바이어들에게 보낸 홍보 잡지에 실린 하나코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된다. 하나코를 만나지 않고 출장에서 발길을 돌렸던 그는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이삼 년 한 후 그를 포함한 다섯 명의 모임 멤버와 하나코와 그녀의 친구가 차 두 대에 나눠 타고 낙동강 근처의 어느 식당으로 놀러 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하나코와 윽박지르듯 노래를 강요하는 그들 무리가 뒤엉켜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날 이후 그녀는 감쪽같이 사라졌었다.<br>"잠시 머무르다 떠나는 도시. 이제 기차는 불빛이 점점 드물어지는 인적 없는 어두운 풍경 속을 달리고 있었다. 아래 좌석의 승객들도 등받이를 올려 침대를 만드느라 부산하다가 언제부터인가 갑작스러운 침묵이 왔다. 복도의 소음도 점점 더 줄어들고 기차는 짙은 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여전히 세 개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nbsp; (p.82)<br>스가 아쓰코가 쓴 &lt;밀라노, 안개의 풍경&gt;도 떠오른다. 안개, 하면 습관적으로 떠오르던 김승옥의 &lt;무진기행&gt;도 언젠가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제목이 뭐였더라, 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 한 대목을 옮겨 본다.<br>"저녁 무렵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문득 안개가 자욱이 깔리곤 한다. 창에서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플라타너스의 가지 끝이 눈 깜짝할 사이 자취를 감추고, 끝내 굵은 줄기까지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가로등 밑을 생물처럼 달려가는 안개를 본 적도 있다. 그런 날에는 몇 번이고 창으로 달려가 짙은 안개 너머를 내다본다."<br>낮에는 기온이 제법 올랐었다. 산책을 하기에 더없이 좋았던 날씨. 늦은 점심을 먹었던 나는 사무실 근처의 공원을 천천히 걸었고, 봄 햇살에 눈이 녹는 풍경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모이를 찾는 비둘기떼가 이리저리 날아 올랐다 다시 내려앉곤 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850/34/cover150/89940063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503406</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다시 봄이 오고 있다 - [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06877</link><pubDate>Sun, 22 Feb 2026 16: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10687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6780&TPaperId=171068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95/42/coveroff/89626267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6780&TPaperId=1710687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a><br/>아잠 아흐메드 지음, 정해영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br/></td></tr></table><br/>규칙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남은 삶도 규칙적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삶이란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깨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운전을 시작하면서 자주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나만 조심한다고 해서 사고가 안 나는 것은 아니야.'인 것처럼 자신의 삶을 열심히, 앞만 보고 성실하게 살아간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가 주어진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삶이란 나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와 이어짐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동작업이기도 하고, 그와 같은 관계를 나 역시 나 몰라라 하고 외면할 수만은 없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냉정한 사람일지라도 가족에게 발생한 끔찍한 사고를 어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로 인하여 나의 삶이 180도 달라질 수 있음을 어찌 계산할 수 있단 말인가.<br>얼마 전 뉴욕타임스의 국제 탐사보도 특파원인 아잠 아흐메드가 쓴 르포르타주 &lt;두려움이란 말 따위&gt;가 출간되었다. 무너진 공권력과 이 틈을 비집고 성장한 마약 카르텔이 멕시코 지역사회를 어떻게 붕괴시키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범죄 르포르타주 &lt;두려움이란 말 따위&gt;는 마약 카르텔 조직에 의해 납치된 딸을 찾기 위해 범인을 직접 추적해야 했던 미리암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멕시코 타마울리파스주(州) 산페르난도 지역에 살고 있던 미리암 로드리게스와 루이스 살리나스 부부에게는 큰딸 아잘리아와 아들 루이스 엑토르, 막내딸 카렌을 둔 평범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고질적인 외도와 그 반작용으로 대학생이었던 카렌이 엇나가기 시작하면서 가족들의 걱정이 시작되었다.<br>"2년 전이었던 2014년 1월, 플로리스트를 비롯한 세타스 일당이 카렌을 납치했다. 미리암은 애걸복걸하며 세타스의 모든 지시에 따랐고,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몸값까지 지불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그들은 카렌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정부 당국에서는 탄원을 무시하고, 무관심하고 형식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는 등 미리암을 외면했다."&nbsp; (p.12)<br>평범한 주부에 지나지 않았던 미리암은 현실을 직시한 후 딸을 납치한 자들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추적에 나선 지 2년 만에 추적 명단 속 6명은 교도소에 수감됐고, 4명은 세타스의 거점을 습격한 해병대에 사살됐다. 이 모든 과정에 미리암이 관여했다. '아마추어 수사관'으로 활약했던 것은 물론 딸의 유골을 수습하기 위한 DNA 검사 역시 그녀의 몫으로 남았다. 딸의 복수를 위한 집요한 추적 과정에서 가족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카렌의 유골을 수습하고 납치범을 잡아 법정에 세우면 그 위험한 범죄 조직에 맞서는 행위를 그만두겠다던 미리암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공권력의 부패와 범죄조직과의 유착으로 인해 자신과 같은 납치 피해자 가족은 수를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하였고, 그들의 고통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br>"실종 피해자 가족들은 굴하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았다고도 죽었다고도 할 수 없는 경계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못지않게 불확실함에 시달린다. 상실감이라는 유령과 살며 가족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고문당한다. 희망은 자식이나 남편, 동생, 사촌의 유해라도 찾겠다는 열정이 되기도 하고, 피해자 가족들을 소진시키기도 한다."&nbsp; (p.208)<br>4년간 관련 인물을 수백 시간에 걸쳐 인터뷰하고 2만 쪽이 넘는 사건 파일과 재판 기록을 입수해 사건을 재구성했던 저자의 노력 때문인지 범죄 현장을 취재한 논픽션이라는 느낌보다는 범죄 스릴러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멕시코 혁명 이후 탄생한 '걸프 카르텔'이라는 마약 범죄조직의 역사·지역적 배경을 다루면서 걸프 카르텔 조직이 약화되는 과정에서 성장한 신흥 범죄조직 '세타스 카르텔'을 다루고 있다. 세타스는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인 산페르난도를 중심으로 말할 수 없이 잔인한 범죄를 수시로 저질렀고, 이들을 두려워한 마을 주민들 역시 그들을 신고하거나 증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직 딸의 복수를 위해 나섰던 미리암은 실종 피해자 가족 모임을 이끌면서 범죄조직에 맞서 싸웠다. 자신의 안위를 등한시한 채 말이다.<br>"죽음과 시신 훼손이 일상이 된 곳에서는 당국의 무능함과 냉담함과 무관심도 일상이 된다. 너무 지친 피해자 가족들은 더 이상 당국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고, 그 사실이 폭력으로 엉망이 된 상황을 수습할 책임이 있는 자들을 더욱 둔감하게 만들었다. 죽음의 악순환이었다."&nbsp; (p.318)<br>한 국가의 치안은 오직 그 나라의 공권력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성숙과 국민 전체의 의식 수준이 그 나라의 치안과 질서 수준을 결정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공권력은 시민의 감시나 재촉이 없다면 너무나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처럼 범죄조직에 대한 시민의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범죄는 활개를 치고 이에 맞서야 할 공권력은 더욱 움츠려들게 마련인 것이다.<br>길었던 겨울도 끝이 보이고 있다. 친위 쿠데타라는 가장 무시무시한 악의 카르텔을 맨몸으로 막아냈던 우리 국민의 용기는 세계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군부독재 치하에서 자행되었던 내란과 이를 극복했던 경험이 우리에게 맨몸으로 저항할 용기를 심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대접받을 수 있는 까닭도 불의에 굴하지 않는 국민의 용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용기는 우리 국민 전체의 높은 시민의식에서 비롯된다. 보이는 것은 언젠가 닳아 없어질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국민 각자의 시민의식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다시 봄이 오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95/42/cover150/89626267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954207</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영혼의 시력 높이기 - [뉘앙스 - 성동혁 산문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97627</link><pubDate>Tue, 17 Feb 2026 2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976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835605&TPaperId=170976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380/70/coveroff/k6028356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835605&TPaperId=170976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뉘앙스 - 성동혁 산문집</a><br/>성동혁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2월<br/></td></tr></table><br/>고통의 진실된 면모는 감동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다. 그러므로 대작(大作)은 언제나 큰 고통을 경험한 이의 몫이며, 고통에 대한 진정한 대가는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울림과 감동으로 주어진다. 그와 같은 원칙은 세대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고통에 친숙하거나 우리네 삶의 대부분이 고통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은 아니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서만 스스로 겸손해지는 법을 터득하고, 거듭되는 고통을 통하여 가장 넓은 폭의 이해력을 획득한다. 고통이 없다면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삶에서 일부러 고통 속으로 뛰어들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고통이 유일한 것인 양 불평할 필요도 없다.<br>소아 난치병 환자로 어린 시절 다섯 번의 대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여전히 투병 중에 있는 성동혁 시인의 산문집 &lt;뉘앙스&gt;를 읽었던 대부분의 독자가 큰 감동을 느끼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시인의 산문집을 좋아하는 나의 특별한 기호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고통 속에서 끌어올린 시인의 아름다운 문장과 인간 본연의 보편적 감성이 책을 읽는 독자 모두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영혼의 행로를 결코 방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고통이 지배하는 육체 안에서도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우리의 영혼은 언제나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br>"정적 속에서 사뿐하게 상대를 이해해야 할 때가 있다. 상대를 감싼 모든 것이 그의 언어임을 알고 풍경을 눈여겨볼 때가 있다. 세계엔 손잡이가 없다. 그래서 쥐자마자 델 수 있다. 손이 닿기 전에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사랑할수록 작은 뉘앙스에 휘청거린다. 시 또한 그러지 않을까. 무엇을 쓰려고 할 때, 그것 앞에서 바들바들 떠는 일, 그것 앞에서 눈치를 보는 일, 사소한 움직임 하나에도 나의 생활이 엉망이 되는 일. 사랑할 때 무심히 넘겨야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뉘앙스, 말하지 않아도 들어야 하는 말. 당신이 쓰고 내가 읽는 마음. 뉘앙스."&nbsp; (p.67 '뉘앙스' 중에서)<br>혹자는 성동혁 시인이&nbsp;이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로&nbsp;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간다기보다 타인의 삶을 그저 관찰하는, 관찰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모험과 도전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기에 비록 이동은 불편하지만 그에게는 남들이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관찰하고, 이를 통하여 깨닫고, 공감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개발되었으니 그도 역시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겠다. 게다가 그의 곁에는 시월이 왔음을 알려주는 다정한 이웃이 있고, 그를 등에 업고서라도 산 위에서의 멋진 풍광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친구도 있다. 그의 병상을 지키는 가족이 있고, 하트 모양 스티커를 건네는 같은 병동의 어린이가 있다. 그로부터 시작된 아름다움이 화선지의 먹물처럼 번져가는 것이다.<br>"어린이 병동을 다니며 한동안 스티커를 챙겨 다니곤 했다. 간호사 선생님의 명찰에 아이들이 붙여 준 스티커를 자주 본다. 아이들에겐 스티커가 사랑의 표현 방법이다. 감사하게도 내 노트북엔 같은 병실에 있던 아이가 붙여 준 두 개의 스티커가 있다. 은색 별과 파란 하트. 작고 반짝이는 내 부적."&nbsp; (p.102)<br>흩어져 있던 십여 년의 기록들 속엔 문득문득 회색빛 슬픔이 그려지기도 하고, 가눌 수 없는 절망이 비틀대기도 한다. 때로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이 무거운 삶을 짓누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걷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장담할 수 없는 희망이 있는 것처럼 시인에게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는 것이다. 그를 도와준 의료인들 덕분에 십 대와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의 삶도 이어올 수 있었지만 남들과 다른 불공평한 자신의 삶에 대해 어찌 분노가 없었을까.<br>"미워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마음을 이기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했다. 우울하지 않고 유쾌한 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슬픔이나 분노, 우울은 이윽고 사라지지 않고 몸이나 영혼 어디에 남았다. 그것들이 삶을 망칠 때가 있기도 했다. 방치하듯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사람들이 도왔지만 결국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건 스스로의 몫이기도 했다. 쓴다는 건 뭘까라는 질문보다 산다는 건 뭘까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했다. 그렇게 일 년 정도 시를 쓰지 않고 휴식을 가졌다. 휴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 년 후엔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고 다시 살아갔다. 누군가에겐 일 년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지만 내게 그 시간은 시를 쓰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시를 쓰지 않던 긴 시간이었다."&nbsp; (p.179 '일부' 중에서)<br>몸이 건강하다는 건 타인의 아픔을 세심히 살필 수 없는 , 영혼의 시력 저하를 야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끝없이 아름다움을 찾는 성동혁 시인과 같은 이의 글을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음속 다짐을 되새겨야 한다. '나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라고. 오늘은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 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가족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가족을 잃고 거리에서 명절을 맞는 유가족들도 있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잠깐 보았던 그들의 모습을, 그 아픔을 우리는 모르는 체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애써 숨겼던 당신의 아픔을 우리가 보았노라고 그들을 응원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영혼의 시력을 높여가야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380/70/cover150/k6028356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380701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왠지 숙연해지는 - [너의 좋은 날을 살아봐 - 제주 사는 미술치료사의 마음, 예술, 자연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92570</link><pubDate>Sat, 14 Feb 2026 21: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925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135366&TPaperId=170925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63/54/coveroff/k66213536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135366&TPaperId=170925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너의 좋은 날을 살아봐 - 제주 사는 미술치료사의 마음, 예술, 자연 이야기</a><br/>정은혜 지음 / 아라의정원 / 2026년 01월<br/></td></tr></table><br/>남들에 비해 비교적 고단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운명'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따라 이 일 저 일 안 해본 게 없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하는 일마다 진득하니 오래 버티지를 못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횟수가 많아질수록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의문과 혼란이 가중된다. 그들 중 어떤 이는 혼란과 동요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길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의 혼란한 삶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자위한다. 영문도 모르는 채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그리고 운명에 거스르는 길을 선택했던 많은 이들이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혼란한 삶을 살다 갔다. &lt;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gt;를 썼던 엘리자베스 길버트와 같은 삶을 살았던 이는 어쩌면 몇 안 되는 행운아 중 한 명이었을지도 모른다.<br>미술치료사이자 생태예술가로서 제주에서 살고 있는 정은혜 작가 역시 그런 행운아 중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록 그녀의 삶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자신이 좋아하고 운명에 거스르지 않는 길을 스스로 찾아냈으니 말이다. 작가의 산문집 &lt;너의 좋은 날을 살아봐&gt;는 그와 같은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방탕한 삶을 살아왔거나 길을 잃고 헤맸던 것도 아닌데 작가는 힘들고 고단했던 길을 돌고 돌아 지금에 이르렀다. 청소년기에 캐나다로 이민 가서 퀸스 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던 작가가 한국에 와서 미술관 큐레이터를 경험한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예술대학(SAIC)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공인 미술치료사가 되었던 작가. 그와 같은 이력만으로도 순탄하고 편안한 삶을 꾸려갔을 듯한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br>"나는 지금의 삶을 사느라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미술치료사가 되기 위해서 미술관 큐레이터 일을 포기했고,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서 캐나다와 미국에서의 삶을 포기했고, 서울에서 제주로 올 때는 안정적인 직장과 돈을 벌 기회를 포기했다. 나는 지금의 삶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로 값을 치렀는지를 잊은 적이 없다. 내 삶에 만족하는 이유가 어쩌면 '잠정적 손해'로 비싸게 값을 치르고 선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nbsp; (p.153)<br>선택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이라면 누구나 갈등과 혼란은 피하기 어렵다. 갈등을 최소화하고 확신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일을 통해 추구할 수 있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인지 몇 번이고 되짚어보는 것이다. 작가 역시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삶에서&nbsp;원하는 것 세 가지(친구, 자연, 카페)가 제주에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제주의 자연 속에서, 제주에서 새롭게 형성한 관계 속에서 안정을 찾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안정된 삶을 기반으로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모래사장을 기어 다니며 주운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로 설치 작품을 만들고, 시간을 내어 글을 쓴다.<br>"상처 없는 이가 없고, 스크래치 없이 어른으로 성장한 이는 없음을 깨달았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경험이 다르고, 문화와 나라가 다르고, 전혀 다른 가족 안에서 있었던 일인데도 내 아픔의 계곡과 다른 이들의 아픔의 계곡 사이에 연결된 다리가 있고, 이 다리를 통해 연민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nbsp; (p.207)<br>작가는 이 책의 원고를 처음 쓰기 시작한 시점이 '삶이 무너지고 관계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한 때'였다고 회상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 전체에서 그런 시기는 한두 번쯤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그 상황에 처한 모든 사람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닐 터, 삶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의 방식은 서로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시간을 내서 글을 쓰고, 누군가는 신발이 닳도록 숲을 거닐고, 또 누군가는 모든 관계를 끊고 침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비록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협곡을 벗어났을지라도 자신의 경험만큼은 필요로 하는 다른 누군가에게 소중히 전달하고, 자신도 역시 오래도록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br>"우리 모두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은유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괜찮게 여겨진다면 우리가 맺는 자연과의 관계가 좀 달라질까? 자연의 일부인 우리는 누구나 이 순환의 어느 단계 안에 놓여 있다. 이 순환을 잘 받아들이면, 자연을 파괴하고 영원히 살고픈 욕망을 좀 내려놓고 우리가 죽이는 다른 생명들에게 연민을 더 가질 수 있을까.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약간은 덜 무서워지지 않을까."&nbsp; (p.284)<br>설 명절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나는 밀린 숙제를 하듯 리뷰를 쓴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난 추억을 되새김하는 것처럼 우리는 명절을 핑계 삼아 삶의 순환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뜬 사람들과 다음은 내 차례라는 듯 '아이고' 소리를 달고 사는 친척들과 갓난쟁이를 앞세우고 나타난 젊은 부부며 제법 어른 티가 나는 학생들 그리고... 명절이 아니면 같은 자리에서 한꺼번에 만날 수 없는 여러 얼굴들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달라진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삶의 순환이란 바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타인을 통해 나의 변화를 감지하고 왠지 모를 슬픔에 숙연해진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63/54/cover150/k6621353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635429</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꿈결처럼 아득한 - [집착]</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88018</link><pubDate>Thu, 12 Feb 2026 18: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8801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5609&TPaperId=170880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06/47/coveroff/895468560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5609&TPaperId=1708801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집착</a><br/>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03월<br/></td></tr></table><br/>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처음 읽는 독자라면 아마도 그녀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솔직함'에 대해 놀라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솔직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끝없이 교육받으며 자라왔지만 솔직함으로 인해 받게 된 여러 불합리한 피해들을 경험하면서 솔직함보다는 오히려 숨김이나 외면, 과장이나 허풍, 윤색이나 덧붙임 등에 더욱 익숙해져 온 느낌이다. 그런 까닭에 성인이 된 지금, '솔직함'은 다만 도덕이나 윤리 교과서에 등장하는 형식적 단어일 뿐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소멸된 언어쯤으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어른이 하는 말은 대개 촘촘한 여과장치를 통해 걸러진, 자신에게 조금의 피해도 가해지지 않을 듯한 말만 남게 되거나 거짓에 가까운 허풍이나 과장이 주를 이룬다. 이렇듯 어른들의 외면을 받는 '솔직함'이 아니 에르노의 작품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살아난다.<br>"나는 늘 내가 쓴 글이 출간될 때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했다. 나는 죽고, 더이상 심판할 사람이 없기라도 할 것처럼 글쓰기. 진실이란 죽음과 연관되어서만 생겨난다고 믿는 것이 어쩌면 환상에 불과할지라도."&nbsp; (p.9)<br>아니 에르노의 소설 대부분이 그렇듯이, 소설 속 주인공인 '나'와 '작가'인 아니 에르노 사이의 간극은 무척이나 좁다. 워낙에 좁은 간극 탓에 소설을 읽는 독자는 '나'와 '작가'를 동일시하거나 그렇다고 믿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작가가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와 같은 결과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작가의 체험을 일부 차용하여 소설화하는, 이른바 '자전적 소설'이나 '성장소설'과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같은 높이에서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이것이 전적으로 작가 자신의 체험이라고 밖에 달리 말하기 어려운 적나라하고, 원색적인 표현이나 묘사가 소설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도 '그것은 단지 소설 속 주인공의 경험이자 나(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결과'일 뿐 나의 직접적인 체험의 결과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슬몃 발을 뺄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br>"그런 순간이면 태초의 야만성이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만약 사회가 내 안에 잠재해 있는 충동에 재갈을 물리지 않았다면 내가 저지를 수도 있었을 행위들, 예를 들면 단순히 인터넷에서 그 여자의 이름을 찾아보는 대신 "갈보 같은 년! 더러운 년! 잡년!"이라고 울부짖으며 그녀를 마구 쏘아대는 등의 행위들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게다가 권총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나는 커다란 목소리로 종종 그런 짓을 저질렀지 않은가. 결국 내가 겪는 고통, 그것은 그 여자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nbsp; (p.31)<br>60여 쪽의 짧은 소설인 &lt;집착&gt;은 '육 년간의 관계를 끝내고 몇 달 전 W를 떠난 사람은 바로 나였다'는 말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렇게 헤어진 후 그가 자신의 아파트를 나와 다른 여자의 아파트로 들어가 살게 되면서 새롭게 생긴 규칙들, 이를테면 전화는 그의 휴대전화로만 해야 하고, 만나는 것도 저녁이나 주말은 절대 안 된다는 것과 같은 전에는 없던 새로운 규칙들이 생겨나면서 시작된 질투의 감정. '나'는 결코 사그라들 것 같지 않은 이 감정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이 어디로 이끌려가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내 머리와 가슴과 자궁은 온통 그 여자로 채워졌고, 그녀는 가는 곳마다 나를 따라오며 내 감정을 좌우했다.'고 고백하는 '나'.<br>"나 자신을 먹잇감이자 관객으로 삼았던 질투에 휘둘리며 상상이 빚어낸 형상들을 끌어내고, 어떻게 제어해볼 새도 없이 머릿속에서 그 수를 불려가던 상투적 표현의 목록을 조사해보고, 저절로 떠오르고 탐욕스럽고 고통스러우며 기어이 진실과, 그리고 행복 -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니까 - 의 획득을 노리는 그 모든 내면의 말들을 기술하는 일을 마쳤다. 나는, 6개월 동안 쉼없이 화장하고 강의하고 말하고 쾌락을 누린 여자의 비어 있던 이미지와 이름을 마침내 글로 채우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그런 여자가 다른 곳에서, 또다른 여자의 머릿속과 살갗에서 역시 살아있으리라는 짐작조차 못해보고."&nbsp; (p.69)<br>감기 몸살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체험을 일주일쯤 하고 나니 책을 읽는 것도, 컴퓨터 화면에서 문장을 이어가는 일도 마치 처음 하는 일처럼 어색하고, 울퉁불퉁 매끄럽지가 않다. 질투 역시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다른 이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 매일매일의 일상이 마치 열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그것인 양 정상체온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고열 속에서 행해지는 듯한 착각, 마침내 길고 긴 터널을 벗어나 일상으로 되돌아왔을 때 시큼털털한 후회와 함께 터널 속의 일이 마치 꿈결처럼 아득한 의문부호로 남게 되는...<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06/47/cover150/895468560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1064784</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내가 보았던 어느 목사처럼 - [다잉 아이 - Dying Eye]</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66384</link><pubDate>Mon, 02 Feb 2026 16: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6638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982405&TPaperId=1706638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48/40/coveroff/89909824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982405&TPaperId=1706638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다잉 아이 - Dying Eye</a><br/>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07월<br/></td></tr></table><br/>철이 든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주로 '분노'나 '화'를 그 잣대로 삼는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에도 화를 내지 않거나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이미 철이 든 사람으로 분류한다는 뜻이다. 내 기준에서는 말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철도 들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한다는 얘기 아닌가? 하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이 들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다음 생을 기대하면서. 21세기의 유행은 철이 들지 않은 채 죽는 것이라서 그래,라고 말한다면 뭐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것도 유행에 속할지 아닐지의 문제는 더 따져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유행에 동참하고자 일부러 철이 들지 않은 채 죽었다는 게 믿기지는 않지만, 아무튼.<br>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lt;다잉 아이&gt;는 철이 들기도 한참 전인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억울하게 죽은 한 여인에 얽힌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미스터리 호러'에 가까운 이 소설은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으스스한 공포를 안겨주기도 하고, 작가 특유의 독특한 구성 방식을 구축함으로써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그 결말을 알 수 없게 한다.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열혈 독자는 아니지만 머리가 복잡하거나 독서 권태기에 빠져들 때 읽으면 어느 정도 즉각적인 효과를 보곤 해서 이따금 생각이 날 때마다 읽곤 한다. 말하자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코가 맹맹하고 으슬으슬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먹는 타이레놀의 효과와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br>"신스케는 형사 재판의 판결이 떨어진 직후부터 '양하'에서 일했다. 판결 내용은 징역 2년에 집행 유예 3년이었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는 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해도 상관없었지만, 에지마가 손을 써 한동안 치즈코의 가게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에지마의 머릿속에는 그래야 신스케가 불필요한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란 배려와 더불어, 사고에 대해 알고 있는 '시리우스' 단골손님의 시선을 의식한 계산이 있었던 것 같다."&nbsp; (p.91)<br>소설의 주인공인 아메무라 신스케는 에지마가 주인인 '시리우스'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에지마의 차를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냈고, 그 사고로 기시나카 미나에라는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 이후 집행유예로 풀려난 신스케는 '양하'로 자리를 옮겨 새 생활을 시작한다. 영업이 끝나갈 시간에 찾아온 한 남자의 습격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 신스케는 기억의 일부를 잃게 된다. 신스케를 공격했던 사람은 죽은 미나에의 남편인 기시나카 레이지였고, 그 후 그는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자신이 저지른 교통사고 당시의 기억이 확실하지 않았던 신스케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기억을 되찾는 일에 매달린다. 여기에는 동거녀였던 나루미의 실종이 한몫했다. 자신이 병원에 있는 동안 집 안을 깨끗이 정리했던 것은 물론 자신의 물건 역시 마구 옮겨져 있었다.<br>"나루미가 없어졌을 때 그녀의 화장대에 드라이버가 놓여 있었다. 자기 방에서는 본 적 없는 십자드라이버였다. 혹시 나루미가 그 드라이버로 세면실 거울을 떼어 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것을 훔쳐 간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짚이는 게 있었다. 신스케가 퇴원해 돌아와 보니 집 안이 싹 바뀌어 있었다. 마치 대청소를 마친 뒤처럼 보였다. 나루미가 그 '무언가'를 찾으려 한 흔적을 없애기 위해 집 안을 그렇게 바꿔 놓은 것인지도 몰랐다."&nbsp; (p.275)<br>신스케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면서 사고 전후의 내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날 운전을 했던 당사자는 신스케가 아니라 에지마였고, 미나에의 자전거를 치고 갑자기 핸들을 틀어 차선을 넘는 바람에 옆차선에서 과속을 하던 페라리 한 대가 에지마가 운전하던 벤츠와 충돌한 후 미나에를 치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었다. 게다가 페라리를 운전했던 것은 건설회사 직원인 기우치가 아니었고, 기우치의 약혼녀이자 건설회사 사장의 딸이었던 미도리였다. 음주운전을 했던 미도리의 죄를 대신 뒤집어썼던 기우치 역시 사고 당사자가 아니었던 셈이다. 미나에의 마지막 눈빛을 기억하고 있던 미도리는 레이지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하고, 방문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미도리는 점차 사망한 미나에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광고 인형을 전문적으로 만들었던 레이지의 도움을 받아 미나에의 얼굴로 변신했던 것은 물론 자신의 체중을 감량하고 식습관까지 닮아갔다.<br>"기시나카 미나에가 죽어 갈 때의 눈. 생명이 꺼지기 직전까지 그녀는 집념의 빛을 번뜩였어. 삶에 대한 집착의 빛,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죽어야 하는 무상의 빛, 자신을 그런 꼴로 만든 상대에 대한 증오의 빛이었지.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끔찍한 눈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nbsp; (p.395)<br>미나에의 모습으로 화한 미도리는 복수를 위해 신스케의 주변을 맴돌게 되고, 기억을 잃었던 신스케 역시 우여곡절 끝에 기억의 대부분을 회복하면서 다시 에지마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동거녀였던 나루미의 행방을 묻게 되는데...<br>지금 당신에게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당신은 여전히 철이 덜 들었거나 아직 살아가야 할 날이 많이 남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어떤 목사는 대통령 이름을 들먹이면서 그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공공연히 떠들기도 한다. 그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의 지능은 세살배기 어린애에 불과한 것이다. 이번 생에서 그가 철이 들기를 기대한다는 건 죽은 나무가 되살아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때로 '분노'를 통하여 살아갈 에너지를 얻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시기는 마냥 늦어지게 된다. 내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어느 목사처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48/40/cover150/89909824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484015</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내게 바람이 있다면 - [나의 사전연명의향서 - 죽음을 인식하면 삶은 다시 정의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55087</link><pubDate>Thu, 29 Jan 2026 15: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5508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4621&TPaperId=170550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41/91/coveroff/k4620346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4621&TPaperId=1705508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의 사전연명의향서 - 죽음을 인식하면 삶은 다시 정의된다</a><br/>김지수 지음 / 북루덴스 / 2026년 01월<br/></td></tr></table><br/>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죽음'에 연관된 책을 자주 읽게 된다. 연초부터 말이다. 리뷰를 쓰기 전에 읽었던 책을 소개하자면 캐나다 출신 조력 사망 전문의인 스테파니 그린이 쓴 &lt;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gt;와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이기도 한 디디에 에리봉의 저서 &lt;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gt;이 그것이다. 그렇게 이어져 온 독서는 김지수 아나운서가 쓴 &lt;나의 사전연명의향서&gt;에까지 이르렀다. 꽤나 오래전에 읽었던 김영민 교수의 저서 &lt;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gt;를 빗대어 말해보자면 '연초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쯤 되겠다. 우리 모두 끝이 있다는 것, 언젠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가정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새긴다는 건 오늘 하루를, 올 한 해를 의미 있게 살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이 유한하다는 건 불행이 아니라 다행한 일이라고 하겠다.<br>"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하나의 질문에서 비롯됐다. "존엄한 삶은 무엇인가?" 여기서 '존엄한 삶'이란 내가 어떤 삶을 존엄하다고 믿는지의 문제이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아버지를 떠올렸다. 마음 깊은 곳에 묻어뒀던, 지금까지도 온전히 마주하기 힘든 기억의 일부를 끄집어냈다. 고3이었던 1994년 가을, 아버지는 난치병을 선고받았고 6년간 이름 모를 병과 싸웠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죽음이란 걸 마주했다. 그것은, 난치병의 탈을 쓰고 환자의 장기 하나하나를 망가뜨리며 숨통만큼은 쉽사리 끊지 않는 괴물이었다."&nbsp; (p.11 '프롤로그' 중에서)<br>작년 말에 읽었던 남유하 작가의 에세이 &lt;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gt; 역시 이 책과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의 저자인 김지수 아나운서 역시 죽음 앞에서 마냥 무기력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자신 역시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로 인해 보건의료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로 살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위중한 환자들을 만나 취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앓고 있는 우울증과 공황장애, 끊임없는 자살 충동으로부터 벗어나 삶을 끌어안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br>"이 나쁜 생각의 기세가 나보다 커지면 안 되기 때문에 늘 지켜보고 감시해야 했다. 이렇게 마음을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건 내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노력함에도 몹쓸 생각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에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내 나름의 처방을 내릴 수 있었다. 의사가 개입하는 치료 영역과 별개로 나의 내면을 스스로 돌볼 '통로'가 필요하다는 것. 그건 마음을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돌봄'이어야 했다. 그게 뭔지 당장 알 수 없더라도 내면을 돌볼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겠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알게 될 것 같았다. 이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nbsp; (p.57)<br>책은 모두 4개의 장(chapter)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버지의 투병 과정을 담은 Chapter 1. '아버지는 밤에만 울지 않았다', 취재 현장에서 경험한 말기 환자들의 모습과 그들을 통해 깨달은 것을 기록한&nbsp;Chapter 2. '존엄한 삶이라면'과&nbsp;Chapter 3. '정체성을 지킨다면 존엄한 죽음이다',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았던 존엄한 삶과 죽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은&nbsp;Chapter 4. '나의 사전연명의향서'가 그것이다. 존엄사나 의료 조력 사망을 인정하고 있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존엄하게 삶을 마감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기대수명이 늘면서 암 환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존엄한 죽음을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치료 가능성이 없는 환자와 가족들이 존엄사가 허용되는 나라로 나가 그곳에서 삶을 마감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자신의 죽음을 평화롭게 맞는다는 게 이렇게나 힘들다.<br>"요즘 반가운 소식을 자주 접한다.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통계들이 발표되고 있다. 임종 과정에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미리 의사를 밝혀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이 300만 명을 넘겼다는 데 이어, 이러한 사전 서약에 따른 연명의료 중단 건수가 5만 건을 넘어섰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임종을 늦추는 의료서비스를 받지 않는 대신 삶의 마지막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다 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다."&nbsp; (P220 '에필로그' 중에서)<br>내가 이 세상에 살았던 기억은 어느 왕조의 오래된 유물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스러질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아쉽다거나 서럽다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누구나 그렇듯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만큼은 크게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존엄한 삶의 출발점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며, 존엄한 죽음도 결국 그 연장선에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는 점점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로 관심의 추가 서서히 기울게 된다는 점은 우리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인 듯 보인다. 내게 남은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죽음에 이르러서도 저 공원의 푸른 소나무처럼 담담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 바람이 어쩌면 이승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크나큰 욕심일지도 모르지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41/91/cover150/k4620346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419183</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그들만의 사랑법 - [반짝반짝 빛나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42662</link><pubDate>Sat, 24 Jan 2026 14: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426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034831&TPaperId=170426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68/32/coveroff/k59203483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034831&TPaperId=170426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반짝반짝 빛나는</a><br/>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12월<br/></td></tr></table><br/>도무지&nbsp;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신의 허점을 찾아 숨바꼭질을 하듯 찾아 헤매야 할까.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를 바라야 할까.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게 바뀐 상황에서 그 결과를 어쩔 수 없는 처분처럼 달게 받아야 하는 것일까.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lt;반짝반짝 빛나는&gt;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생각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작가는 이따금 너무나 낯선 설정으로 독자를 당황하게 한다. 물론 소설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상황이 작가가 설정한 상상력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변주되는 것이지만 &lt;반짝반짝 빛나는&gt;의 설정은 유교주의 지배를 받는 아시아권 사람들에게는 마치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천형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br>"그 녀석과 결혼을 하다니, 물을 안는 것이나 진배없지 않으냐." 그때 등에 으슬으슬 서늘한 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나무도 들을 수 있을 만큼 또렷하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전, 섹스를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순간 시아버지는 움찔하는 표정이 되었다가, 그러고는 슬며시 웃었다. 나는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어, 서둘러 일어났다.&nbsp; (p.20)<br>그렇다. 일주일 전에 결혼한 쇼코와 무츠키는 정상적인 부부가 아니다. 아르바이트 삼아 이탈리아어를 번역하는 쇼코는 알코올 중독자인 동시에 조울증을 앓고 있다. 의사인 무츠키는 지나친 결병증을 지닌 사람인 반면 동성애자로서 동성 애인인 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거짓말이라고는 도무지 할 줄 모르는 무츠키는 쇼코가 곤에 대해 물을 때마다 사실대로 말해준다. 잠들기 전 침대 시트를 다림질하는 일을 제외하고 음식이면 음식, 청소면 청소 집안의 모든 일은 무츠키가 도맡아 한다. 너무나 순박하고 착한 무츠키에게 쇼코는 그 어떤 불만도 없다. 무츠키를 위해 곤과의 관계를 허락하기도 하고, 곤을 집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형식적인 아내이기는 하지만 무츠키는 이와 같은 쇼코의 배려에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br>"차는 한밤중을 똑바로 달린다. 오늘 밤 곤을 만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쇼코의 기분을, 나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끔찍하도록 긴 하루였다. 어머니의 가시 돋친 목소리와 장인의 험악한 표정, 눈물짓는 장모의 손수건 모양과 고개 숙인 아버지의 옆얼굴. 후회하지 않아. 마음속으로 쇼코에게 말한다. 일찌감치 등받이를 뒤로 넘기고 기댄 곤은 코를 골고 있다. 입은 반쯤 열려 있다."&nbsp; (p.200)<br>무츠키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쇼코의 마음은 점점 무츠키에게 기운다. 육체적인 사랑은 아닐지라도 같은 공간에서 그와 함께 지내는 삶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무츠키는 쇼코의 절친인 미즈호를 통하여 쇼코의 옛 애인인 하네기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쇼코는 미즈호와 그녀의 아들 유타, 그리고 하네기 씨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게 된다. 이 모든 게 무츠키의 계획이었다는 걸 알게 된 쇼코는 크게 화를 내고 미즈호와는 절교를 선언한다. 그렇게 흘러가던 어느 날 무츠키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장인 장모와 시어머니는 결국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무츠키와 쇼코는 남들과 다른 자신들의 관계에 심한 압박을 느낀다.<br>"집으로 돌아오자, 왠지 맥이 축 빠지고 피로가 몰려왔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핌즈를 전자에일에 섞어 마신다. 가능하면 무츠키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된 이상 협력해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 봐야 하룻밤만 넘기면 되는 일이다. 나는 반짝반짝 닦인 바닥에 엎드리고 누워, 베란다 너머로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뺨이 싸늘해서 상쾌한 기분이다. 눈을 감고 온몸으로 귀 기울인다. 정겹고 청결하고 편안한 방의 기척. 이러고 있으면 무츠키에게 안겨 있는 것 같다."&nbsp; (p.211)<br>사회적 인식과 관습에 얽매인 관계 속에서 아무런 해결책도 찾을 수 없는 두 사람과 그들의 주변을 맴도는 곤. 책을 읽는 독자는 무겁고 착잡한 기분으로 그들을 지켜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물론 소설은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동화적 결말로 끝이 나고는 있지만 소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답답한 마음에 속이 터질 듯하고,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읽어나가는 과정이 그저 힘에 겨울 뿐이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쇼코를 보면서 '우리가 육체적 관계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 사랑할 방법은 과연 없단 말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작가 역시 비슷한 문제를 거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개인의 성적인 취향이나 기호를 떠나 서로의 영혼을 깊이 관찰하고 상대방의 매력에 이끌릴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인가.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님처럼 서로의 순수한 영혼에 이끌려 플라토닉한 사랑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br>날씨가 조금 풀린다는 기상청 예보가 무색하게 바람에 섞인 한기는 여전히 냉랭하기만 하다. 간밤에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시린 느낌을 더하고 있다. 겨울 추위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다. 추위 때문에 마냥 움츠러들 게 아니라 겨울을 온전히 사랑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듯하다. 쇼코와 무츠키가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사랑법을 찾아가는 것처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68/32/cover150/k59203483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683216</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잠시 멈추어 서서 우리는 - [슬픈 마음 있는 사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35575</link><pubDate>Wed, 21 Jan 2026 16: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355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030967&TPaperId=170355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18/80/coveroff/k59203096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030967&TPaperId=170355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슬픈 마음 있는 사람</a><br/>정기현 지음 / 스위밍꿀 / 2025년 06월<br/></td></tr></table><br/>유능한 편집자가 인기 작가로 탈바꿈하는 사례는 불가능하거나 희귀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흔한 사례도 아니지만 말이다. 타인이 쓴 글에 대해 조언하고 격려하는 일과 자신이 직접 나서서 글을 쓰는 일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해 보면 일 때문이든 취미로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당연히 글도 잘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양자 사이에 서로 긴밀한 연관은 있을지언정 '반드시'로 귀결되는 건 아닌 듯하다. 나 역시 책을 읽는 건 좋아하지만 글을 쓰는 건 그닥 즐기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게다가 이걸 평생의 업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나의 이런 성향은 책을 읽고 숫제 기록도 하지 않는 잘못된 습관을 오래도록 유지시켰던 바, 어떻게든 이를 고치고 바로잡겠다는 명목으로 오죽하면 영양가도 없는 블로그를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을까. 그렇다고 별반 나아진 것도 없는 듯하지만 말이다.<br>정기현 작가 역시 스타 편집자에서 신인 작가가 된 케이스이다. 작가의 첫 소설집 &lt;슬픈 마음 있는 사람&gt;을 읽고 난 나의 감회는 작가가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쓰자' 결심하거나 생각해서 나온 글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쌓이고 쌓였던 것이 자연스레 넘쳐흘러서 비로소 세상에 나온 책일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이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인간에 의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때가 되어 마땅히 나와야 할 게 나왔다는 생각은 어쩌면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이 끝없이 걷는 모습으로 일관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설에 등장하는 기은, 새미, 승주를 통해 책을 읽는 독자는 그들이 마주하는 다른 풍경들을 끊이지 않고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br>"지나온 시간과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들 탓인지, 아니면 교회에는 원래 그런 사람들이 자주 오는 것인지, 낯선 이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시작으로 끝나지 않는 긴긴 얘기를 늘어놓았다. 교회에 와서야 털어놓는 이야기라는 것이 대개 먹고사는 문제와는 관련이 없으나 그 나름대로는 충분히 무거운 것들이라 이들의 장황한 이야기는 붕 떠올라 당사자만 아는 리듬대로 흘러갔다."&nbsp; (p.83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중에서)<br>정기현의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을 비롯하여 '빅풋', '발밑의 일', '검은 강에 둥실', 마음대로 우는 벽세계', '농부의 피',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 바람 부는 날' 등 8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작가는 신인 소설가인 만큼 소인(小人) 새미가 임준섭의 집에 숨어들어 지내는 며칠 동안 인간이 소인의 존재를 눈치채면 그 즉시 처단된다는 그들만의 규칙에도 불구하고 새미는 왠지 그에게는 정체를 드러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임준섭을 불러보는데, 그는 의외로 차분하기만 하고, 집안의 고요가 깨져 기쁘다는 듯 행동한다는 내용의 '발밑의 일'처럼 실험적인 작품도 선보인다. 물론 큰 발을 갖고 있는 새미가 발 때문에 흐려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슬픔을 다룬,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의 '빅풋'과 같은 작품이 작품 전체를 차지하고 있지만 말이다.<br>"신발 자체로만 본다면 그리 무시무시한 크기까지는 아니었는데도 새미를 먼저 알고 새미 없이 그 신발들을 보게 된다면 그 뒤로도 한동안 발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만드는 신발들이었다. 새미는 여전히 실종 상태인데 발 크기에 놀라 마땅한 슬픔을 뒷전으로 밀어둔 것처럼 보일까봐 나는 신발들이 선사한 놀라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nbsp; (p.15 '빅풋' 중에서)<br>소설 '빅풋'에서 새미는 "나는 점점 희미해지고 발에서만 자세하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대표성이 발의 크기가 아님을 은연중에 밝힌다. 동네 곳곳에서 발견되는 '김병철 들어라'로 시작되는 낙서를 보면서 기은은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김병철'이라는 인물과 그에 대한 사연을 찾아 나서게 되고, 동네 사람들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게 된 기은이 자신이 새로 발견한 사실을 준영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을 그린 '슬픈 마음 있는 사람'과 여름방학에 꾸었던 꿈을 소재로 다룬 '검은 강에 둥실', 뻐꾸기와 파쿠르의 상상력을 다룬 '마음대로 우는 벽세계', 우연히 발견한 비옥한 땅을 보면서 자신에게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승주의 이야기를 다룬 '농부의 피', 외고를 목표로 노력해 온 승주가 어느 날 노는 아이들의 무리인 '버들치'와 어울리게 되면서 달라지는 삶의 패턴을 그린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 재건축을 하기 위해 펜스가 쳐진 아파트 단지를 멀리 돌아 출근하는 대신, 펜스를 뚫고 한가운데로 걸어보자고 결심한 승주에게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을 그린 '바람 부는 날' 등 작가는 다양한 소재에서 얻은 여러 상상력을 통해 우리 삶의 모습을 이야기한다.<br>"길에도 성격이 있다면 고갯길은 무척이나 음흉한 성격일 것이다. 꼭대기에 다다를 때까지 너머의 풍경을 감춘 채 고개의 이쪽 면만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만일 누군가 푸른 초목이 무성한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했다면, 그가 멈추지 않고 걷는 이유는 내리막길에도 그 녹빛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그 너머가 바위산이면 어떡하려고? 얼음산이라면? 절벽이라면?"&nbsp; (p.264 '바람 부는 날' 중에서)<br>며칠째 날이 무척이나 차다. 동장군의 기세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처럼 갑작스럽거나 느닷없는 것이어서 자신의 삶에서 받는 충격으로 인해 방향을 잃고 멈춰 서거나 기운을 잃고 쓰러질 때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생명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소설이 독자에게 제공하는 좋은 점도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네 모습을 비유적으로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맬 때 한 편의 소설이 가리키는 방향을 한동안 바라보다 보면 내가 가야 할 새로운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멈추어 서서 한 편의 소설을 읽는다. 지쳐버린 자신의 삶을 잠시 잊고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18/80/cover150/k59203096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188033</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영수증 읽는 시간 - [40세 정신과 영수증 - 2만 장의 영수증 위에 쓴 삶과 사랑의 기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29147</link><pubDate>Sun, 18 Jan 2026 16: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291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038346&TPaperId=170291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303/64/coveroff/k5920383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038346&TPaperId=170291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40세 정신과 영수증 - 2만 장의 영수증 위에 쓴 삶과 사랑의 기록</a><br/>정신 지음, 사이이다 사진, 공민선 디자인 / 이야기장수 / 2025년 04월<br/></td></tr></table><br/>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물건을 살 때마다 종이 영수증을 꾸준히 받다 보면 소비 행위가 한결 위축되는 걸 느낀다. 하루에도 주머니 가득 쌓이는 영수증 더미를 보면서 아연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나 많이 썼다고?' 하는 생각에 스스로도 놀라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종이 영수증을 발급받지 않는다. 무분별한 소비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보겠다는 구차한 명목이 아니라 영수증 발급에 필요한 자원 낭비를 막겠다는 그럴싸한 이유로 말이다. 계산을 마침과 동시에 날아오는 문자메시지는 금액을 확인하는 정도의 단순한 용도에 그칠 뿐이고, 불필요한 소비는 아니었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던 습관은 완전히 사라졌다. 말하자면 나는 목에 가시처럼 걸리던 마음속 죄책감을 없애는 일에 완벽히 성공한 셈이다.<br>&lt;40세 정신과 영수증&gt;의 저자이기도 한 정신은 '23세부터 매일 영수증을 모으기 시작해서 2025년 48세가 될 때까지 2만 5천 장의 영수증을 모았다'고 한다. 책에는 40세가 된 정신 작가가 서울을 떠나 포틀랜드로 향하는 2017년 3월 27일의 미국행 비행기 항공요금 937,800원의 영수증으로 시작된다. 책의 저자는 세 명이다. 글을 쓴 주인공 정신과, 정신의 영수증뿐만 아니라 배경 사진을 담당한 사이이다 작가, 그리고 영수증과 사진을 모아 정신이 쓴 글과 함께 배치한 공민선 디자이너가 그들이다. 책을 처음 접한 독자라면 어쩌면 '내가 지금 왜 이 책을 읽고 있나?' 하는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다. 어쩌면 말이다.<br>"글을 한 번 쓰고 나면/몇 번을 수정해요//체에 거르면 고운 것들이 내려앉듯이/수정 후에는 고운 글이 됩니다//체에 남아 있는/거친 것들은 읽어보면 웃음이 나서/고운 것들만 세상에 내보내요//"&nbsp; (p.166)<br>정신이 소비한 영수증과 움직인 장소가 찍힌 사진, 그리고 메모에 가까운 정신의 글이 토막처럼 실린 이 책을 정말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읽는다면 넉넉잡아 30분이면 족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사진과 사진 사이, 영수증과 영수증 사이의 여백이, 때로는 정신 작가의 짧은 메모가 독자로 하여금 깊은 사유의 바다로 나아가도록 안내한다. 책에서 벗어난 독자의 시선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좇을 수도 있고, 멍한 시선으로 오래전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책을 벗어나 문득 책 바깥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길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으로 인해 책을 완독하기까지 꽤나 긴 시간이 소요되는 책이다.<br>"새로운 답을 만날/장소에 거의 다 왔다//길을 건너며/답의 뒷모습을 먼저 보았는데/크고//순한 느낌이다//나는 옆모습을 어서 보려고/빨리 길을 건너갔다//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자/아이스크림은 소외되어 녹아내렸다//2019년 7월 19일 오후 5시 12분/아이스크림 두 컵/11.00$/Smitten Ice Cream//"&nbsp; (p.177)<br>과거에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광고인이 주인공이었던 드라마 &lt;광끼&gt;의 자문이자 모델이 되기도 했던 20대의 정신은 40대의 나이가 되어 방황하고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 단 한 명의 '당신'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던 정신은 낯선 언어와 낯선 사람들 속에서 잊고 지냈던 '자신'을 발견한다. &lt;논어&gt; '위정편'에 이르기를 '사십이불혹(四十而不惑)'이라고 하였는데 작가 정신은 자신의 나이 사십에 비로소 '혹함'을 배우려 했다. 흔들림을 배우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야 했던 작가 정신의 삶은 한 장의 영수증 속에, 그 영수증과 함께 남은 장소와 추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다. 내가 소비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던 어느 카페나 식당의 낡은 영수증 속에 나의 삶도 잠들어 있는 것이다.<br>"내가 23세/엄마가 47세일 때/아빠는 우리 식구의 삶에서/몇 주 후 사라진다// 엄마의 마음에는/화가 찼지만/나에게는 처음부터 비어 있던 마음에/무엇이 있었는지 느끼기가 어려웠다//엄마는 나에게 아빠까지 되어야 했고/나는 엄마에게 남편까지 되어야 했다//빌런은/우리에게 10년 후 나타나/자신의 지난 일을 덮어두었다//"&nbsp; (p.210)<br>영수증도 발급되지 않는 2026년 1월 18일 일요일의 가치를 어림잡아 헤아려 본다. 나는 오늘 하루를 얼마의 가치로 살았던 것일까. 설렁설렁 가볍게 보낸 시간들이 새삼 아깝게 느껴지는 오후, 약하디 약한 겨울 햇살이 조용히 스러지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303/64/cover150/k5920383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3036447</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나의 관심이 되살아나고 - [새 마음으로 -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20560</link><pubDate>Wed, 14 Jan 2026 16: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205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835091&TPaperId=170205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291/88/coveroff/k47283509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835091&TPaperId=170205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새 마음으로 -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a><br/>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br/></td></tr></table><br/>관심만 있다면 우리는 주변에서 언제든 감동의 서사를 만나볼 수 있다. 어떤 OTT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생생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주변 어디에든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이웃이나 주변 사람들이 건너온 삶의 서사에 그닥 관심이 없을 뿐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데...' 하는 핑계는 곧바로 다른 이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진실 하나는 무관심은 전염력이 매우 강한 까닭에 나로부터 출발한 무관심이 나 하나로 그치지 않고, 삽시간에 주변 사람 모두에게 전염되어 결국에는 나의 삶 역시 주변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없이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쏟고,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돌본다는 건 결국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돌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br>"책을 시작하며 적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며 당신을 기다려왔다고. 이것은 1958년생 김한영 씨의 문장이다. 한영 씨는 작가 양다솔의 엄마이자 나의 친구다. 한영 씨 입에서 흘러나온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왜 그렇게 가슴 저릿했는지 모르겠다. 어떤 어른들이 생각나서 그랬을 것이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다는 말 옆에 당신을 기다려왔다는 말이 이어진다. 짧은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지만 긴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다. 한 번의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지만 매일 반복되는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세월이라고 문득 생각한다."&nbsp; (p.282~p.283 '에필로그' 중에서)<br>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lt;새 마음으로&gt;를 읽는 내내 '나는 참 무정한 사람이구나. 주변 사람들의 삶에 도통 관심이 없으니...' 하는 생각과 반성이 이어졌다. 나란 인간이 본디 그렇게 무정한 사람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 기차가 주요한 이동수단이었을 때, 나는 옆 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승객과 언제나 다정한 인사를 나누었고, 그들이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짧은 편지와 함께 보내주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부터 나는 어쩌면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줄여갔는지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핑계와 함께.<br>"인숙 씨는 자꾸자꾸 새 마음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새 마음, 새 마음,, 하고 속으로 되뇌인다. 약한 게 뭘까. 인숙 씨를 보며 나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한다. 인숙 씨의 몸과 마음은 내가 언제나 찾아 나서는 사랑과 용기로 가득하다. 그에게서 흘러넘쳐 땅으로 씨앗으로 뿌리로 줄기로 이파리로 열매로 신지 언니에게로 나에게로 전해진다."&nbsp; (p.105)<br>인터뷰집을 선호하지도 않는 내가 이슬아 작가의 &lt;새 마음으로&gt;를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인터뷰 대상이었던 인터뷰이의 면면이 내 주변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인터뷰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농업에 종사하는 동료 작가의 부모님이나 아파트 청소 노동을 하시는 작가의 외할머니, 작가가 직접 책을 만들어봄으로써 인연을 맺게 된 출판계 종사자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수선집 사장님 등 작가가 꾸준히 인연을 맺고 만남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굳이 인터뷰를? 하고 의문을 가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그들의 얼굴만 겨우 알고 있을 뿐 그들이 지나온 삶의 서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적당한 표현일지 모르겠다.<br>"이영애 사장님이 주인공인 영화의 끝을 상상하고 있다. 스크린이 어두워지고 그 위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인생이 바라던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던 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떠오를 것이다. 대전의 가난한 팔남매들, '주'자 돌림 형제들과 '영'자 돌림 자매들의 이름, 공장에서 만난 오야와 시다들의 이름, 영애와 상경한 고향 여자애들의 이름, 하꼬방에서 함께 자취한 친구의 이름, 재단사들의 이름, 샘플사 직원들의 이름, 남편의 이름, 남편과 사랑을 했던 여자의 이름, 시어머니의 이름, 자식들의 이름, 며느리들의 이름, 손자들의 이름... 그리고 찬무 할아버지의 이름도 거기에 있다."&nbsp; (p.272)<br>매섭게 춥던 날씨는 조금씩 풀리고 있다. 우리 사회도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시간의 알맹이엔 저마다의 사연이 익어가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시간의 속살에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언젠가 나의 삶도 맥없이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누군가 곁에서 들어줄 이가 없어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오늘은 그의 곁에서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길고 긴 이야기를 들으며 밤을 꼴딱 새워도 좋을 듯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291/88/cover150/k47283509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2918821</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바삐 서두르지 않아도 - [책을 덮고 삶을 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14292</link><pubDate>Sun, 11 Jan 2026 17: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142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031958&TPaperId=170142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23/18/coveroff/k12203195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031958&TPaperId=170142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책을 덮고 삶을 열다</a><br/>정혜윤 지음 / 녹스 / 2025년 10월<br/></td></tr></table><br/>책은 물리적으로 접근성이 가장 좋은 물건인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가장 먼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집과 사무실에 미처 읽지도 못한 책들을 마치 때 지난 과제인 양 떠안고 살면서도 단 한 줄의 문장도 읽지 않은 채 하루를 마감하는 날들이 허다하니 때로는 책이 하나의 벽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럼에도 나를 옥죄는 삶의 난제들이 밤잠을 설치게 할 때면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어느 작가의 글귀들이 잠들었던 신경세포인 양 나를 일깨운다. 책은 그렇게 머릿속에 차곡차곡 순서대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몸속 하나하나의 세포에 잠들어 있는 게 아닌가.<br>정혜윤 PD의 에세이 &lt;책을 덮고 삶을 열다&gt;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나와 같은 생각이 먼저 들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의 위태로운 순간을 대비하여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늘 그와 같은 순간에 자신이 읽었던 책을 먼저 호출하고, 불러온 책의 한 대목을 주문(呪文)처럼 외며 마음의 평안을 갈구하곤 한다. 책은 그렇게 우리의 몸 곳곳에 스며들었다가 필요한 순간에 짠 하고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진가를 증명한다. 작가 역시 수십 년간 라디오 프로듀서를 하면서 맞닥뜨렸던 수많은 재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를 붙잡아주었던 책의 힘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lt;책을 덮고 삶을 열다&gt;는 작가가 마음으로 읽었던 책들이 오롯이 삶의 현장으로 옮아 와 흔들리는 자신을 지켜주었던 지난 경험의 이야기이자 그와 같은 책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이다.<br>"원치 않는 재료가 널린 거친 작업장에서 삶을 빚는 나의 작업 방식은 언제부터인가 책을 섞는 것이었다. 슬픔에다 책 큰 스푼 듬뿍, 외로움에도 책 두 스푼, 실망에도 책 한 즙 쭉. 두려움에는 책 한 국자. 쓰디쓴 재료에는 감미로운 책 한 그릇. 나는 온갖 재료에 책을 섞는다. 이렇게 많은 삶의 재료가 있는데 여기서 아무 좋은 것도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할 때도 책을 섞었다. 이를테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하는 말 같은 것.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는 더 재미있어요." 나는 음식을 먹듯이 책을 흡수했고 거기서 영양분을 취했고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재료(현실)를 다루는 나의 방식이고 내 인생의 작업 비밀은 내가 책과의 혼합물이라는 점이다."&nbsp; (P.32~P.33)<br>작가는 이 책에서 이자크 디네센, 허먼 멜빌, 제프 다이어, 이탈로 칼비노, 배리 로페즈 등 우리가 익히 알 만한 이름들을 호명한다. 그리고 작가는 상상이나 관념으로만 떠돌던 그들 대문호의 작품을 현실에 섞는다. 한겨울 경찰차에 막혀 남태령을 넘지 못하던 농민들 곁을 함께 지켰던 시민들, 무안공항에서 있었던 비행기 폭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돌보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세월호 유가족, 눈물이 흐르던 고래의 얼굴을 기억하는 원양어선 항해사들의 이야기는 작가가 읽었던 어느 작가의 문장 속으로 스며든다. '바베트의 만찬', '모비 딕', '그러나 아름다운', '호라이즌'...<br>"우리는 읽는다. 외롭고 괴롭기에. 우리는 읽는다. 도움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길을 찾길 원하므로. 읽기는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가슴에 아름다움이 있는 채로 살아낼 수 있다. 독자인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읽은 책 너머, 쓰인 책 너머, 아직 읽히지 않은, 쓰이지 않은 우리의 삶이 있다."&nbsp; (P.179~P.180)<br>나는 세상과 동떨어져 무작정 책만 읽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은 멀리하면서 오직 세상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통하여 조금씩 조금씩 사람의 정상 체온인 36.5도에 이르게 된, 가슴 따뜻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자면 누군가의 이야기가 나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내 이웃의 눈물과 나의 눈물이 더해져 빛나는 미소가 되었던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이웃의 슬픈 눈물에 같은 양의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br>"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늘 이야기와 연결시킨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아는 것은 내가 무엇에 영향을 받는지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름다운'은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린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에 건드려지는 부분을 '존재의 핵심'이라고 부른다. 이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든다. 마음이 운명과 관계를 맺게 만든다. '그러나 아름다운'은 나를 변하게 할 힘이 있다. 나를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변신시킨다. 나는 슬픈 사람의 아름다운 자아를 사랑한다. 아무리 가슴 아픈 일이 생겨도 아름다움은 여전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nbsp; (P.90~P.91)<br>점심을 먹고 집 근처의 공원을 거니는데 한 무리의 비둘기 떼가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엔 푸른빛의 냉기가 흐르고, 공원에는 어제 내린 눈이 가득한데 저 비둘기 떼는 어디에서 오늘의 허기를 달랠 수 있을까. 나는 사라져 가는 비둘기의 잔상을 눈에 담으며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온기를 잃은 겨울 햇살이 눈밭에 부딪혀 부서진다. 산다는 게 저토록 힘든 일인가, 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바삐 서두르지 않아도 집은 차츰 가까워졌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23/18/cover150/k1220319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3231835</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바람이 분다 - [제임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11858</link><pubDate>Sat, 10 Jan 2026 11: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70118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030451&TPaperId=170118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17/74/coveroff/k57203045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030451&TPaperId=170118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제임스</a><br/>퍼시벌 에버렛 지음, 송혜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09월<br/></td></tr></table><br/>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을 모르는 이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귀동냥일망정 한 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이름. 어수선했던 초창기 미국에서 순탄치 않았던 삶을 살았던 그였지만 삶에서도, 그가 쓴 작품 속에서도 언제나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기에 그는 언제나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lt;톰 소여의 모험&gt;, &lt;왕자와 거지&gt;, &lt;허클베리 핀의 모험&gt; 등을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기억이 있다.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소년의 모험담은 재미와 흥분을 넘어 미국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지기까지 했었다. 게다가 동생 시드와 함께 폴리 이모의 집에 얹혀살면서도 기죽지 않고 행동하는 톰 소여나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모험적인 일상을 살아가던 허클베리 핀의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도 깊이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나는 지금도 '헉'이나 '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타임머신을 타고 초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아스라하게 먼 수십 년 전의 그 시절로.<br>"날이 밝아지자 헉이 강도들의 약탈품이라 부르는 물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헉은 이 모험에 완전히 신이 나 있었다. 나는 그 점에 감탄했고, 사실을 말하자면 부럽기도 했다. 목매달려 죽거나 그보다 더한 일을 당할 염려가 없는 세상에 살면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다는 것이 부러웠다."&nbsp; (p.95)<br>퍼시벌 에버렛이 쓴 &lt;제임스&gt;는 &lt;허클베리 핀의 모험&gt;의 주인공 헉의 시점이 아니라 흑인 노예인 짐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제임스'는 짐의 본명이다. 제임스에게는 아내와 어린 딸이 있고, 그들은 모두 왓슨 부인의 노예다. 독학으로 글을 읽는 것은 물론 쓸줄도 알았던 제임스였지만, 그는 언제나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인 양 흑인의 방언을 흉내내며 지냈다. 백인들로부터 눈총을 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다른 지역으로 팔려갈 거란 사실을 알게 되자 미시시피강의 잭슨섬으로 달아난다.<br>"나는 가족을 떠나 숲으로 들어갔다. 대낮에 탈출을 시도하는 건 멍청한 일이겠지만, 그들이 언제 나를 데려가려고 들이닥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달리지 않았다. 달리기는 노예에게 절대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도망칠 때는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더글러스 부인의 뒷마당을 지나서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 강으로 향할 때까지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다. 나는 침식되어 깎여나간 강둑 아래쪽에 기대어 기다렸다. 대낮에 위험을 무릅쓰고 강 위로 나갈 순 없었다."&nbsp; (p.53)<br>잭슨섬에서 헉과 우연히 조우한 제임스는 헉과 함께 온갖 사건 사고에 휘말리게 된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면서 제임스는 자신이 간직했던 비밀 한 가지를 헉에게 털어놓는다. 헉 자신도 믿을 수 없는 비밀을 공유하게 된 두 사람은 결국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제임스의 아내 세이디와 딸 리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팔려간 상태였다. 제임스는 딸과 아내를 구하기 위해 다시 그레이엄 목장으로 향하게 되고...<br>"모르겠어요. 아마 희망? 희망은&nbsp; 웃긴 거니까요. 희망은 계획이 아니죠. 실은 그냥 속임수예요. 농간 같은 거죠." 여자는 마지막 음절을 길게 늘여서 말했다. 마치 그 소리를 즐기는 것 같았다. "당신이 희망의 한쪽 손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희망은 다른 쪽 손으로 막대기를 들고 당신을 찌를 거라는 거예요. 그것도 아주 뾰족한 막대기로요. 당신이 짐을 나르고 망치로 못을 박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당신을 원하는 거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그들이 당신을 원하는 건, 당신이 돈이기 때문이에요."&nbsp; (p.359)<br>책은 곳곳에서 &lt;허클베리 핀의 모험&gt;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제임스의 생각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소설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헉의 출생에 대한 비밀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퍼시벌 에버렛의 &lt;제임스&gt;를 처음에는 내가 알던 친숙한 이름들이 등장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소설의 중반 이후부터는 제임스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당시의 흑인 노예의 생활상을 아픈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노예 감시인 홉킨스가 흑인 노예 케이티를 강간하는 장면은 끔찍했다. 어떻게 같은 인간끼리 서슴없이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미국에서 자행된 흑인 노예에 대한 인권 유린의 실상을 다룬 소설을 지금껏 읽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나는 소설의 끝부분에 묘사되고 있는 몇 줄의 짧은 문장을 나는 왜 그토록 읽기 힘들어했던 것일까.<br>2026년 새해 들어 두 번째 맞는 주말. 하늘은 잔뜩 흐려 있고, 간간이 비가 내린다. 그리고 궂은 날씨에 더해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17/74/cover150/k57203045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1177447</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질책과 반성은 이제 그만 -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6999113</link><pubDate>Sun, 04 Jan 2026 16: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69991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7571&TPaperId=169991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790/21/coveroff/89546875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7571&TPaperId=169991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a><br/>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이야기장수 / 2022년 07월<br/></td></tr></table><br/>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책 읽기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책을 읽는 일이 어렵다 보니 자연스레 책 읽기의 무용론도 뒤따른다. 책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한 미흡한 자기 합리화이자 책을 읽지 않는 자신에 대한 구차한 자기변명에 가깝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바람에 독서의 무용론이 마치 정론처럼 대접을 받는 처지에 이르고 보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마저 '그런가?' 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이따금 귀를 기울이게도 되는 것이다. 더불어 자신을 포함한 몇 안 되는 독서인들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가 되는 것이다.<br>"아름다운 글 속에는 풍부한 상징과 은유가 깃들어 있고, 그 아름다움은 세상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것은 사려 깊고 풍요로운 지성과 감성의 우주 속으로 진입하는 티켓이다. 기적은 늘 디테일 안에 있다. 감동도 늘 디테일 안에 숨어 있다. 꾹 참고 끝까지 읽어야만 끝내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nbsp; (p.57~p.58)<br>내가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들처럼 책과 담을 쌓고 지내는 처지도 아니다 보니 나에게도 가끔 '책을 왜 읽느냐?'는 질문이 당도하곤 한다. 책을 읽는 사람이 어찌나 줄었던지 그런 질문을 받아줄 이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독서의 효용이랄까, 책을 읽는 목적이랄까 아무튼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백가쟁명의 다양한 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독서를 통하여 추상적인 단어의 개념을 구성원 모두에게 정의에 근접한 방향으로 통일시킬 수 있음을 독서 효용의 1순위로 꼽곤 한다. 이를테면 자유, 평등, 사랑, 권리, 차별 등 우리가 나열할 수 있는 많은 추상어가 있지만 구성원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는 열이면 열, 다 다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런 현상은 유튜브와 같은 영상 매체의 힘이 강해지면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예컨대 '사랑'이라는 단어만 놓고 보더라도 누구는 남녀 간의 짙은 애정행각이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헌신적인 행위를 '사랑'이라고 믿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이 믿는 종교의 기적적인 몇몇 사례를 '사랑'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게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공동체 내에서 일반어로 '사랑'을 언급했을 때, 구성원들이 이해하는 구체적인 의미는 서로 비슷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갖는 추상어의 개념이 이렇게 다양해진 이유는 독서 인구의 소멸과 함께 영상 매체로의 급격한 쏠림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의 영상만 보고, 나와 생각이 비슷한 언론사의 영상만 구독하는 상황에서 영상 매체를 통한 구성원의 단결과 통합을 기대한다는 건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br>"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듯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아들러 심리학은 콤플렉스를 극복하여 끝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인간의 힘, 특히 '협력'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믿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끝내 서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다는 뜨거운 믿음,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의 기나긴 터널을 함께 건너는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절실한 믿음이다. 변화가 느리고 전망은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부디 서로를 향한 간절한 희망을 포기하지 말기를."&nbsp; (p.171)<br>정여울 작가가 글을 쓰고 이승원 작가가 사진을 찍은 책 &lt;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gt;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팬데믹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지나온 기억을 떠올릴 테다. 작가가 살아오면서 마주한 따스하고 아름다웠던 환대의 순간,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고 아물게 하는 사람의 온기와 다정을 모은 에세이이기 때문다. 1부 '따스하고 복잡하며 구슬픈 당신에게', 2부 '가장 아픈 시간은 끝났다', 3부 '우리가 서로를 돌볼 수만 있다면', 4부 '사랑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의 소제목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작가가 생각하는 다양한 종류의 환대에 대한 직, 간접적인 경험들이 소개되고 있다. 영상 매체와는 다르게 책이란 그래서 유익하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만 독자로 선택하지 않고, 나의 생각과 조금씩 엇나가는 다양한 사례들이 가감 없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버릴지, 취사선택의 전권은 오롯이 독자에게 주어진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추상어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을 '정의'를 향해 수렴시킨다.<br>"우리는 자신의 가장 모난 부분까지 사랑하는 사람들, 타인의 남다름을 이해할 뿐 아니라 기어코 남다른 삶을 콕 집어 살아낼 용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 글을 사랑해주시는 바로 여러분 덕분에 알게 되었어요. 제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요. 제 글을 사랑해주는 독자가&nbsp;한 명이라도 있다면, 저는 계속 용기를 내어 쓸 수 있어요. 글쓰기는 작가만의 특권이 아니라 스스로 미숙한 아마추어라 믿는 사람의 열정적인 투쟁이니까요."&nbsp; (p.11 '프롤로그' 중에서)<br>2026년에 맞는 첫 주말, 나는 딱히 내세울 만한 일도 없이 그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나는 후회나 반성 같은 건 따로 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부터라도 나에게 조금 관대해지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나를 질책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나는 남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호되게 나를 질책해 왔고, 수없이 많은 반성 속에 살지 않았던가. 이제는 그런 불필요한 일에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지 않기로 하자. 그런 작은 습관 한두 가지 고친다고 지난 삶이 바뀔 것도 아닌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790/21/cover150/89546875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7902123</link></image></item><item><author>꼼쥐</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조금씩 기온이 오르는 듯 - [그해 봄의 불확실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0404134/16995400</link><pubDate>Fri, 02 Jan 2026 16: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0404134/169954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4929&TPaperId=169954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627/3/coveroff/893292492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4929&TPaperId=169954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해 봄의 불확실성</a><br/>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01월<br/></td></tr></table><br/>금세 익숙해지겠지만 새해는 언제나 낯설고 어색하다. 날짜를 말하거나 쓸 때에도 '2025'라는 이미 지나간 숫자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습관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어서 앞으로도 한동안 나는 '2026'이라는 숫자와 어색한 동거를 이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오고 가는 한 해가 그러하듯 계절의 변화 역시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도 잠시 금세 여름이 오고 그렇게 끝없이 더위에 헐떡이다 보면 가을인 듯싶다가 이내 겨울이 찾아오곤 한다. 너무나 긴 여름과 미처 계절을 감각할 새도 없이 흘러가버리는 여타의 계절들. 나는 이처럼 이상한 계절의 변화가 무척이나 낯설기만 하다. 이런 감각을 구체적으로 의식하게 된 것은 과연 언제부터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코로나라는 낯선 이름이 전 세계를 점령했던 2020년 초의 코로나 팬데믹 시기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으로부터 멀어지자 깨닫게 되는 사실들. 우리의 시야를 가장 흐리게 했던 것은 어쩌면 우리 곁에 늘 가까이 존재하는 인간 이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오후, 시퍼런 냉기가 뚝뚝 흐르는 한파를 뚫고 점심을 먹으러 다녀왔다. 그리고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lt;그해 봄의 불확실성&gt;을 마저 읽었다.<br>"나는 어렸을 때, 나중에 크면 어린이들을 위한 책을 쓰겠노라 생각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사랑 이야기를 쓰겠노라 생각했다. 멋지고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 하지만 나중에 이제 그런 이야기는 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고전 소설들의 핵심을 이루는 결혼 이야기 말이다. 연애에서 결혼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 이상 매력적인 줄거리가 아니었다. 이제는 마지막에 결혼에 골인한다고 해서 만사형통이 될 수는 없었다. 간음이 반드시 파멸로 이어지는 길은 아니었고, 간통이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었으며, 사랑에 빠지는 것이 자아를 해하는 열쇠도 아니었다. 문학은 그런 것들에 종지부를 찍었다."&nbsp; (p.174)<br>소설의 화자는 맨해튼에 사는 소설가이다. 동창인 릴리의 죽음으로 인해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 여러 명의 동창생들. 그리고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 화자는 동창 친구 바이올렛의 지인인 아이리스 부부의 부탁으로 반려 앵무새 '유레카'를 돌보게 된다.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떠났던 아이리스 부부는 팬데믹 봉쇄령으로 발이 묶이고 말았던 것이다. 더구나 앵무새를 돌보기로 했던 한 대학생은 아무런 통보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만삭의 아이리스는 캘리포아에서 떠날 수 없었고, 급하게 '유레카'를 떠맡게 된 화자. 모든 관계가 차단된 시기에 '유레카'를 돌보는 일은 화자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다.<br>"아무튼,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에 대해 유레카가 느낀 고마움이 아무리 커도 나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그 기이하고 불안했던 시기의 나에겐 유레카와 함께 있을 때 시간이 제일 빨리 지나갔다. 매일 아침 기대에 부풀어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기괴하리만큼 인적 없는 거리를 몇 블록 걸어가서 나의 보살핌을 기다리는 깃털 달린 친구를 만나는 이 단순한 허드렛일 덕이었다."&nbsp; (p.104~p.105)<br>화자는 뉴욕에 자원봉사를 온 한 의사가 거처를 구하지 못해 난처해하자 자신의 아파트를 내어주고 자신은 유레카가 있는 아파트로 거처를 옮긴다.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돌연 사라졌던 대학생 '베치'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아오면서 화자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화자는 '베치'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겼던 까닭에 그와의 마주침을 최대한 피한 채 생활하려 애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전거를 탄 괴한과 마주친 화자는 그의 조롱과 위협으로 인해 외출조차 어려워지고 만다. 모든 게 순조롭지 않다고 여겼던 그 순간부터 '베치'와의 관계에 조금씩 숨통이 트인다. '베치' 역시 자신이 만든 음식을 나누고, 화자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네 통이나 사오는 등 서툰 방식으로 가슴을 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도 한다.<br>"두렵긴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난 진짜로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간절히 원하는 건. 내가 실제로 가질 수 있는 것들 중에는요.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시간이 너무 많은 게 두려워요. 이렇게 모든 게, 모든 사람들이 엉망진창이지 않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nbsp; (p.273)<br>&lt;취약함(The Vulnerables)&gt;이라는 원제를 갖는 이 소설은 팬데믹이라는 불확실한 시기에 인간 존재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취약함을 스스로 인지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시각과 가치관을 획득하게 된다는 사실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인간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몸을 도사림으로써 타인과의 깊은 관계 설정에 실패하기도 하고, 타인의 약점을 빌미 삼아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관계 맺기에 실패하기도 한다. 다정함이란 결국 나와 너의 '취약함'을 서로 애틋하게 여기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견고함은 상대방의 강인함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서로의 '취약함'을 가엾게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방 안에 갇힌 앵무새를 함께 돌보면서 발견하게 된 모든 존재의 취약함. 어쩌면 우리는 그 낮은 곳으로부터 관계를 맺어야만 할지도 모른다.<br>2026년의 첫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나는 온몸을 꽁꽁 싸맨 채 출근을 했고, 가급적 외출을 삼간 채 하루를 보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적응력이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조금씩 기온이 오르는 듯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627/3/cover150/893292492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6270320</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