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강화길 작가님의 <음복>을 읽고 단순하게, 아니 무지하게도 제사라는 가족행사를 통해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적시하고, 그 제도 안에서 여전히 짖눌려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피상적으로 생각해 보았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오은교님의 동 작품에 대한 평론은 남성인 내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었고 화들짝 놀라는 수준을 넘어서 깊은 생각의 시간을 열어주었다.

가부장제하에서 제사라는 행위의 제사장은 부권이라는 명목으로 남성이 담당하고, 이러한 부권은 집안의 전통이나 사회적 관습이라는 미명하에 가족의 여성구성원을 착취하고 핍박할 수 있다는 시각은 단순히 명절이나 여타의 가족행사에서 여성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생과 희생을 감내하고 있다는 연민의 수준을 넘어서 본질적으로 고착화 되어있는 가정내 성의 위계질서와 역할관계에 대한 관점으로의 전환과 확장을 야기해 주었다.

특히, 가정내 권력자인 남성은 무지로서 부권과 폭력을 행사하며 권력을 누리는 반면, 가정의 또 하나의 구성원인 여성들은 가정의 평화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앎으로서 부권에 순종하고 핍박을 감내한다는 지적은 사고의 전환이나 확장을 넘어서는, 그 자체로 충격적인 인식의 도끼질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일반적인 타인의 아픔에 무지하고 공감하지 못했는데, 나는 타인중에서는 가장 가까운 타자라고 할 수있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공감의 무지라는 폭력을 행사하는것은 물론이고, 이를 통해 권력까지 누리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니 참 나쁜 놈이었구나 하는 반성도 해 보게 된다!

나는 권력자라서 몰라도 너무 너무 몰랐고, 내가 공감이라고 생각했던것도 권력자의 수준에서 느끼는 동정 정도에 불과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집안의 모든 여성 가족에게 미안해지기도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0-11-02 0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 제사 이야기 풀기 시작하면 제가 하루종일도 할수 있는뎁쇼. 안동권씨 8대장손집 며느리가 접니다. ㅎㅎ 막시무스님이 말하는 지점이 뭐인지 소설 안봐도 알겠습니다. ^^

막시무스 2020-11-02 08:19   좋아요 0 | URL
오! 8대 장손 며느리! 정말 대단하십니다!
 

11월로 더 가깝게 다가가는 산책길에서 아모르 파티에 맞춰 춤추는 분수의 물줄기와 내뿜는 불빛의 색 온도는 왠지 쓸쓸해 보인다!ㅎ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서니데이 2020-10-26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명이 있어서 밤의 분수 사진은 멋있습니다.
여름에 보면 시원한 느낌이 들었을 것 같아요.
막시무스님, 따뜻하고 좋은 하루 되세요.^^

막시무스 2020-10-26 20:29   좋아요 1 | URL
제가 가끔 산책하는 천변인데 날이 갈수록 가을가을하네요!ㅎ 편한 밤 되시구요!ㅎ
 
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이틀에 걸친 서울출장을 고속버스로 오가거나, 까페에서 대기하면서 짬짬이 읽었는데 짬짬이 읽는 그 순간에도, 이번 읽기와 다음 짬짬이 읽기 순간까지의 시간에도 나를 계속적으로 지배하는 느낌은 삶을 지난하게 견디어 내는 사람들의 무거운 쓸쓸함이었다!

황정은 작가님의 소설 이후 신형철 평론가님의 글까지 읽고 나니 쓸쓸함의 뒤편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고,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서로 약한 마음을 비벼가며 오늘 하루도 강하게 강하게 버텨내는구나 하는 경외감이 들었다!

절판된 책이라 도서관서 빌렸는데 훔치고 싶어진다!ㅎ

댓글(6) 먼댓글(0) 좋아요(6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n22598 2020-10-23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훔치고 싶을실 정도라니 ㅋㅋㅋㅋ 정말 좋으셨나봐요 ^^
황작가님 책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느낌이 왔어요...저도 많이 빠질 것 같아요 ㅋㅋ

막시무스 2020-10-23 08:2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ㅎ 제가 단편소설을 보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왠만하면 다 신선하게 느껴져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ㅎ 그리고 제가 읽은 두 작품의 내용이 살면서 제가 경험해 본 일이라 좀 더 다가왔던것 같습니다!ㅎ 즐거운 하루 되십시요!ㅎ

반유행열반인 2020-10-23 0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절판이라 중고로 어렵게(사실 난이도는 중) 구해서 아직 아끼고 있어요. 얼른 보고 싶네요. ㅎㅎㅎ

막시무스 2020-10-23 08:27   좋아요 1 | URL
소장하고 계시다니 부럽습니다! 단편소설이 안개에 쌓인 아침호수를 보듯이 뭔가 뚜렷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알수없는 묘한 감동이 있는거 같아요!ㅎ 그리고 반유행열반인님께서 작성해주신 연년세세의 리뷰와 인물관계도가 소설을 다시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ㅎ 즐건 금욜되십시요!ㅎ

bluebluesky 2020-10-24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정은님 소설 웬지 읽고나면 찝찝함이 남아 안읽게 됬는데 훔치고 싶으실정도라니 구할수있음 읽어보고 싶네요~~~

막시무스 2020-10-24 10:00   좋아요 0 | URL
제 표현이 너무 강했을 수도 있구요!ㅎ 근데 이 소설의 완성은 신형철님의 평론이지 않을까 해요!ㅎ 평론 읽고 되새김질 해보니 참 좋더라구요! ‘원미동사람들‘이라는 소설도 생각 나구요! 즐건 주말되십시요!ㅎ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윤성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한국단편 소설에 대한 관심의 불을 지른건 추석연휴를 즈음하여 읽었던 김금희 작가님의 <너무 한낮의 연애>부터 였다.

이어 내쳐 달린 <오직 한사람의 차지>까지 작가님의 단편은 다양한 이야기마다의 참신성 강했고, 문장이 전해주는 감동의 울림은 깊었다. 나는 한편의 단편, 단편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문제의식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에 불과하지만 나로 하여금 묘한 여운의 공감은 깊이 심어주었다. 무엇보다 뭔지 모를 치열함같은 것이 있어서 더욱 좋았던것 같다.


이번에 읽은 <2019년도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도서관에서 빌려온 것도 김금희 작가님 덕분이었다. 그리고, 작가님이 2020년 대상을 받은 수상작품집도 구매해 두었다.  


하지만, 수상집에는 김금희 작가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7분의 중견작가들이 눌러 쓴 한편, 한편은 기본적인 베이스로 지난하고 고달픈 삶을 견디어 내며 살아내는 작중 인물에게 또 한번 가해지는 삶의 도끼자국 같은 짙은 상처를 독자로 하여금 들여다 보게하고, 공감하게 하는 힘이 충만한 작품들이었다.


특히나, 수록된 작품의 작가나 주인공이 대체로 여성이기 때문에 시대적 숙명처럼 격을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더 상처 받을수 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무덤덤한 문장이나 단문의 표현임에도 예민하고 세심한 아픔이 배여 나오는 듯 한 작품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100% 이해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공감할수 있었거나, 부족한 공감은 이해로 채워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한편, 한편이 소중하지만 특히나 마음이 닿았던 작품은 <파묘>였다.


조상의 무덤을 파묘한다는 의미는 단순하게 매장에서 화장으로 매장방식을 변경하는 문제만은 아닐것이다. 매장방식의 변경행위로 파묘라는 결정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꽈리다발처럼 엮여있는 불가피한 사정들이 악의 꽃을 피워 낼때 이루어 지는 것이다. 파묘는 파묘를 당하는 주체가 아니라, 파묘를 행하는 주체에게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내고, 잘게 부숴버리고, 멀리 날려버리는 아픔일 수 있을 만큼 두글자에 응축된 비감은 크다.


주인공 이순일 할머니는 상속받은 선산을 더 이상 관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건강상의 이유로 휴전선 인근의 이 곳을 더 이상 찾을 수 없고, 선산을 상속할 수 밖에 없지만 상속받은 자식들이 선산을 더욱이 할머니의 조상이 뭍혀있는 묘지를 더 이상 관리할 수도 없고, 관리할 의지도 없는 세대이기 때문에 더더욱 마음이 아프다. 


이 단편에서는 할머니와 남편의 처지만 상대적으로 좀 더 설명될 뿐인데, 아마도 자식들의 주변상황이나 상처도 꽈리다발처럼 엮여 있어서 파묘라는 종국에 이르렀을 것인데, 자신의 세대에 파묘를 할 수밖에 없는 이순일 할머니의 착찹한 심경이 세밀하게 묘사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가슴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외가댁이 경제적 문제로 선산과 집을 팔아야 했고 파묘 전날과 당일에 할머니의 묘했었던 어린날의 그 느낌을 성인이 된 지금 작가의 작품을 접하고 그 시절 할머니의 한숨과 눈물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 되어주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작가님이 최근에 신작 <연년세세>에 <파묘>를 비롯해서 이와 관련된 단편들을 연작소설형태로 출간하였다는 소식을 알게되었다. 혹시나 이 가족의 꽈리다발같은 아픔이 펼쳐지지 않을까?, 이 이야기들은 우리 외할머니가 겪었고, 어린시절 내가 지켜보았던 우리 할머니와 우리 가족들을 지금 나는 어떻게 느끼고 이해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작가의 신작을 기다려 본다.


할머니! 하늘나라에서 잘 계시죠! 오늘 밤에는 하늘나라에서 퀵보드를 타시고 이 별에서 저 별로 신나게 한번 달려 보세요!


저는 밤하늘 보면서 술 마셔요! 항상 미안해요!


댓글(8) 먼댓글(0) 좋아요(6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0-10-11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년세세 읽는 중인데 예상하신대로 아픕니다. 꽈리다발은 어떤 모습인지 상상이 안 되지만 제가 아는 그 꽈리일까요. ㅎㅎㅎ

막시무스 2020-10-11 15:16   좋아요 2 | URL
문자로 연년세세가 배송된다는 연락을 받고 설레기 시작합니다. 반유행열반인님께서 생각하시는 꽈리다발이 어떨지는 모르지마,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한 꽈리다발은 드라이플라워 형태로 건조해져서 약간 바스락거릴듯 말라있지만 생기를 완전히 잃지 않은, 특히나 이쁜 다홍색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꽈리꽃들의 모임이었습니다.ㅎ
한송이의 꽃을 보면 속도 비어있고 쭈글쭈글하고 멋이 없는듯 하지만, 이런 것들이 모여서 꽃다발을 이루면 알수없는 아름다움을 발산하는것 같아요!ㅎ
남은 휴일의 시간 즐겁고 편하게 보내세요!

moonnight 2020-10-11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할머니께서 하늘나라에서 웃음짓고 계실 것 같아요. 떠올려 줘서 고맙다. 하시면서^^

막시무스 2020-10-11 15:17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러셨겠죠?ㅎ 어설픈 핑계를 대고 신나게 혼술로 밤을 지샜는지도 모르겠어요!ㅎ
시작되는 다음 한 주도 즐겁고 행복하시구요!ㅎ

바람돌이 2020-10-11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연년세세를 지금 읽으려고 줄세워놓았는데 이런 글이 있었군요. 막시무스님 글로 인해 기대감이 더 커집니다. 더불어 막시무스님 할머님도 지금 별과 별 사이를 신나게 질주하며 님께 술 작작 먹으라고 잔소리를 텔레파시로 보내고 계실듯합니다. ㅎㅎ

막시무스 2020-10-11 15:20   좋아요 0 | URL
저도 연년세세에 대한 기대가 설램설램합니다. <파묘>는 왠지 풀어낼 이야기들을 강하게 응축해 둔 서막이라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바람돌이님이 말씀하신 텔레파시는 술취한 상태에선 무사히 반사했는데 깨고나서 낮잠까지 자고 나니 더 강한 파장으로 내리 꽂히네요!ㅎ. 담주도 힘차고 즐거운 하루하루되십시요!ㅎ

stella.K 2020-10-22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서재 대문 바꾸셨네요.
그렇지 않아도 항상 좋아요 눌러주시는 분이 왜 안 보이시지 했습니다.ㅎ
영화 저도 봤는데...

막시무스 2020-10-22 23:13   좋아요 1 | URL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맥주잔에 눈물 쏟아본 감동적인 영화라 간직해 두고 싶었어요!ㅎ
즐건 시간되시구요!ㅎ
 
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이승우 작가님이 쓰신 단편은 나에게 익숙한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였다.

오! 정말 대단한게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 중 중요 한 장면을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보며,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를 전개하는 서술 방식이었다. 그것도 몇장면씩이나! 이런 방식도 소설인가? 평론같은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눈 앞에 나타난 사건의 단편을 마치 무슨 입방체를 돌려보듯 여러가지 각도에서 성찰하면서, 그 사유의 깊이가 블랙홀로 깊이 빨려들어가는 듯 한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던것 같아 기억에 오래 남았다!

<생의 이면>에 이어 작가님과의 두번째 만남인데, 다음 작품은 절대 누워서 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가만가만, 고요고요하게 아픈 감정을 독자에게 쌓게해서 결국 독자를 아픔과 슬픔의 눈덩어리로 덮어 버리는 한강작가님의 특유한 매력을 가진 단편 <작별>도 눈이 녹아 눈사람은 사라질지언정 나의 마음속에는 냉동실도 얼리지 못하는 따뜻한 눈사람을 얼려주는듯 하여 맥주를 마시는 목넘김을 울컥하게 해 주었다!

참! 김혜진 작가님의 <동네사람>은 편견에 대한 서늘한 시선에 대해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