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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골드
앤 마리 오코너 지음, 조한나.이수진 옮김 / 영림카디널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나를 알고 싶다면 내 그림을 봐라."
구스타프 클림트는 자신을 들어내기를 극도로 꺼려하여 그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초상화도 없을뿐더러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 또한 일체 하지 않았을만큼 말을 아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에 대한 많은 궁금증들을 가지고 있고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실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그림의 3번째 자리에 올라있고 1700억원이라는 물리적 가치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그림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Ⅰ〉 이 바로 이 소설의 基源이다.
영화 〈우먼 인 골드 〉의 원작인 이 책은 영화에서는 다 표현자히 못햇던 이야기들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화려하게 장식된 금빛물결이 다른곳으로 시선을 돌릴수 없게 그림에 몰입하게 만드는 강한 매력을 가진 표지에서부터 내 마음과 눈은 사로잡혀버렸다. 클림트는 주로 금, 여자, 죽음, 성과 사랑에 대해 그림을 그렸고 관능적인 여성 이미지가 강하며 찬란한 황금빛 색채가 특징이다. 화려함에 이끌려 그의 그림을 막연하게 좋았했었는데 이 책을 읽어가면서 알게된 사실들은 그의 작품들에 더욱더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 책의 분류는 "소설"로 되어 있지만 내용은 잘짜여진 역사서에 가깝다. 클림트에 대한 내용만 다루어져 있을것 같았던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클림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부터 자세하게 묘사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1898년, 비엔나의 호화롭고 화려했던 전성기를 배경으로 여신처럼 아름다운 아델레 바우어의 등장과 함께 클림트의 생애에 대해 소개되어 진다. 성장배경, 주변 인물, 주요 작품들, 미학사의 흐름까지 알 수 있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림에 얽힌 이야기 뿐만 아니라 19세~20세기의 미술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더욱 즐겁고 유익할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클림트에 관한 책을 읽고 시작해서 인지 이해도 빠르고 글로만 묘사된 그림이더라도 바로 기억에 떠올릴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거의 클림트의 전기를 온전히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보다 자세한 내용들도 많이 담고 있어서 그 어떤 미술책과 해설서보다 재미있으면서 쉽고 빠르게 이해가 갔다.
호루스의 눈(the Egyptian eyes of Horus)은 여성 성기를 나타내는 상징과 함께 주단 위를 수놓았다. 루트비히 헤페시는 이 그림이 관람객에게 '보석들 틈을 샅샅이 뒤져 관능적인 환희, 보석에 대한 욕망의 꿈', 그리고 '웅대한 색채의 황홀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고 생각했다. 극서은 '영험하고 순수한 축제였다. 이전의 장엄했던 실제적 예술 세계의 영혼들을 되살려 내는' 듯했다. (p.106)
영화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책에서 만큼 자세하게 다루지는 못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로 클림트와 아델레의 관계를 들 수 있는데, 육체적인 사랑보다 정신적인 사랑을 추구했던 클림트의 사랑방식이 이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많은 추측과 염문들이 나돌고 있지만 둘은 평생의 정신적 동반자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릴것이라 생각한다. 이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재미는 실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사랑, 죽음 그리고 나치 정권과 유대인 박해와 대학살, 그림을 둘러싼 정부와의 갈등과 투쟁등 하나의 주제만으로 수 많은 이야기들로 확장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또 자연스럽게 전개된다는 점이다. 이보다 더 다양하게 잘 짜여진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어느 한쪽에만 중점을 두면 흐름의 균형이 깨지기 쉬운데 어떠한 부분에서도 그 밸러스를 잘 맞추어 자연스러운 흐름이 이어진다.
히틀러가 자신이 이루지 못한 화가로써의 꿈을 힘으로 체우려는 욕망은 대단한 것이였다. 세계적인 미술품들을 강탈하여 작품으로써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없이 어둡고 캄캄한 지하에서 썩어가도록 만들었다. 오스카 코코슈카의 작품은 400점이나 강탈 당했었고 알트아우제에 있는 소금 광산에 숨겨져 있던 약탈된 유럽 예술품들이 약 6577점이 였다고 한다. 클림트의 작품은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그 당시에 얼마나 많은 역사적으로 의미있고 가치있는 예술품들이 한 사람의 욕망에 의해 상처나고 잿더미로 변했어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제국의 붕괴와 함께 시작된 화염의식에 레더러가 수집했던 클림트의 환상적인 작품 11점은 임멘도르프만 성과 함께 불타 없어졌다. 다시는 볼 수 없는 한줌의 재로 의미없이 사라지고 만것이다.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조차 남아있을 시간도 없이 영원히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11점의 그림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가장 역동적이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은 바로 나치가 게슈타포를 앞세워 유대인을 탄압하고 유대인들이 이를 피해 오스트리아를 탈출하여 망명하는 순간들이 였다. 우리나라의 6.25전쟁의 피난길의 모습이 이러했을까?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때의 모습이 이러했을까? 전쟁이라는 잔인함속에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야했고 상처받아왔다.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고 끔찍하게 변할 수 있는지 상상만으로는 도저히 간음할 수 없는 그저 추측에 맡길뿐이다. 전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고 여전히 전쟁중에 있는 나라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대한 시각을 넓혀가고 관심을 갖여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인간들의 탐욕에 의한 전쟁은 우리가 살아있는한 계속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는 역사속에서만 풍문으로만 들리는 이야기의 한 부분이 아닌 현존하고 보존되어지는 예술품들과 더불어 선인들의 意이 그대로 이어질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학살당한 오스트리아계 유대인은 6만5천명이고 생존자는 겨우 수백만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많은 부와재산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이 가진 전부를 순순히 내줘야 했으며, 아무이유없이 죽임을 당해야 했고, 짐승보다도 못한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끔직한 일들을 경험해야 했다.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동안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세계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우리나라의 올바른 역사이해와 더불어 세계사에대한 바른 인식도 필요함을 느꼈다.
마리아와 프리츠의 사랑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다. 사랑이란 어떠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다.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란 이런것 아닐까라는 생각에 젖어보기도 한다. 달콤한 신혼생활을 꿈꿨을 그들은 신혼여행으 다녀오자마자 프리츠는 다하우 수용소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게 된다. 이때 주고 받았던 편지들은 애절하고 눈물겹기만 하다. 서로 볼수도 없고 마음대로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희망을 잃지않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걱정해주고 사랑을 확인하는 모든 순간이 한 장의 편지위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펠릭스 란다우의 감시 속에서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치 영화 《타인의 삶 》의 비즐러가 되어 마리아와 프리츠의 삶을 엿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다하우 용소에서의 생활은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에서 소련 스탈린 시대를 배경으로 강제 노동수용소에 수감된 솔제니친의 투옥생활을 연상시키게 했다. 사람을 실험용 쥐처럼 생체실험을 감행하고 고문과 폭력의 잔혹성을 드러내는 일은 비단 나치뿐만이 아니라 한국 가까운 나라에서도 버젓이 자행되었던 일이기에 더 가슴이 아프고 슬픈 이야기였다.
또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이야기는 루이제가 살기위해 게슈타포들에게 강간을 당하던 장면이다.
매혹적인 금빛 아델레가 비엔나의 대중에게 칭송 받는 동안, 무자비한 군인들은 이 매력넘치는 비엔나의 딸의 조카를 욕보이고 있었다. 전쟁텨였고, 여자들은 전리품일 뿐이었다. (p.284)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이 자행했던 강제인력수탈 중의 하나가 바로 "정신대挺身隊"라고 불렀던 일본군 성노예를 지칭하는 말로 우리의 역사속에서도 그동안 드러내지도 못하고 누구 하나 관심갖지도 이야기들 들어주지도 않았던 그 이야기와 같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연을 알게되었고 자진해서 나서는 일반인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일본의 입장은 그 어떠한 사실도 인정하지 않은체 그저 안된 일이라고 남의 일인냥 치부해버리고 있다. 얼마전 뉴욕에서 위안부뮤지컬을 펼쳐 관객들의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위안부 소녀들의 처절한 울부짖음과 아픔,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뮤지컬 관계자들이야 말로 애국자이며 진정한 예술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의 기쁨만을 충족시키는 예술은 그저 인스턴트식 만족에 불과할 뿐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치당원들은 자신의 이전 기록을 불태우고, 생년월일을 바꾸고, 성마저도 바꿔버렸다. 한때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넘쳤던 다뉴브 강 위의 도시 비엔나에는 음모의 구름이 뒤덮고 있었다. (p.326)
그들은 그렇게 가면을 쓴체로 새로운 삶을 살아갔다. 피로 물들어버린 그들의 몸둥이에서는 악취가 풍겨오는듯 하다. 그렇게 생명을 부지하고 고위관직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어떠한 죄책감과 처벌 없이 그렇게 잘 살아갔다.
마리아를 감시했던 게슈타포 요원 펠릭스 란다우는 거의 처벌도 받지 않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수년 동안 살았으며 독일에서 종신형을 받았지만 10년후 자유의 몸이 되어 죽을때까지 잘 살았다고 한다.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죽어 흙으로 돌아갔거나 정상적인 삶을 행할 수 없는 불구자들 뿐이였다. 망자들의 억울함은 누가 달래줄것인가. 뜨겁게 흐르는 눈물만이 그들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였다.
전쟁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되었던 잔혹한 일들이 어쩔수 없었다는 이유로 당연시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있어야 어떠한 움직임도 가능하기에 앞으로 더욱 세심하고 따뜻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영화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이야기는 랜돌과 마이아가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Ⅰ〉 를 되찾기 위한 투쟁이지만 소설속의 이야기는 피로 물든 미술품들에 숨겨진 역사와 사람이야기이다.
그림들의 역사적 의미, 유산, 후대에 미칠 영향까지 꼼꼼하게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흐름'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고 전문용어나 감정없는 설명과 나열들이 없는 역사서로써의 역할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클림트의 그림만큼이나 화려하고 몰입도가 강해 한번 읽기 시작하며 책을 손에서 놓은 수가 없다.
마리아를 보면서 나는 간송 전형필을 떠올렸다. 그의 그런 예술품에 대한 사랑과 애정만큼은 아니더라도 꾸준한 관심을 갖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야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문화유산들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먼 이국땅에서 쓸쓸히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안타까운 일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우리의 것을 되찾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했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Ⅰ〉 소송건도 결국은 승소를 한 것처럼 희망을 잃지 않고다면 우리의 보물들도 다시 이 땅에 남아 후손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해 줄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