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 1726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류경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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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화 이야기가 알고 보니 잔혹한 그림 동화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반전을 그린 이야기가 여기 있다. 지금까지 걸리버 여행기를 단순히 주인공 걸리버가 여행을 하다 소인국에 들어가면서 펼쳐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 이면에는 겉으로 보여 지는 모습과는 다른 의미의 해석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글의 구성은 4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릴리펏(소인국)여행기2부 브롭딩낵(거인국)여행기는 어릴 적 동화책에서 봤던 내용과 흡사하여 익숙했다. 하지만 3부 라퓨타, 바니발비, 그럽덥드립, 럭낵, 일본여행기4부 휘넘국(마인국)여행기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이야기라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다. 걸리버 여행기의 진짜 이야기는 3, 4부에 있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을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고 읽고 해석해야 하는지는 독자의 몫이지만 동화적인 요소와 여행기라는 이야기의 흐름에만 집중하다 보면 진정으로 저자가 하고 싶었던 목소리는 듣지 못하게 된다. 이 책은 저자의 삶과 시대적 배경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 18세가 영국의 대표적인 풍자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59세의 나이로 집필한 걸리버 여행기는 그의 못다 이룬 정치적 야망과 영국의 식민지 침탈로 고통을 겪고 있던 아일랜드의 참혹했던 현실에 괴로워하며 이에 신랄하게 비판하는 풍자 작품이다. 다양한 인생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력이 아주 섬세하면서도 과감하게 표현되어지고 있다.


보수주의자, 전통주의자, 고전 학문 옹호자였던 스위프트의 기본 성향이 그대로 반영되어 당대의 대표적인 시대사상인 계몽주의에 대한 반감이 짙게 깔려있고 합리주의 철학과 실험 및 이론과학 중심의 자연과학 지상주의도 신랄하게 비판되고 있다. 라퓨타 여행기에서 기이한 외모의 라퓨타인들을 희화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저자가 경멸했던 현대 학문 숭배자들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 순수성을 가지고 있던 걸리버의 첫 번째 여행기를 지나 시간이 지날수록 변해가는 걸리버의 성격과 심리 묘사는 글을 읽는데 아주 유심히 관찰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앤 여왕과 조지 1세가 다스리던 18세기 초반 영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릴리펏 여행기는 추악한 정치 현실에 대한 풍자가 주를 이룬다.



나는 특히 현대 역사에 대하여 가장 혐오감을 많이 느꼈다.

지난 100여 년 간 가장 명망이 높았던 모든 왕실 사람들을 꼼꼼히 조사한 결과, 나는 이 세상이 비열한 역사 저술가 녀석들에 의해 얼마나 오도되어 왔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저술가 녀석들은 전쟁에서의 가장 위대한 공을 겁쟁이들에게 돌리고, 현명한 충고는 바보들에게, 정직함은 아첨꾼들에게, 로마인다운 덕성은 나라를 배반한 자들에게, 경건한 신앙심은 무신론자들에게, 정조는 남색주의자들에게, 진실은 밀고자들에게 그 공을 돌리고 있었다.

-p351-

   


 

즉 국왕의 자리란 부패 없이는 절대로 유지될 수 없는 자리이며,

도덕성이 인간에게 불어넣어 주는 적극성, 자신감, 고집 같은 기질은

공적인 업무를 영원히 방해하는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p353-

   


 

내가 오랫동안 살았었던 트리브니아라는 나라는

(그곳 백성들은 랑그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트니브니아(Tribnia)브리튼(Britain),

랑그덴(Langden)잉글랜드(England)'

철자 바꾸기 장난이다. -p336-


어떻게 이렇게 교묘하게 풍자를 잘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대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데 음악, 영화, 공연 등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이렇게 책으로 남겨진 정치적, 역사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글들은 사실상 현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거대한 검은 손에 의해 삭제되고 수정되고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외국이라고 다를 게 있겠는가. 저자가 말하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인간이란 이토록 간사하고 욕심 많고 동물보다도 더 비이성적인 존재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너희 나라 사람들은 자연이 이 세상을 기어 다니게 허락해 준

벌레들 중에서 가장 악독한 해충이다.”

-p233-


그러나 모든 인간이 그렇지만은 않는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심어둔 채 저자가 바라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너무나 다채롭고 풍부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걸리버 여행기는 일상에서 쓰지 않던 뇌 신경세포를 자극하여 활발히 움직이게 만들어 우리의 뇌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소름끼치도록 현실감 있게 다룬 글의 구성에 감탄을 자아낼 것이다.


500페이지가 넘지만 읽는 내내 지루함이 없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글의 구성이 아주 잘 되어 있고 새로운 나라의 여행기로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때문에 흥미롭고 재미가 더해져서 끝까지 읽을 때 까지 긴장감을 놓칠 수 없었다. 특히나 제 4부의 휘넘국 이야기는 가장 인상적이였고 재미있었다. 걸리버 여행기를 단순 동화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영화 식스센스 이후로 이렇게 큰 반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다.


TV프로그램 책 읽어드립니다에 소개되어 다시금 인기를 얻고 있는 걸리버 여행기.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과 무삭제 완역본에 초판본 일러스트까지 수록된 더 스토리의 걸리버 여행기는 날것 그대로의 야성미가 넘쳤다. 오리지널 표지 디자인도 멋있지만 표지를 벗겨 낸 책 표지 또한 원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참 좋았다. 초판 1쇄라 누구보다 먼저 만나 볼 수 있었다는 영광이 주어졌지만 오타가 많이 보여서 살짝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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