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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 B급 좌파 김규항이 말하는 진보와 영성
김규항.지승호 지음 / 알마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김규항은 내가 좋아하는 저자 중의 하나였는데, 최근에 트위터를 하면서 조금은 거리를 두게 되었다.
최근 진중권과 벌인 소모적인 논쟁이 그 대표적인 사례. 이 책에서도 그런 모습이 슬쩍슬쩍 엿보인다.
진보신당 홍보대사인 진중권 씨가 반이명박 싸움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는 건 진보신당에 유익할까요, 아니면 해가 될까요? 매우 안타깝지만 나는 후자라고 봅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당적이 어디인가와는 별개로 자유주의적인 의제를 가지고 벌이는 싸움의 성과는 전적으로 자유주의 진영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아무리 진중권 씨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많이 얻어도 그 인기가 자유주의 의제로 생긴 거라면, 말하자면 이명박 정권의 비판으로 생긴 거라면 그 성과는 결국 자유주의 진영으로 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런 대중적 호응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민주당 같은 자유주의 정당과 진보신당과의 구분은 사라져버리는 거죠.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 때문에 못 살겠다고 말해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반대 측면이 많죠. 이명박 정권 덕에 참 편해졌거든요. 너무나 쉽게 진보적이고 정의롭고 양심적일 수 있게 되었어요. 이명박 정권만 욕하면 되니까요. 말과 삶이 다르고 어지간히 타협적으로 살아도, 그래도 내가 저들보다는 낫다는 자기 정당성을 확실하게 안겨주니까 성찰할 일도 반성할 일도 없는 겁니다.
후자의 경우 분명 진지하게 생각할 점이 있다. 이명박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쉬운 도덕성을 안겨준 것은 아닌가 하는.
하지만 김규항의 말을 듣고 있다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좌파는 왜 이명박에 반대를 하면 안되는가? 이명박에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왜 모두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대체, 왜 좌파인가 아닌가에 그렇게 집착하는가?
그의 말을 듣고 있다보면, '아, 그래 역시 난 좌파가 못돼'라는 생각만 든다. 그게 그가 원하는 것인가?
역시 나는 자유주의자야, 라고 쿨하게 나오면 김규항 자신도 OK를 외칠 것인가? 그러면 뭐가 바뀐다는 말인가?
(자신도 한 때는 김대중의 '빠'였음을 웃으며 고백하면서도, 현재의 사람들에겐 '선을 넘지 마라'는 엄격함으로 일관한다.)
물론 이명박'만' 까면 최고라는 믿음은 잘못된 거라는데 나도 100% 동의한다.
또한 '반 이명박'이라는 의제 만으로 '연합' 운운하는 것도 절대 사절이다.
하지만 김규항의 일관된 어투는 반 이명박이면 자유주의자라는 말로 들린다(그가 의도했든 아니든).
좌파의 적은 자유주의자라고? 노골적인 조갑제나 극우 기독교는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고,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글쎄. 그의 '낙관론'에 고개가 끄덕여지기 보다는 갸웃하게 되는 건 왜일까?
일본 지진 관련 튀어나오는 저 자신감 넘치는 헛소리를 보라.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제발 그러길 빈다.
물론 이 책에서도 냉수 같이 머리를 차갑게 만들어 주는 반짝이는 구절들이 적지 않다.
사람이라는 게 인생이 너무 희망차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좀 비관적인 데가 있어야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많이 좌절하거나 그렇지 않게 되더라고. 비관적인 정서가 있으면 훨씬 낙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어요.
지승호 : "원수를 사랑하라"와 같은 말이 예수의 정치성을 거세시키는 레토릭으로 사용되지 않습니까?
김규항 : 분노를 덮는 용서로 많이 쓰이는 말이죠. 그런데 그 원수라는 말에 이미 분노가, 진실을 밝히는 행위가 들어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하지만 그 동안 김규항의 글들을 꽤 읽어온 사람이라면 이 책은 굳이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게다가 인터뷰어 지승호와 너무 가까운 바람에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 책이니까.
어쨌거나 아동출판에 뛰어들어 새로운 장을 개척하며 또 소기의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 존경을 표한다.
김규항, 당신에게 전적으로 동감하진 않지만 당신의 글과 행동이 종종 나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