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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ㅣ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평점 :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잘못을 최소화하고 피해자의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성폭력 가해자가 변명하는 말들은 위험하다. 모든 남성과 여성에 관련된 사회적 문제로서 공공장소 성폭력에 대해 말해야 한다. 성폭력의 모든 책임을 가해자에게 물어야 하며, 여성의 대응 전략에 힘을 실어주고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가려져 있던 공공장소 성폭력 문제를 꺼내서 말해야 한다. (165쪽)
2010년대 한국 사회의 키워드 중 하나가 '혐오'라면, 그 대상의 1순위가 바로 여성이 아닐까 싶다. 특히 올해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이어지면서 논란(?)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왜 이런 걸까? 올해 치안이 불안해졌기 때문에? 아니면 일부 남성들이 주장하듯 여권이 과도하게 신장된 결과, 역차별의 증거인 걸까? 비록 프랑스의 사례들이긴 하지만, 아니 무려 프랑스의 사례들이 수록된 이 책을 보면, 요즘 폭로되는 사건들이 사건이 아닌 '일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체적 접촉으로, 언어로, 수많은 성폭력이 매일 수없이 발생했으나 그것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책의 사례들은 그 종류와 수위 면에서 매우 다양한데, 심각한 수준의 성폭력 사례를 볼 때 느끼는 분노와 더불어 떠오르는 생각은 "그래, 저런 사례가 있을만 하지"이다. 해당 사례가 과장된 면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정도(?)의 성폭력이 여기 어딘가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인 여성이 아니라, 남성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그런데 원제와는 달리 이 책이 '프로젝트'라는 명칭을 달게 된 건, 책의 컨셉트 때문이다('악어'가 아니라 '악어 프로젝트'로 제목을 단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등장하는 남성을 모두 녹색의 포식자, 악어로 묘사한다. 보통 악어가 (인간에게) 호감을 주는 동물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책이 (주로 남성들에게) 주는 불편함이 의도된 것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행히 그 의도에 대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책 뒷부분에는 몇 가지의 글을 첨부하였다. 함께 읽으면 이해하기가 쉬울듯. 특히 다음 부분은 최근 여혐논란의 핵심을 짚어내는 것 같다. 왜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가해자에게 공감하는가? 왜 '나'를 공격한다고 느끼는가? 그 '느낌'을 배려하기 위해 심각한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입을 닫아야만 하는가?
대학 강의를 하면서 이런 주제로 토론을 하기 시작하면, 쏟아지는 여학생들의 제보에 처음에 남학생들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다 이야기가 조금만 더 길어지면 어김없이 남학생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우리를 다 가해자 취급하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수업 시간마다 하도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 나는 남학생들에게 왜 너의 친구보다 그 친구를 모욕한 낯선 사람엑 더 쉽게 동일시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잘못은 내가 아닌 다른 남자가 했는데도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도 남자니까, 나도 조금은 저런 행동을 하기도 하니까, 혹은 내 친구들이 저런 행동을 한 것을 알고 있으니까...... 여러가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진짜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왠지 불편하다는 말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모르겠으므로 아무말도 듣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남자들 모두가 당연히 괴롭힘을 즐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라는 말을 강조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일부 남자들에게만 해당된다는 말을 들으면 이런 불편함이 해소될까? 오히려 그런 말 때문에 변화를 위해 지금 당장 행동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까? (172쪽)
참고로 성폭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가이드북이 실려 있는데, 이 부분은 알라딘에서 무료로 다운이 가능하니 남녀 가리지 말고 한 번 받아서 읽어보시길.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5802297
성폭력은 대부분 여성이 피해자가 되지만 여성만이 피해자가 되는 사건도 아니며, 성폭력이 일어날 때에 침묵하는 자도 성폭력을 조장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조금씩이라도 바로 여기서 바꾸어야만 한다.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고 고통받은 자들이 참다참다 단발마를 외치는 지금, 그래도 변화가 없다면 우리 앞에는 절망뿐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