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이라해서 읽을까말까 주저했는데, 북스피어에 대한 의리(북시피어에서 간행된 책 거의 80%는 읽은 듯)와 믿음(재미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는 모토에)으로 읽게 됐는데, 간담이 서늘할 정도의 공포는 아니다.

6편의 실린 공포 단편 소설의 주인공이 묘사하는 상황 배경의 느낌이 서정적이었다.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느꼈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배경 설명이 공포적인 요소 혹은 이형적인 것들보다 더 감정적으로 와 닿았다. 문장이 이뻐서 공포소설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6편의 단편중 산장기담은 묘하게 의문을 불러일으키는데, 책을 읽는 분들을 위해 세세한 설명은 안 하겠지만, 택시 기사와 산장부인이 짜고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긴 했다.

이형의 존재같은 괴물이 나오는 이야기는 무섭지는 않다.깜깜한 곳에 가기 꺼려지는 건 잠시뿐, 하지만 심리적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공포 소설이 더 무섭다. 이 정도의 소프트한 공포라면 시원한 여름 독서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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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아무래도 시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어 시간에 관한 과학책이 신간으로 나오면 급관심이 생긴다.

운동의 상대성을 최초로 꿰뚫어 본 자연과학자는 갈릴레이였고 갈릴레이가 운동의 상대성을 제시함에도 뉴턴이 역학과 중력에서 운동의 상대성을 간과해 절대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17세기만 하더라도 시간 개념이 오늘 날처럼 정립되지 않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운동의 상대성을 들고 나올 1905년조차 세계는 시간이 동기화(시간의 세계화) 되지 않었다. 19세기말 미국은 기차 시간표도 지역마다 시간이 맞지 않아 정확한 시간에 출발하거나 도착하지 않었을 정도였으니 유럽 또한 비슷한 상황이었다.

갈릴레이의 운동의 상대성 —> 뉴턴의 절대 시간과 공간은 300년 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이르러서야 완벽하게 정립될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은 빛난다. 뉴턴조차 알아채지 못했던 시공간의 상대성을 그리고 그 누구도 알아채지도 못했던 상대성을 스위스 베른의 하급 공무원이며 싸구려 시가를 피며 사색에 잠겼던 젊은 아인슈타인이 완벽하게 알아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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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방송 변희재의 시사폭격을 꾸준히 시간 맞춰 잘 듣다가 변희재의 위안부 발언 이후, 실망해 그전만큼 잘 듣지 않는다.

변희재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본인은 팩트만을 기반으로 논문을 점검하고 팩트 체크가 우선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광복절 이후, 한 방송에서 위안부의 일본의 강제 징용이 허위 날조라고, 그 시대의 기록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는 취지로 자신의 방송 시폭에서 말했다.

그 순간, 당대의 기록물로서의 역사 증거(신문이나 역사를 기록하는 친일역사학자들의 저서)와 그 시대를 산 사람의 증언으로서의 역사 중 어느 것이 진실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중동은 예나 지금이나 친일신문이며 현실 정치의 왜곡이 심한 저널리즘 기레기들이다. 1940년대에 대한민국의 문맹률이 50프로 이상(전 국민의 반이 뭐야 90프로 넘게 글을 몰랐을 것이다)인 상황에서 조종동의 돈줄은 일본제국주의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작성함으로써 얻은 수익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위안부나 태평양 전쟁에 끌려간 젊은 청년의강제징용의 기사가 제대로 소개되고 기사화되었던가? 우리는 그 당시의 정치 기사를 바탕으로 그 시대의 역사를 진실을 알 수 있다고 정정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도 조중동의 정치 왜곡 기사를 바탕으로 50년 후에도 역사의 진실을 말하는 걸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십년 전인가, 친정 엄마와 위안부 관련 티비를 보는데, 그 때 친정 엄마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외할머니가 식민지 당시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숨었던 사실 그리고 집집마다 젊은 여성이 있는 경우 땅을 파고 짚이나 풀을 덮어 숨어 있을 때 일본 순사들이 꼬챙이를 가지고 일일히 집 주변 땅을 찔렀다고 말한 외할머니의 식민지 시대의 경험을 딸에게 전했고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나한테 말해 주었던 것이다.

그 때 역사학자들이 지금이라도 살아계신 시골 할머니들을 찾아가 저 증언들을 녹음해야 하는데,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할머니들의 일제 식민지 시대의 경험을 증언으로남겨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는 왜 경험의 역사 증언을 찾아 가지 않고 신문쪼가리나 친일 학자들의 입이나 저서들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해야 하지, 그 기록물들이 그 시대를 진실을 알려주는 기록물들일까?

나는 현재의 저널리즘 기자들의 행태를 보면 과거 식민지 시대의 정치 기사 한쪼가리도 믿지 못하겠다. 제국주의 시대에 저널리즘이 아니 저널리즘 100년의 역사를 통털어 진실을 기록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그런 기록물들을 바탕으로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이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들과, 어느 날 위안부할머니들의 뉴스를 보다가 무심코 꺼낸 제국주의 시대의 젊은 여성들을 끌고 가기 위해 가족들은 딸을 숨겼다고 말하는 나이 든 노모의 말의 역사에서 나는 차라리 기록물로서의 역사보다 증언의 역사에 진실의 무게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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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8-27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유하 이 분 퇴직하고 명예교수까지 되셨더군요. 증인들인 할머니들이 모두 죽기만 기다린다는 생각 들어요. 집님 말씀처럼 그럼 더 쉽게 증언은 사라지고 왜곡되면서 진실이 사라질까 두렵네요 ㅠㅠ

기억의집 2022-08-27 21:33   좋아요 1 | URL
앗 저도 방금 미니님 신화 리뷰 읽었어요.. 우리 나라 신화임에도 미니님 말씀대로 낯설긴 하죠!!
저는 저의 엄마가 전해 준 그 때의 느낌이나 분위기를 아직도 기억해요. 진짜 무심코 옛날 이야기 하듯이 하셨거든요. 전 그때 그런 말 처음 들어봤어요. 집에 숨길 데 있는 곳에 딸 숨기고 심지어 땅 파서 풀 덮으면 순사들이 와서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찔러 보았다는 말을요. 저런 박유하같은 애들의 역사가 찾아 다니면서 체취한 역사가 아닌 일본인들이 만든 역사를 우리가 왜 진실이라고 받아들여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 박유하 기사 찾아볼께요!!
 

이 그림책이 재출간 되었다는 것을 알었다. 재밌는 건 제목의 큰 변화, 2008년 당시에는 동네 주변의 도둑고양이가 길고양이란 단어로 교체되었다.

우리 나라는 빠른 민족답게 단어의 교체 변화도 빠르다. 예전에 대학에서 학생들의 써클 활동이 영어보다 우리 말을 쓰자라는 인식이 파급되면서 동아리라는 명칭으로 바뀌자, 일이년 안에 모든 대학의 써클방은 동아리방으로 교체되었듯이, 도둑고양이라는 단어는 길고양이라는 단어로 바뀌는데 얼마 걸리지 않었다.

아마도 도둑고양이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길고양이라는 단어로 바꾸자고 제안한 사람이 고경원 사진작가의 길고양이 통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 때만 해도 도둑이던 길고양이던 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했었고 게다가 도둑고양이라는 단어가 뿌리 깊이 박혀 있던 시절이라 길고양이라는 단어가 더 낯설었지만, 고경원 사진 작가의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한 역활은 지금 생각해 보면 잘한 일이다, 아니 큰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삐쩍 마르고 힘이 없어 보였던 도둑고양이들의 처우가 지금은 어딜 가나 길고양이들을 위한 밥이 놓여져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은 단어 교체도 순식간이지만 주변 동네 길고양이들에 대한 인식도 금방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그림책, 길고양이 연구는 동네 길고양이들에 대한 따스한 관찰 기록이다. 아마도 지금은 이 그림책 속 고양이들은고양이별로 떠나겠지만, 부디 길에 사는 고양이들이 학대 받지 않고 우리와 같이 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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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8-28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 전에 길고양이 관련 책들이 많이 보이던 시기가 있었어요. 요즘은 길고양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쓸 것 같은데, 도둑고양이보다는 길고양이라는 표현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잘읽었습니다. 기억의집님, 좋은 하루 되세요.^^

기억의집 2022-08-28 21:20   좋아요 1 | URL
말에 대한 인식이 지대해요. 도둑고양이라는 말보다 확실히 길고양이라는 어감이 더 와 닿죠. 아침에 댓글 썼는데.. 전 왜 몰랐죠!! ㅎㅎ

프레이야 2022-08-29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경원 저 분이 한국고양이의 날 정한 분 맞지요. 9월 9일이라지요. 길고양이 길냥이 훨씬 듣기 좋고 부르기 좋고요. 부르는 이름 따라 인식과 태도도 바꿀 수 있는 것 같아뇨. 다행이고요. 저 고양이 울집 고양님이랑 같은 종류네요. 코리안 숏헤어 턱시도 ㅎㅎ 코에 짜장반점까지 있지요. 착한 고양이랍니다.

기억의집 2022-08-29 19:47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고경원씨 지금 뭐하실까요? 찾아봐야겠어요. 올리신 사진에서 봤어요~ 반려동물은 위안이 되는 존재예요. 자는 모습만으로도 편안해지니깐요. 요즘은 길 가다가도 고양이 밥이 있어서 굶지는 않겠구나 싶어요. 꽤 오래 전에 길고양이가 기운 하나 없이 먹을 거 찾아 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뭐라도 줄 걸 하는 후회가 아직도 있어요!!

기억의집 2022-08-29 19:50   좋아요 1 | URL
지금 찾아보니 야옹이서가 출판 하시고 나이가 있으시네요. 저는 아주 젊은 분인줄 알었는데… 생각해보니 저 책이 출간 된지 꽤 오래전이라는 걸.. 저는 저 책을 구매했음에도 세월이 이렇게 흐른 걸 인지 못했어요!!!
 

친정엄마의 팔순에 이어 시어머님의 팔순. 가족끼리 모여 밥만 먹었다. 코로나 시대에 친지분들 초대하기도 그렇고.. 이제는 가족만 모여 맛있게 밥 먹고 즐겁게 웃으며 축하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어머님께서 연세가 있으셔서 우리가 청주 가서 생일 축하 해드리자고 한 걸로 아는데, 시누이가 서울에서 하자고 해서 아마도 서울에서 하기로 했나 보다. 며느리인 나는 결정권이 없어서(그리고 자식들이 결정하는 게 맞다고 본다), 남편에게 전달만 받았는데 시누이가 정한 곳이 63빌딩에 위치한 뷔페였다.

역시 뷔페라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의 향연이었다. 예은이가 더 좋아한 듯. 방을 대여해 우리 가족끼리 먹고 마실 수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팔순 상차림이 있어서 좋았다. 저 상차림보니 친정엄마는 아무 것도 없어서 엄마가 서운해 하지 않았을려나!

식사가 끝나고 어머님께서 남산을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다고 하셔서 남산 케이블카 타고 올라갔다. 간만에 타니 사람도 없고, 몇 년 전에는 대기줄이 엄청 길어 한시간도 넘게 기다렸다가 탔는데 지금은 표만 끊으면 몇 분 안 기다리고 탈 수 있었다. 8월의 푸르름이 좋다.

확실히 어머님께서 기력이 딸리는구나를 알 수 있었다. 어딜 가나 힘들어 하신다. 특히나 계단이 많아서 부쩍 더 힘들어 하신다. 왕복으로 케이블카를 이용했지만 케이블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계단을 피할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좋았을텐데.

나이가 들면서 어머님께 서운했던 감정이나 기억이 옅어진다. 젊었을 때는 속상하고 서운하고 홧병 날 것 같더니 나이가 들면서 서로 부딪히는 것을 피하는 방법을 터득해서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부터도 어머님이 싫어할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 나이듦에 대한 연민일까? 글쎄. 그것보다는 감정 충돌이 고부간에 갈등만 일으키고 멀어지기만 할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서로 불만이 있어도 어머님도 참고 나도 참고 그러면서 고부간의 관계가 유지 되는 것일 것이다.

어머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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