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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에 한림출판사에서 한달에 한번 그림책 읽기라는 북스타트 운동을 펼친 적이 있었다. 그 때 달맞이라는 이름으로 북스타트를~ 한달에 네권인가 두권인가를 받았는데, 몇 년 지나 잘 안 팔렸는지 한림출판사에서 북스타트 사업을 접었다. 일본 그림책을 접할 수 있었던 기회라 출판사에서 달맞이를 그만 둔다고 할 때 많이 서운했었다. 그 때 받아 보았던 <머핀 아줌마의 빵집>

 

 

이 그림책은 이쁜 그림은 아니지만, 단순한 선과 색이 따스함을 자아낸다. 어떻게 이렇게 쓱쓱 그어놓은 듯한 선과 대강 칠한듯한 색에서 따스함이 스밀 수 있는지.

 

 

 아델장장 마을에는 머핀 아줌마가 빵을 구워 만드는 빵집이 있다. 오른쪽의 화덕 그림, 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소품만으로도 친밀감이 느껴진다.

 

머핀 아줌마의 빵집은 인기 만점~

 

 

 

머핀 아줌마의 빵집에서 일하는 아노엘은 아줌마가 하룻밤이라도 편할 수 있도록 자신이 빵을 만들기 위해 지하 빵꿈터에 내려온다.

 

 

빵을 만드는 작업실의 정경. 난 이런 아기자기한 주방소품들을 구경하는 게 좋더라. 작가는 이 장면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신경썼을까. 여기엔 숟가락을, 여기엔 그릇을, 여기엔 컵을~ 주방 소품의 자리 배치를 위해 작가가 애썼을 생각하면 사랑스러운 장면.

 

 

 

 

 

 

 아줌마를 위해 빵을 만들어볼까! 이리 치고 저리 치고,

 

 

자, 이제 화덕에 넣어볼까나~

 

 

 화덕의 따스한 기운이 감돌자 아노엘은 더 이상 잠이 들었고,

 

 엄마야, 이를 어째~ 화덕에 굽던 빵이 밖으로 나오려고 하네.

 

 

 

 머핀 아줌마도 소리에 놀라 나와 보고,

 

 

 다락방으로 피신했지만,

 

 

 빵은 부풀러 올라 집을 가득 채우고(작가가 독자에게 선사해주는 작은 재미),

 

 

아델장장 마을은 온통 맛있는 빵냄새와 함께 냄새와 아침을 맞이하고,

 

마을 사람들은 맛있는 빵을 맛있게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

 

아이와 이 그림책을 읽을 때마다 빵생각은 간절하고, 무엇보다 아이와 나의 따스한 친밀감이 형성되는 그런 그림책이다. 나는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책이나 지적인 그림책을 좋아하지만, 아이와 함께 읽을 때는 무엇보다도 아이와 내가 그림책에서 친밀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림책을 좋아하는데, 일본그림책이 대체로 그런 느낌을 만들 수 있어 좋아한다. 아이와 함께 많이 읽었던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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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2012-05-25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림에서 달맞이를 다시 재개한다면 예전보다 더 잘팔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그림책 포스팅 넘 반가움!! 일본 그림책이라 더 반가움^^

기억의집 2012-05-25 20:21   좋아요 0 | URL
ㅋㅋ 한솔의 북스북스는 어떤가 모르겠어요. 한림이 그 때 마켓팅도 안 해서 인지도가 너무 낮았어요. 마켓팅 좀 부지런 떨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하지만 이제 우리집은 애들한테 읽어줄 수가 없어요^^ 계속 올릴거에요.

아영엄마 2012-05-26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림은 여타 어린이 도서 출판사에 비해 마케팅이나 리뷰어나 신간 평가단 운영 같은 것이 미약한 편인 것 같아요. 그림책 리뷰 & 포스트 계속 올리실 거라니 자주 들려야겠습니다. ^^

기억의집 2012-05-29 20:40   좋아요 0 | URL
덧글 너무 늦었죠. 아이들과 남편은 연휴였지만, 저는 덤불길이었어요. 삼시세끼 밥에 엄마네집에~ 힘들었어요.

네 이제 그림책 좀 올릴려고요. 한림이 그런 쪽엔 신경을 잘 안 쓰죠. 달맞이도 마켕팅만 잘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scott 2012-05-26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충 슥슥 그린것 같은데 주방도구들이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고 밀가루가 부풀고 있는것 같아요.
빵이 집안가득 부풀러올라서 다락방으로 피신 ㅎㅎ
빵 굽는 냄새 맡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기억의 집님 올려주신 그림책 보고 곧바로 빵 구웠네요.
체리+건포도 듬쁙 넣고 ^^

기억의집 2012-05-29 20:44   좋아요 0 | URL
제 말이요. 라인이 대충 그린 것 같은데도 율동적이에요. 전체화면을 사용하지 않고 부분, 집약적으로 그림을 그려서 집중할 수 있어요.

조리도구나 화덕의 배치 보면, 작가의 세심함이 느껴질 정도여요. 맞아요. 이 책보면 빵 냄새가 나는 것처럼 느껴져요. 사랑스런 그림책입니다.
허헉, 스캇님 제빵도 하세요? 부럽 부럽 부러럽~

2012-05-27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29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큰 아이가 어렸을 때 달(月)마다 받아보던 그림책이 한솔수북에서 나온 북스북스와 한림 출판사에서 나온 달맞이그림책이었다. 북스북스는 자본력이 든든해서인지 아직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고 한림 출판사의 달맞이 그림책은 꽤 오래전에 사업을 관두었는데, 그 때 달(月)로 나오던 그림책들이 요즘은 몇 달에 한권꼴로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있다.  

위의 그림책은 북스북스에서 나온 <할머니의 폭신이 장갑>이라는 그림책인데, 일본아마존에서 검색해 보면 절판된 것으로 나온다. 작가는 하야시 후미코, 그림은 나카무라 유키. 일본그림책은 우리 정서와 잘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정서상 친밀감이 느껴진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 보면, 어떤 면에서 이야기가 잘 만들어지고 일러스트가 뛰어난 것도 좋지만 읽어줄 때 그림책에서 발산하는 어떤 따스한 훈기같은 것을 아이들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어 자꾸만 다 큰 아이들에게(9세,12세) 그림책을 읽어준다. 그림책은 이제 졸업했어야하는데,,,,,, 우리집은 아직도 작은애가 그림책을 하루에 한 두권은 꼭 읽어달라고 가져온다.   

어제 이 책을 작은 애한테 읽어주면서 괜시리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던 그림책.  

























실과 패브릭으로 만들어 장면마다 단순하고 심심하기까지 하고 내용도 아이들 그림책의 일상적인 단골 주제인 나눔인데도, 아이와 함께 읽을 때의 그 느낌과 분위기는 난로 위에 주전자를 얹어 놓은 것처럼 훈훈하기 이를 데 없다. 일본 그림책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거창한 주제도 일러스트도 아닌데, 아이와 내가 그림책을 함께 공유하면서 따스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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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5-18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촉각이 아이들 발달에 정말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보기도 참 예쁘네요.

기억의집 2010-05-19 11:43   좋아요 0 | URL
패브릭으로 만든 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그림책을 만든거라 그림책이 촉각으로 느낄 수는 없지만 실제 그림 보면 너무 이뻐요. 아이하고 이런 그림책 읽다보면 절로 행복하긴 해요.^^ 우리딸은 진짜 저의 껌딱지같아요.

비연 2010-05-19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책이 넘 이뻐요. 조카 하나 더 생기면 사주고 싶네요^^

기억의집 2010-05-19 11:45   좋아요 0 | URL
비연님의 글에서 조카 이야기 읽었어요. 이쁘긴 하죠. 저는 큰 조카는 중2인데도 아직도 이뻐요.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이젠 할머니네 놀러오라고 해도 시큰둥해서 얼굴 보기 힘들어요. 한 일년에 3,4번 보나봐요^^) 그래도 첫정은 무시 못 하겠더라구요.언니가 걔 막 혼내면 승질 난다는.

saint236 2010-05-19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왔습니다. 위의 책 많이 부러운데요. 딸 진이에게 사주고 싶은 마음이 막 생기는데요.

기억의집 2010-05-20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방금 저도 세인트님의 오양반의 글 읽었읍니다. 저도 받는 거 없이 미워요. 그 양반. 생긴 것은 번지르르해서 저 번드르한 뒷면에는 뭘 숨기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일본그림책이 아이들을 혹 하게 만드는 재주가 비상하죠. 저의 딸만 아니라 저도 저런 따스한 책 읽어주면서 혹 합니다. 세인트님 아이에게 책 많이 읽어주는 아빠였으면 좋겠네요.^^

꽃핑키 2010-05-24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요즘아이들은 정말 좋겠어요!!! 요즘은 이런 책도 나오는군요 *ㅅ*
모니터 속으로 손 쑥~! 넣어서 만져보고싶어요!!!

기억의집 2010-05-24 18:16   좋아요 0 | URL
제가 사진을 잘 못 찍은 거에요. 핑키님처럼 잘 찍으면 좋았을걸. 전 그게 잘 안되더라구요. 구도도 그렇고...실제로 보면 더 이쁜 그림책인데. 제가 이렇게 디카로 올리면서 다 망쳐놓은 거 같아요.

scott 2010-05-26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책을 아이들에게 읽어 주는 기억의 집님 그정성과 마음에 늘감동 받아요. 울엄마는 읽어줄 시간이 없다며 테이프를 틀어 주셨는데...어린마음에 엄마품에 안겨서 읽어 달라고 무척 조르고 싶어서 책을들고 엄마 뒷모습만 하염없이 쳐다보았어요.

기억의집 2010-05-26 13:31   좋아요 0 | URL
스컷님, 저도 어떨 때는 귀찮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요 기간이 지나면 아이가 홀쩍 자라 제 손을 차지 않을 것 같아 하루에 한권이라도 꾸준히 의무감으로 읽어주는 거에요. 크면 더 이상 엄마 안 찾는다고 하더라구요.
스컷님, 그래도 엄마가 젤 의지되지요? 그래도 스컷님은 외국어도 잘하고 부러워요^^

2012-02-22 1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3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가 크면서 커다란 변화는 그림책을 덜 산다는 것이다. 설마 하겠지만,  진짜 아주 조금씩만 사 들인다. 언제부터인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작가 혹은 주제별로 관심가는 그림책만 구입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꾸준히 관심가는 작가로는 윌리엄 스타이그, 크리스 알스버그와 알스버그를 통해, 그림책 역사에서  커다란 전환점 상에 모리스 센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센닥의 작품들은 닥치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수집하고 있고(아.마.도 나만큼 센닥의 작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언젠가 센닥이야기도 해야지), 주제별로는 신데렐라, 알파벳북, 고양이 그리고 크리스마스 전날 밤 정도이다. 이 외의 주제중에 <춤추는 열두명의 공주>,<호두까끼 인형>이나 <눈의 여왕>도 수집하다가 잠시 주춤거리고 있다. 일단 이런 주제들은 국내 인터넷 서점에서 구하기 힘들고, 이베이나 알리브리스에 들어가 검색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돈부자가 아니라서....(아, 올해 서평도서단 신청하면서 행복했던 게 생애 처음으로 공짜책 실컷 받아보았다는. 한해에 공짜책 20권 넘게 받는다는 게 그리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  

지금 소개하는 그림 형제가 수집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춤추는 열두명의 공주>는 수집한 책이 네권 밖에 되지 않아, 내세울 것은 없지만 어떤 한 주제를 가지고 책을 수집하면 일러스트 작가가 선호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그리고 글에서 뽑아 낸 이미지를 어떤 식으로 형상화 했는지를 알 수 있고, 일러스트 작가가 글 전체에서 통합해낸 이미지를 화면 분할을 통해 중점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일러스트 작가마다 비교해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우리의 일러스트 작가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주제별로 그림을 모으다보면 책 전체에서 감지할 수 있는 이미지를 단 한장의 그림으로 이미지화 할 수 있는데, 솔직히 그런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책일러스트 작가들중에서 시공사나 비룡소의 그림책 전권을 다 구비해놨는지, 그림책 작가들을 몇명이나 알고 있는지 반문하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싼티 나는 라인과 제대로 그려 놓지도 못하는 눈동자(제발, 스타이그의 한 두 작품이라도 습자지 대고 그려봤으면 좋겠다. 그의 작품이 보기에 우스워 보이지,  라인만으로도 그는 꽉 차고 풍부한 화면이 나온다, 그게 그리 쉬운 줄 아남) 허접한 배경 등등. 리뷰어들의 불만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아 놔~    

<춤추는 열 두명의 공주> 이야기를 다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책이미지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Kay Nielsen/신서관 동화집/카이 닐센 춤추는 열두 공주  

개인적으로 아들애한테 우스개 소리(사실 진심이 담긴)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민준아, 일어 배워서 엄마 이 책들 해석 좀 해줘! 너 일어 잘하면 세계문학 다 읽을 수 있다,라고 말이다. 흔히 출판대국이라는 미국에서조차 절판된 책을 일본 아마존에서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 만큼 일본인들의 책욕심이라고 해야하나. 없는 책이 없다. 어떤 쟝르를 가리지 않고 방대한 양의 책을 소유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헌책방을 돌아다니는 재미가 이 나라처럼 솔솔한 나라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세기 가까운 시대에 살아 활동했던 카이 닐센같은 이런 책들은 우리나라에 나올 일도 없고 사실 관심 가져주는 출판인도 편집인도 없을 것이다. 카이 닐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  http://www.wendybook.co.kr/list.php?ac_id=114&ai_id=7476 로. 20세기 초의 카이 닐센의 일러스트한 세 편의 작품을 이 동화책에서 볼 수 있다. 이 작품집의 <춤추는 열두명의 공주> 삽화는 그렇게 많지 않다. 지금 보여준 일러스트만이 수록되어 있다. 비싼 돈 주고 카이 닐센의 작품을 한 장면 더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아르누보풍의 일러스트와 현재의 감각에도 뒤지지 않은 색감과 세련되면서 가는 라인 처리 그리고 우아한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수 밖에. 

 



   

이 장면, 12명의 공주가 자신들의 방에 있는 비밀통로를 통해 빠져나가 지하세계의 궁전으로 가는 실버, 골드, 다이아몬드 숲을 통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4명의 작가들 모두 이 장면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눈여겨 보시길. 







The Twelve Dancing Princesses (Picture Puffins)  작가 : Eroll le cain  

아마존에서 작품이미지를 가져왔지만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것은 일본판. 에롤 르 케인에 대한 작가 소개가 일어로 써 있어서 어떤 작가인지 상세하게는 모르지만, 41년생으로 작가연본에 나온 것으로 봐서는 60,70년대 그림책이 아닐까 싶다. 생존해 있는지조차 잘 모르며 이름만으로 추측해보건데,  프랑스 국적의 작가가 아닐까나(일어 잘 아시는 분, 나중에 저 해석 좀 해주세요). 작가는 일본에서는 인지도가 높은지 이 작품 말고도 꽤 많이 다른 작품들이 출간되어 나오는데, 주로 전래동화나 흔히 명작 동화 혹은 안데르센 작품에 그림을 그렸다. 개인적으로 이 사람의 신데렐라도 함께 가지고 있는데, 이 <춤추는 열두명의 공주>는 미국이나 일본에서조차 절판인 상태(미국 아마존에서 헌책으로 구할 수 있긴함). 일러스트 작가 자신이 독특하고 이쁜 그림체이지만 작가 네임이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거 같다. 일러스트가 아무리 독특하다해도 자기만의 독창적인 이야기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하 대칭으로 사실적인 그림을 기하학적인 느낌이 나도록 그리는 것이 작가의 특색중 하나



 



 

 

에롤 르 케인은 다른 작가들과 달리 세개의 숲길 중 실버 숲과 골드 숲의 이미지를 형성화 했다.  이 사람의 그림은 화려함과 동시에 장식적이긴 하지만 장면처리는 롱과 미디움 숏으로 잡았으며 등장인물들의 감정표현은 직접적이지 않다.   



The Twelve Dancing Princesses (Mulberry books) 

일본태생의 작가지만 미국내에서도 이런 명작 동화 작가로 잘 알려진 크레프트(저 그림 눌러주세요. 아마존으로 직행합니다). 더 할 나위 없이 인물적인 그림책 작가이다. 위의 르 케인이 주로 배경과 행위가 주라면 크레프트는 롱과 클로즈업(인물샷)에 중점을 둔다. 등장 인물들의 감정이 표현되어 있고 특히나 남주인공 피터의 놀래는 표정은 압권인데, 공주 그림책에서 그림형제의 원전을 재해석한 Marianna Mayer의 이야기 변형, 일반적인 남자주인공이 신데렐라처럼 신분상승의 이야기도 놀랍다. 그림책의 첫씬은 여느 그림책과 달리 밑의 그림에서 보듯이, 남자 주인공이 장식한다. 고전의 현대적 해석은 우리가 놓친 부분을 다시 해석함으로써 이야기의 재미를 더 한다는.  


  

전래동화다보니 이야기마다 주인공의 이름이 다 다른데, 이 책의 여주인공 이름은 엘리제, 여주인공의 화사한 초상화를 그린 것은 크레프트가 이 네권 중에서 유일

 

크레프트의 숲 통과 장면은 사진을 잘 못 찍어서.. 사실 골드 숲을 지나가는 장면인데, 금빛이 반짝이는 느낌이 날 정도. 

  

이 책의 독특함은 피터(역시 남자주인공 이름이 다름)을 첫씬에 과감하게 집어 넣더니 남자 주인공의 놀래는 얼굴의 클로즈업 화면도 그려 놓았다는 것.(찍었는 줄 알았더니 안 찍혀있어서 이미지를 못 올렸다)



The Twelve Dancing Princesses루스 샌더스의 <열 두명의 춤추는 공주> 

역시 위의 세 명의 일러스트와 마찬가지로 전래나 명작동화에 일러스트 매진하고 있는 작가인데, 전형적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이 드는 작가이다. 이 작가는 드레스를 정말이지 매력적으로 그리는 작가라고 할 수 있는데, 솔직히 그림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묘한 이질감도 드는 작가이기도 하다. 작년에 절판으로 떠서 알리브리스에서 비싼 돈 주고 구입했건만, 흑 지금 다시 발행하고 있다. 어쩐지 왜 이런 좋은 그림책이 절판일까 했다. 워낙 이 작가는 그림이 화려하고 장식적인, 이런 류의 그림에 전형적인 작가여서 이쁘다, 이외에는 할 말이 없다. 글에 다른 해석도 없고 원전에 너무나 충실하고 충실한 그림책 작가중의 한 명인데, 루스 샌더스를 보면 그림에 아무리 재능있는 작가라도 글을 휘어잡을 수 없다면 그림책 작가로서 명성은 드 넓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위의 작가들은 이 글을 수십번도 수백번도 더 읽고 되내이고 머리 속에 그렸을 것이다. 이야기의 극적인 부분에서 일러스트 작가들이 형상화한 이미지들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일러스트 작가들마다 한 작품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려내는 이미지들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들마다 자신의 선호에 따라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이미지들이 있고, 그 이미지들은 통합적으로 독자들에게 기억되어진다라고 생각한다. 글에서 이미지를 뽑아내 글과 대등한 관계로 형상화 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재능의 결과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일러스트 작가가 바로 모리스 센닥이다.

한때 나는 센닥을 아주 우습게 본 적이 있다. 그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을 아이들에게 선택해 읽어줄때만 해도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 다른 판타지 그림책들과 뭐가 다르다는 거야,라며. 하지만 지금 내가 그를 그림책계의 거장이라고 인정하게 된 것은 그의 작품을 수집하게 되면서 그가 무수히 많이 그려낸 일러스트 때문이다. 그는 유명 작가의 밑에서 많은 일러스트 작업을 군소리 없이 해 냈으며 그러한 작업의 결과로 탄생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가 전작의 결과가 없었다면, 다른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글의 이해가 없었다면 결코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은 편집자 중요성이 강조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의 무수한 노력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작품이란 말이다. 그는 글에서 적절한 이미지를 뽑아내는 방법을 오랜 기간 동안 터득했으며 자신의 그림체까지 획득하게 되었다.  

많은 일러스트 작가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이 바로 저 긴 길이 아닐까 싶다. 매번 같은 주제의 그림책을 다른 작가들이 그림책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바로 글을 장악한 그림에 투영된 작가들의 노력이다. 많은 글을 읽고 많은 그림을 보는 거 그리고 느끼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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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알스버그의 <압둘가사지의 정원>을 처음 본 순간, 그림의 장면마다 독자를 압도하는 정적과 흑백의 표현력, 그리고 그 속에나타난 감정의 응축 (예를 들어, 아이가 마법사 압둘 가사지의 정원에 들어서기 위해 막 문을 들어서는 장면에서 소년의 불안한 심리를 암시하는 듯한 긴 나무터널과 터널 끝에 보여주는 빛)은 그림책의 단순한 독자였던 나를 단숨에 그림책의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해 주었다.  

난 아직도 <압둘가사지의 정원>을 처음 본 순간에 느꼈던 충격과 소용돌이 치는 감정의 흥분을 잊지 못한다. 아마 그를 통해 예술적인 그림책이 무엇인지 혹은 그림책의 지적 유희가 무엇인지 처음 인지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미친듯이 여기저기 들쑤서 가면서 알스버그의 작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지금은 다른 분야의 책을 읽느냐고 혹은 아이들이 크면서 상대적으로 그림책 분야에 대한 관심이 덜하긴 하지만, 어떤 경우의 그림책 작가는 작품 활동을 영구히 접을 때까지 관심을 갖고 수집하는 작가들이 있다. 내 경우는 알스버그가 평생 관심 작가군에 속하는데, 그가 그림책을 예술적 경지에 끌어올렸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가 짧은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는 퍼즐과 같은 지적 유희의 결말 때문이다. 적어도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의 그림책 작가에 대한 수집은 일상적인 지루함 대신 짜릿한 흥분을 선사한다.  



올초에 문지에서 크리스 알스버그의 신작 <해리스버딕의 미스터리>가 출간되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림이 14장박에 수록되어 있다는 것은 몰랐다. 마노아님의 리뷰 보고 그제서야 문지판에는 14장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미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를 포트폴리오 편집판으로 가지고 있던 탓에,  문지에서 알스버그의 <해리스 버딕> 나왔다고 할 때 그런가보다하고 시큰둥했다.   

이 책은 책소개에서도 잘 나와 있듯이 알스버그가 서문에서 피터 웬더스(한때 어린이책 퍼블리셔었지만 1984년경에는 은퇴한) 네 집에 초대를 받아 갔다가 피터 웬더스의 집에서 해리스 버딕이 그린 14장의 드로잉들을 보고 웬더스와 함께 해리스 버딕의 드로잉을 알스버그가 다시 그려, 제목과 제목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곁들어 독자가 다층적인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도록 재출간한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되고 알스버그 앞으로 버딕의 이야기를 새롭게 쓴 수 백통의 글들이 날아 들어오던 어느 날, 알스버그 앞을 편지가 배달된다. 그리고 알스버그는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를 포트폴리오 편집판으로 새롭게 내 놓는다. 그가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를 포트폴리오 판으로 출간한 이유를 서문에 쓰는데.....

지난 12년 동안 나는 아이들과 어른이 쓴 해리스 버딕 이야기를 수 백통을 받았다. 이러한 성과는 미스터 버딕의 글과 그림이 얼마나 영감적인지 보여주고 있다. 학과 선생님들과 영감이 가득한 작가들은 미스터 버딕의 그림을 보면서 더 많은 상상력을 표출했다. 마지막으로 이 포트폴리오 판 편집을 낸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피터 웬더스와 나는 <해리 버딕의 미스터리>가 출간되면, 미스터 버딕의 정보를 발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떠한 실마리도 없이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며, 1994년 나는 북캘리포니아에서 사는 Mr. Daniel Hirsch라는 사람의 편지를 받았다. 그는 자신을 고서적 거래인이라고 소개하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1963년에 그는 메인주 Banor지역에서 개인이 수집한 책을 팔겠다는 오퍼를 받았다. 그가 거래 받은 책은 황폐한 빅토리아식 대저택에 있었다. 그 집의 노부인은 죽으며 자신의 대저택과 집안에 있는 것들을 동물해방단체에 기부를 했던 것이다.  

그는 그녀가 모은 책들의 라이브러리에 깊은 인상을 받아 전부를 구입했으면 Through the looking glass라는 캐릭터의 초상이 새겨 장식된 나무틀의 거울도 포함되어 있었다.   

2년전에 여전히 Mr. Hirsch의 소유인 이 거울을 자신의 서점 벽에 걸어두었다가 떨어져 깨졌다. 유리 조각들을 치우는 과정에서 그는 주목할 만한 것을 발견했는데, 거울과 거울 사이의 나무판대기 사이에서 숨겨졌던, 여기 포트폴리오 판에 수록된 "Young mgician"의 드로잉이었다. 

이 드로잉은 버딕의 다른 그림들과 크기면에서, 테그닉면에서 동일작이었다.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사인은 없었으며 하단에 타이틀과 설명이 있었다. 이 드로잉의 제목은 또 다른 이야기인 Missing In Venice"와 같았다. 나는 이 드로잉이 버딕의 작품임을 확신한다. 


  

포트폴리오 표지

 

문지에 실리지 않는 그림, 고서적상에 의해 발견된 그림을 알스벅가 포트폴리오판으로 내면서 다시 그렸다.

 
 

표현력이 기 막힐 정도로 멋지다. 알스버그가 빛을 묘사한 장면을 볼 때마다 느낄 수 있는 숨 막힐 듯한 정적과 고요함은 더 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저 소녀가 받는 자연광과 밑의 인공적인 조명의 빛 중 어느 것이 더 그의 묘사력이나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진이 아니고 실제로 보면 정말이지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그의 빛의 표현력은 놀랍다. 특히나 인공적인 조명의 빛의 표현은 이 작가를 따라갈 그림책 작가가 있을까? 저 빛에 빨려들어갈 듯 압도된 느낌이다. 

사실 이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없다. 거의 팔리지 않는 작가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의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수준의 작품도 아닌데다,  상당히 난해하고 정적인 이미지는 동적이며 귀엽고 앙증맞은 유아 수준의 다른 그림책들에 비해 아이들에게 딱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의 그림책이 고학년(심지어 고등학생들도) 수준에 맞지만, 그림책은 아이들 것이라는 속 좁은 편견이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그의 수준 높은 그림책을 접할 수 있는 아이들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일게다. 

알스버그만큼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가가 몇 이나 될까? 그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나 <압둘가사지의 정원>을  읽고 반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면 그 아이가 가질 수 있는 독서체험은 고속도로스타일의 독서 일 수 밖에 없다. 빠르고 급히 서두르는 읽기의 의무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그리고 호기심을 가지고 그의 작품을 읽어나가면, 그가 제시한 반전에 빙그레 웃지 않을 수 없고 반전의 결말에 대한 호기심으로 며칠을 고민할 것이다.   

그의 예술적 경지의 그림과 지적 유희에 한번 도전해 보시라. 당신이 성인일지라도.  

덧; 예전에 글 잘 쓰는 나귀님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에 대한 리뷰를 쓴 적이 있다. 그게 아마 2005년 5월경으로 기억되는데, 사실 그 때만 해도 나는 알라딘 서재가 있는 줄, 까막게 모르고 있었다. 그림책 카테고리에 들어와 관심가는 책의 리뷰 읽고 구입하던 시기였지만, 그 때 이 책의 리뷰를 어찌나 재밌게 읽었는지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한다. 분명 나귀라고 써 있고 그의 리뷰에는 처가댁에서 얻어 못지 못한 무화과에 대한 글이 장문으로 실려있었고, 그때 그 장문의 리뷰를 읽으면서 얼마나 키득거렸는지, 난 아직도 이 무화과의 리뷰중에서 나귀님의 리뷰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무화과하면 나귀님이 먼저 떠 오른다. 그것도 얻어 먹지 못한 무화과를. 나귀님의 리뷰에 따르면 하루키가 알스버그를 좋아해서 알스버그 일본판은 하루키가 다 번역했다는 일화가 있다는.  밑의 책은 하루키가 번역한 알스버그의 일본책들. 더 찾으려다가 귀찮아서.... 하루키가 르귄, 카버, 팀 오브라이언, 챈들러등등 번역한 게 창작품보다 더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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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톰슨에 대한 최초 관심은 서남희씨가 열린어린이에 연재한 것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 단행본으로 낸  <그림책과 작가이야기>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콜린 톰슨에 대해 짧지만 알찼던 그에 대한 설명과 그림은 그림책 매니아인 나에게 어떤 스파크같은 불꽃이 튀었다. 이 겹겹히 쌓인 그림과 비범한 내용의 그림책을 꼭 구해보리라. 어찌어찌하여 이베이까지 뒤져 그의 그림책을 몇 권 건졌고 , 처음으로 구했던 작품이 바로 위의 <Looking for atlantis>라는 작품이다. 처음 이 작품을 편지함에서 꺼낼 때의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결제를 다 하고 한 십일을 기다리다 받았는데, 그 십일간 책이 혹 도착하지 않을까 싶어 노심초사 했었다. 구하고 싶은 책을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찾다가 손에 넣었을 때의 그 감격이란.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바다에서 모험을 하며 일생을 보냈다.

 

소년이 10살이었을 때 할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임종을 맞이하고 소년에게 아트란티스를 찾아보라며 자신의 체스트(chest)를 유품으로 준다.  

 

소년은 할아버지의 유언에 할아버지의 체스트를 열어 할아버지가 남기고 간 유품을 뒤적인다. 그 안에는 금화, 굴비, 다이아몬드 같은 귀중품이 있었지만 색소폰 아래, 천달러 지폐 밑에 문이 하나 있는 것을 소년은 발견하지 못한다.

 


 

할아버지가 말한 아틀란티스를 찾기 위해 다락방을 뒤지는 소년, 이 장면은 이 그림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소년이 알 수 없는, 감지 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가 열려있는데. 

 여기저기 찾아보고... 







 

찾다가 못 찾고 실망해 계단아래 앉아 있는 소년의 모습.

 

낙담해 있는데 할아버지의 앵무새가 다치자 소년은 급히 지하실로 내려가 앵무새를 안고 있는다. 점차 더욱 더 어두워지고 소년은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순간, 소년은 뭔가를 깨닫는다. 

 

집아래 서 있던 그 곳에 태양이 떠 오르며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여기가 바로 아틀란티스군요.   


작품마다 비슷비슷한 다층적인 그림을 보여주는 콜린 톰슨의 이 그림책은 1993년 작이다.  여타 다른 그림책 작가들의 친밀함이나 친근감 같은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컬트적인 분위기의 이 그림책은 현재 아마존에서는 절판으로 올라와 있다. 현재의 그림 스타일은 <플러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스푸키하면서 유머스럽고 익살스러운 친근한 모습으로 많이 변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현재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그가 왜 중년 시절에 그린 진지하면서도 내면적인 그림책을 다시 내지 않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의 그림책이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림책은 아니다. 귀엽고 애교 많은 캐릭터도 익살스럽거나 개그스러운 내용은 없다. 하지만 어찌 세상을 귀엽고 이쁘고 익살스럽게만 볼 수 있을 수 있겠는가.

콜린 톰슨은 집에 집착하는 그림책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한다. 소년이 아틀란티스를 찾는장면마다 보여지는 것은 집안의 모습이다. 특히나 다락방에서 아틀란티스를 찾는 장면은 너무나 매혹적이다. 환상적이면서도 몽롱한. 그가 집을 집중적으로 그리는 이유는 뭘까? 그는 "집에는 끝없는 변화와 가능성이 열려 있고 ....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할수 있으니깐요(그림책과 작가이야기,p197)"라고 답한다.  

몇년전에 받아 보았을 때는 그저 멋진 그림에 감탄한 정도였는데, 요즘 다시 꺼내 읽으면서 다층적인 그림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다층적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만 둔 작가에게 소년은 어떤 존재일까?  자신의 어린 시절의 분신일까? 아니면 주변의 사내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내면적인 고통을 아틀란티스에 비유한 것일까?  

소년의 아틀란티스가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단지 이 그림책이 소년의 성장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긴 했다. 소년에서 어른으로 나아가는 과정,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 그가 성숙하고 완성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곳.  내가 누구인지 내가 설 곳이 어디인지 몰라 방황하고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그런 사춘기의 한 과정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어린아이가 볼만한 책에 가깝다기 보다는 청소년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들에게 알맞은 책이 아닐까 싶다. 개인의 정체성 확립은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고 지나야 하는 과정이다. 다른 세계로(성인) 편입되어야 하는 통로이기도 하고. 아틀란티스는 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정신적, 심리적 고통을 내면화한 비유적 세계가 아닐까 싶다.     

사내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푸념일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갈수록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품 안의 자식이라고 아이가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조금씩 조금씩 변해간다. 우리 성장할 때와 달라서 요즘 아이들은 확실히 빠르다. 부모의 말에 되받아치기는 말할 것도 없고 순간적으로 반항적인 눈빛을 쏘대기도 한다. 아, 처음 애가 반항적인 눈빛을 보여줄 땐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무시하고 넘어가야지 했던 사항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그래, 네가 감히 나를 그런 식으로 쳐다봐. 한바탕 해볼테면 해보자라는 오기까지 발동했다. 아이와 한바탕 큰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도 있었다. 우리 아이 나이 또래에 나나 남동생이나 엄마를 그런 식으로 몰아부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엄마를 그 어린 나이에도 연민의 눈으로 보았다. 월급도 제대로 갖다 주지 않은 아빠때문에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우리를 키운다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도 알고 있었기에. 반항은 커녕 절대적인 순종으로 그나마 맘 고생이 심한 엄마의 부침을 덜어주고 싶었다. 학교 다니면서 엄마에게 가장 미안했던 순간이 아침에 준비물 사야된다고 돈 달라고 해야할 때였으니 어린 나이에도 세상 물정 어느 정도는 알았던 셈. 하긴 뭐 우리 세대에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 일이 아니었는지.  물질적 풍요가  한 아이의 성장에 가능한 인자일지 모르지만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도 한 아이의 고통적인 성장이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준비와  더 넓은 세상을 껴안기 위한 통과의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세상의 모든 사춘기 청소년들이 자신만의 아틀란티스를 꼭 찾기를. 세상 사는 게 뭐 그리 호락호락한 게 있겠니. 세상살이는 다 네 몫어치다.  

덧: 요즘 같아서는 능구렁이 10마리 데리고 사는 게 더 낫다 싶다. 도대체 말도 잘 안하고 입만 뽀루퉁하게 나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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