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해내는 힘 - 세상의 상식을 거부한 2014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나카무라 슈지 이야기
나카무라 슈지 지음, 김윤경 옮김, 문수영 감수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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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이런 성공적인 사람들의 자전적 에세이는 성공한 사람답게 유쾌한 문장이 주를 이루는데, 이 책은 분에 못 이긴 저자의 독기와 오기가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된다. 어휴,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 뭘 그리 독기에 받쳐 이렇게까지 썼나 했더니, 이 자전에세이가 씌여진 해가 2001년이다. 14년전에 출간한 책을 2015년 그가 노벨상을 받고 나서 다시 재출간 된 것이다. 어쩐지 읽은데  90년대만 치우쳐진 낡은 이야기 같더라니... 과거와 현재의 교차적인 내용(예를 들어,90년대 본인이 연구할 때와 현재의 LED 연구가 어떠하다든가 하는)이 전혀 없어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쓰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드는 자기계발류의 자전 에세이였는데,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은 청색LED 개발한 나카무라 슈지가 수상했다. 지난 과거의 책속에  저자의 독기와 오기가  베인 이면에는, 청색 LED을 나카무라 슈지 단독으로 개발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놀랍게도 직장동료 그 누구 도움없이 혼.자.서 이 놀라운 제품을 개발해냈다. 제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저자 특유의 끈기와 집념이 별난 사람으로 비쳐지면서, 직장동료들의 멸시와 비웃음을 당한 것이다. 지방 소도시의 작은 기업인 니치아화학에서 동료들과의 교류없는 조직생활이 녹록치 않았을 것인데, 개발 도중 용접을 하다 터져도 그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정도로, 혼자였던 것 같았다. 나중엔 그게 차라리 편했다라고 쓴 것을 보면, 그가 이 제품을 개발하는 동안의 심적인 부담감과 두고 보자, 뭔가 해 낼 것이다라는 승부수의 감정이 교차한 것처럼 보인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많이 쓰고 있는 전구가 바로 LED전구이다.  LED전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빛의 삼원색 즉 빨강, 녹색, 청색의 LED가 있어야 모든 빛의 색깔을 만들 수 있는데, 적색이나 녹색LED는 스탠리전기나 휴랫팩커드에서 이미 만들어졌지만, 청색LED는 나카무라 슈지가 만들기전까지 개발이 불가능한 제품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전 세계 과학자나 기술자들이 연구를 해도 성과를 전혀 내지 못한 분야였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청색LED 개발에 그는 남들과 다른 아이디어와 재료(질화갈륨)를 가지고 접근했고, 무수한 실패속에서도 끈질긴 집념으로 마침내 청색LED를 개발한 것이다.그가 청색 LED를 개발함으로써, LED 산업은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하는데, LED 개발이 중요한 이유는 전력소비가 적다는 것이었다. 그의 개발로 니치아화학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슈지가 개발한 청색LED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게 되었다.

 

지방도시의 중소기업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음한 니치아 화학에서 나카무라 슈지에게 준 보상은 2만엔과 과장승진(사실 이것만 봐도 이 사람이 얼마나 회사에서 무시 당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이 회사에 근무한 게 20년, 대학 졸업하고 들어가 청색 LED 개발 하는데 십년 이상의 세월을 그 회사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승진 누락이 된 상태였고, 사무실에서도 다른 동료들이 그와 일하기 싫어해 혼자 근무했다고 한다. 철저히 혼자서 청색 LED 개발을 주도한 것이다)이었다. 본인도 이 자전 에세이에 이런한 대우에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라고 쓰는데, 결국 그는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현재 그는 여전히 실험 연구에 몰두해 있고, LED 개발로 레이저, 디스플레이(티비 브라운관을 몰아냈듯이 지금은 티비뿐만 아니라 휴대폰이나 노트북등에서 사용되는) 등등 여러 곳에 상용되고 있다. 전구는 말할 것도 없이,  전 세계 도시의 가로수등을 LED로 교체하고 있을 정도로 LED의 상용화는 엄청난 것이다. 현재 슈지와 니치아 화학의 특허권 전쟁은 2006년 니치아화학이 특허권을 포기한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LED개발 이후,니치아 화학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매출 또한 엄청난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일본의 기업구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미국이나 유럽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 아닌가. 개인이 개발한 제품을 회사가 뺏어 특허를 내 이익을 취하고 개인 이익면에는 제로).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아인슈타인의 빛에 관심을 가지게 된 후, 21세기에는 빛의 연구가 어디까지 왔는가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움직이는 물체에 대한 전기역학에 대하여란 논문 이후, 우리는 지금 빛의 속성을 이용하여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간다는 게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무수히 많은 이론과 실험 연구자들이 이루어낸 세상. 한낱 태양이 있어 따스하고 세상을  개발된 제품을 이용하고 편리하게 사는 나로서는, 이런 집념과 끈기의 공학자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카무라 슈지는 회사내에서 투명인간 취급당한 사람이라 그의 제품 개발 성공으로 인생의 반전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시원했다고 해야 하나 다행이라 해야하나, 조직생활의 설욕을 개발 성공으로 복수한 것 같아 통쾌하기도 했다.

 

덧: 이 책을 독기와 오기가 서려 있다고 했지만, 저자만의 확고한 신념을 독자인 나는 독기와 오기로 읽었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이 책속에 청색LED개발 과정의 언급이 이 사람이 참 외롭웠겠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직장동료들의 냉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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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7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7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15-10-19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연구 토양 한국에서는 불가능ㅜ

이런 집념이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강점인것 같아요.
목표를 세웠으면 쭈욱 목표를 향해 달리는
하루키 신간 에세이 읽다보면 이런 성향이 확 드러나요.
주변의 시선에 기대거나 쫒지 않고 오타쿠스럽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기억의 집님 이런 리뷰 넘좋아서 여러번 읽고가요.~*

기억의집 2015-10-21 23:29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제가 요즘 프렌즈팝 게임에 빠져서 알라딘을 또 안 들어오다보니, 스컷님 댓글도 늦게 다네요.

저도 이거 읽으면서 눈앞에 보이는 성과주의와 결과만 보는 우리 기업에선 불가능한 일이구나 싶었어요. 더군다나 새누리당의 노동개혁이 통과되면, 더 적은 임금, 더 쉬운 해고, 더 많은 비정규직 세상이 오는데, 이런 오타구적 인물은 힘들지 싶어요. 정확하게 지적해주셨어요. 오타쿠스럽게 자신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조직사회에서 살아나는 게 불가능할 거에요. 저는 과학이나 수학관련책들 읽으면 일본인들 꼭 끼여서 짜증나요!!!! 얘네들이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었어? 이런 생각이 드네요!!

수퍼남매맘 2015-10-23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는 생소한 내용이었지만
저자의 집념과 끈기가 리뷰만으로도 잘 전달되네요.
직장에서 투명 인간 취급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놀라운 성과를 이룩해내다니
멘탈이 정말 강한 사람이네요.

기억의집 2015-10-26 21:52   좋아요 0 | URL
성격이 단호하고 불독같은 면이 있어요. 물고 늘어지는 오기라고 할까. 오타구적 기질이 강해 한우물만 파는 사람이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더라구요. 본인의 심정을 묘사는 안 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따 당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읽으면서도 모든 걸 혼자 감내해야하는 것 같아 안스러웠어요. 그나마 보란듯이 성공해서 다행인 과학기술자였어요!

군자란 2015-11-11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어와 보니 리뷰가 반갑네요. 이런 리뷰에 나도 모르게 웃음짓는 것은 나도 외골수라 그런갑네요^^ 밑에 있는 리뷰도 잘 읽었습니다. 마션을 아주 즐겁게 봤거든요.^^

기억의집 2015-11-16 10:48   좋아요 0 | URL
군자란님, 진짜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는지요???? 저도 오랜만에 컴에 들어와 서재에 노닐고 있습니다. 외골수 되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지요. 군자라님도 외골수에 가깝나요?! 이 책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외골수가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왠간한 뚝심 아니면 힘들지 않을까 싶었어요. 월요일인데, 이제 주의 시작입니다~
 

읽은지 제법 된 소설인데,  <오베라는남자>의 결말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나의 소설적 취향은 사건을 추적하는 미스터리쪽 성향이 강해서, 사건보다 에피소드성 이야기가 주를 이룬 이 소설이 최고다라고 말할 수 없지만, 작가의 문장만은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잘 써진 따스한 소설이었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익숙한 에피소드성 이야기들은 예전에 발행된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수록된 이야기들과 비슷해 보였다. 까칠하지만 세상을 따스하게 포옹하려던 한 남자의 이야기. 지루할 틈 없이 없이 페이지는 넘어갔디만, 이 소설의 마지막은 좀 애매모호했다. 작가가 오베를 어떻게 처리한 것인지, 자연사인지 자살인지, 오베 할아범의 결말이 이해가 안 간다. 70도 안 되서 죽은 거 아닌가, 아무리 읽어봐도 그런 것 같은데, 요즘 같은 백세 시대에 육십대에 사망처리는 좀..아니지 않나하는, 결말이 씁쓸한 뒷맛이었다고 할까, 여튼 개운치않았다.

 

작가는 왜 그를 죽음으로 결말을 냈을까?  까칠하고 까탈스런 오베의 2부를 보여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블로그에 연재된 소설이라 그다지 작가적 의무같은 것 없었을텐데, 오베의 이른 죽음과 함께 떠오른 생각이,

 

요즘은 어딜 가나 백세 시대라는 말을 실감한다. 근처 동네를 돌아다녀봐도, 시내를 나가봐도, 지하철에서도 어디든 노인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동네 놀이터에 어린아이들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릴 정도로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은 보기 힘들다(우리 집 뒤가 놀이터라 처음 이사왔을 때 걱정했는데, 한두시간 정도 빼고는 하루종일 조용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우리 시대가, 우리 사회가 무섭다. 솔직히 늘어나는 노인 인구 시대가 무서운 것이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젊은 인구가 늘어나야 하는데, 젊은 인구는 어느 순간 절벽을 치닫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심지어 내가 사는 서울 변두리 초등학교 한 곳은 폐교한다는 말이 작년부터 들린다. 입학하는 아이들의 수가 적어지고 있어서다(인근 초등학교로 분산배치해도 될만큼). 그 근처 초등학교 다녔던 우리 둘째가 초등학교의 인원수만 해도 학급수 6개에 한반에 22명 많아야 24명정도였다.  올 6학년들은 더 심해서 학급수 4개에 22,23명정도 한다고 한다. 분산배치해도 교실이 심하게 남아 돌 정도다. 서울 변두리, 인구 천만이 산다는 서울에서, 사람들이 몰려 산다는 동네가 이 정도면, 대부분의 서울 변두리 동네에서도 이런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시골에 애들이 없어 폐교한다는 게 일이십년 전 이야기 같았는데, 지금 우리 대한국민 천만의 서울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니.

 

아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노인인구만 늘어나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할까? 노인들을 위한 나라! 나도 늙어가는 처지라 뭐라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왜 이렇게 되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세상이 점점 살기 좋아야 되는데, 살기 힘들어서다.

 

나도 자식 키우는 입장이지만, 요즘 같은 사회 분위기라면, 우리 애들에게 자식 낳고 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최저시급은 끽해야 6천원 정도지, 정부는 법적 은퇴연령 60세라고 하더니만,  노동개혁 한답시고 정규직 없애고 고용자 해고 쉽게 하자고 몰아부치는데, 이런 사회에 누가 애를 낳아 키우라고 할까. 메르스로 인해 삼성병원 의사도 대부분이 계약직 의사와 간호사들이라고 밝혀진 현 시점에서. 배울만큼 배우고 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조차 계약직인 마당에.

 

내가 올해 뭔 바람이 들어 알바해보니, 알바한 돈으론 생활이 도저히 안된다. 그냥 용돈 정도. 어린이집 보조 교사 알바도 한달 사십이 안 되고, 포장 알바도 가장 바쁠 때 사람 쓰는 거라 50,60정도. 그나마 남편이 정규직이니, 단순 알바로 틈틈히 나가 일할 수 있기나 하지. 만약에 생활이 너무 힘들어 하루종일 일하는 사람의 경우도 아줌마인 나같은 경우는 끽해야 백오십, 젊은 아이들같은 경우는 이백! 지금도 이렇게 불안정하고 힘든데, 노동개혁한답시고 법제화 되면, 우리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일까. 대부분의 국민들이 최소한의 월급으로 근근히 살아가야할텐데. 그렇다면 자영업 ? 자영업은 포화상태인지라, 서로 뜯어먹고 나눠먹는 상황이라 큰 돈을 만지기는 힘든 시대다. 지인이 편의점을 운영하는데, 부부가 많이 벌어야 삼백이라 한다. 한다리 건너 있는 게 편의점이다 보니, 수입이 예전같지 않다는 말을 한다(뉴스에선 그나마 편의점이 장사 잘 된다고 보도되는 마당에).

 

정부가 추진하려고 밀어부치는 노동개혁은 노동 개혁이 아니라 노동탄압이다. 나라 망하는 지름길이지 싶다. 이런 나라에서 무슨 애를 낳고 애를 키우라는건지. 경상도는 애들 밥그릇도 거둬들이며 복지는 빨갱이라고 떠들이 있는 이 나라에서. 그래서 무섭다는 거다. 점점 노인들만, 노인들을 위한 나라가 되는 대한민국이 될까봐서. 피리 부는 사나이가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애들이 사라지는 피리 소리가 들리는데도, 귀 막고 괜찮다는 정치인들.  노인인구가 천만이 넘는다는 일본의 모습이 다가올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무섭고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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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9-24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 찡하게 다가오네요!
애들 밥그릇 찾으러 나갔다가 학부형들 죄다 종북소리 듣고 정말 기가 차더이다.
노인들을 위한 나라!!
일부는 부모님들이 피땀 흘려 받는 돈인 듯해도 당신들은 복지로 받는 돈이라고 너무 감사해 하시며 무조건 1번만 찍는 나라!
아이들을 위한 복지보다 당신들 복지가 우선이어 안면몰수 1번만 찍는 나라!
아이들이 장차 짊어질
노인을 부양할 세금 무게를 어찌 감당할지~~참 안쓰럽습니다ㅜ

기억의집 2015-09-25 11:3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전 제가 자식 키우다보니, 지금 한국이 절망적이다란 생각이 들어요. 울 남편이 한국은 이제 끝이다란 말을 했을 때 그 말이 그렇게 싫어서 뭔 소리냐고 했는데, 나날이 한국에 사는 삶이 절망적이구나 싶어요....

예전에 시골에 폐교뉴스 나올 때만해도 그렇구나 했었는데, 인구 천만의 서울이, 그것도 인구밀집 지역인 변두리에서 폐교 소리가 나오니깐 맘이 참 무겁더라구요. 주변을 둘러봐도 애가 없어요. 애가.... 진짜 우리나라 노인만 복지를 떠들게 아니고 출산 장려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지원해줘야하는데, 참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네요.

나무님은 집에서 명절 보내시죠. 저는 저녁때 가려고요. 애들이 학원이 있어서... 명절 잘 보내세요. 이제 나이가 드니 명절증후군도 없어지네요. 하핫.

책읽는나무 2015-09-25 18:42   좋아요 0 | URL
명절증후군이 없어지시다니?? 달인이 되셨군요?^^
저는 아까 친구랑 제사장을 후닥닥 보고 추어탕 먹고 팥빙수 먹고 원기충전 했어요
이제 내일 열심히 시작해봐야겠죠?^^

집에서 하니 왔다,갔다 안하고 이런 여유 부릴 수있어 좋네요
기억님은 귀성길 차 안막히고 슝~~잘 다녀오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1911년 제1회 솔베이 학술회의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 원리에 관한 논문을 발간한 지 여섯달이 채 되지 않은 10월에 30명의 양자물리학자들이 브뤼셀이 모였다. 물리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회의로 역사에 남게 될 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 역사적인 날들 가운데 몇 분이 필름에 담겼다. 낸시 그린스펀은 보른의 사진사로서 그 떨리는 흑백 영상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여기 장식된 창살이 달린 문에서 막스 보른이 나오고 있다. 닐스 보어는 말쑥한 에어빈 슈뢰딩거와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활기차고 자신 있게 웃고 있다. 파울 에렌페스트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름도 모르는 사진 기자에세 감사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리고 어린 티가 나는 루이 드 브로이는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이것이 바로 1927년 브뤼셀에서 열린 솔베이 회의다. 처음 며칠동안은 결정론자나 비결정론자들 가릴 것 없이 모두들 웃고 있었다."

 

1927년 5회 솔베이학술회의(위의 글은 1927년 솔베이 회담에 참석한 물리학자들을 찍은 작가의 회고)

 

화면 위의 사진은 우리집 책장의 한 풍경이다. 과학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깨달은, 아인슈타인의 천재적인 발상에 대한 존경심으로 이 책에 수록된 사진을 찢어 액자에 끼어놓은 사진들이다. 워낙 유명한 사진이라 인터넷에선 쉽게 볼 수 있는 사진이지만, 과학책에는 사진을 집어 넣으면 책값이 비싸지므로, 과학책속 실물로는 보기 힘든 사진들이다. 

 

평소 나는 저 사진을 가지고 싶었다. 크게 확대된 사진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고 싶었는데, 저 사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 외국의 포스터사이트까지 다 들어가봤지만, 없었다.

 

그러다가 까치사에서 나온 <양자혁명>책 속에 이 사진들이 있어, 이게 왠 횡재냐 싶어 작은 사진이지만, (워낙 까치사에서 센스있게도 좋은 종이로 찍어 삽입해줘서) 그래~ 이거다! 싶어, 책 산 며칠 후 액자 사서 끼어 놓은 사진들이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이미지만 올릴려했는데, 자랑도 할겸해서....함께 올려봤다.

 

참고로, 벨기에의 화학회사 설립자인 솔베이가 물리학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솔베이 회담은 1911년 10월에 처음 개최된 이후, 4년에 한번 10월에 개최되고 있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물리학계에선 아주 유명한 학술회의이다.

 

솔베이 회담중에서 가장 유명한 회담이 1927년 양자역학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모인 저 회담인데, 워낙 유명한 물리학자들이 모인 자리라 오늘날 가장 전설적인 회담으로 기록되고 있다.

 

첫번째 사진보면 알겠지만, 저 사진도 두번째 사진 못지 않은 유명한 물리학자들의 토론장이었다. 얼핏보면, 천재과학자들의 토론사진 가운데 한장이구나 하고 지나칠 수 있는 사진이다. 

 

그리고 나는 사실 당대의 천재과학자들을 찍은 사진이구나하고 넘어갔다. 그러다 사진중에 저 시대의 분위기상 도저히 불가능한  한장면이 찍혔다는 것을,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난후에 깨달았는데, 그건 바로 마리 퀴리의 모습들이었다.

 

버지니아가 저 책을 쓴 1920년대에도 여자는 대학을 가기 힘들고 여자는 도서관을 들어갈 수 없고 심지어 여자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었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솔베이 회담에 당당히 머리를 한 손에 짚고 무엇가 열중해 하는 모습, 그리고 두번째 사진에서는 나이가 들었지만 당당히 남자물리학자들하고 맨 앞줄에서 사진을 찍었던 마리 퀴리의 위대한 모습을 말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지식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이나 마리 퀴리같은 과학적으로 큰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에 대해, 관습적 지식으로 저들 과학자들이 위대하다고 떠들어대니깐 위대하구나 싶은 거지, 사실 왜, 무엇때문에 아인슈타인이나 마리 퀴리가 위대한 줄 모르고 살아간다. 아마 나도 과학관련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냥  아항,관습적으로 위대한 과학자들이구나 ! 하고 살아갔을 것이다. 관습적으로 사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저런 위대함이 하찮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아보니 그렇다. 위대함조차 일상에 쫒겨 하찮아지고 평범해지는 것이다.

 

 마리 퀴리같은 경우는 남편인 피에르 퀴리가 마리 퀴리의 과학적 열정과 재능을 알아보고, 동반 연구한 것이 플래티늄이나 라듐의 발견으로 이어졌고(저 물질 발견은 마리 퀴리임), 그 연구가 워낙 중요하다보니, 피에르 퀴리가 요절했어도, 업계나 학계에서 마리 퀴리를 내 칠 수 없었던 경우로 보여진다. 워낙 연구성과가 과학계나 과학기술계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마리 퀴리의 업적이나 위상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쫓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분량이 짧지만 마리 퀴리가 어떻게 피에르 퀴리를 만나 과학자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는지를 서술한 책이다. 책분량은 짧아도 실험에 관한 보고가 많아, 솔직히 연구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 단지 이 책을 읽으면서, 마리 퀴리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 핵심에만 몰두한다는 것. 피에르 퀴리의 학문적 개방성과 관대함을 묘사함에 있어서, 다른 쓰잘데기 없는 설명은 생략하고 과학적 실험같은 핵심만 서술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피에르 퀴리의 과학적 업적도 마리 퀴리 못지 않게 상당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만약 피에르 퀴리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마리 퀴리의 독보적인 여성 과학자로서의 방사능물질, 플래튬과 라듐의 과학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하고 말이다. 피에르 퀴리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마리 퀴리의 과학적 성과를 빼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의 초창기 공동업적이 지금 현대과학사에서는 주로 마리 퀴리의 업적으로 기록되서 하는 말이다.  마리 퀴리에 대한 공정한 역사적 평가인가?

 

이런 식의 의문과 논리는 사실 너무 헛되고 터무니 없는 망상이다. 왜냐하면 피에르 퀴리의 죽음 후, 마리 퀴리의 연구는 계속되었고, 마리 퀴리가 물질을 발견했다는데 과학사적 이견은 없다. 게다가 그 물질의 발견이 산업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녀의 여성과학자로서의 입지는 굳건하다.

 

글을 공론화할 때는 적어도 역사적인 사실과 증거를 찾아보고 써야 한다. 나 같이 마리 퀴리의 여성과학자로의 위상을 피에르 퀴리와 연결하여 추측과 망상으로 마리 퀴리를 의심하면 그건 한 개인의 추측으로 치부되어,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가면 된다. 반면에 글이 공식화하기 위해 책을 출판할 때는 정확한 자료에 근거에 써야하지 과학사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지, 뭐뭐 했다더라라고 쓰면 그건 잘못된 정보의 전달이고 추측으론 인한 오류가 끝없이 작동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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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9-2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실 음악만큼이나 과학에도 문외한이어서 마리 퀴리 옆에 피에르 퀴리같은 남성이 있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과학서적은 너무 어려워 거의 읽지를 않아서요....하지만 앞으로는 관심을 조금 가져야겠어요 ^^

<정희진처럼 읽기> 덕분에 보게된 시공사에서 나온 <아인슈타인>에는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퀴리 부부를 케임브리지에서 만난 영국 물리학자 JJ 톰슨은 피에르 퀴리에 대해 ˝지극히 겸손한 사람이어서 모든 공과를 자기 아내에게 돌렸다.˝고 말하고 있다. 톰슨이 이런 처신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푸앵카레가 그 점을 병적인 비정상이라고 보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푸앵카레는 이렇게 썼다. ˝그 자는 두들겨 맞은 개와 같은 정신 상태로 영예로운 자리에 올라섰다.˝ 한 미국인 작가는 이 표현을 잽싸게 인용해서 마리 퀴리의 전기 가운데 한 장의 제목으로 삼았다. 마치 피에르 퀴리의 남자답지 못한 성격을 주장하려는 듯이˝

기억의집 2015-09-23 13:44   좋아요 0 | URL
실제 피에르 퀴리가 없었다면 마리 퀴리가 저 자리까지 가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20세기 초반의 과학사를 읽다보면, 도저히 여자 과학자가 낄 수가 없었어요. 여자에게 다 폐쇄했거든요. 재능을 가졌어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내채졌어요. 심지어 버지니아 울프의 20년대를 묘사한 자기만의 방을 읽고 저 사진보니 저 사진이 얼마나 불가능한 장면이었는지 알겠더라구요. 피에르 퀴리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오늘날 보면 진보적인 시각을 가졌던 것 같아요. 물론 마리 퀴리가 엄청 똑똑한 건 맞아요. 그 똑똑함을 알아보는 것도 저는 재능이라고 생각하는데, 마리 퀴리의 과학적 재능을 알아봤기에 공동작업을 했던 것이겠지요. 피에르 퀴리의 장점은 사회 통념과 달리 아내를 여성과학자로 받아들였던 것이고, 아인슈타인의 단점은 본인 혼자 이론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었어요. 밀레바가 학문적 뜻이 있었다면 공동작업했겠지만,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은 워낙 집중력을 요하는 것이라 본인을 보살펴줄 아내가 필요했던 것이지 싶습니다. 아인슈타인책 한번 읽어보세요. 읽어보시면, 정희진씨가 말한 것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게 되실 거에요.

scott 2015-09-23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의 집님이 언급하신 책들 읽어볼래요.
다큐만큼 생생한 페이퍼에요.
퀴리여사 두딸들도 훌륭하게 키웠죠.

남자는 여성을 항상 가르쳐들려고 한다지요.
요즘 한국사회도 20세기초보다 그닥 확 달라진건 없는것 같아요.
가정,학교,사회등등에서....
과학양서 책장에 세워진 저 액자의 의미 다시금 되새겨봅니다.

기억의집 2015-09-23 22:35   좋아요 0 | URL
얽힘으 시대는 딱 반 읽고 접었어요. 양자역학의 역사를 대화체형식으로 쓴 책인데, 저는 데이비드 붐이나 존벨까지는 무리더라구요. 이제 나이 마흔중후반이 되서 그런가, 무진장 머리가 딸리고 사실 무서워요. 이해하기가 힘들어서...언젠가 읽기는 하겠지만..스컷님 홧팅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정말 너무 지루해서 인내를 가지고 읽었던 책이었어요. 보통 제가 책을 들면 이틀이나 삼일이면 다 읽는데, 자기만의 방은 근 이주 걸렸나...글은 잘 썼지만 무척이나 힘든 글읽기였어요.

양자역학도 파인만 등장까지만.... 저 사람들 머리는 어떤 구조인지 궁금해요.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사는 건 힘들긴 해요. 제가 알바나 목공수업 배우러 다니며 느끼는 건데 정말 어리버리 하면 엄청 무시하더라구요. 이 나이에 자존심은 있어서 며칠 다니다 그만두고 그만두고를 반복하네요. ㅎㅎ

쿼크 2015-09-23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얽힘의 시대는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네요... 처음 책을 구매하고...막 달리다가 어느 순간에 좀 쉬었는데 그게..벌써 3년이나 지났네요...읽다가 `얽힘`에 관한 책이 아니라..그냥 양자의 역사를 풀어낸 이야기라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에서야... `양자우연성`이라는 책이 나와..지금은 그것을 읽고 있지요.. 얽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ㅎㅎ... 근데...큰 재미는 없네요...
10년쯤 전인가...저 솔베이 회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고 너무 큰 감명을 받았지요..그때 플릭커였나 암튼 플릭커의 누군가가 올린 역사쪽 관련한 사진 무더기 속에서 발견하였는데..사진을 다운 받아보니 꽤 큰 사진이었습니다. 언제고 출력해야지 했는데..컴퓨터가 맛이 가버리는 바람에..사라진...ㅋㅋ.. 글 잘 읽고 갑니다.

기억의집 2015-09-23 23:48   좋아요 0 | URL
와..쿼크님, 반가워요. 저는 종종 쿼크님 서재가 읽곤 하는데, 요즘은 과학서적은 잘 안 읽으시더라구요... 좀 더 올려주세요~

양자우연성, 저도 사서 읽을까 하다가 진짜 자신 없고 무서워서 그만두었어요. 얽힘의 시대는 과학사적인 면에 더 중점을 두었죠. 그래도 저는 재밌게 읽었어요. 특히나 에렌피스트가 다운증후군 아들과 함께 자살한 대목은 아인슈타인과 달리 자식에 대한 애틋한 부정이 느껴져 읽고 며칠은 맘이 아팠을 정도로요.

저는 과학 출판사에서 저 솔베이 사진 부록으로 주면 좋겠어요. 당장 살텐데...

쿼크 2015-09-24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자책으로 읽기 시작하면서..과학책은 이북으로 사는데(돈이 쫌 쌉니다..ㅋㅋ)..잘 읽히지는 않네요..ㅎㅎ... 마침..오늘도 스티븐 킹의 `별도 없는 한밤에`라는 소설을 구매하려는 찰나...기억의집님의 이 글을 읽고 방금 ... `백미러 속의 우주`를 이북으로 구매했습니다..ㅎㅎ..

양자우연성은 구매하실 필요까지는 없을듯 합니다. 이게 논리 이야기인지라..머리를 좀 굴려가며 책을 봐야할 필요가 있습니다..ㅋㅋ.. 근데..저도 아직 초반이에요.. 집근처 도서관에 신청하시면 괜찮을듯 하네요...

제가 아끼던 사진이 두 장 있었는데(슬프게도 과거형..)... 한 장은 저 솔베이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닐 암스트롱의 달 위에 발자국을 남긴 `first step` 사진입니다. 근데...사진이 매우 고해상도라 크기가 어마어마 하지요.. 예전에 한참..nasa 사이트 들락 거리며 사진 구경할 때 다운 받은 것인데.. 이것도 같이 컴 하드와 같이 날라갔어요..ㅋㅋ...

사진들은 아마 인터넷 찾으면 용량이 좀 더 큰 사진들이 있을 겁니다. 그걸 프린트 하면 괜찮을듯 싶기도 하네요...

글고...블로그는 조금씩 다시 써보려구요.. ㅋㅋ.. 과학책도 다시 읽기 시작했으니까요..

앗...쓰고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그럼..^^˝


기억의집 2015-09-24 13:39   좋아요 0 | URL
제가 작년에 이사오면서 도서관이 멀어서 잘 안 가게 되더라구요. 그 사진들 진짜 아까우시겠어요. 저는 솔베이 사진은 꼭 구해서 벽에 걸어두고 싶었는데, 인쇄소 물어보니 취급 안 한다하더군요. ㅎㅎ

저는 프린터도 없어요. 컴도 작은 노트북정도. 컴 있으면 아들애가 집에서 하루종일 겜 할까봐 피씨방 가서 게임하고 오라 해요^^

쿼크님, 블로그에 과학책 자주 올려주세요. 예전에 과학책 서평 읽는 재미가 있었는데, 진짜 요즘 뜸하시더라구요~ 기대하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9-24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버이지나 울프가 글을 잘쓴다는 것은 알겠는데 읽기는 고된 책. 제가 프르스트 책 읽으면서 ˝ 아니 이 양반 침대에 누워 마들렌에 홍차 마시는 얘기를 왜 내가 시간 들여서 읽어야 하지 ? ˝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억의집님 과학 쪽에 꽤 박학하신 것 같은데 언제 박애주의적 의미로 과학 분야 추천 도서 목록... 요런 거 함 언제 페이퍼로 남겨주세요. 참고하게요.. ㅎㅎ

기억의집 2015-09-24 13:43   좋아요 0 | URL
그쵸! 글은 잘 쓰지만 인내와 끈기를 요하는....게다가 요즘 소설은 임팩트하고 긴장감이 있어 클래식은 더욱더 안 읽혀요.

게을러서 그게 참 안되네요. 2015년 들어와서 서재에 글 많이 남기자가 목표였는데, 어느 새 몇달씩 거르는 곳이 되버렸어요. 글도 안 쓰니 잘 안 써지네요....
 

과학 신간 흝어보다가 책소개에 우리 역사와 외국의 과학사를 크로스 했다길래 참신한 아이디어다 싶어 주문해서 읽고 있는데, 하...이일을 어쩐다..... 읽기가 불편하다. 과학기술이 제국주의 확장의 있어 중요한 역활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치 과학 자체가 제국주의의 악의 한 축인 것처럼 묘사한 것 같아 읽기가 여간 거북한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과학관련책을 읽다보니, 제국주의 시대에 과학의 역활보다 과학자들의 열정을 먼저 읽었다. 갈릴레오든 뉴턴이든 다윈이든 아인슈타인이든 위대한 과학자들은 제국주의를 위해 자신의 학문을 연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며 물음을 던지고 그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목적은 학문 그 자체이지, 자신이 연구한 분야가 제국주의에 어떤 역활을 할 수 있는지 염두해 두지 않았으며 제국주의에 자신의 학문이 어느 정도 기여할지 그건 그들 자신도 예측하지 않았다. 과학기술을 제국주의에 이용한 사람들은 정치가들이지 결코 과학자들이 아니였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저자는 과학의 제국주의를 말하기 전에, 조선의 과학사를 설명했었어야 했다. 왜 조선의 역사는 과학이나 수학을 배척했는지, 과학과 수학이 흔히 유교문화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말이다. 조선의 경우, 수학은 잡과로 분류해 육성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조선 최고의 과학자라 할 수 있는 장영실조차 세종이 내치면서 조선의 과학는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도 말했듯이, 수학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심화시키고 발전시켰다. 결국 이 말은 수학은 단순 계산이 아닌 사유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말이다. 동양학이든 서양학이든 같은 인문의 출발선에서 한 문화는 과학과 수학을 발전시키고 다른 문화는 과학과 수학이 사유의 한 방법에서 배척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조선의 과학사와 수학사 정도는 독자에게 먼저 정보를 주고 제국주의에 대해 열변을 토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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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ainjung 2015-01-17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쓴 저자 정인경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알라디너였기때문에 기억의집님의 리뷰를 종종 읽곤했어요. 제 책에 대해 불편했다는 의견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제국주의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책이 불편하게 읽히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뉴턴의 무정한 세계>는 서양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었고 앞으로 우리가 정신 차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 분들이 제 책을 읽고 기억의집님처럼 과거의 우리를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기를 바랍니다.

기억의집 2015-01-17 19:59   좋아요 0 | URL
와우,,, 작가님께서 직접 제 페이퍼에 댓글을 달아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처음 있는 일이라 가슴이 두근거리는데요. 감사해요!

어제 첫장 읽고 페이퍼 쓰고 나서 갈릴레오부터 뉴턴까지 읽었는데, 첫장이후에는 과학사를 정석대로 쓰셔서, 성급하게 페이퍼를 썼나하고 신경이 쓰이긴 했어요. 그런데 워낙 작가님의 책의 첫인상이 쎄서, 당황스러웠어요. 과학사 입문으로 읽기 시작한 분들이 과학자들이 제국주의를 위해 일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하실까봐...저의 오지랖이죠. 하핫.

작가님, 저의 페이퍼가 작가님에 대한 비판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본 글이라 이해해 주세요. 그리고 그렇게 이해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좋은 글, 그리고 건필을 바랍니다~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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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일이지만, 한창 뭔가 끄적이고 싶어하던 시절, 한 자폐적인 성향의 남자에 대한 단편 미스터리소설을 쓰려고 한 적이 있었다. 기이한 체험에서 비롯한 그 소설적 아이디어는 머리속에서만 빙빙 돌뿐 끝내 문자로 실현되지 않았지만, 한 남자의 자폐성인 성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추적하는 미스터리를 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꽤 오래전 한 이십년 전쯤, 친하게 지내던 선배의 결혼식에 갔었다. 그 때그 결혼식장에서 평범한 내 인생에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아주 기이하면서도 민망한 체험을 했다. 식이 끝나가족 친지  친구들과 함께 찍는 포토 타임때, 신부측 친구나 선후배 하객들이 우르르 단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으려고 자리를 잡는데, 신랑측 친구들이 올라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 순간 단 위에는 모두 여자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랑측 친구들이 단 한명도, 정말 단 한명도 없었다. 신부측 친구들이 신랑측 친구들 자리까지 차지할 정도로 많이 온 것에 반해, 신랑측은 단 한명의 친구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 순간, 놀라움과 민망함이 교차했다. 여자들만 있어 단 위로 못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싶어 주변을 둘러봐도 신랑측 하객중 친구로 보이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휴, 그 때의 그 민망함이란, 빨리 사진을 찍고 밥을 먹으로 가던 어찌하던지 간에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적인 장면이 스냅사진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단 한명의 친구도 가지고 있지 않는 남자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을 만큼 강렬한 충격이었다.  어떻게 살았길래 친구 한명 없을 수 있지! 개차반같은 인생을 살아도 적어도 절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친구 한명 정도는 있지 않나. 결혼 전에 신혼집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책이나 다른 물적 대상이 친구를 대신할 만큼의 취미생활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서 많은 친구들과 교류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문득 그 때의 그 일을 떠올리면 그 선배가 여전히 남편이랑 잘 사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단 한명의 친구도 오지 않은 사람과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분명 장애라고 할 정도의 자폐는 아니지만, 타고난 천성으로 혹은 살아오면서 어떤 계기로 인해 사회적 폐쇄성이 강한 자존심 강한 사람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선배 결혼식 이후 누군가에게 그 선배가 아들 낳았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더 이상 그 선배랑 연락하지 않아 선배가 여전히 그 남자와 사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결혼 생활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아니 어쩌면 이런 모든 의미없는 추측은 억측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기에,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중년의 고독을 이야기했다는, 하루키의 이번 신작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난 상황이 바로 저 결혼식날 아무도 오지 않았던 한 남자의 에피소드였다. 결혼식에 단 한명의 친구도 오지 않을 만큼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배의 남편. 하루키의소설 캐릭터와 와 뭔가 닮은 듯한 느낌,  그게 뭘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기노>라는 짧은 단편에서 어렴풋이 알아챘다. 하루키의 캐릭터들의 폐쇄성 그리고 외로움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 단 하루키의 소설 캐릭터들은 자발적인 자폐성향이 뜻하지 않게 모험속으로 빠져들며 그 모험의 과정에서 캐릭터의 내면이 외로움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닌 더 단단해지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말이다.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될 때부터 하루키 전작주의자는 아니지만 그의 대부분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를 확실하게 좋하하게 된 작품이 <렉싱턴의 유령>에 나왔던 고독 이라는  짧은 단편이었다. 고독이라는 설정이 그의 전체적인 작품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한 것도 모른 체, 그 짧은 단편은 나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고 아마 그 작품 이후 그의 소설은 다 읽으려고 했던 것 같다(소설은 다 읽었지만, 에세이는 읽기를 미적거리는 작품도 많다).

 

작가(소설로 독자의 애정을 갈망하는)와 독자(팬으로서 작가의 글을 갈망하는)로서, 나는 왜 그를 좋아하는지 몰랐다. 그의 소설이 지난 과거의 제국주의 역사를 다루는 것도, 그렇다고 진지하게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그의 소설에 끌리고 끌렸을까? 모르고 읽었다. 개인적인 취향이 맞아서 일 수 도 있고 그의 세련된 글이 좋아서 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느낌이 좋아서일 수도 있겠다. 그의 소설들을 읽으면 텅빈 공간의 뭔가 꽉 찬 정적인 느낌이 나는데, 나는 그 느낌, 태양이 내리쬐는 한 낮의 정적인 오후 느낌같은, 그 텅빈듯하면서도 꽉 찬 정적인 느낌을 좋아하고 그 텅빔의 혼자라는 강렬한 느낌이 좋았던 것이다.

 

그러다 이 단편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건 그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고독한 캐릭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처럼 흥미진진한 모험과 어떻게 엮이고 주인공의 자아든 세계관이든 간에 그 모험이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가는 길의 지도를 읽으며 가는 과정에서 더 단단해지는 그 과정의 여정을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가후쿠는 아내가 죽은 후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거부한다.

<예스터데이>의 기타루는 훌쩍 외국으로 떠나 여기저기 떠도는 듯하며

<독립기관>은 비록 사랑에 눈뜬 독신주의자인 도카이의 이야기이지만, 캐릭터에 대한 상상력이 가장 빈약했으며,

 <세에라자드>는 자신이 짝사랑했던 한 남자의 비어 있는 집에 머무는 작은 모험을 강행하며,

이 단편집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기노>는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모험을 떠나는 하루키 소설의 전형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기노>에 대한 기시감은 그의 소설이 대부분이 이런 이야기 구조(고독한 캐릭터가 모험의 여정을 떠나는 것)는 흔히 소설 구조의 전형(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오래된 이야기 구조는 식상할만도 한데(그래서 포스트모던을 지향하는 소설들이 나왔겠지만), 여전히 독자를 사로 잡는 이야기는 관습적인이고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거, 단지 하루키같은 소설가는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완전히 자기내면화함으로써, 자신만의 캐릭터(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를 만들어 내고 자신만의 이야기(모험으로 뛰어드는)를 만들어 냈기에 새롭게 다가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단편집에서 놀라웠던 건,이 노장 소설가가  여전히 젊은 감각의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젊음이 샘물을 마시는 것처럼, 무엇이 그의 글쓰기를 이토록 젋게 만드는 것일까?

 

 

덧: 하루키의 <여자없는 남자들>의 제목은 1927년에 헤밍웨이가 발표한 <여자 없는 남자>라는 소설 제목에서 따온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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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01-16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예약판매때 그 헤밍웨이 단편을 사은품으로 받았어~ ^^

기억의집 2015-01-16 15:5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몰랐어요. 한참 지난 후에 하루키 신작 소설 되었다는 글 읽고 사서... 저는 빌 브라이슨의 여름,1927년 이라는 작품에 1927년을 이야기하면서 훼밍웨이의 여자 없는 남자라는 작품이 발표되었다고 써 있더라구요. 그 때 어, 하루키 소설제목이 여기서 땃나 싶었는데..나중에 빌려주삼~

유부만두 2015-01-17 10:03   좋아요 0 | URL
주려고 찾는데.....안보임... ㅠ ㅠ 이사하면서 흘렸나봐... 그나저나 팟캐스트에서 헤미웨이의 단편 낭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신형철 낭독).. 지금 ㅁㅇㅅ 판으로 단편집을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중.
어제 황석영 한국 단편 (해설집?) 10권을 질러놔서 .. 참아야하는데 ^^

blanca 2015-01-16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루키를 소설가로서 이제 막 만나가려는 참이라 이 리뷰가 참 반갑네요. 와, 친구가 한 명도 안 온 결혼식의 남편 이야기. 여자는 비슷한 경우를 들어봤는데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요? 직장 동료도 없었는지... 하루키 소설 캐릭터들이 원래 좀 비슷한 전형이 있군요. 맞아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나이 듣고 소설에 등장하는 감성이랑 도저히 매치가 안되더라고요. 그것도 예전에 쓴 소설이 아니라 최근에 쓴 소설이 그래서... 와, 이 책 꼭 읽어봐야겠어요!

기억의집 2015-01-16 22:53   좋아요 0 | URL
그쵸! 딱 맞는 표현이네요. 소설의 감성. 진짜 젋게 썼더라구요. 이 나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저는 이십대시절부터 하루키 작품을 읽었던 사람이라... 소설도 나이를 먹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블랑카님이 쓰신 하루키 페이퍼 읽었는데, 순례는 아직 안 읽었어요. 제가 정신을 딴데 두고 살아서 작년만 해도 뭐가 뭔지 모르고...사실 하루키가 얄밉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루키가 세계적인 작가인 건 사실이지만, 주 수입원은 일본과 우리나라 동양권임에도 한국에 한번 안 오네요. 목돈만 받아 챙기는 하루키가 얄미워 안 읽었어요. 특히나 순례~ 하루키의 작품은 기노의 연장판이라 생각이 들어요. 얼마나 더 고급스럽게 포장했느냐에 달라질 뿐. 그래도 글 잘 쓰라 사람인지라..신간 나오면 관심이 생겨요~

사실, 그 선배한테 차마 물을 수 없었어요. 왜 남편은 친구가 없는지. 그 선배가 결혼을 일찍해 갔다온건데, 젊어서 가서 그런가,,여튼 엄청 충격받고 왔어요. 그 때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기억이 안 날정도로.. 그런데, 동기와 선배들은 그때의 일을 암묵적으로 침묵을 지켜요. 아마 요즘같이 sns가 발달한 세상이었으면 난리났을 듯 하지 않을까 싶어요. 동대문에서 장사한다고 한 사람인데,,, 장사하는 사람치고 별나긴 별나죠. 진짜 궁금했어요. 무슨 연유로 친구가 한 명도 없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