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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4
제프 린제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작가의 사적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건조하고 깔끔한 문체로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소설들이다. 작가의 사적 감성이나 감정은 캐릭터의 성격에 대입해 충분히 살릴 수 있으며, 소설에서 작가의 감정을 위임 받는 것은 캐릭터의 몫이다.
그래서 캐릭터를 다룰 때는 작가는 조심해야 한다. 작가의 감정이 과잉으로 캐릭터에 대입되었을 때는 과도한 자기 연민으로 이야기가 흐를 수 있고, 감정이입을 거의 하지 않을 땐 캐릭터가 이야기에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잘 짜여진 이야기의 힘으로 소설이 이끌여 나가는데, 개인적으로 과잉으로 소설이 이끌려 나가는 것보단 차라리 이야기의 힘만으로 전개되는 것도 나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캐릭터보다 이야기에 중점을 둔다. 아주 독특한 캐릭터가 아닌 이상,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역량에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프 린제이의 소설속 인물 덱스터는 좀 다르다. 아마 그는 내가 만난 몇 안 되는 정말 특이하고 독특한 캐릭터일 것이다. 나는 미국스릴러나 미스터리물을 읽긴 하지만, 정말 좋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특히나 남들이 이구동성으로 다 좋다고 말하는, 할렌 코벤,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같은 거물급 작가들의 미스터리물을 읽고 난 후의 그 텁텁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계산된 장면, 거듭되는 반전의 반전의 트릭과 악의 클레쉐적인 설정등. 재미는 있지만 매력을 느낄 수 없다.
덱스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의 직업은 경찰내부에서는 공개적으로 혈액분석가이지만, 그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런 직업이 있다. 그건 바로 연쇄살인범. 그것도 연쇄살인범을 죽이는 연쇄살인범 말이다. 그는 세상에서 없어져 버려야 하는 사람들을 한동안 지켜보고 죽일 기회를 찾는다. 자신의 살인 본능을 선량하고 일반적인 사람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고 죽어 없어져도 무방한 사람들, 연쇄살인범에 촛점을 맞춰 자신의 살인 행위를 정당화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덱스터는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캐릭터이다. 과연 연쇄살인범을 죽이는 그의 연쇄살인 행위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왜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개인의 처벌해야하는가? 그의 그런 캐릭터로 비춰볼 때 사람은 환경에 지배 받는 것이 아니고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것인가? 선이나 악을 집단적(성선설, 성악설)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가?
연쇄살인범을 죽이는 연쇄살인범인 그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은 법적인 면에서는 정당화 될 수 없지만, 사회적 통념상 암묵 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제프 린제이가 창출해 낸 덱스터의 본능이다. 그의 살인행위는 사실 정의로운 의지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그는 수 많은 연쇄살인범들처럼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살인 본능을 타고 났다. 그래서 그의 양부 해리가 그의 본능을 알아채고 그에게 사람 대신 동물들을 죽이도록 인도해 주었지만, 결국 그의 본능을 잠재울 수가 없어 타깃이 된 것이 바로 연쇄살인범인 것이다.
제프 린제이의 이 소설에서 만들어낸 교활한 장치는 덱스터가 연쇄살인범을 죽인다는 것 때문에 침묵의 공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다 연쇄살인범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용기 없는 우리 대신 그가 칼을 들었다는 사실은, 그가 살인 본능을 타고 났다면 차라리 그런 사람을 죽이도록 부추기고 침묵으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의 행동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그의 행동을 소리 높여 비난 할 수 없다는 것.
그렇다면, 제프 린제이는 덱스터의 살인 본능을 어떤 관점에서 보았을까? 우리는 대체로 사람은 주변 환경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윈 이후, 많은 과학자들은 한 인간을 형성하는데 있어 유전자(우생학)과 환경결정론, 두 이론 중에서 어느 것이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논쟁은 분분하다.
제프리가 만들어 낸 덱스터의 살인본능은 환경보다는 유전자쪽에 무게를 둔다. 하지만 그의 살인 본능이 전적으로 유전자의 무게중심으로 쏠리지 않는다. 그는 그의 살인본능, 양부모지만 번듯한 부모밑에서 자랐고, 그의 양부 해리는 그가 살인에 대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무단히도 그의 살인본능을 잠재우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선 환경적인 요인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 환경적인 요소는 그가 연쇄살인범만을 죽이도록 도덕적인 라인을 제시한 것이기.
양부 해리의 노력에도 불과하고, 그의 잠재적인 살인본능을 덮어버릴 수는 없었다. 살인에 대한 쾌감은 마침내 발현되었고, 그 대상이 연쇄살인범으로 유도되었을 뿐. 그러고 보면, 도킨스가 말한 우리는 유전자의 대를 이어주는 수단(껍데기)에 불과하는 말은 소름끼칠 정도로 맞는 말일 주도 모르겠다.
덱스터나 여타의 살인자들(테디 번디나 김길태 같은)과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살인본능은 환경적인 요인도 무시 못하지만, 유전적인 요인이 크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선악을 집단적으로 몰아부치는 성선설이나 성악설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인간 개개인은 개별적이며 고유의 바코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덧 : 리뷰 제목은: 리처드 도킨스의 <무지개를 풀며>에서 별빛의 바코드에서 따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