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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는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10년 7월
평점 :
만약 내가 소설가라면, 이런 소설을 써 보고 싶다, 고 말할 정도로 화자의 전환이 독특한 연작소설이다. 에피소드마다 화자는 내가 말하기 시작한 그인 역사학 교수 무라카와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거나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소설의 소재나 아이디어를 정하고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 때 이야기를 풀어내는 화자의 역활을 그 무엇보다 신경쓸 것이고 중요시 할 것이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화자가 범인이다라는 신선한 접근법으로 독자를 경악케 했으며, 추리소설에서 범인의 유형을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독자에게 범인의 접근 반경을 넓힌 미스터리 작가이지 않던가.
이 책은 바람둥이 교수 무라카와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무라카와는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화자가 다 다르다보니, 그에 대해 어떠한 정보나 심층적인 내부 이야기는 피하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고통만이 전달되어진다.
나는 혼전순결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혼후 순결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을 구성하고 이끌어나가는데 있어 불륜은 부부 서로간의 믿음의 근간을 다 부숴 더 이상 안정된 토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배우자의 바람은 부인이나 남편의 심적 고통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자식까지 고통스럽게 해 가족의 붕괴를 가져 올 수 있다.
이 소설을 이끌고 가는 그인 무라카와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중국학을 연구하는 대학교수고 처자식이 있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이나 심지어 문화강좌에 수강하는 유부녀들하고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문화강좌에서 만난 오타 하루미란 여성과 같이 살기 위해 그는 이혼을 하게 된다.
첫번째 에피소드 <결정>은 무라카와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그의 조교인 미사키가 화자가 되어 이끌어 나간다. 그는 무라카와의 부도덕한 처신의 내용이 담긴 학교당국에 보낸 투서를 가지고 그 투서를 혹시 그녀가 썼는지 알아내기 위하여무라카와의 아내를 찾아가 면담을 하면서 서서히 그가 어떤 인물인지 드러난다. 결국 그의 아내는 그의 바람기에 질려 이혼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듣는다.
두번째 에피소드 <잔해>는 무라카와가 강의하는 문화강좌에서 만난 유부녀의 남편이 화자이다. 데릴 사위로 들어가 장인의 사업체를 물려 받아 장인이 은퇴한 후에도 사업체를 더 탄탄하게 운영하고 있던 어느 날 그는 그의 아내가 문화강좌에서 만난 무라카와와 바람을 핀다는 것을 알아낸다. 바람핀 아내를 둔 배우자의 심리적 격분을 잘 그려내고 있다. 그는 아내와 이혼을 하지 않기로 한다. 독자는 그가 처한 상황이나 지위때문에 봉합되는 것임을 명백하게 이해하게 된다.
세번째 에피소드 <예언>은 무라카와의 아들이 화자이다. 부부중 어느 한사람만의 지속적인 외도는 이혼으로 끝을 맺을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상처 받는 사람은 자식들이다. 왜냐하면 이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시선이나 이해는 조감도적이 아니라 자신의 눈높이쯤이라 그들의 부모가 왜 이혼을 하는지, 싑게 납득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한차례 감정적 푹풍이 휘몰아치고 잠잠해지자, 그는 성인이 되어 부모가 이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다시 보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네번째 에피소드 <수장>은 흥신소에서 일하는 남자가 화자이다. 그는 무라카와가 재혼한 유부녀 오타 하루미가 자신의 딸을 감시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감시한다. 다른 지역의 대학을 다니기 위하여 부모와 떨어져 사는 딸은 자신의 엄마에게조차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딸은 엄마가 계부인무라카와와 어떤 관계라도 가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자살을 선택한다.
다섯번째 에피소드 <냉혈>은 무라카와의 친딸 호타루의 남자친구가 화자이다. 그는 호타루와 결혼을 며칠 남겨두고 후타루에게서 자신의 의붓여동생이 왜 자살을 하게 되었는지, 항간에 떠도는 타살 의혹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부탁 받는다. 그는 젊은 시절 흥신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던 터라, 자신이 전에 일했던 신소 사장 에바다를 통해 의붓딸의 죽음이 자살로 결론 내린다.
여섯번째 에피소드 <귀가>는 다시 첫 에피소드의 화자인 미사키이다. 세월이 흘러 무라카와의 사망소식을 듣는다. 그 소식을 듣고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데, 무라카와의 장례식과 49제를 치르는 과정에서 그는 아내와 자신의 집을 들락거리는 고등학생 오카무라 사이를 의심해 어떤 결론을 내지 못하다가 정면으로 부딪혀 보기로 한다.
6개의 에피소드의 화자가 달라(물론 1,6번째 에피소드의 화자는 같지만), 무라카와가 왜 이혼을 결정하고 재혼을 하게되었는지, 재혼을 해 다시 꾸린 가정에서 그는 행복했는지, 과연 재혼가정의 의붓자식이 친자식보다 더 애틋했는지같은 아주 소소한 감정의 묘사나 심리적 묘사는 없다. 그래서 5명의 화자가 그에 대해 말하더라도 결코 그를 알 수가 없어서, 독자는 상상력과 추측(추리)을 보태야 할 정도로 이야기에 빈 틈이 많고 열려 있다.
독자인 내가 말할 수 있는 그는, 학문적으로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룬 학자라고 하더라도 덫에 걸려 든 야수와 다름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 가정을 이루었음에도 책임질 줄 모르며, 다른 가정을 이루었다고 해도 행복이란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가정내 행복의 기준은 뭘까? 가정 내 행복이란 정의는 사람들마다 다 다를 것이다. 무라카와의 경우를 보더라도 다시 재혼을 해 가정을 꾸려 나가더라도 재혼한 부인의 감시하에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신경전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재혼 가정에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을 것이고 피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불행과 행복의 라인안에서 어디에 발을 두어야할지 몰라 발을 동동거리다가 행복인줄 알았더니 불행의 연속이고 그런 삶(불륜)은 누군가에게 짜릿한 행복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끔찍한 고통일 수 밖에 없다.
평범하고 진부한 이야기(한 바람꾼 이야기)를 도식적이고 정해진 루트를 따라 움직이는 이야기의 동선이 아닌, 여러 갈래의 이야기 길을 미완성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