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막장게이트 때문인지 거의 두달 동안 책읽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아주 짧은 글 정도면 모를까, 거의 안 읽었다. 알라딘도 요즘 책읽기에 흥미를 느끼는 아들애가 책주문(그래봤자 만화책 아니면 라이트노벨이지만)해 달라고 하면 그 때서야 좀 드나들었지, 거의 방치수준이었다.
아침에 스마트폰이 아닌 컴을 통해 알라딘을 들어오니, 올해의 책으로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 선정되었다는 초기화면을 보았다. 나 또한 책주문하면서 천원 할인을 위해 올해의 책, 투표를 한 것 같은데,저 책에 투표를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 설민석의 한국사책에 투표 했을 것이다.
세월호, 그 이름만으로도 콧끝이 찡해지는 책이다.
나는 과학책을 처음 접할 때 우연하게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화제가 되서 그의 책을 읽기시작하였고, 도킨스의 이론(도킨스의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도킨스의 글은 상당히 지적인 자부심이나 자존심이 강해서 거부감이 들 정도의 오만함도 가지고 있는 진화생물학자이다)을 접하면서 무신론자가 되었다. 물론 사회적 삶을 살다보니, 타인의 신에 대한 열망이나 사회적으로 내려오는 관습적인 제(第)에 대해 뭐라하지 않는다. 유연한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 동의해 주거나 맞장구 쳐 주곤 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지향은 철저한 무신론자인다. 도킨스나 윌슨의 진화이론책들 혹은 물리학자들의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만들어낸 종교나 신앙 세계에 오히려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어느 순간 아버지의 제사에도 참여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 나라 전통적인 제례조차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는 아버지의 제사가 일년에 한번인데 그럴 필요가 있나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죽은 후 나를 위해 제사지내는 나의 아이들의 관습적인 대물림을 막기 위해, 가지 않는다. 계속되는 제의 대물림이 아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란 진화론적이고 물리적인 세계관을 남겨주고 싶기 때문이기하다.
그런 내가 일년에 한번 꼭 가서 분향을 올리는 곳이 있다. 바로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이다. 국화꽃을 제단에 올리고 묵념을 한 후, 벽에 걸려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쳐다본다. 살고 싶었을 아이들. 4월 16일. 나는 그 때 배가 서서히 가라 앉는 모습을 몇 시간 동안 티비 화면을 통해 보았고 아이들이 몇 시간 동안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후 며칠을 울었는지 모른다.
그 몇 시간동안 우리 나라 기관 어디에서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어선의 어부들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그 상황에서 해경도 군함도 오지 않았다. 국가 기관에서 그 아이들이 죽어가는 동안 아무런 구호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 때 너무 당황스러워 왜 저럴까?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의 아이들이 아무런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죽어간 이유를 알기 위해 단원호 부모님들이 항의하자, 정부는 단원고 부모님들을 돈에 환장하는 사람들로 언플하기 시작했고, 그 언플을 고지 곧대로 믿는 보수주의자들이 큰소리로 떠들면서 세월호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었던 사람들이 묻히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이 세월호에 대해 말만 해도 몇 명의 보수자들의 윽박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샤이세월호사람들.
부끄럽지만 나도 말 못했다. 하도 세월호 이야기 지겹다, 돈 받고 저거 뭐하는 짓이냐, 돈 더 받으려고 별 짓을 다 한고 윽박지르는 보수주의자들의 기에 눌려 말 한마디 못했다. 심지어 울 친정모도 세월호 그만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서 더 굳게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죽은 아이들을 위해서 분향하는 것밖에 없었다.
컨트롤 타워의 완벽한 부재, 가라 앉는 배 앞에서 우왕좌왕하던 해경, 엉망진창인 구조절차 시스템속에서 세월호는 인재가 만들어낸 재난이다. 그 인재가 만든 재난 뒤,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 싶어 길 위에 선 단원고 부모님들. 분향소에 갈 때마 길 위에서 싸우는 그들을 본다. 이런 일이 아니였다면 따스한 집에서 그 아이들과 웃으면서 티비를 보거나 아이들에게 뭔 일 있을까 아주 작고 사소한 걱정을 했을 부모님들. 차라리 자연적 재해라면 어쩔 수 없다,라고 맘을 다잡고 살 수 있겠지만, 인재가 만들어낸 자식의 죽음앞에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길 위에서의 싸움이구나, 나라도 저렇게 했을 것이다. 자식의 죽음 앞에서 고통에 몸부림 치는 그들의 길위의 삶이 주변의 차거운 시선과 막말에 맘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억울함이 밝혀질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향소에 가서 그들의 죽음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당신들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박주민 변호사가 은평구에서 거물급 이재오를 물리치고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세월호에 대한 거부가 아니고 드러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당신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단원고 부모님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래, 그 어떤 第도 거부하는 내가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근혜의 탄핵이 결정된 날, 세월호 단원고 부모님들의 눈물은 환희의 눈물이 아닌 진실을 이제야 밝힐 수 있겠다란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의 눈물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 세월호가 그 어떤 구조도 없이 침몰해야 했는지, 왜 아이들이 그렇게 서서히 배와 함께 침몰해야 하는지 진실을 꼭 밝혀야하는 2017년을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