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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영한 대역본> 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영한대역 (영문판 + 한글판 + MP3 CD)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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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미 2003년에 우리나라에서 출판되었다가 이번에는 영문판과 함께 양장판으로 다시 출판된 이 책은 작은 고전이라고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 나는 2003년에도 이 책을 만나보지 못했다가 처음으로 면접을 보듯 만나고 나니 신선하고 좋다. 아니 그냥 좋다는 느낌만으로 표현하기가 안타까울 정도로 가슴 뭉클했다.

 

『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이라는 영어 원 제목이 있지만 한글판으로 번역되면서 <내영혼의 따뜻한 날들> 또한 책을 다 읽고 그 후의 생각들과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저자 포리스트 카터는 체로키 인디언의 혈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그가 1925년에 태어난 후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을 배경으로 쓴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웃고 울고 마음이 허전해지고 흐느끼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만드는걸 보니 정말로 ‘작은 고전’이 될 수밖에 없겠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책의 주인공인 ‘작은 나무’는 5살 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인디언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인디언의 생활을 보여준다.

바람의 향기, 바람의 소리와 늑대의 울음소리가 화를 내는 것인지 유혹하는 것인지 개소리로 속여 도망가고 있는 것인지. 방울뱀과 싸워 그 독을 치유하는 방법. 계절이 오는 소리, 계절이 멀어져 가는 향기까지 아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인디언 생활의 모습은 흥미롭다. 인디언의 영화였던 몇몇의 장면들이 떠오르며 인디언 역시 역사의 한 흐름을 굴곡지게 장식했던 그 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인디언들을 정부군이 강제로 이주시키면서 발생한 행렬인 ‘눈물의 여로’.

“그것은 절대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행렬을 눈물의 여로라 불렀다” -P137

영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먼 길을 마차를 타지 않고 걸어 고개를 넘었지만 그 행렬중 3분의 1이 죽었지만 절대로 울지 않은 체로키인들은 그래서 눈물의 여로라는 말로 그 슬픔을 대신하고 있었다.

 

작은 나무와 함께한 많은 동물들 중에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나는 링거의 죽음은 첫 번째로 찾아오는 독자의 눈물일 것 같다.

“나는 몸을 숙여 링거의 얼굴에 대고 나를 찾으러 와줘서 고맙다, 그리고 마인하다는 말을 했다. 링거가 내 얼굴을 핥았다. 신경 쓰지 마라, 다시 한 번 그런 일이 일어나도 또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P241

소중했던 링거가 죽고 그 죽음 때문에 괴로워하는 작은 나무는 이렇게 괴로울 것이면 앞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가슴에 품었던 것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 뻥 뚫린 고통스러움 때문에 앞으로 다시는 사랑하거나 품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보며 할어버지가 해주신 얘기가 진리일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아노는 것은 항상 텅 빈 것 같은 느낌 속에 살아야 하는데 그건 더 나쁘지 않겠느냐고 작은 나무를 위로해주신다.

 

인디언의 지혜들은 요즈음의 우리에게 다시 교훈을 주는 것이 많다. 우리는 취미로 사냥과 낚시를 하지만 인디언들은 취미로 하지 않는다. 오로지 먹기 위해서만 동물을 잡는다. 즐기기 위해서 살생하지 않으며 함께 생활해 나가야 자연이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동물이 짝짓기를 할 때는 동물을 잡지 않고 짝짓기 한 동물들이 자라서 활동 할 수 있을 때까지도 살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추우면 무조건 엄살을 부리는 우리에게 인디언의 할아버지는 혹독한 추위도 있어야 한다고 하신다. 그래야 무언가 정리하고 보다 튼튼히 자라게 하는 자연의 방식이라고. 마치 자신의 죽음을 앞둔 것을 짐작하면서 작은 나무가 힘들어하지 않고 추운 겨울처럼 힘든 마음을 이겨내길 바라는 것 같다.

 

간혹 작은 나무도 귀여운 아이였구나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중에 한 에피소드는 요즘 점점 더 깜빡하는 와인씨가 손자를 주기 위해 만든 노란 코트부분이었다. 손자가 큰다는 것을 깜빡하고는 와인씨는 그 작은 노란 코트를 계속 가지고 다니다가 이걸 버리면 죄를 받게 될 것 같아 고민이라는 말에 작은 나무는 그 죄를 덜어 들일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입는 것은 어떨지 얘기하는 부분. 그 코트를 자주 입으면 입을수록 와인씨의 죄가 점점 가벼워질 것처럼 느끼는 (P521) 작은 나무의 깜찍하고 순수함에 입가에 웃음 두꺼워지는 페이지 무게처럼 번졌다.

 

작은 나무에게 생활의 모든 부분을 가르치며 살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작은 나무를 학대하며 기른다는 이웃의 신고로 작은 나무가 교회의 고아원으로 갔다가 다시 그들과 조우하는 장면은 작가 자신도 쓰면서 제일 행복하면서 또 가장 서글펐을 것 같다.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P663

 

할아버지가 떠나고 할머니까지 작은 나무의 곁을 떠나셨다. 작은 나무가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은 아마도 2년 정도였던 것 같다. 그 이후의 삶을 얘기해주는 부분은 많이 담담하고 쓸쓸했다. 특히 할아버지도 아끼셨던 개, 블루보이와 함께한 마지막 페이지는 거의 십여 분 동안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이제 삶의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자신을 아는 마지막 개의 무덤을 파야 했던 작은 나무, 그 모습을 힘없이 보아야 했던 블루보이.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여름날 오후에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과 같았다. 행복해 보였다.

 

다음 생은 훨씬 더 좋을 것이라는 그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그 얘기에 나조차도 마음이 아득해진다. 그전에 지금의 생에 더 열심히 살아야 다음 생이 훨씬 더 좋을 테니 열심히 살아나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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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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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접하게 된 책이 <프라하의 소녀시대>이었다. 이유는 소녀시대라는 말보다는 ‘프라하’가 주는 아우라 때문이었다. 유럽 국가 중에 가장 가고 싶었던 장소였고 여러 사진에서 혹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영상들은 매혹적이었고 아름다웠다. 그런 이유 때문에 선택한 <프라하의 소녀시대>였는데 책 목차를 살피고 읽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내가 선택한 이유는 단지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의 프라하였지만 요네하라 마리가 지냈던 그 프라하의 당시 상황은 큰 괴리감을 주었다.

물론 그녀의 선택에 의해 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일본의 공산당 간부였고 그 아버지를 따라 체코(당시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 가게 되고 외교관, 공산당원 간부들의 자녀들이 다녔던 국제학교인 소비에트 학교를 다닌 그녀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록에 의한 친구들을 만나는 내용이라니.

 

반공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던 세대였던 내가 느끼는 공산당원은 지금에 와서도 많은 거리감을 준다. 객관적으로 그녀의 삶을 볼 수 있을까 하는 흐릿한 판단력이 문제가 되고, 제 3국의 입으로 들려오는 ‘공상당’이라는 말은 너무나 이질감을 주었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알고 있던 그 공산주의와 소련, 중국을 벗어난 공산주의는 어떤 것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처음에는 분단국가로 살아온 시간만큼 무거운 책장을 펼쳐야만 했다.

 

1960년부터 1964년까지 약 5년 동안 프라하에 머물면서 소비에트 학교에 다녔던 요네하라 마리와 그녀의 동유럽 친구들과의 얘기들이 책속에서 펼쳐진다. 누구에게나 있는 유년시절을 그녀는 자신의 모국이 아닌 혼란스러운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휩쓸려 있었던 시대를 프라하에서 보낸 그녀의 얘기들이 희망차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담겨져 있다.

 

 

안테나의 오목면 같은 리차

 

“발코니는 꽤 넓었다. 그 왼쪽 반을, 지름이 내 키의 한 배 반이나 될 듯 한 거대한 안테나가 차지하고 있었다. 안테나의 오목 면은 그리스 하늘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리차가 사무치게 그리던, 그리스 하늘 쪽으로.” P79

 

간혹 떠 올려보면 그런 친구들이 한명쯤 있었던 것 같다.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친구들. 더 나이가 먹어서는 연애에 대해서 책을 전집으로 써도 될 만큼 조언을 척척 해주는 친구.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는 성교육을 담당하면서 뭐든 척척 알려주는 친구, 즉 리차 같은 친구.

‘쨍하고 깨질 듯이 파란’ 그리스의 하늘을 자랑스러워하고 사진에는 없지만 뛰어난 유전자를 가진 부모님을 덕에 여자에게 인기 많은 오빠나 그의 외삼촌을 둔 리차는 반에서도 인기가 많은 스포츠 만능에 뛰어난 입담으로 친구들을 사로잡은 소녀였다. 하지만 유난히 수학을 싫어하고 무엇보다 공부가 싫다는 그녀는 되고 싶었던 배우가 아닌 독일에서 의사가 되어 있었다.

 

마리가 그녀를 만났을 때의 그 의외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반가울 수밖에 없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모국의 하늘처럼 높고 깊고 단단해보였다.

왠지 남들과 다르게 살았을 것 같은 그녀라서 그런지 그녀는 독일에서 의사이면서 노동자와 결혼을 했고 한명의 아이는 다운증후군이었지만 그 역시 리차스럽게 경쾌하게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공부를 싫어한 리차가 매년 낙제를 할 듯 아슬아슬했지만 반 아이들 모두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진급할 수 있었던 (P34) 리차만 천하태평이었듯 그녀를 걱정하지만 그녀만큼은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문득 그녀는 어떻게 그런 긍정을 오랜 시간 가질 수 있었을까 궁금하기 까지 했다.

 

 

그녀를, 그녀의 자신을 위한 새빨간 거짓말.

 

아냐의 얘기를 다 읽고 나서 나는 왜 요네하라 마리가 아냐를 찾아 갔을까 고민스러웠다. 아니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지나온 삶을 보고는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다 민망했었다. 루마니아인인 아냐는 통통하지만 예쁜 얼굴이긴 해도 행동이 완만해서 언제나 육중한 몸을 놀리는 듯 보이는 아주 평범한 소녀 같았다. 그래서 서로 동떨어진 나라에서 왔지만 부모님들에 의해 같은 시기에 한 나라로 모였고 공산주의 사상에 이념을 불태우고, 자기 생명조차 내 놓고 파란에 찬 나날을 보냈다는 사실이 서로를 특별한 존재로 보이게 할 수 있었기에 (P92)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집으로 초대는 그녀가 내세운 이념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하긴 레닌도 스스로가 생애에 단 한 번도 노동으로 자기 생활을 꾸린 적이 없다는 사실이며, 지주로서 소작인에게 소작료를 받아 생활 (P29)했다니 아냐가 대 저택에 살고 있다는 것이 뭐 이상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간 내가 알고 있는 공산주의 사상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언젠가 김정일의 아들이 홍콩에서 호화 빌라 한 층을 다 빌려 살고 있으며 인터뷰 한 그날 보여줬던 명품 도배 패션은 충격적이지도 않다. 다만 그의 모습에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목숨 걸고 넘는 꽃제비들의 몇 년 전의 얘기가 떠올라 울컥했을 뿐이었다.

 

어쩜 그래서 아냐는 거짓말이 더 늘어갔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자신이 한 거짓말이 진짜라고 생각해서 모두가 간절히 원했던 그 노트를 차마 프랑스에서 오빠가 사다 준 것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 사 왔다는 거짓말을 했고 그것을 정말로 자신이 사 왔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거짓말쟁이 아냐는 그런 거짓말까지 모두 사랑받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아내였어도 요네하라 마리는 정서가 안정이 되고 듬직했던 아냐를 그리워했고 그녀를 만나고 싶어 했던 것일 거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다시 만난 아냐는 원어민 수준이었던 러시아어를 모두 잊어버린 듯 영어는 또 얼마나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지 그녀의 정체성이 다시 한 번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그녀의 삶이 그녀의 거짓말 습관처럼 그렇게 거짓말처럼 영국인 남편과 영국에서 잘 사는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을 다 듣고 나니 허무하기까지 했다.

 

야스나에게 보내는 엽서 한통.

 

리차, 아냐, 야스나 이 세명의 친구를 만나는 과정 중에 가장 서스펜스가 있는 것은 역시 야스나를 만나는 부분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아련한 유코 슬라비아의 소녀인 야스나를 만나는 얘기는 가장 감동적이고 가슴 아팠다. 특히 그녀를 위해 요네하라 마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 그녀 또한 가장 가슴 아프지 않았을까.

 

그녀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라던 교사들. 그녀의 발표 한 마디에 교실을 술렁거리게 만들었던 그 강직하고 바른 성품과 품행들. 그것 때문에 활발하고 친화력 강한 리차 까지도 가까이 하기에 꺼렸던 야스나.

차분한 몸짓과 당당함. 너무 힘주지도 않고 천연덕스럽기까지 한 그러면서 자기가 말할 내용뿐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상대방이 잘 알아들을지 까지도 계산해가며 발표하는 야스나는 어쩌면 교실에 하나쯤 있는 완벽해서 더 가까이 가기 싫은 친구들 중에 하나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림엽서 한 장에 고마워하고 감동할 줄 아는 그녀의 소박한 그 심성은 그간 그녀에게 있었던 그녀가 무슬림이라는 그 편견 또한 날려 버렸다.

 

터키 병사들이 그 ‘하얀 도시’에 반해 싸울 마음을 잃고 물러섰지만 폭격기 조종사들은 하얀 도시에 매료되는 일이 없이 베오그라드시를 덮쳤다는 문장에서 덜컥 겁이 났다. 이제 세상에 없는 요네하라 마리는 대체 이렇게 가슴 아픈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써 놓고 더 이상 얘기를 들려주지 않는다니 어쩌란 말인지.

 

그녀의 ‘추억 노트’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동유럽의 세 명의 소녀들의 얘기에 몰랐던 세계사를 배우는 기분이었다. 그녀와 함께 숨차게 혹은 느긋하게 친구를 기다리며 또는 정말로 약속의 장소에 나와 줄 것인지 초조한 마음으로 그녀들의 친구들과 조우했다. 그리고 내게도 있었던 몇몇의 친구들을 새하얀 노트에 서른이 넘은 나이에 노트에 적어 보았다.

 

이제라도 나도 그녀처럼 잊고 있던 그녀들을 만나고 싶었다. 리차 같은 엉뚱한 친구, 야스나처럼 가슴 아픈 친구, 그리고 만나서 유쾌하지 않을지 모르는 아냐 같은 친구일지라도 내 기억의 노트를 꺼내고 싶은 마음이다. 마리여사처럼 벅찬 그리운 마음을 맞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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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지식여행자 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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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떠올리는 죄의식, 책임감

 

몇 년 전 아스카이 치사의 책 “하루가 떠나면”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의 일이다. 그 책속의 주인공 하루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개였다. 늙은 노모를 모시듯 늙은 개를 남매가 번갈아 가며 돌보며 남매의 얘기도 풀어간다. 책속의 주인공인 하루는 그렇게 자신의 주인들에게 끝까지 돌봄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고 세상을 떠나면서 남매는 하루를 책임지며 돌보면서 느낀 부분들을 떠올리는 내용이었다.

언젠가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는 이슬 같은 강아지 한 마리가 떠올라 많이 우울했었다.

태어나서 주인이 네 번이나 바뀌고 결국 죽음의 원인도 알지 못한 채 싸늘하게 죽어간 그 강아지는 내게 두 번이나 왔다가 떠났던 강아지 이었고 그 강아지 때문에 책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돼 초롱초롱한 눈망울 때문에 귀엽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절대로 품속에 품어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 내게 마리여사의 행동은 존경스런 마음이 바다 건너 그녀의 집에 머물러 함께 그녀의 개와 고양이를 돌보고픈 마음까지 들게 한다.

많은 이들이 반려동물을 버리기도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는 말로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사람들도 많다. 마리여사처럼 유기견들과 고양이들을 키우는 사람들 또한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리여사가 들려주는 그들의 얘기들은 마치 운명처럼,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운명처럼 가족이 된 그들

 

러시아 번역가이며 통역사인 그녀가 일 때문에 만났던 무리와 도리, 그리고 겐, 페르시안 블루 고양이 타냐와 소냐, 겐 때문에 가족이 된 노라, 소냐의 자식인 시마와 료마의 대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마리여사는 마냥 동물이 좋아서 키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함께 가족이 되면 그녀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태어날 때 가족을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유기견이었던 겐이, 길고양이였던 무리와 도리가 운명처럼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것도 어쩜 그런 선택 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유기견이었던 겐은 마리여사가 자신의 주인이 될 것을 알고 기다려 온 것처럼 작지도 않은 몸으로 얌전히 자신을 받아 줄 주인을 위해 케이지 안에 몸을 구부려 들어가 앉는 모습에서는 코끝이 찡해왔다. 이렇게 그들이 가족을 맞는구나 싶고 또 겐의 그 행동을 옆에서 봤었다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 참 착하구나.” 칭찬을 많이 해주면서도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렀을 것 같다.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 같은 녀석의 그 행동이 참 애잔했다.

 

무리와 도리는 또 어떤가.

그녀가 발견한 두 마리의 길고양이들은 위험한 도로 속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운명이었는데도 마리여사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지키기 위해 일하는 도중 우여곡절을 겪으며 다정한 ‘겐’이 있는 집으로 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러시아에서 별견한 타냐와 소냐는 세관을 통과하기위해 온갖 시뮬레이션을 다 생각해 만반의 준비를 해서 가족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렇게 마리여사는 참, 대단한 가족을 만들어 냈다. 


인간 수컷이 없어도 사는 것은 다 똑같지.

  “고양이나 개도 좋지만 자네는 그보다 빨리 인간 수컷을 키우도록 노력하게. 인간 수컷 말이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요네하라 마리여사는 그의 은사님에게 이런 연하장의 답장을 보내셨다. 그 선생의 그 제자라도 둘 다 어찌나 센스쟁이시던지.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해박한 사회적인 식견, 소신 있는 그녀의 정치성 그리고 무엇보다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즉 나보다 더 나약한 것들을 안타까워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괜찮은 여자가 연애나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동물만 키운다는 것이 안쓰러워 보일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어쩜 우리가 꼭 짝을 지어 살아야 한다는 편견일 수 있다. 그녀는 동물과 함께 살면서 인간 수컷이 주는 희로애락을 더 많이 느끼며 살았을 것 같다. 

겐의 충성심, 일이 밀려 있을 때는 힘들고 귀찮았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녀를 운동시켜주는 겐과의 산책, 그 산책덕분에 그녀는 밖의 향기와 소음이 주는 어떤 평화도 누렸을 것이다.

동네에서 절대적으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도리를 지키기 위해 항상 밖에서 집을 지키며 돌아오는 무리의 든든함. 나무 타기를 마스터하고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마리여사를 기다렸다가 보여주는 깜찍한 도리의 묘기.

무리와 도리를 정관 수술을 시켰기 때문에 타냐와 소냐는 시키지 않았었는데 결국 소냐가 임신을 했다. 그래서 얻는 그들의 새끼들. 그 새끼들을 안았을 때의 그 환희. 그녀를 할머니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또 아니다. 사람도 사귀면서 상처를 받듯 가족들에게서 받는 상처들처럼 아픈 일들도 있다. 그중에 가장 큰 사건은 무리가 고양이 에이즈에 결려 죽게 된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책을 끝까지 다 읽어 놓고서도 혹시 소식을 더 써 놓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뒷 페이지를 몇 번씩 더 펼쳐 보게 되었던 겐의 행방불명된 일이었다. 
 

선책을 자주 나갔으니 집을 찾아 왔을 번한 똑똑한 겐 일텐데 왜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마리여사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 집을 지키기 위해 짖었던 겐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돌아오지 않았을까.

겐을 찾기 위해 만나게 된 노라는 어쩌면 겐보다 처지가 더 안쓰러운 유기견이 아니였을까. 혹시 그걸 알고 있어서 그들의 언어로 노라를 마리여사에게 보내 그들의 가족으로 만들어 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상상을 해 봤다. 

 

 “쇠사슬을 빼도 개는 꼼짝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못하고 짖지도 않는다. 보지 못하는 탁한 눈으로 나를 향하고, 힘없이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불쌍했다. 귀 뒤의 목을 쓰다듬는데 자꾸만 눈물이 흘러나왔다. 개는 순식간에 생기를 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빨리 빼줄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개의 몸이 갑자기 뻣뻣해지는 것 같더니 가느다란 비명을 지르며 숨을 거뒀다. 주변은 이미 캄캄했다.” - P217 

겐과 함께 산책을 하던 중 묶여 있던 늙고 병든 개를 위해 그녀가 해준 일을 읽으면 동물을 키웠던 사람들은 키워 보았기에 더 안쓰러운 마음을. 키우지 않은 사람들은 그녀의 표현의 공감으로 다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겐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그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질 것 같다. 그녀의 이런 매력적인 얘기들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에 말이다.

또한 그녀가 들려주는 러시아 얘기들은 얼마나 달콤한지.  

<미식 견문록>에서는 더욱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지만 이 책에서도 그녀가 들려주는 고양이와 함께한 얘기들은 재미있는 동화 같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알고 있고 좋아했고 즐겼던 그녀였기에, 나는.

그녀가 그토록 좋아했던 그 무엇인가로 그녀는 다시 태어났을 것이라고…….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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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마종기 시작詩作 에세이
마종기 지음 / 비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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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가고 이념과 이상이 나를 괴롭혔을 때 선배가 내게 내민 것은 마종기의 시집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이었다. 그때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오는 시집들을 모두 읽어야지 했지만 나는 거리에 나와 활주하느라 시집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동료가 다쳤고 손가락 혈서까지 쓰는 일이 생기고 나니 더럭 내가 하는 일이 겁이 나서 한 달을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찾아온 선배의 손에 들려 있는 여러권의 책들 속에 있었던 책이 마종기의 시집이었고 나는 밤새 읽으며 울었다.

 

나를 다시 달리게 했던 시인이 벌써 50주년을 맞았다. 그 기념으로 자신의 시 50편을 추리고 그 시마다 시인의 주석을 달아주셨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잊지 못하는 그 시들도 실렸다. 아련한 그때의 추억으로 나는 다시금 김연수의 말처럼 끊어진 거문고 줄 소리를 들었다.

 

시인 마종기는 태어난 배경부터 남다르다.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와서 20대에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 이후 30년동안 한국에 오지 않다가 다시 고국으로 와서 살다가 미국으로 오가며 살고 있고, 아동 문학가인 유명한 아버지를 두셨으며 한국 여성으로는 최초인 서양무용가로 활동한 어머니를 두셨다. 더욱이 연세대 의대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다시 미국에서 방사선과 전문의가 되고 1995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소아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셨고, 아들은 같은 의료직에 근무하는 의사고, 둘째 아들은 변호사에 셋째 아들은 사업가인 참 부럽고 동경의 대상이 되는 스펙을 가지셨다고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에 나는 그가 우리 아버지라면(나의 친 아버지에게 미안하게도) 얼마나 좋을까 했을 화려한 스펙이 부러웠지만 그의 시를 읽고 시에 대해 풀어주는 얘기들을 듣고 나니 더욱 더 그의 딸이 되고 싶어졌다.

이런 시를 들려주는 아버지는 어떨까?

어쩜 별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셨다는 시인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느낌이었지 않을까?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렇게 긴 시간을 두고 다시 한 번 떠 올리며 아프게 그리워하는 딸이 되어 있지 않을까? (웃긴 상상이었다.)

 

고국을 너무도 오랫동안 오지 못했고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미국에서 살아온 시인의 당신은 혹시 떠나온 고국을 부르며 살았던 것일까 생각했지만 당신은 시인의 나라이며 가족들과 그때의 모든 그리움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안 보이는 사람의 나라> 중 (P65~69)

 

3. 대화 對話

아빠, 무섭지 않아?

아냐, 어두워.

인제 어디 갈 거야?

가봐야지.

아주 못 보는 건 아니지?

아니, 가끔 만날 거야.

이렇게 어두운 데서만?

아니, 밝은 데서도 볼 거다.

아빠는 아빠 나라로 갈 거야?

아무래도 그쪽이 내게는 정답지.

(중략)

-아빠, 갔다가 꼭 돌아와요, 아빠가 찾던 것은 아마 없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꼭 찾아보세요. 그래서 아빠, 더 이상 헤매지 마세요.

 

 

대화는 아빠인 나와 아들 혹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시인의 아버지와 자신이 얘기하듯 써내려간 시를 읽는 동안 애잔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었는데 그때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힘이 되어준 시이기도 한 이 시는 정말로 시인이 고국으로 돌아오기로 했었는데 가족들이 모두 미국으로 와버린 상황이라서 갈 수 없어 다시 고국 행을 포기하고 써내려간 시라고 했다. 역시 시(時)나 소설이나 모두 아픔을 가진 것들은 이렇게 타인에게도 고스란히 그 아픔이 전해오는 것이다.

 

유독 시를 읽는 동안 가족에 대한 아픔을 많이 느낄 수가 있었다.

특히 고국 행을 포기하게 했던 동생이 미국으로 건너오고 유독 자신을 잘 따랐던 동생이었고 자신을 닮고 싶어서 의대도 가고 싶다는 동생을 자신이 하지 못했던 문학을 하게하고 기자가 되었음 했던 그래서 그렇게 되어 주었던 동생이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버리고 형에게 와야 했던 그 동생의 죽음을 얘기하는 시인의 글자들에서 보이지 않는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피붙이의 황량한 묘지 앞에 서면

생시의 모습이 춥고 애잔해서

눈 오시는 날에도 가슴 미어지는구나.

 

::

그렇다, 우리는 도저히 헤어지지 않는다.

네 숨결은 묘지 근처의 맑고 찬 공기,

하늘이 더 낮게 내려와 우리는 손을 잡는다.

어느새 눈이 그치고 바람이 자고 우리가,

_겨울 묘지 P187>

 

 

 

절대로 끝을 낼 수 없는 동생에 대한 애잔함, 쓸쓸함, 그리움이 시에서도 결국 마침표를 찍어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50편의 시중에서 나는 최고를 꼽으라고 한다면 <악어>를 꼽고 싶다. 일흔이 넘은 시인이 제 나이에 걸맞은 삶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악어 시문 中234) 시인의 얘기에 어떻게 살아야 더 알 수 있다는 말일까 싶은 생각이 드는 시였는데 다 읽고 그의 얘기를 듣고 나니 그동안 읽은 시들을 느리고 낮은 포복으로 기어 다니는 악어가 모두 먹어버렸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지 못하고 사는 장남의 삶은 악어 같다는 시인의 자괴감이란 참 그것마저도 부럽구나,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그 죽음을 함께 해주지 못했던 시인이 가졌을 절대적인 슬픔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를 내치듯 다른 나라로 보냈던 조국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그리움이 이렇게 긴 시간을 보냈고 시인은 아직도 그것을 모두 당신이라 부르며 그리워하고 있었다.

어떤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슬픔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혹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공감하는 사람들이라면 시인의 시들이 모두다 꽃으로 피겠지. 그래서 나도 이렇게 그가 불러주는 그리움의 노래들에 혼자서 옛 생각을 떠올리는 것일지도.

그래서 그의 시들이 늘 멀리 있는 나라를 그리워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듯 나도 이렇게 위로하면서 그의 시를 읽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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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서 살다
조은 지음, 김홍희 사진 / 마음산책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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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사람이 달라지는 데는 반드시, 고통이 동반된다. 그것이 우리 삶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 고통은 평화로운 물처럼 흘러가지 않고 격랑을 몰고 오는 사랑에서부터 시작된다. - 사랑의 말 이곳 저곳에 대하여 P 51"

 

꼭 나이와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잘 맞춰진 옷처럼 내 몸의 이곳저곳을 잘 가려주는 듯한 옷을 입는다는 느낌이 드는 물건을 만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날 때도 나이와 연관이 있는 듯하다.

2002년 1판 4쇄에 발행된 <벼랑에서 살다>를 읽었을 때는 이십대 날것의 감성이어서 그랬는지 사실 어떤 감흥보다 시인 조은의 맛깔나게 글을 쓰는 것에 부럽다는 생각으로만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딱 8년이 지난지금 무심코 다시 들었던 책에서는 시간의 흐름만큼 나는 그녀의 집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책을 읽다가 뭔가 뚝 떨어져 화들짝 놀라보면 지네가 떨어져 있다는 그 황토로 지은 사직동 집에 들어가 여기저기 구경을 하면서 얘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밥 주는 주인의 손도 물어서 퉁퉁 붓게 해 야속하지만 안쓰러운 또또와 함께 사직동 밖을 거닐고 있다. 시인 조은의 얘기를 들으면서 함께 걷고 쉬고 웃고 햇볕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밤에 반짝이는 별도 함께 보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건강해야 한다는 시인 조은의 말에 화들짝 놀라서 열심히 밖을 뛰다가 들어와 지인들이 그녀의 집에만 오면 다들 왜들 그렇게 잠을 잘도 자고 가는지 모르겠다는 그 집으로 들어가 따뜻한 아랫목으로 이동해 목까지 이불을 덮고 잠이 들어 있기도 한다.

 

 

간혹 그런 밤이면 혼자 사는 여자라고 어린 그녀에게 대출 보증인으로 내세워 주지도 않는 돈을 줬다며 그녀를 원망 섞인 표정으로 보았던 그 때문에 억울해 울며 길을 걷다가 넘어진 그녀의 발을 다시 한 번 보며 어루만지고 다독이고 있다. 혼자 사는 여자들은 왜 이런 재물이 되는 것일까 같이 분개하며 두 손을 꼭 잡고 온몸을 흔들며 주저앉아 울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사는 것이 벼랑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것처럼 애가 탄다.

 

 

하지만 그녀의 얘기들을 다 듣고 있노라면 그녀는 벼랑에서 사는 것이 아닌 좁다란 골목길이 즐비하게 놓인 작은 구멍가게를 지나 빌딩 속에 움트고 있는 황토방 같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분명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것은 그녀의 진실 된 표현의 공감에서 오는 애틋함 때문이다.

 

 

우리는 매 순간 벼랑에서 사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태롭다. 때로는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추락하고 만다. 하지만 추락하는 그 시점에서는 분명 누군가 나를 잡아줄 사람이 있었고 때로는 그녀의 말처럼 내가 달라지길 바라며 고통을 이기며 벼랑 끝을 오르기도 한다. 그 벼랑이 대단한 것이 아닌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진 벼랑일지라도 그 위험에 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의 본질인 것이다.

하지만 그 벼랑 끝에서 끝없이 자유롭고 행복한 조은을 느낀다. 그녀가 절대로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다. 내게도 그녀처럼 그런 여유로운 아늑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책으로 몇 번씩 읽는 책을 다시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녀의 책은 시간이 지나서 그녀와 함께 사직동 집을 거니는 느낌을 주는걸 보니 몇 해 지나 또 다시 읽으면 혹시 이번에는 내가 그곳에 집을 짓고 그녀와 얘기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해 봤다. 또또와 함께 놀러온 조은을 .....상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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