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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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케이블에서 해줬던 어떤 영화였던가, 시리즈 드라마였는지도 정확하지 않지만, 사형 집행을 하는 순간이었다. 약물이 투여하기 위해 침대에 누워 있는 사형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었다. “나는 절대 범인이 아니다. 내가 죽고 나면 당신들은 절대로 후회를 할 것이다.” 그 후 정말로 그가 범인이 아님이 밝혀졌던 참 어이없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살인 사건은 심증이 아니라 물증을 가지고 사건을 해결해 나가고 그 물증에 따라 살인범을 찾는다. 그것은 살인범을 찾는 것뿐이니라 어떤 사건이든 심증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경위를 따지며 사건의 진범을 찾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이 하는 그 행위가 때로는 물증으로 인해 범인이 아닌 사람마저 범인으로 바뀌는 경우가 생긴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이 소설 속에서도 그렇다.

두명의 여자를 죽이고 11년의 형을 살고 나온 살인범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는 한 남자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분명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기억이 나지 않는 그 몇 시간은 그에게 불리한 입장으로 바뀌고 명백한 증거들이 나오면서 결국 감옥에서 11년의 형을 살게 했다. 모범수였겠지만 그가 두명의 여성을 죽이고도 11년의 형이라는 것으로 출소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 너무 가벼운 형별이 아닐까 했었다. 소설 속에서 그를 빼내기 위해 너무 일찍 그가 나와 버린 것이 아닐까. 그의 나이가 30대가 아니라 40대나 50대로 좀 더 매력적인 중후한 모습으로 바뀌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순간 이미 그는 형을 다 마친 사람이기 때문에 더 이상 범인이 아니지만 여전히 그가 살해했다는 두명의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또다시 사건이 시작될 수 있음을 복선을 깔며 소설은 시작되었다.

그가 기억이 나지 않는 그 부분들을 찾아내는 구성들은 사실 여기저기서 조금씩 보았던 스릴러에서 보아온 부분이었다. 특히 범인은 항상 처음에 등장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그에게 다가온 오래된 친구의 등장부터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읽은 독일 소설, 그것도 스릴러인 이 소설이 마지막으로 갈수록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인간의 나약함을 과감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질 수 없는 한 여자의 오래된 무거운 침묵은 인간이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만 용서받을 수 없다.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 나약한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의 이기적인 심리 또한 우리들에게 인간의 편협함을 반성하게 한다.

마지막이 너무 쉽게 흘러갔던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좀 더 주인공의 아픔을 함께 공유 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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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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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문학의 숲> 차가운 밤 _ 바진

 

 

 

 

붉은 장미가 그려진 치파오를 입은 여자의 모습이 전부 담아있지 않는 다리만 보이는 사진을 들여다본다. 치파오는 늘 <화양연화> 장만옥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였을까. <차가운 밤, 寒夜>이라는 제목 때문에도 쓸쓸함이 책장을 덮고 있는 것만 같다. 묵직하지도 않는 책이지만, 책장을 덮고 있는 묵직한 분위기는 무시할 수가 없다.

시공사에서 내 놓는 세계문학의 숲 중 네 번째의 이야기, 중국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근대화 사회를 만들어 놓았던 시대를 살다간 역사적인 인물인 ‘바진’의 책이다. 책장에 있는 작가의 출생 연도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904년생인 작가는 2005년에 생을 마감했다. 백 한살을, 남들은 1세기도 다 못 살고 세상을 떠나지만 작가는 2세기나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생의 기간이 길었듯 역사의 소용돌이에 있었던 역사적 증언을 바탕으로 해 내 놓은 소설은 생동감이 가득하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여름에는 늘 전설의 고향을 해 주곤 했는데 그때 가장 많이 나왔던 소재들은 고부간의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며느리가 귀신으로 나와 자신의 한을 풀어 달라고 하는 얘기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방송을 하지 않지만, 4주후에 보자는 유행어를 남긴 <사랑과 전쟁>속에서도 고부간의 갈등으로 당사자들의 문제가 아닌 외부의 문제로 헤어지는 얘기들도 많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문제점은 많이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중국도 별단 다르지 않는걸 보면 말이다. 그게 어디 한 나라의 문제일까. 세상의 어디든 인간이라면 존재하는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소설속의 주인공들, 왕원쉬안, 청수성은 대학시절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으며 살게 됐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결혼식을 치르지 않고 살고 있다. 그리고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는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자신보다 높은 교육수준도 못마땅하지만, 가족을 돈을 아끼며 살아가는 한 가정의 아내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빨래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아픈 몸으로도 희생하며 살고 있지만 직업을, 그것도 1940년대에 은행에서 일 하는 며느리는 눈에 가시 같기만 하다.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내세울 것은 자신은 정식으로 결혼을 해서 집에 들어왔다는 것 말고는 없다. 집안 형편에 맞지 않게 아들을 귀족학교에 보내는 며느리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작품에서 극단적으로 치닫는 만큼의 고부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부분은 적다. 며느리를 무시하는 말은 그간 보아온 드라마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인지 두 사람의 갈등에 화해의 장을 만들어 주고 싶을 정도로 참 오순도순하다. 아마도 작가의 그런 심성을 닮은 것 같다. 물론 작가의 심성 따위 알지 못하지만 사진으로 보는 그의 얼굴에서 보여주는 선한 모습은 작품에 많이 녹아 있는 것 같다.

 

고부간의 갈등 중 가장 많은 미움을 받는 것은 중간 역할밖에 할 수 없는 남편이다. 왕원쉬안은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안쓰러울 정도로 우유부단하고 착하기만 하다. 그들의 관계는 한 나라의 역사와 많이 닮아 있다. 일본의 침략 속에서 언제 방공호로 몸을 피신해야 할지 모를 만큼 위태롭다. 아내는 시어머니의 모진 말과 멸시와 무시 속에서 언제 집을 나갈지 모른다. 나라를 언제 잃을지 모를 불안함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왕원쉬안은 가정에서도 똑같은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어머니는 고통을 호고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아내는 빛나고 풍부한 생명력과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청춘으로 그를 대했다. 그는 어머니의 초췌하고 수심 어린 얼굴을 보는 게 두려웠고, 아내의 생기발랄한 얼굴을 대하는 것도 두려웠다. 그는 더욱 말이 없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P110"

 

그의 불안은 가정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점점 아파오는 몸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하지만 전쟁의 불안한 시국에 언제 해고 시킬지 모를 냉정한 상사만 있을 뿐이다. 그를 가장 위로해 주었던 친구도 죽고 시어머니의 모진 말들도 참으며 같이 해줄 것 같은 아내도 떠났다. 그를 찾아오는 것은 폐결핵 균들밖에 없다.

 

고부간의 갈등은 역사의 갈등과 함께 존재하며 주인공의 쓸쓸한 최후를 보여주며 소설은 끝이 났다. 큰 굴곡을 가지고 있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읽는 동안 삶이 우리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을 계속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갈등에 누구하나 나쁘다고 말 할 수 없게끔 작가는 서로를 이해하게 주인공들을 설정해 놓았다. 자신의 세대와 다른 며느리를 이해해야만 하는 시어머니와 똑같이 살기엔 너무 젊고 똑똑한 며느리, 삶의 한편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가장의 무거운 현실에 어떤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먼 곳으로 전근을 갔던 아내가 다시 남편을 찾아왔다가 남편의 죽음을 알고 다시 돌아서서 가던 차디찬 밤의 기운이 소설 전반에 깔려있어 읽는 동안 차가운 바람이 계속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붉은 장미의 치파오를 입은 그녀가 멀리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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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의 비밀 - 주는 사람은 알지만 받는 사람은 모르는
박유연 외 지음 / 카르페디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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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는 사람은 알지만, 받는 사람은 모르는 월급의 비밀>

 

제목이 상당히 자극적이다.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받는 월급이 적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만하고 그에 따른 월급의 비밀을 알고 싶게 제목을 잘 따온 것 같다.

 

<어글리 베티> 시즌 1에서 베티는 우연치 않게 유명한 패션 잡지 회사의 비서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하루가 편할 날 없이 사건 사고를 해결하면서 한 달을 보냈고 그렇게 원하던 뉴욕에서의 첫 월급을 받았다. 실망한 그녀의 표정이 지나가고 사장과 함께 얘기 할 어떤 순간 재치 있게 불만을 말한다.

“세금을 너무 많이 때셨어요. 너무했어요.”

뉴욕에 있는 그녀도, 직장을 어렵게 구해서 행복하다고 말했던 그녀라도 세금과는 무관 할 수 없는 것이다. 나 또한 월급 명세서에서 빠져 나가는 많은 세금들을 보면서 내가 낸 세금만큼 내가 보호 받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 때가 많고, 의료보험 역시 간혹 의료보험을 낸 금액보다 훨씬 못 미치는 의료 혜택에 불만이 많다. 그래서 이 책이 시사한 비밀을 더 알고 싶었던 것도 있다.

 

사실 나는 연봉을 올려 받아야 하는 직업군에 있어 본적이 별루 없어서 연봉을 올리는 것의 챕터에 대한 부분은 많은 공감이 가지 않았는데 우리가 받은 월급이 수입과 지출의 영향을 받아서 산정된다는 것에 좀 당황스러웠다. 미국 미용사가 우리나라 미용사보다 월급이 훨씬 더 많이 버는 이유에대해서는 납득이 갔지만, 우리의 지출이 결국 우리가 받는 월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크다고 한다. 사실 월급을 받으면서 혹은 지출을 하면서 이런 부분까지 생각을 하면서 지내는 경우가 극히 적기 때문에 더 자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일 수밖에 없었다.

 

기준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통상적으로 적용이 되고 있는 월급이 업무 능력보다는 줄서는 능력에 더 많은 차이를 가져 온다는 챕터는 좀 화가 났다. 우리 사회의 우울한 단명을 보여 주는 것이지만, 어디 그것이 우리나라만의 문제일까. 그리스에는 청탁할 때만이 아니라 그 외의 어떤 권력에 상응하기 위해서는 웃돈이 필수라는데 할 말이 없다. 월급의 능력은 이런 줄서기 능력과 외모가 월급에 미치는 영향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그 사람의 능력에 따른 월급이 주어지는 것이고 그것에 맞는 자기 계발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나우콤 대표이사 문용식님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회사의 복지가 회사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생각된다. 월급이 조금 차이가 나더라도 회사의 복지를 이용하면 만족도가 클 것이고 그것으로 인한 사원의 능력은 향상될 것이지만, 아직 많은 회사들이 이런 복지를 갖춰 놓으면서 운영한다는 것은 아주 먼 시대의 이야기일까. 모 회사에서 행해지고 있는 년차마다 한 달씩 해외 배낭여행을 갖다 오도록 지원해 준다는 얘기는 정말로 솔깃할 수밖에 없다.

 

많은 월급의 문제점들이 있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조건으로 일하면서 같은 직급의 직원 간에는 임금차를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치 기반위에 각종 차별적 요소를 임금에 반영하지 못 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먼저 잦춰 올바른 임금이 지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후진적인 산업 구조 때문에 노동 생산성은 떨어지고, 서비스업만 늘어가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은 임금이 하락 할 것이다. 서비스업의 낮은 임금의 생산성 때문에 평균적 임금이 계속 저하된다면 그 그룹에 속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 또한 임금이 낮아 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을 제시해 준다. 이렇게 계속 간다면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중간 이상 임금을 주는 양질의 일자리가 쏟아져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앞으로 계속 질 낮은 서비스업의 생산성만 올라간다면 더 많은 청년 실업자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많은 중산층들이 파괴되고 하위권으로 흡수되면서 시작된 일자리의 불균형으로 상위와 하위의 월급 차이는 OECD 국가중 3번째로 가장 많은 차이가 나는 나리가 되고 말았다.

이 월급의 양극화는 결국 소비와 교육의 양극화까지 오면서 더욱 악조건 속으로 건강마저 흔들어 놓고 있다.



당장 월급을 받고 있는 우리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앞으로 일자리에서 꿈을 이뤄나갈 아이들을 위한 투명한 월급의 모습은 우리들이 이뤄나가야 할 것이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받는 월급에서 세금을 덜 내는 부분이라던가, 회사와 내가 조율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좀 더 조율을 해서 많이 받아 보고 싶은 마음에 책을 들었지만, 읽고 나니 앞으로의 우리 세대뿐만이 아니라 미래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 대한 생각에 많이 우울해졌다.

그리고 책에서는 그런 부분에 대한 얘기가 별루 없다.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 통상적이지 않는 얘기들을 해주고는 있지만 좀 뭉뚱그려 얘기하고 있는 부분도 많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속 시원하게 알고 싶은 부분을 긁어주는 부분은 많지 않다.

 

월급은 그 사람의 얼굴이 되기도 하고,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 사람의 전부가 되고 하고 일부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마땅히 열심히 일해 그에 따른 권리를 받아내는 행위이다. 그 행위가 좀 더 선진국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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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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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성장소설속의 여자 주인공들은 왜들 이럴까. 몇 달전 읽은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읽고선 삶이 참 모질다고 생각하게 했던 여자 주인공의 성장소설이었다. 물론 <트렁커>가 성장소설은 아니지만 그녀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오는 주인공의 성장과정은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과 비슷한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삶의 귀퉁이에서 자라나는 어린 싹들의 모습에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다치면 안 되니까, 아프면 안 되니까, 그들의 상처가 아주 오래도록 남아 지워지지 않으면 삶이 더 고달플 테니까.

 

하얗고 깨끗한 시트의 침대도 있는 서른이 넘은 여자 온두는 집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 멀쩡하게 집이 있으면서도 잠은 집에서 잠들 수 없는 그녀는 치유 할 수 없는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처럼 집에서 잠들지 못하고 어둑해지면 공터에 세워둔 차의 트렁크에서 잠을 자고 책을 읽고 별을 보는 이름이 있다. 이름이 이름인 남자, 참 독특한 이름들을 가진 두 주인공들은 집에서 잠을 자지 않고 차 트렁크에서 잠을 자는 트렁커들이다.

 

언젠가 인간극장에서 가수 김장훈이 공황장애로 잠들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는데 참 지독한 병라는 것을 알았다. 잠들려고 해도 잠들 수 없는 정신을 가지고 있는 그 공허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병. 온두 역시 그런 공황장애를 가진 한 사람으로 트렁크를 찾아 잠을 자면서 자신이 공터의 주이이라고 말하는 름을 만나게 되는 순간부터 둘 사이가 엮일 것 같다는 조짐은 쉽게 감지 할 수 있다. 그리고 름이 만들어 낸 ‘치킨차차차’라는 게임을 통해 듣는 온두와 름의 과거는 트렁크에서 잠자는 신기하고 별난 사람들의 얘기일 것 같다는 생각과 다르게 가슴의 답답한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

부모가 자살하려고 아이까지 약을 먹이려고 했지만 부모는 죽고 자신만 살아남은 어린 온두와 완벽한 남자만을 요구했던 군인 아버지에게 학대받았던 름의 과거를 듣는 게임이 지나갈 때마다 제발, 그들의 진실의 게임이 빨리 끝나길 원했다.

 

“밤이 빨리 왔으면…….공터로 가고 싶어. 게임에서 지고 싶어, 기억을 잃고 싶어.” P192

 

그들이 트렁크속에서 잠들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말해야 하는 게임의 역을 지날 때마다 름의 얼굴의 상처가 아물어지고 잘려진 손가락의 마디가 길어질 듯 했다. 하지만 온두는 기억 저편에 있는 자아를 찾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 그녀에게 세명의 자아가 있다고 했던 피의 말처럼 그녀에게는 항아리속에 쌓아 둔 낡은 옷처럼 숨겨 놓은 자아가 여러명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녀의 진정한 자아를 꺼내는 일은 무거운 항아리 뚜껑을 여는것처럼 어려운 일이아닐까.

 

름의 얘기들에는 많이 속상하다. 피가 낭자한 영화를 열두편은 더 본 것 같은 기분이다. 그의 가족사의 얘기들에는 피말고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일까. 름의 이름만 들으면 손 마디마디에 고름이 가득 들어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더 힘들었을 것 같은 그들의 삶의 저편을 많이 위로해주고 싶었다.

 

서로를 보듬어 줄 것 같은 그들의 이야기의 엔딩에서 다행이라는 말이 떠 오른다. 온두는 름의 짧은 손 마디를 아파하며 사랑해줄 것 같고, 름은 온두의 항아리 뚜껑속을 다시는 들여보지 않도록 자아를 찾아줄 것 같다. 그렇게 서로를 치유해 나가며 그들의 트렁크속에 단꿈들이 가득 들어찰 것 같다.

 

문득 ‘치킨차차차’라는 진실게임을 나도 해야 할 것 같다. 매일 지긋지긋하게 말하는 불평과 불만, 질투, 짜증이 아닌 사랑과 위로, 행복을 얘기하며 나를 위로하고, 그리움이 아닌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해져야 할 것 같은 그 게임을 시작해야겠다. 어쩜 우리들 모두에게 필요한 게임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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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을 이길 그 어떤 재주도 없다 - 나우누리에서 아프리카TV까지 나우콤과 문용식 이야기
문용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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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희경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거짓말>이라는 드라마 때문이었다. 잘 몰랐던 그녀의 작품에 열광했지만 주변에는 그녀의 작품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노희경의 얘기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친구가 알려준 곳이 천리안이라는 곳이었다. 나를 PC통신에 처음 접하게 했던 곳이었다. 그당시의 신세계는 지금의 신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아날로그적 낭만이 있었던 것 같다. 90년대 초 PC통신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귀에 익은 <천리안>, <하이텔>,<나우누리>등은 이제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추억의 전유물이 되었다. 요즘은 채팅이라고 하면 뭔가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 같지만 pc통신의 채팅은 향수가 있었다고 할까.

 

인터넷의 보급으로 나 또한 천리안에서 넷츠고로 이후 한메일 아이디로 갈아타며 시대의 흐름을 함께 했다고 할까. 그런 IT의 변화의 소동돌이 속에서도 여전히 건재함을 자랑하는 기업 나우누리가 있었다. 사실 나우누리의 존재의 유뮤에 궁금함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IT 시장의 급변화를 알 수 있었다.

 

책속에서도 나오는 <꾸준함을 이길 그 어떤 재주도 없다>는 말은 들으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말이지만 현실의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실리에 맞지 않는 말이라는 생각이 더 들때가 많다. 나의 꾸준함이 얼마큼이나 가야 재주를 부릴 수 있을까. 뭐 그런 회의적인 반응 정도.

 

나우누리에서 아프리카 TV까지 IT문화와 시장을 꾸준히 개척해 나간 나우콤 대표이사 문용식님의 얘기는 어떤 드라마의 주인공보다 스팩다클한 인생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역경의 세기가 더 강력하다. 책을 읽으면서 재주와 같다는 꾸준함을 어떻게 계속 유지해야 할것인가가 나의 궁금증이었건만 그런 것은 벌써 안드로메다로 사라지고 한 남자의 성공이야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 어떤 소설보다 드라마틱하고 우연으로 이뤄지는 개연성은 혀를 내두른다. 얼마 전 읽은 박칼린 에세이에서 느꼈던 범상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범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꼭 그를 구해줄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과 같다.

 

“현재가 없는데 어떻게 미래가 있을 수 있냐? 어떤 미래? 나는 현재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미래도 없기 때문에 빚이 되든 어쨌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주어진 현재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서 그럴듯한 미래가 언제 오냐?” P121

 

항상 말하는 현재의 중요성이다. 지금이 가장 중요하니까 지금을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구절인 것 같다.

그가 생각하는 기업의 생각도 참 마음에 든다. 기업은 오너의 것이 아니고 주주와 임직원의 이해가 고루 맞아야 하고, 기업의 활동이 당연히 사회와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그 순리적인 얘기에 공감하지만 이런 모토를 가진 기업을 만난다는 것은 가뭄의 콩 나듯 한일 아닐까.

그가 말하는 좋은 사람이란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려와 존중을 할 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좋은 사람이라는 그 얘기에 충분한 공감을 한다면 이 책에 대한 미덕을 모두 가져간 것 같다. 사원을 위한 복지를 개선하는 부분을 보니까 참 좋은 상사이다. 그와 같은 상사라면 나는 말단 사원으로 다시 들어가 일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모 기업에서 잔업 업무가 많고 쉬지도 못하고 일을 강요 속에서 일을 했던 한 청년이 병가 휴직을 낸후 다시 복직하고 나서 며칠만에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얼마나 회사가 지옥 같았으면 그랬을까. 죽는 것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보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을 그 청년을 생각하면 좋을 회사,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회사야말로 이시대에 가장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그런면에서 회사에서 재미있는 이벤트를 열어 사원의 흥미를 북돋아주는 그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한 리더가 아닐까.

 

옛 말에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어떤 것이든 한우물을 하는 꾸준함을 가진다면 뭔들 못할까 싶다. 아무런 재주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꾸준한 마음을 가진다는 것조차가 재능이라고 말하는 그의 응원에 한껏 파이팅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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