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습관 - 병 없이 건강하게 사는
이시하라 유미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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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건강을 유지하며 장수 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의료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과거보다 암 발병률이 높아졌어도 못 고쳤던 암을 고쳐내는 숫자가 올라갔지만 여전히 암은 건강하며 살아가는 생활에서 가장 치명적인 걸림돌이다.

 

 

먹거리와 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에 백수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늘어간다고 하지만 나는 백세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큼 살다가 이 세상과 이별할지 모르겠지만 건강하게 살며 아프지 않고 눈 감고 가고 싶은 소망이야 어디 나뿐일까.

그렇기 때문에 더 건강하게 지내며 살아가고자 운동도 하고 건강 보조식품도 먹어 보고 했지만 여전히 마음과 육체는 너무 멀리 있는것 같다. 좀처럼 꾸준한 운동을 할 수 없고, 보조식품 또한 잊고 먹지 않을 때가 많다.

 

운동을 하거나 건강 보조식품을 먹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먹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100세 습관]의 책 또한 운동도 중요하지만 꾸준하게 자연식으로 먹는 습관의 중요성에 더 큰 초점을 두고 있다.

“자연식 밥상이 보약이다.”P24 라는 말처럼 짜거나 맵지 않게 자연 있는 그대로의 식탁을 차려 소식하며 먹음으로 인간의 수명을 더 길게 연장 할 수 있고,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의 암과도 멀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장수 10계명

 

1. 독(毒)도 잘만 쓰면 최대 15년 동안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여기서 독이란 엑스선, 술, 햇빛을 말한다).

2. 정신 상태를 안정시킨다.(행복한 결혼 생활과 가정은 장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결혼한 사람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남성은 7년, 여성은 2년 더 오래 산다.)

3. 오래 살 수 있는 환경, 특히 온난한 기후 지역에서 산다.

4. 적당한 수명 시간을 지키고, 포도주와 초콜릿을 적정량 섭취한다.

5. 지속적으로 두뇌 활동을 한다.

6. 병에 걸리기 전에 예방한다.

7. 음식이 곧 약이라고 생각한다.

8. 즐거운 일이나 취미에 몰두한다.

9. 새로운 방법이나 양식, 기술을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10. 늘 웃음을 잃지 않는다.

 

 

 

 

 

 

정서적인 부분이 많다. 아무래도 마음의 병이 모든 병의 근원일테니 그럴 수밖에. 운동의 중요성도 많이 얘기를 해줬다. 운동은 뇌졸중, 대장암, 우울증등 많은 것들을 치유 할 수 있고 대비 할 수 있는데 사실 이 부분이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을 몇 가지 소개해줘서 쉬엄쉬엄 한번 해 볼까 한다. 사람의 노화는 하체에서 시작한다고 하니 운동은 동안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얼마 전 모 텔레비전의 “끼니의 반란”이라는 스페셜을 봤다. 그것에 앞서 “1일1식”이라는 책을 통해서 나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고 사람의 오장육부가 편하게 쉴 수 있고 병과 멀어지는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책을 읽었다. 끼니의 반란은 그 책으로부터 정말 우리에게 하루에 한 끼의 식사가 건강과 관련이 있을까하는 의문점에서 시작된 프로였다. 이미 1일 1식으로 생활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생기고, 혹은 간헐적 단식을 통해 몸을 비우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에 책을 읽었을 때보다 훨씬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100세 습관]의 책에서도 소식과 부분 단식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하루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몸을 비워 두는 행위로 몸을 더 가볍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수로 유명한 마을의 노인들은 유산균이 많은 음식을 먹으며 소식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많이 보고되어 왔다. 그들의 장수도 소식과 운동에 있다.

 

 

“아프지 않고 오래 살고 싶은 당신을 위한 책” 이라고 하지만, 나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을 더 지향하고 싶다.

나 또한 건강하게 남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그동안 추워서 그만두었던 베드민턴을 다시 시작해야 할까보다.

과잉된 음식과 과잉된 건강 염려증으로 벗어나기 위해 읽는다면 그 취지에 딱 맞아 떨어질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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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기술 밀란 쿤데라 전집 11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 민음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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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절반 정도 읽다가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책은 아직 나에게 오기엔 이르다는 생각, 즉 이 책은 나에게 잘못 왔구나 싶었다. 너무나 유명한 밀란 쿤데라이지만 나의 비약한 도서 목록에는 그의 책이 많이 자리 잡지 않고 있기에 너무나 철학적이고 방대한 그의 작품을 논한 이 책은 어려운 숙제를 놓고 다 풀어야 하는 학생의 입장으로 책상에 앉아 며칠을 끙끙거리며 읽었다. 참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정독을 하고 다시 밑줄 친 부분을 또 읽으며 책을 곱씹어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책 표지에는 밀란 쿤데라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출생하여 1975년 프랑스로 정착하여 살았다는 소개가 전부다. 그래서 그의 전면을 좀 알아보고자 인터넷을 뒤졌다. 1929년생인 그가 절반의 인생은 분열되기 전인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살고 인생의 절반은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프랑스로 정착한 몇 년 후에 프랑스 시민권 취득 후 그는 프랑스인이 되었다. 그간 체코어로 적어 놓은 그의 책들도 프랑스어로 다시 번역을 하기도 했다고 해서 그가 추방당한 체코를 잊은 것인가 생각이 들지만 그의 책속에는 그의 출생지인 체코슬로바키아의 그리움은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부유한 환경에 놓였던 밀란 쿤데라여서 음악도 공부하고, 영화도 공부하고 문학과 함께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소설이나 사상은 깊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의 음악적 재능이 소설 속에서 강약과 빠르고 느리고의 흐름을 가져 주는 것도 그의 강점인 듯 하다.

 

그의 가장 대표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일 것이다. 한때 영화광이었던 나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영화 “프라하의 봄”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원작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여 찾아 읽어본 책이 어쩜 나는 밀린 쿤데라의 소설과 처음 만남이었다. 이후 그의 작품은 《농담》이 전부가 되어 [소설의 기술]을 읽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가 생각하는 소설이란 어떤 것인지 그 얘기 중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가지고 대담으로 나눠진 부분은 참 흥미롭게 읽은 것을 보면 역시 그의 작품을 읽지 않으면 이 책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그가 풀어 놓은 소설의 기술이라기보다, 유럽 문학의 기반과 특히 러시아 문학의 소중함을 말하는 그의 간결한 말들을 잘 느낄 수 있다. 나 또한 톨스토이부터 도스토예프스키, 헤밍웨이까지 러시아 문학을 꽃피웠던 그 시절의 문학을 가장 좋아하고 그들의 책을 통해 고전의 진리를 느낄 때가 많다. 우리가 읽고 있는 고전들은 대부분 유럽 문화 속에서 꽃피웠던 문학들이고 그 문학의 근간은 그가 말하려고 하는 소설의 한 시절 가장 단단했던 기둥을 가지고 있다.

 

 

그가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에 대한 부분을 여러 번 읽으면서 그 둘의 문학적으로 다른 부분들 다시 한번 떠 올려 봤다.

 

 

 

“ 도스토옙스키는 자기 논리의 끝까지 자기를 고집하는 이성의 광기를 포착한다. 톨스토이는 그 반대다. 그는 비논리적인 것, 비합리적인 것의 개입을 드러내 보여 준다. 내가 그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톨스토이를 참조함으로써 브로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리는 결정에서 비합리적인 것이 맡는 역할에 대한 탐구’라는, 유럽 소설의 위대한 탐구의 맥락 속에 자리 잡게 된다.” P90

 

 

 

그동안 계속 미루고 있었던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그의 언급이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안나 카레니나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라는 그의 질문과 그의 답변은 책을 정독하며 다시 느낀 그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아 여러 번 또 읽게 된다.

 

그가 느낀 소설은 어떤 것일까.

 

 

 

“소설이 우리의 시대정신과는 평화롭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과, 만일 소설이 아직 찾아지지 않는 것을 계속 찾아 나가고자 한다면 소설이 소설로서 ‘진보’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세계의 진보에 역행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P35

 

 

 

 

하지만 이 얘기보다 그가 만들어 놓은 그의 작품과 관련된 언어 사전속의 소설적 의미가 더 쉽게 와 닿는다.

 

 

 

"소설 작가가 실험적 자아(인물)를 통해 실존의 중요한 주제를 끝까지 탐사하는 위대한 산문형식.” P191

 

 

 

인터넷을 통해 찾은 소설의 사전적 의미는

 

 

명사

 

1 .<문학>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 일정한 구조 속에서 배경과 등장인물의 행동, 사상, 심리 따위를 통하여 인간의 모습이나 사회상을 드러낸다. 분량에 따라 장편ㆍ중편ㆍ단편으로, 내용에 따라 과학 소설ㆍ역사 소설ㆍ추리 소설 따위로 구분할 수 있으며, 옛날의 설화나 서사시 따위의 전통을 이어받아 근대에 와서 발달한 문학 양식이다. [비슷한 말] 이야기.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일도 쉽지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런 것들을 기승전결을 꾸려 소설을 쓰는 일은 그의 말처럼 위대한 일인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똑같은 산문형식이지만, 그가 말한 것처럼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의 전집들이 궁금해졌다. 그의 전집을 다 읽고 나면 [소설의 기술]이 훨씬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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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2013-03-24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읽을 때도 '오후즈음'님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오후즈음 2013-03-25 21:53   좋아요 0 | URL
저만 그런게 아니었군요. ㅠ.ㅠ
너무 어려웠어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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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많은 순간에 상처받고 살아가고 있다. 위로가 되어주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노래를 듣거나 혹은 맛있는 것을 먹거나 추억의 사진의 한 장이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혹은 선배가 건네주는 말에 위로가 되고 용기가 생길 때가 있을 것이다.

 

 

 

문득 나에게는 어떤 말들이 용기가, 위로가 되었었던가 생각해 본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꿈이 하나 있는데, 그걸 생각하면 나의 나이가 떠오른다. 이 나이에 내가 그걸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당연히 접어 버렸던 그 소망 앞에 <늦지 않았다>는 말이 허망하면서도 위로가 되고, 때로는 “너 아직 그 바닥에서 죽지 않았구나!” 말을 들으면 아직 내가 접지 않아도 될 그런 희망이었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곤 하다.

 

 

때론 누군가에게는 길가에 버려진 종이처럼 쓸모없는 말일지라도 절망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모습에 자책과 자학의 길에 서 있을 때 구원해줄 그런 말이기도 하다. 그런 말들을 골라 놓은 정호승 시간의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에는 책의 두께만큼 묵직한 용기들이 들어 있다. 그 용기는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양식이 되고 때로는 마음의 검은 그림자가 사라지는 마술을 부릴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는 말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너무나 평범하다. “인생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목적을 버려야 목적에 다다른다.”, “나만의 속도에 충실 하라.”, “지금이 바로 그때다.”, “용서는 신의 몫이다.” 등등 자기 계발서에서 많이 읽어 본 듯한 소제목들이다. 간혹 자기 계발서들의 제목과 일치하지 않는 내용이라던가 혹은 제목만 읽고도 다음 장을 그냥 넘겨 버리고 싶은 관념적이고 상투적인 얘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너무나 뻔해서 읽고 싶지 않고, 너무나 잘 알아서 듣고 싶지 않은 얘기들이 수두룩하다. 대체 이런 말로 절망에 빠진 나에게 용기를 준단 말인가 자문하면서 책에 대한 신뢰가 급 하락한다.

 

 

“기념하지 않는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실패는 기념함으로써 비로소 성공의 싹을 틔웁니다. 인생이라는 학교에서는 성공보다 실패가 교사입니다. 저는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실패라는 교사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그런 학생이 되고 싶습니다." P31

 

 

“ 인생의 수없는 동반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동반자는 바로 실패입니다.” P227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실패 때문에 많은 이들이 목숨을 버렸고 마음을 닫았다. 이런 상투적인 얘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단 말인지. 이런 마음은 아마도 닫힌 마음 때문에 드는 생각일 것이다.

 

 

아직 나에게도 두려워 시도하지 않은 일이 있다. 그 일 앞에서 분명 이 말은 큰 용기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패를 기념하고, 다시 도전하면 되는 삶이 아닐까. 때론 이런 말들이 너무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라 그냥 지나쳤을지 모르겠지만, 분명 어떤 도전을 앞둔 사람이거나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말일 것이다. 그 말이 때로는 벼랑 끝에 선 발을 쳐다보고 다시 내려 올 수 있는 용기를 줄지 모를 일이다.

 

한때 나는 [아마데우스] 영화를 보고 늘 내 자신이 살리에리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살리에리가 아마데우스를 보며 이런 말을 했었다.

 

 

 

“신이여, 당신은 제가 그토록 갈망했던 능력을 저런 방탕한 녀석에게 주시고 왜 저에게는 그 아름다움의 화신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밖에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P59

 

 

 

천재적은 능력은 없지만 분명 재능은 있었던 그가 아마데우스를 만나고 절망했었던 그 순간, 그가 용기를 내어 자신을 더 갈고 닦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그는 분명 위대한 음악가중 한 사람이었는데 그 사실을 그만 몰랐던 것일까.

그래서 나는 살리에리에 대한 애증이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사랑하지만 그의 천재적 재능을 탐하기보다 그를 보며 마음 아팠을 살리에리에 대한 동정 혹은 공감의 마음이 더 깊다. 많은 사람들은 모차르트보다 살리에리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이들이 천재가 될 수 없고 그들의 모습을 동경 혹은 질투하며 자신을 바꿔 나가거나 그들의 모습을 인정하고 자신의 모습을 순응하며 그렇게 살아나가고 있다.

 

 

 

가끔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기위해 쓴 책의 저자들이 스님이거나 수녀님들은 절대 화를 내지 않을까 궁금했다. 책에는 모두 참아 내거나 견뎌내면 그 일이 지나간다고 다독인다. 하지만 그런 말을 수백 번 들어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분노와 화가 있는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책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또한 그랬다. 뭐든 실패의 어머니를 삼아 좌절하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들이 너무 많아서 답답했지만 그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화를 냈던 일화에 웃음이 났다.

 

 

참 사소한 일에 화를 냈던 에피소드들에 그의 인간다움에 마음이 놓이는 이상한 현상이었다. 그도 이토록 화를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사람이구나. 우리에게 어떤 실의나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품지 말고 지나도록 하라는 말을 하는 그 또한 사소한 일에 화를 내거나 그것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이 상해 있는 사람 일 수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책을 읽어도 그 수간만큼은 절대 그 책의 내용이 뒷등으로도 들리지 않는 수련이 덜된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도 증오심을 품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는데 수련도 못한 사람들이 어찌 단 한순간에 없었던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마음을 해질녘까지 품지 말고 다음날까지 이월하지 않아야 하는 말은 수긍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화는 어찌 할 수 없다고 해도 그 다음날까지 그 마음으로 살아가면 일주일 혹은 한 달 내내 마음의 고통이 가시지 않는 것이다.

 

 

 

어떤 위인들은 누군가가 해준 작은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실패를 딛고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는 얘기를 한다. 때로는 어떤 이들은 절망의 순간에 자신에게 용기를 줬던 말로 죽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는 얘기도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강철마인드를 가지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분명 흔들리고 흔들리는 마음을 가져야 더 유연하게 살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점점 늘어나는 청소년들의 자살에 마음이 아프다. 그들이 견뎠던 더 모진 시간이 앞에 있을 수 있지만, 분명 삶은 살아 볼만한 인생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다. 절망의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도 그렇게 떠나지 않았을 텐데, 그 절망의 순간에 나타나는 손은 때로는 너무 야속하게 쉽게 오지 않는 것 같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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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한 생활의 권유 - 하루에 하나씩 실천하는 마음 씻는 법
마스노 슌묘 지음, 김혜진 옮김 / 더난출판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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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뭔가를 버리는 일을 자주 하다보니까 물건을 살 때 신중해지고 있다. 이 물건이 나에게 필요 한 것인가 생각하게 되고, 지금 사려고 하는 물건을 다른 것으로 대체 할 수 있는 것이 집에 없는지 찾게 된다. 또한 지금 이것을 사게 되면 집안에 필요 없는 물건은 또 뭐가 생기는지, 그것을 버릴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되니 좀처럼 물건 사는 일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대형마트에 가는 일을 자제하고 있다. 동네 작은 마트에서 살 때보다 확실히 많은 금액이 나오는 대형 마트에서 사온 음식들은 대부분 냉동고에 한두 달 있을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요즘 나의 라이프는 냉장고를 비우며 살자다.

 

 

비워야 채울 수 있는데, 그동안 냉장고를 너무 채우기만 하면서 살았다.

냉장고뿐만이 아니다. 주변에 널려있는 것들은 또 얼마나 필요 없는 것들이 많은지. 때론 생각들도 그렇다. 건강 염려증이 있는 나는 건강을 챙기지 않으면서 혹시 내가 암으로 죽게 된다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뭘 어떻게 주변 정리를 해야 하는 것일까 혹은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나는 뭘 하면서 살아야 하나 수많은 생각으로 밤에 잠을 자지 못할 때도 있다. 아직 일어나니 않은 일들 때문에 밤은 하루의 연장선으로 계속 이어져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때로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이 찜찜하게 남아서 마음이 홀쭉해지지 않는다. 그런 마음 때문에 뭔가를 비워 내자고 결심했었던 것 같다.

 

 

미스노 슌모 스님이 지은 <심플한 생활의 권유>는 지금 나에게 딱 맞았던 충고의 책이었다. 뭔가를 계속 비워내고 싶고, 마음을 단련시키고 싶어서 템플스테이도 신청해서 가 볼까 생각까지 했었다. 간단하게 살아가는 삶을 원하면서 아직도 내게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싶은 소유욕이 끊임없이 생기니 이런 이분법적 욕심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있지만, [15분 일찍 일어나기]를 한다면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이곳저곳에 쓰고 있는 서평 때문에 늘 책 읽을 시간이 부족했다.

 

 

“바쁠 때는 평소보다 15분 일찍 일어나보세요. 그리고 등을 곧게 펴고, 아랫배로 천천히 호흡을 해보세요. 호흡이 고르면 마음도 고요해집니다.” P19

 

 

비워내기만 하면 다 정리가 될 것 같은 일들도 사실은 비워 낸다고 한들 그것이 끝이 아닐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마음의 단단함을 위해 15분 일찍 일어나 참선의 자세를 한번 해 볼까 한다.

나의 필요 없는 것들은 미련 없이 버리기에 대한 마음이 이곳에 써져있다.

 

“ 그래도 만물의 흐름을 잘 보고 가뿐하게 살아가고 싶다면, 먼저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버리는 순산 새롭게 들어오는 것은 ‘풍족함과 여유’입니다. ” P 27

 

 

스님의 권유는 마음에 드는 구절이 참 많지만 이 부분은 나로서는 참, 어떻게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짜증날 때의 ‘마음정리법’ 인데 손을 마주하라고 하신다. 합장은 왼손은 자신, 오른손은 상대. 이미 짜증이 날대로 났을 텐데, 어떻게 손을 마주하고 미안합니다하고 말을 꺼내야 할까.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말은 이미 마음의 정리를 다 하고 상대를 받아들이라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한번 틀어지면 절대로 쉽게 마음을 놓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행동이다. 조용히 합장을 하는 습관을 들이면 놀랄 정도로 마음이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고 하시니 손해 날것 없으니 마음을 다스릴 방법을 좀 살펴볼까 싶다.

 

 

나는 늘 자기 전에 생각이 많다. 회사에서 했던 말들을 잘 걷어 들이며 살 수 있을까 생각도 하게 되고, 행동의 선택, 단어의 선택이 옳았을까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나의 다음날의 일상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전에 오늘 있었던 일들을 모두 내려놓고, 나를 새롭게 리셋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의 어머니는 참 억척스럽게 일을 하셨다. 그런 어머니는 늘 그런 얘기를 했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밥값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그“하루 일하지 않았다면 하루 먹지 말라.” P99 의 말처럼 지금의 당장의 것을 쫓지 말고 일을 즐겁게, 꾀부리지 않고 해야 할 것이다. 꼭 노동의 대가가 먹을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래서 요즘 밀어 놓은 책 읽기와 정리들을 더 이상 방치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무엇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치우치지 않으며, 얽매이지 않는 심플한 인생을 위한 100가지 권유]라는 표제의 말처럼 심플한 하루를 보내기 위한 권유가 마음에 드는 책이다. 무엇보다 짧은 말들 때문에 쉽게 빠르게 읽을 수 있어서 더 심플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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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이선희 옮김 / 예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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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지속된 폭력과 따돌림을 당하다가 투신 자신을 한 학생의 유서가 공개됐었다. 그 편지에는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며 온갖 욕설과 폭력 때문에 힘들었다는 얘기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편지 속에는 자신을 괴롭혔던 학생들의 이름이 나열되었다.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온 가해자 아이들은 자신들이 괴롭혔다는 부분은 일부 인정했지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 행동들과 기타 나머지 부분들은 모두 부정했다.

 

 

이런 기사가 처음이 아니다. 2011년에도 대구에서 투신 자실을 한 학생도 이런 비슷한 이유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몇 년 전 [6월의 일기]라는 영화 또한 따돌림과 괴로움 속에 살았던 한 학생의 죽음으로 인한 엄마가 일기를 보고 자신의 아들을 위한 복수를 그린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간혹 인터넷의 기사를 볼 때 잊고 있던 연예인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2위로 나오게 되면 혹시 자살 한 것이 아닐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꼭 그렇지 않은 기사들도 있지만 절반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는 청소년들에게 행복지수가 가장 최악인 나라가 되었고, 자살수치는 1등인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청소년 문제가 우리나라 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우리나라 청소년 소설에는 자살을 다룬 소설이 많다. 김려령의 소설 <우아한 거짓말>은 자살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얘기도 있지만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의 소설은 그 이후의 친구들의 얘기로 남은 사람들의 허전함을 담고 있었다.

 

 

 

 

 

 

처음 읽어보는 시게마츠 기요시의 작품 <십자가>또한 따돌림을 당하며 지내왔던 동급생의 자살을 소재로 삼고 있다. 동급생 중에 힘이 센 아이들은 유독 약해 보이는 아이들을 먹잇감으로 삼으며 자신의 무료함을 달랜다. 힘으로 제압한 그들의 권력은 어쩌면 하루를 짓누르는 자신들의 세계에서 가장 달콤한 시간 일 수 있다. 그런 달콤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때리고 괴롭히고, 돈을 갈취했을 것이다. 나약하게 주저앉은 모습이 자신의 모습일지 모른다며 때로는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더 심한 구타를 했을 것이다.

 

소설은 그들의 모습을 담기보다 후지슌이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 특히 가족과 연결된 동급생의 남은 삶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후지슌은 죽기 전 자신이 짝사랑했던 사유리에게 전화를 했고, 사유리의 생일 선물을 챙겨주고 싶었다.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후지슌의 선물을 받는 것이 꺼렸던 사유리는 당연히 휴지순의 선물이 반가울리 없다. 사유리는 당연히 휴지순의 선물을 거부했지만 그날 후지슌은 사유리에게 주기로 이미 마음에 정했던 선물을 포장했고, 사유리의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사유리의 선물을 포장했던 끈으로 자신의 집 감나무에 목을 매달고 죽었다. 죽기 전 이미 써 놓은 유서에는 주인공에서 절친이 되어줘서 고맙다는 말과, 사유리에게 미안하다는 말, 그리고 자신을 괴롭혔던 두 가해자에게 용서 하지 않겠다는 말을 적어 놓았다. 그리고 간혹 불렀던 바람에 자신이 몸이 흔들리며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후지슌의 아버지는 주인공에서 아주 괴로운 얼굴을 하고 죽었다는 얘기를 해 줬다.

 

 

 

죽은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자가 남겨 놓은 숙제들을 풀며 살아야 한다. 후지슌은 왜 주인공을 절친이라고 생각했을까. 그 물음 때문만이 아니라 후지슌이 절천이라고 칭해 놓은 그 단어 하나 때문에 몇 년을 휴지순의 기일에 휴지순의 어머니를 찾아 봐야했고 어찌 보면 후지슌 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척한 방관자이면서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앉아 있어야 하는 주인공의 마음은 편치 않다. 더욱이 후지슌이 짝사랑했던 사유리 또한 마지막 전화를 받은 사람이 자신이고, 혹시 자신이 그날 좀 더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다면 그렇게 무심히 세상을 떠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죄책감에 살아야 했다.

 

 

간혹 내가 했던 말들은 어떤 이에게 가시가 되어 박혀 상처가 되어 곪아진 채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이에게 받은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때로는 내가 했던 실수를 느꼈던 어떤 일들은 그 일이 십자가가 되어 나를 괴롭힌 채 등에 매달고 살아갈 수 있다.

 

 

후지슌 의 절친이 아니었던 주인공은 후지순의 절친이라는 말 때문에 그동안 자신의 방관자 입장에 있던 순간이 십자가가 되어 남은 시간을 힘들게 지냈다. 사유리는 후지순의 짝사랑 대상자였다는 이유로, 마지막 전화를 받았던 순간 그를 좀 더 따뜻하게 대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등에 진 채 살아가야 했다. 그래서 주인공과 사유리는 서로가 등에 진 십자가의 무게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가까워 질 수 없었을 것이다.

 

 

“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등에 진 채 계속 걸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지고 있어야 한은 거야.” P75

 

 

 

 

 

정작 후지슌 을 괴롭혔던 미시마와 네모토의 죄책감 따위는 책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을 응징하겠다는 아버지의 모습은 졸업식에 죽은 아들의 사진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끝이다. 범인이 정해져 있었던 왕따 놀이에 정작 괴롭고 힘든 사람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남은 가족들이다.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는 일상은 그동안 남겨진 추억들이 대신해야 했지만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아프고 괴로운 일이다. 더욱이 같은 동급생인 주인공과 사유리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도쿄의 대학에 들어가고 점점 성장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모습은 얼마나 아플까. 그런 모습에 점점 지켜갔기 때문에 아픈 몸을 더 이상 아파하지 않고 숨을 거둘 수 있었을지 모른다, 후지슌의 어머님은.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려본 후지슌은 [세계 여행 : 유럽]편에 스코그스키르코가르덴(묘지공원)에 종이를 끼워 놓았다. 커다란 십자가가 있는 그 공원의 모습을 보고 혹시 저자가 제목을 따온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뒤져 공원에 커다랗게 있다는 십자가의 모습을 찾아보았다.

 

 

 스웨덴 스코그스키르코가르덴(묘지공원)

 

 

 

“언덕 꼭대기에 우두커니 서 있어서 그런지 외톨이 특유의 쓸쓸함도 겸비하고 있었다.”P153

사진을 보았을 때,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본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떠난 자를 보내는 일은 쉽지 않다. 부모들은 더 그렇겠다. 후지슌이 가고 싶었는지 알 수 없지만 [세계 여행 : 유럽]편에 스코그스키르코가르덴(묘지공원)에 결국 찾아갔다. 그리고 20년이 넘게 떠나 보지 못했던 아들과의 만남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있었던 자리에 돌아와 남겨진 삶을 살아가겠지.

 

어느덧 주인공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인간은 경험을 해야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아이의 노트에 절친이라고 쓴 단어를 보며 차오르는 슬픔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후지슌이 왜 나를 절친이라고 했을까. 어쩜 주인공은 떠난 후지슌의 숙제를 더 풀어야 할지 모른다.

 

 

가볍게 읽었던 책이, 가슴 무겁게 끝이 났다. 마음이 쓸쓸한 오후였다. 문득 지나버린 일들을 떠 올린다. 아이들이 더 이상 가슴 아프게 삶을 포기하고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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