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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7
제러미 시프먼 지음, 김형수 옮김 / 포노(PHONO)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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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본 발레 공연이 “호두까기의 인형”이었다. 강약이 살아있어 보는 내내 숨죽여 봐야했던 공연은 최고였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또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공연이었는데 아마도 발레리나들의 몸짓보다 나는 그 속에 담겨있는 신경쇠약증에 걸린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조숙하기만 했던 나는 초등학교 5학년때 쇼팽의 야상곡을 들으며 울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좋아하게 되었던 쇼팽이후 다른 작곡가들에 대한 관심이 극히 떨어졌었는데 “호두까기의 인형” 때문에 차이콥스키의 음악의 강약이 그 어떤 갈등의 폭을 가지고 있는 드라마나 소설, 영화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피아노 협주곡만 좋아했던 나에게 신세계나 다름없는 웅장한 음악이었다는 것으로 기억된다.

 

음악가의 일생이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죽음 때문에도 있다. 화가나 소설가들처럼 극한의 상황을 맞이하여 자살하는 이들의 삶처럼 음악가들도 영혼을 태우며 자신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러시아 작가가나 화가들의 삶은 늘 풍족하게 시작한다는 것이 부러울 따름이기는 하다. 차이콥스키 또한 풍족한 삶을 영위하며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그의 대저택에 기거하는 하인만 해도 십여 명이 넘고, 지금의 오디오와 같은 기능을 하는 기계로 음악을 들었다고 하니 신문명을 접하는 얼리어답터인 것 같기도 하고 부유했던 그의 미소년 사진을 보니 그가 이후에 겪었던 어려움은 생각 할 수가 없었다.

 

차이콥스키가 신경쇠약증에 걸린 예민하고 날카로운 성격의 소유자인 것은 사실 그의 호두까기의 음악만 듣더라도 그 강약의 폭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감정 표현의 극한을 다루고 구축했기 때문에 바그너의 음악처럼 늘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P218)

 

잔잔한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늘 그의 예민하기만 한 감성이 그대로 표출되는 음악은 그런 감성 때문에 힘들었을 그의 유년시절과 청년기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둥글게 표현하지 못하고 날카로운 모서리로 자신의 감정을 계속해서 베어냈을 그는 또 어떤 고통 속에 있었을까. 그래서인지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것이 충격적이지 않았다. 남자들 사이에서 유독 연약하게만 보였던 차이콥스키의 모습은 당연히 법률학교속 같은 남자 동급생들에게는 어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감정이 아니었을까. 그런 그가 선택했던 과부 나데즈다 필라레토브나 폰 메크의 만남 또한 이상하지 않았던 것은 정상적인 사랑을 해보지 못한 차이콥스키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의 마지막까지 감정을 가져갔던 사람도 결혼한 부인이 아닌 메크여사가 아닐까. 그녀를 향한 절절한 편지들은 톨스토이처럼 서사를 잘 다루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극작가가 아니었을지언정 충분한 감성을 가진 천재음악가의 러브레터였다.

 

모차르트는 16세에 천재성을 드러낸 음악을 작곡했다지만 차이콥스키는 선천적으로 보여줬던 천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오페라가 실패를 했다가 다시 일어서고 성공하는 과정을 보면 어는 기업이 점차적으로 일어서는 석세스 스토리를 가진 기업역사를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는 늘 자신만만하기만 했다.

바흐에게는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가 위대한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우리에게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헨델에게는 차이콥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헨델은?

헨델은 완전히 삼류라서 흥미조차 안생긴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다.“ (P35)

 

뭐 이런 차도남이 다있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는 참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이다. 창의성과 능수능란한 솜씨가 꾸준히 나타나지만 그의 천재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P36) 시간이 필요했던 그의 음악처럼 그는 늘 타인에게 짐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악몽을 만들어내고 그것 때문에 우울증의 고전적인 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예술가는 늘 이토록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만 하는 것일까.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는 관현악을 만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또 그렇게 보냈을까. 우울하게만 생각되는 예술가의 삶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음악과 만났을 때는 빛날 수밖에 없다. 정직하게 감정을 실어 넣은 음악에 그 어떤 첨부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작곡가 중에서, 특히 위대한 작곡가 중에서 삶과 음악이 이토록 노골적이다 싶을 만틈 대책 없이 일치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인간으로서 차이콥스키는 정직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고 표리부동하기도 하지만 그에게 무슨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음악가로서 그는 더없이 정직했다. 선율과 관현악 기법에서 보여준 대단한 재능과 단순명쾌한 음악 덕분에 r는 수백만 명이 사랑하는 작곡가가 되었다.” (P15)

 

이 책은 작가의 전기와 작가의 음악 ‘간주곡’으로 나눠있다. 작가의 일생을 골라서 읽어 볼 수도 있고 간주곡만 따로 읽을 수도 있게 만들어 놓아서 간혹 한 챕터씩 작가의 음악 강연을 듣것 같기만 하다. 무엇보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것은 책과 함께 포함된 작가의 음악 CD다. 주장의 음악 CD를 다 듣고 나면 책을 덮을 수 있다. 마치 인생의 파노라마를 함께 타고 온 것만 같다. 그의 삶에 음악이 녹아있고, 시간이 흘러있다. 매우 매력적인 책이다. 이후에 시리즈로 올라와져 있는 리스트를 보았다. 내 사랑 쇼팽이 있다. 39세만 세상에 머물다가 사라진 그의 삶을 이렇게 또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생각하니 떨리기만 하다. 책 시리즈가 멋지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위대한 음악가, 완벽한 장인, 강력하고 독창적일 때가 많은 정신, 위대하고도 넉넉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념이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인간 정신이 말살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는 늘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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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지음, 이기웅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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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의 도시 방황.

 

오래전부터 정말로 가지고 싶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출국과 입국 도장이 가득 찍힌 너덜너덜한 여권이었다. 요즘 유독 여행관련 책을 많이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고 얼마전 아는 지인의 터키 여행 사진은 나의 갈망을 더욱 극대화 시켰다. 세계의 절반을 자전거로 돌았다는 모 예능 프로에 나온 젊은 청년이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부러움을 21세기도 아니고 20세기 그것도 1960년대에 아시아인이 유럽을 방황하며 그곳에서 자신이 원했던 건축이라는 꿈을 이뤄냈다는 인도다다오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스러운 인물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보통은 건축 관련 대학을 나오거나 그쪽을 통한 일을 통해 건축과 관련된 직업을 갖은것이라고 생각하는 통상의 생각에서 벗어난 인물인 안도다다오의 세계 각국의 건축물에 대한 생각은 그저 건축이란 건물의 내부와 외형으로 나눠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무지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생소할 뿐이다.

 

언젠가 분당 쪽을 지나고 있었는데 빼곡히 들어찬 아파트 라인이 눈에 들어왔었다. 마치 누워 있는 여인의 곡선을 연상하게 하는 아파트의 높이들이었다. 도시를 디자인한다는 어느 광고 카피의 말처럼 건축의 미학은 날이 갈수록 깊어진다.

 

안도다다오가 건축의 꿈을 갖게 되는 것은 어느 유명 건축 설계자의 도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건축을 지향한 나날은 긴장과 불안 속에서 낯선 땅을 홀로 헤매는 여정과 같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P11) 1960년대에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무거운 짐 가방을 들고 해외여행에 나선다. 그가 건축을 꿈꿀 수 있게 해줬던 르 코르뷔지와 만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안도다다오는 전문적인 교육 없이 멋진 건축가가 되었다. 요코하마에서 배를 타고 나훗카로 건너간 후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모스크바를 지나, 북구에서 파리로 들어가는 코스를 밟아 그는 르 코르뷔지의 건물을 보러갔다는 부분에서 그의 오랜 시간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비행기 한번이면 하루도 안 걸려 태평양도 건널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의 시대는 이렇게 눈물겹게 길을 건너야만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를 통해 할게 된 무수히 많은 도시들은 그가 빛을 좋아하는 건축가로 만든 것은 아닐까.

 

그의 건축에 대한 소신 있는 신념은 멋지다. 그 어떤 형태와 형식이 없는 로스엔젤레스의 도시를 보며 그는 말했다.

“나는 건축에 최소한의 자료와 형태를 이용하여 최대한의 효과를 발취하고자 한다. 일견 단순하게 보일지라도 실은 복잡한 공간을 창출하고자 한다. 나는 건축을 만들 때 예컨대 원과 정방형, 입방체와 같은 원초적이라 할 최소한의 기하학 형태를 이용한다. 애매함은 철저히 배제하여 모든 요소를 내려버림으로써 성립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P218)

모든 요소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이용하여 만들어내는 건축이야 말고 가장 근사한 작품이 아닐까. 인공적으로 만들어 질 수밖에 없는 건축은 자연을 살려 놓는다고 해도 이미 자연은 훼손되어 버린다고 생각한다. 웅장하고 멋있게 만들기 위해서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리는 것에서 자연을 살려 놓는 그 자연스러움이 가장 아름다운 건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작품들을 더 많이 만났으면 좋겠지만 요즘 어디 그런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 혹은 현실에서도 건축을 의뢰한 사람들과 설계자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아 무산되거나 큰 갈등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들을 정의하는 그의 말 또한 현명한 부분들이 있다.

“건축은 건축가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건축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이 구비되어야만 한다. 그 조건 중 하나로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건축주다. 예컨대 가우디의 구엘 공원도 구엘이라는 후원자의 열정 없이는 태어날 수 없었고, 구겐하임 미술관도 라이트의 꿈을 공유하는 감성을 갖춘 구겐하임 없이는 완성될 수 없었다. 건축주 또한 건축가의 공동작업자다.” (P212)

 

그는 구엘에 대한 언급이 많다. 구엘은 유명한 가우디의 후원자였다. 그런 후원자가 있어야만 건축은 건축가만의 것이 아니라 건축가의 이성과 창조력, 건설자의 기술과 열정, 거기에 건축주의 경제력과 의지가 존재해야 비로소 건축은 성립된다고 했다.

건축가의 설계를 받아 줄 수 있는 경제력 있는 건축주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예술가의 혼을 모두 담아주며 그를 후원해줄 수 있어서 그의 예술세계가 확대될 수 있었던 오래전 화가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비록 넉넉한 경제력은 아니었지만 그를 먹여 살렸던 테오가 없었다면 고흐는 더 일찍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본인의 50세 생일 선물로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 달라고 한 벨바움씨와의 작업 얘기에 그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좋은 건축을 만들기 위해서 좋은 건축가와 건축주가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만들어 낸 많은 훌륭한 건축물들은 얼마나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뤄졌다는 것인가. 그를 믿고 그의 신뢰를 통해 만들어진 공간과 그 공간속에 녹아든 시간이 멋지지 않을 수 없다.

 

콘크리트와 철과 유리라는 소재, 그리고 그것들을 밑받침하는 기술에 따라 확대해온 20세기의 건축, 그 자체에 집착한다고 하는 그의 건축물의 사진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정규 교육도 받지 않고 노력하며 만들어낸 그의 집착물들에 마음이 녹녹해지고 말았다. 그의 도시 방황 속에 스며들었던 그의 건축의 생각들은 나를 자꾸만 들뜨게 만들었다. 한 건축가가 자신이 떠돌았던 유럽과 아메리카의 도시들에 남겨진 방명록을 들춰보는 재미에 자꾸만 그 도시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가 마치지 못한 도시를 내가 방황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앞으로 건물이 그냥 건물이 아닌 누군가의 집념의 집착물이라고 생각하니 나의 집착물은 무얼까 고민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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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사진철학의 풍경들 
진동선 (지은이) | 문예중앙 | 2011-07-11  

여행을 잘 다니지는 않지만 어딘가든 찍어 오는 사진들은 늘 그곳의 풍경사진들 뿐이었다. 사람을 넣지 않는 사진들때문에 간혹 지은들은 왜 사람이 없는 사진들만 찍어 오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나의 철학은 그런것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직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크다고 할까. 사람이 없어야 같이 갔던 혹은 혼자 스쳐갔던 그때의 모습을 다시 떠 올려 보고 싶은 억지같은 마음일지 모르겠다. 그래서였는지 작가마다 사진속에 담아 놓은 그 철학들을 알고 싶을때가 많다.  책에서는 우리가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갔던 풍경의 한장에 대한 철학을 들려 줄것 같다.  

 

 

 

 

이중섭을 훔치다 
김영진 (지은이) | 미다스북스 | 2011-07-11

작가의 삶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감동적이다. 그것도 역경이 있었던 인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그림 한장으로 이중섭을 알기에 부족했던 사람들을 그림과 함께 감동시킬것이다. 그의 삶을 따라간다는 것은 우직한 소처럼 기다려야 할것 같기만 하다. 책의 첫장을 넘기는것부터 어디선가 낮은 소의 울음소리로 신호를 받으며 펼쳐야 할것 같은 판타지가 열리는것 같가.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 - 미학의 눈으로 보는 아방가르드 시대의 예술 ㅣ 서양 미술사 2     
 
그는 왜 이다지도 많은 이슈를 만들고 다니는 것일까. 그의 말 한 마디가 큰 파장을 낳는 다는 것을 그는 즐기고 있을까. 늘 궁금했지만 독자들은 그의 미학에 빠져들고 그론 이슈따위는 사라져 버린다. 그가 들려준 미학오디세이도 참 즐거웠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작가로서의 진중권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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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의 권유
이중재 지음 / 토네이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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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학의 권유

 

사람들은 내게 참 손재주 좋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요리, 바느질, 비즈, 홈베이킹, 떡 만들기, 리폼 등등 손으로 하는 것은 대충은 어깨너머로 배워 거의 다 하는 것 같은데 가장 중요한 것은 뭐 하나 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프로페셔널하지 않다는 것이다. 죄다 인터넷 고수들을 따라하며 조금씩 맛보기 식으로 하고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나 선물 할 뿐인데 인터넷 고수들을 모르는 지인들은 나를 손재주가 탁월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문득 뭔가 전문가적인 솜씨를 낼 수 있는 것을 하나 완전정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늘 아마추어로 사는 게 뭐가 나쁜가 싶은 생각에 그냥 이것저것 조금씩 할 줄 아는 걸로 만족하며 살기로 했었다.

생각해 보니 누가 알려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책을 구입해서 독학했던 것들이 위의 것만이 아니다. 나는 피아노도 기타도 모두 독학으로 마스터했다. 물론 피아노는 베토벤이나 체르니30까지는 안되지만 악보를 보고 어느 정도 칠 수 있는 정도로 책을 사서 마스터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기타는 제법 코드를 잘 외워 동아리 모꼬지 갈 때면 밤에 모닥불 피워 놓고 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실증을 잘 느낀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금씩 해 놓고 재미없으니 거기서 끝이 나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까 그동안 아주 조금씩 맛만 보았던 것이 좀 아쉽기는 했다. 내가 어떤 것이든 하나에 몰두하지 못했던 것은 뭐든 시간이 없어서 그걸 다 배우기에는 벅찬 일상이라는 생각이 많았던 것도 있었다. 물론 이것이 사실일수도 있지만 흔한 변명일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며 나를 돌아볼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일까.

 

고등학교 시절 축구선수로 전지훈련을 외국으로 나가는 도중 자신의 이름을 영어로 쓰지도 못하고 영어를 읽지를 못해 대학교 미팅 장소를 찾지 못해 집으로 돌아왔다는 에피소드를 말하는 저자는 지금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재직 중인 사람이다.

알파벳도 모르던 축구선수가 축구를 그만두고 독학 4년만에 사법시험에 합격을, 그것도 그전에 법무사 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했다는 그의 일화를 통해 독학의 즐거움과 소중함을 알려주는 이 책은 그간 읽은 자기계발서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혔다.

먼저 그가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사실 많은 이들에게 자극적이다. 고승덕 변호사처럼 원래 머리가 좀 좋고 나름의 배경이 있었던 그의 행시, 사시 합격이 대단해 보이기는 하지만 놀랍거나 자극까지는 되지 않았다. 뭔가 다른 사람보다 좋은 조건의 이면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등학교까지 알파벳을 모르고 대학교 때는 영어 단어 뜻도 몰라 카페를 찾지도 못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무식한 운동선수였던 그가 이뤄낸 행적은 마치 나도 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극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그보다 나은 상황이니까 그 물에 발 담가 보면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어설픈 자신감이 생기는 것은 뭘까.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고 먼저 학원을 찾아가는 이들에게 스스로 공부를 하라는 독학의 의미는 절대적인 공감을 준다. 전국 상위 1%의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보다 학교에 돌아와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스스로 그날의 학습을 하는 아이들이 훨씬 많다. 학습이라는 말 자체가 배우고 익히는 행위인데 학교 가서 배우고 학원에서도 배우며 익힐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없다. 그런 면을 보더라도 스스로 독학을 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며 그 독학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남들이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갈 자리와 가지 않을 자리를 가려 원하는 공부에 몰두 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저자의 그런 얘기에 백번도 더 공감할 수밖에 없다.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 할 것이 아니라 기억력과 저장을 방해하는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취미 생활을 하고 하루에 10분 이상은 꼭 운동을 하며 즐거운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는 기꺼이 함께 어울리며 하는 독학은 고통스럽지 않을 것 같다. 한 가지만 오래 한다고 해서 집중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오래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끝까지 지루함을 참았던 몇 번의 일이 떠오른다. 몰입의 속도는 빠르고 그것을 습득하는 시간도 비례할 것인데 오래하면 좋다고 생각 했었을까.

안철수도 바둑을 배우기 위해 바둑을 알려고 50권의 책을 구입해 읽었다는데 나는 뭔가를 알기위해서 넘쳐 나는 인터넷 자료 몇 장으로 스스륵 배우고 그것이 끝이 되었던 학습이 너무 많다.

“공부는 1,000피스의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다. 1,000피스의 퍼즐을 한꺼번에 맞추려면 힘이 들지만, 100피스씩 나눠 맞춘 뒤 한데 합치면 금세 맞출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작은 성취감들이 모이면 보다 쉽게 큰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P93)

 

롤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늘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듣는다. 그의 모습을 닮기 위해 그가 노력한 만큼 나 또한 투자해야 한다는 것.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요즘 나의 숙제는 롤모델의 모습을 따라할 롤모델 찾는 일이다. 요즘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 저자들도 많고 사람들도 그렇다.

10년 후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기위해 가장 큰 숙제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독학의 중요함은 스스로를 진단하기 위함이고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긍정의 힘으로 끝까지 자신을 다독이며 앞서 나가라고 말한다. 늘 10후의 내 모습을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인가.

우선 꿈꾸기 전에 독학을 해야 할 바둑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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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반양장)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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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김려령의 이름만 들어도 완득이가 떠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한다. 그리고 입가에 웃음이 살짝 번진다. 완득이를 탄생시킨 그녀의 작품을 또 읽을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쁜 일이란 말인가. 김려령은 나처럼 이렇게 그녀의 책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지만 얼마 전에 읽은 <마당을 나온 암탉> 때문에 요즘 동화에 빠져있다. 그래서 김려령이 선택한 동화에 더 반가울 수밖에 없다. 아직도 마당을 나온 암탉의 마지막 장면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동화가 이렇게 사람 가슴을 울릴 수 있다는 새로운 기쁨이었다.

 

김려령은 이번에 자신에게 딱 맞는 등장인물을 선택했다. 집단 따돌림으로 고통 받다가 세상을 등진 중학생의 주인공,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었던 고딩 완득이가 주인공이었다면 이번은 동화를 쓰고 있는 작가인 자신이 주인공이 되었다.

동화 작가가 되어서 자신의 책이 서점에 있는 것을 볼 때면 부끄럽지만 그것이 좋아서 웃고 다닌다는 소박한 그녀처럼 < 그 사람을 본적이 있나요?>속의 화자는 문학상을 타고 동화작가로 등단한 작가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야기의 서술 구조를 얘기 할뿐 풀어 나가는 인물은 따로있다.

 

십여년 전에 갔었던 필리핀의 작은 동네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도로에 신호등과 건널목이 없다는 것이었다. 차도를 지나는 차선만 있을 뿐, 사람들이 건너가야 할 건널목이라는 것이 하나도 없는 큰 도로는 놀라웠다. 무섭게 지나가는 차들을 지켜보며 건널 때마다 오금이 저렸다. 해외에 와서 이렇게 무단횡단하다 죽는 것 아닐까 걱정스러웠지만 무단횡단의 걱정스러움이 어느덧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더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우리 동네에도 그런 곳이 있다. 사람이 먼저가 아닌 차가 먼저가 되어버린 도로. 어느덧 사람이 서 있을 곳은 없고 차들만 쉴 수 있도록 만들어져버린 도로에는 한손을 예쁘게 올리고 건너 갈 수 있는 건널목이 너무 멀리 있거나 없을 때도 있다. 그런 곳에 ‘건널목’씨가 나타났다. 위험한 도로를 건너게 할 수 있도록 가방에 건널목을 그려 넣은 천을 깔아 없던 도로를 만들어 주는 건널목씨. 화자 ‘나’는 잊지 않고 있었던 오래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그녀의 즐거운 글쓰기가 시작된다.

 

등단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될 것 같았다고 말했던 선배가 떠올랐다. 몇 년 동안 고생해서 작품 써서 등단했더니 작가가 되겠다고 열심히 썼던 글들은 모두 초기화가 되고 등단 이후부터 다시 처음이 되었다고 했다. 화자 ‘나’도 그렇다. 동화 작가가 되었지만 매일 종이를 찍어내듯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창작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 고통을 감내하느라 지내야 하는 시간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심난한 마음은 즐겁지만은 않다. 그래서 자신의 창작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아무것도 안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시작한 <오명랑의 이야기 듣기 교실>. 보통은 글쓰기 교실인데 작가 오명랑은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는 준비를 할수 있는 교실을 열었다. 아이들의 얘기가 아니라 작가 자신이 하는 얘기들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은 시범적으로 한 달간 무료라는 것에 아이들은 오명랑을 찾아오게 되고 가슴에 꺼내기 어려웠던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국어는 딱 하나였는데 요즘은 국어도 4종류로 나눠져 있다. 읽기, 말하기, 듣기, 쓰기 수업으로 나눠져 있고 듣기 수업에서는 동화나 이야기를 듣고 상상해서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수업이더라. 어쩌다 아이들을 가르쳤던 내가 아이들의 국어 과정이 바뀌어있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격세지감을 느꼈다. 그리고 국어가 이렇게 나눠져 목적에 맞게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문맥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일에 서툴기만 하다. 그래서 오명랑의 듣기 수업은 참 특별한 것 같다. 나의 얘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도 듣기가 잘되어야 할 텐데 그런 부분은 학습에 소외되기 일쑤다.

 

오명랑의 듣기 교실에서 시작된 건널목씨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건널목씨가 아파트 사람들의 배려로 비어있는 경비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돈을 받지도 않고 경비일을 봐주며 아이들을 위해 무거운 건널목 천을 가지고 다니지만 아동 성추행 범으로 오해를 받는 장면들이 나온다면 상처받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작가의 뻔한 스토리 전개에 더 실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김려령은 그런 상투적인 구성을 하지 않았다. 고마웠던 부분이었다.

감동을 받았던 그 부분에서 실망스러운 스토리 전개가 이뤄진다면 그 작가의 다음 작품은 절대로 기다려지지 않을 것이다.

뻔한 결말이 아닌 작가 나름의 고운 심성으로 결말이 맺어진 작품이었지만 사실 조금 심심한 부분도 없지 않아 뭔가 많이 먹었지만 헛배가 불러온 느낌이다. 아직도 김려령의 작품들에 독자인 내가 더 목마른 것 같다.

 

그래서 일까.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 그런 좁은 도로를 지날 때면 나는 뒤뚱거리며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걸어다가는 건널목씨를 떠올릴 것이다. 그가 나를 위한 건널목을 깔아줬으면 좋겠다. 매번 선택의 순간에 갈팡질팡하는 나를 위해 건널목을 놓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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