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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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지 않아도 괜찮은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 마쓰이에 마사시]

마흔 여덟에 이혼을 한 남자는 자신만의 가구들이 들어오는 순간을 보면서 흥분하기 시작했다. 인테리어 공사와 가구에 든 비용이 집을 구할 때 든 중개수수료를 훌쩍 넘어섰지만 괜찮았다. 얼마나 원했던 공간이란 말인가. 아내의 간섭과 잔소리 없이 오로지 자신만의 공간을 채워 나간다는 즐거움은 그동안의 결혼 생활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갈 것 같았다. 새로 이사한 집은 마음에 들고, 깐깐한 팩폭을 날리는 아내도 집에 없다. 저녁에는 공원을 느긋하게 걸으며 하늘에 걸린 달도 구경할 수 있는 날들이 펼쳐지는 독신의 삶이란 얼마나 우아한가. 그런데, 이것으로 행복하다고 얘기 할 수 있을까?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로 인기가 있는 작가였는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이 처음 접하게 된 작가다. 소설을 읽으면서 번역의 힘일지라도 단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의 내용이나 구성을 떠나서 그냥 분위기가 단정하게 접어 수납되어 있는 수건들의 느낌이라고 할까. 찾아 본 작가의 얼굴을 보니 무척 소설과 닮아 있다. 혹시 작가가 책속의 주인공 오카다 다다시였을까. 때로는 허무한 모습이 보이기도 한 사진 한 장에 흥미가 생긴다.

오카다 다다시가 큰돈을 들여 집을 고치고 가구를 들여 놓으면서 새로운 시작을 꿈꾸던 때에 나타난 전 연인 가나와 조우하게 된다. 불륜도 아닌, 독신의 삶의 시작에서 다시 만나게 된 전 애인이라니. 그것으로 행복한 엔딩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며 새로운 반전이 시작된다.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를 책임져야 할 가나는 오카다에게 병원을 가거나 큰일에 부탁을 하지만 함께 살지는 않는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와주며 서로의 아픔과 힘든 시간을 위로하는 친구로 남게 되는 것이 싫지 않은 오카다에게는 어느덧 호기롭게 시작된 독신남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의 마지막 독백처럼 들리는 이 말은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 것인지 알려주는 것 같다.

"가나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자고, 시시한 이야기를 하며 함께 웃고 싶다. 나이를 먹어서 정신이 흐려질 때까지 아니, 흐려진 뒤로도.

몇 번이고 가나와 이야기하자. 집이 완성되고 나서도 늦지 않다. 우아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 듣고 싶다." P 254

중년의 남자가 아내와 이혼을 하고 자신만을 위한 공간에서 우아한 노후를 맞이하는 얘기 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우아함은 어느덧 소설 밖으로 빠졌다. 우아한 삶이란 어쩌면 주인공의 머릿속에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오카다 다다시가 혼자가 되고 자신이 원하는 집을 찾아 만들고 비싼 가구들을 들여 놓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중년의 남자는 본인 마음속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처음 소다노씨에게 집을 빌렸을 아들을 따라 미국으로 들어가 다시는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을것 같으니 마음대로 인테리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다. 그러나 미국으로 갔던 소다노씨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를 들으며 그 집에서 나가야 된 것이다. 우아한 오후의 모든 시간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시작이라는 것도 해보지 않았는데 사라진 느낌, 처음부터 우아함이라는 것이 없었다는 듯 그의 집이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소설의 엔딩이 처음, 이혼을 했다로 시작한 첫 문장과 어울려 보인다. 심심하게 흘러가는 듯 보였지만 마지막 뭉클하게 와락 안기며 사라지는 연인의 뒷모습 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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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8-10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오후즈음 2022-08-18 17:3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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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적 감각을 키우자 [방과 후 - 히가시노 게이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며칠이 있었다. 그렇게 선택된 책이 책장에 잠들어 있는 게이고의 책들이었다. 그의 책들은 쉽게 읽히는 가독성이 좋은 책들이고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범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자신하며 읽었지만 오만이었다. 읽는 동안 공간적 감각을 키우며 읽으나 그림까지 그렸던 적은 없었다. 마치 내가 경찰이 되어 범인을 꼭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드는, 그런 순간이 계속 놓이게 하는 소설이다.




그가 추리 소설가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 시초가 된 작품이니 오래된 책임에도 전혀 시대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면 모르는 일본의 흐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2007년 초판을 가지고 있는데 2019년에 출판사가 다르게 신간으로 발간되었다. <방과 후>는 1985년에 출판된 책이니 벌써 37년이나 된 작품이다. 37년이 되어도 새로운 작품으로 나와도 이질감이 없는 소설이라니.



어느 한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마에시마는 플랫폼에서 누군가가 밀어서 떨어질 뻔했다. 그리고 수영장 샤워 실에서 감전사를 당할 뻔 했고, 머리 위에서 화분이 떨어져 크게 다칠 뻔 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위협하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일들이 지나간 후 그를 둘러싼 두 번째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 첫 번째 살인사건의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교내 탈의실에서 학생지도부 교사가 청산가리를 마시고 살해된 것이다.



교사와 단둘이 여향을 가지고 유혹하는 문제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미소녀, 얌전한 얼굴과 달리 남자관계가 복잡한 여교사등 범인 후보가 잇따라 밝혀지지만 마에시마는 그 셋 모두 의심스러웠다가 모두 혐의가 없다는 생각도 한다. 사실 그때 나는 복선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싶었던 소품을 가져간 사람을 의심했었다. 왜, 하필 그것을 가져갔을까?



두 번째의 살인사건은 학교 축제에서 발생했다. 가장 행렬에 술 취한 피에로로 변신하기로 했던 마에시마는 그날 피에로가 아닌 거지 분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원래 마에시마가 하기호 했던 피에로로 변장한 교사가 또다시 청산가리로 음독 살해되었다. 세 번 정도 자신을 스쳐갔던 위험을 떠 올리며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에 놓인 마에시마는 범인을 추리해 나간다. 살인의 방법, 살인의 이유를 찾기 위한 그의 불안감은 깊어만 갔다.



두 번째 살인의 방법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지만, 여전히 나는 첫 번째 살인 사건이 일어난 탈의실의 구조를 머릿속으로 이해하느라 힘들었다. 이런 나를 위해 작가가 그려 놓은 몇 가지의 그림을 통해 눈으로 그려지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곳으로 살인범을 그려 놓고 그 행위를 그려 나갔다. 이후 닥쳐오는 살인의 이유. 그것은 알기 힘들었다. 혹시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 그가 범인임을 알게 되고, 그 이유를 듣고 나서는 마음이 아팠다. 어떤 치욕스러운 부분을 누군가 알고 있다는 것은 정말 참기 힘든 모욕일 것이다. 소설 속에서 복선을 찾아나가는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면 정말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인데, 정작 아무 생각 없이 읽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어긋나는 소설이었다. 새로 나온 책의 표지가 급 스포일러라는 걸, 읽고 나면 알게 된다. 마지막 엔딩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화수분 같은 그의 글쓰기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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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7-07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말 책을 찍어내는 공장장 같아요 ㅋ 예전에는 히가시노 게이고 책 찾아 읽었는데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일단 어느정도 재미는 보장되는거 같아요 ^^

오후즈음 2022-07-14 18:40   좋아요 1 | URL
가독성 좋은 작가는 맞는것 같아요.
어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계속 쓸 수 있을까 부럽기만 합니다.

기억의집 2022-07-07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가 우리 나라에서도 인기지만 중국에서도 인기여서… 한번 찍어내면 백만부 금방 나간대요. 예전에 신촌역 미스터리 유니언 사장님이랑 이야기 하다가 그 말 하시더라고요. 우리랑 중국 시장 규모가 차이가 난다고~

오후즈음 2022-07-14 18:41   좋아요 0 | URL
대륙은 한번 터지면 돈방석이니....부럽습니다.
 





일주일 정도 수술 일정을 잡아 놓고선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루키였다. 여행갈 때마다 고양이 전용 호텔로 보냈다. 하루에 3만원, 각 룸이 다 있어서 루키는 전용 1인실 방에 들어가서 창문도 있는 방에 숙식을 하게 된다. 치앙마이 여행을 갔을 때 루키는 3마원, 나는 호스텔 1만 5천 원짜리에서 잤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동생네 집으로 갔다. 조카들이 루키와 함께 있고 싶어 했지만 워낙 집에 사람이 없어서 누군가 같이 특히 어린아이들을 싫어하는 루키 때문에 고민이 되었지만 일주일 말고 장기 입원을 고려하여 동생네 집으로 갔다.



이틀 정도는 숨어서 나오지도 않고 있다가 밤에 잠깐 나와 밥 먹고 화장실 사용하고 숨는 생활을 삼일 정도 하더니 이내 식구들이 들어오면 인사도 하고 간식도 받아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 좋아 꼬리 부르르 떨기도 하고....적응 중이라는 영상을 몇 개 병실에서 받아 보았다.




힘든 투병으로 반려 동물을 유기하는 이들의 기사를 봤었는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싶다. 그래도 나는 힘든 투병이 온다고 해도 루키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항암 유무가 결정되어지지 않아 아직 루키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항암이 시작되면 당분간은 동생네 집에 더 머물러 있어야 할 것 같다.

작은 상자에도 만족하며 골골대며 잠이 들었던 루키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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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7-05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려동물 때문에 마음껏 여행도 못하고 마음껏?아플수도 없는듯 합니다. 상자 터트릴듯한 루키 너무 깜찍이네요^^

오후즈음 2022-07-14 18:37   좋아요 1 | URL
저 상자가 정말 작거든요. 한권 들어가는 상자예요. 근데 저렇게 들어가서 있는데 웃기면서 뭔가 스스로 반성을.

기억의집 2022-07-05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후님 항암 치료 잘 되실 겁니다. 응원하겠습니다!! 루키도 적응 잘하고 조카분들에게 사랑 받고 있으니 맘 푹 놓고 치료 받으시길…

오후즈음 2022-07-14 18:39   좋아요 1 | URL
곧 루키가 집으로 와요. 다행히 항암은 안해도 된다고 해서 방사선 치료만 남았어요~ ^^

미미 2022-07-14 19:17   좋아요 0 | URL
오후즈음님 정말 다행입니다!! ^^
 
우리가 정말 친구일까 - 소중한 존재에게 집중하기 위한 질문
빌헬름 슈미트 지음, 장혜경 옮김 / 심플라이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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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나를 점검해 보는 시간 [우리가 정말 친구일까 - 빌헬름 슈미트]



“ 행복이 가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행복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 자리로 불행이 밀어닥쳤을 때 친구는 따뜻한 대화의 상대이자 영혼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P65



개인적으로 큰일을 한 번 겪어보면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것 같다. 나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분명 그는 나에게 우정을 나눴던 사람이었는데 상처가 되기도 한다. 힘이 되는 말이었음을 알다가도 그 말이 가슴 구석에 남아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한다. 그때 우리의 우정은 어디쯤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정말 친구일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기본으로 한 우정,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발전된 책이다. 그의 윤리학에 의하면 우정은 세 종류가 있다고 한다. 그 첫째는 ‘공동의 즐거움’을 지향한다. 두 번째 우정은 ‘이익을 먼저’생각한다. 하지만 모두가 꿈꾸는 진짜 우정, 즉 세 번째 우정은 어떤 계산도 없이, 서로의 영혼을 어루만진다. (P13)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기본이 되기 때문에 이 세 가지에 대해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첫 번째 우정은 쾌락의 우정은 서로의 즐거움을 위해 맺어진 관계다. 서로의 즐거움을 공유하며 나누는 행위는 비난의 이유가 없지만 즐거움에 주안점을 둔 우정은 자칫 나쁜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쾌락을 위해 실제로 유익하지 않은 관계에도 발을 들여 놓기가 쉽기 때문이다.



두 번째 종류의 우정은 서로에게 약속하는 이익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우정이다. 이런 우정을 과연 우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조력자 우정에서 이익이란 실질적인 생활의 도움, 즉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를 잘 이해하고 원활하게 소통하여 활동을 돕는 비즈니스 친구의 경우 이익은 정직하게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계는 서로에게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것이 결론이 나면 파탄이 나게 된다.


세 번째는 모든 시대의 모든 인간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참된 우정이다. 참된 우정만이 친구를 쾌락과 이익이라는 이기적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보지 않고 우정 자체를 목적으로 바라본다. 즉 “참된 우정은 목적을 추구하는 관계가 아니라 그 자체에 목적을 담는다. 상대를 그냥 좋아하고 그냥 상대와 함께 있고 싶다. 이런 면의 우정은 사랑과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총 4개의 챕터 중에 마지막은 ‘가장 좋은 친구, 나 자신과 친해지기’가 있다. 대부분의 이런 책들의 가장 마지막은 자신과의 합의점을 찾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책 또한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우정의 깊이나 관계 유지에 대한 고민도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부분은 오로지 ‘나’를 탐색한 부분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떻게 관계를 유지 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마음을 갖고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가.



언젠가 극작 공부를 하기위해 김수현 작가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중요한 이야기가 어떤 작법을 통해 유명한 작가가 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나를 알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셨던 부분이었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는 나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 나는 지금 현재 어떤 모습인가. 나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소양이 있는가. 나는 경박하지 않은가. 나의 인내심은 어느 정도 있는가. 반성심은 있는가등 먼저 자신을 체크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고 그것을 통해 타인을 관찰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서운하게 생각했던 그 친구의 모습에 어느덧 나는 그에게 어떤 친구였는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도움이 필요했던 그 친구에게 어떤 모습으로 옆에 서 있었던 것일까.



친구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그 유지 또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정말 친구였을 까라는 질문에 앞서 나는 그를 친구로 생각하고 대하고 있는지 다시 질문으로 시작해서 방점을 찍어줘야 할 것 같다.


큰 병에 걸리고 내게 위로를 보내는 친구들의 태도에 상처 받은 적은 딱 한번 뿐이다. 요즘 암은 흔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그 태도에서 민감한 마음 한편이 불쑥 일어났다. 분명 친구는 나를 위로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호들갑을 떨 수도 없고 위로 하고 싶었던 그 말이 하필 ‘흔하게 다 걸리는 병’, ‘별것 아니라는 병’이라는 발언이었고 그 말에 내가 잠시 침묵을 흘려보냈다는 것이다. 친구는 나를 위로 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세 번째 유형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 어떤 조건도 없는 오로지 서로의 행복을 위해 애썼던 사람이었기에 그 무심한 말에 그간의 우정을 모두 강으로 보내고는 싶지 않다. 그렇게 또 세상을 배워나간다고 생각한다. 만약, 나에게 나와 같은 친구가 생긴다면 그때는 어떤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비판과 위로도 타이밍이 필요한 것이다.




“한쪽에선 비판할 용기가, 다른 쪽에선 그 비판을 받아들일 열린 마음이 있어야 참된 우정이 추구해야 할 우정의 윤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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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로의 초대




수술이 가장 쉬웠다는 그 수술을 하고 퇴원한지 며칠이 지났다. 정말로 수술은 큰 고통 없이 끝났다. 다만 림프절 한 개가 전이가 되었고 비싸다고 하는 맘마프린트 검사를 하게 되었다. 입원 전에 온코타입이나 맘마프린트 검사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을 했었다. 이 검사는 항암 유무를 알려주는 검사로 나의 암세포를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보내진다. 그래서 검사비가 비싸다. 퇴원할 때 보니 나의 병원비의 5배 정도의 금액이었다. 입원 전에 후회를 막기 위해 검사를 하기로 결정 했었다. 그 무섭다는 항암을 피하기 위함이다. 부디 3주후 퇴원 후 검진시에 항암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배액관 (수술시 달고 있는 피주머니)을 달고 퇴원을 했다. 이틀 정도 더 있으라고 했지만 5인실의 병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 병실은 모두 조용하고 나의 입원 생활을 방해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냄새는 그러지 못했다. 복부, 흉부, 뼈 전이 검사를 모두 하고 더 이상의 검사가 남지 않았으니 집으로 퇴원을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배액관을 달고 집으로 가는 일이 겁이 났지만 안락한 나의 집으로 퇴원을 하고 싶었다.



 

입원하는 동안 5인실은 모두 커튼을 쳐 있어서 앞에 있는 환자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그러다 같이 퇴원하게 된 3명이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그간의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눠주었다. 퇴원을 준비하는 나에게 아주머니가 오시며 혼자 퇴원을 하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니 병실에서도 어찌나 씩씩하게 다니던지 기특하다며 칭찬을 해 주셨는데, 문득 내가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들어 울컥했다.


 

병실을 나와 퇴원 수속을 하고 강남에 있는 병원이라 명품가방 들고 가야 한다며 루이비통 가방에 물건을 담아 온 정신 나간 나란 인간은 커다란 루이비통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내 침대에 누워 있으니 세상의 모든 불만이 사라졌다.


 














새로운 세계로 초대된 나는 이 세계와 5년동안 잘 적응하고 떠나야 한다. 그 세계에서 아주 친절한 이방인으로 살다가 떠나고 싶다.

병실에 앉아 김훈의 새로운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를 읽으며 책 속에 있는 익숙한 어느 한 사내의 이야기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소설속의 그도 나처럼 초대 받은 그 세계에서 잘 살아 나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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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6-28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 수술을 하셨군요 ㅜㅜ 제발 결과가 좋기를 바라겠습니다 ㅜㅜ 그래도 역시 집이 좋은거 같아요~!!

오후즈음 2022-06-30 10:29   좋아요 0 | URL
그럼요...집이 너무 좋더라고요. 비록 와서 청소하느라 좀 힘들었지만 너무 좋았어요

물감 2022-06-28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오후즈음님... 꼭 좋아지실 거세요ㅜㅜ

오후즈음 2022-06-30 10:3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꼭 좋아지도록 노력할거예요~ ^^

잠자냥 2022-06-2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조리 잘하시고 꼭 완쾌되시길 기원할게요!

오후즈음 2022-06-30 10:30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항암만 피하도록 기도 하고 있습니다.

미미 2022-06-28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이 최고지요!! 부디 항암 안해도 되시길 바랍니다.

오후즈음 2022-06-30 10:30   좋아요 1 | URL
정말 항암만 피하고 싶어요. ㅜㅜ

서니데이 2022-06-28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후즈음님 큰 수술 잘 받으시고 퇴원하셔서 다행이예요. 결과 좋게 나와서 빨리 건강회복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오후즈음 2022-06-30 10:3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꼭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