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너의 안녕을 빌어볼게




답답했던 직장에서 만난 일곱 살 어린 직장 동료는 말이 참 잘 통했다. 화통하고 유머 있는 그녀를 싫어했던 사람은 없었다. 나 또한 어린 그녀가 좋았다. 그때는 이상하게도 그녀가 지적하는 말들을 직장 내 모든 사람들이 다 웃으며 넘겨줄 만큼 그녀의 언행을 문제 삼지 않았다. 어쩜 그런 면들 때문에 인기가 많았을지 모르겠다. 도망치듯 나온 직장에서 내가 유일하게 얻은 것이라곤 그녀와 다른 직장 동료 한명 뿐이었다. 건강과 마음의 상처를 바꾼 것치곤 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 무심코 쏟아진 그 말을 모른 척 했어야 했던 것일까.



그녀는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소개팅이라도 해주겠다며 전화라도 좀 돌려 볼까?그녀의 울적함을 달래주려고 했었는데, 그녀는 결혼을 하고 싶은 조건이 돈 많은 남자라고 했고, 이유는 남자가 벌어 준 돈으로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다는 말에 나는 너무 진심으로 받아버렸는지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그냥 웃으면서 지내도 됐을 일을. 그녀가 그런 얘기를 매번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 말을 그냥 지나쳐주지 못했을까.

고단한 어느 날 친한 언니를 만나 술 한 잔을 하며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을지 모르는 그 말에 나는 투사가 되어 깃발을 들고 말았다. 너같이 똑똑하고 자주적이고 이상적인 애가 그게 무슨 말이냐며 발끈하며 그런 정신으로 결혼하겠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녀가 농담이라며 하하 웃고 헤어졌지만 그날 이후로 우리는 연락이 끊겼다.




그날 헤어지며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만나지는 못하겠구나. 정말로 그녀의 말처럼 농담 혹은 반쯤은 답답한 현실에 쏟아낸 투정이었을 그 말에 내가 꼰대 짓을 했다는 생각에 후회가 되었지만 그녀는 나의 이런 마음을 모르고 지하철 문과 함께 나와의 모든 연락을 닫아버렸다. 나도, 그녀도 그렇게 서로에게 더 이상의 연락을 하지 않고 삼년이 지난 며칠 전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사실 나도 그녀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몇 년째 이어지는 늦은 퇴근과 육묘 (비록 한 마리지만 외로움 많은 고양이를 달래기 위해 주말도 상납해야 하는 집사의 삶이란...)로 추억을 떠 올릴 시간이 없었다. 지난 추억의 음악을 들으며 옛 장소들을 회상하기에 지금의 나의 현실이 정말, 현, 실이라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며 살고 있던 어느 날 들려온 그녀의 결혼 소식이 축하의 마음과 동시에 서운함이 몰려왔다.




오늘 컴퓨터 하드에 잠들어 있는 그녀와의 몇 번의 해외여행 사진들을 보며 그녀가 원했던 돈 많은 남자와 결혼했는지 모르겠지만 축하의 마음을 빌어 본다. 서로의 연락처를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연락을 하지 않고 그렇게 연락을 끊었지만 나는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아직도 하고 있다. 그녀는 안쓰러운 상황에 놓인 나를 안아주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와의 인연이 이렇게 끝이 난 것이 안타깝지만 이것도 내가 만든 인생의 한 모습이니 어쩌겠는가 싶다. 멀리서 그녀의 안녕을 빌어본다. 그녀가 좋아했던 라일락을 떠 올리며,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꼭 라일락을 심으며 살아가길. 올해, 나는 다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한 리뷰들을 꼭 정리하며 한 해를 보내고 싶다. 




밍기뉴의 노래가 참 좋아진다. 특히 이 노래를 들으면 그녀가 생각이 많이 난다. 

잘 지내길, 그래도 내게는 너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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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1 소설 보다
구소현.권혜영.이주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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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런 호러의 구소현의 소설이 내내 기억되었다. 엔딩을 다시 쓰고 싶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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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주든 말든 - 나는 본질을 본다
소노 아야코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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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다 무던하게만 가지는 않잖아 <알아주든 말든 _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의 전작을 다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사람 참, 건조하네. 뭐 이렇게까지 냉소적일 필요가 있을까. 어떤 일은 냉소적이고 어떤 일은 또 열정적이고 또 어떤 것들은 시시하고 어떤 사람들은 싫거나 사랑스러울 때가 있는 희로애락이 분명한 나의 삶에 소노 아야코의 글들은 그랬다. 그녀는 참, 무심하게 사는 사람인가 봐. 어떻게 인생이 이렇게 무심하게만 흘러가겠어. 인생 달관한 사람이신가보네. 그렇게 생각하다가 그녀의 이력을 보니 50대에 중심성망막염이 심해져 거의 앞을 볼 수 없다가 성공이 희박하다는 수술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다시 얻고 나니 그동안 골머리를 앓았던 문제들이 시시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다. 뭐 그것이 아니더라도 삶의 어떤 괘도에 오르면 그런 느낌을 받는다고 하던데 아직 철없는 삶에 허덕이는 나에게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아주든 말든>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아마도 내가 그녀처럼 뭔가를 가슴 밖으로 밀어내고 나니 그녀의 말들에 고개가 끄덕여졌던 것일까. 대부분은 경험에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라서 상처를 받고 괴로움을 겪어봐야 그래, 그럴 수 있지. 알아주든 말든, 내 길을 가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관조적 결론을 싫어하면서도 받아들여지기도 하며 타산지석하자는 것이 때로는 너무도 힘든 결심이 되기도 한다. 뭐, 남이 알아주든 말든 나만의 삶의 본질을 결론 내며 요동치는 마음의 동요를 잠재워주는 내공을 쌓기란 분명 삶의 주는 시간이 꼭 필요한것 같다.


 

<알아주든 말든>에는 소노 이야코의 아주 짧은 그녀의 삶의 마침표가 찍혀져 있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인간의 내면의 세계, 그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괴로움도 아주 짧게 표현된 그녀식의 마침표가 허탈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잊고 있었던 나의 경험속 에피소드와 맞닿기도 한다.

관계, 사랑, 인간, 행불행, 삶, 운명, 자연의 신에 대한 본질을 그녀 나름의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서술한 내용에 나에게 가장 와 닿았던 부분들이다.


 

“ 당연한 인간관계란 없다.

 

이 세상엔 당연한 인간관계란 없다. 어떠한 관례도 일방적으로 잘라 내버릴 수 가 있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기존 관계에서 간단히 떨려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만약 좋은 처우를 받고 있다면, 어쩌다 예외적으로 내게 주어진 복이라 생각해야 한다.” P26



친했던 지인들과도 어느 날부터 소식이 뜸해지면서 연락이 닿지 않게 된 이들이 있다. 좋아 했던 이들과 소식이 소원해지면서 멀어진 친구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던 소녀 감성을 간직한 어린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들과 내가 서로 만나면서 연결 되었던 운명의 붉은 실의 끈이 딱 그 정도 만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쉽지만 그것을 나의 탓으로 돌리려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오랜 시간 나와 함께 붉은 실로 연결된 이들에게 감사하며 더욱 잘해줘야지 하다가도 그들과 또 운명의 끈이 끊어진다고 해도 그것에 너무 속상해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바라는 것은 지금 닿고 있는 그들과 나의 만남의 끈이 아주 오랫동안 풀어도 끊이질 않기를 바라고 있다.


 

" 속내를 알기란 어렵다.

 

남이 자기를 올바르게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속내까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익 때문이다. ” P29



" 언제 죽어도 미련이 없게끔


인생 최후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납득과 단념이라고 생각한다.

납득과 더불어 단념도 필요하다. 이것도 젊을 때부터 훈련해야 한다. 노력은 해보지만 포기해야함 하는 것이 있다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다리 말하면 인생은 사회가 어떤 형태가 되든, 원형 자체가 제대로 된 곳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희망은 실현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137


 

마지막 자연과 신에 대한 그녀의 본질적인 이야기는 쓸쓸하다. 지금 살아가는 날들이 대부분은 내가 앞으로 죽어갈 날들을 하나씩 세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인생이 너무 인색해질 것 같다. 이런 고통과 쓸쓸함에 대해 그녀는 대부분 신에게 기도를 한다. 그녀의 말 중에 자유라는 것은 진리 이외에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녀의 말들은 차갑게 들리다가도 때로는 잠깐 눈 감아 두었던 진실의 앞에 놓아둔 이야기라서 아프게도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계속 눈감고 있다면 상처받은 마음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알아주던 말든, 나의 마음 속 치유는 스스로 해 나가야 하는 것이 덜 상처 받는 날들에 대한 스스로의 치료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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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20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한 인간관계란 없다.‘ 이야기 좋은것 같아요. 예전에 가까웠디만 지금은 멀어진 사람들을 보면, 왜 그렇게 된걸까란 아쉬움이 들더라구요. 남아있는 사람들은 계속 이어지도록 노력 해야 겠습니다^^
 
말랑말랑한 힘 - 제3의 시 시인세계 시인선 12
함민복 지음 / 문학세계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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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을 가장 잘 알 수 있었던 글들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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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10-06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 시집 말랑말랑 넘 좋아요.^^
 
빠졌어, 너에게
와야마 야마 지음, 김진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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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남자에게 빠질뻔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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