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8 치앙마이



대기 좌석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내 눈물이 줄줄 흘렀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다독여 주셨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라는 말이 따뜻한 다독임이 되었다.



“나는 대장도 잘라내고 위도 잘라내고 이제는 가슴에 혹이 있다고 하는데, 안 죽고 잘 살고 있어요. 생각보다 사람 목숨이 질겨요. 안 죽어, 안 죽어. 다 살 수 있어. 괜찮아. 금방 또 고통도 지나갈 거예요.”

고맙습니다. 위로가 되었다고 말하며 앉아 있는데도 쉽게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조직 검사를 앞두고 앉은 시간이 무겁게 다가왔다. 10년 전 해 본 조직 검사의 기억은 그동안 받아본 고통의 최고조였는데, 그걸 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알고 있는 고통을 또 겪어야 하는 잠시의 시간.


그 시간이 지나가면 앞으로 나에게 또 어떤 시간이 다가 올 것일까.



그렇게 마주한 시간은 지난날의 나의 방만한 날들을 반성하며 빠르게 흘러갔다. 마음에 응어리가 많았나, 이런 응어리를 풀어 낼 것을. 어떤 이는 용서를 해줬어야 했는데, 그런 후회들. 나를 몰아치며 검사실에서 나왔다. 조직 검사후 앉아 있는 내 뒤에 계신 그 분을 나는 살짝 안아드렸다. 금방 끝났어요. 빨리 끝나실 거예요.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눈동자뿐이었다. 그 속에서 서로 울며 다독이고 응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힘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웃기도 하고 오랜만에 하늘도 보았다. 아, 오늘 괜찮은 날이구나...그렇게 생각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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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은 아이들과 독서 수업을 한다. 어쩌다가 모이게 된 그룹이라 처음에는 큰 의미가 없었는데, 일 년 정도 모이니까 아이들끼리의 끈끈한 정도 생기고 서로 챙겨주고 안 오면 궁금해 하고 많이 친해져서 가끔은 내가 없어도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토론도 한다. 어느 날은 나에게 그냥 뒤에 앉아 있으라고 할 때도 있고 그걸 지켜보는 것이 즐거울 때가 많다. 아이들을 보면서 또래 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다.



오늘은 지진에 관한 책이었다. 동일본 지진에 관한 얘기를 해주며 그때 많이 늘어난 미니멀 리스트들에 관한 얘기도 해줬다. 극한 미니멀을 실천하고 있는 어느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욕실에 잘 접어 놓여 있는 수건이 그 남자에게는 없다. 소창으로 만들어진 수건 한 장이라는 얘기에 아이들이 믿을 수 없다며 소리 지르고 웃었는데, 그때 아이들에게 물건이 없는 삶은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보자고 했다. 지진으로 시작된 미니멀의 삶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이야기로 전개된 토론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일주일간 하루에 하나씩 물건을 버려야 한다면 어떤 것을 버릴 것인가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 버린다는 행위는 쓰레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기부나 누군가에게 주는 행위라고 얘기해줬더니 아이들의 고민은 더 커졌다.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처음에 아이들은 음식물 쓰레기까지 써서 다시 버린 다는 행위에 대한 정리를 했다. 10분 동안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해 줬다.




나는 첫 번째 추억이 담겨 있었던 사진첩과 졸업 앨범, 상장, 여행지에서 사온 기념품을 버리겠다고 이야기 했더니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추억을 다 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그러면 안 된다고 한다. 왜 안 되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소중한 시간을 버리는 것이라고 만류 했다. 웃으며 알았다고 얘기 했지만 사실 나는 2년 전 이사를 오면서 앞에 얘기 한 것들을 버리고 왔다. 가끔 초중고 친구들의 사진첩을 모두 버린 것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괜찮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나의 행동을 이해 못한다며 절대 버리지 말라고 말리겠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생각하며 웃음이 난다. 현관 입구부터 들어차 있는 새로 산 운동화들에 한숨도 나온다. 오늘 아이들이 집에 왔다면 이 신발들부터 버렸겠지. 어제 도착한 신간 책들이 식탁에 쌓여져 있는걸 보며 정말로 내가 버려야 할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적어봐야 겠다. 아이들과 다음 주에 정말로 뭘 버렸는지 다시 한 번 얘기 하자고 했는데, 고민이 된다. 소중한 것은 남겨 놓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고민의 한주가 시작되었다. 고민되는 봄 밤이 싫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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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파더 스텝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1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이런 새 아빠라면 환영이지 [스텝파더 스텝 -미야베 미유키]




2004년 개봉한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속 4남매는 그들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며 살고 있었다. 장남 야기라 유야와 둘째만이 홀로 된 엄마와 살고 있는 줄 알지만 사실 그 좁은 집에는 네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한명의 엄마 밑에 네 명의 아이들은 아버지는 달랐다. 가장 어린 막내를 키우지도 못하는 엄마는 다른 남자와의 동거를 위해 아이들을 또 버렸다. 오래된 영화의 엔딩이 아직까지 생각나는 영화 속의 두 소년이 소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거물급 추리소설 작가가 쓴 명랑 추리소설이라는 것이 당황스럽지만 읽는 동안 내내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어느 날 찾아간 신흥 부자 주택 단지로 도둑질을 하러 찾아간 주인공은 벼락을 맞고 두 쌍둥이에게 보살핌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 되는데, 하필 그 아이들이 그 영화 속의 인물들과 너무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서로 다른 학교로 다니면서 집에서는 단 한명만 있는 것 같이 살고 있다.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보내기만 하는 두 부모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정기적으로 보내졌던 그 돈도 어떤 때는 끊어지기도 한다. 우연치 않게 발견한 도둑은 쌍둥이들에게 발견되어 경찰에 잡혀가지 않는 대신 그들의 계부가 되어야 했다. 쌍둥이들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테니 자신들의 아빠가 되어 달라고 했다. 두 아이들은 어른들의 보살핌 없이 살기란 아직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간혹 학교에도 가야 했고 잘못 걸려든 일에 보호자도 필요 했다. 결혼도 안한 총각이 쌍둥이의 아빠가 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쌍둥이 구별도 잘 못했던 주인공이 점차 두 사람의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하게 된다. 해결 되는 일들을 통해 어느덧 세 사람과 주인공의 아버지까지 포함하여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형성되어 가는 모습도 읽는 동안 즐거웠다. 무엇보다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에 하나둘씩 참견, 참여하게 되는 두 꼬맹이들의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그래서 미미여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소설이 너무 낯설 것 같다. <화차>밖에 읽지 못했지만 미미여사의 작품들이 어떤 것들인지 알고 있는 독자로서 이 작품은 나에게는 참 너그러운 소설이었다. 흐뭇했고 즐거웠다. 잔인하지 않고 피 뚝뚝 흘리는 영상미 떠 올리지 않아서 좋았다. 무엇보다 착한 이들에겐 상이, 악한 이들에게는 적당한 벌이 가는 권선징악의 모습이 새롭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쁜 부자들에게는 적당히 돈을 빼앗아 가는 홍길동 같은 주인공의 설정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도 뭔가 허전한 것은 그들이 완벽한 가족을 이루지 못할 거라는 생각들 때문이다.


 

바람나서 집을 나간 부모 대신 잠시의 울타리가 필요했던 중학생 쌍둥이들에게는 주인공만큼 좋은 스텝파더가 없을 것이다. 적당한 무관심이 주어지는 자유도 좋았겠지. 미성년자인 두 쌍둥이들이 보호자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분명 고아원으로 보내질 것이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선택은 그들을 보호해주는 보호자를 찾는 것뿐이었는데 그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이 비 오는 그날, 벼락이 쳐서 쌍둥이들 앞에 놓아 줬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직은 결혼 따위 관심 없고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 관심도 없는 주인공에게 집에 빨리 오라는 아이들의 전화를 받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면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그런 모습을 더 보고 싶은데, 이야기는 더 이상의 진전이 없다. 그런 부분이 아쉽기는 하지만 미미여사를 좋아하지 않았던 내게는 휴식 같은 소설이었다. 그녀도 그런 마음으로 쓰지 않았을까?


 

“쌍둥이의 아버지는 언젠가는 반드시 집에 들를 것이다.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어머니도 그렇게 돌아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언제일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내일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 않던가.

하늘을 흐르는 강이 어디서 끝나는지 누가 알까. 운명도 미래의 일도 그와 같은 것이다. 가야 할 곳으로 갈 따름이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흘러가면서 즐겁게 살자.

그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니까.” P358



새해니까 생각해 본다. 뭘 어떻게 몸부림치며 살지 말자고 말해본다. 흘러가면서 즐겁게 살자.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하자.

절판된 책을 가지고 있는데 무척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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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의 명절 연휴중 하루 지나고 체해서 명절 4일을 집 밖을 나가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보통은 이틀 소화제 하루치 들이 부어 먹으면 나아졌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회복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젠장 또 나이 먹었어.



 

오늘이 마지막 연휴의 끝이라는 것이 슬퍼서 아직도 손발이 차갑고 (수족 냉증 없는데 말이지) 속이 울렁거리고 약간의 두통이 있지만 아침 공기를 맞으러 밖으로 나가 한참을 걷다가 들어 왔다. 우울증에 산책이 좋다는 얘기에 공감이 갈 정도로 울적했던 마음이 한결 좋아졌다. 비록 나의 연휴가 체증으로 날아갔지만 모처럼 잠들지 못했던 날들을 모두 충전시켜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2월도 나는 수동감시자로 2주를 살았다. 그것 때문에 그동안 미뤄놨던 지인들의 연말 모임 (3명 정도의 모임)에 모두 불참 소식을 알렸고 다음을 약속했다. 그렇게 연기 된 약속에는 지인 한명이 확진 되는 일로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만남으로 남았다. 보고 싶은 이들도 만나며 사는 것이 이렇게 힘든 요즘. 책만 주변에 남았다.

 

이사 온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1년 만에 누적된 책들이 또 많다. 지인에게 넘길 책들중 리뷰를 쓰지 책들을 골라내는 일로 오늘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그것만으로 힘든 날, 이다.


 

새해 첫 날,

오전 내내 흩날리던 눈을 바라보던 우리 루키는 어느덧 나와 5년째가 되었다. 아프지 말고 또 하루 하루 잘 살아내자.















쥰에게​ 잘 지내니? 네 편지를 받자마자 너한테 답장을 쓰는 거야. 나는 너처럼 글재주가 좋지 않아서 걱정이지만. 먼저, 멀리서라도 아버님의 명복을 빌게. 나는 네 편지가 부담스럽지 않았어. 나 역시 가끔 네 생각이 났고, 네 소식이 궁금했어. 너와 만났던 시절에 나는 진정한 행복을 느꼈어. 그렇게 충만했던 시절은 또 오지 못할 거야. 모든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전 일이 되어 버렸네. 그때 너한테 헤어지자 했던 말은 진심이었어. 부모님은, 널 사랑한다고 말하는 내가 병에 걸린 거라고 생각했고 나는 억지로 정신병원에 다녀야 했으니까. 결국 나는 오빠가 소개해 주는 남자를 만나 일찍 결혼했어. 이 편지에, 불행했던 과거를 빌미로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아. 모두 그땐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나도 너처럼 도망쳤던 거야. 그 사람과 내가 결혼식을 올리던 날, 우습게도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이 너였어. 모르는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이 곳을 떠난 네가 행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어. 쥰아, 나는 나에게 주어진 여분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동안 스스로에게 벌을 주면서 살았던 것 같아. 너는 네가 부끄럽지 않다고 했지. 나도 내가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린 잘못한 게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내 딸 얘기를 해줄게. 이름은 새봄, 이제 곧 대학생이 돼. 나는 새봄이 더 배울 게 없을 때까지 스스로 그만 배우겠다고 할 때까지 배우게 할 작정이야. 편지에 너희 집 주소가 적혀있긴 하지만, 이 편지를 부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한테 그런 용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만 줄여야겠어. 딸이 집에 올 시간이거든. 언젠가 내 딸한테 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용기를 내고 싶어.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을거야.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윤희에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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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2-02-02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른 낫길 바랍니다. 저는 명절 마지막에 음식 잘못 먹고, 다음 날에 배탈 날까 봐 덜 먹으려고 해요. 예전에는 연휴 내내 집에서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는 게 낙이었는데, 건강과 다음 날 출근 컨디션을 위해서 자제하고 있어요. ^^;;

오후즈음 2022-02-02 17:30   좋아요 0 | URL
맛있는 음식이 냉장고 가득인데 괴로운 며칠입니다. ㅜㅜ 사이러스님 너무 오랜만에 뵈어서 반갑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더 이상의 황금 연휴는 없지만



일 년 동안 유일하게 기다렸던 휴가는 늘 비행기를 타는 일로 시작되었지만 작년부터 나의 휴가는 그러지 못했다. 물론 이런 나의 상황은 많은 사람과 비슷할 것이겠지만. 작년과 비슷한 책의 양을 휴가 전에 미리 준비해 두었다. 일주일 동안 15권의 책을 읽어 볼 생각으로 그동안 사 놓고 방치 되었던 책을 모아서 테이블 앞에 세팅까지 끝냈다. 이제 휴가 전날 추천받은 브레드 앤 버터 샤도네이 2019 와인과 함께 저녁을 맞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준비한 샤도네이는 장식장 안으로도 들어가지 못하고 바닥에 방치되고 말았다.



휴가 전날 밤 단체 카톡이 쉬지 않고 울렸다. 집에 오면 비행기 모드로 해 놓고 싶을 때가 많은 핸드폰은 이벤트가 있는 날은 쉬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했다. 분명 뭔가 일이 생겼지만 모른척했다. 쉬지 않는 카톡 소리에 결국 카톡방에 들어가 수십 개의 회사 단체 내용의 처음부터 읽으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수업을 했던 한명이 코로나 확진으로 수십 명이 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필 수업이 많은 날, 동선이 겹친 아이들이 많아 그 수가 더 많았다. 늦은 밤, 놀란 아이들에게 그 부모님들에게 전화를 걸고 잠을 자지 못한 채 나도 검사를 받으러 보건소로 향했다.



그동안 수많은 확진 숫자를 보아도 사실 감각이 없었다. 간혹 지인의 가족들이 혹은 동료의 가족들이 동선이 겹쳐 검사를 받았지만 바로 내 앞에서 벌어져 나까지 검사를 받아야 했던 일은 다행히 한 번도 없었기에 무심했었다. 나의 것이 되니 불덩이처럼 뜨거운 것들을 손에 놓고 고통을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떤 일이 올지 모르니 대비는 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내 눈 앞에 현실로 다가오니 마음먹었던 것들은 백지가 되었다. 그런 것들은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 참 무식한 생각을 했다.



면봉이 뇌까지 찌를것 같았다는 지인의 과장된 얘기가 현실로 느껴지며 <음성>이라는 말을 듣기까지의 시간을 보내며 집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 있다가 도착한 <음성>이라는 문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수업 시간이 많았던 한분의 동료와 열 명의 아이들이 자가 격리가 되었다. 능동적 감시자가 된 나는 외부 출입은 할 수 있지만 다수가 모인 장소는 갈 수 없는 이상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 되었다.




나가도 되지만 사람 많은 곳은 가지 말라는 것, 어쩌라는 건지...가슴이 답답했다. 지옥은 이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수없이 울리는 회원모들의 전화를 받느라 고통스러웠다. 자가 격리가 된 회원모들에게 원망의 전화를 하루에 2시간 이상 일주일을 받고 나니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더운 8월의 여름휴가를 10층 아파트 창문을 열고 리코더를 불며 보냈다. 15권을 읽겠다는 나의 다짐은 리코더의 음계를 하나씩 외우며 사라졌다. 그렇게 15권의 책 리스트는 테이블에 그대로 있게 되었고 9월의 연휴를 맞았다. 9월의 휴가는 30권의 책을 준비 했다. 다행히 20권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만화라 쉽게 빨리 읽을 수 있을 것이고 열린책들도 얇아 문제 될것이 없을 것 같았던 그 황금연휴.....그 연휴 시작 전에 그 지옥 같은 8월의 일이 또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나는 능동적 감시자가 되어 그 어떤 곳에도 나가지 못하고 스스로 자가 격리자가 되어 추석을 맞았다.



눈을 뜨면 제발 9월이 끝나길 바라며 원망의 전화를 하루에 몇 통씩 받았다. 능동감시가 끝나는 마지막 날은 결국 눈물을 흘렸다. 억울한 마음을 눈물로밖에 표현을 못하다니. 진부한 모습밖에 없는 슬픈 현실의 문 앞에 나의 분노는 눈물밖에 없다니.



























오래전에 읽고 다시 읽고 싶어 사들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권, 그리고 열린책들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10권 그리고 그 이후의 책들을 골라 놓고 기다렸던 황금연휴의 시간들이 다 갔지만 진부한 슬픔을 독서로 풀겠다는 것은 더 진부한 상황인가 싶지만...12월 말까지 어찌 어찌 다 해결해 보련다. 만화로 쉽게 그려진 박시백의 책들은 벌써 10권 다 읽었고 열린책들도 세권 클리어 했으니 어찌어찌 되겠지.

잠깐 잠이 들면 마음의 짐으로 남은 책들을 모두 읽고 12월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말로..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은 이제 아무렇지 않고 그래...뭐 어때. 나만 나이 먹는 것도 아니고 아직 11월도 안갔으니 어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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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18 07: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린책들 미드나잇 시리즈네요~!! 저도 얼마전에 그린데이 이 앨범 오랜만에 들었는데 너무 좋더리구요~! 전 Holiyday~!!
힘드시더라도 독서로 스트레스를 날리시길 바랍니다~!!

오후즈음 2021-11-21 23:51   좋아요 1 | URL
앞으로 남은 한달과 며칠을 두고 최선을 다해 읽어 보겠노라고....막 마음을 먹었는데
주말은 왜 이렇게 졸리죠. ㅜㅜ

책읽는나무 2021-11-18 09: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석 쇠고 남편 직장내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하여 전가족 대동하여 코로나 검사를 받은 적 있었습니다.코가 넘 아프고 쓰라려 눈물이 핑~~돌더라구요ㅜㅜ
음성 문자 받기 전까지는 정말 심란했었죠!
그때 그 기억이 떠오르네요~^^
좋은 책들이니만큼 이젠 좋은 독서 시간이 되셨겠네요!!
음악 잘 듣고 갑니다.지난 번 밍기뉴의 노래도 넘 잘 들었어요.저는 밍기뉴 가수를 처음 알았는데 목소리가 넘 좋아 덕분에 몇 시간을 들었었어요.영상도 좋았구요~^^
그 날 뭐라고 댓글을 쓰려다가 주제넘어 보여 지웠었어요.오늘은 댓글 끄적거리고 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구요♡

오후즈음 2021-11-21 23:53   좋아요 1 | URL
올해 코로나 검사를 다섯번 받았는데 정말 받을때마다 힘들더라고요. 능동감시자들도 2주 지나면 받아야 해서 4번 받았고, 한번은 엄마 병원 입원하셔서 보호자로 받아야 했고 참...힘들었어요. 음성 받은걸로 감사해햐야겠죠..

밍기뉴 가수 노래 너무 좋지요? 앞으로 더 좋은 인디밴드 음악들을 소개해 볼까 해요. 좋은 주말 보내셨길 바랍니다. 책 읽은 나무님 댓글 정말 위로가 되었어요.감사해요!!

한여름 2022-01-05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랙에디션 글씨가 너무 작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