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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지인과 전화를 하면서 오열 했다. 전화를 건 지인은 당황스러워 하면서 웃었다. 진정이 된 나는 멋쩍어 웃으며 지인에게 부탁했다.

 

 

“좋은 주인 못 만날 수도 있겠지만 버리지 말아주세요.”

 

 

내일부터 일주일 여행을 간다. 혼자 남을 고양이는 지인에게 부탁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고양이 전용 호텔로 보내기로 했다. 하룻밤 호텔비가 내 호텔비보다 비싸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좁은 케이지에 있지 않은 고양이 방이 전용으로 다 있어 밖이 보이는 통유리로 캣 타워까지 설치되어 있는 시설 좋은 곳으로 보내기로 했다.

 

 

문득 혹여, 내가 여행지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 고양이는 어떻게 될까? 엄마는 천식이 있으셔서 고양이를 키우실 수 없다.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지인은 딱 한명이지만 그녀는 고양이를 더 키울 생각이 없다고 예전에 한 말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그녀는 일이 바빠 가족들이 고양이를 보살피고 있으니 내 고양이까지 가서 살 환경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생명을 부탁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그 생명을 지켜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는 것은 매우 신중했다. 그리고 그에게 정말로 무거운 책임감을 안겨 주는 것이었다.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가족에게도 부탁하지 못 할 부탁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다는 것은 평생의 반려자를 찾는 일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중 내가 가장 신뢰하는 지인을 떠 올렸다. 그녀라면 분명 루키를 유기하거나 해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녀라면 분명 우리 루키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는 곳도 알아 봐 줄 수 있을 것이라고...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출근길인 그녀에게 전화를 부탁했다. 그리고 지인에게 전화를 건 이유를 설명했다.

 

 

 

혹시 내가 여행지에서 사고가 나면, 내 고양이는 어떤 호텔에 있으니 꼭 찾아와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키우시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으면 안락사만은 시키지 말아달라고. 버리지 말아 달라고…….그런 말을 하고 울고 말았다.

지인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나를 달랬고 나는 그런 일은 없어야죠...하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일이니까, 그래도 혹여 그런 일이 생긴다면 부탁해요.

 

 

이런 사정도 모르고 루키는 중성화 수술 후 더욱 활발해진 얼굴로 우다다다를 연속 30분을 하고 있다. 속편한 녀석. 부디 엄마가 잘 다녀 올 수 있도록 기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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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04-30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 잘 다녀오세요~ 별 탈 없이 잘 다녀오시리라 믿습니다. 루키.. 귀엽군요^^
저도 집사라 마음이 찡하네요ㅠㅠ 다행히 저는 키워 줄 동생이 있어서 그 부분은 정말 다행이라 감사히 여기고 있답니다.
 

 

 

 

 

 

 

 

 

 

 

 

 

 

 

 

십 년 전 여름 공사장 근처를 지나다가 길가로 튀어나온 철근에 발바닥이 찢어졌었다.

처음엔 그냥 좀 많이 아프다고 생각하고 동생을 부축해서 반창고나 하나 붙일 생각으로 근처 약국을 찾아갔다. 발 좀 보자는 약사 말에 의식하지 못했던 발을 내려 보는데 슬리퍼는 이미 피로 젖었고, 양 사방으로 30센티 넓이로 피가 고여 있었다.

 

 

 

약사가 놀래 뛰쳐나와 상처를 누르고 피를 멈추게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 몸 안에서 모든 피가 다 쏟아 내려지는 것 마냥 피가 멈추지 않았다. 붕대를 칭칭 감고 근처 큰 병원으로 갔다. 그날 나는 놀라지도 않고 아주 침착하게 택시를 탔고 놀라지도 않았다. 나도 이런 일이 한번은 생긴다는 신기함이 아픔을 누르고 있었다.

 

 

철 잔해가 들어가 있을지 모른다며 엑스레이까지 찍고 결국 12바늘을 꿰맸다. 상처가 생각보다 깊었고 컸다. 여름이라서 상처도 쉬 가라앉지 않았고 한번은 급한 일 때문에 뛰지 말라는 의사 말을 잊고 뛰었다가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한 달이면 치유될 상처가 두 달 걸렸고, 여름이라서 상처는 더 쉽게 아물지 않았고, 걷지 못해서 결국 친구들 경조사에 가지 못했다.

 

 

 

그런 상처는 결국 기상과도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며칠은 발바닥이 아려서 혼자 끙끙대곤 했다. 멀쩡한 날에도 상처를 꿰맸던 때처럼 바늘이 살을 관통하는 아픔이 바닥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올라오면 다음 날은 정말 말짱한 하늘에서도 비가 내렸다. 한 번도 그 예측은 벗어난 적이 없다.

 

 

몸의 상처가 아프기 시작하면 비가 오고, 날이 흐렸던 것처럼 가슴 한 쪽에 아직 아물지도 않았던 상처들이 아파 오기 시작하면 그 한주는 내내 모든 것이 말썽이었다. 불편한 심기가 곧 감정으로 변해서 끝내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아문 상처가 그냥 그렇게만 끝이 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냥 아팠던 기억만을 남겼으면 좋겠다. 어떤 조심으로 나타나 주지도 말고, 그냥 예전에 내가 이곳이 많이 아팠지, 하는 오래된 일로 치부되었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은 상처가 자꾸만 옛일을 떠올리며 또 다시 그 순간의 일들이 오버랩 되어 맘을 달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가 오는 것을 미리 알고 싶지 않다. 몸 한곳이 아파 오면서까지 그런 기상을 예측하고 싶지도 않다. 마음을 베인 상처 때문에 똑같은 일로 아프고 싶지 않다.

 

 

어제 저녁 상처가 아파오기 시작했는데, 밖에 비가 오고 있다. 그냥 몸의 마디마디만 아픈 것으로 끝이 나고, 가슴 마디마디까지 올라오지 않기를.

 

 

이런날은 무조건 달달한 것들이 함께 하면 좋다. 그런 의미에서 선택하는 이 낯선 책을 만나 본다.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한 책에는 어떤 유혹으로 이 고통스러운 발바닥 통증을 잊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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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05 2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 복무했을 때 발을 다쳐서 병원에 두달간 입원했어요. 수술 끝난 뒤에 움직이지 못해서 침대에 계속 누워 있어야 했어요.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건 책읽기였어요. 역시 책을 읽으니까 통증을 덜 느꼈어요. ^^

오후즈음 2018-04-07 09:43   좋아요 1 | URL
책은 지루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좋은 수단이죠. 저도 세번 병원에 입원 했을때, 가장 두꺼운 책을 가져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장소] 2018-04-0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에 난 상처로 피가 다 빠져나가는 상상을 해버렸어요 . 으헛~

오후즈음 2018-04-07 09:43   좋아요 1 | URL
어흑....정말 저때 아득했어요. 너무 아팠거든요.

AgalmA 2018-04-06 0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픔을 몸이 기억하고 있을 때 새삼 내가 나를 참 가혹하게 대하고 있었구나 할 때 있습니다. 그런 아픔들이 몸 곳곳에 있다는 걸 자주 느껴요.

오후즈음 2018-04-07 09:44   좋아요 1 | URL
사실 몸의 통증보가 마음을 다치는 일이 훨씬 더 오래가고 힘든것 같아요. Agalma님 반가워요~ ^^
 

 

 

 

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달콤하고 맛있는 것은 커피라고 하셨다.



특히 비 오는 날 직장에서 일하시다가 자판기에서 뽑은 종이컵에 담긴 달달한 커피가 담배보다 더 좋다고 하셨다. 커피를 사랑하셨던 아버지 때문에 집에는 커피와 프림이 떠날 날이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원두커피보다 커피, 프림, 설탕을 각각 2:2:2인, 투투투 조제된 커피야 말로 피곤이 가시는 마약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가 먼저 한잔 진하게 타고 안방으로 들어가 신문을 보시면 조르르 달려가 엄마 몰래(머리 나빠진다고 엄청 못 마시게 하셨다.) 한 모금씩 먹었던 것이 어느새 밥은 안 먹어도 커피는 꼭 마셔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영화관에 가서 콜라와 팝콘을 사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팝콘보다 뜨거운 커피 한잔이 좋았다. 뜨거운 여름에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닌 뜨거운 믹스 커피를 마신다.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갈 때도 늘 커피가 필요 했다. 그때도 나에겐 뜨거운 믹스 커피가 들려 있어야 했다.

비가와도, 눈이 떠지지 않는 햇살 좋은 날이어도, 하루 종일 어둑한 하늘이 창에 걸려 있을 때도, 심심해서 입안이 궁금할 때도, 때로는 화풀이처럼 마시고 싶은 음료가 있을 때도 늘 커피였다.

하지만 그런 믹스 커피와 헤어 질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믹스 커피를 좋아 했던 친구 때문이었다. 그 커피를 너무 좋아 했던 그녀와의 추억이 깊어 간혹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길을 가다가 울었던 적도 있었다. 그 믹스 커피와 헤어져야 나는 그녀와의 추억을 모두 정리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의 저녁은 식당에서 몰래 가져온 남은 음식과 믹스커피 세 봉지였다. 뜨거운 물을 올리고 잠시 기다린 후 커다란 유리잔에 믹스 봉지 세 개를 뜯어 넣고 숟가락으로 몇 번 휘 저어 먹는 그녀의 커피는 내가 우울하거나 즐겁거나 나른 할때 마셨던 커피가 아닌 한 끼의 식사였다. 불도 켜지 않은 방에 표정 없이 앉아 남은 음식과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너무 처연해서 눈물이 났다. 잊고 있던 믹스 커피 향이 생각났다. 달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그 커피.


문득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그녀도 떠올랐다. 나는 그녀 때문에 믹스 커피를 더 이상 먹지 않는데, 그녀는 커피를 끊었을까? 그녀와 함께 했던 그 노랑 커피를 한동안 마셔볼까 생각중이다.

그리고 그녀가 좋아 했던 작가들도 함께 해 볼까 한다. 왠지 요즘은 그녀가 많이 그리워지니까. 그냥 이런 이유는 봄이 와서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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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4-03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피를 한끼로 해결하는 장면 .. 알거 같아요 .
예전에는 믹스커피도 진한 오리지널이다가 어느 사이 모카골드로 바뀌고 또 어느순간 화이트맥심으로 바뀌어선 약해진 위장을 드러내곤 하네요 . ㅎㅎㅎ 믹스 커피 마시면 꼭 블랙도 마셔야해요 . ㅋㅎ

오후즈음 2018-04-05 19:30   좋아요 1 | URL
믹스 커피가 좀 텁텁한 끝이 있죠?
오늘도 향 좋은 커피 한잔 하셨나요? ^^

[그장소] 2018-04-05 19:37   좋아요 1 | URL
오후즈음님도 커피 한잔 놓고 멍때리는 시간 가지셨길 .. ^^ 그게 젤루 행복한 시간이니까요!^^

oren 2018-04-04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젯밤에 커피 마시다 들었던 바흐의 ‘커피 칸타타‘ 생각이 절로 나네요~
* * *
아, 커피맛은 정말 기가 막히지.
수천 번의 입맞춤보다도 더 달콤하고, 맛좋은 포도주보다도 더 순하지.
커피, 커피를 난 마셔야 해.
내게 즐거움을 주려거든 제발 내게 커피 한 잔을 따라줘요!

오후즈음 2018-04-05 19:31   좋아요 1 | URL
으아...저 이 칸타타 정말 좋아해요.
바흐가 이 음악을 쓰게 된 배경을 지인에게 들었는데 더 극적으로 와 닿더라구요.
라히프치히에서 마셨던 그 커피가 너무 생각나에요. ^^
 
사랑이 달리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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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가족들이 풍년이구나. [사랑이 달리다 _ 심윤경]

 

[달의 제단]과 [나의 아름다운 정원], [이현의 연애]까지 읽으면서 작가 심윤경이 좋았다. 이런 깊이 있는 작품을 쓰는 그녀를 격려하며 더 좋은 소설을 써 줄 것을 기다렸다가 만난 그녀의 작품 [사랑이 달리다]는 당황스러웠다. 그간 읽었던 그녀의 소설은 늘 조용했었다. 작가가 내성 적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나름의 추측도 해 보면서 그녀의 소설을 읽었는데 이 작품을 처음 만났다면 그녀는 외향적인 사람으로 알 것 같다. 물론 소설을 쓰는 기법이 달라졌다고 한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이것은 그간 내가 알던 심윤경이 아니었다.

 

 

졸부 집 딸로 표현하면 딱 좋은 김혜나는 그 나이대의 전형적인 여자가 아니다. 작가는 마흔이 가까워 오는 나이지만 매우 귀여운 매력을 갖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가벼운 대사들, 생각들 그것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행동들은 철없는 부잣집 막내딸로 적당한 캐릭터다. 그녀가 끌고 가는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모두 그녀와 닮아 있다. 남편의 바람으로 황혼 이혼을 한 엄마와 돈 귀한지 모르고 살았던 습성으로 무작정 지르며 살다가 결국 감옥에 끌려가고 마는 작은 오빠와, 아버지의 돈을 타 쓰기 위해 자신보다 어린 새엄마에게도 예의를 지키며 모시고 있는 큰 오빠도 모두 아버지의 부로 인해 풍족한 생활을 해서 세상의 구김살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다. 주인공 혜나도 39살까지 직장 생활이라곤 전혀 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 성민이 회사에서 지방으로 좌천되면서 그녀의 생활이 달리기지 시작한다.

 

 

 

작은 오빠의 대학 선배였던 정욱연은 강남에서 잘나가는 산부인과 의사다. 그는 또 하필 캐나다에 부인과 아이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떠나 있는 기러기 아빠였고, 지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와중, 늘 후배의 여동생이 궁금했던 혜나를 만나게 됐다. 그녀는 아버지의 마법의 카드로 남편의 월급이 적어도 불편하지 않게 생활하면서 살았지만, 아버지의 재혼으로 마법의 카드는 더 이상 자신의 손에 들어오지 않게 됐다. 지방 발령까지 가버린 남편의 부재와 마법의 카드의 빈자리를 채울 무엇인가 필요했다. 그것이 정욱연이 되었고 그녀는 그를 가졌다.

 

 

그녀는 사랑받으면서 자랐다. 아버지는 그녀의 생일이면 회사에 휴가를 내고 한복을 입고 하루 종일 춤을 추었다고 했다. 사랑스러운 딸로, 오빠들의 사랑스러운 동생으로 자랐다. 그런 그녀의 해 맑음은 미치광이 세 명의 형에게 늘 시달렸던 정욱연에게 사이다 같은 존재였다. 그녀로 인해 그가 잠시나마 청량감 있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으니까.

 

 

모두에게 사랑받은 여자였기 때문일지라도 그녀는 결국 정욱연과 불륜 관계였지만 누구하나 그녀의 불륜을 질타하지 않는다. 작은 오빠는 정욱연의 쌓아 놓은 재산을 얘기하며 꼭 잡으라고 얘기한다. 강남의 유명한 산부인과 원장과 가족이 된다는 것에 오히려 더 감격을 하는 작은 오빠의 떨림에 이 소설의 맥락을 찾아보려 애를 썼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남편은 지방 발령으로 떨어져 살게 되었지만 그녀는 남편을 따라가지 않았다. 혼자 스스로 선택하면서 자아를 찾아 가는 줄 알았던 그녀가 정욱연과 관계를 맺고 그와 사랑을 꿈꾸는 부분에서는 너무 도덕적인 것을 내가 주인공들에게 원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나는 현실에서는 어떨지라도 소설 속에서의 불륜은 왜,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꼭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주인공 혜나는 귀엽고 엉뚱한 부잣집 막내딸로 아무 생각 없는 여자로 밖에 안 보인다.

 

 

그녀의 사랑이 운명과 같다고 생각해 보다가도 왜 하필 회사에서 미움을 받아 좌천된 남편을 모른 척 하고, 돈 많은 강남 산부인과 원장을 택했을까? 돈 많은 남자가 아니었다면 정욱연을 택했을까? 인생을 걸고 몸을 내 던진 진짜 사랑이 왜 하필 그때였을까?

 

 

그녀는 이 작품의 내용이 부족했는지 1년 후 후속 [사랑이 채우다]를 썼다. 물론 심윤경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인 가독성이 좋은 문장력으로 인해 두 번째 작품도 읽었지만 오히려 두 번째 작품은 안 읽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 그녀의 유쾌한 문장은 좋았다. 이편에선 사실 정욱연을 나도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혜나를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엔 그녀의 남편 성민이가 너무 불쌍했으니까.

 

그래도 오랫동안 소설 작품을 내지 않는 그녀의 다음 책을 그래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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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가 집에 온지 4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폭풍 성장해서 애기, 애기 한 모습은 전혀 없고 성묘처럼 보인다. 아직은 애기 인데, 라고 생각은 오로지 나뿐이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1년 이상 된 고양이로 보고 있다.

 

 

 

아이 엄마들이 간혹 아이의 나이를 물어 볼 때 년이 아닌 개월 수로 물어 보듯이 나도 우리 루키를 몇 개월 밖에 안됐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가끔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고양이에게 개월 수가 중요 할까?

 

 

폭풍 성장한 루키는 점프력도 상승해서 어디든 올라 다닌다. 다행히 내가 아끼는 전시품들은 건들지 않고 조심히 다니는 걸 보면서 기특하다가도 뭔가 좋은 것이 나타나면 흥분해서 결국 도자기 하나를 깨고 말았다. 내가 느끼는 그 미안함이 정말 있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그 주변을 다니지 않고 있어 눈치는 있는 고양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막 기특해 하고 있다.

 

 

작업 좀 해야지, 컴퓨터를 켜고 앉으면 이제 잠시 자신의 분량을 챙기며 감상을 원한다. 유투브에 고양이 관련 영상이 있는데 새가 날아다니는 영상이다. 아무런 소리도 없고 오로지 새 소리 밖에 없다. 신기 하게도 영상을 보여 주는 동안 조용하다.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그 뒷모습이 웃기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하다.

 

 

술 먹고 들어 온 날 잠을 자다가 기척이 나서 눈을 떴더니 루키가 내 얼굴 옆에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루키는 딱 삼 개월이 된 이후부터 혼자 잔다. 고양이들이 독립심이 생긴다던데 정말로 내가 그 자리에 놓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는걸 보면서 이걸 또 기특해 하고 있다) 내가 잠꼬대가 심했나, 코를 골았나? 루키가 나를 한참 보더니 솜방망이 발로 내 이마를 한 번 대보고 다시 나를 처다 본 후 자신의 집으로 가서 잠을 청하는 걸 보면서 뭔가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흘렀다. 이것은 오로지 그냥 나 혼자 느끼는 감정이지만, 루키가 나를 걱정하며 한참을 보다가 갔다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났다. 매일 손 깨물어도 그래, 키운 보람이 있어....뭐 이런 기분이랄까.

 

 

 

사실 루키를 입양하고 한 달 동안은 루키의 입양을 후회했다. 너무 준비 없이 입양한 것을 후회 했고, 원 주인에게 다시 파양을 할 것인가 며칠을 고민했다. 그 고민을 하는 동안 루키는 감기로 약을 3개월 동안 먹고 있다. 이 감기만 다 나으면 다시 돌려보내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감기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결국 루키는 집에 눌러 앉게 됐다. 집에 돌아오면 골골거리며 내 다리 사이를 오가는 루키 때문에 아직 매일 매일 행복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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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20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면서도 함께 사는 것을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나이와 수명 때문인 것 같아요. 대부분 사람들은 새끼를 좋아해서 나이 든 성묘 · 성견보다는 아기 고양이와 강아지를 입양하려고 해요. 나이 든 반려동물은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지기 때문에 주인 입장에서는 병든 반려동물을 보살피는 것을 부담스러워 해요. 반려동물의 나이와 수명에 신경 쓰지 않고, 변함없는 애정을 주면서 함께 지낸다면 그 반려동물은 건강하게 오래 살 것입니다. ^^

오후즈음 2018-03-20 20:14   좋아요 1 | URL
사실 그 부분때문에 저도 입양을 오랫동안 생각했었어요. 몇달전 9년이나 키웠던 리트리버를 상자에 넣어 버린 주인도 그런 이유때문에 버렸다는 기사를 보고 정말 속상하더라구요. 개가 아픈게 너무 힘들어서 상자에 버렸다는 주인에게 화가 났다가도 그 이유를 생각하며 루키의 입양은 정말 오랫동안 고민이었습니다. 동물을 버리는 사람들은 결국 모두 키우기 힘든 환경이 되었다고 하지만 결국 보면 다 돈이더라구요. 아프면 돈이 정말 많이 들거든요...동물을 키우는 책임감은 어쩌면 경재력인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Breeze 2018-03-20 1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고양이 넘 예뻐요. 딸아이가 분양받아 온 고양이가 우리집에 온지도 거의 1년이 다 되어가요.
오후즈음님 사진에서처럼 비닐 봉지에도 자주 들어가고, 거실에 놓아둔 스타치스 말린 꽃도 뜯어 먹느라 다 없앴답니다. 온 집안을 초토화시켜 놔서요. 고양이도 사람을 닮는지 딸아이 성격처럼 호기심 많은 고양이랍니다. ^^

오후즈음 2018-03-20 20:16   좋아요 1 | URL
루키가 잘 보면 쫌 못생겼는데 ㅋㅋ 찢어진 아몬드 눈도 그렇고..하지만 제 눈에는 한없이 예쁜.
저는 집에서 음식 못 해 먹은지 두달이 넘었어요. 싱크대 올라오면서 부터...제가 뭘하면 너무 궁금해서 칼질해도 옆에 앉아 있거든요. ㅠㅠ
고양이는 대부분 주인의 성향을 닮는다고 하더라구요. 호기심쟁이군요, 저희 집도 그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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