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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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소함을 간직 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오래된 복도형 아파트의 젤 끝집에 살고 있는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세 곳의 집을 지나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 갈 수 있다. 늦은 퇴근이라 각자의 집에 도착한 택배 상자를 거의 못 보는데 늘 첫 집은 그 다음날까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끔은 이틀 혹은 삼일도 더 걸려서 택배 상자가 없어지곤 했다. 짐작하건데 그 집의 세입자는 이곳에 매일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주말이나 한번 오는것 같았다. 오래 방치 된 택배 상자를 보면서 요즘은 집에 오지 않는가하는 의문을 가지고, 집에 오지도 않는데 왜 물건을 주문했을까 생각하며 지나쳤었다. 그런데 쉽게 지나치지 못하게 된 것은 택배 상자 중 하나가 무슨 김치라는 스티커가 크게 붙어 있는 아이스박스였다. 저렇게 오래 두면 발효 돼서 되어 신 김치가 될 텐데, 얼른 냉장고에 넣어야 할 텐데. 거슬렸던 그 김치를 담은 아이스박스가 늘 거슬렸던 날이 열흘이나 지났을 때, 무슨 일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날카롭게 쇠를 자르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잠옷 바람으로 현관문을 열고 무슨 일인가 보았다. 경찰관 두 분이 서 계시고, 한 아저씨가 잠긴 문을 열기위해 전동드릴을 돌리고 있었다. 그 소음이 복도형 아파트를 휘감고 있을 때 옆에 서 계신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주변 이웃이 고독사로 사망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출근 하면서 여전히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아이스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첫 번째 집의 세입자를 위해 애도의 마음을 보냈다. 팽창되는 김치를 담은 비닐처럼 무언가 죄스러운 마음도 함께 팽창되어 일주일 정도는 마음이 힘들었다. 퇴근을 하며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늘 지나쳐야 했었던 그 집 앞,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며칠의 날들. 나는 내 주변의 어떤 사소함을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

소설 <이토록 사소한 것들>은 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허구라고 하지만 1996년에 문을 닫은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일어난 일을 연상시킨다. 사실 이 부분에대 해한 기억이 크게 있지 않아서 나무 위키로 다시 찾아보았다.

<1922년 아일랜드에는 일명 막달레나 세탁소로 불리던 가톨릭 수녀회가 있었는데 가톨릭교회에서 지은 사회시설로, 이름과 같이 세탁소 같은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오늘날과 같이 세탁기가 발명되기 전이어서 오늘날의 일반 세탁소오 같은 호텔이나 정부기관, 군 관련 세탁물을 위탁받아 처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 일종의 외주업체였다. 이곳에 있었던 많은 미혼모와 고아들을 무보수, 무휴일로 강제 노역을 시킨 것은 물론이고 미혼모들의 자녀들을 돈을 받고 입양을 보내기도 했다. 매질을 당하는 것은 예사였고, 최악의 경우에는 성추행까지 당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식사도 제공되지 않아 굶주린 채로 착취당했고, 수많은 여성들이 인권을 철저하게 유린당하면서 죽어 갔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러한 만행이 비교적 최근은 1996년 9월 25까지 약 74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나무위키 발췌) >

2002년 영화 [막달레나 시스터즈]는 그곳의 실상을 보여줬다. 베니스 국제 양화제에 출품되어 감춰진 많은 일들이 들어났고 대대적인 진상조사가 벌어지며 아일랜드 총리가 사과를 하게 되었다.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었던 작은 부분이 커다란 구멍을 만들고 모두가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아일랜드의 소도시 뉴로스에 살고 있는 ‘빌 펄롱’은 석탄을 파는 석탄장이다. 그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그의 어머니는 펄롱이10대때 돌아가셨다. 그런 그를 외면하지 하지 않은 미시즈 월슨 때문에 1985년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는 시절에도 석탄을 팔며 딸 5명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다. 열여섯에 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받아 준 것도 미시즈 월슨이었다.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었던 것들을 놓치지 않은 월슨은 두 생명은 살려준 사람이었다. 미혼모를 모른 척 하지 않았고, 고아가 된 펄롱을 거둬주었다.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한 펄롱은 그날 만난 소녀를 잊기 어려웠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앞 둔 날 석탄을 수녀원으로 배달간 펄롱은 창고에 맨발로 헐벗겨져 있는 소녀를 보고 그녀에게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 짐작만 하게 된다.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른 척 하고 자신의 밥벌이가 끊길 수 도 있는 일들에 선뜻 나서기 힘들었다. 자신의 딸들이 다섯 명이나 있고 그 딸들이 갖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해야 했다. 그가 놓인 1985년은 아일랜드에서 혹독한 현실에 눈을 질끈 감고 모른 척 했어야 했다. 소녀가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척 했어야 했다. 그냥 사소한 것들이라고 치부하며 석탄을 배달하며 집으로 돌아가 안락한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 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P99

펄롱이 다시 소녀를 찾으러 갔을 때쯤,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본 어느 한 청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만 18세가 되면 보호아동 종료가 되어 독립을 해야 하는데, 어찌 된 이유인지 그는 부천에서 광주 시설로 옮겨지고 그곳에 계속 남게 되었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던 유군은 대학에 입학해 사회복지사 꿈을 꾸었다고 한다. 봉사 생활도 했다던 그가 2학기 개강을 앞두고 잠긴 강의동 문을 열고 옥상으로 올라가 주저 없이 뛰어 내렸다고 한다. 열심히 살아 사회의 일원으로 남고 싶었던 그 청년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 사소한 것들을 발견해 주었다면 그 청년을 살릴 수 있었을까.

펄롱은 차디찬 바닥에 있었던 그 소녀의 손을 잡고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왔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이토록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나는 펄롱처럼 행동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비굴함, 마음과 다른 위선이 늘 주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어른으로 남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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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3-16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후즈음 님, 잘 지내시죠? 환한 봄 맞으시길 바라요!

오후즈음 2024-03-16 11:07   좋아요 1 | URL
자목련님 오랜만이예요. 그동안 몸도 아프고 이런 저런일로 이제야 책도 읽을 시간이 있네요. ㅋ 늘 한결같으신 자목련님 따뜻한 봄 맞으세요!!
 
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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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없을것 같아 [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미칠 수 있겠니, 이 삶에

대답이, 아직도 어렵다. 그래도 어떻든, 결국에는 한꺼번에 다 타올라 소멸해버릴 삶이니, 많은 부분에 용서가 되거나 위로가 된다.” P301

쓰나미의 현장에 그 여자와 그 남자의 만남은 이상하지 않았다. 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그 공간에 남겨진 두 남녀가 서로를 찾게 되는 상황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같은 이름을 가진 그 여자 ‘진’은 남편이 정착하려는 섬을 찾아 지진을 경험했고 혼란의 시간에 갇히게 된다. 그 섬에서 드라이버로 살고 있는 이야나는 약혼자 수니와 헤어지고 그간의 날들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런 이야나가 만나게 된 진은 다른 세계에서 날아온 사람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이 이 소설의 주된 틀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변 인물들, 만이나 그의 이복 어머니의 얘기들도 주인공 이야나의 갈등의 폭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그래도 두 사람의 얘기에 집중 하게 되면 그런 의문이 생긴다. 이들의 사랑이, 혹은 이런 만남 때로는 그런 하루가 왜? 어쩌라고? 그런 생각들이 길을 걷는 순간 떠오르게 된다.

“ 당신은 닫힌 문 앞에 있다고 힐러는 말했다. 그 문을 내가 열어줄 거라고, 내가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그는 또 말했다. 그 문이 열리면 당신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기억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것도 기억하게 될 겁니다. 기억해야만 할 것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지우게 될 겁니다.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습니다. ” P46

어쩌면 진은 남편이 있는 그 섬으로 가게 된 것은 이런 부분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소설을 읽는 동안 답답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저 닫힌 문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문을 열아야 진의 과거가 나올 테고 잊고 싶었던 7년 전 살인사건을 마주 할 것이고 그것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야나 또한 그렇지 않을까. 자신을 무시했던 수니의 집안과 결국 이여지지 않았지만 그 내면의 상흔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상흔의 문턱에 늘 고통스러웠지만 문을 열고 나오지 못했으니까. 지진과 해일이라는 자연재해에도 살아남은 이야나는 알게 된다. 그가 이제야 문 밖에서 나와 있었다는 것을. 진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 되었지만 그것은 또 다른 문을 여는 일이었다.

“문에서 문으로 가는 길이 낙엽으로 뒤덮여 온통 붉은빛이었다. 진이 그 낙엽을 한 잎 주었다. 열대의 섬에서 사는 남자, 이야나로서는 알지 못할 가을날의 낙엽이었다. 생명의 물기가 다 빠져 주름으로만 남은 낙엽, 그러나 그 마른 잎에서는 여전히 향기가 남아 있었다. 뜨겁던 여름날의 기억이 주름져 있는 낙엽을 들여다보는 진의 얼굴에 다시 바람이 지나갔다. 이야나의 생일이 곧 가까워오고 있었다. 진은 이야나의 선물 속에 그 낙엽을 끼워놓기로 한다. 누군가의 선물이 될 낙엽이 온몸을 흔들어 향기의 기억을 마지막까지 내뿜었다.” 299

지진과 해일을 겪고 살아남은 진과 이야나, 그리고 유진이 낙엽처럼 주름진 기억들을 가지고 잘 살아 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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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랑의 이해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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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이해 한다는 것 [사랑의 이해_ 이혁진]

드라마 [사랑의 이해]를 보다가 가슴이 답답했다. 수영이를 이해 할 수 없었고 상수의 우유부단함이 거북했다. 사랑의 과정이 이렇게 지리멸렬하다면 수영이와 상수는 이어질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그들의 사랑이 이런 표현 밖에 없을까 생각되어 읽게 된 원작 [사랑의 이해]에서 수영이와 상수는 조금 달랐다. 소설을 읽을수록 수영이의 마음이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상수가 수영이에게 마음이 있으면서도 미경이와 사귈 수 있었던 그 순간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었다.

[사랑의 이해]는 은행을 배경으로 네 남녀의 이야기로 드라마보다 소설이 훨씬 입체적이었다. 드라마에서 답답하게 여겨졌던 종현이의 모습도 좋았고, 미경이의 사랑도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수영이가 상수를 좋아했는지 의문을 낳았던 부분도 확연하게 느껴지는 선을 볼 수 있었다. 드라마에선 같은 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 확실하게 서로 다른 곳을 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수의 옆 자리에 앉은 수영은 예뻤다. 그리고 상냥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은행 대부분의 남자에게는 호감과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런 수영을 마음에 품고 있는 상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수영은 달랐다. 모든 이들의 관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때로는 이용하고 때로는 버리기도 했다. 외유내강의 수영은 주변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상수의 관심이 싫지 않지만 그 연애가 어떻게 끝이 나는지 알고 있었던 것인지 쉽게 상수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상수는 은행의 정직원, 좋은 대학을 나온 인물 좋은 사람이지만 수영은 아니었다. 그런 부분에서 상수는 수영이게게 향하고 있는 마음을 직선으로 바꾸지 못했다. 그런 부분에선 상수도 주변의 남자들과 다르지 않는 그냥, 평범한 인물이었다. 예쁜 텔러 직원 한번 꼬셔 보고 싶은 마음, 밥 한 번 먹고 싶은 마음, 잠자리를 한번 가져 보고 주변에 뻐기고 싶은 마음이 늘 조금씩 자라다 사라졌다.

“ 관계를 더 발전시킬지 말지. 수영이 텔러, 계약직 창구 직원이라는 것, 정확히는 모르지만 변두리 어느 대학교를 나온 듯한 것, 다 걸렸다. 일도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그 두 가지가 상수 자신의 밑천이었기 때문에, 상수가 세상에서 지금까지 따낸 전리품이자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그 위력과 차별을 나날이 실감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P93

상수도 수영이의 미모에 그저 마음이 현혹이 되었지만 더 이상의 관계를 발전시키기에는 부담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그러니까 술자리서 같이 술을 마시다가 잠이나 한번 자는 걸로 충족을 시킬 그런 마음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수영이가 훨씬 인간적이다. 수영이가 상수가 아니라 은행 청경으로 일하고 있는 종현이를 사랑하게 된것, 그리고 그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간 것은 어쩌면 수영이가 부릴 수 있는 사치는 아니었을까. 나보더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종현을 거둬주는 일, 그것은 자신이 가진 화분들과 꽃들을 모두 내다 팔고 종현의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은 큰 희생이었지만 생색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은행의 청경인 종현은 수영이보다 더 심한 흙수저다. 고향의 부모님은 종현의 집 보증금을 다 가져가야 할 만큼 없는 집안이다. 아프면 굶어 죽을지도 모를 그런 집안의 종현이는 경찰이 되는 것이 꿈이고 그것을 위해 공부중이었다. 가진 것 없는 환경이지만 은행에서 가장 예쁜 수영이와 사귀고 있으니 그는 잃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얻은 것도 있었다. 그 이유는 그도 반듯한 외모와 어린 나이를 가졌다는 것이다.

드라마보다 훨씬 종현이가 살아 있는 캐릭터라는 것을 느낀 부분은 그를 표현하는 묘사들이 때문이었다. 수영이가 왜 상수가 아니라 종현이를 더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그만큼 미움을 덜어 낼 수 있었는지 묘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부분이 사랑의 이해였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랑이 이해되는 순간은 어느 부분에서 오는 것일까.

종현은 수영을 사랑했지만 그의 무겁고 낡은 시간들이 수영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며 헤어졌다. 수영도 종현을 사랑했지만 견뎌야 했을 무거운 시간을 피하지 못했다. 또한 종현과 헤어지기 위한 마지막 선택은 상수에게도 이해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상수는 괜찮았나보다. 그런 부분에서 상수와 수영이 현저하게 다르게 문제를 보고 있다는 것은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서로의 관심을 다시 느끼는 부분이었다.

상수는 미경이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수영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 위해 각자의 현재 연인과의 관계를 정리하자고 말했다. 수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가 떠나고 상수는 그때 미경과의 헤어짐 이후 다시 시작될 수영과의 관계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계를 정리하자고 했던 그 관계가 종현과의 관계가 아니라 상수와 수영과의 관계가 되었다. 수영은 사라졌다. 그때, 두 사람이 바라보고 있던 그곳이 서로 다른 지점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자와 남자의 큰 차이는 공감과 이해의 차이가 있다는 어떤 칼럼을 읽은 기억이 난다. 똑같은 문제가 생기더라도 남자는 이해의 측면이, 여자는 공감의 측면이 많아 서로 다르게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 그 부분으로 본다면 수영과 상수를 이해 할 수 있는 얘기들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나의 사랑은 이해 할 수 있지만 타인의 사랑을 이해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 다시 이별이 될지라도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이 꼭 한번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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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9 0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방자 신데렐라
리베카 솔닛 지음, 아서 래컴 그림,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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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찾은 엘라를 응원한다.

어린 시절 [신데렐라] 동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콩쥐 팥쥐나 백설 공주도 그랬다. 왜 다들 이렇게 계모들이 나쁜 걸까. 주인공은 곤경에 쳐해야 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사이다 결말을 줄 수 있어야 했기에 친부모가 주인공에게 악행을 저지를 수 없었다. 그것은 패륜이 깃든 얘기로 감동을 줄 수 없으니 부모는 계모로 바뀌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주인공은 당하며 사는 착한 인물이어야 하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갈등의 인물은 악해야 하는데 그것이 부모님일 수는 없을 테니까. 

샤를 페로의 [신데렐라] 원작이 권선징악의 성격을 갖는다고 해도 주인공들의 매력이 없다. 내게 신데렐라의 얘기가 재미가 없었던 이유는 매력 없는 주인공들 때문이다. 계모와 그 언니 동생들에게 당하는 신데렐라가 그냥 불쌍하기만 할 뿐 무엇 하나 끌리는 매력이 없다. 빌런을 담당하는 계모와 그의 자식들은 또 어떤가. 잠시 무도 회장에서 만난 왕자는 잘 생긴 얼굴이라고는 하나 이것은 그럼의 영향력이 크니 그러지 못한 동화책속에서는 시시할 뿐이다. 그 어떤 대사에나 행동으로 그의 됨됨이를 볼 수 없다고 할까. 12시가 되자 유리 구두 하나를 남기고 떠난 신데렐라를 그리워하는 그가 자신의 신붓감으로 여기고 찾아가는 모습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신데렐라가 예뻤으니까 찾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부분은 또 외모지상주의의 시작이 아닐까. 결국 찾아낸 신데렐라는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 신데렐라였지만 유리 구두를 다시 신으며 반짝이는 모습으로 돌아가 왕자를 맞게 되니, 어떻게 안 좋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해방자 신데렐라]의 엔딩을 읽으면서 이런 결말이라면 언제든지 신데렐라를 추천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의 얘기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다 요정의 도움으로 무도회장을 가고 12시가 되기 전에 돌아와야 하는데 하필 유리 구두 한 짝이 벗겨져 변신한 모습을 다 수거하지 못했다. 유리 구두를 들고 주인을 찾아 다녔던 왕자는 결국 신데렐라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 물론 우리가 그 신데렐라가 진짜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잘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엔딩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이 난다. 하지만 [해방자 신데렐라]는 행복의 결말이 다르다. 

동화 속 신데델라는 계모와 언니들의 구박에 힘든 날들을 살았다고 표현된다. 외로움을 달래준 것은 동물들뿐이었다고. 신데렐라가 집안에 갇혀 있었다는 생각만 했다. 하지만 신데델라는 시장에 나가 물건을 사며 사람들을 만났고 시장에서 사온 물건들로 요리를 하며 그 과정을 무척 즐거워했다는 것은 알 수 없었다. [해방자 신데렐라]속 신데렐라는 그런 과정을 즐기며 행복했다. 그렇게 자신의 재능을 알게 되었다. 요리를 좋아하는 신데렐라, 그리고 예쁜 케이크를 만드는 것이 행복한 신데렐라는 유리 구두를 신었지만 왕자와 결혼해서 신분상승을 하지 않고 자신만의 케이크 가게를 열었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이웃들과 함께 케이크를 함께 먹고 튼튼한 두 다리로 마음껏 달리며 어둡고 습한 집에서 나올 수 있었던 아름다운 이야기. 

“유리 구두 한 켤레가 케이크 가게 진열장에 놓여 햇빛에 반짝이고 있어. 하지만 신데델라는 유리 구두 대신 튼튼한 부츠를 신고 가게 계산대에 서 있거나, 아니면 회색 얼룩무늬 말을 타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지.” P42

튼튼한 다리로 자신의 집을 나와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신데렐라는 자아도 찾아 갔지만 자신의 이름도 찾았다. 우리가 알고 있었지만 지나쳤던 그 이름을 찾아간 그녀. 

“하지만 친구들은 이제 신데렐라라는 이름은 쓰지 않는대. 이제는 불똥이 튀어 구멍이 나고 재가 묻은 드레스 차림이 아니니까 

그래서 이제는 다들 원래 이름으로 불러. 이렇게 

엘라 ” P43

장작이 거의 다 타서 꺼져 가는 깜부기불을 ‘신더’라고 하는데 거기에 그녀의 이름이 합쳐져 만들어진 신데렐라는 이제 더 이상 없다. 이름을 찾은 엘라만 있을 뿐이다. ‘땀 흘려 일하면서 무언가를 길러내는 법’을 알고 있는 엘라가 동화속의 결말을 맞이하는 과정이 훌륭했다.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도 그랬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무도회가 없어도 무언가를 이뤄나가는 부분은 요즘 나의 소망과도 비슷하다.

신데렐라에 집중하다보면 왕자를 잊게 되는데, 왕자도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왕자도 원치 않는 왕자의 삶을 고달파 했다. 그런데 그 부분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왕자의 상황에 배부른 투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데렐라를 찾아와 그녀처럼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조언을 구하는 모습은 신선하다. 왕자와 신데렐라가 부부가 아니라 친구로 남은 것이야 말로 판타지적 결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왕자도 응원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될 수 있다. 

다음에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다시 쓴다면 왕자가 매력적인 모습으로 신데렐라에게 찾아오는 모습을 읽고 싶다. 왕자도 타고난 왕자에 그냥 오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뤄내며 살아가길, 그런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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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1-25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동화책인줄 모르고 봤다 더 흥미로웠던 !

서니데이 2023-02-07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오후즈음 2023-02-08 14:3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쥘과의 하루
디아너 브룩호번 지음, 이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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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양이를 그리는 유명한 작가의 고양이가 몇 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의 일이다. 반려인들은 키우던 고양이가 죽으면 대부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녀는 오랫동안 키웠던 고양이의 죽음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알렸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지난 시간을 추억하며 아늑한 담요에 누워 있는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더 이상 빗질을 해 줄 수 없으니 고양이를 안아주고 빗질을 해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반려 동물 장례식장으로 가서 화장을 하고 예쁜 구슬로 만들어 왔다. 그때 그 모습이 나에겐 너무 생소했다. 나에겐 죽음이란 장례식장으로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함께 했던 이들의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과 그 태도,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이 가지고 가야 할 상실감을 어떻게 치유 할 것인지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이었다. 

[쥘과의 하루]는 그 작가의 추모와 비슷한 경우였다. 매일 아침의 루틴으로 시작되는 하루 중 그 시작의 끝은 커피를 내리는 일이었다. 쥘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일과를 마치고 창가에 앉아 있다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쥘의 죽음이 믿어지지는 않고 당황스럽지만 알리스는 쥘이 향기 가득 내려놓은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쥘과 함께 하기로 했다. 우선은 쥘의 죽음을 혼자 감당해 보기로 했지만 그녀의 계획에 큰 변수가 생겼다. 매일 아침 열시에 쥘은 다비드와 함께 체스를 두었다. 쥘이 죽은 그날도 다비드는 쥘을 찾아 왔다. 자폐증이 있는 다비드는 상황이 바뀌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결국 쥘이 잠이 들었다고 얘기하고 알리스가 체스를 두기로 했지만 다비드는 쥘이 죽었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그때부터 이야기의 흐름이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 궁금했다. 돌방 상황을 싫어하는 다비드와 알리스는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낼 것이며 다비드가 인지하게 되는 쥘의 죽음은 또 어떻게 다뤄질 것인가. 

소설의 중심은 다비드와 쥘의 얘기도 아니고 오로지 알리스와 쥘과의 하루를 중심으로 다룬다. 불륜을 알게 된 후 쥘에게 갖게 된 분노를 감추며 살았던 알리스의 슬픔이 터져 나와 그동안 저 밑에 감춰 놓았던 서러움을 쥘에게 털어 놓았다. 그리고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아이와의 이별에서는 감정이 고조되었다. 알리스가 쥘과의 이별하는 방식은 마음 깊은 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고 스스로 위로 받는 것이었다. 알리스의 추모가 부러워졌다. 함께 한 가족이 세상을 떠나는 그때, 남겨진 말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면 남겨진 시간들이 많이 괴롭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아버지의 발인을 앞두고 있었던 새벽이었다. 해결하지 못한 법적인 문제로 장례식장이 하루 종일 시끄러웠었다. 모든 소음이 꺼지고 지친 몸을 벽에 기대 앉아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나는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있었다. 많이 울었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발인이 되기 몇 시간을 앞두고 깊은 원망으로 아버지와 얘기를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겨진 많은 일들을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걱정하고 답답했고 화가 났다. 이제 생각해보니 아버지에게 많이 미안하다. 알리스처럼 가슴에 맺힌 일들이 많지는 않지만 먹고 사는 일을 막아 놓고 가신 아버지에게 화가 나서 원망으로 한 달을 보냈다. 알리스처럼 쥘이 차려진 아침을 맞을 루틴이 없었던 가족들은 아버지의 죽음이 그저 절망으로 망연자실 했다. 처음은 당황스러웠지만 차분하게 쥘의 죽음을 받아들였던 알리스와 나는 많이 달랐다. 알리스처럼 고백할 말이 없었다. 그냥 아버지가 떠난 그 시간이 절망만 있다고 생각했다. 떠난 이를 그리던 따뜻한 그 순간이 없었다는 것을 1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1년이 지나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와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라는 단어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렀다. 아, 우리 아버지는…….그렇게 말을 꺼내다가 그날 아무 말도 못하고 소개팅 남과 헤어졌었다. 그때 알았었다. 아버지와 나와의 헤어짐이 이제야 시작 되었다는 것을. 

내게도 알리스와 같은 시간이 필요했었다. 원망을 내려놓고 아버지와의 지난 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추모할 있었다면 아버지와 헤어질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지금의 이곳에서 떠나게 되고 또 친한 지인과 가족과 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럴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 번의 경험이 있어도 아직 잘 모르겠다. 언젠가 그런 시간이 온다면 또 다른 추모의 방법이 생길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시간이 너무 자주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살아가는 날들 서로가 후회 없는 얘기들을 자주 나누며 살다 가고 싶다. 죽음을 한번 생각했었던 어느 여름날, 두렵고 힘들었던 그 단어를 쓰다듬으며 걸어 나왔던 날들을 떠 올리니 매일이 참, 소중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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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10-20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각자의 애도방식이 다르고 애도하고 추모하는 시간의 길이가 또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나 사랑하는 가족이나 반려동물을 애도하는 시간은 슬픔의 농도만 옅어질 뿐, 문득문득 떠올라 애도 시간은 영원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지가 7 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돌아가신 것 같지가 않네요. 계속 순간 순간 떠오르고, 그래서 그 순간순간 애도의 시간을 잠깐 가지곤 합니다. 슬픔의 농도는 확실히 옅어져가고 있구요^^
글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애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서니데이 2022-11-09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모나리자 2022-11-09 1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오후즈음님~^^

thkang1001 2022-11-09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후즈음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