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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감정이 나를 미치게 할 때 - 상처받지 않는 감정 조절법
앤 크리머 지음, 문희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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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제목 때문에 흠칫했다. 요즘 내 기분을 이렇게 딱 한 줄로 요약할 수가 있을까. “상처 받지 않는 감정 조절법”이라니. 더구나 책 표지에는 “직장에서 당신이 힘든 이유는 일이 아니라 ‘감정’ 때문이다!” 라고 적혀 있다.

 

그동안 내가 회사에서 퇴직을 하거나 이직을 했던 이유 중에 90%는 감정 때문이었다. 부당한 대우를 하는 상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회사에서 주어지는 업무가 너무 과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부하 직원을 함부로 대하는 직장상사, 그것도 감정 분출을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폭언을 일삼는 상사에게 그만 무릎을 꿇었던 적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바뀌지 못하고 변하지 못하니 그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라는 감정으로 회사를 떠났었다.

우리 회사에 20년째 근무를 하는 차장님에게 나는 어느 날 그런 얘기를 했었다. 대체, 당신을 그동안 이토록 힘든 이곳을 20년째 버티게 한 것은 무엇인가요? 차장님은 너무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자식 때문이라고”

 

하지만 자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어떠한 것으로 마음을 다 잡고 버텨 나가야 하는 것일까?

“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직장 생활의 행동 규범을 다시 생각해보면서 남녀의 신경생물학적 차이와 문화적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받아들인 것을 좀 더 생산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행동 규범을 정립하는 것.” P30

 

이런 내용을 다룬다고 하여 나에게 얼마큼 적용이 될까 생각하면서 읽었지만 역시 책에서 내세우는 방법들은 매번 비슷한 내용들뿐이라 다소 실망스럽다고 할까.

 

“감정을 유리하게 이용하려면 다양한 환경에 대체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감정 관리법’이라는 제목으로, 직장에서의 감정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갖가지 전략을 제시하려 한다.” P61

 

책에서 제시한 분노 관리법이 있다.

 

첫째는 관점을 바꾸기, 둘째 화를 내도 괜찮은 때 찾기, 셋째 상대에게 화난 사실 알리기, 넷째 부적절한 감정 표현 사과하기 다섯째 물러서는 법 배우기를 제시하고 있는데 제시한 것들 중에 우리 사회에서 가장 쉽고 가장 잘 받아들이기는 것은 물러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조직 문화를 바꿀 수 없고 그 조직에서 내가 오너가 아닌 이상 나는 그 속에서 그저 발끈했던 주먹을 다시 펴고 앉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가 분노하는 한 가지는 한 개인이 겪는 부당한 일,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일입니다. 저는 늘 사람이 다른 사람을, 특히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홀대하면 참지 못합니다.” P147

지난달에도 우리 회사에서는 이런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밥줄을 놓고 대적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저 이상한 팀장, 대리가 발령이 나서 다른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얘기만 할뿐이다. 누구하나 당신이 하는 말이 너무 지나치고 홀대하는 것이 옳지 않으며 생존권을 쥐고 흔들며 마치 사람의 약점을 잡듯 대하는 행동은 삼가 달라고 말하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무것도 없는 12월의 들판 같다.

결국 회사도 사람이 운영을 하고 사람으로 이뤄져 움직이는 것인데 왜 이렇게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는 일들은 계속 이뤄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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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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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 꽃말을 생각해 본다. 언젠가 들었던 안개꽃 꽃말은 죽음이라고 들었다. 장미와 함께 있어야 더 아름답게 보였던 그 꽃말은 장미의 꽃말과 함께 죽을때까지 사랑한다는 뜻으로 아주 어릴 때 알았던 꽃말을 떠 올려봤다. 색마다 다른 꽃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흰안개꽃은 죽음의 뜻도 가지고 있다. 안개꽃이 한가득 피어있는 표지가 있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다 읽고 나니 안개꽃같이 작은 서글픔이 눈 속 가득 망울졌다가 뚝 떨어졌다. 작고 소중한 생명이 안개꽃처럼 피었다 사라진 죽음들의 아우성을 귀 막지 못하고, 그녀는 어쩌자고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1980년 5월, 어느 누구는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 혹은 알고 있어도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 혹은 잊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1997년도에 출판된 임철우의 [봄날]도 광주민주화의 이야기였다. 총 5권으로 출판되었는데 마지막 권은 읽는 동안 많이 힘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런 세상이었다는 것, 지옥 같은 날들을 만들어 놓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고, 그는 지금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잘 살고 있는 세상이 무서웠다. 대체 우리는 아무런 양심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날, 열다섯 동호는 계엄군의 총에 맞아 쓰러져 죽은 정대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정대를 찾아 나갔던 정대의 누나 정미 또한 동호의 책을 받아 공부를 더 해보려 했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동호의 집에 세들어 살고 있었던 두 남매는 그렇게 아무런 소리 없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동호 또한 열여섯 살이 되지 못하고 꽃피는 찬란한 오월에 사라졌다.

동호와 정대, 그리고 정대의 누나 정미가 사라졌던 그날 5월 18일 군인들은 80만발의 탄환을 가지고 광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해 광주의 시민들은 총 40만이었다. 광주 시민을 모두 한발씩만 쏴도 40만발이 남는 탄환이었다. “잔인하게 그 어떤 죄의식이나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취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P206"은 지금도 너무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이런 명령을 내리고 그들은 그날 하루, 아니 일주일동안 무엇을 하며 있었을까.

“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P57

 

열다섯 동호는 자신이 열여섯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못하고 상무관에 남아 계엄군의 총에 맞은 시신을 닦는 일을 도와준다. 마치 언젠가 자신도 이런 모습으로 누워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처럼. 그곳에서 동호는 자신과 함께 세상에서 살아질 누나, 형들과 함께 지독한 며칠을 보냈다. 동화와 정대, 정미는 고통스러운 날들을 뒤로하고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지독한 날들을 겪어냈던 김은숙은 여전히 지독한 광주의 기억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필 왜, 고3때 광주의 날들을 겪으며 대학 생활 내내 전두환 타도를 외치며 대모를 했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작은 출판사에서 교정을 보며 때로는 “일곱대의 따귀”를 맞으며 끝나지 않은 광주의 날들을 견뎌야 했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대모를 했던 임선주 또한 지독한 고문에 시달려야 했고 그녀의 고문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다. 그녀가 멈추지 않는 하혈 때문에 고문이 끝날 수 이었다. 임선주와 함께 상무관에 있었던 김진수 역시 임선주와 버금가는 고문을 받았다. 손가락 마디에 “모나미 볼펜”을 꼽아 돌려 뼈와 살이 분리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성기 고문을 받았다. 그들이 그토록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P114

일곱 대의 따귀를 맞으며 한 대씩 자신이 따귀를 맞은 것들을 잊으려고 했지만 잊지 못했던 김은숙이나 고문으로 인해 결혼 후 남자와 관계를 할 수 없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임선주나 모나미 볼펜과 성기 고문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하게 된 김진수역시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그저, 양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목숨을 그렇게 하찮게 여길 수 없다는 것. 누구나 존엄한 가치를 인정받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꼭 지켜 내야만 했던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그, 양심. 그 양심이 지금은 누군가에게 의해 지켜지고는 있는 것일까.

나는 동호의 이야기장보다 동호를 떠나보냈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었던 여섯 번째 장에서 오열했다. 자식을 보내는 어머니의 그 무던하게 속삭여주는 마지막 문장에서 울었다. 1980년 5월 아들을 잃고 아들의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어머니. 죽은 줄은 알지만 혹시 어느 순간 문을 쾅하고 소리 내며 들어올지 몰라서 작은 인기척에도 “동호냐~”라고 불러도 보는 어머니. 형들이 학교에 가면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던 동호와 함께 걸었던 길들을 떠 올리며 어머니는 길을 걸어 나갔다.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싫어했던 동호였는데 동호는 자꾸만, 왜 캄캄한 데로 가냐고, 저쪽, 꽃 핀 쪽으로 가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얘기에 한참을 울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P99"

어머니는, 자식의 장례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삶이 장례식이 되었겠구나. 그날, 그들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은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장례식처럼 하루가 밤 같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겠구나. 새벽녘 한 도시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도 남은 탄환을 가지고 내려와 세상에 빛도 보지 못한 생명도 엄마 뱃속에서 사라지게 했던 그 지옥 같은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장례식이 아닐까.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소설, 그리고 한동안 멀리 했던 한강의 소설을 다시 읽게 된 반가운 그렇지만 가슴 아픈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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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4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후즈음 2014-12-05 10:2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서니데이님.
북풀로 인해 이웃이 생긴것 같아 즐겁네요. ^^
다독가라기보다는 그냥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그런 사람인것 같아요. 많이 읽고 싶은데 늘 부족한 독서량입니다.
추운 겨울, 자주 찾아갈게요 :)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 아무것도 못 버리는 여자의 365일 1일 1폐 프로젝트
선현경 지음 / 예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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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나는 버리는 것이 정리의 시작이 된 것 같다. 곤도 마리에의 정리 관련 책을 읽으면서 주변 정리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버릴까 고민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 때문에 물건을 사들이는 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졌고 누군가 뭘 준다고 하면 넙죽 받아 왔었는데, 집에 들이면서 쓰레기로 변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집에 들이지 않는 일들이 생겼다. 뭔가 나에게 정리 관련 책이 준 변화는 나에게 와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는지 잠시나마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는 만화가 이우일의 아내이자 동화 작가인 선현경이 쓴 정말 너무 유쾌한 물건 버리기 책이다. 저자는 어느 날 친구의 전화를 받고 <죽어도 못 버리는 사람들, 호더>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주변의 물건들을 바라보며 버리지 못하고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곤도 마리에의 책을 읽으면서 나도 실천을 해 보았던 물건 버리기를 저자는 매일 하나씩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냥 버리고 나면 물건의 이미지나 그것을 통한 그동안의 추억이 너무 짧게 사라지는 것도 있으니 저자의 장점을 살려 버리는 물건들을 그려 기록하기로 한다. 한꺼번에 많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하나씩 버리는 것이니까 부담이 없을 것 같지만 사실 이것도 만만찮은 작업이다. 저자 또한 어떤 날은 버리지 못하는 날이 있어서 괴로워하고, 버릴 물건을 찾아 집안을 헤집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뭔가 일정하게 버리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정말 잘 깨지지 않아도 곤란한 그릇들이 있는데 그 그릇의 종류는 코렐 그릇들이다. 너무 안 깨져서 이 그릇만 쓰느라 다른 그릇을 써보지 못했다. 특히 머그컵을 좋아하는 나는 코렐 컵이 깨지지 않아 괴로울 때가 있었다. 깨져야 예쁜 머그컵을 살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참 이상한 변명이겠지만, 그런 코렐 그릇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백프로 공감했던 그릇도 버리고, 누구에게서 받은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로고가 찍혀 있는 양말들을 버리고, 이제는 편한 신발을 찾아 신느라 더 이상 신지 않는 높은 굽의 신발들을 버리고 멕시코에서 산 액세서리를 버리며 그날의 추억은 간직하기로 한다. 그녀가 버리는 물건들은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은 아니고 쓸 만한 물건들은 필요한 지인들이 가져가거나 벼룩시장을 통해 기금 마련으로도 쓰였다. 기금 마련으로 쓰인 물건들은 나름의 또 다른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

 

 

“다행히도 여기에 기록된 물건들은 전부 내가 버리는 것들이니 이것들이 필요하다면 누가 어떻게 사용하든 상관없다. 바닷가에 있는 조개껍데기처럼 말이다. 대신 물건과 함께 버려지기도 하는 잘못된 생각과 불필요한 감정은 아무도 가져가지 말기를." P249

 

 

나도 저자의 1일 1폐를 실행할까 생각해봤는데 한 달도 못할 것 같다. 그렇다고 주변에 물건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직 떠나보낼 마음을 먹지 못한 물건들도 있고 쓰지 않는 물건이지만 언젠가는 꼭 필요할 것 같아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훨씬 더 많이 집안 곳곳에 방치되어 있다. 어쩜 이것은 저자의 말처럼 제각각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기 때문에 방치가 아닌 저장을 해 놓고 있다고 생각하나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일단 무엇에든 한 번 정이 가면 쉽게 끊어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그게 정일까, 미련일까? 사람과의 사이만으로도 벅찬데 작고 사소한 것들에도 마음 쓰며 살아가자니 이 고생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버려서 그것과 연관된 기억까지 잊힌다면 추억이 아니다. 추억이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추억이라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P21

 

 

계절이 바뀌면서 옷장 정리를 하며 버려지는 옷들을 모아 놓고 지난번 옷을 많이 버려 추려 놓고 정리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이렇게 또 많은 옷을 버리는 것일까 생각해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대 대한 애착이나 쓸모에 대한 생각이 아직 부족한 것은 아닐까 반성했다.

 

“ 프랑스 철학자 미셀 퓌에슈는 버리는 일을 최대한 피하려면 물건을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수리와 유지가 가능한 물건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오래 유지하는 관계의 소중함을 느껴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내 낡은 물건들을 다독인다. 같이 잘살아보자, 물건들아!” P49

 

 

같이 잘 살기위해서 나를 다독이는 일도 중요하다. 오래되면 고칠 게 생기기 마련이고 덜 고장이 나도록 수리도 잘 해야 하고 관리도 잘해야 하는데, 하물며 이것이 물건에만 해당되는 일이겠는지. 나도 나를 아끼며 사랑해야 하는데 간혹 버려지는 물건에 대한 마음만 생각하다보니 나를 아끼는 일에는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는 1일 1폐를 하면서 일단 소비를 최대한 절제하고 뭔가를 사야 할 때는 아주 신중해졌다고 한다. 곧 다시 버려질 물건을 사들이는 일은 없어야 하니 몇 번씩 생각하고 집에 있는 물건들을 떠 올려보며 대체 할 물건들을 생각해보는 습관도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값이 싸서 사거나 쉽게 살 수 있는 물건들은 쉽게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직고 되도록 질 좋은 물건을 찾게 된다고 한다. 그녀의 하루에 하나씩 버리는 일은 그녀의 마음속의 군더더기도 가지런한 신발장처럼 정돈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버리기 일기 속에서 내가 가장 크게 가슴에 와 닿았던 부분은 그녀가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앞집 언니에게서 받은 핑크빛 도는 살구색 마 통바지를 버리면서 떠올렸던 생각들이었다. 어쩌다 우연히 한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친하게 지내게 된 사이의 이웃. 가까워지면서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흐뭇했지만 다시 이사 한 뒤 멀어지고 나니 몇 번 만나고 난후 점점 소원해지고 지금은 무덤덤해진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관계란 이런 걸까? 서로 궁합이 잘 맞아 영원히 친할 것만 같지만, 알고 보면 그냥 우연찮게 가까이 있어서 그럴 뿐인 사이. 멀어지면 끝인 사이”P270

 

 

어쩌면 내가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은 어쩌면 이런 이유의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다 나의 눈에 맞아 사왔던 물건들. 그냥 옆에 두고 있지만 사실은 찾지 않는 물건들이 훨씬 더 많이 있고 그들을 버리고 나도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고 그냥 무덤덤하게 잊힐 것 같은 그런 물건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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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들은 무엇이 다른가 - 행복을 결정짓는 작은 차이
조르디 쿠아드박 지음, 박효은 옮김 / 북로드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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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가 생각하는 희망과 행복은 같은 것으로 봐야 할 것인가 고민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원하는 것을 꼭 얻으며 지금의 어느 순간을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 희망의 순간이 왔을 때 행복 할까.

[행복한 사람들은 무엇이 다른가]는 그간 많은 실험을 통해, 행복한 사람들의 유형, 원인, 이유들을 살펴봤지만, 책 끝마무리에서 밝히듯이 행복의 척도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어떤 통계를 내기 힘들다고 보여 진다. 부유하지 못한 멕시코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국민 순위로 2위에 들고 선진국인 일본이 40위에 해당하는걸 보면 나라의 부유함보다 처한 위치에서의 만족감을 얼마나 충분히 느끼며 향유하며 살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OECD 국가 중 행복 지수는 가장 낮고, 자살률은 가장 높은 국가인 우리나라는 지금 모든 사람들이 다 불행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하니, 가슴 한편 참 씁쓸해 진다. 요즘 매번 나오는 기사 중에 생활고에 허덕여 죽은 연예인이나, 일반인들의 기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일로 죽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행복의 개념은 분명 다층적이지만 오늘날 학계에서는 부정적 감정은 피하고 긍정적 감정을 유지하며 삶의 만족감을 높이는 것 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P26

 

 

사전적이고 실험을 위한 행복의 개념이어서인지 사실 와 닿지 않는 문장이긴하다. 행복한 사람들은 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이 책속에서 깨알 같은 내용들은 많이 예와 실험 사례들을 알려주지만 막상 나와 맞는 부분이 아닌 이상에야 크게 어필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가난한 나라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들은 긍정적인 사고가 많다고 한다. 어떻게든 되겠지, 더 나쁜 쪽으로 갈 수 있었는데 이만큼의 불행만 왔다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생각하게 되고, 큰 것들만 채우기 위해 애쓰지 않고 작고 소소한 것들을 즐긴다. 오늘 아침 무심코 틀어 놓은 라디오나 티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나 음악이 나올 때 즐거움, 꼭 하고 싶었던 것을 이뤄 냈을 때, 그것도 아주 작은 시도, 아침 일찍 일어나기, 오늘 하루는 조금 더 걷기 등등 뭐 이런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아 그것이 행복이라는 만족감으로 남는 그들의 사소함이 그냥, 삶의 행복의 가치가 될 수 있다.

문득 나는 어떤 행복과 즐거움을 찾으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어제보다 오늘 업무량이 훨씬 적어 오늘은 회사에서 사적으로 책을 몇 장 더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 어제와 그제 얘기 못했던 직장 동료와 오후 늦은 점심을 먹으며 그녀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듣고 나의 위로가 그녀에게 힘이 되었다는 짧은 메신저의 답문. 도시락 반찬으로 싸간 반찬들이 모두 맛있었다는 동료들의 칭찬, 그로 하여 나는 요리 잘하는 여자가 되었다는 뿌듯함 등등 그런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이런 사소한 행복을 놓치며 과한 업무로 어깨가 계속 뭉쳐 몸을 뒤척일 때마다 힘들었던 어제의 짜증, 16개나 있는 연차 하나 쓰러 갔다가 반차 쓰라고 말하며 나를 돌려보낸 팀장님의 원망, 열 받음, 왕 짜증, 팀장님은 팀장 수당을 나의 월급만큼 받으면서 일하지만 나는 그런 것도 하나 없는 직원인데 연차 하나 쓰는 것이 뭐 대수냐고 소리치려다가 조용히 차월 진급 성적에 빨간 표 갈까봐 수그리고 나온 나의 비굴함으로 소소한 행복을 놓치면 안 되겠다. 행복한 사람은 이런 것을 놓치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행복은 나이에서도 온다고 하지 않던가. 책속에서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든 사람들이 그간 살아온 세월을 느끼며 지금을 만족스러워하며 불행스러운 지금도 이렇게, 저렇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행복은 결국 나에게서 시작해서 나에게로 끝나는 것이다. 어떤 행복도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행복이 되지 못할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틈틈이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앞으로 하려는 일에 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없다고 해도 나는 그 일을 할 것인가?’”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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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걷다가, 문득
이혜경 지음 / 강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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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진 한 장 없는 멋진 여행기라니. [그냥 걷다가 문득]

가끔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 생김새와 닮은 글을 쓴다고 생각되는 작가들이 있다. 이혜경의 산문을 읽으면서 그녀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모르면서 읽는 동안 정말로 그녀는 조용하고 차분하고 느리고 고운 선을 가진 사람일 것만 같다. 꽃바구니도 아닌 단 두어 송이의 작은 풀꽃을 들고 수줍게 웃고 있는 이혜경을 보는데, 이 책도 그녀처럼 수줍고 소박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역시 그녀의 사진속의 느낌처럼 닮아 있는 책이다. 사실 나는 그녀의 이름이 알려진 것에 비해 그녀의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의 단편집도 한권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소설이 궁금해진다. 산문처럼 그녀의 매력이 가득 담겨 있을 것 같다.

 

 

 

총 4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었지만 구성의 의미는 없다. 단, 처음 구성에는 그녀가 그동안 여행을 다녔던 동안에 느낀 얘기들이었는데 읽는 동안 놀라웠다. 아니, 사진 한 장 없는 여행기인데도 가보지도 않은 지역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요즘 여행 블로거들을 통해 많은 지역의 사진과 여행기를 보고 있노라면 여행을 떠나고 싶어 무거운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하며 떠나고 싶어 난리가 아닌 적도 있었다. 그리고 막상 여행을 떠나면 나도 그들처럼 사진을 담고 싶어서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얼마 전 파리에서는 너무 무거운 카메라 때문에 목에 디스크가 걸릴 정도로 힘들고 피곤했다. 무더운 날씨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느라, 지금 이 여행이 사진을 찍기 위해 온 것인지 새로운 나라를 향한 즐거움을 만끽하러 온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듯이 사진을 찍고 오니 체력이 방전도 되었지만 느긋하게 즐기는 여행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다. 남는 것이 사진이라며 각 지역마다 2천장 이상의 사진을 찍어오긴 하지만 자주 보지도 않고 블로그에 올릴 만큼 좋은 퀼리티의 사진은 몇 장 없다는 것이 더 속상했던 여행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나의 여행을 생각해 보면 그녀의 첫 번째 구성에 있는 여행기들은 반성과 나의 지난 일들을 성찰하게 만든다. 사진 한 장 없어도 그녀의 그 지독한 고독의 여행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그녀의 치유의 한 방편을 배울 수 있었다. 그녀의 간결한 문장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지역의 골목을 떠올리게 만들고 상상하게 만든다. 그녀의 손을 잡아준 나이든 할머니의 주름살이 보이고, 그녀에게 친절을 베푼 낯선 땅에서 만난 다른 국적의 아가씨의 웃음이 보인다. 부다페스트에서 자신의 나라에 머물고 갈 외국인이 좋은 잠자리에 잠을 잘 수 있도록 도운 그 남자의 친절한 인상과 손길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려진다. 떠 올려 진다. 그녀가 다녔던 좁은길, 높은 언덕, 바람부는 바닷가의 모습이 사진 한 장 없이 이렇게 그려지다니. 이런 여행기를 쓸 수 있다니, 부러운 마음에 나는 여행을 통해 어떤 것을 얻으려고 했던 것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냥 걷다가 문득, 그녀의 이 문장에 내가 여행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이런 치유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 자기의 한계를 끌어안고 그냥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내게서 사람에 대한 믿음을 거둬간 사람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 누군가에게 사람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게 했을지 모를 나 또한 그렇다고.” P25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친구와 서로 연락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었던 일이 있었다. 그로인해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몇 달 동안 마음이 아팠다.

 

 

 

“잘못 가꾼 인연 하나가 나와 내 주위의 다른 인연들 사이에 끼여서 내 진심을 왜곡시켰다. 내 눈앞에서 진심이 왜곡되는 걸 보면서도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P121

그녀의 문장을 읽다가 눈물이 났다. 몇 년동안 절친이었다가 헤어진 그 친구 생각이 났다. 분명 우리는 서로에게 잘못 가꾼 인연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로 하여 서로와 연결된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도 차단하고 있으며 그동안 즐거웠던 몇 번의 기억은 잘못 가꾼 인연으로 가장 필요 없었던 추억의 한 장이 되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녀와 지냈던 추억이 찢어진 종이처럼 더 이상 불필요한 것으로 남아버렸다. 처음에는 그녀의 잘못만을 생각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나의 잘못들을 자책했다. 그녀가 나에게 준 상처처럼 나 또한 그런 상처를 준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니 뭐든 다 용서가 될 것 같은 일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도 있다는 것을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크든 작든, 믿었던 것이 무너지는 경험은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약속 시각을 지키지 않는 사람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작은 일에서부터,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의 배신, 치밀하게 계획을 짠 사기에 이르기까지. 그런 일들을 겪고 나면 너나없이 세상을 보는 눈에 아주 조금씩 불신이 어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불신은 남에게 마음을 여는 일을 주저하게 만든다.” P214

그녀의 일로 나는 누군가와 사귀는 일, 인연을 만드는 일이 부질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어린시절의 친구가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만난 친구와 인연을 이어가는 일이 참, 쉽지 않음을 느끼며 조직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딱 그만큼의 일정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남에게 마음을 여는 일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상처 받은 일이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요즘 나는 그 어떤 때보다도 조직 속에 있는 사람들과 훨씬 재미나게 살고 있다. 나와 동갑인 친구와 나보다 두어 살 많은 직장 동료와, 나이가 어린 사람들과 속 깊은 얘기를 나누며 지내고 있다. 친구와 다르게 그들이 내게 주는 위안은 행복하고 즐겁다.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고 작가 노희경이 말하지 않던가. 상처 받았기 때문에 더 많은 인연을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사랑으로 받은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 된다고 하듯 잘못 키운 인연의 상처로 앞으로 이어질 인연을 모른 척 하지 않기로 했다. 더 좋은 인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전에 잘못 키운 인연으로 나는 분명 만남에서 중요한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저자의 말들로 지나간 일들을 곱씹는 시간을 만들었던 몇 시간이 몇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했다.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이리 저리 치여 수더분해졌다고 생각되지만 그녀의 나름의 고집이 에세이 속에 녹아 있다. 작은 인연에 감사하고 작은 선물에 고마워하고, 사랑을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강아지의 낮은 자세로 사랑의 다른 이면을 배우는 그녀의 삶의 태도와 성찰에 눈물이 난다. 내가 누렸던 즐거운 시간을 잊고 단 몇 시간의 고통스러움이 인생의 전부였던 것처럼 그동안의 삶을 후회했던 바보 같은 일은 이제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그녀처럼 삶을 유연하게 보낼 자신은 없다. 아직도 더 많은 상처로 다독여져야 할 것이고 뾰족하게 모난 부분을 둥글게 다듬어야 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

 

 

 

“ 앞으로 내가 만날 크고 작은 전환점들, 그중 가장 큰 전환점은 금생에서 입었던 육신을 벗는 바로 그때일 것이다. 감히 바라옵건대, 그 큰 모퉁이에서 내 딛는 내 걸음이 의연하기를.” P97

 

 

 

그녀의 말처럼, 언젠가 다가올 다음 세상의 안녕을 위해 의연하게, 행복하게 살기를 나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이제는 그녀의 소설을 읽어야겠다. 이런 다정다감한 에세이를 쓰는 사람의 소설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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