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다 - 꽃의 인문학 ; 역사와 생태, 그 아름다움과 쓸모에 관하여
스티븐 부크먼 지음, 박인용 옮김 / 반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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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봄이 되면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마을에서 열리는 꽃과 관련된 행사를 찾아가 볼까 뒤져보기도 한다. 하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인터넷으로 오르는 기사 한 줄과 함께 본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여의도 벚꽃구경을 한번 가보곤 다시는 한 낮에 가는 일을 삼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꽃구경이 아니라 사람 구경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벚꽃 길의 끝자락을 붙들며 꽃길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 나왔던 것이다. 많은 인파에 치이면서 걸었던 그 길이 아름답다는 탄식을 쏟아내기엔 복잡하고 번잡한 느낌에 처음 가졌던 기대는 사라졌다. 나만 어떤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부분 뭔가 대단한 봄을 알리는 서막을 여는 꽃의 향연을 그리워 했던것 같다.


하지만 이런 봄을 그리워하는 것은 점점 짧아지고 있는 계절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봄에만 볼 수 있었던 꽃들이 어느새 볼 수 없을 것 같은 아쉬움은 환경에 대한 고민과 반성도 하게 된다.

내게는 혹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꽃은 그냥, 길가에 피고 지거나 조경을 위해 만들어 놓은 화단에 피어 있는 꽃을 보는 것이 대부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꽃으로도 때로는 계절의 움직임을 느끼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이를 느끼는 것은 꽃이 주는 위로와 안식일지 모르겠다.



이런 꽃들에게도 역사라는 것이 있고, 환경이 변화하면서 그들도 모습이 달라져왔다. 때로는 꽃은 부유한 생활의 과시욕이 되기도 했다. 몇 년 전 방문한 오스트리아 쉰브론 궁전의 뒷문으로 나와 마주한 정원은 아름다웠다. 궁전에 머물렀던 왕비는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의 꽃들을 보면서 휴식을 얻었을 테고, 수많은 종의 꽃들을 가꾸고 키우기 위해 애를 썼을 테고 더 화려하고 유일무이한 꽃을 찾아 자신의 정원에 심고 싶어 했을 것이다.



유럽에선 꽃이 귀족들의 전시품이 됐던 부분도 있지만 꽃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헤세도 정원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며 마음의 위안을 찾았고 그것을 통해 그의 글쓰기도 계속 될 수 있었다. 간혹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수목원만 찾아다니는 지인도 있는데, 그녀의 마음도 헤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동물도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인 것처럼 꽃 또한 그렇다. 인간의 무모한 행동으로 인해 자연 속에 녹아 들어가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이 사라져 갔는지.

“꽃이 우리를 치유한다면 우리 또한 꽃을 치유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사막화, 삼림 벌채, 기후변화에 수반되는 생활터전의 여러 가지 변화 등 수많은 환경적인 도전에 맞설 수 있을까? 사람이 자연을 치유하게 될까? 황야나 공원, 도시가 모두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 세대와 미래의 여러 세대가 자연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것, 멸종은 점차 늦추어지다가 이윽고 안정적일 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모든 것을 상실한 것은 아니며 희망도 많다. 꽃과 사람은 함께 생존하기 위해 서로에게 필요하며 또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 ” P 407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보호는 어디까지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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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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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본 드라마 중에 하나는 살인자의 아들로 자신의 아버지의 무죄를 밝히는 내용이었다. 결국 아버지의 무죄를 밝혔지만 무죄를 밝히는 과정까지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은 냉대를 지켜보는 것은 또 다른 슬픔의 한 드라마였다.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의 가족들은 어떤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미국의 유명한 살인자 중에 하나인 게리 길모어. 그는 사형 제도를 다시 부활시킨 인물이었다. 어떤 복수나 증오로 시작된 살인이 아니었다. 게리 길모어는 그와 관련 없는 두 명의 시민을 죽였고, 자신을 처형해 달라고 했다. 당시 유타주에서는 10년 동안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10년의 기록을 깬 사람이 게리 길모어였다. 그는 자신을 죽여 달라고 했고, 두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심장을 향해 총구를 겨눠 주기만을 바랐다. 이런 그의 일화는 영화와 책으로도 만들어 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도도한 살인에 분노했었다.

 

 

 

저자는 너무도 유명한 사형수인 게리 길모어의 동생이다. 그는 <롤링스톤>의 수석편집장이었으며 작가이며 유명한 음악평론가이다. 그가 살인자이며 유타주의 사형수였던 게리 길모어의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비뚤어지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동안 겪어야 했던 슬픔과 외로움은 자신의 형이 만들어 낸 영화와 또 다른 역사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책이 상당히 두껍다. 약 70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다. 그는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토록 방대한 양의 내용을 쏟아 내면서 그의 형을 변론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처음은 그의 부모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의 아버지는 정착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이미 여섯 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하고 저자의 어머니인 베시와 결혼을 했다. 광고사기 수익금으로 살아갔던 그의 삶은 이미 사기와 절도가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이곳저곳을 떠돌며 생활을 이어 갔고, 정착하지 못한 그들의 삶은 위태로웠다. 그런 아버지는 자상함이라곤 하나도 없었고 언제나 폭언과 폭력이 뒤따랐다. 아내를 구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규칙을 지키지 않는 아들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매번 밤 10시의 귀가 시간을 만들어 놓고 지키지 않는 둘째 아들을 문을 열어주며 폭행을 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가족들에게 행해지는 자신만의 규칙과 규율 이었으며 권위와 권력이었다. 그가 했던 학대들은 모두 요즘 뉴스에 탑 기사로 실릴만한 것들이었다.

 

 

 

떠돌며 살았던 아버지는 아이들에게도 정착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품어 주지 못했고 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아들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이미 남편의 폭행에 병들어 있었고 지쳐 있었다. 모르몬교를 믿었던 그들의 신앙이 어쩌면 게리 길모어가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운명을 얘기해 주는 부분도 있었지만 사실 그것이 그렇게 큰 영양을 미쳤을까?

 

 

 

열세 살 때부터 범죄를 저질렀던 게리 길모어에게 누군가 다정하게 그를 인도 했다면 무고한 시민 두 명을 살해하는 일은 없었을까? 네 명의 아들 중에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막내아들, 즉 저자였다. 그는 간혹 자신이 살인자가 되지 않고 아버지처럼 알코올 중독자로 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아버지의 학대의 그늘에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가 유명한 잡지 편집장으로 또는 음악 평론가로 살아 갈 수 있었던 것은 어쩜 그런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그늘 밖에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이렇게 긴 고백을 하는 동안 그가 괴로워했던 날들이 조금은 상쇄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내가 똑같은 과정을 겪지 않는다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의 슬픔을 조금 알아가는 것뿐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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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 푸시킨에서 카잔차키스, 레핀에서 샤갈까지
서정 지음 / 모요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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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일본 마츠야마로 여행을 가면서 나츠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읽고 갔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한 번 [도련님]을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몰랐지만 두 번째 그곳에서 다시 읽을때는 책속의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뭔가를 알아낸 것이 아니라 그냥, 작가가 이곳에 머물며 그날의 느낌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배경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그저 혼자만의 기분이 더해져 좋아했을 뿐이다. 그때 느꼈던 것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따라 여행한다는 것이 참 즐거운 테마 중에 하나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이 그런 것이었다.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는 나의 이런 바람이 가장 많이 녹아져 있는 책이다. 러시아에서 그리스, 프로방스에서 사마르칸트, 그리고 영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따라간 여정을 쫒아간 베네치아의 뒷골목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이런 문학을 모티브로 한 여행 프로그램이 있다면 패키지라도 참가해서 따라가고 싶어졌다.

 

 

 

러시아가 사랑한 천재 시인 푸시킨, 그가 있었던 차르스코예 셀로, 모스크바, 상트페르부르크의 모이카 운하거리 12번지로 우리를 안내한다.

 

러시아의 문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인물,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문학적인 근거지보다 그의 삶을 엿볼 수 있었던 부분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그가 도박판을 벌이던 바덴바덴의 카지노. 그의 삶이 녹아내리고 그의 소설의 근간이 되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와 골목의 묘사는 러시아로 뛰어 들고 싶게 만들었다. 러시아의 문학이 이토록 빛나는 이유는 뭘까. 그래서 유럽의 어떤 도시보다 가장 오래 머물고 싶은 나라가 요즘 나에겐 러시아였다. 그녀를 따라 떠났던 문학 여행은 러시아가 끝이 아니다.

 

 

 

나는 가끔 샤갈의 그림을 볼 때마다 눈을 반쯤 감고 뭔가를 떠 올리며 그림을 보고 있는 느낌을 가끔 받았었는데, 러시아 출생 샤갈이 고향을 떠나 파리에서 머물며 그의 고향인 비텝스크를 그리워하는 마음의 환영이 그림에 잠시 머물렀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이 들게 되었다. 어쩜 이런 우스운 생각도 이 책을 통한 저자의 안내가 아니었다면 사실 잘 몰랐던 부분이었다.

 

 

러시아 출신들만이 아닌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삶의 굴곡이 많은 사람들이었는데 그 중에 최고는 고흐였고 이후엔 가장 안쓰러웠던 카잔차키스였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재미있게 읽었던 것도 있었지만 스페인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은 그의 스페인 기행은 정말 좋았다. 고흐가 머물렀던 남프랑스의 얘기는 안타까웠던 부분도 있다. 고흐를 추억하기 위해 상업적으로 그가 그린 테라스보다 더 진한 노란 색으로 칠해진 카페는 살면서 단 한 장밖에 팔리지 못한 고흐의 그림보다 더 안쓰러워 보였다. 사후에 유명해진 작가들을 보면 그의 이름을 가지고 너무 우려먹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한 부분들에 씁쓸한 기억을 만들곤 한다.

 

 

그녀가 고흐를 추억하며 떠났던 남프랑스도 그랬고, 유명한 작가나 화가를 배출한 도시는 늘 그를 추모하며 사는 것처럼 그의 물건들과 이름이 있는 기념품들로 가득차곤 한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그런 물건들을 만나게 되고,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사오기도 하는데 막상 집에 도착하면 때론 그런 물건들이 가장 골치가 아프다. 버리기엔 뭔가 아깝고,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나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즘 유럽 여행을 가면 쓰레기가 되지 않을 아주 작은 것으로 사오게 되는데 그것이 마그네틱이었다. 하지만 이것처럼 가장 필요 없는 물건이 어디 있을까 싶다. 냉장고 한 면에 가득 붙여진 마그네틱으로 전기세만 더 나올 뿐이고, 혼자 보며 즐거운 것이 전부가 되어 버렸다.

 

 

 

요즘은 유럽 여행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비행기를 예매하고, 인터넷에 넘쳐나는 여행기를 몇 편 읽거나 인터넷 카페를 통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때로는 부부가 결혼식만 올리고 신혼여행을 1년 장기 세계여행으로 떠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는 것에 놀라웠었다. 이렇게 떠난 이들이 블로그에 올려 그것을 묶어 책으로 출판되기도 한다. 그런 책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요즘 많은 이들이 여행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새삼 궁금해지기도 한다.

 

 

 

“오늘날 여행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문화적 대유향이다. 물질적 여유가 있다면 당연히 떠나는 것이 여행이고, 예전에 독서나 심지어 쇼핑이 차지했던 자리마저 - 여건이 허락한다면 - 여행이 차지하게 되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떠나는 것만이 유일한 살 길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만큼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서 허탈함을 속속 감지된다는 이야기다. 시대의 속물주의적 근성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일상의 흐름을 중단시키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순수한 의도를 폄하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어딘가로 떠나고자 하는 이에게는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가 있으며, 사건이 될 수도 있고 인상 혹은 만남이 될 수도 있는 시간의 틈새에서 손에 쥐게 될 작은 발견에 대한 열망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로 거의 병적이라 할 현대인의 여행 욕구가 다 설명될 수는 없는 것이다.” p6

 

 

 

처음, 그녀가 책을 통해 어떤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궁금하면서 읽었던 이 처음 포인트가 사실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후 그녀의 얘기들이 집중이 안 된 부분은 이 책의 내용들 속의 예술가들은 알겠고, 그들이 머물렀던 그 작은 도시들을 모르겠지만 뭔가 저자 혼자만의 감탄사로만 도배가 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그녀가 예술가를 찾아 떠난 여행이 동행이 되지 못했을까. 좀처럼 그녀의 탄성과 감탄에 공감이 가지 못했던 것은 나의 무지에서 오는 것이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지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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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수학개념 100
라파엘 로젠 지음, 김성훈 옮김 / 반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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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창 시절에 ‘수포자’라는 단어가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그 단어 속에 포함된 사람이었을지 모르겠다. 왜 수학은 그렇게 어렵다고만 생각이 들었을까. 한때 수학은 왜 공부를 하는 거냐며 투덜대며 놀았던 시절을 반성하게 했던 것은 모 종편 방송에서 나왔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였다. 배우 김정훈이 나와서 수학의 즐거움과 필요성을 얘기해주는데, 왜 나는 저런 즐거움을 찾지 못하고 괴롭다고만 생각했을까 고민까지는 아니지만 약간의 후회를 낳은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우리가 계산하는 연산과 사고력의 그 수학의 테두리 안에는 계산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 흔하게 널려 있다는 것을 누가 좀 알려줬다면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과목이 수학은 아니었을 것이다. 뭐, 장담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특성들이 수많이 존재한다. 너무 흔히 접해서 이유를 따져보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가끔 수학 덕분에 이런 일상의 사물들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이해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 P53



길을 가다 흔히 보는 맨홀 뚜껑이 네모나 세모가 아닌, 원형의 모양을 한 것도 자기 자신을 통과 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완벽한 것이 원의 형태이고, 그것도 수학적인 의미를 찾아 만들어 졌고, 운전을 하다 지나치는 표지판 또한 수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만들어 졌다. 사각형과 팔각형 표지한은 여러 방향에서 보아도 쉽게 알 수 있게 만들어 진 것이고, 어느 각도에서도 다 볼 수 있게 만들어진 둥근 표지판은 위험한 지역에 쓰인다. 그러니 표지판 하나에도 각도와 거리에 맞게 만들어 졌다고 하니, 이런 수학적인 재미가 또 어디 있겠는가.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개념 100가지를 예를 들며 얘기 했지만, 사실 그 100가지 안에 너무 끼워 맞춰 넣은 것은 아닌가 하는 것도 있지만, 어찌 되었건 버스가 몰려다니는 카오스 이론부터 복사 용지로 쓰고 있는 종이의 크기며, 빗방울과 눈물방울의 기하학까지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의 얘를 참 많이 들어 놔서 간혹 수학이 싫어, 수학을 왜 하냐고 묻는 아이가 있다면 이런 얘기를 해 주며 즐겁게 학습 할 수 있는 여러 이유를 들어 줄 수 있을 것은 같다.


고흐의 그림 기법을 난류와 연관 짓거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의 황금비를 찾으며 작품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수학적으로 얘기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멀리 했던 수학을 다시 들춰 보고 싶게 만든다.


“미국 국방부 펜타곤은 왜 오각형 모양일까? 버스는 왜 몰려다니는 걸까? 왈츠가 3/4 박자인 이유는 뭘까? 소수와 매미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도처에 널려 있는 재미있는 사실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더 알아가기 위해 이제라도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걸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렇게 누군가 찾아낸 사실을 읽는 즐거움으로 만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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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4-20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학 교과서가 좋아져도 저는 공부 자체를 싫어해서 안 했을 것 같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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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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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끝에 책 한권을 긴 한숨을 몰아쉬며 다 읽었다. 600페이지가 넘는 참 무거운 책은 더 묵직한 목소리들의 얘기를 담고 있었다. 이제 시작되고 있는 꽃들의 향연인 봄이면 더욱 생각나는 죽음들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얘기는 어느 한 작가를 통해 ‘소련’의 나라에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얘기들은 생각해 보지도 못한 그들의 삶을 경험하게 했다. 그리고 울먹이던 어떤 이의 목소리에 나도 손이 떨렸다.

 

 

 

언젠가 읽은 러시아 역사를 통해 다시 ‘소련’이라는 나라를 꺼내 생각하면서 이 이야기의 구성을 따라가 보려고 했지만 사실 어떤 일정 부분은 실패했다. 1917년 소련은 소비에트라는 사회주의로 모든 것들이 공평하게 나눠질 것이라는 이념에 사람들은 살아갔지만 그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부분이 훨씬 많았다. 1917년에서부터 1991년까지 그들이 겪었던 그 사회주의 삶은 참혹했다.

 

 

요네하라 마리의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읽으면서 그들이 겪은 사회주의를 간접 경험 할 수 있었는데, 그때 공산주의 국가였던 체코에서 만난 친구가 했던 얘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공평하게, 모든 것들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스탈린은 왜 부자로 사는지 모르겠다는 그말, 기득권층에 있는 이들은 상당한 부를 누리고 이후 밑의 사람들은 더욱 굶주리고 고생스럽게 살아갔다는 마리 여사의 책을 통해서도 공산주의 국가에서의 하층민의 삶이 녹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아무런 기대와 바람 없이 얻어진 ‘자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몰라 당황스러워 했던 이들의 대화를 통해 그간의 삶을 들려주고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세월이 얼마 흐르지 않은 지금 우린 자유라는 무거운 짐 때문에 등이 굽고 말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우리에게 자유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운 것이라고는 자유를 얻기 위해 죽는 방법밖에 없었다.” P14

 

 

저자 스베틀라나 일렉시예비치는 2016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저자다. 사실 그녀의 이름이 너무 어렵고 생소하다. 그녀의 책을 읽어 본적도 없기 때문에 이 책이 주어지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묵직한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그녀가 전달하고 싶은 그 얘기를 듣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1991년 사회주의가 끝나도 죽는 방법 밖에 몰랐던 자유를 얻은 그 이후의 시대부터 2012년까지 사회주의를 겪었던 이들의 얘기에 집중하며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평범한 러시아인들이 그간 어떤 삶을 살아 왔었는지 기록했고, 그들의 얘기에 그녀도 수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것이 책속에 고스란히 전달이 되고 있다.

 

 

“그렇다, 1990년대에 우리는 행복했다. 허나 그때의 순진함을 되돌릴 수 있는 길은 없다. 우린 그때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고 공산주의는 처참하게 패배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P18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본주의로 새롭게 거듭난 러시아가 아니라 소련을 그리워하고 있다. 강제 수용소에서의 삶을 기록했던 부분에서 나는 소름이 끼쳐 다음 장을 펼치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어떤 이들에게는 지금의 삶이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도 했다. 그때 부자였던 이들은 아직도 그런 부를 누리고 있으며 잘 살고 있지만 그때도 가난했던 이들은 대부분 아직도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거나 그것보다 훨씬 더 낙후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낫과 망치 그리고 레닌의 초상화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을 만났다. 저 젊은이들은 과연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P19

 

 

 

어쩌면 그녀는 이 질문하나로 이 책을 쓰게 됐는지 모르겠다. 거리로 입고 나온 티셔츠 한 장에 그녀는 철렁하는 가슴을 부여잡았을 수도 있겠다. 20년에 걸친 그녀의 이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그녀의 이 기나긴 노고를 기록했던 그녀의 손을 한번 잡아주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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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31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따라 신간평가단 서평이 유독 눈에 많이 띄네요. 지금도 몇 몇 분들을 글 쓰느라 정신이 없을 듯합니다. ㅎㅎㅎ

오후즈음 2016-04-03 15:00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사람중에 한명이었습니다. 정말 숨 넘어가게 읽고 쓰고...그랬답니다.
무엇보다 이번 받은 책들이 사실 모두 제 취향이 아닌지라...어떤 책은 참 고생하면서 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