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NL들이나 운동권들 중에 뉴라이트나 극우의 길을 간 사람들의 특징?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물질만능주의‘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라고 봄. 북한이 1990년대 어려웠던 것과 소련 및 동유럽의 붕괴를 보며, 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라가 승리했다고 생각한거.

그래서 자본주의 성공 사회주의 실패라는 어찌보면 단순 도식화된 논리에 빠진 것. 당시 북한이 처해있던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고, 미국식 물질의 기초를 토대로만 보다보니 자기들 스스로 모순에 빠지게 된 것임.

즉, 북한이 어려운 것을 제국주의의 폭압성과 그에 수반되는 경제제재라는 맥락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물자부족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미국과 유럽식 물질주의만이 선진적이다 생각하니 자기들 스스로 오류의 길로 들어서는 것.

맑스가 말한대로 자본주의는 지금도 끊임없이 모순을 재생산하고, 시장을 확보하여 준 식민지적 지배를 세계적으로 진행하고, 시장확보에 따른 이윤을 폭리하기 위해 저임금 국가의 노동자들을 착취하며,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나라들을 고립시키는 책동을 함.

즉, 그 맥락 보다는 미국이 보여주는 초과생산되는 상품과 기술의 발전 그리고 인프라 설비만 눈까리에 보였고, 따라서 이것보다 뒤쳐지는 나라의 재반 조건따위는 무시하며 결과적으로 우클릭 루트를 타는 것.

이게 바로 소위 라때는 운동권 586 중 일부가 모순에 빠져 우클릭 극우가 된 사례의 원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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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3-07-07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도, 과거 운동권 출신들이 뉴라이트로 변절하며 MB, 윤석렬, 오세훈, 국짐, 조선일보 등 수구세력 패거리들과 한패가 되어 무조건 고립 및 적대하는 냉전적 대북정책 지지, 친일-친미 성향 국제관 추구, 시민사회 탄압 및 국가보안법 유지, 세월호 참사 및 이태원 참사 유가족 폄훼 등에 앞장서는 것을 보면 정말 이 나라가 민주국가, 자주국가가 맞는지, 아니면 수구세력들이 지배하는 무주의국가인지 의심스러워지기도 합니다.
 

북한/오보

 

https://web.archive.org/web/20210929010206/https://jinbowiki.org/wiki/index.php/%EB%B6%81%ED%95%9C/%EC%98%A4%EB%B3%B4

 

개요

 

남한을 비롯한 외부 세계가 작성한 북한에 대한 허위·왜곡 보도들을 다루는 항목.

 

개관

 

저널리즘의 무덤

 

국내 매체들은 고의든 실수든 거의 숨쉬듯이 북한에 대한 허위 정보들을 쏟아내고 있다. 일례로 2018년 연말에 JTBC가 시청자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 발표한 2018년 최악의 가짜뉴스 10(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1749370) 가운데 4개가 북한 관련이었다.

 

국내의 북한 관련 보도가 얼마나 저급하고 편향적인지는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cia)' 웹사이트의 '한반도' 섹션(https://www.voakorea.com/z/2712)과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조중동 같은 국내 주요 일간지의 북한 기사들과 차이점이 보이는가?

 

별 차이가 없는 거 같다고? 그렇다.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문제라는 거다. '미국의 소리'는 미국 연방정부(정확히는 국무부)에서 운영하는 대외 선전 방송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35775&cid=43667&categoryId=43667)이다. 당연히 철저하게 미국 정부의 이익에 봉사한다. 공정성을 추구하면 설립 취지를 배반하게 되는 매체다. 그런데 명색이 '저널리즘'을 한다는 것들이 그런 '프로파간다' 매체 수준의 논조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미국의 소리'가 국내 보수 언론보다 더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보일 때가 많다. 북한에 대한 악마화에서야 오십보백보지만 적어도 고위층의 성추문 같은 선정 보도는 자제하는 경향이 있고, 북한의 대남 도발에 대해 기---햇볕정책 탓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리'2020314일 보도

(https://www.voakorea.com/a/korea_korea-life_defector-youtube/6030023.html)에서 탈북민 유튜브 채널의 다변화를 긍정적으로 다루며 친북 성향 새터민인 홍강철·김련희가 진행하는 '왈가왈북(https://www.youtube.com/@user-ro8wg3of3w)'을 소개한 바 있는데, 이는 국내 보수 언론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중앙일보의 북한 관련 기사들은 조선·동아에 비하면 약간 전향적인 편이지만 그래도 '미국의 소리'만 못하다. 남한 보수 언론의 대북 보도는 그야말로 저널리즘이기를 포기한 수준이다.

 

급경사 운동장

 

하지만 그러한 편향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한심할 정도로 낮다. 극렬 반북주의자가 아닌 진보주의자, 심지어 그 중에서도 민족주의 내지 평화 지향 신념이 강해서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사람들마저 종북몰이를 두려워하여 북한 관련 오보·가짜뉴스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 이들이 대다수다. '탈북자 처형설'과 같이, 딱히 북한 지식이 없는 사람도 너무도 손쉽게 허물어뜨릴 수 있는 북한 정부가 압송된 탈북자를 죽이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라면 어떻게 여러 번 탈북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낭설에 대해서조차 웹상에서 체계적인 반박문을 찾기가 쉽지 않다.

(https://www.voakorea.com/a/nk2-04-08-12-146594385/1366594.html)

 

위 문단에서 "종북몰이를 두려워하여"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한국의 대다수 진보-좌파주의자들은 기성 언론의 북한 보도를 거의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기레기'라고 욕을 해대는 조중동이 생산한 것일지라도 그렇다.

 

그런 실정이다 보니, 기껏 이 자료 저 자료 찾아가며 팩트체크를 해도 좋은 소리 듣기 힘들다. 북한에 대한 가짜뉴스에 대해, 설마 그럴까 가볍게 의구심을 던지는 수준에서 반박이 불가능한 근거로 거짓임을 명백히 밝혀내는 수준까지 모든 단계에서, 일반적인 한국인들은 가짜뉴스 생산자가 아닌 이를 지적하는 사람을 욕하고 손가락질한다. "설령 사실이 아니더라도, 북한 욕하는 훌륭한 일 하시는 분들을 어떻게 '감히' 너희들이 뭐랄 수 있느냐"는 식이다. 팩트체크를 하는 사람은 북한 관련 보도가 허위임을 뒷받침하는 논거에 허점이 드러나기 전에, 그냥 곧이곧대로 안 믿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위기에 처한다. 반론을 제기하면 할수록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가짜뉴스 제작자 측은 반론을 받으면 받을수록 신뢰를 얻는다.

 

그나마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따져 보는 것이 어느 정도 허용되지만 가능하지만 인권 이슈에 대해서는 공적인 문제제기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정치인이 그러는 건 정치적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그렇게 때문에 그 어떤 제도권 진보 정치인도 그 주제를 다루는 가짜뉴스를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일이 절대로 없다.

 

이하 서술은 오보를 낸 당사자가 오보로 인정했거나, 다각도의 검토로 허위임이 명백하게 밝혀진 경우에 한정한 것이다. 그밖에도, 오보로 확정되진 않았지만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거나 교차검증이 되지 않아 사실로 받아들이기 힘든 보도들은 수도 없이 많다. 북한을 포르노그래피처럼 소비하는 보도들은 거의 그런 성격이라고 보면 된다.

 

본 문서를 읽으며 딱히 재반론의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는데 다소 과장이 있다고는 해도 그게 다 거짓말일까?' 하는 막연한 의문이 들어 곧이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은 거짓말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니, 북한에 대한 거짓말은 돈이 안 드는 정도를 넘어서 훌륭한 돈벌이 수단이 된다. 북한 외의 국가에서는, 특히 남한에서는 말이다.

 

북한 정권 수립 전

 

김일성 가짜설

 

해방 이후 소련군과 함께 귀국해서 북한 최고 지도자가 된 김일성이 보천보 전투의 '그 김일성'이 아니라 이름만 빌린 가짜라는 주장인데, '그 김일성' 맞다. 이를 믿는 사람들 중 다수가 김일성이 본명이 아니라는 것에 상당한 의미 부여를 하고 있으나, 김일성의 본명이 김성주라는 것은 북한 사람들도 안다. 북한 당국에서 굳이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박정희 시절 김형욱이나 이후락도 그 김일성이 북한 김일성이 맞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미국의 소리와 중앙일보는 2017년에도 CIA 공개문서가 있다면서 가짜 김일성설을 주장했다.(https://news.joins.com/article/22093650) 심지어 육문 중학교 2학년 중퇴가 최종 학력인 김일성이 고등학교에서 반 친구를 죽였다는 개연성이 없는 말을 했다.

 

신탁통치 오보 사건

 

역사를 바꾼 동아일보의 오보 사건. 학계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신문사 측에서 사실관계를 잘못 알았던 것이 아닌 의도적인 허위 보도로 본다.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57815096)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미국은 신탁통치 5년 연장을 주장했고, 소련은 5년 이내의 즉시 독립을 주장했지만, 동아일보가 이를 반대로 보도했다. 뉴라이트와 같은 수구세력들은 아직도 소련이 찬탁을 주장하고, 소련 측 주장을 동의한 박헌영과 조선 공산당 세력을 매국노 세력으로 몰고가는데, 엄연한 역사왜곡이다. 그리고 박헌영 세력은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합의 된 결정안을 지지한다는 것이었지 신탁통치 연장을 동의한다고 한 적이 없다.

 

김일성 통치기

 

김일성 사망설

 

19861118조선일보가 호외로 김일성의 사망을 보도했으나 허위로 밝혀졌다.

 

금강산댐 수공설

 

국가 단위의 사기극. 금강산댐 폭파 시 63빌딩 1/3이 잠긴다며 국민 상대로 공갈을 치던 전두환 일당은 이에 그치지 않고 평화의 댐 짓는다고 애들 코 묻은 돈까지 긁어갔다.

 

김정일 통치기

 

성혜림 망명설

 

1996213조선일보가 모스크바에 살고 있던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이 서방으로 망명한 사실을 보도했다. 조선일보사는 이를 '세계적 대특종'으로 홍보하며 기사를 작성한 월간조선의 우종창 기자에게 2000만원의 특종 상금까지 줬으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27&aid=0000005685), 결국 오보로 밝혀졌다.

 

길재경·염진철 망명설

 

2003517연합뉴스'외교소식통'을 인용, 조선로동당 서기길의 길재경 제1부부장 및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염기순의 아들 염진철의 서방 망명을 보도했으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376137), 바로 다음날 사실무근임이 드러났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376877)

 

고난의 행군 300만 명 아사설

 

북한 경제가 최악의 위기였던 1996-2000년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의 인구 손실은 435천여 명으로 밝혀졌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450059.html) 그 기간에 감소한 인구의 사망 원인이 아사 한 가지일 리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사자는 백만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김정은 통치기

 

"북한 학자들이 유니콘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20111230일 영국의 한 매체가 북한의 학자들이 유니콘의 서식지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는 보도를 했으나, 이는 고구려 동명성왕 전설에 나오는 '기린굴'을 발견했다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1201601004) 여기서 기린이란 아프리카에 사는 목이 긴 그 동물이 아니라 중국 신화에 나오는 뿔 달린 상상의 동물(https://www.google.co.kr/search?q=%E9%BA%92%E9%BA%9F&newwindow=1&rlz=1C1DLLB_enKR802KR802&source=lnms&tbm=isch)

을 일컫는 것이다. 북한을 바보로 만들기 위한 뉴스였겠지만, 실은 본인들이 바보였던 셈. 어쩌면 본인들이 바보라기보다는 그런 걸 믿는 바보들이 많으니까 많이 배우고 똑똑한 기자들이 그런 짓거리를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거짓말에 잘 속는 바보들은 한국에도 얼마든지 있다.

 

탈북 청소년 총살설

 

20135월 라오스에서 붙잡혀 북한에 송환된 청소년 탈북자 9명이 총살되거나 수용소에 끌려갔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2014127일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인 '우리 민족끼리'에 그 중 5명의 근황이 공개됨으로써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http://news1.kr/articles/?1992247)

곧이어 북한 당국은 나머지 4명의 모습도 공개했다.(http://news1.kr/articles/?1996354) 애초에 북한 당국은 탈북에 대해 그렇게 가혹한 처벌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탈북자 처형설' 항목을 참고할 것.

 

현송월 총살설

 

2013829일 남한의 기레기들은 현송월이 포르노를 찍다 총살되었다는 헛소리를(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29/2013082990013.html)했으나(https://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3082900247&Dep0=m.search.naver.com&docRefURL=https://m.search.naver.com/search.naver?sm=mtp_hty.top&where=m&query=%ED%98%84%EC%86%A1%EC%9B%94+%EC%B4%9D%EC%82%B4), 다들 잘 알다시피 현송월은 살아있다.

 

리수용 처형설

 

20131211일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은 당시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리수용이 처형되었다고 보도했으나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6&news_seq_no=1577851), 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리수용은 살아있다.

 

김경희 독살설

 

2015511일 미국의 CNN은 한 탈북자의 말을 인용해 김정은이 자기 고모이자 장성택의 부인인 김경희를 독살했다고 보도했으나

(https://edition.cnn.com/2015/05/11/asia/north-korea-kim-aunt-poisoned/index.html), 김경희는 살아있다.

 

리영길 총살설

 

2016210연합뉴스의 속보로 알려졌으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2/10/0200000000AKR20160210067300014.HTML?input=1195m), 전 총참모장 리영길은 살아있다.

 

"북 주민 30%가 마약 중독자."

 

2016121()북한인권정보센터(NKDB)의 이관형 연구원은 한국프레스센터가 주최한 '북한 주민의 마약 사용 실태 현황과 과제 세미나'에서 북한 인구의 최소 30%가 마약을 소비한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펼쳤다.

(https://www.dailynk.com/%E5%8C%97%EC%A3%BC%EB%AF%BC-%EC%B5%9C%EC%86%8C-30%-%EB%A7%88%EC%95%BD-%EC%86%8C%EB%B9%84%ED%86%B5%EC%9D%BC%EB%8C%80%EB%B9%84/) 그리고 이는 아무런 검증 없이 국내 수많은 언론에 의해 인용·보도되어, '이제 만나러 갑니다' 류 북한 관련 예능과 더불어 북한 사회에 마약이 만연해 있다는 인식을 남한 대중에게 퍼뜨리는 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정말 생각이란 걸 단 몇 초만 해봐도 터무니 없는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이든 어디든 마약은 공짜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북한은 매우 가난한 나라이지 않은가. 특히 저 발표에서 북한 사회에서 "성별·연령별·계층에 무관하게" "일상화됐다"고 하는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일명 '히로뽕')은 대개 0.03g 기준인 1회 투약분이 국내에서 10-20만 원에 거래될 정도로 아주 비싼 마약이다.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9041205021)

 

1인당 GDP가 많이 쳐줘 봐야 2천 달러 내외(https://news.joins.com/article/2755273)인 북한 사회에서 평범한 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북한에서는 거기 사람들한테 부담 없는 가격으로 팔 거라고? 그럴 거면 왜 국제 마약상들이 엄격한 통제 사회의 위험(: 총살)을 무릅쓰고 굳이 거기 기어 들어가나. 대외적으로 훨씬 개방화되어 있고 마약 사범에 대한 처벌이 적어도 공산 독재 국가에 비하면 매우 널럴하며 무엇보다도 구매력이 비교불가 수준으로 압도적인, 대한민국이라는 이상적인 시장이 바로 옆에 있는데 말이다. 실제로 탈북자인 최승철 씨는 2011121'오마이뉴스' 기고문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08743)을 통해 "(북한에서) 옥수수 100kg과 맞먹는 마약을, 그것도 마치 전 국민이 흡입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에 불과"하고, 자신이 북한에서 목격한 마약 사용자는 "대부분 먹고살 걱정이 없는 부유층의 일부 극소수 사람"이었다며, 북한 주민 다수가 마약에 중독되었다는 보수 매체의 과장·왜곡 보도를 비판한 바 있다.

 

2019422일에 방영된 '문화방송' 시사·교양 프로그램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에서 이 가짜뉴스를 다뤘다. 이 방영분에서 마약상 출신인 탈북자는 이관형의 주장과는 달리 북한의 마약 중독자 비율이 0.2-0.5%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추정했고, 마약 재활치료 전문의인 천영훈 박사는 전 인구 30%는커녕 단 3%만 필로폰 중독자라 해도 그 사회는 작동할 수 없다며 이관형의 주장을 일축했다. 방송을 통해 이씨가 연구자로서 자질이 의심되는 면이 드러나기도 했는데, 예컨대 자신과 동일한 주장을 북한 당국자가 사실로 확인해 줬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으니 본인의 설이 '교차검증'되었다며 자신만만하게 제시한 기사에서 정보의 원출처는 다름아닌 본인의 발표문이었다.

 

기쁨조 속옷 수입설

 

김정은이 기쁨조 입히려고 중국에서 야한 속옷을 270만 파운드, 한화로 약 38억원어치나 구입했다는 건데, 최초 보도한 곳이 영국의 그 악명 높은 황색 언론 더 선(https://www.thesun.co.uk/news/3260338/north-korean-dictator-kim-jong-un-sexy-underwear-pleasure-squad/)이다. 국제무역센터(International Trade Center)의 통계를 근거로 들었는데, 북한에서 퍽이나 "이거 우리 원수님 성적으로 봉사할 애들이 입을 거요." 하고 대금 지불하고, 그와 같은 내용이 그러한 국제기구 통계에 잡히기까지 했겠다.

 

김일성 가면 사건

 

해당 항목 참조.

 

마오쩌둥 손자 사망설

 

20184월에는 중화권의 기레기들이 마오쩌둥의 손자 마오신위가 북한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떠들어댔다(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842801.html). 예전에 북한 어디서 교통사고가 크게 나는 바람에 중국 관광객들이 몰살을 당했다는 뉴스 다들 들어 봤을 거다. 그때 죽은 32명 가운데 마오신위도 있었다는 얘기다. 김정은이 그때 이례적으로 "속죄한다"는 표현까지 하며 강하게 애도를 표시했는데, 그것을 보고 평범한 사람들이 죽었는데 쟤가 저럴 리가 없다, 분명 거물급 인사가 포함되어 있을 거다, 하고 상상력 부족한 애들이 상상의 나래를 퍼득거리다 나온 얘기다. 물론... 알지?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80505_0000301040)

 

풍계리 갱도 폭파에 대한 오보

 

2018524일 벌어진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폭파에 대해, 'TV 조선' 온라인 뉴스 팀이 그것이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속보로 보도했으나, 불과 수 시간만에 오보로 밝혀졌다.(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2879)

 

국민연금 200조 북한 증여설

 

20188월부터 일베저장소 등을 중심으로 남북 정권의 고위층이 국민연금에서 200조 원을 떼서 북한에 넘기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8/22/0200000000AKR20180822028000502.HTML) 조작된 증거조차도 내세우지 않은, 그야말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가짜뉴스다. 하도 황당하다 보니 조중동조차 물지 않았다.

 

북한 헬기 남하설

 

20181214일 한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이 북한군 헬기가 용인까지 남하... ... 파주, 연천도 아니고... 하여튼 그랬단다. 그걸 믿는 머저리가 어디 있냐고?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있다. 얼마나 혹하는 인간들이 인터넷에 많았으면 포털에 연관 검색어까지 생겼을 정도였고, 모바일로도 카톡 등을 통해 '긴급 속보'라며 전파되었다. 물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고, 헛소문을 퍼뜨린 장본인인 문제의 유튜브 채널 운영자 손상대 씨는 JTBC와 인터뷰에서, 제보자가 의무 수송 헬기의 적십자 마크를 인공기로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놨다.(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744993)

 

김여정 징계설

 

일단 웃고 시작하자. 김여정이 징계를 당했다니 이게 무슨 개 짖는 소린가. 김여정은 다들 알다시피 북한의 절대권력자 김정은의 최측근이자, 현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냥 최측근, 계승자 후보도 아니고 친동생이다. 자신의 유일한 외국 체류 시기인 스위스 유학 시절을 같이 하기도 했으니 김정은으로서는 상당히 애뜻한 마음이 있을 터이다. 그러한 인물이면 어지간한 중대 범죄가 아니고서는 견책을 당할 리가 없다.

 

이러한 기본 상식조차 저버린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530/95761708/1)·조선일보(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31/2019053100057.htm)등 국내 보수 언론은 20195월 말부터 하노이 북·미 회담의 실패를 책임지고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 대표 김혁철은 총살, 조선로동당 통일선전부장 김영철은 숙청당했다는 설을 보도하면서 조선로동당 제1부부장 김여정의 '근신'도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이러한 보도는 무비판적으로 재인용·확산되었다.

 

다행히 이런 웃기는 소리가 거짓임이 밝혀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단 '혁명화 조치'를 당했다는 김영철은 보도가 나간 지 불과 수일 만인 63일에 김정은과 함께 군 부대 공연을 관람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건재가 확인되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0603004400504) 바로 그 다음날인 64일에는 김여정도 김정은을 수행하여 집단체조 관람을 한 사실이 밝혀지며 국내 최대 계란판 원료 공급처인 조선일보를 머쓱(http://www.viewsnnews.com/article?q=169849)하게 만들었다. 처형되었다는 김혁철도 국정원의 확인으로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유력해진 상황이다.(http://news1.kr/articles/?3671856)

 

이 희극의 정점은 625일에 국정원에서 김여정의 서열이 국가지도자 급으로 격상되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3425635) 무슨 듣보잡도 아니고 김여정 정도 인물에 대해서 당시에 본인이 실제로 겪은 것과 완전히 정반대 상황을 그린 국내 언론의 대북 보도를 신뢰할 가치가 있을까? 그러느니 차라리 허경영을 믿는 게 나을 거다.

 

후지모토 겐지 체포설

 

2019626일 일본의 데일리 신초'김정일의 요리사'로 알려진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가 평양에서 체포되었다고 보도했다(http://news1.kr/articles/?3655237). 정보를 제공한 '공안 관계자'가 그렇게 본 이유는 기껏해야 연락이 잘 안 된다는 정도였다. 참고로 후지모토 씨는 20126월 김정은의 초청을 받아 같은 해 7월 북한을 방문해 김과 재회했고 그 자리에서 '배신'을 용서받았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8222205205) 후지모토 씨는 이후 다시 북한으로 건너가 20172월에 평양에서 초밥집을 개업(http://www.newsis.com/view/?id=NISI20170305_0012756134)해서 영업 중이었다. 당연히 북한 수뇌부의 특전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인물을 북한의 누가 감히 건드린단 말인가. 그게 성립되는 경우는 딱 하나, 김정은의 눈밖에 났을 때 뿐인데, 유력 정치인도 아닌 일개 초밥집 주인한테 그럴 일이 뭐가 있을지 모르겠다. 초밥이 맛이 없었나?

 

그 해 718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상의 뉴스를 "일본과 남조선의 메디아가 류언비어를 캐치볼하고 가짜뉴스가 눈덩이처럼 확대되는 사례"로 소개하며 후지모토 씨가 자신의 식당에서 일하는 사진을 게재했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9330)

 

조총련 놈들 말을 어떻게 믿느냐는 식의 의심을 풀 요량이었는지 조선신보기사가 난 직후인 723일 주 북한 영국 대사 콜린 크룩스가 후지모토 겐지의 식당 '다카하시'를 찾아 모둠 회를 맛보았고 후지모토 씨와 같이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9330)

 

함박도 남한 영토설

 

함박도 항목 참조

 

"괴뢰가 보내온 귤은 전리품."

 

2019728일 일본의 도쿄신문은 북한 치안기관에 하달한 내부 문건이라는 문서를 소개하며, 문서 중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트럼프 놈"이라고 했다든가, 20189월의 제5차 남북 정상회담 시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받은 송이버섯에 대한 답례로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해 11월에 북측에 보낸 귤 200t을 두고 "괴뢰가 보내온 귤은 전리품이다"라고 표현했다는 등의 언급을 했다. 이는 국내 보수 세력이 문재인 정권을 상대로, 북한이 한국을 호구(https://www.sedaily.com/NewsView/1VLVRW4Z66)로 여기느니 한국이 북한에게 패싱(https://www.segye.com/newsView/20190728506694)을 당하고 있느니 하는 식의 정치적 공격을 펼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도쿄신문이 소개한 문건은 정보당국, 북한 전문가 및 탈북자들의 분석 결과 조작된 것일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밝혀졌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0730151751001)

 

NHK의 미사일 발사 오보

 

20191227일 일본의 NHK는 공식 웹사이트에 북한의 미사일로 추정되는 물체가 홋카이도 동쪽 2000km 해상에 추락했다는 속보를 게재했으나, 곧 삭제 후 해당 보도가 오보라는 공지를 올렸다.(https://news.joins.com/article/23666717) 이 방송사는 그 전에도 비슷한 오보를 낸 바 있다.(http://news.kbs.co.kr/news/view.do?ncd=3594906) NHK는 일본의 공영방송으로서 선정 보도와는 거리가 먼, 신뢰성이 높은 매체임에도 북한 관련 뉴스에서는 이렇게 찌라시 같은 행태를 보이곤 한다. 미국의 CNN도 마찬가지고, 이 문제에 있어서는 전세계 어디에도 '정론 언론'이란 게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거기 사람들은 한국의 기레기들이랑은 다르게 언론인으로서의 양심 내지 사명 의식이란 게 없지는 않아서 관련자들을 7명이나 징계하는 정도 성의는 보였다.(https://www.yna.co.kr/view/AKR20191230160200073) KBS가 북한에 부정적인 뉴스를 보도했다가 오보임을 시인하고 관련자들을 징계한다면?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을 김정은이 접수했느니 하는 한탄이 쏟아질 게 뻔하다.

 

김정은 위중 및 사망설

 

2020420일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 '데일리NK'는 내부 소식통을 인용, 김정은이 12일에 평양북도 묘향산에 있는 자신의 전용 병원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https://www.dailynk.com/%EA%B9%80%EC%A0%95%EC%9D%80-%EC%B5%9C%EA%B7%BC-%EC%8B%AC%ED%98%88%EA%B4%80-%EC%8B%9C%EC%88%A0-%EB%B0%9B%EC%95%98%EB%8B%A4%EC%97%AC%EC%A0%84%ED%9E%88-%ED%8A%B9%EA%B0%81%EC%84%9C-%EC%B9%98/) 다음날인 421일 미국의 CNN은 그 '데일리NK' 보도를 받아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을 보도했다.

(https://edition.cnn.com/2020/04/20/politics/kim-jong-un-north-korea/index.html) CNN은 해당 보도 첫머리에서 미국 정보 당국 관계자가 "미 당국이 북한의 통치자 김정은이 수술을 받은 이후 심각하게 위험한 상태(grave danger)에 있다는 정보를 주시 중"이라는 관계자의 말(원문 The US is monitoring intelligence that suggests North Korea's leader, Kim Jong Un, is in grave danger after undergoing a previous surgery, according to a US official with direct knowledge.)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이를 국내 수구 세력들이 가져오며 다분히 소망적인 위중설, 더 나아가 사망설로까지 발전(?)시켰다.

 

이럴 때 절대로 안 빠지는 게 일본의 기레기들이다. 일본의 주간지 슈칸겐다이(주간현대)424, 김정은이 스텐트 시술을 받다가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고 보도했다.(https://www.news1.kr/articles/?3917860) 슈칸겐다이는 기사에서, 문제의 시술이 간단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집도의가 손을 덜덜 떨었던데다가 김정은이 워낙 비대해서 시술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바람에 독재자가 요단강을 건너고 말았다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 상황을 그렸다.

 

가장 빛나는 활약을 펼친 건 북한에 대한 악마화·희화화 및 부정적 전망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는 자들이었다. 전 북한 공사 출신으로,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태구민(전 태영호)427CNN과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임은 확실하다"는 뇌피셜을 설파했다.

(https://edition.cnn.com/2020/04/27/asia/thae-yong-ho-kim-jong-un-intl-hnk/index.html) 역시 탈북자로서 같은 당에서 비례대표가 된 지성호는 한술 더 떠 '뉴시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김정은의 사망을 99% 확신한다는, 그야말로 막 던지는 발언을 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9842272)

 

태영호·지성호 같은 자들이 진짜로 확신을 해서 그런 소리를 해댄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보유한 정보원의 부정확함이야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남한 사회가 탈북자발 북한 정보를 들을 때 진실성 검증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와 그 내용이 부정적이고 자극적일수록 얼마나 잘 팔리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들이기도 하다는 점이 화근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내뱉은 북한에 대한 말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는 일이 조금도 두렵지 않은 자들이었다. 지금까지 남한 사회에서 그런 이유로 불이익을 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52'조선중앙방송'이 김정은의 지방 공장 시찰 소식을 보도(http://www.kwnews.co.kr/nview.asp?s=101&aid=220050100007)하며 김정은 위중 및 사망설은 결국 오보임이 밝혀졌다.

 

우리가 이 사태에서 얻는 교훈은 '북한에 있을 때 평양에 한 번 가본 적도 없는 꽃제비 출신이 최고 지도자의 신변에 대해 뭘 알겠는가?', '아무리 고위층 출신이라도 권력 핵심부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10년 넘게 외국 생활하다 한국에 들어온 인물이면, 그 사람이 하는 북한의 은밀한 내부 동정에 대한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 않은가?'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 정도 기본적인 문제제기마저 철저히 억눌러왔던 한국 사회가 북한 문제에 관한 한 너무 정신착란적인 상태였던 것이다. 더 나아가서, 그렇게 중대하면서도 옳고 그름이 단기간에 명확히 판별될 정보에 대해서도 배짱 좋게 베팅을 해대는 반북 성향 탈북자들이, 무슨 '사소한' 거짓말이나 당장에 정확한 사실 확인이 어려운 영역에 대한 왜곡·과장은 안했을까 하는 의문을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 횡행한 북한 관련 뉴스의 황당함을 떠올리면 태영호·지성호 같은 자들은 '악성 가짜뉴스 전파자' 축에 속하지도 않는다. 단지 저들은 현역 정치인이라 정치적 반대파로부터 유례없이 깐깐한 검증을 받고 있는 것뿐이다. "최고 지도자가 젊은 나이에 급사했다"는 얘기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비현실적인 북한 정보도 엄청나게 많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기독교인들을 펄펄 끓는 쇳물에 담궈서 처형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369947)한다는 보고서가 있는가 하면, 북한 어부들이 심청전에 나오는 얘기처럼 처녀를 사다가 바다에 제물로 바친다는 소문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24/2014062404028.html)도 있다. 심지어 과거 '고난의 행군' 때 북한 시장에서 아이들을 잡아 죽여 그 인육을 팔면서 사람들 보고 누군지 확인하라고 머리를 잘라 전시했다는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증언(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60721/8331992/1)도 중앙 일간지에 잘만 게재된다. 그게 말이 되나 싶은 일이 수시로 일어나는 게 세상이니, 신중을 기하기 위해 1% 정도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일지 모른다. 문제는 저런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소식일수록 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점, 그럼에도 '자유국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한국 사회에서 저러한 북한 관련 정보 특히 '인권' 주제에 관련한 것들에 대해서는 의문 제기가 절대 금기시된다는 점이다.

 

기타

 

탈북자 처형설

 

탈북자 항목 참조.

 

신동혁의 허위 증언

 

20141025일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 '우리 민족끼리''거짓과 진실(신동혁은 누구인가)'라는 동영상을 공개, 본인이 '14호 정치범 수용소'에서 태어나 24년을 살다가 탈출했다는 북한 인권 운동가 신동혁(본명: 신인근)의 증언을 날조라고 주장했다. 신동혁은 반발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몇 가지 '오류'를 인정하고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1/18/0200000000AKR20150118002000071.HTML), 북한 인권 운동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https://www.yna.co.kr/view/AKR20150118034900014)

 

북한은 내국인이 외부 세계와 연락·접촉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사회라 제3자로서는 탈북자의 북한 거주 당시 경험담에 대해 진위를 가려내기가 매우 어렵다. 한편으로 그 나라는 대외적으로 신뢰를 받지 못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그러니 신동혁이 "북한 정부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 나는 진실만을 말했다."고 넘어가도 별 문제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신동혁이 굳이 오류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 대외 활동을 중단하기까지 했다는 것은 북한의 공격에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신씨를 충격에 빠뜨린 부분은 당연히 북한이 자신을 강하게 비방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럴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반북 운동 같은 것에 매진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늘어놓은 신동혁에 관한 주요 주장 가운데 상당 부분이 진실일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설령 북한의 주장이 전부 사실은 아니며 대부분은 거짓말이더라도, 최소한 그 사람을 유명 인사로 만든 여러 증언 가운데 핵심적인 것들이 허위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후 2015315일 신동혁은 인터넷 매체 '허핑턴포스트코리아'와 인터뷰(https://www.huffingtonpost.kr/2015/03/05/story_n_6796796.html)에서 "수용소에서의 경험담은 모두 진실"이었다며 거짓 증언 논란에 대해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의 해명은 아무런 추가적인 증거 제시 없이, 본인의 어머니와 형이 자신의 잘못으로 죽었기 때문에 처형된 죄목이 탈출이 아닌 살인이었음을 숨겼다든가,(신동혁은 이전에 본인의 회고록 '14호 수용소 탈출(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7052162)'에서 식량 배급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어머니와 형을 밀고한 것이었으며 두 사람의 죽음에 아무런 동정심을 느끼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왜 그런 사실보다 간수의 속임수에 넘어갔다는 것이 더 부끄럽고 밝히기 힘든 일이 되는 걸까?) 자신이 살던 수용소가 14호에서 18호로 바뀌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18호 수용소 출신이 된 것(이와 같은 '개편'은 전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신동혁 본인도 이전에 그와 같이 말한 적이 없다. 또 나중에 이 자는 그러한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서 "저는 미안하고 할말이 없습니다(http://www.nkd.or.kr/community/free/view/33579)"라고 하기도 했다. 신의 주장대로 그러한 개편이 실제로 있었고 또 14호와 18호가 끔찍함에 있어 차이가 없었다면, 하나도 안 미안하고 할 말이 많아야 정상이다)이라는 등 납득되지 않는 소리들이어서, 아직까지 북한 인권 참상의 증인으로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간첩 체포는 모두 날조?

 

북한 정부는 종종 자기 나라를 여행 또는 체류 중인 외국인을 간첩 혐의로 체포하곤 한다. 그런데 이를 다루는 한국 언론의 태도에는 일정한 특징이 있다. 북한 당국이 간첩 용의자를 붙잡아 두는 것을 법률 용어인 '구금'이라 하지 않고 '억류'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당연히 북한의 행동에 부정적인 느낌을 주며 은근히 제기된 혐의가 허위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물론 체포된 외국인들이 자기 나라에서는 범죄로 간주되지 않을 행위로 인해 북한의 사정 당국에 입건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간첩 행위''반공화국 모략 행위' 등의 혐의로 체포한 외국인들이 전부 다, 북한 형법에 규정된 간첩 행위나 반국가 범죄조차 범한 적도 없는 완전히 무고한 이들이라는 발상은 합리적이지 않다. 흔히 '은둔 국가'로 묘사하곤 하지만 북한도 실은 세계 161개국과 수교를 맺은(http://www.segye.com/newsView/20190315509479) '국제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상 북한도 불필요한 외교 마찰을 꺼릴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막 나가는 독재 국가라도 외국인의 반체제 행위에 대해서는 내국인에 비해 훨씬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게 일반적이다. 더구나 북한 같은 고도의 통제 사회는 간첩을 색출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그런 나라에서 체포되는 외국 간첩이 전부 누명을 쓴 사람들일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북한 독재 정권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라는 관점에서 그 나라의 간첩 체포 소식을 다루다 보니, 언론에서 용의자·수감자들을 '인질'로 지칭하는 사례(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ws&query=%EB%B6%81%ED%95%9C+%EA%B0%84%EC%B2%A9+%EC%96%B5%EB%A5%98+%EC%9D%B8%EC%A7%88)가 흔하다. 그렇다면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것은 간첩 혐의로 체포·처벌을 당한 이들이 아니라 북한 정부인 셈이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에는 북한에 대한 막연한 불신 외에는 뚜렷한 근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북한의 간첩 체포가 아무 죄도 없는 사람한테 누명을 씌운 일이 아님이 실제로 밝혀진 사례가 있다. 201510월에 간첩과 체제 전복 혐의로 북한 당국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다 트럼프의 개입으로 20185월에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 씨는 2019729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자신이 실제로 CIA의 간첩이었음을 실토한 바 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0730004200071)

 

북한에 보내는 쌀에 '대한민국' 표기 못한다?

 

2019619일 정용기 자유한국당 정책위 의장이 자당의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에) "보내는 쌀 포대에 대한민국이라는 표시도 하지 못한다"고 발언했다가 회의가 끝난 후 "오보를 참고한 발언"이었다며 정정하는 일이 있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225583) 정용기 의장이 대한민국 표기를 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남한 측에서 (북한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북으로 보낼 때부터 표기를 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한 얘기였을 테고 "사실과 달라 정정한다"고 한 것도 그에 한정한 정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남한 사회에서는 꼭 그런 식의 발상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표기가 된 지원 물품이 북한에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가 있다. 그런 까닭에, 한국산임이 표기된 쌀 포대를 북한에 보내면 그곳 당국에서 모조리 포대를 갈거나 뒤집어서 남측에서 보낸 것임을 주민들이 알지 못한다는 식의 소문이 떠돌기도 한다. 이는 그런 작업에 투입될 인력 낭비 문제라든가, 남한의 경제적 우월함이 북한 사회에서 알려질만큼 알려진 사실이라는 것과 같은 '상식' 수준에서 충분히 반박이 가능하다. 물론 "북한은 상식적인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고 하는 소리를 틀어막을 증거도 충분하다. 먼저, 자신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현지인이 대한민국이라 적힌 쌀 포대를 나르는 일을 네 번이나 목격했다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증언이 있다.(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10909000153) 정세현 전 장관이 목격한 것은 2000년대 후반의 일이지만, 2019년 현 시점에서도 '대한민국' 글씨가 적힌 쌀 포대가 북한 방방곡곡을 '버젓이' 돌아다니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2019714일 데일리NK'는 북한 장마당에 대한민국 표기가 된 쌀이 유통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이렇다 할 단속이 없다는 점을 보도했다.

(https://www.dailynk.com/%e5%8c%97-%ec%8b%9c%ec%9e%a5%ec%84%9c-%ed%95%9c%ea%b5%ad%ec%82%b0-%ed%91%9c%ea%b8%b0%eb%90%9c-%ec%8c%80-%eb%b2%84%ec%a0%93%ec%9d%b4-%ed%8c%90%eb%a7%a4-%eb%8b%a8%ec%86%8d%eb%8f%84/) 그와 같은 증언들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명백한 물증도 있다.(https://www.nocutnews.co.kr/news/154280)

 

남한 드라마 보면 총살?

 

당연히 아니다. 원칙은 노동단련대행이지만, 보안원(경찰)한테 돈 좀 찔러 주면 그냥 봐준다고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JYOeykUlpBc&t=1m) 이는 절대 '시범 케이스'라도 간혹 그런 혐의로 사형 선고가 내려지는 경우가 있는 사회에서 벌어질 만한 일이 아니다.

 

근데 그런 말을 믿은 적이 있다면 언론의 왜곡·편향 보도를 탓하기 전에 본인 생각이 모자란 탓을 하는 게 맞다. 남한 언론은 그런 뜬소문을 보도하기도 하지만, 그런 일이 있기 힘든 정황에 대해서도 충실한 정보 제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면, 그 방면에 아무리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북한에서도 한류가 대유행 중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ws&query=%EB%B6%81%ED%95%9C%20%ED%95%9C%EB%A5%98&sm=tab_opt&sort=0&photo=0&field=1)이라는 소식을 한 번쯤은 접하기 마련이다. 많은 탈북자들은 북에 적대적인 입장

(https://www.youtube.com/watch?v=EbAN388OqjQ)

이든 우호적인 입장(https://www.youtube.com/watch?v=all8VroSwZQ)이든 "요새 북한에서 남한 영화·드라마 한 번 안 본 사람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 그 사람들은 고작 드라마 따위를 보려고 목숨을 건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천국의 계단', '시크릿 가든' 같은 게 아무리 재미있어도 본인 목숨만한 가치가 있을 리가 없다. 당신이 천하의 진미라는 음식을 앞에 놓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그걸 먹으면 죽을 가능성이 백에 일 아니 천에 일만 된다고 알려줘도 그걸 입에 넣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특히 부모 입장이라면, 철부지 자식이 겨우 생소한 음식 따위에 목숨 거는 걸 극구 말리기는커녕 같이 먹으면서 한가롭게 맛이 어떠니 하는 소리나 하고 앉아 있을지(https://www.youtube.com/watch?v=0U0BKpUjPNY&t=18s) 생각해 보자.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북한이라고 다를 리가 없지 않은가.

 

북한에서 남한 대중문화가 대유행 중이다.

 

북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남한 대중문화를 접촉하다 들키면 죽음을 당한다고 알고 있다.

 

이 양자는 둘 다 참이기 힘든 것이다. 송환된 탈북자는 무조건 총살한다는 사실과 8번 북송되었다가 9번째만에 탈북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남한 대중문화를 보고 듣다가 걸려도 목숨이 왔다갔다 할 일까지는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 그게 사실인가는 차치하고북한 사회의 상식에 가까운 것임이 분명하다. '왜 그런 인식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 일반적인가'를 따진다면 역시 가장 상식적인 해답은 '그게 사실이라서'일 것이다. 일부 탈북자들이 돈과 명성을 위해서 종편 예능이나 유튜브 같은 데서, 아무런 증거도 없이, 무슨 거짓말을 늘어놓건 말이다.

 

"그렇다 쳐도 남한 드라마 보다가 공개 처형을 당했다느니 하는 보도(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ws&query=%EB%B6%81%ED%95%9C+%EB%82%A8%ED%95%9C+%EB%93%9C%EB%9D%BC%EB%A7%88+%EA%B3%B5%EA%B0%9C+%EC%B2%98%ED%98%95)가 너무 많은데? 그건 다 뭐냐?"

 

좀 전에 말했지 않은가. 거짓말이라고. 익명의 '소식통'이 말하는 전언에 신빙성이 극히 낮음은 당연하고, 탈북자 증언의 경우는 CDUSB의 보급으로 북한 사회에 본격적으로 한류가 유행하기 전인 90년대, 00년대 초에 북을 떠난 사람들이라면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기보다는 진짜로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개관에서 말했다시피 거짓말에는 돈이 들지 않고, 남한은 북한 악마화에 앞장서는 탈북자에 대한 보상이 전세계 어느 곳보다 큰 사회이기도 하다. 딴 재주 없어도 그것만 잘하면 돈다발은 기본이고 금배지까지 달 수 있으니 말이다. 반면에 그에 대한 의심은 기본이 종북몰이에 최대 감방행까지 가능하다. 반박하는 사람이 탈북자인 경우 기본은 "북한으로 돌아가라"이고 최대는 역시 감방행이다.

 

이 가짜뉴스에서 일말의 진실성을 찾는다면 다음과 같은 식의 가설을 세울 수는 있겠다.

 

한 사회에서 지배계급이 '오염된 문물'로 규정된 것이 유행할 때, 그것을 수동적으로 소비한 사람보다는 적극적으로 유통시킨 사람에게 훨씬 강한 처벌을 가하는 게 전세계 보편적인 현상이다. 단순히 보기만 한 사람들은 대체로 묵인해 주는 북한 정부도 유통·판매책의 경우는 노동교화형에 처하는 등 강하게 처벌할 수 있고, 그렇게 사라진 사람을 두고 총살을 당했느니 하는 소문이 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북한 당국이 강력범죄나 파렴치 범죄를 저지른 이를 사형에 처하는데, 범죄자의 부패상을 묘사하며 '타락한 남조선의 문화'를 즐긴 모습을 말한 사례가 있을 수 있다. 전달 과정에서 남한 드라마를 보다가 사형당한 케이스가 남한 드라마를 봐서 사형당한 케이스로 바뀌는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남한 드라마 시청자 총살설'은 한국 사회의 북한에 대한 양면적 인식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북한에서 K드라마·K팝이 대대적으로 유행 중이라는 보도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이는 자신들이 매우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북한에 대한 한국의 문화적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에도 그와 같이 '적국'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남한에서조차 온전히 보장되고 있다고 보기 힘든체제의 빈틈이, 다시 말하자면 '자유'가 존재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북한은 그래선 안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에서 남한 대중문화를 접촉하면 사형을 당한다는, 앞의 정보와 모순될 수밖에 없는 정보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양면적이라고 했지만 실은 일면적인 것이다. 북한이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열등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말이다.

 

이러한 일면적 사고에서 비롯된 양면적 인식이야말로 남한 사회가 북한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인식 틀이라 할 수 있다.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해 환장한 무모한 미치광이인 동시에 한국과 미국이 '본때'를 보이면 찍 소리도 못하는 겁쟁이들이고, 그 주민들은 '가혹한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동시에 게을러 터진 사람들이며, 그 국경은 살벌하게 통제되는 동시에 탈출자가 쏟아져 나오는 곳이고, 그 사회는 일체의 자유가 완전히 말살된 상태인 동시에 '체제 유지'에 대한 위협이라는 점에서 한국 드라마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만큼매우 심각한 문제인 마약을 마음껏 즐길 자유를 보장하는 분위기이며, 그 문화는 성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문란한 기풍을 지닌 그런 나라다. 그런 건 그냥 악담일 뿐, 절대 북한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 될 수 없다.

 

장애인 제거설

 

북한에서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영아들을 국가 차원에서 제거 즉 살해한다는 소문인데, 이런 소문을 퍼뜨리는 인간들이 하나 간과한 점이 있다. 장애인은 선천적으로 되기도 하지만, 사고 등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 피도 눈물도 없는 북한이란 나라는 후천적 장애인, 가령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사람 등을 어떻게 대하는가. 또 일반적으로 장애인으로 분류하지는 않지만, 실상 다리 좀 저는 젊은 사람보다 나을 것도 없는 병상의 노인들은 어떻게 '처리'하는가. 장애인의 존재를 결코 허용할 수 없기에 아직 눈도 못 뜨는 갓난아기조차 무참하게 살해하는 체제라면 이들이라고 살려둘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그런 레퍼토리 주워섬기는 탈북자 치고 이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그러한 후천적 장애인 및 병약자들도 죽이는 건 맞는데 '그것이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서' 증언자들이 언급 안하고 넘어가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차라리 그런 부분까지는 미처 '설정'을 하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그럴싸하다.

 

물론, 장애아 살해설을 주장하던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아니더라도, 그러한 이들에 대한 탈북자의 증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 군 복무 중 장애를 입게 된 '영예군인(상이군인)'들이 상당히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증언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567668)이 있는가 하면, 우대는 말뿐이고 비참한 삶을 산다는 증언

(https://www.dailynk.com/%E5%8C%97%EC%84%9C-%EB%B6%88%EA%B5%AC%EA%B0%80-%E5%8D%97%EC%97%90%EC%84%A0-%EC%9E%A5%EA%B4%80-%EB%8C%80%EC%9A%B0-%EB%B0%9B%EB%8A%94/)도 있다. 어쨌든 죽이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북한의 장애인올림픽 참가를 두고 '보여주기 식'이라며 김정은 정권을 손가락질하던 이들도 "정부에서 다 죽여 없애기 때문에 북한에는 장애인이 아예 없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하긴 살아있는 증거가 빤히 돌아다니는데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하겠는가. '설정'을 하다 만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결국 이 문제를 다루는 일부 탈북자들의 태도, 또 이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 역시 탈북자 총살설 등을 대할 때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북송된 탈북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이 그 나라 사법당국의 원칙인 것처럼 묘사하는 말글에 분개하고, 송환 후 재탈북을 했다는 사람들의 북한 정권에 대한 저주와 원성으로 가득 찬 경험담에 다시 한 번 분개하면서도 두 사실이 상호 모순이 된다는 것은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북한이 장애인 말살 정책을 편다는 사실에 치를 떨고, 또 북한의 살아있는 장애인이 겪는다고 하는 차별과 박대를 전하는 기록·증언에 또 이를 갈면서도 양자 사이의 모순은 좀처럼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설에 대해 또 굳이 일말의 진실성을 찾는다면, 장애아 살해 자체는 있을 수 있다. 개인, 가정 차원이라면 말이다. 사실 영유아 살해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고, 이는 특히 저개발·빈곤 국가에서 두드러진다. 건강하지 못한 아이가 특히 위험에 처하기 쉬움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 잔혹한 관습은 단순히 장애를 불길하거나 역겨운 것으로 여기는 관념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그런 혐오주의 외에도, 비장애아보다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한 장애아를 키우는 것에 대한 부담감, 아이가 장차 겪을 불행에 대한 동정, 영아를 사람이 아닌 태아에 가까운 존재로 인식하는 인간관 등이 복잡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는 당연히 남한 사회에서도 일어났던 일이다. 예를 들어 '뽀빠이' 이상용은 어렸을 때 생매장당할 뻔한 것을 이모가 구해줘서 목숨을 겨우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https://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09251100491001) 물론 그때는 대한민국이 아닌 식민지 조선이긴 했지만, 여전히 절대빈곤에 허덕이던 40년대 중·후반-60년대 남한이라고 그런 악습이 일소되었을 리는 없다. 자타공인 '선진국'인 지금도 잊을 만하면 장애아 살해 및 미수 사건이 일어나는 판이니 말이다.

 

그러니 생존의 경계선을 타는 북한의 하위층 가정에서 부모 스스로의 선택으로 장애아를 살해하기도 한다는 증언을 꼭 북한 악마화를 위한 날조로 치부하기는 힘들다. 남한 사회에서 지금도 의사들이 장애가 있는 태아에 대해 임신중단을 권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처럼, 북한의 병원에서 그와 같은 장애 영아 살해를 부모에게 권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이 문제에 대한 비교적 신뢰할 만한 증언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090042)도 그런 식이다.

 

만약 그러한 범죄가 개인적인 것이 아닌 정책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물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먼 옛날 일도 아니고 여전히 여기저기서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북한에서도 '손전화기(핸드폰의 북한말)'500만 기니 600만 기니 하는 시절이니 별의 별 기밀 정보도 다 쥐고 있다는 '내부 소식통'들이 각 병원에 장애아 살해를 지시하는 공문서 사진 한 장 찍어서 전송하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이다. 물론 그런 소문이 퍼진 지 수십 년이 지나도록 전혀 제시되지 않던 그러한 증거물이 이와 같은 문제제기가 있은 후에야 갑자기 출현한다는 것도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일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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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3-07-07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제가 요즘 국내언론을 끊었습니다. 북한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조차 없이 그저 서양 매체들만 받아쓰는 데 급급한 국내언론을 보니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요.

newdvs117 2023-07-16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사례에 나온 거 이외에도 국내 언론의 북한 왜곡보도는 거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지하게 많습니다. 그만큼 국내 언론이 남북한의 평화통일보다는 분단체제 유지를 더 선호하고 있다는 소름끼치는 증거죠!
 
물러나다 - 촘스키, 다극세계의 길목에서 미국의 실패한 전쟁을 돌아보다
놈 촘스키.비자이 프라샤드 지음, 유강은 옮김 / 시대의창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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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기 전이었다. 나는 비자이 프라샤드(Vijay Prashad)SNS를 통해 그가 세계적인 진보학자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게 됐다. 프라샤드와 촘스키는 신간 한권을 들고 있었고, 그 책의 이름은 바로 The Withdrawal이었다. 책 제목을 직역하자면, ‘철수하다라는 뜻이다. 남한 사회에서 각종 반미집회에 간혹 참여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들이 같이 책을 썼다는 점에서 참으로 기쁘고 놀라웠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이 국내에 빨리 번역되기를 기대했다. 나의 기대는 헛되지 않았고, 하워드 진(Howard Zinn)의 베스트 셀러 미국 민중사를 번역한 유강은씨가 이 책을 올해 번역했다. 이렇게 좋은 책이 국내에 나왔다는 점에서 참으로 기뻤다.

 

나는 노엄 촘스키를 좋아한다. 촘스키는 미국의 좌파 지식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촘스키는 언어학자이지만, 여러 분야에서도 박학다식한 세계적인 천재이기도 하다. 특히나 촘스키가 가하는 미국에 대한 비판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근거와 출처도 탄탄하다. 베네수엘라의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Hugo Chavez)는 유엔에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차베스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가리키며, 살아있는 악마라고 표현했다. 당시 차베스가 부시에게 악마 혹은 제국주의자라 강하게 표현한 이유는 분명했다. 2003년 부시 행정부가 불법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했고, 베네수엘라에 대한 살인적이고 폭력적인 전쟁범죄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연설 당시 차베스는 한 권의 책을 보여주며, 미국의 대통령에게 독서를 권장했다. 그 책이 바로 촘스키의 책 패권인가 생존인가였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미국의 패권이 종말의 길로 갈 수 있음을 경고하는 훌륭한 저작이었다. 그 외에도 내가 감명깊게 읽은 촘스키의 책 중 하나는 미국 대외정책론여론조작이다. 전자의 경우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 국내에서 출간됐고, 후자는 2006년 에코리브르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대외정책론의 경우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의 폭력적 행위에 대한 고발이 담겨져 있었고, 여론조작은 미국 지도부가 어떻게 자국의 적국을 악마화하고 또 언론을 통해 가짜뉴스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지를 아주 낱낱이 고발했다. 에드워드 허만(Edward Herman)과 공저로 집필한 두 권의 책은 내 서재에 결코 빠져서는 안 될 필수적인 책이다.

 

그러나 촘스키의 자료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책을 다소 어렵게 집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촘스키의 책을 번역하는 번역자들은 그러한 난해함에 고통을 겪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물러나다에서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눈 비자이 프라샤드는 어떠할까? 여기에 대해 얘기하자면, 우선 내가 만난 비자이 프라샤드에 대한 얘기부터 해야겠다.

 

지난 202212월 나는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인 비자이 프라샤드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국제전략센터(International Strategy Center)에서 개최한 북콘서트였는데, 비자이 프라샤드와 뜻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자리에는 프라샤드의 저서 워싱턴 불렛을 번역한 심태은씨와 3세계의 붉은 별을 번역한 원영수씨도 함께 했으며, 북콘서트가 끝난 이후 뒤풀이도 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자리에서 페이스북으로 우연히 알게 된 청일전쟁, 국민의 탄생을 번역한 이재우씨랑도 만날 수 있었고, 나는 프라샤드와 더불어 이 분들과도 뜻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비자이 프라샤드를 알게 된 것은 그가 쓴 3세계의 붉은 별을 통해서였다. 또한 2022년에 번역된 그의 저서 워싱턴 불렛은 미국 제국주의의 폭력을 너무나도 노골적이면서, 아주 쉽게 설명한 책이었다.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을 가진 것과 동시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역사를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내는 그의 서술방식에 나는 참으로 감탄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프라샤드를 꼭 만나보고 싶었었다. 실제로 그가 북콘서트에서 한 강연은 굉장히 알아듣기 쉬웠다. 심지어 프라샤드가 사용하는 영어 또한 결코 어려운 단어나 문장이 많이 등장하지 않았으며, 번역자를 위해 문장 하나하나를 끊어서 번역하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심까지 보여주었다. 그의 강연을 들으며, 나 또한 앞으로 저렇게 대중성을 가진 역사학자가 되겠다고 깊이 다짐했었다.

 

북콘서트 이후 프라샤드와 나눈 대화 또한 감명 깊었다. 나는 프라샤드에게 한국전쟁 관련한 이야기와 베트남 전쟁 관련한 이야기 그리고 중국 국민당의 부패한 지도자 장제스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나나 프라샤드나 소련의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주체이기에, ‘I Like Stalin’만으로도 서로 기쁘게 반길 수 있었다. 나는 프라샤드에게 현재 대한민국 인터넷 및 SNS 상에서 만연하는 장제스에 대한 재평가 흐름을 얘기해주고, 그가 장제스에 대해 어떻게 평가를 내리는지 물어봤다. 그의 대답은 아주 간단명료하고 핵심적이었다. 프라샤드는 나에게 그는 그저 부패한 독재자이고, 무능한 정치인입니다. 간단히 말해 한국의 이승만이나 박정희일 뿐입니다. 평가내릴 게 뭐가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프라샤드는 항상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핵심을 전달하는데 타고난 기질이 있는 인물이며, 실제로 그의 영상이나 강의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책 물러나다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전쟁과 그 결과에 대해 프라샤드와 촘스키가 나눈 대화록이다. 책은 미국이 건국 이래 최초로 패전한 전쟁인 베트남 전쟁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거치고, 이라크 그리고 리비아를 거쳐 현재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를 다룬다. 생각해보면 이 순서는 전쟁이 시작된 순서를 따른 것이다. 일반인들이 읽어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고, 핵심적인 내용이 잘 들어가 있다. 거기다 이 책은 간단한 전개를 하고 있으면서도 촘스키의 장점과 프라샤드의 장점을 적절히 잘 살렸다. 쉽게 말해, 촘스키나 프라샤드가 하는 얘기들이 전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의 저서를 읽어봤지만, 이번에도 그들의 책에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그리고 리비아 관련한 얘기 중에선 내가 모르던 사실들 또한 있었다. 세간에 폭압적인 독재자로 알려진 사담 후세인을 보자. 물론 사담 후세인이 친미주의자에 폭압적인 통치를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거기다 후세인은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무기를 사용해 쿠르드족을 독가스로 학살하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냉정한 비판을 받아야 할 인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후세인의 폭압성만 강조했지 그가 1990년 쿠웨이트 침공 이후 실수를 깨닫고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려고 했던 시도에 관해선 얘기가 잘 안 된다. 오직 사담 후세인의 이미지에는 독재자와 쿠웨이트 침공자라는 전쟁광적 이미지가 있을 뿐이다.

 

리비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경우 아랍 사회주의 및 자마히리야라 하여 생각보다 괜찮은 국정운영을 했다. 1980년대 리비아는 1인당 GDP1만 달러를 찍었던 나라이기도 했으며, 완비된 복지와 사회보장제도 그리고 선진적인 여성인권의 증진까지 이룩했던 나라였다. 심지어 전기와 수도까지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했고, 자동차 비용도 정부가 절반 가까이 부담하는 나라였으며, 집값도 상당 부분 국가가 부담했다. 그러나 카다피는 미국의 제국주의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서구에 의해 악마 또는 히틀러에 버금가는 광인으로 묘사됐고, 이러한 묘사는 극우 반공주의자인 로널드 레이건을 넘어 버락 오바마에게까지 전해졌다.

 

이 책에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바로 리비아 반군에 관한 것이다. 프라샤드와 촘스키는 리비아 내전 초기 카다피 정부군이 반군의 거점을 장악하자, 미국·영국·프랑스가 NATO의 이름을 걸고 리비아를 무차별 폭격했는데, 카다피의 협상시도가 리비아 반군과 서방에 의해 철저히 외면받았다는 사실이다. 카다피는 리비아가 서방에 의해 폭격당하는 가운데, 제이콥 주마와 5명으로 구성된 아프리카연합 대표단 방문단과 대화를 나눴고, 그들이 제안한 평화 로드맵에 동의했다. 제이콥 주마는 언론에서 카다피는 반군 지도부와 벵가지에서 합의에 도달하는 즉시 휴전을 시행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밝혔지만, NATO와 리비아 반군 지도부는 이러한 제안을 철저히 거부했다. , 이들에게 있어 카다피는 무조건 죽이고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국토 리비아는 폭격으로 파괴돼야 할 나라였다.

 

이라크에서 미국이 치른 전쟁 또한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야만적이었다. 200411월 제2차 팔루자 전투 당시 미군은 도시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2차 팔루자 전투 당시 미 해병대의 대규모 공격이 이뤄졌는데, 이 과정에서 미군의 행위는 전쟁범죄였다. 미군은 종합병원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병원 환자들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의사를 자빠뜨리며 한데 묶었다. 당시 뉴욕타임스에는 그 종합병원이 사진이 실렸는데, 여기서 발생한 파괴와 살상의 모든 책임을 테러리스트 탓으로 돌렸다. 이에 대해 노엄 촘스키는 이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아무도 모르며, 이는 미국이 자신들이 벌이는 잔학 행위를 집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력히 역설했다. 생각해보면, 미국은 이라크 침공에서 다량의 감손 우라늄, 대량의 방사능 등 위험한 무기를 사용했다. 또한 이라크에서 시아파와 수니파를 사용하여 종족분쟁을 부추겼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미국이 베트남부터 리비아에서 자행한 전쟁수행은 그 자체로 전쟁범죄였고, 대량학살이며 노골적인 테러리즘이었다. 심지어 이 나라들의 공통된 특징은 비백인 국가라는 점도 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과거의 북한과 현재의 북한이 미국에 대해 극단적인 반감을 보이는 것도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베트남과 더불어 미군의 무차별 폭격 학살 만행 피해가 아주 극심했던 나라이기 때문이다. 책의 추천 글 중 하나에는 한신대 교수인 이해영 선생의 말이 있다. 이해영 교수는 북한이 미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미국이 자신들에게 한 일 때문이고, 남한이 미국을 사랑하는 이유는 미국이 자신들에게 한 일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에서 이해영 교수가 쓴 추천사가 내 생각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서평을 마무리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글로벌 대원로 노엄 촘스키와 인도의 진보인사 비자이 프라샤드의 대담집이다. 9-11 즈음 부시가 물었다. "사람들이 왜 우리를 미워하지?" 펜타곤 조사단이 답을 찾았다.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건 우리가 그들에게 한 일 때문"입니다. 그리 보면 북한 사람들은 왜 저렇게 미국을 미워할까? 답은 간단하다. 미국이 "그들에게 한 일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한 사람들은 왜 저렇게 미국을 사랑할까? 이 역시 답은 간단하다. 미국이 자신들에게 한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류 중의 주류 새뮤얼 헌팅턴이 1999년 《포린어페어스》에 이렇게 썼다. "많은 나라가 볼 때 미국이야말로 깡패 초강대국이 되는 중이다." 그래서 촘스키는 "미국이 세계 최고의 테러리스트 국가"라고 말한다. - P7

갤럽에서 한번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오바마 시절인 2013년이었다. "세계 평화에 가장 위협이 되는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미국이 압도적으로 1위였습니다. 한참 뒤처진 파키스탄이 2위였는데, 인도쪽 표 때문에 크게 부풀려진 게 분명했지요. 중국, 북한, 이스라엘, 이란이 미국에 한참 뒤처져서 3위군을 형성했습니다." - P7

과거 냉전 시기, "무엇을 하든 간에 ‘러시아인들이 쳐들어온다‘고 말하면 됐지요.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복잡한 변명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현재? 마찬가지다. 또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냉전기나 지금이나 "유럽은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하기보다는 일관되게 미국에 종속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 P7

전쟁은 하나님이 미국인에게 지리를 가르치는 방식이라고 한다. 전쟁은 미국인의 지리 수업 시간이다. 그래서 이 나라는 전쟁 없이는 살 수 없다. - P8

베트남, 라오스, 아프간, 이라크, 리비아. 이렇게 이 책의 순서를 그냥따라가면 된다. 아주 쉽다. 그러면 나온다. 우크라이나!"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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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쥬라기 공원을 본 사람이라면 이 공룡의 존재를 알 것이다. 바로 벨로시렙터(벨로키랍토르)다.


벨로시렙터의 화석이 발견된 것은 20세기 초다. 1923년 몽골의 고비 사막에서 미국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서 파견한 미국인 화석 탐사대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1924년 미국의 공룡학자 헨리 F 오즈번 박사에 의해 지금의 이름이 명명되었다.

벨로시렙터는 백악기 후기에 서식하던 종으로 현재의 몽골과 중국 지역에서 서식했다. 크기도 굉장히 작았다. 현재 인간보다 훨씬 작으며, 크기만 봐선 애완용으로도 적당할 것이다. 사실 이 공룡이 유명해진 건 바로 1971년 몽골 고비 사막에서 폴란드 탐사팀에 의해 프로토케라톱스와 싸우다 죽은 화석을 통해서였다.

처음에 발견되었을 당시 프로토케라톱스가 벨로키랍토르의 앞다리를 물고, 벨로키랍토르는 프로토케라톱스의 목에 두 번째 발가락 발톱을 박은 상태 그대로 화석이 되었는데 이는 벨로키랍토르가 프로토케라톱스(초식공룡)를 사냥하던 중 둘이 물고 싸우다가 모래더미나 돌 무더기에 산 채로 파묻혀서 그리 된 것이었다.

그러나 발견된 화석하고는 달리 영화에서는 2m가 넘는 육식 공룡으로 나온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본 사람들은 벨로시렙터가 마치 거대한 공룡으로 티라노사우루스와도 대적할만한 존재로 인식하기도 한다.

사실 영화에서 묘사된 벨로시렙터는 백악기 시절에 살았던 유타랍토르나 데이노니쿠스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 정도의 크기로 묘사된 것. 한편 쥬라기 공원은 1편에서 공룡들에게 털을 안덮혀서 그런지, 2022년 판에서도 털 덮인 공룡들이 거의 나오질 않는다.

벨로시렙터 또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깃털 공룡인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기존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기서 나온 렙터는 털이 없다.

참고로 쥬라기 공원에 나온 대다수 공룡들은 백악기 시절의 공룡들이며, 쥬라기 시절 공룡들은 거의 없고, 트라이아스기 공룡은 더더욱 없다. 최근 영화에서는 고생대 시절 포식자 디메트로돈이 나왔는데, 공룡은 아니다.

오랜만에 쥬라기 공원 공룡관련 잡썰을 풀어봤다. 무튼 영화에 나온 벨로시렙터는 유타랍토르나 데이노니쿠스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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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3-06-29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룡과 관련된 흥미로운 글이네요!
 

(이 글은 2년 전인 20216월에 포스팅한 글을 보다 보완한 글이다. 추가적으로 알바니아 노동당사(History of the party of Labour of Albania)를 참고했다.)

 

알바니아는 어떤 나라일까? 이 나라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아시아 뿐만 아니라, 북미권 심지어 유럽권에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알바니아는 인구가 300만 명도 안 되는 나라로 면적은 28,748로 대한민국 보다도 3.5배나 작은 나라이며, 한반도보다 8배나 작은 나라다. 대략 경상도 수준의 영토가 한 나라라고 생각하면 된다. 알바니아는 중세에서 근대 시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9세기부터는 유럽에서 부흥하던 민족주의적 움직임이 일어났다. 심지어 이 시기를 알바니아 역사에선 알바니아 르네상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엔베르 호자 사진, 엔베르 호자는 1945년부터 1985년까지 알바니아를 통치했던 지도자다. 서구 진영에선 독재자로 비난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알바니아를 가장 번영으로 이끈 탁월한 지도자로 평가한다.)

 

알바니아는 1912년에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포했다. 알바니아는 1908년부터 독립전쟁을 치렀고, 4년간의 투쟁 끝에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 사건은 1914628일에 일어나는 이른바 사라예보 사건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알바니아는 이탈리아와 전쟁을 치렀는데, 이 전쟁에서도 승리했다. 1920년대 로마에서의 쿠데타로 집권한 파시즘의 창시자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과거 로마제국의 영광을 구현하고 싶어 했다. 그 결과 1935년 에티오피아를 침공하여 그 나라를 점령했고, 리비아를 식민지 지배 했으며, 1936년 파시스트 프랑코의 쿠데타로 일어난 스페인 내전에 나치 독일과 더불어 병력을 파병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394월 무솔리니는 알바니아를 침공하여 점령했다.

(알바니아의 지도, 한국의 경상도 정도의 영토를 가진 나라 알바니아는 인구도 현재 300만 밖에 안되는 나라다. 당시의 알바니아는 인구가 200만이 좀 넘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는 19391월부터 알바니아 침공에 대한 계획을 지지했고, 323일부터 알바니아에 대한 군사적 점령을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193947일에 알바니아를 공격했으며, 조그 왕이 빨리 도망쳤기에 이탈리아 파시스트 침략자들은 별다른 저항을 받지고 않은 채 알바니아를 점령했다. 이탈리아에게 알바니아는 단순히 점령대상이고, 로마제국의 영토 차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알바니아 민중들에겐 과거 오스만 제국에 저항한 역사에서 경험한 감정을 다시 한 번 경험하게 됐다. 이탈리아 군대가 알바니아를 침공하자 알바니아의 조그(Zog) 왕과 그의 정부는 도망쳤고, 체터스(Chetas)라고 불리는 일부 게릴라 부대들이 이탈리아군에 맞서 산발적인 게릴라전을 벌였다.

(알바니아 시내에 진입한 이탈리아군)

 

(1939년 알바니아에 진입한 이탈리아군의 경전차, L-3으로 불리는 이 경전차는 사람 한 두명 정도만 탑승할 정도로 작다.)

 

침략자 이탈리아는 알바니아인에 대한 강제동화정책을 실행했으며, 이탈리아 지배에 대한 알바니아 노동당의 확고한 입장은 암울한 이탈리아 파시스트 지배기, 알바니아를 노예화하던 시절로 정의된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부는 국왕 빅터 이마누엘 3세 내세우고, 셰프켓 베를라시(Shefqet Vëerlaci)를 꼭두각시 정부의 수장으로 임명했다.

 

초기 알바니아 민중은 파시스트들이 세운 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형태로 저항하기도 했으며, 알바니아 공산주의 조직 또한 이러한 저항에 나섰다. 19391128일 알바니아 공산주의 조직은 반파시즘 성향의 대중시위를 알바니아의 몇몇 주요 도시들에서 이끌었다. 당시 시위대는 알바니아의 자유 만세!’, ‘자유 아니면 죽음을!’ 구호로 외쳤고, 알바니아 공산주의 조직은 이 시위의 격려자이며 지도자였다. 이러한 시위 조직과 활동을 통해 알바니아 공산주의 그룹들은 힘을 강화하고 알바니아의 다른 도시들에서 활동을 확장할 수 있었으며, 지역주의를 종결시키기도 했다. 1940년 초에는 수도 티라나에서도 조직되었는데, 여기서 그 조직을 이끄는 인물이 바로 엔베르 호자(Enver Hoxha)였다.

(엔베르 호자와 빨치산, 2차 세계대전 당시 엔베르 호자는 알바니아에서 빨치산 투쟁을 이끌었다.)

 

부르주아 출신 집안에서 자란 호자는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교육을 받은 역사학 교수였고, 이탈리아가 알바니아를 침공하여 점령했을 시점부터 반파시스트 운동에 뛰어들었던 인물이었다. 유학생활을 바탕으로 영어와 독일어 그리고 러시아어도 할 줄 알았던 다재다능한 인물이기도 했다. 1939년 알바니아는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들에게 침략 당하자, 알바니아 공산당은 이에 맞선 투쟁을 전개하기에 이른다. 19406월에 들어 알바니아 공산당은 파시즘과 트로츠키즘에 맞서 싸웠다.

 

1940년 들어 이탈리아는 독일·일본과 동맹관계를 맺었으며, 10월에는 그리스를 침공했다. 당시 이탈리아군은 졸전을 거듭하는 군대로 유명했고, 그리스군은 도리어 이탈리아군에게 반격을 가하는데 성공했고 이탈리아군은 그리스에서 후퇴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탈리아-그리스 전쟁은 알바니아인들에게 파괴와 고통을 가져왔고, 알바니아의 반파시스트 조직들은 그리스를 도왔다. 전쟁 당시 무솔리니 정부는 알바니아인들을 강제로 징집했고, 파시스트군에 배치했는데 도리어 알바니아인들이 탈영하거나 싸우기를 거부하는 사례도 많았고, 이탈리아군의 전쟁기계를 뒤에서 파괴하는 공작까지 벌이기도 했다. 또한 호자가 이끌던 공산주의 조직은 1940년에 또 다른 시위를 조직하여 전개하기도 했으며, 여기에는 그리스의 쇼비니즘적인 요소를 반대하는 구호도 포함됐다.

(알바니아 빨치산들의 무장투쟁을 그린 상상화, 알바니아의 빨치산은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군과 히틀러의 독일군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이탈리아-그리스 전쟁으올 알바니아는 양측의 전쟁터가 되었고, 적잖은 인명피해와 파괴가 발생했다. 물론 이탈리아는 전쟁을 수행하는 도중 식민지 지배국의 착취를 강화했고, 식민지 대중들까지 탄압하고 착취하고 또 약탈했다. 이렇게 되면서 이탈리아 지배에 대한 알바니아인들의 저항의식은 더더욱 강화됐고,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이 보다 지지를 얻게 된다. 194111월 궁극적으로 수도 티라나에서 알바니아 공산당이 창당되었으며, 여기서 엔베르 호자를 포함한 몇몇 인사들이 지도부로 선출됐다. 그리고 공산당은 알바니아 인민해방군(armed forces of the National Liberation Army: NLA)이 창설되어 제대로 보다 적극적인 게릴라전을 전개하기에 이른다.

 

알바니아 공산당은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채택된 디미트로프 테제(인민전선) 전술에 따라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보다 광범위하게 구축하고자 했고, 히틀러의 소련 침공과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이 있음에 따라, 소련이 영국과 미국하고 손을 잡는 것을 전략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탈리아군에 맞선 파르티잔 투쟁을 벌였던 호자는 1942년 말 왕당파 그룹이었던 게헤그(Gheg)의 게릴라 부대를 설득하여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또한 그리스 공산당(KKE)와 유고슬라비아의 티토(Tito)하고도 협력하는 관계였었다. 당시 영국의 SOE는 이탈리아에 맞서 게릴라전을 전개했던 호자와 협력관계를 형성한 게헤그의 부대와 호자의 파르티잔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들은 그들에게 무기와 장비를 공급해주고자 했고, 2개의 타격연대를 훈련시키기도 했었다.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 공화국 시절에 있던 빨치산 관련 포스터)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 공화국 시절 만들어진 빨치산 관련 포스터,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 공화국 탄생 40주년을 맞아 만든 포스터로 보인다.)

 

앞서 설명한 이탈리아-그리스 전쟁으로 알바니아는 전쟁터로 변모했는데, 이 과정에서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테러와 파괴가 뒤따랐다. 1941년에 이르러 알바니아에 주둔한 이탈리아 파시스트 군대의 규모는 10만 명으로 증가했고, 이탈리아군은 반파시즘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극심한 테러와 학살도 자행했다. 물론 이러한 행위로 이탈리아군이 알바니아인들로부터 얻는 것은 반감 뿐이었다. 아래 엔베르 호자의 연설문 중 일부를 보자.

 

알바니아 산하에서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투쟁의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고, 르네상스 부흥기 시절 우리 알바니아의 위대한 애국자들의 노고가 재현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어깨에 총을 멘 소년과 노인들이고, 인민들의 병사들이며 이 저항군을 이루어 함께 뭉치고 있으며, 자유라는 이상에 영감을 받아 증오의 피가 들끓은 피에 굶주린 파시스트 침략자를 공격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농촌 곳곳에서 대문이 활짝 열렸고, 알바니아의 마을 곳곳이 자신들의 아들과 딸로 이루어진 병사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습니다.”

 

1941년부터 1942년 사이 엔베르 호자가 지도자로 있는 빨치산 부대(알바니아 인민해방군)는 알바니아 대부분의 도시 및 마을에서 공산당 위원회의 지도아래 군사작전을 전개할 준비를 했다. 첫 게릴라 부대는 공산주의자와 공산주의 청년동맹 그리고 지지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처음에는 10명 정도 밖에 안 되었으나, 전쟁이 지속되면서 규모를 확장했다. 1942년 초만 하더라도 빨치산 부대는 수도 티라나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적잖은 수의 이탈리아 파시스트 군대의 장교와 군 고위간부를 살해했으며, 알바니아 파시스트 스파이와 민족반역자들도 일부 처단했다. 게릴라들이 이탈리아군을 공격하는 것과 동시에 반파시즘 시위가 지역 당의 지도를 받아 일어났고, 이탈리아 파시스트 지배는 점차 약화되어 갔다. 호자의 게릴라 조직은 1942년 말에 체타에 있는 곳만 하더라도 2,000명의 빨치산 병력을 모았다. 알바니아 전역을 통틀어 게릴라의 숫자는 수천 명으로 증가했다.

(알바니아에서 토벌작전을 벌이며 양민을 학살한 이탈리아군,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군 또한 일본군의 삼광작전과 같은 전쟁범죄를 알바니아에서 저질렀다.)

 

19429월부터 12월까지 이탈리아군은 남부와 중부 그리고 북부 알바니아를 아우르는 27개 지역에서 토벌작전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군은 농민들이 사는 수백채의 집을 불태우고, 적잖은 수의 여성·노인·아이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그러나 그들은 빨치산을 토벌하는 데 궁극적으로 실패했다. 그리고 19437월 연합군의 시칠리아 상륙 이후 영미연합군이 이탈리아 본토에 상륙하자,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왕에 의해 축출되어 감옥에 갇히는 일이 벌어졌다. 이탈리아가 항복하자 이탈리아군 중 대략 15,000명이 호자가 이끄는 알바니아 인민해방군에게 항복했다. 그리고 대략 1,500명의 이탈리아군이 알바니아 빨치산 부대에 자원입대했다. 알바니아는 이탈리아가 점령한 지역에서 해방되는 것 같았으나, 또 다른 적이 알바니아에 입성했다. 그것은 바로 히틀러가 보낸 나치독일의 군대였다.

(알바니아에 배치되어 보초를 서고 있는 독일군)

 

독일군이 입성하면서 파르티잔 투쟁은 고난을 겪었다. 독일군은 대략 2~3개 사단을 동원하여 수많은 게릴라 부대들은 몰아냈는데, 작전 개시 2주도 안되어 수세에 몰렸다. 독일군은 알바니아 점령에 총 4개 사단이 동원되었다. 독일군이 알바니아를 점령하기 위한 작전을 개시하자, 다시 한 번 알바니아 전역이 전쟁터가 됐다. 독일군의 강력한 공세로 알바니아인민해방군은 적잖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나치독일은 알바니아를 점령하는 데 있어서 대략 7만 명의 병력을 주둔시켰는데, 이들은 알바니아를 자신들의 영토로 만들기 위해 빨치산에 대한 강력한 토벌과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물론 엔베르 호자가 이끄는 알바니아 빨치산 또한 나치 독일에 맞서 강력한 공세를 가했다. 19431018일 알바니아 인민해방군의 포가 나치 독일 부역집단의 건물과 독일군 기지에 포격을 가했으며, 알바니아 공산당의 지도를 받는 조직들은 수도 티라나에서 반나치 선전물을 뿌렸다. 나치 독일 또한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학살과 방화 그리고 파괴를 알바니아에서 자행했다. 더 나아가 나치는 알바니아에 있는 유대인들을 인종정책에 따라 학살하고자 했으며, 적잖은 알바니아인이 나치에 의해 강제수용소에서 죽거나 수감됐다.

(알바니아에 배치한 독일군 부대, 여러 대의 탱크도 있는 것으로 보아 전차 부대인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군은 군사작전 기간에 마을의 모든 것을 약탈했고, 모든 것을 폐허 및 잔해로 만들어 벌였다. 수천 명의 알바니아 민간인이 나치 독일군에 의해 학살당했다. 학살당한 사람들 대다수는 여성·노인·어린이었으며, 이들은 총살당했고, 도살당했으며, 산채로 불태워졌고, 구금되거나 절멸수용소에 보내지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알바니아 전역의 도살장과도 같은 곳으로 변모한 것이다. 심지어 나치 독일은 학살한 민간인의 시신을 길거리에 걸어놔 알바니아인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고자 했다. 만약 나치 독일군이 게릴라를 찾아서 붙잡으면, 이들을 죽인 뒤에 민간인들에게 그 시신을 전시하여 보여줬다.

 

그러나 이것이 알바니아 공산당에 대한 민중의 지지가 약화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알바니아 공산당의 지도를 받는 군대의 병력은 1943년 말에 대략 2만 명을 넘겼으며, 그 규모에 있어서도 결코 작지 않았다. 이러한 병력의 규모는 알바니아의 반파시즘 투쟁이 굉장히 치열했음을 알 수 있다. 1943년 겨울부터 1944년 초까지 최소 1,000명 이상의 병력이 나치 독일과의 전투에서 죽었다. 그럼에도 알바니아 공산당의 군대는 기하급수적으로 조직이 강해졌고, 군대 병력도 보다 늘어났다. 19445월이 되자 알바니아 공산당이 지휘하는 군대의 병력은 35,000명까지 증가했다. 거기다 쿠르스크 전투 이후 소련군이 보다 광범위한 반격을 게시하자, 독일은 점차 패색이 짙어졌다.

 

1944년 봄 영국의 SOE는 조그주의자(왕당파) 세력인 쿠피 그룹을 중심으로 하는 레지스탕스 봉기를 일으키고자 했지만, 당시 이 그룹은 친나치파 문제와 더불어 조직 내의 분열에 휩싸여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호자와 그가 이끄는 빨치산들은 세력을 확장했고, 앞서 설명한 것처럼 엔베르 호자가 이끄는 알바니아 공산당의 병력은 3만 명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연합국은 이들에게 군수품을 포함한 물자를 공중으로 지원했으며, 호자의 빨치산 부대는 이런 지원을 바탕으로 지역을 확장하고, 독일군 호송대와 나아가 수비대를 상대로 공격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시가행진을 하는 알바니아 인민해방군)

 

(티라나라고 써진 표지에 서서 사진을 찍은 알바니아 빨치산)

 

그해 6월 독일군은 제1산악사단을 창설하여 북부의 연합군 교두보를 폐쇄시키는 데 성공하여 빨치산들을 산속으로 쫓아내 버렸지만, 독일 제1산악사단이 유고슬라비아에 배치되자 호자의 빨치산들은 다시 독일군에게 게릴라전을 감행했다. 이후 독일군은 불리해지는 전황에 따라 알바니아에서도 후퇴하게 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5개월 뒤인 194411월에 호자가 이끄는 빨치산들은 궁극적으로 알바니아에서 독일군을 몰아내기에 이른다. 이로써 알바니아가 해방된 것이다. 빨치산의 주장에 따르면 대략 5천 명에서 6천 명 이상의 독일군이 그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수도 티라나에 입성한 알바니아 빨치산과 이를 지휘한 엔베르 호자)

 

(빨치산 지도자로서 연설을 하고 있는 엔베르 호자)

 

(엔베르 호자 관련 포스터, 알바니아가 다민족 국가고 이들을 존중하는 것을 강조한 포스터로 보인다.)

 

19441117일 수도 티라나에 알바니아 공산당의 깃발이 게양됐다. 알바니아 공산당이 전개한 혁명전쟁으로 부역자 출신의 지주들이 숙청됐고, 부르주아지 국가가 철저히 파괴됐다. 또한 전쟁이 끝날 무렵 게릴라 부대는 정규군화 됐고, 대략 7만 명 이상의 병력이 알바니아 공산당의 지휘를 받았다. 이 병력들 중 대략 9~10%는 여성이었고, 80%는 청년들이었으며, 90% 이상은 알바니아의 농민들이었다. 즉 이들이 알바니아와 코소보에서 침략자 나치독일군을 무찌르는데 가장 경절적인 역할을 했으며, 궁극적으로 수도 티라나를 해방했다.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 공화국의 깃발)

 

(알바니아의 빨치산 투쟁을 다룬 영문 서적)

 

그로부터 1년 뒤인 1945년 알바니아는 티토의 유고슬라비아와 스탈린의 소련의 지원을 받아 전국적인 총선거를 실시했다. 1945년 알바니아 총선에서 공산주의 세력은 민주전선으로 출마해 전 의석을 획득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온 선거 감시단은 이것이 공정한 선거였음을 마지못해 인정했다. 물론 이 미국과 영국에서 온 선거 감시단이 선호한 알바니아 후보는 파시스트 협력자였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후보에게 표를 던지려는 알바니아인은 아무도 없었다. 선거 감시단의 귀에는 젊은 빨치산의 목소리로 복수를 요구하는 젊은이여, 복수해다오라는 빨치산 노래가 들려왔다. 나치에 조력했던 알바니아인과의 계급 협조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따라 1946년 엔베르 호자를 지도자로 한 알바니아 인민 공화국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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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3-06-29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알바니아 혁명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