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뉴욕입니다. 즐겁게 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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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11-01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 올린 글은 여기 통신 속도가 개판이라 사진이 등록되지 못했습니다.
 

제가 드디어 가고 싶어했던 미국에 갔습니다. 현재 뉴욕에 있습니다. 앞으로 30일 동안 미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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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10-30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여행 되세요!
 
좌파 세계사 - 네안데르탈인에서 신자유주의까지
닐 포크너 지음, 이윤정 옮김 / 엑스오북스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지난 7월 미국의 양심적인 역사학자이자 지식인인 하워드 진이 쓴 미국민중사를 끝까지 다 읽었었다.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1492년 콜럼버스가 소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던 땅에 신대륙 발견과 신항로 개척이라는 명분아래 저지른 비인간적인 야만주의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하여 2003년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인 이라크 침공과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중동분쟁까지의 내용을 다룬 미국사 서적이다.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의 경우 미국의 역사를 억압받고 차별받던 민중의 입장에 서서 미제국주의를 비판한 명저지만 어디까지나 미국사가 주된 내용이었다. 따라서 난 하워드 진이 쓴 미국민중사처럼 민중의 입장에서 쓴 세계사 서적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일게 된 책이 닐 포크너의 좌파세계사.

 

닐 포크너의 좌파세계사는 인류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탄생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까지를 다룬 세계사 서적이다. 이와 비슷한 서적으로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이 쓴 민중의 세계사라는 책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좌파세계사라는 제목이 더 끌려서 이 책을 서점에서 구매해서 읽었다. 위에서 상술했듯이 닐 포크너의 좌파세계사는 인류의 시초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등장부터 시작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등장과 더불어 인류의 생물학적 발전을 진보와 혁명적 변화라는 관점에서 해석한 저자의 시각이 참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저자의 책은 어느 민족과 국가가 우월하다고 인식하며, 타인종과 민족을 멸시하는 일각의 시작을 배척하고, 소위 민족우월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영토우월주의와 민족우월주의 그리고 제국우월주의적인 시각을 일목요연하게 비판하고 배척한다. 이 부분에서 만큼은 정말 많은 공감이 갔다.

 

인간은 역사를 바라볼 때 로마 제국과 같이 전쟁을 많이 하여 제국의 영역을 넓히고 거대한 건축물은 세운 제국에 대해 동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때가 있다. 서양의 경우 로마 제국이나 과거 영토 팽창을 많이 했던 국가를 해석할 때 서양주류학자들이 그렇고, 한국의 경우 민족주의와 열등감에 사로잡혀 고조선과 고구려에 대해 맹신적인 동경과 눈먼 숭배를 일삼는 환빠가 그렇다. 저자 닐 포크너는 이와 같은 제국주의적 시각을 철저히 배척한다. 그 대신 로마 제국과 같은 고대 제국들이 영토 팽창을 하며 지나치게 재정을 낭비했던 사실과 신비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 무차별 착취했던 관료들의 실태를 보여준다. 즉 이 책을 통해서 제국의 위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건축물은 부강함과 부유함의 상징이 아닌 지배계층의 피지배계층에게 행한 착취의 상징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저자는 단순히 책에서 서양사에 대한 내용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비록 저자 자체가 영국인이고, 따라서 영국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동양 문명과 제국에 대한 설명과 아프리카 남미와 같은 그 외의 세계사도 적잖게 다룬다. 저자는 아프리카 문명을 기본적으로 편견의 시각을 가지고 보는 서양 제국주의자들의 관점을 철저히 배척하고, 아프리카 문명이 달성한 경이로운 조각 기술과 예술의 발전의 성과를 보여줬다. 저자는 우리가 깊게 생각지 못했던 고대사에 대해 신선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중세사를 보는 저자의 관점 또한 고대사 못지 않게 민중의 입장에서 지배계급의 착취와 정복을 비판했다. 저자는 징기스칸이 만든 몽골제국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비판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지른 중세교회의 실태를 비판했으며, “성지를 찾겠다.”는 허황된 환상을 가지고 침략전쟁을 벌였던 십자군과 그 전쟁에 동조한 지배계급의 만행을 비판했다. 저자는 서양 주류학자들이 쉽게 왜곡하는 정복의 역사와 팽창의 역사 그리고 피지배계층에게 행한 지배계급의 착취의 역사를 비판했다. 이와 같은 저자의 시각은 근현대사에서도 잘 비쳐졌다. 마르크스주의자 답게 저자는 마르크스 사상의 탄생과 사회주의 사상의 혁신을 잘 설명했다. 제국주의적 팽창과 1차세계대전 그리고 러시아 혁명에 대한 내용까지는 괜찮았다. 트로츠키에 대해 재조명 한 것도 볼만했다.

 

그러나 저자는 스탈린의 소련과 냉전시기 구공산권 국가를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자본주의로 해석한다. 여기서 얘기하는 국가자본주의란 자본가들이 하는 부의 축적과 착취 그리고 경영을 공산당이라는 이름아래 당 관료들이 한다는 이론이다. 이 주장에는 어폐가 있다. 개인적인 주장을 첨언하자면 구 공산권의 관료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가들하고 성질이 달랐다 보고, 무엇보다 소련이나 중국 그리고 구 공산권 국가들은 사회주의의 제1차 목표라 할 수 있는 국유화를 끝냈다. 그리고 생산수단은 개인의 소유하지 않고 국가가 소유했다. 이 책에서 국가 자본주의라 규정한 소련의 경우 특혜를 받은 계급은 존재했지만, 미국과 같이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기업가나 자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런 팩트를 생각해 봤을 때 스탈린 체제에 대한 비판은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소련과 구공산권을 자본주의로 규정하는 저자의 시각에는 오류가 있다 본다.

 

위에 상술한 한계만 뺀다면 크게 불편함을 느꼈던 파트는 없다. 저자는 20세기 역사에서 체게바라의 쿠바혁명과 베트남 민족해방전쟁, 중국의 반제국주의 혁명에 대해 무난하게 잘 다뤘고, 그 외에 관심 받지 못한 아프리카와 제3세계의 투쟁 또한 잘 조명했다. 마지막 파트에선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중동분쟁의 상태를 잠깐이나마 다뤘고, 신자유주의 문제에 대해 아주 잘 설명했다.

 

닐 포크너의 좌파세계사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문제를 느끼고 사회의 변혁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즉 현장에서 투쟁하며 혁명의식이 고취된 사람들을 위해 쓴 책이기도 하다. 몇 달 전 읽은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하워드진의 미국민중사’, 크리스 하먼의 민중의 세계사그리고 닐 포크너의 좌파세계사와 같이 5천년의 한국 역사를 아울러 민중의 시각에서 해석하며 제국주의를 분석한 책이 나왔으면 좋겠고, 이런 사관이 민중에게 많이 보급되었으면 좋겠다. 죽 역사를 민중의 시각과 반제국주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마르크스주의적 사관이 우리나라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워드 진이나 닐 포크너 그리고 크리스 하먼이 가지고 있는 민중사적 시각과 마르크스주의적인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면 맹목적인 국가주의와 제국의 영광, 혹은 시오니즘적인 고토회복 따위나 생각하는 환빠나 유사역사학자들의 관점과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동조한 친일파들을 건국의 주역으로 왜곡하고 이승만이나 박정희와 같은 친미제국주의자들을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입하여 친일과 독재 그리고 반공주의를 미화하는 뉴라이트와 수구세력의 관점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에도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시각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역사관은 환빠 사관도 뉴라이트 사관도 동북공정식 식민사관도 아닌 마르크스주의적 사관이자 민중의 시각에서 역사를 해석한 사관이다. 그 사관이야 말로 제국주의적 사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역사관이다. 미국 놀러가기 전 정말 좋은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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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를 생각하며

1970년 11월 13일 낮 1시 30분경 한 청년이 전신에 석유를 뿌려 불에 휩싸이며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절규하면서 쓰러졌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불을 끄지 못했다. 전신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은 이 청년은 병원에 실려 갔으나 끝내 회생하지 못한 채 2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이름은 바로 전태일이다.

전태일은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1950년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을 갔으나 봉제 기술자였던 아버지의 파산으로 1954년 가족이 모두 서울로 올라왔다. 전태일은 가난 때문에 거의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남대문초등학교 4학년에 다닐 때 학생복을 제조하여 납품하던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고 큰 빚을 지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동대문시장에서 물건을 떼어다 파는 행상을 시작했다. 그러다 17세 때 학생복을 제조하던 청계천 평화시장의 삼일사에 보조원으로 취직하였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경제개발이라는 명분아래 노동자들의 운명을 순순히 시장경제의 원리에 맡겼다.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그 결과 당시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천박한 자본주의적 원리에 따라 착취당했다. 노동자라면 기본적으로 받아야할 어떤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말이다. 당시 노동자로 근무하던 전태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시 전태일이 일하던 평화시장은 인근의 동화시장, 통일 상가 등과 함께 의류 상가와 제조업체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었다. 좁은 공간에 다락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밀집시켜 일을 시키다 보니 노동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거기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햇볕도 들지 않는 좁은 다락방에서 어두운 형광등 불빛에 의존해가며 하루 14시간씩 일을 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아침 8시에 출근하여 오후 10시나 11시에 퇴근하며 일했고 환기 장치가 없어서 폐 질환에 시달리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당시 여공이라 불리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의 나이는 보통 13~17세 정도 되는 어린 소녀들이었다. 그 여공들은 초과근무 수당이나 노동자로서 받아야할 합당한 수당도 받지 못한 채 극심한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렸다.

자본주의 신음아래 무자비하게 착취를 받던 여공들의 현실을 본 전태일은 1970년 9월 삼동회를 조직했다. 노동환경을 조사하는 설문지를 돌려 노동청 서울시, 청와대 등에 진정서를 제출하였지만, 행정기관과 사업주들의 조직적인 방해로 무산됐다. 투쟁과정에서 근로기준법을 알게 된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낮 1시 30분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말과 동시에 온 몸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힌 뒤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당시 박정희 정권이 노동자들을 얼마나 쥐어짜고 착취 했는지를 보여준다. 작년 이맘때쯤 뉴라이트 세력들이 전태일 열사에게 고인드립을 가하는 책을 출판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의 핵심은 전태일은 귀족 노동자라는 얘기이다. 고인드립 밖에 안 되는 소리다.

난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만약 전태일이 없었다면 지금도 자본가 아래서 착취 받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얼마나 더 착취를 받으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까? 전태일이 없었으면 8시간 노동제가 잘 지켜졌을까? 전태일이 없었다면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던 대한민국에서 노조가 있을 수 있었을까’와 같은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 전태일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 아래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이 있었기에 그리고 비인간적인 착취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만큼의 복지를 받고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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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10-26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8시간 노동제 안 지켜지고 있으며, 노조는 여전히 탄압받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은 여전하며, 비인간적으로 착취 당하고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ㅠㅠ

NamGiKim 2018-10-26 22:40   좋아요 0 | URL
ㅠㅡㅠ 맞습니다. 아직 갈길은 멀죠.
 

2018년 아프가니스탄 근황

미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됐습니다. 2018년인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쟁 초반은 막강한 화력과 군사력을 동원한 미국이 승승장구했습니다. 전사자 측면에서 봐도 미군의 사상자는 탈레반에 비해 훨씬 적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일어났던 미국의 실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반복됐습니다.

미국이 지원하는 아프간 정부군은 남베트남 관료들 못지않게 타락하고 부패한 세력이었고, 아프가니스탄 민중들은 탈레반측의 게릴라들은 지지하며 미국에 대항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당선된 오바마 정부는 이라크에서 철군하는 대신 아프간 전선에서 탈레반 소탕에 집중하기로 했었죠. 심지어 대선 시절 오바마 측에선 한국군 파병도 생각했었다 합니다.

2014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끝내기로 했던 오바마 정부는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문제는 현재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권으로 넘어갔습니다. 거기다 2016년 들어서 탈레반 세력은 아프간 정부의 부정부패와 무능력으로 인하여 민심을 잡았고 날이 갈수록 탈레반 세력은 힘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즉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현재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다가 아프가니스탄 또한 베트남 못지 않게 저항의 역사를 가졌고 특히 강대국들을 물리친 현대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영국과 소련을 몰아낸 역사가 있더군요.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요? 어쩌면 현재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싸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미국은 물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몇일 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 비행기 공습으로 인한 아프가니스탄 민간인의 사망자 관련 기사를 봤습니다. 내가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슬프네요. 관련기사를 공유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프간 공습으로 올해 민간인 649명 사상˝ 작년보다 39% 늘어…˝공습 주체는 미군·아프간 정부군˝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의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사상자 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AFP통신, CNN방송 등이 인용한 UN 아프간 지원단(UNAMA) 자료 등에 따르면 올해 1∼9월 공습으로 죽거나 다친 아프간 민간인 수는 649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39% 증가한 수치로 이미 작년 전체 민간인 공습 사상자 수인 631명까지 넘어섰다. UNAMA가 2009년부터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고 기록이다.

사상자 가운데 60%는 여자나 어린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인 공습 사상자 수가 이처럼 늘어난 것은 탈레반, 이슬람국가(IS) 등과 내전을 치르고 있는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의 폭격 횟수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재 아프간에서의 공습은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외국군 중에서는 미군만 유일하게 공습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지난 7월에만 746회나 공습 작전을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같은 기간 350회보다 두 배 이상 많으며 2010년 11월 이후 월 기준 최고 수치다.

아프간 정부군도 지난달 237회 공습 출격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니엘 벨 UNAMA 인권팀장은 AFP통신에 ˝공습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은 비탄에 잠겼고 다치거나 장애인이 된 이들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프간 정부는 아프간 공군이 민간인 사상자 발생과 관련한 책임을 질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모하마드 라드마니쉬 아프간 국방부 대변인은 CNN방송에 ˝민간인 사상 피해는 반군 지역에서 나온다˝며 ˝반군이 (민간인 거주 지역에) 폭탄을 설치하거나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공습을 포함해 테러와 내전 등으로 목숨을 잃은 아프간 민간인 수는 지난 9월까지 2천798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민간인 부상자 수는 5천252명으로 총 사상자 수는 8천50명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출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1&oid=001&aid=001039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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