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모스크바 붉은광장 (NamGiKim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9779161</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역사에 관심이 많은 30대 청년입니다. 정치적으로 사회주의를 지지합니다. 알라딘에 서평을 올리게 된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네요. 여전히 역사 책을 주로 읽습니다.</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un, 30 Aug 2026 05:12:05 +0900</lastBuildDate><image><title>NamGiKim</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59779161332747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59779161</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NamGiKim</description></image><item><author>NamGiKim</author><category>우크라이나 까는 곳</category><title>[마이리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우아한 위선에서 정직한 야만의 시대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9779161/17461354</link><pubDate>Thu, 20 Aug 2026 11: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9779161/174613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3708596&TPaperId=174613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93/64/coveroff/89337085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3708596&TPaperId=174613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우아한 위선에서 정직한 야만의 시대로</a><br/>이문영 지음 / 일조각 / 2026년 02월<br/></td></tr></table><br/>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서평: 러시아 전공자가 말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br><br>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쟁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현재까지 나의 주요한 관심사 중 하나다. 2022년 2월 24일 이른바 러시아가 특수군사작전(Special Military Operation)을 개시했다고 주장한 시점부터 2026년 8월 20일 현재까지 이 전쟁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다. 내가 연세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한 시점(정확히는 대학원에 합격한 시점)이 2022년 6월이었고, 8일 후에 졸업식을 하니, 내가 대학원 석사과정을 하는 기간보다 더 길게 진행된 것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이렇게 보자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내 인생을 결정한 시간 보다도 훨씬 길게 진행됐다.<br><br>역사적으로 보자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된 기간은 결코 짧지가 않다. 20세기의 비극적 서사를 알린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6월에 시작되어 1918년 11월에 종결됐다. 총 4년 4개월간 진행됐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에 시작되어 1945년 9월에 끝났지만, 이 기간에 벌어진 독소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분리해서 보자면 놀라운 사실을 찾을 수 있다. 히틀러의 침략으로 시작된 독소전쟁은 1941년 6월에 시작되어 1945년 5월에 종결됐다. 대략 4년 정도 치른 것이다. 태평양 전쟁은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시작하여 1945년 9월에 종결됐다. 총 3년 8개월간 진행된 셈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6.25 전쟁 즉 한국전쟁은 1950년 6월에 시작하여 1953년 7월에 휴전협정으로 끝을 맺었다. 이 기간은 3년 1개월 정도 된다.<br><br>20세기 역사에서 열전이었던 전쟁을 보면 최소 3년 이상 보통 4년 가까이 전개됐다. 그러나 2022년 2월에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앞서 말한 전쟁들보다도 기간이 길다. 전쟁 시작부터 현재까지 총 4년 6개월이라는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러시아든 우크라이나든 그 나라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영원히 싸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단순히 반전주의자들의 시각은 아니다. 이문영 교수에 따르면, 2025년 11월 러시아 내에서의 전쟁 지지율은 74%다. 물론 이것을 전쟁 종식 관련 조사를 보면 얘기가 달라지는 데, 2025년 9월 조사 결과 계속 싸우자고 하는 비율이 29%인 반면, 이제 그만 끝내자고 하는 비율은 62%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진 58% 이상이 우크라이나에 땅을 돌려주고 끝내자는 데에는 반대의사를 표명했다.(책 270~271쪽)<br><br>이러한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보다 “전쟁을 끝내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과 전쟁을 끝내더라도 “현재 러시아가 접수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즉, 현재 러시아 정부가 수행하는 전쟁 그 자체에는 기본적으로 지지하는 성향을 보이지만, 다른 한편 전쟁을 끝내는 방식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현재 러시아가 20세기의 열전들보다도 더 길게 대규모 전쟁을 수행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적잖은 러시아군인 전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내에서 푸틴이 수행하는 전쟁 그 자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br><br>그렇다면 왜 러시아는 이토록 전쟁을 길게하는 것이고, 왜 아직까지도 국민들의 강력한 반대의 목소리 없이 진행할 수 있는 것일까? 이번에 내가 읽은 이문영 교수의 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우아한 위선에서 정직한 야만의 시대로』는 우리가 제대로 잘 알지 못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련한 맥락과 사건들에 대해 비교적 적잖은 얘기들을 알려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적인 침공을 하면서 내세웠던 명분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시도 및 팽창 저지”였다. 저자 이문영은 이 부분에 대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잘못됐지만, 러시아가 정말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에 위협을 느꼈고 안보 차원에서 불안을 느낄만 했다고 언급한다. 군사적 차원에서만 따져봐도 명백히 그러하다는 것이 이문영 교수의 분석이다. NATO의 동진이 시작된 이래로 루마니아, 폴란드 등 신규 회원국이 미국의 유럽 MD 시스템과 연동된 군사 인프라가 지속적으로 배치되어 러시아 국경 가까이 이르렀고,푸틴 입장에서 보자면 우크라이나 또한 이미 NATO의 군사기지나 다름없었다.<br><br>단적으로 우크라이나가 NATO에 정식 가입해 현재 개발된 군사 인프라가 NATO 기지화되고, 여기에 미국이 개발한 지상 기반 다종타격시스템이 배치될 경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은 모스크바까지 35분, 탄도미사일은 7~8분, 극초음속 무기는 4~5분이면 충분히 타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무기의 타격권은 넓게 잡으면 우랄산맥까지 미친다고 한다. 이렇게 보자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에 큰 위협을 느낄만했다. 실제로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은 “러시아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결론 내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br><br>“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북대서양 동맹의 이미 시작된 군사적 통합, 더 이상의 군사 인프라 확대를 우리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 문제는 우리와 인접한 영토에… 우리에게 적대적인 ‘반(反)러시아‘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 그곳에 완전한 외부 통제 아래 나토 국가들의 군대가 집약적으로 주둔하고, 첨단 무기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궁극적으로 이것은 우리의 생사가 걸린 문제, 우리 국민의 역사적 미래가 걸린 문제입니다.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 우리 국가의 존재 자체와 주권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란 말입니다. 수 차례 말했던 바로 그 레드라인이기도 하지요. 그들이 그 선을 넘었습니다.”(책 98쪽)<br><br>따라서 정말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시도와 NATO의 동진 및 팽창은 러시아의 안보에 큰 위협이 되었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내세운 전쟁의 명분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즘 문제는 과연 서구의 말대로 과장이고 선전이며 거짓일까? 이 또한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체를 네오나치라고 말한다면 과장일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내의 네오나치즘 문제는 역사적인 연결 고리가 있고, 우크라이나 내에서 가진 영향력 또한 결코 작지 않다. 우선 2022년 전쟁을 개시하며 했던 푸틴의 연설을 한번 들어보자.<br><br>“나는 이 점을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요 NATO 회원국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극우 민족주의자와 네오나치들을 물심양면 지원하고 있으며, 이들은 크림과 세바스토폴 주민이 러시아와의 통일을 자유로이 선택한 것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돈바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크림으로 가서 전쟁을 벌인 겁니다. 마치 대조국 전쟁 당시 히틀러의 공범이었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패거리들이 무방비 상태의 사람들을 처벌해 죽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 나는 특수군사작전을 수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책 186쪽)<br><br>이와 같은 푸틴의 연설에는 분명 역사적인 근거가 있다. 1920년대 결성된 우크라이나 최초의 극우 파시즘 조직인 우크라이나 무장단을 필두로, 이를 계승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기구(OUN)과 그 무장조직 우크라이나 봉기군(UPA)가 대표적이다. OUN의 최고 지도자는 스테판 반데라로 우크라이나 나치즘의 아이콘이며, 1929년 OUN이 채택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의 십계명”은 “대의가 요구한다면 아무리 큰 범죄라도 주저 없이 저질러라”는 7조항이 들어가 있었다. 1941년 9월 29일과 9월 30일 이틀간 키이우(키예프) 인근 바비야르 계곡에서 벌어진 바비야르 학살(Babi Yar Massacre)은 이틀 동안 33,771명의 유대인을 총살한 사건이다. 이 대학살극은 앞서 언급한 반데라 조직 OUN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문영에 따르면, 나치에 협력한 우크라이나 극우의 자발성과 잔혹성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예를 들어 민간인 8~15만 명을 학살한 볼린 대학살(Volyn Massacre)은 나치와 무관하게 우크라이나 봉기군(UPA)가 단독으로 저지른 인종청소 만행이었고, 폭력의 수위와 잔혹함은 입에 담기조차 힘든 학살만행이었다.(책 187~189쪽)<br><br>즉, 그랬던 우크라이나의 극우 민족주의가 소련 연방이 해체되는 시점 전후로 우크라이나에 등장했고, 21세기에 현대적 부활 과정을 겪었다. 정확히는 2004년 오렌지 혁명과 2014년 유로마이단에서 그렇게 됐다.(책 189쪽) 특히 2014년 2월 유로마이단 시위는 격해졌는데, 시위를 극한의 폭력으로 격화시킨 주범은 프라비 색토르(우익 색터)와 마이단 자위대였다. 이문영에 따르면, 그들은 경찰의 강경 진압에 적극 대응한 정도를 넘어서, 무력 충돌을 도발해 갈등을 증폭시켰다. 심지어 위협으로 타협을 무력화했다. 2014년 2월 20일 시위대와 경찰 모두에게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 교전은 주변 건물에 은신한 스나이퍼의 총격으로 촉발됐다.(책 198쪽)<br><br>충격적이게도, 초기에 발표된 정부 측 진압 경찰과 러시아 특수부대의 소행이 아니었다. 이후 조사 결과 교전을 불러온 최초의 저격은 극우 성향의 마이단 자위대로부터 시작되었고, 이 저격수들은 경찰만이 아니라 자기편인 시위대에게도 총격을 가했으며, 이들의 총격은 경찰이 철수한 이후에도 이어졌다.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인 이반 카차노우스키는 이 저격 사건의 진범은 우크라이나 극우라고 결론내렸다. 참고로 그는 볼린 출신 우크라이나인이다.(책 199쪽.) 이문영 교수는 마이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br><br>“물론 유로마이단 전체를 쿠데타로 볼 수 없고, 당시 시위에 참여한 대다수 시민의 자발성과 진정성을 의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1 그 실상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lt;불타는 겨울: 자유를 위한 우크라이나의 싸움 Winter on Fire: Ukraine’s Fight for Freedom&gt;” 속 장면들처럼 마냥 정의롭고 민주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2 사태의 향방을 결정한 것은 다수의 시민이 아니라 위 다큐가 누락한 소수, 즉 극우세력이었다는 점, 3 나아가 마이단에 군집한 이 다수 시민조차 우크라이나 전체로는 국민 절반만을 대표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2014년 3월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로마이단에 대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찬반 비율은 57:38로, 전국적으로지지 여론이 20% 더 높았다. 하지만 동남부의 경우 반대가 65.5%였고, 이 중 49%는 결사반대였다.”(책 200~201쪽)<br><br>이후에 등장한 오데사 방화 사건과 마이단과 야누코비치 퇴진에 반대하여 시작된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포로셴코 정부가 격화시킨 돈바스 내전에서 등장한 극우 성향의 아조프 민병대가 이후 우크라이나 군대의 주력 부대가 된 것과 이들이 NATO로부터 무기를 지원받아 급성장한 사실은 우크라이나가 나치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 이문영 교수의 말대로 이 아조프 연대는 자신들 상징부터가 나치 친위대 문양이다. 과거 나치 무장 친위대 기갑사단 중 하나인 다스 라이히의 로고를 현재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보자면 우크라이나 내의 네오나치 문제는 단순히 러시아의 선전으로만 보기에는 너무나도 큰 무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러시아가 이 전쟁을 전개하는 데에는 우크라이나 나치문제만 있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적어도 이 문제가 러시아의 역사와 민족 문제와 연결되어 있고, 돈바스 지역 또한 이 맥락과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br><br>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북한의 우크라이나 참전과 전쟁 이후 한러 관계에 관한 것이다. 북한의 우크라이나 참전은 2025년 4월 러시아와 북한이 스스로 인정하면서 사실관계가 드러났다. 그러나 초기 대한민국의 언론 보도는 너무나도 많은 가짜뉴스를 검증없이 보도했다. 그런 과정에서 북한군 파병이 한국에게 병력을 지원받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조작극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결과적으로 빛나간 예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측 왜곡보도는 분명 문제가 있었으며, 한국 언론들 또한 문제가 많았다. 이문영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br><br>“북한군 이슈가 가진 폭발성, 남북관계나 동북아 정세, 국익에 미칠 심각한 파장을 고려해야할 한국으로서는 젤렌스키의 주장이나 우크라이나발 정보, 이와 관련한 외신 보도에 최대한 경계와 신중한 확인, 전략적 대응이 필수적이었다. 특히 엄격한 정보 검증은 언론의 중요한 책무이기도 하며, 전쟁 정보는 특히 그렇다. 한국 언론은 그렇지 않았다.(중략....) 한국의 주요 언론 모두 예외 없이, 한눈에도 조악하고 선정적인 우크라이나발 정보를 아무 검증없이 앞다퉈 확대 재생산했다. 북한군이 전투에 투입되기 전인 10~11월에도 한국 언론에는 사실상 참전을 기정사실화하는 보도가 범람했다. 그 결과 아직 전투에 투입도 안 됐는데 북한군 40명, 500명이 전멸했고, 교전한 적도 없는데 우크라이나군이 빼앗은 인공기가 쿠르스크 벌판에 펄럭였으며, 여기에 ‘북한군 인터넷 음란물 중독설’, ‘개고기 통조림’ 같은 가십성 기사들까지 가세했다. 기사 대부분 ‘외신에 따르면’으로 시작해 ‘진위 여부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로 마무리됐는데, 이런 관례적인 문구가 검증 책임을 면하게 해줄수 없을뿐더러, 자극적인 기사 제목과 내용이 불러일으킨 이상, 이미 각인된 이미지를 상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책 236쪽)<br><br>더 나아가 이문영 교수는 &lt;한겨레&gt;의 자칭 진보 비판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대표적으로 비판적인 분석 대상 기사는 &lt;한겨레 21&gt;의 이재훈 편집장이 쓴 것과 오슬로 대학교의 박노자 교수가 쓴 기사 그리고 한겨레의 길윤형 논설위원이 쓴 기사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괜찮은 분석을 하고 있으니, 궁금하다면 이 서평을 읽는 독자들이 직접 읽어보기를 바란다. 여기서는 가장 본질적인 앞 부분만을 인용하겠다.<br><br>“사실 북한군 보도는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문제는 더 근본적이다. 전쟁 발발 후 우리 언론은 ‘우크라이나가 이기고 있다’, ‘푸틴 정권은 붕괴 직전이다’ 등 북한군 보도와 그리 다를 바 없는 ‘묻지마’ 기사를 쏟아냈다. 이 점에선 보수와 진보 언론 사이 별 차이도 없었고, ‘사실관계를 따져 묻는 사람들’을 더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공격한 것은 오히려 진보 쪽이었다.”(책 239쪽)<br><br>책의 마지막 부분인 ‘전쟁 이후 한국은?’ 파트는 한국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단절하게 되면서 벌어진 불이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한국의 국익이라는 점과 연결해서 생각해볼 많은 부분을 제시해준다. 사실 한국에게 외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파트너는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러시아다. 러시아도 한국도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이 부분을 읽는다면 분명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본다. 이문영 교수에 따르면, “1990년 한소 수교 이후 30년 넘게 한국 기업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전쟁 전 러시아 자동차 시장 1위, 핸드폰 시장 1위, TV 시장 9년 연속 1위가 모두 한국 기업이었다.”(책 331쪽)<br><br>2022년 문재인 정부 말기 한국이 대러제재에 참가하면서 한국은 결과적으로 러시아라는 윈윈할 수 있는 시장을 잃었다. 러시아와의 대결이 한국의 국익 차원에서도 매우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얘기다. 결국 이 시장의 공백을 중국이 차지하게 되었다. 국민의힘과 같은 반중 성향의 정당이 왜 이걸 안 보는지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중국의 시장 진출을 싫어하는 분들이 말이다. 여전히 러시아는 한국의 삼성 휴대폰을 원한다고 한다. 핸드폰 시장도 삼성이 떠나자 중국 샤오미가 차지하는 중이다. 한국의 보수우익이라는 사람들이 반중을 하며 국익을 생각한다고 떠들지만, 정작 이 부분을 안본다는 점에서 심히 큰 모순이 있다는 생각이 진지하게 든다. 애초에 정말 국익을 생각한다면, 작년 대선에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책임진다는 말이 현재 대통령인 이재명에게서만 나와야 했던 것이 아니라, 국민의 힘인 우익 진영과 다른 진보진영인 민주노동당에서도 나와야 했다.<br><br>이 책은 러시아 전문가가 쓴 책이기에 정말로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보기에 아쉬운 점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문제를 언급하며, 러시아의 용병조직인 바그너 그룹을 언급했는데, 사실 바그너 그룹 네오나치론은 비교하기에는 균형이 맞지가 않다. 바그너 그룹에 네오나치 성향의 인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흑인 대원들도 확인되고 동양인도 확인됐다. 즉, 조직 자체가 네오나치즘을 조직의 이데올로기로 삼았다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정말로 러시아 네오나치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다면 루사치 그룹을 언급하는 것이 이것 보다는 더 적절했을 것이다. 루사치 그룹은 네오나치 성향을 분명히 가진 조직이다. 물론 이 조직을 가지고 러시아 군대를 네오나치로 규정하는 것은 사실이 될 수가 없다. 이 조직도 어디까지나 소규모 그룹의 용병이고, 러시아 군대와 사회 전체에 가진 영향력은 우크라이나 네오나치가 가지는 영향력에 비하면 매우 적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맥락은 국가가 네오나치와 같은 광인 집단을 얼만큼 통제할 역량이 되는가이다. 이 부분에서는 우크라이나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가 네오나치 그룹 탄압을 2000년대 이후 열심히 했던 사실은 많은 자료를 통해 입증이 된다. <br><br>그 외에도 토론할 거리는 많다고 생각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문제만 더 언급하겠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주장은 분명 성립하는 명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2024년 8월 6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로 진입한 것 또한 관점에 따라서 침공으로 볼 수 있다. 애초에 쿠르스크 공격은 우크라이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을 공격한 사건이었다. 거기다 쿠르스크는 1943년 인류 역사상 지상 최대의 탱크전이 나치 독일군과 소련의 붉은 군대 사이에서 벌어졌던 역사적인 장소다. 즉, 러시아에게 있어 이 지역은 대조국 전쟁 승전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며, 말 그대로 우크라이나의 해당 침공은 러시아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쉽게도 이런 맥락들을 이 책은 다루지 않았다. 적어도 러시아가 어떤 관점인지를 얘기해주는 맥락으로 갔다면, 북한의 참전도 이것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br><br>전반적으로 전공자가 쓴 책이기에 책의 공신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러우전쟁에 대해 나름 객관적으로 보려는 학자들 중에는 이문영 교수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교수님의 입장과 같지는 않지만, 이분이 하는 얘기에 상당부분 공감한다. 관련 전공자 중에선 이만한 인물도 한국서 찾기 힘들다. 이 책은 러우전쟁의 핵심적인 이슈를 정리한 책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련하여 오랜만에 읽어볼 책을 읽게됐다. 물론 나는 한신대학교 이해영 교수님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서적을 더욱 높이 평가한다. 그래도 전문가가 이만큼 쓴 것에 대해 이문영 교수의 책을 높이 평가한다. 물론 머릿속이 “우크라이나는 피해자야”를 마음 속 깊숙이 깔고 있으며 러시아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머리 꽃밭인 어떤 자들에게는 이 책 마져도 친푸틴·친러로 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문영 교수의 주장을 언급하며 서평을 마치겠다.<br><br>“처음 출연 섭외를 받았을 때 복잡했던 심경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무겁다. 2023년 4월 말쯤으로 기억되는데,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당시 한국 대통령의 인터뷰로 발칵 뒤집힌 상황이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마침 좋은 기회가 닿은 방송 출연이 필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여겨졌지만, 겁이 났다. 사실을 말했다가 ‘친러‘에 ‘전쟁 옹호자‘, ‘푸틴 앞잡이‘로 험하게 저격당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한 데다, 필자 역시 전쟁 초반 쓴 칼럼으로 이미 비슷한 곤욕을 치렀기 때문이다. 일부러 거짓을 말하지 않은 다음에야, 아무리 ‘아군 아니면 적군‘인 전쟁 이야기라도, 더구나 어쨌든 남의 나라 전쟁에 대해 말하는 일이 그렇게 살 떨리는 실존적 결단을 요구하는 상황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11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93/64/cover150/89337085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6936467</link></image></item><item><author>NamGiKim</author><category>북한사</category><title>북한은 제3세계 외교의 독자적 행위자였다! - [총, 게릴라 그리고 위대한 지도자 - 북한과 제3세계 관계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9779161/17342050</link><pubDate>Thu, 18 Jun 2026 16: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9779161/173420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8209&TPaperId=173420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5/38/coveroff/k4521382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8209&TPaperId=173420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총, 게릴라 그리고 위대한 지도자 - 북한과 제3세계 관계사</a><br/>벤자민 영 지음, 고자연 외 옮김 / 너머북스 / 2026년 05월<br/></td></tr></table><br/>1. 들어가며  &nbsp;  몇 년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북한이 만든 영상물 하나를 보게 됐다. 영상물의 제목은 ‘백두의 영광’이었고, 외국인이 지은 시라고 소개됐다. 아프리카 기니에서 온 인물이 백두산 천지에 올라 시를 읊었다. 기니에서 온 사람은 기니주체문학사상연구회 회장인 아브톨라이에 디알로였고, 그는 유창한 프랑스어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대한 존경심과 주체사상에 대한 자신의 긍정적인 생각을 ‘시’로 읊었다. 영상 마지막에는 프랑스어로 말하던 기니인이 “김정은 장군 만세!”를 한 번은 프랑스어로, 두 번은 우리말로 외친다. 영상 자체가 매우 희망차 보였고, 별생각 없이 보면 가슴이 웅장해지는 음악이 연속적으로 나왔다. 만약 대다수 한국인이 이 영상을 본다면 상당히 어이가 없을 것이다. 아마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나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영상 자체가 ‘밈(meme)’화될 가능성도 높다.  &nbsp;  한국인 대다수는 그렇게 소비하고 분석하겠지만,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영상을 보며 북한이 이런 영상물을 찍고 편집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됐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영상물이 북한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이를 알려면 결국 북한의 역사, 즉 북한의 제3세계 외교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3년 니제르와 부르키나파소, 말리로 대표되는 아프리카 사헬 지대의 국가들에서 반정부·반서방 봉기가 일어났다. 이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부르키나파소의 젊은 지도자 이브라힘 트라오레였다. 트라오레는 “부르키나파소가 더 이상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지 않아야 한다”라고 주장했고, 현재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nbsp;  이러한 국제정세의 움직임을 두고 일각에서는 미국과 서방 중심의 일극 체제가 끝나고 러시아와 중국, 그 밖의 제3세계 국가들이 중심이 되는 다극화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니제르와 부르키나파소에서 일어난 반서방 쿠데타 과정에서는 그 나라 사람들이 자국 국기와 더불어 두 나라의 깃발을 들고나온 모습이 서방 언론에 포착됐다. 하나는 현재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의 깃발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깃발인 인공기였다.  &nbsp;  여담으로 필자는 한 여행 유튜버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알려진 아프리카의 부룬디를 방문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영상에서 유튜버는 부룬디에서 가장 좋은 대학의 도서관에 갔고, 한국 관련 책을 찾다가 결국 김일성 저작집을 소개받았다. 한국 사람들이 이름조차 모르는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Korea’라고 했을 때 북한의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인 것 같다. 반정부 시위와 봉기, 쿠데타에서 북한의 깃발이 등장한 것이 과연 우연일까? 또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알려진 부룬디의 대학 도서관에서 한국인 유튜버가 소개받은 ‘Korea’ 관련 서적이 김일성 저작집인 것 역시 단순한 우연일까? 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결국 이 부분은 북한의 역사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제부터 이야기해 보겠다.  &nbsp;  2. 책 내용과 1960~70년대 북한 외교의 독자성  &nbsp;  실제로 북한은 냉전 시기 제3세계라는 범주 속에서 외교적 독자성을 가진 나라였다. 제3세계라는 범주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묶을 수 있는 매우 넓은 개념이다. 제3세계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북아메리카·남아메리카의 국가들을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냉전기 사회주의 국가임을 분명히 했고 사회주의 진영을 강력히 강조했지만, 그렇다고 제3세계 국가들과의 관계에 무관심하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북한은 냉전 시기 고립되지 않았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벤자민 영(Benjamin Young)은 북한의 제3세계 외교사를 주제로 논문을 썼다. 영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의 북한 제3세계 외교사를 연구했으며, 북한이 전혀 고립되지 않은 국가였음을 역사학적으로 보여줬다. 그의 논문은 2021년 영미권에서 먼저 출간됐고, 2026년에는 한국어로 번역됐다.  &nbsp;  책은 1950년대 북한이 전후 재건을 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은 한국전쟁의 여파와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폐허가 된 국토를 재건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동시에 1955년 반둥 회의를 통해 점차 태동하기 시작한 제3세계와 비동맹 운동에도 관심을 가졌다. 북한은 인도네시아의 국부로 불린 수카르노와의 관계를 강화했고, 1965년 미국 CIA가 주도한 쿠데타로 그가 축출될 때까지 북한과 인도네시아의 관계는 돈독했다. 1960년대 북한은 반미 투쟁의 최전선에 있던 라틴아메리카의 쿠바와 동남아시아의 베트남과도 관계를 강화했다.  &nbsp;  쿠바는 1898년부터 대략 60년간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고, 1961년 미국 존 F. 케네디 정부의 침공을 받았다. 이후 소련과의 관계를 강화했고, 1962년에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해 제3차 세계대전이 임박하기도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국은 쿠바에 대한 제재와 봉쇄를 끊임없이 이어 나갔는데, 북한은 사회주의 형제국인 쿠바를 도와 미국에 맞섰다. 북한과 쿠바의 관계는 그 이후에도 우호적으로 유지됐다. 피델 카스트로가 1986년 북한을 공식 방문했다는 것은 양국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베트남은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았으며, 전쟁 이후 프랑스가 다시 침략했다. 베트남의 국부로 불린 호찌민은 혁명 군대를 규합해 프랑스에 맞서 싸웠고,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100년간 지속된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종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미국이 베트남을 자의적으로 분단했고, 베트남은 미국의 분단과 침공으로 전쟁을 치르게 됐다. 당시 북한은 미국의 베트남 전쟁을 한반도의 전쟁 위기와 연결해 보았고, 북베트남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을 도왔다.   &nbsp;  북한의 베트남 지원은 한국전쟁과 연결해서 보아야 북한이 왜 베트남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 시기 북한은 무차별 폭격을 겪었고, 대공 방어망이 전무해 국토가 사실상 달 표면과 같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파괴됐다. 북한 인구의 20%가 미군 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추정이 있을 정도니, 북한이 전쟁에서 겪은 고통은 결코 작지 않았다. 1964년 통킹만 사건 당일부터 1972년 크리스마스까지 북베트남은 미군의 무차별 폭격을 받았다. 한국전쟁 때와 달리 북베트남에는 중국과 특히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은 최신식 대공 무기가 존재했지만, 북베트남 전역 또한 초토화됐다. 북베트남에는 100만 톤 이상의 폭탄이 투하됐고, 1972년 제2차 라인배커 작전만 보아도 미군이 해당 작전에서 사용한 폭탄의 폭발력이 히로시마 원자폭탄 5개와 맞먹는다고 하니, 북베트남 사람들이 겪었을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한국전쟁에서의 폭격 경험과 미국의 베트남 분단 및 침공 등은 북한이 베트남을 돕게 된 가장 큰 동기였을지도 모른다. 북베트남 측이 북한의 도움을 극찬했던 것을 보면, 북한이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책의 내용을 인용하겠다.  &nbsp;  “김일성과 회담 후, 레 탄 응이는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북한 지도자들은 매우 솔직하고 개방적이었으며, 우리와 완전한 의견 일치를 보였고, 그들의 지원은 매우 직접적이고 정직했고 이기적이지 않았다." 주북한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는 북한 정부의 동원 사업이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보았지만, 레 탄 응이는 북한을 철저히 '이타적'이며 미국과 싸우는 베트남 투쟁을 전적으로 돕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김일성은 베트남 지원을 통해 제3세계에서 자신의 혁명적 위상을 강화하려 했다. 북베트남 지도부가 김일성의 지상군 파병 및 지하터널 건설 전문가 지원 제안을 왜 수락하지 않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1965년 가을, 북한은 중국 철도를 이용해 대량의 건설 자재, 공구, 자동차를 북베트남으로 보냈다. 이 지원은 북한 대외경제관리국이 주북한 중국대사관의 협조를 받아 조직했다. 중국 정부는 때때로 철도 사용 요금을 면제해 주기도 했으나, 북베트남에게 운송비 부담을 요구하기도 했다. 북한은 이 자재들을 북베트남에 아무런 대가 없이 제공했다. 그러므로 북한은 중국이 북베트남의 반미 투쟁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는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1967년 소련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지도부는 중국이 베트남 지원에 충분히 협력하지 않는다고 비공식적으로 비판했다.”  &nbsp;  벤자민 영, 옥창준 외 옮김, 『총, 게릴라 그리고 위대한 지도자: 북한과 제3세계 관계사』, 너머북스, 2026, 80~81쪽.  &nbsp;  1960년대 북한은 자신들과 더불어 쿠바와 베트남 같은 나라들이 혁명적 반제국주의 투쟁의 최전선에 있으며, 이들이 반제국주의 연대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김일성은 전 세계적인 반미·반제국주의 연대를 구상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1960년대 내내 고군분투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북한이 사회주의 진영 안에 있으면서도 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들과 달리 소련에 종속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북한은 중국 및 소련과의 동맹 관계와 이들과의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련이나 중국에 일방적으로 종속된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앞서 언급한 1960년대 말 김일성과 북한의 세계관이 보여주듯이, 반미 투쟁의 최선봉은 실제로 미국의 침공과 억압을 받고 있는 나라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련과 중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으면서 이 나라들이 단결해 서구의 지배를 거부해야 한다는 북한의 세계관은 수정주의와 교조주의, 즉 소련과 중국의 편향을 반대한다는 주체사상 이론과도 연결된다.  &nbsp;  북한의 이러한 인식은 1970년대 들어 더욱 확대됐으며, 이른바 쁠럭불가담 운동, 즉 비동맹 운동 참여를 통해 한층 확장됐다. 이에 대해 저자인 벤자민 영은 북한이 1960년대의 실질적으로 대가 없는 원조에서 벗어나 1970년대에는 자국의 이익과 희생 및 지원에 대한 대가를 원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전자든 후자든 북한이 많은 나라에 지원과 원조를 제공한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북한에 대한 대다수 사람의 인식과는 달리, 이 시기 북한은 전후 재건에 성공하고 사회주의를 완성해 나가는 국가라는 이미지가 매우 강했다. 실제로 북한은 1980년대 이전까지 한국보다 잘사는 나라였고, 동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사는 나라였다. 그런 맥락에서 북한은 이러한 국력과 힘을 바탕으로 제3세계의 혁명과 사회주의 전파를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믿었다.  &nbsp;  1970년대 북한은 비동맹 운동 가입을 전후해 박정희 정부와의 경쟁 속에서 수많은 국가와 외교 관계를 맺었고, 1975년 유고슬라비아의 도움으로 비동맹 운동에 가입했다. 한국이 가입하지 못한 것과 달리 북한은 가입에 성공했고, 이를 자국 외교의 거대한 성과라고 주장했다. 필자의 개인적 견해를 덧붙이자면, 1970년대 북한 외교의 핵심 성과는 유고슬라비아와의 관계 개선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의 책에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지만, 북한은 1960년대 유고슬라비아를 현대 수정주의 비판의 맥락에서 강력히 규탄하고 비판했다. 그러다 1970년대에 들어 데탕트를 전후해 양국 관계를 발전시켰다. 김일성은 비동맹운동 가입 2개월 전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구성하던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를 방문해 티토를 만났고, 티토의 도움을 받아 비동맹운동에 가입했다. 이후에도 양국 관계는 비동맹운동에서의 협력 속에서 발전했다. 1977년 8월 티토는 소련과 중국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평양을 찾아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북한은 1970년대 쁠럭불가담 운동을 반제혁명의 역량으로 인식했고, 이를 위해 유고슬라비아와 접촉해 반미·반제 연대의 장으로 활용했다. 북한과 유고슬라비아의 관계에 대해서는 필자가 준비 중인 석사학위논문에서 더 자세히 다루고 있다.  &nbsp;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북한이 외교적 확장에만 신경 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북한은 미국과 서방에 맞선 국가들에 실질적인 군사 원조를 제공했다. 제1차 오일쇼크를 촉발한 제4차 중동전쟁에서 북한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 이집트의 사다트 정권을 지원했고, 군사고문단을 비롯해 전투기 조종사도 시나이반도에 파병했다. 1973년에만 92명을 파병했다고 한다. 아직 이 부분은 공개되지 않은 자료가 많기에 더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1970년대 중후반까지 북한 군인들이 현지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북한의 베트남 지원도 2000년대에 들어 밝혀졌다. 또한 북한은 1970년대 중반 앙골라에서 내전이 발생하자 앙골라해방인민운동(MPLA)을 도왔고, 군사적으로도 적지 않은 지원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쿠바와 소련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앙골라에 파병한 나라가 북한이라는 주장도 있을 정도다.  &nbsp;  따라서 1970년대는 북한이 반미·반제 외교의 장을 아프리카 대륙으로 더욱 확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북한의 대아프리카 외교에는 당연히 박정희 정부의 해외 영향력을 약화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북한은 이 시기 앙골라, 이집트, 리비아, 마다가스카르, 에티오피아, 자이르(콩고의 옛 이름), 토고, 모리셔스, 라이베리아, 탄자니아 등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에 군사 지원을 제공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1970년대 북한은 대아프리카 외교의 정점을 찍었고, 이와 같은 역사적 흐름은 2020년대 니제르와 부르키나파소의 반서방 쿠데타 및 봉기에서도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부룬디의 최고 대학 도서관에서 김일성 저작집이 ‘Korea’ 관련 책으로 소개된 것도 이 맥락에서 연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nbsp;  심지어 북한은 일본의 적군파와 미국의 흑표당, 그 밖의 제1세계 혁명 및 진보운동 조직과도 접촉했다. 솔직히 북한과 흑표당의 접촉은 매우 흥미롭다. 일본 적군파의 평양행은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굿뉴스’를 통해 회자되면서 사람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졌지만, 흑표당은 여전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여담으로 흑표당의 영어 이름인 블랙팬서(Black Panther)는 미국 마블 영화 시리즈의 블랙팬서에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역사인 것 같다. 정리하자면 북한은 1970년대에 제1세계와 제2세계, 제3세계 모두와 접촉했고, 특히 제3세계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외교를 확장했다. 알바니아의 엔베르 호자와 달리 고립되지 않았던 셈이다.  &nbsp;  3. 1980년대 북한에 대한 벤자민 영의 시각과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 그리고 사소한 오류  &nbsp;  저자 벤자민 영은 1980년대에 들어 북한 외교가 좀 더 폭력적이고 부패했으며, 불법적·침략적인 성격으로 변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책을 끝까지 읽어 본 결과 어떤 맥락에서 말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크게 동의하지 않을 뿐이다. 영에 따르면 북한은 1980년대 남한과의 경쟁 속에서 이러한 노선을 걸었다고 한다. 저자는 1983년 버마 테러 사건과 1987년 KAL기 폭파 사건 등을 그 사례로 든다. 또한 북한이 에티오피아의 독재자 멩기스투 정권과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정권, 우간다의 오보테 정권을 도와 이들 군대가 폭력적으로 변하는 데 관여했다고 설명한다(책 230~231쪽, 239쪽, 242~243쪽). 아무튼 이 시기 북한은 점차 경제적 위기를 겪었고,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대응해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면서 경제적으로 더욱 어려워졌다고 한다. 본문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 시기 남한 운동권 조직 전대협의 대표 임수경이 평양을 방문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nbsp;  저자는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둘러싸고 북한 정권과 참가자들 사이에 예상보다 큰 입장 충돌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1990년대 초 다른 제3세계 국가들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지만, 북한은 개혁과 개방을 하지 않았고, 내부로 눈을 돌려 군사 개발, 특히 핵무기 개발에 집중했다고 말한다. 그 결과 1990년대 남한은 농촌 개발 사업에 상당한 투자를 하면서 박정희의 새마을운동 모델을 아프리카 국가에 수출한 반면, 북한은 관련 활동을 대부분 중단해 사실상 한국에 아프리카 외교 경쟁에서 패배했다는 것, 그리고 반식민주의 발전 모델을 제시하던 국가에서 결국 생존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국수주의 군주국이 되었다는 것이 아마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 아닐까 싶다(책 268쪽). 제5장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nbsp;  이와 같은 저자의 시각은 필자가 보기에 지나치게 무리하며, 역사학적으로도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1983년 버마 테러 사건과 1987년 KAL기 폭파 사건은 아직도 많은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저자 스스로 밝혔듯이 “김정일이 랑군 폭탄테러에 직접 연루되었다는 결정적인 문서 증거는 없다”(책 202쪽). 그런 상황에서 김정일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과정에 버마 사건을 연결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심히 의심된다. 또한 KAL기 폭파 사건은 버마 사건보다도 논란이 더 많은 사건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작설도 제법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이를 단정적으로 북한의 테러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적절할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이것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2010년에 일어난 천안함 사건의 경우 한국에서는 북한의 소행으로 설명하지만 영문 위키백과는 개요에서 한국과 북한 양측의 의견을 밝혔다. 또한 교전 세력 부분에서도 ‘북한 추정’이라고만 표기했다. 예전에는 ‘알 수 없음’으로 표기된 것을 본 적이 있다. 즉 사건의 진상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은 역사학적으로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중서라면 모를까, 자신의 역사학 박사학위논문을 기반으로 한 단행본에서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서술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 논리적 연결이 다소 무리했다는 이야기다.  &nbsp;  앞서 언급한 1980년대의 아프리카 지원도 그러하다. 책에서도 북한 군대가 몇몇 학살에 가담했다는 문헌적 혹은 현장 증언에 입각한 증거를 밝히지는 않았으며, 영국 등 서방의 추정을 지나치게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가운데 읽으면서 가장 황당했던 것은 북한이 폴포트의 크메르루주 학살을 지원했다는 대목이다. 북한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이 폴포트 정권을 승인한 것과 학살을 지원한 것은 매우 다른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김일성이 폴포트를 지지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전대미문의 대학살을 북한의 지지와 연결해 단정적으로 서술한 것은 잘못된 서술이다(책 247쪽). 이 부분은 캄보디아의 역사를 알아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 전쟁 시기 캄보디아에서는 1970년 닉슨 정부의 침공으로 론놀과 크메르루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고, 전쟁 과정에서 특히 미군의 무차별 폭격과 그 여파로 50만 명이 죽었다. 이 때문에 폴 포트의 킬링필드 이전에 이미 미국이 제1차 킬링필드를 자행했다고 보는 역사적 시각도 존재한다. 이 시기 시아누크는 크메르루주와 협력해 론놀을 무너뜨렸고, 결국 1975년 4월 중준 크메르루주가 집권했다.   &nbsp;  폴포트의 크메르루주는 말 그대로 캄보디아를 지옥으로 몰고 갔고, 제2차 킬링필드로 150만 명이 죽었다. 1978년 베트남 공산당의 군대가 크메르루주 정권을 전복할 때까지 북한과 폴포트의 관계는 지속됐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점은 당시 많은 이가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에서는 필자의 주관적 견해를 좀 더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실제로 노엄 촘스키 같은 인물도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폴 포트를 옹호한 적이 있었다. 베트남 전쟁을 연구했고 현재도 미국의 진보운동 진영에 속하는 학자인 가레스 포터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리영희 교수가 문화대혁명에 대해 초기에 제한된 정보로 무리하게 미화했던 맥락과 비슷하다. 이 학자들은 나중에 실체가 알려진 뒤 비판하게 됐다. 북한은 초기에 폴 포트 정권과 접촉했다가 이후에는 접촉을 중단하고 시아누크와의 관계를 강조했다. 시아누크 역시 초기에 협력했으나 이후 크메르루주와 갈등하게 됐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북한도 그러지 않았나 싶다. 1978년 이후 폴 포트와 크메르루주 관련 언급이 『로동신문』 등 북한 매체에서 사라진 것을 보면 아마 그럴듯하다. 이런 추정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영이 설명한 크메르루주와의 관계는 사실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nbsp;  또한 제3장에 등장하는 베네수엘라 공산주의자이자 시인인 라메다의 사례도 관련 자료를 직접 확인하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국제앰네스티의 이야기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가 싶다. 본문에서는 라메다가 심한 구타를 당했다고 언급하며 수용소의 끔찍한 실상을 강조한다(책 137쪽). 이 역시 교차 검증이 필요한 자료라고 본다. 예를 들어 책에서 김일성을 직접 만난 인물로 언급되는 루이제 린저는 자신의 저서에서 북한 교화소를 ‘창살 없는 교화소’라고 표현했다. 적절한 사례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2010년대 북한에서 교화소에 수감된 미국인 매튜 토드 밀러는 구타가 없었다고 말했고, 비슷한 시기 선교 활동을 하다가 체포돼 교화소에 수감된 케네스 배 역시 노동은 힘들었지만 구타와 폭력은 없었다고 했다. 물론 이러한 사례도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부분에는 여러 논란이 있는 만큼 영의 인용이 적절했는지는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하다.  &nbsp;  마지막으로 저자의 사소한 실수도 언급하겠다. 제3장에서 저자는 북한이 비동맹운동을 외교적 도구로 활용한 사실을 언급하며 김일성과 티토가 1977년에 만난 일을 짧게 다루고 있다. 본문에는 “1977년 9월, 티토가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났다”라고 나오는데, 엄밀히 말해 날짜가 틀렸다(책 170쪽). 티토가 북한을 방문한 기간은 8월 24일부터 30일까지다. 벤자민 영이 인용한 출처는 필자도 읽어 본 기밀 해제된 루마니아 대사관 문서다. 이 문서는 윌슨센터 디지털 아카이브에 있다. 즉 9월은 루마니아 대사관이 티토의 북한 방문을 보고한 시점이지, 티토가 북한을 방문한 시점은 아니다. 티토는 평양 방문 이후인 그해 9월 베이징을 방문했다. 북한자료센터에서 관련 자료를 일일이 찾아봤기에 이 부분은 확실하다. 물론 큰 실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역사책에서는 세부 사항이 중요하다.  &nbsp;  4. 추가적으로 궁금한 점  &nbsp;  앞에서 책의 내용 가운데 동의하기 어려운 점을 길게 이야기했다. 물론 이러한 지적을 한다고 해서 필자가 이 책의 가치를 전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게 읽었기에 이렇게 긴 서평을 쓰게 됐다. 읽으면서 궁금증이 생긴 부분도 많았다. 북한과 제3세계의 외교를 깊이 다루다 보니 굉장히 많은 국가와 단체, 인물이 언급된다. 그중 가장 의아했던 사례는 바로 북한과 자이르(콩고)의 관계다. 세계사를 살펴보면 콩고는 1959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했다. 독립운동을 이끈 인물은 파트리스 루뭄바였고, 루뭄바는 소련과 관계를 돈독히 했다는 이유로 미국과 벨기에 당국에 의해 제거됐다. 루뭄바가 죽은 이후 미국과 벨기에 당국이 내세운 인물은 한때 벨기에군 장교로 복무했던 모부투였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미국이 루뭄바보다 모부투 같은 친미 독재자를 내세웠다고 주장했는데, 어째서 북한과 자이르의 관계가 좋았는지 궁금해졌다. 참고로 모부투는 1980년대 대한민국 대통령이던 전두환과 만나 양국의 친선 관계를 강화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알던 모부투는 친미 독재자이자 전두환과 친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모부투가 이끄는 콩고와 관계를 강화한 것은 의아했다. 북한은 분명 모부투 집권 전후로 루뭄바를 옹호했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1960년대 초 루뭄바를 옹호한 『로동신문』 기사를 북한자료센터에서 읽은 적이 있다.  &nbsp;  또한 북한과 라틴아메리카의 관계도 많이 궁금하다. 1980년대 한국 운동권 사이에서 해적판으로 출판된 북한 자료인 『조국통일전선』에 실린 글을 읽어 본 적이 있다. 해당 책에는 1973년 칠레의 아옌데 정부가 미국의 쿠데타로 전복된 이후 북한이 발표한 성명이 실려 있었다. 참고로 살바도르 아옌데는 1969년 북한과 북베트남을 방문했고, 김일성의 북한을 보고 무상의료에 감탄했다. 칠레와 북한의 관계도 분명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북한과 칠레의 관계는 짧은 기간이지만 분명 돈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쿠데타 이후 피노체트가 집권한 뒤 북한은 어떻게 반응했고, 한국은 칠레를 어떻게 보았을까 하는 문제의식과도 겹친다. 아옌데의 사례가 책에서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또한 북한과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부의 관계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너무 짧게 다뤄진 점도 아쉽다. 이왕 다룰 것이라면 이 부분도 좀 더 자세히 다루었으면 좋겠다.  &nbsp;  그 밖에도 북한이 남태평양의 작은 국가인 피지 같은 나라와 접촉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남북한이 외교 경쟁에서 수많은 나라를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3장에 따르면 1970년대 중후반 소련 외무부 극동 제1부 차장인 미하일 바스마노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계속해서 사회주의 국가들과 외교정책을 조율하려 하지 않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있으며 소련 등 동구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책 168쪽). 이는 북한의 자주외교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을 남긴다. 첫째, 북한이 독자성을 가졌다고 해서 사회주의 진영 자체와 단절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둘째, 비슷한 시기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 중 하나인 동독의 호네커 정부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부와 북한의 관계가 상당히 좋았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까? 즉 사회주의 진영 내부의 연대와 갈등, 그 속에 존재하는 간극과 공통점, 차이점이 궁금할 따름이다.  &nbsp;  5. 맺음말  &nbsp;  오랜만에 재미있는 독서를 했다. 솔직히 쓰고 싶은 내용이 많지만, 분량상의 한계로 다 다루지는 못했다. 이 책은 북한을 소련과 중국의 꼭두각시나 종속국이 아니라 독자성을 가진 국가로 보았다는 점에서 기존 관점보다 진일보한 성격을 지닌다. 한국인들은 흔히 북한을 세계적으로 고립된 나라로 인식하지만, 벤자민 영의 책은 그러한 인식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역사학적으로 부각한다. 사료 활용도 독특하다. 대한민국의 외교 문서를 1차 사료로 활용해 북한 외교사를 재조명했다. 『로동신문』 같은 북한의 1차 자료도 활용하지만, 해당 자료의 보도 내용을 깊이 추적하지는 않는다.  &nbsp;  필자가 보기에 “북한과 제3세계 외교”라는 주제 자체가 너무 큰 것 같다. 한국 대학 역사학과에서 누군가 이런 주제로 석·박사학위논문을 쓰려고 한다면, 지도교수님이 거의 100%의 확률로 “주제가 너무 넓고 시간적 범위도 너무 넓으니 반드시 줄여!”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학위논문으로 북한과 제3세계 자체를 다룬 것은 너무 광범위하지만, 그만큼 역사적으로 다양한 사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책 앞부분에는 ‘한국어판 서문’이 실려 있는데, “북한에서 새롭게 나타난 친러 성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통해 북한은 국제 무대에서 핵으로 무장한 독불장군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대목은 너무 미국 중심의 시각이 아닌가 싶다(책 9쪽). 영의 미국인 정체성은 ‘감사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동물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나는 반려견도 감사의 말에 등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대목은 확실히 미국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책 353쪽). 사족이지만 필자가 보기에 두 대목은 벤자민 영의 미국인 정체성을 보여준 대목이다.  &nbsp;  벤자민 영이 제시한 역사학적 근거와는 별개로 그의 시각에는 솔직히 의아한 부분이 많았지만, 이 책을 많은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책의 옮긴이인 옥창준 선생의 말대로 “지금 이 시기에 북한 대외관계사를 쓸 때는 소련, 중국, 미국, 남한과의 관계망이 아니라 제3세계라는 측면이 반드시 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책 363쪽). 북한을 강대국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바라봐 왔기 때문이다. 벤자민 영의 책이 지닌 장점은 북한과 제3세계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북한이 강대국에 휘둘리는 국가가 아니었음을 역사학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이다. 많은 이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며 긴 서평을 마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5/38/cover150/k4521382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453876</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