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모스크바 붉은광장 (NamGiKim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9779161</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역사에 관심이 많은 30대 청년입니다. 정치적으로 사회주의를 지지합니다. 알라딘에 서평을 올리게 된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네요. 여전히 역사 책을 주로 읽습니다.</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26 Jun 2026 16:01:41 +0900</lastBuildDate><image><title>NamGiKim</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59779161332747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59779161</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NamGiKim</description></image><item><author>NamGiKim</author><category>북한사</category><title>북한은 제3세계 외교의 독자적 행위자였다! - [총, 게릴라 그리고 위대한 지도자 - 북한과 제3세계 관계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9779161/17342050</link><pubDate>Thu, 18 Jun 2026 16: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9779161/173420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8209&TPaperId=173420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5/38/coveroff/k4521382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8209&TPaperId=173420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총, 게릴라 그리고 위대한 지도자 - 북한과 제3세계 관계사</a><br/>벤자민 영 지음, 고자연 외 옮김 / 너머북스 / 2026년 05월<br/></td></tr></table><br/>1. 들어가며  &nbsp;  몇 년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북한이 만든 영상물 하나를 보게 됐다. 영상물의 제목은 ‘백두의 영광’이었고, 외국인이 지은 시라고 소개됐다. 아프리카 기니에서 온 인물이 백두산 천지에 올라 시를 읊었다. 기니에서 온 사람은 기니주체문학사상연구회 회장인 아브톨라이에 디알로였고, 그는 유창한 프랑스어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대한 존경심과 주체사상에 대한 자신의 긍정적인 생각을 ‘시’로 읊었다. 영상 마지막에는 프랑스어로 말하던 기니인이 “김정은 장군 만세!”를 한 번은 프랑스어로, 두 번은 우리말로 외친다. 영상 자체가 매우 희망차 보였고, 별생각 없이 보면 가슴이 웅장해지는 음악이 연속적으로 나왔다. 만약 대다수 한국인이 이 영상을 본다면 상당히 어이가 없을 것이다. 아마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나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영상 자체가 ‘밈(meme)’화될 가능성도 높다.  &nbsp;  한국인 대다수는 그렇게 소비하고 분석하겠지만,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영상을 보며 북한이 이런 영상물을 찍고 편집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됐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영상물이 북한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이를 알려면 결국 북한의 역사, 즉 북한의 제3세계 외교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3년 니제르와 부르키나파소, 말리로 대표되는 아프리카 사헬 지대의 국가들에서 반정부·반서방 봉기가 일어났다. 이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부르키나파소의 젊은 지도자 이브라힘 트라오레였다. 트라오레는 “부르키나파소가 더 이상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지 않아야 한다”라고 주장했고, 현재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nbsp;  이러한 국제정세의 움직임을 두고 일각에서는 미국과 서방 중심의 일극 체제가 끝나고 러시아와 중국, 그 밖의 제3세계 국가들이 중심이 되는 다극화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니제르와 부르키나파소에서 일어난 반서방 쿠데타 과정에서는 그 나라 사람들이 자국 국기와 더불어 두 나라의 깃발을 들고나온 모습이 서방 언론에 포착됐다. 하나는 현재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의 깃발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깃발인 인공기였다.  &nbsp;  여담으로 필자는 한 여행 유튜버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알려진 아프리카의 부룬디를 방문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영상에서 유튜버는 부룬디에서 가장 좋은 대학의 도서관에 갔고, 한국 관련 책을 찾다가 결국 김일성 저작집을 소개받았다. 한국 사람들이 이름조차 모르는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Korea’라고 했을 때 북한의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인 것 같다. 반정부 시위와 봉기, 쿠데타에서 북한의 깃발이 등장한 것이 과연 우연일까? 또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알려진 부룬디의 대학 도서관에서 한국인 유튜버가 소개받은 ‘Korea’ 관련 서적이 김일성 저작집인 것 역시 단순한 우연일까? 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결국 이 부분은 북한의 역사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제부터 이야기해 보겠다.  &nbsp;  2. 책 내용과 1960~70년대 북한 외교의 독자성  &nbsp;  실제로 북한은 냉전 시기 제3세계라는 범주 속에서 외교적 독자성을 가진 나라였다. 제3세계라는 범주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묶을 수 있는 매우 넓은 개념이다. 제3세계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북아메리카·남아메리카의 국가들을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냉전기 사회주의 국가임을 분명히 했고 사회주의 진영을 강력히 강조했지만, 그렇다고 제3세계 국가들과의 관계에 무관심하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북한은 냉전 시기 고립되지 않았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벤자민 영(Benjamin Young)은 북한의 제3세계 외교사를 주제로 논문을 썼다. 영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의 북한 제3세계 외교사를 연구했으며, 북한이 전혀 고립되지 않은 국가였음을 역사학적으로 보여줬다. 그의 논문은 2021년 영미권에서 먼저 출간됐고, 2026년에는 한국어로 번역됐다.  &nbsp;  책은 1950년대 북한이 전후 재건을 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은 한국전쟁의 여파와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폐허가 된 국토를 재건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동시에 1955년 반둥 회의를 통해 점차 태동하기 시작한 제3세계와 비동맹 운동에도 관심을 가졌다. 북한은 인도네시아의 국부로 불린 수카르노와의 관계를 강화했고, 1965년 미국 CIA가 주도한 쿠데타로 그가 축출될 때까지 북한과 인도네시아의 관계는 돈독했다. 1960년대 북한은 반미 투쟁의 최전선에 있던 라틴아메리카의 쿠바와 동남아시아의 베트남과도 관계를 강화했다.  &nbsp;  쿠바는 1898년부터 대략 60년간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고, 1961년 미국 존 F. 케네디 정부의 침공을 받았다. 이후 소련과의 관계를 강화했고, 1962년에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해 제3차 세계대전이 임박하기도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국은 쿠바에 대한 제재와 봉쇄를 끊임없이 이어 나갔는데, 북한은 사회주의 형제국인 쿠바를 도와 미국에 맞섰다. 북한과 쿠바의 관계는 그 이후에도 우호적으로 유지됐다. 피델 카스트로가 1986년 북한을 공식 방문했다는 것은 양국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베트남은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았으며, 전쟁 이후 프랑스가 다시 침략했다. 베트남의 국부로 불린 호찌민은 혁명 군대를 규합해 프랑스에 맞서 싸웠고,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100년간 지속된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종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미국이 베트남을 자의적으로 분단했고, 베트남은 미국의 분단과 침공으로 전쟁을 치르게 됐다. 당시 북한은 미국의 베트남 전쟁을 한반도의 전쟁 위기와 연결해 보았고, 북베트남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을 도왔다.   &nbsp;  북한의 베트남 지원은 한국전쟁과 연결해서 보아야 북한이 왜 베트남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 시기 북한은 무차별 폭격을 겪었고, 대공 방어망이 전무해 국토가 사실상 달 표면과 같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파괴됐다. 북한 인구의 20%가 미군 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추정이 있을 정도니, 북한이 전쟁에서 겪은 고통은 결코 작지 않았다. 1964년 통킹만 사건 당일부터 1972년 크리스마스까지 북베트남은 미군의 무차별 폭격을 받았다. 한국전쟁 때와 달리 북베트남에는 중국과 특히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은 최신식 대공 무기가 존재했지만, 북베트남 전역 또한 초토화됐다. 북베트남에는 100만 톤 이상의 폭탄이 투하됐고, 1972년 제2차 라인배커 작전만 보아도 미군이 해당 작전에서 사용한 폭탄의 폭발력이 히로시마 원자폭탄 5개와 맞먹는다고 하니, 북베트남 사람들이 겪었을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한국전쟁에서의 폭격 경험과 미국의 베트남 분단 및 침공 등은 북한이 베트남을 돕게 된 가장 큰 동기였을지도 모른다. 북베트남 측이 북한의 도움을 극찬했던 것을 보면, 북한이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책의 내용을 인용하겠다.  &nbsp;  “김일성과 회담 후, 레 탄 응이는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북한 지도자들은 매우 솔직하고 개방적이었으며, 우리와 완전한 의견 일치를 보였고, 그들의 지원은 매우 직접적이고 정직했고 이기적이지 않았다." 주북한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는 북한 정부의 동원 사업이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보았지만, 레 탄 응이는 북한을 철저히 '이타적'이며 미국과 싸우는 베트남 투쟁을 전적으로 돕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김일성은 베트남 지원을 통해 제3세계에서 자신의 혁명적 위상을 강화하려 했다. 북베트남 지도부가 김일성의 지상군 파병 및 지하터널 건설 전문가 지원 제안을 왜 수락하지 않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1965년 가을, 북한은 중국 철도를 이용해 대량의 건설 자재, 공구, 자동차를 북베트남으로 보냈다. 이 지원은 북한 대외경제관리국이 주북한 중국대사관의 협조를 받아 조직했다. 중국 정부는 때때로 철도 사용 요금을 면제해 주기도 했으나, 북베트남에게 운송비 부담을 요구하기도 했다. 북한은 이 자재들을 북베트남에 아무런 대가 없이 제공했다. 그러므로 북한은 중국이 북베트남의 반미 투쟁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는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1967년 소련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지도부는 중국이 베트남 지원에 충분히 협력하지 않는다고 비공식적으로 비판했다.”  &nbsp;  벤자민 영, 옥창준 외 옮김, 『총, 게릴라 그리고 위대한 지도자: 북한과 제3세계 관계사』, 너머북스, 2026, 80~81쪽.  &nbsp;  1960년대 북한은 자신들과 더불어 쿠바와 베트남 같은 나라들이 혁명적 반제국주의 투쟁의 최전선에 있으며, 이들이 반제국주의 연대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김일성은 전 세계적인 반미·반제국주의 연대를 구상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1960년대 내내 고군분투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북한이 사회주의 진영 안에 있으면서도 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들과 달리 소련에 종속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북한은 중국 및 소련과의 동맹 관계와 이들과의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련이나 중국에 일방적으로 종속된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앞서 언급한 1960년대 말 김일성과 북한의 세계관이 보여주듯이, 반미 투쟁의 최선봉은 실제로 미국의 침공과 억압을 받고 있는 나라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련과 중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으면서 이 나라들이 단결해 서구의 지배를 거부해야 한다는 북한의 세계관은 수정주의와 교조주의, 즉 소련과 중국의 편향을 반대한다는 주체사상 이론과도 연결된다.  &nbsp;  북한의 이러한 인식은 1970년대 들어 더욱 확대됐으며, 이른바 쁠럭불가담 운동, 즉 비동맹 운동 참여를 통해 한층 확장됐다. 이에 대해 저자인 벤자민 영은 북한이 1960년대의 실질적으로 대가 없는 원조에서 벗어나 1970년대에는 자국의 이익과 희생 및 지원에 대한 대가를 원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전자든 후자든 북한이 많은 나라에 지원과 원조를 제공한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북한에 대한 대다수 사람의 인식과는 달리, 이 시기 북한은 전후 재건에 성공하고 사회주의를 완성해 나가는 국가라는 이미지가 매우 강했다. 실제로 북한은 1980년대 이전까지 한국보다 잘사는 나라였고, 동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사는 나라였다. 그런 맥락에서 북한은 이러한 국력과 힘을 바탕으로 제3세계의 혁명과 사회주의 전파를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믿었다.  &nbsp;  1970년대 북한은 비동맹 운동 가입을 전후해 박정희 정부와의 경쟁 속에서 수많은 국가와 외교 관계를 맺었고, 1975년 유고슬라비아의 도움으로 비동맹 운동에 가입했다. 한국이 가입하지 못한 것과 달리 북한은 가입에 성공했고, 이를 자국 외교의 거대한 성과라고 주장했다. 필자의 개인적 견해를 덧붙이자면, 1970년대 북한 외교의 핵심 성과는 유고슬라비아와의 관계 개선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의 책에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지만, 북한은 1960년대 유고슬라비아를 현대 수정주의 비판의 맥락에서 강력히 규탄하고 비판했다. 그러다 1970년대에 들어 데탕트를 전후해 양국 관계를 발전시켰다. 김일성은 비동맹운동 가입 2개월 전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구성하던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를 방문해 티토를 만났고, 티토의 도움을 받아 비동맹운동에 가입했다. 이후에도 양국 관계는 비동맹운동에서의 협력 속에서 발전했다. 1977년 8월 티토는 소련과 중국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평양을 찾아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북한은 1970년대 쁠럭불가담 운동을 반제혁명의 역량으로 인식했고, 이를 위해 유고슬라비아와 접촉해 반미·반제 연대의 장으로 활용했다. 북한과 유고슬라비아의 관계에 대해서는 필자가 준비 중인 석사학위논문에서 더 자세히 다루고 있다.  &nbsp;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북한이 외교적 확장에만 신경 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북한은 미국과 서방에 맞선 국가들에 실질적인 군사 원조를 제공했다. 제1차 오일쇼크를 촉발한 제4차 중동전쟁에서 북한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 이집트의 사다트 정권을 지원했고, 군사고문단을 비롯해 전투기 조종사도 시나이반도에 파병했다. 1973년에만 92명을 파병했다고 한다. 아직 이 부분은 공개되지 않은 자료가 많기에 더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1970년대 중후반까지 북한 군인들이 현지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북한의 베트남 지원도 2000년대에 들어 밝혀졌다. 또한 북한은 1970년대 중반 앙골라에서 내전이 발생하자 앙골라해방인민운동(MPLA)을 도왔고, 군사적으로도 적지 않은 지원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쿠바와 소련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앙골라에 파병한 나라가 북한이라는 주장도 있을 정도다.  &nbsp;  따라서 1970년대는 북한이 반미·반제 외교의 장을 아프리카 대륙으로 더욱 확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북한의 대아프리카 외교에는 당연히 박정희 정부의 해외 영향력을 약화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북한은 이 시기 앙골라, 이집트, 리비아, 마다가스카르, 에티오피아, 자이르(콩고의 옛 이름), 토고, 모리셔스, 라이베리아, 탄자니아 등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에 군사 지원을 제공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1970년대 북한은 대아프리카 외교의 정점을 찍었고, 이와 같은 역사적 흐름은 2020년대 니제르와 부르키나파소의 반서방 쿠데타 및 봉기에서도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부룬디의 최고 대학 도서관에서 김일성 저작집이 ‘Korea’ 관련 책으로 소개된 것도 이 맥락에서 연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nbsp;  심지어 북한은 일본의 적군파와 미국의 흑표당, 그 밖의 제1세계 혁명 및 진보운동 조직과도 접촉했다. 솔직히 북한과 흑표당의 접촉은 매우 흥미롭다. 일본 적군파의 평양행은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굿뉴스’를 통해 회자되면서 사람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졌지만, 흑표당은 여전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여담으로 흑표당의 영어 이름인 블랙팬서(Black Panther)는 미국 마블 영화 시리즈의 블랙팬서에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역사인 것 같다. 정리하자면 북한은 1970년대에 제1세계와 제2세계, 제3세계 모두와 접촉했고, 특히 제3세계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외교를 확장했다. 알바니아의 엔베르 호자와 달리 고립되지 않았던 셈이다.  &nbsp;  3. 1980년대 북한에 대한 벤자민 영의 시각과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 그리고 사소한 오류  &nbsp;  저자 벤자민 영은 1980년대에 들어 북한 외교가 좀 더 폭력적이고 부패했으며, 불법적·침략적인 성격으로 변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책을 끝까지 읽어 본 결과 어떤 맥락에서 말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크게 동의하지 않을 뿐이다. 영에 따르면 북한은 1980년대 남한과의 경쟁 속에서 이러한 노선을 걸었다고 한다. 저자는 1983년 버마 테러 사건과 1987년 KAL기 폭파 사건 등을 그 사례로 든다. 또한 북한이 에티오피아의 독재자 멩기스투 정권과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정권, 우간다의 오보테 정권을 도와 이들 군대가 폭력적으로 변하는 데 관여했다고 설명한다(책 230~231쪽, 239쪽, 242~243쪽). 아무튼 이 시기 북한은 점차 경제적 위기를 겪었고,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대응해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면서 경제적으로 더욱 어려워졌다고 한다. 본문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 시기 남한 운동권 조직 전대협의 대표 임수경이 평양을 방문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nbsp;  저자는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둘러싸고 북한 정권과 참가자들 사이에 예상보다 큰 입장 충돌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1990년대 초 다른 제3세계 국가들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지만, 북한은 개혁과 개방을 하지 않았고, 내부로 눈을 돌려 군사 개발, 특히 핵무기 개발에 집중했다고 말한다. 그 결과 1990년대 남한은 농촌 개발 사업에 상당한 투자를 하면서 박정희의 새마을운동 모델을 아프리카 국가에 수출한 반면, 북한은 관련 활동을 대부분 중단해 사실상 한국에 아프리카 외교 경쟁에서 패배했다는 것, 그리고 반식민주의 발전 모델을 제시하던 국가에서 결국 생존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국수주의 군주국이 되었다는 것이 아마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 아닐까 싶다(책 268쪽). 제5장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nbsp;  이와 같은 저자의 시각은 필자가 보기에 지나치게 무리하며, 역사학적으로도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1983년 버마 테러 사건과 1987년 KAL기 폭파 사건은 아직도 많은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저자 스스로 밝혔듯이 “김정일이 랑군 폭탄테러에 직접 연루되었다는 결정적인 문서 증거는 없다”(책 202쪽). 그런 상황에서 김정일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과정에 버마 사건을 연결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심히 의심된다. 또한 KAL기 폭파 사건은 버마 사건보다도 논란이 더 많은 사건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작설도 제법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이를 단정적으로 북한의 테러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적절할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이것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2010년에 일어난 천안함 사건의 경우 한국에서는 북한의 소행으로 설명하지만 영문 위키백과는 개요에서 한국과 북한 양측의 의견을 밝혔다. 또한 교전 세력 부분에서도 ‘북한 추정’이라고만 표기했다. 예전에는 ‘알 수 없음’으로 표기된 것을 본 적이 있다. 즉 사건의 진상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은 역사학적으로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중서라면 모를까, 자신의 역사학 박사학위논문을 기반으로 한 단행본에서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서술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 논리적 연결이 다소 무리했다는 이야기다.  &nbsp;  앞서 언급한 1980년대의 아프리카 지원도 그러하다. 책에서도 북한 군대가 몇몇 학살에 가담했다는 문헌적 혹은 현장 증언에 입각한 증거를 밝히지는 않았으며, 영국 등 서방의 추정을 지나치게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가운데 읽으면서 가장 황당했던 것은 북한이 폴포트의 크메르루주 학살을 지원했다는 대목이다. 북한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이 폴포트 정권을 승인한 것과 학살을 지원한 것은 매우 다른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김일성이 폴포트를 지지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전대미문의 대학살을 북한의 지지와 연결해 단정적으로 서술한 것은 잘못된 서술이다(책 247쪽). 이 부분은 캄보디아의 역사를 알아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 전쟁 시기 캄보디아에서는 1970년 닉슨 정부의 침공으로 론놀과 크메르루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고, 전쟁 과정에서 특히 미군의 무차별 폭격과 그 여파로 50만 명이 죽었다. 이 때문에 폴 포트의 킬링필드 이전에 이미 미국이 제1차 킬링필드를 자행했다고 보는 역사적 시각도 존재한다. 이 시기 시아누크는 크메르루주와 협력해 론놀을 무너뜨렸고, 결국 1975년 4월 중준 크메르루주가 집권했다.   &nbsp;  폴포트의 크메르루주는 말 그대로 캄보디아를 지옥으로 몰고 갔고, 제2차 킬링필드로 150만 명이 죽었다. 1978년 베트남 공산당의 군대가 크메르루주 정권을 전복할 때까지 북한과 폴포트의 관계는 지속됐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점은 당시 많은 이가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에서는 필자의 주관적 견해를 좀 더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실제로 노엄 촘스키 같은 인물도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폴 포트를 옹호한 적이 있었다. 베트남 전쟁을 연구했고 현재도 미국의 진보운동 진영에 속하는 학자인 가레스 포터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리영희 교수가 문화대혁명에 대해 초기에 제한된 정보로 무리하게 미화했던 맥락과 비슷하다. 이 학자들은 나중에 실체가 알려진 뒤 비판하게 됐다. 북한은 초기에 폴 포트 정권과 접촉했다가 이후에는 접촉을 중단하고 시아누크와의 관계를 강조했다. 시아누크 역시 초기에 협력했으나 이후 크메르루주와 갈등하게 됐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북한도 그러지 않았나 싶다. 1978년 이후 폴 포트와 크메르루주 관련 언급이 『로동신문』 등 북한 매체에서 사라진 것을 보면 아마 그럴듯하다. 이런 추정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영이 설명한 크메르루주와의 관계는 사실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nbsp;  또한 제3장에 등장하는 베네수엘라 공산주의자이자 시인인 라메다의 사례도 관련 자료를 직접 확인하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국제앰네스티의 이야기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가 싶다. 본문에서는 라메다가 심한 구타를 당했다고 언급하며 수용소의 끔찍한 실상을 강조한다(책 137쪽). 이 역시 교차 검증이 필요한 자료라고 본다. 예를 들어 책에서 김일성을 직접 만난 인물로 언급되는 루이제 린저는 자신의 저서에서 북한 교화소를 ‘창살 없는 교화소’라고 표현했다. 적절한 사례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2010년대 북한에서 교화소에 수감된 미국인 매튜 토드 밀러는 구타가 없었다고 말했고, 비슷한 시기 선교 활동을 하다가 체포돼 교화소에 수감된 케네스 배 역시 노동은 힘들었지만 구타와 폭력은 없었다고 했다. 물론 이러한 사례도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부분에는 여러 논란이 있는 만큼 영의 인용이 적절했는지는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하다.  &nbsp;  마지막으로 저자의 사소한 실수도 언급하겠다. 제3장에서 저자는 북한이 비동맹운동을 외교적 도구로 활용한 사실을 언급하며 김일성과 티토가 1977년에 만난 일을 짧게 다루고 있다. 본문에는 “1977년 9월, 티토가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났다”라고 나오는데, 엄밀히 말해 날짜가 틀렸다(책 170쪽). 티토가 북한을 방문한 기간은 8월 24일부터 30일까지다. 벤자민 영이 인용한 출처는 필자도 읽어 본 기밀 해제된 루마니아 대사관 문서다. 이 문서는 윌슨센터 디지털 아카이브에 있다. 즉 9월은 루마니아 대사관이 티토의 북한 방문을 보고한 시점이지, 티토가 북한을 방문한 시점은 아니다. 티토는 평양 방문 이후인 그해 9월 베이징을 방문했다. 북한자료센터에서 관련 자료를 일일이 찾아봤기에 이 부분은 확실하다. 물론 큰 실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역사책에서는 세부 사항이 중요하다.  &nbsp;  4. 추가적으로 궁금한 점  &nbsp;  앞에서 책의 내용 가운데 동의하기 어려운 점을 길게 이야기했다. 물론 이러한 지적을 한다고 해서 필자가 이 책의 가치를 전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게 읽었기에 이렇게 긴 서평을 쓰게 됐다. 읽으면서 궁금증이 생긴 부분도 많았다. 북한과 제3세계의 외교를 깊이 다루다 보니 굉장히 많은 국가와 단체, 인물이 언급된다. 그중 가장 의아했던 사례는 바로 북한과 자이르(콩고)의 관계다. 세계사를 살펴보면 콩고는 1959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했다. 독립운동을 이끈 인물은 파트리스 루뭄바였고, 루뭄바는 소련과 관계를 돈독히 했다는 이유로 미국과 벨기에 당국에 의해 제거됐다. 루뭄바가 죽은 이후 미국과 벨기에 당국이 내세운 인물은 한때 벨기에군 장교로 복무했던 모부투였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미국이 루뭄바보다 모부투 같은 친미 독재자를 내세웠다고 주장했는데, 어째서 북한과 자이르의 관계가 좋았는지 궁금해졌다. 참고로 모부투는 1980년대 대한민국 대통령이던 전두환과 만나 양국의 친선 관계를 강화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알던 모부투는 친미 독재자이자 전두환과 친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모부투가 이끄는 콩고와 관계를 강화한 것은 의아했다. 북한은 분명 모부투 집권 전후로 루뭄바를 옹호했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1960년대 초 루뭄바를 옹호한 『로동신문』 기사를 북한자료센터에서 읽은 적이 있다.  &nbsp;  또한 북한과 라틴아메리카의 관계도 많이 궁금하다. 1980년대 한국 운동권 사이에서 해적판으로 출판된 북한 자료인 『조국통일전선』에 실린 글을 읽어 본 적이 있다. 해당 책에는 1973년 칠레의 아옌데 정부가 미국의 쿠데타로 전복된 이후 북한이 발표한 성명이 실려 있었다. 참고로 살바도르 아옌데는 1969년 북한과 북베트남을 방문했고, 김일성의 북한을 보고 무상의료에 감탄했다. 칠레와 북한의 관계도 분명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북한과 칠레의 관계는 짧은 기간이지만 분명 돈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쿠데타 이후 피노체트가 집권한 뒤 북한은 어떻게 반응했고, 한국은 칠레를 어떻게 보았을까 하는 문제의식과도 겹친다. 아옌데의 사례가 책에서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또한 북한과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부의 관계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너무 짧게 다뤄진 점도 아쉽다. 이왕 다룰 것이라면 이 부분도 좀 더 자세히 다루었으면 좋겠다.  &nbsp;  그 밖에도 북한이 남태평양의 작은 국가인 피지 같은 나라와 접촉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남북한이 외교 경쟁에서 수많은 나라를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3장에 따르면 1970년대 중후반 소련 외무부 극동 제1부 차장인 미하일 바스마노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계속해서 사회주의 국가들과 외교정책을 조율하려 하지 않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있으며 소련 등 동구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책 168쪽). 이는 북한의 자주외교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을 남긴다. 첫째, 북한이 독자성을 가졌다고 해서 사회주의 진영 자체와 단절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둘째, 비슷한 시기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 중 하나인 동독의 호네커 정부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부와 북한의 관계가 상당히 좋았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까? 즉 사회주의 진영 내부의 연대와 갈등, 그 속에 존재하는 간극과 공통점, 차이점이 궁금할 따름이다.  &nbsp;  5. 맺음말  &nbsp;  오랜만에 재미있는 독서를 했다. 솔직히 쓰고 싶은 내용이 많지만, 분량상의 한계로 다 다루지는 못했다. 이 책은 북한을 소련과 중국의 꼭두각시나 종속국이 아니라 독자성을 가진 국가로 보았다는 점에서 기존 관점보다 진일보한 성격을 지닌다. 한국인들은 흔히 북한을 세계적으로 고립된 나라로 인식하지만, 벤자민 영의 책은 그러한 인식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역사학적으로 부각한다. 사료 활용도 독특하다. 대한민국의 외교 문서를 1차 사료로 활용해 북한 외교사를 재조명했다. 『로동신문』 같은 북한의 1차 자료도 활용하지만, 해당 자료의 보도 내용을 깊이 추적하지는 않는다.  &nbsp;  필자가 보기에 “북한과 제3세계 외교”라는 주제 자체가 너무 큰 것 같다. 한국 대학 역사학과에서 누군가 이런 주제로 석·박사학위논문을 쓰려고 한다면, 지도교수님이 거의 100%의 확률로 “주제가 너무 넓고 시간적 범위도 너무 넓으니 반드시 줄여!”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학위논문으로 북한과 제3세계 자체를 다룬 것은 너무 광범위하지만, 그만큼 역사적으로 다양한 사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책 앞부분에는 ‘한국어판 서문’이 실려 있는데, “북한에서 새롭게 나타난 친러 성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통해 북한은 국제 무대에서 핵으로 무장한 독불장군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대목은 너무 미국 중심의 시각이 아닌가 싶다(책 9쪽). 영의 미국인 정체성은 ‘감사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동물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나는 반려견도 감사의 말에 등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대목은 확실히 미국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책 353쪽). 사족이지만 필자가 보기에 두 대목은 벤자민 영의 미국인 정체성을 보여준 대목이다.  &nbsp;  벤자민 영이 제시한 역사학적 근거와는 별개로 그의 시각에는 솔직히 의아한 부분이 많았지만, 이 책을 많은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책의 옮긴이인 옥창준 선생의 말대로 “지금 이 시기에 북한 대외관계사를 쓸 때는 소련, 중국, 미국, 남한과의 관계망이 아니라 제3세계라는 측면이 반드시 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책 363쪽). 북한을 강대국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바라봐 왔기 때문이다. 벤자민 영의 책이 지닌 장점은 북한과 제3세계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북한이 강대국에 휘둘리는 국가가 아니었음을 역사학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이다. 많은 이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며 긴 서평을 마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5/38/cover150/k4521382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453876</link></image></item><item><author>NamGiKim</author><category>우크라이나 까는 곳</category><title>루소포비아 서평: 서구 사회 곳곳에 스며든 러시아 혐오를 분석한 명저 - [루소 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9779161/17288074</link><pubDate>Wed, 20 May 2026 20: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9779161/172880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836688&TPaperId=172880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788/97/coveroff/k11283668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836688&TPaperId=172880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루소 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a><br/>기 메탕 지음, 김창진.강성희 옮김 / 가을의아침 / 2022년 01월<br/></td></tr></table><br/>1. 들어가며  &nbsp;  러시아.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나라다. 동쪽 끝과 서쪽 끝의 시간 차가 11시간이나 차이가 나는 나라며,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필자는 러시아를 두 번이나 여행했다. 한번은 군대에 입대하기 전인 2016년에 했고, 다른 한 번은 2025년 12월 말과 올해 1월 초였다. 2026년 새해를 수도 모스크바에서 맞이했다. 필자가 러시아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것은 10대 시절 제2차 세계대전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도 있지만, 대학시절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을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러시아의 역사를 공부하게 됐다. 그러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고, 이 전쟁은 필자가 러시아에 대해 다시 보게 되는 기회를 제공했다.  &nbsp;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필자는 한국과 서구 언론이 러시아에 대해 어떻게 악마화하는지를 제대로 알게 됐다. 러우전쟁 6개월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하던 미국이 정작 전쟁에서 패배한 지 6개월 만에 러시아에 맞서 제재를 하는 기이하고 황당무계한 상황은 필자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이 20세기에 저지른 수많은 전쟁들 속에서 미국이 얼마나 많이 전쟁에 개입하여 인명피해를 초래했는지를 필자는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미국이 러시아를 제재할 권리가 있는지가 의심이 됐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 주장하는 반러 내러티브를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10대 시절 좋아하는 게임을 통해 반러 내러티브에 큰 문제의식을 못 느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생각을 나중에서야 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책 하나를 읽게 됐다. 바로 기 메탕의 저서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이다.  &nbsp;  우선 필자가 즐기던 게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nbsp;  2. 루소포비아와 FPS 게임 Call of Duty  &nbsp;  “우리 지도자라는 작자들이 우리를 서방에 팔아넘겼다. 우리의 문화...우리의 경제...우리의 명예를 파괴했다. 우리의 피가 우리의 땅에 흘렀다. 내 피가...저들의 손에. 저들은 침략자다. 모든 미군과 영국군은 당장 러시아를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것이다.”  &nbsp;  “러시아는 유럽 전체를 정복하게 될 것이다. 설령 그게 잿더미 위에 서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나는 발사 코드를 원한다. 대통령.”  &nbsp;  위의 대사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FPS 게임인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 시리즈(Call of Duty: Modern Warfare Series)에서 악역이 한 대사다. 첫 번째 대사는 2007년에 나온 모던워페어 1의 최종 보스인 이므란 자카예프(Imran Zakhaev)가 한 대사고, 두 번째 대사는 모던워페어 3의 최종 보스인 블라디미르 마카로프(Vladimir Makarov)가 한 대사다. 대사를 보면 알겠지만, 최종 보스들의 국적은 두말할 것도 없이 러시아다. 게임 상에서 묘사된 러시아는 미국과 영국을 싫어하는 존재고, 또 유럽 전체를 피로 물들여서라도 정복하려고 시도하는 주체다. 세계적인 게임회사인 인피니티 워드(Infinity Ward)가 만든 이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장의 누적 판매량을 자랑했다.  &nbsp;  이처럼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게임이지만, 게임 속에는 서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편견이 거리낌 없이 들어가 있다. 게임 상에서 항상 주인공은 영국의 SAS 특수부대이거나 미정규군 아니면 레인저 대대나 델타포스와 같은 미군 특수부대다. 이들이 상대하는 적은 당연히 침략적이고 호전적인 러시아군이며, 러시아군은 자국 내에서도 주민들을 함부로 학살하고 괴롭힌다. 그리고 전쟁광적인 지도자인 이므란 자카예프를 지지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심지어 2009년 작인 모던워페어 2의 경우, 앞서 언급한 블라디미르 마카로프가 모스크바 공항에서 미국인으로 위장한 뒤 미국제 무기로 민간인 학살 테러를 벌여, 러시아가 미국에게 선전포고하고 미국 동부 지역을 침략하도록 만드는 장본인으로 그려진다. 게임에서 주인공이 있는 레인저 대대의 목표는 러시아가 침공하여 점령한 워싱턴을 해방하는 것이다. 게임상에서 워싱턴을 러시아군으로부터 해방하고 나서 나오는 대사는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에 대해 얼마나 적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해당 대사를 보자.  &nbsp;  “레인저 병사: 우리는 언제 모스크바로 쳐들어갑니까?  &nbsp;  던 상병: 당장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도착하면 거길 불태워버릴 거다.”  &nbsp;  이처럼 게임 상에서 묘사되는 러시아는 서방이 타도해야 할 매우 나쁜 존재다. 여담이지만, 사실 2007년과 2009년 그리고 2011년에 나온 모던워페어 시리즈는 필자가 10대와 20대 시절 정말 열심히 즐겼던 FPS 게임이었다. 필자 또한 어린 시절 이 게임의 캠페인 시리즈를 수도 없이 플레이했고,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멀티플레이도 신물이 나도록 했다. 캠페인 시리즈의 난이도는 플레이어가 쉬움, 보통, 어려움 그리고 가장 고난이도인 베테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필자는 20대 초반에 해당 시리즈들을 전부 베테랑 난이도로 클리어했다. 그 당시 콜오브듀티를 즐기던 필자는 게임을 하며 이런 루소포비아적인 논리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 시리즈 뿐만 아니라, 2010년 미소냉전을 다룬 FPS 게임인 콜오브듀티 블랙옵스(Call of Duty Black Ops) 또한, 여지없이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에 대해 지극히 악마화된 프레임으로 해석한다. 게임 상에서 소련 측 최종 보스인 니키타 드라고비치(Nikita Dragovich)에 대해 레즈노프(Reznov)라는 주인공 알렉스 메이슨(Alex Mason)이 만든 환영 속 존재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다.  &nbsp;  “드라고비치는 서방 세계에 대한 공격을 계획하고 있어. 그를 반드시 막아야 해! 메이슨.”  &nbsp;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 시리즈와 블랙옵스는 미국에서 만든 게임이다. 사람들은 이 게임을 아무런 생각 없이 즐긴다. 물론 필자 또한 이 게임들을 수도 없이 즐겼다. 그러나 나중에 공부하면서 이와 같은 게임에 들어간 내용들이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편협하고 왜곡으로 점철된 내러티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러시아에 대해 루소포비아(Russophobia)적 시각에서 매체를 만들어 내고, 또 편견을 조장하는 존재는 누구일까? 바로 서구 사회다. 서구 사회는 오랜 시간 동안 러시아에 대해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이와 같이 서구의 뿌리 깊은 러시아에 대한 혐오와 편견 그리고 위선을 분석한 책이 바로 메탕(Guy Mettan)의 저서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이다. 게임에 대한 얘기가 길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의 주제인 루소포비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nbsp;  3.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루소포비아 그리고 한국  &nbsp;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정부가 특수군사작전을 개시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물론 전면전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보게 되는 지점들이 분명 있다. 그러나 이 전쟁의 본질은 단순히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것에 있지 않았다. 미국과 서방 사회는 2013년 푸틴과 친한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코비치(Victor Yanukovych)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유로마이단(Euromaidan) 시위를 조장했고, 결과적으로 야누코비치 정권을 전복하고 포로셴코(Poroshenko)가 중심이 된 친서방 정권을 만들었다. 러시아 정부는 이 과정에서 대다수 주민이 러시아 정체성을 가진 크림 반도를 주민투표를 통해 합병했다. 포로셴코 정권은 정체성이 러시아계인 동부 우크라이나에서 자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전쟁을 개시했고, 이것이 바로 돈바스 내전(Donbass Civil War)이었다.  &nbsp;  유로마이단 시위 당시 미국은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극우세력들을 지원했고, 돈바스 내전 시기에도 네오나치 집단을 정규군대로 양성했다. 이게 바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군대인 아조프 대대(Azov Battalion)의 시작이었고, 이들의 전신은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방화사건을 일으켜, 민간인 50명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민간인 학살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의 학살은 동부에서 8년간 지속되었고, 무려 15,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포로셴코 이후 집권한 젤렌스키(Zelensky) 또한, 돈바스에서의 이런 잔혹한 전쟁을 진행했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러시아와 약속한 민스크 협정을 위반하며 돈바스에 여러 차례 포격을 날렸다. 이해영 교수가 집필한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에 따르면, “2022년 2월 16일부터 돈바스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이 시작됐다. 2월 16일 509회의 정전 위반과 316회의 폭발음이 있었다. 2월 17일부터 22일까지의 기록을 보면, 17일에는 870회의 정전 위반, 654회 폭발음, 18일 1,566회 정전 위반, 1,413회 폭발음, 19~20일 3,231회 정전 위반, 2,026회 폭발음, 21일 1,927회 정전 위반, 1,481회 폭발음, 22일 1,710회 정전 위반, 1,420회 폭발음이 기록됐다.” 이와 같은 통계는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도발했다는 근거 중 하나다. 이와 관련된 내용들은 이해영 교수의 저서를 참고하면 좋다.  &nbsp;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서방 사회는 러시아에 대한 비난의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침공한 날 당일부터 한국과 미국 그리고 서유럽의 언론에서는 러시아의 폭력성과 공포성을 자극하는 기사들을 도배되기 시작했다. 시작 2~3일도 안 되어 러시아와 푸틴을 비난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시위들이 열렸다. 한국에서도 열렸다. 한국에서는 정의당·녹색당·노동당과 같은 진보 계열 단체들이 시위를 주도했다. 페미니스트 운동 단체, 전쟁없는 세상과 같은 평화주의 단체, 심지어 한국의 독립운동을 기억하는 흥사단과 같은 단체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동물권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논리는 매우 단순했다. “러시아는 침략자니까 나쁘고, 침략당한 우크라이나는 피해자라는 것”이다. 즉, 이 사건이 왜 일어났고, 왜 이런 극단적 상황으로 이어졌으며, 자신들이 응원하는 우크라이나의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보지 않으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기 메탕의 저서를 옮긴이가 ‘옮긴이의 말’에 쓴 다음과 같은 내용은 매우 공감된다.  &nbsp;  “한국에서 러시아는 과장 과소평가되고, 왜곡된 이미지를 가진 나라의 하나다. 러시아를 여전히 '소련'과 동일시하는 기성세대가 다수이다. 냉전 체제 하에서 한국전쟁의 경험과 남북분단체제의 지속, 그리고 지속적인 반공 교육의 효과일 것이다. 압도적으로 서구 담론의 영향을 받는 언론인과 지식인, 정치인, 외교관의 대다수는 러시아가 주요한 국제정치 행위자가 아니거나 국제정세의 안정을 해치는 나라로 여긴다. 예컨대, 영미권과 서유럽에서 나오는 프로파간다성 정보가 의심 없이 진실로 여겨지고 러시아에서 나오는 사실 발표가 오히려 프로파간다로 치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서구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자주 그런 상황이 지속되어 왔는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한국이 여전히 유아적인 세계 인식, 국가이익 개념에 대한 무지라고 할 정도로 편견의 장벽에 갇힌 나라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모스크바에 대한 서울의 태도이다. 서구가 조장한 러시아 혐오증에 자신도 모르게 오랫동안 중독된 상태로 지내온 탓일 것이다. 이런 중독증은 이른바 보수우익 인사들만이 아니라 진보를 자처하는 자유주의자들의 경우에도 심하게 나타난다. 여기에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현상유지 정책을 선호하고 여전히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적극적으로 알리는데 소극성을 보이는 러시아 당국의 태도 또한 한몫하고 있다.”  &nbsp;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12~13쪽.  &nbsp;  옮긴이의 말처럼 한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러시아에 대해 이런 편견에 빠져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러시아에 대해, 그리고 서구가 퍼뜨린 러시아에 대한 왜곡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사회적 영향으로 한국 사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구의 반러시아 프로파간다가 손쉽게 먹히는 풍토가 더욱 강화됐다. 박근혜 탄핵 정국을 통해 등장한 한국의 문재인 정권은 집권 말기, 서방을 따라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했고, 이후 탄생한 윤석열 정권은 아예 대놓고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K-9 자주포와 같은 무기들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 무기들은 우크라이나 군대가 러시아군을 죽이는 데 이용되었다. 만약 윤석열이 비상계엄으로 탄핵되지 않았다면,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을 빌미로 한국의 군대를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었다면, 남북한은 아마도 우크라이나에서 대리 전쟁을 치렀을 것이다. ‘월드리딩’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박상후의 말처럼, “2024년 윤석열 탄핵안 가결로 인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파병하지 않게 된 것은 천운”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nbsp;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한국의 진보들 또한, 러시아에 대한 편견이 강하다. 지난 2025년 진보단체 전쟁없는 세상에서 번역한 스웨덴 비폭력 평화운동가 마이켄 율 쇠렌센의 저서 『전쟁 없는 세상 - 비폭력의 의미를 묻는 당신에게』의 초반부를 보면, 한국의 진보들에게도 반러시아적 내러티브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쇠렌센은 “비폭력 저항을 위한 준비는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공이 있기 전인 2014년 러시아가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점령했을 때부터 시작되었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부분은 소위 진보라 불리는 일부 인사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얼마나 본질적인 부분을 못 보는지를 보여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 메탕의 저작을 인용하겠다.   &nbsp;  우선 러시아가 돈바스를 그 당시 점령했는가를 보자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nbsp;  “도대체 어째서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주민들이 서부 우크라이나인들처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부정해야 하는가? 더군다나, '마이단 파'가 권력을 장악하고서 그들의 언어와 그들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는 사태가 발생했는데도 말이다.”  &nbsp;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44쪽.  &nbsp;  즉, 그 당시 돈바스는 돈바스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마이단에 맞서 저항한 것이었다. 이어서 기 메탕은 서구 사회가 크림 반도 합병에 대해 어떻게 왜곡하는지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nbsp;  “서구는 마이단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우크라이나 나치 우익분자들의 저격, 2월 21일 합의 위반, 2월 22일 쿠데타, 5월 2일 오데사에서 발생한 유혈 폭력, 우크라이나 동부 주민들의 모국어 및 문화에 대한 권리 침해, 세바스토폴 해군기지를 우크라이나 정부가 나토에 제공하겠다는 약속,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러시아 가스관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가스를 절도한 사건, 말레이시아 항공기의 격추 주체가 전혀 밝혀지지 않은 상황, 제네바 협약을 위반하고 돈바스 민간인 지역을 폭격한 사건, 친미 우크라이나 정권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군사지원과 같은 일들이 모두 실제 일어나지 않은 허구이며, 러시아의 선동인 것처럼 군다. 이러한 조작 기술을 쓰는 목적은 바로 러시아가 이 모든 행위를 시작했다고 세계가 믿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사실 그들이 원하지도 않고, 예견할 수도 없었던 사건에 대해 반응했을 뿐인데 말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서구 평론가들과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 위기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어 사용 지역에서 러시아의 공식 사용을 금지한 키예프 임시 정부의 명령에 의해 야기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크림과 돈바스가 결국 이 명령 때문에 돌아선 것이 아닌가? 이런 상황이 러시아 혐오주의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들이 우크라이나 위기가 시작된 진짜 이유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하게 되면 결국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와 동부 지역 분리가 정당화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여론조작의 기술자들이 정성들여 잘 만들어놓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론이 카드로 만든 집처럼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이렇게 사실 왜곡을 감행하지 않는다면, 전통적인 러시아 팽창주의와 소비에트 제국을 복원하려는 푸틴의 꿈이 문제의 근원이지 서방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의 정책 때문에 위기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해명을 어떻게 대중에게 각인시킬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런 방법으로 서구 언론은 끊임없이 역사를 다시 썼고, 서방 정부를 가득 채우고 우크라이나의 새 정부에게 조언을 해주는 홍보 전문가들 덕분에 2014년 3월 이전, 즉 크림 반도 주민들의 자치에 관한 총주민 투표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서구 언론이 2014년 2월 이전 사건들에 대해서 말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러시아 잘못이고, 크림에서 실시된 주민투표가 불법적이었다고 서구의 여론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야누코비치가 주도한 쿠데타가 위헌이고, 프랑스ㆍ독일ㆍ폴란드 외교장관이 공동서명한 2월 21일 자 합의는 그저 넝마조각이었을 뿐이며, 우크라이나 선거 자체는 군사쿠데타로 세워진 불법적 정부에 의한 국제법 위반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어떤 대령이 거리 시위대의 지원을 받아 권력을 잡는다면, 그는 신속하게 병영으로 돌려보내질 것이다. 하지만 서구의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우크라이나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nbsp;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56~58쪽.  &nbsp;  거기다 실제로 크림반도 주민들은 러시아로의 편입을 원했다. 2014년 3월 16일에 러시아에 의해 실시된 크림반도의 주민투표에 대해 기 메탕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nbsp;  “고상한 언론은 "크림의 자치에 대한 주민투표는 우크라이나 헌법과 국제법에 위배되고", 따라서 불법이라고 선언한 백악관의 견해에 기꺼이 동의했다. 크림 주민 95%가 러시아 연방의 일원이 되는 것을 찬성했다는 사실에는 서구의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 기자들이 자신의 직업적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려면 이 주민투표가 1991년 1월 12일에 우크라이나 당국이 정당하게 합법적으로 조직한 이전의 투표 결과를 확인해 주었을 뿐이라는 것을 언급했어야 했다. 그때 크림 주민 81.37%가 주민투표에 참여했고, 투표 참여자의 94.3%가 독립적인 크림공화국의 복구 및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새로운 연방조약에 대한 서명을 지지했다.”  &nbsp;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110쪽.  &nbsp;  필자는 이와 같은 기 메탕의 분석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따라서 앞서 얘기한 쇠렌센의 분석은 이런 사실관계를 알면 나올 수 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언론들과 한국의 반러시아적 감정을 가진 이들은 이런 사실을 보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자는 2024년 8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토 쿠르스크를 침공했음에도 여기에 대해 지적하는 이른바 신좌파 계열 진보운동이 한국에서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상당히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보여주는 문제점들은 한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nbsp;  4. 프랑스-영국-독일-미국의 루소포비아와 역사  &nbsp;  기 메탕의 책은 본서가 2016년에 나왔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2016년 이전까지의 내용만 다루고 있다. 그 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대하고 본 사람이라면, 아쉬울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 책의 장점은 우크라이나 사태 분석과 더불어 다른 곳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책에서 다루는 루소포비아의 역사적 측면이다.   &nbsp;  저자는 루소포비아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의 루소포비아를 분석했다. 우선 프랑스의 루소포비아부터 이야기해보자. 18세기 당시 러시아를 편견 없이 본 일본 선장 다이코쿠야 코다유의 이야기는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분석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기 메탕에 따르면, 코다유는 배가 좌초되어 승객들과 함께 알류산 열도의 섬 한 곳에 상륙했고, 거기서 러시아 사람을 만나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의 여행을 하게 됐다. 예카테리나 2세도 만났다고 한다. 코다유는 일본으로 돌아갈 것을 허락받기 전까지 페테르부르크에서 여러 달 동안 살았으며, 러시아어까지 배웠다고 한다. 코다유는 기록을 남겼는데, 기 메탕의 표현을 빌려 얘기하자면 거기에는 프랑스인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관습과 행정 제도, 자연, 왕궁, 인민, 정치 생활, 매음굴, 음식, 술 등에 대해 그 어떤 판단이나 선입견 없이, 분명하게, 절대적으로 진실하게, 조금의 편견도 없이 구체적으로 묘사”가 들어가 있었다. 같은 시기 프랑스인이 계속해서 상기시켰던 참을 수 없는 전제주의와 끔찍한 농노제, 중세의 고문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nbsp;  이 부분을 보더라도 결국 기록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의 루소포비아도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영국에서의 루소포비아는 19세기 초반이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영국과 러시아는 19세기 초 반불동맹 국가였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가 대륙 봉쇄령으로 영국의 해상 무역로를 봉쇄한 사실은 세계사를 조금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여기에 맞서 러시아는 영국과의 무역을 지속했고,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를 침공했다. 비록 러시아는 모스크바까지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했지만, 이후 동장군을 이용해 반불 연합군과 함께 진격하여 수도 파리까지 진격하여 나폴레옹을 축출했다. 그 당시 분명히 영국과 러시아는 동맹이었다. 즉, 영국과 러시아는 함께 나폴레옹을 몰락시켰다.  &nbsp;  그러나 영국은 빈체제 설립 25년이 안되어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인 국가로 대응했다. 특히 1840년대 오스만 제국 문제와 이후 크림전쟁 등에서 러시아에 대한 영국의 루소포비아는 극에 달했다. 생각해보면, 1904년 러일전쟁에서도 영국은 10년 뒤 동맹이 될 러시아를 적대했다. 그 당시 영국은 일본을 지원하며,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주력함대인 발틱 함대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게 막았다. 결국 그렇게 해서 지구 반바퀴를 돌아 일본 해역에 간 발틱 함대는 대마도 인근 해역에서 일본 군함들에게 참패하게 됐다. 아무튼 영국의 루소포비아는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고, 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 200년이 넘게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봐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러시아가 새로운 영토를 장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nbsp;  “가장 놀라운 것은 1815년이나 1945년 모두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새로운 영토를 장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쟁 전리품과 영향권의 할당 문제가 1815년에는 비엔나 회의에서, 1943-45년에는 테헤란, 얄타, 포츠담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었다. 두 경우 다 러시아는 협상에 참여한 모든 당사국들이 서명한 협약의 조건을 세밀하게 준수했다. 2세기 전과 반세기 전에 발생했던 반러시아 정서의 강화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수많은 가설 가운데 공산주의자의 파괴적 활동과 러시아의 고유한 성질인 팽창주의를 통제할 필요성, 러시아 전제주의와 전체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할 필요성, 그리고 기타 다른 이유들을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설명이라기보다는 변명에 가깝다. 그러므로 글리슨의 견해와는 달리 영국과 미국의 루소포비아는 주로 이들 두 나라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세계 지배를 향한 불굴의 의지에 기인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이 나라들은 새로운 영토를 갈구하는 과거의 해양 강국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두 나라는 그들의 의지를 다른 민족에게 강요하려 해왔고, 지금까지도 강요하고 있다. 그들은 B-52 폭격기 또는 무인 항공기의 총포라는 외교를 이용한 군사 작전, 자유 무역을 도입하는 경제적 조치, ‘소프트파워’ 자원을 동원하는 문화적 행보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nbsp;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280~281쪽.  &nbsp;  이 지점에서 필자는 도입부에서 언급한 콜 오브 듀티가 다시 떠올랐다. 게임 속 러시아는 현대 서구 대중문화가 소비하는 전형적인 악역 이미지다. 그런데 기 메탕의 분석을 읽고 나면, 이런 이미지가 단순한 창작적 설정이 아니라 훨씬 오래된 역사적 인식의 연장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저자는 러시아에 대해 제국주의로 분석하는 것 또한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그 비판적 분석의 핵심골자는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1815~1900년까지 자신들의 소설과 논문에서 러시아 팽창주의와 싸우고 있는 동안 대영제국의 영토는 영국 자체의 20배를 초과”한 반면, “그렇게 비난을 받았던 러시아는 베사라비아, 캅카스, 튀르게스탄, 만주를 이용해 국경을 둥글게 만들어 자신의 영토를 겨우 25% 늘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즉, 러시아와 서방의 영토 확장 속도의 격차는 1대 100이었다. 영국이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러시아 제국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이 시기의 역사를 놓고만 보자면, 그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 참고로 영국은 벵골만 대기근 300만 명을 포함하여, 1930~40년대 인도인 수천만 명을 굶겨 죽인 역사도 있다.   &nbsp;  독일의 루소포비아 또한, 여러 역사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특히 독일의 루소포비아는 19세기 말에 나타났다. 특히나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루소포비아가 보다 강화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보다 형성된 루소포비아는 역설적이게도 독일이 패망한 이후 사라지지 않았다. 1920년대 독일에서 등장한 극우 민족주의 운동 즉 파시즘은 이를 강화했다. 나치당의 히틀러는 1924년에 출판된 자서전 『나의 투쟁』에서 이른바 레벤스라움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 이것은 독일 민족이 러시아를 정복하여 게르만족의 생활공간을 확장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논리의 근간에는 영토확장과 더불어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그리고 반볼셰비즘이 탑재되어 있었다.   &nbsp;  루소포비아의 인종적 측면이 극단화된 것이 바로 독일이었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그런 극단성이 실제 역사에서 나타났다.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희생자 대다수가 소련계 유대인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여기서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1945년 나치의 절멸 수용소인 아우슈비츠를 해방한 군대는 소련의 붉은 군대였다. 그러나 2015년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에서 정말 말이 안 되는 역사 왜곡과 모욕이 폴란드에서 벌어졌다.  &nbsp;  “폴란드는 파시즘에 대한 승리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기 위해 역사를 다시 쓰려는 욕망이 너무나 강해서 201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 기념 행사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초대할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폴란드 외무장관 그제고즈 쉐티나는 파렴치하게도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우크라이나 군대에 의해 해방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행사에 참석한 유럽 국가 지도자 중 누구도 폴란드 지도부의 이러한 수정주의적 습격에 항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nbsp;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321쪽.  &nbsp;  미국 또한 루소포비아가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미국의 루소포비아 역사는 1945년에서야 시작됐다. 그것은 냉전 기간 내내 자라나서 1950년대의 거친 매카시즘, 그리고 1980년대에 아주 잘 고안된 전체주의와의 투쟁이라는 테제로 점진적으로 변화했다. 21세기에는 반푸틴 논쟁에 맞춰 부활하게 됐다. 특히 미국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 동맹이었던 관계가 냉전 시기 급격히 적대 관계로 전환된 과정은 영국 사례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본다. 즉, 과거에는 협력했던 러시아가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다시 “위협”으로 재정의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책의 저자가 미국의 루소포비아를 잘 분석했다고 생각했다.  &nbsp;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선 책에서 한 가지 놓치는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1917년 레닌이 일으킨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자, 미국 내에서는 이른바 적색공포가 확산됐다. 그리고 미국 내에서 확산된 적색공포는 1918년 미국이 러시아를 침공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1918~1921년까지 미국은 러시아 영토에서 백군을 지원하며, 볼셰비키의 군대와 전쟁을 치렀다. 이 부분에 대해 소련은 충분히 침략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nbsp;  적잖은 미국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기억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110년 전 러시아를 침공한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여기서 가정을 해보자면, 만약 러시아가 미국의 영토를 침범한 사례가 있었다면, 과연 미국인들이 그리 무관심했을까? 필자는 1962년 소련이 쿠바 인근에 핵미사일을 배치한 것과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한 것, 그리고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난 것을 일반 미국인들이 역사에서 기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러시아 영토에서 침략전쟁 그것도 부당한 황제 복권을 위해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은 잘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그 점에서도 미국식 중심 사고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해본다. 책이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웠다. 사실 미국은 자신들이 당한 2001년 9.11 테러를 기억하지만, 정작 1973년 칠레에서 자신들이 주도한 9.11 테러는 전혀 기억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역사를 보는 시각도 매우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nbsp;  5. 결론: 이 책은 러시아와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편견을 알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nbsp;  지금까지 게임 콜오브듀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서구 사회의 루소포비아 역사를 통해, 루소포비아와 책에 대해 설명했다. 콜오브듀티 자체는 책에 나오지 않은 내용이지만, 루소포비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좋은 소재가 아닌가 싶다. 이번에 책을 읽으며, 콜오브듀티를 수도 없이 플레이하며 보게 된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은 반러시아 내러티브씬이 지속적으로 생각이 났다. 적잖은 서구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이 러시아를 인식하고 소비하는 이미지가 바로 그 게임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으며 들었다. 그리고 그런 루소포비아는 단순히 자본주의적 소비 매체를 넘어, 기나긴 세월을 통해 축적되었다.  &nbsp;  특히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런 이미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얘기하지만, 정작 서구 사회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을 자극하고자 벌인 행위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 미국과 서구 사회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서도 얘기할 필요가 있다. 저자 기 메탕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다루며, 유로마이단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들이 서구의 지원을 받은 것과 마이단 시위에서 학살을 일으킨 사실 등은 이 책에 비교적 잘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과 서구의 이런 지원은 냉전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부분에 대해선 역사학자 구자정의 논문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간략히 말해, 미국은 냉전 초기 소련을 전복하고 사보타주하기 위해, 스테판 반데라와 같은 우크라이나 나치들을 이용하여 대소공작을 벌였다. 대소공작을 1950년대까지 벌이다 중단했다. 중단한 이유 중 하나가 소련이 서유럽을 침공하려는 조짐을 전혀 포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가 냉전에서 소련과 러시아를 얼마나 미국의 프레임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상기시켜 준다. 서구 사회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콜오브듀티와 같은 프레임으로 러시아를 재해석해 왔다. 즉, 역사왜곡을 저지른 것이다.  &nbsp;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4년째로 접어들었다. 어찌 보면 독소전쟁보다도 더 길게 진행된 전쟁이다.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패배로 끝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서유럽과 미국은 전쟁을 중단하려 하지 않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공화당의 트럼프보다 민주당 쪽이 오히려 이 전쟁을 계속 이끌어 나가려 한다. 미국과 서유럽이 왜 패배한 전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부분에 있어서 확실하게 큰 요소 하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루소포비아적 정서가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영화 ‘플래툰’과 ‘JFK’로 유명한 올리버 스톤은 작년 초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다음은 러시아가 폴란드를 침공할 것이다.”라는 말을 카말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했다고 비판했다. 스톤에 따르면 이것은 “가장 멍청하기 짝이 없는 무지한 발언”이다. 여전히 루소포비아는 서구 사회 전체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nbsp;  이런 루소포비아의 기원과 본질 그리고 위선과 문제점을 알고 싶다면, 필자는 기 메탕의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의 일독을 권하며, 긴 서평을 마치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788/97/cover150/k11283668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7889785</link></image></item><item><author>NamGiKim</author><category>프라우다(Pravda, Правда)</category><title>[마이리뷰] 이야기 폴란드사 - [이야기 폴란드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9779161/17211638</link><pubDate>Sun, 12 Apr 2026 11: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9779161/172116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648296&TPaperId=172116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66/53/coveroff/8974648296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648296&TPaperId=172116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야기 폴란드사</a><br/>김용덕 지음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3년 04월<br/></td></tr></table><br/>이야기 폴란드사 서평: 간략하게 읽어보는 폴란드 역사<br><br>폴란드(Poland). 아마 한국인들 중에 폴란드라는 나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필자가 폴란드라는 나라를 알게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보다 세계사 만화책과 다큐멘터리를 접하면서였다. 아마 중1때였을 것이다. 독일의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을 접하면서 폴란드라는 나라의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br><br>10대 시절 내가 기억하는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에게 가장 먼저 침공당해 먹혔던 나라였다. 아마 그 시절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수용소의 상징인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Auschwitz-Birkenau)가 폴란드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 같다.<br><br>폴란드에 대해 사실상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다 1940년 카틴 대학살에 대해 대학생 때 알게 됐고, 전역 이후 복학한 다음 폴란드 자유노조에 대해 알게됐다. 2019년 홍콩 시위 당시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홍콩 시위를 강력히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홍콩 시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는 페친들도 볼 수 있었다. 해당 입장을 보니 폴란드 자유노조의 반혁명과 무엇이 다르냐는 글을 보게 됐다. 그때 처음 자유노조를 알게됐다.<br><br>이후 코로나 초기 미국의 영화 감독인 올리버 스톤과 역사학자 피터 커즈닉이 쓴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The Untold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완독했고, 그 책에서 폴란드 자유노조가 CIA에게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비슷한 시기 폴란드가 제2차 세계대전사를 반공주의적 시각에서 왜곡한다는 것도 알게 됐으며, 거기에 대한 반론 글을 운동권 단체에 기고한 적도 있었다.<br><br>필자가 폴란드를 직접가본 것은 2024년이었다. 바르샤바와 크라쿠프에 3일간 있었고, 거기서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과 인민 생활 박물관, 아우슈비츠 수용소, 자유노조 박물관을 들렸다. 또한, 폴란드인들이 그리도 존경하는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의 동상과 관련 전광판과 팜플렛도 볼 수 있었다. 폴란드를 방문한 이후에도 사실 폴란드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됐다.<br><br>필자가 이번에 읽은 책은 제목과 같이 폴란드사 책이다. 저자는 외대 폴란드어과 명예교수고 폴란드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석박사를 거기서 취득했다. 일단 전공자가 자기 전공분야를 쓴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 눈높이에 맞춰 폴란드사 책을 집필했다. 설명체여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며, 솔직히 중학생 정도만 되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br><br>폴란드 고대 역사부터 2016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재 폴란드 지도자인 안제이 두다가 마지막에 언급되며, 세계최초로 쌍둥이 형제가 같이 대통령과 총리를 했던 카친스키 이야기도 나온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자부터가 폴란드의 역사학적 접근법에 익숙한 사람이고, 또 책에서 밝혔듯이 철저히 폴란드 역사 교과서적 시각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br><br>예를 들어, 소위 스탈린주의자라 비난받는 볼레스와프 비에루트에 대해 스탈린의 하수인으로 표현 하는 것과 바르샤바의 상징인 문화과학궁전을 소련 지배의 상징이라 비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1944년 바르샤바 봉기를 이오시프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방치하여, 봉기군을 나치에게 학살당하도록 의도했다는 서술이나, 폴란드 자유노조를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적극지지한 것과 얘들을 돕기 위해 경제제재를 가한 것을 칭찬하는 서술은 필자의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수준이었다.<br><br>폴란드의 반소련ㆍ반공적 종족주의는 보면 볼수록 소름이 끼치는 수준이라 할만하다. 파시즘에 긍정적이었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도 이 책에서 심각한 수준으로 미화가 된다. 솔직히 필자는 폴란드인의 역사 인식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1919~1921년에 벌어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 대해서도 철저히 반소비에트적 서술로 이어져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 인민민주주의 정권 하에서 이루어진 경제성장과 성과는 얘기가 사실상 전무하다. 심지어 브로니스와프 고무우카 집권기는 경제성장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딱 한줄만 언급된다.<br><br>사회주의 시절의 폴란드는 분명 경제성장을 했다. 이는 바르샤바에 있는 인민 생활 박물관에 가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필자는 2년 전 직접 가보았기에 해당 박물관에서 제시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 사실 고무우카도 반스탈린 길을 걸었던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브로즈 티토 못지않게 수정주의적 행보를 보였던 인물이었지만, 이 책에서 기대하는 건 당연히 무리다.<br><br>한 가지 이 책에서 보충하면 좋았을 점은 우크라이나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학살 이야기다. 책에서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폴란드인을 학살했다고 짧게 언급되긴 하지만, 이 부분은 볼린 대학살의 사례와 학살의 규모 그리고 학살의 설계자인 스테판 반데라ㆍ미콜라 레베드ㆍ로만 슈케비치 등을 언급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폴란드인들이 우크라이나와의 관계에 있어 매우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게 바로 이 부분의 역사다. 만약 개정판이 또 나온다면, 이 부분은 반드시 다뤄져야 한다.<br><br>다소 비판적인 얘기를 늘어놓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읽을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중학교 2~3학년도 읽을 수 있는 수준에서 쓴 역사책이며, 폴란드 역사를 입문하기에 가장 적절한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철저히 폴란드의 시각인 것을 감안해야 된다. 책을 읽으며 새로 알게된 사실들도 제법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의외로 폴란드계 인물들이 미국 독립전쟁에 참여하여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인정받은 인물들이 있었다는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br><br>그리고 폴란드가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오히려 프랑스 보다 더 좋아하는지도 알게 됐다. 흥미롭게도 폴란드의 바르샤바 공국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철저히 프랑스편을 들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도 동참했으며, 나폴레옹이 참패한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도 폴란드군이 반불 연합군에 맞서 싸웠다. 물론 폴란드의 경우 러시아를 매우 싫어했고, 프랑스가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독립을 보장해준 부분이 있어서 그랬다. 폴란드가 프랑스 보다 나폴레옹을 미화한다는 것을 2년 전에 알았지만, 그 사례를 보다 살펴보니 흥미롭다.<br><br>폴란드 고대사와 중세사 그리고 근대사까지의 내용은 말 그대로 축약된 통사니 그럭저럭 읽혔다. 제2차 세계대전 내용은 솔직히 반공주의적 서술이지만, 폴란드 망명정부의 군대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로서 재밌었다. 특히 망명정부 군대, 그러니까 소련의 통수를 치고 서방진영으로 넘어온 브와디스와프 안데르스는 병력 12만 명을 데리고 소련을 넘어 이란과 이라크 등 중동지역을 거쳐 북아프리카 전선에 서방 연합군으로 합류했다. 그 과정에서 이란을 들려 자유 폴란드군 부대에 곰 한 마리를 기르게 됐는데, 이 곰의 이름이 바로 보이텍이다.<br><br>보이텍 관련 이야기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보이텍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군대에서 병사들과 함께 동고동락했고, 전선에 투입되어 물자를 나르기도 했다. 병사들과의 사이가 매우 좋았고, 병사들을 잘 따뤘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보이텍은 군대가 해체되면서 영국의 한 동물원에서 살게됐고, 1963년에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br><br>폴란드 망명정부에 대해 얘기하겠다. 폴란드 망명정부는 1939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 이후 영국 런던으로 망명하게 된 조직이다. 아마 한국인들에게는 수능 국어 문제로 나오던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 구절을 기억할 것이다. 사실 이들은 소련이 독소불가침 조약에 따라 폴란드 동부를 접수한 것과 기존의 반공성향 때문에 소련을 매우 미워했다. 기본 속성부터가 반공ㆍ친서방이었다. 1939년 패배한 이후 런던으로 망명한 이들은 영국 내에서 군대를 양성했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의 자유 프랑스군이 영국에 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br><br>1941년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하자, 소련은 이들과도 협력관계를 만들기 위해 소련 내에서 폴란드인들이 군대를 만들게 했고, 브와디스와프 안데르스가 이 군대를 이끌게 됐다. 안데르스는 그 군대를 가지고 소련을 탈출하여 서방에 합류했고, 그 군대 중 한 부대가 앞서 얘기한 새끼 곰 보이텍을 이란에서 만나게 되어 키우게 된 것이다. 보이텍은 보급중대에서 활약했고, 1943년 이탈리아 전선, 특히 몬테카시노 전투에 참전했다. 아무튼 보이텍은 전쟁 이흔 동물원에 있으면서도 영국에 남은 폴란드 망명정부 참전용사들과 자주 만났으며, 참전용사들이 오히려 울타리를 넘어가 보이텍과 함께 있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고 한다.<br><br>이번에 처음으로 폴란드 역사에 대해 훑어볼 수 있었다. 솔직히 이 책이 폴란드인의 시각에서 쓰인 거라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재밌게는 읽었다. 재작년에 출판된 동독관련 역사책 &lt;장벽너머&gt;처럼, 폴란드 사회주의 시절을 잘 알 수 있는 책이 나오면 좋겠다. 애초에 김용덕 명예교수의 책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에 궁금증이 있다. 사실 카트야 호이어가 서방적 시각이 있음에도 동독 사회주의 시절을 비교적 잘 다뤘다. 따라서 폴란드 사회주의 시기의 역사도 충분히 서방의 역사학자가 그런 식으로 분석해볼 수 있다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한 기대를 걸며 서평을 마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66/53/cover150/897464829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665372</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