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오보

 

https://web.archive.org/web/20210929010206/https://jinbowiki.org/wiki/index.php/%EB%B6%81%ED%95%9C/%EC%98%A4%EB%B3%B4

 

개요

 

남한을 비롯한 외부 세계가 작성한 북한에 대한 허위·왜곡 보도들을 다루는 항목.

 

개관

 

저널리즘의 무덤

 

국내 매체들은 고의든 실수든 거의 숨쉬듯이 북한에 대한 허위 정보들을 쏟아내고 있다. 일례로 2018년 연말에 JTBC가 시청자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 발표한 2018년 최악의 가짜뉴스 10(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1749370) 가운데 4개가 북한 관련이었다.

 

국내의 북한 관련 보도가 얼마나 저급하고 편향적인지는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cia)' 웹사이트의 '한반도' 섹션(https://www.voakorea.com/z/2712)과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조중동 같은 국내 주요 일간지의 북한 기사들과 차이점이 보이는가?

 

별 차이가 없는 거 같다고? 그렇다.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문제라는 거다. '미국의 소리'는 미국 연방정부(정확히는 국무부)에서 운영하는 대외 선전 방송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35775&cid=43667&categoryId=43667)이다. 당연히 철저하게 미국 정부의 이익에 봉사한다. 공정성을 추구하면 설립 취지를 배반하게 되는 매체다. 그런데 명색이 '저널리즘'을 한다는 것들이 그런 '프로파간다' 매체 수준의 논조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미국의 소리'가 국내 보수 언론보다 더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보일 때가 많다. 북한에 대한 악마화에서야 오십보백보지만 적어도 고위층의 성추문 같은 선정 보도는 자제하는 경향이 있고, 북한의 대남 도발에 대해 기---햇볕정책 탓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리'2020314일 보도

(https://www.voakorea.com/a/korea_korea-life_defector-youtube/6030023.html)에서 탈북민 유튜브 채널의 다변화를 긍정적으로 다루며 친북 성향 새터민인 홍강철·김련희가 진행하는 '왈가왈북(https://www.youtube.com/@user-ro8wg3of3w)'을 소개한 바 있는데, 이는 국내 보수 언론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중앙일보의 북한 관련 기사들은 조선·동아에 비하면 약간 전향적인 편이지만 그래도 '미국의 소리'만 못하다. 남한 보수 언론의 대북 보도는 그야말로 저널리즘이기를 포기한 수준이다.

 

급경사 운동장

 

하지만 그러한 편향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한심할 정도로 낮다. 극렬 반북주의자가 아닌 진보주의자, 심지어 그 중에서도 민족주의 내지 평화 지향 신념이 강해서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사람들마저 종북몰이를 두려워하여 북한 관련 오보·가짜뉴스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 이들이 대다수다. '탈북자 처형설'과 같이, 딱히 북한 지식이 없는 사람도 너무도 손쉽게 허물어뜨릴 수 있는 북한 정부가 압송된 탈북자를 죽이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라면 어떻게 여러 번 탈북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낭설에 대해서조차 웹상에서 체계적인 반박문을 찾기가 쉽지 않다.

(https://www.voakorea.com/a/nk2-04-08-12-146594385/1366594.html)

 

위 문단에서 "종북몰이를 두려워하여"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한국의 대다수 진보-좌파주의자들은 기성 언론의 북한 보도를 거의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기레기'라고 욕을 해대는 조중동이 생산한 것일지라도 그렇다.

 

그런 실정이다 보니, 기껏 이 자료 저 자료 찾아가며 팩트체크를 해도 좋은 소리 듣기 힘들다. 북한에 대한 가짜뉴스에 대해, 설마 그럴까 가볍게 의구심을 던지는 수준에서 반박이 불가능한 근거로 거짓임을 명백히 밝혀내는 수준까지 모든 단계에서, 일반적인 한국인들은 가짜뉴스 생산자가 아닌 이를 지적하는 사람을 욕하고 손가락질한다. "설령 사실이 아니더라도, 북한 욕하는 훌륭한 일 하시는 분들을 어떻게 '감히' 너희들이 뭐랄 수 있느냐"는 식이다. 팩트체크를 하는 사람은 북한 관련 보도가 허위임을 뒷받침하는 논거에 허점이 드러나기 전에, 그냥 곧이곧대로 안 믿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위기에 처한다. 반론을 제기하면 할수록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가짜뉴스 제작자 측은 반론을 받으면 받을수록 신뢰를 얻는다.

 

그나마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따져 보는 것이 어느 정도 허용되지만 가능하지만 인권 이슈에 대해서는 공적인 문제제기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정치인이 그러는 건 정치적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그렇게 때문에 그 어떤 제도권 진보 정치인도 그 주제를 다루는 가짜뉴스를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일이 절대로 없다.

 

이하 서술은 오보를 낸 당사자가 오보로 인정했거나, 다각도의 검토로 허위임이 명백하게 밝혀진 경우에 한정한 것이다. 그밖에도, 오보로 확정되진 않았지만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거나 교차검증이 되지 않아 사실로 받아들이기 힘든 보도들은 수도 없이 많다. 북한을 포르노그래피처럼 소비하는 보도들은 거의 그런 성격이라고 보면 된다.

 

본 문서를 읽으며 딱히 재반론의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는데 다소 과장이 있다고는 해도 그게 다 거짓말일까?' 하는 막연한 의문이 들어 곧이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은 거짓말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니, 북한에 대한 거짓말은 돈이 안 드는 정도를 넘어서 훌륭한 돈벌이 수단이 된다. 북한 외의 국가에서는, 특히 남한에서는 말이다.

 

북한 정권 수립 전

 

김일성 가짜설

 

해방 이후 소련군과 함께 귀국해서 북한 최고 지도자가 된 김일성이 보천보 전투의 '그 김일성'이 아니라 이름만 빌린 가짜라는 주장인데, '그 김일성' 맞다. 이를 믿는 사람들 중 다수가 김일성이 본명이 아니라는 것에 상당한 의미 부여를 하고 있으나, 김일성의 본명이 김성주라는 것은 북한 사람들도 안다. 북한 당국에서 굳이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박정희 시절 김형욱이나 이후락도 그 김일성이 북한 김일성이 맞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미국의 소리와 중앙일보는 2017년에도 CIA 공개문서가 있다면서 가짜 김일성설을 주장했다.(https://news.joins.com/article/22093650) 심지어 육문 중학교 2학년 중퇴가 최종 학력인 김일성이 고등학교에서 반 친구를 죽였다는 개연성이 없는 말을 했다.

 

신탁통치 오보 사건

 

역사를 바꾼 동아일보의 오보 사건. 학계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신문사 측에서 사실관계를 잘못 알았던 것이 아닌 의도적인 허위 보도로 본다.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57815096)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미국은 신탁통치 5년 연장을 주장했고, 소련은 5년 이내의 즉시 독립을 주장했지만, 동아일보가 이를 반대로 보도했다. 뉴라이트와 같은 수구세력들은 아직도 소련이 찬탁을 주장하고, 소련 측 주장을 동의한 박헌영과 조선 공산당 세력을 매국노 세력으로 몰고가는데, 엄연한 역사왜곡이다. 그리고 박헌영 세력은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합의 된 결정안을 지지한다는 것이었지 신탁통치 연장을 동의한다고 한 적이 없다.

 

김일성 통치기

 

김일성 사망설

 

19861118조선일보가 호외로 김일성의 사망을 보도했으나 허위로 밝혀졌다.

 

금강산댐 수공설

 

국가 단위의 사기극. 금강산댐 폭파 시 63빌딩 1/3이 잠긴다며 국민 상대로 공갈을 치던 전두환 일당은 이에 그치지 않고 평화의 댐 짓는다고 애들 코 묻은 돈까지 긁어갔다.

 

김정일 통치기

 

성혜림 망명설

 

1996213조선일보가 모스크바에 살고 있던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이 서방으로 망명한 사실을 보도했다. 조선일보사는 이를 '세계적 대특종'으로 홍보하며 기사를 작성한 월간조선의 우종창 기자에게 2000만원의 특종 상금까지 줬으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27&aid=0000005685), 결국 오보로 밝혀졌다.

 

길재경·염진철 망명설

 

2003517연합뉴스'외교소식통'을 인용, 조선로동당 서기길의 길재경 제1부부장 및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염기순의 아들 염진철의 서방 망명을 보도했으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376137), 바로 다음날 사실무근임이 드러났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376877)

 

고난의 행군 300만 명 아사설

 

북한 경제가 최악의 위기였던 1996-2000년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의 인구 손실은 435천여 명으로 밝혀졌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450059.html) 그 기간에 감소한 인구의 사망 원인이 아사 한 가지일 리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사자는 백만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김정은 통치기

 

"북한 학자들이 유니콘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20111230일 영국의 한 매체가 북한의 학자들이 유니콘의 서식지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는 보도를 했으나, 이는 고구려 동명성왕 전설에 나오는 '기린굴'을 발견했다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1201601004) 여기서 기린이란 아프리카에 사는 목이 긴 그 동물이 아니라 중국 신화에 나오는 뿔 달린 상상의 동물(https://www.google.co.kr/search?q=%E9%BA%92%E9%BA%9F&newwindow=1&rlz=1C1DLLB_enKR802KR802&source=lnms&tbm=isch)

을 일컫는 것이다. 북한을 바보로 만들기 위한 뉴스였겠지만, 실은 본인들이 바보였던 셈. 어쩌면 본인들이 바보라기보다는 그런 걸 믿는 바보들이 많으니까 많이 배우고 똑똑한 기자들이 그런 짓거리를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거짓말에 잘 속는 바보들은 한국에도 얼마든지 있다.

 

탈북 청소년 총살설

 

20135월 라오스에서 붙잡혀 북한에 송환된 청소년 탈북자 9명이 총살되거나 수용소에 끌려갔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2014127일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인 '우리 민족끼리'에 그 중 5명의 근황이 공개됨으로써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http://news1.kr/articles/?1992247)

곧이어 북한 당국은 나머지 4명의 모습도 공개했다.(http://news1.kr/articles/?1996354) 애초에 북한 당국은 탈북에 대해 그렇게 가혹한 처벌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탈북자 처형설' 항목을 참고할 것.

 

현송월 총살설

 

2013829일 남한의 기레기들은 현송월이 포르노를 찍다 총살되었다는 헛소리를(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29/2013082990013.html)했으나(https://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3082900247&Dep0=m.search.naver.com&docRefURL=https://m.search.naver.com/search.naver?sm=mtp_hty.top&where=m&query=%ED%98%84%EC%86%A1%EC%9B%94+%EC%B4%9D%EC%82%B4), 다들 잘 알다시피 현송월은 살아있다.

 

리수용 처형설

 

20131211일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은 당시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리수용이 처형되었다고 보도했으나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6&news_seq_no=1577851), 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리수용은 살아있다.

 

김경희 독살설

 

2015511일 미국의 CNN은 한 탈북자의 말을 인용해 김정은이 자기 고모이자 장성택의 부인인 김경희를 독살했다고 보도했으나

(https://edition.cnn.com/2015/05/11/asia/north-korea-kim-aunt-poisoned/index.html), 김경희는 살아있다.

 

리영길 총살설

 

2016210연합뉴스의 속보로 알려졌으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2/10/0200000000AKR20160210067300014.HTML?input=1195m), 전 총참모장 리영길은 살아있다.

 

"북 주민 30%가 마약 중독자."

 

2016121()북한인권정보센터(NKDB)의 이관형 연구원은 한국프레스센터가 주최한 '북한 주민의 마약 사용 실태 현황과 과제 세미나'에서 북한 인구의 최소 30%가 마약을 소비한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펼쳤다.

(https://www.dailynk.com/%E5%8C%97%EC%A3%BC%EB%AF%BC-%EC%B5%9C%EC%86%8C-30%-%EB%A7%88%EC%95%BD-%EC%86%8C%EB%B9%84%ED%86%B5%EC%9D%BC%EB%8C%80%EB%B9%84/) 그리고 이는 아무런 검증 없이 국내 수많은 언론에 의해 인용·보도되어, '이제 만나러 갑니다' 류 북한 관련 예능과 더불어 북한 사회에 마약이 만연해 있다는 인식을 남한 대중에게 퍼뜨리는 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정말 생각이란 걸 단 몇 초만 해봐도 터무니 없는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이든 어디든 마약은 공짜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북한은 매우 가난한 나라이지 않은가. 특히 저 발표에서 북한 사회에서 "성별·연령별·계층에 무관하게" "일상화됐다"고 하는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일명 '히로뽕')은 대개 0.03g 기준인 1회 투약분이 국내에서 10-20만 원에 거래될 정도로 아주 비싼 마약이다.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9041205021)

 

1인당 GDP가 많이 쳐줘 봐야 2천 달러 내외(https://news.joins.com/article/2755273)인 북한 사회에서 평범한 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북한에서는 거기 사람들한테 부담 없는 가격으로 팔 거라고? 그럴 거면 왜 국제 마약상들이 엄격한 통제 사회의 위험(: 총살)을 무릅쓰고 굳이 거기 기어 들어가나. 대외적으로 훨씬 개방화되어 있고 마약 사범에 대한 처벌이 적어도 공산 독재 국가에 비하면 매우 널럴하며 무엇보다도 구매력이 비교불가 수준으로 압도적인, 대한민국이라는 이상적인 시장이 바로 옆에 있는데 말이다. 실제로 탈북자인 최승철 씨는 2011121'오마이뉴스' 기고문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08743)을 통해 "(북한에서) 옥수수 100kg과 맞먹는 마약을, 그것도 마치 전 국민이 흡입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에 불과"하고, 자신이 북한에서 목격한 마약 사용자는 "대부분 먹고살 걱정이 없는 부유층의 일부 극소수 사람"이었다며, 북한 주민 다수가 마약에 중독되었다는 보수 매체의 과장·왜곡 보도를 비판한 바 있다.

 

2019422일에 방영된 '문화방송' 시사·교양 프로그램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에서 이 가짜뉴스를 다뤘다. 이 방영분에서 마약상 출신인 탈북자는 이관형의 주장과는 달리 북한의 마약 중독자 비율이 0.2-0.5%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추정했고, 마약 재활치료 전문의인 천영훈 박사는 전 인구 30%는커녕 단 3%만 필로폰 중독자라 해도 그 사회는 작동할 수 없다며 이관형의 주장을 일축했다. 방송을 통해 이씨가 연구자로서 자질이 의심되는 면이 드러나기도 했는데, 예컨대 자신과 동일한 주장을 북한 당국자가 사실로 확인해 줬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으니 본인의 설이 '교차검증'되었다며 자신만만하게 제시한 기사에서 정보의 원출처는 다름아닌 본인의 발표문이었다.

 

기쁨조 속옷 수입설

 

김정은이 기쁨조 입히려고 중국에서 야한 속옷을 270만 파운드, 한화로 약 38억원어치나 구입했다는 건데, 최초 보도한 곳이 영국의 그 악명 높은 황색 언론 더 선(https://www.thesun.co.uk/news/3260338/north-korean-dictator-kim-jong-un-sexy-underwear-pleasure-squad/)이다. 국제무역센터(International Trade Center)의 통계를 근거로 들었는데, 북한에서 퍽이나 "이거 우리 원수님 성적으로 봉사할 애들이 입을 거요." 하고 대금 지불하고, 그와 같은 내용이 그러한 국제기구 통계에 잡히기까지 했겠다.

 

김일성 가면 사건

 

해당 항목 참조.

 

마오쩌둥 손자 사망설

 

20184월에는 중화권의 기레기들이 마오쩌둥의 손자 마오신위가 북한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떠들어댔다(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842801.html). 예전에 북한 어디서 교통사고가 크게 나는 바람에 중국 관광객들이 몰살을 당했다는 뉴스 다들 들어 봤을 거다. 그때 죽은 32명 가운데 마오신위도 있었다는 얘기다. 김정은이 그때 이례적으로 "속죄한다"는 표현까지 하며 강하게 애도를 표시했는데, 그것을 보고 평범한 사람들이 죽었는데 쟤가 저럴 리가 없다, 분명 거물급 인사가 포함되어 있을 거다, 하고 상상력 부족한 애들이 상상의 나래를 퍼득거리다 나온 얘기다. 물론... 알지?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80505_0000301040)

 

풍계리 갱도 폭파에 대한 오보

 

2018524일 벌어진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폭파에 대해, 'TV 조선' 온라인 뉴스 팀이 그것이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속보로 보도했으나, 불과 수 시간만에 오보로 밝혀졌다.(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2879)

 

국민연금 200조 북한 증여설

 

20188월부터 일베저장소 등을 중심으로 남북 정권의 고위층이 국민연금에서 200조 원을 떼서 북한에 넘기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8/22/0200000000AKR20180822028000502.HTML) 조작된 증거조차도 내세우지 않은, 그야말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가짜뉴스다. 하도 황당하다 보니 조중동조차 물지 않았다.

 

북한 헬기 남하설

 

20181214일 한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이 북한군 헬기가 용인까지 남하... ... 파주, 연천도 아니고... 하여튼 그랬단다. 그걸 믿는 머저리가 어디 있냐고?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있다. 얼마나 혹하는 인간들이 인터넷에 많았으면 포털에 연관 검색어까지 생겼을 정도였고, 모바일로도 카톡 등을 통해 '긴급 속보'라며 전파되었다. 물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고, 헛소문을 퍼뜨린 장본인인 문제의 유튜브 채널 운영자 손상대 씨는 JTBC와 인터뷰에서, 제보자가 의무 수송 헬기의 적십자 마크를 인공기로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놨다.(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744993)

 

김여정 징계설

 

일단 웃고 시작하자. 김여정이 징계를 당했다니 이게 무슨 개 짖는 소린가. 김여정은 다들 알다시피 북한의 절대권력자 김정은의 최측근이자, 현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냥 최측근, 계승자 후보도 아니고 친동생이다. 자신의 유일한 외국 체류 시기인 스위스 유학 시절을 같이 하기도 했으니 김정은으로서는 상당히 애뜻한 마음이 있을 터이다. 그러한 인물이면 어지간한 중대 범죄가 아니고서는 견책을 당할 리가 없다.

 

이러한 기본 상식조차 저버린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530/95761708/1)·조선일보(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31/2019053100057.htm)등 국내 보수 언론은 20195월 말부터 하노이 북·미 회담의 실패를 책임지고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 대표 김혁철은 총살, 조선로동당 통일선전부장 김영철은 숙청당했다는 설을 보도하면서 조선로동당 제1부부장 김여정의 '근신'도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이러한 보도는 무비판적으로 재인용·확산되었다.

 

다행히 이런 웃기는 소리가 거짓임이 밝혀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단 '혁명화 조치'를 당했다는 김영철은 보도가 나간 지 불과 수일 만인 63일에 김정은과 함께 군 부대 공연을 관람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건재가 확인되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0603004400504) 바로 그 다음날인 64일에는 김여정도 김정은을 수행하여 집단체조 관람을 한 사실이 밝혀지며 국내 최대 계란판 원료 공급처인 조선일보를 머쓱(http://www.viewsnnews.com/article?q=169849)하게 만들었다. 처형되었다는 김혁철도 국정원의 확인으로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유력해진 상황이다.(http://news1.kr/articles/?3671856)

 

이 희극의 정점은 625일에 국정원에서 김여정의 서열이 국가지도자 급으로 격상되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3425635) 무슨 듣보잡도 아니고 김여정 정도 인물에 대해서 당시에 본인이 실제로 겪은 것과 완전히 정반대 상황을 그린 국내 언론의 대북 보도를 신뢰할 가치가 있을까? 그러느니 차라리 허경영을 믿는 게 나을 거다.

 

후지모토 겐지 체포설

 

2019626일 일본의 데일리 신초'김정일의 요리사'로 알려진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가 평양에서 체포되었다고 보도했다(http://news1.kr/articles/?3655237). 정보를 제공한 '공안 관계자'가 그렇게 본 이유는 기껏해야 연락이 잘 안 된다는 정도였다. 참고로 후지모토 씨는 20126월 김정은의 초청을 받아 같은 해 7월 북한을 방문해 김과 재회했고 그 자리에서 '배신'을 용서받았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8222205205) 후지모토 씨는 이후 다시 북한으로 건너가 20172월에 평양에서 초밥집을 개업(http://www.newsis.com/view/?id=NISI20170305_0012756134)해서 영업 중이었다. 당연히 북한 수뇌부의 특전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인물을 북한의 누가 감히 건드린단 말인가. 그게 성립되는 경우는 딱 하나, 김정은의 눈밖에 났을 때 뿐인데, 유력 정치인도 아닌 일개 초밥집 주인한테 그럴 일이 뭐가 있을지 모르겠다. 초밥이 맛이 없었나?

 

그 해 718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상의 뉴스를 "일본과 남조선의 메디아가 류언비어를 캐치볼하고 가짜뉴스가 눈덩이처럼 확대되는 사례"로 소개하며 후지모토 씨가 자신의 식당에서 일하는 사진을 게재했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9330)

 

조총련 놈들 말을 어떻게 믿느냐는 식의 의심을 풀 요량이었는지 조선신보기사가 난 직후인 723일 주 북한 영국 대사 콜린 크룩스가 후지모토 겐지의 식당 '다카하시'를 찾아 모둠 회를 맛보았고 후지모토 씨와 같이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9330)

 

함박도 남한 영토설

 

함박도 항목 참조

 

"괴뢰가 보내온 귤은 전리품."

 

2019728일 일본의 도쿄신문은 북한 치안기관에 하달한 내부 문건이라는 문서를 소개하며, 문서 중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트럼프 놈"이라고 했다든가, 20189월의 제5차 남북 정상회담 시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받은 송이버섯에 대한 답례로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해 11월에 북측에 보낸 귤 200t을 두고 "괴뢰가 보내온 귤은 전리품이다"라고 표현했다는 등의 언급을 했다. 이는 국내 보수 세력이 문재인 정권을 상대로, 북한이 한국을 호구(https://www.sedaily.com/NewsView/1VLVRW4Z66)로 여기느니 한국이 북한에게 패싱(https://www.segye.com/newsView/20190728506694)을 당하고 있느니 하는 식의 정치적 공격을 펼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도쿄신문이 소개한 문건은 정보당국, 북한 전문가 및 탈북자들의 분석 결과 조작된 것일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밝혀졌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0730151751001)

 

NHK의 미사일 발사 오보

 

20191227일 일본의 NHK는 공식 웹사이트에 북한의 미사일로 추정되는 물체가 홋카이도 동쪽 2000km 해상에 추락했다는 속보를 게재했으나, 곧 삭제 후 해당 보도가 오보라는 공지를 올렸다.(https://news.joins.com/article/23666717) 이 방송사는 그 전에도 비슷한 오보를 낸 바 있다.(http://news.kbs.co.kr/news/view.do?ncd=3594906) NHK는 일본의 공영방송으로서 선정 보도와는 거리가 먼, 신뢰성이 높은 매체임에도 북한 관련 뉴스에서는 이렇게 찌라시 같은 행태를 보이곤 한다. 미국의 CNN도 마찬가지고, 이 문제에 있어서는 전세계 어디에도 '정론 언론'이란 게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거기 사람들은 한국의 기레기들이랑은 다르게 언론인으로서의 양심 내지 사명 의식이란 게 없지는 않아서 관련자들을 7명이나 징계하는 정도 성의는 보였다.(https://www.yna.co.kr/view/AKR20191230160200073) KBS가 북한에 부정적인 뉴스를 보도했다가 오보임을 시인하고 관련자들을 징계한다면?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을 김정은이 접수했느니 하는 한탄이 쏟아질 게 뻔하다.

 

김정은 위중 및 사망설

 

2020420일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 '데일리NK'는 내부 소식통을 인용, 김정은이 12일에 평양북도 묘향산에 있는 자신의 전용 병원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https://www.dailynk.com/%EA%B9%80%EC%A0%95%EC%9D%80-%EC%B5%9C%EA%B7%BC-%EC%8B%AC%ED%98%88%EA%B4%80-%EC%8B%9C%EC%88%A0-%EB%B0%9B%EC%95%98%EB%8B%A4%EC%97%AC%EC%A0%84%ED%9E%88-%ED%8A%B9%EA%B0%81%EC%84%9C-%EC%B9%98/) 다음날인 421일 미국의 CNN은 그 '데일리NK' 보도를 받아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을 보도했다.

(https://edition.cnn.com/2020/04/20/politics/kim-jong-un-north-korea/index.html) CNN은 해당 보도 첫머리에서 미국 정보 당국 관계자가 "미 당국이 북한의 통치자 김정은이 수술을 받은 이후 심각하게 위험한 상태(grave danger)에 있다는 정보를 주시 중"이라는 관계자의 말(원문 The US is monitoring intelligence that suggests North Korea's leader, Kim Jong Un, is in grave danger after undergoing a previous surgery, according to a US official with direct knowledge.)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이를 국내 수구 세력들이 가져오며 다분히 소망적인 위중설, 더 나아가 사망설로까지 발전(?)시켰다.

 

이럴 때 절대로 안 빠지는 게 일본의 기레기들이다. 일본의 주간지 슈칸겐다이(주간현대)424, 김정은이 스텐트 시술을 받다가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고 보도했다.(https://www.news1.kr/articles/?3917860) 슈칸겐다이는 기사에서, 문제의 시술이 간단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집도의가 손을 덜덜 떨었던데다가 김정은이 워낙 비대해서 시술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바람에 독재자가 요단강을 건너고 말았다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 상황을 그렸다.

 

가장 빛나는 활약을 펼친 건 북한에 대한 악마화·희화화 및 부정적 전망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는 자들이었다. 전 북한 공사 출신으로,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태구민(전 태영호)427CNN과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임은 확실하다"는 뇌피셜을 설파했다.

(https://edition.cnn.com/2020/04/27/asia/thae-yong-ho-kim-jong-un-intl-hnk/index.html) 역시 탈북자로서 같은 당에서 비례대표가 된 지성호는 한술 더 떠 '뉴시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김정은의 사망을 99% 확신한다는, 그야말로 막 던지는 발언을 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9842272)

 

태영호·지성호 같은 자들이 진짜로 확신을 해서 그런 소리를 해댄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보유한 정보원의 부정확함이야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남한 사회가 탈북자발 북한 정보를 들을 때 진실성 검증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와 그 내용이 부정적이고 자극적일수록 얼마나 잘 팔리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들이기도 하다는 점이 화근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내뱉은 북한에 대한 말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는 일이 조금도 두렵지 않은 자들이었다. 지금까지 남한 사회에서 그런 이유로 불이익을 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52'조선중앙방송'이 김정은의 지방 공장 시찰 소식을 보도(http://www.kwnews.co.kr/nview.asp?s=101&aid=220050100007)하며 김정은 위중 및 사망설은 결국 오보임이 밝혀졌다.

 

우리가 이 사태에서 얻는 교훈은 '북한에 있을 때 평양에 한 번 가본 적도 없는 꽃제비 출신이 최고 지도자의 신변에 대해 뭘 알겠는가?', '아무리 고위층 출신이라도 권력 핵심부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10년 넘게 외국 생활하다 한국에 들어온 인물이면, 그 사람이 하는 북한의 은밀한 내부 동정에 대한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 않은가?'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 정도 기본적인 문제제기마저 철저히 억눌러왔던 한국 사회가 북한 문제에 관한 한 너무 정신착란적인 상태였던 것이다. 더 나아가서, 그렇게 중대하면서도 옳고 그름이 단기간에 명확히 판별될 정보에 대해서도 배짱 좋게 베팅을 해대는 반북 성향 탈북자들이, 무슨 '사소한' 거짓말이나 당장에 정확한 사실 확인이 어려운 영역에 대한 왜곡·과장은 안했을까 하는 의문을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 횡행한 북한 관련 뉴스의 황당함을 떠올리면 태영호·지성호 같은 자들은 '악성 가짜뉴스 전파자' 축에 속하지도 않는다. 단지 저들은 현역 정치인이라 정치적 반대파로부터 유례없이 깐깐한 검증을 받고 있는 것뿐이다. "최고 지도자가 젊은 나이에 급사했다"는 얘기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비현실적인 북한 정보도 엄청나게 많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기독교인들을 펄펄 끓는 쇳물에 담궈서 처형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369947)한다는 보고서가 있는가 하면, 북한 어부들이 심청전에 나오는 얘기처럼 처녀를 사다가 바다에 제물로 바친다는 소문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24/2014062404028.html)도 있다. 심지어 과거 '고난의 행군' 때 북한 시장에서 아이들을 잡아 죽여 그 인육을 팔면서 사람들 보고 누군지 확인하라고 머리를 잘라 전시했다는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증언(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60721/8331992/1)도 중앙 일간지에 잘만 게재된다. 그게 말이 되나 싶은 일이 수시로 일어나는 게 세상이니, 신중을 기하기 위해 1% 정도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일지 모른다. 문제는 저런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소식일수록 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점, 그럼에도 '자유국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한국 사회에서 저러한 북한 관련 정보 특히 '인권' 주제에 관련한 것들에 대해서는 의문 제기가 절대 금기시된다는 점이다.

 

기타

 

탈북자 처형설

 

탈북자 항목 참조.

 

신동혁의 허위 증언

 

20141025일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 '우리 민족끼리''거짓과 진실(신동혁은 누구인가)'라는 동영상을 공개, 본인이 '14호 정치범 수용소'에서 태어나 24년을 살다가 탈출했다는 북한 인권 운동가 신동혁(본명: 신인근)의 증언을 날조라고 주장했다. 신동혁은 반발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몇 가지 '오류'를 인정하고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1/18/0200000000AKR20150118002000071.HTML), 북한 인권 운동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https://www.yna.co.kr/view/AKR20150118034900014)

 

북한은 내국인이 외부 세계와 연락·접촉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사회라 제3자로서는 탈북자의 북한 거주 당시 경험담에 대해 진위를 가려내기가 매우 어렵다. 한편으로 그 나라는 대외적으로 신뢰를 받지 못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그러니 신동혁이 "북한 정부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 나는 진실만을 말했다."고 넘어가도 별 문제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신동혁이 굳이 오류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 대외 활동을 중단하기까지 했다는 것은 북한의 공격에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신씨를 충격에 빠뜨린 부분은 당연히 북한이 자신을 강하게 비방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럴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반북 운동 같은 것에 매진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늘어놓은 신동혁에 관한 주요 주장 가운데 상당 부분이 진실일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설령 북한의 주장이 전부 사실은 아니며 대부분은 거짓말이더라도, 최소한 그 사람을 유명 인사로 만든 여러 증언 가운데 핵심적인 것들이 허위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후 2015315일 신동혁은 인터넷 매체 '허핑턴포스트코리아'와 인터뷰(https://www.huffingtonpost.kr/2015/03/05/story_n_6796796.html)에서 "수용소에서의 경험담은 모두 진실"이었다며 거짓 증언 논란에 대해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의 해명은 아무런 추가적인 증거 제시 없이, 본인의 어머니와 형이 자신의 잘못으로 죽었기 때문에 처형된 죄목이 탈출이 아닌 살인이었음을 숨겼다든가,(신동혁은 이전에 본인의 회고록 '14호 수용소 탈출(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7052162)'에서 식량 배급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어머니와 형을 밀고한 것이었으며 두 사람의 죽음에 아무런 동정심을 느끼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왜 그런 사실보다 간수의 속임수에 넘어갔다는 것이 더 부끄럽고 밝히기 힘든 일이 되는 걸까?) 자신이 살던 수용소가 14호에서 18호로 바뀌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18호 수용소 출신이 된 것(이와 같은 '개편'은 전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신동혁 본인도 이전에 그와 같이 말한 적이 없다. 또 나중에 이 자는 그러한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서 "저는 미안하고 할말이 없습니다(http://www.nkd.or.kr/community/free/view/33579)"라고 하기도 했다. 신의 주장대로 그러한 개편이 실제로 있었고 또 14호와 18호가 끔찍함에 있어 차이가 없었다면, 하나도 안 미안하고 할 말이 많아야 정상이다)이라는 등 납득되지 않는 소리들이어서, 아직까지 북한 인권 참상의 증인으로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간첩 체포는 모두 날조?

 

북한 정부는 종종 자기 나라를 여행 또는 체류 중인 외국인을 간첩 혐의로 체포하곤 한다. 그런데 이를 다루는 한국 언론의 태도에는 일정한 특징이 있다. 북한 당국이 간첩 용의자를 붙잡아 두는 것을 법률 용어인 '구금'이라 하지 않고 '억류'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당연히 북한의 행동에 부정적인 느낌을 주며 은근히 제기된 혐의가 허위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물론 체포된 외국인들이 자기 나라에서는 범죄로 간주되지 않을 행위로 인해 북한의 사정 당국에 입건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간첩 행위''반공화국 모략 행위' 등의 혐의로 체포한 외국인들이 전부 다, 북한 형법에 규정된 간첩 행위나 반국가 범죄조차 범한 적도 없는 완전히 무고한 이들이라는 발상은 합리적이지 않다. 흔히 '은둔 국가'로 묘사하곤 하지만 북한도 실은 세계 161개국과 수교를 맺은(http://www.segye.com/newsView/20190315509479) '국제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상 북한도 불필요한 외교 마찰을 꺼릴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막 나가는 독재 국가라도 외국인의 반체제 행위에 대해서는 내국인에 비해 훨씬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게 일반적이다. 더구나 북한 같은 고도의 통제 사회는 간첩을 색출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그런 나라에서 체포되는 외국 간첩이 전부 누명을 쓴 사람들일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북한 독재 정권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라는 관점에서 그 나라의 간첩 체포 소식을 다루다 보니, 언론에서 용의자·수감자들을 '인질'로 지칭하는 사례(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ws&query=%EB%B6%81%ED%95%9C+%EA%B0%84%EC%B2%A9+%EC%96%B5%EB%A5%98+%EC%9D%B8%EC%A7%88)가 흔하다. 그렇다면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것은 간첩 혐의로 체포·처벌을 당한 이들이 아니라 북한 정부인 셈이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에는 북한에 대한 막연한 불신 외에는 뚜렷한 근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북한의 간첩 체포가 아무 죄도 없는 사람한테 누명을 씌운 일이 아님이 실제로 밝혀진 사례가 있다. 201510월에 간첩과 체제 전복 혐의로 북한 당국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다 트럼프의 개입으로 20185월에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 씨는 2019729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자신이 실제로 CIA의 간첩이었음을 실토한 바 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0730004200071)

 

북한에 보내는 쌀에 '대한민국' 표기 못한다?

 

2019619일 정용기 자유한국당 정책위 의장이 자당의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에) "보내는 쌀 포대에 대한민국이라는 표시도 하지 못한다"고 발언했다가 회의가 끝난 후 "오보를 참고한 발언"이었다며 정정하는 일이 있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225583) 정용기 의장이 대한민국 표기를 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남한 측에서 (북한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북으로 보낼 때부터 표기를 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한 얘기였을 테고 "사실과 달라 정정한다"고 한 것도 그에 한정한 정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남한 사회에서는 꼭 그런 식의 발상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표기가 된 지원 물품이 북한에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가 있다. 그런 까닭에, 한국산임이 표기된 쌀 포대를 북한에 보내면 그곳 당국에서 모조리 포대를 갈거나 뒤집어서 남측에서 보낸 것임을 주민들이 알지 못한다는 식의 소문이 떠돌기도 한다. 이는 그런 작업에 투입될 인력 낭비 문제라든가, 남한의 경제적 우월함이 북한 사회에서 알려질만큼 알려진 사실이라는 것과 같은 '상식' 수준에서 충분히 반박이 가능하다. 물론 "북한은 상식적인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고 하는 소리를 틀어막을 증거도 충분하다. 먼저, 자신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현지인이 대한민국이라 적힌 쌀 포대를 나르는 일을 네 번이나 목격했다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증언이 있다.(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10909000153) 정세현 전 장관이 목격한 것은 2000년대 후반의 일이지만, 2019년 현 시점에서도 '대한민국' 글씨가 적힌 쌀 포대가 북한 방방곡곡을 '버젓이' 돌아다니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2019714일 데일리NK'는 북한 장마당에 대한민국 표기가 된 쌀이 유통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이렇다 할 단속이 없다는 점을 보도했다.

(https://www.dailynk.com/%e5%8c%97-%ec%8b%9c%ec%9e%a5%ec%84%9c-%ed%95%9c%ea%b5%ad%ec%82%b0-%ed%91%9c%ea%b8%b0%eb%90%9c-%ec%8c%80-%eb%b2%84%ec%a0%93%ec%9d%b4-%ed%8c%90%eb%a7%a4-%eb%8b%a8%ec%86%8d%eb%8f%84/) 그와 같은 증언들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명백한 물증도 있다.(https://www.nocutnews.co.kr/news/154280)

 

남한 드라마 보면 총살?

 

당연히 아니다. 원칙은 노동단련대행이지만, 보안원(경찰)한테 돈 좀 찔러 주면 그냥 봐준다고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JYOeykUlpBc&t=1m) 이는 절대 '시범 케이스'라도 간혹 그런 혐의로 사형 선고가 내려지는 경우가 있는 사회에서 벌어질 만한 일이 아니다.

 

근데 그런 말을 믿은 적이 있다면 언론의 왜곡·편향 보도를 탓하기 전에 본인 생각이 모자란 탓을 하는 게 맞다. 남한 언론은 그런 뜬소문을 보도하기도 하지만, 그런 일이 있기 힘든 정황에 대해서도 충실한 정보 제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면, 그 방면에 아무리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북한에서도 한류가 대유행 중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ws&query=%EB%B6%81%ED%95%9C%20%ED%95%9C%EB%A5%98&sm=tab_opt&sort=0&photo=0&field=1)이라는 소식을 한 번쯤은 접하기 마련이다. 많은 탈북자들은 북에 적대적인 입장

(https://www.youtube.com/watch?v=EbAN388OqjQ)

이든 우호적인 입장(https://www.youtube.com/watch?v=all8VroSwZQ)이든 "요새 북한에서 남한 영화·드라마 한 번 안 본 사람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 그 사람들은 고작 드라마 따위를 보려고 목숨을 건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천국의 계단', '시크릿 가든' 같은 게 아무리 재미있어도 본인 목숨만한 가치가 있을 리가 없다. 당신이 천하의 진미라는 음식을 앞에 놓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그걸 먹으면 죽을 가능성이 백에 일 아니 천에 일만 된다고 알려줘도 그걸 입에 넣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특히 부모 입장이라면, 철부지 자식이 겨우 생소한 음식 따위에 목숨 거는 걸 극구 말리기는커녕 같이 먹으면서 한가롭게 맛이 어떠니 하는 소리나 하고 앉아 있을지(https://www.youtube.com/watch?v=0U0BKpUjPNY&t=18s) 생각해 보자.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북한이라고 다를 리가 없지 않은가.

 

북한에서 남한 대중문화가 대유행 중이다.

 

북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남한 대중문화를 접촉하다 들키면 죽음을 당한다고 알고 있다.

 

이 양자는 둘 다 참이기 힘든 것이다. 송환된 탈북자는 무조건 총살한다는 사실과 8번 북송되었다가 9번째만에 탈북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남한 대중문화를 보고 듣다가 걸려도 목숨이 왔다갔다 할 일까지는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 그게 사실인가는 차치하고북한 사회의 상식에 가까운 것임이 분명하다. '왜 그런 인식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 일반적인가'를 따진다면 역시 가장 상식적인 해답은 '그게 사실이라서'일 것이다. 일부 탈북자들이 돈과 명성을 위해서 종편 예능이나 유튜브 같은 데서, 아무런 증거도 없이, 무슨 거짓말을 늘어놓건 말이다.

 

"그렇다 쳐도 남한 드라마 보다가 공개 처형을 당했다느니 하는 보도(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ws&query=%EB%B6%81%ED%95%9C+%EB%82%A8%ED%95%9C+%EB%93%9C%EB%9D%BC%EB%A7%88+%EA%B3%B5%EA%B0%9C+%EC%B2%98%ED%98%95)가 너무 많은데? 그건 다 뭐냐?"

 

좀 전에 말했지 않은가. 거짓말이라고. 익명의 '소식통'이 말하는 전언에 신빙성이 극히 낮음은 당연하고, 탈북자 증언의 경우는 CDUSB의 보급으로 북한 사회에 본격적으로 한류가 유행하기 전인 90년대, 00년대 초에 북을 떠난 사람들이라면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기보다는 진짜로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개관에서 말했다시피 거짓말에는 돈이 들지 않고, 남한은 북한 악마화에 앞장서는 탈북자에 대한 보상이 전세계 어느 곳보다 큰 사회이기도 하다. 딴 재주 없어도 그것만 잘하면 돈다발은 기본이고 금배지까지 달 수 있으니 말이다. 반면에 그에 대한 의심은 기본이 종북몰이에 최대 감방행까지 가능하다. 반박하는 사람이 탈북자인 경우 기본은 "북한으로 돌아가라"이고 최대는 역시 감방행이다.

 

이 가짜뉴스에서 일말의 진실성을 찾는다면 다음과 같은 식의 가설을 세울 수는 있겠다.

 

한 사회에서 지배계급이 '오염된 문물'로 규정된 것이 유행할 때, 그것을 수동적으로 소비한 사람보다는 적극적으로 유통시킨 사람에게 훨씬 강한 처벌을 가하는 게 전세계 보편적인 현상이다. 단순히 보기만 한 사람들은 대체로 묵인해 주는 북한 정부도 유통·판매책의 경우는 노동교화형에 처하는 등 강하게 처벌할 수 있고, 그렇게 사라진 사람을 두고 총살을 당했느니 하는 소문이 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북한 당국이 강력범죄나 파렴치 범죄를 저지른 이를 사형에 처하는데, 범죄자의 부패상을 묘사하며 '타락한 남조선의 문화'를 즐긴 모습을 말한 사례가 있을 수 있다. 전달 과정에서 남한 드라마를 보다가 사형당한 케이스가 남한 드라마를 봐서 사형당한 케이스로 바뀌는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남한 드라마 시청자 총살설'은 한국 사회의 북한에 대한 양면적 인식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북한에서 K드라마·K팝이 대대적으로 유행 중이라는 보도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이는 자신들이 매우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북한에 대한 한국의 문화적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에도 그와 같이 '적국'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남한에서조차 온전히 보장되고 있다고 보기 힘든체제의 빈틈이, 다시 말하자면 '자유'가 존재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북한은 그래선 안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에서 남한 대중문화를 접촉하면 사형을 당한다는, 앞의 정보와 모순될 수밖에 없는 정보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양면적이라고 했지만 실은 일면적인 것이다. 북한이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열등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말이다.

 

이러한 일면적 사고에서 비롯된 양면적 인식이야말로 남한 사회가 북한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인식 틀이라 할 수 있다.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해 환장한 무모한 미치광이인 동시에 한국과 미국이 '본때'를 보이면 찍 소리도 못하는 겁쟁이들이고, 그 주민들은 '가혹한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동시에 게을러 터진 사람들이며, 그 국경은 살벌하게 통제되는 동시에 탈출자가 쏟아져 나오는 곳이고, 그 사회는 일체의 자유가 완전히 말살된 상태인 동시에 '체제 유지'에 대한 위협이라는 점에서 한국 드라마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만큼매우 심각한 문제인 마약을 마음껏 즐길 자유를 보장하는 분위기이며, 그 문화는 성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문란한 기풍을 지닌 그런 나라다. 그런 건 그냥 악담일 뿐, 절대 북한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 될 수 없다.

 

장애인 제거설

 

북한에서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영아들을 국가 차원에서 제거 즉 살해한다는 소문인데, 이런 소문을 퍼뜨리는 인간들이 하나 간과한 점이 있다. 장애인은 선천적으로 되기도 하지만, 사고 등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 피도 눈물도 없는 북한이란 나라는 후천적 장애인, 가령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사람 등을 어떻게 대하는가. 또 일반적으로 장애인으로 분류하지는 않지만, 실상 다리 좀 저는 젊은 사람보다 나을 것도 없는 병상의 노인들은 어떻게 '처리'하는가. 장애인의 존재를 결코 허용할 수 없기에 아직 눈도 못 뜨는 갓난아기조차 무참하게 살해하는 체제라면 이들이라고 살려둘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그런 레퍼토리 주워섬기는 탈북자 치고 이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그러한 후천적 장애인 및 병약자들도 죽이는 건 맞는데 '그것이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서' 증언자들이 언급 안하고 넘어가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차라리 그런 부분까지는 미처 '설정'을 하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그럴싸하다.

 

물론, 장애아 살해설을 주장하던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아니더라도, 그러한 이들에 대한 탈북자의 증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 군 복무 중 장애를 입게 된 '영예군인(상이군인)'들이 상당히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증언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567668)이 있는가 하면, 우대는 말뿐이고 비참한 삶을 산다는 증언

(https://www.dailynk.com/%E5%8C%97%EC%84%9C-%EB%B6%88%EA%B5%AC%EA%B0%80-%E5%8D%97%EC%97%90%EC%84%A0-%EC%9E%A5%EA%B4%80-%EB%8C%80%EC%9A%B0-%EB%B0%9B%EB%8A%94/)도 있다. 어쨌든 죽이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북한의 장애인올림픽 참가를 두고 '보여주기 식'이라며 김정은 정권을 손가락질하던 이들도 "정부에서 다 죽여 없애기 때문에 북한에는 장애인이 아예 없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하긴 살아있는 증거가 빤히 돌아다니는데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하겠는가. '설정'을 하다 만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결국 이 문제를 다루는 일부 탈북자들의 태도, 또 이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 역시 탈북자 총살설 등을 대할 때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북송된 탈북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이 그 나라 사법당국의 원칙인 것처럼 묘사하는 말글에 분개하고, 송환 후 재탈북을 했다는 사람들의 북한 정권에 대한 저주와 원성으로 가득 찬 경험담에 다시 한 번 분개하면서도 두 사실이 상호 모순이 된다는 것은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북한이 장애인 말살 정책을 편다는 사실에 치를 떨고, 또 북한의 살아있는 장애인이 겪는다고 하는 차별과 박대를 전하는 기록·증언에 또 이를 갈면서도 양자 사이의 모순은 좀처럼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설에 대해 또 굳이 일말의 진실성을 찾는다면, 장애아 살해 자체는 있을 수 있다. 개인, 가정 차원이라면 말이다. 사실 영유아 살해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고, 이는 특히 저개발·빈곤 국가에서 두드러진다. 건강하지 못한 아이가 특히 위험에 처하기 쉬움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 잔혹한 관습은 단순히 장애를 불길하거나 역겨운 것으로 여기는 관념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그런 혐오주의 외에도, 비장애아보다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한 장애아를 키우는 것에 대한 부담감, 아이가 장차 겪을 불행에 대한 동정, 영아를 사람이 아닌 태아에 가까운 존재로 인식하는 인간관 등이 복잡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는 당연히 남한 사회에서도 일어났던 일이다. 예를 들어 '뽀빠이' 이상용은 어렸을 때 생매장당할 뻔한 것을 이모가 구해줘서 목숨을 겨우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https://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09251100491001) 물론 그때는 대한민국이 아닌 식민지 조선이긴 했지만, 여전히 절대빈곤에 허덕이던 40년대 중·후반-60년대 남한이라고 그런 악습이 일소되었을 리는 없다. 자타공인 '선진국'인 지금도 잊을 만하면 장애아 살해 및 미수 사건이 일어나는 판이니 말이다.

 

그러니 생존의 경계선을 타는 북한의 하위층 가정에서 부모 스스로의 선택으로 장애아를 살해하기도 한다는 증언을 꼭 북한 악마화를 위한 날조로 치부하기는 힘들다. 남한 사회에서 지금도 의사들이 장애가 있는 태아에 대해 임신중단을 권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처럼, 북한의 병원에서 그와 같은 장애 영아 살해를 부모에게 권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이 문제에 대한 비교적 신뢰할 만한 증언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090042)도 그런 식이다.

 

만약 그러한 범죄가 개인적인 것이 아닌 정책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물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먼 옛날 일도 아니고 여전히 여기저기서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북한에서도 '손전화기(핸드폰의 북한말)'500만 기니 600만 기니 하는 시절이니 별의 별 기밀 정보도 다 쥐고 있다는 '내부 소식통'들이 각 병원에 장애아 살해를 지시하는 공문서 사진 한 장 찍어서 전송하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이다. 물론 그런 소문이 퍼진 지 수십 년이 지나도록 전혀 제시되지 않던 그러한 증거물이 이와 같은 문제제기가 있은 후에야 갑자기 출현한다는 것도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일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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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3-07-07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제가 요즘 국내언론을 끊었습니다. 북한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조차 없이 그저 서양 매체들만 받아쓰는 데 급급한 국내언론을 보니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요.

newdvs117 2023-07-16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사례에 나온 거 이외에도 국내 언론의 북한 왜곡보도는 거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지하게 많습니다. 그만큼 국내 언론이 남북한의 평화통일보다는 분단체제 유지를 더 선호하고 있다는 소름끼치는 증거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2 - 51개 주제로 본 우리민족 절반의 이야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2
4.27시대연구원 지음 / 도서출판 4.27시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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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것저것 바쁜 일이 많아서 독서를 다소 게을리한 측면이 있지만, 작년 11월에 읽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2권을 펼쳤다. 사실 1권을 읽은 이후 2권을 바로 읽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바쁜 일들이 많아서, 지속해서 미뤘었다. 지난번 서평에서도 언급했던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라는 존재에 막연한 오만과 편견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라는 존재는 항상 부정적으로 생각되고 평가되며 판단되어야 할 존재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인들 내면에 막연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일종에 왜곡된 인식이 편견과 오만을 양산한다고 할 수 있다.

 

탈북자들을 생각해보자. 국내 종편 언론 TV조선과 채널A에서 방영하는 모란봉 클럽이나 이제는 만나러 갑시다를 보면, 북한이라는 존재는 항상 남한이라는 존재보다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전제하에서 방송을 진행한다. 이 채널들은 탈북자들을 모아서, 북한에 대해 안 좋은 얘기만 양산해내며, 북한이라는 사회는 마치 인간이 살면 안되는 쓰레기 같은 곳으로 묘사한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adio Free Asia)이 하는 주장들과 똑같다. 대개 이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열악한 배급 사정, 전력 공급이 부재 등, 절대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얘기들 뿐이다. 나는 이만갑이나 모란봉 클럽이 양산해내는 북한에 대한 관점이 과거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타국을 악마화하는 수법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국 사회에서 나오는 북한에 대한 내용들을 상당 부분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대한민국 정부의 나팔수로서, 것 잡을 수 없이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일부 탈북자들이 증언에 더더욱 비판적이다. 예를 들면, 과거 북한군의 광주학살처럼 묘사된 송림 제철소 사건은 나중에 주성하 기자가 조사해본 바로는 상당 부분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을 정도다. 송림 제철소 사건이 한국 사회에서 과장된 이유에는 일부 탈북자들의 증언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비판적으로 보려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1>에 이어 이번에 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2>는 그런 거짓말들이 무분별하게 돌아다니는 한국 사회에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해주는 책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북한의 현대사를 쉽고, 제법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이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1권이 일본이 패망하는 1945년부터 시작하여 1970년대까지를 다뤘다면, 2권은 북한에서 소위 전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선포하던 1980년부터 시작하여, COVID-19가 한참이던 2021년 북한에서 개최한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까지를 다룬다.

 

기존에 국내에서 출판된 북한 현대사 관련 서적들이 1950,60년대 북한 경제발전의 성과를 인정한다면, 1970, 80년대 경제에 대해선 비판하기 일쑤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에 대한 반론을 담고 있다. 또한, 1956년 스탈린 격하 운동을 단행한 흐루쇼프의 수정주의와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 그리고 마오쩌둥 사후 중국의 개혁개방을 한 덩샤오핑의 모델을 비판하는 점도 책을 읽으며 눈에 들어왔던 점이다. , 이 책은 남한학계가 북한의 경제적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비교 대상으로 삼는 모델을 비판한 것이다. 국내에 나온 책들 중에 흐루쇼프의 수정주의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비판하는 책은 찾기 힘들다. 따라서 이런 점은 제법 반가울 수 밖에 없다. 책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겠다.

 

남측 학계가 북의 경제건설 노선을 비판하며 비교 대상으로 삼은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이른바 '글라스노스트(개방)',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노선은, 북의 입장에서 보면 흐루쇼프때 등장한 현대수정주의의 연장으로 외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중단의 촉진제였다. 중국의 덩샤오핑이 내세운 이른바 '개혁ㆍ개방' 정책 역시 자본주의화를 수용한 수정주의 경향의 하나였다. 게다가 북은 미국과의 군사적 대치가 상수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수정주의 확산으로 전체 사회주의진영에 악영향을 끼치고,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환경속에서 자체 역량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지속해야 했던 북의 상황을 염두에 두는 게 합리적 시각이라 하겠다.”

 

출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2 p.24

 

중간중간에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의 자서전인 <세기와 더불어> 집필 과정이나,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주체사상에 대한 소개 및 그 나름의 해석 등도 제법 볼만했다. 책은 <세기와 더불어>가 이제는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다. 국내에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호치민, 마오쩌등, 아옌데, 카스트로, 체게바라 등의 자서전 및 평전은 있지만, 정작 김일성에 대한 책은 일단 검열부터 하고 본다. 물론 나는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 북한 측 입장에서 쓰인 책들을 막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극우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주장하는 민주주의적 가치에 어긋나기까지 한다. 따라서 책의 주장대로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자유롭게 읽혀야 한다.

 

1990년대 북한에서 겪었던 고난의 행군에 관한 서술도 흥미롭다. 물론 나는 고난의 행군 300만 명 아사설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고 있었지만, 책에서 체계적으로 아사자 수치를 반박하니 반가울 따름이다. 사실 고난의 행군은 너무나 끔찍한 참사였지만, 실질적인 책임은 의도적으로 경제제재를 가하여 사람들을 굶어 죽게 하여 그 나라를 망치려 했던 미국에 있다고 본다. 1932년에서 1933년 당시 소련 시기 우크라이나를 휩쓸었던 홀로도모르에 대해선, 스탈린의 학살이라 우기는 분들이, 정작 미국의 의도적인 고난의 행군 초래는 미국의 학살이 아니라고 보니 참으로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책은 미국의 고립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명히 언급한다.

 

북이 1990년대 중후반기를 항일무장투쟁 때 고생이 막심했던 전투 행군에 비유한 것은 그만큼 간고했기 때문인데 난관은 "수백년래에 처음 보는 무서운 자연재해"만이 아니었다. 김 주석 서거 이후 확산된 이른바 '북 조기붕괴설'을 현실화하려 미국은 대북 봉쇄와 군사적 압박을 강화했다. 이는 소련 해체와 사회주의 시장 붕괴 이후 자본주의 나라들과의 주요 원료 및 물자 교역마저 가로막아 북의 경제난을 심화시켰다. 그런 결과로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됐다는 게 북의 설명이다.”

 

출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2 p.129~13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1>이 순수히 김일성 시대만을 다뤘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2>는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까지 다루고 있다. 책 내용 중에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7.1 경제관리개선조치(7.1조치). 책에 따르면, 이 조치는 사회주의 원칙을 확고히 지키면서 가장 큰 실리를 얻을 수 있는 경제관리방법이라 북에서 일컫으며, 내용의 핵심은 가격조정을 통한 사회주의 분배의 현실화. 전차(버스) 요금과 쌀 값이 급상승했는데, 이에 따라 일반 인민들의 생활비도 대폭 상승시켰다. 그리고 국가에서 지급하는 생활비는 노동의 특성과 기술 수준, 생산성 등에 따라 차등지급했다고 한다. 책을 통해 7.1조치에 대해 처음 알았다.

 

그 외에도 현재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의 성장과정이나 군 생활, 그리고 김정은 시대의 여러 이야기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트럼프의 도발적인 대북 발언이나, 4.27 평화선언 그리고 북미 1,2차 회담 및 2021년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까지 현재 시점의 북한 이야기까지 다루니 흥미롭게 다가왔다. 물론 책을 재밌게 읽었지만, 책에 나온 내용을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대학시절 1,200여 편의 논문과 담화를 발표했다는 부분이나, 세습 관련 부분에 대한 입장 등이 그러하다. 그 외에도 내 생각과 상반되는 부분들은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 2권 또한 얻어가는 점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책은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집필된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자칫 북한찬양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얘기들 중에는 우리가 북한에 대한 막연한 편견에 빠져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나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들을 알려준다. 또한, 반공주의자들이 양산한 거짓 자료에 대한 반박도 담고 있다. 한국 사회가 체제경쟁이 끝났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이러한 책의 출판과 판매의 자유를 훨씬 더 적극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말로는 체제경쟁이 끝났다고 하면서 정작, 북한 자료는 탄압하려는 이 사회 모순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번에도 북한 현대사에 대한 공부가 제법 됐다. 나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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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하바로프스크 야영지에서 찍은 제88특별여단 대원들의 사진, 사진에는 북한의 지도자가 되는 김일성도 있다.)

 

1937년 보천보 전투와 간삼봉 전투 이후 김일성은 일본군 부대의 대대적인 추격을 받았다. 1940년 3월 이른바 홍기하 전투(훙치허 전투)에서 대략 120명 이상의 일본군을 섬멸한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 부대는 그 이후에도 일본군의 끊임없는 추격을 받았다결국 김일성을 포함한 항일연군의 지휘부는 병력을 이끌고 소련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지도자였던 웨이정민(위증민)은 1940년 7월 모스크바 중앙에 서한을 보내 부상자와 연장자를 소련 영내로 보내고 남은 대원은 소부대로 나누어 식량공작에 투입하겠다는 새로운 방침을 보고했다즉 이에 따라서 김일성 또한 부대를 이끌고 소련 영내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1958년 조선인민군 창건 10주년을 기념하여 김일성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1941년경 항일무장투쟁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투쟁방침을 고쳤습니다한편으로는 혁명의 전도를 예견하고 소련 일대에서 많은 간부를 양성하였으며다른 편으로는 역량을 보존하기 위하여 대부대 활동을 소부대 활동으로 변경하고 지하투쟁을 강화하였습니다.”

 

1940년 10월 김일성의 부대는 소그룹으로 나누어 국경을 건넜다브루스 커밍스에 따르면 1940년 7월 기준으로 김일성이 이끌던 부대의 규모는 대략 340명 정도였다고 한다최소 300명 이상이라는 점에서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940년 10월 23일 만주의 훈춘을 떠나 김일성은 소련으로 들어갔다당시 김일성과 함께 소련으로 들어간 이들 중에는 조선인 대원 전문섭강위룡최인덕이두익 그리고 김일성의 부인인 김정숙 등이 있었다.

 

김일성을 포함한 동북항일연군 부대가 소련으로 피신하던 시기는 이들에게 있어서 정말 암울한 시기였다.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김일성이 일본군에게 추격당하던 시기 나치 독일은 영국을 제외한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등을 점령했으며얼마 지나지 않아 런던을 포함한 영국의 도시에 대규모 폭격을 가했다김일성이 상대하고 있던 일본 제국은 중일전쟁을 시작한지 3년이 지났고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반도를 접수한 상태였다거기다 1년 뒤 일본은 소련과 중립조약을 체결했다이처럼 독립운동가들에게 있어서 이 시기는 암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북항일연군도 큰 타격을 입었다이른바 고난의 행군 과정에서 많은 혁명 동지들이 전사했고김일성 부대가 소련을 떠난 뒤동북항일연군 제1로군의 제3방면군 총지휘자인 진한장이 일본군에게 사살당했고1로군에 있던 전설적인 독립운동가이자 김산의 친구이며 의열단 대원이었던 오성륜도 일본군에게 투항했다안타깝게도 오성륜은 이후 변절하기까지 했다또한 앞에서 서술한 웨이정민도 밀영 속에서 사망했다.

(제88특별여단의 깃발, 러시아어 글자가 들어가 있는게 인상적이다.)

 

소련에 도착한 김일성과 그를 포함한 동북항일연군은 소련군에게 취조를 받고이른바 1941년 초의 하바로프스크회의를 거쳐 두 개의 야영에 배치됐다현재 우수리스크 근처에 B야영(당시는 우수리스크가 스탈린의 심복인 보로실로프의 이름을 땀.)과 하바로프스크 북동쪽 70km 지점에 있는 아무르 강가의 비야츠코 마을에 A야영(오케안스카야 야영학교라고 일본 관헌자료에 나옴)이 만들어졌다당시 김일성이 들어간 곳은 B야영이며 대략 몇 백 명 정도의 규모였다고 한다이렇게 만주에 정착한 이들은 단순히 소련에서만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며일부는 다시 만주로 들어가 남아있는 독립군 잔존세력을 도왔다다만 1941년 일본과 소련의 중립조약이 체결되면서그러한 활동은 매우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와다 하루끼가 쓴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에 따르면 1942년에 와서도 이 소부대들은 야영을 출발하여 정찰과 전단살포 등의 임무를 수행했으며당시 부대의 정예 대원이던 조상지는 1942년 2월 일본군과의 전투 도중 사망했다고 한다.

 

1941년 4월 일소중립조약이 체결됐지만, 1941년에 들어서 동북항일연군에게도 변화가 생기는 일이 나타났다. 1941년 6월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했고그해 12월에는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비록 소련은 이 시점까지 이들이 만주로 다시 돌아가 활동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지만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을 이들을 활용하고자 했다. 1942년 6월 일본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에게 대패하고 난 뒤소련은 항일유격대원들에게 훈련을 실시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고실제로 이들을 소련의 붉은 군대에 편입시켰다그것이 바로 제88특별여단이다.

(1945년 가을 북한에 입성하고 나서 찍은 김일성과 소련군 지휘관들의 사진)

 

88특별여단은 1942년 8월 1일 창설됐다88특별여단 소련 붉은군대(Soviet Red Army)의 일원으로 러시아어로는 제88특별저격여단(88 Otdel'naya Strelkovaya Brigada)이라는 명칭이 부여됐다여기서는 이 글에서는 그냥 줄여서 제88특별여단이라고 부르겠다이 부대에는 중국인과 몽고인 그리고 조선인과 러시아 소수민족인 나나이족이 같이 근무했으며동북항일연군에 있으면서 활약했던 김일성 또한 높은 지위를 부여받았다88특별여단의 병력은 초기에 1,500명 정도로 이 중 항일연군 인사는 1,000명 정도였다고 한다.

 

88특별여단의 군사훈련은 소련 극동군의 보병훈련대강을 기초로 소련장교의 지도에 의해 행해졌으며총검술·실탄사격·전술진공·방수훈련·행군연습·동계 야외 노영훈련·낙하산강하훈련 등이 이루어졌다겨울에는 스키여름에는 수영 연습도 이루어졌다전세가 막바지로 달하던 1944년에는 소련군 장교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었으며항일연군 내부의 지휘관이 훈련을 지휘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최소 1,500명 이상이나 되는 제88특별여단에는 항일연군 병사가 다수를 차지했으나이 중 조선인은 최소 120명에서 많게는 400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1945년 8월 26일 평양에 입성한 소련군, 당시 조선 사람들은 소련군을 해방군으로 맞이하며 환영했다.) 


최성춘의 <연변인민항일투쟁사>에 따르면동북항일연군 부대들은 소련과 만주를 왔다갔다하며 항일투쟁을 이어나간 것으로 확인된다. 1942년 5월 12일에는 박덕산소부대가, 5월 29일에는 안길소부대가 그리고 7월 17일 시세영소부대가 연변으로 돌아왔으며활동을 전개했다고 한다이들은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적정찰임무를 수행하고 돌아갔으며소부대의 이런 활동은 1945년 봄까지 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88특별여단이 독자적으로 대일전에 참전했다는 확실한 문서는 없으나이들 중 일부는 소련군에 편입되어 붉은 군대로 대일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은 소련 문서와 주보중(항일연군 지휘간부)의 회고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이들 중 일부는 소련의 붉은 군대 대원으로서 1945년 소련의 대일전에 참전했다또 이들 중 일부는 한반도 북부로 진격했으며이른바 해방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45년 10월 연단에 선 젊은 독립운동가 김일성, 당시 많은 이들이 김일성의 존재를 노장이라 생각했으나 너무나 젊은 인물이어서 한편으로는 근거없는 '가짜설'이 유포되기도 했다.)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한국의 민중봉기>에서 김일성도 호치민처럼 연합국의 편에서 싸웠다.”고 주장했다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주장에 따르면, 1944년 11월 일본의 한 경찰 보고서를 보면 김일성은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에 있는 것으로 추정됐으며, “국경지대에서 미국 공군의 공습과 조율하여 철도를 파괴하기 위해 조선-만주 국경을 따라 주요 지점에 정보원을 파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무래도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채택된 이른바 인민전선에 따른 반파시즘연합전선 차원에서의 행동일 것이다베트남의 지도자이자 국부인 호치민(Ho Chi Minh) 또한 1944년에서 1945년 사이에는 미국 OSS와 접촉하여 베트민을 훈련시키고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김일성을 포함한 사회주의 계열 항일무장독립군들은 많은 이들이 친일을 선택할 때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그리고 이들은 이후 1948년에 설립되는 북한 정부의 핵심이 됐다브루스 커밍스의 말대로 김일성과 김책최현최용건 그리고 그 외의 200여 명의 핵심 지도자들은 만주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을 전개하면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었다현재 북한에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항일무장투쟁에서 찾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참고문헌

 

와다 하루끼이종석().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창비, 1992

 

최성춘연변인민 항일투쟁사연변대학, 1999

 

김효순간도특설대서해문집, 2014

 

박찬승한국독립운동사역사와비평사, 2014

 

와다 하루끼남기정(). 와다 하루끼의 북한 현대사창비, 2014

 

조지 카치아피카스원영수(). 한국의 민중봉기오월의봄, 2015

 

브루스 커밍스조행복().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현실문화,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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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이 작품은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을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박정희 시절 피카소를 이름을 크레파스에 넣었다고 처벌받았던 이도 있을 정도다.)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전쟁 초기 이승만 정부에 의해 발생한 국민 보도연맹 학살(Bodo League Massacre)만 하더라도 2~3달도 안 되는 사이에 남한 땅 전역에서 30만 명의 민간인이 우익들에 의해 무차별 학살당했다이러한 사실을 통해한국전쟁에서 우익들이 저지른 학살은 매우 광범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이러한 학살은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고 나서도 지속됐으며, 9.28 서울 수복 후에도 부역자 색출이라는 미명아래 이승만 정부의 또 다른 양민 학살이 광범위하게 발생했다학살은 미군에 의해서 발생하기도 했으며특히나 폭격에 의한 학살이 가장 광범위했다한국전쟁 시기부터 현재까지 북한에서 강하게 주장하는 미군에 의한 학살이 있다그것이 바로 신천양민 학살(Sinchon Massacre)이다.

(현재 북한에서 제시하는 신천양민 학살 민간인 희생자의 수치, 이 숫자는 대략 그 지역 인구 1/4 수준이다.)

 

신천양민 학살은 1950년 10월부터 12월까지 한국군과 미군이 북진하며 전진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학살로 대략 3만 5,000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졌다놀랍게도 학살당한 민간인의 숫자는 그 지역 인구의 1/4이다신천양민 학살은 과거 한국에서 신천 10·13 반공 의거라고도 불렸고현재 북한에서는 신천 대학살로 불리고 있다현재 한국 학계에서는 북한에 있던 우익 세력인 반공 청년단들이 한 것으로 판단하거나좌익과 우익 갈등 속에서 희생된 것으로 얘기한다반면 북한에서는 이 학살을 미제국주의자들이 저지른 끔찍한 학살로 얘기한다신천양민 학살은 양측의 입장과 의견이 판이하게 갈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신천 박물관에 있는 상상화)

 

우선 북한에서 주장하는 미군의 학살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현재 북한에서는 신천양민 학살의 주체로 미군을 지목하고 있고신천에 만들어진 박물관에도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북한에서는 신천 미점령군사령관인 해리슨과 그 휘하의 미군을 학살의 주체로 지목한다북한의 자료에 따르면미군과 한국군이 들어온 시점부터 후퇴하게 되는 시점까지 신천에서 미군들에 의한 학살이 발생했으며그러한 학살은 매우 야수적이었다고 한다. MBC에서 했던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신천학살 편을 보면 이들의 증언도 확인이 가능하다한 북측 시민의 증언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때 미군 한 놈이 나타나더니뭐라고 지껄이면서사람들을 직접 쏴 죽이면서말하는 것이었습니다옆에 통역 놈이 말하기를 빨갱이는 모조리 죽여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이 놈이 바로 미국 장교 해리슨이라는 놈이었습니다.”

 

신천양민 학살의 주체로 미군을 지목한 것은 비단 북한 뿐만은 아니었다대표적으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활동했던 국제여맹 단원들이 그러하다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는 국제민주여성연맹(Women's International Democratic Federation)이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과 한국군 그리고 우익들의 학살과 잔혹행위 등을 조사했었다이들은 미군의 무차별 폭격 현장을 직접 목격했고양민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하는 증언들을 기록했다이들의 기록에 따르면 유엔군 점령 기간 동안 대략 12만 3,000명의 황해도 시민의 학살당했다고 썼다이 수치는 당시 영국 노동당 신분으로 참가했던 모니카 펠턴(Monica Felton)이 제시한 것으로 국제여맹 인사들 중에 가장 우익 성향의 인물이 주장한 것이다펠턴의 주장에 따르면황해도 안악시에서만 1만 9,092명의 주민들이 미군과 영국군 그리고 한국군에 의해 학살되었다이는 아마도 당시 북한 측의 제시한 수치와 자신이 조사한 자료를 통해 나온 것으로 확인된다.

(신천양민 학살 희생자의 묘, 이 묘 또한 신천 박물관 근처에 있다.)


(신천양민 학살 당시 양민들이 학살당한 현장)

 

앞에서 제시한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즉 한국군과 미군에 의한 학살이 결코 없지 않았고그 규모가 작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그러나 신천양민 학살의 주체로 미군을 뽑는 북한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결코 만만치 않다.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신천양민 학살을 다룬 편에서월남한 생존자들과 신천에 주둔했던 미군의 진술을 토대로 당시의 사건을 추적해 들어갔다그러나 당시 신천에 주둔했던 미군은 지명만 기억할 뿐 그리 오래 있지도 않았으며 북진하기 바빴고신천에 주둔한 기간이 매우 짧았다고 한다또한 또 다른 미군은 부대가 지나갔음에도 본인 스스로 그 지명조차 기억하지 못했다그리고 무엇보다 북한에서 학살의 배후로 뽑은 윌리엄 해리슨은 자신이 신천에서의 학살 주동자로 지목당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주장했으며그가 신천에 있지도 않았음을 확인해주는 자료도 있다.

(신천양민 학살을 묘사한 벽화)


(2010년대에 새로 단장한 신천 박물관 일부 모습, 자세히 보면 미군 옆에 하얀색 완장을 낀 우익 치안대도 보인다.)

 

즉 이러한 부분에서 북한의 자료와 미국의 자료가 엇갈리는 점이 있기에 나는 신천양민 학살의 주체로 미군이라 결론짓지 않는다그러나 미군 자체가 아예 무고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우선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 나온 내용에는 좌우익 양측의 학살이라는 점에 주목했지만중공군과 인민군의 남진 이후 미군이 과연 후퇴시기에 신천을 거쳤는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1950년 7월 노근리에서 미군에 의해 300~400명의 양민이 학살당했던 것을 생각하면미군에 의한 학살 가능성이 후퇴도중 일어났을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신천양민 학살을 미국이 한 것이라 보는 입장은 이런 점에서 맥락적으로 틀리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신천양민 학살의 주체로 지목되는 반공 청년단은 사실상 미국이 지원한 세력이기 때문이며설사 미군 자체가 학살의 배후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들을 지원하는 주체는 미국이기 때문이다적어도 이들을 방조한 책임도 크다고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2년 당시 신천양민 학살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나는 이 학살의 주체가 북한에 숨어 있던 반공 청년단이라 본다사실 반공 청년단의 존재는 맥락적으로 그리 생소하지 않다우선 한국전쟁 시기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친공 포로와 반공포로가 서로 죽고 죽이는 사태가 벌어졌었고양측의 포로 문제는 휴전회담에 큰 장애물이기도 했다또한 북한에서 주장하는 신천양민 학살의 참혹성이나 잔혹성을 따지고 보면제주 4.3 항쟁이나 여순항쟁에서 한국군과 우익 청년단들이 보였던 행위들과 너무나도 일치하는 부분들이 많다거기다 당시 학살에 참여했던 이들 중 월남한 이들은 자신들의 학살 행위에 대해서 제법 많이 증언했다그리고 북한 자체도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다만 주된 주체를 미군으로 설정해놓은 것 뿐이다.

(신천 박물관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 신천 박물관은 1960년대 김일성의 지시로 만들어져 김정일 김정은까지 그 규모를 확장했고, 반미주의 학습을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어쨌든 신천에서는 천인공노할 학살이 이승만 정부 하에서 발생했다필자는 신천양민 학살을 이승만 정부의 북한 통치 기간에 저질러진 우익들의 양민 학살로 생각한다그런 점에서 소위 이승만의 북진통일은 북한 민중에게는 너무나도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본다마지막으로 미군의 잔혹행위에 대해 더 첨언하고 싶다물론 내가 북한이 주장하는 신천에서의 미군에 의한 학살을 다소 부정하는 투로 얘기했지만나는 미군이라면 그러한 짓거리를 저지르고도 남을 주체라 생각한다북한에서 묘사한 신천학살의 참혹성은 실제로 베트남 전쟁 시기 미군이 남베트남에서 벌이던 전형적인 군사작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이들은 민간인의 시체를 베트콩 사살로 처리하고 전과를 과장했다그런 점에서 미제국주의 군대의 잔혹성은 굳이 신천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여러 근거를 통해 입증이 가능하다.

 

신천양민 학살을 저지른 반공 청년단들은 말 그대로 서북청년단과 같은 이들이다이들은 북한에서 그런 끔찍한 학살을 저질렀으며이승만 정부의 북한 점령 2달 동안 수십 만명의 민간인이 무차별 학살당하고 빨갱이로 몰려 죽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신천양민 학살이라는 참혹한 역사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할 역사적 사실은 바로 그 점에 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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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소련의 친선을 강조하는 포스터)

 

북한 정부의 수립 과정을 보면 외형적으로는 동유럽의 인민민주주의 국가 형성과 많은 유사점이 있었다소련군이 해방자를 표방하며 직접 주둔했고소련의 영향력 아래 사회주의자들의 힘이 강화되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은 압박을 받으며 결국 힘이 약화 되었다토지개혁 등 북한의 제반 개혁과 정부 수립 과정에서 소련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이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막상 북한은 이후 동유럽 국가들과 상당히 다른 길을 걸었다국가 형성전쟁전후 경제 복구 등에서 소련에 크게 의존하면서도 북한은 점차 독자 노선을 표방하는 주체의 국가로 부상했다이 차이점은 어디에 연유하는가북한은 위성국가에서 자주국가로 뒤늦게 변모한 것인가아니면 처음부터 자주적인 국가였는가이에 대하여 균형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당시 소련의 동아시아와 북한에 대한 정책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음을 앞서 살펴보았다.

 

소련은 동유럽을 자신의 안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전략지역으로 간주하여 이곳에 소련군의 역향을 대부분 투여한 다음군사력을 바탕으로 점령정책을 실행하면서 소련에 충성하는 국가들을 세우는 데 깊이 개입했다그에 비해 동아시아에 대해서는 가급적 미국 등 다른 연합국에 협조하는 가운데 자신의 국가이익을 보장받는다는 수세적인 자세를 취했다소련의 본래 동아시아 구상은 장제스 국민당 정부에 의해 통일될 중국과의 우호 관계 유지일본 점령에의 동참한반도의 신탁통치 참여 등이었다하지만 그 구상은 중국내전에서 공산당의 승리미국의 일본 단독점령한반도에서 신탁통치에 대한 한국인들의 광범한 반대로 인해 근본적으로 뒤틀렸다결국 동아시아에서 중국대륙의 공상화와 한반도의 분단정부 수립일본의 반공국가화는 소련의 애초 의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동아시아 내부의 혁명 대 반혁명의 충돌과 이에 대응한 미국과 소련의 냉전적 정책으로 인한 것이었다.

 

북한이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으면서도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이게 된 것은 동아시아 내부의 반제국주의 반봉건 국가 건설의 흐름 속에서 국가를 수립했기 때문이었다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소련은 국경을 같이하는 한반도를 포기할 수 없었으며이에 북한 지역을 지배와 수탈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적극적인 원조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소련은 북한 지역에 있던 일본의 공장과 기업소를 전리품으로 간주하는 정책을 버리고중요산업 국유화 조치를 통해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소유임을 확정해주었다그리고 이들 시설의 재가동을 위해 적극적인 원조를 했으며더 나아가 북한 스스로의 군사력 강화엘리트 양성 등에 체계적인 지원을 제공했다. 1949년에 중국혁명이 달성되자 소련은 동아시아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맏형으로 인정해주었으며한국전쟁 때는 직접 개입을 자제하고 중국이 북한을 후원하게 했다스탈린의 사망과 흐루시초프에 의한 스탈린 비판은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 소련의 권위를 실추시켰으며이후 중소분쟁이 발생하면서 북한은 소련과 중국에 대한 등거리 외교3세계와의 관계 확장을 통해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게 된다.

 

이처럼 북한 정부는 소련의 직간접적인 영향력 아래에서 수립되었으나그렇다고 초기 북한을 단순한 위성국가로 볼 수는 없다북한은 동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상대적인 측면에서 자율성을 지녔으며소련은 북한의 든든한 후원국가였다북한 집권층은 소련을 비롯한 국제 공산권의 후원을 받으면서 전후 경제 복구와 사회주의 건설을 할 수 있었으며그 과정에서 주어지는 외압에 대처하면서 1950년대 후반 시점에는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요컨대 1945년부터 1950년대 말까지 북한의 대외관계는 상대적 자율성에서 절대적 자율성으로 자율성을 확장하는 과정이었다.

 

출처북한의 역사 1 p.24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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