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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목을 처음 본 순간 놀랄지도 모른다. 사회 개혁이냐 아니면 혁명이냐? 그렇다면 사회민주주의는 사회 개혁에 반대할 수 있단 말인가? 또는 사회민주주의는 사회혁명, 즉 자신이 최종 목적으로 설정한 현존하는 질서의 전복을 사회개혁에 대립시킬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사회 개혁을 위한, 또 기존의 기반 위에서 노동하는 대중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그리고 민주적 제도를 위한 일상적인 실천 투쟁은 사회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을 지도하며,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임금체계를 폐지한다는 최종 목표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사회민주주의를 위하여 사회 개혁과 사회혁명 사이에는 분리될 수 없는 연관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 개혁을 위한 투쟁은 수단이며, 사회혁명은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두 계기 간의 대립은 베른슈타인의 이론에서 처음 나타난다. 그는 1896/97년에 <새로운 시대>에 발표한 논문 <사회주의의 여러 문제 Probleme des Sozialismus>에서, 그리고 특히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회민주주의의 과제 Die Voraussetzungen des Sozialismus und die Aufgaben der Sozialdemokratie>라는 책에서 이러한 대립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전체 이론은 실천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의 최종 목표인 사회변혁을 포기하고, 반대로 사회 개혁을 계급투쟁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만들라는 충고로 귀결될 뿐이다. “최종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나에게는 항상 무이며, 운동이 전부이다라는 베른슈타인의 말은 가장 적절하고 날카롭게 그의 견해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는 유일한 결정적 요소이다. 즉 그것은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및 부르주아 급진주의와 구별하고, 또 전체 노동운동이 자본주의 질서를 교정하는 한가로운 수선 작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질서에 반대하여 이것을 지양하는 계급투쟁으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유일한 결정적 요소이다. 따라서 베른슈타인이 제기하는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의 문제는 사회민주주의로서는 곧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다. 베른슈타인 및 그의 추종자들과 벌이는 논쟁에서 [이에 대해 당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입장을 결정해야만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저러한 투쟁 방식이나 전술 사용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전체 실존에 관한 것이다.

 

[베른슈타인의 이론을 피상적으로 고찰할 경우, 이러한 이야기는 과장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베를슈타인은 가는 곳마다 사회민주주의와 그 목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 스스로 여러 차례에 걸쳐 거듭 분명하게 자신은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를 단지 다른 형태로 추구하고 있을 뿐이라고 되풀이하지 않는가? 또 현재 사회민주당의 실천을 거의 완전히 인정하고 있다고 확고하게 강조하지 않는가? 물론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옛날부터 이론과 정책의 발전에서 새로운 노선은 비록 내적인 핵심에 있어서 옛것과 완전히 반대될지라도, 옛것에 의지하여 만들어지고, 우선 기존의 형식에 적응하며, 기존의 언어로 말하는 법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비로소 새로운 핵심은 과거의 껍데기를 뚫고 나오며, 새로운 노선은 자신의 형식과 언어를 발견한다.

 

과학적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 처음부터 마지막 결론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본질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또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명백하고 철저하게 부인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면서도 금세기 인간 정신의 가장 거대한 산물인 마르크스 이론에 전쟁을 선포하려는 사람은 분명히 마르크스 이론에 무의식적으로 경의를 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바로 마르크스 이론의 추종자임을 선언하고, 마르크스 이론 안에서 이 이론을 극복하기 위한 발판을 추구하며, 이러한 투쟁이 마르크스 이론의 발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베른슈타인의 이론에 숨겨진 핵심을 밝혀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우리 당의 광범위한 산업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위해 긴급하게 필요한 작업이다.

 

이론적 논쟁이 결국 학자들의 일이라는 주장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가장 저열한 모욕이며 악의에 찬 비방이다. 이미라살(Ferdinand Lassalle)이 말했듯이. 학문과 노동자라는 사회의 대립적 극단이 하나로 통합될 때 비로소 두 가지는 모든 문화적 장애를 자신의 무쇠 팔로 질식시켜버릴 것이다. 현대 노동운동의 전체 힘은 이론적 인식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노동자에게 [이 경우] 이중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운동에서 노동자와 이들의 영향력이기 때문이다. 즉 시장으로 운반되는 것은 바로 노동자 자신의 가죽이기 때문이다. 베른슈타인이 공식화한 당내의 기회주의 조류는 당에 침입한 소부르주아 요소에게 지배권을 주고 소부르주아 정신으로 당의 정책과 목표를 변형시키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일 뿐이다. 사회 개혁과 혁명의 문제, 최종 목표와 운동의 문제는 다른 측면에서 볼 때 노동운동의 소부르주아적 성격이냐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이냐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기회주의와 벌리은 이론적 논쟁을 가장 생생하고 철저하게 파악하는 것이 당내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관심사다. 이론적 인식이 단지 당에 있는 소수 학자들의 특권으로 머물러 있는 한, 당내 프롤레타리아 대중은 항상 길을 잘못 들 위험을 안고 있다. 다수의 노동자 대중 스스로 과학적 사회주의의 날카롭고 확실한 무기를 손에 넣을 때 비로소 모든 소부르주아 경향과 기회주의적 흐름은 사라지고 잊혀질 것이다. 그때 운동은 더 확실하고 굳건한 지반 위에 서게 된다.

 

다수의 대중이 그것을 실행할 것이다

 

1899418일 베를린에서 로자 룩셈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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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제 제1권을 세상에 내놓는 이 책은 1859년에 발간된 내 책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Zur Kritik der politischen Oekonomie)’의 계속이다. 그 책과 이 책 사이에 이처럼 긴 간격이 생긴 것은 몇해 동안 병으로 나의 작업이 거듭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나온 위 책의 내용은 이 책 제1장에 요약되어 있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은 서술의 전후 연결과 완벽을 이루기 위해서뿐 아니라 서술 자체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사정이 허락하는한, 이전의 책에서는 지적하는 데 그친 많은 점들은 이 책에서 더 상세하게 전개했고, 또 반대로 거기에서 상세하게 설명한 점들은 여기에서는 다만 간단하게 지적되어 있다. 가치와 화폐의 학설사에 관한 절들이 여기에서는 완전히 삭제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를 읽은 독자는 이 책 제1장의 주들에서 이 학설사에 관한 새로운 자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첫 부분이 항상 어렵다는 것은 어느 과학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제1, 특히 상품분석이 들어 있는 절을 이해하기가 가장 힘들 것이다. 나는 가치의 실체와 가치량의 분석을 될 수 있는 한 쉽게 했다. 화폐형태로 완성되는 가치형태는 매우 초보적이고 단순하다. 그런데도 인간의 지혜는 2,000년 이상이나 이 가치형태를 해명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한 반면에, 훨씬 더 내용이 풍부하고 복잡한 형태들의 분석에는 적어도 거의 성공했다. 무슨 까닭인가? 발달한 신체는 신체의 세포보다 연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경제적 형태의 분석에서는 현미경도 시약도 소용이 없고 추상력이 이것들을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가 경제적 세포형태다. 겉만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이 형태 분석은 아주 사소한 것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사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작은 것들은 미생물 해부학이 다루고 있는 그런 종류의 작은 것이다.

 

가치형태에 관한 절을 제외한다면, 이 책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이것은 물론 무엇이건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며 따라서 독자적으로 사색하려는 독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물리학자는 자연과정이 교란적인 영향을 가장 적게 받아 가장 명확한 형태로 나타나는 곳에서 그것을 관찰하든가, 또는 가능하다면 그 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조건에서 실험을 한다. 이 책에서 내 연구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 그것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와 교환관계다. 이것들이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나라는 지금까지는 잉글랜드다. 영국이 나의 이론전개에서 주요한 증거가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독일 독자가 누구든지 영국의 공업·농업 노동자들의 형편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든가, 독일에서는 사태가 결토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낙관적으로 자기를 위안하려 한다면, 나는 그에게 이것은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고 외칠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자연법칙들에서 생기는 사회적 적대관계의 발전정도가 높은가 낮은가는 여기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법칙들 자체에 있으며, 움직일 수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작용해 관철되는 이 경향들 자체에 있다. 공업이 더 발달한 나라는 덜 발달한 나라의 미래상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뿐 아니라 독일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완전히 확립되어 있는 곳(예컨데 진정한 공장)에서는, 공장법이라는 규제가 없기 때문에 사태는 영국보다 훨씬 더 나쁘다. 기타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서유럽 대륙의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에 의해서뿐 아니라 그 발전의 불완전성에 의해서도 고통을 받고 있다. 현대의 고통과 아울러 과거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고통(이것은 구태의연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생산방식들의 낡은 사회적·정치적 관계들과 함께 존속하기 때문에 생긴다)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다. 우리는 살아있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죽은 것 때문에도 고통을 받고 있다. 죽은 것이 살아있는 사람들 괴롭히고 있다!

 

독일과 서유럽 대륙 기타 나라들의 사회통계는 영국의 통계에 비하면 형편없다. 그렇디만 이 통계라도 메두사의 대가리가 보일 만큼은 면사포를 걷어 올려주고 있다. 만약 우리 정부와 의회가 영국에서처럼 경제상황에 관한 정기조사위원회를 임명함다면, 만약 이 위원회가 영국에서처럼 진실을 규명할 그런 전권을 가진다면, 그리고 만약 이 목적을 위해 영국의 공장감독관, 공중위생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영국의 의사, 그리고 여성·아동의 착취, 주택·영양 등의 상태를 조사하는 영국의 위원회 위원들과 같은 전문지식이 있고 편견이 없는 공정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태에 깜짝 놀랄 것이다. 페르세우스는 괴물을 추격하기 위해 도깨비감투를 써야 했지만, 우리는 괴물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 위해 도깨비감투를 눈과 귀 밑까지 깊이 눌러쓰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상태에 대해 우리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 미국 독립전쟁이 18세기에 유럽 중산계급에게 경종을 울린 것과 마찬가지로, 19세기에는 미국 남북전쟁이 유럽의 노동자계급에게 경종을 울렸다. 영국에서는 변혁과정이 이미 뚜렷이 보인다.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면 그것은 응당 대륙으로 옮아로 것이다. 대륙에서 변혁과정은 노동자계급 자체의 발전 정도에 따라 동기가 있든 없든, 현재의 지배계급은 노동자계급의 자유로운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 중 법률로 제거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제거하는 것이 자기들의 이익에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이 책에서 영국 공장법의 역사·내용·결과에 매우 많은 지면을 썼다. 어떤 국민이든 다른 국민으로부터 배워야 하며, 또 배울 수 있다. 한 사회가 비록 자기 운동의 자연법칙을 발견했다 하더라도(사실 현대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이 책의 최종 목적이다) 자연적 발전단계들을 뛰어넘을 수도 없으며 법령으로 폐지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사회는 그런 발전의 진통을 단축시키고 경감시킬 수는 없다.

 

있을지도 모를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마디 하겠다. 자본가와 지주를 나는 결코 장밋빛으로 아름답게 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개인들이 문제로 되는 것은 오직 그들이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 일정한 계급관계와 계급이익의 담당자인 한에서다.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발전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내 관점에서는, 다른 관점과는 달리, 개인이 이런 관계들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개인은 주관적으로는 아무리 이런 관계들을 초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그것들의 산물이다.

 

정치경제학 분야의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부닥칠 수 있는 그런 적들과 부닥치는 것만은 아니다. 정치경제학이 취급하는 문제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사람의 감정 중에서 가장 맹렬하고 가장 저열하며 가장 추악한 감정(즉 사리사욕이라는 복수의 여신)이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를 막는 투쟁 마당에 들어오게 된다. 예컨대 영국 국교는 자기의 신앙조항 39개 중 38개를 침해하는 것은 용서할지언정 자기 수입의 1/39을 침해하는 것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낭에는 무신론 그 자체는 기존 소유관계에 대한 비판에 비하면 작은 죄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 한 예로, 최근 몇 주 사이에 발표된 영국 정부 보고서, ‘공업문제와 노동조합에 관한 제국 해외 사절의 보고를 지적하고 싶다. 영국왕의 해외 사절들은 이 보고에서 독일과 프랑스, 요컨대 유럽 대륙의 모든 문명국에서, 자본과 노동 사이의 지금 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분명해지고 잇으며 또 불가피하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대서양 저쪽에서 미국 부통령 웨이드는 공개집회에서 노예제도의 폐지 이후 현재의 자본관계와 토지소유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다음 과제로 되어 있다고 언명했다. 시대의 대세가 이러하므로, 이 대세는 진홍색 망토(왕권)로도 흑색 법의(종교)로도 감추지 못한다. 이것은 물론 내일이라도 기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의 사회가 딱딱한 고체가 아니라 변화할 수 있으며 또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유기체라는 예감이 지배계급 안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의 제2권은 자본의 유통과정(2)과 자본의 총과정의 각종 형태들(3)을 취급하게 될 것이며, 마지막 제3(4)은 경제학설사를 취급하게 될 것이다. 나는 과학적 비판에 근거한 의견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양보한 일이 없는 이른바 여론이라는 편견에 대해서는 저 위대한 플로렌스사람(단테)의 다음과 같은 말이 항상 변함없이 나의 좌우명이다.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1867725, 런던, 카를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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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노동자 정당들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관계, 특히 영국의 차티스트나 북미의 토지개혁파에 대한 관계는 제2장에서 설명한 바에 의해 명백해졌다. 공산주의자는, 노동자계급의 직접 당면하는 목적과 이익을 달성하기 위햇 싸우는 동시에, 현재의 운동 속에서 이 운동의 미래를 대표한다. 프랑스에서 공산주의자는 보수적 및 급진적 부르주아지에 반대하고 사회민주당과 제휴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대혁명의 전통에서 유래하는 문구나 환상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권리는 남겨 두고 있다.

 

스위스에서 공산주의자는 급진파를 지지하는데, 그 당이 서로 모순된 여러 요소로, 이를테면 일부는 프랑스식의 민주사회주의자로 일부는 급진적 부르주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놓치지는 않는다. 폴란드인 사이에서 공산주의자는 토지혁명을 민족해방의 조건으로 하고 있는 당을 지지한다. 이는 1846년의 크라쿠프의 반란을 일으킨 그 당이다.

 

독일에서 공산당은 부르주아지가 혁명적으로 행동할 때에는 부르주아지와 공동으로 절대군주, 봉건적 토지소유자 및 소시민층과 싸운다. 그러나 공산당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와의 적대적인 대립에 대한 가장 명료한 의식을 노동자에게 주입시키려고 잠시도 태만히 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부르주아지의 지배와 함께 초래될 사회적 및 정치적 제조건을 독일의 노동자가 바로 그대로 무기로써 부르주아에 대항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독일에서 반동적 제계급이 쓰러진 뒤에 즉시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는 싸움이 시작되게 하기 위해서다.

 

공산주의자는 독일에 그 주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왜냐하면 독일은 부르주아 혁명의 전야에 있기 때문이며, 게다가 유럽 문명이 대체로 17세기의 영국이나 18세기의 프랑스에 비교해서 보다 진보한 조건하에서 훨씬 발전한 프롤레타리아트로서 그 변혁을 완수하기 위함이며 또한 독일의 부르주아 혁명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서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공산주의자는 어디서나 현존의 사회상태 및 정치상태에 반대하는 모든 혁명운동을 지지한다. 그 모든 운동에 있어서 공산주의자는 그것이 얼마만큼 발전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가와는 관계없이 소유문제를 운동의 근본문제로서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자는 어디서나 모든 나라의 민주적 정당들의 연합과 합의를 위해 노력한다.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숨기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는, 종래의 사회질서 전체를 강력한 힘에 의해 전복하지 않고는 그들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공공연히 언명한다.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 전율케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이 혁명으로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며 얻을 것은 전세계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공산당 선언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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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중국과 소련의 수정주의 논쟁 당시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에 대해 중국에서 낸 논평입니다.)

 

스탈린 문제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로서, 모든 나라의 모든 계급들 사이에서 파문을 일으켜왔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급이 다르고 정당과 분파가 다름에 따라 상이한 관점에서 크게 논쟁 중인 문제이다. 금세기에는 결코 어떤 최종적 평결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국제 노동계급과 혁명적 인민의 대다수 사이에는 실질적인 합의가 있는바, 그들은 스탈린을 완전히 부정하는 데에 반대하면서 그에 대한 기억을 더욱 더 소중히 여기고 있다. 이것은 소련에도 역시 해당된다. 소련공산당 지도자들과의 우리의 논쟁은 인민의 한 부분과의 논쟁이다. 우리는 혁명적 대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그들을 설득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이 글을 쓰는 우리의 목적이다.

 

흐루쇼프 동지가 개인숭배와 싸운다는 구실로 스탈린을 완전히 부정했을 때, 중국공산당은 언제나, 그가 완전히 잘못이며 감추어진 동기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963614일자 편지에서, “개인숭배에 대한 투쟁은 지도자들과 당, 계급, 대중들의 상호관계에 관한 레닌의 일관된 가르침들을 어기는 것이며, 민주집중제라는 공산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은, 원칙에 기초를 둔 우리의 주장들에 대한 어떠한 대답도 회피하고 있고, 단지 중국 공산주의자들을 개인숭배의 옹호자들이자 스탈린의 잘못된 사상을 퍼뜨리는 사람들로 딱지를 붙이고 있을 뿐이다.

 

멘셰비키와 싸울 때, 레닌은 원칙의 문제에 대해 논적의 논증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고, 단지 그 때문에 비애(patho)를 느낀다고 말하는 것은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욕설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자신의 공개서한에서 보여준 태도는 정확히 멘셰비키의 그러한 태도를 닮았다. 그 공개서한은 논쟁 대신에 욕설을 하고 있지만, 우리로서는 원칙에 기초를 둔 논증들과 수많은 사실들로써 그것에 답변하고자 한다.

 

위대한 소련은 최초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국가였다. 처음에는, 이 국가의 당과 정부의 최고 지도자는 레닌이었다. 레닌 사후에는 스탈린이었다. 레닌 사후에, 스탈린은 소련의 당과 정부의 지도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국제공산주의운동의 공인된 지도자로도 되었다. 10월 혁명에 의해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된 지 겨우 46년이 지났다. 이 기간 중 거의 30년 동안 스탈린은 이 국가의 최고 지도자였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역사에서도,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에서도, 스탈린의 활동들은 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스탈린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며 그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단지 스탈린 자체를 평가하는 문제가 아니며, 더욱 중요하게는, 레닌 사후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와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어떻게 총괄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입장을 시종일관 견지해왔다.

 

흐루쇼프 동무는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스탈린을 완전히 부정했다. 그는 전체 국제공산주의 운동과 관계가 있는 이 원칙적인 문제에 관하여 형제당들과 미리 상의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그들에게 기정사실로서 강요하려 하였다. 누구든 소련공산당 지도부와 다르게 스탈린을 평가하는 사람은, 소련공산당의 내부 문제들에 간섭한다는 비난은 물론, “개인숭배를 옹호한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의 역사적인 경험의 구제적 중요성이나, 스탈린이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였다는 역사적 사실의 국제적 중요성이나, 스탈린이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였다는 역사적 사실의 국제적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그 누구도 스탈린에 대한 평가는 전체 국제공산주의 운동과 관련된 중요한 원칙의 문제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소련공산당의 지도자들은 다른 형제당들이 스탈린을 현실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을 금지한단 말인가?

 

중국공산당은 역사유물론적 방법에 의해서 스탈린의 장점과 단점을 종합적이고 객관적·과학적으로 분석할 것과 역사를 실제로 전개된 그대로 설명할 것을 변함없이 주장해왔으며, 역사관념론적 방법에 의해서 스탈린을 주관적이고 조야하게, 완전히 부정하는 데에, 그리고 역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변조하는 데에 반대해왔다. 중국공산당은 시종일관 스탈린도 오류를 범했으며, 그 오류들은 사회·역사적인 뿌리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뿌리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비판할 필요가 있는 것은, 스탈린이 실제로 범한 오류들이지, 근거 없이 그의 탓으로 돌려지는 오류들이 아니며, 그 비판은 올바른 입장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릇된 입장과 그릇된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부당한 스탈린 비판을 시종일관 반대해왔다.

 

레닌 생존 시 스탈린은 차리즘과 싸웠고 맑스주의를 전파했다.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당의 중앙위원회 위원이 된 후에는 그는 1917년 혁명의 길을 닦기 위한 투쟁에 참가했으며, 10월 혁명 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성과들을 방어하기 위해 싸웠다. 레닌 사후 스탈린은, 소련공산당과 소비에트 인민을 이끌고, 내부 및 외부의 적들과 단호히 투쟁했으며,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수호하고 공고히 했다. 스탈린은, 소련공산당과 소비에트 인민을 이끌고, 사회주의적 공업화와 농업집단화 노선을 떠받쳤으며, 사회주의적 변화와 사회주의의 건설에서 거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스탈린은, 소련공산당과 소비에트 인민, 소비에트 군대를 이끌고, 불요불굴의 격렬한 싸움을 하여 반 파시스트 전쟁을 위대한 승리로 이끌었다.

 

스탈린은 다양한 종류의 기회주의에 맞서서, 레닌주의의 적들인 트로츠키파들, 지노비에프파들, 부하린파들과 다른 부르주아의 앞잡이들에 맞서서 맑스-레닌주의를 방어하고 발전시켰다. 스탈린은 불멸의 맑스-레닌주의 저작들인 많은 이론적인 저작들을 집필하면서, 국제 공산주의운동에 지울 수 없는 공헌을 하였다. 스탈린은 전체적으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견지하면서, 중국인민들을 포함한 세계 모든 인민들의 혁명적인 투쟁을 크게 돕는 외교정책을 추구하면서, 소비에트 당과 정부를 지도하였다. 스탈린은 그 투쟁을 지도하면서, 역사의 흐름에서 전면에 서 있었고, 제국주의자들과 모든 반동세력들의 타협할 수 없는 적이었다. 스탈린의 활동은 위대한 소련공산당과 위대한 소련 인민들의 투쟁들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었고, 전 세계 인민들의 혁명적인 투쟁과 분리될 수가 없다.

 

스탈린의 삶은 위대한 맑스-레닌주의자의 삶이자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의 삶이었다. 소비에트 인민들과 국제 공산주의운동을 위해 가치 있는 일들을 수행했지만, 위대한 맑스-레닌주의자이고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인 스탈린은 또한 약간의 실수들도 하였다. 몇 가지는 원칙에서의 오류였고, 몇 가지는 실천적인 사업과정에서 일어난 오류였다. 몇 가지는 회피할 수 있었고, 몇 가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의거할 선례가 없었던 때이기 때문에 거의 회피할 수가 없었다. 그의 사고방식에 있어서, 스탈린은 어떤 문제들에 관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을 벗어나서 형이상학과 주관주의에 빠져들었고, 결과적으로 그는 때때로 현실과 대중들로부터 분리되었다. 당 외부뿐만 아니라 당 내부의 투쟁에서, 몇 가지 경우들과 몇 가지 문제들에 관해서, 성질에서 상이한 두 가지 유형의 모순들, 우리 자신과 적들 간의 모순과 인민들 사이에서 모순을 혼동했고, 그리고 그것들을 다루는데 필요한 상이한 방법들을 또한 혼돈하였다. 반혁명을 진압하는 스탈린에 의해 지도된 사업에서, 처벌당해야 마땅한 많은 반혁명 분자들이 정당하게 처벌되었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릇되게 유죄로 판결된 무고한 인민들이 있었다. 그리고 1937년과 1938년에 억압하는 반혁명 분자들의 범위를 확대하는 오류가 발생하였다. 당과 정부 조직의 문제에서, 그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집중제를 충분히 적용하지 않았고, 어느 정도는 그것을 침해하였다. 형제적인 당들과 나라들과의 관계들을 다루면서, 그는 약간의 실수들을 저질렀다. 그는 또한 국제 공산주의운동에 대해 몇 가지 잘못된 조언을 하였다. 이 실수들은 소련과 국제 공산주의운동에 약간의 손실을 야기했다.

 

스탈린의 공적과 실수들은 역사적이고 객관적 현실의 문제이다. 두 가지를 비교해 보면 그의 공적들이 그의 과실을 압도한다. 그는 일차적으로 올바랐고, 그의 과실들은 이차적이다. 총체로서 스탈린의 사상과 그의 업적을 요약했을 때, 역사를 존중하는 모든 정직한 공산주의자들은 스탈린에게 있어서 일차적이었던 것을 먼저 분명히 관찰할 것이다. 그러므로 스탈린의 오류들이 정확하게 평가되고, 비판되고 그리고 극복되기 위해서는, 스탈린의 생애에서 일차적이었던 것을 수호하는 것, 그가 방어했고 발전시켰던 맑스-레닌주의를 수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지 이차적이었던 스탈린의 오류들이, 소련과 다른 나라들의 공산주의자들이 경계를 하고 그런 실수들을 반복하는 것을 피하고 혹은 실수를 범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역사적 교훈으로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유익할 것이다.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역사의 교휸들 모두가, 그것들이 올바르게 끌어내어지고 역사적 사실들과 부합하고 왜곡되지 않는다면, 모든 공산주의자들에게 유익할 것이다. 레닌은, 맑스주의자들이 베벨과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사람들에 대한 태도에서 제2인터내셔널의 수정주의자들과 전적으로 상이했다는 것을 여러 번 지적했는데, 그 두 사람은 그들의 모든 실수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이었다. 맑스주의자들은 이 사람들의 실수들을 감추지 않았고, 그러한 사례들을 통하여 어떻게 그것들을 회피하고 혁명적 맔스주의의 보다 준엄한 요구들에 맞추어 살 것인가를 배웠다. 이에 비해, 수정주의자들은 베벨과 로자 룩셈부르크의 실수들에 대해 의기양양해 했고그리고 낄낄낄 웃어댔다.” 레닌은 이것을 빗대어 러시아 우화를 인용하였다. “때때로 독수리는 암탉보다도 더 낮게 날 수도 있다. 그러한 암탉은 결코 독수리보다 더 높이 날 수가 없다.” 베벨과 로자 룩셈부르크는 위대한 공산주의자들이었고, 그들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독수리로 남았지만, 수정주의자들은 노동계급운동의 뒷마당에 있는, 똥 무더기 사이에 있는” “암탉들이었다. 베벨과 로자 룩셈부르크의 역사적인 역할은 결코 스탈린의 그것과 비교될 수가 없다. 스탈린은 전 역사 시대에 걸쳐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국제 공산주의운동의 위대한 지도자였고, 그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보다 큰 주의가 필요하다.

 

소련공산당의 지도자들은 중국 공산당을 스탈린을 옹호한다는 죄목으로 고발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스탈린을 강력히 옹호한다. 흐루쇼프가 역사를 왜곡하고 스탈린을 완전히 부정할 때, 자연스럽게 우리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발전을 위해서 전면에 나서서 그를 옹호할 회피할 수 없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스탈린을 옹호함에 있어, 중국 공산당은 그의 올바른 측면을 옹호하고, 10월 혁명에 의해 창조되었던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의 영광스런 투쟁의 역사를 옹호한다. 중국 공산당은 소련공산당의 영광스런 투쟁의 역사를 옹호한다. 중국 공산당은 전 세계에 걸친 근로인민들 사이에서 국제 공산주의운동의 명성을 옹호한다. 간단히 말해서, 중국 공산당은 맑스-레닌주의의 이론과 실천을 옹호한다. 이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은 단지 중국 공산주의자뿐만이 아니다. 모든 공산주의자들은, 맑스-레닌주의에 헌신했고 모든 견실한 혁명가들과 모든 공정한 마음을 가진 인민들은 똑같은 일을 해오고 있다.

 

스탈린을 옹호하면서, 우리는 그의 실수들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오래전에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스탈린의 실수들 몇 가지를 직접 경험하였다. 이러저러한 때에 중국 공산당에서 나타났던 그릇된 좌익과 우익 기회주의 노선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그것들의 국제적인 우너천에 관한 한, 스탈린의 일정한 실수들의 영향하에서 발생했다. 1920년대 후반, 1930년대 그리고 1940년대 초·중반에 마오쩌둥 동지와 류샤오치 동지로 대표되는 중국의 맑스-레닌주의자들은 스탈린의 실수들의 영향에 대해 저항했다. 그들은 점차적으로 그릇된 좌익과 우익 기회주의 노선을 극복하였고 마침내 중국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스탈린에 의해 제기된 잘못된 생각들의 일부가, 몇몇 중국 동지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적용되었기 때문에, 우리 중국인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하여 좌익과 우익 기회주의에 대한 투쟁에서, 우리 당은 단지 잘못을 저지른 우리의 동지만을 비판하였고 스탈린에 대해서는 결코 비난하지 않았다. 우리의 비판의 목적은 올바른 것과 그릇된 것을 구분하고, 적절한 교훈을 배우고, 혁명의 대의를 전진시키는 것이었다. 우리는 오류를 범한 동지들에게 단지 그들이 자신들의 실수들을 교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이 자신들의 실수들을 교정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은밀하고 파괴적인 활동들을 위한 비밀그룹들을 조직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우리는 그들이 자신들의 실천적인 경험에 의해 서서히 깨닫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당 내부의 비판과 자기비판을 적절하게 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우리는 통일을 위한 바람으로부터 출발하였고, 비판과 투쟁을 통하여 새로운 기초 위에서 새로운 통일에 도달하였고, 이리하여 좋은 결과들이 성취되었다. 우리는 이것들이 적들과 우리들 간의 모순이 아니라 인민들 사이의 모순이며, 따라서 우리는 위의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흐루쇼프 동지와 소련공산당의 다른 지도자들은 소련공산당 20차 당대회 이후로 스탈린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가? 그들은 그의 삶과 업적에 대해 종합적으로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하지 않았고, 올바른 것과 그릇된 것 사이의 어떤 구분도 없이 그를 완전히 부정했다. 그들은 스탈린을 동지로서가 아니라 적으로서 다루었다. 그들은 경험을 정리하여 비판과 자기비판하는 방법을 채택하지 않았고, 모든 오류들을 스탈린 탓으로 비난하거나, 자신들이 멋대로 날조한 실수들을 스탈린의 탓으로 돌렸다. 그들은 사실들과 사리에 맞는 일들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인민들의 마음에 독을 주입하기 위해, 스탈린에 대한 악선동과 인신공격을 하였다. 흐루쇼프는 스탈린을 살인자”, “범죄자”, “강도”, “도박꾼”, “무시무시한 이반과 같은 유형의 폭군”, “러시아 역사에서 최대의 독재자”, “바보”, “멍청이등등으로 욕설을 하였다. 우리가 이 모든 더럽고, 상스럽고, 악의적인 언어를 어쩔 수 없이 인용할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펜과 종이를 더럽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흐루쇼프는 스탈린을 러시아 역사에서 최대의 독재자라고 욕설을 하였다. 이것은 소비에트 인민이, 30년의 긴 세월 동안 사회주의 체제하에서가 아니라 러시아 역사에서 최대의 독재자폭정하에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위대한 소비에트 인민과 전 세계의 인민은 이 중상모략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흐루쇼프는 스탈린이 무시무시한 이반과 같은 휴형의 폭군이라고 욕설을 하였다. 이것은 전 세계 인민들에게 30년 동안 제공되었던 위대한 소련공산ㄷ앙과 위대한 소비에트 인민의 경험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경험이 아니라, 봉건적인 폭군의 지배하에서의 삶의 경험이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위대한 소비에트 인민, 소비에트 공산주의자들과 전 세계의 맑스-레눈주의자들은 이 중상모략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흐루쇼프는 스탈린이 바보라고 욕을 하였다. 이것은 바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영웅적인 혁명 투쟁을 수행했던 소련공산당이 바보를 지도자로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소비에트 공산주의자들과 전 세계의 맑스-레닌주의자들은 이 중상모략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흐루쇼프는 스탈린이 멍청이라고 욕을 하였다. 이것은 바로 반파쇼 전쟁에서 승리하였던 위대한 소비에트 군대가 멍청이를 최고 사령관으로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영광스런 소비에트 사령관들과 전사들 그리고 세계의 모든 반파쇼 전사들은 이 중상모략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흐루쇼프는 스탈린이 살인자라고 욕을 하였다. 이것은 바로 국제 공산주의운동이 살인자를 수십 년 동안 선생으로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소비에트 공산주의자들을 포함한 전 세계의 공산주의자들은 이 중상모략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흐루쇼프는 스탈린을 도박꾼이라고 욕을 하였다. 이것은 바로 혁명적 인민들이 도박꾼을 제국주의와 반동에 맞선 투쟁에서 자신들의 기수(standard bearer)로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소비에트 인민을 전 세계의 혁명적 인민은 이 중상모략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흐루쇼프의 스탈린에 대한 그러한 욕지거리는 위대한 소비에트 인민에 대한 총체적 모욕이고, 소련공산당에 대한 총체적 모욕이고, 소련 군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체제, 국제 공산주의운동, 전 세계 혁명적 인민들과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총체적인 모욕이다. 흐루쇼프가 자신의 가슴을 치고 탁자를 두드리고, 목소리를 최대로 높여서 스탈린을 비방할 때, 스탈린의 시대 동안 당과 국가의 지도부에 참여했단 흐루쇼프는 자신은 과연 어떤 처지에 있는가? “살인자혹은 강도와 공범자의 처지인가? 아니면 바보혹은 멍청이로서 똑같은 처지인가?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그렇게 비방하는 것과, 제국주의자들, 여러국가들의 반동들, 공산주의의 배신자들이 비방하는 것과 어떤 차이점이 있단 말인가? 왜 스탈린에 대한 그러한 고질적인 증오를 하는가? 왜 당신은 적에게 하는 것보다도 더 사납게 그를 공격하는가? 스탈린을 비방하면서, 흐루쇼프는 사실상 소비에트 체제와 국가를 거칠게 탄핵한다. 이와 관련된 그의 언어는, 카우츠키, 트로츠키, 티토와 드질라스와 같은 배신자들의 언어보다 결코 약하지 않고 사실상 더 강하다.

 

인민들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안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인용해야 하고, 흐루쇼프에게 질문해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위대한 레닌의 당에 관하여, 사회주의 조국에 관하여,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어떻게,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고 국제적인 제국주의와 국내의 반혁명에 맞선 격렬한 전투들에서 위대한 성과를 쟁취했고,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 속에서 영웅주의와 헌신의 기적을 보여주고 있고 전 세계 근로인민들에게 자신들의 국제주의적 의무를 성실하게 충족시키고 있는 인민에 관하여,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레닌은 비방의 정치적 의미라는 자신의 논문에서 말하기를, “정치에서 비방은 종종 비방하는 사람의 사상적인 내용의 완전한 결여, 무력함과 무능, 짜증을 내는 무능을 은폐한다.” 이것은 바로 끊임없이 스탈린의 유령에 사로잡혔다고 느끼면서, 스탈린을 비방하는 것에 의해, 자신들이 총체적으로 원칙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과, 자신들의 무력함과 짜증내는 무능력을, 은폐하려 시도하는 소련공산당의 지도자들에 적용되지 않는가? 소비에트 인민들의 대다수는 스탈린에 대한 그러한 비방을 승인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탈린에 대한 기억을 더욱 더 소중히 한다. 소련공산당의 지도자들은 자신 스스로를 대중들로부터 심각하게 고립시키고 있다. 그들은 마음속에 떠오르는 스탈린이라는 유령에 의해 항상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있다고 느끼는데, 그 유령은 사실은 스탈린을 완전히 부정한 것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들의 커다란 불만이다. 지금까지 흐루쇼프는 소비에트 인민들과 사회주의 진영의 다른 인민들이 소련공산당 20차 대회에서 그가 보고했던 스탈린을 완전히 부정하는 비밀 보고서를 보는 것을 감히 허용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그 비밀 보고서가 대낮의 햇빛을 견딜 수 없고 대중들을 심각하게 배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스탈린을 비방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소련공산당의 지도자들이 아이젠하워, 케네디 같은 사람을 존경과 신뢰를 가지고대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스탈린을 무시무시한 이반과 같은 유형의 폭군”, 그리고 러시아 역사에서 최대의 독재자로 비방하지만, 아이젠하워와 케네디 두 사람 모두를 미국 인민들의 절대적 다수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라고 찬사를 보낸다! 그들은 스탈린을 멍청이로 비방하지만, 아이젠하워와 케네디를 분별력이 있다고 칭찬한다. 그들은 한 손으로는, 위대한 맑스-레닌주의자,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국제 공산주의운동의 위대한 지도자에게 사악하게 매질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제국주의의 왕초들을 하늘 높이 추켜세운다. 이 현상들 사이의 관계가 단지 우연적이고, 그것이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배신으로부터 나오는 필연적 논리를 따라가고 있지 않다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가?

 

자신의 기억력이 너무 나쁘지 않다면, 흐루쇼프는 19371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되었던 대중 집회에서, 스탈린을 공격했던 사람들에 대해 그 자신이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비판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스탈린 동지를 반대하여 그들이 손을 들었을 때, 그들은 우리 모두를 반대하여, 노동계급과 근로인민들을 반대하여 손을 들었다! 스탈린 동지를 반대하여 손을 들었을 때, 그들은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의 가르침들에 반대하여 손을 들었다!” 흐루쇼프 스스로 스탈린을 위대한 레닌의 친밀한 친구이자 전우로서, “인류의 가장 위대한 천재, 선생 그리고 지도자로서, “위대한 그리고 불패의 최고 사령관으로서, “인민들의 진실한 벗으로서, 자신의 아버지로서 되플이하여 격찬했다.

 

스탈린이 살아 있을 때 흐루쇼프가 했던 언급들과 스탈린 사후에 흐루쇼프가 했던 언급들을 비교해보면, 스탈린에 대한 그의 평가에서 흐루쇼프가 180도 달라졌다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기억력이 너무 나쁘지 않다면, 흐루쇼프는 스탈린이 지도하는 기간 동안 반혁명분자들을 진압하는 데 있어서 당시 널리 행해지고 있던 정책을 그 자신이 유별나게 정력적으로 지지하고 수행하였다는 것을 물론 기억해야만 한다. 193766, 모스크바 지방 당 5차 회의에서, 흐루쇼프는 선언했다. 우리 당은 반역자들과 배신자들의 무리를 무자비하게 분쇄할 것이고, 모든 트로츠키주의자 우익 쓰레기들을 쓸어 버릴 것이다. 이것을 보장하는 것은 우리 중앙위원회의 흔들리지 않는 지도력, 우리의 지도자 스탈린 동지의 흔들리지 않은 지도력이다. 우리적들을 마지막 한 명까지 완전히 절멸시키고 그들의 재를 바람에 날려버릴 것이다.

 

193868, 키예프 지방 당 4차 회의에서, 흐루쇼프는 선언했다. 야키르들(Yakyirs), 발라츠키들(Balyitskys), 류브첸키들(Lyubchenkys). 쟈톤스키들(Zatonskys)과 다른 인간쓰레기는 폴란드 지주들을 우크라이나로 불러들이기를 원했고, 독일 파시스트들, 지주들과 자본가들을 여기로 불러들이기를 원했다. 우리는 상당히 많은 적들을 절멸시켜왔지만, 아직 모든 적들을 절멸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을 계속 뜨고 있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국들의 포위가 존재하는 한, 간첩들과 파괴 행위자들이 우리의 조국에 침투할 것이라는 스탈린 동지의 언급을 확실히 명심해야 한다.

 

스탈린 시대 동안 당과 국가의 지도부에 있었고 반혁명분자들을 진압하기 위한 정책을 정력적으로 지지하고 단호하게 실행했던 흐루쇼프가, 왜 이 기간 동안 이루어진 모든 것을 부인하고, 스스로는 책임을 전적으로 회피하면서, 모든 오류들에 대한 비난을 스탈린에게만 전가시키고 있는가? 스탈린이 몇몇 오류를 범했을 때, 그는 자신을 비판할 줄 알았다. 예를 들어, 그는 중국 혁명에 관하여 약간의 잘못된 충고를 했다. 중국 혁명이 성공하고 난 후, 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스탈린은 또한, 1939년 소련공산당 18차 당 대회에서 행한 자신의 보고에서 당의 대오를 정화하는 작업에 있어서, 자신의 실수 몇 가지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흐루쇼프는 어떠한가? 그는 단적으로 자기비판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가 한 모든 일은, 모든 비난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고, 자신에게는 완전한 신뢰를 요구하는 것이다.

 

현대 수정주의가 날뚜기 시작했을 때, 흐루쇼프의 이러한 추한 행동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1915년에 레닌이 제2인터내셔널의 수정주의자들을 맑스주의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판했을 때 말했던 것처럼. 이것은 말들이 잊혀지고, 원칙들이 상실되고, 철학들이 내던져지고, 결의와 엄숙한 약속들이 폐기되는 이 시대에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소련공산당 20차 당대회 이후의 일련의 사건들이 충분히 보여준 것처럼,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의한 스탈린에 대한 완전한 부정은 지극히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것은 제국주의자들과 모든 나라들의 반동들에게 몹시 환영을 받았고, 소비에트와 공산주의를 공격하는 실탄을 제공하였다. 20차 당 대회가 지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국주의자들은 소련과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전 세계적인 물결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흐루쇼프의 반스탈린 비밀 보고서를 이용하였다. 제국주의자들, 모든 나라의 반동들, 티토 도당과 다양한 종류의 기회주의자들은 소련과 사회주의 진영 그리고 공산당들을 공격할 기회를 재빨리 움켜잡았다. 이리하여 많은 형제 당들과 국가들은 심각한 어려움에 놓이게 되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스탈린에 반대하는 광란의 캠페인은, 오랫동안 정치적인 송장이었던 트로츠키파들이 다시 부활하여 트로츠키의 복권을 떠들어대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196111, 소련공산당 22차 당대회가 종결되던 때에, 소위 제4인처내셔널의 국제 사무국은 소련공산당 22차 당대회와 당의 새로운 중앙위원회로 편지를 보내서, 1937년에 트로츠키가 스탈린에게 희생된 자들의 명예를 위해 기념물이 세워질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오늘날, 이 예언은 실현되었다. 당신들의 당대회 전에 당신들의 당의 제 1서기는 이 기념물의 건립을 약속하였다.”라고 편지는 계속된다. 이 편지에서 트로츠키의 이름이, “스탈린에게 희생된 자들의 명예를 위해 세워진 기념물에 금으로 된 글자로 새겨져야 한다는 특정한 요구가 나왔다. 소련공산당 지도자들에 의해 시작된 반스탈린 운동은 트로츠키주의를 위한 문을 개방하였고”, “트로츠키주의의 전진과 그 조직 제4 인터내셔널을 크게 돕는다라고 선언하면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즐거움을 감추지 않았다.

 

스탈린을 완전히 부정하는 데에 있어서, 소련공산당 지도자들은 대낮의 햇빛을 견딜 수 없는 동기들이 있다. 스탈린은 1953년에 죽었다. 3년 후 20차 당대회에서 소련공산당의 지도자들은 그를 격렬하게 공격하였고, 그리고 그가 죽은 지 8년 후 22차 당대회에서 또 다시 그를 격렬하게 공격하였으며, 그의 시체를 제거하고 불에 태웠다. 스탈린에 대한 격렬한 공격을 반복하면서, 소련공산당의 지도자들은 소련 인민과 전 세계에 걸친 이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의 지워질 수 없는 영향력을 지워버리고, 스탈린이 옹호하고 발전시켰던 맑스-레닌주의를 부정하고 수정주의 노선을 전면적으로 적용하는 길을 닦으려는 목표를 세웠다. 그들의 수정주의 노선은 정확하게 20차 당대회와 함께 시작되었고, 22차 당대회에서 완전히 체계화되었다. 제국주의, 전쟁과 평화,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식민지와 반식민지에서의 혁명, 프롤레타리아 당 등에 관한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그들의 수정이, 스탈린에 대한 그들의 완전한 부정과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사실들은 더욱 더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스탈린을 완전히 부정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바로 개인숭배와 싸운다는구실하에서이다. “개인숭배에 반대하는 전투를 시작하면서, 소련공산당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말하는 당 생활과 지도 원칙들의 레닌주의적인 기준들이라고 불렀던 것을 전혀 회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그들은 지도자들, , 계급 그리고 대중들의 상호관계에 관한 레닌의 가르침들을 침해하고 있고, 당에서의 민주집중제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맑스-레닌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인 당이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사령부로서 진정으로 봉사하고자 한다면, 그 당은 지도자들, , 계급 그리고 대중들의 상호관계를 올바르게 다루어야하고, 민주집중제의 원칙 위에서 조직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당은 매우 견고한 지도력의 핵을 가져야만 하는데, 그것을 맑스-레닌주의의 보편적 진리를 구체적 혁명적 실천과 통합시키는 데 능숙한, 오랜 기간 검증된 지도자들의 그룹으로 구성되어야만 한다. 중앙위원회의 성원들이든지 아니면 지방위원회의 성원들이든지 간에, 프롤레타리아 당의 지도자들은 계급투쟁과 대중적인 혁명운동의 과정에서 대중들로부터 출현한다. 그들은 대중들에게 한없이 충성스럽고, 대중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대중들의 생각들을 정확하게 응축하고 그러고 나서 그것들을 끝까지 실행해 나가는 데 능숙하다. 그러한 지도자들은 프롤레타리아의 진정한 대표자들이고 대중들에 의해 인정을 받는다. 프롤레타리아 당이 그러한 지도자들을 가진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당의 정치적 성숙의 표시이고, 여기에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의를 위한 승리의 희망이 놓여 있다. “역사에서 어떠한 계급도, 운동을 조직하고 이끌 수 있는 자신의 정치적 지도자들, 자신의 뛰어난 대표자들은 만들어내지 않고는 권력을 획득한 적이 없었다라고 레닌이 말했을 때, 그는 절대적으로 올바랐다.

 

그는 또한 말하기를 경험 많고 가장 영향력이 있는 당의 지도자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장기간에 걸친 힘든 과업이다. 그러나 이것이 없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프롤레타리아의 의지의 통일은 공문구로 남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역사에서 대중들과 개인의 역할에 대한 그리고 지도자들, , 계급 그리고 대중들의 상호관계에 관한 맑스-레닌주의의 가르침들을 항상 고수해왔고, 당에서 민주집중제를 지켜왔다. 우리는 항상 집단적인 지도력을 유지해왔다. 동시에 우리는 지도자들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데 반대한다. 우리는 지도자들의 이러한 역할에 중요성을 부여하면서도, 개인들에 대한 부정직하고 과도한 찬사와 그들의 역할에 대한 과장에는 반대한다. 194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자면, 마오쩌둥 동지의 제안에 의거해,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당 지도자들의 생일에 대한 어떤 종류의 공적인 축하도,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따서 장소들, 거리들이나 기업들의 작명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들의 이 일관되고 정확한 접근은, 소련공산당의 지도부에 의해 주창된 개인숭배에 반대하는 전투와는 근본적으로 상이하다. “개인숭배에 반대하는 전투를 주창함에 있어서, 소련공산당의 지도자들은 그들 스스로 주장하듯이,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집단적 지도력을 실천하고 개인의 역할에 대한 과장에 반대하는 의도가 없으며, 오히려 숨은 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점점 명백하게 되었다. 그들의 개인숭배에 반대하는 전투의 요점은 정확하게 무엇일까? 솔직하게 그것을 제기하자면, 그것은 단지 다음의 내용일 뿐이다.

 

개인숭배에 반대하는 전투를 구실로, 당의 지도자인 스탈린을 당 조직, 프롤레타리아트 그리고 인민대중들과 대립시키는 것.

 

2. “개인숭배에 반대하는 전투를 구실로, 프롤레타리아 당,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 체제를 더럽히는 것.

 

3. “개인숭배에 반대하는 전투를 구실로, 그들의 입지를 세우고, 그리고 수정주의 음모가들이 당과 국가의 지도부를 찬탈하기 위한 길을 닦기 위하여, 맑스-레닌주의에 충실한 혁명가들을 공격하는 것.

 

4. “개인숭배에 반대하는 전투를 구실로, 형제 당들과 국가들의 내정에 간섭하고, 그리고 그들의 지도부를 파괴하여, 그들 자신에 적합하도록 하는 것.

 

5. 그리고 개인숭배에 반대하는 전투를 구실로, 맑스-레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형제 당들을 공격하고, 국제 공산주의운동을 분열시키는 것.

 

흐루쇼프가 시작한 개인숭배에 반대하는 전투는 비열한 정치적 음모이다. 맑스에 의해 묘사된 누군가처럼, “그는 이론가로서는 보잘 것 없지만, 음모가로서는 뛰어나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은 개인숭배를 거부하고 개인숭배의 결과물들과 싸우면서”, 그들이 합당한 명성을 향유하는 지도자들에 대한 높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진술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바로 스탈린을 발밑에 두고 짓밟는 동안, 소련공산당의 지도자들이 흐루쇼프를 하늘 높이 찬양하는 것을 의미한다. 10월 혁명의 시기에는 아직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고, 그리고 내전 동안 낮은 등급의 정치 일꾼이었던 흐루쇼프를, 그들은 정력적인 붉은 군대의 창조자로 묘사한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흐루쇼프의 목소리가 아주 빈번하게 들렸고그리고 그가 스탈린그라드 주민들의 영혼이었다고 말하면서, 소비에트 애국전쟁의 결정적인 전투에서의 위대한 승리를 전적으로 흐루쇼프의 덕택으로 돌린다.

 

그들은 핵무기들과 로켓공학에서의 위대한 업적들을 전적으로 흐루쇼프의 덕택으로 돌리면서, 그를 우주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제조에 있어 소련의 성공은 스탈린의 지도하에 있었던 소비에트 과학자들과 기술자들 그리고 소비에트 인민들의 위대한 업적이다. 로켓공학의 토대는 역시 스탈린의 시대에 마련되었다. 어떻게 이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이 지워질 수 있겠는가? 어떻게 모든 명성이 흐루쇼프에게 주어질 수 있단 말인가? 맑스-레닌주의의 근본적인 이론을 수정했고, 레닌주의는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주장하는 흐루쇼프를, 그들은 맑스-레닌주의 이론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키고 풍부하게 한 찬란한 모델로 찬양한다.

 

소련공산당의 지도자들이 개인숭배와의 전투라는 구실하에 하고 있는 행동들은 정확하게 레닌이 다음과 같이 말했던 바와 같다. 보통의 문제들에 대해 보통 사람들의 견해들을 가진 옛 지도자들을 대신하여, 새로운 지도자들은 제기하는데 그들은 불가사의한 허튼소리와 혼란을 말한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은 맑스-레닌주의를 고수하는 우리의 입장을 비방하는데, 우리가 개인숭배의 시기 동안 번성했던 사물의 질서, 이데올로기와 도덕들, 지도력의 형식과 방법들을 다른 당들에게 강요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이 언급은 다시금 개인숭배에 반대하는 전투의 어리석음을 폭로한다.

 

소련공산당의 지도자들에 의하면, 10월 혁명이 러시아에서 자본주의를 끝장낸 후, “개인숭배의 시기가 이어졌다고 말한다. 마치 그 시기의 사회체제이데올로기와 도덕이 사회주의가 아닌 것 같이 말한다. 그 기간에, 소비에트의 근로인민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고, “인민들의 삶에 독이 되었던 두려움, 의심, 불확실함의 분위기가 만연했고, 소비에트 사회는 발전을 방해받고 있었다고 말한다. 1963719일 소련-헝가리 친선 집회에서의 연설에서, 흐루쇼프는, 스탈린은 도끼를 가지고 권력을 유지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스탈린의 테러지배라고 불렀던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들로 그 시대의 사회질서를 묘사했다. “그 시대에는, 출근하는 사람이 집으로 되돌아올지,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를 알지 못했다.”

 

소련공산당 지도자들의 묘사에 의하면, “개인숭배의 기간의 사회는 봉건제나 자본주의 시기보다도 더 적대적이고그리고 야만적인시기였다.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따르면, 10월 혁명의 결과로 수립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체제는 수십 년 동안 근로인민들에 대한 억압을 제거하는 데도, 소비에트 사회의 발전을 가속화시키는 데도 실패했다. 소련공산당 20차 당대회가 개인숭배에 반대하는 전투를 수행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근로인민들에게서 무거운 짐이 제거되었고, “소비에트 사회의 발전이 갑작스럽게 가속화되었다. 흐루쇼프는 말했다. “! 스탈린이 단지 10년만 더 일찍 죽었더라면!”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스탈린은 1953년에 죽었다. 10년 더 일찍이라면 1943년일 텐데, 1943년은 소련이 위대한 애국전쟁에서 반격을 시작했던 때인 바로 그 해이다. 그 당시에 스탈린이 죽기를 원했던사람은 누구였는가? 히틀러!

 

맑스-레닌주의의 적들이 프롤레타리아 지도자들을 헐뜯고, “개인 숭배에 반대하는 전투와 같은 그러한 슬로건을 사용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의 대의를 침식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국제 공산주의운동의 역사에서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인민들이 오래전부터 보아온 더러운 속임수이다. 1인터내셔널의 시기 동안 음모가 바쿠닌을 맑스를 욕하기 위해 유사한 언어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맑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접근해서, 맑스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당신의 제자이고 나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중에 그가 제1인터내셔널의 지도부를 찬탈하는 음모에 실패했을 때, 그는 맑스를 비방하며 말했다. “독일인과 유대인처럼, 맑스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권위주의적이고 독재자이다.

 

2인터내셔널 시기 동안 배신자 카우츠키는 레닌을 욕하기 위해 유사한 언어를 사용했다. 그는 레닌을 중상햇으며 레닌을, 맑시즘을 국가의 종교뿐만 아니라 중세나 동양의 신앙의 지위로까지격하시킨 일신교 신자들의 신에다 비유했다. 3인터내셔널에서 배신자 트로츠키는 스탈린을 욕하기 위해 그러한 언어를 유사하게 사용했다. 그는 스탈린이 전제 군주이고 그리고 스탈린주의 관료제가 혐오스런 지도자 숭배를 창조했고, 지도자들에게 신성한 자질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현대의 수정주의 티토 도당은 스탈린을 욕하기 위해 유사한 말들을 역시 사용하는데, 스탈린이 절대적인 개인권력의 체제에서” “독재자였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의해 제기된 개인숭배에 반대하는 전투라는 쟁점은 바쿠닌, 카우츠키, 트로츠키 그리고 티토를 통해 전해져 내려 왔는데, 그들 모두는 프롤레타리아 지도자들을 공격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을 침식하기 위해 그것을 사용했다. 국제 공산주의운동의 역사에서, 기회주의자들은 중상에 의해 맑스, 엥겔스나 레닌을 부정할 수가 없었고, 흐루쇼프 역시 중상에 의해 스탈린을 부정할 수가 없다. 레닌이 지적했듯이, 특권적인 지위가 중상의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흐루쇼프는 레닌 묘로부터 스탈린의 시체를 제거하기 위해 그의 특권적인 지위를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록 그가 시도할지라도, 그는 소비에트 인민과 전 세계의 인민의 마음속으로부터 스탈린의 위대한 이미지를 제거하는 데에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흐루쇼프는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맑스-레닌주의를 수정하기 위해 그의 특권적인 지위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그가 시도할지라도, 그는 스탈린이 옹호했고 전 세계의 맑스-레닌주의자들이 옹호했던 맑스-레닌주의를 타도하는 데에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우리는 흐루쇼프 동지에게 진실한 충고 한 마디를 하고 싶다. 우리는 당신이 당신의 오류를 깨닫고, 잘못된 길에서 맑스-레닌주의 길로 되돌아오기를 바란다.

 

맑스, 엥겔스, 레닌, 그리고 스탈린의 위대한 혁명적 가르침들, 만세!

 

1963913일 중국 인민일보(People’s Daily)와 홍기(Red Flag)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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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 지음, 최호정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2월
평점 :
절판


이번에 세미나를 하면서 레닌이 쓴 무엇을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 Что делать)’ 읽었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지만 다른 사회주의 원전들이 혼자서 공부하기는 좀 어렵듯이 레닌이 쓴 무엇을 할 것인가도 쉽지 않은 책이기에, 이번에 노정협에서 하는 세미나에서 같이 공부하게 됐다. 솔직히 공부하면서 어렵긴 했지만, 다를 사람들과 같이 공부하니 그래도 좀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 즉 레닌을 공부할 수 있었던 참으로 뜻 깊은 일이었다.

 

필자와 같은 또래인 20대 중에는 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의 이름조차 모르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심지어 명문대를 나온 이들 중에도 위대한 사상가의 이름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내 또래 중에는 꽤 있다. 이처럼 현실 사회주의 소련의 해체는 80년대 운동권의 몰락과 더불어 대학생들의 사상적 비무장화를 제도적인 틀 아래 자생적으로 창설했다. 이 때문에 20~30년이 지난 현재의 대학생들은 사회주의를 공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아래 살며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 적응하여 돈 많이 벌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실천적인 변혁 행동에는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동으로 집필한 독일 이데올로기 초반 부분을 보면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세계를 해석해 오기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것은 철학이란 한 가지 사물이나 세계를 해석하는 것만이 아닌, 그 사물과 세계에 존재하는 모순적 구조를 변혁하는 게 더 핵심적이라는 얘기다. 그렇다. 철학을 비롯하여 우리가 다른 여러 가지를 공부하는 이유는 세상을 변혁하고 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바지하기 위함에 있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가 마르크스와 레닌 그리고 사회주의를 학습하는 데는 여기에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필자가 읽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이 집필한 제국주의론(Imperialism the highest rank of Capitalism)’, ‘국가와 혁명(States and the Revolution)’과 더불어 레닌의 3대 주요 저작 중 하나다. 또한 이 저작은 당시 레닌이 존경했던 러시아의 급진적 민주주의자인 체르니셰프스키의 동명 소설과 같은 제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레닌이 집필한 무엇을 할 것인가는 20세기가 시작되던 1901년에 집필됐고, 1902년에 출판되었다는 점에서 3대 저작 중 가장 먼저 나온 책이기도 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이 가장 주요하게 비판하는 대상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당 안에 있는 소위 에뚜아르트 베른슈타인류의 경제주의자들이다. 이들이 발행하는 신문 중 하나인 노동자의 대의에 대한 레닌주의의 비판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아주 날카롭게 비판된다. 레닌은 이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증하는 빈곤과 프롤레타리아트화와 자본주의적 모순의 심화 등의 사실을 부정한다는 데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쉽게 말해 자본주의적 모순속에서 나타나는 민중의 프롤레타리아트화를 소위 개량주의적 성향을 가진 경제주의자들이 사회주의의 원칙을 부정하고 있고, 이것이 사회주의 혁명에 해가된다고 판단했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그 시기 러시아와 국제 사회민주주의 내에서 화해할 수 없는 두 가지 경향이 형성되어 있음을 분석하고, 맑스주의를 수정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꾸어 국제적 노동운동을 소위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를 침투시키는 기회주의적 경향의 본질을 소위 러시아의 경제주의자가 독일의 베른슈타인주의, 프랑스의 말레랑주의, 영국의 노동조합주의등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따라서 레닌은 이런 기회주의적 조류를 극복해야 하고, 이들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마르크스주의 혁명당이 승리할 수 없음을 책에서 밝힌다.

 

사실 이러한 레닌의 주장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운동권에도 어떤 면에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운동권의 현실은 대체로 경제투쟁에 집중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가 현대사회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복지가 예전보다 좀 더 갖추어진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이기 이전에 마르크스가 가장 싫어했던 개량주의의 일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는 복지가 발달했더라도 기업단위의 이윤추구를 봉쇄함으로서 개개인의 상호경쟁 등을 불필요하게 만든 생산양식 즉 사적소유의 철폐로 이어진 사회는 절대 아니다. 이것은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복지가 좋은 북유럽 또한 마찬가지다. 즉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시위는 경제투쟁에 기반한 부분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투쟁 자체가 의미가 없고 아예 중단해야 할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재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현실도 분명 반영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통해 혁명적 실천력을 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레닌의 무엇을 할것인가?’를 보면 엥겔스는 사회민주주의 투쟁의 커다란 형태로 두 가지(졍치 투쟁과 경제 투쟁)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즉 그 둘과 나란히 이론 투쟁도 인정한다. 여기서 레닌은 엥겔스가 쓴 독일 농민 전쟁이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독일 사회의 예를 들었다. 그러면서 레닌은 엥겔스의 말이 예언되었다고 하며 몇 년 뒤 독일의 비스마르크 정권은 소위 사회주의자 특별법을 제정하여 독일 노동자들은 중대한 시련을 겪었었는데, 독일의 노동자들은 이에 준비했고 결국 승리하여 사회주의자 특별법을 폐지함으로써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던 점을 강조했다. 솔직히 제1장에 나온 이 장면은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오버랩됐다. 여기서 레닌의 주장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 앞에는 이보다 더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시련이 놓여 있다. 괴물과의 투쟁이 그들 앞에 놓여 있으니, 입헌 국가의 특별법이라는 것은 이 괴물에 비하면 그야말로 난장이에 불과하다. 이제 역사는 우리에게 당면 임무를 제기했다. 그것은 다른 어떤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당면 임무보다도 혁명적인 것이다. 이 임무를 실행한다면, 즉 유럽의 반동의 가장 강고한 보루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반동(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의 가장 강고한 보루이기도 한 것을 파괴한다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가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70년대 우리의 선각자들과 같은 헌신적인 결의와 열정으로 그보다 천만 배 더 넓고 깊은 우리 운동을 고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선각자들, 70년대의 혁명 운동가들이 이미 얻은 바 있는 그 영예로운 칭호를 우리가 획득하리라 기대해도 될 것이다.”

 

출처 : 무엇을 할 것인가? p.34~35

 

이걸 또 한국의 현실에 반영하자면, 경제투쟁과 정치 투쟁 뿐만 아니라 이론적 투쟁을 통한 실천도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즉 노동운동과 더불어 사상적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투쟁과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위에 반대하는 투쟁도 노동계급의 의무로서 실천돼야 하는 사안이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투쟁을 목표로도 삼아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바로 레닌이 쓴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통해 얻어야할 결론이다.

 

사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당시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당 안에서의 역사적 맥락을 모르면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책이다. 솔직히 어떤 러시아 사람이 현재 대한민국의 여러 사회주의 단체들의 논쟁과 대립 그리고 단체와 사상적 경향을 전반적으로 깊게 이해하는 것은 힘들 듯이, 우리 또한 마찬가지라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운동권 경향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 기본적으로 레닌이 주장하는 사상적 맥락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레닌이 쓴 무엇을 할 것인가?’는 앞으로도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변혁적 실천을 이루고자 하는 인물들에게 분명히 많은 것을 가르쳐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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