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일기 - 우크라이나의 눈물
올가 그레벤니크 지음, 정소은 옮김 / 이야기장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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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를 옹호할 이유를 못 느끼겠습니다. 네오나치 아조프가 학살한 것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가, 전쟁 터지고 나서 혐러주의를 퍼뜨리는게 옳은 일인가요? 전 이 책 논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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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3-07-16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군더나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들이 오데사에서 노동자들을 집단학살하고,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노동법을 개악시켜(노동조합 권리 축소 및 박탈 + 노동자의 임금 지불 및 해고 여부를 고용주가 마음대로 결정) 노동자들을 비국민 취급하는 것을 보면...!
 
호찌민 시집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호찌민 지음, 안경환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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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의 시를 읽으며

대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구경하던 중, 안경환이 번역한 <호찌민 시집>을 찾았다. 몇년 전 같은 저자가 번역한 <옥중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옥중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2년 8월부터 1943년 9월까지 호치민이 중국 감옥에서 옥중생활을 하며, 4행시 형태로 남긴 문학작품이다.

감옥생활을 하며, 호치민이 겪은 열악한 감옥사정과 대우 그리고 부당함 등이 시안에 들어가 있다. 시를 읽으며, 일제시대 당시 재판받고 복역하던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이나, 해방 이후 국가보안법으로 장기수로써 인생을 감옥에서 보낸 억울한이들이 유난히 생각나게 한달까. <옥중일기>의 한 구절을 보자.

˝4개월간 배불리 못먹고,
4개월간 잠 한 번 제대로 못자고,
4개월간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4개월간 씻지도 못했기 때문이라.˝

이 4행시에는 감옥생활의 열악함이 그대로 담겨있다.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활동을 했던 분들을 만나서 옥살이 얘기를 들어보면, 이러한 경험을 들을 수 있다. 나 또한 그분들을 만나본적이 있으며,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알고 있다. 호치민의 <옥중일기>는 혁명투사의 고된 옥살이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에 읽은 책은 같은 저자가 번역한 <호찌민 시집>이다. 안경환씨가 2018년에 번역한 <호찌민 시집>은 <옥중일기>에다가 이후 호치민이 쓴 시와, 글, 편지, 그리고 연설을 추가했다. 베트남의 독립운동가이자, 국부인 호치민이 애국애족 정신이 담겨 있으며, 자유와 독립을 향한 그의 의지가 시 안에 잘 담겨있다.

한국에서 호치민하면 20세기 공산권 지도자인 스탈린이나 마오쩌둥 그리고 김일성 등과 비교했을때 제법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몇안되는 인물일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관계에 따른 그 영향이 있는 것도 한몫할 것이다. 물론 호치민에 대한 해외에서의 평가도 다른 공산권 지도자들보다 좋은 편이다. 아무튼 호치민은 세계가 인정하는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다.

그러나 한국에서 호치민에 대한 인식은 베트남의 정치인 정도에서 못 벗어났다고 본다. 미국을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한 지도자 정도에서 평가가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호치민에 대해서 깊게 공부해보면, 그가 한 평생을 베트남의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조선의 독립운동가들 못지않게 투쟁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그는 베트남 혁명을 성공시킨 인물이다. 미국에 맞서 승리하기 이전에, 일본과 프랑스 제국주의를 무찌른 인물이며, 그것도 혁명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호치민을 포함한 지도부는 이미 1945년에 일본을 무찔렀고, 1954년에 디엔비엔푸 전투를 통해 프랑스를 무찔렀다. 그런 점에서 베트남 전쟁은 참전용사 출신인 미 정치인 콜린 파월도 인정하듯이, 미국에 명분이 너무나도 없는 전쟁이었다.

안경환씨가 번역한 <호찌민 시집> 내용 중 디엔비엔푸 전투 승전관련 시와 베트남 전쟁 당시 새해 연설들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베트남 사람들이 그를 아직도 존경하는 데에는 그가 진심으로 베트남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헌신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호치민은 자유와 독립의 소중함을 알았고, 진심으로 인민을 사랑했던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그의 모습이 연기된 것이라 말하지만. 연기라고 하기엔 그가 실천적으로 보인 모습에서 근거가 부족하다. 따라서 나는 베트남 인민에 대한 호치민의 사랑은 거짓됨이 없다고 보며, 현재 베트남 사람들이 보이는 호치민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안경환씨가 번역한 <호찌민 시집>은 인간 호치민의 인간적인 감정과 인민에 대한 사랑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호치민의 말과 행동에는 적어도 진심이 담겨있다. 그런 점에서 <호찌민 시집>은 인간 호치민의 진심을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문학작품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호치민이 서거하기 전, 발표했던 1969년 신년 연설을 인용하겠다.

˝작년의 승리는 찬란했으니,
금년에도 갈수록 전선에서 분명히 대승을 거두리라.
독립을 위해, 자유를 위해,
미국을 깨끗이 몰아내자, 꼭두각시를 쳐부수자.
진군하자!
전사, 동포들이여!
남북이 함께 모여, 새해마다 더 즐겁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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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우크라 헤르손철수 평가>

논자마다 그 숫자는 조금씩 다르지만 약 3만 러군이 2-3일사이에 드네프르강 서안에서 동안으로 깜쪽같이 이동했다. 장비도 다들고 말이다. 알려지기로 고철이 된 헬기 한 대와 파괴된 T90전차 한 대만 남겼다 한다. 실로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철군하면서 강의 동서를 연결하던 교량 2개도 마치 가위로 오려 내듯 파괴해 마지막 마무리도 왼벽했다.

작전상 철수와 패전후 후퇴는 추격이 있는 지 여부가 결정적 차이가 아닐 까 싶다. 왜냐하면 대개 전투에서 최대의 병력 손실은 등을 보인 적에 대한 추격전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추격은 없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군사적 관점이다. 예상했던 그대로 우크와 미는 대대적인 선전전을 개시했다. 이를 역사적 승리라고 했다. 아마 제2의 부차 연출도 예상된다. 프로파만 가지고 전쟁이 결정된다면 나는 우크가 이긴다고 본다. 우크의 네오나치는 아주 숙련된 프로파 기술자들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헤르손이 어딘지도 모르는 한국언론도 따라 붙는다. 그렇다. 이게 한국언론의 사명이다.

종합적인 평가는 여전히 다른 문제다. 전쟁에서 정치적 관점과 군사적 괸점은 무엇이 우선되는가? 참으로 난제 중 난제다. 이번 헤르손철수는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 군사적 합리성을 선택한 것이다. 푸틴도 당연히 동의했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다. 이번 철수의 정치적 부담이 이번 전쟁의 정치적 목표달성에 그 어떤 치명적인 장애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동의했을 거로 본다.

전쟁은 자신의 문법Grammar은 가져도,자신의 논리Logik를 갖는 것은 아니다.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말이다. 그렇다. 이번 철수는 전쟁의 ˝문법˝에 충실한 결정이었다. 그렇다면 그 ˝논리˝는? 그 논리는 전쟁의 목표에서 나온다. 우크라 중립, 돈바스, 무장해제, 나치제거... 동남4주의 러연방가입으로 돈바스문제의 정치적 해결은 가닥은 잡았지만 아직 군사적으론 아니다. 나머지도 여전히 아니다. 갈 길이 한참 멀다. 평화는 아직 요원하다.

미국군사평론가 빅서지big serge의 평가인데 읽어 볼 만하다. 헤르손철수에 대한 네개 가설을 따져 본다. 1.러 패배설 2.러의 함정설 3.미러 밀약설 4.러 작전상 선택설 이 네가지다.

출처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pfbid0KBugo6e9ARqgSNpN2LLZgACzAo8JPSR6ewWhNyeeqpH1WBT7TVnwUnTECdTFJDuyl&id=10008044289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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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다! 정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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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3-07-16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B와 그 패거리들은 천안함 사건 이후 대북제재를 강화하여 남북교류를 파탄냈고,
윤석렬과 그 패거리들은 북한에 대해 ‘선제타격‘, ‘원점타격‘ 등의 거친 막말을 내뱉으며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몰고 가고(게다가 이번에는 ‘화력격멸훈련‘을 강행하여 포천 지역민들을 전쟁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박그네는 개성공단을 폐쇄하여 남북 경제교류를 끊어버렸고,
황공안은 사드를 배치하여 동북아시아를 전쟁기지로 만들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커녕 남북관계파탄과 전쟁을 좋아하는 전쟁광 MB, 윤석렬, 박그네, 황공안 등 탐욕스런 뉴라이트 수구세력들과 그들의 물적토대 국짐, 조선일보 등이 있는 한 한반도에 평화도 통일도 없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난 지 이제 대략 1년이 흘렀다. 20019.11 테러에 대한 분풀이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국은 20년간 이 나라에서 전쟁을 전개했고, 궁극적으로 패전했다. 전쟁 말기 이른바 2,000페이지에 달하는 아프가니스탄 페이퍼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미국 지도부가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전쟁을 진행했다는 것이 폭로됐다. 1971년 대니얼 엘스버그가 폭로한 펜타곤 페이퍼처럼,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베트남 전쟁처럼 미국의 거짓과 기만 그리고 위선 속에서 시작된 침략전쟁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항구자유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 이후 몇 개월 동안 사망한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숫자는 2만 명을 돌파했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막대한 자금과 병력을 투입했다. 2010년에는 최소 500명 이상의 미군이 전사했고,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병력을 10만 명을 돌파했다. 미군은 이른바 최신식 무기인 드론(Drone)을 이용하여,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일대를 폭격했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사망자 추정치는 5만 명에서 많게는 10만 명 정도인데, 이러한 숫자를 합쳐 도합 24만 명의 아프가니스탄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가 정확한 추산은 절대 아니다. 지난 2021SBS에서 인터뷰한 탈레반 대변인 수하힐 샤힌은 아프가니스탄 국민 수십만 명이 미점령군에게 살해당했고, 미군 폭격기와 드론 공습에 맞아 죽은 비극적인 사연이 아주 많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의 현 대통령인 조 바이든은 전쟁이 끝날 무렵 2001년부터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최소 1조 달러(한화 1,170조 원) 정도에 달하는 비용을 썼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국방부에서 2020년에 발간한 전쟁 비용 보고서에는 8,147억 달러(한화 995조 원)을 사용했다고 나오며, 여기에는 각종 무기와 파병 부대 운영비, 작전 비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반면 미국 브라운대학교 전쟁비용프로젝트 통계에 따르면 대략 20년간 미국은 전쟁비용으로 총 22,610억 달러(한화 2,653조 원)을 사용했다고 나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이 사용한 전쟁 비용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이 사용한 전쟁비용을 상회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사용한 전쟁 비용은 6,700억 달러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이 사용한 전쟁 비용을 상회하는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 뿐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를 침략하여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사용했음에도 전쟁에서 패배했다. 미군은 2,500명이 전사하고 2만 명이 부상당했다.

 

미국이 이러한 전쟁비용을 들어가면서 아프가니스탄에 세운 정부는 말 그대로 썩어빠진 정부였다. 미국 정부가 임명한 아프가니스탄 친미 대통령인 하미드 카르자이는 아프가니스탄을 세계 최대의 아편 공급 국가로 만들어 놓은 잔인하고 부패한 군벌 들 및 부패한 관료들과 손잡고 통치했다. 당연히 민주주의 같은 이상은 전혀 없었으며, 여성들은 여전히 탈레반 치하 못지 않게 탄압 받았다. 2004년 기준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아편 수요의 87%를 공급했으며, 2009년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세계 부패지수는 2위를 기록했다. 따라서 탈레반이 적잖은 아프간인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 탈레반의 억압성은 친미정부의 부정부패와 폭력으로 인해 옛날 일이 되고 만 것이다.

 

2009년 기준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5위의 최빈국이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인 1인단 GDP426달러였으며, 빈부격차는 극심했고, 전체 인구의 68%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깨끗한 식수를 마실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인은 전체 인구의 23%였다. 평균 수명은 43세였으며, 인구의 76%가 문맹이었다. 특히 여성의 문맹률은 86%였고, 전쟁 10년째 되던 2011년 학교에 다니는 아프가니스탄 소녀는 전체 비율의 30%도 안됐다. 즉 미국은 이처럼 열악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 연간 최소 1,000억 달러 이상의 군사비용을 지출했다. 이 중 아프가니스탄 지역 개발에는 20억 달러 밖에 사용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는 소련도 아프간 재건에 미국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썼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친미정부 하의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은 여전히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미국 정부는 대다수 가난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교육할 기회를 전혀 부여하지 않았다. 친미정부 하에서도 유아사망률과 산모사망률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2009년 기준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여전히 남녀평등지수 최악의 국가 2위를 기록했다. 사실상 탈레반이 통치하는 것이나 친미정부가 들어선 것이나 여성들의 처지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미군의 군사작전 과정에서도 인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미군은 탈레반에 대한 소탕전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친미정부 군대와 함께 민간인들의 대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이 닥쳤으며, 이는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에서 민간인들에게 했던 짓과 일치했다. 또한 미군의 드론 공습으로 적잖은 민간인이 사망했으며, 드론이 투하한 폭탄은 비극적이게도 탈레반 소탕을 빙자하여 민간인을 노렸다.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의 지방경찰들은 보호 대상인 시골 주민들을 강간하고 살해하기도 했으며, 국립경찰 또한 구금자들에게 조직적으로 고문했다는 정황이 유엔 아프가니스탄지원단에 의해 확인되기도 했었다. 아프가니스탄 친미 정부가 자국 국민에게 자행한 고문은 상상을 초월했으며, 당연히 인권유린이 무수히 많이 벌어졌다.

 

이러한 사실을 보더라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여성해방도 민주주의도 그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으며, 미국의 침략 명분은 말 그대로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되었을 뿐이다. 지난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탈레반이 승리하자, 국내 언론들은 자극적으로 여성인권을 갑자기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탈레반의 문제점과는 별개로 아프가니스탄 친미 정부가 아주 썩어빠진 정부이며, 인권은 1도 존중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국내 언론은 전혀 주목하지 않았고, 그저 미국이 써주는 선전문구를 옮기기 급급했다. 현재 탈레반 정부는 분명 반동적인 정부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국과 친미정부에게 어떻게든 좋은 명분을 주려는 이들의 모습은 그저 한심할 따름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그 시작부터 잘못된 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이었으며, 미국의 탈레반 여성인권 운운은 한 마디로 핑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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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3-07-16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더 알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탈레반을 비롯한 극단주의 무장단체를 도와줬던 나라가 미국이라는 사실을요!
1979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사회주의(소련)의 확장을 막겠답시고 저런 극단주의 무장단체들(무자헤딘, 탈레반)을 지원했습니다.